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8권 12일
사랑이여, 영원히
날짜 : 1984. 1. 22(일)
장소 : 미국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랑이여, 영원히’입니다.
참사랑이라는 명사
우리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데, 막연하게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 우리하고는 관계가 먼 감이 듭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있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전권자이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그런데 그게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아, 전권이 있으니까 나를 지배하기에 좋겠구만! 무소부재하니까 어디서든지 나를 감찰하기에 좋겠구만. 모르는 것이 없으니까 나를 다 세밀히 분석하고 꼼짝못하게 만들겠구만” 그렇게 생각하지요? 하나님은 나를 컨트롤하십니다. 또,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비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왜 필요해요?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거예요. 어떤 사람은 “나 그거 싫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하나의 명사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참사랑이라는 명사입니다. 참사랑은 전문용어입니다. 참사랑은 친숙하고 붙임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데, 그 어머니 아버지는 그저 “하지 말라, 공부해라, 밥 먹어라, 자라, 깨라” 하면서 야단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내 어머니 아버지가 없으면 좋겠다” 합니다. 특히, 미국 아이들 가운데 그런 아이들이 많습니다. 부모의 말은 하라는 것보다도 하지 말라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하나 귀한 것이 있으니, 자식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매를 맞고도 “엄마…” 이럴 수 있습니다. 매를 때린 엄마를 울면서 따라가는 것이 무엇 때문이에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학교 좋아하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 손 들어 보라구요! 전부 다 “노”라고 하지만, 선생님도 공부하라고 하고 부모도 공부하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기합을 주면서 공부 안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지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은 나라와 연결되고 세계와 연결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과 제자간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모든 어려운 환경도 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것인데, 그 내용이 여러분의 국가와 통할 수 있고 세계와 통할 수 있는 다리입니다.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아이들이 출세하는 동기가 됩니다. 성적보다도 사랑의 인연으로 연결된 그 결과가 나라와 세계에서 출세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사인해서 추천해 주지 않으면 나라와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부모가 “우리 아들딸 좋소” 하고 아무리 추천하더라도 안 통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사회를 사랑하는 공약의 법도를 통하지 않고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는 데 있어서 첫 관문이 학교입니다.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사랑받는 것이 나라와 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교에 사제지간의 사랑이 있는데, 거기에는 가정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할 때 학교가 얼마나 진실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학생이 선생님의 사랑을 흠모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멋져요! 공부시키는 선생님도 사랑을 흠모하면서 시킨다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것입니다. (130-209)
생애노정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키 포인트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여러분은 출세해서 나라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아이구, 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또한 효자이니까 나라 필요 없어” 그래요? 나라를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아, 대통령하고 가까워져야 되겠다” 합니다. 그게 왜 필요해요? 그 주권자의 깊은 사랑의 세계에 파고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직장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느냐 이거예요.
여기의 이 큰 나라를 여러분이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배워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나라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이 사인(sign)해 주는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나라에서 세계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세계로 가는데 추천장을 누가 써야 되느냐 하면, 학교 선생님의 추천장은 안됩니다. 대통령이 추천장을 줘야 됩니다.
지금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미래에는 세계의 대통령이 생겨날 것이라고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래에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하나의 세계의 주권자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세계 대통령의 사랑을 받는 자리로 가고, 그 대통령이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랑하는 대통령이 나에게 신원보증을 할 수 있는 사인을 한다고 할 때 어때요?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르나요?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올라가는 데는 그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130-209)
그러면 아까 ‘사랑이여, 영원히’라고 말했는데, 인간세계를 초월해서 하나님이 있느냐 이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망할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지금 이런 세계입니다.
