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8권 13일
사랑의 경전 (훈독본)
날짜: 1984. 2. 5(일)
장소: 미국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
예수님이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종교를 추구하는 모든 신앙자가 원하는 것은 천국을 가는 것이고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이라는 그 나라의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 본질은 자기를 중심삼은 본질이 아니라 전체를 중심삼은 본질입니다. 본질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의 본질은 전체가 좋아합니다. 전체와 인연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질의 센터가 누구냐? 내 마음에 천국이 있다고 했지만, 내가 그 본질의 센터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면 제1의 존재가 누구냐?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일반 사람들은 ‘하나님’ 하면 공중에 있는 나와 관계없는 존재라고 알고 있지만, 자기와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속 깊이 관계를 갖고 있다는 관념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본질에 속하려고 하는 것이 본성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남철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으면 그 플러스와 마이너스도 서로가 하나될 수 있는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내 속에 있는 본질과 내 자신이 화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하나님은 언제나 내 주체라고 하는 관념을 가져야 됩니다. 나는 언제나 객체의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과 우리는 사랑을 중심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랄 때 그 아버지가 사랑해 주고, 귀여워해 주고, 키워 주는 것을 느꼈어요? (130-252)
참사랑만이 마음을 채울 수 있어
여러분이 매일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지요? 거울을 볼 때 “내가 이 몸뚱이를 봄과 동시에 내 영인체를 본다”고 생각해요? 내 얼굴로 보는 나, 이 몸으로 보는 나하고 영으로 보는 내가 박자가 언제나 맞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예쁘장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내 얼굴 참 잘 생겼다. 남자들이 보면 반하게 생겼네” 하고 생각하는데, 그와 더불어 “내 영인체가 얼마나 아름다울꼬? 하나님이 내 영인체를 보고 반하게 생겼네! 누가 내게 프로포즈하는 모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내 아름다움을 보고 프로포즈할 수 있는 아름다운 나다”라고 생각해 봤어요?
남자 여자가 사랑하며 사는 부부가 있다면 남편이 “아, 네 얼굴을 참 좋아하지. 널 참 사랑한다. 네 모든 것이 좋아서 너의 남편이 되었다” 할 때 행복하지요? 그러면 그것이 몸뚱이의 사랑이 그런 거예요, 영인체의 사랑이 그런 거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볼 때, 마음이 동기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과가 아닌 원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데, 왜 원인이에요?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인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그 사랑은 전체의 중심이기 때문에 전체의 중심사랑으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결과인 인간의 사랑보다도 원인에서 시작하는 사랑이 먼저라고 하는 것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사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어떤 종류의 마음이 되게 될 때 나로부터 사랑이 시작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전체를 위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전체를 위하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전체의 중심에 사랑이 찾아올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0-253)
여러분의 마음 보따리가 얼마나 커요?
만약 마음에 돈을 갖다가 채운다면 욕심 때문에 아무리 갖다 넣어도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무한히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이라든가 금과 같은 외적인 것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있어도 또 있어야 되고, 또 원하기 때문에 마음을 채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마음인데 참사랑만이 마음을 채울 수 있습니다. (130-255)
하나님의 마음을 꽉 채울 수 있는 존재
여러분의 마음에 참사랑이 꽉 차 있으면, 그 참사랑 가운데 모든 것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 참사랑이 마음속에 꽉 차게 될 때는 우주도 들어오고, 하나님도 들어오고, 모든 것이 달라붙어 살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참사랑 가운데 살고 싶지요?
예를 들어,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을 만큼 매력적인 세계 최고의 일등 미인이 있다고 하자구요.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가락 열두 마디에 전부 다 끼었다고 합시다. 그렇게 어디나 다 치장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차린 여자가 하나면 모르지만 두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어요? 그러면 그 여자들의 마음은 치장을 안 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치장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욕심이 또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차렸다고 해도 똑같이 차린 여자가 그 여자를 보고 “당신, 아름답다. 아, 원더풀(wonderful)”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미남자가 와서 “당신, 아름답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자가 다이아몬드보다도 귀한 거예요, 안 귀한 거예요?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몸뚱이에 전부 다 둘러도 쓸데없습니다. 그것보다도 남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뭘 가지고 있어요? 사랑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 것 같아서 남자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다이아몬드나 그 무엇보다도 귀한 존재는 사랑을 가진 남성입니다.
