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8권 5일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 (훈독본)
- 남평 문씨 종친들에게 하신 말씀 -
날짜 : 1990. 2. 28(수)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609)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 (천일국 훈독경 제8권 5일) - YouTube
출생의 기원
인간은 모두 남자와 여자로 태어났는데 왜 태어났느냐? 그것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모든 우주 전체를 두고 볼 때, 그것들도 나름대로의 주체와 대상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사랑이라는 축을 중심삼고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과 동물세계가 왜 생겨났느냐 할 때 반드시 주체와 대상관계를 중심삼고 상대를 위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그것이 생겨난 원칙에 있어서는 주체가 생겨난 것은 대상, 대상이 생겨난 것은 주체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이고,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입니다. 이렇게 출생의 기원이 나로부터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를 나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창조주로서 전체의 주체적인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옵니다. 그분도 대상 때문에 계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를 하신 것은 상대권을 보존시키시기 위한 것이요, 그렇게 상대권을 보존하신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생존적인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가 필요해서 피조세계를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광물에서부터, 식물, 동물, 인간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만물지중유인최귀(萬物之衆惟人最貴)’라고 할 때 만물지중이란 전체를 말합니다. 전체 가운데서 최고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 인간과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만물이 존속합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무엇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운동을 하느냐? 급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운동합니다. (201-17)
하나님 자신도 절대 복종하고 싶으신 것
지금은 여러분도 나이들이 다 많지만 청춘시대에 그런 때가 있었지요? 첫사랑에 눈을 뜨게 되면 밤이나 낮이나 잠을 모르고 모든 것이 깨어납니다. 눈도 완전히 열리고, 코도 완전히 열리고, 귀도 완전히 열리고, 모든 세포까지도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야, 다 들어와라” 이거예요. 흥분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둥둥 떠다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가 되면 앞을 바라보고 전진하던 남자들도 옆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십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뭘 하시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인간세계에 악이 충만해 가지고 세상이 망했는데 선한 하나님, 이상의 모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걸 버려 두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절대 복종하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뭐냐? 그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01-20)
참의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것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신앙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천지의 대주재인 동시에 선악을 가려 가지고 선한 사람은 천국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보내는 재판장, 천지를 공의의 법을 통해서 다스리시는 재판장이다” 하는데, 그 재판장이 좋아요? 지금까지 역사이래 수천 억의 사람들을 지옥에 보냈다면, 그 하나님의 마음이 좋으시겠어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좌에 앉아서 공의의 심판장의 권한을 가지고 행사하며 사시는 것이 하나님의 생활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싫어하십니다.
인간으로서 참된 길을 가야 합니다. 참된 길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참된 이치 아니에요? 그러면 참된 이치가 뭐냐? 경제를 중심삼고 일생을 바쳐서 일하는 사람은 “돈이 참된 것이다” 할 것입니다. 죽으면 돈을 가지고 가요?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가지고 가지만 돈은 못 가지고 갑니다. 지식을 가지고 가요? 못 가지고 갑니다. 권력을 가지고 가요? 못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나는 죽지만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할 때는 이 생명을 저 영원한 세계까지 가지고 가서 살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영생할 수 있다는 이론을 세울 수 있는 참의 중심이 뭐냐 하게 될 때, 그 참의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뭐냐? 돈을 벌겠다는 사람은 돈을 중심삼은 진리요, 그 다음에 학식을 갖겠다는 사람은 학식이 진리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했댔자 절대적인 자리에 서지 못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영원히 변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있어서 제일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역사를 극복하고 환경을 소화할 수 있으면서 주체성을 기를 수 있는 그런 것이 뭐냐? 참사랑이 그것입니다. 참사랑이 있게 될 때는 전부 다 그 참사랑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보게 될 때 눈은 이리 가고, 코는 이리 가고, 손은 이리 가고, 입은 이리 가고 그래요? 오관이 전부 다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모든 오관 자체가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그 핵이 무엇이냐 할 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01-21)
사랑을 가지고는 다 해방
그러면 지식이 왜 필요해요? 알면 모든 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의 주체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횡적인 분야의 판도를 좁히려고 해요, 넓히려고 해요? 무한히 넓히려고 합니다. 돈을 가져도 1억 원이 있으면 10억을 갖고 싶고, 10억이 있으면 천억이나 십조를 갖고 싶어지는 것처럼 한이 없습니다. 지식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볼 때, 돈버는 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언제 만나겠어요? “이제 됐다”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디예요?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도 “이제 됐다! 나, 지식 더 필요 없다” 하는 때를 언제 만나느냐? 못 만난다는 것입니다. 권력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욕심이 어디서 나왔겠어요? 제1존재, 원인이 없는 곳에서 욕심이 나왔겠어요? 원인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그 원인이 되는 분이 창조주라면 그 창조주를 닮아서 태어난 내가 욕심이 이렇게 큰데, 창조주는 욕심이 얼마나 크겠어요? 얼마나 클 것 같아요?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나와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욕심이 많고 인간도 욕심이 많은데, 이것을 꽉 채우고 “아, 이제는 싫어” 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돈 가지고 안됩니다. 지식 가지고도 안됩니다. 권력 가지고도 안됩니다.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지고는 다 해방이 됩니다. (201-23)
원인적인 존재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나님은 상상하십니다. 그 상상에 미쳐질 수 있는 대상적인 미의 가치를 지닌 것을 바라보면서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이 마음이 천지지간에 제일이구만” 하며 사실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내 안에 갖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활 가운데 있어서 어느 면에 부딪치더라도 그 본체의 기원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동서남북 어디에 가든지 편안합니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볼때기에 흠이 있으면 그것을 가리려고 하지요? 무엇이든지 결여된 점이 있으면 역사시대를 대표해서 “나를 본받아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간단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적인 사랑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가지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자기보다 못생기기를 원하는 사람을 봤어요? 나는 못생겼지만 여편네는 잘생겨야 된다고 하는데, 그런 마음이 어디서 왔어요? 그게 어디가 기원이에요? 마음이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어디서 왔느냐 이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 무엇이 있는 데서 왔는데, 그것이 누구한테서 온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왔습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올라가고 올라가면 어디가 되는 거예요? 전부 다 해 가지고, 우리 일대조의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왔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그 위에는 뭐예요?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원인적인 존재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으면 손 들어 봐요! 있어요, 없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어도 잘난 여편네…. 아들딸도 나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 하는 그게 어디서 왔어요? 근원에서 왔는데, 그 근원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도 낫기를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희생되어도 좋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되는 나는 희생되어도 좋다고 하는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실 수 있는 주체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을 희생시키실 수 있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201-25)
