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날과 복귀의 과정 (천일국 훈독경 제6권 3일)

훈독왕 | 20200526192156

천일국 훈독경 제6권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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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날과 복귀의 과정(훈독본) 


- 제9회 참만물의 날 말씀 -
날짜 : 1971. 5. 24(월)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만물의 날은 4대 명절 중의 한 날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제9회 만물의 날입니다. 햇수로 말하자면 1963년 5월 1일에 만물의 날을 설정했으므로 올해로서 만 8년째가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이와 같은 날들은 세계의 어느 민족이나 어느 나라가 갖지 못한 축제일들이요, 이 축제일들 가운데 한 날이 바로 만물의 날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과 같은 4대 명절이 있습니다. 만물의 날은 그 4대 명절 중의 한 날입니다. 


인간시조인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부모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바라시던 참다운 인류의 부모가 세워져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었던 하나의 가정을 가지셔야 했는데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44-278)


완성권으로 넘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모의 날이 설정되고, 자녀의 날이 설정되고, 만물의 날이 설정되는데는 누구를 중심삼고 설정되느냐 하면, 부모를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이 아니요, 자녀를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도 아니요, 만물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설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일체 될 수 있는 사랑의 내연을 결정짓지 않고는 참된 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이요, 자녀와 만물도 참된 자녀와 참된 만물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난 후에 아담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아담 해와가 자라 가지고 장성한 후 가정을 이루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운데 자리를 잡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나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맨 나중에 자리를 잡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인 남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종적인 터전은 되지만 횡적인 터전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횡적인 터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종적인 입장에서 사랑을 받던 남녀가 하나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남녀가 하나되는 것은 종적인 입장을 종결짓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횡적인 사랑의 이상을 출발시키는 기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횡적인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외아들을 보내셔 가지고 사랑하실 수 있었던 터전은 이루셨지만 그 외아들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하면, 개인적으로 사랑을 받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사랑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련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횡적인 세계의 사랑이 출발을 볼 수 있었던 동기가 성립되지 못했고, 이 땅 위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횡적인 사랑의 기원을 다시 뜻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찾아 나온 것이 기독교가 2천 년 동안 싸워 나온 길이요, 기독교가 최종적인 목적으로 바라고 있는 소망의 날인 재림의 날입니다. 


그 재림의 날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는 것만으로써 다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오시는 아들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가 설정되어야 합니다. 신랑 신부가 정해지면 서로서로 간격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되어 결속된 터전 위에서 자녀의 인연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방성이 갖추어져 가지고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을 이룰 수 있는 중심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성인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부의 인연을 맺지 못하면 그 사람 혼자서는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가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되는 것이 창조의 이상이요, 복귀섭리의 이상이요, 섭리시대를 통해서 바리고 나오던 역사적인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인 죄과를 완전히 청산지을 수 있는 종교적인 최후의 목적이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희망의 터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기준이 결정되지 않고는 부모의 날이 설정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부모는 어디서 출발했느냐? 장성기 완성급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 종의 종 자리에서부터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이 양자권 내에서 아들과 접붙임을 통하여 완성권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완성권이 무엇이냐? 타락하지 않은 권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래의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대할 수 있었던 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완성권으로 넘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참된 아들을 통하여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44-280)


제물과 하나되어야 했던 구약시대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무원리권으로 떨어졌습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맨 위에는 만물이 있고, 그 다음에 아담이 있고, 그 다음에는 해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맨 밑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판서하시며) 여기에서 사탄권은 무원리권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만물의 자리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래의 입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인간이 완성권으로 올라가려면 만물권을 무시하고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제물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느냐 하면, 제물은 대상이었고 인간은 주체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대상이 하나님 앞에 공인을 받으면 주체도 공인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제물과 하나되었다면 그 위에는 누가 있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시게 되었습니다. 


