선악의 출발의 선후 (천일국 훈독경 제9권 3일)

훈독왕 | 20201223075904

천일국 훈독경 제9권 3일

선악의 출발의 선후 (훈독본) 
- 제2회 전국 성화대학생총회 때 하신 말씀 -

날짜 : 1970. 10. 3(토)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853) 선악의 출발의 선후 (천일국 훈독경 제9권 3일) - YouTube

 

하나님이 중심

선이 먼저 나왔느냐, 악이 먼저 나왔느냐 하면 악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문제를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불륜의 사랑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혈통적인 인연이 동기가 되어 악이 출발한 것이 인류의 한이요, 그것이 역사적인 선악의 기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개체는 반드시 부모의 사랑을 기원으로 하고 부모의 핏줄을 통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형성된 것입니다. 자기 부모를 닮은 그 소성을 어느 누구도 갈라 가지고 다른 소성을 갖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악의 뿌리도 부모의 소성을 근거로 하여 심어졌기 때문에 그 뿌리를 빼는 일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창조원칙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한 경계선을 넘지 않고는 빼낼 수 없는 것이 혈통적 근거를 중심삼은 죄의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도 이런 혈통적인 것이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시정하느냐? 악은 선에 반대되기 때문에 선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악과 같은 계열이라든가, 같은 방향이라든가, 같은 목적을 중심삼고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선의 세계를 추구하고 선의 인격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재래에 엮어져오던 역사적인 방향, 재래에 형성되었던 사회적인 체제를 그냥 그대로 가지고는 새로운 선의 목적세계를 추구할 도리가 없습니다.

선을 추구하는 우리 본성의 심정을 통하여 그 희망을 달성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종교가 추구하고 바라는 것은 선입니다. 그리고 종교의 중심으로 추구하는 대상은 누구냐? 신입니다. 그 신과 참된 선의 사람이 목적하는 바는 오늘날 죄악된 가운데 있는 인간을 해방시켜 가지고 선한 가치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소원이요, 인간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혹은 신의 섭리입니다.


그러한 신의 섭리와 인간의 소망의 귀결점이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일치되는 귀결점이 완성점이요, 완결점입니다. 그 완결점은 외적인 조건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요인, 희망의 요인, 행복의 요인은 무엇이냐 하면 참된 사람과 참된 신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 위에서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재생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 이상의 기쁨이 인류역사 혹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세계에 나타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도 희망하고 신도 희망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그 기준을 우리가 바라는 소원의 결정적 포인트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중심삼고 신의 섭리 가운데서 인간을 교육해야 합니다. 교육하는 데는 그것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그것과 인연을 맺게 해야 됩니다. 그것이 신이 종교를 통하여 펴려고 하는 최후의 골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의 성서라든가 각 종교의 경서를 살펴보면 반드시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사람이라면 하늘을 사랑해야 합니다. 땅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즉, 천지인(天地人)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데는 땅을 먼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 땅은 사랑의 기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먼저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도 사랑의 기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기원은 무엇이냐? 절대자 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땅과 만물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의 최고의 표준이 무엇이냐? 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만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물자를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려고 하는 것도 다 거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따라서, 인류를 존중하고 인류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준 위에서 경제기반을 갖춘 사랑의 기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최고의 이상, 인간에게 있어서 외적인 이상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솟구쳐 오르는 내적인 모든 심정문제를 중심삼은 신앙까지도 보호하고 주관할 수 있는 모체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중심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적인 분야에 있어서 상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35-46)

완전한 통일

만일 인간이 절대적인 신 앞에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절대적인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했을 것이냐? 그것은 생명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생명도 그러한 사랑의 힘 앞에 지배를 받아야 됩니다. 우리의 생사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제일 어려운 일을 행함에 있어서 권위 있는 힘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은 모든 힘을 총합한 주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에 집중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른 것과는 일체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자살도 합니다. 거기에 끌려 들어갈 때는 외적인 그 무엇도 그를 간섭할 수 없고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게 될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무엇도 그를 침범할 수 없게 됩니다.

 

만일에 우리 인간시조가 그러한 기원에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다” 하시면서 영원히 사랑하실 수 있는 입장에 섰더라면, 오늘날의 인간이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겠느냐? 여러분은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우리에게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제시되었다는 사실이 역사적인 비참상입니다.


