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1일
내 몸은 땅을 상징하고 내 마음은 하늘을 상징하거늘, 이 마음과 몸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영원히 일체를 이루어 서로 품고 나가야 됩니다. 마음은 주체고 몸은 대상이며, 하늘은 주체고 땅은 대상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품고 화하여 나아가야 되는 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온 천주와 인연을 맺으려고 인간에게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까지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땅을 지배하고 우리의 마음은 하늘을 지배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한 때는 가고 새로운 한 때가 올 것이거늘 해산할 수 있는 한 때, 몸의 세계가 안식할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 새로운 마음의 기반을 닦기 위한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이 뒤넘이쳐 들어오는 것은 땅 위에 안식의 세계가 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생활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주의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 터전 위에 우리의 마음과 몸이 세계주의의 인연을 넘어서 천주와 인연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접촉시키기 위하여 인간 대표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섭리는 질서적인 법도와 내용을 가지고 기준을 세워서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은혜를 배반한 입장이 되지 않았나 살펴보고 천주의 이념을 위하여 움직여야 할 하늘의 선물인 내 모습은 어떤 자리에 있는지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그 몸이 미급하고 부족하다 할진대 스스로 머리 숙일 줄 알아야 됩니다.
이 몸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정력과 솜씨와 최고의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실체인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며 세계를 꿈꾸고, 이것을 통해서 세계를 치리하고자 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몸을 인간은 잃어버렸습니다. 이 몸, 이 자체를 회복하려고 하셨기에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가복음 8;36) 한 것입니다. 선물된 자신을 유린하고, 선물된 자신을 배반하는 자는 망합니다. 개인이 그러하면 개인이 망하고, 가정이 그러하면 가정이 망하고, 국가가 그러하면 국가가 망하고, 세계가 그러하면 세계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천 년 역사가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허덕이면서 마음과 심정세계의 선물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세계에 있어서의 과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과거에 하나님이 해 오셨던 일을 알아야 됩니다. 왜 이렇게 나왔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또,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야 됩니다. 나아가서는, 미래에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알아야 됩니다. 즉, 때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생활권 내에서 그 이념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안식하고 즐길 수 있는 동시에 그 이념을 통하여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 앞에 우주사적인 마지막 선물로서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물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무한한 세계를 품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품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품는 것,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 밑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여 복귀섭리를 해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으로 볼 때 몸은 땅을 대신한 선물이요, 마음은 하늘을 대신한 선물이요, 이념은 온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이것만도 황공하온데,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까지도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시는 이 고마운 뜻 앞에 여러분이 설 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8-30) |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1일 원문
선물인 줄 아는 우리가 되자
날짜: 1959. 10. 25(일)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잠깐 생각하려는 제목은 ‘선물인 줄 아는 우리가 되자’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연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여러분은 자기를 몹시 중요하게 여깁니다. 살아도 자기를 중심삼고 살려 하고, 모든 세상이 자기를 중심삼고 되어졌으면 좋겠다고 항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제일가는 위치에 있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귀하다면 말할 수 없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인간 자신의 귀한 가치를 알고 자신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피력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들 자신이 무한한 가치를 갖추었을 때는 우리의 한 개체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애노정에서 허덕이며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내 자체는 전체의 가치와 연하려는 목적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나를 두고 보게 될 때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로는 땅이 있습니다. 좌우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가족 그리고 종족이 있고, 전후로는 선조와 후손이 있습니다. 