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인 인생 (천일국 훈독경 제6권 19일) u

훈독왕 | 20200726095122

천일국 훈독경 제6권 19일


 

공적인 인생(훈독본)
 
날짜 : 1982. 4. 1(목)
장소 : 미국
 
공적인 기반 위에서만 자유가 가능하다

언제나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존중합니다. 언제나 나,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자기를 중심삼고 우리 집이 있고, 자기를 중심삼고 우리나라, 세계, 혹은 더 큰 우주까지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가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면 자기를 중심삼고 연결해 주기를 바랄 텐데,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되면 누구를 중심삼고 연결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가더라도 “회사를 중심삼고 내가 속해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학교면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는 우리를 위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곳이지만, 학교에 가더라도 그 학교에 속해 있는 학생이지 나에게 속해 있는 학교가 아닙니다. 나라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나를 중심삼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라의 한 일원입니다.

 

이 세계를 두고 보면, 세계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세계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의 일원입니다. 이것을 확대하여 영계에 적용하면 영계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이 원칙적인 내용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과 세상적인 환경을 생각할 때 어때요? 그 환경이 여러분을 중심삼고 되어 있지 않은 모순을 곧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넘어서 학교라든가, 공장이라든가, 나라라든가, 세계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환경이고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냥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선다면, 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제거당하고 공장에 가면 공장에서 제거당하기 마련입니다. 나라면 나라도 마찬가지고, 영계면 영계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이면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17-267)

 

그러면 그것을 좁혀 가지고 자기의 상대는 어떨까요? 여러분이 말하는 피앙세(finace;약혼자)면 피앙세, 와이프(wife;아내)면 와이프, 허즈번드(husband;남편)면 허즈번드는 어떻겠어요? 그들도 아무리 자기에게 가까운 것 같고 자기 것 같지만 자기를 중심삼고는 절대로 화합이 안 됩니다. 공적인 것이 통하지 않고는 화합할 수 없고 나의 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내가 도대체 뭐예요? 나를 주장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유라는 게 뭐예요? 자유라는 개념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계 어디를 가든지 그 세계의 법이면 법이나 공인된 조직체제를 인정한 터 위에서만 자유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파괴하고 방해하는 데서는 자유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우리는 세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공적인 기반 위에서만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혼란을 가져오고 모든 정상적인 기준을 파괴해 버립니다. 오늘날 미국 청년들이 생각하는 자유라는 개념이 무엇이냐?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학교에 가서도 내 마음대로 학교를 파괴하고, 내 마음대로 사회를 파괴하는 게 자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종이요, 파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내 마음대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통일교회의 조직을 형성하기 위한 법을 지켜야 됩니다. 그 가는 길이 이러이러하거든 거기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걸 하고 난 후에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무리 싫더라도 처해 있는 그것을 극복해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무대 위에서의 진정한 자유와 완전한 해방은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117-268)

하늘의 공법에 의해서

선생님 앞에서 두 학생이 싸우게 될 때, 가만히 들어 보면 자기가 서로 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누가 공적인가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므로 보다 공적인 것을 옳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위해서 갑니다. 이거 얼마나 고차적이에요! 공적인 것 가운데 몇 번째냐 이거예요. 점수를 주면 몇 번째냐? 여러분은 톱(top)이라고 하겠지만, 톱이라고 하는 것은 무니들이나 그러지 선생님은 톱이라고 안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톱이라고 하고, 영계가 있으면 영계가 톱이라고 해야 됩니다. 다 그래야 됩니다. 최고의 존재들이 톱이라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톱이라는 자리에서 모든 힘을 다하여 남아져 가지고 끝까지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때는 최고의 공적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게 누구를 위해서예요? 전체, 공적인 것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극복할 때는 하나님이 승리의 깃발을 짊어지고 와 가지고 앞에다 꽃아 주십니다. 여러분의 뒤에 따라오십니다. 여러분의 뒤를 따라오시지만, 여러분이 승리했다고 할 때는 여러분 앞에다 승리의 깃발을 꽂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117-270)

언제나 승리의 길이 연결된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창건하기 위해서입니다. 심정세계의 창건, 그것 참 멋집니다. 심정세계, 그게 얼마나 멋져요! 그렇지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저 시간 나면 하고, 놀면서 하고, 하고 싶은 때 하면서 “너희들은 하겠으면 해라! 나는 이러겠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좋아요, 좋지 않아요?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맘대로 살아요? 어떤 걸 취하겠어요? 공적인 것을 취할래요, 마음대로 살래요? 공적인 것을 취해야 됩니다. 공적인 세계를 앞에 놓고 자기를 위주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멸망의 도가니로 들어갑니다. 사적인 사람이 공적인 사람을 부대에 담아다 무덤에 넣어도 공적인 사람은 다시 부활하여 당당하고 대담하게 공적인 세계를 증거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묻었던 사람의 어깨를 밟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머리를 밟고 걸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기반에서는 언제나 승리의 길이 연결된다는 결론을 여기서 내릴 수 있습니다. (117-271)

