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16일) u

철장왕 | 20190216225146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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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 (훈독본)
 날짜 : 1959. 2. 8(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자랑의 조건을 찾으시려는 하나님
  
성경 창세기 1장 24절에서 31절의 말씀은 첫째 날로부터 여섯째 날까지 지으신 만물을 대하여 하나님은 좋다, 즉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선하다는 말씀 가운데는 무한히 자랑하고 싶은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회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지으신 만물을 바라보시고 자랑하고 싶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바라볼 때 무한히 기쁘셨던 것입니다. 그 기쁜 마음을 가지고 “선한지라!” 하고 거듭거듭 하신 말씀은 만물에게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선한지라!”고 찬양을 받았던 모든 피조물들이 선의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랑하시려던 그 뜻이 만물 가운데 실체적으로 나타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서러운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선한지라!” 하셨던 그 말씀이 슬픔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아주는 참된 본연의 사람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지어진 만물을 바라보며 더욱 더 큰 기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지라고 하신 그 말씀의 가치기준을 알고 대해 준 존재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피조만물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에는 서글픔이 잠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선하게 지어진 그 피조만물보다도 그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자신을 더 자랑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 앞에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그들이 자라는 만물을 주관하고 선의 이념권 내에서 말씀의 가치를 실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아담과 해와를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이 도래하기를 고대하면서 그들을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은 그들이 완성단계에 올라서서 만물을 주관하고 하나님 대신의 존재로 나타나는 그 한날을 심중으로 그리워하셨고 고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세워 놓고 오랜 기간을 거치며 만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자랑하실 수 있는 역사적인 한 순간을 갖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아담과 해와를 세워 놓고 “너 자신은 내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닮은 실체로서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요, 네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네가 응하면 나도 응하는 모습, 둘이 아닌 하나의 모습이다.” 하실 수 있는 한날을 소망하며 고대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오늘날 우리는 더듬어 헤아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했던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인간 조상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자랑의 조건들이 전부 다 사라져 오히려, 자랑의 조건이 슬픔의 조건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타락된 인간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5-238)
  
 하나님 앞에 자랑의 존재가 되려면
  
피조만물을 지어 놓고 한날 한 시간도 자랑하지 못한 하나님, 자랑이 변하여 슬픔으로 눈물로 나타난 천적인 그 사정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는 우리가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본성을 찾아야 할 때요, 본연의 생명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부터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본성의 사랑의 심정을 마음속에 지니고 하나님이 자랑하시려던 본연의 모습을 갖춰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부끄럽게 하실 수 있는 하나의 실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6천 년 동안 고대하며 찾아 나오셨지만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신 채 이 시간까지 나오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타락된 인간이지만 자랑하고 싶은 본심이 여러분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지배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랑하고 싶은 그 마음을 옳지 못한 것으로 인정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나쁜 마음이 아니라 본성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창조본연의 마음입니다. 우리 한 자신을 자랑하여 가정을 지나고 사회를 지나고 국가를 지나 세계에까지 자기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싶은 것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심정입니다. 


그렇게 자랑하고픈 심정이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본성적으로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일체적인 이상을 이루었더라면 우리의 자랑이자 하나님의 자랑이요, 하나님의 자랑이자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있는 본연의 관계가 있었던 연고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타락되었을망정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러한 만우주의 중심가치를 찾기 위하여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된 인간인 연고로 우리의 움직이는 모든 자랑의 법칙이라는 것이 순리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역리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연의 심정을 따라서 순리의 법도를 찾아 나가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잃어버리고 역로(逆路)를 거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본연의 심정이 지향하는 방향과 현실 환경과는 대립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제 먼저, 자기를 내세워서 자랑하기 전에 하나의 중심을 내세워 자랑해야 될 것입니다. 나라를 자랑하고 싶다고 할진대,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것보다 어떤 충신을 세워서 그 나라를 자랑해야 되고, 어떤 종족을 자랑할 때도 하나의 중심을 세워서 자랑해야 됩니다. 역시,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하나님을 걸어 놓고 자랑하는 그러한 노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자랑의 존재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려면
  