만일 인간과 신이 완전한 사랑의 인연을 맺었더라면 신이 있고 없고가 실감이 날 것입니다. 존재의식을 초월한 감정권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신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신이 있고 없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모두 인간이 타락하여 딴 인연 가운데서 태어나게 된 서글픔입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목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전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고, 사랑만이 전체를 줄 수 있고 전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주고 전체를 받아야 일치가 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통일이 된다면 완전한 통일이 아니겠느냐 말입니다. (35-48)

우주의 근본은 무엇이냐

완전한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인간은 사랑을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 관계가 아니고는 성립이 안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우주의 근본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연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힘은 상대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거예요,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거예요? 대답해 봐요! 여기에 세계적인 레슬링 챔피언이 있다면, 그가 가만히 있을 때도 힘이 나타나요? 상대가 있어야 힘이 나타납니다. 힘이라는 것은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대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반드시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은 중심과 외형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유의 현상세계가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의 상대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5-53)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완전한 핵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사람의 모체이며 만유의 핵입니다. 그런데 왜 모든 존재의 핵 되시는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셔야만 했느냐? 그것은 핵 혼자만 있어 가지고는 망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서로 주고받아야 존재가 결정됩니다. 여러분도 호흡해야만 생명이 유지되지요? 심장의 피가 주고받아서 돌아가야만 생명이 유지되지 않아요? 외짝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합니다. 그렇게 주고받는 데 있어서도 똑같은 것을 주고받으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재미없습니다. 그래서 주체의 모양과 대상의 모양이 다릅니다. 


주체와 대상이 같으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만일 여자가 수염이 나면 어떻겠어요? 여자와 남자가 같으면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다른 가치적 존재로서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상대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고 싶어서 창조하셨느냐? 주체가 혼자 있으면 어떻게 돼요? 해체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존재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피조세계를 안 만드실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조세계의 중심은 무엇이냐? 아무리 봐도 사람이더라 이겁니다.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완전한 핵의 주체라면, 그 주체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핵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에 있다면 영존합니다. 그러한 주체의 상대적 존재로 인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과 몸이 주체를 닮아났습니다. (35-55)

인간의 욕망의 안착점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그 본성을 받아 태어난 인간도 사랑의 주체입니다.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바탕의 근원이 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죽음도 넘어갑니다. 그 사랑이 폭발하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한 사랑의 핵적인 존재가 하나님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을 닮은 상대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소성에 대응할 수 있는 소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핵적인 내용과 마찬가지의 성품을 대신할 수 있는 소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어디냐? 사랑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서 평화가 나오고, 그 사랑에서 행복이 나오며, 그 사랑에서 기쁨이 나옵니다. (35-57)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 있어서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본성은 그곳을 향하여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욕심이 그릇된 혈육과 혼합된 욕망으로 나타나 가지고 본성의 욕망을 파탄시키기 때문에 나쁜 것이지, 본래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점령하는 날에는 소원을 다 이루게 되어서 다른 것은 필요 없게 됩니다. (35-60)

힘은 상대적 관계에서 형성된다

힘은 상대적 관계에서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에서 바라는 욕망의 힘은 주체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 주체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후에는 또다시 반발합니다. 일체가 되었는데 왜 반발하느냐? 

 

여러분, 소나기가 내리려고 할 때는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면서 우르르 쾅쾅 하지요? 바로 그 원리입니다. 그것이 무슨 작용에 의해서 그래요? 전기작용에 의해서 그런 것입니다. 수억 볼트가 되는 플러스 힘과 마이너스 힘이 서로 그리워하다가 부딪치면서 빛을 내는 것입니다. 사랑도 빛이 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플러스 앞에는 마이너스가 생겨나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마이너스가 생겨나기 전에 플러스가 생기면 그 플러스끼리 합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막 부딪치려는 순간에 조금 앞서서 다른 플러스가 생기게 되면 그 플러스끼리 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이너스는 따라 나옵니다. 몇 억만 분의 일 정도라도 떨어져서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플러스가 합하여 완전한 플러스권을 이루고, 거기에 대등한 마이너스권이 형성되면 빛이 납니다. 이해가 돼요?


