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꽃 (천일국 훈독경 제8권 30일)

훈독왕 | 20201222154556

천일국 훈독경 제8권 30일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꽃 (훈독본) 
날짜 : 1994. 3. 13(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꽃 (천일국 훈독경 제8권 30일)

 

긴 밤을 거친 통일교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꽃’입니다.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지루한 핍박시대를 거쳐왔습니다. 길다면 긴 겨울과 같은 것이요, 긴 밤과 같은 그러한 기간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기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기간을 거치지 않고는 새로운 생명의 싹이 트지 않습니다. 

새로운 싹이 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통이 따르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남녀의 사랑이라면 산고의 수난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생의 수난 과정을 거쳐 가지고 새싹이 나옵니다. 그것이 싹이 터 가지고 다져진 그 땅을 뚫고 나오는 것도 큰일이고, 또 나와 가지고 그것이 하나의 열매로 이어질 때까지는 8년 풍파를 겪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십 년, 백 년 몇 백년 가는 나무가 되고 동량지재(棟樑之材)가 되기 위해서는 그 모든 풍파를 겪으면서도 그 풍파 가운데서 쓰러지면 안됩니다. 그 모든 풍파의 역경을 극복하고 나서 자기 본래의 자세를 위세 당당히 갖추어 환경 가운데 나타나게 될 때, 그 나무가 모든 전체 수림 가운데 중심이 되게 될 때는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주인만이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그 동산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찾아가고 공중을 나는 새들도 깃들 곳으로서 찾아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희망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존재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단체인 이 교단이라는 것은 한 사람과 다릅니다. 종교라는 것은 만민을 포괄해 가지고 그들에게 희망적인 길, 인류구도라든가 세계평화라든가 통일의 세계라든가 희망의 세계를 안내할 수 있는 교량의 역할을 해야 됩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포용할 수 있는 상대가 크면 클수록 그 자체가 커야 되는 것입니다. 포용하려는 그 자체는 상대가 넓고 높고 깊은 것보다도 더 넓어야 되고, 더 높아야 되고, 더 깊어야 됩니다. (256-165)

신인세계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참사랑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의 뜻은 인간의 뜻만이 아닙니다. 신인세계(神人世界)의 뜻입니다. 하늘이 있다면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면 땅이 있는데, 거기에 주인이 있다면 하늘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땅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천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신과 인간이 있다면 그들이 완성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봄을 맞이해야 됩니다. 꽃과 같은 시대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루한 겨울절기, 핍박 시대의 세계적인 도성을 밟고 넘어서 가지고 새로운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명을 심어 줘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다년간 여러분 앞에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 동산에 심어 놓았습니다. 


봄철이 되면 식물들은 꽃을 피웁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이상하셨던 만물의 영장으로서 꽃필 수 있는 그런 한 날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가 꽃피우는 때는 어느 때냐? 사춘기입니다. 꽃이 필 때는 생각이 높고 넓어집니다


높고 넓은 세상이지만, 모든 것을 포근하게 품어 주는 때가 봄 절기입니다. 이때 꽃이 피는데, 꽃은 모든 것을 화합시키고 조화시킵니다. 이런 꽃을 놓고 나비와 벌들이 날아듭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신인세계의 모든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꽃이 무엇이냐? 여자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여자 혼자서 꽃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남자 여자가 화합하고 희망에 부푼 화동이 감돌지 않고는 인간도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서만 남녀의 모든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사랑을 통해서만 사람들의 향기가 풍겨 나오고, 사랑을 통해서만 결실이 이루어집니다. 참사랑은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더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점 커 갈 수 있습니다. (256-167)

사랑은 늙지 않는다

백만한 것을 주고 잊어버릴 수 있으면 백 이상 되는 것을 찾는 입장이 됩니다. 천만한 것을 주고도 그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수첩에 적어놓고 “됐다. 천만한 것을 줬으니 당신도 천만한 것을 나에게 달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칸막이가 아닙니다. 그걸 잊어버리면 그 칸막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천만한 것을 줬으니 내일은 만만한 것, 더 큰 것을 주고 싶다” 이럴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 안됩니다. 천만한 것을 주고 잊어버리고 그 이상을 주면서 그때까지 투입한 이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주고 잊어버리느냐? 제일 귀한 것을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는데 사랑하는 아내에게 어떤 것을 주고 잊어버릴 것이냐? 돈 천만 원을 주고 잊어버려요? 돈이 제일 좋은 게 아닙니다. 지식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니고, 권력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요구하느냐? 생명의 힘을 돋구어 주고, 생명의 근원이 되고, 생명의 뿌리가 되고, 생명을 발전시키고, 생명의 힘을 장기적으로 유출시킬 수 있는 그것이 뭐냐? 그것은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순간적인 사랑을 원해요, 영원한 사랑을 원해요? 영원한 사랑, 또 절대적인 사랑을 원합니다. 두 가지의 사랑을 원해요, 한 가지의 사랑을 원해요? 여러 가지의 사랑을 원하지만, 참사랑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사랑, 유일의 사랑, 영원한 사랑, 무한한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256-169)


그 사랑은 인간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들만이 바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바라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절대적인 분이요,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영원하신 분이요,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찾는 사랑도 절대적이어야 되고, 유일해야 되고, 영원해야 되고, 무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하나님만이 갖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혼자 이루어지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를 이루어야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수수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인이라고 하더라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사랑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못생긴 남자라도 그 남자와 하나되면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혼자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도 그 절대적인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상대가 필요합니다. (256-170)

