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6권 16일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훈독본)
날짜 : 1963. 8. 11(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주인을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섭리
오늘날 이 천지는 주인이 없는 천지가 되었습니다. 이 천지의 주인은 본래 인간입니다. 천지의 주인은 본래 여러분이요, 나입니다. 주인을 모시고 살고 주인을 모셔 놓고 천지가 하나되어야 할 것인데, 오늘날 이 땅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하늘이 있어도 하늘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르고, 땅이 있어도 땅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내가 존재해도 내 자체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소원은 이 천지의 참된 주인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무엇이냐? 이 천지의 참된 주인을 세우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신앙이라는 것에 의해서 섭리와 경륜하시는 뜻 앞에 충성하겠다고 외치며 나가는 것도 참된 주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내 자신이 참된 주인이 되기 위해서 신앙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만상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죄악된 세상에 널려 있는 주인들은 영원한 주인들이 아닙니다.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역사가 공인하고, 이 시대가 공인하고, 미래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주인을 찾아서 그의 뜻을 받아 가지고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든가, 아니면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주인이 되든가 해야 됩니다. 방법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것을 알고 인류가 지금까지 고대하던 것을 알아서 역사의 모든 흐름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는 필시 이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요, 이 천지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현세의 인간도, 과거의 인간도, 천지도 그런 주인을 고대합니다. (12-304)
양심의 도리를 주장하는 종교, 양심을 움직여 가지고 선을 지향해 나가는 종교가 소개해야 할 최고의 목적은 무엇인가? 주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찾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이래 왔다 간 성인 현철들과 위인들의 모든 사상을 인계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종들 가운데서도 더 좋은 종, 양자들 가운데서도 더 좋은 양자가 되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좀더 좋은 것, 좀더 좋은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목적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참된 주인을 위주한 사상입니다. 참된 주인이란 참된 부모를 말합니다. 그래서 참된 주인을 위주한 사상이란 참된 부모를 위주한 사상입니다. 참된 부모의 내용을 증거하고 그 내용을 중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생활관이 세계적으로 전개된 사회가 역사적인 소망이 이루어진 사회입니다. 그곳은 역사적인 슬픔과 시대적인 슬픔이 남김없이 해소된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부모는 타락한 부모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내 몸과 마음에 심어 주고 내 피살에 상속시켜 준 부모입니다. 영원한 이념세계와 하늘의 심정을 통할 수 있고 천주의 인연을 거치고 역사적인 인연을 거치고 시대적인 인연을 거친 승리적인 기반 위에서 인연된 피살로 나를 낳아 준 부모가 아닙니다. 그런 연고로 어차피 참된 부모 앞에 정비를 당해야 합니다. 그 부모는 우리의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부모의 혈통을 받은 타락의 후손입니다.
지금 이 천지는 점점 수습되어 하나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관문에 서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고대하고 어떠한 사상이나 주의가 고대하는 것들은 지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이 천지는 역사적인 호소와 역사적인 목적과 시대적인 욕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주의를 향하여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주의는 세계주의입니다. 그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에게도 필요하고 민주주의자에게도 필요하며 인종과 관념을 초월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알았을진대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먹는 것도 그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먹고, 싸우는 것도 그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분을 모시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분을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방법을 제시하기 위하여 양심을 근본으로 하여 출발한 것이 종교입니다. 종말시기에 기필코 참다운 주인이 오시거늘,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 그것이 다 이루어지면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전부 다 없어져야 됩니다. (12-307)
주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어떤 무리든지 참된 주인을 고대하는 무리라고 할진대 역사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간곡한 마음과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간곡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지니고 이 시대를 손아귀에 넣고 못된 것은 때려부수고 정비하고 수습하는 책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주인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이시고 유일하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진대 그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하시겠어요? 지금까지 그 하나님은 하루 한 시간을 보내도 오직 그 마음이셨습니다. 오직 참다운 주인, 참다운 아들딸을 고대하시던 마음뿐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주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악한 세상을 수습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들을 중심삼고 섭리해 오셨고 곡절의 환경에서도 그 일념을 버리지 않고 싸워 나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구요!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주인을 세워 가지고 이 천지를 수습하시려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셨겠는가를 말이에요.
