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인 생활 (천일국 훈독경 제6권 27일)

훈독왕 | 20200829112255

천일국 훈독경 제6권 27일

공적인 생활(훈독본) 
 
날짜 : 1986. 2. 14(금)
장소 : 한국 본부교회

공적인 것은 미래와 연결하는 생활

오늘 말씀할 내용은 ‘공적인 생활’ 또는 ‘공적인 생애’입니다. 우리의 사적인 생활이라고 하면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이요, 공적인 생활이라고 하면 전체를 중심삼은 생활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공적인 길과 사적인 길이 따로 있지 않고 하나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사적인 길이 공적인 길이 되고 공적인 길이 사적인 길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생활은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생활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렇게 갈라지게 된 것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그러면 사적인 생활은 어떤 것이냐? 사적인 생활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생활입니다. 또한, 공적인 생활이란 어떤 것이냐? 공적인 일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타락 이후 사적인 것은 악의 발판이 되었고, 공적인 것은 선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것은 나보다는 상대적인 방향, 저쪽 편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적인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것은 미래와 연결하는 생활이 되지만, 사적인 것은 그렇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자기의 가정이 아니면 국가를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 국가를 중심삼고 사는 가운데서도 국가 전체보다 자기의 가정, 가정에서도 가정 전체보다 자기 부부, 부부보다도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살게 됩니다. 사적인 생활은 그렇게 나누어진다고 봅니다. 

 

그렇게 나누어지는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 인간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공적인 생활을 했어야 되었는데 하나님을 떼버리고 그들만을 중심삼고 살았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간생활이 어떻게 되었느냐? 남자면 남자를 중심삼고,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자기를 주장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 자기라는 그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도 두 갈래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있어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140-266)


하나님이 모든 것을 조화될 수 있도록 만드셨다

그러면 타락의 기원은 어디냐? 마음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통해서 몸도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관계를 맺은 것이 외적인 세계이고, 마음과 관계를 맺은 것이 내적인 세계입니다. 이렇게 두 갈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타락하지 않았다면, 두 갈래의 세계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를 뿌리로 삼게 되어 있습니다. 그 뿌리에서 생겨나는 줄기는 뿌리를 닮고 잎은 가지를 닮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된 사람이 되었더라면, 또 그렇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이 우주를 창조한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들어서 갈라져 살도록 했겠어요? 그렇게 갈라져 살도록 안 되어 있습니다. 비록, 서로가 먼 거리에 있을지라도 점점점 가까워져서 하나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시골집에 (맷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맷돌은 위의 돌과 아래의 돌이 하나일 때 맷돌이지 한 짝으로서는 아무리 완전하고 황금으로 되어 있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물에 뜨는 현무암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짝을 갖추어 맷돌이 되게 될 때는 소용 가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자 여자도 갈라져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맷돌이 두 개 합해져서 가루도 만들고 무엇을 갈게 되어 있지, 하나로서는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여자를 보면, 아무리 보아도 갈라져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합해져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생리적인 관계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남자의 생리적인 중심은 남자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여자를 중심삼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것이요, 여자가 주인입니다. 반대로, 여자의 모든 생리적인 기관은 남자의 것입니다. 그 둘이 하나된 기반에서 모든 것이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속된 사람입니다. 자연이치가 그렇습니다. 

 

인간세계에서는 누가 예쁘냐 할 때, 여자들이 말하기를 “여자가 예쁘지” 합니다. 식물세계와 동물세계는 어때요? 사람세계에서는 남자보다 여자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조류계의 수놈과 암놈 가운데 수놈이 더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공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만물을 얼룩덜룩 엇바꿔 가지고 지었습니다. 이렇게 두 갈래로 볼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조화될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140-267)

선의 본질은 사랑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 자체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인간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타락하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알래야 알 수 없었습니다. 타락한 조상을 뿌리로 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뿌리의 인연에 따라서 태어난 가지와 같고 잎과 같은 여러분도 타락전의 생활을 알래야 알 수 없습니다. (140-270)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마음이 플러스가 되고 몸은 마이너스가 되어서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누가 “합해라” 할 필요 없이 자연히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플러스인 마음 앞에 또 다른 플러스가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플러스끼리 반발작용을 일으킵니다. 너는 네가 가야 할 목적이 다르고, 나는 내가 가야 할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도 나 같은 입장에 섰던 것이 틀림없고, 오늘날 그러한 나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사는 사회가 악한 사회인 것을 인정하는 한 우리의 기원이었던 인류시조도 악한 자리에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러니까 아담 해와도 이런 고통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의 자리에 선 인간시조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타락한 동기를 알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저 달나라보다 더 멀고 서양세계보다 멀고 멉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게 된다면, 이 땅에도 두 패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처음에 둘로 갈라진 씨가 심어졌기 때문에 어디든지 인류가 있는 곳에는 두 패로 갈라져서 싸움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까지 그러한 싸움판이 벌어져 있습니다. (140-274)

