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5권 15일
이상가정을 위한 결혼(훈독본)
날짜 : 1991. 10. 25(월)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잘살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
만약에 어떤 사람이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이오” 하고 묻게 되면, “어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야? 젊은 청년들이지” 하며 대답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직종도 있을 것이고 직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처한 입장을 생각하겠지만, 그 대답이라는 것은 간단합니다. 어떠한 사람이냐 하면 남자와 여자들이 모였습니다. ‘좋은 사람’ 하게 되면 거기도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고, ‘나쁜 사람’ 하는 데도 남자와 여자가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좋은 나라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나라는 어떠한 사람들을 갖고 있느냐? 좋은 사람들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좋은 사람들은 어떠한 종류냐? 남자와 여자라는 종류입니다. 간단합니다. 마찬가지로, 60억 인류도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영원한 영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영계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영계에 대한 전문가는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계가 어떻고 그 나라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잘 압니다. 그곳은 현대의 지성세계와 종교세계가 원하는 이상적이고 본원적인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전문이라면 전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 나라를 최후의 종착지로 소망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 나라를 표준해 가지고 맞춰야 됩니다. 물론, 젊은시대와 청춘시대 그리고 노년시대가 가는 형식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저나라에 있는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살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표준을 정하고 간다고 할 때는 지상에서 젊은 청년시대에도 잘살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장년시대도 잘사는 길, 노년시대도 잘사는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하루 하루로 말할 때 24시간의 하루를 보내는 데 있어서 아침, 점심, 저녁, 밤도 잘사는 과정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생을 두고 그렇게 잘살았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생애를 훌륭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생’ 하면 유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의 전체를 말합니다. 모두 잘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잘산다는 기준이 영원한 우리의 본연의 천상세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그 본연적인 나라의 기준과 상대적인 입장에서 맞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221-220)
모델의 근본
그러면 남자의 모델은 어떠한 것이냐? 또, 여자의 모델은 어떠한 것이냐?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세계를 볼 때, 자유세계를 전부 다 미국이 지도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유신론적인 세계관을 중심삼고 볼 때 민주주의 체제가 이상적이지만, 그것에는 사상이 없습니다. 반면에, 공산주의라는 것이 나와 가지고 물질을 중심삼고 사상체계를 만들어서 세계를 지배해 나왔습니다. 이래 가지고 두 세계가 서로 자기들이 이상세계의 모델이라고 주장합니다. (221-222)
모델적인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원형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이상적인 모델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볼 때 남자의 모델을 보게 되면 여자들이 몽땅 갖고 싶어하고, 여자의 모델을 보게 되면 남자들이 몽땅 갖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무엇을 중심삼고 갖고 싶어야 되느냐? 돈을 중심삼고 갖고 싶어야 되겠어요? 그렇다면 어떤 물건의 소재가 구리로 돼 있을 때 “이건 몇 푼 짜리구만” 하고 생각합니다. 소재가 은으로 돼 있느냐, 금으로 돼 있느냐, 구리로 돼 있느냐, 철로 돼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본다는 것입니다.
또 지식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초등학교를 나왔느냐, 중학교를 나왔느냐, 고등학교를 나왔느냐, 대학교를 나왔느냐, 박사가 되었느냐, 서울대학의 교수냐 하면서 따지게 됩니다. 그러니 그것도 모델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서 마음대로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력도 인간의 노력으로 차지할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노력을 벗어나고 역사의 모든 복잡다단한 환경을 벗어나서 하나의 모델을 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음이라는 존재입니다. (221-225)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된 모델
그런데 마음을 봤어요, 못 봤어요? 마음이 얼마나 작아요! 마음이 작을 때는 바늘 끝보다 더 작습니다. 그런데 크다면 얼마나 커요! 하늘땅 천 개 만 개를 갔다놔도 안 찹니다. 우주 같은 게 백 개 있어도 다 안 찹니다. 그것을 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 보따리가 얼마나 크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 가운데는 어떤 마음이 있느냐? 남자의 마음이 있고, 그 다음에는 여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마음이 같을 수 있느냐? 어때요? 같으냐, 안 같으냐? 이건 전부 다 상식으로 알아 둘 문제입니다.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이 같으냐, 안 같으냐? 사람을 보면, 그 몸뚱이는 무엇을 닮느냐 하면 마음을 닮습니다. 일반적으로 관상을 보면 그 마음을 압니다. 그게 관상에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상대적으로 닮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남자의 얼굴과 남자의 마음은 비슷하다고 하지만 여자의 얼굴과 남자의 얼굴이 비슷해요, 안 비슷해요?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르면, 여자의 마음이 닿는 곳이 여자여야 됩니다. 그런데 여자의 마음이 닿는 곳이 남자이니까 여자의 몸뚱이와 남자의 몸뚱이가 비슷해야 되고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이 같아야 할 텐데 같아요, 안 같아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안 같으냐? 그렇게 안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될 수 있느냐?