하나님이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찾아 나오신 그 주인과 인연을 맺고 그 주인을 모시기를 고대한다고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지지 않고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서 본래의 위치를 잃어버리셨다고 할지라도 그 목표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마음이 철석같이 불변인 것처럼 나도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대를 수습할 수 있는 시대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천륜 앞에 있어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심정적인 세계관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그 주인을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되든가 해야 하는 두 가지의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세계는 그 주인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가 될 텐데, 그 세계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그냥 막연하게 그 세계를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림사상, 메시아의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든지 재림사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구세주가 온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미륵불이 온다고 합니다. 이런 사상이 없으면 올바른 종교가 아닙니다. (12-309)
여러분은 종의 자리를 지나고 양자의 자리를 거쳐서 부모의 이름을 통하여 참다운 혈통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참다운 아들딸의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이런 것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참이라고 할 수 있는 참된 부모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역사는 종교인들을 수습하고, 양심적인 인사들을 수습하고, 심정적인 인사들을 수습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교 문제가 상당한 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오늘날 한국의 어느 종교도 이 문제를 수습하지 못합니다. 갈래갈래 갈라지고 편편이 파편이 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공산주의도 그렇습니다.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주권이 팔리고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시대가 팔리고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역사가 팔리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자기의 신용을 팔아먹고, 인격을 팔아먹고, 자유를 팔아먹는 시대가 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돈으로 처리하는 때가 되면 그때가 끝날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 대해서도, 아내에 대해서도, 아들딸에 대해서도 돈으로써 처리하고 돈으로써 팔아먹고 돈으로 왔다갔다하는 세계,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것에서부터 제일 나쁘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돈 때문에 팔려 다니고 이동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세계가 될 때는 끝날이 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자신이 되든가, 아니면 주인이 되든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나의 목적세계를 지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 지역과 환경에 적응될 수 있는 종교를 세워서 역사를 수습해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민주주의를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는데, 기독교가 민주주의를 수습하지 못하면 기독교와 민주주의는 함께 망합니다. 민주주의를 삼켜 버릴 수 있고 공산주의를 삼켜버릴 수 있는 종교, 공산주의 이론 이상의 내용을 가진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을 찾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이 준비됩니다.
그러한 종교가 있느냐? 그런 종교를 찾아 헤매야 되는 것이 지성인들과 종교인들 그리고 종교를 지배하는 제사장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의 교리를 붙들고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이 어떠한 주의나 종교적인 무엇에 팔려 다닌다면 다 깨집니다. 지금까지의 기성종교나 기성주의에 팔려 다니는 여러분이 된다면 앞으로 남아질 수 있는 주의와 사상이 정립될 수 없고 역사적인 종교의 기반이 닦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나 시대적인 주의에 팔려 다니는 통일교회가 된다면, 통일교회는 깨집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것을 지도합니다. (12-312)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온 여러분, 역사적인 어떤 종교나 주의 앞에 휩쓸리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어떤 어려운 폭풍우가 부딪쳐 오는 환난 가운데서도 극복할 자신이 있고 목이 잘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어요? 항복문서를 쓰고 후퇴하는 패들은 망해 쓰러집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목적 밑에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싸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투쟁역사였습니다.
과거의 생활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성의 종교관념, 기성의 신앙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기성의 신앙관념을 밟아 치우고 넘어서야 됩니다. 전통적인 사조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그 사조를 넘어서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든지 뜻을 위해서 행동해야 됩니다. 뜻을 위한 명령이 우리 앞에 떨어질 때에는 언제나 “예스” 해야 됩니다. “노” 하는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앞으로 찾아오는 주인을 세계적인 주인으로 모셔 놓고서야 여러분의 갈 길이 생겨납니다.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12-314)
역사적인 선조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나니 그 선조들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시대가 부르고 있고, 천륜이 부르고 있는데 그 앞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선조들은 참다운 주인이 이 땅에 찾아오기를 얼마나 바랐겠어요! 10년 걸릴 공사를 1년에 마치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없이 바쁘신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심정을 생각하며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밥을 먹어도 숟가락을 들고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이 통일의 이념입니다. 여러분은 주인이 되든가 주인이 올 수 있는 준비를 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됩니다. 이것은 지도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몽둥이로 패서라도 하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다릅니다. 기성교회의 목사들과 달라요.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면 전부 다 평등입니다. 사회적인 명사 같은 것을 나는 모릅니다. 원리 앞에서는 모두 다 평등입니다. 말을 안 들으면 패서라도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가만히 놔두면 망합니다. 망하는 것을 알면서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12-315) 그렇게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잃어버린 주인을 찾게 해서 그 주인으로부터 상속받게 하는 데 있습니다. 천주의 주인을 모시고 그분의 상속을 받기 전에는 천지의 대주재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천지의 주인을 모셔 가지고 천지의 부모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한테 혈통을 상속받아 축복을 받으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천지의 주인이 됩니다.
