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간의 위신(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0일)

훈독왕 | 20190216213114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0일 


첨부파일 la16 훈독경 제1권 제20일 하나님과 인간의 위신 1.mp3


하나님과 인간의 위신(훈독본)

날짜 : 1977. 4. 1(금)
장소 : 미국 뉴욕 세계선교본부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을 통해서 완성돼
  
본래 하나님께서 이 천지만물을 창조해 놓고, 인간을 지어 놓고 모든 완성은 이 인간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신과 인간의 위신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완성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완성도 자동적으로 가능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은 만우주의 중심의 권위를 갖추고 인간은 그의 아들딸로서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의 세계가 이 지상에 실현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서 인간의 권위를 백 퍼센트 찬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높이 찬양하는 것을 본받아 인간도 역시 하나님을 대해서 높이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공동운명에 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섰더라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세워서 자랑하는 데는 하나님과 같이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 개인의 완성도 전체의 완성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우주 전체가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가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가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은 우주의 중심이요, 전체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갈라진 오늘날의 영계와 육계도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게 되면 대답을 못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있느냐 할 때, 없다고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고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와 같은 존재로 돼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완성되었다면 마음이 말을 하는 그런 입장에 섰을 것입니다. 우리가 완성되었다면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마음이 말을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었다면 그 후손들이 몇 천년 몇 만년을 이어졌더라도 그들과 같은 권위를 오늘날의 인간들도 그대로 가질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되었더라면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영원히 하나되어서 일생 동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92-145)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실체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아담 해와를 필요로 했느냐?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이요, 둘째는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는 기초, 그 핵심은 아담 해와입니다.


그래서 만약 아담 해와가 완성해서 영계에 갔더라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몸과 같고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마음과 같은 자리에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 세계의 완성된 사람을 실체세계의 몸 마음과 같은 결과로 이루어 놓자고 한 것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마음이 저나라에서 몸뚱이가 되고 하나님이 그 마음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면 마음이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땅 위에서 완성을 못 하고 저나라에 가는 날에는 마음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상에서 마음을 찾아 가지고 영원한 세계에 변화된 몸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몸입니다. 실체를 가진 몸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면 오늘날의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딸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는데 그 하나님은 누구냐? 아담 해와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처음 입은 사람이 아담 해와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하나돼 있으면 그 아담 해와는 모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아담이 이름짓는 대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입을 통해서 말했지만 하나님이 한 말과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실체를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체를 입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후손들과 만물세계를 중심삼고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은 영원히 만우주의 주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문화권에서 사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류는 하나님의 후손이요, 그 문화권은 하나님의 문화권입니다. (92-147)
  
 잃어버린 권위를 회복하려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이 갈라졌습니다. 그러니 마음과 몸뚱이가 갈라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몸이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 사람으로 되어 있지요?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타락이 없었으면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질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절대 갈라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과 인간의 위신”인데, 도대체 하나님의 권위가 어디 있고 인간의 권위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혼자서 그 권위를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 혼자서 그 권위를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둘이 합하는 데서 하나님과 인간의 권위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권위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서 그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천사는 천사 자신을 생각하고, 해와는 해와 자신을 생각하고, 아담은 아담 자신을 스스로 생각하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파탄되었습니다. 곧,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파탄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자기를 생각했고, 둘째는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한 것입니다. 


그 권위를 다시 회복하려면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삽니까? 하나님을 세우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세우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어때요? 마음도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몸뚱이도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몸이나 마음은 상대적 입장인데, 이 마음과 몸이 한 목적을 위해서 간다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중심삼게 되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려니 반대로 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여기에 하나님이 들어와 완전히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마음은 이렇게 있는데, 몸뚱이가 틀어져서 거기에 자꾸 사탄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92-148)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몸에 달린 사탄의 닻줄을 끊어야
  
요즘에 와서는 마음이 중심이 아니라 몸뚱이가 중심이라고 합니다. 유물론이라는 것은 영원히 사람을 망치기 위한 이론, 하나님과 인간의 권위를 망치기 위한 사탄의 이론입니다. 반대로 됐으니 마음이 몸뚱이에 와서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원히 전멸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생길 것 같아요? 아닙니다. 