그것은 인간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모든 인간이 생활하는 생애노정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키 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있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졸업장을 가졌으면, 오늘날 이 세계의 수백 수천의 대학교 졸업장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박사학위 백 개를 가진 것보다도 더 귀합니다. 여러분은 밥 먹는 것이 귀한 줄 알고, 옷 입는 것이 귀한 줄 알고, 색시가 귀한 줄 알고, 나라가 귀한 줄 알았지만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를 아는 것이 제일 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공부를 하려면 월사금을 얼마씩 내야 되겠어요? 어디, 일억 불 가지고 되겠어요? 그러면 월사금을 내려면 무엇을 내야 되겠어요? 얼마나 지불할래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가 미국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배울 수 있으면 그렇게 해서라도 배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는 어때요? 세계를 팔고 하늘땅을 팔아서라도 지불해 가지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가야 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무니들, 여러분은 어때요? 하나님이 있는 걸 알아요? 하나님이 있는 것을 배웠어요? 그러면 진짜 하나님을 알아요? 어떻게 하나님이 있는 걸 알아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내 머리가 부정 못 하고, 내 눈이 부정 못 하고, 내 코 등 내 오관이 부정 못 하는 체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체험하는 것이 편안히 잠자고, 편안히 쉬고, 편안히 노는 곳에서 가능하겠어요? 그저 죽자살자 하는 어려운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에 대한 체험을 느끼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생각할 수 있는 수난의 한계를 극복해야 됩니다. 그런 데서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아서 뭘 해요? 하나님을 알면 내가 돈 없을 때 돈 달라고 하고, 내가 권력이 필요할 때 권력 달라고 하기 위해서 필요해요? 내가 출세하고 싶을 때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내가 지식이 필요해서, 힘이 필요해서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힘을 가지면 뭘 하고 지식을 가지면 뭘 해요?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항할 수 있어요? 그 지식을 가지고 한번 싸워 볼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복종해야 됩니다. 그런데 복종하는 것을 좋아해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복종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 압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게 되면 전부 다 욕심들이 꽉 찼습니다. 아무리 얼굴이 못생긴 녀석도 욕심 없는 녀석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시겠어요? 아신다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우는 아이에게 우유 통을 갖다 놓으면 그 아이가 “허허허…” 이런다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갖고 울어요? 앰비션(ambition;야망)을 중심삼고 웁니다. 그러면 그것을 무엇으로 사요? 돈을 가지고 사요? 힘이나 지식을 가지고 사요? 그런 것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사랑을 받고 주겠다고 하게 되면, “허허허…” 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 사실입니다. (130-212)
거짓사랑과 참사랑을 어떻게 분별하느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고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이 인간을 백 퍼센트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셨겠어요, 안 하셨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다이아몬드나 금괴를 가지고 컨트롤하시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것입니다. 사실적인 가치로 보면 금이나 다이아몬드보다 낫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위해서 한번 투신하고 싶지요? 그러면 무슨 체험을 해야 되느냐? 지식이라는 체험이나 힘에 대한 체험보다도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체험을 하고 나서야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진수를 중심삼고 예수님이 역설적인 말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자는 나의 제자가 되고, 이웃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고,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못 되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역설적인 논리가 완전히 이론적인 논리로 전개된 것입니다. 그게 사랑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모두 다 그렇게 투입할 자신 있지요? 투자할 때는 무엇을 투자해요? 투자할 때는 쓰다 남은 것이나 필요 없는 것을 투자해요, 제일 귀한 것을 투자해요? 어떤 걸 할래요? 나를 투자하겠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손 들었으니까 그래도 양심을 갖고 있고 감정도 갖고 있구만!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투자할래요? 눈알 하나를 빼서라도 할래요?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눈을 빼 가도 감사하겠어요? 코 하나를 잘라서 투자할 수 있어요?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코를 자르려고 하면, 여러분은 도망을 갈 것입니다. “아, 이렇게 잘생긴 미남자가 추남이 되겠구만! 나 싫어” 그러겠어요, “예, 추남이 되어도 좋습니다” 그러겠어요? 추남이 되어도 좋다고 해야 됩니다.