천지의 대주재가 되시는 참부모, 참된 주인의 자리를 경유하여 참된 부모의 자리로 올라간 그분과 내적인 인연을 맺고 혈통을 상속받아 부모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기 전에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은 직계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잣집이 있으면 그 부잣집의 영감도 주인이지만 그 아들도 주인입니다. 그렇지만 종은 주인이 아닙니다. 직계가 되어야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언제나 심중에 담아 두어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주인의 행사를 대신하고, 주인을 대신한 기준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직계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기 전에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12-317)
여러분의 마음은 천지의 주인과 더불어 주인이 되고, 그 주인을 대신할 수 있는 책임을 져야 되겠습니다. 어느 분야에 있어서나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발벗고 나서야 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친다고 할지라도 안 쓰러진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런 신념을 갖지 않으면 먹혀 버립니다.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아무나 선생님의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60억 인류 중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를 세워도 선생님만큼 할 수 없습니다. 천지의 누구도 안됩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우리의 것, 세상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의 주인부터 되어야 하느냐? 제일 나쁜 것의 주인부터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감옥살이를 비롯해서 별의별 곳에 다 가 보았지만, 어디에 가든지 말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불한당, 살인 강도라도 며칠만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선생님 앞에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이 됩시다. 영광은 수고의 터전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귀섭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륜의 발전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천지의 대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근심이 있으면 그 근심을 맡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 마음 가운데 십자가가 있으면 그 십자가를 맡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12-320)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해야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최일선에 나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세계적인 원수와 싸우고, 시대적인 불한당과 싸워야 합니다. 총칼을 들고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를 쓰러뜨려야 합니다. 총칼을 들더라도 하나님의 원수를 쓰러뜨리면 정의가 됩니다. 그런 사상과 결의에 불탈 수 있는 청년 남녀를 빨리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 이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명령에 따를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한국을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환난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하면 여러분의 후손들이 처참하게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시대적인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 앞에 나아가 “나를 주인으로 만들어 주소서! 내가 주인의 길을 가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12-322)
앞으로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민족들을 대이동시킬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지정된 땅에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급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찾아가던 것이 복귀역사였기 때문입니다. 애급 땅을 박차고 가나안 땅으로 가야 했던 것이 복귀역사였던 연고로 애급 땅에 처해 있는 것과 같은 입장인 오늘날의 통일신도들은 가나안 땅과 같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한 광야노정은 각자에게 다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집이 문제가 아니고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가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 내에서는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道)적인 이동이고 면(面)적인 이동이지만, 앞으로 세계적인 전통이 되어서 세계의 대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사탄세계의 흔적조차 보기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중심삼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보기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급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당하던 고통 이상의 고생을 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할 때 애급 고역의 시대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신도들은 세상에서 고생했던 것보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더 힘든 고생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중심되는 자녀들을 들이치십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복귀하기 위해서 치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쓰라리고 못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나는 모릅니다.
선생님은 하늘로부터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태어난 지 두 달도 못 된 성진(聖進)이를 그냥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 처자를 내버리고 간 사내녀석이 사람이에요? 성진이는 고아와 같은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사망의 땅을 박차고 하늘이 바라던 가나안 땅을 찾아갔습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국경선을 넘어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출발한 것이 이 길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환경적인 모든 시련을 겪었습니다.
선생님은 돈을 탐하지 않고, 명예에 굴복하지 않고, 내 위신과 처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나안을 복귀하시려는 하나님의 이념에만 사무쳐 있습니다. 하늘의 사명을 책임진 입장에서 나오다가 최종적인 결론에 이를 때 어떻게 남아질 것이냐, 천상의 장부에 무엇으로 남아질 것이냐, 나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늘 앞에 무슨 말을 할 것이냐? 나는 이러한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있을 때도 지금보다 더 철저한 법도에 의해서 하늘을 모셨습니다. 그렇게 개척해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요, 통일교회의 제단입니다. 여기는 여러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기성교회의 목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곳이 아닙니다. 단단히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의 발바닥이 전부 다 벗겨졌겠어요, 안 벗겨졌겠어요? 그것을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도 짐을 많이 져 봤습니다. 지금도 그거 잘 합니다. 그럴 때 내가 그것을 생각 안 했겠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어땠는가를 말이에요. 누구든지 그렇게 되면 몸이 지칩니다. 그렇게 지치고 지치게 될 때 하늘의 심정이 녹아듭니다. 하늘의 심정이 녹아들어요.