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의 뿌리
이렇게 볼 때,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중심삼고 살겠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가진 아내가 있다면 “아이구, 나를 중심삼고 살겠다” 해요? 아내도 자기를 중심삼고 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살겠다고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도 그 사랑 때문에 희생하려고 하고 여자도 그 사랑 때문에 희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희생해야 되느냐? 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의 뿌리입니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나를 낳아 준 근본입니다. 사랑이 없었으면 내가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존재는 자기를 낳아 준 뿌리를 따라가야 됩니다. 뿌리를 떠나서는 줄기, 가지, 잎, 꽃이나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들은 뭐냐 하면 가지들입니다. 동쪽 가지요, 서쪽 가지요, 남쪽 가지입니다. 이들이 상치하면 뿌리가 꼬부라지는 것입니다. 뿌리가 꼬부라지고 줄기가 꼬부라지고 순이 꼬부라집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듯이 형제지간에 서로 사랑하는 가지를 가진 나무는 곧은 뿌리와 곧은 줄기와 곧은 순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흐트러지면 무가치합니다. 수직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혼자는 외로우니까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짓기 위하여 전개하신 것이 피조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대상과 나의 대상을 알아야 됩니다. 나의 대상과 하나님의 대상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이 정착할 수 있는 중심축을 세워야 됩니다. 거기서 행복의 기원이 생기지 그 외의 기점에서는 그 기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을 하나 붙들면 놓으시겠어요, 안 놓으시겠어요? 죽기 전에는 못 놓으셔야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대상이 하나되는 데 있어서는 이렇게 하나될 뿐만 아니라 저렇게도 하나되고, 저쪽을 뚫고 나갔다가 와 가지고도 하나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편네 방에 들어가게 될 때 인사하고 들어가요? 여편네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을 때 인사해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갈 때 인사하고 그래요? 저쪽에서는 백 퍼센트 오라고 하고, 이쪽은 또 가려고 하잖아요? 그래 가지고는 뭐예요?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돌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여자는 남자의 세계를 점령하고, 남자는 여자의 세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201-27)
무엇을 가지고 영생하느냐
그러면 “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할 때, “모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렇게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 그러지요? 그게 원형모델입니다. 모난 사람은 손해를 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미국에 가서도 둥글둥글 돌아갑니다. 구형이 왜 좋으냐? 구형이 가진 특권은 그 표면의 어디든지 머물게 될 때 수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표면의 어디든지 서게 되면 반드시 수직이 됩니다. 그 표면 전부가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구형은 공평하고 평등합니다. 그렇게 내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니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수직은 전체를 대신하는 중심입니다. 정오가 되게 된다면 그림자가 없습니다. 다른 때는 다 그림자가 있습니다. (201-30)
하나님이 왜 안 보이느냐 하는 문제를 이론적으로 어떻게 규명하느냐? 하나님은 수직의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나타나더라도 수직의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 보게 되면 모릅니다. 볼 수 없습니다. 수직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사랑의 주인공이고 우리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구냐 할 때 부모입니다. 아담 해와가 어렸을 때는 자녀의 자리에 있지만 크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자녀로서 커 가지고 남자를 대표할 수 있고 여자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그 크는 목적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집에서 아들딸이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코도 자기 닮고, 눈도 자기 닮고, 귀도 자기 닮고, 발 끄트머리까지 전부 닮았으면 어때요? 나도 아이들을 많이 갖고 있는데 닮은 녀석을 가서 가만히 보게 된다면 “야! 요것도 나 닮았고, 요것도 나 닮았고…” 그러면 기분이 좋습니다. 이게 무슨 조화냐 이거예요. 절대적인 사랑을 자기가 품게 될 때 만사의 완성이 절대적으로 전개됩니다. 그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사랑이 무슨 통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만 갖다 놓으면 남자나 여자가 죽어도 좋다고 하지요? 망해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생사지권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생명이 사랑을 뿌리로 해 가지고 혈통을 통하는 데 있어서 “나는 영원히 사랑 가운데 살 수 있다” 할 수 있습니다. (201-31)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여러분이 왜 아들딸을 남겨야 되느냐? 그래야 여러분의 피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들딸을 남긴다는 것은 내 제2의 생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을 좋아했으니까 나와 같이 사랑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내 자신은 내적인 마음의 사람과 외적인 몸의 존재를 갖고 있는 나입니다. 마음과 몸이 둘인데, 이 몸과 마음이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하겠어요? 돈 가지고 통일돼요? 지식이나 권력을 가지고 돼요?
몸뚱이는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몸뚱이는 횡적인 걸 전부 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세계를 점령하려고 합니다. “빨리빨리 세계를 점령해라” 하는 것입니다. 욕심은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님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뭐냐? 지극히 높은 곳, 고상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곳, 빛나는 곳, 무한한 곳으로 뻗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높은 데 올라가도 그냥 올라가면 큰일납니다. 높은 데 올라가도 내려가야 되고, 끝에 가도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데 올라갔던 것은 돌아서 낮은 데로 내려가야 된다는 개념을 찾아야 됩니다.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도는 목적은 뭐냐 하면 중앙과 하나되는 것이고 횡적인 기준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어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인들이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해라고 하면서 다 가르쳐 줬지만, 그 누구도 몸과 마음의 싸움의 기원이 된 것을 치리하라고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투쟁적인 환경을 극복해야 된다고 하면서 통일방안이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여기에 서 있는 종장님입니다. 아시겠어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몸 마음이 싸웁니다.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이 주체라면 몸은 거기에 딱 달라붙어서 따라가야 되는데, 그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이 갈라져서 싸움을 하고 있는 타락한 인생을 누가 해방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01-34)
악한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방법
오늘날의 악한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를 위하는 것입니다. 내 이익을 중심삼고, 나를 중심삼고 사랑하라고 하는 그러한 세계가 되게 되면 인류에게는 파멸밖에 없습니다. 자기 제일주의를 부정하고 상대 제일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데서만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더 잘나기를 바라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넘어서 상대를 위할 수 있는 더 차원 높은 가치의 기준을 세우고 따라가는 데 있어서만이 하나님의 본연지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지 그렇지 않고는 절대 길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나라가 개인주의로 결착되어 있느냐? 이것을 파괴해야 됩니다. 누가 파괴하느냐? 나밖에 없습니다. 타락은 뭐냐? 하나님은 자연적인 주체인데 반하여 사탄이 자각적인 주체로 서 가지고 횡적인 침범을 한 것입니다. 무엇을 침범했느냐? 근본이 되는 핏줄을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탄의 사랑, 사탄의 생명, 사탄의 핏줄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부 다 개인주의입니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지요?
