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2일
16 훈독경 제1권 22일 하나님의 것을 만들자 1.mp3
하나님의 것을 만들자
에베소서 4:1-6
1959년 11월 8일(日), 전 본부교회.
<말 씀>
우리는 각각 다른 사정을 가졌습니다. 또 서로 형편이 다르고 서로 다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 각자는 자기를 더 존중시하며 과거를 수습하고 현재를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과거와 현재, 나아가서는 미래에 새로운 무엇의 중심이 되기 위한 의도 밑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생애노정에서 잘 체험했을 줄 믿습니다.
하늘을 위하여야 할 나
우리가 눈을 뜨고 바라보면 만물이 있고, 국가가 있고, 사회가 있고, 형제와 친척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의 가치를 확정 지어 부분에서 전체까지 그 인연의 중심이 되고자 할진대, 나를 맞이하고자 하는 천지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지만 나를 맞이하고자 하는 이 민족, 이 나라가 있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나를 중심삼고 이 나라가 맞아 주기를 원하고, 이 세계가 맞아 주기를 원하고, 하늘땅이 맞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을 배반한 타락의 후손, 천륜을 배반한 배반자의 후손들이 가는 방향인 것입니다. 그러나 천륜은 그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민족을 위하여 뜻을 품은 자, 민족과 더불어 뜻을 이룬 자는 그 민족이 망할 때 같이 망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조나 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이념이 성사되고 그 시대가 되었다고 즐거워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천륜의 새로운 무엇이 나타날 때는 그것 앞에 꺾임을 당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형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노정을 걸어왔고, 또 걸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천지가 합세하여 그의 가치가 옳다고 인정을 한 사람, 또 인정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 자신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탄식함은 물론이려니와 만물이 탄식하고 더 나아가서는 창조의 주인공까지도, 즉 선의 주체로 계시는 그 본체까지도 슬퍼하고 계시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슬픔을 품은 땅이요, 슬픔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이요, 슬픈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하늘입니다. 이러한 슬픔의 자리에서 계획한 그 계획이 천상을 뚫고 올라가 하늘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이 하늘에게 드릴 기쁨의 동기를 일으킬 수 있는 예물을 갖지 못한다 할진대 슬픔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처지
아직까지 이념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상의 어떤 주의나 이념도 인류는 이러한 노정을 가야 한다고, 이렇게 가야 한다고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하나님을 찾는 그날까지 허덕이며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어떻다 할지라도 그날까지 인간은 돌고 돌고 또 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막연히 제시하시기를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려고 하지 말고 민족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조가 달라짐에 따라 지금 시대에 와서는 이 땅을 위하여 살라고 하는 인륜도덕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무엇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을 가르쳐 나오는 지도자 혹은 양심가들은 천륜과 인연을 맺기 위한 도를 인간 앞에 제시하여 나왔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그 하나님을 향하는 데 있어서는 권력과 일체의 모든 것을 끊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며 모든 도의 정신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낙오자와 같이 걸어왔습니다. 짓밟히고 몰리고 쫓기면서 20세기까지 나왔습니다.
인간들이 바라고 있는 선, 평화, 자유, 그 모두가 하늘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선이요, 평화요, 자유냐고 따져 들어간다면 여러분이 계획하고 있는 것,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평화도 어느 한 때는 유린당해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좋다 하는 어떤 이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이념이 정작 하늘로부터 온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아질 것과 사라질 것
시대를 대표하는 이념은 지나갑니다. 한 세기를 대표하는 주의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천륜적인 것은 남아집니다. 그렇게 천륜은 돌고 있습니다. 세계를 움직인 어떤 위대한 혁명가가 있다 할지라도 그는 그 시대와 더불어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양계를 비롯한 대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하늘이 그 이념과 더불어 움직일 수 있고, 그 이념과 더불어 전체를 품을 수 있는 한때는 언제일 것인가? 그런 때가 기필코 와야 할 것입니다. 인간도 그런 때를 소원하고 있고 하늘도 그런 때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런 때를 맞이해야 할 인간인 연고로 하늘은 법을 세워 지도해 나오시는 것이요, 그러한 한때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 한때가 끝날이요, 심판의 날입니다.
하늘 앞에 정성을 들이면 내가 망하고 싶어도 망하지 않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와 하늘땅을 위하여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땅에 하나님의 이념이 이루어지는 그 한때를 표준으로 역사해 나오시기 때문에 개인이나 민족에게 곡절이 있다 하더라도 그 곡절을 시인하지 않고 넘고 넘어 오늘의 세계적인 기준까지 나오셨습니다.
이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여! 우리를 제물로 삼아주시옵소서. 하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양심을 가진 사람은 이 뜻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며 그 무엇을 소망합니다. 어느 한 때에 가서는 그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계획하는 어떠한 계획, 인간이 구상하는 어떠한 구상, 그 모든 것을 능가하여 자기의 페이스(pace)를 잃지 않고 늠름히 처리해 나오신다고 봅니다.