무엇을 투자할거예요? “하나님, 당신이 투자하기를 바라는 것이 뭐요” 하고 물어 보라구요!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시겠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동양식으로 하면 초등학교 3학년생도 다 대답할 것입니다. 무엇을 투자해야 하나님이 “그 녀석 용타, 잘했다” 하시겠어요? 사랑을 투자해야 됩니다. 그러면 누구의 사랑을 투입해요? 여러분의 사랑이 참사랑이에요? 참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인데 가짜 사랑을 가지고 “나 바칩니다” 할 때, 하나님이 관심 있으시겠어요? “그것 참 내 관심 있다. 그 투자를 받을 만하다” 그러시겠어요? 관심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참사랑을 모르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투자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전부 다 하늘 편에서 노 코멘트(no comment)였습니다. 참사랑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도달하겠어요? 계속해서 영원히 노력하겠어요? 그런데 영원히 노력해도 참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여, 영원히’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제거하고 ‘사랑이여, 영원히’입니다. 영원히 찾아야 할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거짓사랑과 참사랑을 어떻게 분별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동기가 뭐예요?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참사랑이냐, 거짓사랑이냐 하는 경계선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30-214)
참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위해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위해서 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위해서 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생명 자체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생명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생명과 더불어 사랑의 힘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으면 우주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연의 이상세계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결론을 지어야 됩니다. 그렇게 정리해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은 수많은 인류를 위하셨으므로 참사랑의 주체라고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한 경지에서만 참사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활동하십니다. 하나님의 활동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에요. 거기에 하나님의 개인적인 활동, 가정적인 활동, 국가적인 활동, 세계적인 활동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악한 사탄 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 편이라면, 어떤 쪽이 하늘 편이 되느냐? 보다 위해주는 쪽이 하늘 편이 됩니다. 거기서부터 차원이 높아지고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확실한 경계선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사탄이 내 편이냐, 네 편이냐 하는 이것을 구분했는가를 세상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이 두 패가 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편을 드셔야 했느냐 하면 세계를 위해서 싸운다고 한 쪽의 편을 드셔야 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주장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면 안되고 인종을 차별하면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군은 지게 마련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도 전세계의 인류를 위해준다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남아졌습니다. 그러니까 미국도 남아지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야 됩니다. 간단한 공식입니다. 이 공식을 통해서 미국과 소련이 싸우게 되면 누가 이기느냐? 만약에 소련은 세계를 위해서 움직이려고 하는데, 미국은 세계를 모르고 미국만을 위한다고 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소련에게 당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망하겠으니까 안 망하게 하려고 통일교회가 세계를 위하고 공산당까지 구해야 되겠다고 하는 운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러한 운동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통일교회 편에 계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공식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의 이름과 더불어 하나의 세계를 만들겠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서 있는 레버런 문은 지극히 외로웠던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다 반대하고 그랬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잘났다는 사람들은 다 떨어졌지만, 혼자서 이 길을 걸어온 사람이기에 지금에 와서는 레버런 문이 세계적인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만한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느 누가 보더라도, 어떤 국가의 수상들이라도 “레버런 문은 성공한 사람이다. 이제부터 저 사람이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를 두고 봐야 되겠다” 합니다. 그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레버런 문이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같이하셨기 때문입니다. (130-216)
모든 사람들이 참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내가 미국에서 미국 정부와 싸우고 법정투쟁을 하면서도 “누가 하나님 편이 되는가 두고보자! 누가 더 공적이고, 누가 더 사적이 되는가”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 미국을 내가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전히 내 편입니다. 자신감이라기보다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기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가진 이론이 틀린 것 같아요, 맞는 것 같아요? 맞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무니들이지요?
그러면 레버런 문은 이러한 사실을 무엇을 갖고 증거할 것이냐? 그런 경험이 아주 많습니다. 아주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하고 같이하시는 것을 어디서나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해라, 해라” 하면서 총칼로 위협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무니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길거리에서 헌드레이징을 하고 이러는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참사랑의 길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참사랑을 가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게 놀라운 거라구요!