사랑의 보금자리는 가정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여자는 횡적인 면을 대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다닐 때 가슴을 퉁 내밀고 다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땅을 바라보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이를 배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아이를 배 가지고 가정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의 주인인 남자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아가야 됩니다. 개개인의 사랑의 보금자리는 자기 아내가 있는 자리입니다. 그 아내와 남편이 하나되게 된다면 자녀가 생깁니다. 그 자녀들이 커 가는데 형제가 생기고, 그 형제가 커 가지고 또 다른 부부가 생기고 또 다른 아들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면서 커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보금자리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256-175)


사랑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

여자들이 매일같이 화장하지요? 그거 왜 그래요? 무엇을 그리면서 화장하는 거예요? 내 얼굴이 그리워서 화장하는 거예요? 사랑이 그리워서 하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들도 전부 다 가꾸어 가지고 모든 자세를 갖추는 것도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상대적인 시선 혹은 모든 면목에 화합할 수 있는 길이 막힐까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최고를 중심삼고 합하려고 합니다. 웃음도 최고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찬양할 때는 아름다운 형용사를 몇 천 개 열을 지어 가지고 말을 해도 좋습니다. 비둘기 눈 같은 눈동자라고 하는 등 아름다운 형용사를 천 개 만 개를 붙여도 부끄럽지 않고 쑥스럽지 않습니다. 다른 경우에는 같은 말을 세 번 이상 반복하게 되면 얼마나 쑥스러워요! 그렇지만 사랑은 같은 말을 천만 번 해 줘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하면 가할수록 생각이 더 깊어지고 더 좋을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256-177)

그러면 참사랑이라는 것은 뭐냐?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또 투입하겠다는 자리, 주고 또 주고 잊어버릴 수 있는 자리에서만 참사랑이 시작됩니다. 참사랑은 천지를 꿰뚫는 것입니다. 죽음의 세계도 뚫고 올라갑니다. 어디든지 뚫고 갈 수 있습니다. 참사랑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256-179)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접선지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디에서 하나될 것이냐?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곳이 없으면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은 영원히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고민한 결과가 무엇이냐?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한 마디를 찾아내고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직단거리의 사랑의 길은 수직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이 직단거리라면, 수평적인 인간의 사랑이 그 직단거리를 통하는 참사랑과 합할 수 있는 자리는 90각도의 중앙입니다. 그래서 위에서부터 아래는 부자의 사랑이요, 동으로부터 서로 가는 것은 부부의 사랑이요, 45도 전후로부터 후현을 그리는 것은 형제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불가피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구형을 이루는데 수직의 부자지관계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결착점, 부부관계를 완성할 수 있는 결착점, 상하관계와 전후관계를 완성할 수 있는 결착점이 어디냐? 그곳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첫날밤에 사랑의 관계를 맺는 그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여자가 하나님의 딸로 태어나 가지고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로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에 있어서 남매가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부부가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부모의 출발을 볼 수 있는 완성의 자리입니다. 


부부는 천지합덕인 동시에 모든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하나의 본향입니다. 천지인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 이루어지느냐? 결혼식을 해 가지고 첫사랑의 관계를 맺는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거기에 해방이 있습니다. 자녀로서의 해방, 남매로서 다 이루는 자리, 부부로서 다 이루는 자리, 미래의 부모로서 입적하는 자리, 모든 것을 공인시키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관계를 맺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256-232)

부부의 사랑이 완성되어 안착하는 자리

이렇게 볼 때, 부부의 사랑이 완성되어서 안착하는 자리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안착하는 자리도 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렇느냐? 마음은 주체요, 이 모든 것은 상대가 되어 하나되어 있는 사람이 큰 하나님과 하나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성상과 형상을 실체적으로 느끼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렇게 실체를 낳아 가지고 남매가 되고,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걸 보실 때 하나님 자신이 역사시대에 자라면서 커 나온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껴 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만으로서는 그것을 느끼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자신만으로는 일체가 되어 계시기 때문에 자녀의 자리, 남매의 자리, 부부의 자리, 부모의 자리를 느껴보지 못하셨는데, 상대적으로 아담 해와를 전개시켜 놓고 보니까 백 퍼센트 느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으로서 하나되어 있을 때 느끼지 못하던 것을 상대적으로 전개해 가지고 옛날에 자라 나오던 모든 것을 재차 실체적인 상대를 통해서 느껴 보기 위해서 실체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담 해와였다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가 남매로 자라던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커 나온 것을 다시 한 번 실체로 느끼시던 자리요, 그렇게 그들이 커 가지고 폭발적인 자극을 느끼기 위한 것이 부부가 될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으시기 위해서는 여자가 아이를 배서 10개월이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아담을 낳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부부가 되어 가지고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을 낳는 모든 전부는 보이지 않지만 무형의 실체이신 하나님이 자극적인 기쁨을 느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기쁨을 하나님만이 느껴서는 안되겠으니까 실체가 되는 남자와 여자를 부모의 자리에 세워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 자기들이 자라 온 모든 것을 재현하여 느끼게 하시는 것입니다. (256-234)

신인세계 완성의 꽃

하나님의 꽃이 사랑에서부터, 인간의 꽃이 사랑에서부터,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꽃이 사랑에서 피어납니다. 그러기에 “참사랑은 모든 완성의 꽃이다” 하는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부의 인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느끼시던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존재를 실체적으로 체휼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가 얼마나 위대하냐는 것입니다. (256-235)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희망봉

가정에서 아들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랑이요, 남매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랑이요, 부부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랑이요, 부모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랑이 참사랑이에요?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기를 수천만 년 해 나오셨습니다. 수천 년을 여일(如一)과 같이 참고 우리 같은 사람을 길러 가지고 인류해방을 선언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상에 ‘참부모와 성약시대의 안착’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비로소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참사랑을 꽃피울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희망봉이요, 아름다운 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이 아름답지요? 향기가 나지요? 그 향기가 무슨 향기냐 하면 사랑의 향기입니다. (256-241)

‘참부모와 성약시대의 안착’을 이루라

여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체로 품을 수 있는 대표자가 자기의 남편입니다. 할아버지의 대신이요, 남자 중의 남자요, 왕 대신이요, 성인 중의 성인의 대표가 나에게 있어서의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내는 여왕 중의 여왕입니다.