오늘의 세계 양상과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러면 오늘 이 땅 위에 있는 주의가 천성을 통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세계에 하늘과 땅을 품을 수 있는 무엇이 나온다 할진대 하늘과 땅이 통하고 하늘과 땅과 우리의 마음이 결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체의 가치와 전체의 뜻을 연결할 수 있고 마음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오늘날 이 시대의 청년 남녀들은 총궐기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악하게 돌아가는 이 땅을 바라보고만 계시는가? 여기에는 곡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창조원리에서 배워 알고 있지만 자기가 짓지 않은 것은 주관할 수 없고 자기가 지었더라도 이상적인 완성의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직접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세계를 인간들끼리 해결하려고 하지만 인간끼리는 안 되겠사오니, 하늘이여 구해 주시옵소서! 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계셨고, 인간이 생겨난 그날부터 인간과 인연을 맺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하여금 처단하게 했고 악한 민족은 악한 민족으로 하여금 처단하게 했습니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연을 맺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대 거사를 하게 될 때는 인연을 부정하거나 인연을 무시하고선 절대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한낱 타락한 인간들도 새로운 무엇을 할 때엔 과거의 인연을 존중시하여 그것을 청산하고 움직이거든, 하물며 인간과 깊은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무시하고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조를 통하여 시대마다 수많은 사람을 제물로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인간은 인연을 배반할 지 언정 하늘은 인연을 조건으로 하여 선지들을 그 시대 앞에 내세웠습니다. 몰아내고 죽이면 또 내세워 놓고 하는 일을 해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치고 민족을 거쳐 세계까지 나왔습니다. 세계적인 끝날이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하늘과 최대의 인연을 맺어야 할 때가 가까이 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간 최대의 소망
인간은 하늘이 기뻐하고, 피조세계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무엇이 되고 싶어합니다. 외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런 욕망을 이루었다 해도 마음의 세계는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물질문명의 첨단에 서 있는 오늘날에도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종교를 세워서 인간의 내적인 것을 수습하여 나왔고 과학을 세워 외적인 것을 수습하여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 각 분야로 갈라져 나왔으나 어느 한때 상봉해야 되는 것입니다. 상봉하기 위해서는 주인을 놓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위대한 철학자가 나왔다 할진대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될 것이고, 어떠한 과학자가 나왔다 할진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고 계시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될 것이고, 종교가가 있다 할진대 심정적으로 하늘땅을 움직이는 동시에 저 영계까지 움직여야 될 것입니다. 이것을 실증해서 옳다 할 수 있는 그때가 되면 세상은 다 통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그의 이념은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인간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이 세계를 자기 수중에 넣고 자기 마음대로 해 보고 싶고, 자유천지를 여행이나 하면서 멋지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땅 위에 사는 대다수 인간들의 이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서 보세요. 마음은 더 높은 다른 무엇을 또 바라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이 세상을 부정할 수 없고 심적인 기준을 부정할 수 없는 연고로 역사노정에서 종교가 많은 공헌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런 까닭에 최후에 가서는 나를 중심삼고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 하나님과 상봉하여 우리가 한 목적이었고 한 가지의 존재였구나. 하며 손을 붙들고 울 수 있는 한 날이 땅 위에 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몸 그리고 심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제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그 한 때를 맞이하게 될 때,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 세상에는 최대의 안식의 동산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최대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최대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 앞에 사랑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 하나의 모습을 우리의 마음은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무런 무엇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인간을 사랑해 오신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땅을 주관한다 해도 나중에는 하나님의 소망권 내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후에는 하나님을 상봉하여 그 심정에 들어가서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하나님과 나는 뗄 수 없는 부자의 관계입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천국을 찾는 그날까지 인간은 허덕이고 방황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몸, 마음, 심정의 입장에서 본 복귀섭리
오늘날 유물론자들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이념이나 의식만 가지고는 세계를 뒤집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데는 의식만이 아니라 마음의 혁명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하늘의 심정을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인생이 가는 목적지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찾는 그날까지 허덕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였습니다. 몸은 땅을 상징하고, 마음은 이념을 상징하고, 영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인간을 찾아 나오기 위한 지금까지의 투쟁사는 몸을 상징하는 땅을 빼앗는 싸움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을 상징하는 사상을 빼앗는 놀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심정을 빼앗는 역사입니다. 이것이 종교전쟁입니다. 여러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두고 보십시오.
이렇게 해서 심정의 기준이 자리 잡히면 마음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는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사랑의 심정을 가진 부모는 마음이 자식에게 있기 때문에 만물을 사랑하게 된다는 거예요.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암만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해도 마음이 주게 된단 말이에요. 암만 아까운 것도 아들을 위해서는 팔아 치웁니다. 아들놈 제치고 나 먹고 살아야지. 하지 않습니다. 그 기준이 우리 인간 각자의 심정에 사무쳐서 사랑의 심정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온 만물은 머리 숙인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리고 부모의 사랑을 모르던 사람이 부모의 품에 안겨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는 그 자리에 갈 때에 머리 숙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물도 인간과 공동체적인 운명으로 그 목적을 향하여 같이 뒤넘이치며 나왔습니다.