그러면 남자의 마음에 꽉 찰 수 있는 것이 뭐예요? 그것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본질적인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진 여성이 그 마음에 들어올 때는 아무리 욕심이 많은 남자의 마음도 꽉 찬다는 것입니다. 가장 욕심이 많은 왕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의 마음도 사랑으로 찹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면 이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하나된 사랑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가면 그 마음이 꽉 차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이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꽉 차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예수님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20) 했는데,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이 있고, 그 하나님 가운데도 여러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거 어떻게 이해할 거예요? 선생님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꽉 채울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을 꽉 채울 수 있고, 남자의 마음도 꽉 채울 수 있는 참사랑이 있는 곳에는 다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게 크고, 남자와 여자의 마음도 그렇게 크지만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도 계시고 다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자 앞에 그러한 여자가 있어 가지고 하나되고, 여자 앞에 그러한 남자가 있어서 하나된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꽉 채울 수 있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30-257)
욕심의 한계
그러면 하나님이 품으신다면 어디까지 품으시자는 것이냐? “봄도 품고, 여름도 품고, 가을도 품고, 겨울도 품는다. 좋은 것도 품지만 나쁜 것도 품는다” 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그것까지 품어서 어떻게 하겠어요? 참사랑만 맛보이면 다 녹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고 “당신은 원수를 용서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용서해서 어떻게 할거요? 그들이 언제든지 차고 야단할 텐데, 원수를 사랑해서 어떻게 할거요” 하겠지만, 그렇게 해보라구요! 참사랑의 맛을 보이면 다 녹아납니다. 원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으면 다 녹아나는 것입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사랑 앞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참사랑의 방패를 가지신 하나님이 얼마나 근사하냐 이거예요. 내 품에 들어오면 다 녹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그만 여자들도 그래요? “내 품이 이렇게 넓으니까 아무리 큰 남자가 오더라도 내 참사랑에 녹아난다. 호호호…” 그런다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이게 귀한 말입니다.
레버런 문도 이런 걸 알았기 때문에 “아, 그러면 세계를 한번 품어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맛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벌이 꿀을 만나게 되면 꽁무니가 떨어져도 안 놓습니다. 그러면 참사랑의 힘이 벌이 꽁무니가 떨어져도 꿀을 안 놓을 수 있는 것 이상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 이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모가지가 떨어지더라도 참사랑을 맛보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참사랑은 사망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힘을 가지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죽음의 세계까지 주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욕심의 한계가 어디예요? 참사랑으로 채울 때 욕심의 창고가 가득 차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채울 길이 없습니다. (130-259)
참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겠어요? 자기를 미워하는 세계까지 품을 수 있는 참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참사랑을 좋아하시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면서 별의별 말들이 다 나옵니다. 사탄까지도 하나님을 참소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닮아 있느냐? 한 번 질문해 볼 때, 얼마나 닮았어요?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레버런 문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반대하던 유대교도 품고, 기독교도 품고, 미국도 품고, 공산당도 품어서 참사랑으로 소화하겠다고 미친 사람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역사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사람이 레버런 문입니다. 미래의 희망이 없고 사랑을 모르는 지상의 인간들을 대표해서 이러한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말을 붙이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고, 인류도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그렇게 못 됐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을 데리고 삽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쭉 보고 있습니다. 누가 비판하려고 하는가, 누가 품으려고 하는가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비판적인 사람은 사탄 편이요, 품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늘 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공산세계와 별의별 악당들이 레버런 문에 대해서 온갖 공작을 다 하고 있지만 최후에 어느 사상이 승리할 것이냐? 레버런 문이 죽더라도 이 사상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가르친 이 말씀을 통해서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레버런 문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0-261)
틀리지 않은 길
그러면 이제 우주를 품기 전에 나를 품자는 것입니다. 그런 나는 어떤 나냐? 본질적인 나를 품자는 것입니다. 마음이 몸뚱이를 품고 본질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게만 만들어 주면 내 자신은 완전히 통일됩니다. 그러니까 내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고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서 몸뚱이를 소화해야 됩니다.
