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가정 (천일국 훈독경 제5권 16일 -1) u

훈독왕 | 20200322093922

천일국 훈독경 제5권 16일 -1, 원문



이상가정(훈독본)

날짜 : 1983. 9.11(일)

장소 : 미국


(용량 문제로 까만 글씨 부분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일 귀하게 여기시는 것


여러분은 귀한 것과 좋은 것을 원하는데, 그 귀한 것과 좋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한계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대개 보물이라고 하면 귀하다고 생각하지요? 귀한 것을 이야기하면 보물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보물이 무엇이냐? 보물이라고 하면 다이아몬드니 금이니 은이니 진주와 같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그 보물들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시공을 초월해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다는 개념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이아몬드가 왜 귀해요? 그 특정한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이 세계의 어떠한 물건보다도 더 굳다는 것입니다. 굳은 데 있어서 왕자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것은 시일이 가고 아무리 위치가 변경되더라도 시공권 내의 작용을 초월해 있습니다. 여기서 영국으로 가져가나, 스페인으로 가져가나, 북극으로 가져가나, 더운 열대 지방에 가져가나 그것은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놓고 설명하다 보니까 보물이다, 귀한 것이다 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가치의 정도가 인간이 힘을 가해서 척척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것에 비례한 것을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하는 한계선을 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금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금이라는 것이 왜 보물이냐? 그 황금빛이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다른 물건과 다른 점입니다. 환경의 변화가 있고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데 그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과 다이아몬드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으냐? 등수를 매긴다면 어느 것이 더 귀할까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다이아몬드를 불에 넣으면 타요, 안 타요? 타서 탄소로 화해 버립니다. 금은 어떨까요? 금은 용광로에 들어가 물이 되었다가도 다시 본질로 돌아옵니다. 그 색깔의 변화가 없습니다.


세상의 돈을 무엇에 기준하여 만들었느냐? 다이아몬드를 기준으로 해서 만들지 않고, 진주를 기준으로 해서 만들지 않고, 금을 기준으로 해서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금은 불에 갖다놔도 불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얼음덩이에 갖다 놓아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떠한 무엇에도 변하지 않고 그 자체를 보유할 수 있으니까 금을 돈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하나의 표준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또, 진주를 보물로 취급하는데 진주가 뭐예요? 조개 껍데기 속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것을 불에 넣으면 변하겠어요, 변하지 않겠어요? 색깔이 변하고 영향을 받는데, 왜 진주가 귀하다고 하느냐? 그것은 컬러에 있어서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하모나이즈드(harmonized;조화되다) 컬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진주를 누가 좋아해요? 보물을 누가 좋아하는 거예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여자가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왜 좋아해요? 여자는 변하기 쉬우니까 좋아하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왜 좋아하느냐 하면 여자의 마음이 강하지 않으니까 그렇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변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에 끼고 강한 마음을 가지려는 것입니다. 금목걸이나 금반지 같은 것을 왜 좋아하느냐? 색깔이 울긋불긋하지 않은 단색인 황금색으로 언제나 좋은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변화를 주는 환경이라고 해도 금처럼 안팎이 변하지 않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진주와 같이 하모나이즈드 칼라가 되면 누구든지 터치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은 다이아몬드도 만들고, 금도 만들고, 진주도 만들고, 여자도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한테 있어서 다이아몬드 같고 보석 같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이겠어요? 하나님이 제일 귀하게 여기시는 것, 영원히 찾아다니시고 영원히 갖겠다고 하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정말 멋질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서 그걸 하나님의 콧구멍에다 갖다 대면 재채기가 나올 것인데 하나님이 그걸 집어던지시겠어요, 그냥 붙들고 재채기를 하시겠어요? 그냥 붙들고 계실 것입니다. 머리 좋은 레버런 문은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그게 무엇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128-286)


참사랑을 어떻게 찾아야 하느냐


참사랑이 그렇다면 다이아몬드와 황금 그리고 진주뿐만 아니라 이 우주만상을 다 갖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있겠어요?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주사 맞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참사랑의 주사라면 어떻겠어요? 아프긴 아프지만, 그거 한대 맞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또, 만약에 참사랑의 가시가 있다면 어떻겠어요? 닿기만 해도 야단하고 그럴 테니 “영원히 노 터치다” 할 거예요, 찔리더라도 터치할 거예요? 참사랑을 가진 사람은 그 가시의 맛을 알지만, 참사랑을 안 가진 사람은 그 가시의 맛이 아프고 죽을 지경일 것입니다.