 

오늘날 인간의 몸뚱이와 연결되어 있는 외적인 세계는 악마의 무대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 물질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 물질을 공급해 주는 환경세계를 악마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 내적인 세계는 선한 세계입니다. 즉, 선한 세계는 마음의 세계이고 악마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입니다. 그 둘이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악마의 세계에서는 “돈, 돈, 돈…” 합니다. 하지만, 선한 세계에서는 돈 대신에 사랑입니다. 그래서 선을 중심삼은 종교에서는 “사랑, 사랑, 사랑…” 합니다. 선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 선한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선한 세계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천하의 모든 것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게 뭐예요? 행복이나 평화와 같은 추상명사들도 밤이나, 낮이나, 새벽이나, 아침이나 빼놓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사랑을 보지는 못했지만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고 교육도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지식 이상의 차원입니다. (140-279)

멋있는 생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게 뭐예요?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왕궁도 만드실 수 있고, 다이아몬드 우주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수천 억 무리의 별들이 있으니까 얼마나 방대해요! 우주의 크기가 2백억 광년 이상이 됩니다. 또, 우주는 반듯한 것이 아니라 둥급니다. 둥글게 되었다가 타원형으로 되었다가 하면서 숨을 쉽니다. 지구도 운동을 합니다. 지구도 숨을 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컸다 작았다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신은 뭐예요? 하나님이 뭐 좋아하실 게 있어요?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보실 수 있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지실 수 있고, 가지고 싶을 때 가지실 수 있는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게 뭐예요? 그것은 사랑인데, 도대체 사랑이 뭔데 하나님이 좋아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적인 관계가 없으면 성립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혼자는 사랑을 만나실 길이 없습니다. 상대자를 세우지 않고는 만나실 수 없기 때문에 그 상대를 갖추어 놓으시기 위한 것이 창조였고, 그 창조의 걸작품이 아담과 해와로서 우리 인류의 시조였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시는 것은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복귀섭리 때문에 피곤하신 하나님이라도 “사랑을 필요로 해요?” 하고 물어 오는 사람이 있다면 눈이 확 밝아집니다. 기운이 없던 하나님이 활짝 뛰쳐 일어나셔서 “그래, 좋고 말고! 지금까지 물어 보던 녀석이 한 놈도 없었는데, 문 아무개가 물어본다” 하시면서 좋아하십니다. 사탄이 “저 문 아무개는 이단 괴수요, 사기꾼 괴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할 때, 하나님이 웃으십니다. (140-282)

 

그러면 하나님이 사시는 세계는 어떤 세계이겠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으로 꾸며진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꾸며졌겠어요? 사랑을 축으로 해서 오색 가지의 찬란한 내용들로서 꾸며졌습니다. 하나님도 멋진 생활을 원하시는데, 그 멋진 생활은 시(詩)로서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고 걸릴 것이 없이 성큼성큼 춤을 추면서 슬슬 넘어가는 생활입니다. 무엇이 있으면 “여기에 무엇이 있구만” 하면서 요리를 하고, 고개를 쓱 들 때는 “아이고…” 하고 넘어갑니다. 춤가락으로 “아이고…” 하면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멋있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한국 춤이 멋있는 춤입니다. 폭이 큽니다.

 

어떻게 살라구요? 멋지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멋지게 산다면, 그 멋은 무엇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것이겠어요? 단순히, “시를 읊기에 얼마나 멋져” 하는 것을 말해요? 그것이 아니라 사랑을 읊기에 멋지다는 것입니다. 놀아나는 손가락이 사랑의 감촉을 느낍니다. 얼마나 멋지겠어요! 선생님은 그런 천국을 원합니다. 선생님이 아는 천국은 그런 세계입니다. 그렇게 느껴질 때 확 잡아당기면 하나님이 확 끌려오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요즘에 TV문학관을 보면 전설의 얘기들이 많이 나오지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어쩔 수 없는 사연에 의해서 갈라져 가지고 어찌어찌 되어서 죽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상대편에서 안다는 것입니다. 비몽사몽간에 나타나 가지고 “나 간다” 하기 때문에 알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줄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사랑줄에는 모든 공간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러면 천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면 천 년이 지난 후에는 그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버리겠어요? 안 잊어버립니다. 지식이나 돈이나 무엇을 가지고 흥정했던 것은 10년도 못 가지만, 사랑으로 기억된 느낌과 자극은 천 년의 세월도 갑니다. 그러한 힘을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에는 꼼짝을 못 하십니다. (140-285)