선생님은 일생 동안 핍박받으면서, 법정투쟁은 생각도 안 합니다. 세계 문제를 더 생각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러한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내가 잘 압니다. 이것이 무니들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여러분은 부모형제와 나라 그리고 세계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비참한 환경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런 환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내가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을 좋아하고, 내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이것은 명백합니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아내까지도 희생시켜서 나라를 위해 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일족과 자식들을 희생시키더라도 나라를 위해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나는 통일교회의 식구들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그 식구들을 희생시키기를 원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그래야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참사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랑이여, 영원히 나에게 같이하소서! 영원히 나에게서 떠나지 마소서”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과 비교해서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몇 퍼센트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다는 말은 통용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알아요, 몰라요? 몇 퍼센트짜리인지 알지요? 그러니까 “좀 놀게 하고, 좀 쉬게 하고, 좀 편안히 자게 해주지 이게 뭐야” 하면서 불평하는 자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놈아, 너 왜 놀라고 해” 하면서 자기하고 싸워야 됩니다. (130-218)
불행한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행복한 사람
여러분에게 선생님이 명령하고 왜 그래요? 왜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매일 나가서 열심히 활동하라고 하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참사랑을 원하는 여러분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내가 무서운 사람이지만, 여러분에게 사랑을 가지고 대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가정에서, 학교 선생에게서, 나라의 대통령에게서, 세계 대통령에게서 사인을 받는다는 것이 어렵지만 거기에는 참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명령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하고 선생님들이 잔소리하는 것 다 싫지요? 그렇지만 누구든지 회사 사장의 사인과 나라 대통령의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선생님의 사인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다 죽어서나 이 세상에서나 참부모의 사인이 필요합니다. 참부모의 사인만 가지면 여러분은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어때요? 필요해요, 필요하지 않아요? 필요하다면 얼마나 필요해요?
여러분이 10년 동안 선생님에 대해서 얼마나 불평했어요? 여기에 앉아 있는 마이클도 얼마나 불평을 했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신학교에 있는 동안 선생님이 군대같이 명령한다고 항상 불평했습니다. 어디, 얼마나 불평했는지 오늘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구요! 얼마나 불평을 많이 했어요? 여러분 가운데 불평을 안 했다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이제 모가지를 비틀고 다리를 거꾸로 매도 불평을 안 할거예요? “이미 내 모가지는 잘라서 바친 모가지요. 언제 죽어도 좋소” 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됩니다.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는 사람이 아들을 바치는 것은 보통이고 아내를 바치는 것은 보통이지요. 아직까지 내 생명이 바쳐지지 않은 것만 해도 하나님께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나는 전세계의 통일교회를 다 투입하더라도 그 이튿날 나는 또 재출발합니다. 내가 살았으니까 재출발한다구요. 그러면 하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표준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통일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했고…” 하는 그런 수작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개념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위대합니다.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어디 가든지 백 점입니다. 언제나 이 원칙은 승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 선생님이 알고 있는 진리의 포인트요, 하나님이 세우고 계시는 진리의 포인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이여, 영원히” 하는 말의 맛을 알겠어요? 그게 누구를 위한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입니다. 사랑만 쥐는 날에는 하나님한테 다른 무엇을 간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종적이면, 나는 횡적이 됩니다. 종횡이 마찬가지입니다. 도니까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을 갖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전지전능, 무소부재와 모든 것을 주더라도 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랑만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의 지식이고 사랑의 무한한 힘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사랑의 지식이 필요하고 사랑의 무한한 힘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세상을 내가 컨트롤해야 되겠는데 무엇으로 컨트롤할 것이냐 하면 사랑의 힘을 가지고 컨트롤한다는 것입니다. (130-220)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요, 사랑의 대상
여러분은 “사랑의 매를 한번 맞아 보자! 그래서 궁둥이에 멍이 들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하고 생각해 봤어요? 내가 여자라면 그런 생각을 해봤을 것입니다. “사랑의 매를 맞아서 궁둥이에 멍이 들고 피가 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가서 자랑할 게 뭐예요? “조그만 미국 여자, 너 지상에서 뭘 했어” 하면, “내가 하긴 뭘 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남편한테 궁둥이에 피가 터지도록 맞으면서도 남편을 사랑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그저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할 때, 하나님이 “아, 요것 봐라” 하면서 다른 말씀을 못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런 여자의 말을 듣고 “너 놀라운 여자다. 역사상에 최고로 위대한 것을 발견했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위대하겠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은 어때요? 미국 여자들은 어때요? 좋아요, 싫어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선생님도 어머니한테 한번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머니가 성내면 안 해준 것만 못할까봐 내가 못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참사랑의 주관을 안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우리가 가까이 느낄 수 있느냐? 하나님을 내 집안에서 쫓아낼 수 없고, 내 살과 세포 그리고 마음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얼마나 가까워지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주체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내가 없으면 안되고, 하나님의 사랑도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이 특권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이니까 희망을 가지고 1984년은 보다 하나님의 친숙한 사랑권 내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전진하자는 것입니다. (130-212)*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2일, 원문
사랑이여, 영원히
날짜 : 1984. 1. 22(일)
장소 : 미국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랑이여, 영원히’입니다.