그러면 인간이 개체를 중심삼고 수양을 해 가지고 참다운 남자나 여자가 되어 보겠다고 하는 것들이 모델적인 이념이 없는 한 꿈이에요, 사실이에요? 꿈이라는 결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남자와 여자들이 영원히 자리잡아 정착해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자의 모델은 이런 것이고 여자의 모델은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론이 나와야 됩니다. 이론이 나오면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221-227)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은 다릅니다. 먹는 것도 여자의 먹는 것과 남자의 먹는 것이 다릅니다. 보는 것도 그렇고, 앉는 것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은 오래 앉아 있으면 큰일나기 때문에 궁둥이가 뾰족하게 생겼습니다. 여자는 궁둥이가 뾰족하면 큰일납니다. 너브죽죽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스의 좌석에도 남자와 여자의 둘이 앉으면 딱 맞습니다.
여자들은 시집을 가려고 해요, 안 가려고 해요? 지긋지긋하게 신물이 난 집이 시집입니다. 신집이니 얼마나 끔찍해요! ‘시즙’이 변해서 시집이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입니다. 얼마나 지긋지긋해요! 시어서 못 참을 즙이 돼 있으니까 거기서 어떻게 살아 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시고 못살 집도 내가 배겨날 수 있는 무엇이 있으면 살아 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남자애들 가운데 길거리에서 휘파람을 휙 불고 다니는 못된 녀석들이 많지요? 그래, 여자하고 남자가 평등해요? 여권주의자들이 있지요? “남자하고 여자하고 평등이야” 하면서 외쳐대는데, 나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올림픽대회에 있어서 남자하고 여자가 같은 종목에 참가해서 경쟁해 가지고 나타난 챔피언 중에서 여자가 몇 마리나 있어요? 욕을 해도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무슨 뭐 섭섭할 게 있어요?
그러니 여자가 평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다는 게 뭐예요? 모든 남자의 권위도 꺾어 버리고 무로 돌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그것이 뭐냐구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힘 앞에는 항우장사도 체면 불구하는 것입니다. 항우장사도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하면서 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평등을 말해야 되느냐? 힘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평등을 말해야 됩니다. 여자도 남자와 대등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모델형을 결정할 수 있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것은 껍질은 그만두고 내적인 각도라든가 원형을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변치 않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도 사랑이 필요하고 여자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된 남성 모델,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된 여성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 내놓더라도 인간세계에 자기들이 본뜰 수 있는 모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 지식,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변치 않는 모델의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완성된 모델은 우리의 남성 여성들이 바랄 수 있는 모델임에 틀림없습니다. 딱,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21-230)
사랑을 중심삼고 평등을 말했는데 여자가 남자를 따라가야 하겠어요,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야 하겠어요?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야 돼” 하면 정상적이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귀에 거슬리지요? 들어보라구요! 제아무리 훌륭한 여자요, 제아무리 학박사의 칭호를 가지고 천지를 주름잡는다고 해도 여자에게는 생명의 씨가 없습니다. 생명의 씨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생명의 씨는 남자에게 있습니다. 그 생명의 씨를 옮겨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생명의 씨를 완전히 이어받기 위해서는 내가 공(空)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영점의 자리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점이 되면 진공이 됩니다. 자꾸자꾸 들어가면 진공이 되지요? 고기압이 좋아요, 진공이 좋아요? 진공이 좋습니다. 왜 진공이 좋아요? 진공이 고기압을 찾아가요, 고기압이 진공을 찾아와요? 어느 것이 귀해요? 찾아오는 것이 귀해요, 찾아가는 것이 귀해요? 저기압이 되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고 난 다음에는 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게 된다면, 고기압이 자동적으로 찾아와야 됩니다.
그래서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가는 그런 행동이 뭐예요? 태풍이지요? 저기압이 고기압을 찾아가는 놀음이 태풍이에요,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가는 놀음이 태풍이에요? 어느 것이 더 당기는 힘이 커요? 고기압보다 저기압이 당기는 힘이 더 크기 때문에 끌려오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자기의 생명까지 다 주고 진공의 밑창에 찾아가면 하나님이 계십니다. 수직적인 자리의 밑창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자기보다 더 잘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천년 만년 더 주시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되겠기 때문에 하나의 구형을 갖출 수 있는 상대가 되거들랑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한계가 찰 때까지 투입하신다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십니다. 어디든지 그렇게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영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21-249)
참사랑을 투입해 가지고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참사랑을 투입하면, 그것이 몇 배로 증가되어 나갑니다. 참사랑의 힘은 작동하면 할수록 자꾸 커 가기 때문에 세계를 품고 우주를 품고 하나님까지 품을 수 있는 운동이 벌어집니다. 힘이 작용하는 외적인 역학세계가 천년 만년 계속되어도 내적인 면에 있어서 참사랑이 움직이게 된다면 외적인 소모를 지탱하고 남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별도 커 간다는 말입니다. 우주의 모든 성운도 커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확대의 결과를 찾아오는 일이 있을지라도 축소의 결과는 안 가져오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고 사는 집이 되었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영속할 수 있습니다. 영생의 논리도 그렇게 커 가는 참사랑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221-250)
하늘나라의 초소, 지옥의 초소
인생문제에 있어 제일 귀한 것,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본질은 위하는 바탕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위하는 사랑을 자기의 생명선 이상까지 위할 수 있는 사람은 성자요, 성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부생활을 하고, 아들딸이 하나되고, 가정이 딱 하나가 되어 통일되면 이 가정은 죽어서 몽땅 하늘나라의 가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가 개인구원을 원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한 남자와 여자를 지어 가지고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구원해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게 이론적입니다. 그 하나된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아들딸이 하나되어 가지고 3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할아버지는 누구냐 하면 가정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입니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대왕마마라는 것입니다. 대왕마마가 뭐예요? 하나님이 1대였고 아담이 2대였는데 3대의 손자를 못 봤거든요. 이것을 뒤집어 박아서 3대의 기준을 완성한 가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그렇게 볼 때, 자기의 할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우리 가정에 전통으로 남겨 준 것이 할아버지의 자리라는 말입니다. 아담 해와의 자리는 참부모입니다. 인류 후손들의 참조상입니다. 동시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중심이기 때문에 가정의 왕이요, 왕후입니다.
