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야 할 본연의 자리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8일)

훈독왕 | 20201222153027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8일


인간이 가야 할 본연의 자리 (훈독본) 
- 전국 순회시 강원교구 식구들에게 하신 말씀 -

날짜 : 1988. 5. 13(금)
장소 : 한국 춘천교회

 

인간이 가야 할 본연의 자리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8일)

 

인간의 출발점은 어디냐

우리 인간도 반드시 기원이 있습니다. 출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이 뭐냐 할 때, 오늘날 유물론자 혹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진화되어 가지고 발전했다고 간단히 속단하고 있습니다. 진화의 내용은 작은 데서부터 큰 데로 발전했다, 단순한 데서부터 복잡한 데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할 수 있었던 하나의 기원이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복잡하게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 제3의 어떠한 힘의 개재가 없이 그 자체에서 전진적이요, 고차적이요, 복잡한 곳으로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 무엇이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3의 힘의 개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면,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냐? 그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역사시대에 수많은 종교들이 나와 가지고 신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지만, 그게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매하기 때문에 종교세계가 끝날에 혼란상태에 빠지고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확실히 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176-284)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적인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신이 뭐냐 하면 시공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1년, 2년, 혹은 하루라는 것이 없습니다. 영계에 들어가게 되면 잠자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 다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가졌으면 그 눈으로 어떤 것을 한 번 보고 “좋다” 하고 기억하면 천년만년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악신과 선신이 싸우고 있는데, 그렇게 악신과 선신이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 악신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선신이 이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문 총재를 따라가는데, 문 총재는 무엇을 따라가는 것이냐? 선신을 따라가는데, 선신 중에도 낮은 선신이 아니라 제일 최고의 선신을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제일 선신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겠어요?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적인 하나님이 되려면 그 하나님의 눈을 들여다볼 때 “야, 어쩌면 저 눈은 영원히 그 모양을 잊어버릴 수 없게끔 아름답게 생겼노”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눈이 있다면 그 눈은 대왕의 눈이 되어야 하고 최고의 아름다운 눈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눈을 가진 미인이라도 하나님의 눈을 보게 되면 반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한테 입이 있다면 어떨까요? 아가씨들이나 아줌마들을 보면 거울 앞에 앉아 가지고 화장을 잘 하지요? 그러나 그 입술이 아무리 잘생겼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입술에 못 당합니다. 귀를 보나, 얼굴을 보나, 사지를 보나, 몸을 보나, 내적인 마음상태를 보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만점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에요?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정서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분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단적으로 말하면 인격적인 신이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최고의 사람을 닮은 신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좋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싫다고 하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좋아하기 전에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어야 됩니다. (176-294)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참사랑을 가진 사람


하나님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잘생긴 미남 미녀를 닮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이거예요.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뭐긴 뭐야, 사람이지” 할 것입니다. 사람인데, 사람 가운데 뭐가 있어요? ‘사람’ 하면 여자 남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사람인데, 사람 가운데는 남자도 여자도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을 조금만 더 좋아하시면 싸우잖아요?“ 하나님은 공평해야 됩니다”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 가운데 무엇을 제일 좋아하시느냐? 그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남자도 그걸 놓고는 못 살고 여자도 그걸 놓고 살 수 없다고 하는 것인데,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도 가짜 사랑이 아닙니다. 영원히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사랑, 그걸 참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은 참사랑을 가진 남자나 여자를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 여자한테 물어보면 “여자야, 남자를 좋아하지” 합니다. 그러면 남자의 무엇을 좋아해요? 남자한테 사랑이 있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사랑이 없다면 필요할 게 뭐예요? 여자가 일생 동안 남자를 붙들고 “나 죽는다” 하고 사는 것은 그 남자한테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남자들은 왜 여자를 놓고는 못 사느냐? 놓을 수 없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더라도 “너 엄마 아빠의 무엇이 좋아” 하고 물어보면, “무조건 좋아” 합니다. 그게 뭔데 좋아하는 거예요? 엄마의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암만 잘생기고 엄마는 암만 못생겼더라도 그 아이한테는 그 엄마가 제일 아름답게 보입니다. 제일 좋은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조화를 부리느냐? 사랑이 그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결혼한 부처를 가만히 보면 재미있습니다. 그 부처끼리 앉아서 밥을 먹고 아이를 낳고 일생을 살면서 그 얼굴을 바라보는데, 얼굴에는 하나, 둘, 셋, 넷밖에 없습니다. 눈, 코, 귀, 입을 들여다보고 일생 동안 붙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하겠어요! 하루만에 싫증이 나버릴 텐데, 그래도 일생 동안 놓칠까봐 악착같이 사는 걸 보게 되면 무슨 힘이 그런 놀음을 하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참사랑에 가까울수록 그런 작용이 강합니다. (176-297) 

강약이 조화된 사랑은 더욱 아름답다


눈에 사랑의 안경을 끼게 되면 그 안경의 조화가 얼마나 많은지 못생긴 여자일수록 아름답게 보입니다. 못생긴 추남일수록 미남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수염이 나오기 때문에 굴곡이 뚜렷합니다. 구레나룻 수염도 나고 뺨따귀가 나오고 코가 나오니까 굴곡이 있지, 없으면 여자 같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언제든지 뺀뺀이입니다. 

그런 뺀뺀한 여자들이 남자를 볼 때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구레나룻이 난 영감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요? 북실북실한 털이 개털인지 무슨 털인지 알 게 뭐예요? 그거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와 같이 사는 것이 조화무쌍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렇게 끔찍한 사실인데, 그걸 보고 좋아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 미인하고 추남하고 살고, 미남하고 제멋대로 생긴 여자하고 삽니다. 그래도 잘살거든요. 그런 조화를 이루고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놀음을 그 무엇이 하는 거예요? 사랑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봤어요? 사랑을 좋아해요? 사랑을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좋아해요?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는 모르는 것입니다. 여자 혼자 있을 때 사랑을 알아요? 혼자 있을 때는 사랑이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생각할 때 사랑을 느끼지, 여자가 여자를 생각할 때 사랑을 느껴요? “아이구, 나 그 여자한테 시집가” 그래요? (176-300) 

