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8권 9일
사랑의 귀결점 (훈독본)
- 제2회 협회 간부수련회에서 하신 말씀-
날짜 : 1970. 3. 17(화)
장소 : 한국 통일산업(구리시수택리)
만민의 욕구의 표준
나를 두고 볼 때, 나는 역사적인 산물입니다. 또, 과거의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의 인연을 통해서 태어난 나입니다. 그러면 내가 태어나게 된 본연의 바탕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의 바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길을 가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좋았던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것으로 상속받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나를 주체로 세우게 되면 역사적인 상대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또 역사의 주체를 세우면 나는 그의 상대적인 존재가 되어서 그 역사의 주체와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주체와 현실적인 내가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역사를 지배하시고 현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과 상대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은 사랑의 목적이 성사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온 세계의 만물 앞에 절대적인 주체로서 만물을 상대적인 존재로 세워 가지고 사랑을 주고받고자 합니다. (30-72)
성장과정을 통한 완성의 기준
인간은 자체의 생명을 영원히 연장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생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영생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종교계에서나 양심세계를 추구하는 선한 사람들이 문제삼고 나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우리의 욕망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인간에게는 현실만이 아니라 과거까지 지배하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인간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주체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피조세계의 만물이면 만물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은 한계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에 한계선이 없는 한 행복의 기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욕망이 앞서서 자기를 끌고 가는 자리에서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욕망이 다 이루어져서 만족상태에 도달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욕망의 한계선을 소화하지 못하면 영원한 이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도 한계선이 있어야 됩니다. 그 한계를 지어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체나 상대가 요구하는 것보다 큰 것이어야 됩니다. 그 둘이 하나로 융화될 수 있고 중화될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완전무결하고 영원한 현재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라야 하는데, 그것이 사랑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진정한 내 소유를 바랍니다. 또, 그 다음에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체는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원인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지금까지 철학과 종교는 그러한 관계를 모색하고 추구해 나왔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사람을 원하고, 진정한 만물을 원하고, 진정한 근원자를 원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사람과 진정한 만물 그리고 진정한 근원자 혹은 절대자를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나 자신이 그러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은 나로 말미암은 사랑이 아닙니다. 근원적인 존재로 말미암은 사랑입니다.
그 근원적인 주체와 내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주체는 상대보다, 상대는 주체보다 더 존중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권입니다. 둘이 서로가 중요시할 수 있는 사랑권인 것입니다. 그 사랑권을 개체를 중심삼고 보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사랑의 기원에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방법을 모색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전체의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아닌 입장에서 자기를 결정짓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성장과정을 통한 완성의 기준입니다. (30-74)
자기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사람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사랑이 막연했습니다. 그러면 왜 자기를 사랑하느냐? 절대적인 사랑권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로부터 연결되지 않고는 전체적인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할 수 있는 사랑의 내용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해야 됩니다.
문제는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상대적인 관계를 전부 다 부정해 버리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세워 놓고 자기를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랑은 하면 할수록 실패의 동기가 됩니다. 횡적으로는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고, 종적으로는 모든 역사를 파탄 시키는 동기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원칙에 따라서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는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체 앞에 절대적인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존재가 가야 할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자기를 사랑하더라도 자기를 표준 할 것이 아니라 주체를 표준해야 됩니다. 그래야 내가 주체 앞에 상대가 되어서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어떤 때 가능하냐? 이상세계에 있어서 사랑권을 중심삼은 본체 앞에 상대적인 존재로 설 때 가능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한 채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파탄됩니다. 자기가 행동하는 일체가 주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으로 결실되는 것이 아니라 파탄적인 내용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로써 이루어지는 사회나 국가는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의 그 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입장에서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영원불변한 주체 앞에 완전무결한 상대로서의 나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사랑이 되어서는 안되고 절대적인 주체가 고대하는 인류를 품기 위한 사랑, 모든 사랑을 대표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인류를 대표하는 하나의 분자입니다. 또한, 나는 인류와 횡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본다면 지엽적인 실체입니다. 나는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적인 관념권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기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자기의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받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근원적인 사랑의 주체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받고 싶은 사랑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사랑권, 자식은 부모의 사랑권에 들어가서 서로가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 자기의 것을 사랑하는 것을 확대하게 되면 결국에는 그것이 근원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요, 모든 인류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요, 만물을 주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적인 자기의 사랑을 먼저 완성하지 않으면 절대적인 주체의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에게는 이런 운명이 창조될 때부터 부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파탄이 오게 됩니다. (30-76)
완전한 주체가 결정되면
우리는 절대적인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권에 있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에 욕망은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가까운 상대는 누구냐?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자,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가정완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자신의 개인적인 사랑을 완결시킨 다음에는 상대적인 사랑권을 형성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이 세계는 결과로 보면 남자와 여자입니다. 이 남자와 여자를 묶어 주는 것이 상대적인 사랑입니다. 부부가 생겨난 것도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자기 부모로부터 인연 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 가정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전부 다 연결됩니다. 그 남성과 여성의 권내에 세계가 규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사람들을 전부 다 규합한 것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와 하나되는 것은 근원적인 주체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에게 효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과 통합니다.