인간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곱다라니 서서 '오, 그대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대의 가정은 내가 사랑하는 가정이로구나, 그대가 갖고 있는 물건은 내가 사랑하는 물건이로구나, 그대가 살고 있는 땅은 내가 사랑해야 할 땅이로구나, 그대가 바라보고 있는 천상천하는 내가 사랑해야 할 천상천하로구나'. 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되는 날에야 하나님도 안식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것을 이루기 위하여, 혹은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하여 우리 신앙자들은 믿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서 만나려고 하시는가? 성경에 몸이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인간이 만물을 주관하라는 축복을 이룬 자리에서 만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이 땅은 다 깨져 버렸습니다. 땅이 다 깨어져 나갔는데 어디서 만나요? 내가 하나님 같아도 그럴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하나님께서 있는 정성을 다 들여 흙덩이와 같은 것을 수습하여 영원한 이념의 생명체, 즉 영인체가 자랄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셨다가 실패하고, 또 찾아오셨다가 못 만나고, 또 찾아오셨다가 때를 잃어버리곤 했던 슬픈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개인을 찾아왔다가 개인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소망으로 역사해 나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찾아오실 주님을 맞이해야 할 우리의 자세
죄악된 우리를 누가 찾아오십니까? 나를 낳아준 아버지가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대우주의 주체 되시는 아버지가 찾아오십니다. 이것을 알고 황공하옵니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그날부터 정상적인 신앙의 길을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고, 신․구약을 능통했다 하더라도 찾아오신 그분께 불초한 이 자식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하는 마음이 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찾아오셨던 아버지 앞에 아브라함이 실수했고, 민족적으로 찾아오셨던 아버지를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늘날 다시 세계적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 앞에, 당신은 내 소원을 아시니 성취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이야 어찌 됐든 나만 편하면 됐지 하는 심보를 가진 사람은 하늘 앞에 절도범이요 강도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다 빼앗아 놓고도 이러한 신앙을 하는 오늘날의 신앙자들이니, 이것이야 말로 예수를 잃은 신앙자들이요 지옥의 권세를 지닌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생명이 있는 무리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오시는 아버지 앞에 눈물을 머금고 황공하옵니다. 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있으면 아버님, 받으시옵소서. 역사노정에서 슬퍼하신 선조의 슬픔을 대신하겠나이다. 내 몸에 좋은 조건이 있다 할진대 이 조건을 아버지께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 내 일생의 무엇도 이 민족의 무엇도 아버지께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 하며 나설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무리, 믿을 수 있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께서 그러한 가운데 안 오실 수 없습니다. 세상의 부모도 잘났던 못났던 부모의 심정을 통하고 부모의 서글픔을 먼저 알고 서글퍼 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 앞에서 부모는 뼛골이 녹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고? 동산에 자라나는 풀 한 포기를 볼 때도 풀아! 너는 어느 한 날에 내 사랑을 받는 아들의 물건이 되어서 그 아들의 사랑을 받겠나?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부모들도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서 그 아들을 다시 사랑할 수 없게 되면 아들이 살아서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을 바라볼 때마다 그 부모는 얼마나 슬퍼합니까?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리기 위한 것이 복귀 노정이요, 부활 노정이요, 재창조의 노정입니다.
하늘은 이 땅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고? 풀 한 포기를 보고도 오 풀아, 네게는 하늘의 눈물 자국이 남아 있구나. 땅을 바라보아도 성도들의 피 눈물이 감돌고 있는 땅이요, 피의 고개를 넘어서 그리워하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려 있는 땅이구나. 하는 마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만물,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억제할 수 없는 폭발적인 심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사람을 세워서 세계를 살려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목적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십니다. 최대의 이념과 이상을 세워 놓고 만물을 지으셨으나 아직까지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탄식의 심정으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인간 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것이 무엇이뇨? 타락한 우리의 조상이 아니요, 형장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아닙니다. 역사상의 어떠한 참사에서 희생된 사람도 아닙니다. 망해버린 국가도 아닙니다. 굽이치는 애달픈 하늘의 심정을 품고 걸어 나온 자들이 제일 불쌍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났습니까? 과거엔 몰라서 못 했지만 이제 알았으니 모든 것을 거두어 하나님 것으로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후에 자기를 찾는 운동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늘의 위신을 대신한 아버지의 아들딸이라 할진대 천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원한에 사무친 아버지의 심정을 다시 유린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무엇인가? 또 인류의 목적은 무엇인가? 선의 주권을 세워서 만민을 통치하고, 개인의 가치를 만우주의 가치보다도 더 귀하게 여길 수도 있는 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계가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것이 하나도 없는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천지가 아무리 넓다 하여도 하나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땅 위에는 믿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땅 한 평이라도 있다면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은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 한 평조차 없습니다. 만물이 아무리 풍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지 못하니 어찌할 것인가?
우리들이 이를 악물고 전도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딸, 하나님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만물을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찾아드리자
이제 만왕의 왕이요, 만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이렇게 슬퍼하시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아버지 것으로 단단히 보존해야 됩니다. 통일용사들은 그것을 사탄한테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과 절개를 가져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성별시켜서 아버지 것으로 취급하여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버지, 비록 내가 작지만 이 역사, 이 세계를 대신하여 최후의 제물로 써 주십시오.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아버지 것으로 세워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 자라야 아버지가 찾아오시고 주가 찾아오시는 날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비록 사탄세계에 산다 할지라도 하늘에 대한 절개와 지조는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슬픔을 해원하기 위하여 부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목적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자랑할 수 있는 내 가치를 세우기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한스러운 이 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것이 불쌍할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하늘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면 나와 이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이 땅은 아버지의 땅이요, 하늘의 눈물이 어리어 있는 땅입니다. 이 백성에게는 하늘의 눈물이 어리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불쌍한 처지와 환경을 잊어버리고, 자기 일신에 부딪쳐 오는 고통을 잊어버리고 대표적인 제단이 되고 선봉자의 책임을 다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아버지 것으로 인계하여 저희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옵고 제게 있는 아들도 아버지의 아들이오니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움직임이 지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 것으로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내 발걸음도 아버지의 것이요, 내 몸뚱이도 아버지의 것이요, 내게 속한 모든 것이 아버지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 어디서든 아버지가 쓰시고자 할 때 돌려드릴 수 있는 보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 주인이 오지 않았으니까 주인이 올 때까지 우리는 보관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민주주의가 하늘 앞에 서려면 보관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때가 오면 다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안 나누어 주면 망합니다. 망해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목적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가치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한 자체의 마음을 통하여, 몸을 통하여, 생활을 통하여 뒤넘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네 마음속에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천국에서부터 실체천국, 실체천국에서부터 이상천국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2일 원문
하나님의 것을 만들자
날짜 : 1959. 11. 8(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하나님을 위하여야 할 나
우리는 각각 다른 사정을 가졌습니다. 또, 서로의 형편이 다르고 서로 다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 각자는 자기를 더 존중시하며 과거를 수습하고 현재를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과거와 현재, 나아가서는 미래에 새로운 무엇의 중심이 되기 위한 의도 밑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생애노정에서 잘 체험했을 줄 믿습니다.
