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7권 14일
성주식과 혈통복귀 (훈독본)
- 777가정 약혼자 성주식 때 하신 말씀 -
날짜 : 1970. 10. 19(월)
장소 : 한국 중앙수련원
우리가 축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합동결혼식은 통일교회에만 한정되는 결혼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공식적인 노정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복귀노정이 남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최후의 목적은 참된 가정을 찾자는 것입니다. 이 참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된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참된 사람 중에서도 참된 남자가 먼저 나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참된 남자가 참된 여자를 찾아 세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참된 가정이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기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모든 가정을 부정하고 새로이 하나님의 섭리의 뜻에 따라 이와 같은 가정적 기준을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만일 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면 타락한 인간은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누구든지 이 공식적인 조건을 거쳐 나가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약혼식을 한 후에는 성주식이 있고, 그 다음에 결혼식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약혼식과 성주식, 그리고 결혼식은 대관절 무엇이냐? 타락한 모든 내용을 다시 한 번 상징적으로 재현시켜 가지고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행하는 불가피한 행사인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약혼단계에서 타락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약혼한 입장에서 결혼을 잘못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그 잘못된 결혼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이 시정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정하는 데에도 타락한 내용에 반대되는 내용을 갖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해와는 자기들을 중심삼은 그릇된 사랑으로 타락했습니다. 자기들끼리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사장을 개입시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추방하고, 본연의 참다운 아담의 인격을 추방하고, 본연의 참다운 해와의 인격을 추방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의 인연을 도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에게는 원죄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이 원죄를 벗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거짓된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났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재현시키지 않고는 이 원죄를 벗을 수 없습니다. 원죄는 거짓된 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심어졌기 때문에 이 사랑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중심삼은 사랑의 기틀이 없어 가지고는 안됩니다.
우리 통일원리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중심삼고 이루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타락하기 전 약혼단계의 입장으로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기 전 약혼단계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담과 해와가 거짓된 사랑으로 타락하여 거짓부모가 되었고, 그 거짓부모를 중심삼고 세 아들인 가인과 아벨과 셋, 그리고 그들의 아내까지 포함해서 여덟 식구가 타락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여덟 식구의 형태를 복귀하기 위한 안팎의 내용이 바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입니다. 이것을 복귀한 후 하늘의 부모를 모시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늘의 부모가 누구냐 하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는 참부모입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왜 필요하냐? 참부모의 사랑으로 다시 접붙이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인 참부모가 나타나지 않고서는 타락한 인간이 원죄를 벗어버리고 죄 없는 해방된 자리에서 완성단계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혼식은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약혼단계에서 타락한 것을 복귀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성주식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으로 더럽혀진 사탄의 피를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죄를 뽑아 버리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원죄가 있는 사람은 축복의 자리에 못 나갑니다. 사탄의 혈통적 내용을 자신의 몸 속에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축복의 자리에 나갈래야 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원죄를 청산해야 합니다. 이 원죄는 거짓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하려면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조건을 세워 밟아 나가지 않고는 벗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 원죄를 벗지 않고서는 완성한 부부의 자리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축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약혼식을 하고 축복식 전에 성주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타락의 피를 바꾸는 혈통 전환식입니다.
생명은 사랑을 기원으로 하여 탄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활의 역사를 갖지 못합니다. 이것을 통과하고 난 뒤에 하늘나라의 법도를 세워나갈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자격을 계승받아 완성단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비로소 선하다는 공인을 받아야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3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35-215)
완전부활이 되려면
그러면 성주식이란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성립되느냐?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부모는 사탄 편 부모입니다. 그 부모는 사탄 편 가인적인 부모이기 때문에 아벨적인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 아벨적인 부모는 하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의 가정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 가정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시인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나온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것을 3차까지 연장시켜 찾아 나오셨으니, 그것이 기독교를 중심삼은 재림시대입니다.