부모는 어떤 존재냐? 자기와 최단거리에 있는 존재요, 절대 이상의 사랑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절대자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나와 확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냐? 그 부모 앞에 온 인류를 규합할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 자녀를 필요로 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함과 동시에 상대를 갖고 싶어하고, 부모를 갖고 싶어하고,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인 하나님, 즉 주체 앞에 있어서 가정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가정이 남아질 수 있고 후손들도 남아질 수 있습니다. 부부가 인연을 맺어서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랑권을 추구하게 되면 입체적인 세계로 얼마든지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후손들까지 영원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규합시켜서 하나의 기준을 마련해야 됩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요, 부부는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며, 자녀는 미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와 부부 그리고 자녀가 하나되어 천주를 대표해서 우리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고, 후손들을 대해서도 우리를 따르라고 할 수 있고, 내심으로나 외심으로 주장할 수 있는 천정이 통하는 그곳은 천지에 기억될 것입니다. (30-78)
금후의 역사가 원하는 것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고 당신이 지으신 세계의 안팎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존재를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 결과적인 하나의 기점이 가정입니다. 가정 이외에는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부모와 내가 하나되는 것은 역사와 현실이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나 하나를 중심삼고 부모를 사랑하므로 과거를 사랑할 수 있고, 상대를 사랑하므로 현실을 사랑할 수 있고, 자녀를 사랑하므로 미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3시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의 사랑이 결집된 핵심체가 가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시조는 타락했고, 나는 그 후손입니다. 이 타락한 세상의 인간을 구하러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데, 그가 찾아오시는 제일 근원적인 기점이 가정입니다. 그러니까 가정을 붙안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완전히 해원 되면 메시아가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하나님이 우주를 주관하는 사랑의 닻을 내리실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됩니다. 그런 연고로, 가정의 사랑이 떠난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개인적으로 하늘을 대하는 것이 행복이냐? 그것은 2차적인 것입니다. 사회에서 역사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 행복이냐? 그것도 2차적입니다. 인간이 영육을 합하여 살고 있는 지상생활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것, 제1차적인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어떻게 하나님과 연결되고, 어떻게 상대와 연결되고, 어떻게 미래의 심정과 연결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뜻을 합해야 됩니다. 가정과 가정이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들 가운데는 반드시 주체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종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횡적인 입장에서 보면 주체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가정들은 그 가정을 본받아야 됩니다. 주체적인 가정을 본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두 다 어느 개인이면 개인을 본받으려고 했고 발전한 사회를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받으려고 한 가정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가정이 나타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에 남아진 문제는 온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금후의 역사가 원하는 것은 이 천주를 통합할 수 있는 사랑권의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만이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이요, 새로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것이요, 우주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에서 우리가 안식하게 되면 행복의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30-80)
천국의 기점
미국에 가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끼리 살고 있습니다. 늙은 노친들만 살고 있어요. 그들에게 “당신들 행복하오” 하고 물으면, “아들네 집에 가고 싶소” 합니다. 그것은 아들네 집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손자가 보고 싶소” 하고 물어보면 안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에서 세계적인 운동을 벌이면 그런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몰려들어올 것입니다. 몇 명만 데리고 나가서 세계적으로 순회하거나 생활적으로 모범이 되는 몇 가정만 갖추면, 세계는 그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고,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천국생활은 어디서부터냐? 가정에서부터입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가정이 확대된 것이지 가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품을 때는 세계의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세계의 인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아갈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역사적인 존재와 시대적인 나를 연결시키는 것, 즉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과 미래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모두 다 천년만년 찬양하게 만들려는 사상이 통일사상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며, 이 길은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천국의 기점은 개인이 아니요, 국가가 아닙니다. 가정인 것입니다. (30-82)
최후로 찾아가서 확정 지어야 할 자리