그러면 여왕님의 방에 들어갈 때 남편이 목욕재계하고 찾아 들어가야 되겠어요, 노동판에 다니다가 먼지 때가 묻은 그대로 성큼성큼 찾아가야 되겠어요? 사랑에는 예의가 있어야 됩니다. 여편네가 누워 있으면 “미안합니다” 하고 엎드려 가지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덥썩, 절하고 “나왔소” 그래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남편한테 들어갈 때 벗는 게 부끄러워요, 안 부끄러워요? 여자 아닌 사람은 모르지요? 여자 되는 사람들! 부끄러워요, 안 부끄러워요?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선생님이 말한 대로 이상상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옷 벗을 때 부끄러워해요, 안 부끄러워해요? 안 부끄러워해야 됩니다. 부끄러우면 간격이 있어서 안됩니다. 몸과 마음이 간격이 없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두 여인이 있을 수 없고, 두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할수록 떨어져 내려갑니다. 그 가정은 파탄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가게 되면 가정은 전부 다 파탄됩니다. 전부 다 갈라집니다. 하나 안 됐기 때문에 부모고 무엇이고 전부 다 둥지를 헐어 버립니다. 그러한 것을 청산하고 새로이 가정을 편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철새 모양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꽃’입니다. 내가 이런 자리에서 산다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왕과 같이 존중시할 수 있게끔 드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은 그러한 가정이 되어 가지고 보금자리로서 오늘날 ‘참부모와 성약시대의 안착’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그러한 자리에 안착해 가지고 꽃과 같이 아름답고, 꽃과 같이 향기롭고, 꽃과 같이 씨를 사방에 나누어 줄 수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창조해 가지고 나에게 씨를 주어서 번식시키기 위한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256-243)


‘참부모와 성약시대’를 선포함으로써 보금자리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창조이상을 중심삼은 내용을 안팎으로 갖추어 심신일체를 이루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느끼시던 모든 것을 대신하여 느끼고 조상들이 느끼던 모든 것을 대신하여 느껴서 완성될 수 있는 참사랑의 꽃봉오리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256-245)* 

 

 

천일국 훈독경 제8권 30일, 원문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꽃 
 
날짜 : 1994. 3. 13(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긴 밤을 거친 통일교회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할까요? 오늘 말씀의 제목은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꽃’입니다. 제목이 시적이지요? 새해가 되어 3월이 되면 봄이 찾아오지요? 봄이라면 꽃을 생각하고 모든 만물이 소생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역사라든가 종교의 역사라든가 인류의 역사를 두고 희망의 꽃, 평화의 꽃, 행복의 꽃 같은 시대를 언제나 그리워했지만 지금까지 그런 시대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세계가 혼란과 도탄 중에 있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그 반대의 자리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지루한 핍박시대를 거쳐왔습니다. 길다면 긴 겨울과 같은 것이요, 긴 밤과 같은 그러한 기간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기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기간을 거치지 않고는 새로운 생명의 싹이 트지 않습니다.
어떠한 씨를 두고 보더라도 씨가 한 생명으로서 순을 갖추고 생명체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하에 들어가야 됩니다. 지하에 들어가는데 씨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심은 다음에는 그 위에 반드시 거름을 덮어주어야 되고, 그런 다음에는 밟아 주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곤충이라든가 무엇에 침해를 받지 않게끔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꽁꽁 닫은 그 가운데서 비로소 새로운 싹이 나옵니다. 이 땅과 화합하고, 태양 빛과 화합이 되고, 땅의 온도와 화합이 되어서 전부가 잘 맞아야 됩니다. 그 가운데 품겨 가지고 새로운 싹이 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싹이 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통이 따르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남녀의 사랑이라면 산고의 수난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생의 수난 과정을 거쳐 가지고 새싹이 나옵니다. 그것이 싹이 터 가지고 다져진 그 땅을 뚫고 나오는 것도 큰일이고, 또 나와 가지고 그것이 하나의 열매로 이어질 때까지는 8년 풍파를 겪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십 년, 백 년 몇 백년 가는 나무가 되고 동량지재(棟樑之材)가 되기 위해서는 그 모든 풍파를 겪으면서도 그 풍파 가운데서 쓰러지면 안됩니다. 그 모든 풍파의 역경을 극복하고 나서 자기 본래의 자세를 위세 당당히 갖추어 환경 가운데 나타나게 될 때, 그 나무가 모든 전체 수림 가운데 중심이 되게 될 때는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주인만이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그 동산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찾아가고 공중을 나는 새들도 깃들 곳으로서 찾아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희망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존재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단체인 이 교단이라는 것은 한 사람과 다릅니다. 종교라는 것은 만민을 포괄해 가지고 그들에게 희망적인 길, 인류구도라든가 세계평화라든가 통일의 세계라든가 희망의 세계를 안내할 수 있는 교량의 역할을 해야 됩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포용할 수 있는 상대가 크면 클수록 그 자체가 커야 되는 것입니다. 포용하려는 그 자체는 상대가 넓고 높고 깊은 것보다도 더 넓어야 되고, 더 높아야 되고, 더 깊어야 됩니다. (256-165)
 