그러면 그 왕과 왕후의 아들딸은 미래의 왕이 되고 왕후도 될 수 있는 후계자입니다. 그래, 여러분한테 욕심이 있다면 뭐가 되고 싶어요?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왕이 되고 왕자가 되고 싶지요? 남자들은 다 그렇지요? 여자들도 그렇지요? 뭐가 되고 싶어요? 왕후가 되고 싶지요?
그래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할아버지의 자리는 하나님의 왕권을 우리 집안에 옮겨 준 자리요, 어머니 아버지는 만국에 벌어질 가정들을 대표하는 가정의 왕입니다. 그 다음에 아들딸은 전부 다 미래의 왕손으로서 왕권을 이어받을 왕자와 왕녀들이었더라!
그렇게 본연적인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된 사랑의 혈통을 통해 가지고 맺어질 수 있는 인류의 시조가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사랑을 통해서 사탄의 생명과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남자나 여자나 자기가 사랑하던 애인을 빼앗아 가지고 데리고 살다가 아들딸을 낳아서 데리고 찾아오게 될 때 눈이 뒤집어지겠어요, “하하하, 우리 여편네가 될 수 있었던 후보자를 빼앗아 잘 살다가 새끼를 쳐 왔으니 고맙습니다. 어서 왕림하소서” 그러겠어요? 어때요? 칼이 있으면 어디다가 찌르고 싶겠지요? 심장의 복판에 콱…! 그런 마음이 있겠지요?
하나님의 원수가 악마인데, 그 악마가 그러한 놀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탄의 피를 받은 몸뚱이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뚱이는 개인을 위주해서 삽니다. “태어나기를 나 때문에 태어났다. 사랑도 내 것이요, 돈도 내 것이요, 마음도 내 것”이라고 합니다. 즐기려고 그럽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마음도 그대를 위하여, 몸도 그대를 위하여, 환경도 그대를 위하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갈래가 여러분의 초소입니다. 하늘나라의 초소요, 지옥의 초소가 됩니다. 삼팔선의 초소와 딱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완충지대가 있습니다. 경계선에서 한쪽으로 가게 되면 하늘 편에 가게 되고, 반대쪽으로 가면 지옥 편에 가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고 하면 신의 나라에 가는 것이고, 신이 없다면 지옥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공적인 면에 서게 되면 하늘 편으로 오는 것이요, 사적인 면은 사탄 편으로 갑니다. (221-254)
구원섭리의 역사는 복귀역사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반드시 사랑은 상대를 추구하기 때문에 직단거리의 사랑이 수직을 그었다면 수평적으로도 직단거리로 사랑하니까 90각도 외에는 갈 길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참사랑도 직단거리로 가야 하기 때문에 수직에 대해서 90각도에 놓이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90각도의 수직선이 연결되면 운동이 벌어져서 돌 수 있습니다.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세계와 통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그렇게 수직선을 중심삼고 90도의 각도를 맞출 수 있는 모델적인 남성과 여성이 있다고 할 때는 천지가 그들을 중심삼고 움직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류시조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 시조로부터 태어난 아들딸의 마음은 종적인 부모의 피를 받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고 몸뚱이는 횡적인 조상의 피를 받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기 때문에 두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종적인 나와 횡적인 나의 두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두 존재가 반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되어 가지고 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서로가 반발하는 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준이 75도라든가 거꾸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똑바로 갖다 붙이지 않고는 본연적인 이상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모름으로 말미암아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요, 구원섭리의 역사입니다. 구원섭리의 역사는 복귀역사요, 복귀역사는 재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에 청사진에 따라서 다시 갖다 맞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청사진의 내용을 중심삼고 다시 갖다 맞추기 위한 수리공장이 통일교회입니다. 눈이 어떻게 되었고, 입이 어떻게 되었고, 몸이 어떻게 되었고, 어디가 고장났다는 것을 전부 다 청사진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고쳐 갈 수 있습니다.