공적인 것은 모든 것이 관리한다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공적인 길을 갈래요, 미국 사람으로서의 공적인 길을 갈래요?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공적인 길을 가야 됩니다. 무니들이 법정에 끌려다니는데도 왜 미국 국민들이 야단하면서 통일교회를 믿고 따라오느냐 하는 모순된 사실을 여기에서 완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길을 가는 곳에서는 재판정이 있더라도 그것을 밟고 점핑하는 것입니다. 그걸 넘어가려면 점핑해서 휘익 날아가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야, 선생님같이 나도 정의를 위하여 보다 차원 높은 공적인 기반을 갖고서 반대를 받고 핍박을 받더라도 갈지어다. 아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렇게 됐어? 내 마음대로 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아” 할지 모르지만, 자기 마음대로 안됩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레버런 문도 왜 그 길을 가야 되느냐? 그것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느냐? 태어나기를 공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를 낳아 준 사람이 누구예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싶다고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 싶다고 딸을 낳을 수 있어요?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어떤 아이를 원하고 어떤 아이를 언제 낳을 것인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려면 우연이든 어떻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부모로부터 태어나려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한데, 그 사랑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피앙세를 찾고 야단하고 그러지만,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그게 다 불가사의입니다. 자기는 이러이러한 여자를 만나고 이러이러한 남편을 만나기를 원했는데 만나서 사는 것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아도 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나기 전에는 이런 색시를 원하고 이런 남편을 원했는데 살기는 자기가 원했던 사람과 반대되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또, 나라는 존재가 내 마음대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에서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난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나는 이렇게 태어나겠다”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이만큼 컸는데, 여러분의 것을 가지고 이만큼 컸어요? 여러분의 것을 가지고 이만큼 컸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적인 세계를 통해야 됩니다. 그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자연이 말하기를 “내 마음대로 하겠다. 네 것은 다 내 것이다” 하면서 다 찾아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의 눈까지 다 빼 줘야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하듯이 자연도 그런 주장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안경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이 양복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신발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공기가 여러분의 것이에요, 태양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야채가 여러분의 것이에요, 보리가 여러분의 것이에요? 여러분의 손도 그렇고, 여러분의 몸뚱이도 그렇고, 여러분의 색시까지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기관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공적인 것은 모든 것이 관리합니다. 모든 것이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117-273)

역사는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

그런 것이 인생노정 위에 존속하고 있는데, 거기에 자유라고 하는 것이 멋대로 돌아다니니 얼마나 위험천만이에요! 폭탄을 밟고 다니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불장난까지 합니다. 그것도 자유예요? 그럴 때는 공적인 모든 것들이 “야, 이놈아…” 하면서 때려눕히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과거를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게 생각할 때 자연을 보기가 부끄럽고, 시계를 보기가 부끄럽고, 사진첩을 보기가 부끄럽고, 땅을 보기가 부끄럽고, 의자를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공적인 사람이 되어 가지고 과거에 잘못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 됩니다. 의자도 내가 공적인 사람이니까 좋아하지 “내가 공적인 생활을 안 해도 되지” 하고 생각하면 의자가 차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억지로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도둑놈이고 강도예요! 그런데도 그렇게 있으면 우주가 얼마나 미워하겠어요! “그렇게 뻐기면서 다녀? 에잇, 이놈의 자식…”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서 공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과 사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한 사람은 지옥 밑창에 떨어지고 또 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렇게 두 세계가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내 것은 없습니다. 또, 태어나 가지고도 내 것이 없습니다. 빚지고 있습니다. 전부 다 부모의 사랑 앞에 빚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할 때 어떤 여자와 남자가 만나게 될지 모르지요? 요즈음 미국 청년들을 보면 “아이구! 한국 여자, 한국 사람…” 이러는데, 지금까지 그런 것을 꿈에나 생각했어요? 약혼자가 태평양 건너 한국 무슨 촌에서 태어났다고 할 때 “나는 태평양을 건너서 남자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겠다”고 누가 생각했느냐는 것입니다. (117-275)

공적인 문제를 통하게 되면

여러분, 죽는 것을 마음대로 해요?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적인 법칙을 따라가야 됩니다. 잘난 사람이나 어떤 사람이나 이 법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는 것도 잘 죽어야 되겠습니다. 죽음길도 공적인 죽음길을 찾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적인 길이 뭐예요? 나를 넘어서 가정이 나보다 공적이요, 종족이 나보다 공적이요, 민족이 나보다 공적이요, 국가가 나보다 공적이요, 세계가 나보다 공적이요, 하나님이 나보다 공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보다 공적입니다. 왜 그게 공적이냐? 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내가 맨 아래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에 점핑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한꺼번에 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됩니다.