이렇게 상하, 전후, 좌우를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엄연한 인연권 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살아왔지만 이 시간 우리는 그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위를 바라보나, 아래를 바라보나, 전후를 바라보나, 좌우를 바라보나 그 모든 것이 나와 인연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인연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가는 생애노정, 즉 일생 동안의 인연인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역사이래 지금까지 인연되어 왔고 오늘의 나를 지나서 천추만대의 후손까지 인연되어야 할 그러한 인연의 제단 위에 올라가 있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깨어지는 날에는 나를 중심삼은 하늘의 인연이 깨어질 것이고, 땅의 인연이 깨어질 것이고, 세계 혹은 종족과 가정의 모든 인연이 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두고 하늘과 땅을 대신한 소우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하늘을 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 몸은 땅덩이를 차지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나는 천지의 그 무엇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주권자, 대표자의 심정에 의해 움직이고자 합니다. 이러한 나, 이러한 인연을 가진 우리를 깊이 해부해 들어가면 무한히 가치 있는 존재요, 무한히 큰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우리는 왜 태어났느냐? 목적 없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떠먹는 밥 한술도 목적 없이 먹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고 활동하는 것도 그런 심각한 견지에서 보게 되면 중차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내 개체를 중심삼고 봐도 그렇거든,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로는 땅이 있고 세상만사가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어떤 목적과 이념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움직임은 우리 인간, 즉 내 자체를 걸어놓고 판가리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하늘땅, 전세계 앞에 판가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물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제물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하늘과 땅이 선의 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로되, 만일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날에는 하늘땅 앞에 배반자의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느끼고 나타나 책임을 지고 움직였던 사람들이 역사적인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8-10)
하늘의 선물로 보내심을 입은 인간
여러분은 이 땅 위에 보내심을 입었습니다. 부모의 혈육을 통하여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나라는 자체는 천지가 옹호하여 하나의 승리의 모습으로 세우기 위해 이 땅 위에 보낸 지극히 숭고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주적인 견지에서 종족을 대표하든가, 민족을 대표하든가, 국가를 대표하든간에 하늘의 선물로 보내심을 입은 자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내 몸, 내 마음, 내 이념, 내 심정의 모든 것이 내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한 자체를 파고 들어가면 선조가 연결되어 나오게 되고 이 인연을 파고 들어가면 오늘날까지의 인류역사가 딸려 나옵니다. 이 인연에 이끌려 들어가 뒤넘이치는 입장에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신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 자신은 내 것 같으면서도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민족 앞에는 민족을 위하여 보내진 선물이요, 가정 앞에는 가정을 위하여 보내진 선물이요, 부부에 있어서는 상대를 위하여 보내진 선물이요, 하늘땅, 전세계에 있어서는 각기 그것들을 위해 보내진 하나의 선물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에 있어서 자신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음은 하늘을 상징하고 몸은 땅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하늘과 땅, 이 천주는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일 것이뇨? 이념입니다. 그 이념은 생활하는 데 있어서의 관(觀)입니다. 이 생활관은 나를 중심한 생활관이 아니라 하늘땅을 중심한 생활권이어야 됩니다. 즉, 하늘땅을 중심한 생활이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내 한 개체는 하늘땅을 대신하여 빚어졌음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무의미하게 걷고, 무의미하게 움직이고 있으되 나 하나를 빚어내기 위해서 하늘땅 전체가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부모가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땅이 우리의 부모입니다. 몸뚱이를 빚어주고 낳아서 기를 수 있는 터전이 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가 땅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나의 육신을 낳아준 부모가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내 마음의 부모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부모.
이 세 부모를 망각해서는 안될 인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몸은 땅을 상징하고 내 마음은 하늘을 상징하거늘, 이 마음과 몸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영원히 일체를 이루어 서로 품고 나가야 됩니다. 마음은 주체고 몸은 대상이며, 하늘은 주체고 땅은 대상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품고 화하여 나아가야 되는 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그 창조주는 만상을 왜 지었을 것인고? 그냥 동떨어지게 내버려두고 구경이나 하려고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 지으신 만상을 상대적인 입장에 놓고 함께 영원히 주고받으며 화하기 위하여 지으신 세계, 영원히 움직이기 위하여 지으신 세계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에 의해 빚어진 몸과 마음이 영원히 품고 즐길 수 있는 그 하나의 모습은 어디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어떠한 권한을 갖추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몸과 마음이 상충된 경지에 있다 할진대, 이는 창조이념으로 부여된 천적인 선물을 유린한 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으며 나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중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느냐? 몸을 중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이념을 중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심정의 세계를 중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세계는 무한의 인연을 노래하고, 우리의 심정은 무한한 감미와 무한한 충족을 자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의 우리들은 하늘땅을 대신하여 보내심을 입은 귀한 선물입니다.