신인세계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참사랑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의 뜻은 인간의 뜻만이 아닙니다. 신인세계(神人世界)의 뜻입니다. 하늘이 있다면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면 땅이 있는데, 거기에 주인이 있다면 하늘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땅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천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신과 인간이 있다면 그들이 완성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봄을 맞이해야 됩니다. 꽃과 같은 시대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꽃은 모든 것의 희망이고, 꽃은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고, 꽃은 모든 향기를 대신하고, 또 꽃은 새로운 씨를 갖게 됩니다. 그러니 미래의 소망적인 기준이 됩니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가 있고, 씨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루한 겨울절기, 핍박 시대의 세계적인 도성을 밟고 넘어서 가지고 새로운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명을 심어 줘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다년간 여러분 앞에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 동산에 심어 놓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자기 성격이나 개성에 따라서 빨간색, 노란색, 알록달록한 모든 만화백화의 빛을 따를 수 있는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봄철이 되면 식물들은 꽃을 피웁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이상하셨던 만물의 영장으로서 꽃필 수 있는 그런 한 날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가 꽃피우는 때는 어느 때냐? 사춘기입니다. 꽃이 필 때는 생각이 높고 넓어집니다. 높고 넓어지지만, 한 면은 낮아집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안개가 끼는 것처럼 봄에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화동하고 화합하는 것입니다.
높고 넓은 세상이지만, 모든 것을 포근하게 품어 주는 때가 봄 절기입니다. 이때 꽃이 피는데, 꽃은 모든 것을 화합시키고 조화시킵니다. 이런 꽃을 놓고 나비와 벌들이 날아듭니다. 벌의 세계와 꽃의 세계는 다릅니다. 나비세계하고 꽃세계도 다릅니다. 또, 인간세계와 꽃세계하고도 다릅니다. 하지만, 꽃은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벌도 좋아하고, 나비도 좋아하고, 새들도 좋아하고, 인간도 좋아합니다. 동물도 따뜻한 봄에 꽃이 피니까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봄은 보기에 아름답고 향기롭고 희망적입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신인세계의 모든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꽃이 무엇이냐? 그것이 뭐냐? 그런 꽃이 안 되고 싶은 사람이 없습니다. 전부 다 “내가 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꽃이라는 것은 혼자 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혼자 꽃이 될 수 없습니다. 여자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여자 혼자서 꽃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남자 여자가 화합하고 희망에 부푼 화동이 감돌지 않고는 인간도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서만 남녀의 모든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사랑을 통해서만 사람들의 향기가 풍겨 나오고, 사랑을 통해서만 결실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랑을 말하는데, 사랑이 뭐냐? 참사랑이 어떤 사랑이라구요?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사랑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 사 준 것을 수첩을 꺼내서 몇 년 몇 월 며칠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기억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참사랑은 수첩에 써 놓지 않고 마음속에도 기록하지 않고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더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점 커 갈 수 있습니다. (256-167)
 
사랑은 늙지 않는다
 
백만한 것을 주고 잊어버릴 수 있으면 백 이상 되는 것을 찾는 입장이 됩니다. 천만한 것을 주고도 그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수첩에 적어놓고 “됐다. 천만한 것을 줬으니 당신도 천만한 것을 나에게 달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칸막이가 아닙니다. 그걸 잊어버리면 그 칸막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천만한 것을 줬으니 내일은 만만한 것, 더 큰 것을 주고 싶다” 이럴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 안됩니다. 천만한 것을 주고 잊어버리고 그 이상을 주면서 그때까지 투입한 이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주고 잊어버리느냐? 제일 귀한 것을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는데 사랑하는 아내에게 어떤 것을 주고 잊어버릴 것이냐? 돈 천만 원을 주고 잊어버려요? 돈이 제일 좋은 게 아닙니다. 지식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니고, 권력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요구하느냐? 생명의 힘을 돋구어 주고, 생명의 근원이 되고, 생명의 뿌리가 되고, 생명을 발전시키고, 생명의 힘을 장기적으로 유출시킬 수 있는 그것이 뭐냐? 그것은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순간적인 사랑을 원해요, 영원한 사랑을 원해요? 영원한 사랑, 또 절대적인 사랑을 원합니다. 두 가지의 사랑을 원해요, 한 가지의 사랑을 원해요? 여러 가지의 사랑을 원하지만, 참사랑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사랑, 유일의 사랑, 영원한 사랑, 무한한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256-169)
그 사랑은 인간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들만이 바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바라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절대적인 분이요,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영원하신 분이요,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찾는 사랑도 절대적이어야 되고, 유일해야 되고, 영원해야 되고, 무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하나님만이 갖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혼자 이루어지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를 이루어야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수수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인이라고 하더라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사랑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못생긴 남자라도 그 남자와 하나되면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혼자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도 그 절대적인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상대가 필요합니다. 여기 선생님이 있는데 선생님이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행복해 보이겠어요, 불행해 보이겠어요?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훌륭하고 모든 것을 갖추어 가지고 만민이 추모한다고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불쌍한 할아버지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과 젊은이의 사랑이 있다고 할 때, 그 사랑 중에 늙는 사랑이 있어요? 사랑이 늙어요, 안 늙어요? 사랑은 늙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젊은 시대에 사랑하다가 남편이나 아내를 잃어버리면 그 젊은 시대의 사랑을 더 빛나게 늙어서 추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은 늙지 않는 본질이 있기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더 추모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일원화되고 사랑에 화합되어 가지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에 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냐? 사랑으로 활짝 피어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 있으면 그 천국에 있어서의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사랑의 꽃이 활짝 피어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향기를 풍기고, 새로운 씨를 지닐 수 있는 모습으로 땅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살다가 영계에 가게 되면 그 세계에서도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56-170)
 