나를 존중시하는 마음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높은 단계인 사회를 바라보게 되고, 국가를 바라보게 되고, 나아가서는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범위를 넓혀서 그 가치를 세우기 위해 허덕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허덕여 나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바라보면 만물이 있고, 국가가 있고, 사회가 있고, 형제와 친척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의 가치를 확정지어 부분에서 전체까지의 중심이 되고자 할진대, 나를 맞이하고자 하는 천지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지만 나를 맞이하고자 하는 민족과 나라가 있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 왔다 간 모든 성현들은 그 시대를 위하여 살다 간 것이 아니라 올 시대를 위해서 살다 갔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정하지 못합니다. 어떤 철인이나 어떤 도주(道主)도 그 시대만을 위하여 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무슨 계획이나 소망이나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실상 그대로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소망이나 이념을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고 이루어야 합니다. 그곳이 여러분이 머물러야 할 곳이요, 인연 지어야 할 곳이요, 바라보아야 할 곳입니다.
소망의 동산은 그러한 곳인데, 그 소망과 이념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자는 역사가 세워주지 않을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싸우는 자는 어느 한 때에 탄식하며 쓰러질 것입니다.
민족을 위하여 뜻을 품은 자, 민족과 더불어 뜻을 이룬 자는 그 민족이 망할 때 같이 망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조나 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이념이 성사되고 그 시대가 되었다고 즐거워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천륜의 새로운 무엇이 나타날 때는 그것 앞에 꺾임을 당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형태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노정을 걸어왔고, 또 걸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놀라운 그 무엇을 제시하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천륜의 모든 것을 품고 즐길 수 있고 자신을 실증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못 가졌다 할진대 큰소리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운명적이라고 할까, 서글픈 입장이라고 할까? 그렇게 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어 내려오느냐? 지금까지 이 땅 위의 존재물은 목적의 자리에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천지가 합세하여 그의 가치가 옳다고 인정한 사람, 또 인정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물을 지은 주인공도 역사이래 오늘날까지 그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창조주 자신이 지어 놓은 만물도 자기의 것으로 취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물이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 자신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탄식함은 물론이려니와 만물이 탄식하고 더 나아가서는 창조의 주인공까지도, 즉 선의 주체로 계시는 그 본체까지도 슬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슬픔을 품은 땅이요, 슬픔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이요, 슬픈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슬픔의 자리에서 계획한 그 계획이 천상을 뚫고 올라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한테 드릴 기쁨의 동기를 일으킬 수 있는 예물을 갖지 못한다고 할진대 슬픔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8-67)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처지
아직까지 이념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상의 어떤 주의나 이념도 “인류는 이러한 노정을 가야 한다. 이렇게 가야 한다.”고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하나님을 찾는 그 날까지 허덕이며 가는 것입니다. 그 날까지 인간은 돌고 돌고 또 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시하시기를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려고 하지 말고 민족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시대에 와서는 이 땅을 위하여 살라고 하는 인륜도덕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무엇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을 가르쳐 나오는 지도자, 혹은 양심가들은 천륜과 인연을 맺기 위한 도를 인간 앞에 제시하여 나왔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데 있어서는 권력과 일체의 모든 것을 끊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며 모든 도의 정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인생행로에서 낙오자와 같이 걸어왔습니다. 짓밟히고, 몰리고, 쫓기면서 20세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렇게 몰리어 온 이들에게 하나님은 해방의 한날, 기쁨의 한때를 안겨주지 못한 채 인간은 지금도 그 날을 향해 가는 과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만물을 대하고, 이 땅의 역사를 대하고, 미래를 대하고, 천상을 대하여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의 사람을 중심삼고 세계를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중심삼고 영계를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중심삼고 이 땅과 모든 만물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훌륭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 이념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지에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념의 목적과 가치적인 인연을 못 맺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날이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과 가치를 이루는 존재는 어떠한 존재인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처럼 전체의 중심으로서 땅 위에 설 수 있는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존재가 역사이래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선조들과 오늘의 우리까지 그런 존재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조건을 세워 놓고 자신을 다시 한 번 비판해 보십시오! 최고의 선의 주체자인 하나님이 있다고 할진대 그 선의 주체자가 여러분이 좋다고 하는 물건을 보고 “아, 참 좋구나!”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버지!” 하고 부르면 “오냐, 사랑스런 아들딸아! 너는 진실로 사랑하는 내 아들딸이다.”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인간이 아무리 호화찬란한 자리에서 자랑한다고 해도 “오냐, 참 좋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인연을 한번도 맺지 못한 하나님이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이 바라고 있는 선, 평화, 자유가 하나님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선이요, 평화요, 자유냐고 따져 들어간다면 여러분이 계획하고 있는 것,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평화도 어느 한때는 유린당해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좋다고 하는 어떤 이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념이 정작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8-69)
도의 세계는 현실을 부정하고 나서
시대를 대표하는 이념은 지나갑니다. 한 세기를 대표하는 주의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천륜적인 것은 남아집니다. 그렇게 천륜은 돌고 있습니다. 세계를 움직인 어떤 위대한 혁명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그 시대와 더불어 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양계를 비롯한 대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하나님이 그 이념과 더불어 움직일 수 있고 그 이념과 더불어 전체를 품을 수 있는 한때는 언제일 것인가? 그런 때가 기필코 와야 할 것입니다. 인간도 그런 때를 소원하고 있고 하나님도 그런 때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런 때를 맞이해야 할 인간인 연고로 하나님은 법을 세워 지도해 나오시는 것이요, 그러한 한때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 한때가 끝날이요, 심판의 날입니다.
