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8권 28일
하늘을 위로하자 (훈독본)
날짜 : 1999. 4. 25(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말씀은 반드시 창조적인 실체를 이뤄 놔야
선생님이 역사시대를 지나오면서 많은 말을 했습니다. 개인에 대한 사정, 가정에 대한 사정, 나라에 대한 사정, 혹은 세계에 대한 사정과 하늘나라에 대한 사정을 다 말했습니다. 그 말한 것이 어디에 가서 머물고 있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창조적인 실체를 이뤄 놔야 되는데, 그 말한 것의 실체적인 대상들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한 사람은 어떠냐? 말한 사람은 그 말이 자기 말로써 말을 했느냐, 세계의 말로써 말을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 말이 자기를 위해 한 것이 아니고 세계를 위한 말이고 그 세계를 위한 말이 세계적인 실체를 가져야만 세계를 위한 말로써 한 사람이라도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말은 주체적인 근원이 돼서 상대적인 실체와 더불어 하나되어야만 말의 목적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한 것이 실체로 이뤄져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에 그런 것이 이뤄지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선생님이 과거에 말했지만 선생님 자신이 그것을 이뤄 놓지 않고는 하나님 말씀의 대상과 실체의 대상을 중심삼고 위로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한 말이 누구의 말이었느냐? 문 선생이라는 사람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어디로 갔느냐? 실체가 세계에 꽉 차야 될 텐데 차지 않았을 때 누가 채울 것이냐? 대신 말한 사람이 채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가 말했으면 자식들 앞에 말한 실체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부모는 자식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40년 전부터 말했는데, 그 전에 말한 것도 많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부모님이 성혼식을 한 이후의 말만이 지금 남아있지 그 전의 말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젊은 청년시대에 많은 일기를 썼습니다. 그 일기가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타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모색해 나오며 몸부림쳐 나오던 모든 기록들이 왜정 때 투쟁하던 과정에서 조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불살라 버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한국에서 통일교회를 시작하면서 많은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살아 있을 수 있는 말입니다. 그 말씀은 일반 교회 책임자나 교역자의 말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의 소원을 빌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부둥켜안고 실체적인 대상으로서 몸부림쳐 나온 기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훈독회는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이 40년 전에 한 말인데, 여러분의 선반에 꿰 박아놓고 먼지가 뒤덮이게 해서 잃어버린 말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한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다 잃어버렸지만, 이 말씀을 내가 언제 부활시켜야 되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할 때 세계를 구하기 위한 구도의 주체로서 하나님의 실체적인 위로의 대상이었던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했기 때문에 영계나 모든 만상 전체가 심각했습니다. 한 발자국만 그릇되면 천지가 뒤집어질 수 있었던 심각한 자리에서 한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말씀을 들으면 새롭습니다. 그때에 말씀했던 배후에 하나님과 영계가 동조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세계에서 핍박에 몰려서 죽어간 사람들이 한을 풀 수 있는 지상의 실체권을 바랐던 것을 생각할 때, 이런 말씀이 지상에 발표된 것만으로도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301-114)
절대적인 진리
그 말씀이 죽지 않았습니다. 40년 전에 한 말씀이지만, 선생님이 여러분을 만나서 말씀을 대할 때 뼈살이 움직이는 충격적인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볼 때, 40년 전에 피 어린 심정으로써 하늘을 붙들고 하늘과 동조했던 모든 것이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기가 죽지 않았으니까 결과도 죽지 않았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동기와 결과가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데는 하나의 길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동기가 결과를 위해서 달려가려고 해야 되고, 결과는 동기를 잡아당겨야 됩니다. 여기서는 줘야 되고, 저쪽에서는 잡아당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됩니다. 하늘이 동기고 이 땅이 결과라면, 하늘은 우리를 밀어주려고 하고 우리는 그걸 잡아당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를 관계의 세계라고 하는데, 그 관계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인연이 묶어지는 데서 이뤄져야 됩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부자관계, 부부관계, 사제관계, 정치관계, 경제관계, 교육관계 등 전부 다 관계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 관계의 세계는 혼자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주고받는 데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두 나라가 있을 때 한 나라가 주기만 하고 돌려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무엇을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해도 갈라지고, 무엇을 받았는데 덜 돌려줘도 갈라집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주고받을 수 있는 인연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관계는 국가를 넘고 세계화됩니다.