그러면 재림주님은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재림시대는 완성기준의 시대이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인류의 어머니를 찾으러 오십니다. 즉, 신부를 찾으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신부, 즉 그 어머니는 어떠한 터전 위에서 태어나야 되느냐? 타락한 세계의 아벨적인 어머니의 터전 위에서 태어나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어머니는 타락한 해와의 입장에 해당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 어머니는 예수님 시대에 있어서 마리아의 입장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의 어머니는 예수님 시대 마리아의 보호를 받아 축복의 뜻을 이룰 수 있고, 죄의 인연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처녀로서 참어머님의 입장에 나갈 수 있는 어머니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사시키려고 하셨지만 다 이루시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연결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의 종말시대에 와서 이것을 재현시켜 가지고 다시 맞춰 나가는 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35-217)
그러면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러분은 어디를 찾아 나가야 되느냐? 예수님 시대에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타락하지 않은 어머니의 뱃속을 통과시킬 수 있는 길을 거쳐 타락하지 않은 아버지의 뱃속까지 찾아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활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릇된 자리에서 태어났으니까 그것을 다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된 어머니의 뱃속으로 찾아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성신을 받아야만 거듭난다고 합니다. 성신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성신은 어머니 신(神)이기 때문에 어머니 신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어머니와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즉, 참된 어머니의 몸을 거치는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성신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을 신랑, 즉 아버지 신으로서 모실 수 있고 사모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모의 열이 자기 생명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탄생됩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영과 육이 다 완성된 생명이 되지 못하고 영적인 생명만이 완성된 기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부활체의 기준에서만 머물러 온 기독교는 육적인 부활체의 기준을 찾아 나와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사명이 남아 있으므로 지금까지 재림의 한 때를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35-219)
아담가정과 이삭가정에서의 장자복귀의 섭리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은 혈통을 전환시키는 섭리를 어떻게 해 나오셨느냐?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그들의 관계를 교체시키려고 하셨습니다. 동생이 형이 되고, 형이 동생이 되게끔 바꾸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동생이 형을 굴복시키는 데 있어서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을 자연굴복시켜서 전후가 전도( 顚倒 )되게 해야 했습니다.
해와가 사탄과 먼저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 편 아들의 입장에 선 사람이 가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 선 사람이 아벨이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나야 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탄의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난 것은 비원리적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원리적으로 복귀하려면 첫째 아들로 태어난 사탄 편 가인을 부정하고 둘째 아들로 태어난 하늘 편 아벨을 장자로 세우기 위한 놀음을 하셔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 싸움은 복중에서부터 해야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뼛골 속에 들어 있는 애기씨의 자리까지 들어갔다 나왔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무엇을 하셨느냐? 장자와 차자를 바꿔치는 놀음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가정에서 쌍태를 중심삼고 에서와 야곱이 바꿔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천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에서를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그런 야곱이 21년만에 하란 땅에서 돌아와 가지고 에서를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형제를 중심삼은 바꿔치기의 섭리가 성립되었습니다.
쌍태를 중심삼고 바꿔치기를 하긴 했는데 태어난 다음에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서와 야곱이 쌍태로 태어나 장자복귀의 싸움에서 야곱이 승리를 거둔 것은 40대였기 때문에 그 이전 복중에 있을 때의 장자복귀의 기반은 아직 복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태어난 이후의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태어나기 전의 내용을 보면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의 다말을 중심삼고 베레스와 세라가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장자복귀의 뜻이 다말의 복중까지 찾아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라가 사탄 편의 위치를 취하려고 먼저 나오려 할 때 동생 베레스가 그 형을 밀치고 먼저 태어났습니다. 베레스라는 말은 “밀치고 먼저 나왔다”는 뜻이었습니다. 베레스가 밀치고 나오기 전에 형인 세라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때 산파가 그의 손에 빨간 실을 묶었습니다.
