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만물의 날 말씀 (천일국 훈독경 제6권 4일)

훈독왕 | 20200526193527

천일국 훈독경 제6권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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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만물의 날 말씀(훈독본) 
날짜 : 1973. 6. 1(금)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오늘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만물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이와 같은 날을 맞이할 적마다 우리들이 자랑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런 날을 이 세상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우리는 긍지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타락이 뭐냐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다음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하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만물이 평형적인 입장에서 통일을 보기를 원하셨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이 피조세계에는 땅이 있고, 그 가운데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중간적인 입장에 선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접촉시킬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 두 세계가 하나되는 때 하나님이 우리와 종적인 면에서 하나되실 수 있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던 소원의 자리를 인간이 결정짓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국은 영계와 육계를 통일시켜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만물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한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두 세계는 사람만이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깨졌으므로 그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찾아야 되느냐? 사람을 먼저 찾아야 되는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만 복귀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귀되어 나와야 되고 만물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귀되어 나와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제물로 드려 가지고 만물과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연결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가지고는 사람의 몸이 만물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때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 만물의 날이 나올 때까지는 사람 자체를 중심삼고 만물과 연결시키고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부활권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중심이 안 되면 완성의 기준을 이룰 수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아야 되는데, 하나님을 중심삼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타락이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이 갈라지고, 인간과 만물이 갈라지고, 인간과 하나님이 갈라진 것입니다. 이게 갈라진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타락된 사랑, 그릇된 사랑으로 말미암아 갈라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이 현현하지 않고는 이걸 통일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참된 완성의 기준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나와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됩니다. 그것을 묶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묶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그 사람과 하나님의 사랑을 묶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67-143)

만물의 날에 거행되는 식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 현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심정적인 부활권을 성취하지 않고는 완성이라는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한 부활을 중심삼고 우리 통일교회에서 심정부활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그 심정부활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실체부활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이 하나되고, 그 하나된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의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횡적으로 인간의 몸이 심정권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사탄권으로부터 침범받던 참소기준을 초월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실체부활권을 성사시키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을 횡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1960년도와 1961년도에 각각 심정부활의 날과 실체부활의 날을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완성된 아담이면 아담, 완성된 해와면 해와가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서 참된 부모를 갖지 못했던 우리 인류 앞에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부모가 나와야 했습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과정을 거친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참된 부모의 기원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 참된 부모를 중심삼고 심정적인 일치기준을 횡적인 면에서 세운 남자와 여자를 설정한 것이 1960년도의 성혼식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졌던 심정적인 기준을 넘어서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연결된 최초의 기준을 설정했던 것이 부모의 날이었습니다. 

 

참부모의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세상 사람들과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은 아직까지 심정적인 기준이 더럽혀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과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심정적인 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심정으로 묶어진 참부모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녀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 자녀의 날을 설정하는 놀음이 벌어졌습니다. 자녀의 날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의 심정을 연결할 수 있는 자녀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36가정이라든가 72가정이라든가 하는 그 가정 식구들이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 가정의 자녀들과 관계를 맺는 기준을 넓혀 나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하여 심정적으로 하나된 자녀의 기준을 통해서 횡적인 기준으로 묶는 일을 해야 됩니다. 이 일을 횡적으로 결정한 외적인 날이 자녀의 날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고, 그렇게 마음과 몸이 하나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날이 벌어졌고, 그 부모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부부로 말미암아 인연된 아들딸을 중심삼고 횡적인 면에서 외적인 식구들이 하나됨으로써 자녀의 날이 설정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의 날을 설정한 심정적인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창조원리에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사위기대,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와 그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의 기준을 만들어서 비로소 사위기대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리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적인 기원이 설정되었지만, 가정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잃어버렸던 만물을 다시 심정일치 된 가정과 연결시키는 일을 성사시키지 않고는 복귀의 완전한 기원을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는 가정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을 중심삼고 만물을 통해 심정적인 문을 개문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그 터전을 결정하는 식이 만물의 날에 거행되는 식입니다. 그러한 식이 있었던 날이 바로 지난 1963년 오늘이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 통일교회가 부모의 날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자녀의 날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만물의 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여건이 비로소 지상에 결정되었습니다. (67-144)

