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7권 6일
혈통복귀와 복귀의 가정 (훈독본)
날짜 : 1968. 3. 7(목)
장소 : 한국 수원교회
훈독경 - 혈통복귀와 복귀의 가정 (천일국 훈독경 제7권 6일)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
하나님은 창조이상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혈족을 통해서 만민이 온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가정의 기원을 소망하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소망하시던 그 가정은 오늘날 간 데 없고 도리어 원한의 가정들이 지구성에 꽉 차 있습니다.
그런데 지루한 탕감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은 내적으로 그 가정을 회상할 적마다 타락한 그 한의 고개를 언제나 잊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가정들 가운데서 새로운 가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복귀섭리를 지금까지 해 나오셨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타락한 혈통을 통해 가지고 번식되어 내려왔는데, 이것은 다른 문제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랑문제를 중심삼은 혈통관계로 말미암아 엉클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짓기 위해서는 혈통적인 내용을 청산짓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문제가 하나님 앞에 개재되어 있습니다. (159-128)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가정에서 아벨을 통할 수 있는 가인을 세우기 위한 경륜을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아벨을 세우려고 하셨고, 사탄은 반대를 한 것입니다. 그 싸움을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계속했지만, 그 싸움이 아직까지 끝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싸움의 종국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인 아벨을 세우셨지만, 가인 아벨의 싸움에 실패했기 때문에 셋째 아들을 중심삼아 혈통을 이어 나와 가지고 노아를 중심삼고 재차 그 싸움을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런데 노아가정의 함을 중심삼고 그것이 또 실패했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서 야곱시대에 와 가지고야 그러한 기준을 다시 한 번 재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가인 아벨 때에 실패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수습하기 위한 2천 년 역사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가인 아벨의 기준을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가인 아벨은 형제로서 탄생했는데, 따로따로 태어난 형제를 통해서 동생이 형을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오셨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실패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축소시켜 가지고, 그 다음에는 쌍둥이 형제인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복귀하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한 단계 더 전진하여 복중을 찾아 들어가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가지고 동생이 형을 굴복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장성한 20세 이후의 청년으로서 굴복시킨 기준이었기 때문에 20세까지의 기준은 여전히 굴복했다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159-129)
가인 아벨의 섭리를 이어받은 야곱과 에서
야곱은 자기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혈족이라는 것을 알아 가지고 그것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회라도 있으면 그것을 빼앗을 수 있고 대신 상속받을 수 있는 어떤 조건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상속받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던 야곱은 형이 사냥을 갔다가 돌아와 배고픈 찬스를 노려 가지고 팥죽과 떡을 주고 장자의 기업을 사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야곱 자신에 있어서는 그런 놀음을 했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어서는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려다가 실패한 실패의 노정을 재현시켜 가지고 장자권을 빼앗기 위한 섭리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통해서 섭리역사를 전환시키려는 계획을 내적으로 추진시켜 나오셨고, 야곱은 조건을 세워 가지고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21년 동안 고역의 노정을 야곱이 가게 되었지만, 야곱이 일편단심 그 마음으로 고대한 것은 무엇이었느냐? 형을 속여 가지고 하늘과 이삭으로부터 받은 장자의 축복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믿었고 그것을 변하게 하려는 어떤 시련과정과 고빗길에 부딪치더라도 그 환경을 파괴해 버리고 그것을 밀고 넘어갈 수 있는 내적인 결의와 정성이 하늘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에 야곱이 가던 길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란에서의 21년 노정에서 야곱은 거기에서 외로운 유랑객과 같은 생활을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시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을 지니고 살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도 간절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란에서 기도할 적마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대신이요, 그 모든 양떼는 이스라엘 민족의 대신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일구월심 간절한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그 내정적인 심정에서는 하늘 앞에 충성을 가해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양떼는 점점점 시일이 감에 따라 번성해 나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21년 탕감의 시간이 참으로 말미암아 환고향하기 위해서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라반을 속이고 떠났습니다. 여기에서 라반과 에서를 보면 라반은 소생형이요, 에서는 장성형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완성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반한테 자기의 탕감조건을 다 세웠기 때문에 그 세워진 탕감조건에 해당하는 물건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159-131)
에서를 굴복시켜 이스라엘 축복의 계대를 이룬 야곱
고향에 돌아가면서 야곱이 염려한 것은 뭐냐? 필시, 형이 자기를 잡아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형을 어떻게 해서든지, 설득을 하든 얼르든 자기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그 기준 앞에 반항을 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모든 종이나 자기 재산의 전부를 원수 앞에 내주는 입장에 서더라도 단지 축복의 계대를 이뤄 가지고 고향 땅에 가서 살 수 있는 것만 허락을 받으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고 나갔습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됩니다. 만일 야곱이 여기서 후퇴하거나 힘에 못 이겨 가지고 지는 입장에 서면 절대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최후의 싸움 길에 있어서, 하늘의 뜻을 세워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어 나가는 길 앞에 있어서 어떠한 원수가 있더라도 참겠다는 결의와 각오가 서 있었기 때문에 천사든 무엇이든 그를 막을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지면 졌지, 내가 질 수 없다. 천사를 꺾어 놓으면 꺾어 놓았지 내가 질 수 없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한 것입니다.