사랑의 보금자리는 가정
 
이렇게 볼 때,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다 좋아하지요? 그러면 사랑을 볼 수 있어요? 만져 볼 수 있어요? 봤어요? 만져 봤어요?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는 그걸 왜 그렇게 좋아해요? 사랑은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은 만질 수 없습니다. 그거 얼마나 답답해요! 그래서 하늘이 답답할 것을 알고 그 답답한 것을 모면해 주기 위해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끔 지어진 존재가 사랑의 상대입니다.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여자는 횡적인 면을 대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다닐 때 가슴을 퉁 내밀고 다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땅을 바라보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이를 배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아이를 배 가지고 가정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의 주인인 남자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아가야 됩니다. 개개인의 사랑의 보금자리는 자기 아내가 있는 자리입니다. 그 아내와 남편이 하나되게 된다면 자녀가 생깁니다. 그 자녀들이 커 가는데 형제가 생기고, 그 형제가 커 가지고 또 다른 부부가 생기고 또 다른 아들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면서 커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보금자리는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뭐예요? “가정을 이루기 시작했다”고 하면 뭘 한 것을 말해요? 부부를 이룬 것을 말합니다. 부부가 뭐 하는 거예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뭘 해요? 입맞추는 게 부부라는 것입니다.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털보인데 예쁘장한 여자가 털보에게 입맞추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여자도 조금 돈 것 같고 남자도 조금 돈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밥이 나와요, 떡이 나와요, 꿀이 나와요? 밥도 아니고 꿀도 아니고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게 요술판이라는 것입니다. 입만 맞추게 되면 발끝에서부터 전기가 통하는 것입니다.
교주님이 이런 노골적인 이야기한다고 “저 양반 못쓰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이니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부부 된 사람 중에 그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병신입니다. 낙제꽝이라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하는 것을 가만히 보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할 때, 그게 뭐예요? 그게 할 짓이에요? 바쁜 세월에 옷 벗고 하는 것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자 여자들이 거기에 목을 매고 삽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러지 못하면 병신입니다. 그걸 못 이루면 “아이고, 나 죽는다. 외롭다” 이러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거기에 목을 맸고, 지금 자기 부처끼리도 거기에 목을 맸고, 아들딸과 천천만만대 후손들도 거기에 목을 매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상대가 맞아야 웃음소리에도 화음이 나옵니다. 상대가 없는 사람은 화음이 안 됩니다. 자극적일 뿐이지 고저나 종횡이나 화음이 안 나옵니다. 사랑의 상대를 대할 때는 말소리도 화음이 나오고 기분도 화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렇느냐? 무엇이 그렇게 만들어요? 남자 자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여자 자체가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조화를 빚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사랑하는 상대하고 데이트할 때는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닙니다. 얌전하게 해 가지고, 핸드백도 닦고, 구두도 닦고, 얼굴도 닦고, 전부 닦습니다. 옷도 새 것으로 갈아입습니다. 그게 무엇 때문에 그래요? 사랑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랑 앞에는 만우주가 겸손해야 됩니다. 사랑 앞에는 전부 다 굴복해야 됩니다. 사랑이 가는 길 앞에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256-175)
 
사랑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
 
여자들이 매일같이 화장하지요? 그거 왜 그래요? 무엇을 그리면서 화장하는 거예요? 내 얼굴이 그리워서 화장하는 거예요? 사랑이 그리워서 하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들도 전부 다 가꾸어 가지고 모든 자세를 갖추는 것도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상대적인 시선 혹은 모든 면목에 화합할 수 있는 길이 막힐까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최고를 중심삼고 합하려고 합니다. 웃음도 최고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올림픽대회 같은 데 가서 잘 뛰는 사람을 보게 되면 “아이고, 저거 우리 남편이면 좋겠다” 하고 생각해요, 안 해요? 올림픽의 경기종목이 수십 종목이 있다면 그 “수십 종목의 대장들이 내 남편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자들, 그렇지요?
남자는 여자에 대해서 “아이고, 올림픽대회 챔피언이 우리 아내가 됐으면 좋겠다” 하더라도 올림픽대회에 남자 여자가 같이 뛰는 데서는 여자 챔피언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걸 볼 때 남자보다는 여자가 행복합니다. 여자는 생각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저 여자가 내 사랑하는 부인이 됐으면 좋겠다” 할 수 있는 뭐가 있어요? 여자들 끼리끼리 하는 데서는 모르지만, 남자 여자를 합해서 하는 데서 챔피언이 된 여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찬양할 때는 아름다운 형용사를 몇 천 개 열을 지어 가지고 말을 해도 좋습니다. 비둘기 눈 같은 눈동자라고 하는 등 아름다운 형용사를 천 개 만 개를 붙여도 부끄럽지 않고 쑥스럽지 않습니다. 다른 경우에는 같은 말을 세 번 이상 반복하게 되면 얼마나 쑥스러워요! 그렇지만 사랑은 같은 말을 천만 번 해 줘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하면 가할수록 생각이 더 깊어지고 더 좋을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사랑을 표현할 때 “사랑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다” 이래야 됩니다. 어때요? “사랑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다” 하는 게 좋아요, “사랑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하는 말이 좋아요?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다”가 좋습니다. 이만했으면 사랑의 감을 알 것입니다. (256-177)
 
