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분기점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일)

훈독왕 | 20201223075832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일

선악의 분기점 (훈독본) 
날짜 : 1970. 8. 2(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선악의 분기점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일)

 

선으로 인도하는 종교가 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러분이 보편적으로 알다시피 선한 세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선을 지향하고 선의 목적을 세워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 자체가 선하지 못하다 할진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역시 선하지 못한 것이고, 그 사회가 선하지 못하다 할진대 그 국가 역시 선하지 못한 것입니다. 선하지 못한 국가가 많으면 세계 역시 선하지 못한 세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온 역사과정을 생각하고 지금 현시대를 생각하고 미래에 남아질 수 있는 한때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전체 분야를 앞에 놓고 선의 중심을 세워서 자기 자신이 선의 한 목적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심히도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선은 세계적으로 보면 세계적인 선도 있을 것이요, 국가적으로 보면 국가적인 선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민족적으로 보면 민족적인 선, 가정적으로 보면 가정적인 선, 개인적으로 보면 개인적인 선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선은 일치되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동쪽은 동쪽의 입장, 서쪽은 서쪽의 입장, 남쪽은 남쪽의 입장, 북쪽은 북쪽의 입장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두고 볼 때도,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전부 다 다릅니다. 각기 선조가 다르고 얼굴과 말과 모든 행동이 천태만상이듯이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선의 방향도 각기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 형상들, 무리들을 놓고 경륜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개인적인 선의 방향을 어떻게 하면 전체 목적을 위하여 갈 수 있는 선의 방향에 일치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먼저 이렇게 각기 다른 선의 방향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합하는 운동을 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그 무엇이 나와야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초민족적이고 초국가적으로 횡적인 인연을 갖추어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방향을 제시해 주시기 위한 것이 역사과정에 나타난 수많은 종교들이었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선을 추구하되 자기들 나름의 양심의 방향에 따라서 추구해 나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33-32)

하나님은 무엇을 생각하며 나오시는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아서 아느냐? 인간의 마음을 보아서 압니다. 우리 마음을 보면 마음 자체에서 작용하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능동성을 가지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자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인 입장이라는 것은 어떤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으로 하여금 선을 추구하게 하고,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게 하고, 보다 나은 선의 환경을 추구하게 하는 어떤 힘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일생 동안 지지하고 있는데, 자기 자체가 동기가 되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양심이 어떤 주체와 하나된 입장에서 몸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생각하며 나오시는가? 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한 기점을 중심삼고, 너나 할것 없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의 근원을 중심삼고 원래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면서도 현재 상반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몸과 마음이 상반적인 여건을 타개해 버리고 서로 필요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어떻게 결속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마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33-34)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양심작용도 작용이 틀림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의 내용을 분석해 보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습니다. 상대관계만 성립되면 당장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런 상대적인 관계와 상충적인 관계가 우주의 근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양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양심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든간에 사람에게는 전부 다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 양심이라는 것은 힘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주체가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 양심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면 완전한 플러스는 휘익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가 그런 세계입니다.


누구든지 맨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고 정성들여요? 여러분은 정성들일 때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고 정성들여요? 그렇지만 마음의 세계를 자꾸자꾸 파고 들어가게 되면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처음에는 직선이던 것이 점점 횡적으로 연결되어서 반응이 오고, 안테나를 통해 소리가 나는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힘이 옵니다. 


그 힘이 어떻게 오느냐? 그것은 라디오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느냐에 따라서 먼 거리에서 오는 전파를 깨끗하게 변환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는 데 있습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완전한 플러스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실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없다면 하나님도 고독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하시며 나오고 계시지만, 수고하시는 그 가운데 인간들이 몸부림치면서 잘못했다고 회개도 하고 하니까 낙심하셨다가도 다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나오십니다. 앞날에 인간을 중심삼은 최고의 선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하나의 크나큰 소망을 중심삼고 나오십니다. 과정에서는 개척이요, 혁신이요, 발전이요, 개혁입니다. 이것을 행하면서 나오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적인 봄날을 향해서 나가시는 것입니다. (33-36) 

우리가 선과 악을 어떻게 가려 가느냐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이 맑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좋은 때가 될지, 나쁜 때가 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세계에 있어서도 전기작용과 같은 작용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양심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달라서 언제나 싸웁니다. 몸이 마이너스, 마음이 플러스가 되어야 하는데 뒤집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냐? 선악의 분기점인 우리가 선과 악을 어떻게 가려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가려갈 수 있는 길은 천태만상입니다. 백이면 백 사람이 다 같지 않습니다. 