그러한 야곱을 만나 가지고 싸우고 있던 천사가 보니 야곱이 죽더라도 놓지 않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도 긍정할 수 있는 입장, 긍정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야곱에 대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게 될 때에 사탄이 참소를 안 한 것입니다. 사탄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정성어린 싸움의 판국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탄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기준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해준 것은 천사지만, 사탄도 굴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영적인 천사장을 때려부순 야곱에게는 하란에서 라반이 굴복했고, 그 다음에는 실체가 굴복한 것입니다. 에서 자신은 장성급 사탄급이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하고 천사를 굴복시킨 조건, 사탄을 굴복시킨 조건을 세워 가지고 갔기 때문에 사탄의 사촉(唆囑)을 받고 있던 에서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비로소 축복의 계대를 이뤄 가지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159-133)
완전복귀의 터전 위에 태어난 예수님
그런데 야곱이 이겼다고 하더라도 성숙한 후 이겼기 때문에 근본복귀를 못 했습니다. 타락은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하면 복중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타락의 씨로 말미암아 인류는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이겼다고 하더라도 태중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쌍태로서의 자기 형한테 이겼기 때문에 근본적인 승리의 터전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차 싸움을 해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유다가 자기 며느리 다말을 통해 가지고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승리한 터전 위에서 복중까지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그때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할 때 베레스가 밀치고 먼저 나오게 되었습니다. 형이 먼저 나오는 걸 밀어 제치고 동생이 나왔기 때문에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지 못한 기반을 베레스가 태중에서부터 근본복귀한 실적을 남겼습니다.
복중에서 싸워서 동생이 이김으로써 그 베레스와 세라를 중심삼고 승리의 터전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 정성과 혈족을 통해서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게 될 때도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베레스가 승리한 터전 위에서 예수님이 나왔습니다.
야곱의 족속은 한 70식구밖에 안 됐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세계는 국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탕감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스라엘 국가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탕감역사를 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 땅 위에 중심존재를 보내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서부터 한 2천 년 역사를 거쳐서 이스라엘 민족을 발전시켜 가지고 국가의 주권이면 주권의 권위를 책임질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 가지고 거기서 탕감시키기 위해서 2천 년 후 요셉가정을 통하여 마리아의 복중을 빌려 가지고 예수님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다말이 이스라엘 축복의 계대가 끊어질 것을 한(恨)하여 자기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가던 길가에까지 찾아가서 자기의 위신과 체면과 사회의 환경을 잊고 시아버지와 동침해 가지고 낳은 것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그와 같이 하늘의 계대를 잇기 위해서 여성 중의 그 누구보다도 축복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마리아가 하늘 앞에 정성들인 사무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통해 가지고 예수님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잉태 당시부터 역사시대를 탕감복귀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복중에서 탄생하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습니다. 4천 년 만에 혼자 태어나더라도 복중에 있어서 참소받지 않는 아들로서 이 땅 위에 탄생할 수 있었던 분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베레스와 세라는 싸움의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복귀가 가능했습니다. 완전복귀의 터전을 갖춰 가지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복중에서 태어난 분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159-136)
예수님의 뜻
역사과정을 통해서 아담서부터 에서와 야곱, 야곱서부터 베레스와 세라에 이르기까지 태어난 사람들을 거꿀잡이로 다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들이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태어나지 않은 모양으로 바꿔쳐 가지고 하나에 귀결시켜서 예수님이 장자의 기업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혈통적으로 더럽혀진 기준을 완전히 탕감복귀해 가지고 나온 아들은 예수님밖에 없었으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비로소 처음으로 태어난 자식이었습니다. 이 우주간에 그런 아들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혼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남성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아담의 기준을 이어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세계의 기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나라의 건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천국의 출발이 벌어졌습니다. (159-136)
그러면 예수님이 뜻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천국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늘 백성을 규합해서 하나님을 신봉하는 교회를 통일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통일은 무엇을 표준하고 가능했을 것이냐? 예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신부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가정을 통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예수님 혼자서 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1차 노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2차로 세례 요한을 중심삼고 복귀하려다가 실패했고, 또 제3차 노정을 걸어가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십자가에 돌아가 가지고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159-141)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볼 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온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가정기준을 지상에 결정짓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정의 기준을 결정짓지 않고는 가정을 통할 수 있는 종족, 가정을 중심삼은 민족, 가정을 중심삼은 국가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예수님이 소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이스라엘나라를 찾는 것이요, 유대교회를 찾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인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나라와 유대교를 찾는 것보다 더 시급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신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후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2천 년 한의 고개를 남겨 놓고 신랑 신부가 상봉할 수 있는 그 날을 고대해 나온 것이 2천 년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그 가운데 신랑을 고대하고 나오던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들이다가 최고봉에 도달할 수 있는 때는 반드시 사탄한테 막혔습니다. 예수님이 뜻을 이룰 수 있는 고빗길을 가다가 십자가에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고빗길을 갈 때는 반드시 그 고비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넘기 위해서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6천 년 계속되어 통일교회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159-139)
그러면 선생님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야곱이 하던 싸움을 재현해야 됩니다. 본래 이스라엘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하던 터전을 하나님은 이미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권입니다.