그것은 끝날에 형님과 동생이 세계적으로 바꿔지는 그러한 때가 되면 형인 세라가 손을 내밀고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국가가 먼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이 공산주의 국가를 밀치고 새로운 세계적인 주권을 가지고 오시는 분, 즉 베레스적인 천국이념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이 재림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 어디에서 완전승리를 했느냐? 그 싸움은 내적인 싸움으로서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싸워 바꿔치기를 해 가지고 승리했습니다. 형인 세라와 동생인 베레스가 다말의 복중에서 서로 싸워 승리의 터전을 가지고 있던 형을 동생이 완전히 굴복시켰습니다. 베레스는 복중에서부터 형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형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레스 이후부터는 어머니의 복중에서 전통적인 승리의 기반을 상속받아 가지고 태어난 자리에 있어서는 사탄이 다시 복중에 동참하여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남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 때까지 수천 년 역사를 상속해 내려와 비로소 승리적인 터전을 계승받은 것입니다. (35-221)
역사상 최초로 하나님의 아들로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마리아는 그 시대에 있어서 자신의 생명을 걸어 놓고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추구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갈 수 없었던 자리였습니다. 모세 오경에 의하면, 그 당시는 처녀가 아기를 가지게 되면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시하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시하는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를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를 통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복중에 있었던 예수님에 대하여서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게 된 것도 마리아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출생의 동기도 하나님이요, 또 출생에 이르는 과정도 복중의 승리적인 터전을 가진 마리아의 복중에 있었던 예수님 앞에는 사탄의 아무런 참소조건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시대에 있어서 복중에서부터 기원된 아담과 해와 이후의 모든 싸움의 터전을 비로소 복중에서부터 갈라냈습니다.
그러한 혈통을 타고 나온 사람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던 혈통적인 내용을 갖추고 온 세계적인 대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동기와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참된 아들로 이 땅 위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 대신 탄생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던 완성한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창조원리를 보게 되면,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날 수 있는 완성한 남자, 즉 참다운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재창조의 원칙에 따라서 해와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남성을 위주로 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해와를 찾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5-222)
예수님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그 일을 대신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님과 성신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하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해산의 역사를 한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후손인 우리 인간들은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태어나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에 품겨 들어가야 됩니다. 이것이 성신의 사랑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 신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아버지인 예수님을 찾아 세우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어머니 신이 아버지를 영적으로 사모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모하는 그 사랑의 힘이 작용하여 부딪치는 힘을 느끼는 것이 곧 불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체험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원칙을 완결짓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놀음을 재차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이었느냐? 어머니 신인 성신의 협조를 받아 예수님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뱃속에 있는 애기씨의 입장으로 찾아 들어가기 위해서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뱃속에 들어간 다음 복귀된 새로운 어머니를 통하여 다시 태어났다는 입장에 서야 중생이 됩니다. (35-225)
참아버지와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추어야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선생님한테 절대적으로 반해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가 1950년대에 뜻길을 출발하면서 이런 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어머니가 없을 때인데도 선생님만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슬퍼하면 자기도 슬퍼하고 선생님이 기뻐하면 자기도 기뻐하면서 선생님과 같이 동감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일체의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그것은 아버지의 뱃속에 들어있는 애기씨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뱃속에 있는 애기씨만 되어 가지고는 안되고 어머니의 복중을 필요로 합니다. 즉, 어머니의 뱃속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에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참어머니가 세워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여러분이 아버지의 뱃속에 있을 때 느꼈던 사랑의 은혜를 느껴 가지고 어머니를 사랑하고 모실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재차 어머니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 어머니의 사랑의 인연과 연결되어 가지고 출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출생한 여러분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와 같이 되어야 하느냐? 아벨과 가인은 쌍둥이의 입장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가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 베레스와 세라가 뒤넘이친 것과 같은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생에게 순응할 수 있는 가인적인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벨을 모시고 반대하지 않고 반박하지 않는 가인적인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복귀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선생님의 애기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3년 동안 복중의 애기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3년간의 표어를 “첫째,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를 만들어라! 