여러분, 천지를 대신하여 선물로 보내진 자신의 가치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늘이 즐겨 받고 땅이 즐겨 받을 수 있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 보내심을 입었다는 것, 자신은 그러한 모습이 되기 위해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 봤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천성을 따르라고 명령하고 몸은 이 땅을 대하여 투쟁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갈래의 상충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마음과 몸은 역사적인 최종단계에서 하나로 화합해야 되는데 화합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 할진대 종교니, 창조주니, 무슨 이상이니 하는 것들은 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내어진 우리야말로 귀하다면 무한히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물된 자신을 무시하는 자는 천륜의 법도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땅과 하늘에 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륜은 천륜에 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체 앞에 대상, 혹은 주체 앞에 객체는 반드시 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객체는 대상의 입장이기 때문에 주체를 향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는 왜인지는 모르면서도 양심을 중심삼고 생활하려고 합니다. 양심의 명령을 벗어나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천륜 따로 있고 인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과 몸이 화하여 움직이면 천륜과 인륜이 화하여 통일성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륜이 있고 천륜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인간들이 천륜에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천륜에 따르는 생활을 하기 위해 허덕이는 것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의 생활 실상입니다. (8-11)
우리를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내신 목적
여러분은 어쩌다가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인을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개인을 세운 목적은 어디 있습니까? 개인을 세워 무엇을 하고자 하십니까? 개인을 세워 상대를 품게 하여 부부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를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자녀를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을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종족을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종족을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씨족, 부족,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민족을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국가를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국가를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세계를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를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여기에 오늘의 역사가 걸려 있습니다.
인간을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냈는데 그 선물은 개인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몸은 비록 하나의 몸이로되 마음의 세계, 심정의 세계는 무한한 천주를 품고 노래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할 것인고? 심정의 세계를 통하고 이념의 세계를 통하여 지배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를 향하여 “오라, 오라, 오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심을 통해 재촉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양심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늘은 아담 해와를 창조해 놓고 축복했습니다. 아담에게는 해와가 있었고 해와에게는 아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둘이로되 하나를 표준한 하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하나가 되어 온 피조만물을 주관하라고 하늘은 축복했습니다. 해와는 몸의 상징이고 땅의 상징이었으며, 아담은 마음의 상징이고 하늘의 상징이었으니 거기에는 전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둘은 어떻게 되어야 했습니까?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일체였습니다. 그것이 천지의 원칙이었습니다.
몸은 둘이로되 하나, 일체라고 했습니다. 둘이 일체가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하라고 했느냐? 만우주를 주관하라고 했습니다. 주관하라고 한 목적은 무엇이었느냐? 만상과 관계를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창조주는 개인의 창조주가 아니라 온 천주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온 천주와 인연을 맺으려고 인간에게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까지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는 인간이 온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화하듯이 이 세계는 마음과 화하고 몸과 화할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뒤넘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8-14)
인간 최고의 욕망과 가장 큰 선물은
우리의 몸은 천적으로 부여된 하나의 선물인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직까지 선물될 수 있는 몸이 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완전히 마음의 본향을 못 찾았습니다. 하늘과 더불어, 땅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영원한 본향을 못 찾았습니다. 몸의 본향과 마음의 본향을 찾아서 심정을 중심삼고 하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생활의 본향을 못 찾았습니다.