에서형(型)에 있지만 야곱을 환영할 수 있는 형태의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 세계적인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아벨로서 이 땅 위에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의 형제들이 야곱에게 굴복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굴복의 노정을 세계적으로 재현시키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구원밖에 못 했습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육적인 세계를 출발하기 전에 영적인 탕감노정을 전부 다 상속받아야 됩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이루어진 영적인 이스라엘권은 영계에만 발판이 있지 땅에는 발판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영계의 기준을 상속받았다고 하더라도 지상에서 육적인 기반을 다시 맞추어 가지고 영적인 승리의 터전과 결합시켜 주지 않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독교가 세워졌고, 그 기독교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사모해야 할 것을 2천 년 동안 가르쳐 주었기에 영적인 상속을 받은 것을 실체세계의 기독교권 내에 연결시켰더라면 일시에 세계적인 복귀의 터전이 마련되었을 것입니다. 영적인 상속과 더불어 지상에 실체적인 기반을 적용시킬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았을 것인데, 기독교가 반대함으로써 영적인 상속의 기준은 가졌지만 실체적인 상속의 기준은 이 땅 위에 갖지 못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159-141)
기독교가 반대함으로 핍박의 길을 가야 하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가는 길에 있어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출발한 기준으로 실체 기반을 마련해 가지고 영적 축복 기준과 육적 축복 기준을 일체화시켰더라면 통일의 역사는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했습니다. 2차대전은 하늘권 내에 있어서 승리했다는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반을 통해서 2차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제3차 이스라엘의 출발을 봐야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장성기 완성급까지 예수님이 복귀할 사명을 짊어지고 싸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영적인 역사로써 이뤄 나온 역사입니다. 그것을 영계에서 상속받았으면 실체권 내에 그걸 딱 연결시켜 가지고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전세계 기독교인이 반대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 실체기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때에 기독교가 받들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렇게 비참한 놀음을 절대 안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반대하니 실체기반은 완전히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은 사탄세계에 가서 다시 빼앗아 와야 됩니다. 영적인 기준을 갖고 있지만 실체기준이 상대적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사탄세계에 가서 찾아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로부터 다시 핍박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2천 년 동안 복귀해 나오기 위해 역사과정에 희생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간은 짧고 시기는 짧을망정 그 형태와 같은 핍박의 길을 오늘 우리는 7년 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 앞에 그 모든 것을 다 당했습니다. 7년 노정만 아니라 21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놀음을 다 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에는 개인적 핍박, 가정적 핍박, 종족적 핍박, 민족적 핍박, 국가적 핍박, 세계적 핍박까지 전부 다 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자그마치 3개국의 핍박을 받아야 된다 이거예요. 또, 3정권에 있어서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세 교파 이상의 대표적인 교회가 핍박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핍박받는 여기서 부활해야 됩니다. 부활하는 데는 예수님과 같이 영적인 부활이 아니라 실체를 중심삼은 부활을 해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사탄세계가 막고 있는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길이 뭐냐 하면 백십자가의 길입니다. 승리한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간 길은 피 흘리고 패한 십자가의 길이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승리한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길을 거쳐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59-142)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선 한 가정의 탄생
만일에 그때에 기독교가 반대를 안 했더라면 아담국가가 한국이 된다면 한국 앞에 해와국가가 어디냐 하면 영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다면 그걸 중심삼아 섭리의 뜻은 세계적인 복귀섭리의 맥을 이어 가지고 선생님은 세계 어디 가든지 막힘 없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종족과 민족을 찾기 전에 되찾아야 할 것이 가정입니다.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가정을 찾지 않고는 종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중심삼은 결정적인 기반을 닦은 것이 1960년도였습니다. 비로소 지구상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선 가정이 태어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1960년도에 가정을 세운 것은 뭐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심정을 몰라 타락하던 그 심정 기준의 이상에서, 타락 직전의 심정 기준 이상의 심정을 가져 가지고 거기에 참부모의 인연을 세워 연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연결시키지 않으면 타락한 권내의 심정기준의 사람들은 복귀가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나오던 그 심정의 기준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참부모의 인연을 세워 놓지 않고는 이 땅 위에 떨어진(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와 가지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던 것, 거짓부모가 실패한 것을 제거시켜 버려 가지고 이 심정을 연결시켜서 참부모의 인연, 다시 말하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던 그 기준을 넘어선 완성급의 출발기준을 가질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의 터전을 이 땅 위에 마련한 것이 1960년도의 성혼식이었습니다. (159-145)
그러면 이제 선생님이 가정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 되느냐? 가정을 통해서 종족 기준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종족적인 환영을 받는 발판을 거쳐 나와 가지고는 수많은 민족들이 환영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면 국가 자체가 어디 가든지 환영할 수 있는 가정으로서 넘어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에서 세계, 세계에서 천주, 천주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종적인 6천 년 역사를 횡적인 터전으로써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159-153)*
천일국 훈독경 제6권 6일, 원문
혈통복귀와 복귀의 가정
날짜 : 1968. 3. 7(목)
장소 : 한국 수원교회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