사랑의 맛이 단맛이에요, 찌르는 맛이에요, 주사 맛이에요, 가시 맛이에요, 뜨거운 맛이에요? 어떤 맛이에요? 그 맛들이 다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의 한 마디가 주사보다 몇 백배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프면 도망가는 것이 사랑이에요, 아픈 것을 넘어가는 것이 사랑이에요? 아픈 것을 넘어가는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은 눈물도 컨트롤할 수 있고 슬픔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 여자들은 남자하고 싸움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 더 깊은 곳, 피안의 세계로 가기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걸 넘어가 사랑을 찾으면 무한한 인간 세계에 있어서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말 한마디에 싸움하고 물러가는 모래 같은 사랑과 몇 백번 싸움하고도 훌훌 넘어갈 수 있는 참사랑 중에서 어떤 걸 원해요?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날 남자 여자의 사랑같이 투덕거리다가 이혼하는 사랑이겠어요,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더라도 넘어가겠다는 사랑이겠어요? 


참사랑은 어느 곳에 머무르겠어요? 싸움 한 번을 하고 굿바이 하는 그런 곳에 참사랑이 있겠어요, 싸움을 천번 만번 하고라도 굿바이 할 수 없는 그러한 자리에 참사랑이 있겠어요? 아무리 싸워도 굿바이를 할 수 없는 자리에 참사랑이 있습니다. 눈 싸움을 죽도록 하고서도 용서할 수 있는 참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코 싸움을 몇 천년 해도 넘어갈 수 있고, 입 싸움을 몇 천년 해도 넘어갈 수 있고, 손 싸움을 몇 천년 해도 넘어갈 수 있고, 발 싸움을 아무리 해도 넘어갈 수 있는 저 편에 참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가서 참사랑을 찾아야 되겠어요? 힘들여서 찾아야 되겠어요, 쉽게 찾아야 되겠어요? 참사랑을 어떻게 찾아야 하느냐? 내가 생각이 있고 스마트한 참사랑이라면 가시 산을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시 산을 넘어오는 사람을 맞이할 것입니다. (128-289)


위하는 데 사랑이 있다


그러면 참사랑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첫 번째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어요? 쉽게 참사랑을 찾겠다는 사람은 흘러갈 사람입니다. 무니가 뭘 하자는 패예요? 가는 데마다 혼란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렇게 문제만 일으키는 패들이에요? 통일교회를 핍박하고 그러는 걸 다 싫어하는데, 선생님은 그것을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느냐? 그래야 길을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모두가 좋다고 하면 얼마나 방해가 많겠어요!  


여러분은 백합을 좋아해요, 장미를 좋아해요? 미국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를 갖다 주지요? 줄 때 가시를 따고 줘요, 그냥 줘요? 그냥 주는데, 그것은 가시의 고개를 넘으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꽃을 잡으려다가 가시에 찔렸다고 할 때 “아이쿠…” 하고 집어던졌다면 또 가서 집으려고 하겠어요, 아니면 차 버리겠어요? 다시 집어들게 되는데, 어째서 그러냐 하면 아팠지만 향기가 풍기기 때문입니다.  


인생살이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둘이서 사는데 백합 같은 일년생을 원해요, 장미 같은 다년생을 원해요? 비록 가시는 있다고 하지만 영원한 장미를 원합니다. 여러분, 장미에 벌레들이 많이 붙어 있는 걸 봤어요? 아무나 못 올라갑니다. 여러분은 백합과 같은 부부가 좋아요, 장미와 같은 부부가 좋아요? 백합은 방향성입니다. 향기가 한 선으로 뻗습니다. 한 군데로만 향하지 사방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미는 나무 줄거리도 있지만 넝쿨도 있습니다. 그래서 옆으로 뻗을 수 있습니다. 올라가기도 하지만, 옆으로 뻗기도 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점령할 수 있는 범위가 확대됩니다. 장미는 매해 잘라 줄수록 더 좋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줄기를 더 많이 뻗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방향성의 사랑보다도 사방성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살면서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기만을 좋아하면서 살 거예요, 남편을 위해서 고생하고 또 고생하면서도 남편을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살 거예요? 어떤 것이 행복한 거예요? 사랑의 여왕이 되는 것이 좋겠어요, 사랑의 노예라고 하지만 어떤 사랑의 여왕도 부럽지 않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랑이 좋겠어요? 어떤 것이  좋아요?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곳이 참사랑과 가깝겠어요, 사랑을 하겠다고 하는 곳이 참사랑과 가깝겠어요? 어느 거예요? 사랑을 주겠다고 하는 곳이 참사랑과 가깝습니다.