플러스 앞에 마이너스가 결정된 후부터는 같은 극끼리 만나면 서로 반발합니다. 이 말은 실감이 나지요? 장가가기 전에는 총각과 총각끼리 합할 수 있습니다. 또, 시집가기 전에는 처녀와 처녀끼리 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타나면 달라집니다. 미남과 결혼한 추녀가 있다면, 그녀는 자기 친구들 가운데 미인이 자기 남편 앞에 얼씬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친구들이 오면 싫어하는 것입니다. 반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 남자도 천하에 없는 미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는데 친구들이 수두룩이 와 가지고 농담을 하거나 조금 눈치만 달라도 그 남자는 친구들에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원칙을 보게 되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지 못한 존재는 영속하지 못합니다. 없어지게 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존재는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영속적인 형을 닮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영속할 수 있을 것이로되, 마이너스나 플러스가 혼자 있게 되면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물우물하지 말고 상대를 만들어 가지고 존속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작용의 세계는 반발과 융합의 작용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반발작용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모순입니다. 존속하기 위한 제2의 권을 형성하기 위한 배척입니다. (35-61)

재생창에 들어가야

우리 인간은 완전한 사랑을 받으려고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딴 것이 와서 부딪치면 얼마나 배척하겠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이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하고 우리 인간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주체와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 날에는 얼마나 배척하겠어요!. 다른 것들이 와 붙을 수 있겠어요? 왔다가는 들이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 구조가 실감나지요?


그래야 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전부 다 떠돌이 패라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가 붙지 않으면 자기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디에 가 붙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가운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가복음 12:30) 말이 모든 존재의 법도 중에서 최고의 법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1서 4:16)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전체의 가치와 본질을 전부 다 상대에게 옮겨주기 위한 입장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부활해라. 중생해라. 다시 태어나야 된다. 다시 살아야 된다”고 하는 말들이 나오게 된 동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중생해서 다시 태어나야 되겠어요, 그냥 그대로 있어야 되겠어요?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중생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인류가 거짓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뿌리를 잘못 뻗었다는 것입니다. 뿌리의 모양은 갖고 있으되 부정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존할 수 없습니다. 영존할 수 있는 인연은 갖고 있지만 영존할 수 없기 때문에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생창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35-63) 

참부모가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도리

참부모가 나오려면, 먼저 참된 남자가 나와야 되겠지요? 지금까지 종교는 참된 남자 하나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 참된 남성을 찾기 전까지의 사랑은 천륜의 법도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고차적인 종교인 기독교에서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불교도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완전한 남자가 나와서 완전한 여자를 맞아 사랑의 법도를 세우지 못했는데, 껄렁껄렁한 남자와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겠어요? 아직까지 본래의 결혼식을 못 해봤는데 말이에요. 타락한 결혼식을 한 것이 하나님의 원한 중의 원한이고 슬픔 중의 슬픔인데, 거기에 또 반발을 할 것이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에서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때까지 독신생활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 앞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완성된 남자, 참된 남자가 나와 가지고 참된 여자를 만날 때까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것이 참부모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상은 재림사상입니다. 재림주는 인류의 조상이 되는 참아버지의 자격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아버지의 사명을 하러 왔던 것입니다. 완성된 남성으로 와 가지고 완성된 여성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참부모의 가정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변치 않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아들딸을 남겨야 했습니다.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손자가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혈족을 남기기 위한 것이 예수님이 지상에 온 목적이었는데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합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 가운데도 머리가 깨인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시키지 않고 추방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미국 사람도 내가 오라고 하면 “네, 가겠습니다” 하고 달려오고, 일본 사람도 내가 오라고 하면 "네, 가겠습니다” 하고 달려옵니다. 천황이나 대통령이 반대하더라도 달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코를 딱 걸고 세계를 잡아들이면 세계가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는 하늘을 중심삼은 새로운 부모의 사랑과 관계를 맺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할 때는 선생님하고 어머니가 둘이서 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전수식입니다. 여기서 조성된 전통은 영원한 것이 됩니다. 혁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혁명이 필요 없는 새로운 전통이 이 천지간에 세워질 때 새로운 가정,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어서 지구성을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5-65)*

 

 