이 세상에는 지금 60억 인류가 살고 있고, 그 인류 가운데 가정을 안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가정들이 땅 위에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역사과정에서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안식하시거나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가정이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이상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혈족을 통해서 만민이 온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가정의 기원을 소망하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소망하시던 그 가정은 오늘날 간 데 없고 도리어 원한의 가정들이 지구성에 꽉 차 있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계의 사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신을 두고 볼 때 타락하기 전의 이상적인 가정을 지금까지 그 마음에 얼마나 그리워하셨겠느냐! 아담 해와가 실수하지 아니하고, 천사장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던들 하나님이 마음속에 그리시던 이상가정은 필시 성사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루한 탕감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은 내적으로 그 가정을 회상할 적마다 타락한 그 한의 고개를 언제나 잊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그 아버지의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가정들 가운데서 새로운 가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복귀섭리를 지금까지 해 나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세계를 이루게 되었고, 사망세계를 주관하는 사탄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가정들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수가 알고 있는 그런 가정의 기준보다도, 타락 전에 이상하셨던 가정의 기준보다도 더 훌륭하고 알뜰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6천 년의 역사는 무엇이었느냐? 본래 하나님이 세우려고 하셨던 가정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역사였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타락한 혈통을 통해 가지고 번식되어 내려왔는데, 이것은 다른 문제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랑문제를 중심삼은 혈통관계로 말미암아 엉클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짓기 위해서는 혈통적인 내용을 청산짓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문제가 하나님 앞에 개재되어 있습니다. (159-128)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낼 때까지는 어떻게 하셨느냐? 아담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출발한 그날부터 타락 전에 하나님의 품에 품길 수 있었던 아담 해와를 그리면서 타락된 후손을 본래의 기준까지 몰아넣기 위하여 역사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아들이었던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차자가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동생이 형의 권한을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즉, 아담이 어떻게 천사장을 굴복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재현시켜 가지고 천사장이 아담에게 굴복했다는 증거를 받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물론, 그 증거는 사탄으로부터 인정받지 않으면 복귀의 터전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가정에서 아벨을 통할 수 있는 가인을 세우기 위한 경륜을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아벨을 세우려고 하셨고, 사탄은 반대를 한 것입니다. 그 싸움을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계속했지만, 그 싸움이 아직까지 끝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싸움의 종국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인 아벨을 세우셨지만, 가인 아벨의 싸움에 실패했기 때문에 셋째 아들을 중심삼아 혈통을 이어 나와 가지고 노아를 중심삼고 재차 그 싸움을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런데 노아가정의 함을 중심삼고 그것이 또 실패했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서 야곱시대에 와 가지고야 그러한 기준을 다시 한 번 재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가인 아벨 때에 실패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수습하기 위한 2천 년 역사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가인 아벨의 기준을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가인 아벨은 형제로서 탄생했는데, 따로따로 태어난 형제를 통해서 동생이 형을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오셨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실패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축소시켜 가지고, 그 다음에는 쌍둥이 형제인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복귀하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한 단계 더 전진하여 복중을 찾아 들어가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가지고 동생이 형을 굴복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장성한 20세 이후의 청년으로서 굴복시킨 기준이었기 때문에 20세까지의 기준은 여전히 굴복했다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159-129)
가인 아벨의 섭리를 이어받은 야곱과 에서
야곱은 자기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혈족이라는 것을 알아 가지고 그것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조상들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의 그 무엇이라도 희생하려고 했습니다. 그것만을 취하기 위한 결의를 가지고 야곱은 축복받은 계대를 형님이 받을까봐 언제나 염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기회라도 있으면 그것을 빼앗을 수 있고 대신 상속받을 수 있는 어떤 조건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상속받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던 야곱은 형이 사냥을 갔다가 돌아와 배고픈 찬스를 노려 가지고 팥죽과 떡을 주고 장자의 기업을 사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야곱 자신에 있어서는 그런 놀음을 했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어서는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려다가 실패한 실패의 노정을 재현시켜 가지고 장자권을 빼앗기 위한 섭리가 있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동기가 어디에 있었느냐? 축복받은 자기의 조상을 무엇보다도 가치 있게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야곱은 축복받은 자기 조상으로부터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자신의 모습,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그 혈족권 내의 종씨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한 것입니다. 야곱이 그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에서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과 비교해 볼 때 야곱의 마음이 에서의 어떤 정성들인 마음보다도 높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통해서 섭리역사를 전환시키려는 계획을 내적으로 추진시켜 나오셨고, 야곱은 조건을 세워 가지고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21년 동안 고역의 노정을 야곱이 가게 되었지만, 야곱이 일편단심 그 마음으로 고대한 것은 무엇이었느냐? 형을 속여 가지고 하늘과 이삭으로부터 받은 장자의 축복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믿었고 그것을 변하게 하려는 어떤 시련과정과 고빗길에 부딪치더라도 그 환경을 파괴해 버리고 그것을 밀고 넘어갈 수 있는 내적인 결의와 정성이 하늘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에 야곱이 가던 길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란에서의 21년 노정에서 그의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10차에 거듭되는 어려운 환경에 몰리면서도 축복을 계대할 수 있는 문제라면 아무리 어려운 사정이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간절한 심정이 있었습니다. 그 간절한 심정이 천상에 사무쳤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서슴지 않고 섭리의 길을 진전시켜 나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됩니다.