참사랑의 모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창조해야 됩니다. 그 도면은 있지만 모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도면을 찾았기 때문에 그대로 맞춰 나가게 되면 완성된 모델적인 여성과 남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참사랑을 중심삼고 상속적인 가치를 갖지 못했습니다. 소유권을 갖지 못했습니다. 사탄이 전부 다 점령해 버렸습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상속받았던 동참권과 동거권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늘나라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 동참하고 지옥에 가서 동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완전히 잘라 버리고 180도 돌아서야 됩니다. 이것을 어디서 잃어버렸느냐 하면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정에서 장자권, 부모권, 왕권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개인적인 사랑, 부부적인 사랑, 가정적인 사랑, 종족적인 사랑, 민족적인 사랑, 국가적인 사랑, 세계적인 사랑, 천주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할 수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다시 갖다 맞춰 가지고 궤도에 올려놓아야 됩니다. 아무리 발전소가 멀더라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만 따 가지고 접속시키면 불이 켜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작동할 수 있게 수리해 놓으면 하늘나라의 사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221-260)
우리의 입장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는 완성된 남성과 여성이 되어서 서로 위해주는 참사랑과 일체되는 곳에서 무한한 행복이 생겨납니다. 여기서 태어나는 아들딸은 죄짓지 않는 아들딸이요, 믿지 않고도 천국에 직행할 수 있는 아들딸입니다. 그런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종교가 필요해요? 예수님이 필요해요? 여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가 누구야” 할 때 “하나님이지”라는 말은 그만두라구요!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아담 해와는 무엇이었겠어요? 그들이 타락을 안 했으면 뭐가 되었겠어요? 예수가 하나님이면, 그들은 하나님 중의 하나님이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력을 다 부어 가지고 지으신 거룩한 성체였는데 예수와 같았겠어요? 내가 잘났다는 목사들을 대해서 그것을 물어 보니까 한 마디도 못 하고 나가떨어져서 “아,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그 개념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그러더라구요.
본연의 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의 문 총재가 참부모의 복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장자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참왕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디서 잃어버렸느냐 하면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환원해야 될 통일교인들은 가정을 중심삼고 아담가정에서 뚫어진 구멍을 다 메우지 않고는 해방동이가 될 수 없습니다. 해방동이가 못 돼 가지고는 남북통일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방되어 남북통일을 위하여 출범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221-262)*
천일국 훈독경 제5권 15일, 원문
이상가정을 위한 결혼
날짜 : 1991. 10. 25(월)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잘살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
만약에 어떤 사람이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이오” 하고 묻게 되면, “어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야? 젊은 청년들이지” 하며 대답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직종도 있을 것이고 직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처한 입장을 생각하겠지만, 그 대답이라는 것은 간단합니다. 어떠한 사람이냐 하면 남자와 여자들이 모였습니다. ‘좋은 사람’ 하게 되면 거기도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고, ‘나쁜 사람’ 하는 데도 남자와 여자가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좋은 나라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나라는 어떠한 사람들을 갖고 있느냐? 좋은 사람들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좋은 사람들은 어떠한 종류냐? 남자와 여자라는 종류입니다. 간단합니다. 마찬가지로, 60억 인류도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영원한 영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영계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영계에 대한 전문가는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계가 어떻고 그 나라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잘 압니다. 그곳은 현대의 지성세계와 종교세계가 원하는 이상적이고 본원적인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전문이라면 전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 나라를 최후의 종착지로 소망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 나라를 표준해 가지고 맞춰야 됩니다. 물론, 젊은시대와 청춘시대 그리고 노년시대가 가는 형식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저나라에 있는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살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표준을 정하고 간다고 할 때는 지상에서 젊은 청년시대에도 잘살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장년시대도 잘사는 길, 노년시대도 잘사는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하루 하루로 말할 때 24시간의 하루를 보내는 데 있어서 아침, 점심, 저녁, 밤도 잘사는 과정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생을 두고 그렇게 잘살았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생애를 훌륭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생’ 하면 유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의 전체를 말합니다. 모두 잘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잘산다는 기준이 영원한 우리의 본연의 천상세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그 본연적인 나라의 기준과 상대적인 입장에서 맞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221-220)
현재의 지상세계와 후세의 영원한 세계를 화합시켜야 합니다. “화합시켜야 한다. 하나되게끔 가야 된다”는 말을 명제로 내게 될 때, 그렇게 화합시킬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 여러분 자신 가운데 뭐가 있느냐? 마음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몸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있는데, 몸과 마음 가운데 어떠한 것이 중심이냐 할 때는 삼척동자라도 “그거야 마음이 중심이지” 합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나라는 존재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심이 돼 있는 그 마음 앞에 몸이 마음과 하나될 수 있고, 화합할 수 있고, 언제나 떨어질 수 없게끔 마음이 가는 데 몸이 따라가면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몸을 중심삼는다고 할 때, 몸이 마음을 영원히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느냐? 그 누구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몸뚱이가 마음에 관심을 가져 가지고 “마음은 이렇게 가야 된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간섭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마음은 몸뚱이에게 “야, 이놈아! 이렇게 가야 돼. 나쁜 건 안 돼! 이렇게 가야 돼” 하고 간섭하면서 내가 잘 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걸 볼 때 조정당하는 입장이 아니라 조정하는 입장에서 마음이 중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221-222)