천일국 훈독경 제9권 3일, 원문
 
선악의 출발의 선후 
- 제2회 전국 성화대학생총회 때 하신 말씀 -
 
날짜 : 1970. 10. 3(토)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하나님이 중심
 
선이 먼저 나왔느냐, 악이 먼저 나왔느냐 하면 악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악이 출발했느냐? 그것은 어떠한 외적인 조건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랑문제를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불륜의 사랑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혈통적인 인연이 동기가 되어 악이 출발한 것이 인류의 한이요, 그것이 역사적인 선악의 기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개체는 부모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반드시 부모의 사랑을 기원으로 하고 부모의 핏줄을 통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형성된 것입니다. 자기 부모를 닮은 그 소성을 어느 누구도 갈라 가지고 다른 소성을 갖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원칙을 두고 볼 때 불가능한 것입니다.
악의 뿌리도 부모의 소성을 근거로 하여 심어졌기 때문에 그 뿌리를 빼는 일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창조원칙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한 경계선을 넘지 않고는 빼낼 수 없는 것이 혈통적 근거를 중심삼은 죄의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도 이런 혈통적인 것이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시정하느냐? 악은 선에 반대되기 때문에 선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악과 같은 계열이라든가, 같은 방향이라든가, 같은 목적을 중심삼고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선의 세계를 추구하고 선의 인격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재래에 엮어져오던 역사적인 방향, 재래에 형성되었던 사회적인 체제를 그냥 그대로 가지고는 새로운 선의 목적세계를 추구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방향을 근본적으로 달리해야 합니다. 하나가 동으로 가면 하나는 서로 가고, 하나가 남으로 가면 하나는 북으로 가고, 하나가 내려가면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가야 됩니다. 이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모순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지금까지 모르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선을 추구하는 우리 본성의 심정을 통하여 그 희망을 달성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심정이지만 포위된 환경권 내에서는 정상적인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일대 혁명적인 세계를 갖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종교가 추구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선입니다. 그리고 종교의 중심으로 추구하는 대상은 누구냐? 신입니다. 그 신과 참된 선의 사람이 목적하는 바는 오늘날 죄악된 가운데 있는 인간을 해방시켜 가지고 선한 가치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소원이요, 인간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혹은 신의 섭리입니다.
그러한 신의 섭리와 인간의 소망의 귀결점이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일치되는 귀결점이 완성점이요, 완결점입니다. 그 완결점은 외적인 조건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처럼 물질문명이 팽배한 황금만능시대에 있어서 물질을 중심삼고 인류의 소망의 귀결점과 신의 섭리의 귀결점을 결정지을 수 있겠느냐 할 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과 하나님이 생명을 가지고 참된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해서 참된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된 새로운 생명의 기원을 어떻게 발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생명의 요인, 희망의 요인, 행복의 요인은 무엇이냐 하면 참된 사람과 참된 신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 위에서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재생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 이상의 기쁨이 인류역사 혹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세계에 나타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도 희망하고 신도 희망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그 기준을 우리가 바라는 소원의 결정적 포인트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중심삼고 신의 섭리 가운데서 인간을 교육해야 합니다. 교육하는 데는 그것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그것과 인연을 맺게 해야 됩니다. 그것이 신이 종교를 통하여 펴려고 하는 최후의 골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의 성서라든가 각 종교의 경서를 살펴보면 반드시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사람이라면 하늘을 사랑해야 합니다. 땅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즉, 천지인(天地人)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데는 땅을 먼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 땅은 사랑의 기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먼저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도 사랑의 기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기원은 무엇이냐? 절대자 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땅과 만물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의 최고의 표준이 무엇이냐? 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만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물자를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려고 하는 것도 다 거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따라서, 인류를 존중하고 인류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준 위에서 경제기반을 갖춘 사랑의 기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최고의 이상, 인간에게 있어서 외적인 이상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솟구쳐 오르는 내적인 모든 심정문제를 중심삼은 신앙까지도 보호하고 주관할 수 있는 모체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중심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적인 분야에 있어서 상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35-46)
 