그 21년 세월이 짧다면 짧은 것이요, 길다면 긴 것이었지만 야곱에게 있어서는 일생 전체의 중요한 시기는 그 기간에 전부 다 소모했습니다. 야곱은 거기에서 축복받은 나날을 보낸 것도 아니요, 자기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안식의 터전 위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외로운 유랑객과 같은 생활을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시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을 지니고 살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도 간절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란에서 양을 치던 자리에서 양떼를 앞으로의 축복의 후손으로 생각하고 모든 산천은 축복받은 이스라엘나라를 대신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늘을 대하여 기도할 적마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대신이요, 그 모든 양떼는 이스라엘 민족의 대신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일구월심 간절한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그 내정적인 심정에서는 하늘 앞에 충성을 가해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양떼는 점점점 시일이 감에 따라 번성해 나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21년 탕감의 시간이 참으로 말미암아 환고향하기 위해서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라반을 속이고 떠났습니다. 여기에서 라반과 에서를 보면 라반은 소생형이요, 에서는 장성형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완성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반한테 자기의 탕감조건을 다 세웠기 때문에 그 세워진 탕감조건에 해당하는 물건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159-131)
에서를 굴복시켜 이스라엘 축복의 계대를 이룬 야곱
고향에 돌아가면서 야곱이 염려한 것은 뭐냐?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친척들을 통해서 듣고 있었습니다. 필시, 형이 자기를 잡아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형을 어떻게 해서든지, 설득을 하든 얼르든 자기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그 기준 앞에 반항을 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모든 종이나 자기 재산의 전부를 원수 앞에 내주는 입장에 서더라도 단지 축복의 계대를 이뤄 가지고 고향 땅에 가서 살 수 있는 것만 허락을 받으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고 나갔습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됩니다. 만일 야곱이 여기서 후퇴하거나 힘에 못 이겨 가지고 지는 입장에 서면 절대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최후의 싸움 길에 있어서, 하늘의 뜻을 세워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어 나가는 길 앞에 있어서 어떠한 원수가 있더라도 참겠다는 결의와 각오가 서 있었기 때문에 천사든 무엇이든 그를 막을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아무리 길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축복해 준 축복을 꺾을 자가 누구냐 하는 결의로써 부딪쳤던 것입니다.
“네가 지면 졌지, 내가 질 수 없다. 천사를 꺾어 놓으면 꺾어 놓았지 내가 질 수 없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한 것입니다. 밤새도록 씨름을 했다면 한 번만 했을 것 같아요? 지면 또 하자고 하고, 지면 또 하자고 하면서 몇 번을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지독한지 붙들고 놓지 않은 것입니다.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사생결단한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으려고 21년 수고한 것을 이 순간에 탕감해야 되겠다” 하면서 손으로 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는 온 정력을 다 기울인 것입니다. 얼마나 치열했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피땀의 정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처신이 어떻게 되든, 자기 가정이 어떻게 되든, 자기 환경이나 체면 혹은 위신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밤새껏 씨름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야곱을 만나 가지고 싸우고 있던 천사가 보니 야곱이 죽더라도 놓지 않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도 긍정할 수 있는 입장, 긍정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야곱에 대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게 될 때에 사탄이 참소를 안 한 것입니다. 만일에 천사가 힘을 안 내 가지고 축복해 주었다면 대번에 사탄이 참소했을 것입니다. 사탄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정성어린 싸움의 판국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탄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기준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해준 것은 천사지만, 사탄도 굴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야곱을 가만두고 축복했어요? 환도뼈를 꺾어 놨잖아요. 그걸 축복하면서 꺾어 놨겠어요? 씨름하면서 별 짓을 다 해도 안 되니까 꺾어 놨을 것입니다. 아마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도 붙들고 안 놓았을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기도했다고 하는데, 그 기도를 뭐 지나가던 사람들이 새벽기도를 하듯이 했을 줄 알아요? 자기의 처자들이 전부 다 죽느냐, 사느냐 하던 판이었으니까 생명을 걸고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죽을 경지에 들어가고,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의 경지에 들어가고, 앞으로 올 후대의 사람들이 죽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싸웠기 때문에 그 이스라엘 팻말 밑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깃들게 되고 이스라엘 세계가 깃들 수 있게끔 되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승리의 팻말 밑에서 싸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관념과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세계적인 이스라엘이란 축복을 받았지 조그맣게 생각해 가지고 길가에 지나가다가 하던 싸움에서 이겼다면 그게 무슨 축복이었겠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영적인 천사장을 때려부순 야곱에게는 하란에서 라반이 굴복했고, 그 다음에는 실체가 굴복한 것입니다. 에서 자신은 장성급 사탄급이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하고 천사를 굴복시킨 조건, 사탄을 굴복시킨 조건을 세워 가지고 갔기 때문에 사탄의 사촉(唆囑)을 받고 있던 에서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비로소 축복의 계대를 이뤄 가지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형하고 동생이 싸워서, 쌍태에서 태어난 형과 싸워 이겨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거쳐 가지고 비로소 축복의 대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이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 가지고 장자의 입장에 들어설 수 있었던 기준, 다시 말하면 역사가 흘러 내려가던 것을 돌이킬 수 있었던 하나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159-133)
완전복귀의 터전 위에 태어난 예수님
그런데 야곱이 이겼다고 하더라도 성숙한 후 이겼기 때문에 근본복귀를 못 했습니다. 타락은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하면 복중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몸 안에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타락의 씨로 말미암아 인류는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이겼다고 하더라도 태중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쌍태로서의 자기 형한테 이겼기 때문에 근본적인 승리의 터전이 못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도 근본적인 이스라엘이 못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재차 싸움을 해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유다가 자기 며느리 다말을 통해 가지고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승리한 터전 위에서 복중까지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그때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할 때 베레스가 밀치고 먼저 나오게 되었습니다. 형이 먼저 나오는 걸 밀어 제치고 동생이 나왔기 때문에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지 못한 기반을 베레스가 태중에서부터 근본복귀한 실적을 남겼습니다.