만물 가운데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먹지 말라고 하는 개나 뱀과 같은 것들은 가증스러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소나 양이나 비둘기와 같은 것들은 선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만물 중에서 선한 것들입니다. 제사상에 너무 기름진 것들은 올려놓지 말아야 합니다. 기름진 것들로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기름진 것이 많으면 조화가 안됩니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라가는 고기는 기름이 많고 비린내가 많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문어나 숭어처럼 바싹 마른 고기들이 제사상에 올라갑니다. 그래서 제물시대에도 선한 것들을 고르다 보니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먼 산을 바라보며 되새김질을 하는 소는 복귀되어야 할 인간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일구월심 복귀될 날만을 기다리는 인간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또, 양이라는 것은 연약한 짐승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자기보다 더 작은 산짐승한테도 잡혀 먹힐 수 있는 것이 양입니다. 양은 약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면서 항거하지 않습니다. 양은 주인이 잡을 때도 항거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제사에 쓰려고 양을 잡을 때 항거하는 양은 제사에 쓰지 않았습니다. 반항하지 않고 ‘맴맴’ 하면서 그저 동정을 구하듯이 처량하게 울부짖는 그런 양만을 잡아서 제물로 삼았습니다. 두들기고 발길로 차고 해서 잡은 양은 제물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비둘기 같은 부부라고 합니다. 그것은 비둘기가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것들은 짐승들 가운데 선한 의미에서 차원이 높은 것들입니다. 인간은 그것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즉, 소와 같이 충성하고, 양과 같이 희생하고, 비둘기와 같이 정서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의 내용을 대표한 만물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나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들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꾸로 되어야 합니다. 종한테 굴복해야 되고 며느리한테 굴복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자세를 버티고 있어서는 절대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44-304)


가정을 찾아야


구약시대는 제물시대였고, 그 다음에 신약시대는 무슨 시대예요? 예수님이 완성된 제물의 실체로서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열매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바쳤던 제물의 결실로 와서 하나님 앞에 만물과 가인들을 그냥 그대로 제물로 드렸더라면 교단과 나라를 복귀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아벨형 국가가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세계의 만물도 복귀되고 가인 편 교단과 민족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만물을 대신한 결실, 교단을 대신한 결실,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한 결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물로 삼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된다는 것이 기독교의 신약시대입니다. (44-306)


그 다음에는 성약시대입니다. 재림주가 올 수 있는 동기를 기독교가 마련해야 합니다. 해와가 아담을 유인하여 타락시켰기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적인 해와권, 신부권을 형성해야 됩니다. 그러면 신랑이 거기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신랑 되시는 주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탄 편 가정들 가운데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44-307)


만물복귀의 시대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제2차 7년 노정을 걸어 나오고 있는데 1968년, 1969년, 1970년까지 3년 노정을 넘어서고 난 다음에 축복가정들을 동원했습니다. 1970년 12월부터 축복가정을 동원한 것입니다. 따라서 1971년도를 중심삼고 다시 3년 노정을 넘어서면 새로운 단계로 출발하게 됩니다. 


이 기간은 그야말로 사탄세계를 재분별하는 기간입니다. 사탄세계를 몽땅 끌어내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앞서 참부모의 가정이 모든 것을 탕감해야 되었듯이 여기에서 국가라는 기준을 앞에 놓고 재차 정비해 가지고 넘어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가 여러분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결정되면 만물은 자동적으로 복귀됩니다. 


아담가정이 타락할 때 만물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복귀될 때 만물이 복귀되어야 하겠어요, 안 되어야 하겠어요? 복귀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탕감기준을 넘어서게 될 때 만물복귀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44-309)


원리적인 가르침


그러면 만물복귀의 시대가 오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횡적인 국가라든가 만물권을 전부 다 연결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여의도 부지 문제라든가, 우리 교회를 짓는 문제라든가, 세계수련소 건립 문제라든가 하는 것들은 우리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세계본부도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미국을 놓고 본다면,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들어가서 맨 처음에 무엇을 했느냐 하면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에 농사를 지었고, 그 다음에 세계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를 주도해 나가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미국은 먼저 하늘을 위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선생님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 집을 사기 전에 그런 일부터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다 해놓고 집을 사야 양심의 가책을 안 받습니다. 이제 내가 그렇게 다 했기 때문에 집을 사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집을 선생님이 사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사줘야 되겠어요? 한번 생각을 해보라구요! 