참사랑은 본연의 마음을 통하기 때문에 마음에 절대 복종하는 몸뚱이를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래의 마음이 어떠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게 아닙니다. 우주를 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마음, 본성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 바탕에 사랑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내 몸이 사탄의 무대가 되었으니까 마음을 중심삼고 내 몸을 컨트롤해야 됩니다. 그래서 나아가 행동하고 싸울 때 남이 핍박하더라도 참고 연단(鍊鍛)을 받으면서 내 몸이 거기에 반항할 때 본심이 “이놈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브레이크를 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몸을 중심삼은 사탄이 여러분의 마음과 싸우고 있습니다. 몸뚱이는 편안한 걸 좋아하지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구든지 마음이 곱지 않은데 몸뚱이를 곱게 차려 입으면 사탄의 제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관리할 줄 알고, 귀를 관리할 줄 알고, 입을 관리할 줄 알고, 냄새를 관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원수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우주의 원수가 거기에 있습니다. 내 자신이 우주의 원수입니다. 지옥보다도 무서운 무대가 내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나쁜 자기 자신으로 품고 싶지 않지요? 내 자신이 좋은 자신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 남자가 되어 가지고 그런 여자를 품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부부가 가정을 품어야 되고, 세계를 품어야 되고, 하늘땅을 품어야 됩니다. 그 기반이 안 되어 가지고는 아무리 그런 것들을 품겠다고 하더라도 안 통합니다. (130-263)
선생님이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가 갈라지더라도 나라와 세계를 위해라! 가정에서 둘이서만 서로를 품지 말고 나라를 품고 세계를 품어 봐라” 할 때 “나 싫소” 하면 통할 것이냐, 안 통할 것이냐? 안 통합니다. 지금까지 결혼해서 서로가 품었던 것은 좋았지만 “국가를 품고, 세계를 품고, 우주를 품는 것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가정이 천국이 될 수 있어요? 부부가 둘이 갈라져서라도 세계를 품고 사랑하고서 하나님한테 “너희들이 내 속에 들어와 살 수 있는 사랑의 부부로다”라는 공인을 받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이상입니다. “둘이서만 사랑하고 살겠소” 하는 것은 이상적인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됩니다.
지금 둘이 갈라져 가지고 세계를 품고 돌아와서 사랑하는 것하고 세계를 품는 것을 다 집어던지고 자기들만 품고 사랑하는 것은 비교가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둘 중에서 두 번째의 입장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은 세계를 소화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세계를 소화해 나갑니다. 사랑으로 소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린 것 같아요, 맞는 것 같아요? 맞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도, 아시아 사람도, 미국 사람도, 어떠한 교파의 사람들도 희망을 못 갖고 있는데 이제는 반대받는 레버런 문이 우리나라와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구사회의 희망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어서 그렇게 되었어요, 옳아서 그렇게 되었어요? 옳아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틀리지 않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도와줍니다. (130-264)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 세계
그런데 결국에는 나를 품고 어디를 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텍스트북과 같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이에요, 참이 될 수 있는 모형을 중심삼고 전부 다 갖다 맞추면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가정을 품어야 됩니다. 가정을 품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130-267)
가정에서 우주적인 사랑을 배우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본, 경전과 같은 가정을 딱 만들어 줘 가지고 “거기에서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라! 지상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영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대표해서 보냈기 때문에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전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해주마” 하고 공약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네가 어머니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은 세계의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을 대표하는 교본과 같이 사랑하는 모델로 삼았으니까 전체를 사랑했다는 조건으로 삼아 주마. 또,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은 세계의 남자가 세계의 여자를 대표적으로 묶어서 사랑했다는 것으로 세워 주마” 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네 아들딸을 사랑한 것으로 모든 아들딸들을 전부 다 사랑했다고 해주마” 하십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러한 훈련을 받는 훈련소입니다. 거기서 훈련을 받은 사람한테 “이제는 세상에 한번 나가 가지고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신으로 세상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느냐” 할 때, “예스” 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백인이라고 “아이구, 난 백인만 좋아! 백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흑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나 아시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랑 못 해! 잘입고 아주 멋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미개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랑 못 해” 하면 안됩니다.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자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집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공식입니다. 그것이 인류가 이 땅 위에 살면서 훈련받기 위한 공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부부가 세상의 부부들을 대신하여 달려간다고 할 때, 혼자서 가는 사람들은 박수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게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야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구! 저 여편네도 미인이고, 저 남자도 미남이구만! 내가 빼앗아 살면 좋겠다” 해서는 안됩니다. 또, 세계의 모든 아들딸들을 자기의 아들딸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참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세계가 되어야 하나님이 임하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더라도 틀리지 않습니다.
자기 가정에서 훈련받은 것보다도 세계를 덜 사랑하는 것이 원칙이겠어요, 더 사랑하는 것이 원칙이겠어요? 더 사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세상을 위해야 됩니다. 자기의 손자를 보고 “야, 손자야! 너는 세계를 우리 가정보다 더 사랑하면 안된다” 한다면, 그 할아버지는 지옥 갑니다. “야, 너 우리 집에서 교육받은 이상 세계를 사랑해야 돼” 할 때, “예” 하도록 가르쳐야 천국 갈 수 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다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해야 그 남편도 훌륭한 남편이 되고 아내도 훌륭한 아내가 됩니다. 그 세계가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의 세계입니다.