어떤 아주머니가 있는데, 손이 얼마나 조그마한지 게발 같습니다. 가느다란 붓 같고 그렇더라구요. 그 아주머니가 예전에 혼기가 되어 가지고 남자와 맞선을 보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 처녀가 남자가 와서 앉는 걸 봤는데 어디를 봤겠어요? 발부터 보고 손을 보니까 손이 여자 손 같더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 같은 손을 보니까 기분 좋았겠어요? 손을 보고는 아예 얼굴은 보지도 않고 결혼을 안 했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어요! 여자가 여자 같은 손을 보면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나빠 가지고 피하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손이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는 울퉁불퉁한 황소 발통 같은 손, 털이 불쑥불쑥 나고 울툭불툭한 그런 남자의 손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털이 나게 마련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자극을 느낄 수 없습니다. 상대가 나타나야 느끼기 때문에 여자가 매끈매끈하고 만만하면 그 상대적인 존재는 강하고 탄력이 있어야 됩니다. 보들보들한 반면 탄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맞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말랑말랑하고, 남자는 뻣뻣하고 울퉁불퉁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그래야 자극이 있다는 것입니다. 애들도 유치원에 가든가 놀이터에 가서 살살 소리 없이 가만히 타고 앉는 걸 좋아해요, 그저 변화무쌍한 걸 좋아해요? 아이들은 변화무쌍한 걸 좋아합니다. 그거 왜 그렇느냐? 자극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남자끼리 있든가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사랑을 모릅니다. 자기 앞에 상대로서 여자가 나타나면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자기 상대가 나타나게 될 때는 사랑이 발동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 가운데 무엇을 제일 좋아하시겠느냐? 하나님의 사랑 앞에 영원한 것이 뭐가 있겠어요? 가만히 보니까 어머니 아버지도 붙들고 “아이고, 놓고는 못살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이고, 놓고는 못살아” 하고, 어린 아들딸들도 “놓고는 못살아” 하면서 야단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다면, 하나님도 그것을 필요로 하시지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간세상의 사람들 앞에 필요로 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176-302) 

주체의 입장은 자기를 투입하는 것이다


여자라는 존재가 사랑을 가지려고 할 때 남자가 없으면 못 가집니다. 남자라는 존재도 여자가 없으면 사랑을 못 가집니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닮으셨다구요? 우리 인간을 닮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면서 격위(格位)는 남성격이십니다. 그러면 왜 남성격이라고 그래요? 주체의 입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체라는 것은 언제나 주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격위로 말할 때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사랑을 주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대개 노래를 잘한다고 하게 되면 여자예요, 남자예요? 춤춘다고 할 때 남자가 춤을 잘 춰요, 여자가 춤을 잘 춰요? 대개, 여자가 잘 합니다. 여자는 주체에 대해 그런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주체입니다. 하나님도 이 우주 앞에 받기 위한 입장에 계시면, 천지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부 다 자기를 투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주체적인 작용을 전체 앞에 미쳐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격위에서는 남성격이라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을 하시기만 하겠어요? 받고도 싶으실 텐데 어떻게 받아요? 하나님도 사랑을 받고는 표시를 할 때 “아이고, 좋아” 하실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손톱이 창살 같아서 피가 나왔다고 할 때 하나님이 어떠시겠어요? “아이고, 나 죽는다. 요놈의 자식아, 잘해 주는 것도 나 싫다” 하시겠어요? 피가 나와도 “더 나오게 해라” 그러시는 분입니다. 구멍이 뚫어져도, 맞구멍이 뚫어져도 좋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지 않거든요. 그래도 좋아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할 때는 눈알을 뽑아 가도 “뽑아 가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눈을 빼도 뽑아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계속해서 나올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니까 한 번 그런 놀음을 해봐도 끝이 안 납니다. 아무리 했댔자 영원히 계속해도 끝이 안 나니까 하다가 마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다 돌아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하는 놀음이라면 받아 주고도 남을 수 있는 대왕님이십니다. (176-304) 

참사랑은 영원히 주고 싶고 주고 나서 영원히 잊어버리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한테 필요한 것은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이 도대체 뭐예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거예요? 영원히 주고도 또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주고 나서는 영원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기르며 수첩에 아무 날은 뭘 했고 뭘 했다고 적어 놓고 “20년 동안 길러 놨으니까 대가를 찾아오겠다” 하는 부모가 있어요? 자식이 짓궂게 별의별 짓을 다 하더라도 용서해 주고, 자꾸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친구의 참사랑은 뭐냐?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를 도와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요?


또, 참된 남편은 어떤 남편이냐? 아내를 위해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첫날 시작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새로워요! 위해주고 잊어버리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느끼는 사랑의 맛이란 얼마나 알뜰하겠어요! 

참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주고 싶어해서 줬는데도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받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받는데도 그냥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세계를 전부 감동시키고 세계의 힘을 합해 가지고 “밀어 다오” 하는 것입니다. 천만인이 그가 준 사랑을 전부 다 받아 가지고 다시 천만인이 돌아와서 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렇게 볼 때 부모의 사랑이 그런 면에 있어서는 참사랑에 가깝습니다. 

참된 남편은 어떤 남편이냐? 위해주고 또 위해주고 10년, 20년뿐만 아니라 죽고 나서도 위해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데도 위해주는 것입니다. 무덤에 찾아가서 흙을 파고서라도 입을 맞추고 풀뿌리를 아내 품듯이 품고 그러면서 10년 세월 늙어 죽도록 자기 전체를 투입하겠다는 그런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176-306) 

참사랑이 뭐냐? 그것은 천년 전이나 만년 후에나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새가 봄이 되면 짹짹 하고 수놈 암놈 둘이 짝을 지어 가지고 둥지를 틀어 알을 낳고 새끼를 까지요? 몇 천대 전 참새도 그랬고, 몇 천대 후손 참새들도 한 쌍이 둥지를 틀 것인데 언제 그 둥지 트는 걸 배웠겠어요? 참새가 새끼들한테 “야, 너희들! 둥지는 이렇게 튼다” 하고 엄마 아빠가 가르쳐 주는 것을 본 사람이 있어요? 만드는데 어떻게 만드느냐는 말입니다. 그게 조화입니다. 그걸 보면 참 이상합니다. 제비는 제비 둥지 트는 것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전부 다 어떻게 천 년 전 조상들의 제비 둥지처럼 잘 트는지 신기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 특별한 것이 뭐냐? 모든 동물들은 사랑을 1년에 한 번밖에 안 합니다. 대개, 봄절기에 사랑을 합니다. 고양이새끼도 봄이 되면 “야옹, 야옹” 하는 소리를 내지요? 고양이도 새끼를 칠 때 한 번밖에 사랑을 안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어때요? 사람들은 새끼를 낳을 때만 사랑해요, 춘하추동 사계절을 사랑해요? 사계절 모두 사랑합니다. (176-308) 