지금 축복받은 가정들은 전부 다 영광의 자리에 있습니다. 즉, 낙원천국권 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낙원천국권 내에 들어서게 된 혜택은 누구로 말미암은 거예요? 여러분으로 말미암은 거예요?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가정적으로 접붙여 주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보다 먼저 자기 집을 갖게 되면 천법에 걸립니다. 선생님이 집을 갖기 전에 자기 이름의 집을 갖게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법규화할 때가 올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이름을 거친 다음에 모든 만물을 자기 이름으로 갖게 됩니다. 그래야 복귀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성혼식을 하기 전에 갖고 있던 모든 사유재산을 전부 다 하늘의 것으로 입적시켜야 됩니다. 시집가는 처녀가 자신이 그 동안에 갖고 있던 것을 가지고 시집을 가요, 남겨 놓고 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타락세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원칙대로 하지 못하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원칙대로만 하게 된다면 선생님이 공장에 출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막힌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통과해 가지고 수속을 밟은 후 자기 것으로 재차 받으면 여러분의 자손만대까지 길이길이 남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가졌어요? 여러분은 큰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하나님으로부터 작은 것을 받더라도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금후에 다가올 통일세계의 경제적인 방향입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불이 붙게 되면 서로 먼저 바치려고 하는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처녀가 시집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주고 가야 됩니다. 그런 때가 옵니다. 이것은 원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됩니다. 축복을 받기 전에는 돈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원리적인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어요?  


지역장이나 지구장들은 통일세계에 있어서 주류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제물을 바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 직접 바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참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바쳐야 합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제물을 바치게 되면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 과정을 거친 입장이냐? 선생님은 이 과정을 가정적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자유로이 돈을 융통하여 쓸 수 있는 세계적인 기반이 닦아졌습니다. 지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966년을 중심삼고 경제기반 확보라는 말을 해 나왔습니다. (44-311)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이유


그러면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여러분에게 속한 만물을 하나님 앞에 결속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사유재산은 물론 공동재산인 나라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또, 지구성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지구성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봉헌하게 될 때는 반드시 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바쳐 드려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소유권한이 어느 천지에든지 연결될 수 있는 권을 만들어 놓아야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목적이 달성됩니다. 


현재 여러분을 보게 될 때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 참부모의 나라, 참백성의 나라, 참자녀의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부터 이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여러분 자신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즉, 참부모가 여러분의 집에 가서 여러분에게 말도 없이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가도 그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마음대로 가져다 쓰셔도 좋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유무상통(有無相通)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통일교회에서는 유무상통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위, 통일교회 식구들 가운데는 선생님한테 돈을 빌려 주고 이자까지 받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걸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전도 나가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복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이자를 받아요? 여러분은 이러한 원칙을 생각해야 됩니다. 


교회를 위해서 자기의 뼈와 살을 갈아서 바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자까지 받아먹어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절대로 만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할 말이 많다고 하더라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36가정들은 어때요? 그렇게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선생님이 이번 제2차 7년 노정만 끝나게 되면 36가정들을 자리잡게 해주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야단이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만물의 날을 기념할 때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삼천리 반도가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느냐? 아직까지 자기가 속해 있는 마을도 사탄권 내에 소유되어 있어서 선생님의 이름을 중심삼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만일 선생님이 돈이 있으면 선생님을 위해서 쓰고 교회나 여러분은 망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는다면 전체가 망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책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다짐하고, 그리고 가야 할 승리적인 터전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문제를 원리적인 관점에서 가려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44-313)