남들이 다 하는 걸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누구나 다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들이 울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늘을 붙들고 울어야 하고, 남들이 한탄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늘의 한을 붙들고 한탄해야 합니다. 그래야 충과 효를 세우게 됩니다. (12-337)*
천일국 훈독경 제6권 16일, 원문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
날짜 : 1963. 8. 11(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주인을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섭리
오늘날 이 천지는 주인이 없는 천지가 되었습니다. 아담가정에서부터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천지는 있으되 천지의 주인은 없었습니다. 이 천지의 주인은 본래 인간입니다. 천지의 주인은 본래 여러분이요, 나입니다. 우리들이에요. 주인이 있어야 목적이 있고 사명과 책임이 있고 생활의 목표가 있을 텐데, 주인이 없습니다. 주인을 모시고 살고 주인을 모셔 놓고 천지가 하나되어야 할 것인데, 오늘날 이 땅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하늘이 있어도 하늘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르고, 땅이 있어도 땅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내가 존재해도 내 자체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그 주인을 찾을 것이냐? 막연하게 세계적인 환경이 그 주인을 찾아 준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시대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충성하는 사람들이 그 주인을 찾아 준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설사 그들이 주인을 찾아 준다고 하더라도 그 주인과 하등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있지 않는 한 여러분은 그 주인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인류가 이러한 흑암에 묻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천지의 주인을 찾아 주기 위해서 섭리하신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소원은 이 천지의 참된 주인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무엇이냐? 이 천지의 참된 주인을 세우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신앙이라는 것에 의해서 섭리와 경륜하시는 뜻 앞에 충성하겠다고 외치며 나가는 것도 참된 주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내 자신이 참된 주인이 되기 위해서 신앙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리에 나가면 많은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이는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좌우로 널려 있는 수많은 건물들에도 주인이 있습니다. 달리는 택시 하나에도 주인이 있습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만상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죄악된 세상에 널려 있는 주인들은 영원한 주인들이 아닙니다. 그 주인들은 참된 주인들이 아닙니다.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역사가 공인하고, 이 시대가 공인하고, 미래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주인을 찾아서 그의 뜻을 받아 가지고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든가, 아니면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주인이 되든가 해야 됩니다. 방법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것을 알고 인류가 지금까지 고대하던 것을 알아서 역사의 모든 흐름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는 필시 이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요, 이 천지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현세의 인간도, 과거의 인간도, 천지도 그런 주인을 고대합니다.
그런 주인을 못 찾게 될 때는 역사가 동원되어 찾아야 합니다. 왜 그렇느냐? 그는 역사적인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소망하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은 역사가 고대하던 주인이니까 역사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시대가 고대하는 주인이니까 시대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천지가 고대하는 주인이니까 천지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하나님이 고대하시는 주인이니까 하나님이 동원되어 찾으셔야 합니다. 만일 그 주인을 찾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12-304)
종교가 소개해야 할 최고의 목적
양심의 도리를 주장하는 종교, 양심을 움직여 가지고 선을 지향해 나가는 종교가 소개해야 할 최고의 목적은 무엇인가? 주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찾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이래 왔다 간 성인 현철들과 위인들의 모든 사상을 인계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종들 가운데서도 더 좋은 종, 양자들 가운데서도 더 좋은 양자가 되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좀더 좋은 것, 좀더 좋은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목적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참된 주인을 위주한 사상입니다. 참된 주인이란 참된 부모를 말합니다. 그래서 참된 주인을 위주한 사상이란 참된 부모를 위주한 사상입니다. 참된 부모의 내용을 증거하고 그 내용을 중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생활관이 세계적으로 전개된 사회가 역사적인 소망이 이루어진 사회입니다. 그곳은 역사적인 슬픔과 시대적인 슬픔이 남김없이 해소된 곳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념이 있지만, 그런 이념의 세계말고 심정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참주인을 찾으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참주인을 찾아 돌아가야 됩니다. 그 주인을 찾는 것은 간단합니다. 천지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 역사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 시대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을 찾는 것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자식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뻐합니다. 세상의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습니다. 역사는 그러한 부모를 중심삼고 살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흘러 나가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부모는 타락한 부모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내 몸과 마음에 심어 주고 내 피살에 상속시켜 준 부모입니다. 영원한 이념세계와 하늘의 심정을 통할 수 있고 천주의 인연을 거치고 역사적인 인연을 거치고 시대적인 인연을 거친 승리적인 기반 위에서 인연된 피살로 나를 낳아 준 부모가 아닙니다. 그런 연고로 어차피 참된 부모 앞에 정비를 당해야 합니다. 그 부모는 우리의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부모의 혈통을 받은 타락의 후손입니다.