이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참된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사탄도 가정을 칩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루었다가 하나되지 못하면 파탄되는 것입니다. 부자간과 부부간뿐만 아니라 가정 전체에 파탄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었다가 파탄되는 사람이 받는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못합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슬프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초인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사람은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우주적인 힘을 느끼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힘이 나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떠나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통한 사실입니다. 내가 완전한 합격품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불합격품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불합격품으로서의 요소를 갖게 될 때는 비례적으로 우주의 힘이 몰아냅니다. 그것이 고통으로 나타납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가정에 있습니다. 역사를 품고, 시대를 품고, 미래를 품을 수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을 거쳐오면서 찾아오신 최후의 기점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사랑으로 결속된 가정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다 근원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런 가정을 이루어야 했던 것이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아담 해와에게 주셨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정을 꿈꾸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일차적인 기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가정권 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야 천국까지 무사통과 합니다. 그래야 이 세계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서 싸우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운동이 새로운 역사시대에 나타나야 할 것이요, 그런 운동을 제시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주체의 입장에 서 가지고 횡적으로도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축복가정들이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가정이 사랑으로 하나되면 천지의 어떠한 가치도 초월합니다. 우리가 최후로 찾아가서 확정 지어야 할 자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애를 집약시킨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30-85)
통일가의 갈 길
형제는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머니 대신 딸이요, 아버지 대신 아들이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랑의 전통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탄세계에 그러한 부모가 없었으니까 참부모를 중심삼고 효도의 도리를 본받으라고 교육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선생님과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선생님에 대한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아들딸도 배울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우리 부모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극복한다. 시간을 초월해 있다. 환경을 초월해 있다. 빈곤을 초월해 있다”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이 부모의 명령이라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을 가정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식들이 “이 길은 부모가 간 길이기 때문에 가야 된다. 모든 여건으로 볼 때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 부부가 부모를 위하는 것을 그 자식들로 하여금 본받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후세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기준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정들은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요, 종족들은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요, 민족들은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요, 국가들은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됩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갈 길입니다.
어떤 나라든지 한 나라가 형성되려면 국토가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주권이 있어야 됩니다. 주권은 근원적인 하나님과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나라를 치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인연을 중심삼고 치리해야 됩니다. 그 인연을 중심삼고 백성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백성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번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표하는 사랑의 가정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해야 할 것이 통일가, 통일교회, 통일세계가 가야 할 길입니다. (30-87)*
천일국 훈독경 제8권 9일, 원문
사랑의 귀결점
- 제2회 협회 간부수련회에서 하신 말씀-
날짜 : 1970. 3. 17(화)
장소 : 한국 통일산업(구리시수택리)
만민의 욕구의 표준
나를 두고 볼 때, 나는 역사적인 산물입니다. 또, 과거의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의 인연을 통해서 태어난 나입니다. 그러면 내가 태어나게 된 본연의 바탕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의 바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길을 가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좋았던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것으로 상속받으려고 합니다. 과거에 위대한 성현들의 가르침이나 공적이 있으면,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 그 자체로만 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자기와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의 속성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나를 주체로 세우게 되면 역사적인 상대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또 역사의 주체를 세우면 나는 그의 상대적인 존재가 되어서 그 역사의 주체와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되는 데 있어서는 내가 응할 수 있는 권을 어떻게 만드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주체와 현실적인 내가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역사를 지배하시고 현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과 상대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은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되느냐? 사랑의 목적이 성사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가는 방향을 두고 볼 때 역사를 통해서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생활이라든가 현실에서 세계와 인연을 맺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온 세계의 만물 앞에 절대적인 주체로서 만물을 상대적인 존재로 세워 가지고 사랑을 주고받고자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사랑권입니다.