둘째,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라! 셋째, 보여 주고 자랑하라”로 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여 주고 자랑하라는 것은 사위기대의 복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이 3단계를 중심삼고 복중에 있는 애기와 더불어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것과 같은 조건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3년 동안은 여러분이 보리밥을 먹을 때 같이 보리밥을 먹고, 여러분이 나가서 활동할 때 같은 조건의 활동을 했습니다. 예진 애기와 효진 애기는 어머니가 보리밥을 먹고 낳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도 여러분과 똑같은 심정으로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복중에서 태어난 가인적인 존재로서 어머니를 사랑함과 동시에 애기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일치화됨으로 말미암아 쌍태와 같은 반열에 동참했다는 심정적인 조건을 세워 가지고 그들을 중심삼고 모시는 입장에 서야 복귀가 됩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이런 역사를 다 해 나왔습니다. (35-227)
사위기대를 갖추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어야
이렇게 수고한 역사노정이 현실권 내에 있는 이 길을 찾아오기까지는 6천 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어려운 인연을 거쳐 가지고 부모가 사위기대를 갖추었으니, 여러분도 사위기대를 갖추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으로서 등장하게 되면 6천 년 전에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 더 낫습니다. 또한, 이 땅 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한을 품고 십자가에서 죽어 간 예수님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입장에 섰다고 한다면 예수님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성신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성신은 실체를 갖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실체를 가졌지만 부모를 중심하고 부자의 인연을 맺어 생활하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부모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인 중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자리를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거기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껴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것이 없습니다. 참부모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부모님 가정의 사위기대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35-228)*
천일국 훈독경 제7권 14일, 원문
성주식과 혈통복귀
- 777가정 약혼자 성주식 때 하신 말씀 -
날짜 : 1970. 10. 19(월)
장소 : 한국 중앙수련원
우리가 축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합동결혼식은 통일교회에만 한정되는 결혼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공식적인 노정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우리의 인간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축복을 받는 이와 같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복귀노정이 남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종교를 믿는 것도 이 때문이요, 역사가 지향해 나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최후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참된 가정을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찾아 나오는 최후의 목적입니다. 이 참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된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참된 사람 중에서도 참된 남자가 먼저 나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참된 남자가 참된 여자를 찾아 세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참된 가정이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기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모든 가정을 부정하고 새로이 하나님의 섭리의 뜻에 따라 이와 같은 가정적 기준을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만일 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면 타락한 인간은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누구든지 이 공식적인 조건을 거쳐 나가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약혼식을 한 후에는 성주식이 있고, 그 다음에 결혼식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약혼식과 성주식 그리고 결혼식은 대관절 무엇이냐? 이것은 어떠한 전례에 따라 행하는 식이 아닙니다. 타락한 모든 내용을 다시 한 번 상징적으로 재현시켜 가지고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행하는 불가피한 행사인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어느 단계에서 타락했느냐? 약혼단계에서 타락했습니다. 즉, 완성이라는 목표를 바라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약혼의 목적은 무엇이냐? 결혼입니다. 아담 해와가 약혼한 입장에서 결혼을 잘못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그 잘못된 결혼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이 시정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정하는 데에도 아무렇게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내용에 반대되는 내용을 갖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해와는 자기들을 중심삼은 그릇된 사랑으로 타락했습니다. 자기들끼리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사장을 개입시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추방하고, 본연의 참다운 아담의 인격을 추방하고, 본연의 참다운 해와의 인격을 추방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의 인연을 도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에게는 무엇이 생겼느냐 하면 원죄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이 원죄를 벗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거짓된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났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재현시키지 않고는 이 원죄를 벗을 수 없습니다. 원죄는 거짓된 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심어졌기 때문에 이 사랑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중심삼은 사랑의 기틀이 없어 가지고는 안됩니다.