만물의 날을 기념할 때마다


선생님한테는 잊어버릴 수 없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게도 믿었던 통일교회 간부라는 작자에게 “네 집을 지금 당장 아무개에게 줘라” 하고 지시를 했는데 주기는커녕 슬금슬금 꽁무니만 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생사를 결정짓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의 승낙도 없이 멋대로 자기 이름을 대문에 내걸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물이 탄식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여러분은 거쳐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승낙도 없이 그러한 놀음을 자진했다가는 걸리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천법에 걸리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원칙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부모의 이름을 거쳐 가지고 대속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유권도 부모의 이름을 거쳐 가지고 자기에게 상속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해원성사하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이 천국생활을 하지 못하고 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천국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물건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적인 기준을 체계화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복귀역사 시대에 있어서 사회의 윤리라든가 질서에 상당한 지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을 체계화시키려니까 할 수 없이 선생님은 “내가 고생을 좀더 하더라도 한계점까지 끌고 나가자”고 다짐을 하고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누구에게든지 아무개 집에 가서 제일 좋은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킬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시킨다면 여러분은 가져올 수 있어요? 하나님을 통해서 인계받지 못한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부터 세계의 부자는 통일교회가 될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세계를 먹여 살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이제 한 나라로 수습될 것이요, 하나의 법도에 귀결될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하나님 앞에 바치고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 소생급과 장성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자기 가정을 몽땅 하나님 앞에 바치고, 그 다음에 나라와 주권자와 백성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세계 주권자 전체와 세계 인류 전체를 하나님 앞에 바치게 되면 이 지상에 사탄권은 무너지고 새로운 하늘세계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제 만물의 날을 기념할 때마다 여러분은 이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나 만물을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의 권위를 가져야만 바칠 수 있습니다. 즉, 아들딸의 권위를 갖지 않고 종의 자리에서는 바칠 수 없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바치게 되면 사탄에게 걸리기 때문에 아들딸의 이름을 갖지 않고는 바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딸은 참부모를 통해서 축복을 받지 않고는 안됩니다. 


이와 같이 환경적인 터전을 복귀하고, 또 실체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봉헌하지 않고는 천국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4-314)*






천일국 훈독경 제6권 3일, 원문


만물의 날과 복귀의 과정 14329


- 제9회 참만물의 날 말씀 -
날짜 : 1971. 5. 24(월)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하나님과 간격을 해소해야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제9회 만물의 날입니다. 햇수로 말하자면 1963년 5월 1일에 만물의 날을 설정했으므로 올해로서 만 8년째가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이와 같은 날들은 세계의 어느 민족이나 어느 나라가 갖지 못한 축제일들이요, 이 축제일들 가운데 한 날이 바로 만물의 날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과 같은 4대 명절이 있습니다. 만물의 날은 그 4대 명절 중의 한 날입니다. 


본래는 먼저 하나님의 날이 있고 난 다음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있어야 했는데 거꾸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있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날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이 어찌하여 뒤에 있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원리를 통해서 대강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시조인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부모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바라시던 참다운 인류의 부모가 세워져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었던 하나의 가정을 가지셔야 했는데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타락한 가정에서 타락한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타락한 가정은 하나님과 안팎으로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악의 권내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안팎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가정을 다시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그것이 복귀섭리의 역사였습니다.  


그것을 찾는 데 있어서는 나라를 찾기 전에 민족을 찾아야 하고, 민족을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하고,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을 찾아 세우기 전에 한 남자와 여자부터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의 중심인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서 종을 부리듯이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나와야 합니다. 사탄이 그 명령과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기준을 갖춘 한 남자와 여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자리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아들과 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이요,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남자와 여자 사이에 원한이 남아져서는 안됩니다.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볼 때, 여자가 남자를 타락시킨 결과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의 원수는 여자로 되어 있고 여자의 원수는 남자로 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남자로서 주체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입장에 있었던 해와가 제아무리 간교한 행동으로 유인하더라도 그것을 주관해야 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안 듣는 입장에 서야 할 주체였던 아담이 상대인 해와의 말을 들어 줌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해와의 원수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일대일의 입장에서 받게 되면 참다운 부부의 인연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한 남성과 여성이 이 땅 위에 나타나서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자는 남자를 위한 남자가 아니요, 여자는 여자를 위한 여자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안팎이 되어 그 누가 분리시킬 수 없는 일체 된 심정적인 기반을 갖추지 않으면 참된 가정의 기점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간격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사탄과 인간의 간격을 벌여야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인간끼리의 간격을 해소시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 타락된 인간으로서 복귀된 일남 일녀의 자리에 서 가지고 그 동안 우리 인간들이 역사과정을 통하여 범죄한 내용들로 말미암아 벌어졌던 하나님과 간격을 해소해야 됩니다. (44-278)