완전한 통일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첫마디는 무슨 말씀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신이 사람을 사랑해야 되느냐, 사람이 신을 사랑해야 되느냐? 어느 것이 원칙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는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사랑의 한계가 어느 정도까지냐? 완전한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우리 인간이 요구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완전한 사랑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완전한 사랑의 터전 위에서 우리의 생명이 결정되고, 그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외적인 생활무대가 전개되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터전이 되었겠어요!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그럴 수 있는 출발의 기점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만일 인간이 절대적인 신 앞에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절대적인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했을 것이냐? 그것은 생명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생명도 그러한 사랑의 힘 앞에 지배를 받아야 됩니다. 우리의 생사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제일 어려운 일을 행함에 있어서 권위 있는 힘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떤 외적인 세계의 권력이 아닙니다.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힘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죽고 사는 것을 일상생활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그것은 생명보다도 사랑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법도권 내에서 신이 우리 인간을 완전히 사랑했느냐? 또, 인간이 아들딸의 인연으로 지음을 받았을 때는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입장이었는데 인간이 그런 사랑을 받았느냐? 받았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깊이 사랑했던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권고나 어떤 스승의 교훈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신과 우리 인간이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한 사랑을 했고 완전한 사랑을 받았다면 얼마나 기뻤을 것이냐? 그리고 얼마나 좋았을 것이냐? 만약에 그랬더라면, 인류의 역사가 이렇게 비운의 역사로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힘을 총합한 주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에 집중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른 것과는 일체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자살도 합니다. 거기에 끌려 들어갈 때는 외적인 그 무엇도 그를 간섭할 수 없고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게 될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무엇도 그를 침범할 수 없게 됩니다.
만일에 우리 인간시조가 그러한 기원에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다” 하시면서 영원히 사랑하실 수 있는 입장에 섰더라면, 오늘날의 인간이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겠느냐? 여러분은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우리에게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제시되었다는 사실이 역사적인 비참상입니다.
만일 인간과 신이 완전한 사랑의 인연을 맺었더라면 신이 있고 없고가 실감이 날 것입니다. 존재의식을 초월한 감정권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신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신이 있고 없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모두 인간이 타락하여 딴 인연 가운데서 태어나게 된 서글픔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수많은 경서나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목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부모의 사랑을 백 퍼센트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만이 생깁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어때요? 부모의 사랑 보따리를 숫자로 표시해서는 안 되지만, 부모가 천만큼의 사랑을 갖고 있으면서 자식에게 구백만큼의 사랑만 주고 백만큼의 사랑을 남겨 두었다고 하면 아무리 사랑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식은 사랑을 받지 않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구백만큼의 사랑에 나머지 백만큼의 사랑을 다 채워 주어야 비로소 만족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결혼해 가지고 색시나 신랑 되는 사람이 “당신 날 사랑하오” 하고 물었을 때, “99퍼센트만 사랑하오” 해서는 안됩니다. “백 퍼센트 사랑하오” 해야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하냐 하면 사랑만이 전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고, 사랑만이 전체를 줄 수 있고 전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주고 전체를 받아야 일치가 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통일이 된다면 완전한 통일이 아니겠느냐 말입니다. (35-48)
 