생명 가운데는 남자의 생명과 여자의 생명이 있습니다. 여자의 생명을 주고 남자의 생명을 사 올 수 있어요? 여자를 죽여서 남자로 만들 수 있어요? 남자를 죽여서 여자로 만들 수 있어요? 못 만든다면, 그 남자도 없어지고 여자도 없어집니다. 이것은 무서운 말입니다. 만약에 남자가 없으면, 여자는 어떻게 되겠어요?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1대에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 앞에 여자가 귀하고 여자 앞에 남자가 귀하다는 것,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진리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301-117)
여자를 안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서 필요한 것이지 남자 혼자로서는 아무리 하나님이 필요하더라도 하나님이 응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남자는 하나님한테 부탁해서 “여자를 만들어 주소” 해야 됩니다. 남자라는 동물이 여자를 부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거예요,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거예요?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또, 여자도 남자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그러면 여자가 어떤 남자를 필요로 하느냐? 부모가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 할머니 할아버지도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그 위의 조상까지 올라가서 종지조상인 하나님까지 올라가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남자입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가 왜 필요해요? 극단적인 말이지만, 여러분이 죽을 때 손을 내밀면 누가 그 손을 잡아주면 좋겠어요?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예요? 아내와 남편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예요? 자식입니다. 이건 절대적인 요인입니다. 이걸 부정하면 우주가 파괴됩니다. 동물의 세계나 식물의 세계도 이런 논리로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또, 자식은 부모한테 받은 것을 돌려줘야 됩니다. 부모 앞에 효자라는 말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부모와 하나되는 것이 효자입니다. 군왕 앞에 충신이라는 말이나 교육의 재료도 필요 없습니다. 군왕과 하나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슨 성자의 도리니 하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 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됩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참사랑은 누구나 원한다’라고 하는 선언문을 통하여 축복가정들이 가야 할 길을 선포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선포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부모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그렇게 만들어 줬다는 것입니다.
한국말로 하게 되면 아내를 뭐라고 해요? 안주인이라고 하지요? 남편은 뭐라고 해요? 바깥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를 안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여자가 아닙니다. 안주인이 되는 것은 여자 때문이 아닙니다. 남자와 하나되기 때문에 안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주인이 되는 동기는 여자가 아니고 남편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301-119)
하나님의 속성
사랑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인간들이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엇갈렸기 때문에 주체의 기준을 세워야 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사스럽게 사랑의 주인이 엇갈려서 혼돈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에 바깥주인인 남자들이 있는데, 남자가 총각 때는 사랑을 모릅니다. 여자를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안 납니다. 그런데 안주인으로 말미암아 바깥주인이 되었는데 부부끼리 마음이 안 맞고 생활의 박자가 안 맞으면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둘밖에 없었는데, 남자가 다른 여자를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합니다. 이래 가지고 지금 세계적으로 프리섹스가 만연되고 있습니다. 남자 여자가 왔다갔다합니다. 그렇게 방향성도 없는 자리에서 돌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누구로부터 찾아오느냐? 상대로부터 찾아옵니다. 상대를 절대시하지 못하는 여자는 절대적인 남편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 그런 남편은 절대적인 여자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적인 부모, 절대적인 효자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상대를 통해서 사랑을 이루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위하는 자리가 아니고는 사랑을 영원히 쥘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이것은 이론적입니다.
여러분도 순간적인 사랑을 원해요, 절대적인 사랑을 원해요? 절대적인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절대, 유일, 불변, 영원인데 그 하나님 자신이 원하시는 것이 뭐냐?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사랑, 유일적인 사랑, 불변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품에 꽉 찰 수 있는 사랑의 기쁨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자기를 절대시하지요? 본성이 절대시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는 것이 변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하는 것이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절대, 유일, 불변, 영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면서 환경을 만드셨는데, 그 환경 가운데 있는 태양이 변해요?
별의별 천태만상의 복잡한 환경에 있어서 그렇게 딱 맞춰서 몇 억만년을 1초도 틀리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우주가 얼마나 커요! 태양계 같은 것이 1천 개 들어가 있어도 클 텐데 수천 억 개의 별들을 갖고 있는 은하계가 1천억 개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크게 만들어 놓으셨겠어요? 그거 걱정이 안 돼요? “아이구, 주인이라면 그걸 어떻게 관리할까” 하는 걱정이 안 되느냐구요? 그것을 내가 책임졌다면 밥 먹고, 점심을 찾아먹고, 저녁을 찾아먹고, 잠자고 놀고 할 여유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함부로 하게끔 안 되어 있습니다. (301-121)
참사랑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일치된 힘
방대한 대우주에 태양계보다 더 큰 별도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런 대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이 장난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우주를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잊어버리기 위해서 만드셨겠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들한테 “이것이 전부 다 네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었다” 하실 때, 그 아들딸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아버지가 딸에게 큰 선물을 사줬고 딸이 아버지한테 작은 선물을 사줬다면, 그 아버지가 “딸이 나한테 준 선물은 내가 딸한테 준 선물보다 작기 때문에 안되겠다. 더 큰 선물을 기다려야 되겠다” 그래요? 큰 것을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사랑입니다. (301-123)
그러면 하나님이 큰 것을 주시게 될 때 우리의 무엇이 더 크기 때문에 그렇게 큰 것을 주시겠느냐? 큰 부자가 자기의 재산을 아들딸한테 나눠 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보다 모든 것을 더 사랑하고 형제를 더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한테는 비밀스러운 보물까지 플러스해서 주게 됩니다. 그것이 인지상정, 정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보다도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추녀들도 결혼할 때 어때요? 일등 가는 남자가 있으면, 여자들의 욕심은 전부 다 그 남자를 점령하고 싶은 생각을 합니다. 동양 여자나 서양 여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대우주를 어떻게 하나님이 관리하시느냐? 우주에서 제일 빠른 속도가 뭐예요? 전파가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리고 있지만, 사랑은 그것보다 몇 억천만 배 더 빠릅니다. 1천억 개나 되는 우주의 끝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거기에 갈 수 있어요, 없어요? 마음은 순식간에 왔다갔다하지요?