누구든지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가 기쁘기 위해서 자랑하는 사람은 천리원칙에 어긋나는 조건을 세우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의 자랑의 조건을 넘어 상대적인 존재를 자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선함을 자랑할 줄 알고 그의 특성을 자랑할 줄 아는 자가 되면 될수록 그 정도만큼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를 넘어 가정을 자랑하고 싶고 교회라든가 국가와 세계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고 있지만 지금까지 진정으로 자랑하고 싶었던 세계나 국가, 교회, 가정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세계와 국가, 교회, 가정을 아직까지 찾지 못한 인간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사무쳤던 하나님의 심정을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나를 찾기 위한 하나님의 6천 년 동안의 수고의 역사, 혈투전을 벌여 온 비참한 역사의 노정을 거쳐 오늘날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이지만 역사노정 중 어느 한 때도 인간을 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천적인 사정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갖고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선의 동산에서는 우리 개체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개체를 세워서 만물 앞에 자랑하실 수 있었고 만물을 천사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본연의 마음이 나에게서 출발하여 가정, 사회, 국가와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랑과 인연이 맺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입장에 있는 타락된 후손들이기 때문에 그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치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될 슬픈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랑의 조건이었던 아담과 해와가 사탄까지도 “당신이 자랑할 수 있는 참된 아들딸입니다. 과연,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하면서 숭배할 수 있어야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그 후손들도 6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사탄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슬픔에 처해 계시는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고, 열이 만을 이루어서 민족 혹은 국가와 세계적으로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자랑의 방향을 찾아 나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방향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될 타락된 후손들이요,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본연의 세계,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주권,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본연의 사람,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본연의 생명과 성품 그리고 사랑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되었습니다. (5-242)
  
 하나님은 어떤 조건 하에서 우리를 대하시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조건 하에서 우리를 대하시는가? 사탄 세계에서 제일 싫어하는 조건을 세워서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믿지 못할 환경에서 믿으라고 강조했고 따먹고 죽을 수 있었던 환경에서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많은 선조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행하기 어려웠던 환경에서도 말씀대로 실행해 나왔습니다. 노아는 역경 가운데서도 120년 동안을 하루같이 믿었습니다. 모든 핍박과 비소를 단연히 추방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자 하던 마음이 간곡했습니다. 자신이 자랑하고 싶어했던 어떠한 조건보다도, 사회의 어떠한 자랑의 조건보다도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어하시던 조건이 크고 귀하다는 것을 알고 따라나왔습니다. 


그러한 길을 따라나온 노아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민을 물심판하셨더라도 그 무리들이 노아에게 항거할 수 있었던 어떠한 조건도 성립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천적인 자랑의 가치와 실체적인 가치를 세워 놓은 것이 노아 때의 심판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딸들도 하나님이 세워서 자랑하고 싶으셨던 심정과 통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 자신들을 중심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천륜이 뒤집어졌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던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탄세계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처는 지극히 아름다웠고 생활은 풍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역경의 자리로 내몰기 위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깊이 느끼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고 있던 현실의 생활이 자랑의 기준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게 되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살던 가정과 모든 재물을 다 버리고 하란 광야로 향하던 아브라함의 사정은 비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자랑의 한날이 있을 것을 믿고 가던 아브라함의 발걸음은 늠름했습니다.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이 부딪쳐 올지라도 백번 천번 넘어가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랑의 동산을 찾아가던 마음은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컸던 것입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심정과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상대적인 존재를 찾아 헤매시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 합일점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믿음의 조상으로 서게 되었는데, 그 후손들은 민족을 넘어 세계를 향하여 나가야 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화찬란했던 바로의 궁중에서 남부럽지 않았던 환경에서 살았으되, 그는 하나님이 민족을 세워서 자랑하실 수 있을 날을 누구보다도 고대했습니다. 애급에서 4백 년 동안 도탄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던 불쌍한 민족이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가나안 복지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소망의 동산을 건설하여 어느 민족 어느 국가 못지 않은 나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지상천국을 건설해 주실 것을 모세는 바랐습니다. 