 

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 아침은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소년기가 있고, 청년기가 있고, 장년기가 있고, 노년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봄절기는 사춘기입니다. 여름절기는 30대이고, 가을절기는 40대 정도입니다. 그 이후로는 겨울절기로 들어가게 되고, 동지가 넘어갈 때 해당되면 죽습니다.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춘하추동이 그렇고 하루가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천지의 법도에 따라 태어났습니다. 주역(周易)이 이치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음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상하 음양이냐, 좌우 음양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사상(四象)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전부 다 다릅니다. 예수님도 세 제자를 세워 예수님을 중심삼고 동서남북의 사방성을 갖추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말하는 사위기대는 천리이치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동쪽형의 사람, 서쪽형의 사람, 남쪽형의 사람, 북쪽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절기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33-40) 


몸과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

여러분은 제일 먼저 선이냐 악이냐를 가려내야 합니다. 선악이 어디에 있느냐? 선악은 세계에 꽉 차 있지만 선악을 가려야 할 그 분기점은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세계가 악하다고 할 때, 그 악한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산다고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타락권 내에 있으면서도 그물에 걸려 있는 고기와 마찬가지로 반기를 들지 않고 그냥 살고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와 상충을 벌여야 할 때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악한 세계라는 것을 안다면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느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떨어졌기 때문에 해방을 맞기 위해서는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됩니다. 그냥 그대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인류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없고, 새로운 역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역사적인 선의 흔적을 남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투쟁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선과 악을 마음과 몸에서부터 가려내야 합니다.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 편에 서 가지고 그것과 일치되지 않는 것에 대해 투쟁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선의 기원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보다 발전해 가지고 최고의 자리, 최종의 자리에 있는 마음이 바로 절대적인 마음입니다. 그 절대적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마음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세계를 무한히 개발해야 됩니다. 같은 세계라도 개발되지 못했을 때의 눈으로 보는 세계에 비해 개발된 입장에서, 자각된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천양지차(天壤之差)입니다. 들리는 모든 새 소리로부터 보이는 모든 만상에 천하가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물에 대해 그 가치의 내용을 보다 확실히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고, 그 높이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내적인 마음이 점점 강해집니다. 그러면 최고로 강해질 수 있는 경지는 어떤 경지이냐?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 완전한 플러스인 하나님과 하나되면 그렇게 됩니다. 완전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둘일 수 없기 때문에 유아독존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바꿔집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한테로 가고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에게 옵니다. 그렇게 마음이 바꿔지기만 하면, 인간의 상반되었던 몸뚱이가 달라붙습니다. (33-43)

인륜과 천정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오늘날 인류에게는 전인류가 묶어질 수 있는 하나의 마음적인 주체성, 만인이 공인할 수 있는 주체성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주체적인 인격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한 인격기준을 세우는 데는 오늘날 우리 인간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한 분이 다시 보내심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여러 종교에 남아진 재림사상 혹은 메시아사상입니다.


그 메시아란 분은 와서 자신이 잘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다 잘 살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양심을 중심삼은 인격으로 자연적인 생활환경을 제시할 때, 우리 몸이 완전히 순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힘입니다. 서로가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영적인 체험을 한 후에 자신이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아무렇게나 만나서 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방향이 맞는 것이고 체질과 바탕이 맞는 것입니다. 하나는 플러스고 다른 하나는 마이너스로서 완전한 상대적인 관계가 되어 가지고 “나는 네가 죽도록 필요하고, 너는 내가 죽도록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묶어져서 하나될 때는 두 인격이 합해져 하나의 인격을 갖추기 때문에 두 사람 이상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주인이 됩니다.