하늘나라에서의 등급


인간은 하루 하루의 생활 가운데, 호흡하는 시간시간 가운데 사랑의 촉감을 가지고 동서남북으로 돌면서 살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귀합니다.
남자가 여자의 궁둥이를 따라다니는 게 보기 싫어요, 여자가 남자의 궁둥이를 따라다니는 게 보기 싫어요? 다 보기 좋지요? 그게 보기 좋다는 것은 참사랑을 중심삼게 될 때입니다. 그럴 때 다 보기 좋습니다. 만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상으로 바라는 참사랑을 제일 가까이 느끼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라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가치가 평가되느냐? 그것은 본연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그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서 화(和)해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눈이 사랑에 화해 살고, 그 콧김이 사랑에 화하고, 말하는 음성이 전부 다 하나님의 참사랑에 화해서 얼마만큼 꽉 차고 잘 익을 수 있게끔 살았느냐 하는 데 따라서 하늘나라에서의 등급과 가치의 내용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왜 남자가 여자를 필요로 해요? 여자 앞에 남자가 왜 필요해요? 하나님의 참사랑을 소개하기 위해서 여자 앞에 남자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아니고는 우주와 동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6-310) 

사랑의 힘


그러면 사랑은 무슨 힘을 갖고 있느냐? 무슨 내용을 갖고 있느냐? 무슨 속성을 갖고 있느냐? 사랑의 힘은 아무리 지옥에 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으면 그 사람과 관계를 맺어서 하룻밤에 쉬익 올라가더라도 우주가 반대를 안 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동위권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내라도 내가 사랑하는 입장에 설 때 동위권에 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동참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국 왕가의 왕자로서 한국의 농촌에 가서 돼지새끼를 치던 아가씨를 사랑했다면, 그 아가씨는 그 왕자가 있는 자리에 언제든지 가서 동참할 수 있습니다. 때가 묻어 험하더라도 차버리게 안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새 옷으로 갈아 입혀 가지고 그 환경에 맞게끔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동참권입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사랑은 상속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제일 귀한 근본이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기 춘천호에서 낚시질하게 되면 잉어를 잡지요? 그렇지만 참사랑의 미끼를 끼워 가지고 잡는다면 하나님까지 잡을 수 있습니다. 이건 실례된 말이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까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면 뭘 해요? 하나님 속의 참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선생님의 뭘 원해요?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영원 불변한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사랑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영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의 동참자가 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동위권자가 되시고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상속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76-311)

하나님의 구원섭리


그런 논리에 의해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려고 하느냐 하면 내적인 하나님의 자리에 계시려고 합니다. 하나님하고 아담 해와가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어디에 가셔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바깥에 계셔야 되겠어요, 사랑하는 안에 들어가셔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려면 하나님이 핵이 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껍데기가 되어야 해요? 하나님이 핵이 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체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체이시니 만큼 핵으로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에요? 동위권, 동참권, 그 다음에는 상속권을 부여하겠다는 그런 참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무슨 관계예요? 그것을 알아야 사람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176-313) 


하나님이 중심이니까 가운데 계시고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좋아하려면 당기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당기고 여자는 남자를 당기니까 하나님은 거기서 빙빙 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축이 생겨나야 됩니다. 

하나님이 돌 수 있는 사랑의 축이 꽂히면 그걸 뺄 자가 없습니다. 그걸 꽂아 놓았을 때는 하나님 혼자 돌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사랑의 힘에 의해 가지고 돌다 보니 그게 박혀 가지고 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 축이 돌고 돌아 아들딸이 많아지면 그 축도 일어나고 아들딸도 번성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50억 인류가 돌더라도 그 축은 하나지 둘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수직축을 중심삼고 수평선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축이 되는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에 있겠다고 하느냐? 구형 가운데 수직선하고 수평선이 교차하는 복판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우주의 핵의 중심이 하나님이요, 대우주의 핵을 싸고 있는 두 쪽 가운데 하나는 아담이고 하나는 해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내적인 축의 자리에 계시는 아버지요, 아담 해와는 참사랑의 축을 중심삼은 외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입니다. (176-315)*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8일, 원문 