마음은 “좋은 일을 해라, 좋은 일을 해라!” 합니다. 무엇을 주게 되면 자꾸 더 주라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도와주게 되면 세계를 위해 도와주고 싶고, 더 큰 것이 있으면 그 큰 것을 위해서 도와주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몸뚱이는 반대입니다. 몸뚱이는 몸뚱이만을 위하니 반대라는 것입니다. 어디 좋은 것이 있으면 몸뚱이는 좋은 것을 가지려고 작용을 하지만 마음은 “이놈아, 남도 생각해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입니다.


이 몸뚱이를 잡아다가 죽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도 원하고 누구든지 원합니다. 하나님과 마음은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본래는 사람의 마음과 몸뚱이가 하나되어 있었기 때문에 몸뚱이가 마음을 따라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뚱이에 달려 있는 사탄의 닻줄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닻줄이 무엇인지 알아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닻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음은 칼을 대서 그 닻줄을 끊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세워서 그것을 잘라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자기 집안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남편보다도, 자기 아들딸보다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된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에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닻줄을 두고는 안됩니다. 그것을 끊어 버려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성경의 말씀이 진짜 진리의 말씀이지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닻줄을 끊어 놓더라도 또다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고행길을 가라. 몸뚱이를 때려잡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길입니다. (92-150)
  
 우리의 몸이 신성한 하나님의 몸으로 변하려면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영계와 육계가 어떤 관계에 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현실에서 사탄의 닻줄을 잘라 버리는 데는 어떻게 잘라 버려야 하느냐 하는 방법까지 확실합니다. 그것을 끊어 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악 된 몸이 신성한 하나님의 몸으로 변합니다. 그렇게 되면 잃어버렸던 하나님도, 인간도, 전부를 한꺼번에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몸뚱이와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하나님 앞으로 끌어다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 밥 먹는 것은 누구를 위해 먹어요? 또, 잠자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자요? 그리고 또 아침에 일어나게 되면 내가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내가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 처녀 총각들! 결혼한다면 자기가 결혼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결혼하는 거예요?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신랑 신부로 시집 장가간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여자들은 “내가 시집가는 것은 하나님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간다.” 하고, 남자들은 “내가 장가가는 것은 하나님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간다.”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어 하나되기 위해서 결혼한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랑의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기 때문에 우리 둘이서 사랑하는 것도 천지가 진동할 정도라고 생각해 봤어요? 옛날에 아담 해와가 사랑하던 방법하고 몇 천년이 지난 오늘날 남자 여자가 사랑하는 방법이 같은 거예요, 다른 거예요? 사랑은 아담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영원하고 계속 같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주체이기 때문에 그 사랑도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영계에 가면 아담의 등에도 올라갈 수 있고 하나님의 등에도 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라는 것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렇게 되고 싶지요? (92-152)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가면 하나님이 그 이상의 것을 갖다 준다
  
문제(는) 사탄세계의 닻줄을 끊어야 됩니다. 나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나를 중심삼고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됩니다. 내 몸뚱이를 잘라 버리고 다리를 잘라 버리더라도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보고, 내가 나 자신을 중심삼고 있지 않느냐, 나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하지 않느냐, 나 자신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않느냐를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은 24시간 하나님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냐? 내가 어디 가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겠다는 그 생각이 다르다구요. 다른 것은 없어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나타나느냐? 상대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하는 거예요. 세상의 사람들 같으면 미인을 사랑하고 젊은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들과 다르게 제일 보기 싫은 할머니를 미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나이가 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그 이상의 것을 갖다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와서 흑인 할머니들, 대문짝만한 할머니들, 나이 많은 할머니들을 가만히 보고 생각하는 거예요. “과연, 이 할머니들을 하나님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내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힘든 길입니다. 싫은 사람, 제일 보기도 싫은 사람, 원수 가운데서도 제일 고약한 원수, 제일 못생긴 딸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 이상의 십자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힘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92-154)
  