제일 빠른 속도를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일치된 힘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땅 끝에서도 “하나님, 오소” 하면,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손녀가 할아버지한테 손가락으로 오라고 하면 할아버지가 그쪽으로 가요, 안 가요? 사랑이 그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301-125)
하나님 대신의 실체가 필요하다
사랑의 상대가 못난 상대라도 천신만고 끝에 찾아서 사랑할 수 있으면, 그러한 아내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으면 하나님도 찾아와서 인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타락해서 사탄한테 천대받고 프리섹스, 호모, 레즈비언, 남자끼리 결혼하고 여자끼리 결혼하는 패들을 찾아와서 당신의 아들딸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이 잘났어요, 못났어요? 못나기는 못났지만 사탄세계의 그 누가 억천만 배 노력해도 따라올 수 없는 사랑을 해 가지고 내 딸을 만들고 내 아들을 만드시겠다니까 도둑놈 주인이에요, 참주인이에요? 참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보다도 몇 천만배나 몇 억만배 훌륭해도 걱정 안 하고 좋아합니다. 맞지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그러면 그 사랑을 어떻게 이룰 거예요? 참사랑을 위해서는 세 번을 죽었다 깨더라도 또 그것을 위해서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주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사랑하다가 그 우주가 없어지면 또다시 창조해서 그보다 큰 우주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사랑하고, 또 두 번을 망했으면 그 우주보다도 더 큰 입장에서 사랑하고 싶다고 하면 어디의 상대가 되겠어요? 제일 높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최고의 사랑의 대상을 만들어서 가겠다고 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겠어요, 안 붙들어 주시겠어요? “이거 내가 쓸 만하다. 이놈의 간나 자식, 이렇게 억천만세 훌륭하기를 바라고 자꾸 올라가기를 바라니까 내 상투 끝까지 올라가겠다” 하면서 잡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누구든지 가장 높은 것을 사랑하고 싶어하는데, 하나님이 “나는 어때” 할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어요? 소리는 들리는 것입니다. “나는 어때” 하시면, “좋아요” 할 텐데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대신의 실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보고 좋아하시겠지요? 그 실체를 죽도록 사랑하면 영계에 가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301-136)
내 아버지
하나님도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하고, 손주가 필요하고, 한 가정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있으면 하나님이 데리고 다니고 싶어하시겠어요, 안 데리고 다니고 싶어하시겠어요? 데리고 다니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 나자마자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땅 위에 살면서 사랑이 뭔가, 가정이 뭔가를 알아 가지고 영계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 영계에 들어가면 “야, 아무개 가정 너 왔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기준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만년 독자 독녀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7대 독자가 죽게 되면 나라에서도 위로해 줍니다. 만년 독자 독녀가 아담 해와였는데, 그들이 타락할 때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었던 존재가 있었어요? 천사였는데, 그 간나 자식이 그렇게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만년 독자 독녀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이 어땠겠어요?
하나님이 대우주를 만드신 것은 사랑하는 아담 해와의 일족들을 거느리고 여행을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다 보았을 것입니다. 지구성에서 한국은 너무나 작습니다. 핀셋으로 들어도 들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차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우주를 순식간에 얼마든지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가 아니고 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잡된 모든 소리들을 다 없애고 “내 아버지…” 하는 소리가 지옥까지 꽉 찰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가까워요, 멀어요?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 등을 타고 내가 한 번 업혀서 날아간다면 어떻겠어요? 후루룩 하면, 지구성 같은 것은 몇 백개라도 파파팍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대우주를 만들어서 그것을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하나님이 사랑을 잃어버려서 무력한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선생님도 사랑을 잃어버리면 무력한 사람이 되겠어요, 유력한 사람이 되겠어요? 무력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옷을 한 백 벌쯤 걸어놓고 봄에 맞는 옷을 찾아서 “이것이다” 해서 입고 나가서 기분 좋게 “봄철아, 내가 여왕 같은 아름다운 옷을 입었으니까 나를 보고 웃어라” 하면 웃어요? 침을 뱉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딸이 되어서 그래야 될 텐데 그렇게 못 되어 가지고 뭘 해” 하는 것입니다. 꽃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었던 아담 해와 때문에 지어진 것들이니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못되어 가지고 별의별 짓을 다 한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301-138)
노벨상과 같은 참사랑상을 만들어야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예요? ‘하늘을 위로하자’입니다. 하나님을 위로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슬픔이 뭐냐,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제거하고, 슬퍼하시는 것을 제거하고, 무슨 곡절이 있으면 그 곡절까지 알아 가지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위로하는 데는 무엇으로 위로하느냐? 힘을 가지고 위로해요? 세계 대통령이 되어서 위로해요? 지식을 가지고 위로해요?