그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불편한 것이 없었는데 그것을 전부 다 거부하고 자랑의 조건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신음하고 고통받던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 앞에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가나안 칠족에게 빼앗긴 가나안 땅을 사모하며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했던 마음이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선민을 세워서 자랑하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마음과 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셨던 것입니다. (5-244)
  
 예수님을 내세워 자랑했어야 할 인류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수고하신 결정체요, 사랑과 심정의 화신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사정, 소망과 심정은 하나님의 그것들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한 존재로 세우셨던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자신의 대신자, 자랑하실 수 있었던 중심존재로 보내셨는데 그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자기를 자랑한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었던 자리에서 예수님은 한 번도 자랑해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었던 만큼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들어 자랑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고대하시던 자랑의 결실체로 왔던 연고로 예수님 자신을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앞에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수만 군중들 앞에 자기를 세워서 자랑할 발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세우실 때는 하늘땅의 모든 피조만물 앞에 자랑하시고 사탄 앞에까지 자랑하시고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 하나의 가정, 하나의 교단, 하나의 민족과 세계도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배반했던 역사적인 죄를 저지른 우리 인간은 자기를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위치에 서지 못하고 그러한 환경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교단,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을 만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슬픔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4천 년 역사를 대신하여 세울 때 “황공하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 사무친 것은 그 세우신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변명하기보다 “나를 세워 수고하신 아버지의 소원이 이렇게 될 줄이야…!”라고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인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러한 심정을 가졌던 예수님을 자랑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개인, 가정, 민족과 세계 앞에 세우고 싶었던 자랑의 한날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바라시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랑했어야 할 예수님, 영광의 모습으로 자랑했어야 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처참한 모습이 되었던 억울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걸어가던 예수님이 민족을 대하여, 하늘땅을 대하여, 사탄을 대하여 품으셨던 그 원한의 심정을 해원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의 가슴에 가득 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자랑해야 할 우리

심정의 결실체로 오셨고, 인류의 소망의 결실체로 오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오셨던 참아버지를 원한의 자리에 몰아넣은 것이 우리의 선조들이었고, 사탄이 저지른 행사였으니, 오늘날 우리는 그 선조들의 죄를 청산짓고 사탄을 심판하고 싶은 불타오르는 마음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자랑의 동산이 슬픔의 골고다로 변했다니, 그것이 웬말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예수님을 자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산 제단을 찾기 위하여 허덕였던 예수님의 심정을 자랑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땅에서 찾고자 했던 하나의 사람과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민족을 붙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했던 심정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우리가 최후에 해야 할 것은 역사적으로 저지른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하나님이 그렇게 찾고 있던 하나의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가정과 종족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그러한 선민이 나타나야 하고 그러한 천민(天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한 뜻을 이루기 위한 마음이 여러분에게서 솟구쳐 올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 상봉한 바울은 그날부터 예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자신, 즉 면목이 없는 자신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위해 살려고 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겠다는 심정에 사로잡혀 “죽으나 사나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대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독교의 새로운 터전이 여기서부터 닦이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의 심정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정과 소원을 자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 찾고 있던 신부를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찾고 있던 신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님이 찾고 있던 가정, 민족, 국가, 세계를 자랑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드러내어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5-250)
  
 하나님과 예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내가 되자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2천 년 역사가 경과했지만 지금까지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불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자기의 몸이 찢기고 옆구리에 창이 들어오고 이마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지고 손발에 못이 박혀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자랑의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개를 달게 넘어가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여러분은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을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나 그것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죽음 길에서도 하나님 앞에 자랑해야 되겠다는 심정을 갖고 가신 예수님의 생애를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고개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에게서 열매맺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신부를 세워 그 열매를 맺고자 2천 년 동안 기다려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은 예수님의 신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은 존재, 예수님이 자랑하고 싶은 존재, 나아가 여러분이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어린양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자랑하려고 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있는 전후·좌우·상하의 모든 것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자신의 주위에 속한 모든 것을 자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전체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자랑의 조건으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는 자신을 냉정히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하시며, 예수님은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하시며, 나는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합니까? 하나님을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고, 예수님을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고, 온 만물을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께서 자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모습,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한 자랑스런 모습이 여기 있사오니 이 몸을 내세워 사탄 앞에 자랑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의 마음과 생명의 권한과 본연의 성품을 갖추어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내가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모든 것을 온 피조 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으며, 만인간 앞에 자랑할 수 있으며, 삼위신 앞에도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탄까지도 “옳소이다. 그들은 당신이 세우신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하나님이 자랑할 만하오니 그들을 내세워 영원히 당신의 영광을 누리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야 되겠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대해 “내가 이 세계를 다 잃더라도 너 하나를 찾으면 만족하도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사무쳤던 원한을 해원하는 동시에 소원과 이상을 성취해야 참사랑의 중심과 하나될 수 있고,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자랑할 수 있고, 우리 또한 하나님을 영원히 자랑할 수 있으며, 하늘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가 우리를 자랑의 조건으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5-252)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16일 원문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 
 날짜 : 1959. 2. 8(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자랑의 조건을 찾으시려는 하나님
  