 

여러분, 나무가 싹이 틀 때 “아이구, 나는 이런 나무가 되겠다” 해 가지고 한꺼번에 점핑한다고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공적인 법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만큼 자라날 때까지 얼마나 위험이 많았겠어요! 난데없이 벼락도 맞을 수 있었고, 얼마나 위험했겠느냐는 것입니다. 비 오는 날 같으면 우레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이렇게 자라기까지는 공적인 모든 법도를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있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있어라! 종족은 민족을 위해 있어라, 민족은 국가를 위해 있어라,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있어라,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라, 하나님도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있어라” 합니다. 거기에서 이상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모든 것이 나를 중심삼고 돌아갑니다. 그렇게 돌다 보면 내가 센터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상충되지 않고 사랑의 조건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가더라도 환영받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를 중심삼은 자유의 천국과 자유의 해방권이 이루어져서 승리를 찬양하고 영원한 세계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우주를 전부 다 합한 그 중심에 선 나로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레버런 문도 세계 통일교회 교인들과 한꺼번에 홀랑 날아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선생님은 예순이 넘도록 일생 동안 이 길을 왔습니다. 지금도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는 길은 사적인 길이 아니라 공적인 길입니다.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목수가 되든, 땅을 파든, 무엇을 하든지 이 사상을 가지면 다 됩니다. “땅을 파더라도 내가 보다 차원 높은 공적인 입장에서 판다” 하면, 그게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공적인 문제를 통하게 되면 통하지 않는 데가 없고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117-277)

정의로운 사람이 가는 길

여러분의 집을 선생님이 방문해야 할 텐데 자물쇠를 잠가 놓아야 되겠어요, 열어 놓아야 되겠어요? 열어 놓아야 됩니다. 서양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가 둘이서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나이 많은 이 동양 사람이 찾아가면 문을 걸어 잠그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문을 열어 줘야 돼요? 그렇게 하는 것이 공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주가 반겨 줍니다. 만약에 미국 대통령이 여러분의 집에 찾아오면 좋아하겠지요? 그건 왜 그러느냐? 미국 대통령은 공적인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에는 미국 대통령보다도 더 공적인 중심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늘땅을 중심삼고, 우주를 중심삼고, 영계와 천주까지 두고 볼 때 보다 공적인 중심자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 중심자는 백인도, 흑인도, 황인종도 전부 다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할 것입니다. 지옥이나 천국도 문을 다 열어 놓고 대기할 것입니다. 

 

만약에 그 문들이 잠겨져 있더라도 그 중심자가 가면 제까닥 열려야 됩니다. 열쇠가 없다면 그 문을 깨뜨려 가지고 열더라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세상만사가 이렇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걸 알았지요? 

 

오늘날 선생님이 공판정에 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앞으로 우주의 공판정에 서게 될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만약에 레버런 문이 법정에서 1심에 죄가 있고, 2심에 죄가 있고, 3심에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나라의 법정에서 무죄라고 할 때는 그게 다 부정되고 맙니다. 하늘나라의 법정은 최고의 대법원입니다. 최고의 대법원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고등법원이나 대법원까지 상소하지만 레버런 문에게는 또 다른 대법원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도 어느 한때에는 그 법정에 서게 마련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 대법원의 법정에 서야 된다면, 여기에서 살아서 판정을 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이에요! 죽어서 그 공판정에 서지 않고도 무과통과하니까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어서 그런 자리에 서고 싶어요, 살아서 그런 자리에 서고 싶어요? 정의의 길은 강하고 담대한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살아서 이것을 통과하는 게 좋아요, 죽어서 이것을 통과하는 게 좋아요? 살아서 통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쉬워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프리카로 가고, 남미로 가고, 미개지로 가서 천대를 받으면서 살아 봐야 됩니다. 선생님도 언제나 천대받아 왔습니다. 그렇게 볼 때 통일교회 레버런 문의 사상이 얼마나 위대하고 멋지냐! 얼마나 무서운 사상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를 상대로 혼자서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공적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로운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외롭지 않습니다. 역사와 더불어, 영계에 간 모든 선한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의로운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117-279) 