지금도 나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주겠다는 학교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받아야 되겠어요, 안 받아야 되겠어요? 너무 많아서 불살라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가 박사를 주면 줬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요전에도 누가 나를 노벨상 수상자로 교섭한다고 해서 “이 놈의 자식, 노벨상이 뭐야” 하면서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가정문제와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세계를 이룰 수 있는 공적을 만인이 공증할 때 노벨상이 문제겠어요?
내가 그러한 상을 만들어서 주려고 하지 내가 그것을 받아서 뭘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노벨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죽으면 나중에 그것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어볼 것입니다. 공적을 가지고 받았느냐, 무엇 때문에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무런 공적도 없이 받았다고 하면 뒤집어 박혀야 됩니다.
선생님이 참사랑의 대왕마마가 되어서 노벨상과 같은 참사랑상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그 참사랑상을 한 번 타고 싶겠어요, 안 타고 싶겠어요? 준비하라구요! 돈을 대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301-145)*
천일국 훈독경 제8권 28일, 원문
하늘을 위로하자
날짜 : 1999. 4. 25(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말씀은 반드시 창조적인 실체를 이뤄 놔야
선생님이 역사시대를 지나오면서 많은 말을 했습니다. 개인에 대한 사정, 가정에 대한 사정, 나라에 대한 사정, 혹은 세계에 대한 사정과 하늘나라에 대한 사정을 다 말했습니다. 그 말한 것이 어디에 가서 머물고 있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창조적인 실체를 이뤄 놔야 되는데, 그 말한 것의 실체적인 대상들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한 사람은 어떠냐? 말한 사람은 그 말이 자기 말로써 말을 했느냐, 세계의 말로써 말을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 말이 자기를 위해 한 것이 아니고 세계를 위한 말이고 그 세계를 위한 말이 세계적인 실체를 가져야만 세계를 위한 말로써 한 사람이라도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말은 주체적인 근원이 돼서 상대적인 실체와 더불어 하나되어야만 말의 목적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한 것이 실체로 이뤄져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에 그런 것이 이뤄지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선생님이 과거에 말했지만 선생님 자신이 그것을 이뤄 놓지 않고는 하나님 말씀의 대상과 실체의 대상을 중심삼고 위로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한 말이 누구의 말이었느냐? 문 선생이라는 사람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어디로 갔느냐? 실체가 세계에 꽉 차야 될 텐데 차지 않았을 때 누가 채울 것이냐? 대신 말한 사람이 채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가 말했으면 자식들 앞에 말한 실체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부모는 자식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40년 전부터 말했는데, 그 전에 말한 것도 많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부모님이 성혼식을 한 이후의 말만이 지금 남아있지 그 전의 말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젊은 청년시대에 많은 일기를 썼습니다. 그 일기가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타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모색해 나오며 몸부림쳐 나오던 모든 기록들이 왜정 때 투쟁하던 과정에서 조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불살라 버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한국에서 통일교회를 시작하면서 많은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살아 있을 수 있는 말입니다. 그 말씀은 일반 교회 책임자나 교역자의 말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의 소원을 빌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부둥켜안고 실체적인 대상으로서 몸부림쳐 나온 기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훈독회는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이 40년 전에 한 말인데, 여러분의 선반에 꿰 박아놓고 먼지가 뒤덮이게 해서 잃어버린 말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한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다 잃어버렸지만, 이 말씀을 내가 언제 부활시켜야 되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할 때 세계를 구하기 위한 구도의 주체로서 하나님의 실체적인 위로의 대상이었던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했기 때문에 영계나 모든 만상 전체가 심각했습니다. 한 발자국만 그릇되면 천지가 뒤집어질 수 있었던 심각한 자리에서 한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말씀을 들으면 새롭습니다. 그때에 말씀했던 배후에 하나님과 영계가 동조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세계에서 핍박에 몰려서 죽어간 사람들이 한을 풀 수 있는 지상의 실체권을 바랐던 것을 생각할 때, 이런 말씀이 지상에 발표된 것만으로도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301-114)
절대적인 진리
그 말씀이 죽지 않았습니다. 40년 전에 한 말씀이지만, 선생님이 여러분을 만나서 말씀을 대할 때 뼈 살이 움직이는 충격적인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볼 때, 40년 전에 피 어린 심정으로써 하늘을 붙들고 하늘과 동조했던 모든 것이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기가 죽지 않았으니까 결과도 죽지 않았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동기와 결과가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데는 하나의 길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둘이 아닙니다.