선생님은 이 일을 실천하는 과정에 있고, 여러분도 생명을 걸고 이 일을 성사시켜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축복받은 가정들이 자기의 새끼들만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선생님의 명령대로 여러분의 자식들을 전부 다 세상에 내보내 가지고 여러분에게 사랑받던 이상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게끔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때 “노” 하면 안됩니다. (130-273)
나라와 세계를 위해 사랑과 희생의 길을 가라
지금까지 여러분이 한 집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부부가 아들딸과 함께 사랑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을 못 가진 것이 세계적인 문제였습니다. 이제부터 레버런 문을 중심삼고 그 훈련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집에 전화하지 않고 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가게 되면, 여러분은 안방을 내놓고 곁방으로 가야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방이 하나면, 여러분은 변소에서 자고 안방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나 부모를 재워야 됩니다. 이제부터 그런 전통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사진을 모시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신으로 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언제든지 먹을 것이 생기면 내가 먹기 전에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야 됩니다. 먼저 부모한테 드리고 싶은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내한테 주고 싶은 생각을 하고 아들딸한테 주고 싶어하는 생각을 해야 가정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그 가정의 상속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사람들로 만들어 놓으려고 무니들을 교육하면서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가, 안 하는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지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알겠지요? 틀림없이,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30-275)*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3일, 원문
사랑의 경전
날짜: 1984. 2. 5(일)
장소: 미국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
예수님이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나에게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지금 통일교회 교인이라든가 종교를 추구하는 모든 신앙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국을 가는 것이고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이라는 그 나라는 무엇이 본질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것은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본질이 어떤 본질이냐? 자기를 중심삼은 본질이 아닙니다. 전체를 중심삼은 본질입니다. 본질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의 본질은 전체가 좋아합니다. 전체와 인연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질의 센터가 누구냐? 내 마음에 천국이 있다고 했지만, 내가 그 본질의 센터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제1의 존재가 아니고 제2의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센터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이 우주를 만들고 사랑을 세운 중심존재일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1의 존재가 누구냐?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일반 사람들은 ‘하나님’ 하면 공중에 있는 나와 관계없는 존재라고 알고 있지만, 자기와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속 깊이 관계를 갖고 있다는 관념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 그렇느냐?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본질에 속하려고 하는 것이 본성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남철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으면 그 플러스와 마이너스도 서로가 하나될 수 있는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내 속에 있는 본질과 내 자신이 화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내 주체라고 하는 관념을 가져야 됩니다. 나는 언제나 객체의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주체인데 무슨 주체냐? 하나님과 인간은 우리가 공부하기 위한 선생과 제자의 사이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그 주체와 객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지요? 그러면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랄 때 그 아버지가 사랑해 주고, 귀여워해 주고, 키워 주는 것을 느꼈어요? 그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아버지입니다. (130-252)
참사랑만이 마음을 채울 수 있어
여러분이 매일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지요? 그럴 때 나를 생각합니다. 나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 “내가 이 몸뚱이를 봄과 동시에 내 영인체를 본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영인체를 본다고 생각해 봤어요? 내 얼굴로 보는 나, 이 몸으로 보는 나하고 영으로 보는 내가 박자가 언제나 맞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예쁘장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내 얼굴 참 잘생겼다. 남자들이 보면 반하게 생겼네” 하고 생각하는데, 그와 더불어 “내 영인체가 얼마나 아름다울꼬? 하나님이 내 영인체를 보고 반하게 생겼네! 누가 내게 프로포즈하는 모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내 아름다움을 보고 프로포즈할 수 있는 아름다운 나다”라고 생각해 봤어요?