성경 창세기 1장 24절에서 31절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첫째 날로부터 여섯째 날까지 지으신 만물을 대하여 하나님은 좋다, 즉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선하다는 말씀 가운데는 무한히 자랑하고 싶은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회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지으신 만물을 바라보시고 자랑하고 싶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바라볼 때 무한히 기쁘셨던 것입니다. 그 기쁜 마음을 가지고 “선한지라, 선한지라!” 하고 거듭거듭 하신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이었느냐? 그 말씀은 천사장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만물에게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대해 그렇듯 간절한 마음을 품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선한지라!”고 찬양을 받았던 모든 피조물들이 선의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랑하시려던 그 뜻이 만물 가운데 실체적으로 나타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서러운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선한지라!” 하셨던 그 말씀이 슬픔의 말씀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선한지라고 하신 그 말씀이 슬픔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아주는 참된 본연의 사람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지극한 수고의 손길을 거쳐서 지어진 만물을 바라보며 더욱 더 큰 기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지라고 하신 그 말씀의 가치기준을 알고 그 말씀을 대해 준 존재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피조만물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에는 서글픔이 잠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선하게 지어진 그 피조만물보다도 그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자신을 더 자랑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 앞에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입니다.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라는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그들이 자라는 만물을 주관하고 선의 이념권 내에서 말씀의 가치를 실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아담과 해와를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이 도래하기를 고대하면서 그들을 바라보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회상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은 그들이 완성단계에 올라서서 만물을 주관하고 하나님 대신의 존재로 나타나는 그 한날을 심중으로 그리워하셨고 고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세워 놓고 오랜 기간을 거치며 만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자랑하실 수 있는 역사적인 한 순간을 갖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아담과 해와를 세워 놓고 “너 자신은 내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닮은 실체로서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요, 네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네가 응하면 나도 응하는 모습, 둘이 아닌 하나의 모습이다.” 하실 수 있는 한날을 소망하며 고대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오늘날 우리는 더듬어 헤아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했던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인간 조상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창세 이후 하나님은 인간 조상을 통하여 자랑하실 수 있는 가정이 나타나는 한날을 심중으로 고대하셨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자랑의 조건들이 전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히려, 자랑의 조건이 슬픔의 조건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타락된 인간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본연의 아버지의 내적인 성상에 사무쳐 있는 자랑하고 싶었던 심정에 파고 들어가, 그것을 들추어내어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5-238)
  
 하나님 앞에 자랑의 존재가 되려면
  
피조만물을 지어 놓고 한날 한 시간도 자랑하지 못한 하나님, 자랑이 변하여 슬픔으로 나타났고 자랑이 변하여 눈물로 나타난 천적인 그 사정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는 우리가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본성을 찾아야 할 때요, 본연의 생명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부터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본성의 사랑의 심정을 마음속에 지니고 하나님이 자랑하시려던 본연의 모습을 갖춰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부끄럽게 하실 수 있는 하나의 실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6천 년 동안 고대하며 찾아 나오셨지만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신 채 이 시간까지 나오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을 내세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또, 나를 중심삼은 부모와 형제와 자녀, 즉 한 가정 전부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종족을 내세워 자랑하고 싶고, 국가를 내세워 자랑하고 싶고, 세계와 온 하늘땅을 내세워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타락된 인간이지만 자랑하고 싶은 본심이 여러분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지배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랑하고 싶은 그 마음을 옳지 못한 것으로 인정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이웃사람들에게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에게까지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나쁜 마음이 아니라 본성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창조본연의 마음입니다. 우리 한 자신을 자랑하여 가정을 지나고 사회를 지나고 국가를 지나 세계에까지 자기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싶은 것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심정입니다. 