그 길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동기가 결과를 위해서 달려가려고 해야 되고, 결과는 동기를 잡아당겨야 됩니다. 여기서는 줘야 되고, 저쪽에서는 잡아당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됩니다. 하늘이 동기고 이 땅이 결과라면, 하늘은 우리를 밀어주려고 하고 우리는 그걸 잡아당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를 관계의 세계라고 하는데, 그 관계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인연이 묶어지는 데서 이뤄져야 됩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부자관계, 부부관계, 사제관계, 정치관계, 경제관계, 교육관계 등 전부 다 관계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 관계의 세계는 혼자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주고받는 데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두 나라가 있을 때 한 나라가 주기만 하고 돌려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무엇을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해도 갈라지고, 무엇을 받았는데 덜 돌려줘도 갈라집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주고받을 수 있는 인연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관계는 국가를 넘고 세계화됩니다.
그러한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뭐냐?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인간이 태어나기를 그런 것들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인간에게 필요한 부대적인 조건들이지 우리가 태어난 근원적인 조건들은 아닙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박사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부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째서 태어났느냐?
부모는 원인이고 자식은 결과이기 때문에 하나돼야 합니다. 영원히 하나되어 주고받을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그것은 갈라지지 않고 자꾸 커집니다. 물레바퀴를 돌리면 실타래가 점점 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꾸 커지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뭐냐? 돈이 아니고, 지식이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두 사람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누가 더 많이 갖겠느냐 이거예요. 요즘에는 부처끼리도 다 그렇잖아요? 저금통장을 둘 갖고 있지요? 아버지의 저금통장, 어머니의 저금통장, 아들의 저금통장, 딸의 저금통장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돈을 가지고는 갈라지는 것입니다. 또, 지식도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많은 학자들을 중심삼고 대회도 했지만, 지식 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될 때 누구든지 자기 전문분야의 새로운 말이나 용어를 모르면 전부 다 깔보고 뭉개 버립니다.
그러면 문 총재도 모든 것을 알아서 발표했는데 내 말을 안 들으면 전부 다 불도저로 밀어 가지고 태평양에 몰아넣을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책임을 못 했다는 서러움을 느끼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는 세계를 수습할 수 없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안됩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필요조건이지 영원한 필요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지식, 돈, 권력보다도 생명이 귀합니다. 그런 것들을 생명과 바꿀 수 있어요?
생명 가운데는 남자의 생명과 여자의 생명이 있습니다. 여자의 생명을 주고 남자의 생명을 사 올 수 있어요? 여자를 죽여서 남자로 만들 수 있어요? 남자를 죽여서 여자로 만들 수 있어요? 못 만든다면, 그 남자도 없어지고 여자도 없어집니다. 이것은 무서운 말입니다. 만약에 남자가 없으면, 여자는 어떻게 되겠어요?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1대에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 앞에 여자가 귀하고 여자 앞에 남자가 귀하다는 것,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진리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301-117)
여자를 안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서 필요한 것이지 남자 혼자로서는 아무리 하나님이 필요하더라도 하나님이 응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남자는 하나님한테 부탁해서 “여자를 만들어 주소” 해야 됩니다. 남자라는 동물이 여자를 부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거예요,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거예요?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또, 여자도 남자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그러면 여자가 어떤 남자를 필요로 하느냐? 부모가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남자, 어머니가 사랑하는 남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 할머니 할아버지도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그 위의 조상까지 올라가서 종지조상인 하나님까지 올라가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남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무엇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하느냐? 여자는 얼굴이 매끌매끌하고 남자는 털털하니까 강유(强柔)가 겸해야 좋다는 논리에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 여자가 왜 필요해요? 극단적인 말이지만, 여러분이 죽을 때 손을 내밀면 누가 그 손을 잡아주면 좋겠어요?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예요? 아내와 남편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예요? 자식입니다. 이건 절대적인 요인입니다. 이걸 부정하면 우주가 파괴됩니다. 동물의 세계나 식물의 세계도 이런 논리로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또, 자식은 부모한테 받은 것을 돌려줘야 됩니다. 부모 앞에 효자라는 말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부모와 하나되는 것이 효자입니다. 군왕 앞에 충신이라는 말이나 교육의 재료도 필요 없습니다. 군왕과 하나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슨 성자의 도리니 하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 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됩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참사랑은 누구나 원한다’라고 하는 선언문을 통하여 축복가정들이 가야 할 길을 선포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선포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부모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그렇게 만들어 줬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처녀 총각들이 있는데, 처녀 총각들은 사랑을 모르지요? 처녀 총각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랑을 알아요?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국말로 하게 되면 아내를 뭐라고 해요? 안주인이라고 하지요? 남편은 뭐라고 해요? 바깥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를 안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여자가 아닙니다. 이것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틀렸기 때문에 세상이 요사스럽게 된 것입니다. 안주인이 되는 것은 여자 때문이 아닙니다. 남자와 하나되기 때문에 안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주인이 되는 동기는 여자가 아니고 남편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301-119)
하나님의 속성
사랑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인간들이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엇갈렸기 때문에 주체의 기준을 세워야 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사스럽게 사랑의 주인이 엇갈려서 혼돈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에 바깥주인인 남자들이 있는데, 남자가 총각 때는 사랑을 모릅니다. 여자를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안 납니다. 그런데 안주인으로 말미암아 바깥주인이 되었는데 부부끼리 마음이 안 맞고 생활의 박자가 안 맞으면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둘밖에 없었는데, 남자가 다른 여자를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합니다. 이래 가지고 지금 세계적으로 프리섹스가 만연되고 있습니다. 남자 여자가 왔다갔다합니다. 그렇게 방향성도 없는 자리에서 돌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누구로부터 찾아오느냐? 상대로부터 찾아옵니다. 상대를 절대시하지 못하는 여자는 절대적인 남편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 그런 남편은 절대적인 여자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적인 부모, 절대적인 효자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상대를 통해서 사랑을 이루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위하는 자리가 아니고는 사랑을 영원히 쥘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이것은 이론적입니다.