 

몸과 마음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사람만으로는 절대로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천정이 가담해 들어오면 착 달라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했습니다. (33-46) 

세계적인 생활관으로 넓혀 나가야

선악을 가려 나가는 데 있어서의 출발점은 나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기원으로 해 가지고 가려 나가야 됩니다. 타락한 세상에 그냥 그대로 있으면 악한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은 지옥행입니다. 선에 제일 가까운 양심표를 사 가지고 천국으로 가야 됩니다. 구원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가야 됩니다. 개인이 그래야 되고 가정, 종족, 민족, 세계가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주의와 사상입니다.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생활관, 새로운 세계의 인격관 등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선을 중심삼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악을 타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투쟁해야 됩니다. 우리가 투쟁을 하는 데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어떤 틈을 통해서 공격하느냐? 사탄은 여러분의 몸을 통해서 공격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앞에는 몸이 사탄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자 앞에는 여자가 사탄이고 여자 앞에는 남자가 사탄입니다. 그렇게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언제나 사탄이 되기가 쉽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태복음 10:36) 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몸뚱이는 한집안 식구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벌어져 있습니다. 몸뚱이를 중심삼고 보면 마음이 원수입니다. 몸뚱이는 악의 무대요, 마음은 선의 무대입니다. 이 악의 무대 가운데서 선의 무대를 닦으려면 하늘의 도리, 즉 천륜의 도리를 들고 나와야 됩니다. 개인적인 마음의 세계에서 심정을 개발해 가지고 천륜의 인연 앞에 범위를 넓혀 나가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생활관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생활관으로 넓혀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33-48)

통일교회의 갈 길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자체가 인류를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나도 축복가정이니까 교회를 이용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하늘도 절대로 이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갈라집니다. 반드시 끝에 가서는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자체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의 갈 길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정통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정통적인 길이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을 이렇게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한테는 통일교회의 갈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선악을 판결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말은 임의로 하는 말이 아니고 우연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이 세계정세와 상대적인 관계를 갖게 될 때는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33-58)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 천부의 사명을 존중하고, 또한 긍지를 지니고 그 사명 앞에 순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책임을 감당하면 여러분은 개인을 초월하고 가정, 종족, 민족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일생을 중심삼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4단계를 초월할 수 있고 국가적인 사명 앞에 무한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 시대입니다. 이 은사시대를 상실해 버리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은사권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악의 분기점은 나 개인에서부터 출발하여 가정, 민족, 국가, 세계로 진전되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계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여러분 개인만으로는 절대 안됩니다. 축복받은 가정만으로도 절대 안됩니다. 전체를 위주로 공동보조를 맞춰서 한 방향으로 가야 됩니다. 물결이 높을 때는 높아지고 낮을 때는 낮아져서 물결의 상하고저에 맞추어서 같은 운명체가 되어 나가지 않고는 여러분의 갈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방향, 가정적인 방향, 민족적인 방향이 일치된 입장에서 나 개인의 승리를 세계의 승리로 연결시킬 수 있는 특권적인 운세권 내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개인에 국한된 나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전체와 일치된 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가 좋아해야 자기도 좋을 수 있고, 전체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희생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가면, 여러분은 언제나 선악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주체가 되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가야 할 방향을 잃지 말고 선악의 분기점을 환경적으로 넓혀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3-60)*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일, 원문

 