모델의 근본
이렇게 보면 내 자신에 있어서의 몸 마음이 인간들의 모든 몸 마음이라면 어떻게 되겠느냐? 인간은 마음이 다 있지요? 인간들의 모든 몸을 위한 하나의 중심적인 모델이 있다면 어떻겠어요? 미터(meter)도 모델이 있지요? 원래의 길이를 통해 가지고 모델이 있습니다. 저울도 그렇습니다. 저울이 함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원칙적인 하나밖에 없는 모델적인 그 저울을 중심삼고 똑같이 만들어 가지고 보편화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도 하나의 원칙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환경적인 존재들이 좋고 나쁜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귀결짓느냐? 환경에는 수많은 수가 널려 있습니다. 수많은 그 수를 본떠서 만든 저울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좋더라도 나중에는 하나의 모델로 만든 그 저울과 맞아떨어져야 “너는 그 모델과 같기 때문에 참이다” 한다는 것입니다. 모델이기 때문에 참이 되는 건 아닙니다. 모델과 같기 때문에 참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양심과 몸에도 어떤 모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도 제대로 안 해봤지요? 요즘에 매스 프로덕션(mass-production;대량생산)의 공장에 가 보게 되면 전부가 그렇습니다. 컴퓨터에 프로젝트를 집어넣으면 그냥 기계가 돌아가게 돼 가지고 신문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대량으로 나옵니다. 기계가 움직이게 되면 그냥 그대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산된 물건이 10만 개 있더라도 10만 번째 맨 끄트머리를 1번에 갖다 맞추고 1번은 10만 번째의 자리에 갖다 맞추더라도 맞아떨어집니다. 어디에 가든지 동등한 가치로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델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의 모델은 어떠한 것이냐? 또, 여자의 모델은 어떠한 것이냐?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세계를 볼 때, 자유세계를 전부 다 미국이 지도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유신론적인 세계관을 중심삼고 볼 때 민주주의 체제가 이상적이지만, 그것에는 사상이 없습니다. 반면에, 공산주의라는 것이 나와 가지고 물질을 중심삼고 사상체계를 만들어서 세계를 지배해 나왔습니다. 이래 가지고 두 세계가 서로 자기들이 이상세계의 모델이라고 주장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이 모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민주세계는 모델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모델이 되겠다는 것은 망하더라도 되겠다는 입장에서 망하기 때문에 내일의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망하게 되면 끝장입니다. 공산주의는 자연세계의 모델이고 유토피아 근원지가 공산주의라고 주장하다가 망하다 보니까 이제는 모델이 되겠다고 하는 여운도 없는 입장에서 싹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지금까지 민주세계에 있어서 이상향을 찾아가는 모델에 가깝다고 하면서 가고 있는 미국이라는 자체가 오늘날 과연 모델이 될 수 있느냐?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미국이라는 국가의 체제도 아니요, 부시 대통령 휘하에 있는 행정체제도 아니요, 사법부나 입법부의 모든 조직들도 아닙니다. 그럼, 모델이 무엇이냐? 체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미국이 강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 구성의 중요한 존재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천상세계에 가더라도 그 세계의 근본적인 구성요인이 뭐냐 할 때 천국의 환경이 아닙니다. 그 중심이 되는 내용은 무엇이냐 할 때 역시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렇게 볼 때, 모든 모델의 근본은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은 젊은 세대나 늙은 세대에 다 통하는 것입니다. (221-222)
모델적인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원형
이 땅 위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남녀노소, 유·무식을 막론하고 다 원하는 모델을 중심삼고 그것에 맞추겠다고 노력해 본 사람이 있느냐 할 때 어때요? “난 대학을 다니고 요만큼 미색이 찬란하니 남자들은 꽃 보러 오소! 봄 동산에 어떠한 향기를 풍기는 꽃보다 더 아름다우니 나비와 벌들은 모두 내 품에 날아들지” 하는 속되고 사(私)된 생각은 하지만, 인간 본연의 모델적인 미를 갖추어서 하나님까지도 내 앞에 와서 찬양하실 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해 봤어요? 그러한 모델은 그 나라의 대통령일수록 중요하게 여기고 찾아 모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큰 공장에 있어서 대량적으로 생산하는 원형적인 모델이라는 것은 그 공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자물통을 채워서 보관합니다. 그거 하나를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큰 공장의 주인일수록 모델을 사랑하게 되는데, 인간의 모델이라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더 사랑해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입장은 어떻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모델이란 것이 상처를 입을소냐, 적어질소냐, 잃어버릴소냐, 금이 갈소냐 하면서 보관하고 또 찾아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대통령을 부러워할 것 없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 가치는 영원불변하게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모델적인 남성이나 여성이 됐느냐” 할 때, “그렇습니다” 하는 여자나 남자는 손 한번 흔들어 보시지요? 그것은 누구나 다 원하지요? 그런 모델적인 인간을 평가하는 내용은 무엇이겠느냐? 남자의 모델은 “어, 나와 같이 키가 건장하고 튼튼한 통무우처럼 생겨야지”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통무우가 아니라도 그렇게 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건장하고 퉁퉁하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납작하면 안됩니다. 허리가 가늘어 가지고는 안됩니다. 앞뒤가 두둑해야 됩니다.
그러한 모델 중에서 조금이라도 흠이 가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모델 중의 왕 모델로서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뭐예요? 돈이지요? 지식이지요? 그 다음에 권력이지요? “아, 나하고 같이 공부했는데 저 사람은 계장밖에 안됐고 나는 국장이 됐어” 하면서 과시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모델적인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원형이 될 수 있느냐? 그것은 지식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그건 다 외각적인 내용은 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모델을 결성하는 내적인 가치는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이상적인 모델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볼 때 남자의 모델을 보게 되면 여자들이 몽땅 갖고 싶어하고, 여자의 모델을 보게 되면 남자들이 몽땅 갖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무엇을 중심삼고 갖고 싶어야 되느냐? 돈을 중심삼고 갖고 싶어야 되겠어요? 그렇다면 어떤 물건의 소재가 구리로 돼 있을 때 “이건 몇 푼 짜리구만” 하고 생각합니다. 소재가 은으로 돼 있느냐, 금으로 돼 있느냐, 구리로 돼 있느냐, 철로 돼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본다는 것입니다.
