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5권 28일
16 훈독경 5권 28일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 1.mp3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훈독본)
날짜 : 1994. 7. 24(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입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은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세계, 통일된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평화라는 것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을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그 출발점이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평화의 주인공
하나님과 인간시조가 하나되었으면 하나된 그 자리가 통일의 자리요, 그 자리가 평화의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평화의 세계와 통일된 세계를 잃어버렸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평화세계의 근원이 되는 것은 뭐냐? 하나님이 평화세계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일치되는 데서 평화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이건 중요한 물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뭐라고 해요? 첫째는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이상의 완성이 뭐냐? 사위기대의 완성입니다. 사위기대의 완성은 뭐냐?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기억될 수 있는 가정이 없다면 하나님의 눈에 기억될 수 있는 나라도 없는 것이요, 그런 나라가 없다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평화라는 것을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평화의 주인공은 하나님입니다. 그 평화의 주인으로부터 우리가 완전히 상속받기 전에는, 우리 가정이 그 기반의 출발기지가 되지 않고는 평화의 출발기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261-289)
나에게 있어서 제일 큰 문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선한 세계라고 생각해요, 악한 세계라고 생각해요? 이 세계는 악한 세계입니다. 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어떤 인간을 붙들고 묻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인류역사를 거쳐온 모든 인생살이의 노정을 걸었던 그 환경적인 여건은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계가 악하다면, 왜 악한 세계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인류역사는 아담 해와의 이후부터 전쟁사로 연결되어 나왔습니다. 전쟁사로 엮어진 인류역사입니다. 전부 다 누가 일어나 가지고 어떻게 되었다거나 이기고 졌다는 전쟁사입니다. 싸우는 역사의 기록을 남긴 것이 인류역사고, 그런 배경의 역사를 가진 것이 인생살이라는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싸우면 왜 악한 거예요? 싸우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주인이요, 통일의 주인이요, 최고의 선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싸우는 자리에는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곳은 하나님이 떠나시기 때문에 악한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워요, 안 싸워요? 다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싸움이 지금 막 시작한 거예요,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 아담 해와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전부 다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고, 남자 여자가 싸우고, 형제가 싸웁니다. 아담가정에서 형이 동생을 때려죽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담가정은 인류의 근본적이고 공식적인 가정이었는데, 거기서부터 그러한 가정으로 시작했으니 불가피적으로 싸움의 역사가 연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론적인 근거를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나에게 있어서 제일 큰 문제가 뭐냐? 세계의 전쟁이 문제가 아니고 국가의 혼란이나 지금 각처에서 전쟁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문제들 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내 자신이 끊임없는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더 문제시해야 됩니다. 어떠한 세계대전보다도 큰 문제는 내 자신이 전쟁터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261-291)
원인과 결과는 하나되는 것
사건들 중에서 어떤 사건이 제일 큰 사건이냐? 그것은 세계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고 우주의 사건이 아닙니다. 모든 사건들 중에서 제일 큰 사건은 나입니다. 이것은 지금 자기의 몸뚱이에 불이 붙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붙은 불을 끄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제3자가 어떻고, 이웃 동네가 어떻고, 내 대신 다른 무엇이 어떻다고 불평할 여지가 없습니다.
인류가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통일의 세계를 바란다고 그 평화의 세계와 통일의 세계가 쉽게 올 것 같아요? 나라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입니다. 악마의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 나입니다. 그런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열매를 언제든지 역사를 순환하면서 끌고 나오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의 마음대로 되면 좋겠지요? 그러려면 싸우는 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나를 중심삼고 전부가 내 것 되기를 바라는 것은 싸우는 자리에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싸우고 있으면서 싸우지 않는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바란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부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신은 어떻게 되어 계시기에 싸우는 데 계시기를 싫어하시느냐? 하나님 자신은 하나되어 계십니다. 통일되어 계시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면 절대자가 되지 못합니다. 절대적이란 개념 가운데는 분립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하나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통일의 개념이 거기에 있고, 불변의 개념도 거기에 있습니다. (261-293)
몸의 주인은 악마요, 마음의 주인은 하나님
나라는 존재의 생명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나 자신은 사랑을 통해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정상적이면 나 자신도 하나되게 돼 있는데, 그 사랑이 그릇되어서 내 자신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은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본연적인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이 바라시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인간의 몸과 마음이 갈라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갈라지게 한 게 뭐냐? 그릇된 사랑 외에는 갈라지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릇된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이 없이는 갈라질 법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논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고 이렇게 갈라질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 개입하기 전에 거짓된 사랑이 동기가 돼 가지고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거짓사랑은 뭐냐? 사랑은 사랑인데 본연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180도 다른 사랑입니다. 이 칸셉(concept;개념)이 있으면 거짓사랑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말을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갈라져 싸우기 때문입니다.
나를 분석해 볼 때, 마음은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어떻게 마음이 하늘에 속했는지 알아요? 마음은 선한 일을 하라고 그럽니다.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과 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싸우지 말라. 사람을 위해서 네가 희생하고 봉사해라” 하는데, 몸뚱이는 정반대입니다. 마음은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는데, 몸뚱이는 낮은 데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261-296)
내 마음은 하늘에 가깝고 몸뚱이는 악마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 마음을 중심삼고 맨 밑창에 내려가게 되면 사탄하고 하나님이 부딪칩니다.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볼 때 몸의 주인은 악마요, 마음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이놈의 악마의 몸뚱이를 제거시키고 나하고 하나된 몸뚱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시고 악마는 “이 몸뚱이를 치워 버리고 나하고 하나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이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과 지옥에 가는 기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과 같이 몸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국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지상에서 몸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살던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몸 마음이 하나 안 된 사람은 절대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든지 몸 마음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필생의 사업입니다. 세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261-298)
인류가 바라는 소원
그러니 마음을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컨트롤해 가지고 육신을 뛰어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싸움은 역사적인 비운의 곡절을 다 거쳐도 넘기가 힘든 싸움이란 걸 알아야
됩니다.