그러나 전체를 위해서 살게 될 때는 전체의 중심에 가서 서게 됩니다. 열 친구들 가운데 10년, 20년이라도 다른 친구를 위하여 생사지권을 넘겠다고 할 수 있는 친구가 중심존재가 됩니다. (201-42)
위하여 삶으로써 복의 조상이 되자
누구보다 위하는 사람은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공적인 면을 중심삼고 보다 위하는 문씨 종중이 되면 천운을 이어받을 수 있는 때가 옵니다. 종장과 더불어 나 그렇게 한번 살아 보겠다는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서 맹세해 보자구요!
문씨들이 복 받는 길은 여러분의 2세들로 하여금 문 총재를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하고 결혼시키면 안됩니다.
결혼하려면 이방 7개국의 사람들하고 결혼하자는 운동이 문 총재의 운동이기 때문에 일본 사람, 미국 사람, 독일 사람, 영국 사람, 불란서 사람, 흑인 등 오색 인종을 중심삼고 엮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엮어 나가니만큼 문씨들만이라도 그런 배포를 가지고 세계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우리 아들딸은 세계의 아들딸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운세가 구원하기를 바라는 모든 2세와 3세들을 품고 하늘로 돌아가게 해야 되겠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문씨는 망하지 않습니다.
문씨들이 참 용합니다. 나도 종교를 세워서 4천3백 년의 역사를 이어 나온 것을 선생님은 43년 만에 뚫고 올라왔습니다. 미국이 실패한 모든 것을 찾아 세우고 하나님이 경륜하신 전부를 찾아 세워 가지고 오늘날의 이런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는 문 총재의 주의를 중심삼고 세계가 달리게 됐습니다.
그 동안 위에 있어서는 안될 악마가 위에 있었고, 선한 사람이 아래에 있었습니다. 악마가 오른편에 있었고, 선한 사람들이 왼편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교체해야 됩니다. 지금 전환시대에 왔기 때문에 주권과 주의 등 모든 것이 무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누구로 말미암아 돌아가느냐 이거예요. 아담이 잘못했으니까 참부모로 말미암아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앞에 서시고, 인류가 그 다음에 서고, 그리고 내가 뒤에서 따라가는 입장에 있습니다.
종장께서 싸우고 있으니까 여러분이 여기에 협조해서 대한민국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복을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의 조상들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부탁입니다. 이것을 충고와 권고의 말씀으로 알고, 부디 그러한 축복을 받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201-57)*
천일국 훈독경 제8권 5일, 원문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
- 남평 문씨 종친들에게 하신 말씀 -
날짜 : 1990. 2. 28(수)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출생의 기원
인간세상의 50억 인류라든가 남한의 4천만 혹은 남북을 중심한 6천만 전체 국민을 합해 놓으면 뭐냐? 그 모두 다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돼 있느냐? 남자와 여자로 돼 있습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귀한 것이냐? 남자와 여자로 태어났는데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피조물로서 존재하며 작용하고 있는 모든 광물계와 식물계로부터 모든 우주 전체를 두고 볼 때, 그것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여 주고받으면서 움직이느냐? 그것들도 나름대로의 주체와 대상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사랑이라는 축을 중심삼고 운동하고 있습니다.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기 자체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작용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차원이 다를 뿐이지 인간들끼리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과 동물세계가 왜 생겨났느냐 할 때 반드시 주체와 대상관계를 중심삼고 상대를 위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그것이 생겨난 원칙에 있어서는 플러스가 플러스, 주체가 주체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이너스면 마이너스, 대상이면 대상이 그 자체를 위해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주체가 생겨난 것은 대상, 대상이 생겨난 것은 주체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이고,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입니다. 출생의 기원이 나로부터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를 나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창조주로서 전체의 주체적인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옵니다. 그분도 대상 때문에 계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가 사실이라고 할 때 절대적인 하나님 자신, 절대적인 고정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얼마나 고독하시겠어요!