이 천지는 점점 수습되어 하나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관문에 서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고대하고 어떠한 사상이나 주의가 고대하는 것들은 지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이 천지는 역사적인 호소와 역사적인 목적과 시대적인 욕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주의를 향하여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주의는 세계주의입니다. 그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에게도 필요하고 민주주의자에게도 필요하며 인종과 관념을 초월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세계에 있어서 세계를 지배하는 일등국이라고 자랑하지만 그러한 자랑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리게 할 수 있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천만가지의 물건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가진 기쁨이 잃어버린 부모를 찾은 기쁨과 환희의 마음에 비교될 수 있겠어요?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 주인을 만나는 기쁨은 순간적인 기쁨과 바꿀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인간들도 그 주인을 만나기를 소망했고, 이 시대의 인간들도 그 주인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알았을진대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먹는 것도 그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먹고, 싸우는 것도 그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분을 모시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분을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방법을 제시하기 위하여 양심을 근본으로 하여 출발한 것이 종교입니다. 종말시기에 기필코 참다운 주인이 오시거늘,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 그것이 다 이루어지면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전부 다 없어져야 됩니다. (12-307)
주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어떤 무리든지 참된 주인을 고대하는 무리라고 할진대 역사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간곡한 마음과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간곡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지니고 이 시대를 손아귀에 넣고 못된 것은 때려부수고 정비하고 수습하는 책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주인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천지가 고대하고 천지가 요구하는 그 기준 앞에 가치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 있게 나가야 합니다. 천지가 고대하고 갈망하는 마음보다도 천지를 주관해야 할 인간의 마음이 더 간절해야 됩니다.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이시고 유일하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진대 그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하시겠어요? 지금까지 그 하나님은 하루 한 시간을 보내도 오직 그 마음이셨습니다. 오직 참다운 주인, 참다운 아들딸을 고대하시던 마음뿐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주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참다운 아들딸이 못 됩니다.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악한 세상을 수습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들을 중심삼고 섭리해 오셨고 곡절의 환경에서도 그 일념을 버리지 않고 싸워 나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구요!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주인을 세워 가지고 이 천지를 수습하시려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셨겠는가를 말이에요. 역사노정에 있어서 전투가 벌어지고 세계대전의 참상이 벌어진 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목표하시던 참다운 주인의 사상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찾아 나오신 그 주인과 인연을 맺고 그 주인을 모시기를 고대한다고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지지 않고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서 본래의 위치를 잃어버리셨다고 할지라도 그 목표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마음이 철석같이 불변인 것처럼 나도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대를 수습할 수 있는 시대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천륜 앞에 있어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심정적인 세계관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그 주인을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되든가 해야 하는 두 가지의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세계는 그 주인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가 될 텐데, 그 세계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그냥 막연하게 그 세계를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림사상, 메시아의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든지 재림사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구세주가 온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미륵불이 온다고 합니다. 이런 사상이 없으면 올바른 종교가 아닙니다. (12-309)
선각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
여러분은 종의 자리를 지나고 양자의 자리를 거쳐서 부모의 이름을 통하여 참다운 혈통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참다운 아들딸의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이런 것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망할지라도 그렇게 됩니다. 아무리 사회가 떠들며 통일교회를 반대해도 선생님의 이 철석같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몰아치는 환경에서도 하늘은 선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점령당하지 않고 침범당하지 않는 신념과 생활태도를 갖춘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그 세계가 이루어져도 그 세계와 여러분은 화합할래야 화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을 찾아야 됩니다. 주인의 사명을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든가 하는 둘 중의 하나를 해야 됩니다.
그를 중심삼은 것은 모든 것이 참이라고 할 수 있는 참된 부모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역사는 종교인들을 수습하고, 양심적인 인사들을 수습하고, 심정적인 인사들을 수습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교 문제가 상당한 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오늘날 한국의 어느 종교도 이 문제를 수습하지 못합니다. 갈래갈래 갈라지고 편편이 파편이 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공산주의도 그렇습니다.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주권이 팔리고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시대가 팔리고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역사가 팔리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자기의 신용을 팔아먹고, 인격을 팔아먹고, 자유를 팔아먹는 시대가 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돈으로 처리하는 때가 되면 그때가 끝날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 대해서도, 아내에 대해서도, 아들딸에 대해서도 돈으로써 처리하고 돈으로써 팔아먹고 돈으로 왔다갔다하는 세계,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것에서부터 제일 나쁘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돈 때문에 팔려 다니고 이동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세계가 될 때는 끝날이 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자신이 되든가, 아니면 주인이 되든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종족과 민족마다 종교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나의 목적세계를 지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 지역과 환경에 적응될 수 있는 종교를 세워서 역사를 수습해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민주주의를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는데, 기독교가 민주주의를 수습하지 못하면 기독교와 민주주의는 함께 망합니다. 민주주의를 삼켜 버릴 수 있고 공산주의를 삼켜버릴 수 있는 종교, 공산주의 이론 이상의 내용을 가진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을 찾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이 준비됩니다.