우주창조의 본궁

공적인 길이 어떤 것이라구요?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죽도록 가는 길이 자기를 위한 길이에요? 그것도 공적인 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죽도록 희생하는 것도 공적인 것입니다. 또한,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생을 다하며 가는 길도 사적인 길이 아니라 공적인 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랑을 전후좌우 사방으로 갖추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가는 길 이상의 공적인 생애란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와 같은 법도를 세우면, 우주가 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간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라도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연령의 사람이라면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처럼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던 것을 교과서로 삼아서 그 사랑을 세계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은 노년기를 무사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가 여자를 위하는 길도 공적인 길인데, 그렇게 여자를 위하는 데 있어서 사랑을 동반해 가지고 생명을 다해서 위해주게 될 때 우주의 어떠한 공적인 길보다 귀한 길이 됩니다. 그렇게 사는 남자는 자기 아내의 연배가 되는 세계의 여성들이 전부 다 자기를 밟고 지나가더라도 좋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공적인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반대로, 여자가 남편을 위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가는 길도 공적인 길인데 그와 같은 마음을 자기 남편과 같은 연령의 남성들을 대해서도 가질 수 있다면, 자기 남편에게 하는 것과 같은 사랑의 마음을 연결시킬 수 있다면 여자로서 그 이상의 공적인 길이 없습니다. 우주의 길은 단 하나입니다. 

 

또한, 자식이 부모를 대해서 효도하는 길 이상 귀하고 가치 있는 공적인 길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갖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위를 대신해서는 부모가 있고, 아래를 대신해서는 자식이 있고, 전후를 대신해서는 형제가 있고, 좌우를 대신해서는 부부가 있습니다. 이렇게 동서남북의 사방을 갖추어 사는 것 이상으로 귀하고 공적인 길이 없다는 것을 세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부모 이상 사랑하고, 부모를 자식 이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 사랑은 다 통합니다. 이쪽으로 자식을 사랑하면 저쪽으로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듯이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구형세계의 동반구와 서반구를 모두 다 포괄할 수 있습니다. 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사랑하면 90각도의 수직을 중심삼고 동서를 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공적인 모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에 있습니다. 이것이 핵입니다. 모든 세계의 사람들을 부모같이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도 이 핵을 통해야 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도 여기를 통하셔야 됩니다. 이 사랑줄을 통해 가지고 인연되는 세계에는 하나님이 자유로이 통하실 수 있습니다. 남성 여성을 중심삼고 종횡으로 연결되는 모든 인류는 이 사랑의 핵을 통해서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이것이 우주창조의 본궁의 터전이요, 그 본궁은 지상의 본궁임과 동시에 천상세계의 본궁이 됩니다. 그리고 지상의 사랑의 보좌인 동시에 하늘나라의 보좌로 통할 수 있는 것이요, 지상의 참부모의 사랑의 보좌와 더불어 천상세계의 무형의 하늘부모의 보좌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종횡무진이라고 합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 중심핵으로서 동서사방 전후좌우로 종횡할 수 있는 핸들이 우리의 가정입니다. (140-298)

사랑은 끝을 찾아가는 것

공적인 길 중에서 제일 귀한 길이 어떤 길이냐?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형제끼리 사랑을 중심삼고 “하하하…” 하면서 사는 가정의 길입니다. 할아버지는 “허허허…”, 아버지는 “후후후…”, 나는 “헤헤헤…” 할 때 그 곡조가 지그재그입니다. 그렇게 높고 낮고, 강약을 갖춘 사랑의 웃음꽃이 피는 가정이라면 하나님이 구경하고 싶어서 아니 오실래야 아니 오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하면서 울고불고하니까 “야야야, 모가지 부러지겠다” 하시면서 싫어하십니다. 그 반대로 해야 “나 여기 있다” 하면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이 “네 마음에 있다”고 했지요? 그 마음이란 천지와 화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중앙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재합니다.