이 육신의 고개를 넘는 것이 얼마나 힘들어요!
여러분의 몸 마음이 싸우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이 사실을 모를 때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 몸 마음이 싸우는 싸움의 에센스(essence;정수)를 누가 주사 놓았느냐 할 때, 사탄이 그 주사를 놓았습니다.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 거짓양심의 주사를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걸 뽑아 버려야 됩니다. 어디에 주사를 놓았느냐? 육체에 주사를 놓았습니다. 육체가 뭐예요? 이 몸뚱이입니다. 보이는 것입니다. 이 보이는 전부가 육체입니다.
양심이 보여요? 양심을 봤어요? 양심을 만져 봤어요? 생명을 봤어요? 생명을 만져 봤어요? 사랑을 봤어요? 사랑을 만져 봤어요? 다 안 보이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있는 것은 알지만 만져 볼 수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는 실체입니다. 일생 동안,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것은 볼 수 있지만 마음과 사랑 그리고 생명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힘의 자극이 되지 않습니다. 실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담 너머의 사실과 같이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261-300)
종교생활은 뭐냐
그러니까 몸뚱이한테 양심은 언제나 끌려 다니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양심이 몸뚱이를 끌고 다녀요, 몸뚱이가 양심을 끌고 다녀요? 몸뚱이가 양심을 끌고 다닙니다. 이 몸뚱이가 양심을 얼마나 울리고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몸뚱이를 귀하게 보시지 않습니다. 마음을 영원한 가치적인 존재로 보시고 계십니다. 몸을 옷과 같이 벗고 마음이 하늘로 갑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거짓된 뿌리가 6천 년 이전의 조상까지 달려 있으니, 그걸 다 뽑아 버려야 됩니다. 세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걸 아무리 잘라 버려도 또 나옵니다. 그렇게 거짓부모로부터 시작된 뿌리가 있기 때문에 참부모가 나와서 뽑아 버려야 됩니다. 거짓부모,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까지 다 뽑아 버리고 참부모, 참사랑, 참생명, 참혈통으로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타락한 조상의 뿌리보다 더 깊습니다. 그래서 거짓사랑의 육체에 있던 자리를 참사랑으로 점령하기 때문에 사탄은 있을 수 있는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야 됩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종교를 믿는데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종교가 고행을 한 이상의 고행을 하는 종교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할 때 사랑 때문에 타락했기 때문에 성기가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간음하는 것을 제일 무서운 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프리섹스는 악마의 지옥팽창주의입니다. 지상지옥이고 천상지옥입니다. 이건 전부 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핏줄을 뒤집어 놔야 됩니다.
여러분이 죽어 보라구요! 선생님의 말씀대로 틀림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금식을 하라고 합니다. 제물이 되라고 합니다. “겸손해라, 낮아져라, 봉사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건 전부 다 몸뚱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70퍼센트나 80퍼센트만 한다면 또 다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빼 버려야 됩니다. 이것을 못 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261-302)
핍박이라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
선생님은 생애를 통해서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수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고생했습니다. 히말라야 산정을 향해서 한꺼번에 가는 것이 아니고 진을 치고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전부 다 답사해 가지고 제일 좋은 길을 열었습니다. 이걸 넘어서야 천국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천국은 더 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아무도 못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늘과의 사이에 케이블카를 걸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케이블카의 박스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타서 기분 좋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들어가 가지고는 체크가 벌어집니다. 이런 마음을 거쳐 가지고 넘어왔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재미로 넘어왔느냐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이 놀음을 했는지가 문제됩니다.