공적인 생애

앞으로, 내가 없더라도 여러분은 오늘의 이 말씀을 중심삼고 바른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없더라도 그 길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미국에 레버런 문이 없더라도 미국은 이러한 공식적인 길을 거쳐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누구든지 이 길을 거쳐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이 길을 가야 되겠다고 할 때는 내가 없더라도 이 미국은 새로운 미국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를 반대하는 미국 국민들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미래에 따라올 미국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법정에 끌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비참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정치세계의 사상에 일치될 수 없고, 경제세계의 사상에 일치될 수 없습니다. 오직 종교세계의 사상에만 일치될 수 있기 때문에 종교가 위대한 것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워요! 법정에 가나 어디에 가나 이 깃발은 휘날릴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시선이 집중되고, 영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역사의 시선이 집중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잊어버려도 공적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만은 기억해야 됩니다. 공적인 물건이 아니라 공적인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공판정에 설 수 있는 준비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마음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듣고서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사탄은 검사가 될 것이고, 선생님과 예수님은 변호사가 되어서 변호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판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최후의 법정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공적인 생애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전부 다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 다음에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밥 먹는 것도 공적이고, 전부 다 공적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이 전부 다 기록에 남는다는 것입니다. 고단해서 잔 것도 다 걸립니다. 모두 다 기록됩니다. 여러분이 일생동안 법정투쟁을 위한 노정을 걸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공적인 법정에서 참소를 받지 않고 승리자가 되어 칭송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의 전반적인 생애가 되기를 부탁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끝마치겠습니다. (117-281)*

 

천일국 훈독경 제6권 19일, 원문

 

공적인 인생 14000
 
날짜 : 1982. 4. 1(목)
장소 : 미국
 
공적인 기반 위에서만 자유가 가능하다

언제나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존중합니다. 언제나 나,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부모가 있고, 자기를 중심삼고 형제가 있고, 자기를 중심삼고 우리 집이 있고, 자기를 중심삼고 우리나라, 세계, 혹은 더 큰 우주까지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가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면 자기를 중심삼고 연결해 주기를 바랄 텐데,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되면 누구를 중심삼고 연결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가더라도 “회사를 중심삼고 내가 속해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회사를 중심삼고 내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서 추방당하고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학교면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는 우리를 위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곳이지만, 학교에 가더라도 그 학교에 속해 있는 학생이지 나에게 속해 있는 학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 나를 위해서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안됩니다. 나라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나를 중심삼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라의 한 일원입니다. “나라가 나를 위해서 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나라라는 그 자체를 중심삼고,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중심삼고 공적인 목적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조직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게 됩니다. 
이 세계를 두고 보면, 세계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세계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의 일원입니다. 이것을 확대하여 영계에 적용하면 영계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이 원칙적인 내용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과 세상적인 환경을 생각할 때 어때요? 그 환경이 여러분을 중심삼고 되어 있지 않은 모순을 곧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넘어서 학교라든가, 공장이라든가, 나라라든가, 세계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환경이고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냥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선다면, 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제거당하고 공장에 가면 공장에서 제거당하기 마련입니다. 나라면 나라도 마찬가지고, 영계면 영계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이면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17-267)

 

그러면 그것을 좁혀 가지고 자기의 상대는 어떨까요? 여러분이 말하는 피앙세(finace;약혼자)면 피앙세, 와이프(wife;아내)면 와이프, 허즈번드(husband;남편)면 허즈번드는 어떻겠어요? 그들도 아무리 자기에게 가까운 것 같고 자기 것 같지만 자기를 중심삼고는 절대로 화합이 안 됩니다. 공적인 것이 통하지 않고는 화합할 수 없고 나의 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내가 도대체 뭐예요? 나를 주장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유라는 게 뭐예요? 자유라는 개념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계 어디를 가든지 그 세계의 법이면 법이나 공인된 조직체제를 인정한 터 위에서만 자유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파괴하고 방해하는 데서는 자유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우리는 세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공적인 기반 위에서만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혼란을 가져오고 모든 정상적인 기준을 파괴해 버립니다. 오늘날 미국 청년들이 생각하는 자유라는 개념이 무엇이냐?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학교에 가서도 내 마음대로 학교를 파괴하고, 내 마음대로 사회를 파괴하는 게 자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종이요, 파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내 마음대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통일교회의 조직을 형성하기 위한 법을 지켜야 됩니다. 그 가는 길이 이러이러하거든 거기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걸 하고 난 후에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무리 싫더라도 처해 있는 그것을 극복해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무대 위에서의 진정한 자유와 완전한 해방은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레버런 문은 뭘 하는 사람이냐? 세상은 말하기를 “아, 레버런 문은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다. 젊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일을 죽도록 시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합니다. 법정투쟁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게 레버런 문의 자유예요? 어디에 가든지 핍박받고 조롱받는 것이 자유예요? 
그러면 왜 이런 길을 가느냐? 모든 것이 고통이 따르고 싫지만, 이 일을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이 일을 극복하고 이 일을 승리하고 난 후에 찾아오는 자유야말로 탕감복귀라는 하나님의 섭리상에서의 기쁨의 세계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부딪치기 전에는 서로가 모르니까 부딪쳐 봐 가지고 어떤 것이 더 공적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럴 때 넘어가는 것입니다. 보다 공적일 때는 승리로 가는 것이요, 덜 공적일 때는 패배로 가는 것입니다. (117-268)