 

이제 사적인 길과 공적인 길을 확실히 알았지요?
사랑을 중심삼고 공적인 길을 가는데, 자기를 위하는 사랑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좋지만 자꾸 떨어져 내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공적인 사랑을 위하는 길은 가면 갈수록 무한히 발전해 가지고 가정에서부터 종족적인 사랑으로 번식됩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적인 사랑, 국가적인 사랑, 세계적인 사랑으로 무한히 발전해 갑니다. 그렇게 끝에 가 가지고는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사랑의 공통분모를 중심삼고 세계의 끝과 더불어 연락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며)
그런 사랑의 마음은 끝, 보다 더 끝을 찾아갑니다. 피뢰침과 같은 끝입니다. 그렇게 사랑은 끝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사람은 사랑을 중심삼은 욕망이 있는데 그 사랑의 욕망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까지 점령하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점령하고 싶어합니다. 그 사랑까지 점령하게 되면 무로 돌아갑니다. 거기에서는 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원이 필요 없다. 난 다 이루었다. 이제 갈 곳은 저 낮은 곳이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이 되더라도 세상으로 한번 떠나 보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고 낮은 세계를 돌고 돌더라도 불행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사랑으로써만 갈 수 있습니다. (140-301)

 

몸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사랑하게 될 때

자, 결론을 지읍시다. 사적으로 가는 길과 공적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사랑을 중심삼고 가는 길이라면 사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공적인 길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사적인 것은 전부 다 사탄의 것이라고 했는데,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사랑하게 될 때는 나를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공적인 것과 통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모든 것들이 접촉하는 공통분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모든 작용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상대적인 작용은 모두 다 선하게 되는 것이요, 모두 다 통일권을 이루게 됩니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우주애를 바탕으로 할 때는 자신을 위해서 사는 생활 자체가 선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자체가 공적인 생활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혼자 살더라도 천국에 갑니다. 개인이 일생 동안 그러한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고 부모형제를 모시고 산다면 타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천국 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천국 가기 위해서 정성을 안 들여도 됩니다.

 
하늘 편의 가정을 가질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그리워하며 혼자서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생활은 사적인 생활이 아니고 공적인 생활과 통합니다. 그런 자리에 있다면 무엇을 따라가도 천국 가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내가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동물세계를 취해서 사랑하다가 가더라도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사랑이라는 궤도를 타고 놀음놀이하는 것은 전부 다 본향에 갈 자격이 있고 본향의 창고에 저장되는 귀물(貴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거기서부터 지상천국이 됩니다. 그래서 천국창건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 교인들은 사랑을 기반으로 한 몸 마음을 중심삼고 무슨 놀음을 하더라도 천국과 통하게 됩니다. 더 이상의 공적인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40-324)*

 

 

천일국 훈독경 제6권 27일, 원문

 

공적인 생활
 
날짜 : 1986. 2. 14(금)
장소 : 한국 본부교회

공적인 것은 미래와 연결하는 생활

오늘 말씀할 내용은 ‘공적인 생활’ 또는 ‘공적인 생애’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적인 생활이라고 하면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이요, 공적인 생활이라고 하면 전체를 중심삼은 생활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생활에는 사적으로 가는 길을 따라서 사는 것과 공적으로 가는 길을 따라서 사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공적인 길과 사적인 길이 따로 있지 않고 하나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사적인 길이 공적인 길이 되고 공적인 길이 사적인 길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생활은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생활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렇게 갈라지게 된 것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그러면 사적인 생활은 어떤 것이냐? 사적인 생활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생활입니다. 또한, 공적인 생활이란 어떤 것이냐? 공적인 일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타락 이후 사적인 것은 악의 발판이 되었고, 공적인 것은 선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공적인 것은 나보다는 상대적인 방향, 저쪽 편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적인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것은 미래와 연결하는 생활이 되지만, 사적인 것은 그렇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자기의 가정이 아니면 국가를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 국가를 중심삼고 사는 가운데서도 국가 전체보다 자기의 가정, 가정에서도 가정 전체보다 자기 부부, 부부보다도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살게 됩니다. 사적인 생활은 그렇게 나누어진다고 봅니다. 
그렇게 나누어지는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 인간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공적인 생활을 했어야 되었는데 하나님을 떼버리고 그들만을 중심삼고 살았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간생활이 어떻게 되었느냐? 남자면 남자를 중심삼고,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자기를 주장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 자기라는 그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도 두 갈래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있어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140-266)