현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자기 스스로 세계적인 욕망의 권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위해서 싸워 나왔고 지금 현재에도 그런 것을 위해서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봐도 그런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이 연결되는 것은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순리적이고 내적인 활동을 통해서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절대적인 주체의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되느냐? 오늘날 현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절대적인 기준을 서로가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가 선진국이 되고 더 발전하게 되는 것도 그런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 국가의 국민 전체보다 그런 주체적인 한 사람이 전국민의 사상권을 설정하면 그 나라가 부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국가나 세계 앞에 절대적인 사상을 중심삼은 한 주체적인 존재가 나오게 되면 그 존재로 말미암아 상대적인 세계가 벌어집니다. 또한, 고차적인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주체자가 나오게 될 때 고차적인 문화세계가 형성됩니다. 이 시대를 두고 보더라도, 우리 개체는 출세를 바라고 승리를 바라고 있는데 그것도 세계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데 시간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주체의 자리를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그런 주체에 가까이 나가려는 것이 오늘날 존재하는 만민의 욕구입니다. (30-72)
성장과정을 통한 완성의 기준
인간에게는 현실적인 것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체의 생명을 영원히 연장시키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생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한계선을 넘어서 어떻게 영생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종교계에서나 양심세계를 추구하는 선한 사람들이 문제삼고 나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우리의 욕망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인간에게는 현실만이 아니라 과거까지 지배하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 하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인간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주체권을 바라고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피조세계의 만물이면 만물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우리 인간이 만물을 소유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은 한계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에 한계선이 없는 한 행복의 기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욕망이 앞서서 자기를 끌고 가는 자리에서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욕망이 다 이루어져서 만족상태에 도달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욕망의 한계선을 소화하지 못하면 영원한 이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의욕망도 한계선이 있어야 됩니다. 그 한계를 지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냐? 그것은 우리 자체가 요구하는 것이나 상대가 요구하는 것보다 큰 것이어야 됩니다. 그 둘이 하나로 융화될 수 있고 중화될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완전무결하고 영원한 현재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라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할 때 사랑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 진정한 사랑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바라느냐 하면 진정한 내 소유를 바랍니다. 또, 그 다음에 무엇을 바라느냐 하면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체는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원인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지금까지 철학과 종교는 그러한 관계를 모색하고 추구해 나왔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사람을 원하고, 진정한 만물을 원하고, 진정한 근원자를 원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사람과 진정한 만물 그리고 진정한 근원자 혹은 절대자면 절대자를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나 자신이 그러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은 나로 말미암은 사랑이 아닙니다. 근원적인 존재로 말미암은 사랑입니다.
그 근원적인 주체와 내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주체는 상대보다, 상대는 주체보다 더 존중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어요? 바로, 사랑권입니다. 둘이 서로가 중요시할 수 있는 사랑권인 것입니다. 그 사랑권을 개체를 중심삼고 보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사랑의 기원에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방법을 모색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전체의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아닌 입장에서 자기를 결정짓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성장과정을 통한 완성의 기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0-74)
자기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를 사랑하느냐 하면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사랑이 막연했습니다. 그러면 왜 자기를 사랑하느냐? 절대적인 사랑권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로부터 연결되지 않고는 전체적인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할 수 있는 사랑의 내용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해야 됩니다.