하늘의 공법에 의해서

선생님 앞에서 두 학생이 싸우게 될 때, 가만히 들어 보면 자기가 서로 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누가 공적인가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므로 보다 공적인 것을 옳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오늘부터 재판정에 나가는데, 통일교회 교인들은 슬퍼할 것 없습니다. 미국 정부는 미국만을 위하지만, 나는 미국 정부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공적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나를 비판하고 나에게 무슨 형을 지우더라도 하늘의 공법에 의해서 나는 승리자로 남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게 사실인 것 같아요, 레버런 문이 이 아침에 그저 마음대로 말하는 것 같아요? 그게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법정에 여러 번 섰지만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위해서 갑니다. 이거 얼마나 고차적이에요! 공적인 것 가운데 몇 번째냐 이거예요. 점수를 주면 몇 번째냐? 여러분은 톱(top)이라고 하겠지만, 톱이라고 하는 것은 무니들이나 그러지 선생님은 톱이라고 안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톱이라고 하고, 영계가 있으면 영계가 톱이라고 해야 됩니다. 다 그래야 됩니다. 최고의 존재들이 톱이라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톱이라는 자리에서 모든 힘을 다하여 남아져 가지고 끝까지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때는 최고의 공적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게 누구를 위해서예요? 전체, 공적인 것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극복할 때는 하나님이 승리의 깃발을 짊어지고 와 가지고 앞에다 꽃아 주십니다. 여러분의 뒤에 따라오십니다. 여러분의 뒤를 따라오시지만, 여러분이 승리했다고 할 때는 여러분 앞에다 승리의 깃발을 꽂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면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과 같은 미국 국민들 가운데 미국을 위하여 있는 사람에게는 미국 대통령이 깃발을 들고 따라옵니다. 그래서 승리할 때는 그 사람 앞에다 그것을 꽂아 줍니다. 그때는 춤을 춰도 좋고, 뭘 해도 좋고,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잠을 자겠으면 자고, 놀겠으면 놀고, 술을 먹고 길가에 나뒹굴어도 좋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다가 옆에 있는 사람의 옷을 째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야, 이 녀석아! 재판을 하자! 공판정에 끌어내야 되겠다” 그러겠어요? 미국에 승리를 가져다 준 사람에게는 설사 미국 안의 모든 것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고 사소한 흠이 있더라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보다 더 큰 공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침범하게 될 때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117-270)


언제나 승리의 길이 연결된다

우리 통일교회가 공적인 것 가운데 넘버원입니다. 올림픽대회에서 일등하면 금메달을 다 타지만 전 경기 중에서 넘버 원 경기가 뭐예요? 마라톤이 넘버 원 경기입니다. 그러나 금메달은 같습니다. 여러분, 어느 메달을 타고 싶어요?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어하는데, 왜 마라톤을 좋아하는 거예요? 마라톤이 최고의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원치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나 다 원하기 때문에 그것만 갖고 있으면 누구에게나 다 환영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주 가운데 제일 공적인 일이 있다면 그걸 모든 사람들이 원하겠어요, 원하지 않겠어요?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걸 누구나 다 가질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 동반됩니다.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집니다. 마라톤을 할 때 “아이고, 그만해! 나 힘드니까 친구야, 나 10미터만 업고 뛰어” 해 가지고 10미터만 업혀서 가더라도 법에 걸려 가지고 다 깨져 나갑니다. 힘들다고 “한 10미터쯤이야 어때? 좀 업혀 가자” 해 가지고 10미터만 업혔더라도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10미터는 그만두고라도 1미터는 어떻고, 2미터는 어떻고, 3미터는 어때요? 마찬가지로 깨져 나갑니다. 그러면 업고 5미터쯤 나갔다가 한 10미터쯤에서 후퇴했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어때요? 여러분은 그걸 용납할래요?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법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창건하기 위해서입니다. 심정세계의 창건, 그것 참 멋집니다. 심정세계, 그게 얼마나 멋져요! 그렇지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저 시간 나면 하고, 놀면서 하고, 하고 싶은 때 하면서 “너희들은 하겠으면 해라! 나는 이러겠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좋아요, 좋지 않아요? 좋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마라톤 선수들을 가르치는 책임자라면 엄격하게 무엇이든지 극복할 수 있게끔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자의 목적이요, 책임자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거기에서 탈락자가 되기를 원해요, 패스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요? 패스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강력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머리를 단정히 깎아서 얼굴이 밝고, 입도 꼭 다물고, 정신을 차린 입장에서 언제나 후닥닥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요? 
통일교회 사람들은 레버런 문에게 한 3년, 4년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다 보니까 눈빛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면 통일교회 사람들을 보고 전부 다 “아, 저런 사위나 며느리를 얻으면 좋겠다” 합니다. 입을 보면, 벌써 입을 다문 것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은 다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사위나 며느리로 삼고 싶어합니다. 
무니들을 만나기 전에는 나쁘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만나고 나서는 무니들이 다 좋다는 소문이 납니다. 한 사람만 봐도 열 사람이 다 좋다, 백 사람이 다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희망이고, 미국의 희망이고, 미래세계의 희망이 거기에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세계 그리고 인류의 희망이 여러분에게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맘대로 살아요? 어떤 걸 취하겠어요? 공적인 것을 취할래요, 마음대로 살래요? 공적인 것을 취해야 됩니다. 공적인 세계를 앞에 놓고 자기를 위주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멸망의 도가니로 들어갑니다. 사적인 사람이 공적인 사람을 부대에 담아다 무덤에 넣어도 공적인 사람은 다시 부활하여 당당하고 대담하게 공적인 세계를 증거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묻었던 사람의 어깨를 밟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머리를 밟고 걸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기반에서는 언제나 승리의 길이 연결된다는 결론을 여기서 내릴 수 있습니다. (117-271)