선악의 분기점 
 
날짜 : 1970. 8. 2(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끝날이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러분이 보편적으로 알다시피 선한 세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선을 지향하고 선의 목적을 세워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 자체가 선하지 못하다 할진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역시 선하지 못한 것이며, 그 사회가 선하지 못하다 할진대 그 국가 역시 선하지 못한 것입니다. 선하지 못한 국가가 많으면 세계 역시 선하지 못한 세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온 역사과정을 생각하고 지금 현시대를 생각하고 미래에 남아질 수 있는 한때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전체 분야를 앞에 놓고 선의 중심을 세워서 자기 자신이 선의 한 목적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심히도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보다도 더 위대하고 더 의욕적이고 더 강했던 사람들로서, 그 시대의 모든 역경을 타개한 위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고도 훌륭한 인격자들로서, 그들이 선을 추구하려고 몸부림치며 나갔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죽음과 엇바꿔 가면서, 혹은 수난을 당하고 생애를 희생시켜 가면서 선의 한 때, 선의 한 곳을 추구해 나왔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은 세계적으로 보면 세계적인 선도 있을 것이요, 국가적으로 보면 국가적인 선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민족적으로 보면 민족적인 선, 가정적으로 보면 가정적인 선, 개인적으로 보면 개인적인 선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선은 일치되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동쪽은 동쪽의 입장, 서쪽은 서쪽의 입장, 남쪽은 남쪽의 입장, 북쪽은 북쪽의 입장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두고 볼 때도,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전부 다 다릅니다. 각기 선조가 다르고 얼굴과 말과 모든 행동이 천태만상이듯이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선의 방향도 각기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 형상들, 무리들을 놓고 경륜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개인적인 선의 방향을 어떻게 하면 전체 목적을 위하여 갈 수 있는 선의 방향에 일치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먼저 이렇게 각기 다른 선의 방향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합하는 운동을 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그 무엇이 나와야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초민족적이고 초국가적으로 횡적인 인연을 갖추어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방향을 제시해 주시기 위한 것이 역사과정에 나타난 수많은 종교들이었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선을 추구하되 자기들 나름의 양심의 방향에 따라서 추구해 나갑니다. 그 사람의 양심의 방향이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을 중심삼고 선을 추구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이면 개인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국가면 국가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세계면 세계의 봄절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운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봄절기의 방향을 맞추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봄절기가 국가적인 봄절기와 맞아 떨어져야 되고, 국가적인 봄절기가 민족, 종족, 가정과 개인의 봄절기와 맞아 떨어져야 됩니다. 이렇게 방향을 일치시키지 않고는 전세계 앞에 보편성과 타당성을 갖추어서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의 일치된 방향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큰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 종교는 어떠한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출발했더라도 그 민족에 제한될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됩니다. 세계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가도록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세계로 하여금 공히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게 하시느냐? 즉, 어떻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여 거기에 일치시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될수록 그러한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방향의 일치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33-32)
 
하나님은 무엇을 생각하며 나오시는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아서 아느냐? 인간의 마음을 보아서 압니다. 우리 마음을 보면 마음 자체에서 작용하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능동성을 가지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자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인 입장이라는 것은 어떤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으로 하여금 선을 추구하게 하고,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게 하고, 보다 나은 선의 환경을 추구하게 하는 어떤 힘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일생 동안 지지하고 있는데, 자기 자체가 동기가 되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양심이 어떤 주체와 하나된 입장에서 몸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플러스면 플러스를 중심삼고 볼 때, 플러스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마이너스가 생겨나야만 됩니다. 이때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서로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몸과 마음도 서로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서로 상대적인 존재인데 어떻게 해서 이 몸이 하나 못 되었느냐? 문제는 간단합니다. 플러스인 마음이 하나되면 마이너스, 즉 상대의 입장에 있는 이 몸은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생각하며 나오시는가? 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한 기점을 중심삼고, 너나할것없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의 근원을 중심삼고 원래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면서도 현재 상반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몸과 마음이 상반적인 여건을 타개해 버리고 서로 필요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어떻게 결속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마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이냐? 마음 자체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플러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하나의 플러스가 생겨나면 완전한 하나의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의 이치입니다.
오늘날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된다면 완전한 플러스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게 된다면 완전한 플러스를 장악할 수 있습니다. 참선을 하는 것도 그러한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참선을 통해 완전한 무의 세계에 도달해서 수평선과 같은 정적(靜的)인 경지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33-34)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양심작용도 작용이 틀림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의 내용을 분석해 보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습니다. 화학실험을 할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도 전부 그렇게 해서 일어납니다. 상대관계만 성립되면 당장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런 상대적인 관계와 상충적인 관계가 우주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상충이란 무엇인가? 플러스와 플러스는 상충관계입니다. 이런 상극이라든가 상충작용을 중심삼고 공산주의자들은 변증법을 주장합니다. 그러면 상극이 나쁜 것이냐? 상극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상극이 있지 않으면 원형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전부가 서로 잡아당기기만 하면 직선만 되지 원형은 안됩니다. 자장을 보더라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서로 잡아당깁니다. 이렇게 잡아당기기만 하면 직선이 되어야 할 텐데 왜 원형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가 서로 상극작용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런 작용을 하기 때문에 원형운동과 구형운동이 벌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양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양심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든간에 사람에게는 전부 다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어떻게 생겼느냐? 어떻게 생기긴 어떻게 생겼어요? 잘 생겼지요. 여러분의 얼굴같이 생겼습니다. 양심과 얼굴은 안팎입니다. 안팎은 같습니다.
그 양심이라는 것은 힘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주체가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 양심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면 완전한 플러스는 휘익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가 그런 세계입니다.
누구든지 맨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고 정성들여요? 여러분은 정성들일 때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고 정성들여요? 그렇지만 마음의 세계를 자꾸자꾸 파고 들어가게 되면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처음에는 직선이던 것이 점점 횡적으로 연결되어서 반응이 오고, 안테나를 통해 소리가 나는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힘이 옵니다. 우리 몸에 불이 온다고 그러지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 힘이 어떻게 오느냐? 그것은 라디오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느냐에 따라서 먼 거리에서 오는 전파를 깨끗하게 변환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는 데 있습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완전한 플러스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실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없다면 하나님도 고독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하시며 나오고 계시지만, 수고하시는 그 가운데 인간들이 몸부림치면서 잘못했다고 회개도 하고 하니까 낙심하셨다가도 다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나오십니다. 앞날에 인간을 중심삼은 최고의 선의 세계를 이를 수 있다는 하나의 크나큰 소망을 중심삼고 나오십니다. 과정에서는 개척이요, 혁신이요, 발전이요, 개혁입니다. 이것을 행하면서 나오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적인 봄날을 향해서 나가시는 것입니다. (33-36)
 