그러한 종교가 있느냐? 그런 종교를 찾아 헤매야 되는 것이 지성인들과 종교인들 그리고 종교를 지배하는 제사장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의 교리를 붙들고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교회냐? 그러한 사상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나온 교회입니다. 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이념을 확립해 가지고 나가자고 모인 무리가 여러분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이 어떠한 주의나 종교적인 무엇에 팔려 다닌다면 다 깨집니다. 지금까지의 기성종교나 기성주의에 팔려 다니는 여러분이 된다면 앞으로 남아질 수 있는 주의와 사상이 정립될 수 없고 역사적인 종교의 기반이 닦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나 시대적인 주의에 팔려 다니는 통일교회가 된다면, 통일교회는 깨집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것을 지도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계시는 주인, 이러한 관점에서 행차하시는 하나님, 이러한 관점에서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이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오늘날 시대적인 지성인들과 이념적인 그 무엇이나 사상적인 그 무엇을 찾아 나아가는 선각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2-312)
우리는 심정세계의 존재들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온 여러분, 역사적인 어떤 종교나 주의 앞에 휩쓸리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어떤 어려운 폭풍우가 부딪쳐 오는 환난 가운데서도 극복할 자신이 있고 목이 잘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어요? 항복문서를 쓰고 후퇴하는 패들은 망해 쓰러집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목적 밑에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싸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투쟁역사였습니다.
나는 일편단심입니다. 일편단심! 내가 그 길을 닦지 못하면 그 길을 닦아 줄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주인을 맞이할 이념적인 기반과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적인 사명을 하자고 선포하고 나선 것이 통일의 이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보면 늙은이나 젊은이 할 것 없이 힘찬 경종을 울려야 할 상태에 있습니다. 채찍을 들어 몰아내지 않으면 안될 상태입니다.
과거의 생활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성의 종교관념, 기성의 신앙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기성의 신앙관념을 밟아 치우고 기성의 신앙관념을 넘어서야 됩니다. 전통적인 사조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그 사조를 넘어서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든지 뜻을 위해서 행동해야 됩니다. 뜻을 위한 명령이 우리 앞에 떨어질 때에는 언제나 “예스” 해야 됩니다. “노” 하는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앞으로 찾아오는 주인을 세계적인 주인으로 모셔 놓고서야 여러분의 갈 길이 생겨납니다.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수많은 원수들이 아우성치던 와중에서도, 수많은 화살을 받아 가면서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는 죽지 않았습니다. (12-314)
우리를 핍박하던 그들이 우리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1차적으로는 종교인들을 무색하게 했으니까 제2차적으로는 모든 주권자들이 “저런 사상과 이념이 있는 것을 몰랐구나”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보여 주자구요! 개인적으로 보여 주고, 가정적으로 보여 주고, 종족적으로 보여 주고, 민족적으로 보여 주고, 전체적으로 보여 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굴복시키고, 종족을 굴복시키고, 민족을 굴복시키고, 모든 주권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세계의 어떤 사조나 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도 “저들과는 상대가 될 수 없다. 못 당한다. 지독하고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뭔가 됩니다. 나라를 생각하고 이 시대를 염려하는 마음이 있거든 생각해 보라구요!
나는 젊은 사람들을 볼 때면 멱살을 잡고 갈겨 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해서 못 할 것이 없습니다. 때로는 인생의 가치가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만도 못한 경우를 볼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고대하고 역사와 시대가 고대하는 하나의 중심으로서 찬양받고 영광의 가치를 지녀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리 통일신도들은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시대적인 사망권 내에서 아우성치고 갈구하며 절규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고, 하늘땅 앞에 부끄럽지 않아요, 내 마음을 재촉하는 천지의 대운세 앞에 부끄럽지 않아요? 만약에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외식하는 자입니다. 내 자신도 부끄럽습니다.
길을 가다가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얼굴을 못 들겠다구요. 부끄러운 남편을 둔 부인은 인격을 갖춘 신랑을 모시고 나오는 부인들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심입니다. 그렇잖아요? 못된 자식을 둔 부모는 그 자식을 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어서 얼굴을 못 듭니다. 우리는 심정세계의 존재들입니다. 고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정경을 바라볼 때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많이 느껴야 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누구냐? 형제들입니다. 역사의 곡절과 비운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만 심정의 세계에서 볼 때 그들은 동기들이요, 형제들입니다. 그들이 죽을 자리에 있고 비참한 입장에 놓여 있으니까 내가 숨을 쉬고 살 기력이 있는 한 그들을 살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먹고 나서도 부끄러워하고, 입고 나서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없어지는 날이면, 이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이 사회의 처참한 환경에서 어떻게 하든지 죽지 않고 버터야 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뜻을 위해서 외쳐야 되겠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그 진의라도 알려 주고 죽겠다는 사명에 불타는 통일신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알고 찾아 나온 신앙세계는 여러분이 찾아 나온 신앙세계와 거리가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재정비하고 재수습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선조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나니 그 선조들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시대가 부르고 있고, 천륜이 부르고 있는데 그 앞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선조들은 참다운 주인이 이 땅에 찾아오기를 얼마나 바랐겠어요! 그 때가 오지 않아서 얼마나 한스러워했겠어요! 10년 걸릴 공사를 1년에 마치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바쁘십니다. 한없이 바쁘신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심정을 생각하며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어도 숟가락을 들고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이 통일의 이념입니다. 여러분은 주인이 되든가 주인이 올 수 있는 준비를 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됩니다. 이것은 지도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몽둥이로 패서라도 하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다릅니다. 기성교회의 목사들과 달라요.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면 전부 다 평등입니다. 사회적인 명사 같은 것을 나는 모릅니다. 원리 앞에서는 모두 다 평등입니다. 말을 안 들으면 패서라도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가만히 놔두면 망합니다. 망하는 것을 알면서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12-315)
이 나라의 주인
그렇게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잃어버린 주인을 찾게 해서 그 주인으로부터 상속받게 하는 데 있습니다. 천주의 주인을 모시고 그분의 상속을 받기 전에는 천지의 대주재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천지의 주인을 모셔 가지고 천지의 부모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한테 혈통을 상속받아 축복을 받으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천지의 주인이 됩니다.