그렇게 자랑하고픈 심정이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본성적으로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일체적인 이상을 이루었더라면 우리의 자랑이자 하나님의 자랑이요, 하나님의 자랑이자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있는 본연의 관계가 있었던 연고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타락되었을망정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러한 만우주의 중심가치를 찾기 위하여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된 인간인 연고로 우리의 움직이는 모든 자랑의 법칙이라는 것이 순리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역리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연의 심정을 따라서 순리의 법도를 찾아 나가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잃어버리고 역로(逆路)를 거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본연의 심정이 지향하는 방향과 현실 환경과는 대립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우리, 도의 길을 찾아나가는 우리가 이제 누구를 내세워 자랑해야 할 것이냐? 먼저, 자기를 내세워서 자랑하기 전에 하나의 중심을 내세워 자랑해야 될 것입니다. 나라를 자랑하고 싶다고 할진대,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것보다 어떤 충신을 세워서 그 나라를 자랑해야 되고, 어떤 종족을 자랑할 때도 하나의 중심을 세워서 자랑해야 됩니다. 역시,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단체에서는 단체의 중심, 도에서는 도의 중심, 국가에서는 국가의 중심, 세계에서는 세계의 중심, 더 나아가 하늘땅에 있어서는 하늘땅의 중심인 하나님을 걸어 놓고 자랑하는 그러한 노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자랑의 존재로 설 수 없다는 것 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 니다. (5-240)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려면
  
누구든지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가 기쁘기 위해서 자랑하는 사람은 천리원칙에 어긋나는 조건을 세우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의 자랑의 조건을 넘어 상대적인 존재를 자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선함을 자랑할 줄 알고 그의 특성을 자랑할 줄 아는 자가 되면 될수록 그 정도만큼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를 넘어 가정을 자랑하고 싶고 교회라든가 국가와 세계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고 있지만 지금까지 진정으로 자랑하고 싶었던 세계나 국가, 교회, 가정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세계와 국가, 교회, 가정을 아직까지 찾지 못한 인간들입니다. 


비록, 우리 인간이 불신의 입장에 있지만 어차피 하나님 앞에 자랑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 가정을 자랑해야 되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자랑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는 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항시 그 방향으로 이끌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사무쳤던 하나님의 심정을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나를 찾기 위한 하나님의 6천 년 동안의 수고의 역사, 혈투전을 벌여 온 비참한 역사의 노정을 거쳐 오늘날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이지만 역사노정 중 어느 한 때도 인간을 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천적인 사정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갖고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선의 동산에서는 우리 개체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개체를 세워서 만물 앞에 자랑하실 수 있었고 만물을 천사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본연의 마음이 나에게서 출발하여 가정, 사회, 국가와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랑과 인연이 맺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입장에 있는 타락된 후손들이기 때문에 그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치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될 슬픈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랑의 조건이었던 아담과 해와가 사탄까지도 “당신이 자랑할 수 있는 참된 아들딸입니다. 과연,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하면서 숭배할 수 있어야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그 후손들도 6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사탄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슬픔에 처해 계시는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고, 열이 만을 이루어서 민족 혹은 국가와 세계적으로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자랑의 방향을 찾아 나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방향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될 타락된 후손들이요,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본연의 세계,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주권,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본연의 사람,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본연의 생명과 성품 그리고 사랑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되었습니다. (5-242)
  
 하나님은 어떤 조건 하에서 우리를 대하시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조건 하에서 우리를 대하시는가? 사탄 세계에서 제일 싫어하는 조건을 세워서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믿지 못할 환경에서 믿으라고 강조했고 따먹고 죽을 수 있었던 환경에서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많은 선조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행하기 어려웠던 환경에서도 말씀대로 실행해 나왔습니다. 노아는 역경 가운데서도 120년 동안을 하루같이 믿었습니다. 모든 핍박과 비소를 단연히 추방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자 하던 마음이 간곡했습니다. 자신이 자랑하고 싶어했던 어떠한 조건보다도, 사회의 어떠한 자랑의 조건보다도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어하시던 조건이 크고 귀하다는 것을 알고 따라나왔습니다. 