여러분도 순간적인 사랑을 원해요, 절대적인 사랑을 원해요? 절대적인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절대, 유일, 불변, 영원인데 그 하나님 자신이 원하시는 것이 뭐냐?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사랑, 유일적인 사랑, 불변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품에 꽉 찰 수 있는 사랑의 기쁨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자기를 절대시하지요? 본성이 절대시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는 것이 변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하는 것이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절대, 유일, 불변, 영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어요? 절대적으로 믿어야 됩니다. 절대적인 믿음 가운데 중심으로 모셔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면서 환경을 만드셨는데, 그 환경 가운데 있는 태양이 변해요? 태양은 지구의 130만 배나 되는 크기입니다. 지구만 해도 크지요? 그 태양의 주위를 이 지구가 일년에 365회를 돌아갑니다. 이것이 추리적으로 말해서 45억 년이라고 하지만, 그 45억 년 동안 지구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1초라도 차이가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1년에 1초가 어긋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10년이면 10초고, 60년이면 1분의 차이가 나게 됩니다. 6백 년이면 한 시간이 됩니다. 한 시간의 차이가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구가 뻥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별의별 천태만상의 복잡한 환경에 있어서 그렇게 딱 맞춰서 몇 억만년을 1초도 틀리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우주가 얼마나 커요! 태양계 같은 것이 1천 개 들어가 있어도 클 텐데 수천 억 개의 별들을 갖고 있는 은하계가 1천억 개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크게 만들어 놓으셨겠어요? 그거 걱정이 안 돼요? “아이구, 주인이라면 그걸 어떻게 관리할까” 하는 걱정이 안 되느냐구요? 그것을 내가 책임졌다면 밥 먹고, 점심을 찾아먹고, 저녁을 찾아먹고, 잠자고 놀고 할 여유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함부로 하게끔 안 되어 있습니다. (301-121)
참사랑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일치된 힘
방대한 대우주에 태양계보다 더 큰 별도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런 대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이 장난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만물 가운데 꽃들을 바라보면 얼마나 다양해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합니다. 하나를 크게 만들어서 그것이 향기를 한 번 내면 천 년이나 가게 만들어 놓거나 눈으로 보기에도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만 만들어 놓아도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하나만을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전부 다 연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빨간 것이 있으면 하얀 것도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지루하시겠어요, 기분 좋으시겠어요? 대우주를 여행하고 싶으시겠어요, 안 하고 싶으시겠어요? 아무리 어느 누가 금은보화를 쌓아 놓았더라도 그것을 혼자서 갖고 싶겠어요? 자기 어머니가 있으면 어머니를 모시고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편네나 남편네의 손을 붙들고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기의 아낙네들도 그런 마음이 있지요? 아들딸의 손목도 잡고 가고 싶겠지요?
그러면 대우주를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잊어버리기 위해서 만드셨겠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들한테 “이것이 전부 다 네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었다” 하실 때, 그 아들딸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아버지가 딸에게 큰 선물을 사줬고 딸이 아버지한테 작은 선물을 사줬다면, 그 아버지가 “딸이 나한테 준 선물은 내가 딸한테 준 선물보다 작기 때문에 안되겠다. 더 큰 선물을 기다려야 되겠다” 그래요? 큰 것을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사랑입니다. (301-123)
그러면 하나님이 큰 것을 주시게 될 때 우리의 무엇이 더 크기 때문에 그렇게 큰 것을 주시겠느냐? 큰 부자가 자기의 재산을 아들딸한테 나눠 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보다 모든 것을 더 사랑하고 형제를 더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한테는 비밀스러운 보물까지 플러스해서 주게 됩니다. 그것이 인지상정, 정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보다도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추녀들도 결혼할 때 어때요? 일등 가는 남자가 있으면, 여자들의 욕심은 전부 다 그 남자를 점령하고 싶은 생각을 합니다. 동양 여자나 서양 여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대우주를 어떻게 하나님이 관리하시느냐? 우주에서 제일 빠른 속도가 뭐예요? 전파가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리고 있지만, 사랑은 그것보다 몇 억천만 배 더 빠릅니다. 1천억 개나 되는 우주의 끝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거기에 갈 수 있어요, 없어요? 마음은 순식간에 왔다갔다하지요? 컴퓨터로 계산해 가지고 인공위성으로 몇 십년 몇 백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즉각입니다.