남자 여자가 사랑하며 사는 부부가 있다면 남편이 “아, 네 얼굴을 참 좋아하지. 널 참 사랑한다. 네 모든 것이 좋아서 너의 남편이 되었다” 할 때 행복하지요? 그러면 그것이 몸뚱이의 사랑이 그런 거예요, 영인체의 사랑이 그런 거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볼 때, 어떤 것이 동기예요? 마음이 동기예요, 몸뚱이가 동기예요? 마음이 동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원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결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원인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은데, 왜 원인이에요?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인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그 사랑은 전체의 중심이기 때문에 전체의 중심사랑으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결과인 인간의 사랑보다도 원인에서 시작하는 사랑이 먼저라고 하는 것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사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누구의 마음이에요? 내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에요? 어떤 종류의 마음이 되게 될 때 나로부터 사랑이 시작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어떤 마음이에요? 전체를 위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전체를 위하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전체의 중심에 사랑이 찾아올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0-253)
예수님은 제자들이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는데,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이냐?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우주여, 내 마음에 들어와라! 나라도 내 마음에 들어와 있고, 모든 사람도 내 마음에 들어와 있어라! 하나님도 내 마음에 들어와 있으소” 하는 마음입니다.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어올 때 내 마음의 센터가 나라가 되겠느냐, 세계가 되겠느냐, 하나님이 되겠느냐? 그건 물어 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센터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 다 들어오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하나님을 센터로 모시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센터로 유치하기 위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 보따리가 얼마나 커요? 예를 들어, 내가 돈을 몇 천억 갖고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야, 이제 네가 그만큼의 돈을 벌었으면 자선사업을 한번 해보지” 하고 명령을 내렸다고 합시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이면 통일교회의 교인들에게 있는 돈을 전부 다 나눠줬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마음이 “이제는 됐다” 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2억 2천만 미국 사람들에게도 좀 나눠줘 보지” 합니다. 또, 2억 2천만에게도 전부 다 나눠줬다 할 때 마음이 “야, 이제 너 스톱! 잘했다” 하지 않습니다. “40억 인류가 있는데 40억 인류에게도 나눠줘야지” 하고, 40억 인류에게 다 나눠주면 “영계도 있지, 영계” 그럽니다.
그래서 영계의 영인들에게도 전부 다 나눠줬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스톱을 안 하는 것입니다. “더 해야 된다, 더 해야 된다” 한다구요. 그러면 언제 마음이 “이젠 됐다” 하겠느냐? 우주의 센터로부터 끝까지 전부 다 나누어주었을 때 “아하, 이젠 됐어” 하는 것입니다. “내가 됐어”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센터가 되었다고 하고 인류도 되었다고 하면서 “더 이상 필요 없소” 하게 될 때 “그래, 스톱해”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돈이 남았다면, 그 돈을 내게 두고 싶지 않고 “하나님한테 갖다 주고, 우주한테 갖다 주겠다” 합니다. 그러고 났을 때 한푼도 없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비참한 게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우주의 사랑이 나에게 오기 시작합니다. 마음은 전부를 위하고 전체를 위합니다. 위하고 또 위하고 끝까지 위합니다. 그 이상 할 수 없는 자리까지 위했다고 할 때, 그 다음에는 본질적인 사랑이 하나님과 우주로부터 내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에 돈을 갖다가 채운다면 욕심 때문에 아무리 갖다 넣어도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무한히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이라든가 금과 같은 외적인 것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있어도 또 있어야 되고, 또 원하기 때문에 마음을 채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마음인데 언제 차겠느냐? 무엇으로 채우느냐? 참사랑만이 마음을 채울 수 있습니다. (130-255)
하나님의 마음을 꽉 채울 수 있는 존재
여러분의 마음에 참사랑이 꽉 차 있으면, 그 참사랑 가운데 모든 것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 참사랑이 마음속에 꽉 차게 될 때는 우주도 들어오고, 하나님도 들어오고, 모든 것이 달라붙어 살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참사랑 가운데 살고 싶지요?
예를 들어,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을 만큼 매력적인 세계 최고의 일등 미인이 있다고 하자구요.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가락 열두 마디에 전부 다 끼었다고 합시다. 그렇게 어디나 다 치장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차린 여자가 하나면 모르지만 두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어요? 그러면 그 여자들의 마음은 치장을 안 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치장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욕심이 또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차렸다고 해도 똑같이 차린 여자가 그 여자를 보고 “당신, 아름답다. 아, 원더풀(wonderful)”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미남자가 와서 “당신, 아름답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자가 다이아몬드보다도 귀한 거예요, 안 귀한 거예요?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몸뚱이에 전부 다 둘러도 쓸데없습니다. 그것보다도 남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뭘 가지고 있어요? 겉으로 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 것 같아서 남자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다이아몬드나 그 무엇보다도 귀한 존재는 사랑을 가진 남성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남자의 마음에 꽉 찰 수 있는 것이 뭐예요? 그것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본질적인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진 여성이 그 마음에 들어올 때는 아무리 욕심이 많은 남자의 마음도 꽉 찬다는 것입니다. 가장 욕심이 많은 왕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의 마음도 사랑으로 찹니다. 그래야 이론이 맞을 것 아니에요?