우리 통일원리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중심삼고 이루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타락하기 전 약혼단계의 입장으로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직전은 약혼단계이었으니 만큼 타락하지 않았던 아담과 해와의 자리로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기 전 약혼단계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담과 해와가 거짓된 사랑으로 타락하여 거짓부모가 되었고, 그 거짓부모를 중심삼고 세 아들인 가인과 아벨과 셋, 그리고 그들의 아내까지 포함해서 여덟 식구가 타락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여덟 식구의 형태를 복귀하기 위한 안팎의 내용이 바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입니다. 이것을 복귀한 후 하늘의 부모를 모시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늘의 부모가 누구냐 하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실체기대를 통과한 후에는 반드시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 앞에 이 메시아가 없어 가지고는 본연의 자리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인 인간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메시아를 맞이하지 못하면 원죄를 벗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는 누구냐? 참부모입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왜 필요하냐? 참부모의 사랑으로 다시 접붙이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인 참부모가 나타나지 않고서는 타락한 인간이 원죄를 벗어버리고 죄 없는 해방된 자리에서 완성단계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혼식은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약혼단계에서 타락한 것을 복귀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성주식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으로 더럽혀진 사탄의 피를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죄를 뽑아 버리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원죄가 있는 사람은 축복의 자리에 못 나갑니다. 사탄의 혈통적 내용을 자신의 몸 속에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축복의 자리에 나갈래야 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원죄를 청산해야 합니다. 이 원죄는 거짓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하려면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조건을 세워 밟아 나가지 않고는 벗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 원죄를 벗지 않고서는 완성한 부부의 자리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축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약혼식을 하고 축복식 전에 성주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타락의 피를 바꾸는 혈통 전환식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사탄세계의 거짓된 사랑으로 더럽혀진 과거의 모든 사랑을 부정하고 새로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된 부모의 사랑을 재현시킬 수 있는 부활적인 실체를 갖추지 않고는 축복의 자리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주식은 곧 참부모의 사랑의 관문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의 기준을 이룰 것을 약속하는 의식입니다.
생명은 사랑을 기원으로 하여 탄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활의 역사를 갖지 못합니다. 이것을 통과하고 난 뒤에 하늘나라의 법도를 세워나갈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자격을 계승받아 완성단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비로소 선하다는 공인을 받아야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3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혈통적인 전환을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인간은 타락의 계승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거를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먼저 완전히 부정해야 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35-215)
완전부활이 되려면
나를 낳아준 지금의 부모는 부모가 아니요, 또 지금까지 같이 살아왔던 형제도 형제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나라도 우리 사회와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회와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전체를 새롭게 부흥해서 새로운 부정의 기원에서부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야 하고 각성해야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필요한 조건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주식입니다.
그러면 성주식이란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성립되느냐?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부모는 사탄 편 부모입니다. 그 부모는 사탄 편 가인적인 부모이기 때문에 아벨적인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 아벨적인 부모는 하늘 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 부모가 예수님의 입장에서 말하면 마리아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지구상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입장의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악의 혈통을 통한 타락한 사랑의 인연을 맺지 아니한 본성의 어머니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타락한 부모와 타락세계에서 복귀한 부모 그리고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3대 부모를 모두 찾아 그 부모의 인연을 100퍼센트 복귀해 나와야 합니다.
아담 해와의 가정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 가정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시인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나온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것을 3차까지 연장시켜 찾아 나오셨으니, 그것이 기독교를 중심삼은 재림시대입니다.
그러면 재림주님은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재림시대는 완성기준의 시대이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인류의 어머니를 찾으러 오십니다. 즉, 신부를 찾으러 오시는 것입니다. 신랑 되시는 주님이 이 땅 위에서 찾으시는 신부는 타락권 내에서 찾는 신부가 아닙니다.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혈통을 지니고 탄생한 분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신부, 즉 그 어머니는 어떠한 터전 위에서 태어나야 되느냐? 타락한 세계의 아벨적인 어머니의 터전 위에서 태어나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어머니는 타락한 해와의 입장에 해당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 어머니는 예수님 시대에 있어서 마리아의 입장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의 어머니는 예수님 시대 마리아의 보호를 받아 축복의 뜻을 이룰 수 있고, 죄의 인연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처녀로서 참어머님의 입장에 나갈 수 있는 어머니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사시키려고 하셨지만 다 이루시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연결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의 종말시대에 와서 이것을 재현시켜 가지고 다시 맞춰 나가는 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35-217)
그러면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러분은 어디를 찾아 나가야 되느냐? 예수님 시대에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기독교인들은 어디를 찾아가야 되느냐? 타락하지 않은 어머니의 뱃속을 통과시킬 수 있는 길을 거쳐 타락하지 않은 아버지의 뱃속까지 찾아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활이 안되는 것입니다.