부모님이 고생하면서 케이블카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눈물과 피땀을 흘리지 않고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이 케이블카를 타고 눈을 두리번두리번 하면서 “아이구, 히말라야 산맥이 이렇게 생겼구나. 기분 좋다. 만세” 하면서 갈 것인가, 아니면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해서 케이블카를 만들었겠나! 모든 희생의 담을 쌓아 가지고 이렇게 하셨다”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사하며 갈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역설적인 논리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화근이 누가 돼 있느냐? 세상의 모든 문제의 기지가 어디냐 하면 나와 내 가정입니다. 내가 지금까지의 가정을 중심삼고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가정을 다 버려야 됩니다. 나라도 다 버려야 합니다. 전부를 버리고 나부터 또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의 상대를 찾고, 자기의 아들딸을 찾고, 그 다음에 자기의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고, 세계를 찾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탄의 거짓사랑으로 말미암아 연결된 이 지옥세계를 극복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민족을 중심삼고, 사회를 중심삼고, 국가를 중심삼은 모든 기반은 하늘과 상관이 없습니다. 전부 다 부정해야 됩니다. 그렇게 부정해 가지고 모든 환경적인 여건을 청산짓는 데서부터 자기를 중심삼은 가정을 갖다 붙여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갖다 붙여야만 사탄이 우거하지 않는 지상·천상천국이 됩니다. 그래야 사탄이 없어집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의 터전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261-307)
평화와
통일의 기지가 되는 것은 나와
가정
말씀의 제목이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인데, 평화와 통일의 기지가 되는 것은 나와 가정입니다. 사위기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나오신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메시아, 구세주를 보내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신랑 신부의 뜻을 이루어 가지고 하늘이 이상하는 모델가정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세계의 모든 민족들 앞에 핍박을 받아 가지고 승리해서 자리를 잡음으로 말미암아 참부모와 성약시대가 안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61-315)
이상가정을 다시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던 가정이 지금에 와 가지고 참부모의 가정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가정적인 전통은 본래 어디에 있어야 할 것이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의 가정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씨였습니다. 가정의 씨, 모델적인 씨였습니다. 모든 가정의 모델적인 씨였다는 것입니다. 그 씨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남자 여자가 결혼하여 이루는 가정은 아담 해와의 가정과 마찬가지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완전히 복귀된 가정이라고 할 때 아담가정과 그 가치가 달라요, 같아요? 그 가치가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이 언제나 와 가지고 왕이 되실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어요? 아담가정은 씨였습니다. 이상가정의 씨였는데, 그게 뭐냐 하면 왕궁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남자한테 물어 보면 왕이 되고 싶다고 하고, 여자한테 물어 보면 여왕이 되고 싶다고 하지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본래의 아담 해와가 왕이고 여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표하고 우주를 대표했습니다. 가정을 대표한 건 물론입니다. 왕과 여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씨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열매입니다. 열매라는 것은 씨와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남자와 여자 둘을 데려다가 심어 놓으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돼 가지고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왕국의 기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통일교회에서 참부모를 통해서 축복받은 가정이 그러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면 벼락을 맞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다 하늘땅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우주를 대표하는 동시에 평면적으로는 세계를 대표합니다. 그게 왕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뭐냐? 하나님은 아담 해와밖에 모르셨습니다. 아담 해와의 아들딸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손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 해와와 손자가 전부 다 사탄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볼 때 이상가정의 모델을 잃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다시 찾으시기 위한 것이 재림주의 역사입니다. 그런 이상가정을 다시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원래 아담 해와의 가정은 전세계의 가정들을 대표한 모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한 사위기대의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부는 아담 해와의 입장이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은 부모가 가정의 왕과 왕후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전세계의 가정들을 대표하는 왕과 왕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을 받아서 결혼하는 것은 최고의 영광입니다. (261-317)
심신일체, 부부일체, 자녀일체
한 가정의 부부는 뭐냐 하면 세계의 가정들을 대표하는 현재의 왕과 왕후입니다. 할아버지는 뭐냐 하면 과거를 대표했기 때문에 영계를 대표하는 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하나님같이 섬겨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는 가정의 중심이기 때문에 왕과 왕후와 같이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섬겨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고, 성인이 되고,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아들딸은 뭐냐? 미래의 왕과 왕후입니다. 할아버지는 과거의 천국과 통하고, 아들딸은 미래의 지상천국과 통합니다. 부모는 현재의 지상천국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대의 왕궁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의 이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사랑하셨지만 손자를 사랑해 보지 못하셨습니다. 과거의 하나님이 현재의 아담 해와도 사랑하고 미래도 사랑하셔서 소생과 장성 그리고 완성으로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3시대를 거쳐서 연결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모든 가정에서 손자는 부모의 사랑도 받고 할아버지의 사랑도 받습니다. 두 세계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천국과 현재의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소원이 뭐냐 하면 손자를 사랑해 보는 것입니다. 아들보다도 손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콘셉트가 왔다갔다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나이가 많아지면 왔다갔다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친구가 됩니다. 나이의 관념이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영계와 연결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가 가지고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261-320)
오늘 말씀의 제목이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정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가정과 닮을 수 있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몸 마음이 하나되고, 부부가 하나되고, 자녀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선생님의 가정이 그러한 가정이 돼 가지고 가정맹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하나된 사람, 부부가 하나된 사람, 아들딸이 하나된 사람, 완전히 하나님 편에 선 그런 가정이 비로소 암송할 수 있는 것이 가정맹세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첫째 조건은 몸과 마음, 심신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조건은 부부의 일체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녀가 일체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일체된 위에서 천국이 통하는 것입니다. 이게 일체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일체된 위에서 가정맹세를 외워야 됩니다.