언제 하나님의 마음이 차겠어요?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면 언제 차겠느냐 이거예요. 밤에 차겠어요, 낮에 차겠어요? 이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하나된 사랑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가면 그 마음이 꽉 차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이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꽉 차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예수님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20) 했는데, 그런 말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이 있고, 그 하나님 가운데도 여러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거 어떻게 이해할거예요? 선생님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꽉 채울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을 꽉 채울 수 있고, 남자의 마음도 꽉 채울 수 있는 참사랑이 있는 곳에는 다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게 크고, 남자와 여자의 마음도 그렇게 크지만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도 계시고 다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자 앞에 그러한 여자가 있어 가지고 하나되고, 여자 앞에 그러한 남자가 있어서 하나된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꽉 채울 수 있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30-257)
욕심의 한계
그러면 하나님이 품으신다면 어디까지 품으시자는 것이냐?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품자! 나는 낮만 좋아하니까 낮만 내 것이고 밤은 싫다” 그러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난 사계절 중에서 봄만 좋아. 다른 것은 싫다” 그러세요? 어떻게 해요? “봄도 품고, 여름도 품고, 가을도 품고, 겨울도 품는다. 좋은 것도 품지만 나쁜 것도 품는다” 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그것까지 품어서 어떻게 하겠어요? 참사랑만 맛보이면 다 녹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보고 “당신은 원수를 용서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용서해서 어떻게 할거요? 그들이 언제든지 차고 야단할 텐데, 원수를 사랑해서 어떻게 할거요” 하겠지만, 그렇게 해보라구요! 참사랑의 맛을 보이면 다 녹아납니다. 원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으면 다 녹아나는 것입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사랑 앞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참사랑의 방패를 가지신 하나님이 얼마나 근사하냐 이거예요. 내 품에 들어오면 다 녹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그만 여자들도 그래요? “내 품이 이렇게 넓으니까 아무리 큰 남자가 오더라도 내 참사랑에 녹아난다. 호호호…” 그런다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이게 귀한 말입니다.
레버런 문도 이런 걸 알았기 때문에 “아, 그러면 세계를 한번 품어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맛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벌이 꿀을 만나게 되면 꽁무니가 떨어져도 안 놓습니다. 그러면 참사랑의 힘이 벌이 꽁무니가 떨어져도 꿀을 안 놓을 수 있는 것 이상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 이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모가지가 떨어지더라도 참사랑을 맛보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참사랑은 사망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힘을 가지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죽음의 세계까지 주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욕심의 한계가 어디예요? 그 욕심의 창고가 언제 차겠어요? 이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욕심의 창고가 언제 차겠느냐 이거예요. 이것은 인류를 연구할 때 문제입니다. 참사랑으로 채울 때 욕심의 창고가 가득 차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채울 길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중심삼고 세계의 석학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한다고 할 때 별의별 대답들이 있을 것인데, 최후의 대답을 반대받는 레버런 문이 한다면 누구의 말을 받아들일 것 같아요? 당연히, 레버런 문의 대답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틀림없이, 레버런 문의 대답이 넘버원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듣게 될 때 “야, 그 녀석…! 레버런 문, 어떻게 그걸 알았노? 멋지구나” 하면서 표창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에 준비한 창고에 좋은 것들이 꽉 차 있는데, 역사시대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한테 내가 표창과 더불어 상으로 줄 것이다” 하실 때 나를 빼 놓으실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간단한 내용이지만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레버런 문, 이런 생각을 가진 무니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자랑스러우냐!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사랑의 경전’입니다. (130-259)