여기 나이 많은 양반들, 오래 사신 분들은 생각해 보라구요! 혼자 있게 되면 고독하지요? 아들딸도 다 시집가고, 나중에는 자기 여편네하고 둘이서 이마를 맞대고 살다가 여편네도 죽든가 하면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그러니까 절대적인 주체로 계시는 그분도 기필코 상대권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를 하신 것은 상대권을 보존시키시기 위한 것이요, 그렇게 상대권을 보존하신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생존적인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행사를 하면서 살고 싶으시냐? 혼자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절대 복종하라”고 하시는 하나님 자신도 “나도 절대 복종하고 싶다” 하시는 마음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절대 복종하며 살고 싶으신 소성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도 절대 복종하며 살고 싶지요? 그런 무엇이 있어요, 없어요? 아무리 자기가 당당하게 큰소리로 화를 내더라도 그러고 나서는 적적합니다. 화를 내고도 기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서 소리를 지르거나 춤을 추고 보면 무엇인지 허전합니다. 그냥 그대로 기쁨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원형을 중심삼고 운동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기쁨도 직선적으로 계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상대가 필요해서 피조세계를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광물에서부터, 식물, 동물, 인간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만물지중유인최귀(萬物之衆惟人最貴)’라고 할 때 만물지중이란 전체를 말합니다. 전체 가운데서 최고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 인간과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만물이 존속합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무엇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운동을 하느냐? 급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운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곤하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201-17)
하나님 자신도 절대 복종하고 싶으신 것
지금은 여러분도 나이들이 다 많지만 청춘시대에 그런 때가 있었지요? 첫사랑에 눈을 뜨게 되면 밤이나 낮이나 잠을 모르고 모든 것이 깨어납니다. 눈도 완전히 열리고, 코도 완전히 열리고, 귀도 완전히 열리고, 모든 세포까지도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야, 다 들어와라” 이거예요. 흥분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둥둥 떠다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가 되면 앞을 바라보고 전진하던 남자들도 옆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대부의 규수들도 그렇잖아요? ‘절대 출입금지’ 하지만, 봄이 되거나 사춘기가 되면 전부 다 담을 넘어서 무엇을 찾고 다닙니다. 그러면 찾는 그것이 뭐예요? 남자라는 동물입니다. 다 그런 것을 경험했지요? 또, 사춘기의 젊은 남자는 건너편에 있는 남자들한테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훌륭한 남자라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지나가면 측정합니다. 모든 관심사가 상대적인 존재한테 향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운동하는 것들은 사랑, 영원한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을 중심삼고 운동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운동하려면 반드시 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무엇을 중심삼고 살고 싶어하시느냐?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심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십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뭘 하시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인간세계에 악이 충만해 가지고 세상이 망했는데 선한 하나님, 이상의 모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걸 버려 두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도 이것을 보고 전부 다 시정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세요? 거기에 있는 여러 가지 곡절의 사실들을 풀어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발견했다면 하나님 자신으로 돌아가 가지고 바라볼 때 하나님 자신도 절대 복종하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뭐냐? 그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01-20)
참의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것
여러분, 그렇잖아요? 세상에서 “너, 뭘 하고 싶니” 하면 “나, 대법원 판사 하고 싶다” 그럽니다. 판사라고 하면 다 좋아하지요?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신앙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천지의 대주재인 동시에 선악을 가려 가지고 선한 사람은 천국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보내는 재판장, 천지를 공의의 법을 통해서 다스리시는 재판장이다” 하는데, 그 재판장이 좋아요? 지금까지 역사이래 수천 억의 사람들을 지옥에 보냈다면, 그 하나님의 마음이 좋으시겠어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좌에 앉아서 공의의 심판장의 권한을 가지고 행사하며 사시는 것이 하나님의 생활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싫어하십니다.
판사가 판정을 해 가지고 사형을 시키게 될 때는 반드시 현장을 검증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구요! 대한민국의 헌법을 중심삼고 그를 사형시키지만, 만약 그가 북한의 간첩이라면 북한에서는 애국자입니다. 미국의 법과 대한민국의 법과 소련의 법이 다릅니다. 180개 이상이 되는 모든 나라의 법들이 전부 다 다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존재세계에서 최후의 운명길을 가게 하는 한 나라의 법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재판장이면 재판장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아하, 이 땅을 벗어나면 내가 저 사람같이 되는구나” 할 것입니다. 땅에서 이런 놀음을 했는데 “이 지상이 옳지 못한 세상이고 옳은 천국이 있다면 그 천국에 가서 내가 저와 같은 일을 당하겠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 어디에서나 공의의 참된 길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한 나라의 법에 위배되는 일을 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우주의 공법을 중심삼은 인간으로서 가야 할 단 하나의 공식적인 길을 중심삼고 볼 때 참된 길에 섰다고 할 때는 정의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땅에서 재판하던 판사를 잡아다가 영계에 가서 재판해 가지고 사형장에 보낼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참된 길을 가야 합니다. 참된 길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참된 이치 아니에요? 그러면 참된 이치가 뭐냐? 이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경제를 중심삼고 일생을 바쳐서 일하는 사람은 “돈이 참된 것이다” 할 것입니다. 죽으면 돈을 가지고 가요?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가지고 가지만 돈은 못 가지고 갑니다. 지식을 가지고 가요? 못 가지고 갑니다. 권력을 가지고 가요? 못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나는 죽지만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할 때는 이 생명을 저 영원한 세계까지 가지고 가서 살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영생할 수 있다는 이론을 세울 수 있는 참의 중심이 뭐냐 하게 될 때, 그 참의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문씨의 종중들이 날 종장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좋아해요? 문 총재가 좋아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참된 길, 진리의 길을 좋아합니다.
진리가 뭐냐? 돈을 벌겠다는 사람은 돈을 중심삼은 진리요, 그 다음에 학식을 갖겠다는 사람은 학식이 진리일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했댔자 절대적인 자리에 서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의 이론이든지 전부가 변해 나가지 않아요? 자꾸 변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 나에게 제일 가깝고 제일 좋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영원히 변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있어서 제일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멀리 있으면 안됩니다. 나에게 제일 가깝고 내 근본과 하나될 수 있고,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을 갖고 사는 나라고 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부러우시겠어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역사를 극복하고 환경을 소화할 수 있으면서 주체성을 기를 수 있는 그런 것이 뭐냐? 참사랑이 그것입니다. 참사랑이 있게 될 때는 전부 다 그 참사랑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눈이 그리로 가고, 귀도 그리로 가고, 코도 그리로 가고, 입도 그리로 가고, 손도 그리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오만가지 잡동사니의 사랑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눈과 코와 입과 귀를 포함한 오관이 초점을 맞추겠다고 하면서 찾아가는 것이 사랑 아니에요? 사랑하는 대상을 보게 될 때 눈은 이리 가고, 코는 이리 가고, 손은 이리 가고, 입은 이리 가고 그래요? 오관이 전부 다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모든 오관 자체가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그 핵이 무엇이냐 할 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01-21)
사랑을 가지고는 다 해방
인간은 몸뚱이만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왜 이중구조로 되어 있느냐? 이중구조로 안 되어 있으면 중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축이 없습니다. 축을 중심삼고 돌아야 됩니다. 사람은 만물 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렇게 서 있는 사람인데 마음이 바르다고 할 때 수평으로 되어 있는 것을 말해요, 수직으로 되어 있는 것을 말해요? 수직으로 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몸뚱이는 어때요? 몸뚱이는 횡적으로 뻗으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세상의 것, 돈, 지식을 원합니다.
그러면 지식이 왜 필요해요? 알면 모든 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의 주체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횡적인 분야의 판도를 좁히려고 해요, 넓히려고 해요? 무한히 넓히려고 합니다. 돈을 가져도 1억 원이 있으면 10억을 갖고 싶고, 10억이 있으면 천억이나 십조를 갖고 싶어지는 것처럼 한이 없습니다. 지식도 그렇습니다. 박물학박사가 되면 의학박사가 되고 싶고, 의학박사가 되면 공학박사가 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한이 없습니다. 그것을 다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이 일생에서는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돈버는 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언제 만나겠어요? “이제 됐다”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디예요?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도 “이제 됐다! 나, 지식 더 필요 없다” 하는 때를 언제 만나느냐? 못 만난다는 것입니다. 권력도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면 아시아의 대통령이 되고 싶고, 아시아의 대통령이 되면 세계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합니다.