 
인간이 가야 할 본연의 자리 
- 전국 순회시 강원교구 식구들에게 하신 말씀 -
 
날짜 : 1988. 5. 13(금)
장소 : 한국 춘천교회
 
인간의 출발점은 어디냐
 
사실은 이렇게 방문하려면 며칠 전에 통보를 하고 오면 좋겠는데, 몇 시간 전에 통보하고 다니게 돼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미국 사람이나 북한 사람, 그 다음에 소련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왜 싫어할 수 있는 자리에 섰느냐? 주의와 주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세계관을 갖고 나왔습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종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는 그들의 극악한 표현의 말로는 아편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조작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들고 종교라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사람들을 기만하고 착취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의 공산세계 앞에 여기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하나님의 뜻은 이렇다. 개인이 가야 할 뜻이 이렇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가야 할 뜻이 이렇다” 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넘어서, 국가를 넘어서 세계로 가야 할 뜻이라는 것은 모든 국가를 초월하고 사상을 초월해서 전부 다 하나님한테로 돌아가야 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나무는 그 나무의 한 출발 기점인 하나의 씨가 뿌려져 가지고 싹이 나와서 한 나무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가지가 뻗고 잎이 나와 가지고 꽃이 피어 열매로 돌아갑니다. 그 열매는 또다시 심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연의 자체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러한 순환과정을 거쳐 가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도 반드시 기원이 있습니다. 출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이 뭐냐 할 때, 오늘날 유물론자 혹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진화되어 가지고 발전했다고 간단히 속단하고 있습니다. 진화의 내용은 작은 데서부터 큰 데로 발전했다, 단순한 데서부터 복잡한 데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할 수 있었던 하나의 기원이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복잡하게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 제3의 어떠한 힘의 개재가 없이 그 자체에서 전진적이요, 고차적이요, 복잡한 곳으로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 무엇이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3의 힘의 개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면,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냐? 그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역사시대에 수많은 종교들이 나와 가지고 신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지만, 그게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매하기 때문에 종교세계가 끝날에 혼란상태에 빠지고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확실히 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176-284)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적인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신이 뭐냐 하면 시공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오늘날의 시간이라든가 공간세계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1년이라는 해가 없습니다. 1년, 2년, 혹은 하루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잠자지 않아도 되니까 편리하겠지요? 그 영계에 들어가게 되면 잠자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 다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가졌으면 그 눈으로 어떤 것을 한 번 보고 “좋다” 하고 기억하면 천년만년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참 좋겠지요?
그래서 지금 악신과 선신이 싸우고 있는데, 그렇게 악신과 선신이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 악신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선신이 이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문 총재를 따라가는데, 문 총재는 무엇을 따라가는 것이냐? 선신을 따라가는데, 선신 중에도 낮은 선신이 아니라 제일 최고의 선신을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에게도 제일 선신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돼요? 통일교회에서도 최고의 선신이 누구예요? 하나님이지요? 통일교회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싸워요? 통일교회는 가만히 있는데, 기성교회는 왜 밤낮 배가 아파서 야단이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도 하나님을 따라가고 통일교회도 하나님을 따라가는데, 하나님이 길을 가신다면 어디로 가시겠어요? 하나님도 바로 보고 가시겠어요, 옆으로 보고 가시겠어요? 바로 보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겠어요?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을 것 같아요? 집 같은 것을 지어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계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적인 하나님이 되려면 그 하나님의 눈을 들여다볼 때 “야, 어쩌면 저 눈은 영원히 그 모양을 잊어버릴 수 없게끔 아름답게 생겼노”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눈이 있다면 그 눈은 대왕의 눈이 되어야 하고 최고의 아름다운 눈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눈을 가진 미인이라도 하나님의 눈을 보게 되면 반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 내 눈을 떼어버리고 저 눈과 바꾸면 좋겠다” 그래야 될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보다 못해 가지고 되겠어요?
또, 하나님한테 입이 있다면 어떨까요? 아가씨들이나 아줌마들을 보면 거울 앞에 앉아 가지고 화장을 잘 하지요? 뭘 그리는지 잘 그리지요? 그래 가지고는 자기 입술이 잘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입술이 아무리 잘생겼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입술에 못 당합니다. 귀를 보나, 얼굴을 보나, 사지를 보나, 몸을 보나, 내적인 마음상태를 보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만점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한 번 건드리면 더 건드리고 싶고, 건드리기 시작하면 겉만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모든 전체를 건드리고 싶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정서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분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단적으로 말하면 인격적인 신이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망상적이고 공상 가운데 날아다니는 허깨비 같아서는 안됩니다. 인격적인 신이어야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좀 어려울 것입니다. 지정의(知情意)니 무엇이니 하는 복잡한 얘기는 그만두고, 하여튼 최고의 사람을 닮은 신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좋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싫다고 하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좋아하기 전에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부부끼리 결혼해 살 때, 남편이 어디 갔다 올 때도 기분 좋은 얼굴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디 갔다 와서 뚱해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세계의 심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화합할 수 있는 것이지 그늘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밝고, 좋고, 흡족할 수 있는 미를 갖고 나타나는 것을 남자나 여자는 언제나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렇다면 천주의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한번 바라보면 그 인자한 얼굴에 흠뻑 취해 버리는 것입니다. 취해 버리는 데는 술을 마셔서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선으로 취하고, 말에 취하고 그러잖아요. 여자들이 사춘기 때는 미남 총각의 손이 좀 닿기만 해도 전기가 통하고 취합니다. 얼굴이 발그스름해집니다. (176-294)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참사랑을 가진 사람
 
하나님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잘생긴 미남 미녀를 닮으셨습니다. 그래야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미남만을 닮았다고 하면, 여자들은 “남자니까 저러지…”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누구를 닮으셨다구요? 역사이래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잘생긴 미남 미녀를 닮으셨다는 것입니다. 눈을 보나 어디를 보나 모든 남자 여자가 홀딱 반한다고 그러지요? 이런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하여튼 그 말밖에 없으니까 그 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이거예요.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뭐긴 뭐야, 사람이지” 할 것입니다. 사람인데, 사람 가운데 뭐가 있어요? ‘사람’ 하면 여자 남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자를 더 좋아하시겠어요, 남자를 더 좋아하시겠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 걸 다 가려 가지고 가야 길을 바로 가지 꼬불탕꼬불탕한 데를 모르고 가다가는 이마를 부딪치고 눈도 부딪칩니다. 그러니까 잘 가려 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좋아하시겠어요? 남자를 더 좋아하시겠어요, 여자를 더 좋아하시겠어요? 여자에게 물어보면 여자를 더 좋아하신다고 그러고, 남자는 여자를 더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도 안 할 것입니다. 결국은 남자에게 물어보면 “남자를 더 좋아하시게 돼 있지”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남자를 더 좋아하신다고 할까요?
남자는 키도 크고, 힘도 세고, 뭐가 많습니다. 먹기도 많이 먹고, 뛰어도 잘 뛰고, 옷을 만들어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잘 만드는 것 알아요? 오늘날 현대문명의 기계를 만들고, 무엇을 하나 전부 다 남자가 여자보다 못하지 않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더 능력이 있고 우수하니까 남자를 더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하는 게 뭐 있어요? 아이를 낳는 것밖에 더 있어요?
이렇게 하나님이 남자를 더 사랑하신다고 할 때 여자들의 마음이 어때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여기 통일교회 문 교주만 하더라도 여자를 본체만체하고 남자하고만 얘기하면 기분이 좋아요? 안 좋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사람인데, 사람 가운데는 남자도 여자도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을 조금만 더 좋아하시면 싸우잖아요? “하나님이 왜 그래요? 같이 좋아해야지요. 하나님은 공평해야 됩니다” 합니다. 그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의 제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 가운데 무엇을 제일 좋아하시느냐? 그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것 가운데 제일 귀한 것이 뭐냐? 우선, 하나님은 그것에 관심을 가지실 것입니다. 그게 뭐예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남자도 그걸 놓고는 못 살고 여자도 그걸 놓고 살 수 없다고 하는 것인데,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도 가짜 사랑이 아닙니다. 영원히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사랑, 그걸 참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은 참사랑을 가진 남자나 여자를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 여자한테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물어보면 대답하기를 “여자야, 남자를 좋아하지” 합니다. 그러면 남자의 무엇을 좋아해요? 그 보기 싫은 남자한테 볼 게 뭐 있어요? 남자한테 사랑이 있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사랑이 없다면 필요할 게 뭐예요? 이웃 동네에 말라빠진 나무틀거리 같은 그런 게 뭐 쓸 데 있나요? 그건 지나가던 사람이 불이나 놓거나 기대어 잠이나 잘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밖에 못 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일생 동안 남자를 붙들고 “나 죽는다” 하고 사는 것은 그 남자한테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남자라는 동물들은 왜 여자를 놓고는 못 사느냐? 여자가 괴물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놓을 수 없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 사랑이 좋아요? 그리고 엄마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더라도 “너 엄마 아빠의 무엇이 좋아” 하고 물어보면, “무조건 좋아” 합니다. 밥해 줘서 좋고 젖 먹여서 좋은지는 모르지만 좋다는 것입니다. 그게 뭔데 좋아하는 거예요? 엄마의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엄마를 보게 되면 기왓골에 열린 호박통같이 제멋대로 생겼습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생겼는데, 그 아이는 만지면서 좋아하고 젖을 빨면서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보기 싫다고 그래요? 엄마를 보기 싫다고 그러는 아이를 낳아 봤어요? 여기 아줌마들, 엄마가 보기 싫다고 “나 엄마 창피해! 아이구, 나 보기 싫어” 하는 아이를 봤어요? 아이는 암만 잘생기고 엄마는 암만 못생겼더라도 그 아이한테는 그 엄마가 제일 아름답게 보입니다. 제일 좋은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조화를 부리느냐? 사랑이 그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결혼한 부처를 가만히 보면 재미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키가 크고 포플러 나무같이 생겨서 보기 흉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팔이 작고 목이 들어가 있는 동그란 여자가 있습니다. 키가 큰 남자는 컴퍼스가 크니까 걱석걱석 걸어가지만, 여자는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닙니다. 그거 얼마나 불편해요! 가만히 보면 요지경입니다.
그 부처끼리 앉아서 밥을 먹고 아이를 낳고 일생을 살면서 그 얼굴을 바라보는데, 얼굴에는 종류가 몇 가지예요? 하나, 둘, 셋, 넷밖에 없습니다. 눈, 코, 귀, 입을 들여다보고 일생 동안 붙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하겠어요! 얼마나 지루해요! 하루만에 싫증이 나서 몽둥이로 후려갈겨 깨뜨려 버릴 텐데, 그래도 일생 동안 놓칠까봐 악착같이 사는 걸 보게 되면 무슨 힘이 그런 놀음을 하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참사랑에 가까울수록 그런 작용이 강합니다. (176-297)
 