원래 아담의 뼛골 속에 깃든 애기씨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된 어머니인 해와의 몸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바라시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보지 못한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릇된 자리에서 태어났으니까 그것을 다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참된 어머니의 뱃속으로 찾아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성신을 받아야만 거듭난다고 합니다. 성신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성신은 어머니 신(神)이기 때문에 어머니 신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어머니와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즉, 참된 어머니의 몸을 거치는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성신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을 신랑, 즉 아버지 신으로서 모실 수 있고 사모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모의 열이 자기 생명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탄생됩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영과 육이 다 완성된 생명이 되지 못하고 영적인 생명만이 완성된 기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부활체의 기준에서만 머물러 온 기독교는 육적인 부활체의 기준을 찾아 나와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사명이 남아 있으므로 지금까지 재림의 한 때를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35-219)
아담가정과 이삭가정에서의 장자복귀의 섭리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은 혈통을 전환시키는 섭리를 어떻게 해 나오셨느냐?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그들의 관계를 교체시키려고 하셨습니다. 동생이 형이 되고, 형이 동생이 되게끔 바꾸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동생이 형을 굴복시키는 데 있어서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을 자연굴복시켜서 전후가 전도되게 해야 했습니다.
해와가 사탄과 먼저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 편 아들의 입장에 선 사람이 가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 선 사람이 아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래는 아벨이 장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나야 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탄의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난 것은 비원리적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원리적으로 복귀하려면 첫째 아들로 태어난 사탄 편 가인을 부정하고 둘째 아들로 태어난 하늘 편 아벨을 장자로 세우기 위한 놀음을 하셔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가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형제로 태어나 다 자란 다음에 빼앗기 싸움을 했습니다. 그 싸움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었느냐 하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해야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뼛골 속에 들어 있는 애기씨의 자리까지 들어갔다 나왔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무엇을 하셨느냐? 장자와 차자를 바꿔치는 놀음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바꿔치는 놀음을 해 가지고 악은 왼쪽으로 가고 선은 바른쪽으로 가게끔 하셔야 했습니다. 형제로 태어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바꿔치기 하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이 잘못하게 되면 뜻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 섭리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갈수록 점점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가정에서 어떻게 되었느냐? 여기에서는 쌍태를 중심삼고 에서와 야곱이 바꿔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쌍태의 자식들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천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에서를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그런 야곱이 21년만에 하란 땅에서 돌아와 가지고 에서를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형제를 중심삼은 바꿔치기의 섭리가 성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것이었습니다. 쌍태를 중심삼고 바꿔치기를 하긴 했는데 태어난 다음에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서와 야곱이 쌍태로 태어나 장자복귀의 싸움에서 야곱이 승리를 거둔 것은 40대였기 때문에 그 이전 복중에 있을 때의 장자복귀의 기반은 아직 복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태어난 이후의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태어나기 전의 내용을 보면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의 다말을 중심삼고 베레스와 세라가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장자복귀의 뜻이 다말의 복중까지 찾아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타락 이후 사탄은 장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라가 사탄 편의 위치를 취하려고 먼저 나오려 할 때 동생 베레스가 그 형을 밀치고 먼저 태어났습니다. 베레스라는 말은 “밀치고 먼저 나왔다”는 뜻이었습니다. 베레스가 밀치고 나오기 전에 형인 세라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때 산파가 그의 손에 빨간 실을 묶었습니다.
그것은 끝날에 형님과 동생이 세계적으로 바꿔지는 그러한 때가 되면 형인 세라가 손을 내밀고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국가가 먼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이 공산주의 국가를 밀치고 새로운 세계적인 주권을 가지고 오시는 분, 즉 베레스적인 천국이념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이 재림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 어디에서 완전승리를 했느냐? 그 싸움은 내적인 싸움으로서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싸워 바꿔치기를 해 가지고 승리했습니다. 형인 세라와 동생인 베레스가 다말의 복중에서 서로 싸워 승리의 터전을 가지고 있던 형을 동생이 완전히 굴복시켰습니다. 베레스는 복중에서부터 형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형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레스 이후부터는 어머니의 복중에서 전통적인 승리의 기반을 상속받아 가지고 태어난 자리에 있어서는 사탄이 다시 복중에 동참하여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남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 때까지 수천 년 역사를 상속해 내려와 비로소 승리적인 터전을 계승받은 것입니다. 역사적인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의 뜻과 혈통적인 모든 재료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었느냐?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시하는 그런 여성이 유대교인들 중에서 나와야 되었습니다.