문제는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다만,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상대적인 관계를 전부 다 부정해 버리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세워 놓고 자기를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랑은 하면 할수록 실패의 동기가 됩니다. 횡적으로는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고, 종적으로는 모든 역사를 파탄시키는 동기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원칙에 따라서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자기는 절대적인 주체가 될래야 될 수 없습니다. 자기는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체 앞에 절대적인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존재가 가야 할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자기를 사랑하더라도 자기를 표준할 것이 아니라 주체를 표준해야 됩니다. 그래야 내가 주체 앞에 상대가 되어서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어떤 때 가능하냐? 이상세계에 있어서 사랑권을 중심삼은 본체 앞에 상대적인 존재로 설 때 가능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한 채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파탄됩니다. 자기가 행동하는 일체가 주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으로 결실되는 것이 아니라 파탄적인 내용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로써 이루어지는 사회나 국가는 망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세계를 두고 보면 어때요? 이 세계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세계를 창건하는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세계는 개인주의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원인적인 자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원인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한적인 경계선을 절대로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의 그 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입장에서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영원불변한 주체 앞에 완전무결한 상대로서의 나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사랑이 되어서는 안되고 절대적인 주체가 고대하는 인류를 품기 위한 사랑, 모든 사랑을 대표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인류를 대표하는 하나의 분자입니다. 또한, 나는 인류와 횡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본다면 지엽적인 실체입니다. 나는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적인 관념권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기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자기의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것이라고 하는 데에는 반드시 소유관념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원하느냐? 사랑은 자기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받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오늘날 우리 개체들의 입장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근원적인 사랑의 주체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또 받고 싶은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사랑권, 자식은 부모의 사랑권에 들어가서 서로가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 자기의 것을 사랑하는 것을 확대하게 되면 결국에는 그것이 근원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요, 모든 인류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요, 만물을 주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적인 자기의 사랑을 먼저 완성하지 않으면 절대적인 주체의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에게는 이런 운명이 창조될 때부터 부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파탄이 오게 됩니다. (30-76)
완전한 주체가 결정되면
우리는 절대적인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권에 있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욕망은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가까운 상대는 누구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로서 자기를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사랑권은 무엇이냐?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자,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무엇이냐? 우주의 근본적인 주체 앞에는 개체완성보다도 가정완성이 창조적인 것이고, 그것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본연의 사랑이 필요한데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가정완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자신의 개인적인 사랑을 완결시킨 다음에는 상대적인 사랑권을 형성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이 세계는 결과로 보면 남자와 여자입니다. 이 남자와 여자를 묶어 주는 것이 상대적인 사랑입니다. 부부가 생겨난 것도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자기 부모로부터 인연되어 나온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는 표준적인 전통기준을 상속받고 나오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 가정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데, 그 어머니 아버지에게 전부 다 연결됩니다. 그 남성과 여성의 권내에 세계가 규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사람들을 전부 다 규합한 것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와 하나되는 것은 근원적인 주체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에게 효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과 통합니다.
부모는 어떤 존재냐? 자기와 최단거리에 있는 존재요, 절대 이상의 사랑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절대자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나와 확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냐? 그 부모 앞에 온 인류를 규합할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하느냐?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 자녀를 필요로 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함과 동시에 상대를 갖고 싶어하고, 부모를 갖고 싶어하고,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인 하나님, 즉 주체 앞에 있어서 가정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가정이 남아질 수 있고 후손들도 남아질 수 있습니다. 부부가 인연을 맺어서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랑권을 추구하게 되면 입체적인 세계로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후손들까지 영원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규합시켜서 하나의 기준을 마련해야 됩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요, 부부는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며, 자녀는 미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와 부부 그리고 자녀가 하나되어 천주를 대표해서 우리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고, 후손들을 대해서도 우리를 따르라고 할 수 있고, 내심으로나 외심으로 주장할 수 있는 천정이 통하는 그곳은 천지에 기억될 것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결정되면 완전한 대상은 자연히 생겨나기 마련입니다.(30-78)
금후의 역사가 원하는 것
지금까지 하나님이 무엇을 찾아오셨느냐? 주체를 찾아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고 당신이 지으신 세계의 안팎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존재를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 결과적인 하나의 기점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가정 이외에는 우주를 대표할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부모와 내가 하나되는 것은 역사와 현실이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나 하나를 중심삼고 부모를 사랑하므로 과거를 사랑할 수 있고, 상대를 사랑하므로 현실을 사랑할 수 있고, 자녀를 사랑하므로 미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3시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의 사랑이 결집된 핵심체가 가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시조는 타락했고, 나는 그 후손입니다. 이 타락한 세상의 인간을 구하러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데, 그가 찾아오시는 제일 근원적인 기점이 가정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가정을 붙안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완전히 해원되면 메시아가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하나님이 우주를 주관하는 사랑의 닻을 내리실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됩니다. 그런 연고로, 가정의 사랑이 떠난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개인적으로 하늘을 대하는 것이 행복이냐? 그것은 2차적인 것입니다. 사회에서 역사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 행복이냐? 그것도 2차적입니다. 인간이 영육을 합하여 살고 있는 지상생활에서 제일 가치있는 것, 제1차적인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어떻게 하나님과 연결되고, 어떻게 상대와 연결되고, 어떻게 미래의 심정과 연결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뜻을 합해야 됩니다. 가정과 가정이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들 가운데는 반드시 주체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종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횡적인 입장에서 보면 주체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가정들은 그 가정을 본받아야 됩니다. 주체적인 가정을 본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다 어느 개인이면 개인을 본받으려고 했고 발전한 사회를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받으려고 한 가정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가정이 나타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개의 가정을 본받아라” 하는 주의가 안 나왔습니다. “어떤 나라를 본받아라, 아무개를 본받아라” 하던 주장들은 많았지만 어떤 가정을 본받으라고 하는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에 남아진 문제는 무엇이냐? 우리가 숭배할 수 있는 어떤 개인이나 나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금후의 역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잘난 국가도 아닙니다. 이 천주를 통합할 수 있는 사랑권의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만이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이요, 그러한 가정만이 새로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만이 우주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에서 우리가 안식하게 되면 행복의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30-80)
천국의 기점
우리 통일교회는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하려고 합니다.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자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자체가 가야 할 권은 어디냐? 우주의 주관권입니다. 우주 주관권의 중심이 되는 자리에 내가 들어가야 됩니다. 그 자리가 어디냐? 가정입니다.
