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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15일
종교라는 것은 신을 중심삼고 시작됩니다. 오늘날 철학이라는 것은 지식을 중심삼고 신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심 표제가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을 해명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한 종주들로서 하나님을 확실히 밝혀 놓고,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확실히 해명해 놓았다면 해명된 그 터전 위에 공통된 방향성을 제시했느냐?
그러면 간단히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의식이 먼저냐, 실재가 먼저냐?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는 없지만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경지의 깊은 곳에 하나님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 다들 사랑을 갖고 있어요, 안 갖고 있어요? 사랑을 갖고 있지요? 남자도 사랑을 갖고 있고 여자도 사랑을 갖고 있지만 상대를 만나지 못할 때는 사랑 이상을 성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문 총재가 오늘날 세계적인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나님도 사랑 때문에 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물세계에서부터 식물세계, 동물세계까지, 모든 존재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광물의 세계도 음이온과 양이온이 있어서 상대가 안 되는 것은 인간의 힘이나 하나님의 힘 가지고 아무리 “야, 이놈아! 하나돼!” 하더라도 하나 안 됩니다. 응하지를 않습니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주의 모든 존재는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여러분, 직선상에는 조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우주의 운동은 3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운동하기 위해서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같이 협력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3점을 통해서 구심력이 맞게 될 때 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심력이라는 것, 원심력이라는 그 자체는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할 때 힘이 먼저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작용이 먼저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용하는 데는 혼자 작용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세계의 남자 여자나 동물세계의 수놈 암놈 등 모든 생물이 어떻게 해서 상대성을 지니고 있느냐? 그 자체들이 의식을 가지고 “나는 암놈이 되고, 너는 수놈이 돼야 돼!” 이렇게 의논해서 출발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의식적 결정이 있어 가지고 수놈으로 태어나고 암놈으로 태어났느냐 할 때, 그것은 모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209-27)
나 하나 물어 보자구요. 여러분이 결혼을 했다고 합시다. 여러분에게는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지요? 그런데 제일 가까운 친구, 죽자 사자 하던 친구가 결혼한 이튿날 와 가지고는 결혼 전처럼 “야, 이 자식아! 뭐야?” 하면서 구둣발로 안방에 들어와 차려고 할 때 자기의 색시가 그 방에 있다면 들어오기를 바라겠어요,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겠어요? 어때요? 아무리 사랑하는 친구라도 상대가 결정되었을 때는 들어오는 것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보호원칙 때문입니다. 우주의 존재 기원이 상응상조작용(相應相助作用)인데, 이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것은 상반작용(相反作用)이 아닙니다. 상응상조작용입니다.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적입니다. 한번 정착하면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직단거리를 통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는 길은 최직단거리를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직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말씀드리는 ‘참되고 영원한 부자지관계’에서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우리가 아들이라고 할 때 그 아버지와 아들이 통할 수 있는 길, 만날 수 있는 길이 꼬불꼬불하겠느냐, 직단거리겠느냐? 이렇게 물을 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직단거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직단거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수직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직단거리기 때문에 이 우주 천지지간에 아들과 아버지가 맺을 수 있는 사랑의 길을 이 땅 위에 상하로 세우는 데는 수직이 있어야 됩니다. 부자지관계는 상하관계입니다. 종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부부관계는 동서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동서지간(東西之間)에서 만나 참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그 길도 하나님과 아들이 만나고 하나님과 딸이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직단거리를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동서에 있어서의 직단거리는 수평선입니다. 상하관계와 90각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의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그 다음에는 아담과 해와가 자라던 때와 같은 자녀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자녀관계를 거쳐 가지고 부부관계가 나오는 것 아니에요?
오늘날 이 세상에서 부부일신(夫婦一身),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고 하면서 왜 형제일신(兄弟一身)이란 말은 안 하느냐는 것입니다. 부자일신과 더불어 형제일신 논리가 나와야 되고, 형제일신 논리를 중심삼고 부부일신이라는 논리가 나와야 됩니다. 아담 해와, 남녀가 성숙해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일신(一身)이라는 말은 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부부일신, 부자일신, 형제일신은 절대적인 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일신이라는 말이 벌어졌지,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자와 남자가 어떻게 일신이 돼요? 아버지와 아들이 두 몸인데 어떻게 일신이 돼요? 형제가 어떻게 일신이 돼요? 어떻게 남녀가 평등해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여자가 남자를 당할 수 있어요? 운동이나 무슨 노동이나 정신적인 세계에서도 남자가 우월한데 말입니다. 그 평등이라는 말은 남녀를 묶을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사랑을 빼게 되면 일체이상(一體理想)도 깨져 나가고, 평등사상도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천지가 화합이다, 화동이다, 평화다 하는 것은 어디 결여됨이 없이 고루고루 화한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가지고 화할 것 같아요? 이걸 볼 때, 사랑을 빼 놓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피조세계가 생겨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이 사랑 때문에 창조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적인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적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209-29) 참사랑과 영생문제,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석가모니 믿으면 극락 가고, 무엇이 어떻고 하는데, 그 말대로 됩니까? 알아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참사랑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원하니 내가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더불어 동반자가 되니 영원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묻겠는데, 여러분이 옛날에 결혼할 때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못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어요? 절대 없습니다. 또,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을 봤어요?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렇겠어요? 자기 조상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역대 조상을 닮고 닮고 닮아서 맨 나중에 근본 뿌리가 되는 분이 있으니 그분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보지는 못하지만 뿌리가 있습니다. 보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근본 뿌리가 있기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뿌리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백 퍼센트의 힘을 갖고 있는 하나님이 백 퍼센트만큼 투입하면 자기 정도만한 사랑의 상대밖에 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두십시오! 이것은 보통의 말이 아닙니다. 문 총재가 생애를 걸고 탐구해서 발견한 내용입니다.