강약이 조화된 사랑은 더욱 아름답다
 
눈에 사랑의 안경을 끼게 되면 그 안경의 조화가 얼마나 많은지 못생긴 여자일수록 아름답게 보입니다. 못생긴 추남일수록 미남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남자하고 여자하고 비교하게 된다면 여자들보다도 남자가 얼마나 못생겼어요! 못생기다 못 해서 수염까지 났거든요. 여자들이 보면 얼마나 못생겼느냐는 것입니다.
남자는 수염이 나오기 때문에 굴곡이 뚜렷합니다. 구레나룻 수염도 나고 뺨따귀가 나오고 코가 나오니까 굴곡이 있지, 없으면 여자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여자들을 보면 얼굴이 판대기 같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서양 사람들을 많이 대해 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한국에 오면, 어쩌면 전부 다 저렇게 하나같이 납작해요? 그렇지만 남자들은 구레나룻 수염이 있다는 입장에서 보게 되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언제든지 뺀뺀이입니다.
그런 뺀뺀한 여자들이 남자를 볼 때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구레나룻이 난 영감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요? 북실북실한 털이 개털인지 무슨 털인지 알 게 뭐예요? 그거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와 같이 사는 것이 조화무쌍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렇게 끔찍한 사실인데, 그걸 보고 좋아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 미인하고 추남하고 살고, 미남하고 제멋대로 생긴 여자하고 삽니다. 그래도 잘살거든요. 그런 조화를 이루고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놀음을 그 무엇이 하는 거예요? 여자가 하는 거예요, 남자가 하는 거예요? 무엇이 하는 거예요? 사랑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봤어요? 사랑을 좋아해요? 사랑을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좋아해요?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는 모르는 것입니다. 여자 혼자 있을 때 사랑을 알아요? 생각도 자기 생각만 하고, 혼자 딱 있을 때는 사랑이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생각할 때 사랑을 느끼지, 여자가 여자를 생각할 때 사랑을 느껴요? “아이구, 나 그 여자한테 시집가” 그래요? (176-300)
어떤 아주머니가 있는데, 손이 얼마나 조그마한지 게발 같습니다. 가느다란 붓 같고 그렇더라구요. 그 아주머니가 예전에 혼기가 되어 가지고 남자와 맞선을 보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 처녀가 남자가 와서 앉는 걸 봤는데 어디를 봤겠어요? 발부터 보고 손을 보니까 손이 여자 손 같더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 같은 손을 보니까 기분 좋았겠어요? 손을 보고는 아예 얼굴은 보지도 않고 결혼을 안 했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어요! 여자가 여자 같은 손을 보면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나빠 가지고 피하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손이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는 울퉁불퉁한 황소 발통 같은 손, 털이 불쑥불쑥 나고 울툭불툭한 그런 남자의 손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난 그렇다고 봅니다. 여자가 여자 같은 손을 만지는 것이 좋아요, 울툭불툭 자극이 있는 남자 손 같은 것을 만지는 게 좋아요? 남자 같은 손을 좋아합니다. 남자 같은 손이 어떤 거예요? 자기보다도 울퉁불퉁한 손이지요?
그래서 남자에게는 털이 나게 마련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자극을 느낄 수 없습니다. 상대가 나타나야 느끼기 때문에 여자가 매끈매끈하고 만만하면 그 상대적인 존재는 강하고 탄력이 있어야 됩니다. 보들보들한 반면 탄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맞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모터와 연결된 샤프트(shaft;축) 같은 걸 보게 되면 그 받침은 납덩이입니다. 납덩이가 아니면 신쮸(しんちゅう;놋쇠)입니다. 제일 만만한 것입니다. 숟가락으로 긁어도 긁어지는 것이 그 무거운 걸 받치고 있습니다. 강약이 화합해 가지고 균형이 취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말랑말랑하고, 남자는 뻣뻣하고 울퉁불퉁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그래야 자극이 있다는 것입니다. 애들도 유치원에 가든가 놀이터에 가서 살살 소리 없이 가만히 타고 앉는 걸 좋아해요, 그저 변화무쌍한 걸 좋아해요? 아이들은 변화무쌍한 걸 좋아합니다. 그거 왜 그렇느냐? 자극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나 여자나 사랑이 있는 걸 알았지요? 남자가 남자끼리 있든가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사랑을 모릅니다. 자기 앞에 상대로서 여자가 나타나면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자기 상대가 나타나게 될 때는 사랑이 발동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 가운데 무엇을 제일 좋아하시겠느냐? 하나님의 사랑 앞에 영원한 것이 뭐가 있겠어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인데, 인간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영원한 것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뭐겠어요? 나이를 봐야 백 살도 못 살겠고, 그 마음을 봐도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고 산색은 변하지 않는데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변하는 마음을 좋아하시겠어요? 사람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에요?
가만히 보니까 어머니 아버지도 붙들고 “아이고, 놓고는 못살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이고, 놓고는 못살아” 하고, 어린 아들딸들도 “놓고는 못살아” 하면서 야단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다면, 하나님도 그것을 필요로 하시지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간세상의 사람들 앞에 필요로 하시는 것은(사랑입니다.) 잘난 얼굴이 아닙니다. (176-302)
 