내가 축복을 해주면서 많은 처녀 총각들을 보는데, 불과 몇 분 전까지 좋으니 나쁘니 하다가도 결정만 되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혁명 중에도 그런 혁명이 없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천지가 뒤넘이치거든요. 지금까지 좋으니 어쩌니 하면서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다가도 일단 결정된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해도 자기들끼리 계속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만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원수가 됩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형성한 사랑권은 역사과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동포애가 아닙니다. 동고애라고 할까요, 뭐라고 할까요? 새로운 말이 나와야 될 것입니다. 앞으로 좋은 말을 하나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미국에 가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끼리 살고 있습니다. 늙은 노친들만 살고 있어요. 그들에게 “당신들 행복하오” 하고 물으면, “아들네 집에 가고 싶소” 합니다. 그것은 아들네 집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손자가 보고 싶소” 하고 물어보면 안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에서 세계적인 운동을 벌이면 그런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몰려들어올 것입니다. 몇 명만 데리고 나가서 세계적으로 순회하거나 생활적으로 모범이 되는 몇 가정만 갖추면, 세계는 그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고,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절대적인 자리에 섰다고 할 때,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주체와 상대가 주고 받으면 절대적인 가정이 됩니다.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은 권내의 모든 존재는 전부 다 굴복합니다. 본래, 사람은 사랑에 굴복하고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생활은 어디서부터냐? 가정에서부터입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가정이 확대된 것이지 가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품을 때는 세계의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세계의 인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아갈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역사적인 존재와 시대적인 나를 연결시키는 것, 즉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과 미래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모두 다 천년만년 찬양하게 만드려는 사상이 통일사상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며, 이 길은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천국의 기점은 개인이 아니요, 국가가 아닙니다. 가정인 것입니다. (30-82)
본래의 창조원칙
여기에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아내면 아내, 남편이면 남편, 부모면 부모, 자식이면 자식들이 서로 사랑하면 사랑권이 갖추어질 것인데, 그러한 사랑권이 종족 앞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동기로 하여 상대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족 앞에 중심이 될 수 있는 동기의 힘을 가져야 됩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인연과 관계를 맺은 가정은 자동적으로 종족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민족 앞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주체의 사랑권만 형성되면 자동적으로 민족 앞에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큰 사랑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좀더 아름답고, 좀더 원만하고, 좀더 내용을 갖춘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이 추구하는 주체적인 사랑권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민족사에 남아지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국가를 찾아 나오는 주체, 즉 하나님과 상대적인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기점을 만들게 되면 그 가정은 국가의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은 개인으로부터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서 세계까지 찾으시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운세에 따라서 점진적인 단계에 앞설 수 있는 것을 추구의 대상으로 삼아서 현실과 관계를 맺으면 상대적인 세계가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랑이 추구하는 본질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하냐? 어떤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냐? 사랑을 느끼며살자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가 존재하는 것은 다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서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밖에 나가서 일할 때, 아내는 집안에서 일해야 됩니다. 몸은 서로 다르지만, 마음은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주체 앞에 마음이 하나되면 상대적인 몸도 자연히 하나됩니다. 남편이 순회를 간다는데, 아내는 “갔다 오소! 나는 피곤하니까 잠이나 자겠소” 해서는 안됩니다. 남편이 순회를 갔다올 때까지 아내도 같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자식들도 그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그 관계는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깨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가 표준하는 사랑의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그것이 깨지는 날에는 절망입니다.