사랑은 깊은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러면 참사랑이라는 것은 뭐냐?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또 투입하겠다는 자리, 주고 또 주고 잊어버릴 수 있는 자리에서만 참사랑이 시작됩니다. 참사랑은 천지를 꿰뚫는 것입니다. 죽음의 세계도 뚫고 올라갑니다. 어디든지 뚫고 갈 수 있습니다. 참사랑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참사랑은 밀실도 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종로 네거리에 나타나 가지고 사랑하려고 그래요, 밀실에 들어가 가지고 사랑하려고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사람들이 많은 테이블에서 만나고 싶어요, 으슥한 조그만 방에 들어가서 만나고 싶어요? 사랑의 씨가 심어지는 곳이 호주머니예요, 비밀스러운 장소예요? 여자의 자궁에 심어지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비밀스러운 곳이에요? 자기도 모르고 남자도 모릅니다. 비밀장소에서 심어져야 깊이 심어지는 것입니다. 으슥한 곳은 밝은 곳을 말하는 거예요, 어두운 곳을 말하는 거예요? 수평선을 지나서 점점 내려가면 으슥하고 어두워져요, 밝아져요? 씨라는 것은 어두운 데서 싹이 트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끌고 대낮같이 밝은 데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으슥한 데로 가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 제일 귀하기 때문입니다. 나만이 아는 으슥한 장소에서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 동무가 어디 숨어서 보는 데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나만이 아는 데서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시조의 사랑의 출발은 남자 여자의 둘만이었습니다. 단 둘을 지으셨습니다. 셋을 짓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사랑할 것이냐? 저 하늘나라 꼭대기가 아닙니다. 저 깊은 곳에 가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더 하나되는 것입니다. 넓은 데로 올라가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깊은 데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 여자들이 사랑을 하려고 할 때 좁고 으슥한 어두운 곳으로 찾아가는 것은 완전히 하나되기 위한 이치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말하게 될 때는 “아, 그거 참 잘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왜 잘한다고 그래요? 더 하나되기 때문입니다. 무서우면 더 하나되지요? 밤이 되거나 으슥한 곳에서는 붙들고 완전히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좁은 곳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어쩔 수 없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랑은 깊은 자리를 찾아갑니다. 더 하나되고, 더 멋질 수 있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사랑은 누가 모르는 데서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참사랑이 사는 곳이 어디예요? 참사랑이 사람같이 산다면 그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주고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고 죽고 또 부활해도 또 주겠다고 하는 그것이 사는 장소가 어디냐? 자꾸 주고 어디로 가는 거냐? 여기서 주고 잊어버리면 또 어디로 갈 것이냐? 동서남북으로 주고 다 잊어버렸는데 어디로 갈 거예요? 그런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큰 사랑을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상대를 만나게 될 때 멀리서 만나고 싶어요, 가까운 데서 만나고 싶어요? 가까이에서 만나 가지고 이마를 맞대고 서로 만져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주고 잊어버렸으니 어떻게 줄 거예요? 여기서 만들고, 또 다른 데서 만드는 것입니다. 평면적으로 만들었으면 입체적으로 만들고, 입체적으로 만들었으면 동서남북으로 만들고, 동서남북으로 만들었으면 사방, 전후 좌우의 어디서든지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한한 가치, 보다 값진 것을 찾아서 상대로 삼으려고 합니다.
만약에 사랑의 방향이 하나밖에 없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하고 인간이 만나겠어요, 안 만나겠어요?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가는 길은 하나인데, 하나님도 사랑을 통해서 주고받고 또 주고받고 더 좋은 것을 찾아가고, 그 직선상에서 사람도 참사랑을 중심삼고 주고받아서 더 좋은 것을 찾아오면 하나님하고 인간의 이마가 맞대지겠어요, 안 맞대지겠어요? 사랑의 길은 둘이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올라갈 수만 있고 내려갈 수는 없어요?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는데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은 하나입니다.
본래의 인간은 오늘날처럼 도탄 중에서 “인생이 뭐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하는 이런 인간이 아닙니다. 그건 뭐냐?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가 바라는 참된 사랑의 주체와 상대를 만날 수 없는 세상이니 그렇지, 그 주체의 사랑을 만나 보라구요! 폭발이 벌어집니다. 요지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이 뒤집어지고 코가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와…”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256-179)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접선지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디에서 하나될 것이냐?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연구하고 진리를 찾기 위해서 영계의 싸움과 육계의 싸움을 하면서 고생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디에서 접선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곳이 없으면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은 영원히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고민한 결과가 무엇이냐?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한 마디를 찾아내고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아! 하늘이 위에 있고 사람이 아래에 있다면, 상하관계라면 직단거리구나” 한 것입니다. 직단거리의 사랑의 길은 수직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이 직단거리라면, 수평적인 인간의 사랑이 그 직단거리를 통하는 참사랑과 합할 수 있는 자리는 90각도의 중앙입니다. 그래서 위에서부터 아래는 부자의 사랑이요, 동으로부터 서로 가는 것은 부부의 사랑이요, 45도 전후로부터 후현을 그리는 것은 형제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불가피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구형을 이루는데 수직의 부자지관계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결착점, 부부관계를 완성할 수 있는 결착점, 상하관계와 전후관계를 완성할 수 있는 결착점이 어디냐? 그곳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첫날밤에 사랑의 관계를 맺는 그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여자가 하나님의 딸로 태어나 가지고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로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에 있어서 남매가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부부가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부모의 출발을 볼 수 있는 완성의 자리입니다.
부부는 천지합덕인 동시에 모든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하나의 본향입니다. 천지인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 이루어지느냐? 결혼식을 해 가지고 첫사랑의 관계를 맺는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거기에 해방이 있습니다. 자녀로서의 해방, 남매로서 다 이루는 자리, 부부로서 다 이루는 자리, 미래의 부모로서 입적하는 자리, 모든 것을 공인시키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관계를 맺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256-232)
 