이 우주의 중심으로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 때 나도 하나님보다 낫겠다고 해요, 못하겠다고 해요? 여러분의 욕심이 어때요? 낫겠다고 해요, 못하겠다고 해요? 아무리 얼굴이야 제멋대로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은 하나님까지도 잡아서 포켓에 넣고 싶어합니다. 또, 하나님 가운데 하나님보다 귀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제쳐놓고 그 귀한 것을 잡으려고 합니다. 제일 귀한 것, 귀한 것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것을 갖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욕심이 어디서 나왔겠어요? 제1존재, 원인이 없는 곳에서 욕심이 나왔겠어요? 원인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그 원인이 되는 분이 창조주라면 그 창조주를 닮아서 태어난 내가 욕심이 이렇게 큰데, 창조주는 욕심이 얼마나 크겠어요? 얼마나 클 것 같아요?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나와 같습니다.
하나님도 욕심이 많은데 누구만큼 욕심이 많으시냐? 나는 하나님 앞에 욕심만은 지고 싶지 않아요. 여러분은 지고 싶어요? 그러면 하나님도 욕심이 많고 인간도 욕심이 많은데, 이것을 꽉 채우고 “아, 이제는 싫어” 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돈 가지고 안됩니다. 지식 가지고도 안됩니다. 권력 가지고도 안됩니다.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지고는 다 해방이 됩니다.
여러분, 짝사랑을 하다가 도수를 지나 가지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상사병이라고 하지요? 한번 앓아 봤어요? 상사병을 앓아 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그립고 얼마만큼 귀한가를 상사병을 앓아 보지 않은 사람은 상사병을 앓아 본 사람만큼 모릅니다. 그것을 앓아 본 사람은 심각한 사람이고 바른 길을 가게 되면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는 주체가 되든가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깔보든가 허투루 봐서는 안됩니다.
누구든지 결혼할 상대를 상사병을 앓는 이상 간절한 자리에서 찾고 싶다고 하는 말은 옳은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겠어요? 상사병을 앓는 이상으로 간절한 마음의 자리에서 사랑의 대상을 소유할 때, 그 남성이나 여성의 행복이 극치에 달할 것이라고 할 때는 “음…” 하게 되는 것입니다. (201-23)
원인적인 존재
하나님한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돈은 얼마든지 만드실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도 아닙니다. 다이아몬드 별들이 얼마나 많아요! 수억의 별들이 있는데 거기에 다이아몬드로만 된 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90퍼센트 금덩이로 된 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비취로 된 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부자예요, 아니에요? 220억 광년이라는 그 세계에 보화의 별들이 꽉 차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나님은 상상하십니다. 그 상상에 미쳐질 수 있는 대상적인 미의 가치를 지닌 것을 바라보면서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이 마음이 천지지간에 제일이구만” 하며 사실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러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보니까 그렇습니다. 천신만고해서 죽느니 사느니 하면서 뒤넘이치고 영계를 다 들춰보고 나니까 “아이구…!” 기가 찬 것입니다. 전부 다 내 안에 있었는데, 이게 뭐냐 이거예요. 다 갖고 있습니다. 주변에 다 있어요. 죽으면 다 영계에 갑니다. 여러분, 영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요? 이 세계 인류 가운데 영계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백 분의 일도 못 됩니다. 영계가 확실히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활 가운데 있어서 어느 면에 부딪치더라도 그 본체의 기원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동서남북 어디에 가든지 편안합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아무리 미인이라도 볼때기에 흠이 있으면 그것을 가리려고 하지요? 무엇이든지 결여된 점이 있으면 역사시대를 대표해서 “나를 본받아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간단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적인 사랑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의 논리는 전부 다 “그 말이 거짓말이지 그거 맞는 말이야? 가 봤느냐 말이야. 그거 어떻게 알 수 있어” 그랬습니다. 의심스럽지요?
내가 한 가지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자기보다 못생기기를 원하는 사람을 봤어요? 나는 못생겼지만 여편네는 잘생겨야 된다고 하는데, 그런 마음이 어디서 왔어요? 그게 어디가 기원이에요? 마음이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어디서 왔느냐 이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 무엇이 있는 데서 왔는데, 그것이 누구한테서 온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왔습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올라가고 올라가면 어디가 되는 거예요? 전부 다 해 가지고, 우리 일대조의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왔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그 위에는 뭐예요?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원인적인 존재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게 결론입니다. 그 결론이 논리적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으면 손 들어 봐요! 있어요, 없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어도 잘난 여편네…. 아들딸도 나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 하는 그게 어디서 왔어요? 근원에서 왔는데, 그 근원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도 낫기를 바라십니다. 어때요? 틀렸어요, 맞았어요?
또, 하나님이 남자격 주체 신이라면 여자격 주체 신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죽더라도, 하나님이 희생되더라도 그 상대를 남겨 놓고 싶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희생되어도 좋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되는 나는 희생되어도 좋다고 하는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실 수 있는 주체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을 희생시키실 수 있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201-25)
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의 뿌리
이렇게 볼 때,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중심삼고 살겠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가진 아내가 있다면 “아이구, 나를 중심삼고 살겠다” 해요? 아내도 자기를 중심삼고 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살겠다고 합니다. 부부지간의 관계가 뭐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요? 철주를 박아 놓고 둘이서 매여 살아요? 사랑인지 무엇인지, 두루뭉수리인지 판박이인지 몰라도 거기에 붙어사는 것 아니에요?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도 그 사랑 때문에 희생하려고 하고 여자도 그 사랑 때문에 희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희생해야 되느냐? 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의 뿌리입니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나를 낳아 준 근본입니다. 사랑이 없었으면 내가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존재는 자기를 낳아 준 뿌리를 따라가야 됩니다. 뿌리를 떠나서는 줄기, 가지, 잎, 꽃이나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들은 뭐냐 하면 가지들입니다. 동쪽 가지요, 서쪽 가지요, 남쪽 가지입니다. 이들이 상치하면 뿌리가 꼬부라지는 것입니다. 뿌리가 꼬부라지고 줄기가 꼬부라지고 순이 꼬부라집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듯이 형제지간에 서로 사랑하는 가지를 가진 나무는 곧은 뿌리와 곧은 줄기와 곧은 순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흐트러지면 무가치합니다. 수직이 안됩니다.