천지의 대주재가 되시는 참부모, 참된 주인의 자리를 경유하여 참된 부모의 자리로 올라간 그분과 내적인 인연을 맺고 혈통을 상속받아 부모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기 전에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은 직계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잣집이 있으면 그 부잣집의 영감도 주인이지만 그 아들도 주인입니다. 그렇지만 종은 주인이 아닙니다. 직계가 되어야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언제나 심중에 담아 두어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주인의 행사를 대신하고, 주인을 대신한 기준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직계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기 전에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했고, 더 나아가서는 친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은 예수님 한 분과 우리가 관계를 맺는 데 있었습니다. 그 관계가 맺어져야만 우리가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소원의 실체대상이 될 수 있고, 역사적인 모든 소원의 실체대상이 될 수 있으며, 현재 모든 인간들이 이상하는 소망의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내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저 건너편의 크고 좋은 집이 불타고 있는데 그 집이 자기의 집이라면 주인인 입장에서 “거 참 잘 탄다” 하면서 구경만 하겠어요? 어떠한 농토나 땅이 자기의 것이라면 그것을 주관하고 관리해야 할 터인데 악질분자나 불한당들이 뺏으려고 하는데도 가만히 있겠어요? 그러한 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보다 몇 십배 악착같이 해서라도 때려눕힐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천지가 주인이라고 공인한 사람 앞에 어떤 악질 불한당이 나타나 위협한다면, 그 주인은 그 악질보다 몇 십배 더 악착같이 해서라도 그 악질을 처치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인입니다. (12-317)
여러분의 마음은 천지의 주인과 더불어 주인이 되고, 그 주인을 대신할 수 있는 책임을 져야 되겠습니다. 어느 분야에 있어서나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발벗고 나서야 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친다고 할지라도 안 쓰러진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런 신념을 갖지 않으면 먹혀 버립니다.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아무나 통일교회에 와서 선생님의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60억 인류 중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를 세워도 선생님만큼 할 수 없습니다. 천지의 누구도 안됩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남이 도와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나를 도와주는 것이 싫습니다. 내가 해 놓고 난 후에 남에게 주고 싶지 손을 벌리고 도와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손만 벌리는 거지 패들은 망합니다. 그러면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없으면 없는 고비를 넘고 넘어가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넘어가자 이겁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그런 길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한테 월급을 줘요, 뭘 줘요? 선생님이 밥을 굶는지, 어떤지 알고 있어요? 여기 본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굶어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신세를 안 져도 굶어 죽지 않아요. 그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생애를 두고 자신해 온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무지무지한 일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저런 일을 하다니…! 어떻게 된 것이냐” 하고 생각하겠지만, 누구든지 세상의 어떠한 무엇이 참소할 수 없는 기준에서 간곡한 심정으로 노력한다면 성사됩니다. 창조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래도 안 되면 눈물을 흘리고 몸뚱이라도 폭발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딪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폭동을 일으키자는 게 아닙니다. 마음에 불을 붙이자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이고이 단장하여 제사장의 옷을 입고 무릎을 끓고 분향하는 사람이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통일신도들은 그것을 알았기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 앞에서 땀을 흘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피를 흘리면 쓰러지는 사람들 앞에서 피로써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속죄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만민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만민의 죄를 대표해서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를 걸어 놓고 호소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우리의 것, 세상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의 주인부터 되어야 하느냐? 제일 나쁜 것의 주인부터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감옥살이를 비롯해서 별의별 곳에 다 가 보았지만, 어디에 가든지 말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불한당, 살인 강도라도 며칠만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선생님 앞에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이 됩시다. 영광은 수고의 터전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귀섭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륜의 발전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천지의 대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근심이 있으면 그 근심을 맡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 마음 가운데 십자가가 있으면 그 십자가를 맡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되어 가지고 뭘 할 것이냐? 환난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못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한 책임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있으니까,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으니까 통곡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로 주어야 합니다. 피와 살로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면서 피와 살을 주었습니다. 피로 주고 살로 주자는 것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생활철학입니다. (12-320)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해야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최일선에 나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세계적인 원수와 싸우고, 시대적인 불한당과 싸워야 합니다. 