참사랑이라는 명사
우리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데, 막연하게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 우리하고는 관계가 먼 감이 듭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있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전권자이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그런데 그게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아, 전권이 있으니까 나를 지배하기에 좋겠구만! 무소부재하니까 어디서든지 나를 감찰하기에 좋겠구만. 모르는 것이 없으니까 나를 다 세밀히 분석하고 꼼짝못하게 만들겠구만” 그렇게 생각하지요? 하나님은 나를 컨트롤하십니다. 또,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비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왜 필요해요?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거예요. 어떤 사람은 “나 그거 싫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하나의 명사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참사랑이라는 명사입니다. 참사랑은 전문용어입니다. 참사랑은 친숙하고 붙임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데, 그 어머니 아버지는 그저 “하지 말라, 공부해라, 밥 먹어라, 자라, 깨라” 하면서 야단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내 어머니 아버지가 없으면 좋겠다” 합니다. 특히, 미국 아이들 가운데 그런 아이들이 많습니다. 부모의 말은 하라는 것보다도 하지 말라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하나 귀한 것이 있으니, 자식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매를 맞고도 “엄마…” 이럴 수 있습니다. 매를 때린 엄마를 울면서 따라가는 것이 무엇 때문이에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학교 좋아하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 손 들어 보라구요! 전부 다 “노”라고 하지만, 선생님도 공부하라고 하고 부모도 공부하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기합을 주면서 공부 안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지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은 나라와 연결되고 세계와 연결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과 제자간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모든 어려운 환경도 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것인데, 그 내용이 여러분의 국가와 통할 수 있고 세계와 통할 수 있는 다리입니다.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아이들이 출세하는 동기가 됩니다. 성적보다도 사랑의 인연으로 연결된 그 결과가 나라와 세계에서 출세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사인해서 추천해 주지 않으면 나라와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부모가 “우리 아들딸 좋소” 하고 아무리 추천하더라도 안 통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사회를 사랑하는 공약의 법도를 통하지 않고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는 데 있어서 첫 관문이 학교입니다.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사랑받는 것이 나라와 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교에 사제지간의 사랑이 있는데, 거기에는 가정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할 때 학교가 얼마나 진실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학생이 선생님의 사랑을 흠모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멋져요! 공부시키는 선생님도 사랑을 흠모하면서 시킨다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것입니다. (130-209)
생애노정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키 포인트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여러분은 출세해서 나라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아이구, 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또한 효자이니까 나라 필요 없어” 그래요? 나라를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아, 대통령하고 가까워져야 되겠다” 합니다. 그게 왜 필요해요? 그 주권자의 깊은 사랑의 세계에 파고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직장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느냐 이거예요.
여기의 이 큰 나라를 여러분이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배워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나라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이 사인(sign)해 주는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나라에서 세계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세계로 가는데 추천장을 누가 써야 되느냐 하면, 학교 선생님의 추천장은 안됩니다. 대통령이 추천장을 줘야 됩니다.
지금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미래에는 세계의 대통령이 생겨날 것이라고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래에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하나의 세계의 주권자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세계 대통령의 사랑을 받는 자리로 가고, 그 대통령이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랑하는 대통령이 나에게 신원보증을 할 수 있는 사인을 한다고 할 때 어때요?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르나요?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올라가는 데는 그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130-209)
그러면 아까 ‘사랑이여, 영원히’라고 말했는데, 인간세계를 초월해서 하나님이 있느냐 이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망할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지금 이런 세계입니다.