공적인 것은 모든 것이 관리한다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공적인 길을 갈래요, 미국 사람으로서의 공적인 길을 갈래요?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공적인 길을 가야 됩니다. 무니들이 법정에 끌려다니는데도 왜 미국 국민들이 야단하면서 통일교회를 믿고 따라오느냐 하는 모순된 사실을 여기에서 완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길을 가는 곳에서는 재판정이 있더라도 그것을 밟고 점핑하는 것입니다. 그걸 넘어가려면 점핑해서 휘익 날아가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야, 선생님같이 나도 정의를 위하여 보다 차원 높은 공적인 기반을 갖고서 반대를 받고 핍박을 받더라도 갈지어다. 아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렇게 됐어? 내 마음대로 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아” 할지 모르지만, 자기 마음대로 안됩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레버런 문도 왜 그 길을 가야 되느냐? 그것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느냐? 태어나기를 공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를 낳아 준 사람이 누구예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싶다고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 싶다고 딸을 낳을 수 있어요?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어떤 아이를 원하고 어떤 아이를 언제 낳을 것인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려면 우연이든 어떻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부모로부터 태어나려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한데, 그 사랑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피앙세를 찾고 야단하고 그러지만,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그게 다 불가사의입니다. 자기는 이러이러한 여자를 만나고 이러이러한 남편을 만나기를 원했는데 만나서 사는 것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아도 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나기 전에는 이런 색시를 원하고 이런 남편을 원했는데 살기는 자기가 원했던 사람과 반대되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또, 나라는 존재가 내 마음대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에서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난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나는 이렇게 태어나겠다”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이만큼 컸는데, 여러분의 것을 가지고 이만큼 컸어요? 여러분의 것을 가지고 이만큼 컸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적인 세계를 통해야 됩니다. 그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자연이 말하기를 “내 마음대로 하겠다. 네 것은 다 내 것이다” 하면서 다 찾아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의 눈까지 다 빼 줘야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하듯이 자연도 그런 주장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안경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이 양복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신발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공기가 여러분의 것이에요, 태양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야채가 여러분의 것이에요, 보리가 여러분의 것이에요, 밀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여러분의 손도 그렇고, 여러분의 몸뚱이도 그렇고, 여러분의 색시까지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기관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공적인 것은 모든 것이 관리합니다. 모든 것이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117-273)