이제는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원래의 아담가정을 재현하여 인류의 해방을 위하고, 하나님을 해방하고, 지상·천상세계의 해방을 위한 선봉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할지어다! (261-321)*
천일국 훈독경 제5권 28일,
원문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
날짜 : 1994. 7. 24(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입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은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세계, 통일된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평화라는 것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을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그 출발점이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평화의 주인공
하나님과 인간시조가 하나되었으면 하나된 그 자리가 통일의 자리요, 그 자리가 평화의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평화의 세계와 통일된 세계를 잃어버렸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평화세계의 근원이 되는 것은 뭐냐? 하나님이 평화세계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일치되는 데서 평화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뭐냐고 신학자들에게 물어보니까 그 답변이 우스웠습니다. “지극히 어려운 동시에 지극히 쉬운 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답변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모호합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다시 찾아 나오는 길을 개척하는 것은 신을 가르쳐 주고 종교를 가르치는 신학자들에 의해서 그 방향이 결정되어야 할 텐데도 그 대답이 모호하기 때문에 종말시대에 와 가지고 기독교의 입장이 모호한 것입니다. 그러니 기독교가 혼돈된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이건 중요한 물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뭐라고 해요? 첫째는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이상의 완성이 뭐냐? 사위기대의 완성입니다. 사위기대의 완성은 뭐냐?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미국이 전세계를 지도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되어 있지만 그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단위는 가정인데 2억 4천만 국민의 가정들 가운데서 이상적인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있다고 봐요, 없다고 봐요? 한 가정도 없습니다. 그런 가정이 없으니까 문제가 큽니다. 아무리 미국이 훌륭한 국가더라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적인 나라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를 하늘은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기억될 수 있는 가정이 없다면 하나님의 눈에 기억될 수 있는 나라도 없는 것이요, 그런 나라가 없다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평화라는 것을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미국이 아무리 국가적인 힘을 가지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해도 그게 평화의 세계가 될 수 없습니다. 평화의 주인공은 하나님입니다. 그 평화의 주인으로부터 우리가 완전히 상속받기 전에는, 우리 가정이 그 기반의 출발기지가 되지 않고는 평화의 출발기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61-289)
나에게 있어서 제일 큰 문제
우리 남자나 여자는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자랑할 게 뭐 있어요? 얼굴이 예쁘다고, 이름 있는 대학을 나오고 출세했다고, 돈이 있다고 자랑해요? 그런 것들은 자랑거리가 못 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선한 세계라고 생각해요, 악한 세계라고 생각해요? 이 세계는 악한 세계입니다. 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어떤 인간을 붙들고 묻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인류역사를 거쳐온 모든 인생살이의 노정을 걸었던 그 환경적인 여건은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계가 악하다면, 미국은 어때요? 악한 나라예요, 선한 나라예요? 미국도 악한 나라입니다. 그러면 미국 국민은 선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악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악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한 답입니다. 그런데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야, 그렇게 싸잡아 가지고 한 마디로 나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야” 합니다.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악한 세계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인류역사는 아담 해와의 이후부터 전쟁사로 연결되어 나왔습니다. 전쟁사로 엮어진 인류역사입니다. 전부 다 누가 일어나 가지고 어떻게 되었다거나 이기고 졌다는 전쟁사입니다. 싸우는 역사의 기록을 남긴 것이 인류역사고, 그런 배경의 역사를 가진 것이 인생살이라는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싸우면 왜 악한 거예요? 싸우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주인이요, 통일의 주인이요, 최고의 선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싸우는 자리에는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곳은 하나님이 떠나시기 때문에 악한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나라가 나쁘다는 것은 그렇다고 하지만 내 자신도 나쁘다고 할 때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아까 말한 대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자랑하기를 바라는데,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악한 것을 자랑하는 입장에 선 내가 되었다면 기분이 나쁘잖아요? 그거 왜 그렇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워요, 안 싸워요? 다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싸움이 지금 막 시작한 거예요,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 아담 해와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전부 다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고, 남자 여자가 싸우고, 형제가 싸웁니다. 아담가정에서 형이 동생을 때려죽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담가정은 인류의 근본적이고 공식적인 가정이었는데, 거기서부터 그러한 가정으로 시작했으니 불가피적으로 싸움의 역사가 연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론적인 근거를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나에게 있어서 제일 큰 문제가 뭐냐? 세계의 전쟁이 문제가 아니고 국가의 혼란이나 지금 각처에서 전쟁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문제들 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내 자신이 끊임없는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더 문제시해야 됩니다. 어떠한 세계대전보다도 큰 문제는 내 자신이 전쟁터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261-291)
원인과 결과는 하나되는 것
사건들 중에서 어떤 사건이 제일 큰 사건이냐? 그것은 세계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고 우주의 사건이 아닙니다. 모든 사건들 중에서 제일 큰 사건은 나입니다. 이것은 지금 자기의 몸뚱이에 불이 붙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붙은 불을 끄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제3자가 어떻고, 이웃 동네가 어떻고, 내 대신 다른 무엇이 어떻다고 불평할 여지가 없습니다.