 하나님의 아들딸로 인간이 세워야 할 위신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얼마나 면목이 없는 우리인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 인류를 영광의 사랑, 행복의 사랑, 찬양의 사랑을 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비참한 사랑의 자리를 찾아오지 않으면 안될 하나님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의 실수가 얼마나 큰가를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천만 번 죽고 이 몸뚱이가 박살나서 먼지같이 날아가더라도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의 권위를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부터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 길을 위해서 틀림없이 가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는 날에는 옛날과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를 위로하려면 그 아버지가 당한 것이 얼마나 억울했나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핍박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내가 들어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모든 수난길, 어떠한 고통스러운 자리에서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되겠다, 만민이 반대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그 반대를 참으면서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구원해 주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기도해 주고 죽어 갈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들의 복을 빌어 주고 그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를 봐서 참아주소!” 할 때, 하나님이 “네 말이 맞다.”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나로 말미암아 풀어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면목, 위신이라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상에 슬펐던 것을 여러분이 무엇으로 풀어 드릴 것입니까? 예를 들어, 형제들 중에서 동생이 하나 죽었다고 할 때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런데 맏아들에게 아내도 있었고 아들도 있었는데 그 아내와 아들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맏아들이 어머니에게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의 슬픔이 얼마나 크고 고통이 얼마나 심합니까! 그렇지만 나를 봐서 참으소서!” 하면, “오냐, 네 말이 맞다.”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제 무슨 상을 받고 축복을 받고 무슨 영광을 얻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이 영광의 길을 취할 것이냐, 십자가의 길을 취할 것이냐? 여러분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택할 것이냐, 영광의 길을 택할 것이냐? 


내가 통일교회의 지도자로서 인류가 가지 못했던 최고의 수난길에 집어넣어 가지고 하나님의 슬픔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통일교인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영광의 권위와 영광의 위신을 갖춘 하나님을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권위를 회복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 길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방시키고 나도 해방되어 기쁨 가운데 다시 하나될 수 있기에 부끄럽지 않은 본연의 사랑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슬픈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너는 나와 같이 났고, 나와 같이 살았고, 나와 같이 죽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자리에 있다.” 하실 수 있다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가 고생길을 걷도록 태어난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이렇게 왔구나! 그렇지만 내가 영광의 자리를 마련해 주마! 너는 아담 해와가 할 수 있었던 이상의 일을 했다. 아담 해와는 자기 자신들을 생각하고 타락했지만, 너는 하나님만을 위하고자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데 있어서 인류역사 가운데 누구보다도 낫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나은 영광의 자리에 설 것이다.” 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92-156)
  
 하나님의 영광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길
  
내가 여러분에게 단 한 가지, 앞으로 하나님 앞에 가면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얼마만큼 자기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만민이 갈 길을 닦았는가를 말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생은 비참한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생길을 가겠어요? 그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누가 나를 공격하고 들이치면 가슴이 아픕니다. 반항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렇게 반격하는 날에는 인류의 소망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치는 날에는 인류의 희망이 끊어진다고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마디 저주하면, 그 저주가 세계적인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져야 됩니다. 그러니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수난의 하나님이요, 고통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의 자리를 찾기 전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서는 사람에게 영광의 자리가 자동적으로 마련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국민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지만, 나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고통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는 더 큰 고통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넘어가실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다가 만약에 레버런 문이 여기서 죽는 날에는 반대하던 사람들은 천하에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서 춤출는지 모르지만 하나님만은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런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만 나오더라도 이 단체는 망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만이 통일교회의 전통이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전통을 세우는 한 분야에 가담하겠다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은 여러분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축복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92-159)
  

&&&&&&&&&&&&&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 20 일 원문
하나님과 인간의 위신

날짜 : 1977. 4. 1(금)
장소 : 미국 뉴욕 세계선교본부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을 통해서 완성돼
  
본래 하나님께서 이 천지만물을 창조해 놓고, 인간을 지어 놓고 모든 완성은 이 인간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신과 인간의 위신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완성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완성도 자동적으로 가능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은 만우주의 중심의 권위를 갖추고 인간은 그의 아들딸로서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의 세계가 이 지상에 실현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슬픔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서 인간의 권위를 백 퍼센트 찬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높이 찬양하는 것을 본받아 인간도 역시 하나님을 대해서 높이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공동운명에 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섰더라면 하나님이 아담을 세워서 자랑하는 데는 하나님과 같이 자랑했을 것이고, 해와를 세워서 자랑하는 데는 하나님과 같이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개인의 완성은 전체의 완성이요, 해와 개인의 완성도 전체의 완성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우주 전체가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가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가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은 우주의 중심이요, 전체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갈라진 오늘날의 영계와 육계도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게 되면 대답을 못 합니다. 있기는 있는데, 대답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았느냐, 마음이 어디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있느냐 할 때, 없다고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고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와 같은 존재로 돼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완성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마음이 말을 할 것입니다. 마음이 말을 하는 그런 입장에 섰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인간은 마음속으로 생각해 가지고 말을 하지만, 우리가 완성되었다면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마음이 말을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었다면 그 후손들이 몇 천년 몇 만년을 이어졌더라도 그들과 같은 권위를 오늘날의 인간들도 그대로 가질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되었더라면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갈라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영원히 하나되어서 일생 동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92-145)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실체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아담 해와를 필요로 했느냐?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이요, 둘째는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는 기초, 그 핵심은 아담 해와입니다.