완성권으로 넘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모의 날이 설정되고, 자녀의 날이 설정되고, 만물의 날이 설정되는데는 누구를 중심삼고 설정되느냐 하면, 부모를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이 아니요, 자녀를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도 아니요, 만물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설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일체 될 수 있는 사랑의 내연을 결정짓지 않고는 참된 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이요, 자녀와 만물도 참된 자녀와 참된 만물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난 후에 아담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아담 해와가 자라 가지고 장성한 후 가정을 이루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운데 자리를 잡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나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맨 나중에 자리를 잡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인 남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종적인 터전은 되지만 횡적인 터전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횡적인 터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종적인 입장에서 사랑을 받던 남녀가 하나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남녀가 하나되는 것은 종적인 입장을 종결짓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횡적인 사랑의 이상을 출발시키는 기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횡적인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외아들을 보내셔 가지고 사랑하실 수 있었던 터전은 이루셨지만 그 외아들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하면, 개인적으로 사랑을 받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사랑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련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횡적인 세계의 사랑이 출발을 볼 수 있었던 동기가 성립되지 못했고, 이 땅 위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횡적인 사랑의 기원을 다시 뜻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찾아 나온 것이 기독교가 2천 년 동안 싸워 나온 길이요, 기독교가 최종적인 목적으로 바라고 있는 소망의 날인 재림의 날입니다. 


그 재림의 날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는 것만으로써 다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오시는 아들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가 설정되어야 합니다. 신랑 신부가 정해지면 서로서로 간격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되어 결속된 터전 위에서 자녀의 인연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방성이 갖추어져 가지고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을 이룰 수 있는 중심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성인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부의 인연을 맺지 못하면 그 사람 혼자서는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가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되는 것이 창조의 이상이요, 복귀섭리의 이상이요, 섭리시대를 통해서 바리고 나오던 역사적인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인 죄과를 완전히 청산지을 수 있는 종교적인 최후의 목적이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희망의 터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기준이 결정되지 않고는 부모의 날이 설정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부모는 어디서 출발했느냐? 장성기 완성급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 종의 종 자리에서부터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이 양자권 내에서 아들과 접붙임을 통하여 완성권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완성권이 무엇이냐? 타락하지 않은 권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래의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대할 수 있었던 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완성권으로 넘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참된 아들을 통하여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44-280)


제물과 하나되어야 했던 구약시대


오늘은 만물의 날인데, 금까지 말씀한 것은 만물의 날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과 부모의 날을 중심삼은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만물의 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합시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무원리권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떨어질 때는 무거운 것이 밑창으로 가요, 가벼운 것이 밑창으로 가요? 사람이 떨어지게 되면 무거운 머리가 먼저 떨어지지 발이 먼저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무거운 것은 밑으로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타락한 장본인일수록 맨 밑창에 깔렸습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맨 위에는 무엇이 있고 맨 밑에는 무엇이 있게 되었어요? 맨 위에는 만물이 있고, 그 다음에 아담이 있고, 그 다음에는 해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맨 밑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판서하시며) 여기에서 사탄권은 무원리권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만물의 자리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래의 입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인간이 완성권으로 올라가려면 만물권을 무시하고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제물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느냐 하면, 제물은 대상이었고 인간은 주체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대상이 하나님 앞에 공인을 받으면 주체도 공인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제물과 하나되었다면 그 위에는 누가 있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시게 되었습니다. 


만물 가운데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먹지 말라고 하는 개나 뱀과 같은 것들은 가증스러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소나 양이나 비둘기와 같은 것들은 선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만물 중에서 선한 것들입니다. 제사상에 너무 기름진 것들은 올려놓지 말아야 합니다. 기름진 것들로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기름진 것이 많으면 조화가 안됩니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라가는 고기는 기름이 많고 비린내가 많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문어나 숭어처럼 바싹 마른 고기들이 제사상에 올라갑니다. 그래서 제물시대에도 선한 것들을 고르다 보니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먼 산을 바라보며 되새김질을 하는 소는 복귀되어야 할 인간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일구월심 복귀될 날만을 기다리는 인간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또, 양이라는 것은 연약한 짐승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자기보다 더 작은 산짐승한테도 잡혀 먹힐 수 있는 것이 양입니다. 양은 약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면서 항거하지 않습니다. 양은 주인이 잡을 때도 항거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제사에 쓰려고 양을 잡을 때 항거하는 양은 제사에 쓰지 않았습니다. 반항하지 않고 ‘맴맴’ 하면서 그저 동정을 구하듯이 처량하게 울부짖는 그런 양만을 잡아서 제물로 삼았습니다. 두들기고 발길로 차고 해서 잡은 양은 제물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비둘기 같은 부부라고 합니다. 그것은 비둘기가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것들은 짐승들 가운데 선한 의미에서 차원이 높은 것들입니다. 인간은 그것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즉, 소와 같이 충성하고, 양과 같이 희생하고, 비둘기와 같이 정서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의 내용을 대표한 만물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나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들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꾸로 되어야 합니다. 종한테 굴복해야 되고 며느리한테 굴복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자세를 버티고 있어서는 절대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박사이니 박사의 권위를 세워 주지 않으면 통일교회에 못 가오” 합니다.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에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알 바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눈에는 박사고 무엇이고 없습니다. 박씨는 알지만 박사는 모릅니다. 선생님은 그런 주의입니다. 