다말을 보게 될 때, 다말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전부 다 망각해 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혈족을 존중시하는 입장에서 자기 시아버지의 품에 들어가 베레스와 세라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한 일은 역사상에 유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모세 오경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모든 내용은 용서받을래야 용서받을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35-221)
역사상 최초로 하나님의 아들로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마리아는 그 시대에 있어서 자신의 생명을 걸어 놓고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추구한 여인이었습니다. 마치 다말과 같이 절개와 충절을 다하고 귀한 하늘의 혈통을 남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모험이라도 강행할 수 있는 당돌한 입장에 섰던 여성이 바로 마리아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마리아에게 곧 잉태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할 때, 그 마리아는 “나는 아직까지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천사가 또다시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할 때, 마리아는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자리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갈 수 없었던 자리였습니다. 모세 오경에 의하면, 그 당시는 처녀가 아기를 가지게 되면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시하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시하는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를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배를 통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복중에 있었던 예수님을 사탄이 참소할 수 있었느냐? 마리아의 복중에 있었던 예수님에 대해서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게 된 것도 마리아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출생의 동기도 하나님이요, 또 출생에 이르는 과정도 복중의 승리적인 터전을 가진 마리아의 복중에 있었던 예수님 앞에는 사탄의 아무런 참소조건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시대에 있어서 복중에서부터 기원된 아담과 해와 이후의 모든 싸움의 터전을 비로소 복중에서부터 갈라냈습니다.
그러한 혈통을 타고 나온 사람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떠한 선지자나 어떠한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와는 근본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던 혈통적인 내용을 갖추고 온 세계적인 대표자였습니다. 또한, 역사적인 내용을 전부 다 가려 가지고 온 분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나님을 위주한 혈통적인 내용을 지니고 태어난 첫 사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동기와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참된 아들로 이 땅 위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담 대신 탄생한 예수님은 어떤 존재였느냐? 이 세상에 남자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하나님 앞에 필요한 남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남녀들이 살고 있는 지구상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의 중보로 태어난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았던 타락한 아담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던 완성한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창조원리를 보게 되면, 하나님은 남자를 지으신 후 그 모양을 본떠서 해와를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날 수 있는 완성한 남자, 즉 참다운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재창조의 원칙에 따라서 해와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남성을 위주로 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해와를 찾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5-222)
예수님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했느냐 하면 영적으로 그 일을 대신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님과 성신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하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해산의 역사를 한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후손인 우리 인간들은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태어나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에 품겨 들어가야 됩니다. 이것이 성신의 사랑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 신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아버지인 예수님을 찾아 세우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어머니 신이 아버지를 영적으로 사모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모하는 그 사랑의 힘이 작용하여 부딪치는 힘을 느끼는 것이 곧 불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체험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생겨납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 가지고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삼은 사랑의 감각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감각을 느끼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원칙을 완결짓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놀음을 재차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명을 완수하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되느냐? 오시는 주님은 누구냐?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뱃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타락된 인간은 본래의 아버지 속에 들어갔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서는 다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는 어머니 신의 혜택을 받아 가지고 예수님의 뱃속에 들어가기 위한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예수님의 뱃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이었느냐? 어머니 신인 성신의 협조를 받아 예수님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각 신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뱃속에 있는 애기씨의 입장으로 찾아 들어가기 위해서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뱃속에 들어간 다음 복귀된 새로운 어머니를 통하여 다시 태어났다는 입장에 서야 중생이 됩니다. 오늘날 실체를 쓰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이것을 행할 수 없으니까 반드시 이러한 조건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그 조건을 세워 가지고 연결시켜야 합니다. (35-225)