그래서 만약 아담 해와가 완성해서 영계에 갔더라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몸과 같고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마음과 같은 자리에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 세계의 완성된 사람을 실체세계의 몸 마음과 같은 결과로 이루어 놓자고 한 것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마음이 저나라에서 몸뚱이가 되고 하나님이 그 마음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면 마음이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땅 위에서 완성을 못 하고 저나라에 가는 날에는 마음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내 마음에 영적 마음과 같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안 하는 날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상에서 마음을 찾아 가지고 영원한 세계에 변화된 몸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몸입니다. 실체를 가진 몸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면 오늘날의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딸일 것입니다. 아들딸이 태어나면 부모의 마음과 몸뚱이를 닮아 나나요, 안 닮아 나나요? 닮아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는데 그 하나님은 누구냐? 아담 해와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처음 입은 사람이 아담 해와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하나돼 있으면 그 아담 해와는 모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아담이 이름짓는 대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입을 통해서 말했지만 하나님이 한 말과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실체를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체를 입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후손들과 만물세계를 중심삼고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은 영원히 만우주의 주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문화권에서 사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류는 하나님의 후손이요, 그 문화권은 하나님의 문화권입니다. (92-147)
  
 잃어버린 권위를 회복하려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이 갈라졌습니다. 그러니 마음과 몸뚱이가 갈라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지상의 인간도 영계의 상대적 상징체로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몸이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 사람으로 되어 있지요?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본래부터 하나님이 이렇게 두 사람이 상충하게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하나의 통솔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 아니하고 둘의 반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결론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원론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타락이 없었으면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질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절대 갈라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과 인간의 위신”인데, 도대체 하나님의 권위가 어디 있고 인간의 권위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혼자서 그 권위를 찾을 수 있어요?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 혼자서 그 권위를 찾을 수 있어요?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둘이 합하는 데서 하나님과 인간의 권위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권위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서 그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천사는 천사 자신을 생각하고, 해와는 해와 자신을 생각하고, 아담은 아담 자신을 스스로 생각하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파탄되었습니다. 곧,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파탄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자기를 생각했고, 둘째는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권위를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대로, 하나님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삽니까? 하나님을 세우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세우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어때요? 마음은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느냐? 마음도 하나님을 위해서, 백 퍼센트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또, 몸뚱이도 백 퍼센트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몸이나 마음은 상대적 입장인데, 이 마음과 몸이 같은 자리에서 백 퍼센트 한 목적을 위해서 간다면 이것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중으로 되어 있지만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중심삼게 되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려니 반대로 가야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것은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여기에 하나님이 들어와 완전히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이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있는데, 몸뚱이가 틀어져서 거기에 자꾸 사탄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92-148)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몸에 달린 사탄의 닻줄을 끊어야
  
요즘에 와서는 “몸뚱이가 중심이다!” 합니다. 마음이 중심이 아니라 몸뚱이가 중심이라고 합니다. 유물론이라는 것은 영원히 사람을 망치기 위한 이론, 하나님과 인간의 권위를 망치기 위한 사탄의 이론입니다. 반대로 됐으니 마음이 몸뚱이에 와서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원히 전멸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생길 것 같아요? 아닙니다. 


마음은 “좋은 일을 해라, 좋은 일을 해라!” 합니다. 무엇을 주게 되면 자꾸 더 주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주고, 두 사람이라도 더 주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도와주게 되면 세계를 위해 도와주고 싶고, 더 큰 것이 있으면 그 큰 것을 위해서 도와주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몸뚱이는 반대입니다. 몸뚱이는 몸뚱이만을 위하니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 싸움입니다. 어디 좋은 것이 있으면 몸뚱이는 좋은 것을 가지려고 작용을 하지만 마음은 “이놈아, 남도 생각해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입니다.