복중에서 싸워서 동생이 이김으로써 그 베레스와 세라를 중심삼고 승리의 터전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 정성과 혈족을 통해서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게 될 때도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베레스가 승리한 터전 위에서 예수님이 나왔습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 지파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온 걸로 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유다 지파 가운데 예수님이 와야 되었느냐? 다말의 복중에서 베레스가 승리한 터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참소받지 않을 수 있는 아들이 그렇게 해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족속은 한 70식구밖에 안 됐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세계는 국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레스로부터 3대 이내에 예수님을 보내면 되었을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탕감복귀라는 것이 최후에는 나라를 탕감하기 위해서 수많은 나라 가운데 한 나라를 세워서 탕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세계에 수많은 국가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탕감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스라엘 국가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탕감역사를 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 땅 위에 중심존재를 보내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서부터 한 2천 년 역사를 거쳐서 이스라엘 민족을 발전시켜 가지고 사탄세계가 갖추어진 국가 형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국가의 주권이면 주권의 권위를 책임질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 가지고 거기서 탕감시키기 위해서 2천 년 후 요셉가정을 통하여 마리아의 복중을 빌려 가지고 예수님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입장이었느냐? 다말의 복중에서 사탄을 승리한 베레스의 터전을 계승해 가지고 하늘 앞에 충성하던 딸의 입장에서 부름을 받은 여성의 대표자가 누구였느냐 하면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환경을 상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 민족을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더 기다렸습니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안 가진 마리아였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을 보내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마음으로 고대하고, 그 마음으로 만나고 싶어하고, 그분을 위해서 정성들인 기준이 이스라엘 여성을 대신하여 대표적이었습니다. 그런 정성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키신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가지고 하는 말이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할 때, “나는 아직까지 남자를 모르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다면 하신다는 그 말을 듣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옵소서”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법으로 보게 되면 처녀나 여자가 간음을 하면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 시대에 있어서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한 입장에서 하나님이 성신을 통하여 잉태시킨다는 그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주의 계집종이니 뜻대로 하옵소서” 한 것은 자기 생명 전체를 맡긴 입장이었습니다.
다말이 이스라엘 축복의 계대가 끊어질 것을 한(恨)하여 자기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가던 길가에까지 찾아가서 자기의 위신과 체면과 사회의 환경을 잊고 시아버지와 동침해 가지고 낳은 것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그와 같이 하늘의 계대를 잇기 위해서 여성 중의 그 누구보다도 축복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마리아가 하늘 앞에 정성들인 사무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통해 가지고 예수님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입장이었느냐? 마리아는 베레스가 복중에서 승리한 그 기반, 역사적인 거리와 과정의 기간은 있었을망정 그 터전 위에서 다말이 갖춘 정성의 기준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녀를 통해서 예수님이 탄생했습니다.