부부의 사랑이 완성되어 안착하는 자리
 
그래서 참부모와 성약시대의 안착입니다. 이것이 없어 가지고서는 남자나 여자가 사랑을 완성해 가지고 안착할 자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안착할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부의 사랑이 완성되어서 안착하는 자리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안착하는 자리도 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렇느냐? 마음은 주체요, 이 모든 것은 상대가 되어 하나되어 있는 사람이 큰 하나님과 하나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성상과 형상을 실체적으로 느끼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렇게 실체를 낳아 가지고 남매가 되고,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걸 보실 때 하나님 자신이 역사시대에 자라면서 커 나온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껴 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만으로서는 그것을 느끼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자신만으로는 일체가 되어 계시기 때문에 자녀의 자리, 남매의 자리, 부부의 자리, 부모의 자리를 느껴보지 못하셨는데, 상대적으로 아담 해와를 전개시켜 놓고 보니까 백 퍼센트 느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고, 이럴 수가…”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결혼해 가지고 아들딸을 낳게 되면 신비로워서 “세상에, 이럴 수가…” 하지요? 자기 여편네는 뒤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아들딸을 낳으면 느낄 것입니다. 자기 뼈 속의 뼈가 녹아나고, 살의 살들이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으로서 하나되어 있을 때 느끼지 못하던 것을 상대적으로 전개해 가지고 옛날에 자라 나오던 모든 것을 재차 실체적인 상대를 통해서 느껴 보기 위해서 실체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담 해와였다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가 남매로 자라던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커 나온 것을 다시 한 번 실체로 느끼시던 자리요, 그렇게 그들이 커 가지고 폭발적인 자극을 느끼기 위한 것이 부부가 될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으시기 위해서는 여자가 아이를 배서 10개월이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아담을 낳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부부가 되어 가지고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을 낳는 모든 전부는 보이지 않지만 무형의 실체이신 하나님이 자극적인 기쁨을 느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기쁨을 하나님만이 느껴서는 안되겠으니까 실체가 되는 남자와 여자를 부모의 자리에 세워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 자기들이 자라 온 모든 것을 재현하여 느끼게 하시는 것입니다. (256-234)
 
신인세계 완성의 꽃
 
근원에서 시작된 것을 다시 한 번 재현해서 느끼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을 다시 한 번 인간에게 주시기 위해서 아들딸을 낳도록 한 것입니다.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자라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과거에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자라 나오던 것을 대신 실체로 느끼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머니 아버지의 밑에서는 멋도 모르고 지내 왔는데 실체 아들딸을 낳아 보니까 어때요? “아이구, 옛날에 내가 이렇게 자랐구나. 아이고, 좋아” 이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남매가 자라 가지고 부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옛날 아담 해와의 시대에는 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요즘은 전부 다 갈라져서 따로따로 자라 가지고 부부로 만나니까 그것을 느낄래야 느낄 수 없습니다.
아들딸을 낳아 보니까 딸은 어머니를 닮았고, 아들은 누구를 닮았어요?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얼굴은 안 닮아도 생식기라도 닮습니다. 아버지를 완전히 닮는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어때요? 어머니를 완전히 닮습니다. 얼굴과 모든 골격이 어머니와 같고 수염도 안 납니다. 사내녀석은 아버지를 닮아 수염이 나고, 또 달린 것도 아버지를 닮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되어 가지고 내 남편이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어렸을 때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싶은 그것을 대신 보여 주는 것이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을 만들어 놓고 좋아하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아버지도 아들딸을 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 아들딸을 들여다보고는 “야, 남편이 고맙구나! 어떻게 이런 아무 것도 없는 빈 그릇에 심어 줘 가지고 아들딸을 낳게 해주었노” 하고 남편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천리대도를 나에게 예물로 상속해 주시고, 아담 해와를 창조하던 기쁨을 나에게 옮겨 주신 하늘의 은사를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들딸입니다. 그렇게 아들딸을 키워 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키우시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렇게 아들딸이 커 가지고 결혼식을 해서 또다시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야만 부모로서의 책임이 완수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을 결혼 못 시켜 준 부모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혼수가 야단이지요? 자기 재산을 팔고 무엇을 팔더라도 아들딸을 훌륭한 부부가 되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부부가 되어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전체적인 소원 중의 소원이요, 전체적인 행복 중의 행복입니다. 이것이 가정에만 있지 다른 데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가정의 꽃이라는 것은 부부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꽃이 사랑에서부터, 인간의 꽃이 사랑에서부터,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꽃이 사랑에서 피어납니다. 그러기에 “참사랑은 모든 완성의 꽃이다” 하는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부의 인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느끼시던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존재를 실체적으로 체휼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가 얼마나 위대하냐는 것입니다. (256-235)

 


아담 해와는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의 입장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늘나라의 왕자였습니다. 지상천국의 왕이 될 것이요, 천상천국의 왕이 될 것이었습니다. 두 세계의 왕이 될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는 하나님이 부모이시고, 육적인 세계는 실체의 아담 해와가 부모가 될 것이었습니다. 종적인 부모는 하나님이요, 횡적인 부모는 아담 해와의 완성체가 될 것이었는데 그렇게 못 되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이 틀어졌습니다. 90각도의 자리에 안착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참부모와 성약시대의 안착’이라는 것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신인세계 완성의 꽃입니다. (256-238)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희망봉
 