그러면 이 몸뚱이를 잡아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잡아다가 죽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도 원하고 누구든지 원합니다. 하나님과 마음은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본래는 사람의 마음과 몸뚱이가 하나되어 있었기 때문에 몸뚱이가 마음을 따라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뚱이에 달려 있는 사탄의 닻줄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닻줄이 무엇인지 알아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 닻줄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닻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닻줄에 달려 있어요, 안 달려 있어요? 그 닻줄에 달려 있는 것은 전부 다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음은 칼을 대서 그 닻줄을 끊기를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그렇게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세워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그것을 잘라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자기 집안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남편보다도, 자기 아들딸보다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된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에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닻줄을 두고는 안됩니다. 그것을 끊어 버려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성경의 말씀이 진짜 진리의 말씀이지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닻줄을 끊어 놓더라도 또다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고행길을 가라. 몸뚱이를 때려잡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길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적인 발판은 종교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성립됩니다. (92-150)
  
 우리의 몸이 신성한 하나님의 몸으로 변하려면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영계가 확실해요, 안 해요? 영계와 육계가 어떤 관계에 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현실에서 사탄의 닻줄을 잘라 버리는 데는 어떻게 잘라 버려야 하느냐 하는 방법까지 확실합니다. 그것을 끊어 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악 된 몸이 무엇으로 변해요? 신성한 하나님의 몸으로 변합니다. 그렇게 되면 잃어버렸던 하나님도 찾고, 인간도 찾고, 전부를 한꺼번에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몸뚱이와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싶어요? 몸뚱이를 하나님 앞으로 끌어다 줄까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 밥 먹는 것은 누구를 위해 먹어요? 나를 위해서 먹지요, 나를 위해서? 또, 잠자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자요? 여러분이 베개를 베고 누울 때 “아, 하나님하고 같이 잔다.” 하고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또 아침에 일어나게 되면 내가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내가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 처녀 총각들! 결혼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결혼한다면 자기가 결혼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결혼하는 거예요?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신랑 신부로 시집 장가간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내가 시집가는 것은 하나님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간다.” 하고, 남자들은 “내가 장가가는 것은 하나님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간다.”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어 하나되기 위해서 결혼한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랑의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기 때문에 우리 둘이서 사랑하는 것도 천지가 진동할 정도라고 생각해 봤어요? 옛날에 아담 해와가 사랑하던 방법하고 몇 천년이 지난 오늘날 남자 여자가 사랑하는 방법이 같은 거예요, 다른 거예요? 사랑은 아담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영원하고 계속 같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주체이기 때문에 그 사랑도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영계에 가면 아담의 등에도 올라갈 수 있고 하나님의 등에도 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미국의 대통령이면 아무것도 아닌 초등학교도 못 나온 아내라도 그의 사랑만 받게 되면 그녀는 대통령의 무릎에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완전히 하나라는 것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렇게 되고 싶지요? (92-152)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가면 하나님이 그 이상의 것을 갖다 준다
  
그러면 문제(는) 뭐예요? 해결점이 뭐예요? 사탄세계의 닻줄을 끊어야 됩니다. 나를 생각하지 않고 누구를 생각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나를 중심삼고 사랑하지 말고 누구를 중심삼고 사랑해야 되겠다구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됩니다. 내 몸뚱이를 잘라 버리고 다리를 잘라 버리더라도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보고, 내가 나 자신을 중심삼고 있지 않느냐, 나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하지 않느냐, 나 자신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않느냐를 생각해 보라구요. 
여기 젊은 놈들은 사랑하던, 옛날 데이트하던 상대를 생각하지요? “어떻게 하든지 학교도 가야 되겠고, 출세도 해야 되겠는데 이게 뭐야! 통일교회의 환드레이징과 전도가 뭐야, 이게? 망조가 들었구나!” 할 텐데 그렇게 된 것이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된 것이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 「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여러분은 24시간 누구를 생각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냐? 내가 어디 가나 한 생각,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겠다는 그 생각이 다르다구요. 다른 것은 없어요. 반대를 하겠으면 하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렇게 반대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생각하면 된다구요.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것을 중심삼고 내가 하겠다고 자꾸 노력하는 거예요. 그때는 자기를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거예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나타나느냐? 상대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하는 거예요. 세상의 사람들 같으면 미인을 사랑하고 젊은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들과 다르게 제일 보기 싫은 할머니를 미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나이가 될 수 있겠느냐? 반대로 해야 돼요.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그 이상의 것을 갖다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와서 흑인 할머니들, 대문짝만한 할머니들, 나이 많은 할머니들을 가만히 보고 생각하는 거예요. “과연, 이 할머니들을 하나님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내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힘든 길입니다. 싫은 사람, 제일 보기도 싫은 사람, 원수 가운데서도 제일 고약한 원수, 그러한 원수의 딸들 중에서도 제일 못난 딸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그것도 잘생겼으면 몰라요. 제일 못생긴 딸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 이상의 십자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힘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92-154)
  