인류역사는 재창조역사라고 했고, 사람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외적인 면으로 몸의 본향을 세계적인 무대에 올려놓기 위하여 이끌어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의 본향입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외적으로 천국형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마음의 본향을 갖추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합니다. 20세기 문명이 제아무리 고도로 발달되었다고 자랑하며 인류 앞에 공헌했노라고 큰소리 친다 해도 인간이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고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부여하지 못하는 한 이 역사는 어느 한때 깨져나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마음을 먼저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몸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고로 우리가 부활하는데도 먼저 외적인 세계부터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리에서 배워서 알겠지만 이 외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선의 형태와 악의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두 진영입니다. 이것이 상충하고 최후의 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것은 하나를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는데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외적인 몸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 할진대 인류역사는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지어 놓고 축복하시기를 “네 몸은 땅을 지배할 것이요, 네 마음은 하늘을 지배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창조원리를 배웠지요? 우리의 몸은 땅을 지배하고 우리의 마음은 하늘을 지배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최고의 욕망이 무엇입니까? 땅덩어리입니까? 아닙니다. 땅은 몸으로 지배할 수 있는 동시에 마음으로는 영계를 지배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편안합니다. 최고의 것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는 그 날까지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말씀은 다 헛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에게 지극히 좋은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흙덩어리로 빚어진 이 몸, 그 이상의 선물이 어디에 있겠어요? 이 몸뚱이에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 이상 큰 선물이 어디에 있겠어요?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이 깃들 수 있는 터전을 세우기 위해 6천 년 동안 피 흘리는 투쟁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을 붙들고 희생에 희생과 고통에 고통을 겪어 오시면서 천륜의 책임자, 천정(天情)의 책임자로서 불러 세우고 택해 세운 무리들이 종교인입니다.
어차피, 한 때는 가고 새로운 한 때가 올 것이거늘 해산할 수 있는 한 때, 몸의 세계가 안식할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 새로운 마음의 기반을 닦기 위한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이 뒤넘이쳐 들어오는 것은 땅 위에 안식의 세계가 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언젠가 한 번은 선물의 가치를 판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하늘이 세우고자 하는 역사적인 몸, 하늘이 찾아 세우고자 하는 천주적인 마음이 되었는가 하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재어 볼 때가 올 것인데, 그 때가 심판날입니다. (8-20)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인간의 가치
몸은 만물을 지배하라고 했으니, 이 몸뚱이는 만물 앞에 어엿이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만물이 그 몸뚱이를 보고 “옳소이다. 내 주인이오!” 하며 숭배할 수 있는 몸뚱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인류역사는 창조주가 축복하신 주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흘러나왔습니다.
과거에 인간이 세계를 몰랐을 때는 세계가 무한히 멀었지만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서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생활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주의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 터전 위에 우리의 마음과 몸이 세계주의의 인연을 넘어서 천주와 인연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은 그럴 수 있는 한날을 바라면서 나왔습니다. 그것을 접촉시키기 위하여 인간 대표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허무맹랑하게 되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섭리는 질서적인 법도와 내용을 가지고 기준을 세워서 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은 한 민족 속의 개인이요, 한 가정 속의 개인입니다. 그렇지만 나라는 한 존재는 우주사적인 책임을 지고 있고, 나라는 한 존재는 하늘땅 앞에 보내진 최대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여러분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몸은 6천 년 동안 하늘땅이 총동원하여 찾으려고 한 귀한 역사적인 선물이구나!” 하며 머리 숙일 줄 아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늘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천국 갑니다.
내 몸뚱이 하나를 완결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역사에 피비린내 나는 자국을 남기셨습니다. 눈물의 길, 피 흘리던 길, 고통의 길, 억울한 길을 걸어오신 것은 나 하나를 선물로 세우려고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세워진 내 한 몸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은혜를 배반한 입장이 되지 않았나 살펴보고 천주의 이념을 위하여 움직여야 할 하늘의 선물인 내 모습은 어떤 자리에 있는지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그 몸이 미급하고 부족하다 할진대 스스로 머리 숙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 갑니다.