그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선의 이념도 흘러갈 것이고, 내가 살고 있는 환경도 유린당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지니고 있는 관념과 모든 것은 천상에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인 연고로 도의 세계는 현실을 부정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품은 자들 중에 세상과 더불어 향락을 누리면서 그 뜻을 이루려고 했던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몰리고, 국가에서 몰리고, 사회에서 몰리고, 당대의 사조에서 몰리고, 나중에는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죽음의 자리까지 몰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이슬같이 사라져 갔으나 그들이 살고, 그들이 지키고, 그들이 주장하던 천륜은 남아졌습니다. 그 천륜이 역사를 수습해 나온 연고로 시대가 지나간 후에도 그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계셨고, 인간이 생겨난 그날부터 인간과 인연을 맺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악한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하여금 처단하게 했고 악한 민족은 악한 민족으로 하여금 처단하게 했습니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연을 맺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대 거사를 하게 될 때는 인연을 부정하거나 인연을 무시하고서는 절대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한낱 타락한 인간들도 새로운 무엇을 할 때엔 과거의 인연을 존중하여 그것을 청산하고 움직이는데, 하물며 인간과 깊은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무시하고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조를 통하여 시대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제물로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인간은 인연을 배반할지언정 하나님은 인연을 조건으로 하여 선지자들을 그 시대 앞에 내세웠습니다. 몰아내고 죽이면 또 내세우는 일을 해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치고 민족을 거쳐 세계까지 나왔습니다. 세계적인 끝날이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하나님과 최대의 인연을 맺어야 할 때가 가까이 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8-71)
인간 최대의 소망
그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천적인 인연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더듬어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내가 세계의 것이 되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고, 나로 말미암아 세계가 기뻐하고, 내가 기뻐하고 하나님이 기뻐함으로 말미암아 온 천지가 화답하는 그 기쁨, 그것이 목적입니다.
야망을 품은 사람은 세계를 자기의 수중에 넣고 뒤흔들고 싶어합니다. 어떤 훌륭한 정치가가 있다면 그를 붙들고 욕망이 무엇이냐 할 때, 이 세계를 마음대로 흔들어서 세계가 내 수중에서 움직이고, 하나님이 놀아나고, 하늘땅 전부가 움직이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욕망을 실현한 사람이 아직까지는 없지만 앞으로 나올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기뻐하고 피조세계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무엇이 되고 싶어합니다. 외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런 욕망을 이루었다 해도 마음의 세계는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물질문명의 첨단에 서 있는 오늘날에도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종교를 세워서 인간의 내적인 것을 수습하여 나왔고 과학을 세워 외적인 것을 수습하여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 각 분야로 갈라져 나왔으나 어느 한때 상봉해야 되는 것입니다. 상봉하기 위해서는 주인을 놓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위대한 철학자가 나온다고 할진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될 것이고, 어떠한 과학자가 나온다고 할진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고 계시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될 것이고, 종교가가 있다고 할진대 심정적으로 하늘땅을 움직이는 동시에 저 영계까지 움직여야 될 것입니다. 그것을 실증해서 옳다고 할 수 있는 그 때가 되면 세상은 다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진대 그분의 이념은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간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이 세계를 자기의 수중에 넣고 자기 마음대로 해 보고 싶고 자유천지를 여행이나 하면서 멋지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땅 위에 사는 대다수 인간들의 이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서 보세요! 마음은 더 높은 다른 무엇을 또 바라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이 세상을 부정할 수 없고 심적인 기준을 부정할 수 없는 연고로 역사노정에서 종교가 많은 공헌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최후에 가서는 나를 중심삼고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 하나님과 상봉하여 “우리가 한 목적을 지닌 하나의 존재였구나!” 하며 손을 붙잡고 울 수 있는 한날이 땅 위에 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몸, 그리고 심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그 한때를 맞이하게 될 때,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 세상에는 최대의 안식의 동산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천륜이 있다고 해도 인간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종교가 있다고 해도 인간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주의가 있다고 해도 인간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목적이 무엇이냐?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인정을 받는 데 있어서는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것만도 아니요, 하늘땅으로부터만도 아닙니다. 하나님한테까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 최대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최대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사랑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우리의 마음은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무런 무엇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해 오신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땅을 주관한다고 해도 나중에는 하나님의 소망권 내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최후에는 하나님과 상봉하여 그 심정에 들어가서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하나님과 저는 뗄 수 없는 부자의 관계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천국을 찾는 그 날까지 인간은 허덕이고 방황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8-75)
몸·마음·심정의 입장에서 본 복귀섭리
오늘날 유물론자들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이념이나 의식만 가지고는 세계를 뒤집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데는 의식만이 아니라 마음의 혁명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심정을 통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인생이 가는 목적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그 날까지 허덕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를 찾는다 할진대, 어떠한 도를 찾을 것인가? 논리적인 도와 양심적인 도를 지나서 심정적인 도를 찾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이것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말하시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였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다.” 했습니다. 이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천지만물을 주관해 나오시는 그 아버지 앞에 아들딸이라고 인정을 받아서 천상 천하에 그 이름이 공인되는 것이 인생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인류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그 날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가? 내 개인적으로는 찾아가지 못합니다. 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하여 유구한 역사노정에서 사랑의 심정으로 나타나지 못하셨느냐? 여러분, 원리에서 재창조역사를 배웠을 것입니다. 원래대로 찾아오십니다. 잃어버렸으니 잃어버린 대로 다시 찾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을 소우주라고 했습니다. 몸은 땅을 상징하고, 마음은 이념을 상징하고, 영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인간을 찾아 나오기 위한 지금까지의 투쟁사는 몸을 상징하는 땅을 빼앗는 싸움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을 상징하는 사상을 빼앗는 놀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심정을 빼앗는 역사입니다. 이것이 종교전쟁입니다. 여러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두고 보십시오.