또 지식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초등학교를 나왔느냐, 중학교를 나왔느냐, 고등학교를 나왔느냐, 대학교를 나왔느냐, 박사가 되었느냐, 서울대학의 교수냐 하면서 따지게 됩니다. 그러니 그것도 모델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서 마음대로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력도 인간의 노력으로 차지할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노력을 벗어나고 역사의 모든 복잡다단한 환경을 벗어나서 하나의 모델을 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음이라는 존재입니다. (221-225)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된 모델
그런데 마음을 봤어요, 못 봤어요? 마음이 얼마나 작아요! 마음이 작을 때는 바늘 끝보다 더 작습니다. 그런데 크다면 얼마나 커요! 하늘땅 천 개 만 개를 갔다놔도 안 찹니다. 우주 같은 게 백 개 있어도 다 안 찹니다. 그것을 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 보따리가 얼마나 크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 가운데는 어떤 마음이 있느냐? 남자의 마음이 있고, 그 다음에는 여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마음이 같을 수 있느냐? 어때요? 같으냐, 안 같으냐? 이건 전부 다 상식으로 알아 둘 문제입니다.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이 같으냐, 안 같으냐? 사람을 보면, 그 몸뚱이는 무엇을 닮느냐 하면 마음을 닮습니다. 일반적으로 관상을 보면 그 마음을 압니다. 그게 관상에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상대적으로 닮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남자의 얼굴과 남자의 마음은 비슷하다고 하지만 여자의 얼굴과 남자의 얼굴이 비슷해요, 안 비슷해요?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르면, 여자의 마음이 닿는 곳이 여자여야 됩니다. 그런데 여자의 마음이 닿는 곳이 남자이니까 여자의 몸뚱이와 남자의 몸뚱이가 비슷해야 되고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이 같아야 할 텐데 같아요, 안 같아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안 같으냐? 그렇게 안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될 수 있느냐?
서울 번화가에 가게 되면 전부 다 왔다갔다하는데, 여자나 남자들 가운데 제일 넘버 원 여자나 남자가 하나 있으면 그 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다 대들어 박고 차고 하더라도 따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뱀장어새끼가 구멍을 빠져나가듯이 어디를 따라가든지 고단한 걸 모릅니다. 이건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부딪치는 말입니다. 그러면 고층건물에서 망원경을 끼고 그러한 참된 남자나 여자를 10년 동안 혹은 늙어 죽도록 찾는다고 해서 찾아낼 수 있어요? 아무리 그래 봤자 허사입니다. 천년을 찾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개체를 중심삼고 수양을 해 가지고 참다운 남자나 여자가 되어 보겠다고 하는 것들이 모델적인 이념이 없는 한 꿈이에요, 사실이에요? 꿈이라는 결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남자와 여자들이 영원히 자리잡아 정착해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자의 모델은 이런 것이고 여자의 모델은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론이 나와야 됩니다. 이론이 나오면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221-227)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은 다릅니다. 먹는 것도 여자의 먹는 것과 남자의 먹는 것이 다릅니다. 보는 것도 그렇고, 앉는 것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은 오래 앉아 있으면 큰일나기 때문에 궁둥이가 뾰족하게 생겼습니다. 여자는 궁둥이가 뾰족하면 큰일납니다. 너브죽죽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스의 좌석에도 남자와 여자의 둘이 앉으면 딱 맞습니다.
아무튼, 여자와 남자가 다른데 어떻게 다르냐? 남자는 올라가려고 하고 여자는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남자는 올라가려고 하는데 다 올라간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저쪽으로 올라가서 쭉 건너가려고 합니다. 나무가 있으면, 남자는 가까운 나무에서 잔나비처럼 훌훌 밟아 가지고 어떻게 해요? 다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게 뭐예요? 휙 타고 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그런 것을 꿈에도 생각을 못 합니다. 벌써 생리적으로 그렇게 생겼습니다.
여자들은 시집을 가려고 해요, 안 가려고 해요? 지긋지긋하게 신물이 난 집이 시집입니다. 신집이니 얼마나 끔찍해요! ‘시즙’이 변해서 시집이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입니다. 얼마나 지긋지긋해요! 시어서 못 참을 즙이 돼 있으니까 거기서 어떻게 살아 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시고 못살 집도 내가 배겨날 수 있는 무엇이 있으면 살아 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남자애들 가운데 길거리에서 휘파람을 휙 불고 다니는 못된 녀석들이 많지요? 그래, 여자하고 남자가 평등해요? 여권주의자들이 있지요? “남자하고 여자하고 평등이야” 하면서 외쳐대는데, 나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올림픽대회에 있어서 남자하고 여자가 같은 종목에 참가해서 경쟁해 가지고 나타난 챔피언 중에서 여자가 몇 마리나 있어요? 욕을 해도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무슨 뭐 섭섭할 게 있어요?