역사는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

그런 것이 인생노정 위에 존속하고 있는데, 거기에 자유라고 하는 것이 멋대로 돌아다니니 얼마나 위험천만이에요! 폭탄을 밟고 다니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불장난까지 합니다. 그것도 자유예요? 그럴 때는 공적인 모든 것들이 “야, 이놈아…” 하면서 때려눕히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과거를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게 생각할 때 자연을 보기가 부끄럽고, 시계를 보기가 부끄럽고, 사진첩을 보기가 부끄럽고, 땅을 보기가 부끄럽고, 의자를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공적인 사람이 되어 가지고 과거에 잘못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 됩니다. 의자도 내가 공적인 사람이니까 좋아하지 “내가 공적인 생활을 안 해도 되지” 하고 생각하면 의자가 차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억지로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도둑놈이고 강도예요! 그런데도 그렇게 있으면 우주가 얼마나 미워하겠어요! “그렇게 뻐기면서 다녀? 에잇, 이놈의 자식…”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서 공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과 사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한 사람은 지옥 밑창에 떨어지고 또 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렇게 두 세계가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내 것은 없습니다. 또, 태어나 가지고도 내 것이 없습니다. 빚지고 있습니다. 전부 다 부모의 사랑 앞에 빚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할 때 어떤 여자와 남자가 만나게 될지 모르지요? 요즈음 미국 청년들을 보면 “아이구! 한국 여자, 한국 사람…” 이러는데, 지금까지 그런 것을 꿈에나 생각했어요? 약혼자가 태평양 건너 한국 무슨 촌에서 태어났다고 할 때 “나는 태평양을 건너서 남자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겠다”고 누가 생각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백인이고 머리도 노랗고 눈도 새파랗고 그런데, 상대자는 머리도 새까맣고 눈도 새까맣고 코도 납작합니다.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걸 부모들이 반대하고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는데, 자기가 원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레버런 문이 이 놀음을 시키는 거예요? 본래는 여러분이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할 때, 그것이 보다 공적이기 때문입니다. 백인과 흑인이 만나는 것도 다 공적입니다. 세상과 여러분의 부모들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더라도 레버런 문이 가는 길은 남아질 것이요, 그렇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길은 사라집니다. 
선생님이 미국에서 몇 만불의 세금을 탈세했다고 야단하는데, 내가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갖다 썼어요! 왜 그랬느냐? 그것은 미국이 자유세계의 중심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위성국가를 희생시키더라도 미국을 보호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에 공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이 자유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유세계의 일부를 희생시켜서라도 중심국가를 살림으로 말미암아 전세계가 살아납니다. 
역사는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 미국 국민도 행정부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법정투쟁길이라도 레버런 문이 가는 길을 따라올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의 입장에 있는 미국 국민의 사고방식보다 더 공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미국 국민들이 생겨나면, 그들은 전부 다 레버런 문의 뒤를 따라올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117-275)


공적인 문제를 통하게 되면

여러분, 죽는 것을 마음대로 해요?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적인 법칙을 따라가야 됩니다. 잘난 사람이나 어떤 사람이나 이 법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는 것도 잘 죽어야 되겠습니다. 죽음길도 공적인 죽음길을 찾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적인 길이 뭐예요? 나를 넘어서 가정이 나보다 공적이요, 종족이 나보다 공적이요, 민족이 나보다 공적이요, 국가가 나보다 공적이요, 세계가 나보다 공적이요, 하나님이 나보다 공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보다 공적입니다. 왜 그게 공적이냐? 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내가 맨 아래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에 점핑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한꺼번에 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됩니다.
여러분, 나무가 싹이 틀 때 “아이구, 나는 이런 나무가 되겠다” 해 가지고 한꺼번에 점핑한다고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공적인 법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만큼 자라날 때까지 얼마나 위험이 많았겠어요! 난데없이 벼락도 맞을 수 있었고, 얼마나 위험했겠느냐는 것입니다. 비 오는 날 같으면 우레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이렇게 자라기까지는 공적인 모든 법도를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있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있어라! 종족은 민족을 위해 있어라, 민족은 국가를 위해 있어라,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있어라,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라, 하나님도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있어라” 합니다. 거기에서 이상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모든 것이 나를 중심삼고 돌아갑니다. 그렇게 돌다 보면 내가 센터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상충되지 않고 사랑의 조건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가더라도 환영받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를 중심삼은 자유의 천국과 자유의 해방권이 이루어져서 승리를 찬양하고 영원한 세계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우주를 전부 다 합한 그 중심에 선 나로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레버런 문도 세계 통일교회 교인들과 한꺼번에 홀랑 날아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선생님은 예순이 넘도록 일생 동안 이 길을 왔습니다. 지금도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는 길은 사적인 길이 아니라 공적인 길입니다.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 여러분의 나라에 학박사들이 없어요? 레버런 문보다 말 잘하는 사람이 없어요? 많지만, 왜 그걸 다 차고 레버런 문을 따라오려고 야단이에요? 게다가, 동양 사람인데 말입니다. 한국말로 강의하고 통역을 내세워 이야기하는데 왜 따라와요?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이 공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공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이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얘기해도 여러분의 마음이 싫어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전도를 위해서 땀흘리고 고생하고 욕을 먹을 때 선생님이 따라가서 봐 주지 않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이 좋아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수고했다면서 한 마디의 위로라도 해줘요? 지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습니다. 내용이 얼마나 간단한 거예요! 내용이 간단한데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목수가 되든, 땅을 파든, 무엇을 하든지 이 사상을 가지면 다 됩니다. “땅을 파더라도 내가 보다 차원 높은 공적인 입장에서 판다” 하면, 그게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공적인 문제를 통하게 되면 통하지 않는 데가 없고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117-277)