가정에서 아들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랑이요, 남매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랑이요, 부부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랑이요, 부모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랑이 참사랑이에요?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기를 수천만 년 해 나오셨습니다. 수천 년을 여일(如一)과 같이 참고 우리 같은 사람을 길러 가지고 인류해방을 선언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상에 ‘참부모와 성약시대의 안착’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비로소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참사랑을 꽃피울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이 꽃은 식물세계를 대표하는 꽃이 아니라 전체를 대표하는 꽃입니다. 이 꽃은 만유의 존재가 다 환영할 수 있는 꽃입니다. 이 꽃과 더불어 하나되면 완성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희망봉이요, 아름다운 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이 아름답지요? 향기가 나지요? 그 향기가 무슨 향기냐 하면 사랑의 향기입니다. 살기는 못살지만, “저 집 한번 구경하고 싶다” 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이 재미있게 사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요?
누구든지 향기가 있는 나무가 있으면 찾아가요, 안 찾아가요? 찾아갑니다. 코를 박고 전부 다 끌려가는 것입니다. 참외밭에서 참외가 익는 냄새가 나면 개똥벌레도 찾아갑니다. 거기에는 영원한 생명의 씨, 만국을 상속받을 수 있는 생명의 씨, 천하를 상속받을 수 있는 생명의 씨가 깃들기 때문에 만인이 그 씨를 받아 가려고 서로 야단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 50억 인류가 이런 원리를 다 알게 되면 선생님이 사는 집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압사되겠으니까 강철로 지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2천여 명을 교육하고 사진을 찍는데, 선생님은 허수룩하게 입고 앉아 있어서 내가 보기에도 너저분하고 어디 가서 밥도 못 얻어먹고 굶고 앉아 있는 촌사람의 모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다 제비새끼들같이 선생님의 뒤에 와서 그냥 서 있지도 않고 될 수 있으면 선생님과 무엇이라도 하나 닿으려고 하면서 갖다 비비려고 하더라구요. 이거 누가 가르쳐 주었어요? 사랑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런 조화를 부리는 것입니다.
나이 든 여자도 뛰고, 젊은 여자도 뛰면서 여자들이 전부 다 뛰더라구요. 왜 그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기원이 있습니다. 만국을 치리할 수 있고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왕자 왕녀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두 다 “내가 그런 꽃이다” 하는 것을 한번 실감해 봐요!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 딸로서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서 “아버지…” 할 때, “오냐” 하시는 소리를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해와가 아담보고 “오빠…” 하고 부를 때, 하나님이 보시고 “그래, 오빠 저기 있지” 하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사랑하는 남편과 하나되는 것을 하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 하나되어 가지고 나와 같이 창조해야지! 아들딸을 낳아야지! 내가 느끼던 모든 조화의 기쁨을 너도 느껴야지” 하시는 것입니다. 그걸 알게 될 때, 우리 가정이 얼마나 귀한 것이냐 이겁니다. (256-241)
 
‘참부모와 성약시대의 안착’을 이루라
 
여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체로 품을 수 있는 대표자가 자기의 남편입니다. 할아버지의 대신이요, 남자 중의 남자요, 왕 대신이요, 성인 중의 성인의 대표가 나에게 있어서의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내는 여왕 중의 여왕입니다.
그러면 여왕님의 방에 들어갈 때 남편이 목욕재계하고 찾아 들어가야 되겠어요, 노동판에 다니다가 먼지 때가 묻은 그대로 성큼성큼 찾아가야 되겠어요? 사랑에는 예의가 있어야 됩니다. 여편네가 누워 있으면 “미안합니다” 하고 엎드려 가지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덥썩, 절하고 “나왔소” 그래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남편한테 들어갈 때 벗는 게 부끄러워요, 안 부끄러워요? 여자 아닌 사람은 모르지요? 여자 되는 사람들! 부끄러워요, 안 부끄러워요?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선생님이 말한 대로 이상상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옷 벗을 때 부끄러워해요, 안 부끄러워해요? 안 부끄러워해야 됩니다. 부끄러우면 간격이 있어서 안됩니다. 몸과 마음이 간격이 없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두 여인이 있을 수 없고, 두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할수록 떨어져 내려갑니다. 그 가정은 파탄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가게 되면 가정은 전부 다 파탄됩니다. 전부 다 갈라집니다. 하나 안 됐기 때문에 부모고 무엇이고 전부 다 둥지를 헐어 버립니다. 그러한 것을 청산하고 새로이 가정을 편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철새 모양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철새들 가운데 북극에 사는 것은 남극을 찾아가고, 남극에 사는 것은 북극을 찾아갑니다. 고기도 담수의 고기는 짠물에 가서 짠맛을 봐야 새끼를 칩니다. 사슴 같은 것도 새끼를 치려면 염전을 찾아다니면서 소금을 먹고 나서야 새끼를 치는 것입니다. 그거 알아요? 담수의 고기는 해수, 해수의 고기는 담수의 물을 먹고 음양이치의 화합을 거쳐 가지고야 번식합니다. 그게 천지조화에 의한 행복의 기원입니다.
여자가 남자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은 신인세계 완성의 꽃’입니다. 내가 이런 자리에서 산다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재미있게 살기 때문에 그 동네의 나이 많은 80대도, 20대의 젊은 사람도, 장년들도 “저럴 수가…”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한 동네에 한 패가 있더라도 가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왕과 같이 존중시할 수 있게끔 드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꽃봉오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름답게 보여야 되고, 향기가 나야 되고, 그 다음에는 씨를 받아갈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씨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그러한 가정이 되어 가지고 보금자리로서 오늘날 ‘참부모와 성약시대의 안착’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그러한 자리에 안착해 가지고 꽃과 같이 아름답고, 꽃과 같이 향기롭고, 꽃과 같이 씨를 사방에 나누어 줄 수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창조해 가지고 나에게 씨를 주어서 번식시키기 위한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그러면 하늘에도 완성, 땅에도 완성, 하늘나라에서 북 치고 춤추고, 땅에서도 북 치고 춤추면서 야단이 벌어집니다. 지금까지 그럴 수 있는 놀음이 지상에 한 번도 없었습니다. (256-243)
‘참부모와 성약시대’를 선포함으로써 보금자리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창조이상을 중심삼은 내용을 안팎으로 갖추어 심신일체를 이루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느끼시던 모든 것을 대신하여 느끼고 조상들이 느끼던 모든 것을 대신하여 느껴서 완성될 수 있는 참사랑의 꽃봉오리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256-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