그러한 길을 따라나온 노아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민을 물심판하셨더라도 그 무리들이 노아에게 항거할 수 있었던 어떠한 조건도 성립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는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천적인 자랑의 가치와 실체적인 가치를 세워 놓은 것이 노아 때의 심판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딸들도 하나님이 세워서 자랑하고 싶으셨던 심정과 통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 자신들을 중심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천륜이 뒤집어졌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던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탄세계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처는 지극히 아름다웠고 생활은 풍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세계에서 누구보다도 풍요한 생활의 조건을 갖추고 누구보다도 재미있게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 그 반대의 처지인 역경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자기 족속들이 걷지 못했고 가족이나 민족 어느 누구도 걷지 못했던 역경의 자리로 내몰기 위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넘어 종족과 후손을 이상적인 이념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깊이 느끼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고 있던 현실의 생활이 자랑의 기준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게 되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재미있게 살던 가정과 모든 재물을 다 버리고 하란 광야로 향하던 아브라함의 사정은 비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비록 불쌍한 방랑객의 모습일지라도, 오늘은 비록 자랑할 수 없는 처지와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자랑의 한날이 있을 것을 믿고 가던 아브라함의 발걸음은 늠름했습니다.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이 부딪쳐 올지라도 백번 천번 넘어가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랑의 동산을 찾아가던 마음은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컸던 것입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심정과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상대적인 존재를 찾아 헤매시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 합일점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믿음의 조상으로 서게 되었는데, 그 후손들은 자신들이 머물던 곳이 자랑할 수 있었던 자리인 줄 몰랐습니다. 민족을 넘어 세계를 향하여 나가야 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인간들이 슬픔의 역사노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화찬란했던 바로의 궁중에서 40년 동안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잘 살았습니다. 남부럽지 않았던 환경에서 살았으되, 그는 하나님이 민족을 세워서 자랑하실 수 있을 날을 누구보다도 고대했습니다. 애급에서 4백 년 동안 도탄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던 불쌍한 민족이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가나안 복지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소망의 동산을 건설하여 어느 민족 어느 국가 못지 않은 나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지상천국을 건설해 주실 것을 모세는 바랐습니다. 


그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불편한 것이 없었는데 그것을 전부 다 거부하고 자랑의 조건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신음하고 고통받던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 앞에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가나안 칠족에게 빼앗긴 가나안 땅을 사모하며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했던 마음이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선민을 세워서 자랑하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마음과 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셨던 것입니다. (5-244)
  
 예수님을 내세워 자랑했어야 할 인류
  
그러면 끝날에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천적인 권한을 소유할 수 있는 국가는 어떠한 국가이며 그 백성은 어떠한 백성일 것인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하나님 이상 자랑할 줄 아는 국가와 백성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수고하신 결정체요, 사랑과 심정의 화신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사정, 소망과 심정은 하나님의 그것들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한 존재로 세우셨던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4천 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참아 나오신 끝에 예수님을 자신의 대신자, 자랑하실 수 있었던 중심존재로 보내셨는데 그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자기를 자랑한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었던 자리에서 예수님은 한 번도 자랑해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었던 만큼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들어 자랑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오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가정, 교단, 민족과 세계 앞에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고대하시던 자랑의 결실체로 왔던 연고로 예수님 자신을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앞에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수만 군중들 앞에 자기를 세워서 자랑할 발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세우실 때는 하늘땅의 모든 피조만물 앞에 자랑하시고 사탄 앞에까지 자랑하시고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도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았고 하나의 가정, 하나의 교단, 하나의 민족과 세계도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배반했던 종족의 후손들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없는 무리입니다. 역사적인 죄를 저지른 우리 인간은 자기를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위치에 서지 못하고 그러한 환경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교단,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을 만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슬픔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4천 년 역사를 대신하여 세울 때 “황공하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 사무친 것은 그 세우신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변명하기보다 “나를 세워 수고하신 아버지의 소원이 이렇게 될 줄이야…!”라고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인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러한 심정을 가졌던 예수님을 자랑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개인, 가정, 민족과 세계 앞에 세우고 싶었던 자랑의 한날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바라시던 소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세워서 자랑하고 싶으셨던 그 본연의 심정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랑했어야 할 예수님, 영광의 모습으로 자랑했어야 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처참한 모습이 되었던 억울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걸어가던 예수님이 민족을 대하여, 하늘땅을 대하여, 사탄을 대하여 품으셨던 그 원한의 심정을 해원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의 가슴에 가득 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간곡한 심정이 사무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5-248)
  