언제든지 사랑하는 부모를 잃어버리면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껴야 효자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잃어버리면 비통함을 느낍니다. 부부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중심삼고 가정이라는 하나의 모체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입니다. (30-82)
최후로 찾아가서 확정지어야 할 자리
이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개체를 가지고는 안됩니다. 참된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사탄도 무엇을 치고 나오느냐? 가정을 칩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루었다가 하나되지 못하면 파탄되는 것입니다. 부자간과 부부간뿐만 아니라 가정 전체에 파탄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었다가 파탄되는 사람이 받는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을 위로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슬프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초인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사람은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우주적인 힘을 느끼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힘이 나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떠나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통한 사실입니다. 내가 완전한 합격품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불합격품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불합격품으로서의 요소를 갖게 될 때는 비례적으로 우주의 힘이 몰아냅니다. 그것이 고통으로 나타납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가정에 있습니다. 역사를 품고, 시대를 품고, 미래를 품을 수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을 거쳐오면서 찾아오신 최후의 기점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사랑으로 결속된 가정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다 근원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런 가정을 이루어야 했던 것이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아담 해와에게 주셨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정을 꿈꾸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일차적인 기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가정권 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야 천국까지 무사통과합니다. 그래야 이 세계도 넘어설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서 싸우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운동이 새로운 역사시대에 나타나야 할 것이요, 그런 운동을 제시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주체의 입장에 서 가지고 횡적으로도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축복가정들이 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이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는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가정생활에 있어서는 가정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통일가 전체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한번 해보자” 하면 두메산골의 오막살이에서도 동참해야 됩니다. 중앙에서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일시에 미쳐지는 관계권이 하나의 세계를 대신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관계권이 한 사람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기뻐하면 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이요, 아내가 기뻐하면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이요, 자식이 기뻐해도 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일시적으로 우주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가정입니다.
하나님과 가정이 사랑으로 하나되면 천지의 어떠한 가치도 초월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이 아름답고 거룩한 자리, 높고 귀한 자리를 찬양할지어다! 이 가정을 따르고, 이 가정의 가치를 백방으로 받아들일지어다” 하면, “옳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백방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모순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혁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로 찾아가서 확정지어야 할 자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애를 집약시킨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30-85)
통일가의 갈 길
형제는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아버지가 서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머니 대신 딸이요, 아버지 대신 아들이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랑의 전통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탄세계에 그러한 부모가 없었으니까 참부모를 중심삼고 효도의 도리를 본받으라고 교육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선생님과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선생님에 대한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아들딸도 배울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우리 부모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극복한다. 시간을 초월해 있다. 환경을 초월해 있다. 빈곤을 초월해 있다”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이 부모의 명령이라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을 가정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식들이 “이 길은부모가 간 길이기 때문에 가야 된다. 모든 여건으로 볼 때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 부부가 부모를 위하는 것을 그 자식들로 하여금 본받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후세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기준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정들은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요, 종족들은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요, 민족들은 국가를 중심삼고하나되는 것이요, 국가들은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됩니다. 딱, 그렇게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갈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개체를 위해서보다 가정을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내 개체를 위해서 싸우면 큰일납니다. 가정은 가정을 위해서 싸울것이 아니라 종족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통일가는 이 민족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민족을 위한 주체성을 확립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제일 소중한 것이 뭐냐? 세계와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는 그곳이 한계점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기준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나라가 없어질 때까지 남아질 것입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주권이 무너질 때 당당하던 나라가 일시에 몰락했습니다. 무엇으로도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땅에 떨어졌습니다.
어떤 나라든지 한 나라가 형성되려면 국토가 있어야 되고, 백성이있어야 되고, 주권이 있어야 됩니다. 주권은 무엇이냐? 근원적인 하나님과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나라를 치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인연을 중심삼고 치리해야 됩니다. 그 인연을 중심삼고 백성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백성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번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표하는 사랑의 가정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해야 할 것이 통일가, 통일교회, 통일세계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확실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3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