우리가 선과 악을 어떻게 가려 가느냐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이 맑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좋은 때가 될지, 나쁜 때가 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났는데도 괜히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괜히 좋다는 것은 뭐냐? 그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완전한 플러스, 즉 높은 플러스가 아니면 높은 마이너스입니다. 내가 플러스 성품이라도 그가 더 높은 마이너스 성품이면 내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마이너스이고 그가 더 높은 플러스일 때도 내가 끌려갑니다. 그런데 내가 플러스이고 그 사람이 나보다 더 강한 플러스일 때는 서로 맞닿으면 반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세계에 있어서도 전기작용과 같은 작용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양심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분간하지 못할 뿐입니다. 모두 다 과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만큼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좋거나 나쁜 결과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그와 같이 되어 있는데, 인간의 몸과 마음은 달라서 언제나 싸웁니다. 몸이 마이너스, 마음이 플러스가 되어야 하는데 뒤집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냐? 선악의 분기점인 우리가 선과 악을 어떻게 가려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려 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왔으니까 여기에서부터 가려 가야 됩니다. 여기에서 가릴 수 없는 사람이 미국에 간다고 해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가려 가느냐? 다 같은 통일교인들이지만 선악을 가려갈 수 있는 길은 다 다릅니다. 천태만상입니다. 백이면 백 사람이 다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쪽의 선형, 서쪽의 선형, 남쪽의 선형, 북쪽의 선형 등 그 타입이 다 다릅니다. 또, 거기에는 춘하추동의 형도 있기 마련입니다.
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 아침은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소년기가 있고, 청년기가 있고, 장년기가 있고, 노년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봄절기는 사춘기입니다. 여름절기는 30대이고, 가을절기는 40대 정도입니다. 그 이후로는 겨울절기로 들어가게 되고, 동지가 넘어갈 때 해당되면 죽습니다.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춘하추동이 그렇고 하루가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천지의 법도에 따라 태어났습니다. 주역(周易)이 이치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음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상하 음양이냐, 좌우 음양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사상(四象)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전부 다 다릅니다. 예수님도 세 제자를 세워 예수님을 중심삼고 동서남북의 사방성을 갖추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말하는 사위기대는 천리이치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동쪽형의 사람, 서쪽형의 사람, 남쪽형의 사람, 북쪽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절기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음처럼 냉정하게 꽁꽁 얼어붙은 형이 있는가 하면,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형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늠름하고 언제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형은 여름절기의 형입니다. 후딱 올라갔다가 후딱 내려오는 형은 가을절기의 형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의 입장에서 틀림없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 방향에 일치시켜 나가야 하는데, 여러분이 그 방향을 어떻게 가려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자기가 어떤 형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특히, 처녀 총각들이 결혼할 때 이것이 필요합니다.
봄절기와 여름절기를 보게 된다면 봄절기는 여름절기를 찾아가지만 여름절기는 봄절기를 추방합니다. 한 쪽에서는 밀어제치지만 다른 쪽에서는 끌어당기는 역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가게 되면 점점 여름은 가까워지지만 봄은 멀어집니다. 한 쪽에서는 잡아당기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밀어 제칩니다. 이것이 원형을 이루기 때문에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원형을 이루지 못하면 영영 이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원형의 법도에 따라서 운행됩니다. 그래서 춘하추동이 돌아야 됩니다. 이것을 평면상에 그려 놓으면 사인(sine)곡선을 이루게 됩니다. (33-40)
 