 예수님을 자랑해야 할 우리
  
심정의 결실체로 오셨고, 인류의 소망의 결실체로 오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오셨던 참아버지를 원한의 자리에 몰아넣은 것이 우리의 선조들이었고, 사탄이 저지른 행사였으니, 오늘날 우리는 그 선조들의 죄를 청산짓고 사탄을 심판하고 싶은 불타오르는 마음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자랑의 동산이 슬픔의 골고다로 변했다니, 그것이 웬말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예수님을 자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산 제단을 찾기 위하여 허덕였던 예수님의 심정을 자랑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땅에서 찾고자 했던 하나의 사람과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민족을 붙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했던 심정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우리가 최후에 해야 할 것은 역사적으로 저지른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하나님이 그렇게 찾고 있던 하나의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가정과 종족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그러한 선민이 나타나야 하고 그러한 천민(天民)이 나타나야 합니다. 인간의 사정이 아무리 억울하고 어떠한 곡절이 맺혀 있더라도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을 이루기 위한 마음이 여러분에게서 솟구쳐 올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 상봉한 바울은 그날부터 예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자신, 즉 면목이 없는 자신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위해 살려고 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겠다는 심정에 사로잡혀 “죽으나 사나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대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독교의 새로운 터전이 여기서부터 닦이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의 심정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정과 소원을 자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 찾고 있던 신부를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찾고 있던 신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님이 찾고 있던 가정, 민족, 국가, 세계를 자랑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드러내어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5-250)
  
 하나님과 예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내가 되자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2천 년 역사가 경과했지만 지금까지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불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한 교단과 지도자가 되지 못하였다면 이는 부끄러운 삯꾼 목자입니다. 자기의 몸이 찢기고 옆구리에 창이 들어오고 이마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지고 손발에 못이 박혀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자랑의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개를 달게 넘어가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여러분은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을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나 그것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반대로 불쌍한 하나의 죄인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리하여 죽음 길에서도 하나님 앞에 자랑해야 되겠다는 심정을 갖고 가신 예수님의 생애를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고개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에게서 열매맺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신부를 세워 그 열매를 맺고자 2천 년 동안 기다려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은 예수님의 신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은 존재, 예수님이 자랑하고 싶은 존재, 나아가 여러분이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어린양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자랑하려고 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있는 전후·좌우·상하의 모든 것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자신의 주위에 속한 모든 것을 자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전체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자랑의 조건으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는 자신을 냉정히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하시며, 예수님은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하시며, 나는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합니까? 하나님을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고, 예수님을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고, 온 만물을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께서 자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모습,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한 자랑스런 모습이 여기 있사오니 이 몸을 내세워 사탄 앞에 자랑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의 마음과 생명의 권한과 본연의 성품을 갖추어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내가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모든 것을 온 피조 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으며, 만인간 앞에 자랑할 수 있으며, 삼위신 앞에도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탄까지도 “옳소이다. 그들은 당신이 세우신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하나님이 자랑할 만하오니 그들을 내세워 영원히 당신의 영광을 누리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존재가 나타나기를 열망하시며 6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소원의 한 날, 자랑의 한 날을 찾아 죽음의 고개도, 슬픔의 고개도, 억울함의 고개도, 피의 고개도 넘으시며 찾아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야 되겠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대해 “내가 이 세계를 다 잃더라도 너 하나를 찾으면 만족하도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사무쳤던 원한을 해원하는 동시에 소원과 이상을 성취해야 참사랑의 중심과 하나될 수 있고,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자랑할 수 있고, 우리 또한 하나님을 영원히 자랑할 수 있으며, 하늘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가 우리를 자랑의 조건으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5-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