인류가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통일의 세계를 바란다고 그 평화의 세계와 통일의 세계가 쉽게 올 것 같아요? 나라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입니다. 악마의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 나입니다. 그런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열매를 언제든지 역사를 순환하면서 끌고 나오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의 마음대로 되면 좋겠지요? 그러려면 싸우는 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나를 중심삼고 전부가 내 것 되기를 바라는 것은 싸우는 자리에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싸우고 있으면서 싸우지 않는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바란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부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신은 어떻게 되어 계시기에 싸우는 데 계시기를 싫어하시느냐? 하나님 자신은 하나되어 계십니다. 통일되어 계시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면 절대자가 되지 못합니다. 절대적이란 개념 가운데는 분립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하나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통일의 개념이 거기에 있고, 불변의 개념도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몸과 마음이 싸우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건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문제입니다. 원인과 결과는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머니 아버지와 통해요, 안 통해요?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부자지관계에 있고 하나님이 완전히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계신다면 우리 자신들도 완전히 몸 마음이 하나되어 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 몸 마음이 싸우게 되어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문제가 이 문제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왜 이렇게 분립되어 가지고 투쟁적인 개인이 되어 버렸느냐? 이게 큰 역사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을 해명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잘못 만드셨다는 것보다 하나님은 절대자가 못 되신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이건 인간으로서 깨우쳐야 될 문제요, 중대한 발견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동기로 한 것은 절대적인 결과가 되어야 할 텐데 이렇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고장이 났든가, 사건이 벌어졌든가, 떨어졌든가, 병이 났든가, 타락했다는 논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가운데 타락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타락했으면 왜 갈라지는 거예요? 몸 마음이 왜 갈라져서 싸워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갈라졌다고 하는데, 세상에 그런 법이 있어요? 인간시조의 몸과 마음이 그것을 먹기 이전에 갈라졌겠어요, 먹고 나서 갈라졌겠어요? 문제입니다. (261-293)
몸의 주인은 악마요, 마음의 주인은 하나님
나라는 존재의 생명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나 자신은 사랑을 통해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정상적이면 나 자신도 하나되게 돼 있는데, 그 사랑이 그릇되어서 내 자신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은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본연적인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이 바라시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인간의 몸과 마음이 갈라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갈라지게 한 게 뭐냐? 그릇된 사랑 외에는 갈라지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릇된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이 없이는 갈라질 법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논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고 이렇게 갈라질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 개입하기 전에 거짓된 사랑이 동기가 돼 가지고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거짓사랑은 뭐냐? 사랑은 사랑인데 본연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180도 다른 사랑입니다. 이 칸셉(concept;개념)이 있으면 거짓사랑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말을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갈라져 싸우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인간시조가 하나님의 사랑에 하나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 사랑에 배치되는 입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그냥 그대로 인류에게 전수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법적인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적인 결연이 맺어졌습니다.
우리 본래의 양심은 하늘과 직결되게 돼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점령하실 수 있는 기지로 되어 있지만, 그 양심과 상반적인 자리에 선 것이 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천사장은 몸뚱이에 거짓사랑의 뿌리를 박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사랑과 거짓사랑이 플러스와 플러스로서 반발합니다. 논리적으로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랑으로 타락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의 동기는 어디에 있었느냐? 내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늘은 사탄세계의 생명권과 180도 반대이므로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 자체를 죽여 버리지 않고는 살길이 없습니다. 사탄의 사랑으로 태어난 것은 죽여 버리고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중생의 논리도 다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승패를 가려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이걸 부정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같은 통일적인 자아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결론이 깨끗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를 분석해 볼 때, 마음은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어떻게 마음이 하늘에 속했는지 알아요? 마음은 선한 일을 하라고 그럽니다.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과 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싸우지 말라. 사람을 위해서 네가 희생하고 봉사해라” 하는데, 몸뚱이는 정반대입니다. 마음은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는데, 몸뚱이는 낮은 데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261-296)
높은 데 올라가는 것보다 낮은 데 내려가는 게 쉽습니다. 거기에는 스승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악마의 세계가 천지를 뒤엎기 쉽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볼 때, 내 마음은 하늘에 가깝고 몸뚱이는 악마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 마음을 중심삼고 맨 밑창에 내려가게 되면 사탄하고 하나님이 부딪칩니다.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볼 때 몸의 주인은 악마요, 마음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맨 밑창에 들어간 사탄악마와 하나님이 생각할 때, 하나님은 “이놈의 악마의 몸뚱이를 제거시키고 나하고 하나된 몸뚱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시고 악마는 “이 몸뚱이를 치워 버리고 나하고 하나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이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과 지옥에 가는 기지로 되어 있습니다. 케이프커네버럴 우주선 발사기지와 마찬가지로 돼 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것과 하늘천국으로 가는 것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놀랍고 무서운 문제가 내 자체에 둥지를 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과 같이 몸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방법에 있어서 어떤 처리방법을 써야 되느냐?
천국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지상에서 몸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살던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몸 마음이 하나 안 된 사람은 절대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든지 몸 마음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필생의 사업입니다. 세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하늘의 챔피언과 지옥의 챔피언이 있는데, 하늘의 챔피언은 정신이고 지옥의 챔피언은 육체입니다.
여러분은 두 챔피언이 싸우는 무대입니다. 어디를 중심삼고 이겨야 되겠어요? 어디를 중심삼고 패해야 되겠어요? 그래서 오늘날 하늘땅을 중심삼은
하나의 무대를 세워 가지고 챔피언십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 타락한 인생들이 가는 생애노정입니다. 녹다운을 시킬 거예요, 케이오를 당할 거예요?
육체를 녹다운 시켜야 됩니다. (261-298)
인류가 바라는 소원
습관성이 무섭습니다. 역사이래 수천 년 동안 이어 나온 전쟁, 휴전도 안 하고 계속해 온 전쟁의 습관성을 어떻게 벗어나느냐? 습관성에 세포가 전부 다 젖어 있습니다.
종교는 하나님 편을 중심삼고 양심을 강화시켜서 몸뚱이를 때려잡는 운동입니다. 몸뚱이를 때려잡아서 지옥을 없애 버려야 됩니다. 육신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게 되면 지옥의 기지가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육신이 잡아당기면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컨트롤해 가지고 육신을 뛰어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싸움은 역사적인 비운의 곡절을 다 거쳐도 넘기가 힘든 싸움이란 걸 알아야 됩니다.