그것은 인간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모든 인간이 생활하는 생애노정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키 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있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졸업장을 가졌으면, 오늘날 이 세계의 수백 수천의 대학교 졸업장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박사학위 백 개를 가진 것보다도 더 귀합니다. 여러분은 밥 먹는 것이 귀한 줄 알고, 옷 입는 것이 귀한 줄 알고, 색시가 귀한 줄 알고, 나라가 귀한 줄 알았지만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를 아는 것이 제일 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공부를 하려면 월사금을 얼마씩 내야 되겠어요? 어디, 일억 불 가지고 되겠어요? 그러면 월사금을 내려면 무엇을 내야 되겠어요? 얼마나 지불할래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가 미국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배울 수 있으면 그렇게 해서라도 배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는 어때요? 세계를 팔고 하늘땅을 팔아서라도 지불해 가지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가야 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무니들, 여러분은 어때요? 하나님이 있는 걸 알아요? 하나님이 있는 것을 배웠어요? 그러면 진짜 하나님을 알아요? 어떻게 하나님이 있는 걸 알아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내 머리가 부정 못 하고, 내 눈이 부정 못 하고, 내 코 등 내 오관이 부정 못 하는 체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체험하는 것이 편안히 잠자고, 편안히 쉬고, 편안히 노는 곳에서 가능하겠어요? 그저 죽자살자 하는 어려운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에 대한 체험을 느끼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생각할 수 있는 수난의 한계를 극복해야 됩니다. 그런 데서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아서 뭘 해요? 하나님을 알면 내가 돈 없을 때 돈 달라고 하고, 내가 권력이 필요할 때 권력 달라고 하기 위해서 필요해요? 내가 출세하고 싶을 때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내가 지식이 필요해서, 힘이 필요해서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힘을 가지면 뭘 하고 지식을 가지면 뭘 해요?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항할 수 있어요? 그 지식을 가지고 한번 싸워 볼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복종해야 됩니다. 그런데 복종하는 것을 좋아해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복종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 압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게 되면 전부 다 욕심들이 꽉 찼습니다. 아무리 얼굴이 못생긴 녀석도 욕심 없는 녀석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시겠어요? 아신다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우는 아이에게 우유 통을 갖다 놓으면 그 아이가 “허허허…” 이런다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갖고 울어요? 앰비션(ambition;야망)을 중심삼고 웁니다. 그러면 그것을 무엇으로 사요? 돈을 가지고 사요? 힘이나 지식을 가지고 사요? 그런 것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사랑을 받고 주겠다고 하게 되면, “허허허…” 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 사실입니다. (130-212)
거짓사랑과 참사랑을 어떻게 분별하느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고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이 인간을 백 퍼센트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셨겠어요, 안 하셨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다이아몬드나 금괴를 가지고 컨트롤하시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것입니다. 사실적인 가치로 보면 금이나 다이아몬드보다 낫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위해서 한번 투신하고 싶지요? 그러면 무슨 체험을 해야 되느냐? 지식이라는 체험이나 힘에 대한 체험보다도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체험을 하고 나서야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진수를 중심삼고 예수님이 역설적인 말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자는 나의 제자가 되고, 이웃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면 이보다 더 큰사랑이 없고,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못 되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역설적인 논리가 완전히 이론적인 논리로 전개된 것입니다. 그게 사랑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모두 다 그렇게 투입할 자신 있지요? 투자할 때는 무엇을 투자해요? 투자할 때는 쓰다 남은 것이나 필요 없는 것을 투자해요, 제일 귀한 것을 투자해요? 어떤 걸 할래요? 나를 투자하겠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손 들었으니까 그래도 양심을 갖고 있고 감정도 갖고 있구만!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투자할래요? 눈알 하나를 빼서라도 할래요?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눈을 빼 가도 감사하겠어요? 코 하나를 잘라서 투자할 수 있어요?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코를 자르려고 하면, 여러분은 도망을 갈 것입니다. “아, 이렇게 잘생긴 미남자가 추남이 되겠구만! 나 싫어” 그러겠어요, “예, 추남이 되어도 좋습니다” 그러겠어요? 추남이 되어도 좋다고 해야 됩니다.