우주의 근본은 무엇이냐
 
완전한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인간은 사랑을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 관계가 아니고는 성립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적이시고, 우주의 중심이 되시는 주인이시니까 혼자서도 사랑하실 수 있지 않겠느냐? 어때요? 하나님도 사랑을 위해서는 혼자 있어야 되겠어요, 둘이 있어야 되겠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도 혼자서는 사랑하실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어서 사랑이 성립되면 번식이 벌어집니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모든 만물은 번식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즉, 사랑의 문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인연을 주장하고 살려면 주체와 대상의 기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근본은 무엇이냐? 존재는 어디서부터 출발되었느냐?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연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힘은 상대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거예요,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거예요? 대답해 봐요! 여기에 세계적인 레슬링 챔피언이 있다면, 그가 가만히 있을 때도 힘이 나타나요? 상대가 있어야 힘이 나타납니다. 힘이라는 것은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대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반드시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은 무엇이냐? 중심과 외형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유의 현상세계가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의 상대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 주체입니다. 주체는 무엇이냐? 핵입니다. 그러면 핵은 사각형이에요, 원형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한정이 없지만, 하여튼 들어 보라구요! 오늘 이야기를 다 못 하면 이 다음에 또 하지요. 핵은 정지하고 있느냐, 운동하고 있느냐? 항상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운동을 하려면 사각형이어야 되느냐, 원형이어야 되느냐? 원형이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하는 핵을 중심삼은 결과적인 존재는 반드시 원형을 닮습니다.
여러분의 손끝이 뾰족해요, 둥글어요? 둥글지요. 그것은 전부 다 원형을 닮아났기 때문입니다. 주먹을 쥐면 둥근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잘살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은 퉁퉁한 사람입니다. 원형에 가까운 타입일수록 완성형입니다. 여러분은 원만(圓滿)한 것을 좋아해요, 각만(角滿)한 것을 좋아해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원형입니다. 인간 가운데 제일 귀한 부분이 뭐냐? 제일 동그랗게 생긴 부분입니다. 그러면 동그랗게 생긴 것이 뭐냐? 눈, 심장 등 중요한 기관은 전부 다 둥글게 생겼습니다. (35-53)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완전한 핵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사람의 모체이며 만유의 핵입니다. 그런데 왜 모든 존재의 핵 되시는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셔야만 했느냐? 그것은 핵 혼자만 있어 가지고는 망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전기로 말하면, 아무리 완전한 플러스라고 해도 플러스만 있고 마이너스가 없을 때는 없어지지 말라고 해도 전기가 없어집니다. 그 플러스가 없어지지 않으려면 없어지지 않을 수 있는 원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창조의 역사를 거쳐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서로 주고받아야 존재가 결정됩니다. 여러분도 호흡해야만 생명이 유지되지요? 심장의 피가 주고받아서 돌아가야만 생명이 유지되지 않아요? 외짝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합니다. 그렇게 주고받는 데 있어서도 똑같은 것을 주고받으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재미없습니다. 그래서 주체의 모양과 대상의 모양이 다릅니다. 밥을 먹을 때도 매일같이 김치 깍두기만 먹으면 다른 것이 먹고 싶어요, 안 먹고 싶어요? 음식도 매일같이 다른 것을 갖다 넣어야 기준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조미료가 생겼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평범하면 시시하거든요.
주체와 대상이 같으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만일 여자가 수염이 나면 어떻겠어요? 여자와 남자가 같으면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다른 가치적 존재로서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상대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고 싶어서 창조하셨느냐? 주체가 혼자 있으면 어떻게 돼요? 해체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존재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피조세계를 안 만드실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조세계의 중심은 무엇이냐? 나무, 호랑이새끼, 사자새끼, 원숭이새끼도 아니더라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사람이더라 이겁니다.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완전한 핵의 주체라면, 그 주체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핵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에 있다면 영존합니다. 그 핵의 중심인 사랑과 핵이 서로 주고받는 데 불안이 있을 수 있겠으며, 불평이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러한 주체의 상대적 존재로 인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과 몸이 주체를 닮아났습니다. 하나님의 내정적 사랑이 하나님의 외형적 핵과 일체가 되어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가지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우리 인간도 내적인 마음과 외적인 몸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불행의 요인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35-55)
 
인간의 욕망의 안착점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그 본성을 받아 태어난 인간도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대상의 입장에 놓인 몸뚱이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틀림없이 인간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의좋은 부부를 갈라놓을 수 있어요? 가령, 지금 애인과 함께 죽으러 가는 여자가 있는데 다른 남자가 나타나서 네 남자를 따라가서 죽지 말고 나하고 같이 가자고 하면 그 말이 그 여자에게 통하겠어요?
그렇게 사랑 때문에 죽으러 가는 청년 남녀가 있는데, 남자를 보니까 못생겼어요. 그래서 거기에 어떤 미남이 나타나서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이 남자보다 내가 더 훌륭하고, 모든 일에도 내가 더 능하니까 나를 따라와라! 죽기는 왜 죽어” 한다면, 그 여자가 “그러자” 하겠어요? 도리어, 그 남자에게 “뭐야, 이 녀석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바탕의 근원이 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죽음도 넘어갑니다. 그 사랑이 폭발하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한 사랑의 핵적인 존재가 하나님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을 닮은 상대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소성에 대응할 수 있는 소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핵적인 내용과 마찬가지의 성품을 대신할 수 있는 소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어디냐? 사랑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서 평화가 나오고, 그 사랑에서 행복이 나오며, 그 사랑에서 기쁨이 나옵니다. (35-57)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 있어서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본성은 그곳을 향하여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욕심이 그릇된 혈육과 혼합된 욕망으로 나타나 가지고 본성의 욕망을 파탄시키기 때문에 나쁜 것이지, 본래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점령하는 날에는 소원을 다 이루게 되어서 다른 것은 필요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점령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내 마음에 딱 집어넣고 쇠를 딸까닥 채운 후에는 낮잠을 자지 말래도 자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갖다 준다고 해도 귀찮습니다. 그럴 수 있는 욕망의 안착점이 있을 것 아니에요? (35-60)
 