제일 빠른 속도를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일치된 힘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땅 끝에서도 “하나님, 오소” 하면,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손녀가 할아버지한테 손가락으로 오라고 하면 할아버지가 그쪽으로 가요, 안 가요? 사랑이 그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301-125)
하나님 대신의 실체가 필요하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주를 이렇게 크게 만드셨는데 스스로 가지고 있고 싶어하시겠어요? 세계적인 화가가 1천 장의 걸작품을 그렸는데 매일같이 그것을 보고 “아이구, 좋다” 그러면 미치광이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똑 같은 것을 한 번만 봤으면 됐지 하루에 열 번씩 보고 웃으면 정신병자, 돈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많이 그려 놓았을 때 사랑하는 친구가 오면 신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신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보고 놀라고, 눈이 커지고, 웃으면서 “제발, 이것 내가 가지고 가면 좋겠다. 전부 다 가지고 가면 좋은데, 그 중에 제일 좋은 것을 내가 가지고 가겠다” 그러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친구한테 줘요, 안 줘요? 내놓고 준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그렇습니다. 귀한 것은 먼저 내놓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귀한 것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한테 주시겠다고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여자는 잘나야 되느냐, 못나야 되느냐? 남자는 잘나야 되느냐, 못나야 되느냐? 이게 상대적입니다. 남자도 못나고 여자도 못나면 어떻게 할거예요? 여자도 그렇게 못나고 남자도 그렇게 못났으니까 어떻게 할거냐구요? 둘이서 사랑하고 싶은데 죽을 거예요, 그만둘 거예요? 말해 봐요! 그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있으면 사랑하지요. 세상에 제일 못났으니까 세상에 제일 못난 사람을 만나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면서 살면 됩니다. 어때요? 그러면 못난 사람이에요, 잘난 사람이에요? 잘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부로 추남 추녀가 만났어도 양귀비나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못났으니까 천년만년 구해도 사랑의 상대를 찾을 수 없었던 깊은 골짜기의 산을 넘어왔기 때문에 못난 여자라도 만나서 악수를 하게 되면 그 여자의 주먹이 으스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울면서 “아야” 하겠어요, 웃으면서 그러겠어요? 웃으면서 “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으면 웃으면서 울겠느냐 이거예요. 얼마나 멋져요!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고 시적입니다. 못난 여자와 남자들은 그런 데서 시가 나오고 예술이 나온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301-134)
사랑의 상대가 못난 상대라도 천신만고 끝에 찾아서 사랑할 수 있으면, 그러한 아내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으면 하나님도 찾아와서 인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타락해서 사탄한테 천대받고 프리섹스, 호모, 레즈비언, 남자끼리 결혼하고 여자끼리 결혼하는 패들을 찾아와서 당신의 아들딸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이 잘났어요, 못났어요? 못나기는 못났지만 사탄세계의 그 누가 억천만 배 노력해도 따라올 수 없는 사랑을 해 가지고 내 딸을 만들고 내 아들을 만드시겠다니까 도둑놈 주인이에요, 참주인이에요? 참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보다도 몇 천만배나 몇 억만배 훌륭해도 걱정 안 하고 좋아합니다. 맞지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그러면 그 사랑을 어떻게 이룰 거예요? 참사랑을 위해서는 세 번을 죽었다 깨더라도 또 그것을 위해서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주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사랑하다가 그 우주가 없어지면 또다시 창조해서 그보다 큰 우주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사랑하고, 또 두 번을 망했으면 그 우주보다도 더 큰 입장에서 사랑하고 싶다고 하면 어디의 상대가 되겠어요? 제일 높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최고의 사랑의 대상을 만들어서 가겠다고 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겠어요, 안 붙들어 주시겠어요? “이거 내가 쓸 만하다. 이놈의 간나 자식, 이렇게 억천만세 훌륭하기를 바라고 자꾸 올라가기를 바라니까 내 상투 끝까지 올라가겠다” 하면서 잡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누구든지 가장 높은 것을 사랑하고 싶어하는데, 하나님이 “나는 어때” 할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어요? 소리는 들리는 것입니다. “나는 어때” 하시면, “좋아요” 할 텐데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대신의 실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보고 좋아하시겠지요? 그 실체를 죽도록 사랑하면 영계에 가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301-136)
내 아버지
하나님도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하고, 손주가 필요하고, 한 가정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있으면 하나님이 데리고 다니고 싶어하시겠어요, 안 데리고 다니고 싶어하시겠어요? 데리고 다니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 나자마자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땅 위에 살면서 사랑이 뭔가, 가정이 뭔가를 알아 가지고 영계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 영계에 들어가면 “야, 아무개 가정 너 왔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기준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만년 독자 독녀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7대 독자가 죽게 되면 나라에서도 위로해 줍니다. 만년 독자 독녀가 아담 해와였는데, 그들이 타락할 때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었던 존재가 있었어요? 