무엇을 투자할거예요? “하나님, 당신이 투자하기를 바라는 것이 뭐요” 하고 물어 보라구요!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시겠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동양식으로 하면 초등학교 3학년생도 다 대답할 것입니다. 무엇을 투자해야 하나님이 “그 녀석 용타, 잘했다” 하시겠어요? 사랑을 투자해야 됩니다. 그러면 누구의 사랑을 투입해요? 여러분의 사랑이 참사랑이에요? 참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인데 가짜 사랑을 가지고 “나 바칩니다” 할 때, 하나님이 관심 있으시겠어요? “그것 참 내 관심 있다. 그 투자를 받을 만하다” 그러시겠어요? 관심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참사랑을 모르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투자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전부 다 하늘 편에서 노 코멘트(no comment)였습니다. 참사랑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도달하겠어요? 계속해서 영원히 노력하겠어요? 그런데 영원히 노력해도 참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여, 영원히’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제거하고 ‘사랑이여, 영원히’입니다. 영원히 찾아야 할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거짓사랑과 참사랑을 어떻게 분별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동기가 뭐예요?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참사랑이냐, 거짓사랑이냐 하는 경계선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30-214)
참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위해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위해서 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위해서 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생명 자체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생명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생명과 더불어 사랑의 힘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으면 우주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연의 이상세계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결론을 지어야 됩니다. 그렇게 정리해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은 수많은 인류를 위하셨으므로 참사랑의 주체라고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한 경지에서만 참사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활동하십니다. 하나님의 활동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에요. 거기에 하나님의 개인적인 활동, 가정적인 활동, 국가적인 활동, 세계적인 활동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악한 사탄 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 편이라면, 어떤 쪽이 하늘 편이 되느냐? 보다 위해주는 쪽이 하늘 편이 됩니다. 거기서부터 차원이 높아지고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확실한 경계선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사탄이 내 편이냐, 네 편이냐 하는 이것을 구분했는가를 세상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이 두 패가 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편을 드셔야 했느냐 하면 세계를 위해서 싸운다고 한 쪽의 편을 드셔야 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주장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면 안되고 인종을 차별하면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군은 지게 마련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도 전세계의 인류를 위해준다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남아졌습니다. 그러니까 미국도 남아지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야 됩니다. 간단한 공식입니다. 이 공식을 통해서 미국과 소련이 싸우게 되면 누가 이기느냐? 만약에 소련은 세계를 위해서 움직이려고 하는데, 미국은 세계를 모르고 미국만을 위한다고 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소련에게 당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망하겠으니까 안 망하게 하려고 통일교회가 세계를 위하고 공산당까지 구해야 되겠다고 하는 운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러한 운동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통일교회 편에 계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공식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의 이름과 더불어 하나의 세계를 만들겠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서 있는 레버런 문은 지극히 외로웠던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다 반대하고 그랬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잘났다는 사람들은 다 떨어졌지만, 혼자서 이 길을 걸어온 사람이기에 지금에 와서는 레버런 문이 세계적인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만한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느 누가 보더라도, 어떤 국가의 수상들이라도 “레버런 문은 성공한 사람이다. 이제부터 저 사람이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를 두고 봐야 되겠다” 합니다. 그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레버런 문이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같이하셨기 때문입니다. (130-216)
모든 사람들이 참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내가 미국에서 미국 정부와 싸우고 법정투쟁을 하면서도 “누가 하나님 편이 되는가 두고보자! 누가 더 공적이고, 누가 더 사적이 되는가”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 미국을 내가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전히 내 편입니다. 자신감이라기보다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기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가진 이론이 틀린 것 같아요, 맞는 것 같아요? 맞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무니들이지요?
그러면 레버런 문은 이러한 사실을 무엇을 갖고 증거할 것이냐? 그런 경험이 아주 많습니다. 아주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하고 같이하시는 것을 어디서나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해라, 해라” 하면서 총칼로 위협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무니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길거리에서 헌드레이징을 하고 이러는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참사랑의 길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참사랑을 가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게 놀라운 거라구요!