이것이 무슨 주의냐 하면 하나님주의입니다. 나님 앞에 박사가 있어요? 전부 다 초등학생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또, 하나님 앞에 어른이 있어요? 전부 다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44-304)


가정을 찾아야


구약시대는 제물시대였고, 그 다음에 신약시대는 무슨 시대예요? 예수님이 완성된 제물의 실체로서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열매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바쳤던 제물의 결실로 와서 하나님 앞에 만물과 가인들을 그냥 그대로 제물로 드렸더라면 교단과 나라를 복귀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아벨형 국가가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세계의 만물도 복귀되고 가인 편 교단과 민족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만물을 대신한 결실, 교단을 대신한 결실,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한 결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물로 삼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된다는 것이 기독교의 신약시대입니다. (44-306)


그 다음에는 성약시대입니다. 재림주가 올 수 있는 동기를 기독교가 마련해야 합니다. 해와가 아담을 유인하여 타락시켰기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적인 해와권, 신부권을 형성해야 됩니다. 그러면 신랑이 거기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신랑 되시는 주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탄 편 가정들 가운데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 편에서 찾아오려면 사탄이 “여기에 있소” 하면서 내주면 좋겠는데 그 고질통 원수가 그렇게 내주겠어요, 안 내주겠어요? 안 내준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21년 동안 종살이를 한 다음에 자기의 분깃을 가지고 나오려고 했을 때, 라반이 어서 가라고 했어요? 그렇게 안 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눈치를 보니까 자기를 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라반을 속여 가지고 나왔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보내 준다고 해놓고 보내 주지 않으니까 바로를 속였습니다. 오시는 주님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이 땅에 누구를 찾으러 오시느냐? 신부를 찾으러 오십니다. 그러면 신부는 어디에 있어요? 기독교권 내에서 신부를 찾아야 하는데 기독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와야 됩니다. 기독교는 신부의 입장에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는데 안 했습니다. 


기독교가 그것을 안 했으니까 사탄세계에 가서 신부를 빼앗아 와야 합니다. 사탄세계에 가서 “우리 집사람 내주소” 하면 사탄이 내주겠어요, 안 내주겠어요? 내주지 않습니다. 내주면 그냥 찾아올 수 있지만 안 내주니까 찾아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탄을 죽이고 빼앗아 올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아담 해와를 빼앗아 갈 때 하나님을 죽이고 빼앗아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을 죽이고 빼앗아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죽이지 않고 찾아와야 됩니다. 


그렇게 찾아오는 데는 사탄이 안 내주겠으니까 할 수 없이 작전을 해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작전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희생을 하고 종살이를 해가며 거꾸로 복귀해 올라와야 됩니다. 종이었던 천사장이 해와를 타락시켜서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종살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에서는 종살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주인인 사탄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가지지 않고는 신부를 찾아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해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는 죽더라도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만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속여서라도 빼앗아 와야 됩니다. (44-307)


만물복귀의 시대


그러면 상대는 여자인데 어떤 여자냐? 여자들 가운데 신부가 될 수 있는 여자입니다. 여자들 가운데에서도 어머니 여자가 있고 딸 여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레아와 라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시는 신랑의 본의가 아니지만 천리원칙에 의해서 그러한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종의 입장에서 자기 딸을 고이 길러야 합니다. 어머니가 종이면 딸은 무엇이 돼요? 종의 딸이 됩니다. 그래 가지고 바로 그 종의 딸을 하나님의 딸로서 입적하는 상속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식을 해야만 비로소 신랑으로 오신 주님 앞에 신부가 책정되었다고 하면서 새로운 선포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는 통일교회로 말하면 1960년도에 해당됩니다. 