이렇게 해서 심정의 기준이 자리잡히면 마음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는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사랑의 심정을 가진 부모는 마음이 자식에게 있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는 어떠한 물건도 아깝지 않습니다. 주어서는 안된다고 암만 해도 마음이 주게 됩니다. 아무리 아까운 것도 아들을 위해서는 팔아 치웁니다. 아들놈 제치고 나 먹고살아야지 하지 않습니다. 그 기준이 우리 인간 각자의 심정에 사무쳐서 사랑의 심정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온 만물은 머리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리고 부모의 사랑을 모르던 사람이 부모의 품에 안겨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는 그 자리에 갈 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물도 인간과 공동체적인 운명으로 그 목적을 향하여 같이 뒤넘이치며 나왔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도 사정이 다르고 인연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목적을 두고는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곱다라니 서서 “오, 그대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대의 가정은 내가 사랑하는 가정이로구나! 그대가 갖고 있는 물건은 내가 사랑하는 물건이로구나, 그대가 살고 있는 땅은 내가 사랑해야 할 땅이로구나, 그대가 바라보고 있는 천상 천하는 내가 사랑해야 할 천상 천하로구나!” 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되는 날에야 하나님도 안식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하나님한테 빚진 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태어나 몇 십년을 사는 동안 진정으로 감사한 적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그런 때가 있었어요?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 나라여, 감사합니다. 이 시간이여, 감사합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할진대,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 됩니다. 이렇게 대 줘도 알지 못하는 인간들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비판하고 천륜을 비판하는 무리요, 이러한 역사노정을 거쳐온 인간들입니다. (8-77)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어떠한 빚을 졌느냐? 어떤 물질의 빚, 땅의 빚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찢어내고 녹여낸 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심정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 믿고 천국 가겠다고 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제 슬픔을 모두 받아 주시옵소서!” 합니다. 염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염치가 있어서 기도하지 않은 사람을 천 마디 기도하는 사람보다도 더욱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이 느껴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끝날에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무엇을 하시려고 오시는가? 인간의 역사적인 모든 빚을 청산하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청산의 대가로 무엇을 원하시는가? 금은보화가 아닙니다. 썩어 없어질 이 몸뚱이도 아닙니다. 영원 불멸할 영, 즉 속사람을 중심삼은 영원한 나를 찾아오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원한 영적인 존재는 물론이려니와 더 나아가서는 타락된 이 몸까지 청산하여 다시 축복해 가지고 이를 붙들고 “오냐,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구나!” 할 수 있는 때를 바라고 지금까지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것을 이루기 위하여, 혹은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하여 우리 신앙자들은 믿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서 만나려고 하시는가? 성경에 몸이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인간이 만물을 주관하라는 축복을 이룬 자리에서 만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 땅은 다 깨져 버렸습니다. 땅이 다 깨어져 나갔는데 어디서 만나요?
이 몸뚱이는 하나님이 있는 정성을 다 들여 흙덩이와 같은 것을 수습하여 영원한 이념의 생명체, 즉 영인체가 자랄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예술품도 이 이상의 예술품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야, 일어나라!”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최대의 정력을 기울여서 만드신 것이 몸입니다. 거기에 영인체를 불어넣어 하나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유·무형의 세계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그런 형상을 만들어 축복해 주셨는데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만물을 주관하라는 축복을 이루어 만물이 그 사랑의 심정 앞에 머리 숙일 수 있기를 바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입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만물을 파괴했으니 그 하나님이 실패의 하나님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셨다가 실패하고, 또 찾아오셨다가 못 만나고, 또 찾아오셨다가 때를 잃어버리곤 했던 슬픈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개인을 찾아왔다가 개인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소망으로 역사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잃어버리고 가정적인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셨겠습니까! 그리하여 가정을 세워 축복해 주려고 하셨는데 이것도 깨어지니 가정을 버리고 민족을 세워 역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도 망해 버리니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 국가가 망하면 세계를 세워야 되는데 지금까지 어느 한때, 어느 것도 하나님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예수님을 보내어 세계를 세우려고 하셨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그 나라도 망하고 세계도 혼란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키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지만 만물을 주관하라는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온 세계가 사람의 주관 내에서 움직이는 형태를 갖춰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몸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靈)도 있으니 그 마음과 영을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있어야 합니다. 그가 우리가 모실 수 있는 이념의 주인공입니다.