주체의 입장은 자기를 투입하는 것이다
 
여자라는 존재가 사랑을 가지려고 할 때 남자가 없으면 못 가집니다. 남자라는 존재도 여자가 없으면 사랑을 못 가집니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닮으셨다구요? 원리에서 누구를 닮으셨다고 그랬어요? 우리 인간을 닮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면서 격위(格位)는 남성격이십니다. 그러면 왜 남성격이라고 그래요? 주체의 입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체라는 것은 언제나 주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격위로 말할 때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받으려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사랑을 주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주는 데는 언제나 완전히 주고 나서 물으십니다. “좋으냐?”, “흡족하고 만족합니다.”, “얼마나 좋아” 할 때는 “이렇게 좋습니다” 하라는 것입니다. 눈을 깜빡깜빡하고 핼쭉이 웃으며 “이렇게 좋습니다. 춤을 춥니다. 노래를 합니다” 하는 대답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대개 노래를 잘한다고 하게 되면 여자예요, 남자예요? 춤춘다고 할 때 남자가 춤을 잘 춰요, 여자가 춤을 잘 춰요? 대개, 여자가 잘 합니다. 여자는 주체에 대해 그런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주체입니다. 하나님도 이 우주 앞에 받기 위한 입장에 계시면, 천지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부 다 자기를 투입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힘을 투입하고 모든 원수들을 분립해 가지고 사랑을 투입하기 때문에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주체적인 작용을 전체 앞에 미쳐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격위에서는 남성격이라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을 하시기만 하겠어요? 받고도 싶으실 텐데 어떻게 받아요? 하나님도 사랑을 받고는 표시를 할 때 “아이고, 좋아” 하실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손톱이 창살 같아서 피가 나왔다고 할 때 하나님이 어떠시겠어요? “아이고, 나 죽는다. 요놈의 자식아, 잘해 주는 것도 나 싫다” 하시겠어요? 피가 나와도 “더 나오게 해라” 그러시는 분입니다. 구멍이 뚫어져도, 맞구멍이 뚫어져도 좋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지 않거든요. 그래도 좋아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할 때는 눈알을 뽑아 가도 “뽑아 가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눈을 빼도 뽑아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계속해서 나올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니까 한 번 그런 놀음을 해봐도 끝이 안 납니다. 아무리 했댔자 영원히 계속해도 끝이 안 나니까 하다가 마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다 돌아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하는 놀음이라면 받아 주고도 남을 수 있는 대왕님이십니다.
여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너무나 좋아서 하나님의 손을 똑똑 깨물면 어떻게 되겠어요? 깨물 테면 깨물어 보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이로 잘라 봐라 이겁니다. 잘리더라도 자르면 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껏 물다가 그 다음에는 가만히 있고, 가만히 빼려면 질끈 물고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들이쉬었다가 쑥 내쉬고 그러지요? 동쪽으로 향해서도 내쉬었다가 들이쉬었다 하고 서쪽으로 향해서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고 남쪽을 향해서도, 북쪽을 향해서도, 위쪽을 향해서도 전부 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엇이냐? 어디를 가나 참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176-304)
 