하나님이 모든 것을 조화될 수 있도록 만드셨다

그러면 타락의 기원은 어디냐? 타락을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하면 마음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통해서 몸도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관계를 맺은 것이 외적인 세계이고, 마음과 관계를 맺은 것이 내적인 세계입니다. 이렇게 두 갈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타락하지 않았다면, 두 갈래의 세계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를 뿌리로 삼게 되어 있습니다. 그 뿌리에서 생겨나는 줄기는 뿌리를 닮고 잎은 가지를 닮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식물은 세포번식을 합니다. 세포에서 식물 그 자체가 나옵니다. 이것은 동물도 가능하다고 보는 현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세포라고 해도 그 세포 하나가 전체를 대신합니다. 꽃 세포 하나만 봐도 그 가운데 잎이 있고, 줄기가 있고, 뿌리도 있고 다 있습니다. 빛깔이 빨간 난이면 그 빨간빛까지 세포에 들어 있습니다. 본질은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걸 식물세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식을 하든가 해 가지고 개종을 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 색깔이라든가 근본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된 사람이 되었더라면, 또 그렇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이 우주를 창조한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들어서 갈라져 살도록 했겠어요? 그렇게 갈라져 살도록 안 되어 있습니다. 비록, 서로가 먼 거리에 있을지도 점점점 가까워져서 하나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옛날에 시골집에 망(맷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맷돌 말입니다. 그 맷돌은 위의 돌과 아래의 돌이 하나일 때 맷돌이지 한 짝으로서는 아무리 완전하고 황금으로 되어 있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주도에 있는 물에 뜨는 현무암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짝을 갖추어 맷돌이 되게 될 때는 소용 가치가 있습니다. 
역시, 남자 여자도 갈라져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맷돌이 두 개 합해져서 가루도 만들고 무엇을 갈게 되어 있지 하나로서는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여자를 보면, 아무리 보아도 갈라져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합해져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생리적인 관계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남자의 생리적인 중심은 남자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여자를 중심삼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것이요, 여자가 주인입니다. 반대로, 여자의 모든 생리적인 기관은 남자의 것입니다. 그 둘이 하나된 기반에서 모든 것이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맷돌도 그렇잖아요. 
이런 이야기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속된 사람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아이고, 오늘 생일날 무슨 저런 얘기를 하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속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이치가 그렇습니다. 
새도 그렇지 않아요? 고운 새들을 가만히 보면 이상합니다. 인간세계에서는 누가 예쁘냐 할 때, 여자들이 말하기를 “여자가 예쁘지” 합니다. 왜 예뻐요? “얼굴, 입술, 목소리, 손, 몸이 다 여자가 예쁘지 남자는 예쁘긴 뭐…” 합니다. 그거 이상합니다. 식물세계와 동물세계는 어때요? 사람도 동물이지만, 사람세계에서는 남자보다 여자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조류계의 수놈과 암놈 가운데 무엇이 더 아름다워요? 수놈이 더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공평합니다. 
남성을 한 줄에 쭉 세우고 여성을 한 줄에 쭉 세워서 여성만을 아름답게 했다면 큰 데모가 벌어질 것입니다. 틀림없이, 남자들이 불평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만물을 얼룩덜룩 엇바꿔 가지고 지었습니다. 딱, 남성을 갈라서 볼 때 못생긴 사람만 있는 줄 알지만 조류계의 수컷처럼 잘생긴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갈래로 볼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조화될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게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이상합니다. 오늘날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상은 우연히 된 것이지! 힘에 의해서 우연히 된 것이지” 합니다. ‘우연히’라는 것이 꼭 잘될 게 뭐예요? 우연히 나쁘게 될 수도 있을 것인데 그렇게 안되어 있습니다. (140-267)

선의 본질은 사랑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 자체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타락한 그 자체를 공인한다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병이 난 사람이 불행하고 병이 나지 않은 사람이 행복하다면, 병난 사람이 병이 나지 않은 사람의 상태를 모르고는 병을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병이 나지 않았을 때, 건강해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었던 때와 비교할 수 있어야만 누구든지 그 병을 고치려고 합니다. 그렇게 비교해서 병이 난 입장을 처량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야 병나지 않았을 때를 추구합니다. 병나지 않았을 때를 앎으로 말미암아 병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인간이 타락했다면 타락하지 않은 상태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타락하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알래야 알 수 없었습니다. 타락한 조상을 뿌리로 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뿌리의 인연에 따라서 태어난 가지와 같고 잎과 같은 여러분도 타락전의 생활을 알래야 알 수 없습니다. (140-270)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마음이 플러스가 되고 몸은 마이너스가 되어서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누가 “합해라” 할 필요 없이 자연히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플러스인 마음 앞에 또 다른 플러스가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플러스끼리 반발작용을 일으킵니다. 너는 네가 가야 할 목적이 다르고, 나는 내가 가야 할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도 나 같은 입장에 섰던 것이 틀림없고, 오늘날 그러한 나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사는 사회가 악한 사회인 것을 인정하는 한 우리의 기원이었던 인류시조도 악한 자리에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러니까 아담 해와도 이런 고통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의 자리에 선 인간시조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타락한 동기를 알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저 달나라보다 더 멀고 서양세계보다 멀고 멉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게 된다면, 이 땅에도 두 패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처음에 둘로 갈라진 씨가 심어졌기 때문에 어디든지 인류가 있는 곳에는 두 패로 갈라져서 싸움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까지 그러한 싸움판이 벌어져 있습니다. (140-274)