힘은 상대적 관계에서 형성된다
 
힘은 상대적 관계에서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에서 바라는 욕망의 힘은 주체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 주체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후에는 또다시 반발합니다. 일체가 되었는데 왜 반발하느냐? 반발 안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발하는지, 반발을 안 하는지 보라구요!
전기의 원리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하나되지만 플러스와 플러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는 반발하지요? 그것이 왜 반발하느냐 이겁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반발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발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소나기가 내리려고 할 때는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면서 우르르 쾅쾅 하지요? 바로 그 원리입니다. 그것이 무슨 작용에 의해서 그래요? 전기작용에 의해서 그런 것입니다. 수억 볼트가 되는 플러스 힘과 마이너스 힘이 서로 그리워하다가 부딪치면서 빛을 내는 것입니다. 사랑도 빛이 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수억 볼트에 해당하는 플러스 힘이 한꺼번에 화다닥 튀어나오는 것이냐? 아닙니다. 조금씩 플러스와 플러스끼리 합동공세를 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큰 플러스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조그만 플러스들이 합해 가지고 큰 플러스권을 형성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플러스의 총합권을 거치지 않고는 대(大) 플러스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아니냐! 그 이론이 맞지요?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 안 되었더라면 이것을 가지고 박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플러스끼리 합해져서 대 플러스가 생겨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플러스 앞에는 마이너스가 생겨나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마이너스가 생겨나기 전에 플러스가 생기면 그 플러스끼리 합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막 부딪치려는 순간에 조금 앞서서 다른 플러스가 생기게 되면 그 플러스끼리 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이너스는 따라 나옵니다. 몇 억만 분의 일 정도라도 떨어져서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플러스가 합하여 완전한 플러스권을 이루고, 거기에 대등한 마이너스권이 형성되면 빛이 납니다. 이해가 돼요?
플러스 앞에 마이너스가 결정된 후부터는 같은 극끼리 만나면 서로 반발합니다. 이 말은 실감이 나지요? 장가가기 전에는 총각과 총각끼리 합할 수 있습니다. 또, 시집가기 전에는 처녀와 처녀끼리 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타나면 달라집니다. 미남과 결혼한 추녀가 있다면, 그녀는 자기 친구들 가운데 미인이 자기 남편 앞에 얼씬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친구들이 오면 싫어하는 것입니다. 반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실감이 나지요? 이것은 논리에 맞는 것입니다. 또,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하에 없는 미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는데 친구들이 수두룩이 와 가지고 농담을 하거나 조금 눈치만 달라도 그 남자는 친구들에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게 어떤 연고냐? 그걸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원칙을 보게 되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지 못한 존재는 영속하지 못합니다. 없어지게 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존재는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영속적인 형을 닮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영속할 수 있을 것이로되, 마이너스나 플러스가 혼자 있게 되면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물우물하지 말고 상대를 만들어 가지고 존속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작용의 세계는 반발과 융합의 작용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반발작용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모순입니다. 존속하기 위한 제2의 권을 형성하기 위한 배척입니다. 이것은 이해되지요? 이런 것은 대학생쯤 되면 알아두어야 됩니다. 이걸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배워야 됩니다. 이런 얘기를 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안 들은 것보다 나을 테니 알아두라는 것입니다. (35-61)
 