말이 났으니 얘기지만, 여기의 어머니를 중심삼고 그렇게 역사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역사를 했습니다. 홍순애 씨라고 하는 어머님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모녀는 언제나 마음이 맞기 때문에 속닥속닥하더라도 같이 속닥속닥합니다. 모녀끼리 한번 잘못했다가는 둘 다 망합니다. 그러나 모녀가 하나되었을 때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정에서 얼마나 어려운 길을 가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 자신의 어려움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뜻이 문제였습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운 길도 자청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였던 마리아가 책임을 못 했습니다. 아들의 상대를 찾아 세워야 할 어머니로서 사탄과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하고 같이 살아서 되었겠어요. 안되었겠어요? 안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천사장격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 독신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예수님의 상대를 지상에서 책정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비운에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주님이 다시 와야 한다는 비통한 역사를 만든 죄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종적인 부모와 가정이 나왔으니까 횡적인 아들의 가정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횡적인 가정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냥 나올 수 없습니다. 복귀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횡적인 가정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고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제2차 7년 노정을 걸어 나오고 있는데 1968년, 1969년, 1970년까지 3년 노정을 넘어서고 난 다음에 축복가정들을 동원했습니다. 1970년 12월부터 축복가정을 동원한 것입니다. 따라서 1971년도를 중심삼고 다시 3년 노정을 넘어서면 새로운 단계로 출발하게 됩니다. 


이 기간은 그야말로 사탄세계를 재분별하는 기간입니다. 사탄세계를 몽땅 끌어내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앞서 참부모의 가정이 모든 것을 탕감해야 되었듯이 여기에서 국가라는 기준을 앞에 놓고 재차 정비해 가지고 넘어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가 여러분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결정되면 만물은 자동적으로 복귀됩니다. 


아담가정이 타락할 때 만물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복귀될 때 만물이 복귀되어야 하겠어요, 안 되어야 하겠어요? 복귀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탕감기준을 넘어서게 될 때 만물복귀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44-309)


원리적인 가르침


그러면 만물복귀의 시대가 오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횡적인 국가라든가 만물권을 전부 다 연결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여의도 부지 문제라든가, 우리 교회를 짓는 문제라든가, 세계수련소 건립 문제라든가 하는 것들은 우리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세계본부도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미국을 놓고 본다면,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들어가서 맨 처음에 무엇을 했느냐 하면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에 농사를 지었고, 그 다음에 세계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를 주도해 나가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미국은 먼저 하늘을 위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선생님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 집을 사기 전에 그런 일부터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다 해놓고 집을 사야 양심의 가책을 안 받습니다. 이제 내가 그렇게 다 했기 때문에 집을 사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집을 선생님이 사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사줘야 되겠어요? 한번 생각을 해보라구요! 


지금 축복받은 가정들은 전부 다 영광의 자리에 있습니다. 즉, 낙원천국권 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낙원천국권 내에 들어서게 된 혜택은 누구로 말미암은 거예요? 여러분으로 말미암은 거예요?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가정적으로 접붙여 주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보다 먼저 자기 집을 갖게 되면 천법에 걸립니다. 선생님이 집을 갖기 전에 자기 이름의 집을 갖게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법규화할 때가 올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이름을 거친 다음에 모든 만물을 자기 이름으로 갖게 됩니다. 그래야 복귀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성혼식을 하기 전에 갖고 있던 모든 사유재산을 전부 다 하늘의 것으로 입적시켜야 됩니다. 시집가는 처녀가 자신이 그 동안에 갖고 있던 것을 가지고 시집을 가요, 남겨 놓고 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타락세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원칙대로 하지 못하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원칙대로만 하게 된다면 선생님이 공장에 출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막힌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통과해 가지고 수속을 밟은 후 자기 것으로 재차 받으면 여러분의 자손만대까지 길이길이 남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가졌어요? 여러분은 큰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하나님으로부터 작은 것을 받더라도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금후에 다가올 통일세계의 경제적인 방향입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불이 붙게 되면 서로 먼저 바치려고 하는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처녀가 시집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주고 가야 됩니다. 그런 때가 옵니다. 이것은 원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됩니다. 축복을 받기 전에는 돈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원리적인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어요?  