그러니 여자가 평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다는 게 뭐예요? 모든 남자의 권위도 꺾어 버리고 무로 돌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그것이 뭐냐구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힘 앞에는 항우장사도 체면 불구하는 것입니다. 항우장사도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하면서 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평등을 말해야 되느냐? 힘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평등을 말해야 됩니다. 여자도 남자와 대등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모델형을 결정할 수 있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것은 껍질은 그만두고 내적인 각도라든가 원형을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변치 않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도 사랑이 필요하고 여자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된 남성 모델,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된 여성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 내놓더라도 인간세계에 자기들이 본뜰 수 있는 모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 지식,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변치 않는 모델의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완성된 모델은 우리의 남성 여성들이 바랄 수 있는 모델임에 틀림없습니다. 딱,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21-230)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영생이 벌어지는 것
그러면 여러분이 그런 모델의 사랑을 찾아 봤어요? 우리 훌륭한 선생님, 무슨 미술가니 하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잘 가르쳐요? 사랑이라는 내적인 모델을 연결시키고 가르치게 될 때 거기는 세계도 들어가서 자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모델적인 사랑은 모든 것을 품고도 남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천하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안식하고 점심 한끼를 먹더라도 그 자리에 못 가면 그 옆에서 한 발이라도 들어가서 먹고 싶은 것이 인간들의 사정이요, 정서가 아니겠느냐!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이 나왔는데, 그 사랑의 종류가 몇 가지예요? 사랑의 종류는 광범위합니다. 첩의 사랑, 계모의 사랑, 종년의 사랑과 같은 너저분한 사랑들도 있지만 그런 사랑이 아니라 전통적인 사랑이 어떤가를 알아야 됩니다. 이웃 동네 아줌마의 사랑 등 별의별 사랑들이 다 있습니다. 거기도 급이 천천만 개가 있습니다. 급에는 하급 사랑, 중급 사랑, 상급 사랑, 고개 넘은 사랑, 들판으로 찾아드는 사랑 등 별의별 사랑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슨 사랑을 찾아가느냐? 이게 바로 숙제입니다. 내가 사랑을 찾아가는데 무슨 사랑을 찾아가요? 참사랑입니다. 그럼, 참사랑은 어떠한 사랑이에요? 참사랑은 어떤 것이냐? 어머니의 사랑이 한 10배쯤 되면 참사랑이 되겠어요? “어머니 사랑의 10배쯤 되는 참사랑을 원할 거야, 천배 만배 더 이상 높은 참사랑을 원할 거야” 할 때,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한 것을 원해요? 끝이 있는 걸 원해요, 끝이 없는 걸 원해요? 끝이 없는 걸 원합니다. (221-234)
사랑을 중심삼고 평등을 말했는데 여자가 남자를 따라가야 하겠어요,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야 하겠어요?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야 돼” 하면 정상적이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귀에 거슬리지요? 들어보라구요! 제아무리 훌륭한 여자요, 제아무리 학박사의 칭호를 가지고 천지를 주름잡는다고 해도 여자에게는 생명의 씨가 없습니다. 생명의 씨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생명의 씨는 남자에게 있습니다. 그 생명의 씨를 옮겨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생명의 씨를 완전히 이어받기 위해서는 내가 공(空)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영점의 자리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점이 되면 진공이 됩니다. 자꾸자꾸 들어가면 진공이 되지요? 고기압이 좋아요, 진공이 좋아요? 진공이 좋습니다. 왜 진공이 좋아요? 진공이 고기압을 찾아가요, 고기압이 진공을 찾아와요? 어느 것이 귀해요? 찾아오는 것이 귀해요, 찾아가는 것이 귀해요? 저기압이 되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고 난 다음에는 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게 된다면, 고기압이 자동적으로 찾아와야 됩니다.
그래서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가는 그런 행동이 뭐예요? 태풍이지요? 저기압이 고기압을 찾아가는 놀음이 태풍이에요,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가는 놀음이 태풍이에요? 어느 것이 더 당기는 힘이 커요? 고기압보다 저기압이 당기는 힘이 더 크기 때문에 끌려오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자기의 생명까지 다 주고 진공의 밑창에 찾아가면 하나님이 계십니다. 수직적인 자리의 밑창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자기보다 더 잘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천년 만년 더 주시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되겠기 때문에 하나의 구형을 갖출 수 있는 상대가 되거들랑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한계가 찰 때까지 투입하신다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십니다. 어디든지 그렇게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영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21-249)
참사랑을 투입해 가지고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참사랑을 투입하면, 그것이 몇 배로 증가되어 나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10년 만에 찾아와 만났는데, 자기의 백만 원짜리 물건을 주었다고 할 때 그 예물을 받은 사람은 예를 갖추기 위해서 예물을 살 때 구십만 원짜리를 사 주고 싶겠어요, 백만 원 값보다 더한 것을 사 주고 싶겠어요? 더한 것을 사 주고 싶고 보태 주고 싶은 것입니다. 참사랑은 보태야 됩니다. 운동하면 할수록 커 가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힘은 작동하면 할수록 자꾸 커 가기 때문에 세계를 품고 우주를 품고 하나님까지 품을 수 있는 운동이 벌어집니다. 힘이 작용하는 외적인 역학세계가 천년 만년 계속되어도 내적인 면에 있어서 참사랑이 움직이게 된다면 외적인 소모를 지탱하고 남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별도 커 간다는 말입니다. 우주의 모든 성운도 커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확대의 결과를 찾아오는 일이 있을지라도 축소의 결과는 안 가져오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고 사는 집이 되었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영속할 수 있습니다. 영생의 논리도 그렇게 커 가는 참사랑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221-250)
하늘나라의 초소, 지옥의 초소
인생문제에 있어 제일 귀한 것,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본질은 위하는 바탕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위하는 사랑을 자기의 생명선 이상까지 위할 수 있는 사람은 성자요, 성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부생활을 하고, 아들딸이 하나되고, 가정이 딱 하나가 되어 통일되면 이 가정은 죽어서 몽땅 하늘나라의 가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가 개인구원을 원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한 남자와 여자를 지어 가지고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구원해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게 이론적입니다. 그 하나된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아들딸이 하나되어 가지고 3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할아버지는 누구냐 하면 가정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입니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대왕마마라는 것입니다. 대왕마마가 뭐예요? 하나님이 1대였고 아담이 2대였는데 3대의 손자를 못 봤거든요. 이것을 뒤집어 박아서 3대의 기준을 완성한 가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그렇게 볼 때, 자기의 할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우리 가정에 전통으로 남겨 준 것이 할아버지의 자리라는 말입니다. 아담 해와의 자리는 참부모입니다. 인류 후손들의 참조상입니다. 동시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중심이기 때문에 가정의 왕이요, 왕후입니다.