선생님은 일생 동안 핍박받으면서, 이런 모든 법정투쟁을 하면서 지금도 전진하고 있습니다. 법정투쟁은 생각도 안 합니다. 세계 문제를 더 생각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러한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내가 잘 압니다. 이것이 무니들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여러분은 부모형제와 나라 그리고 세계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비참한 환경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런 환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내가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을 좋아하고, 내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이것은 명백합니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아내까지도 희생시켜서 나라를 위해 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일족과 자식들을 희생시키더라도 나라를 위해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나는 통일교회의 식구들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그 식구들을 희생시키기를 원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그래야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참사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랑이여, 영원히 나에게 같이하소서! 영원히 나에게서 떠나지 마소서”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과 비교해서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몇 퍼센트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다는 말은 통용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알아요, 몰라요? 몇 퍼센트짜리인지 알지요? 그러니까 “좀 놀게 하고, 좀 쉬게 하고, 좀 편안히 자게 해주지 이게 뭐야” 하면서 불평하는 자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놈아, 너 왜 놀라고 해” 하면서 자기하고 싸워야 됩니다. (130-218)
불행한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행복한 사람
여러분에게 선생님이 명령하고 왜 그래요? 왜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매일 나가서 열심히 활동하라고 하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참사랑을 원하는 여러분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내가 무서운 사람이지만, 여러분에게 사랑을 가지고 대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가정에서, 학교 선생에게서, 나라의 대통령에게서, 세계 대통령에게서 사인을 받는다는 것이 어렵지만 거기에는 참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명령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하고 선생님들이 잔소리하는 것 다 싫지요? 그렇지만 누구든지 회사 사장의 사인과 나라 대통령의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선생님의 사인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다 죽어서나 이 세상에서나 참부모의 사인이 필요합니다. 참부모의 사인만 가지면 여러분은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어때요? 필요해요, 필요하지 않아요? 필요하다면 얼마나 필요해요?
여러분이 10년 동안 선생님에 대해서 얼마나 불평했어요? 여기에 앉아 있는 마이클도 얼마나 불평을 했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신학교에 있는 동안 선생님이 군대같이 명령한다고 항상 불평했습니다. 어디, 얼마나 불평했는지 오늘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구요! 얼마나 불평을 많이 했어요? 여러분 가운데 불평을 안 했다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이제 모가지를 비틀고 다리를 거꾸로 매도 불평을 안 할거예요? “이미 내 모가지는 잘라서 바친 모가지요. 언제 죽어도 좋소” 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됩니다.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는 사람이 아들을 바치는 것은 보통이고 아내를 바치는 것은 보통이지요. 아직까지 내 생명이 바쳐지지 않은 것만 해도 하나님께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나는 전세계의 통일교회를 다 투입하더라도 그 이튿날 나는 또 재출발합니다. 내가 살았으니까 재출발한다구요. 그러면 하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표준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통일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했고…” 하는 그런 수작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개념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위대합니다.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어디 가든지 백 점입니다. 언제나 이 원칙은 승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 선생님이 알고 있는 진리의 포인트요, 하나님이 세우고 계시는 진리의 포인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이여, 영원히” 하는 말의 맛을 알겠어요? 그게 누구를 위한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입니다. 사랑만 쥐는 날에는 하나님한테 다른 무엇을 간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종적이면, 나는 횡적이 됩니다. 종횡이 마찬가지입니다. 도니까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을 갖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전지전능, 무소부재와 모든 것을 주더라도 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랑만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의 지식이고 사랑의 무한한 힘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사랑의 지식이 필요하고 사랑의 무한한 힘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세상을 내가 컨트롤해야 되겠는데 무엇으로 컨트롤할 것이냐 하면 사랑의 힘을 가지고 컨트롤한다는 것입니다. (130-220)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요, 사랑의 대상
여러분은 “사랑의 매를 한번 맞아 보자! 그래서 궁둥이에 멍이 들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하고 생각해 봤어요? 내가 여자라면 그런 생각을 해봤을 것입니다. “사랑의 매를 맞아서 궁둥이에 멍이 들고 피가 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가서 자랑할 게 뭐예요? “조그만 미국 여자, 너 지상에서 뭘 했어” 하면, “내가 하긴 뭘 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남편한테 궁둥이에 피가 터지도록 맞으면서도 남편을 사랑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그저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할 때, 하나님이 “아, 요것 봐라” 하면서 다른 말씀을 못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런 여자의 말을 듣고 “너 놀라운 여자다. 역사상에 최고로 위대한 것을 발견했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위대하겠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은 어때요? 미국 여자들은 어때요? 좋아요, 싫어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선생님도 어머니한테 한번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머니가 성내면 안 해준 것만 못할까봐 내가 못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참사랑의 주관을 안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우리가 가까이 느낄 수 있느냐? 하나님을 내 집안에서 쫓아낼 수 없고, 내 살과 세포 그리고 마음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얼마나 가까워지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주체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내가 없으면 안되고, 하나님의 사랑도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이 특권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이니까 희망을 가지고 1984년은 보다 하나님의 친숙한 사랑권 내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전진하자는 것입니다. (1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