 

오늘날 인간의 몸뚱이와 연결되어 있는 외적인 세계는 악마의 무대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 물질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 물질을 공급해 주는 환경세계를 악마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 내적인 세계는 선한 세계입니다. 즉, 선한 세계는 마음의 세계이고 악마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입니다. 그 둘이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악마의 세계에서는 “돈, 돈, 돈…” 합니다. 하지만, 선한 세계에서는 돈 대신에 뭐예요? 사랑입니다. 그래서 선을 중심삼은 종교에서는 “사랑, 사랑, 사랑…” 합니다. 선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 선한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선한 세계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천하의 모든 것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게 뭐예요? 행복이나 평화와 같은 추상명사들도 밤이나, 낮이나, 새벽이나, 아침이나 빼놓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사랑을 보지는 못했지만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고 교육도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지식 이상의 차원입니다. (140-279)

멋있는 생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게 뭐예요?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왕궁도 만드실 수 있고, 다이아몬드 우주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수천 억 무리의 별들이 있으니까 얼마나 방대해요! 우주의 크기가 2백억 광년 이상이 됩니다. 또, 우주는 반듯한 것이 아니라 둥급니다. 둥글게 되었다가 타원형으로 되었다가 하면서 숨을 쉽니다. 지구도 운동을 합니다. 지구도 숨을 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컸다 작았다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신은 뭐예요? 하나님이 뭐 좋아하실 게 있어요?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보실 수 있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지실 수 있고, 가지고 싶을 때 가지실 수 있는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게 뭐예요? 그것은 사랑인데, 도대체 사랑이 뭔데 하나님이 좋아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적인 관계가 없으면 성립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혼자는 사랑을 만나실 길이 없습니다. 상대자를 세우지 않고는 만나실 수 없기 때문에 그 상대를 갖추어 놓으시기 위한 것이 창조였고, 그 창조의 걸작품이 아담과 해와로서 우리 인류의 시조였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시는 것은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복귀섭리 때문에 피곤하신 하나님이라도 “사랑을 필요로 해요?” 하고 물어 오는 사람이 있다면 눈이 확 밝아집니다. 기운이 없던 하나님이 활짝 뛰쳐 일어나셔서 “그래, 좋고 말고! 지금까지 물어 보던 녀석이 한 놈도 없었는데, 문 아무개가 물어본다” 하시면서 좋아하십니다. 사탄이 “저 문 아무개는 이단 괴수요, 사기꾼 괴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할 때, 하나님이 웃으십니다. (140-282)

 

그러면 하나님이 사시는 세계는 어떤 세계이겠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으로 꾸며진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꾸며졌겠어요? 사랑을 축으로 해서 오색 가지의 찬란한 내용들로서 꾸며졌습니다. 하나님도 멋진 생활을 원하시는데, 그 멋진 생활은 시(詩)로서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고 걸릴 것이 없이 성큼성큼 춤을 추면서 슬슬 넘어가는 생활입니다. 무엇이 있으면 “여기에 무엇이 있구만” 하면서 요리를 하고, 고개를 쓱 들 때는 “아이고…” 하고 넘어갑니다. 춤가락으로 “아이고…” 하면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멋있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한국 춤이 멋있는 춤입니다. 폭이 큽니다. 어떻게 살라구요? 멋지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멋지게 산다면, 그 멋은 무엇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것이겠어요? 단순히, “시를 읊기에 얼마나 멋져” 하는 것을 말해요? 그것이 아니라 사랑을 읊기에 멋지다는 것입니다. 놀아나는 손가락이 사랑의 감촉을 느낍니다. 얼마나 멋지겠어요! 선생님은 그런 천국을 원합니다. 선생님이 아는 천국은 그런 세계입니다. 그렇게 느껴질 때 확 잡아당기면 하나님이 확 끌려오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요즘에 TV문학관을 보면 전설의 얘기들이 많이 나오지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어쩔 수 없는 사연에 의해서 갈라져 가지고 어찌어찌 되어서 죽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상대편에서 안다는 것입니다. 비몽사몽간에 나타나 가지고 “나 간다” 하기 때문에 알게 됩니다. 그것은 무슨 줄이 있어서 그래요? 사랑줄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사랑줄에는 모든 공간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면 천 년이 지난 후에는 그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버리겠어요? 안 잊어버립니다. 지식이나 돈이나 무엇을 가지고 흥정했던 것은 10년도 못 가지만, 사랑으로 기억된 느낌과 자극은 천 년의 세월도 갑니다. 그러한 힘을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에는 꼼짝을 못 하십니다. 아무리 폭군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가진 충신 앞에는 꼼짝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나 지혜가 있어서 총명하다는 충신 앞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충신한테 사랑까지는 못 준다는 것입니다. (140-285)