그러면 왜 수직이 되어야 하느냐? 그 수직의 꼭대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근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간에서 찌그러지면 그 꼭대기와 통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게 살고 사랑하면서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라고 합니다. 뿌리가 곧아져야 되고, 줄기가 곧아져야 되고, 순이 곧아져서 하늘과 땅에 사랑의 축이 있다면 그 축과 평행선이 되어야 합니다. 산에 가서 보게 되면 좋은 나무는 키가 크고 곧은 나무지요? 작은 나무도 곧아야 되잖아요. 나무한테 “너, 어떻게 클 거야” 하고 물어 보면, “저 큰 나무와 평행하게 크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까지도 투입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혼자는 외로우니까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짓기 위하여 전개하신 것이 피조세계입니다. 여기에서 진화냐, 창조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시간이 없지만 한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근본문제는 뭐냐? 이것이 어긋나면 안됩니다. 고향이 없는 나그네는 일생을 살아도 어디에 가서 묻힐 곳도 없고 묻어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문제를 확정짓지 않으면 마음이 정착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대상과 나의 대상을 알아야 됩니다. 나의 대상과 하나님의 대상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이 정착할 수 있는 중심축을 세워야 됩니다. 거기서 행복의 기원이 생기지 그 외의 기점에서는 그 기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을 하나 붙들면 놓으시겠어요, 안 놓으시겠어요? 죽기 전에는 못 놓으셔야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대상이 하나되는 데 있어서는 이렇게 하나될 뿐만 아니라 저렇게도 하나되고, 저쪽을 뚫고 나갔다가 와 가지고도 하나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남자하고 여자는 인격이 다릅니다. 하나가 올라가려는 기운을 뻗는다면 하나는 내려가려는 기운을 뻗어서 균형을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사랑하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뚫고 나가느냐 이거예요. 여자면 여자의 비밀 근거지, 제일 비밀 근거지의 중앙복판을 뚫고 나가라고 하고, 또 남자의 비밀 근거지를 뚫고 가라고 할 수 있는 길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얼마나 달라요!
여러분이 여편네 방에 들어가게 될 때 인사하고 들어가요? 아저씨들, 어때요? 여편네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을 때 인사해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갈 때 인사하고 그래요? 저쪽에서는 백 퍼센트 오라고 하고, 이쪽은 또 가려고 하잖아요? 그래 가지고는 뭐예요?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돌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여자는 남자의 세계를 점령하고, 남자는 여자의 세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점령하느냐? 총칼이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점령할 때, 그 방의 모든 것이 다 웃고 좋다고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아이고, 당신들이 뒤넘이치는 것을 보니까 나도 뒤넘이치고 싶다” 하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비로소 행복이 풍선처럼 둥둥 뜨고 둥글둥글할 수 있는 기분이 됩니다. 그렇게 꽉 찬 사랑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201-27)
무엇을 가지고 영생하느냐
그러면 “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할 때, “모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렇게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 그러지요? 그게 원형모델입니다. 이렇게 짜부러져 가지고는 안됩니다. 둥글둥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난 사람은 손해를 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고 지독한 사람인데, 이런 세계를 알다 보니까 기성교회가 40년 동안 “죽어라, 죽어라” 하고 욕을 해도 가만히 있습니다. 그거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죽어라, 죽어라” 해서 안 죽으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천 사람, 만 사람, 몇 억의 사람들이 “레버런 문 죽어라, 죽어라” 해서 안 죽으면, 그들은 죽어도 나는 살아 남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매맞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아프고 분하지만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찾아갈 수 있는 중심의 자리에서 맞게 되면, 그들이 미래에 찾을 수 있는 복을 내가 점령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미국에 가서도 둥글둥글 돌아갑니다. 구형이 왜 좋으냐? 구형이 가진 특권은 그 표면의 어디든지 머물게 될 때 수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표면의 어디든지 서게 되면 반드시 수직이 됩니다. 그 표면 전부가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구형은 공평하고 평등합니다. 그렇게 내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니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수직은 전체를 대신하는 중심입니다. 정오가 되게 된다면 그림자가 없습니다. 다른 때는 다 그림자가 있습니다. (201-30)
하나님이 왜 안 보이느냐 하는 문제를 이론적으로 어떻게 규명하느냐? 하나님은 수직의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나타나더라도 수직의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 보게 되면 모릅니다. 볼 수 없습니다. 수직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사랑의 주인공이고 우리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구냐 할 때 부모입니다. 아담 해와가 어렸을 때는 자녀의 자리에 있지만 크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자녀로서 커 가지고 남자를 대표할 수 있고 여자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딱, 가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이구, 이 이상 더 갈 곳이 없구나! 내게 필요한 것은 저 서쪽에 있는 콩알만한 여자구나” 하게 됩니다. 또, “동쪽에 있는 덩치가 큰 밉살스럽고 보기 싫은 성난 황소 같은 남자 녀석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크는 목적이 뭐예요? 그 목적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보라구요! 개미새끼가 전부 땅 구덩이를 파고 자기들끼리 사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조그만 개미새끼도 수놈이 있고 암놈이 있지요?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볼 때 “요놈의 벼락 맞아 죽을 녀석들…” 하시겠어요? 하나님이 그걸 볼 때 화내시겠어요, 쓱 웃으시겠어요? “이 조그만 녀석들이 뭐야, 요사스럽게? 사람만이 그래야지”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 닮았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집에서 아들딸이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코도 자기 닮고, 눈도 자기 닮고, 귀도 자기 닮고, 발 끄트머리까지 전부 닮았으면 어때요? 나도 아이들을 많이 갖고 있는데 닮은 녀석을 가서 가만히 보게 된다면 “야! 요것도 나 닮았고, 요것도 나 닮았고…” 그러면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부처끼리 앉아 가지고 밥 먹으면서 여편네가 “저놈의 자식! 짓궂은 것이 못된 영감, 당신 닮았다” 하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그런데 “야! 우리 아이가 당신을 닮아서 공부 잘해요” 이러면 기분이 좋아서 웃음 보따리가 흔들흔들하잖아요? 그게 천지의 이치입니다. 다 거기에 매달려 사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조화냐 이거예요. 절대적인 사랑을 자기가 품게 될 때 만사의 완성이 절대적으로 전개됩니다. 그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남자들 중에서 여편네 옷이 여편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놈의 녀석은 죽을 자식입니다. 여편네 옷이 누구의 것이에요? 내 사랑의 옷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때 살부터 만져요, 옷부터 만져요? 프로포즈를 다 해 봤지요? 살을 먼저 만져요, 옷부터 만져요? 