참사랑은 영원히 주고 싶고 주고 나서 영원히 잊어버리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한테 필요한 것은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이 도대체 뭐예요? 어떤 게 참사랑이에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거예요? 참사랑이라는 것이 뭐냐 할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주고도 또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주고 나서는 영원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기르며 수첩에 아무 날은 뭘 했고 뭘 했다고 적어 놓고 “20년 동안 길러 놨으니까 대가를 찾아오겠다” 하는 부모가 있어요? 자식이 짓궂게 별의별 짓을 다 하더라도 용서해 주고, 자꾸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친구의 참사랑은 뭐냐?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를 도와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요? 또, 참된 남편은 어떤 남편이냐? 아내를 위해주고 위해주고도 “내가 20년 동안 위해 주었는데 그걸 몰라, 이 쌍간나야” 그러는 게 아닙니다. 20년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첫날 시작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새로워요! 20년을 위해주고 잊어버리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느끼는 사랑의 맛이란 얼마나 알뜰하겠어요! 첫사랑이란 사춘기 시대에 느끼게 되어 있는데, 그 사랑이 제일인 줄 알지만 20년을 위하면서도 잊어버리고 서로 만나서 첫사랑같이 느낄 수 있는 그 사랑이 얼마나 차원 높고 멋진 사랑이냐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주고 싶어해서 줬는데도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받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받는데도 그냥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세계를 전부 감동시키고 세계의 힘을 합해 가지고 “밀어 다오” 하는 것입니다. 천만인이 그가 준 사랑을 전부 다 받아 가지고 다시 천만인이 돌아와서 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렇게 볼 때 부모의 사랑이 그런 면에 있어서는 참사랑에 가깝습니다.
참된 남편은 어떤 남편이냐? 위해주고 또 위해주고 10년, 20년뿐만 아니라 죽고 나서도 위해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데도 위해주는 것입니다. 무덤에 찾아가서 흙을 파고서라도 입을 맞추고 풀뿌리를 아내 품듯이 품고 그러면서 10년 세월 늙어 죽도록 자기 전체를 투입하겠다는 그런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176-306)
참사랑이 뭐냐? 그것은 천년 전이나 만년 후에나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새가 봄이 되면 짹짹 하고 수놈 암놈 둘이 짝을 지어 가지고 둥지를 틀어 알을 낳고 새끼를 까지요? 몇 천대 전 참새도 그랬고, 몇 천대 후손 참새들도 한 쌍이 둥지를 틀 것인데 언제 그 둥지 트는 걸 배웠겠어요? 참새가 새끼들한테 “야, 너희들! 둥지는 이렇게 튼다” 하고 엄마 아빠가 가르쳐 주는 것을 본 사람이 있어요? 만드는데 어떻게 만드느냐는 말입니다. 그게 조화입니다.
그걸 보면 참 이상합니다. 제비는 제비 둥지 트는 것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전부 다 어떻게 천 년 전 조상들의 제비 둥지처럼 잘 트는지 신기합니다. 미국 가서 보니까 새 둥지를 쭉 틀어 놨는데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새들은 홀뚜기 모양으로 구멍 깊이 들어가서 둥지를 틀어 가지고 사는데, 둥지를 요만하게 틀어 놨습니다. 각양각색으로 그 튼 둥지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종자들은 같은 모양으로 둥지를 틀지 다르게 틀지 않습니다. 까치도 그렇습니다. 비둘기도 어디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참새나 여기 참새가 다르지 않습니다. 우는 소리도 같고, 둥지 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때요? 사람이 집 짓는 것을 배웠어요? 여기 아줌마 혼자서 집 지어 봤어요? 목수가 지어 놓으면 사는데, 새의 세계에 목수가 어디 있어요? 새의 세계에서는 자기들이 다 목수입니다. 그걸 보면 인간이 새새끼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새만도 못하고, 개미들도 둥지를 트는데 개미만도 못합니다. 땅벌이 같은 것이 둥지를 트는 걸 보라구요! 얼마나 층층계로 잘 쌓는지 모릅니다. 날이 춥겠으면 둥지를 안에 더 넣습니다. 벌써 일기를 압니다. 장마 지면 전부 다 이사 가는 것 봤지요? 그걸 어떻게 다 알아요? 그렇지만 다 알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게 참 많습니다. 뛰는데는 두 다리를 갖고 뛰는 닭 새끼도 못 따라가 잡을 것입니다. 닭도 못 따라잡으니까 강아지는 물론이고 송아지도 그렇고, 망아지는 더더욱 못 잡을 것입니다. 사람이 못 하는 게 얼마나 많아요! 뒷동산에서 뛰는 노루새끼 같은 것은 얼마나 잘 뛰어요! 토끼새끼 같은 것도 얼마나 잘 뛰어요! 사람이 잘났다고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고 큰소리하고 있지만 못 하는 것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 특별한 것이 뭐냐? 모든 동물들은 사랑을 1년에 한 번밖에 안 합니다. 대개, 봄절기에 사랑을 합니다. 고양이새끼도 봄이 되면 “야옹, 야옹” 하는 소리를 내지요? 고양이도 새끼를 칠 때 한 번밖에 사랑을 안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어때요? 사람들은 새끼를 낳을 때만 사랑해요, 춘하추동 사계절을 사랑해요? 사계절 모두 사랑합니다.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하다는 말은 무엇을 가지고 하는 말이에요? 가장 귀한 것이 뭐예요? 얼굴이 잘생겼어요? 허우대가 좋아요, 뭐가 좋아요? 제일 귀한 것 가운데 가까이 있을 수 있고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제일 귀한 게 도대체 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76-308)
 
하늘나라에서의 등급
 
인간은 하루 하루의 생활 가운데, 호흡하는 시간시간 가운데 사랑의 촉감을 가지고 동서남북으로 돌면서 살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귀합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지요? 싫으면 싫다고 하고, 그 반대로 살아도 괜찮습니다. 할머니가 동쪽으로 가게 되면, 할아버지는 서쪽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영감님이 계시면, 할머니는 동쪽으로 가는 할아버지의 궁둥이를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남자가 여자의 궁둥이를 따라다니는 게 보기 싫어요, 여자가 남자의 궁둥이를 따라다니는 게 보기 싫어요? 다 보기 좋지요? 그게 보기 좋다는 것은 참사랑을 중심삼게 될 때입니다. 그럴 때 다 보기 좋습니다. 참사랑이 아닐 때는 “이 쌍놈의 간나 자식…”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해서 따라가는데도 불구하고 그릇된 사랑을 중심삼으면 “이 쌍놈의 간나 자식…”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변치 않고 참다운 단 하나의 사랑을 중심삼고는 바삐 가는 영감의 뒤에 치마를 벗어 들고 홑치마바람으로 따라가더라도 흉이 아닙니다. 할머니의 뒤에 영감이 팬티만 입고 따라가도 흉이 아닙니다. “어서 따라오소” 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으면 모든 것이 정리됩니다. 그래서 만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상으로 바라는 참사랑을 제일 가까이 느끼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 총재라는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을 따라가라는데, 하나님을 따라가서는 뭘 할거예요? 하나님을 따라가서 돈을 얻어 오려고 하는 거예요? 돈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지식을 가져오기 위해서예요?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영계에 가서는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지상에서 대학교 총장 열 개를 해먹었더라도 저나라에 가서 “나 지상에서 대학교 총장 열 개 했으니까 알아주소” 했댔자 어림도 없습니다. 또,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뭐예요? 대통령은 아랑곳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가치가 평가되느냐? 그것은 본연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그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서 화(和)해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눈이 사랑에 화해 살고, 그 콧김이 사랑에 화하고, 말하는 음성이 전부 다 하나님의 참사랑에 화해서 얼마만큼 꽉 차고 잘 익을 수 있게끔 살았느냐 하는 데 따라서 하늘나라에서의 등급과 가치의 내용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왜 남자가 여자를 필요로 해요? 여자는 왜 남자를 필요로 하고, 남자는 왜 여자를 필요로 한다구요?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서로서로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절대 필요합니다. 왜 필요해요? 아이를 낳아 주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소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자 앞에 남자가 왜 필요해요? 하나님의 참사랑을 소개하기 위해서 여자 앞에 남자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아니고는 우주와 동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6-310)
 