총칼을 들고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를 쓰러뜨려야 합니다. 총칼을 들더라도 하나님의 원수를 쓰러뜨리면 정의가 됩니다. 그런 사상과 결의에 불탈 수 있는 청년 남녀를 빨리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 이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명령에 따를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한국을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쁜 것을 수습하여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작전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좋은 시대가 올 때 아무도 배척당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느냐? 결론적으로 말해서, 세상의 나쁜 자리에서 죽어간 사람들입니다. 보라구요! 모든 위인들은 시대 시대마다 나쁜 자리에서 죽어갔습니다. 그 시대에서는 제일 나쁜 보자기를 쓰고 갔지만, 시대가 지나간 후에는 그 사람들을 선의 주인공들로 받들어 모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환난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하면 여러분의 후손들이 처참하게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시대적인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 앞에 나아가 “나를 주인으로 만들어 주소서! 내가 주인의 길을 가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인을 모실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세계의 주인을 모시기 위해서는 나라가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그 주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주인을 위해서 준비하는 자들이 되고 주인이 되기 위한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악이 사라질 때까지 주인의 책임을 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주인이 되거나 주인을 모실 수 있습니다. (12-322)
앞으로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민족들을 대이동시킬 것입니다. 이 일은 선생님의 일대에서 해야 됩니다. 흑인은 한국에 살고, 한국 사람은 흑인 세계에 가서 살아야 합니다. 민족적인 관념, 주권적인 관념, 국가적인 관념을 초월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대이동의 역사가 벌어져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금의 때는 그런 세계적인 대이동을 시작해 나가는 때입니다. 각도로 보면 15도 정도의 각도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각도가 처음에는 같지만 계속해서 돌아가면 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지정된 땅에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급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찾아가던 것이 복귀역사였기 때문입니다. 애급 땅을 박차고 가나안 땅으로 가야 했던 것이 복귀역사였던 연고로 애급 땅에 처해 있는 것과 같은 입장인 오늘날의 통일신도들은 가나안 땅과 같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한 광야노정은 각자에게 다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집이 문제가 아니고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가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 내에서는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道)적인 이동이고 면(面)적인 이동이지만, 앞으로 세계적인 전통이 되어서 세계의 대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사탄세계의 흔적조차 보기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중심삼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보기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급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당하던 고통 이상의 고생을 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할 때 애급 고역의 시대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신도들은 세상에서 고생했던 것보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더 힘든 고생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중심되는 자녀들을 들이치십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복귀하기 위해서 치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쓰라리고 못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나는 모릅니다.
선생님은 하늘로부터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태어난 지 두 달도 못 된 성진(聖進)이를 그냥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 처자를 내버리고 간 사내녀석이 사람이에요? 성진이는 고아와 같은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사망의 땅을 박차고 하늘이 바라던 가나안 땅을 찾아갔습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국경선을 넘어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출발한 것이 이 길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환경적인 모든 시련을 겪었습니다.
선생님은 돈을 탐하지 않고, 명예에 굴복하지 않고, 내 위신과 처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나안을 복귀하시려는 하나님의 이념에만 사무쳐 있습니다. 하늘의 사명을 책임진 입장에서 나오다가 최종적인 결론에 이를 때 어떻게 남아질 것이냐, 천상의 장부에 무엇으로 남아질 것이냐, 나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늘 앞에 무슨 말을 할 것이냐? 나는 이러한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있을 때도 지금보다 더 철저한 법도에 의해서 하늘을 모셨습니다. 그렇게 개척해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요, 통일교회의 제단입니다. 여기는 여러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기성교회의 목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곳이 아닙니다. 단단히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의 발바닥이 전부 다 벗겨졌겠어요, 안 벗겨졌겠어요? 그것을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도 짐을 많이 져 봤습니다. 지금도 그거 잘 합니다. 그럴 때 내가 그것을 생각 안 했겠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어땠는가를 말이에요. 누구든지 그렇게 되면 몸이 지칩니다. 그렇게 지치고 지치게 될 때 하늘의 심정이 녹아듭니다. 하늘의 심정이 녹아들어요.
남들이 다 하는 걸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누구나 다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들이 울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늘을 붙들고 울어야 하고, 남들이 한탄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늘의 한을 붙들고 한탄해야 합니다. 그래야 충과 효를 세우게 됩니다. (12-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