만물이 바라는 최고의 사랑의 주인공

그러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한 나라만 관계를 맺으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와 연결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터전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정들을 축복해 줘 가지고 비로소 1968년 1월 1일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날이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기뻐하셔야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인 동시에 부모의 날이요, 그 다음에 자녀의 날이 되어서 한꺼번에 이 날들이 벌어져야 했는데 역사를 두고 반대로 찾아 올라오는 놀음을 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날이 제일 나중에 나오게 되었느냐? 땅 위의 부모와 자녀 그리고 만물이 사탄의 참소권에 있으므로 그것을 탕감하고야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중심삼고 화합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지배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세계를 급변하는 세계로 변경시켜 나가시면서 우리의 갈 길을 백방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놀음을 해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예, 있습니다”, “참부모의 사랑이 네게 머물 수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예,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 될 수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예,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있으면 모든 만물은 여러분 앞에 상대적인 물건으로 부여되게 되어 있습니다. (67-147)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돈이 생기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참부모의 사랑을 내가 대신 재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나 몸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있느냐,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되고 난 후에야 만물을 주관할 수 있게 됩니다. 

 

원리로 보게 된다면, 참부모의 사랑이 이루어진 그 터전 위에서 만물이 지배받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랑의 내용을 결정적으로 여러분이 갖추었느냐 하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한 심정만 갖고 그것을 만물에 연결시킬 수 있는 노력만 하면 물질에 대한 축복은 원리적인 관에 의해서 허락되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이와 같은 심정을 이룬 사람이 물질에 대한 축복을 못 받는다면 원리가 틀린 것입니다. 만물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누가 제일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부모의 사랑을 갖고, 참다운 자녀의 자격을 갖춰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만물이 바라는 최고의 사랑의 주인공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만물을 대해 주고,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활동한다면 외적인 문제도 발전하게 됩니다. (67-148)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

결국은 더 사랑하는데,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거기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거당합니다. 전체가 그것을 추방합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해야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 미국에 와서 보니까 너무 물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면서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물질은 참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 참다운 자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차는 여러분의 옷과 마찬가지입니다. 옷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몸과 하나된 것입니다. 여기 뉴욕 같은 데 나가 보면 기분 나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차를 소제하고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전부 다 쭈그러진 걸 그냥 몰고 다닙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여자들은 아침에 화장을 하고 남자들은 면도를 하고 거울을 보며 자기를 가꾸고 나서서 차를 타는데, 차도 그렇게 만들어서 타야지요. 차도 상대적인 가치의 기준만큼 만들어 주고 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 만약에 어디에 부딪혀 가지고 쭈그러지면 그것을 붙들고 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차를 사랑하지 못하고 물건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이혼도 잘 합니다. 아들딸도 사랑하지 않고 이혼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직결됩니다. 

 