외적으로 아무리 잘되어 있어도 이념이 없으면 망해 버립니다. 외적인 것에 이념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기준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진대 그러한 작전을 하실 게 아니에요? 망상이나 공상으로 얼렁뚱땅하시지 않습니다. 하나의 미립자라도 분석해 보면 무질서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통을 갖추지 않은 것이 어디 있고 원인과 내용과 목적을 벗어난 것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8-79)
세계적으로 찾아오실 주님을 맞이해야 할 우리의 자세
죄악된 우리를 누가 찾아오십니까? 나를 낳아준 아버지가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대우주의 주체되시는 아버지가 찾아오십니다. 이것을 알고 “황공하옵니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그 날부터 정상적인 신앙의 길을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고, 신구약을 능통했다 하더라도 찾아오신 그분께 “불초한 이 자식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하는 마음이 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찾아오셨던 아버지 앞에 아브라함이 실수했고, 민족적으로 찾아오셨던 아버지를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늘날 다시 세계적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 앞에 “당신은 내 소원을 아시니 성취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이야 어찌 됐든 나만 편하면 됐지 하는 심보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강도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다 빼앗아 놓고도 이러한 신앙을 하는 오늘날의 신앙자들이니 그야말로 예수님을 잃은 신앙자들이요, 지옥의 권세를 지닌 자들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생명이 있는 무리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오시는 아버지 앞에 눈물을 머금고 “황공하옵니다.” 할 수 있는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있으면 “아버님, 받으시옵소서! 역사노정에서 슬퍼하신 선조의 슬픔을 대신하겠나이다.” 내 몸에 좋은 조건이 있다 할진대 “이 조건을 아버지께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 내 일생의 무엇도, 이 민족의 무엇도 아버지께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 하며 나설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무리, 믿을 수 있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께서 그러한 가운데 안 오실 수 없습니다. 세상의 부모도 잘났든 못났든 부모의 심정을 통하고 부모의 서글픔을 먼저 알고 서글퍼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 앞에서 부모는 뼛골이 녹아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죽음의 바다가 이 민족을 밟고 넘어서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역사의 발자취와 더불어 오신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남이야 미치광이라 하든, 무엇이라 하든 아버지를 모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심정이 사무쳐야 하겠습니다. 나는 없다는 기준을 세우고 아버지 앞에 황공하다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눈물로 준비하는 그러한 민족은 앞으로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동산에 자라나는 풀 한 포기를 볼 때도 “풀아, 너는 어느 한날에 내가 사랑하는 아들의 물건이 되어서 그 아들의 사랑을 받겠나?”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부모들도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서 그 아들을 다시 사랑할 수 없게 되면 아들이 살아서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을 바라볼 때마다 그 부모는 얼마나 슬퍼합니까!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리기 위한 것이 복귀노정이요, 부활노정이요, 재창조의 노정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풀 한 포기를 보고도 “오, 풀아! 네게는 하나님의 눈물 자국이 남아 있구나.” 땅을 바라보아도 “성도들의 피눈물이 감돌고 있는 땅이요, 피의 고개를 넘어서 그리워하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려 있는 땅이구나!” 하는 마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만물,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억제할 수 없는 폭발적인 심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세워서 세계를 살려 나갈 것입니다.
6천 년 역사노정을 거쳐오는 동안 독신자(篤信者)를 붙들고 나오신 불쌍한 하나님이심을 느끼는 우리가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친구 중에 제일 가까운 친구는 어떠한 친구인가? 그의 심중에 깊이 박힌 불쌍한 사정과 억울하고 가엾고 외로운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친구 중의 친구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자식이라 하였으니 자식이라 함은 외로운 사정을 알아주는 것을 넘어서 그 부모의 죽을 자리까지도 인계받는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8-81)
모든 것을 거두어 하나님 것으로 만들어 드려야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십니다. 최대의 이념과 이상을 세워 놓고 만물을 지으셨으나 아직까지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탄식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인간 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것이 무엇이냐? 타락한 우리의 조상이 아니요, 형장에서 억울하게 죽는 사람도 아닙니다. 역사상의 어떠한 참사에서 희생된 사람도 아닙니다. 망해버린 국가도 아닙니다. 굽이치는 애달픈 하나님의 심정을 품고 걸어나온 자들이 제일 불쌍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와 단 몇 개월만이라도 함께 살고 싶어하고 또 그 사람을 위해서는 죽음도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우리를 찾기 위해 가시밭길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세상의 이목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목 베임을 당하는 것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개인으로부터 가정·사회·민족·국가·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위해 희생해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찾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환희의 날이 이 천지에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의 아들딸을 얼마나 고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그런 아들딸이 되겠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여기에 오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가신 길은 하나님을 찾아 최대한으로 모신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슬픔을 당할 때 도리어 하나님을 위로해 드린 자식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몰리던 예수님은 과거 선조들에게 몰림을 당하시던 하나님은 얼마나 슬프셨겠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대하던 가정으로부터 쫓겨날 때 “하나님은 얼마나 슬프셨습니까!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겠습니다.” 또, 민족 앞에 쫓김을 받고 12사도와 70문도에게 배반당하던 예수님은 “나를 믿고 따르던 이들 이상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과거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의 그 심정을 감히 알겠습니다. 그리고 뜻을 품고 죽음의 자리에서도 절개를 지켰던 선조들의 심정을 알겠습니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믿는 성도들 중에서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예수님의 상대가 될 사람이 있겠는가 보십시오! 하나님은 땅을 대하여 6천 년 동안 수고하셨지만 수고의 대가를 못 받으셨습니다. 만물을 그리워했고, 인간을 그리워했고, 인간에게 축복해 주기를 원하셨고, 사랑하는 아들을 품고 사랑하고 싶으셨지만 어느 한날 그래 보지 못하신 하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났습니까? 과거엔 몰라서 못 했지만 이제 알았으니 모든 것을 거두어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후에 자기를 찾는 운동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신을 대신한 아버지의 아들딸이라고 할진대 천만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원한에 사무친 아버지의 심정을 다시 유린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무엇인가? 또, 인류의 목적은 무엇인가? 선의 주권을 세워서 만민을 통치하고, 개인의 가치를 만우주의 가치보다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계가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하나도 없는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천지가 아무리 넓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땅 위에는 믿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땅 한 평이라도 있다면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은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 한 평조차 없습니다. 만물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지 못하니 어찌할 것인가?