 

우주창조의 본궁

공적인 길이 어떤 것이라구요?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죽도록 가는 길이 자기를 위한 길이에요? 그것도 공적인 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죽도록 희생하는 것도 사적인 거예요? 그것도 공적인 것입니다. 또한,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생을 다하며 가는 길도 사적인 길이 아니라 공적인 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랑을 전후좌우 사방으로 갖추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발견해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가는 길 이상의 공적인 생애란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와 같은 법도를 세우면, 우주가 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간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라도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연령의 사람이라면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처럼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던 것을 교과서로 삼아서 그 사랑을 세계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은 노년기를 무사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가 여자를 위하는 길도 공적인 길인데, 그렇게 여자를 위하는 데 있어서 사랑을 동반해 가지고 생명을 다해서 위해주게 될 때 우주의 어떠한 공적인 길보다 귀한 길이 됩니다. 그렇게 사는 남자는 자기 아내의 연배가 되는 세계의 여성들이 전부 다 자기를 밟고 지나가더라도 좋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공적인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반대로, 여자가 남편을 위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가는 길도 공적인 길인데 그와 같은 마음을 자기 남편과 같은 연령의 남성들을 대해서도 가질 수 있다면, 자기 남편에게 하는 것과 같은 사랑의 마음을 연결시킬 수 있다면 여자로서 그 이상의 공적인 길이 없습니다. 우주의 길은 단 하나입니다. 
또한, 자식이 부모를 대해서 효도하는 길 이상 귀하고 가치 있는 공적인 길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갖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위를 대신해서는 부모가 있고, 아래를 대신해서는 자식이 있고, 전후를 대신해서는 형제가 있고, 좌우를 대신해서는 부부가 있습니다. 이렇게 동서남북의 사방을 갖추어 사는 것 이상으로 귀하고 공적인 길이 없다는 것을 세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부모 이상 사랑하고, 부모를 자식 이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 사랑은 다 통합니다. 이쪽으로 자식을 사랑하면 저쪽으로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듯이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구형세계의 동반구와 서반구를 모두 다 포괄할 수 있습니다. 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사랑하면 90각도의 수직을 중심삼고 동서를 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공적인 모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에 있습니다. 이것이 핵입니다. 모든 세계의 사람들을 부모같이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도 이 핵을 통해야 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도 여기를 통하셔야 됩니다. 이 사랑줄을 통해 가지고 인연되는 세계에는 하나님이 자유로이 통하실 수 있습니다. 남성 여성을 중심삼고 종횡으로 연결되는 모든 인류는 이 사랑의 핵을 통해서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이것이 우주창조의 본궁의 터전이요, 그 본궁은 지상의 본궁임과 동시에 천상세계의 본궁이 됩니다. 그리고 지상의 사랑의 보좌인 동시에 하늘나라의 보좌로 통할 수 있는 것이요, 지상의 참부모의 사랑의 보좌와 더불어 천상세계의 무형의 하늘부모의 보좌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종횡무진이라고 합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 중심핵으로서 동서사방 전후좌우로 종횡할 수 있는 핸들이 우리의 가정입니다. 그러한 핸들이다 보니까 하나님도 돌아가셔야 되고 전부 다 돌아가야 됩니다. (140-298)