선생님은 사과 하나를 붙들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알아요?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공산권 내의 감옥에 있을 때였습니다. 일년에 두 번, 5월1일과 정월 초하루에 과일을 주었습니다. 사과를 배급해 주었는데 자기가 좋은 것을 고르는 게 아니라 순서대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나누어줄 때는 벌레가 먹었든 어떻든 그저 배급해 주는 걸 받아야 되었습니다. 그 사과를 나누어주면 보통 사람들은 주자마자 와작와작 1분도 못 돼서 다 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 빛이 얼마나 고우냐! 이 빛을 먹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빛을 먹고, 그 다음에 맛을 먹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을 벌리고 먹을 생각이 안 났습니다. 먹지 않고 두고 봐야 눈요기도 되고 냄새도 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신이 못 되는 것을 느껴 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다니게 못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먹기는 먹었는데, 먹을 때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면서 혼잣말로 “사과를 먹는 데 있어서는 내가 세계에서 첫째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먹는다."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먹은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과 한 알도 그렇게 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차를 사랑하면 차가 고장이 안 납니다. 차를 사랑해서 차와 하나되어 가게 되면 아무리 속력을 내더라도 부딪칠 차가 오다가도 도망갑니다. 그렇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완전히 하나된 것은 사탄이 침범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호해 주시니까 사탄은 못 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옷을 척 입고 거울에 얼굴을 쓱 한번 들여다보고 나가는 것처럼 차를 타는 데도 먼저 차를 쓱 돌아보면서 기름은 있느냐, 물은 있느냐, 그 다음에 기어를 넣고 밟아서 소리를 내 보면서 어디에 고장은 나지 않았느냐, 어제와 지금이 다르지는 않느냐 하고 전부 다 소리를 들어 보고 타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못해도 100미터쯤 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아 보고 고장이 없는지를 확인해 보고 가는 것입니다. 소리도 들어 보고 말입니다. 자기 몸을 단정히 하는 것과 같이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떠나면 사고나라고 해도 안 납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중심삼고 물질에 대한 심정적인 연관성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체이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걸 알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물건을 아껴라” 하지 않아도 아끼게 됩니다. 누가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보지 않는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그렇게 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부처끼리 사랑해요? 축복받은 부처끼리 사랑해요? 그런 사람들이 일을 하러 나가게 되면 자기 일터는 제2의 아내와 마찬가지입니다. 외적인 여편네의 옷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에 나갈 때는 “아유, 직장에 빨리 가고 싶다” 이래야 됩니다. 빨리 가 가지고는 “아이고, 일을 끝내고 또 어서 집에 가면 좋겠다” 이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 가면 직장에 가고 싶고, 직장에 가면 또 집에 가고 싶다고 할 만큼 그렇게 왔다갔다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심정을 가지고 수택리 공장을 왔다갔다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밤에도 직장에 가 보고 싶고 그래야 됩니다. 또, 갔으면 집에 오고 싶고 그래야 됩니다. 여기에 있는 패들도 우리 수택리 공장에 가 봤겠지만, 선생님은 하루에 세 번까지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이구, 선생님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뭐 어저께도 오시고, 조금 전에도 오셨는데 또 뭘 하러 오셨어” 합니다. 그런 심정을 쌓아 나가면 그 물질에 해당하는 상대적인 물질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67-154)

희망의 길

여러분은 오늘 여기에 “만물의 날이니까 가자” 해 가지고 왔는데, 온 목적이 뭐냐?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만물의 날을 축하하기 위한 사랑을 가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모든 것이 이동하는 목적, 존재하는 목적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서 움직이고 사랑을 찾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이 철칙을 여러분은 언제나 갖고 있어야 됩니다. 

 

내가 일생 동안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이동하고 살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힘드는 일이 있고, 눈물이 있고, 혹은 비참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비참한 것이 아니요, 비통한 것이 아니요, 슬픈 것이 아닙니다. 그 원칙을 알겠어요?

존재의 목적이 그러한 내용으로 추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그것만 중심삼아 활용하면 세계적인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창조원칙입니다. (67-159)

행복한 사람

오늘은 만물의 날인데, 여러분이 이런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앞으로 만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가면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같이하심으로 말미암아 발전합니다. 모든 것이 뜻의 결과로 찾아진다는 신념을 가지면 여러분은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알고 있으니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 그리고 자녀의 사랑이 통일된 주체로서 만우주를 대하게 되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이요, 저세계에 가서도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낼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나고, 사랑 때문에 가고 오는 것이 원칙이기에 그 원칙을 따르는 것을 순리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길에 있어서 형통하고, 죽음이 와도 그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하고 그를 패자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거기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눈은 무엇을 보기 위해서 생겨났느냐? 사랑하는 것을 보려고 생겨났습니다. 또, 귀는 무엇을 듣기 위해서 생겨났느냐? 사랑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코는 사랑하는 것을 냄새 맡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입은 사랑하는 것을 먹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나는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그게 불쌍한 사람이에요, 행복한 사람이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그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나 무슨 소리를 들으나 전부 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생활화하고 관계화하고 전체화하면 이상세계는 나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로부터 사랑의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면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데 있어서 조금도 어색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여러분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67-162)*

 

 