 하나님의 아들딸로 인간이 세워야 할 위신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얼마나 면목이 없는 우리인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 인류를 영광의 사랑, 행복의 사랑, 찬양의 사랑을 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비참한 사랑의 자리를 찾아오지 않으면 안될 하나님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의 실수가 얼마나 큰가를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천만 번 죽고 이 몸뚱이가 박살나서 먼지같이 날아가더라도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인간의 권위라든가 하나님의 권위가 어떻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통일교회의 권위와 하나님의 아들딸의 권위를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부터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 길을 위해서 틀림없이 가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는 날에는 옛날과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를 위로하려면 그 아버지가 당한 것이 얼마나 억울했나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핍박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내가 들어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모든 수난길, 어떠한 고통스러운 자리에서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되겠다, 만민이 반대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그 반대를 참으면서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구원해 주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기도해 주고 죽어 갈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들의 복을 빌어 주고 그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를 봐서 참아주소!” 할 때, 하나님이 “네 말이 맞다.”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슬펐던 하나님의 마음을 나로 말미암아 풀어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면목이라도, 위신이라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상에 슬펐던 것을 여러분이 무엇으로 풀어 드릴 것입니까? 예를 들어, 형제들 중에서 동생이 하나 죽었다고 할 때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런데 맏아들에게 아내도 있었고 아들도 있었는데 그 아내와 아들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맏아들이 어머니에게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의 슬픔이 얼마나 크고 고통이 얼마나 심합니까! 그렇지만 나를 봐서 참으소서!” 하면, “오냐, 네 말이 맞다.”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제 무슨 상을 받고 축복을 받고 무슨 영광을 얻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이 영광의 길을 취할 것이냐, 십자가의 길을 취할 것이냐? 여러분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택할 것이냐, 영광의 길을 택할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가야 됩니까? 내가 통일교회의 지도자로서 통일교회의 사람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되겠습니까? 인류가 가지 못했던 최고의 수난길에 집어넣어 가지고 하나님의 슬픔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통일교인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길을 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는 영광의 권위와 영광의 위신을 갖춘 하나님을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권위를 회복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 길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방시키고 나도 해방되어 기쁨 가운데 다시 하나될 수 있기에 부끄럽지 않은 본연의 사랑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날의 영광의 자리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슬픈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너는 나와 같이 났고, 나와 같이 살았고, 나와 같이 죽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자리에 있다.” 하실 수 있다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내가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가 고생길을 걷도록 태어난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이렇게 왔구나! 그렇지만 내가 영광의 자리를 마련해 주마! 너는 아담 해와가 할 수 있었던 이상의 일을 했다. 아담 해와는 자기 자신들을 생각하고 타락했지만, 너는 하나님만을 위하고자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데 있어서 인류역사 가운데 누구보다도 낫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나은 영광의 자리에 설 것이다.” 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92-156)
  
 하나님의 영광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길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모아 주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나 상원의원을 만들어 주기 위한 야망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 앞으로 하나님 앞에 가면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얼마만큼 자기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만민이 갈 길을 닦았는가를 말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생은 비참한 것입니다. 비참한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갈래요? 고생길을 가겠어요? 그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누가 나를 공격하고 들이치면 가슴이 아픕니다. 반항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렇게 반격하는 날에는 인류의 소망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치는 날에는 인류의 희망이 끊어진다고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마디 저주하면, 그 저주가 세계적인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져야 됩니다. 그러니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생각하던 것처럼 영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수난의 하나님이요, 고통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의 자리를 찾기 전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서는 사람에게 영광의 자리가 자동적으로 마련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그 길을 택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국민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지만, 나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고통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는 더 큰 고통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넘어가실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다가 만약에 레버런 문이 여기서 죽는 날에는 반대하던 사람들은 천하에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서 춤출는지 모르지만 하나님만은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런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만 나오더라도 이 단체는 망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만이 통일교회의 전통이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전통을 세우는 한 분야에 가담하겠다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은 여러분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축복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92-159)


첨부파일첨부된 파일이 1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