부모는 왜 태어났느냐? 자식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거 아주 딱 맞는 말입니다. 왕은 왜 태어났느냐? 왕을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고 그 나라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왕이 “나를 위하라” 한다면, 그건 악마입니다. 백성은 왜 태어났느냐? 그 왕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왜 계시느냐? 우주를 위해서 계십니다. 그러면 우주는 왜 있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있습니다. 참사랑의 기원은 이런 원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자를 위해서 일생 동안 살라고 하나님이 여자한테 남편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못난 여자도 좋을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살라고 하나님이 남편을 보내주셨다. 그러니 나는 행복한 여자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남편한테도 여자를 아내로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일생 동안 위하는 상대로 주신 것이 남편과 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한 남편과 아내입니다. 


우주는 반드시 이러한 두 작용을 합니다. 그렇게 서로가 주려고 하니까 돌아갑니다. 서로가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 점에서 스톱하고, 거기에서 결국 없어져 버립니다. 주고받아야 번창하지 서로가 받겠다고 하면 멈추어진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시집갈 때 사랑을 받기 위해서 간다는 관념을 뜯어고쳐야 됩니다. “약하고 말랑말랑한 여자인 내가 강한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시집간다”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남자는 미인을 찾겠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강하고 억센 남자는 약하고 부드러운 여자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물고기의 세계에서도 그러한 면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대지방의 고기는 열대지방의 물에 접하여 새끼를 치고, 열대지방의 고기는 한대지방의 물에 접하여 새끼를 칩니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야 되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 서로 위해야 됩니다. 그렇게 위하는 데 사랑이 있습니다. (128-297)


절반의 개념


오늘 말씀의 제목이 ‘이상가정’입니다. 우리 인간세계에서 보면 좋은 환경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사랑하던 사람은 어렵고 나쁜 환경이 다가오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자리에서 사랑한 사람들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쁜 자리에서 시작된 사랑은 나쁜 자리에 가면 식어 버립니다. 그러나 나쁜 자리에서 시작된 사랑은 아무리 좋은 자리에 가도 식지 않습니다. 나쁜 자리에서 시작된 사랑은 어렵고 더 어렵더라도 갈 수 있고 더 좋더라도 남아질 수 있지만, 좋은 자리에서 시작된 사랑은 어렵고 비참해지면 거기에서 싫은 자리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둘 중에서 어떤 사랑을 취하겠어요? 첫 번째의 사랑이에요, 두 번째의 사랑이에요? 여러분이 결혼식을 할 때 만민이 찬양하는 자리에 설 거예요, 만민이 조롱하는 자리에 설 거예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합동결혼식을 누가 좋아해요? 레버런 문은 왜 합동결혼식을 취했겠어요? 남자와 여자끼리 마음대로 결혼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왜 레버런 문이 상대를 택해서 결혼시켜 주겠어요?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이 짝지어 줘서 결혼한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대부분 그럴 것입니다. 무섭지요. 자기의 마음대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 결혼했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결혼했습니다. 대답은 어떻게 해도 좋습니다. 뭐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위해서 했다고 해도 좋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했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결혼해 가지고 이혼한 사람들을 보기 싫어서 했다고 해도 좋습니다. 또, “합동으로 결혼한 우리는 이혼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결혼했다고 대답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미국을 위해서, 선생님을 위해서…. 무엇을 갖다 놓아도 전부 다 통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여러분의 뜻대로 했어요, 누구의 뜻대로 했어요? 여러분의 결혼은 선생님이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해주신 이상, 우리는 위하여 살려고 할 것이다” 하는 것이 얼마나 멋있어요! (128-299)


‘여자’ 하면, 어떤 개념이냐 하면 절반의 개념입니다. 절반이지 전체가 될 수 없습니다. 남자를 무시하고 자기를 주장하는 여자, 그런 여자는 여자임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나라는 그 개념 가운데는 반드시 남자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할지 모르지만, 여자가 태어나기를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여자가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128-302)


우주의 첫 번째 원인이 되는 창조주가 있으면 창조주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가 얼마나 멋져요! 창조주가 있으면, 창조주가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그것은 티엘(TL)입니다. 티엘이 뭐예요? 트루 러브(True Love)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만드셨겠어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만드셨다고 한다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사랑의 주체가 되시고 우주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사랑을 찾아오시는데 어떻게 찾아오시겠어요? 그냥 안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인 주체로서 남성격 주체라고 했는데, 그런 하나님이 남자에게 찾아올 때는 어떻게 찾아오시느냐? 하나님이 여자를 앞세워서 몰고 오십니다. 그리고 여자 앞에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는 남자를 앞세우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128-303)