천일국 훈독경 제6권 4일, 원문

제11회 만물의 날 말씀

날짜 : 1973. 6. 1(금)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오늘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만물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이와 같은 날을 맞이할 적마다 우리들이 자랑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런 날을 이 세상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우리는 긍지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타락이 뭐냐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다음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하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만물이 평형적인 입장에서 통일을 보기를 원하셨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이 피조세계에는 땅이 있고, 그 가운데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중간적인 입장에 선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접촉시킬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 두 세계가 하나되는 때 하나님이 우리와 종적인 면에서 하나되실 수 있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던 소원의 자리를 인간이 결정짓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국은 영계와 육계를 통일시켜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만물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한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두 세계는 사람만이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깨졌으므로 그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찾아야 되느냐? 사람을 먼저 찾아야 되는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만 복귀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귀되어 나와야 되고 만물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귀되어 나와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제물로 드려 가지고 만물과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연결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가지고는 사람의 몸이 만물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때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 만물의 날이 나올 때까지는 사람 자체를 중심삼고 만물과 연결시키고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부활권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중심이 안 되면 완성의 기준을 이룰 수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아야 되는데, 하나님을 중심삼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타락이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이 갈라지고, 인간과 만물이 갈라지고, 인간과 하나님이 갈라진 것입니다. 이게 갈라진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타락된 사랑, 그릇된 사랑으로 말미암아 갈라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이 현현하지 않고는 이걸 통일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참된 완성의 기준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나와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됩니다. 그것을 묶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묶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그 사람과 하나님의 사랑을 묶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67-143)

만물의 날에 거행되는 식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 현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심정적인 부활권을 성취하지 않고는 완성이라는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한 부활을 중심삼고 우리 통일교회에서 심정부활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그 심정부활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실체부활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이 하나되고, 그 하나된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의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횡적으로 인간의 몸이 심정권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사탄권으로부터 침범받던 참소기준을 초월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실체부활권을 성사시키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을 횡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1960년도와 1961년도에 각각 심정부활의 날과 실체부활의 날을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완성된 아담이면 아담, 완성된 해와면 해와가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심정부활이니 실체부활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듣는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봅니다. 그 말을 처음 들어 보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서 참된 부모를 갖지 못했던 우리 인류 앞에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부모가 나와야 했습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과정을 거친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참된 부모의 기원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 참된 부모를 중심삼고 심정적인 일치기준을 횡적인 면에서 세운 남자와 여자를 설정한 것이 1960년도의 성혼식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졌던 심정적인 기준을 넘어서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연결된 최초의 기준을 설정했던 것이 부모의 날이었습니다. 
참부모의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세상 사람들과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은 아직까지 심정적인 기준이 더럽혀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과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심정적인 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심정으로 묶어진 참부모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녀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 자녀의 날을 설정하는 놀음이 벌어졌습니다. 자녀의 날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의 심정을 연결할 수 있는 자녀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36가정이라든가 72가정이라든가 하는 그 가정 식구들이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 가정의 자녀들과 관계를 맺는 기준을 넓혀 나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하여 심정적으로 하나된 자녀의 기준을 통해서 횡적인 기준으로 묶는 일을 해야 됩니다. 이 일을 횡적으로 결정한 외적인 날이 자녀의 날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고, 그렇게 마음과 몸이 하나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날이 벌어졌고, 그 부모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부부로 말미암아 인연된 아들딸을 중심삼고 횡적인 면에서 외적인 식구들이 하나됨으로써 자녀의 날이 설정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의 날을 설정한 심정적인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창조원리에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사위기대,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와 그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의 기준을 만들어서 비로소 사위기대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리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적인 기원이 설정되었지만, 가정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잃어버렸던 만물을 다시 심정일치 된 가정과 연결시키는 일을 성사시키지 않고는 복귀의 완전한 기원을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는 가정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을 중심삼고 만물을 통해 심정적인 문을 개문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그 터전을 결정하는 식이 만물의 날에 거행되는 식입니다. 그러한 식이 있었던 날이 바로 지난 1963년 오늘이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 통일교회가 부모의 날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자녀의 날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만물의 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여건이 비로소 지상에 결정되었습니다. (67-144)