몸과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
 
여러분은 제일 먼저 선이냐 악이냐를 가려내야 합니다. 선악이 어디에 있느냐? 선악은 세계에 꽉 차 있지만 선악을 가려야 할 그 분기점은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세계가 악하다고 할 때, 그 악한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산다고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타락권 내에 있으면서도 그물에 걸려 있는 고기와 마찬가지로 반기를 들지 않고 그냥 살고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와 상충을 벌여야 할 때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악한 세계라는 것을 안다면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느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떨어졌기 때문에 해방을 맞기 위해서는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됩니다. 그냥 그대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인류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없고, 새로운 역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역사적인 선의 흔적을 남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투쟁해야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변증법적인 유물론,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 투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과 악의 투쟁입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이 선과 악을 분별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여러분 자신은 어디서부터 선과 악을 가려내야 하느냐? 내 마음과 몸에서부터 가려내야 합니다. 내 마음과 몸 중에서 어떤 것이 선하냐? 둘 다 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그 둘 가운데 보다 선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세 살 난 아이조차도 보다 선한 것이 몸이냐, 마음이냐고 물어 봤을 때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 편에 서 가지고 그것과 일치되지 않는 것에 대해 투쟁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선의 기원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보다 발전해 가지고 최고의 자리, 최종의 자리에 있는 마음이 바로 절대적인 마음입니다. 그 절대적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마음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세계를 무한히 개발해야 됩니다. 마음세계는 우주적입니다. 이것은 역사과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개발된 마음의 기준에서 갖는 세계관은 어떨 것이냐? 개발된 마음세계의 주인이 되어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떠할 것이냐? 같은 세계라도 개발되지 못했을 때의 눈으로 보는 세계에 비해 개발된 입장에서, 자각된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이냐? 같을 것이냐, 다를 것이냐? 그것은 전혀 다릅니다. 천양지차(天壤之差)입니다. 들리는 모든 새 소리로부터 보이는 모든 만상에 천하가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물에 대해 그 가치의 내용을 보다 확실히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고, 그 높이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내적인 마음이 점점 강해집니다. 그러면 최고로 강해질 수 있는 경지는 어떤 경지이냐?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 완전한 플러스인 하나님과 하나되면 그렇게 됩니다. 완전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둘일 수 없기 때문에 유아독존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입니다. 종교가 비과학적이라고 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 얼마나 과학적이에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바꿔집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한테로 가고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에게 옵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바꿔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바꿔지기만 하면, 인간의 상반되었던 몸뚱이가 달라붙습니다. 우리 마음에 상반되어 있던 몸이지만 그렇게 바꿔지기만 하면 달라붙겠어요, 안 달라붙겠어요? 달라붙습니다. 이것도 과학적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이 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33-43)
 