이 육신의 고개를 넘는 것이 얼마나 힘들어요! 히말라야 산맥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등반가들 가운데 에베레스트 산을 넘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육이 싸우는 싸움의 고개는 한 번도 넘은 적이 없고, 아직까지도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 여러분은 그 산정을 넘겠다고 노력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여러분의 몸 마음이 싸우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이 사실을 모를 때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생각으로는 안됩니다. 적당히 “어허, 맹세합니다. 아이구, 그렇습니다” 하는 것은 안 통합니다. 하나님은 몸 마음이 하나되어 계시기 때문에 몸 마음이 하나된 사람들이 지상에서 살다가 천국으로 옮겨지게 돼 있지 싸우는 녀석은 하나님이 절대로 보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존재의 형태도 보기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가 바라는 소원이 뭐냐? 이러한 싸움을 정지시킬 수 있는 주인, 부모가 오는 것입니다. 거짓부모로 시작돼서 갈라졌기 때문에 참부모가 와 가지고 이런 사실을 이론적으로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어디서 고장났기 때문에 그 고장난 급소를 떼어 버려 가지고 차 버릴 수 있는 놀음을 할 수 있는 운동이 땅에서 벌어지지 않고는 지상에 천국은 영원히 요원합니다.
이 몸 마음이 싸우는 싸움의 에센스(essence;정수)를 누가 주사 놓았느냐 할 때, 사탄이 그 주사를 놓았습니다.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 거짓양심의 주사를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걸 뽑아 버려야 됩니다. 어디에 주사를 놓았느냐? 육체에 주사를 놓았습니다. 육체가 뭐예요? 이 몸뚱이입니다. 보이는 것입니다. 이 보이는 전부가 육체입니다.
양심이 보여요? 양심을 봤어요? 양심을 만져 봤어요? 생명을 봤어요? 생명을 만져 봤어요? 사랑을 봤어요? 사랑을 만져 봤어요? 다 안 보이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있는 것은 알지만 만져 볼 수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는 실체입니다. 일생 동안,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것은 볼 수 있지만 마음과 사랑 그리고 생명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힘의 자극이 되지 않습니다. 실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담 너머의 사실과 같이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261-300)
종교생활은 뭐냐
그러니까 몸뚱이한테 양심은 언제나 끌려 다니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양심이 몸뚱이를 끌고 다녀요, 몸뚱이가 양심을 끌고 다녀요? 몸뚱이가 양심을 끌고 다닙니다. 이 몸뚱이가 양심을 얼마나 울리고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몸뚱이를 귀하게 보시지 않습니다. 마음을 영원한 가치적인 존재로 보시고 계십니다. 몸을 옷과 같이 벗고 마음이 하늘로 갑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마음은 입이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하면 “이놈의 입아, 먹기 싫은 것을 먹어” 합니다. 그래서 나쁜 음식을 먹었으면 좋은 음식을 먹었을 때보다도 더 행복하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야, 이놈은 국물도 없구나” 하고 몸뚱이에 있던 사탄이 도망을 갑니다. 그러니까 몸뚱이를 못 살게 할 수 있는 종교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뿌리가 6천 년 이전의 조상까지 달려 있으니, 그걸 다 뽑아 버려야 됩니다. 세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걸 아무리 잘라 버려도 또 나옵니다. 그렇게 거짓부모로부터 시작된 뿌리가 있기 때문에 참부모가 나와서 뽑아 버려야 됩니다. 거짓부모,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까지 다 뽑아 버리고 참부모, 참사랑, 참생명, 참혈통으로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타락한 조상의 뿌리보다 더 깊습니다. 그래서 거짓사랑의 육체에 있던 자리를 참사랑으로 점령하기 때문에 사탄은 있을 수 있는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야 됩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종교를 믿는데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종교가 고행을 한 이상의 고행을 하는 종교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종교생활은 뭐냐 하면, 양심이 고문하는 고문관이 돼 가지고 “이놈의 몸뚱이야” 하며 완전히 죽어 자빠질 때까지 고문을 해서 항복을 받고 다시는 깨어나지 않게끔 점령해 버릴 수 있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몸뚱이를 고문해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눈이 거꾸로 뒤집어져야 합니다. 180도 다른 방향에서 전부 다 보겠다고 할 수 있는 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 편은 왼편을 통해서 보려고 하는데 다 뒤집어 가지고 바른편을 통해서 볼 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그래서 양심의 눈과 하나되어 가지고 볼 수 있게 본연의 자리에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보는 눈은 마음의 눈이 돼 가지고 백 퍼센트 봐도 좋습니다. 모든 것을 맡고 보고 듣고 만져도 좋습니다. 이제부터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할 때 사랑 때문에 타락했기 때문에 성기가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간음하는 것을 제일 무서운 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프리섹스는 악마의 지옥팽창주의입니다. 지상지옥이고 천상지옥입니다. 이건 전부 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핏줄을 뒤집어 놔야 됩니다.