만물이 바라는 최고의 사랑의 주인공

그러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한 나라만 관계를 맺으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와 연결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참부모 그리고 참자녀의 심정기준을 기반으로 하여 만물의 날을 설정한 그 터전을 세계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1965년도에 40개국에 성지를 책정했습니다. 40개국에 그런 초석을 만들었기 때문에 비로소 이 세계는 우리 뜻과 더불어,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과 더불어 연결될 수 있는 외적인 터전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정들을 축복해 줘 가지고 비로소 1968년 1월 1일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날이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기뻐하셔야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인 동시에 부모의 날이요, 그 다음에 자녀의 날이 되어서 한꺼번에 이 날들이 벌어져야 했는데 역사를 두고 반대로 찾아 올라오는 놀음을 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날이 제일 나중에 나오게 되었느냐? 땅 위의 부모와 자녀 그리고 만물이 사탄의 참소권에 있으므로 그것을 탕감하고야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중심삼고 화합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지배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세계를 급변하는 세계로 변경시켜 나가시면서 우리의 갈 길을 백방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놀음을 해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예, 있습니다”, “참부모의 사랑이 네게 머물 수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예,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 될 수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예,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있으면 모든 만물은 여러분 앞에 상대적인 물건으로 부여되게 되어 있습니다. (67-147)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돈이 생기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참부모의 사랑을 내가 대신 재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나 몸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있느냐,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되고 난 후에야 만물을 주관할 수 있게 됩니다. 
원리로 보게 된다면, 참부모의 사랑이 이루어진 그 터전 위에서 만물이 지배받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랑의 내용을 결정적으로 여러분이 갖추었느냐 하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한 심정만 갖고 그것을 만물에 연결시킬 수 있는 노력만 하면 물질에 대한 축복은 원리적인 관에 의해서 허락되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이와 같은 심정을 이룬 사람이 물질에 대한 축복을 못 받는다면 원리가 틀린 것입니다. 만물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누가 제일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부모의 사랑을 갖고, 참다운 자녀의 자격을 갖춰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만물이 바라는 최고의 사랑의 주인공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만물을 대해 주고,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활동한다면 외적인 문제도 발전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미국을 기반으로 해서 활동하는데, 이 거대한 미국의 재원이 미국 국민이 가질 재원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 그리고 참된 자녀의 심정을 갖출 수 있는 미국 국민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렇게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67-148)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시게 된 동기

그러한 심정적인 기원을 연결시킬 수 있는 외적인 터전이 기독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독교를 중심삼은 미국 앞에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모든 물건을 축복하신 것은 앞으로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그곳까지 옮기시기 위한 것이지,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잘살라고 축복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 거대한 나라가 앞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심정적인 인연과 관계를 못 맺으면 그 물질은 그러한 심정적인 기준을 세우는 곳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1974년까지가 이 문제에 대한 최고의 포화점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기독교를 대표해서 미국을 축복하신 것인데, 이것을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하늘과 심정적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그것을 책임져야 하느냐? 우리가 책임져야 됩니다. 이 나라의 건국 당시를 보게 되면 청교도들이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숭배하던 사상을 중심삼고 건국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축복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미국 건국 당시의 청교도들보다도 미국을 더 사랑하느냐? 문제가 여기에 달렸습니다. 이 나라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청교도들이 인디언들과 싸우던 이상의 개척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개척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옛날에 서구인들에게 있어서는 여기에 입주하는 데, 자기들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세계를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청교도 사상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밖에 나가면 수많은 교회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지은 것입니다. 사랑의 표시로 이루어진 그런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것은 “우리는 기독교 이상으로 이 민족을 사랑하고 기독교 이상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건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에 소속되어 있는 건물을 비롯한 모든 물건들을 기독교 사람들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그 기독교는 갈 데가 없어집니다. 그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하나님이 옮겨 주셔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교회들은 피폐해 가고 있습니다. 그 피폐해 가는 교회를 새로이 건설할 수 있는 주인공은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이 민주주의는 세계를 위한 민주주의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을 위한 민주주의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미국을 움직여 가지고 세계를 저버리는 민주주의의 대표국가가 아니라 세계를 품어주는 세계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미국 내의 어떤 지방이나 도시를 가더라도 그런 심정을 가진 식구들이 많아져서 기독교를 움직일 수 있고 나라를 움직일 수 있고 세계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 그리고 자녀의 사랑을 갖추어 가지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만 선다면 하나님은 그 세계를 그런 사람들에게 돌려 주셔야 할 원리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시게 된 동기는 청교도 사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구라파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를 중심삼고 “난 독일 민족이고, 난 불란서 민족이고, 난 영국 민족이다” 하면서 싸우는 것보다도 우선 현지의 인디언들과 싸워야 했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되는 정신이 있었는데, 그것이 위대했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오늘날 미국이 공헌했던 것은 민족적인 감정을 초월하여 하나로 묶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로 묶어질 수 있는 기반을 기독교 사상으로 말미암아 강화시켰습니다. 
만일 미국이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대표국가로서 어떠한 나라의 사람들이라도 품고 사랑하여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축복받는 나라가 안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그럴 수 있는 단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67-149)