예수님은 잉태 당시부터 역사시대를 탕감복귀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복중에서 탄생하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습니다. 4천 년 만에 혼자 태어나더라도 복중에 있어서 참소받지 않는 아들로서 이 땅 위에 탄생할 수 있었던 분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베레스와 세라는 싸움의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복귀가 가능했습니다. 완전복귀의 터전을 갖춰 가지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복중에서 태어난 분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159-136)
예수님의 뜻
역사과정을 통해서 아담서부터 에서와 야곱, 야곱서부터 베레스와 세라에 이르기까지 태어난 사람들을 거꿀잡이로 다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들이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태어나지 않은 모양으로 바꿔쳐 가지고 하나에 귀결시켜서 예수님이 장자의 기업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혈통적으로 더럽혀진 기준을 완전히 탕감복귀해 가지고 나온 아들은 예수님밖에 없었으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비로소 처음으로 태어난 자식이었습니다. 이 우주간에 그런 아들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혼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남성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아담의 기준을 이어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세계의 기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나라의 건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천국의 출발이 벌어졌습니다. 가인적인 수많은 국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4천 년간 준비한 터전인 이스라엘나라 위에 유대교를 세우고, 그 유대교 위에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159-136)
그런데 예수님이 와 가지고 먼저 뭘 했어야 되었느냐? 유대교를 통합했어야 합니다. 유대교를 통합하고 이스라엘나라를 통합해 가지고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사탄세계를 완전히 굴복시켜 가지고 지상천국을 복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뜻을 펴 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뜻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천국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늘 백성을 규합해서 하나님을 신봉하는 교회를 통일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통일은 무엇을 표준하고 가능했을 것이냐? 예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신부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무엇을 먼저 해야 되었느냐? 가정을 하나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국가를 통일하고 교회를 통일하는 것보다도 제일 급선무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가정을 통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예수님 혼자서 할 수 없었습니다. 왜 혼자서 할 수 없었느냐? 이스라엘나라는 12지파를 중심삼고 수습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통해서 그때까지 수습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수습하려면 혼자서는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두 제자들을 통해서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다 반대했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섭리의 뜻을 어디서부터 이루었을 것이냐? 전도를 하고 뭐 3년 동안 “천국이 가까웠다. 회개하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1차 노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2차로 세례 요한을 중심삼고 복귀하려다가 실패했고, 또 제3차 노정을 걸어가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십자가에 돌아가 가지고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159-141)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볼 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온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가정기준을 지상에 결정짓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정의 기준을 결정짓지 않고는 가정을 통할 수 있는 종족, 가정을 중심삼은 민족, 가정을 중심삼은 국가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 혼자로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예수님이 소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이스라엘나라를 찾는 것이요, 유대교회를 찾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인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나라와 유대교를 찾는 것보다 더 시급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신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후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2천 년 한의 고개를 남겨 놓고 신랑 신부가 상봉할 수 있는 그 날을 고대해 나온 것이 2천 년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그 가운데 신랑을 고대하고 나오던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들이다가 최고봉에 도달할 수 있는 때는 반드시 사탄한테 막혔습니다. 예수님이 뜻을 이룰 수 있는 고빗길을 가다가 십자가에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고빗길을 갈 때는 반드시 그 고비를 넘어가야 됩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어려운 과정을 넘기 위해서 희생당했습니다. 그렇게 희생의 도수를 가해 가지고 오늘날의 기독교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6천 년 계속되어 통일교회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159-139)
그러면 선생님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야곱이 하던 싸움을 재현해야 됩니다. 이 땅 위에 있어서 하등의 상관없는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래 이스라엘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하던 터전을 하나님은 이미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권입니다.
이 기독교의 권내는 에서가 야곱을 반대하던 환경이 아닙니다. 에서형(型)에 있지만 야곱을 환영할 수 있는 형태의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 세계적인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아벨로서 이 땅 위에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의 형제들이 야곱에게 굴복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굴복의 노정을 세계적으로 재현시키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구원밖에 못 했습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육적인 세계를 출발하기 전에 영적인 탕감노정을 전부 다 상속받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영계에 있어서의 예수님이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탕감시키려던 여건들을 전부 다 탕감했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영적으로서 상속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한테 축복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축복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이루어진 영적인 이스라엘권은 영계에만 발판이 있지 땅에는 발판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영계의 기준을 상속받았다고 하더라도 지상에서 육적인 기반을 다시 맞추어 가지고 영적인 승리의 터전과 결합시켜 주지 않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독교가 세워졌고, 그 기독교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사모해야 할 것을 2천 년 동안 가르쳐 주었기에 영적인 상속을 받은 것을 실체세계의 기독교권 내에 연결시켰더라면 일시에 세계적인 복귀의 터전이 마련되었을 것입니다. 영적인 상속과 더불어 지상에 실체적인 기반을 적용시킬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았을 것인데, 기독교가 반대함으로써 영적인 상속의 기준은 가졌지만 실체적인 상속의 기준은 이 땅 위에 갖지 못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159-141)
기독교가 반대함으로 핍박의 길을 가야 하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가는 길에 있어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출발한 기준으로 실체 기반을 마련해 가지고 영적 축복 기준과 육적 축복 기준을 일체화시켰더라면 통일의 역사는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복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세계복귀도 문제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가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천사장적 국가가 굴복할 수 있는 기준만 되게 되면 사탄이 완전히 굴복합니다. 오늘날 공산당이라는 것은 전부 다 선생님 손에 녹아납니다.