지역장이나 지구장들은 통일세계에 있어서 주류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제물을 바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 직접 바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참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바쳐야 합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제물을 바치게 되면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 과정을 거친 입장이냐? 선생님은 이 과정을 가정적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자유로이 돈을 융통하여 쓸 수 있는 세계적인 기반이 닦아졌습니다. 지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966년을 중심삼고 경제기반 확보라는 말을 해 나왔습니다. (44-311)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이유


그러면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여러분에게 속한 만물을 하나님 앞에 결속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사유재산은 물론 공동재산인 나라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또, 지구성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지구성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봉헌하게 될 때는 반드시 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바쳐 드려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소유권한이 어느 천지에든지 연결될 수 있는 권을 만들어 놓아야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목적이 달성됩니다. 


현재 여러분을 보게 될 때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 참부모의 나라, 참백성의 나라, 참자녀의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부터 이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여러분 자신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즉, 참부모가 여러분의 집에 가서 여러분에게 말도 없이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가도 그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마음대로 가져다 쓰셔도 좋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유무상통(有無相通)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통일교회에서는 유무상통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위, 통일교회 식구들 가운데는 선생님한테 돈을 빌려 주고 이자까지 받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걸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전도 나가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복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이자를 받아요? 여러분은 이러한 원칙을 생각해야 됩니다. 


교회를 위해서 자기의 뼈와 살을 갈아서 바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자까지 받아먹어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절대로 만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할 말이 많다고 하더라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36가정들은 어때요? 그렇게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선생님이 이번 제2차 7년 노정만 끝나게 되면 36가정들을 자리잡게 해주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야단이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만물의 날을 기념할 때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삼천리 반도가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느냐? 아직까지 자기가 속해 있는 마을도 사탄권 내에 소유되어 있어서 선생님의 이름을 중심삼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만일 선생님이 돈이 있으면 선생님을 위해서 쓰고 교회나 여러분은 망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는다면 전체가 망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책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다짐하고, 그리고 가야 할 승리적인 터전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문제를 원리적인 관점에서 가려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44-313)


만물의 날을 기념할 때마다


선생님한테는 잊어버릴 수 없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게도 믿었던 통일교회 간부라는 작자에게 “네 집을 지금 당장 아무개에게 줘라” 하고 지시를 했는데 주기는커녕 슬금슬금 꽁무니만 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생사를 결정짓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의 승낙도 없이 멋대로 자기 이름을 대문에 내걸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물이 탄식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여러분은 거쳐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승낙도 없이 그러한 놀음을 자진했다가는 걸리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천법에 걸리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원칙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부모의 이름을 거쳐 가지고 대속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유권도 부모의 이름을 거쳐 가지고 자기에게 상속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해원성사하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이 천국생활을 하지 못하고 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천국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물건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적인 기준을 체계화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복귀역사 시대에 있어서 사회의 윤리라든가 질서에 상당한 지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을 체계화시키려니까 할 수 없이 선생님은 “내가 고생을 좀더 하더라도 한계점까지 끌고 나가자”고 다짐을 하고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누구에게든지 아무개 집에 가서 제일 좋은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킬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시킨다면 여러분은 가져올 수 있어요? 하나님을 통해서 인계받지 못한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부터 세계의 부자는 통일교회가 될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세계를 먹여 살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이제 한 나라로 수습될 것이요, 하나의 법도에 귀결될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하나님 앞에 바치고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 소생급과 장성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자기 가정을 몽땅 하나님 앞에 바치고, 그 다음에 나라와 주권자와 백성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세계 주권자 전체와 세계 인류 전체를 하나님 앞에 바치게 되면 이 지상에 사탄권은 무너지고 새로운 하늘세계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제 만물의 날을 기념할 때마다 여러분은 이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나 만물을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의 권위를 가져야만 바칠 수 있습니다. 즉, 아들딸의 권위를 갖지 않고 종의 자리에서는 바칠 수 없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바치게 되면 사탄에게 걸리기 때문에 아들딸의 이름을 갖지 않고는 바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딸은 참부모를 통해서 축복을 받지 않고는 안됩니다. 


이와 같이 환경적인 터전을 복귀하고, 또 실체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봉헌하지 않고는 천국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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