천사였는데, 그 간나 자식이 그렇게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만년 독자 독녀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이 어땠겠어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재판장으로서 인간들을 심판해 가지고 지옥 갈 인간들은 “지옥 가라” 한다는데, 세상에 미쳐도 그렇게 미칠 수 있어요? 뭘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는 형편이 무인지경입니다. 10억이라는 기독교인들이 한꺼번에 기도해서 문 총재를 죽으라고 해도 안 죽습니다. 문 총재를 없애려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처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내 보완장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는 왼쪽으로도 가고 바른쪽으로도 갑니다. 선생님이 언제 거동하는지 모릅니다. 내가 언제 떠나는지 알아요? 협회장이 얘기하더라도 그것을 퍼트리면 안됩니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좋아하지요? 여러분 가운데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맛있는 것을 사주고 좋은 말을 해주면 좋다고 하지만 뺨을 갈기고 발로 밟으면서 “이 쌍간나, 죽지 않고 뭘 하러 여기 왔느냐” 하면 어떻겠어요? 그래도 좋아해요? 그래도 좋아한다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고 미쳤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대우주를 만드신 것은 사랑하는 아담 해와의 일족들을 거느리고 여행을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다 보았을 것입니다. 지구성에서 한국은 너무나 작습니다. 핀셋으로 들어도 들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차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우주를 순식간에 얼마든지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가 아니고 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잡된 모든 소리들을 다 없애고 “내 아버지…” 하는 소리가 지옥까지 꽉 찰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가까워요, 멀어요?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 등을 타고 내가 한 번 업혀서 날아간다면 어떻겠어요? 후루룩 하면, 지구성 같은 것은 몇 백개라도 파파팍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대우주를 만들어서 그것을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하나님이 사랑을 잃어버려서 무력한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선생님도 사랑을 잃어버리면 무력한 사람이 되겠어요, 유력한 사람이 되겠어요? 무력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옷을 한 백 벌쯤 걸어놓고 봄에 맞는 옷을 찾아서 “이것이다” 해서 입고 나가서 기분 좋게 “봄철아, 내가 여왕 같은 아름다운 옷을 입었으니까 나를 보고 웃어라” 하면 웃어요? 침을 뱉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딸이 되어서 그래야 될 텐데 그렇게 못 되어 가지고 뭘 해” 하는 것입니다. 꽃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었던 아담 해와 때문에 지어진 것들이니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못되어 가지고 별의별 짓을 다 한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301-138)
노벨상과 같은 참사랑상을 만들어야
내가 원맨 쇼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세계에 유명한 주일학교의 선생입니다. “달달달…” 하는 거예요. 울게 되면 따라 우는 것입니다. 앉았던 사람들이 모르고 내가 하는 대로 따라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했어요, 못 했어요? 그렇게 해먹었으니까 통일교회의 여러분, 아무것도 모르는 햇내기들을 녹이는 것이야 간단합니다. 선생님의 말에 다 취해서 미쳐 가지고 남은 사람들 아니에요? 모두 다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래요, 안 그래요?
내가 미치게 해서 이익 난 게 뭐 있어요? 여러분을 타고 앉아서 무슨 나쁜 일을 했어요, 돈을 내라고 협박 공갈을 했어요? 돈 벌어서 먹여주고 비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주머니를 털어 준 것입니다. 모두 다 생기는 게 있으니까 따라다니지 선생님같이 하라고 하면 다 떨어질 것입니다. 내가 돈을 수백 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것을 다 세계를 위해서 날려 버렸습니다. 잘했어요, 못 했어요? 도적놈의 자식들한테 먹이면 도적놈이 더 됩니다. 아예, 굶겨서 배가 뼈에 붙어서 걸어다니지를 못하고 배밀이를 할 수 있게 되어 가지고 회생하기 전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버렸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예요? ‘하늘을 위로하자’입니다. 하나님을 위로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슬픔이 뭐냐,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제거하고, 슬퍼하시는 것을 제거하고, 무슨 곡절이 있으면 그 곡절까지 알아 가지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위로하는 데는 무엇으로 위로하느냐? 힘을 가지고 위로해요? 세계 대통령이 되어서 위로해요? 지식을 가지고 위로해요?
지금도 나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주겠다는 학교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받아야 되겠어요, 안 받아야 되겠어요? 너무 많아서 불살라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가 박사를 주면 줬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요전에도 누가 나를 노벨상 수상자로 교섭한다고 해서 “이 놈의 자식, 노벨상이 뭐야” 하면서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가정문제와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세계를 이룰 수 있는 공적을 만인이 공증할 때 노벨상이 문제겠어요?
내가 그러한 상을 만들어서 주려고 하지 내가 그것을 받아서 뭘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노벨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죽으면 나중에 그것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어볼 것입니다. 공적을 가지고 받았느냐, 무엇 때문에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무런 공적도 없이 받았다고 하면 뒤집어 박혀야 됩니다.
선생님이 참사랑의 대왕마마가 되어서 노벨상과 같은 참사랑상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그 참사랑상을 한 번 타고 싶겠어요, 안 타고 싶겠어요? 준비하라구요! 돈을 대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30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