그래서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했습니다. 왜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출발해야 됐느냐? 2차대전은 뭐냐 하면 장성의 전쟁이었습니다. 제1차는 아담형이요, 제2차는 예수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실패한 것은 무엇이냐? 승리의 터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2차대전은 뭐냐 하면 하늘권 내에 있어서 승리했다는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반을 통해서 2차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제3차 이스라엘의 출발을 봐야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장성기 완성급까지 예수님이 복귀할 사명을 짊어지고 싸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영적인 역사로써 이뤄 나온 역사입니다. 그것을 영계에서 상속받았으면 실체권 내에 그걸 딱 연결시켜 가지고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전세계 기독교인이 반대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 실체기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 가지고 완성의 출발지를 봐야 되겠기 때문에 이 자리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고 해방의 종소리와 함께 이 섭리의 뜻을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때에 기독교가 받들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렇게 비참한 놀음을 절대 안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 영적인 세계의 축복의 계대가 몽땅 우리에게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정성들이는 모든 권한이 우리 통일교회에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이거 기독교에서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됐느냐? 기독교에서 반대하니 실체기반은 완전히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선생님이면 선생님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사탄세계에 가서 다시 빼앗아 와야 됩니다. 영적인 기준을 갖고 있지만 실체기준이 상대적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사탄세계에 가서 찾아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로부터 다시 핍박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세계에 가서 다시 빼앗아 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2천 년 동안 복귀해 나오기 위해 역사과정에 희생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간은 짧고 시기는 짧을망정 그 형태와 같은 핍박의 길을 오늘 우리는 7년 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 앞에 그 모든 것을 다 당했습니다. 7년 노정만 아니라 21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놀음을 다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통일교회를 쫓아내니 기독교를 중심삼은 하나님도 쫓겨 나오던 선생님의 뒤를 따라 나오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왔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방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쫓겨다니게 될 때 이방나라를 중심삼고 구원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길을 다시 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죽음길, 십자가의 길을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길을 되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에는 개인적 핍박, 가정적 핍박, 종족적 핍박, 민족적 핍박, 국가적 핍박, 세계적 핍박까지 전부 다 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자그마치 3개국의 핍박을 받아야 된다 이거예요. 또, 3정권에 있어서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세 교파 이상의 대표적인 교회가 핍박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세 제자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기준을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세 제자가 반대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간 길을 재차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노정에서는 전부 다 3개국, 3개 주권, 3개 종파의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핍박받는 여기서 부활해야 됩니다. 부활하는 데는 예수님과 같이 영적인 부활이 아니라 실체를 중심삼은 부활을 해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사탄세계가 막고 있는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길이 뭐냐 하면 백십자가의 길입니다. 승리한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간 길은 피 흘리고 패한 십자가의 길이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승리한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길을 거쳐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59-142)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선 한 가정의 탄생
만일에 그때에 기독교가 반대를 안 했더라면 누가 해와국가냐? 아담국가가 한국이 된다면 한국 앞에 해와국가가 어디냐 하면 영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다면 그걸 중심삼아 섭리의 뜻은 세계적인 복귀섭리의 맥을 이어 가지고 선생님은 세계 어디 가든지 막힘 없이 가는 것입니다. 국경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유의 무대를 중심삼고 세계를 주름잡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제2차 이스라엘 노정을 다시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후 영적인 제2차 이스라엘을 편성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실체를 중심삼고 2차 이스라엘이 가던 길을 다시 개척하기 위해서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준이 어느 기준이냐? 예수님을 몰아낸 국가기준을 중심삼고 우리가 재차 몰리는 자리에 있어서 그것을 풀어 가지고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를 탕감해 가지고 예수님을 쫓아내던 이스라엘권을 탈환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에 대한 우리의 7년 작전입니다.
그러면 1960년도는 무엇이었느냐? 예수님이 종족과 민족을 찾기 전에 되찾아야 할 것이 가정입니다.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가정을 찾지 않고는 종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조상이 되려면 가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종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중심삼은 결정적인 기반을 닦은 것이 1960년도였습니다. 비로소 지구상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선 가정이 태어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1960년도에 가정을 세운 것은 뭐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심정을 몰라 타락하던 그 심정 기준의 이상에서, 타락 직전의 심정 기준 이상의 심정을 가져 가지고 거기에 참부모의 인연을 세워 연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연결시키지 않으면 타락한 권내의 심정기준의 사람들은 복귀가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나오던 그 심정의 기준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참부모의 인연을 세워 놓지 않고는 이 땅 위에 떨어진(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와 가지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던 것, 거짓부모가 실패한 것을 제거시켜 버려 가지고 이 심정을 연결시켜서 참부모의 인연, 다시 말하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던 그 기준을 넘어선 완성급의 출발기준을 가질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의 터전을 이 땅 위에 마련한 것이 1960년도의 성혼식이었습니다. (159-145)
그러면 1960년도를 중심삼고 가정이 출발했는데, 이 가정을 선생님은 끌고 어디로 나가느냐? 선생님의 가정이 어디로 가야 되느냐? 선생님의 가정은 종족을 끌고 나가야 됩니다. 가정은 종족을 편성해야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 축복가정을 이루어 준 것은 종족을 편성한 것입니다. 종족을 편성하면 그 종족은 민족을 위해 탕감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삼천리 반도에 전부 다 내쫓아 가지고 탕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게 합니다. 몰리고 쫓기고 천대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159-150)
그러면 이제 선생님이 가정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 되느냐? 가정을 통해서 종족 기준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종족적인 환영을 받는 발판을 거쳐 나와 가지고는 수많은 민족들이 환영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면 국가 자체가 어디 가든지 환영할 수 있는 가정으로서 넘어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에서 세계, 세계에서 천주, 천주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종적인 6천 년 역사를 횡적인 터전으로써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159-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