참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러한 마음을 가진 남자나 여자는 어때요? 여러분이 길가에 앉아 가지고 자기가 진짜 그런 사람인가, 아닌가를 한 번 테스트해 보라는 것입니다. 길가에 앉아 가지고 지나가는 백인종으로부터 황인종의 거지들뿐만 아니라 별의별 군상들이 수군거리면서 여러분을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들이 나갔다가 “너, 뭐야? 황인종인 레버런 문을 따라다녀, 이 병신아” 할 때, “호호호…” 그래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지금이 출발인데, 우주를 품으려면 백정들까지 나를 반대하면서 야단하더라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좋아하는 세계를 품는 사람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세계까지 품을 수 있는 참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겠어요? 자기를 미워하는 세계까지 품을 수 있는 참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참사랑을 좋아하시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면서 별의별 말들이 다 나옵니다. 사탄까지도 하나님을 참소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닮아 있느냐? 한 번 질문해 볼 때, 얼마나 닮았어요? 그것이 생각할 문제예요, 회개할 문제예요? 회개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레버런 문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반대하던 유대교도 품고, 기독교도 품고, 미국도 품고, 공산당도 품어서 참사랑으로 소화하겠다고 미친 사람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역사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사람이 레버런 문입니다. 미래의 희망이 없고 사랑을 모르는 지상의 인간들을 대표해서 이러한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말을 붙이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고, 인류도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그렇게 못 됐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을 데리고 삽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쭉 보고 있습니다. 누가 비판하려고 하는가, 누가 품으려고 하는가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비판적인 사람은 사탄 편이요, 품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늘 편입니다. 선생님의 관이 틀렸다고 봐요, 맞다고 봐요? 맞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싸움을 하게 되면 대번에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기준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공산세계와 별의별 악당들이 레버런 문에 대해서 온갖 공작을 다 하고 있지만 최후에 어느 사상이 승리할 것이냐? 레버런 문이 죽더라도 이 사상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가르친 이 말씀을 통해서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레버런 문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0-261)
틀리지 않은 길
그러면 이제 우주를 품기 전에 나를 품자는 것입니다. 그런 나는 어떤 나냐? 본질적인 나를 품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보고 레버런 문은 “야, 마음아!”, “왜 그래?”, “너는 이런 본질의 마음을 가지고 이 몸뚱이를 쳐야 돼” 합니다. 몸뚱이와 다릅니다. 마음이 몸뚱이를 품고 본질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게만 만들어 주면 내 자신은 완전히 통일됩니다. 그러니까 내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고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서 몸뚱이를 소화해야 됩니다.
참사랑은 본연의 마음을 통하기 때문에 마음에 절대 복종하는 몸뚱이를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래의 마음이 어떠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게 아닙니다. 우주를 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마음, 본성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 바탕에 사랑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내 몸이 사탄의 무대가 되었으니까 마음을 중심삼고 내 몸을 컨트롤해야 됩니다.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나아가 행동하고 싸울 때 남이 핍박하더라도 참고 연단(鍊鍛)을 받으면서 내 몸이 거기에 반항할 때 본심이 “이놈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브레이크를 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몸을 중심삼은 사탄이 여러분의 마음과 싸우고 있습니다. 몸뚱이는 편안한 걸 좋아하지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구든지 마음이 곱지 않은데 몸뚱이를 곱게 차려 입으면 사탄의 제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관리할 줄 알고, 귀를 관리할 줄 알고, 입을 관리할 줄 알고, 냄새를 관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원수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우주의 원수가 거기에 있습니다. 내 자신이 우주의 원수입니다. 지옥보다도 무서운 무대가 내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나쁜 자기 자신으로 품고 싶지 않지요? 내 자신이 좋은 자신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 남자가 되어 가지고 그런 여자를 품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부부가 가정을 품어야 되고, 세계를 품어야 되고, 하늘땅을 품어야 됩니다. 그 기반이 안 되어 가지고는 아무리 그런 것들을 품겠다고 하더라도 안 통합니다. (130-263)
선생님이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가 갈라지더라도 나라와 세계를 위해라! 가정에서 둘이서만 서로를 품지 말고 나라를 품고 세계를 품어 봐라” 할 때 “나 싫소” 하면 통할 것이냐, 안 통할 것이냐? 안 통합니다. 지금까지 결혼해서 서로가 품었던 것은 좋았지만 “국가를 품고, 세계를 품고, 우주를 품는 것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가정이 천국이 될 수 있어요? 부부가 둘이 갈라져서라도 세계를 품고 사랑하고서 하나님한테 “너희들이 내 속에 들어와 살 수 있는 사랑의 부부로다”라는 공인을 받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이상입니다. “둘이서만 사랑하고 살겠소” 하는 것은 이상적인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됩니다.