정의로운 사람이 가는 길

여러분의 집을 선생님이 방문해야 할 텐데 자물쇠를 잠가 놓아야 되겠어요, 열어 놓아야 되겠어요? 열어 놓아야 됩니다. 서양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가 둘이서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나이 많은 이 동양 사람이 찾아가면 문을 걸어 잠그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문을 열어 줘야 돼요? 그렇게 하는 것이 공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주가 반겨 줍니다. 만약에 미국 대통령이 여러분의 집에 찾아오면 좋아하겠지요? 그건 왜 그러느냐? 미국 대통령은 공적인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에는 미국 대통령보다도 더 공적인 중심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늘땅을 중심삼고, 우주를 중심삼고, 영계와 천주까지 두고 볼 때 보다 공적인 중심자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 중심자는 백인도, 흑인도, 황인종도 전부 다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할 것입니다. 지옥이나 천국도 문을 다 열어 놓고 대기할 것입니다. 
만약에 그 문들이 잠겨져 있더라도 그 중심자가 가면 제까닥 열려야 됩니다. 열쇠가 없다면 그 문을 깨뜨려 가지고 열더라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세상만사가 이렇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걸 알았지요? 
오늘날 선생님이 공판정에 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앞으로 우주의 공판정에 서게 될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만약에 레버런 문이 법정에서 1심에 죄가 있고, 2심에 죄가 있고, 3심에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나라의 법정에서 무죄라고 할 때는 그게 다 부정되고 맙니다. 하늘나라의 법정은 최고의 대법원입니다. 최고의 대법원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고등법원이나 대법원까지 상소하지만 레버런 문에게는 또 다른 대법원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도 어느 한때에는 그 법정에 서게 마련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 대법원의 법정에 서야 된다면, 여기에서 살아서 판정을 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이에요! 죽어서 그 공판정에 서지 않고도 무과통과하니까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어서 그런 자리에 서고 싶어요, 살아서 그런 자리에 서고 싶어요? 정의의 길은 강하고 담대한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살아서 이것을 통과하는 게 좋아요, 죽어서 이것을 통과하는 게 좋아요? 살아서 통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쉬워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프리카로 가고, 남미로 가고, 미개지로 가서 천대를 받으면서 살아 봐야 됩니다. 선생님도 언제나 천대받아 왔습니다. 그렇게 볼 때 통일교회 레버런 문의 사상이 얼마나 위대하고 멋지냐! 얼마나 무서운 사상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를 상대로 혼자서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카터를 치고, 닉슨을 지지하고, 레이건을 후원하면서 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무서워하는 공산당에 대해서 앞장서서 “치고 싸워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버런 문은 언제나 위험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가미야마도 이것을 생각해서 대담하게 나가야 됩니다. 
세상 같으면 집안에 큰 문제가 생기면 얼마나 걱정하겠어요! 아마, 미국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서게 되면 도망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자리를 찾아가느냐? 세계의 법을 세우려고 하는 내가 한 국가의 법을 무시해 가지고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로운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외롭지 않습니다. 역사와 더불어, 영계에 간 모든 선한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의로운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117-279) 


공적인 생애

앞으로, 내가 없더라도 여러분은 오늘의 이 말씀을 중심삼고 바른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없더라도 그 길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미국에 레버런 문이 없더라도 미국은 이러한 공식적인 길을 거쳐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누구든지 이 길을 거쳐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이 길을 가야 되겠다고 할 때는 내가 없더라도 이 미국은 새로운 미국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를 반대하는 미국 국민들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미래에 따라올 미국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법정에 끌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비참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정치세계의 사상에 일치될 수 없고, 경제세계의 사상에 일치될 수 없습니다. 오직 종교세계의 사상에만 일치될 수 있기 때문에 종교가 위대한 것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워요! 법정에 가나 어디에 가나 이 깃발은 휘날릴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시선이 집중되고, 영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역사의 시선이 집중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잊어버려도 공적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만은 기억해야 됩니다. 공적인 물건이 아니라 공적인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공판정에 설 수 있는 준비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마음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듣고서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사탄은 검사가 될 것이고, 선생님과 예수님은 변호사가 되어서 변호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판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최후의 법정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공적인 생애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전부 다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 다음에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밥 먹는 것도 공적이고, 전부 다 공적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이 전부 다 기록에 남는다는 것입니다. 고단해서 잔 것도 다 걸립니다. 모두 다 기록됩니다. 여러분이 일생동안 법정투쟁을 위한 노정을 걸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공적인 법정에서 참소를 받지 않고 승리자가 되어 칭송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의 전반적인 생애가 되기를 부탁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끝마치겠습니다. (117-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