투입하는 데 있어서 자기만큼 투입하게 되면 자기만한 상대밖에 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영원한 힘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백 기준뿐만이 아니라 백을 투입하고 또 백을 투입하고 천을 투입하고 영원히 투입하면서 잊어버리겠다는 분이십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립니다. 참사랑의 대상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에 사무치는 그분은 투입하고도 더 가치 있는 것을 투입하려 하고, 백년 천년을 투입하고도 더 투입하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 속에 영생의 논리, 영생의 이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스톱할 때는 끝입니다. 거기서 되돌아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입하고 투입하다 보니, 투입하고 사랑하면서 자꾸 투입하다 보니 올라가는 것입니다. 올라가 가지고 하나님까지, 우주까지 포위해 버리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사랑으로….
여러분, 그렇잖아요? 공기를 보게 되면 저기압이 생기면 고기압권이 생깁니다. 저기압이 생기는 것은 고기압권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투입하고 투입하는 것은 상대세계에 고기압을 형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을 발발시키자는 것입니다. 거기서 순환운동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주는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느냐? 받기 위한 힘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밀어 주는 힘에서부터, 투입하는 힘에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209-31)
우리 인간세계에서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하고 묻게 되면 대답은 보편적인 중요한 세 가지 내용으로 귀착됩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나는 자식 앞에 참된 부모가 되고 싶다!”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내가 참된 부모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부모들의 꿈입니다. 또, 제자들 앞에 선생들의 소원은 무엇이냐? 선생들의 최대 소원은 참된 스승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참된 주인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의 주인은 어머니와 아버지고,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입니다. 또 세계의 주인은 세계의 대통령이고, 우주의 주인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주인이 있어야 됩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할 때,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참된 주인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3대 욕망입니다.
그러면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이 이 땅 위에 있느냐 할 때,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참부모와 참스승과 참주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있어서 보호해 주고 가르쳐 줘야만 그런 부모가 나오고, 그런 스승이 나오고, 그런 주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었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우주 가운데 참부모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냐? 참스승입니다. 인생의 근본 문제, 천상세계의 모든 문제, 우리 지상세계로부터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천주로 통할 수 있는 모든 방향이 거기에서 일치됩니다. 하나님만이 참부모요, 하나님만이 참스승이요, 하나님만이 참주인입니다. 그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의 정의는 어디서부터 내려야 하느냐? 참사랑을 지닌 데서부터 내려야 됩니다. 저번에 내가 미국에 갔다 온 교수들을 불러 모아서 3대 주체사상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이 3대 주체사상은 참부모가 되면 참스승과 참주인은 자동적으로 옆에 서는 것입니다. 셋이 하나되는 주체입니다.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에 참주인이 있어요? 참스승이 있어요? 참사랑을 갖춰 영원히 나누어질래야 나누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을 가진 스승이 없습니다. 그것은 참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 참부모가 있어요? 집에 있는 부모가 참부모예요? 참부모는 집에서 자식을 낳아서 학교에 보내 가지고 길러서 참주인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무슨 주인이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주인, 사랑의 주체와 대상으로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주인입니다. 오늘 문 총재가 여러분 앞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3대 주체사상 중에서 하나라도 지니는 인연을 인계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참되고 영원한 부자지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자지관계로 무엇을 하느냐? 거기에는 영생이 있으며, 영원한 사랑의 원칙적 생활을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살다가 천상세계에 그냥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선물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09-33) <훈독 소감> 오늘날 이 세상은 사상과 이념의 중심을 잃어버린 세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15일 원문
종교라는 것은 신을 중심삼고 시작됩니다. 오늘날 철학이라는 것은 지식을 중심삼고 신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심 표제가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을 해명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한 종주들로서 하나님을 확실히 밝혀 놓고,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확실히 해명해 놓았다면 해명된 그 터전 위에 공통된 방향성을 제시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각자에게 “양심을 보았느냐?” 할 때, 어때요? 양심을 봤어요? 양심을 알고는 있지만 봤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양심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느냐? 양심을 통해서 우리 인간 생활의 모든 주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 되고, 이것은 된다.” 하면서 지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세계에는 법이 필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양심은 신이 있다고 할 때 인간이 신과 관계를 맺기 위한 제일 가까운 도리의 하나의 초점, 하나의 전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양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무엇을 대신하느냐? 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의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그 다음에는 아담과 해와가 자라던 때와 같은 자녀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자녀관계를 거쳐 가지고 부부관계가 나오는 것 아니에요?
오늘날 이 세상에서 부부일신(夫婦一身),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고 하면서 왜 형제일신(兄弟一身)이란 말은 안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왜 그렇게 됐느냐는 것입니다. 부자일신과 더불어 형제일신 논리가 나와야 되고, 형제일신 논리를 중심삼고 부부일신이라는 논리가 나와야 됩니다. 아담 해와, 남녀가 성숙해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일신(一身)이라는 말은 무엇 갖고 하는 말이냐? 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부부일신, 부자일신, 형제일신은 절대적인 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저번에 내가 미국에 갔다 온 교수들을 불러 모아서 3대 주체사상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김일성이가 말하는 3대 주체사상이 아닙니다. 자주니 창조니 하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엉터리도 그런 엉터리가 없습니다. 이 3대 주체사상은 참부모가 되면 참스승과 참주인은 자동적으로 옆에 서는 것입니다. 셋이 하나되는 주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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