역사적인 사건

세계적인 입장에서 우리 통일교회 앞에 원수는 누구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를 공격하는 그 원수는 결국 세계적인 공산주의입니다. 이 공산주의를 대해서는 우리가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돼야 하겠습니다.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보다 강하게 민족을 초월한 자리에서 하나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세계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우리는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탄세계보다 높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될 수 있는 사람들끼리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사탄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보게 되면, 여기에는 선생님과 같은 한국 식구와 일본 식구 그리고 미국 식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가외 나라의 사람들도 왔지만 주로 이 세 나라의 식구들입니다. 지금 복귀섭리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세 나라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들은 서로가 하나될 수 있는 과거의 역사적인 내용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한국하고 일본은 서로 원수입니다. 또, 일본하고 미국도 역사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 가지고 한국을 저렇게 만든 것은 미국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 것은 미국의 책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포츠담 회담에서 루스벨트와 처칠 그리고 스탈린이 한국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책임입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주도적인 입장에서 승리의 권한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미국에게 책임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미국이 한국을 협조하기 때문에 그것을 용서받을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대해서 지금까지 협조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이 세 나라를 두고 볼 때 미국과 한국은 가깝지만 한국과 일본이 틀렸고 미국과 일본이 틀린 입장에 지금 들어와 있습니다. 30년도 못 되는 28년 전에는 전부 다 서로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게 된다면 도저히 하나될 수 없는데도 이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세계사적인 문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그것을 누구로 말미암아 수습할 것이냐? 선생님과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그것이 가능한 권내에 들어오고 있는 것을 현재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원수관계를 맺게 한 국가는 어디냐? 그것은 미국도 아니요, 한국도 아니요, 일본입니다. 왜 그러하냐? 그것은 복귀의 원칙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인간조상이 타락할 때 해와가 아담과 천사장의 두 남자를 망하게 했습니다.   
원리적인 기준에서 보게 되면, 일본은 해와국가의 입장입니다. 하늘의 외적인 축복권 내에 들어온 이때에 있어서 일본이 급진적으로 물질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오늘날 외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기준을 허락한 것도 일본을 하늘 편에서 해와국가로 설정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로 만드느냐? 해와는 하나로 못 만듭니다. 그것은 아담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해와를 이끌어 가지고 둘이 하나되어 천사장을 구해 줘야 됩니다. 앞으로 미국 혼자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아담국가와 해와국가를 투입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살려 줄 길을 열어 주자는 것이 우리의 운동입니다. 선생님이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 일본 식구들과 더불어 여기의 기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하는 그 의의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미국과 구라파를 보면, 이 둘은 가인과 아벨입니다. 어디가 가인이냐 하면 구라파가 가인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가인의 입장에 있는 구라파의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하나되면 선생님과 해와 그리고 가인이 하나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통일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곳에 와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선생님 같은 한국 사람들은 한국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미국을 사랑해야 되겠고, 일본 사람들은 일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미국을 사랑해야 되겠고, 구라파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미국을 사랑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미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국 식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미국은 아벨의 입장이기 때문에 희생하는 데도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또, 아담과 해와의 국가를 두고 볼 때 미국은 종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들보다 앞서야 됩니다. 전체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 식구 여러분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게 원리로 볼 때 미국이 현재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래서 미국 식구들은 한국 식구들이 하는 이상, 일본 식구들이 하는 이상 해야 됩니다. 이거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생님은 기필코 그 이상 하게 만들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더라도 이것을 안 해 놓으면 안됩니다. 단결해 가지고 이것만 하겠다고 나서는 날에는 미국이 안 망합니다. 그러면 안 망한다는 것이 원리적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리가 틀린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벨의 입장인 미국이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선생님은 가인을 찾아갈 것입니다. 선생님은 가인을 찾아가서 일할 수 있습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1980년대, 3차 7년 노정까지 미국에 대한 작전입니다. 왜 선생님이 여기에 와서 이렇게 여러분을 못 살게 하는지 알겠지요?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딱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되지 못할 사람들이 하나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강하게 하나되기만 한다면, 이것을 무너뜨릴 주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67-151)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