옷부터 만지잖아요. 그 옷을 만지고 “이제 됐다”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살을 만져도 여자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아이구, 더 만져 줘! 점점 깊은 데로, 점점 마음대로…” 이렇게 되는 것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무슨 통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만 갖다 놓으면 남자나 여자가 다 뻗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것이 더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요? 망해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생사지권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가지고 영생하느냐 할 때, 그건 여러분의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을 가지고는 영생하지 못합니다. 일생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생명이 사랑을 뿌리로 해 가지고 혈통을 통하는 데 있어서 “나는 영원히 사랑 가운데 살 수 있다” 할 수 있습니다. (201-31)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여러분이 왜 아들딸을 남겨야 되느냐? 그래야 여러분의 피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들딸을 남긴다는 것은 내 제2의 생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을 좋아했으니까 나와 같이 사랑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시집 장가 못 보내게 되면 부모는 한이 됩니다. 왜 그러냐? 연결되어야 할 것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세계에서 이런 모든 원칙적인 기반에 연결되어야 공존하는데 불합격자가 되니까 추방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귀하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내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내 자신은 어떠한 존재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내적인 마음의 사람과 외적인 몸의 존재를 갖고 있는 나입니다. 두 사람을 갖고 있지요? 여러분의 마음이 있지요? 그런데 마음을 봤어요? 못 봤다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마음과 몸이 둘인데, 이 몸과 마음이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하겠어요? 돈 가지고 통일돼요? 지식이나 권력을 가지고 돼요?
몸뚱이는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몸뚱이는 횡적인 걸 전부 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세계를 점령하려고 합니다. “빨리빨리 세계를 점령해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그런 욕심이 있지요? 욕심은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대한민국만이 아니고, 이 지구성만도 아닙니다. 하나님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멋지지요? 그거 다 마음대로 점령하고 “에헴, 소원성취 다 됐다” 해서 어깨에 힘을 주고 “나를 본받아라”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거기에 대해 “옳소이다. 그대의 모습을 찬양할지어다” 그러면 불행하겠어요, 행복하겠어요? 몸뚱이는 세계를 정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뭐냐? 지극히 높은 곳, 고상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곳, 빛나는 곳, 무한한 곳으로 뻗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높으면 얼마나 높으냐? 히말라야 산을 올라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모두 다 어쩔 수 없어서 이러고 있지 엘리베이터를 장치했다면 돈이 얼마나 들더라도, 땅을 팔아서라도 다 올라가 볼 것입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높은 데 올라가도 그냥 올라가면 큰일납니다. 합할 길이 없습니다. 높은 데 올라가도 내려가야 되고, 끝에 가도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막 같은 데는 곧장 가지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포물선을 그려 가지고 돌고 돌다가 들어오면 죽는 것입니다. 곧추 가는 데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구형적인 이상권 내에 내가 있느니라”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데 올라갔던 것은 돌아서 낮은 데로 내려가야 된다는 개념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욕심쟁이들이 그것을 몰랐습니다. 언제나 거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달라붙으면 병이 나서 썩어요.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높은 데 올라갔으면 4천만 백성의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전부 다 품고 돌아가서 보호할 줄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는 그렇잖아요? 그렇게 도는 목적은 뭐냐 하면 중앙과 하나되는 것이고 횡적인 기준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어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인들이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해라고 하면서 다 가르쳐 줬지만, 그 누구도 몸과 마음의 싸움의 기원이 된 것을 치리하라고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투쟁적인 환경을 극복해야 된다고 하면서 통일방안이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여기에 서 있는 종장님입니다. 아시겠어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역사시대의 우리 조상들과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종친 40만을 넘어서 4천만, 그 다음에는 천년만년 앞으로의 수많은 인류상 가운데 마음과 몸이 통일된 기준을 결정한 그런 사람을 언제 발견했고 발견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성인들도 그것을 못 했습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여러분, 남북통일을 바라지요? 평화를 바라지요? 그런데 여러분의 몸 마음이 싸웁니다. 몸 마음이 서로 주체가 되려고 하면 안됩니다.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이 주체라면 몸은 거기에 딱 달라붙어서 따라가야 되는데, 그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길을 앞에 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는 지옥으로 갈 수 있는 길이요, 하나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인데, 그 둘 다 합해 가지고 천국 갈 수 있게 될 때는 해방이 되는 것이고 슬픔과 고통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그 둘이 갈라져서 싸움을 하고 있는 타락한 인생을 누가 해방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01-34)
악한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방법
오늘날의 악한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를 위하는 것입니다. 내 이익을 중심삼고, 나를 중심삼고 사랑하라고 하는 그러한 세계가 되게 되면 인류에게는 파멸밖에 없습니다. 회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 위해서는 이것과 반대의 길을 취해야 합니다. 자기 제일주의를 부정하고 상대 제일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데서만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더 잘나기를 바라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넘어서 상대를 위할 수 있는 더 차원 높은 가치의 기준을 세우고 따라가는 데 있어서만이 하나님의 본연지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지 그렇지 않고는 절대 길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문 총재가 지금까지 세계에 발표한 것이, 바로 우주가 존속하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위해서 존속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여자가 가슴이 큰 것이 여자 때문이에요? 궁둥이가 큰 것이 여자 때문이에요? 자기 때문에 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들딸 때문에 큰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힘이 센 것이 무엇 때문이에요? 왜 힘을 가졌어요? 도적질하라고 그 힘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개척을 해서 자기 일족을 양육하려니까 그런 것입니다.