인륜과 천정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오늘날 인류에게는 전인류가 묶어질 수 있는 하나의 마음적인 주체성, 만인이 공인할 수 있는 주체성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주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주체성을 중심삼은 개인의 인격관, 개인의 가치, 가정의 가치, 종족의 가치, 민족의 가치, 국가의 가치, 세계의 가치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가치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개인과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세계의 가치는 개인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계에 30억 인류가 살지만 그 30억 인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합해서 된 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적인 인격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한 인격기준을 세우는 데는 오늘날 우리 인간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한 분이 다시 보내심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여러 종교에 남아진 재림사상 혹은 메시아사상입니다.
그 메시아란 분은 와서 어떻게 하느냐? 자기 혼자만 잘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잘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다 잘 살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양심을 중심삼은 인격으로 자연적인 생활환경을 제시할 때, 우리 몸이 완전히 순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몸 마음을 하나로 만드느냐?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무엇이 하나로 만드느냐? “하나되게 하긴 무엇이 하나되게 해? 그냥 그대로 하나되지” 할지 모르나,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합하게 하는 힘입니다. 간단합니다.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힘입니다. 서로가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영적인 체험을 한 후에 자신이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체와 대상을 무엇으로 묶을 것이냐? 밧줄로 묶을 것이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아무렇게나 만나서 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방향이 맞는 것이고 체질과 바탕이 맞는 것입니다. 하나는 플러스고 다른 하나는 마이너스로서 완전한 상대적인 관계가 되어 가지고 “나는 네가 죽도록 필요하고, 너는 내가 죽도록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묶어져서 하나될 때는 두 인격이 합해져 하나의 인격을 갖추기 때문에 두 사람 이상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주인이 됩니다.
인간들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오늘의 인간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세계에는 히피족들이 나와서 꺼떡거리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성을 연결하기 위한 상대이념에 대해서는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는 망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그러한 주체성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륜과 천정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몸과 마음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사람만으로는 절대로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천정이 가담해 들어오면 착 달라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했습니다. 잘 가르쳐 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첫째 되는 계명의 내용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3-46)
 
세계적인 생활관으로 넓혀 나가야
 
선악을 가려 나가는 데 있어서의 출발점은 나입니다.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기원으로 해서 출발해야 되느냐? 마음입니다. 마음을 기원으로 해 가지고 가려 나가야 됩니다. 타락한 세상에 그냥 그대로 있으면 악한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은 지옥행입니다. 선에 제일 가까운 양심표를 사 가지고 천국으로 가야 됩니다. 구원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가야 됩니다. 개인이 그래야 되고 가정, 종족, 민족, 세계가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공인된 그 기준은 어느 누구도 변경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의 평화가 싹틀 수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선의 개인과 선의 가정, 선의 종족, 선의 민족, 선의 국가, 선의 세계가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가 선하다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기준과 방향을 못 맞추게 될 때, 그 국가는 깨져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주의와 사상입니다.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생활관, 새로운 세계의 인격관 등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입니다. 물고기로 말하면 송사리는 송사리끼리, 미꾸라지는 미꾸라지끼리, 뱀장어는 뱀장어끼리, 메기는 메기끼리 형상이 비슷하고 생활 환경이 같은 종류들 끼리끼리 모이는 것과 같이 사람들도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모이고 통일교인들도 통일교인들끼리 모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을 중심삼은 그것을 전체에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파탄주의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디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고, 하나님의 보호권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가 선을 중심삼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악을 타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투쟁해야 됩니다. 우리가 투쟁을 하는 데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어떤 틈을 통해서 공격하느냐? 사탄은 여러분의 몸을 통해서 공격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앞에는 몸이 사탄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자 앞에는 여자가 사탄이고 여자 앞에는 남자가 사탄입니다. 그렇게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언제나 사탄이 되기가 쉽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태복음 10:36) 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몸뚱이는 한집안 식구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한집안 식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는 말을 놓고 볼 때 남편에게는 아내가 원수요, 아내에게는 남편이 원수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 앞에는 몸뚱이가 원수요, 몸뚱이 앞에는 마음이 원수인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원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가운데 하나님이 들어와서 점령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들어와서 점령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말합니다. 몸을 무엇으로 마음과 하나되게 만드느냐? 무엇으로 하나되게 할 수 있겠어요?
보라구요! 몸이 늙어 죽게 되었더라도 마음은 몸에게 나가서 일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고 해요, 아니면 몸의 사정을 봐 주면서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먹고살라고 해요? 집에서 편안히 쉬라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마음은 몸이 늙었어도 나가서 일하라고 재촉합니다. 그거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서로 친구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세상에 부모를 그렇게 대하는 자식이 있다면 불효자겠어요, 효자겠어요? 늙은 부모를 대해서 자식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불효입니다. 또한, 임금을 대해서 신하가 그랬다면 간신이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벌어져 있습니다. 몸뚱이를 중심삼고 보면 마음이 원수입니다. 몸뚱이는 악의 무대요, 마음은 선의 무대입니다. 이 악의 무대 가운데서 선의 무대를 닦으려면 하늘의 도리, 즉 천륜의 도리를 들고 나와야 됩니다. 개인적인 마음의 세계에서 심정을 개발해 가지고 천륜의 인연 앞에 범위를 넓혀 나가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생활관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생활관으로 넓혀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33-48)
 