그러면 앞으로 우리의 새로운 문화의 전통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느냐? 지금의 미국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형태이긴 형태이되 개인주의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를 대표해서 세계를 위주로 하고 하늘땅을 위주로 한 민주주의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개인주의를 완전히 제거시켜야 되겠습니다. 개인주의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생각하지 않고,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계야 어찌 되든, 나라야 어찌 되든 나만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건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갖추어 가지고 미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볼 때 누구보다도 더 미국을 사랑하고, 단체로 볼 때 어떤 단체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어떠한 기독교 단체보다도 더 미국을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 미국을 움직일 수만 있게 된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다른 데로 갈 데가 없습니다. 결국은 더 사랑하는데,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거기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거당합니다. 전체가 그것을 추방합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해야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 미국에 와서 보니까 너무 물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면서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물질은 참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 참다운 자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차는 여러분의 옷과 마찬가지입니다. 옷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몸과 하나된 것입니다. 여기 뉴욕 같은 데 나가 보면 기분 나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차를 소제하고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전부 다 쭈그러진 걸 그냥 몰고 다닙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여자들은 아침에 화장을 하고 남자들은 면도를 하고 거울을 보며 자기를 가꾸고 나서서 차를 타는데, 차도 그렇게 만들어서 타야지요. 차도 상대적인 가치의 기준만큼 만들어 주고 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 만약에 어디에 부딪혀 가지고 쭈그러지면 그것을 붙들고 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차를 사랑하지 못하고 물건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이혼도 잘 합니다. 아들딸도 사랑하지 않고 이혼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직결됩니다. 
선생님은 사과 하나를 붙들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알아요?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공산권 내의 감옥에 있을 때였습니다. 일년에 두 번, 5월1일과 정월 초하루에 과일을 주었습니다. 사과를 배급해 주었는데 자기가 좋은 것을 고르는 게 아니라 순서대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나누어줄 때는 벌레가 먹었든 어떻든 그저 배급해 주는 걸 받아야 되었습니다. 그 사과를 나누어주면 보통 사람들은 주자마자 와작와작 1분도 못 돼서 다 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 빛이 얼마나 고우냐! 이 빛을 먹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빛을 먹고, 그 다음에 맛을 먹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을 벌리고 먹을 생각이 안 났습니다. 먹지 않고 두고 봐야 눈요기도 되고 냄새도 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신이 못 되는 것을 느껴 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다니게 못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먹기는 먹었는데, 먹을 때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면서 혼잣말로 “사과를 먹는 데 있어서는 내가 세계에서 첫째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먹는다."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먹은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과 한 알도 그렇게 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차를 사랑하면 차가 고장이 안 납니다. 차를 사랑해서 차와 하나되어 가게 되면 아무리 속력을 내더라도 부딪칠 차가 오다가도 도망갑니다. 그렇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완전히 하나된 것은 사탄이 침범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호해 주시니까 사탄은 못 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옷을 척 입고 거울에 얼굴을 쓱 한번 들여다보고 나가는 것처럼 차를 타는 데도 먼저 차를 쓱 돌아보면서 기름은 있느냐, 물은 있느냐, 그 다음에 기어를 넣고 밟아서 소리를 내 보면서 어디에 고장은 나지 않았느냐, 어제와 지금이 다르지는 않느냐 하고 전부 다 소리를 들어 보고 타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못해도 100미터쯤 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아 보고 고장이 없는지를 확인해 보고 가는 것입니다. 소리도 들어 보고 말입니다. 자기 몸을 단정히 하는 것과 같이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떠나면 사고나라고 해도 안 납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중심삼고 물질에 대한 심정적인 연관성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체이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걸 알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물건을 아껴라” 하지 않아도 아끼게 됩니다. 누가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보지 않는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그렇게 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부처끼리 사랑해요? 축복받은 부처끼리 사랑해요? 그런 사람들이 일을 하러 나가게 되면 자기 일터는 제2의 아내와 마찬가지입니다. 외적인 여편네의 옷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에 나갈 때는 “아유, 직장에 빨리 가고 싶다” 이래야 됩니다. 빨리 가 가지고는 “아이고, 일을 끝내고 또 어서 집에 가면 좋겠다” 이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 가면 직장에 가고 싶고, 직장에 가면 또 집에 가고 싶다고 할 만큼 그렇게 왔다갔다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심정을 가지고 수택리 공장을 왔다갔다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밤에도 직장에 가 보고 싶고 그래야 됩니다. 또, 갔으면 집에 오고 싶고 그래야 됩니다. 여기에 있는 패들도 우리 수택리 공장에 가 봤겠지만, 선생님은 하루에 세 번까지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이구, 선생님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뭐 어저께도 오시고, 조금 전에도 오셨는데 또 뭘 하러 오셨어” 합니다. 그런 심정을 쌓아 나가면 그 물질에 해당하는 상대적인 물질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67-154)