재생창에 들어가야
 
우리 인간은 완전한 사랑을 받으려고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딴 것이 와서 부딪치면 얼마나 배척하겠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이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하고 우리 인간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주체와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 날에는 얼마나 배척하겠어요!. 다른 것들이 와 붙을 수 있겠어요? 왔다가는 들이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 구조가 실감나지요?
그래야 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전부 다 떠돌이 패라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가 붙지 않으면 자기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지옥은 폐물 보관소입니다. 그러니까 어디에 가 붙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 붙어야 하느냐? 그래서 여러 종교를 헤쳐 보니 제일 멋진 가르침이 성경 가운데 있더라 이겁니다. 그것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마가복음 12:30)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이 천칙(天則)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실감이 날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모든 존재의 법도 중에서 최고의 법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1서 4:16)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전체의 가치와 본질을 전부 다 상대에게 옮겨주기 위한 입장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또 다른 플러스 대시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반발이 나오게 됩니다. 인간은 이것을 주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후손들이냐? 혈통적으로 본질적 플러스의 사랑의 인연을 통한 아들딸이냐, 그렇지 않으면 플러스 대시의 사랑의 인연을 통한 아들딸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플러스 대시예요, 플러스예요? 플러스 대시입니다. 플러스 대시가 틀림없지요? 또, 우리 아가씨들도 플러스 대시가 틀림없지요? 그러면 이제부터는 처리방법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택할 거예요? 선택의 자유는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망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망하는 것은 싫지요? 망할 자식이라는 욕은 하지만, 잘될 자식이라는 욕은 없거든요. 욕 중에서도 망할 자식이라는 욕이 제일 나쁜 욕입니다. 그러니까 망하지 않으려면 전부 다 하나님하고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하나님하고 관계를 맺는데, 종교의 내용을 통하지 않고 맺을 수 있느냐?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있어야 되느냐, 없어야 되느냐? 종교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것을 현재 대학가의 젊은이들에게 일깨워서 그들의 뇌수에 틀어박혀 있는 고리타분한 걸레 짜박지 같은 생각들을 말끔히 청소해 버리고 종교를 믿어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면, 공산당은 존재할래야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플러스 대시의 후손들입니다. 그 플러스 대시는 어떤 존재냐? 악의 주체입니다. 그 악의 주체가 대관절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나님이 아들딸을 결혼시켜 가지고 재미있게 살려는 준비를 하셨는데, 그 집에 있는 나이 많은 노련한 종이 하나님이 키워 나오신 장차 인류의 어머니가 될 해와를 유혹해 가지고 겁탈하여 딴 사랑의 핏줄을 맺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기독교에서 “부활해라. 중생해라. 다시 태어나야 된다. 다시 살아야 된다”고 하는 말들이 나오게 된 동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중생해서 다시 태어나야 되겠어요, 그냥 그대로 있어야 되겠어요?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중생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인류가 거짓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뿌리를 잘못 뻗었다는 것입니다. 뿌리의 모양은 갖고 있으되 부정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존할 수 없습니다. 영존할 수 있는 인연은 갖고 있지만 영존할 수 없기 때문에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생창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35-63)
 
참부모가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도리
 
참부모가 나오려면, 먼저 참된 남자가 나와야 되겠지요? 지금까지 종교는 참된 남자 하나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 참 된 남성을 찾기 전까지의 사랑은 천륜의 법도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고차적인 종교인 기독교에서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불교도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완전한 남자가 나와서 완전한 여자를 맞아 사랑의 법도를 세우지 못했는데, 껄렁껄렁한 남자와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겠어요? 아직까지 본래의 결혼식을 못 해봤는데 말이에요. 타락한 결혼식을 한 것이 하나님의 원한 중의 원한이고 슬픔 중의 슬픔인데, 거기에 또 반발을 할 것이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에서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때까지 독신생활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 앞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완성된 남자, 참된 남자가 나와 가지고 참된 여자를 만날 때까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것이 참부모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상은 재림사상입니다. 재림주는 인류의 조상이 되는 참아버지의 자격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아버지의 사명을 하러 왔던 것입니다. 완성된 남성으로 와 가지고 완성된 여성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참부모의 가정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변치 않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아들딸을 남겨야 했습니다.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손자가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혈족을 남기기 위한 것이 예수님이 지상에 온 목적이었는데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됩니다. 회사원이 출장 가서 일을 못 마치고 돌아왔으면 다시 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재림사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류의 참된 조상, 즉 아버지로 왔었는데 인간이 그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그 죄를 무엇으로 갚을 것이냐 이겁니다. 그 죄를 무엇으로 사함받을 거예요?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만민은 이 죄에 걸려 가지고 영락없이 지옥 가게 되어 있습니다. 천벌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되어야 할 존재들이 아버지를 모르고 죽였으니까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예수님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중심삼고는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 앞에 새로운 희소식을 갖다 줄 수 있었던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자리에 섰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문화권이 형성된 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신이 없다면 그렇게 안 되었을는지 모르지만, 신이 있다면 그렇게 안 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재림할 때 신랑으로 와 가지고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참부모의 자리를 재현시키지 않고는 만민을 회생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참부모가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도리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도리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합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 가운데도 머리가 깨인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시키지 않고 추방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미국 사람도 내가 오라고 하면 “네, 가겠습니다” 하고 달려오고, 일본 사람도 내가 오라고 하면 "네, 가겠습니다” 하고 달려옵니다. 천황이나 대통령이 반대하더라도 달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코를 딱 걸고 세계를 잡아들이면 세계가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는 하늘을 중심삼은 새로운 부모의 사랑과 관계를 맺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할 때는 선생님하고 어머니가 둘이서 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전수식입니다. 여기서 조성된 전통은 영원한 것이 됩니다. 혁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혁명이 필요 없는 새로운 전통이 이 천지간에 세워질 때 새로운 가정,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어서 지구성을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