통일교회의 갈 길
 
앞으로 통일교회는 3대 종교로부터 반대를 받게 됩니다.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나를 반대하는 패들도 나올 것입니다. 분명히 나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대해 가지고 뭐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해 보라구요! 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갈 데까지 가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충신을 중요시해 왔습니다. 그러면 충신은 어떤 사람이냐? 나라의 비상시에 사지에 나가 모든 어려움을 자기 것으로 삼아 가지고 나라를 대신하여 생명을 바쳐 죽음길을 가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을 중심삼고 전도하는 사람이 하늘 앞에 충신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전도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도하느냐에 따라서 나누어집니다. 이것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자체가 인류를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인류를 위해서 살자는 것입니다. “나도 축복가정이니까 교회를 이용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하늘도 절대로 이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갈라집니다. 반드시 끝에 가서는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자체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의 갈 길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정통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정통적인 길이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을 이렇게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빚을 지려고 그러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여러분에게 빚을 지지 않습니다. 이를 악물고 빚은 안 지려고 합니다. 누구든지 빚지기를 좋아하면 망합니다.
여러분 개인에서부터 선악의 분기점을 알아 가지고 선악을 분리시키고, 나아가 가정에서도 선악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자체는 이 시대에 있어서 선악을 분리시키는 분기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이 사회와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개인이면 개인으로서의 싸움이 있고, 가정이면 가정으로서의 싸움이 있고, 종족이면 종족으로서의 싸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삼고 선악의 판가리를 지어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사회를 향해, 국가를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교회를 중심삼고 선악을 판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악의 분기점을 거쳐야 합니다. 그 분기점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단체는 남아질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한테는 통일교회의 갈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선악을 판결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말은 임의로 하는 말이 아니고 우연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이 세계정세와 상대적인 관계를 갖게 될 때는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33-58)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 천부의 사명을 존중하고, 또한 긍지를 지니고 그 사명 앞에 순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책임을 감당하면 여러분은 개인을 초월하고 가정, 종족, 민족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일생을 중심삼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4단계를 초월할 수 있고 국가적인 사명 앞에 무한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 시대입니다. 이 은사시대를 상실해 버리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은사권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신념을 갖는다면 세계로 가는 데 있어서 선생님을 직접 따라가지 않더라도 세계로 나아갈 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세계적인 기준을 넘지 않고서는 해방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악의 분기점은 나 개인에서부터 출발하여 가정, 민족, 국가, 세계로 진전되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계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여러분 개인만으로는 절대 안됩니다. 축복받은 가정만으로도 절대 안됩니다. 전체를 위주로 공동보조를 맞춰서 한 방향으로 가야 됩니다. 물결이 높을 때는 높아지고 낮을 때는 낮아져서 물결의 상하고저에 맞추어서 같은 운명체가 되어 나가지 않고는 여러분의 갈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방향, 가정적인 방향, 민족적인 방향이 일치된 입장에서 나 개인의 승리를 세계의 승리로 연결시킬 수 있는 특권적인 운세권 내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개인에 국한된 나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전체와 일치된 나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도 대한민국 가운데 선 주권자여야 합니다. 그래서 전체가 좋아해야 자기도 좋을 수 있고, 전체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희생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가면, 여러분은 언제나 선악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주체가 되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가야 할 방향을 잃지 말고 선악의 분기점을 환경적으로 넓혀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