사랑의 힘
 
그러면 사랑은 무슨 힘을 갖고 있느냐? 무슨 내용을 갖고 있느냐? 무슨 속성을 갖고 있느냐? 사랑의 힘은 아무리 지옥에 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으면 그 사람과 관계를 맺어서 하룻밤에 쉬익 올라가더라도 우주가 반대를 안 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동위권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우리 어머니도 훌륭하지요? 어머니는 나보다 더 훌륭합니다.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낳은 걸 보면 나보다 훌륭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하다는 어머니라도 내가 사랑하는 입장에 설 때 동위권에 설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귀를 만진다고 해서 “아야”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 동위권은 전부 다 하나입니다. 같은 자리에 올라가기 때문에 대학을 나왔느니 어떠니 하는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나이가 많으니 적으니 하는 것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동참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국 왕가의 왕자로서 한국의 농촌에 가서 돼지새끼를 치던 아가씨를 사랑했다면, 그 아가씨는 그 왕자가 있는 자리에 언제든지 가서 동참할 수 있습니다. 때가 묻어 험하더라도 차버리게 안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새 옷으로 갈아 입혀 가지고 그 환경에 맞게끔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동참권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권위가 있더라도 여자가 그 남자의 방을 인사도 하지 않고 발길로 차고 들어가더라도 남자가 “어서 들어오소” 하지 “이거 왜 이래” 그러나요? 동참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힘은 상속권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제일 귀한 근본이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기 춘천에 호수가 있잖아요? 춘천호에서 낚시질하게 되면 뭘 잡아요? 잉어를 잡지요? 그렇지만 참사랑의 미끼를 끼워 가지고 잡는다면 하나님까지 잡을 수 있습니다. 이건 실례된 말이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까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면 뭘 해요?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뭘 하겠어요? 하나님 속의 무엇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으냐 할 때, 하나님 속의 참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니고 모양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 선생님이 있지요? 선생님의 뭘 원해요?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 불변한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사랑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시퍼런 눈을 가진 식구들도 “아이고, 선생님 왜 안 와? 선생님이 왜 안 와” 하면서 눈물을 죽죽 흘립니다. 눈이 시퍼렇고, 머리칼은 샛노랗습니다. 얼굴은 하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뭐가 그렇게 조화를 부려요? 마음의 뿌리에서 영원히 약동할 수 있고, 영원히 주체성을 지닐 수 있고, 영원히 자랄 수 있는 힘의 모체가 되는 참사랑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영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의 동참자가 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동위권자가 되시고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상속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76-311)
 
하나님의 구원섭리
 
그런 논리에 의해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려고 하느냐 하면 내적인 하나님의 자리에 계시려고 합니다. 하나님하고 아담 해와가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어디에 가셔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바깥에 계셔야 되겠어요, 사랑하는 안에 들어가셔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하고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하셔야 돼요? 아담 해와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려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감싸는 껍데기가 되셔야 해요, 핵이 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껍데기가 되어야 해요? 하나님이 핵이 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체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형에는 중심점이 있습니다. 여기는 모든 상대적인 힘이 다 통할 수 있는 한 곳입니다. 360도 환경을 보게 되면 거기에 모든 것이 상대돼야 합니다. 거기에 딱 들어가 구형 가운데 흘러가는 사랑의 모든 요소는 나와 더불어 같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시니 만큼 핵으로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에요? 동위권, 동참권, 그 다음에는 상속권을 부여하겠다는 그런 참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무슨 관계예요? 그것을 알아야 사람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176-313)
하나님이 중심이니까 가운데 계시고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좋아하려면 당기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당기고 여자는 남자를 당기니까 하나님은 거기서 빙빙 도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방으로 돌면 얼마나 어지러우시겠어요! 그러니까 어디서 돌아야 돼요? 왔다갔다하면서 돌아야 돼요, 한 자리에서 돌아야 돼요? 한 자리에서 돌아야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축이 생겨나야 됩니다.
하나님이 돌 수 있는 사랑의 축이 꽂히면 그걸 뺄 자가 없습니다. 그걸 꽂아 놓았을 때는 하나님 혼자 돌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사랑의 힘에 의해 가지고 돌다 보니 그게 박혀 가지고 뺄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야, 빼지 마라! 빼면 큰일난다” 하시지 “어서 빼라” 하시겠어요? “빼서 자빠져라” 그래요? “영원히 서 있어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 축이 돌고 돌아 아들딸이 많아지면 그 축도 일어나고 아들딸도 번성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50억 인류가 돌더라도 그 축은 하나지 둘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수직축을 중심삼고 수평선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축이 되는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에 있겠다고 하느냐? 구형 가운데 수직선하고 수평선이 교차하는 복판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우주의 핵의 중심이 하나님이요, 대우주의 핵을 싸고 있는 두 쪽 가운데 하나는 아담이고 하나는 해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내적인 축의 자리에 계시는 아버지요, 아담 해와는 참사랑의 축을 중심삼은 외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입니다.
문 총재가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면서 “우주의 근본이 뭐요” 하고 물었을 때, “부자관계, 부자의 인연이니라”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아들딸과 같이 돼 있습니다. 거기에 참사랑으로 접붙이면 하나님도 뗄 수 없고 누구도 나눠놓을 수 없는 그런 자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뿌리가 박혀 가지고 만민들이 생겨났다면 그 조상의 맨 조상은 누구겠어요? 나무로 말하면 뿌리 가운데 곧은 뿌리가 뭐예요? 그 뿌리가 하나님이 되고, 그 옆 뿌리가 우리 인류시조입니다.
그러면 맨 종대가 된 순, 종대 순이 누구겠어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뿌리와 수직이 되는 것, 하나님의 참된 뿌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혈통으로 맺어진 종손이라는 것입니다. 이 천지간에 하나님의 뿌리와 완전히 수직으로 설 수 있는 종대, 순이 될 수 있는 종손이 이 땅 위에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안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타락했기 때문에 안 태어난 것입니다. 그들이 잘 나가지 않고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순이 거꾸로 되어 있고, 뿌리가 말라 들어가는 등 전부 요동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을 하나님이 구원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게 구원해서는 뭘 하실 것이냐? 본연의 사랑의 핵을 중심삼고 수직축과 완전히 90도를 이루는 사랑, 수평선을 중심삼은 이상적인 사랑의 인격관을 형성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입니다. (176-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