인생의 목적


이상가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면 이상적인 남편과 아내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근본이 위하는 데서 출발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내 발바닥의 세포 하나까지 아내를 사랑했소” 할 수 있도록 사랑의 화신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고귀한 사랑을 찾아서 세계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물은 식물에게 흡수되고, 식물은 동물에게 흡수되고, 동물은 사람에게 흡수되고,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한테 흡수되면서 더 높은 사랑을 찾아갑니다. 광물이 식물에게 흡수되는 것은 광물의 사랑보다 더 높은 식물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고, 식물이 동물에게 흡수되는 것은 식물보다 더 높은 동물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고, 동물이 사람에게 흡수되는 것도 동물보다 더 높은 사람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한테 흡수되는 것도 더 높은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말씀대로 희생한다고 할 때, 그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더 높은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희생이에요! 레버런 문이 여러분을 자꾸 고생시키고 욕을 먹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래야 더 높은 사랑의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이 세계는 십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하와 좌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도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편과 같은 사랑, 아내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부부가 사랑하는 가정은 그 나라의 중심가정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과 같은 사랑으로 하나된 나라가 세계를 가정과 같은 사랑으로 대하면 그 나라는 세계의 센터로 설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후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전후와 좌우가 필요합니다. 크게 말하면, 하늘과 땅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필요하고 아들딸과 며느리가 다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방으로 연결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살라고 합니다. 그렇게 사는 개인은 가정의 센터가 됩니다. 


그 다음에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종족의 센터가 됩니다. 그리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 살라고 합니다. 그러면 민족의 센터가 됩니다. 또, 민족은 나라를 위해 살고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희생해야만 흡수되어 들어가는 것이 천지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높은 사랑에 도달해야 됩니다. 광물이 식물로, 식물이 동물로, 동물이 사람으로, 사람이 하나님한테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칙에서 희생에 희생을 통해서 우주적인 사랑권 내의 센터가 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자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선생님! 개인, 가정, 종족이 희생하다 보면 자유는 어디서 찾아요? 개인주의는 어떻게 해요”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민주주의 세계가 필요해요, 사랑의 세계가 필요해요? 어떤 거예요? 사랑의 세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라는 것은 개인주의적인 자유의 관념에 의해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희생하고 위하는 관념이 아니면 절대로 사랑의 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똑똑한 레버런 문이 천리에 의한 공식적인 과정을 짜서 여러분을 교육하고 길러 가지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128-307)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


그러한 관점에서 세계를 한번 보자구요! 별도 사랑을 위해서 반짝이고, 해와 달도 사랑을 위해서 뜨는 것입니다. 모든 벌레와 곤충들의 노래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입니다. 거기에서 그냥 그대로 사랑이 벌어집니다. 자기 아내의 얼굴이나 남편의 얼굴을 무한히 찬양할 수 있는 장식품입니다. 흔히, 나비와 같은 춤을 춘다고 하지요? 나비의 나는 모습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 때문에 위험해 보입니다. 나비는 똑바로 날지 않습니다. 불안정하지만, 그것이 춤을 추며 날아다닙니다. 댄싱 플라이(dancing fly)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살다가 저나라에 가야 신납니다. 하나님을 부를 때 “내 사랑의 근원이시여…”라고 시작하며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지. 네 말이 옳지” 하십니다. “사랑의 중심으로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이여…” 하면, “그래, 물론이다”라고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는 참사랑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무섭고 엄하시지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등을 쑤셔도 좋아하고 어디를 만져도 좋아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님을 꽉 물어서 피가 나면 하나님이 고얀놈이라고 하시겠어요? 사랑하는 남편이 깨물어 가지고 피가 흘러서 허물이 벗겨진다면 얼마나 보배이겠어요! 그것은 영광의 상처입니다. 남편이 내린 사랑의 훈장이라고 한다면 어때요? 그런 상처가 좋겠어요, 싫겠어요? 그러한 사랑을 꾸미고 사는 가정에 하나님이 같이하십니다. (128-309)


그와 같은 사랑이 아니면 완전한 부부의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이 합하고, 전세계가 합할 수 있는 기반을 여러분 부부로부터 닦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둘이 하나되어 사랑하는 가운데 태어난 아들딸을 죽도록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는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남편과 아내가 하늘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하늘과 우주가 아들딸에게 같이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냐? 위하는 사랑밖에는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만을 위하는 데는 하나님이 오실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사탄이 찾아옵니다. 사탄이 같이하는 그곳에서는 파괴가 벌어지고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가지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자! 어때요? 그러면 두 사람에게 얼마나 사연이 많겠어요! 그걸 기록한다면 부부의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의 명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1970년대에 미국에 왔는데 후회하지 않습니다. 핍박의 길이요, 화살이 빗발같이 쏟아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선생님이 가는 길을 지켜 주실 것이고 미국 국민들이 선생님을 맞게끔 준비하실 것입니다. 미국을 거쳐서 남미로 가고 아프리카로 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나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가다가 죽더라도 그 길을 택하여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던 길을 다 못 가고 중도에서 묻히더라도 사랑을 위한 역사적인 대표자로서의 비석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흡족하다는 것입니다. (128-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