어찌하여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나라가 개인주의로 결착되어 있느냐? 이것을 파괴해야 됩니다. 누가 파괴하느냐? 나밖에 없습니다. 타락은 뭐냐? 하나님은 자연적인 주체인데 반하여 사탄이 자각적인 주체로 서 가지고 횡적인 침범을 한 것입니다. 무엇을 침범했느냐? 돈 보따리나 다른 것들을 침범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근본이 되는 핏줄을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탄의 사랑, 사탄의 생명, 사탄의 핏줄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부 다 개인주의입니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지요?
시집가는 처녀가 시집갈 때 사랑받기 위해서 간다고 그러지요? 그런데 시아버지나 시어머니 앞에서 “나 사랑받으러 왔으니까 사랑해 주소” 하면 쫓겨나요, 안 쫓겨나요? 남편 앞에 있어서도 “나 사랑해 줘요” 하면서 앵앵거리면 쫓겨나요, 안 쫓겨나요? 일가 전체의 사랑을 받겠다고 하면 6개월도 못 가서 쫓겨납니다. 거기서 안착할 수 있으려면 남편을 사랑하고 시부모를 사랑하면서 위해서 살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럴 때 전체의 중심이 됩니다.
위해서 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주로 해서 살게 된다면 가운데 있더라도 쫓겨납니다. 그러나 전체를 위해서 살게 될 때는 전체의 중심에 가서 서게 됩니다. 열 친구들 가운데 누가 중심이 돼요? 자기를 위주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10년, 20년이라도 다른 친구를 위하여 생사지권을 넘겠다고 할 수 있는 친구가 중심존재가 됩니다.
구형 가운데 중심존재라는 것은 표면에서 볼 때 제일 높은 자리입니다. 여러분도 높아지기를 바라지요? 그러면 왜 중심에 가서 서려고 하느냐? 그 중심에 가게 되면 모든 상대의 기준이 완성을 이룹니다. 그럴 수 있게 하는 보급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형에 있어서는 핵심의 한 점을 통하지 않는 힘의 작용은 없습니다. 거기에 있어서 상대가 춤을 출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가 거기에서 화합이 벌어집니다. 동서가 그것을 중심삼고 화합합니다. 모든 구형의 힘은 거기에서 포괄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구형의 중심자리에 계시려고 합니다. (201-42)
위하여 삶으로써 복의 조상이 되자
누구보다 위하는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거예요?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공적인 면을 중심삼고 보다 위하는 문씨 종중이 되면 천운을 이어받을 수 있는 때가 옵니다. 종장과 더불어 나 그렇게 한번 살아 보겠다는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서 맹세해 보자구요!
그리고 여러분을 보니까 전부 다 나이가 많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의 2세들을 어디로 보낼 것이냐? 이스라엘의 2세들이 가나안에 복귀해서 망했는데 왜 망했는지 알아요? 가나안 7족들 가운데 들어와 보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거지 중의 상거지였습니다. 40년 동안 그렇게 살았던 거지 패들이었는데, 가나안 7족권에는 집이 없나, 논이 없나, 밭이 없나, 양이 없나, 소가 없나…, 다 갖추어서 잘살았다는 것입니다. 잘먹고 잘사니까 7족들이 미남 미녀같이 보였거든요. 그러니까 그 거지 떼거리들이 “아이구, 나 저 여자하고 결혼하면 좋겠다” “저 남자하고 결혼하면 좋겠다”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망했습니다.
문씨들이 복 받는 길은 여러분의 2세들로 하여금 문 총재를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하고 결혼시키면 안됩니다. 가나안 7족들과 결혼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뭐냐 하면 가나안 7족과 같은 것들이 문 총재를 환영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하려면 이방 7개국의 사람들하고 결혼하자는 운동이 문 총재의 운동이기 때문에 일본 사람, 미국 사람, 독일 사람, 영국 사람, 불란서 사람, 흑인 등 오색 인종을 중심삼고 엮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엮어 나가니만큼 문씨들만이라도 그런 배포를 가지고 세계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우리 아들딸은 세계의 아들딸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운세가 구원하기를 바라는 모든 2세와 3세들을 품고 하늘로 돌아가게 해야 되겠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문씨는 망하지 않습니다.
문씨들이 참 용합니다. 용하지만, 또 고집은 여간하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고집이 세거든요. “어디, 두고 봐라! 40년, 몇 십년 두고 봐라. 누가 이기나 보자” 하면서 반석을 뚫고 나오다 보니까 천하가 다 자기 눈 아래에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사십 평생 동안 사탄이 못 나오게 하던 것을 다 뚫고 올라왔습니다. 종교를 세워서 4천3백 년의 역사를 이어 나온 것을 선생님은 43년 만에 뚫고 올라왔습니다. 미국이 실패한 모든 것을 찾아 세우고 하나님이 경륜하신 전부를 찾아 세워 가지고 오늘날의 이런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는 문 총재의 주의를 중심삼고 세계가 달리게 됐습니다.
지금 좌익과 우익이 다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붙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악마가 앞장서고 인류가 그 악마를 따라갔는데, 내가 싸워 가지고는 이제 그들이 돌아섭니다. 돌아서 가지고는 내 손을 붙듭니다. 공산당도 내 손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바퀴 돌아 들어갑니다. 한 바퀴를 돌아서면 왼쪽에 있던 것이 바른쪽에 가게 되고 바른쪽에 있던 것이 왼쪽으로 갑니다. 이렇게 교체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위에 있어서는 안될 악마가 위에 있었고, 선한 사람이 아래에 있었습니다. 악마가 오른편에 있었고, 선한 사람들이 왼편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교체해야 됩니다. 그렇게 교체될 수 있는 자리는 무(無)의 자리입니다. 지금 전환시대에 왔기 때문에 주권과 주의 등 모든 것이 무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누구로 말미암아 돌아가느냐 이거예요. 아담이 잘못했으니까 참부모로 말미암아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여지껏 하나님이 맨 뒤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맨 뒤에 따라오시다가 내가 돌려놓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앞에 서시고, 인류가 그 다음에 서고, 그리고 내가 뒤에서 따라가는 입장에 있습니다. 악마는 내 뒤에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히 작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천 후천의 세계가 금년 2월을 중심삼고, 선생님의 고희를 중심삼고 전환되어 나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12년 동안만 두고 보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훤히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종장께서 싸우고 있으니까 여러분이 여기에 협조해서 대한민국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복을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의 조상들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부탁입니다. 이것을 충고와 권고의 말씀으로 알고, 부디 그러한 축복을 받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20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