참아버지와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추어야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선생님한테 절대적으로 반해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자기의 아내, 자기의 남편, 자기 옆에 있는 자식들보다도 선생님을 더 보고 싶어하고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이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1950년대에 뜻길을 출발하면서 이런 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어머니가 없을 때인데도 선생님만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슬퍼하면 자기도 슬퍼하고 선생님이 기뻐하면 자기도 기뻐하면서 선생님과 같이 동감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일체의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그것은 아버지의 뱃속에 들어있는 애기씨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슬퍼하면 자식도 슬퍼해야 되고 아버지가 기뻐하면 자식도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추지 않으면 아버지의 뱃속으로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뱃속에 있는 애기씨만 되어 가지고는 안되고 어머니의 복중을 필요로 합니다. 즉, 어머니의 뱃속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에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참어머니가 세워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여러분이 아버지의 뱃속에 있을 때 느꼈던 사랑의 은혜를 느껴 가지고 어머니를 사랑하고 모실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재차 어머니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 어머니의 사랑의 인연과 연결되어 가지고 출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출생한 여러분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와 같이 되어야 하느냐? 아벨과 가인은 쌍둥이의 입장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가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 베레스와 세라가 뒤넘이친 것과 같은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생에게 순응할 수 있는 가인적인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벨을 모시고 반대하지 않고 반박하지 않는 가인적인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복귀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선생님의 애기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3년 동안 복중의 애기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3년간의 표어를 “첫째, 생에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를 만들어라! 둘째,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라! 셋째, 보여 주고 자랑하라”로 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여 주고 자랑하라는 것은 사위기대의 복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이 3단계를 중심삼고 복중에 있는 애기와 더불어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것과 같은 조건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3년 동안은 여러분이 보리밥을 먹을 때 같이 보리밥을 먹고, 여러분이 나가서 활동할 때 같은 조건의 활동을 했습니다. 예진 애기와 효진 애기는 어머니가 보리밥을 먹고 낳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도 여러분과 똑같은 심정으로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복중에서 태어난 가인적인 존재로서 어머니를 사랑함과 동시에 애기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일치화됨으로 말미암아 쌍태와 같은 반열에 동참했다는 심정적인 조건을 세워 가지고 그들을 중심삼고 모시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가 됩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이런 역사를 다 해 나왔습니다. (35-227)
사위기대를 갖추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어야
이와 같이 복귀역사는 비약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물샐틈없는 절차를 거쳐 가지고 오늘날 역사사대에 있는 여러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모든 내적인 기원을 세워 나왔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수고한 역사노정이 현실권 내에 있는 이 길을 찾아오기까지는 6천 년이 걸렸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되는 대가를 치러 가면서 천지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탕감노정을 거쳐왔습니다. 이런 어려운 인연을 거쳐 가지고 부모가 사위기대를 갖추었으니, 여러분도 사위기대를 갖추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런데 아까도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현실 속의 부모나 형제라든가 하는 세상적인 의식을 초월하고 새로운 자아의 발길로 재생의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해 가지고 탕감의 노정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올라온 승리의 쾌감을 지금 얼마나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으로서 등장하게 되면 6천 년 전에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 더 낫습니다. 또한, 이 땅 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한을 품고 십자가에서 죽어 간 예수님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입장에 섰다고 한다면 예수님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나아요, 못해요? 여자들도 성신보다 나아요, 못해요? 더 낫다는 것입니다. 성신은 실체를 갖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실체를 가졌지만 부모를 중심하고 부자의 인연을 맺어 생활하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부모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인 중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자리를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거기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껴요? 부잣집의 자식들은 부모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그래, 여러분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탄이 고질적인 혈통적 인연을 걸고 나와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을 골탕 먹이고 우리 선조들을 그렇게 유린했던 쇠사슬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해방의 깃발을 들고 자유 평등한 입장에서 만국 만민 만우주가 서로 화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축복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아느냐 이겁니다. 이제 여러분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것이 없습니다. 부모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님 가정의 사위기대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35-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