우리가 이를 악물고 전도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딸, 하나님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만물을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를 움직여야 할 오늘날의 기독교가 이런 하나님의 최고의 이념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축복하셨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것을 피하다가 망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했어야 되었느냐? 만물을 할례했어야 되었습니다. 3년간 모든 땅을 경작하지 말고 만물을 할례했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만물 할례기간, 성별기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봐서 알잖아요? 사탄세계에서 유린당한 땅을 다 청산하기 위하여 소금을 뿌리고 했던 것 말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려던 가나안 땅은 어디에 갔으며, 그 가나안 땅에 살았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로 갔느냐? 때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를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합니다. (8-83)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찾아드리자
국가의 3대 요소는 무엇입니까? 주권과 영토와 국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이 있어요, 하나님의 땅이 있어요,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이제 만왕의 왕이요, 만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이렇게 슬퍼하시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아버지의 것으로 단단히 보존해야 됩니다. 통일용사들은 그것을 사탄한테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과 절개를 가져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성별해서 아버지의 것으로 취급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버지, 비록 제가 작지만 이 역사, 이 세계를 대신하여 최후의 제물로 써 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세워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 자라야 아버지가 찾아오시고 주가 찾아오시는 날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비록, 사탄세계에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절개와 지조는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르고 있는 아들딸을 아버지의 자식으로 여겨 왔습니까? 더 나아가서, 나와 내 상대가 아버지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까? 내 부모, 내 선조, 내 민족, 내 나라를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까? 무지한 이 땅 위의 인간들은 하나님이 이러한 표준을 향하여 움직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조용히 생각해 보세요! 거짓말인가, 사실인가를 말입니다. 알고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심장에서 젊은 피가 솟구쳐서 생명이 약동하는 청년이 있다고 할진대 역사의 원한을 풀어야 할 것입니다. 끝날에는 이 세계를 아버지의 것으로 할 수 있는 주의, 이 만물을 아버지의 것으로 할 수 있는 주의, 하늘과 땅을 아버지의 선주권 내에 속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민족주의 혹은 세계주의, 천주주의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당신의 원한을 제가 풀어 드리겠사오니,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하며 6천 년의 한스러운 역사를 짊어지고 이 천주를 아버지의 것으로 세우기 위하여 기도하는 아들딸이 있다고 할진대 “야, 이놈아! 너 벌받는다.” 하겠어요? 그러므로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에 널린 27억 인류를 아버지의 백성으로 세우기 위하여 뼛골이 녹아지는 날까지 싸워야 합니다. 수많은 사탄들까지도 아버지에게 자연굴복하는 날까지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여기에 모였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슬픔을 해원하기 위하여 부름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목적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자랑할 수 있는 내 가치를 세우기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한스러운 이 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것이 불쌍할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면 나와 이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이 땅은 아버지의 땅이요, 하나님의 눈물이 어리어 있는 땅입니다. 이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눈물이 어리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불쌍한 처지와 환경을 잊어버리고, 자기 일신에 부딪쳐 오는 고통을 잊어버리고 대표적인 제단이 되고 선봉자의 책임을 다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인계하여 “저희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옵고 제게 있는 아들도 아버지의 아들이오니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움직임이 지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귀히 여기는 그 몸뚱이는 원래 아버지의 것이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는지 자문해 보세요! 이놈의 고깃덩이는 하나님의 성도들을 잡아먹던 고깃덩이요, 하나님의 손에 피를 흘리게 했던 고깃덩이요, 역사의 쓴 뿌리가 박혀 있는 고깃덩이입니다. 더 나아가서 영혼으로부터 마음, 몸, 생활 환경, 사회, 세계까지 모두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물어보세요! 여러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랑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외적인 것 전부가, 내 일신의 전부가, 이념의 전부가 아버지의 것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짖고 있는 이 자유가 아버지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부르짖는 행복도 아버지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부르짖는 교회도 아버지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을 해야 됩니다. 청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최고의 목표는 그것입니다. 그래야만 이치가 맞지 않습니까?
이제 내 발걸음도 아버지의 것이요, 내 몸뚱이도 아버지의 것이요, 내게 속한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 어디서든 아버지가 쓰시고자 할 때 돌려드릴 수 있는 보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 주인이 오지 않았으니까 주인이 올 때까지 우리는 보관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목적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한 자체의 마음을 통하여, 몸을 통하여, 생활을 통하여 뒤넘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네 마음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천국에서부터 실체천국, 실체천국에서부터 이상천국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