그런 것을 느끼고, 또 자기의 가정에서 부부끼리 혹은 자녀를 대할 때도 이런 입장에 서고 자신이 그런 이념을 위하여 보내진 선물이며, 만상을 대할 때도 역시 대우주의 선물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보내진 자신임을 느끼는 사람, 그 사람에게 양심은 빼놓고 그런 관념만 서 있더라도 그는 우주적인 인간이 안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은 역사적이요, 우주사적인 선물인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몰랐을지라도 이제는 알았습니다. 이 몸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정력과 솜씨와 최고의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실체인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며 세계를 꿈꾸고, 이것을 통해서 세계를 치리하고자 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몸을 인간은 잃어버렸습니다. 이 몸, 이 자체를 회복하려고 하셨기에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가복음 8;36) 한 것입니다. 선물된 자신을 유린하고, 선물된 자신을 배반하는 자는 망합니다. 개인이 그러하면 개인이 망하고, 가정이 그러하면 가정이 망하고, 국가가 그러하면 국가가 망하고, 세계가 그러하면 세계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종말인 오늘날 혼란된 사조는 우리의 주위를 휩쓸어 들어오고 있으나, 여기에서 깨져나가지 않고 천륜 앞에 선물된 내 몸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늠름한 모습은 없겠느냐?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이 땅을 대해 하나의 사람을 고대하셨다면, 내 몸은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오니 이 몸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할 때 “오냐!” 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그런 몸은 없겠느냐? 이것이 오늘날 신부의 이념을 찾아 나가는 기독교의 목표입니다.
성신은 예수가 가심으로 말미암아 땅에 왔습니다. 예수는 신랑이기 때문에 하늘, 성신은 신부의 신이기 때문에 땅에서 활동하십니다. 신부의 신이 강림하여 2천 년 동안 허덕이며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선물될 수 있는 몸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물이 완성될 수 있는 제단을 쌓으려는 것이 성신제단, 즉 2천 년 기독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종결되기 전에는 신랑은 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신랑은 어떠한 분으로 오십니까? 마음의 복지 건설, 심정의 복지 건설의 주인공으로 오십니다. 마음의 복지, 마음의 안식처, 심정의 안식처를 품고 대우주관을 갖고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주님이 됩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하나님이 되고, 그래야 우리도 역사적인 승리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8-22)
주님을 맞이할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자
이제는 몸의 복지를 넘어서 마음의 복지를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아무리 내적인 공포가 밀려들고 험한 사망의 물결이 휩쓸려 들어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늠름히 넘어설 수 있는 자, 마음의 복지를 가진 자, 이는 천국 백성입니다. 사망의 물결이 휩쓸지라도 그것을 웃으면서 넘어갔던 과거의 순교열사들은 하늘 백성들이었습니다.
수많은 배반자들을 앞에 놓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던 예수님, 불쌍하고 처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도리어 늠름하게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그 모습은 사나이다운 기백을 지닌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비록 유린당하여 죽었을망정 마음 세계의 복지를 세워 놓고 갔습니다. 마음 세계의 복지는 유린당할 수 없기에 예수님의 몸이 부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때 부활의 권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시는 재림주를 고대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몸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있으면 완전한 플러스는 찾아오는 것입니다.
생전에 주님을 신랑과 같이 모시지 못하고, 스스로 신부와 같이 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개인적인 천국과 가정적인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살아 생전에 개인적인 인격의 예수님, 가정적인 인격의 예수님, 종족적인 인격의 예수님, 사회적인 인격의 예수님, 국가적인 인격의 예수님, 세계적인 인격의 예수님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한번에 덜커덕 세계적인 인격의 예수님으로 된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죽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은 30평생 민족을 위했던 예수님의 인격, 민족적인 인격을 가졌던 예수님을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또, 여러분이 민족적인 인격을 갖추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모시는 승리적인 발판을 세워야만 참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인격의 예수님으로 오실 주님이 품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우리 몸의 안식처, 마음의 안식처, 더 나아가서 신랑 신부의 이념을 세우셨으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하면서 사랑이라는 명사를 남겼습니다. 몸의 안식처와 마음의 안식처가 세워진 후에는 하늘땅을 품는 동시에 하나님을 품을 수 있는 사랑까지 선물로 주려고 했으나 그 일은 다 깨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가 허덕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난 후 예수님을 위하여 세웠던 유대교는 어디로 갔으며,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로 갔고, 옛날의 제사장과 바리새 교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대원수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4천 년 동안 준비된 발판은 산산이 부서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교회가 있었으며 예수님이 몸을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개인적인 선물을 보냈고 민족적인 선물을 보냈으며, 국가 혹은 교단적인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던 예수님, 천적인 선물인 예수님을 품지 못하고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영광과 축복의 날을 고대해 나온 택함받은 선민이 고통에 고통을 당하고 유리(流離)에 유리를 하며 나온 것이 오늘날까지의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죽인 죄의 대가입니다.