희망의 길

여러분은 오늘 여기에 “만물의 날이니까 가자” 해 가지고 왔는데, 온 목적이 뭐냐?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만물의 날을 축하하기 위한 사랑을 가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모든 것이 이동하는 목적, 존재하는 목적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서 움직이고 사랑을 찾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이 철칙을 여러분은 언제나 갖고 있어야 됩니다. 
내가 일생 동안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이동하고 살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힘드는 일이 있고, 눈물이 있고, 혹은 비참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비참한 것이 아니요, 비통한 것이 아니요, 슬픈 것이 아닙니다. 그 원칙을 알겠어요?
존재의 목적이 그러한 내용으로 추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그것만 중심삼아 활용하면 세계적인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창조원칙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만큼 있다면 이 사람들이 미국을 움직이겠어요, 못 움직이겠어요?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단, 시간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미국은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자신을 가지고 “미국은 움직인다” 하고 딱 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1965년도에 미국에 와서 43일간에 미국을 일주한 것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전부 다 준비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미국 국민을 대해 가지고 이런 심정을 가졌기 때문에 미국은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가는 사람 앞에는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어떤 곳이든 내가 가지 않더라도 영계가 동원해서라도 움직여 줘야 되는 것이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영계가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 현상이 자꾸 벌어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맨날 지방에 나가서 전도하라고 합니다. 그것을 하게 되면 그냥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거기에는 그래야 한다는 깊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네가 안 하면 안된다” 하며 그 사랑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큰 사랑의 세계를 소개해 주기 위해서 선생님이 그런다고 생각할 때 그 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디를 가나 고생을 하고 다 불평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전부 다 참고 가는 것은 왜 그러냐? 사랑의 목적을 거기에서 이룰 수 있겠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동해 가 가지고 아무리 어렵게 살더라도 그것이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의 목적을 침범하고 결여되게 하고 손해보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길은 소원의 길이요, 그 길은 희망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사랑의 길이요, 사랑을 소개하고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절망의 길이 아니라 희망의 길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선생님은 그저 자기 출세를 위해서, 우리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저런다” 하고 생각한다면 움직이겠어요? 안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죽어도 미국을 전부 다 구하고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의 자리에 갈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더 욕심을 부려 가지고 더 무엇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누구를 위해서냐? 세계를 위하고, 여러분을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심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들이 힘들더라도 선생님 앞에 무조건 복종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할 수 있는 마음을 안 가져야 됩니다. 안 갖는 게 원칙입니다. 또, 마음이 불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다가는 나중에 영계에 가서나 이 세상에서 결국은 주체와 상관없는 자리에 떨어지고 맙니다. 낙오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67-159)


행복한 사람

오늘은 만물의 날인데, 여러분이 이런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앞으로 만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가면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같이하심으로 말미암아 발전합니다. 모든 것이 뜻의 결과로 찾아진다는 신념을 가지면 여러분은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알고 있으니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 그리고 자녀의 사랑이 통일된 주체로서 만우주를 대하게 되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이요, 저세계에 가서도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낼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나고, 사랑 때문에 가고 오는 것이 원칙이기에 그 원칙을 따르는 것을 순리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길에 있어서 형통하고, 죽음이 와도 그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하고 그를 패자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거기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눈은 무엇을 보기 위해서 생겨났느냐? 사랑하는 것을 보려고 생겨났습니다. 또, 귀는 무엇을 듣기 위해서 생겨났느냐? 사랑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코는 사랑하는 것을 냄새 맡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입은 사랑하는 것을 먹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나는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그게 불쌍한 사람이에요, 행복한 사람이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그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나 무슨 소리를 들으나 전부 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생활화하고 관계화하고 전체화하면 이상세계는 나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로부터 사랑의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면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데 있어서 조금도 어색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여러분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6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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