여러분이 죽어 보라구요! 선생님의 말씀대로 틀림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금식을 하라고 합니다. 제물이 되라고 합니다. “겸손해라, 낮아져라, 봉사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건 전부 다 몸뚱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70퍼센트나 80퍼센트만 한다면 또 다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빼 버려야 됩니다. 이것을 못 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261-302)
핍박이라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
이런 문제를 이론적으로 파헤쳐서 확실히 교육해 가지고 누구든지 이 공식을 통하면 같은 답이 나올 수 있게, 같은 공식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게 하지 않고는, 하나의 모델을 만들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표준 모델이 없어 가지고는 대량 생산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61-304)
그래서 이런 것을 아는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사람들을 죽을 자리로 내몹니다. 죽이는 롤러(roller)가 있으면 그 롤러에 갖다 집어넣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집어넣어 가지고 살아나오면 또 다시 집어넣어야 됩니다. 더 심한 롤러에 갖다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도 않고 박사학위를 받겠어요? 논문도 쓰지 않고 그냥 먹겠어요? 사탄이 웃습니다. “이 자식아, 레버런 문은 그렇게 안 가르쳐 줬어” 하고 천대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 이상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감옥에도 들어갔습니다. 여기 미국의 감옥은 휴양처입니다. 얼마든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얼마든지 잠잘 수 있고, 얼마든지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곳이에요! 선생님은 세 시간 이상 안 자던 생애를 거쳐왔는데 거기에서는 일곱 시간, 여덟 시간을 자라고 하니 그게 지옥이었습니다. 부정해야 됩니다. 몸 마음 가운데 하나를 완전히 부정해야 되는데, 마음을 완전히 긍정시켜 가지고 몸뚱이를 완전히 부정하기 전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선생님은 생애를 통해서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수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고생했습니다. 히말라야 산정을 향해서 한꺼번에 가는 것이 아니고 진을 치고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전부 다 답사해 가지고 제일 좋은 길을 열었습니다. 이걸 넘어서야 천국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천국은 더 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아무도 못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늘과의 사이에 케이블카를 걸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케이블카의 박스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타서 기분 좋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들어가 가지고는 체크가 벌어집니다. 이런 마음을 거쳐 가지고 넘어왔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재미로 넘어왔느냐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이 놀음을 했는지가 문제됩니다.
부모님이 고생하면서 케이블카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눈물과 피땀을 흘리지 않고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이 케이블카를 타고 눈을 두리번두리번 하면서 “아이구, 히말라야 산맥이 이렇게 생겼구나. 기분 좋다. 만세” 하면서 갈 것인가, 아니면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해서 케이블카를 만들었겠나! 모든 희생의 담을 쌓아 가지고 이렇게 하셨다”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사하며 갈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그런 고난의 과정을 거쳐서 케이블카의 오너가 부모님이 돼 있다고 할 때 여러분은 아들딸이 될 거예요, 구경하면서 지나가는 손님이 될 거예요? 구경하는 여행객이 될 거예요, 그 주인의 참아들딸이 될 거예요? 지금 실제로 아들딸이 되겠다는 사람은 없고 전부 다 여행자가 되겠다는 통일교회의 패들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역설적인 논리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화근이 누가 돼 있느냐? 세상의 모든 문제의 기지가 어디냐 하면 나와 내 가정입니다. 내가 지금까지의 가정을 중심삼고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가정을 다 버려야 됩니다. 나라도 다 버려야 합니다. 전부를 버리고 나부터 또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의 상대를 찾고, 자기의 아들딸을 찾고, 그 다음에 자기의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고, 세계를 찾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탄의 거짓사랑으로 말미암아 연결된 이 지옥세계를 극복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민족을 중심삼고, 사회를 중심삼고, 국가를 중심삼은 모든 기반은 하늘과 상관이 없습니다. 전부 다 부정해야 됩니다. 그렇게 부정해 가지고 모든 환경적인 여건을 청산짓는 데서부터 자기를 중심삼은 가정을 갖다 붙여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갖다 붙여야만 사탄이 우거하지 않는 지상·천상천국이 됩니다. 그래야 사탄이 없어집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의 터전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버런 문을 세계가 반대합니다. 이걸 전부 다 내가 찾아다니며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세계가 버릴 수 있는 입장에서 세계가 전부 다 레버런 문을 쫓아버리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버려야 할 세계를 내 자신이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나를 쳐서 버림으로 말미암아 내가 세상을 버렸다는 조건으로서 통과시키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기 때문에 핍박이라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입니다.
사탄이 몸 편에 서 가지고 마음 편에 있는 통일교회를 죽이겠다고 암만 고문하더라도 굴복 안 하게 되면 사탄이 완전히 도망을 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들이쳐 가지고 굴복 안 하게 될 때는 영원히 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그 한계까지 갔는데 굴복을 안 하게 되면 사탄이 후퇴해야 됩니다.
미국은 개인주의 왕국입니다. 개인주의자가 천국에 갈 수 있어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양심은 공적이고, 몸뚱이는 사적입니다. 닻줄을 끊어 버려야 되는데 양심의 닻줄을 끊어 버려야 되겠어요, 육신에 박혀 있는 닻줄을 뽑아 버려야 되겠어요? 육신의 닻줄을 뽑아야 됩니다. 이게 공식입니다. 그렇게 청산을 안 하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261-307)
평화와 통일의 기지가 되는 것은 나와 가정
이상적인 가정을 찾아가지요? 그러면 이상적인 가정을 어디를 통해서 이루느냐?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셨고 예수를 통해서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주님이 와 가지고 신부를 맞이해서 이상가정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기독교는 신부의 종교입니다. 신랑을 맞아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2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 가지고 새로운 신부라는 표준을 세우고 세계적인 이상가정을 형성하자는 것이 기독교의 이상입니다. 예수님이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이루려던 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준에서 그러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 섭리가 남아 있습니다.