그래도 축복을 해 주셨기 때문에 밟히고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세계 앞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영광으로 나서야 할 민족이 서글픈 고난의 역사를 거쳐 나오는 것은 예수님을 죽인 죄 때문입니다. 역사를 변증해 보아도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죽으러 왔다고 믿어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8-28)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자
우리는 몸을 가다듬어 역사적인 범죄를 회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회개하면 다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심부름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민족은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이 아들딸을 사랑하는 기준과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한 기준을 생각할 때 어떤 것이 높을 것 같아요?
예수님이 죽을 때 세 시간 동안 하늘땅이 캄캄했습니다. 그럴 게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4천 년 역사 동안 수고해 나오신 모든 공적이 순식간에 깨져 버리고 사랑하는 아들은 사탄의 올가미에 말려 십자가에 달리던 그 순간에 하나님이 “오호, 구원역사를 완성하는구나! 오호, 승리했구나!”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을 수 없었던 비통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심정을 알고 예수님은 죽어갔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아브라함이나 우리의 선조들에게 저지른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아 피 흘리게 한 죄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고? 하늘의 몸이요, 승리적인 성전이 되고 “나는 네 안에 있고 너는 내 안에 있으며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고 한 것처럼 인류를 대표하여 몸이 안식할 수 있었던 복지가 되고 마음이 안식할 수 있었던 터전이 되었어야 할 그 예수님, 천주를 동원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승리의 터전을 닦으려고 한 그 예수님을 죽인 역사적인 죄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회개해야 됩니다.
2천 년 역사가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허덕이면서 마음과 심정세계의 선물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세계에 있어서의 과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과거에 하나님이 해 오셨던 일을 알아야 됩니다. 왜 이렇게 나왔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또,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야 됩니다. 나아가서는, 미래에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알아야 됩니다. 즉, 때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밤인지 낮인지, 아침인지 저녁인지를 잘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 지금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을절기입니다. 지금의 20세기는 가을절기의 문명시대입니다. 과거 고대의 문명시대는 여름절기, 열대권 문명시대였으며 오늘날은 가을절기, 온대권 문명시대입니다. 가을절기 문명시대가 지나면 겨울절기 한대권적인 문명시대가 다가올 것이며, 그 후에는 삼동(三冬)을 지나 봄절기 문명시대가 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새 시대입니다.
인간시조가 타락한 후 봄절기 문명시대를 못 맞았습니다. 마음이 즐기고, 몸이 즐기고, 하늘을 노래하고, 땅을 노래하고, 하늘땅의 움직이는 모든 것이 하늘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세계를 못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를 맞으려면 여러분이 역사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을 아는 동시에 시대적인 하나님을 알고 미래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전체의 가치를 결정짓기 위한 하나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복지를 이룰 수 있는 한 중심을 세우고 심정의 복지를 이룰 수 있는 한 중심을 세워서 심정과 마음과 몸이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된 후에는 세계를 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에는 세계주의보다 더 큰 천주주의 이념이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주의가 나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이 땅에서 생활하는데 있어서 그 하나님주의를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생활권 내에서 그 이념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안식하고 즐길 수 있는 동시에 그 이념을 통하여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 앞에 우주사적인 마지막 선물로서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물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무한한 세계를 품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품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품는 것,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 밑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여 복귀섭리를 해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 앞에 마음세계의 모든 것, 심정세계의 모든 것을 주고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까지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인간에게 주실 큰 선물이요, 이제부터 우리에게 주실 남아진 선물입니다.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그 선물을 못 받습니다. 하나님은 자신까지 인류 앞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주셨고,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인간과 더불어 살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나고 내가 너이며, 내가 네 아버지고 네가 내 아들딸이다.” 하는 자리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복지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늘은 지금까지 무한히 애써 나오시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볼 때 몸은 땅을 대신한 선물이요, 마음은 하늘을 대신한 선물이요, 이념은 온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이것만도 황공하온데,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까지도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시는 이 고마운 뜻 앞에 여러분이 설 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