지금 둘이 갈라져 가지고 세계를 품고 돌아와서 사랑하는 것하고 세계를 품는 것을 다 집어던지고 자기들만 품고 사랑하는 것은 비교가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둘 중에서 두 번째의 입장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은 세계를 소화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세계를 소화해 나갑니다. 사랑으로 소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린 것 같아요, 맞는 것 같아요? 맞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도, 아시아 사람도, 미국 사람도, 어떠한 교파의 사람들도 희망을 못 갖고 있는데 이제는 반대받는 레버런 문이 우리나라와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구사회의 희망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어서 그렇게 되었어요, 옳아서 그렇게 되었어요? 옳아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틀리지 않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도와줍니다. (130-264)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 세계
그런데 결국에는 나를 품고 어디를 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텍스트북과 같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이에요, 참이 될 수 있는 모형을 중심삼고 전부 다 갖다 맞추면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가정을 품어야 됩니다. 가정을 품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130-267)
가정에서 우주적인 사랑을 배우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본, 경전과 같은 가정을 딱 만들어 줘 가지고 “거기에서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라! 지상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영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대표해서 보냈기 때문에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전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해주마” 하고 공약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네가 어머니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은 세계의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을 대표하는 교본과 같이 사랑하는 모델로 삼았으니까 전체를 사랑했다는 조건으로 삼아 주마. 또,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은 세계의 남자가 세계의 여자를 대표적으로 묶어서 사랑했다는 것으로 세워 주마” 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네 아들딸을 사랑한 것으로 모든 아들딸들을 전부 다 사랑했다고 해주마” 하십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러한 훈련을 받는 훈련소입니다. 거기서 훈련을 받은 사람한테 “이제는 세상에 한번 나가 가지고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신으로 세상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느냐” 할 때, “예스” 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백인이라고 “아이구, 난 백인만 좋아! 백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흑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나 아시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랑 못 해! 잘입고 아주 멋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미개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랑 못 해” 하면 안됩니다.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자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집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공식입니다. 그것이 인류가 이 땅 위에 살면서 훈련받기 위한 공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부부가 세상의 부부들을 대신하여 달려간다고 할 때, 혼자서 가는 사람들은 박수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게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야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구! 저 여편네도 미인이고, 저 남자도 미남이구만! 내가 빼앗아 살면 좋겠다” 해서는 안됩니다. 또, 세계의 모든 아들딸들을 자기의 아들딸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참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세계가 되어야 하나님이 임하실 있다는 결론을 내더라도 틀리지 않습니다.
자기 가정에서 훈련받은 것보다도 세계를 덜 사랑하는 것이 원칙이겠어요, 더 사랑하는 것이 원칙이겠어요? 더 사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세상을 위해야 됩니다. 자기의 손자를 보고 “야, 손자야! 너는 세계를 우리 가정보다 더 사랑하면 안된다” 한다면, 그 할아버지는 지옥 갑니다. “야, 너 우리 집에서 교육받은 이상 세계를 사랑해야 돼” 할 때, “예” 하도록 가르쳐야 천국 갈 수 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다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해야 그 남편도 훌륭한 남편이 되고 아내도 훌륭한 아내가 됩니다. 그 세계가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의 세계입니다.
선생님은 이 일을 실천하는 과정에 있고, 여러분도 생명을 걸고 이 일을 성사시켜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축복받은 가정들이 자기의 새끼들만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선생님의 명령대로 여러분의 자식들을 전부 다 세상에 내보내 가지고 여러분에게 사랑받던 이상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게끔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때 “노” 하면 안됩니다. (130-273)
나라와 세계를 위해 사랑과 희생의 길을 가라
그래서 여러분 통일교회 사람들은 6대주를 소화하고 돌아와야 됩니다. 선생님도 미국에 와서 반대하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몰랐지만, 선생님이 미국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사람이고 지금도 이 나라를 위해서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 자신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나한테 빚을 갚기보다는 여러분의 나라와 세계에 대하여 빚을 갚아야 됩니다.
왜 그러하냐?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것을 되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이 후손을 사랑할 수 있는 밑천으로 삼아주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미래의 사랑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은 여러분이 내가 없더라도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해주고, 여러분의 아들딸이 여러분의 나라를 내가 위하듯이 위하고, 세계를 내가 위하듯이 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레버런 문을 사랑하셨지만 그것을 되받기 위한 것보다도 그 사랑을 레버런 문이 이어받아 가지고 세계에 연결짓고 후대에 남겨 주기를 원하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여러분의 나라에 대해서 뜻에 대한 상속권이 연결될 것이고, 나라와 세계를 넘어서 그 상속권이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한 집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부부가 아들딸과 함께 사랑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을 못 가진 것이 세계적인 문제였습니다. 이제부터 레버런 문을 중심삼고 그 훈련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집에 전화하지 않고 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가게 되면, 여러분은 안방을 내놓고 곁방으로 가야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방이 하나면, 여러분은 변소에서 자고 안방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나 부모를 재워야 됩니다. 이제부터 그런 전통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사진을 모시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신으로 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언제든지 먹을 것이 생기면 내가 먹기 전에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야 됩니다. 먼저 부모한테 드리고 싶은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내한테 주고 싶은 생각을 하고 아들딸한테 주고 싶어하는 생각을 해야 가정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그 가정의 상속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사람들로 만들어 놓으려고 무니들을 교육하면서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가, 안 하는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지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알겠지요? 틀림없이,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30-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