아담가정이 완성되었다면 하나님이 동서남북의 어디를 가시든지 경계선이 없는 자유분방한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대에 가정을 해방시켜 가지고 천국으로 안내하려고 했는데, 그때도 실패했기 때문에 재림시대에 아담가정을 완성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사랑으로 만들어 놓은 굴곡을 참사랑으로 평면화시켜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국경을 철폐하고, 문화를 철폐하고, 습관을 철폐하고, 인종을 철폐하고, 종교를 철폐해 가지고 같은 한 종족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뭐냐? 바로,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을 통해서 전부 다 정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가정을 통해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가정들이 참부모를 모시지 못하고 살았는데 참부모로 말미암아 결혼해 가지고 참부모를 모시고 사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모든 세계의 축복가정들 가운데는 선생님이 어디 가든지 환영하지 않는 가정이 없으리 만큼 환영할 수 있는 가정권을 이루었습니다. (261-311)
말씀의 제목이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인데, 평화와 통일의 기지가 되는 것은 나와 가정입니다. 사위기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나오신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메시아, 구세주를 보내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신랑 신부의 뜻을 이루어 가지고 하늘이 이상하는 모델가정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세계의 모든 민족들 앞에 핍박을 받아 가지고 승리해서 자리를 잡음으로 말미암아 참부모와 성약시대가 안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61-315)
이상가정을 다시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던 가정이 지금에 와 가지고 참부모의 가정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가정적인 전통은 본래 어디에 있어야 할 것이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의 가정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씨였습니다. 가정의 씨, 모델적인 씨였습니다. 모든 가정의 모델적인 씨였다는 것입니다. 그 씨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남자 여자가 결혼하여 이루는 가정은 아담 해와의 가정과 마찬가지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완전히 복귀된 가정이라고 할 때 아담가정과 그 가치가 달라요, 같아요? 그 가치가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이 언제나 와 가지고 왕이 되실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어요? 아담가정은 씨였습니다. 이상가정의 씨였는데, 그게 뭐냐 하면 왕궁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남자한테 물어 보면 왕이 되고 싶다고 하고, 여자한테 물어 보면 여왕이 되고 싶다고 하지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본래의 아담 해와가 왕이고 여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표하고 우주를 대표했습니다. 가정을 대표한 건 물론입니다. 왕과 여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씨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열매입니다. 열매라는 것은 씨와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남자와 여자 둘을 데려다가 심어 놓으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돼 가지고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왕국의 기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통일교회에서 참부모를 통해서 축복받은 가정이 그러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면 벼락을 맞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다 하늘땅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우주를 대표하는 동시에 평면적으로는 세계를 대표합니다. 그게 왕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뭐냐? 하나님은 아담 해와밖에 모르셨습니다. 아담 해와의 아들딸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손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 해와와 손자가 전부 다 사탄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볼 때 이상가정의 모델을 잃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다시 찾으시기 위한 것이 재림주의 역사입니다. 그런 이상가정을 다시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원래 아담 해와의 가정은 전세계의 가정들을 대표한 모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한 사위기대의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부는 아담 해와의 입장이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은 부모가 가정의 왕과 왕후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전세계의 가정들을 대표하는 왕과 왕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을 받아서 결혼하는 것은 최고의 영광입니다. (261-317)
심신일체, 부부일체, 자녀일체
한 가정의 부부는 뭐냐 하면 세계의 가정들을 대표하는 현재의 왕과 왕후입니다. 할아버지는 뭐냐 하면 과거를 대표했기 때문에 영계를 대표하는 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하나님같이 섬겨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는 가정의 중심이기 때문에 왕과 왕후와 같이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섬겨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고, 성인이 되고,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아들딸은 뭐냐? 미래의 왕과 왕후입니다. 할아버지는 과거의 천국과 통하고, 아들딸은 미래의 지상천국과 통합니다. 부모는 현재의 지상천국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대의 왕궁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의 이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사랑하셨지만 손자를 사랑해 보지 못하셨습니다. 과거의 하나님이 현재의 아담 해와도 사랑하고 미래도 사랑하셔서 소생과 장성 그리고 완성으로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3시대를 거쳐서 연결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모든 가정에서 손자는 부모의 사랑도 받고 할아버지의 사랑도 받습니다. 두 세계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천국과 현재의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소원이 뭐냐 하면 손자를 사랑해 보는 것입니다. 아들보다도 손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콘셉트가 왔다갔다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나이가 많아지면 왔다갔다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친구가 됩니다. 나이의 관념이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영계와 연결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가 가지고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261-320)
미국 가정은 부부주의입니다. 손자하고 할아버지가 만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담 해와의 가정에 있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손자가 합해 가지고 살다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었지 아담 해와의 부부만 들어가게 되어 있었던 천국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가정 시스템은 악마가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미국의 가정들이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이상가정은 평화와 통일의 기지’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정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가정과 닮을 수 있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몸 마음이 하나되고, 부부가 하나되고, 자녀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선생님의 가정이 그러한 가정이 돼 가지고 가정맹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하나된 사람, 부부가 하나된 사람, 아들딸이 하나된 사람, 완전히 하나님 편에 선 그런 가정이 비로소 암송할 수 있는 것이 가정맹세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첫째 조건은 몸과 마음, 심신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조건은 부부의 일체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녀가 일체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일체된 위에서 천국이 통하는 것입니다. 이게 일체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일체된 위에서 가정맹세를 외워야 됩니다.
이제는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원래의 아담가정을 재현하여 인류의 해방을
위하고, 하나님을 해방하고, 지상·천상세계의 해방을 위한 선봉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할지어다!
(26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