 
사랑은 끝을 찾아가는 것

공적인 길 중에서 제일 귀한 길이 어떤 길이냐?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형제끼리 사랑을 중심삼고 “하하하…” 하면서 사는 가정의 길입니다. 할아버지는 “허허허…”, 아버지는 “후후후…”, 나는 “헤헤헤…” 할 때 그 곡조가 지그재그입니다. 그렇게 높고 낮고, 강약을 갖춘 사랑의 웃음꽃이 피는 가정이라면 하나님이 구경하고 싶어서 아니 오실래야 아니 오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하면서 울고불고하니까 “야야야, 모가지 부러지겠다” 하시면서 싫어하십니다. 그 반대로 해야 “나 여기 있다” 하면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이 “네 마음에 있다”고 했지요? 그 마음이란 어떤 마음이에요? 새빨간 마음이에요, 장사치 같은 마음이에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지와 화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중앙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재합니다. 그 자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해석해야 됩니다. 
이제 사적인 길과 공적인 길을 확실히 알았지요? 자기를 중심삼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나를 위하라! 어머니 아버지도 나를 위하라” 할 때는 침을 뱉어 버립니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우주가 추방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전부 다 품어 주려고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품으려고 하고, 어머니 아버지도 품으려고 하고, 남편도 자꾸 품어 주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를 위주한 사랑은 또 다른 플러스의 작용이기 때문에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공적인 길을 가는데, 자기를 위하는 사랑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좋지만 자꾸 떨어져 내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공적인 사랑을 위하는 길은 가면 갈수록 무한히 발전해 가지고 가정에서부터 종족적인 사랑으로 번식됩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적인 사랑, 국가적인 사랑, 세계적인 사랑으로 무한히 발전해 갑니다. 그렇게 끝에 가 가지고는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사랑의 공통분모를 중심삼고 세계의 끝과 더불어 연락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며) 핵에 서 있는 나는 저 끝과 도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더라도 이 가운데서 돌려고 하지 않습니다. 돌려면, 저쪽 끝에 가서 돌아야 멋지지 눈앞에서 다 보이는 두 점을 연결해서 돌게 되면 다 보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지 않아요? 이 핵을 중심삼고 먼 자리로 가야 “야, 이렇게 높고 훌륭하구만” 하게 됩니다. 자기가 돌아가는 거기에 타게 되면 세상을 바라볼 때 “우주가 나 때문에 돌아간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 사랑의 마음은 끝, 보다 더 끝을 찾아갑니다. 피뢰침과 같은 끝입니다. 그렇게 사랑은 끝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사람은 사랑을 중심삼은 욕망이 있는데 그 사랑의 욕망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까지 점령하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점령하고 싶어합니다. 그 사랑까지 점령하게 되면 무로 돌아갑니다. 거기에서는 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원이 필요 없다. 난 다 이루었다. 이제 갈 곳은 저 낮은 곳이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이 되더라도 세상으로 한번 떠나 보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고 낮은 세계를 돌고 돌더라도 불행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사랑으로써만 갈 수 있습니다. 돈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140-301)

 

몸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사랑하게 될 때

자, 결론을 지읍시다. 사적으로 가는 길과 공적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여러분이 무엇을 중심삼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가는 길이라면 사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공적인 길이 됩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말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사적인 것은 전부 다 사탄의 것이라고 했는데,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사랑하게 될 때는 나를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공적인 것과 통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모든 것들이 접촉하는 공통분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모든 작용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상대적인 작용은 모두 다 선하게 되는 것이요, 모두 다 통일권을 이루게 됩니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우주애를 바탕으로 할 때는 자신을 위해서 사는 생활 자체가 선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자체가 공적인 생활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혼자 살더라도 천국에 갑니다. 개인이 일생 동안 그러한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고 부모형제를 모시고 산다면 타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천국 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천국 가기 위해서 정성을 안 들여도 됩니다.
사랑을 누가 가르쳐 줘서 알아요? 성숙하면, 남자는 남자 된 것을 알고 여자는 여자 된 것을 다 압니다. 아무도 안 가르쳐 줘도 모든 자연이 다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을 보고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배워요? 모든 자연의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 저렇게 되어 있구만” 하고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배우지 않고 알 수 있고, 누구든지 소유할 수 있는 공통적인 소유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늘 편의 가정을 가질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그리워하며 혼자서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생활은 사적인 생활이 아니고 공적인 생활과 통합니다. 그런 자리에 있다면 무엇을 따라가도 천국 가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내가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동물세계를 취해서 사랑하다가 가더라도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학문에 취해서 가더라도 공적인 사랑과 통합니다. 
언제든지 사랑이라는 궤도를 타고 놀음놀이하는 것은 전부 다 본향에 갈 자격이 있고 본향의 창고에 저장되는 귀물(貴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거기서부터 지상천국이 됩니다. 그래서 천국창건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 교인들은 사랑을 기반으로 한 몸 마음을 중심삼고 무슨 놀음을 하더라도 천국과 통하게 됩니다. 더 이상의 공적인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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