그러면 그 왕과 왕후의 아들딸은 미래의 왕이 되고 왕후도 될 수 있는 후계자입니다. 그래, 여러분한테 욕심이 있다면 뭐가 되고 싶어요?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왕이 되고 왕자가 되고 싶지요? 남자들은 다 그렇지요? 여자들도 그렇지요? 뭐가 되고 싶어요? 왕후가 되고 싶지요?
그래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할아버지의 자리는 하나님의 왕권을 우리 집안에 옮겨 준 자리요, 어머니 아버지는 만국에 벌어질 가정들을 대표하는 가정의 왕입니다. 그 다음에 아들딸은 전부 다 미래의 왕손으로서 왕권을 이어받을 왕자와 왕녀들이었더라!
그렇게 본연적인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된 사랑의 혈통을 통해 가지고 맺어질 수 있는 인류의 시조가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사랑을 통해서 사탄의 생명과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남자나 여자나 자기가 사랑하던 애인을 빼앗아 가지고 데리고 살다가 아들딸을 낳아서 데리고 찾아오게 될 때 눈이 뒤집어지겠어요, “하하하, 우리 여편네가 될 수 있었던 후보자를 빼앗아 잘 살다가 새끼를 쳐 왔으니 고맙습니다. 어서 왕림하소서” 그러겠어요? 어때요? 칼이 있으면 어디다가 찌르고 싶겠지요? 심장의 복판에 콱…! 그런 마음이 있겠지요?
하나님의 원수가 악마인데, 그 악마가 그러한 놀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탄의 피를 받은 몸뚱이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뚱이는 개인을 위주해서 삽니다. “태어나기를 나 때문에 태어났다. 사랑도 내 것이요, 돈도 내 것이요, 마음도 내 것”이라고 합니다. 즐기려고 그럽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마음도 그대를 위하여, 몸도 그대를 위하여, 환경도 그대를 위하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갈래가 여러분의 초소입니다. 하늘나라의 초소요, 지옥의 초소가 됩니다. 삼팔선의 초소와 딱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완충지대가 있습니다. 경계선에서 한쪽으로 가게 되면 하늘 편에 가게 되고, 반대쪽으로 가면 지옥 편에 가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고 하면 신의 나라에 가는 것이고, 신이 없다면 지옥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공적인 면에 서게 되면 하늘 편으로 오는 것이요, 사적인 면은 사탄 편으로 갑니다.
사적인 인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이중인격을 좋아하는 사람도 손 들어 봐요! 다 “푸푸…!” 침을 뱉습니다. 보기 싫어서 눈을 감으려고 하고, 코를 막으려고 하고, 입을 막으려고 합니다. 거기에 사랑이 있을 수 있어요? 거기에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강제 사랑이요, 억지 사랑입니다. 타락할 때 아담, 해와, 천사장이 강제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철부지한 10대를 겁탈한 것입니다. 그 악마의 피가 내 피, 내 뼈, 내 골수를 채우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이런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본연적인 기준을 어떻게 해방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종교를 세워서 나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종교가 그걸 못 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 기준을 해방하려고 합니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들을 통해 가지고 해야 됩니다. (221-254)
구원섭리의 역사는 복귀역사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만약에 런던에 가서 공부하는 자식이 있다고 할 때, 그 아들이 편치 않다면 어머니의 마음이 어때요? 그 마음이 돌아가요, 직단거리로 가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직단거리로 갑니다. 그런 작용이기 때문에 수직과 연결되면 몽시에 자기의 자식이 운명하는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억…” 하고 소리치고 그러지요? 꿈의 세계에서 상대적인 작용을 어느 때나 체휼할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랑은 상대를 추구하기 때문에 직단거리의 사랑이 수직을 그었다면 수평적으로도 직단거리로 사랑하니까 90각도 외에는 갈 길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참사랑도 직단거리로 가야 하기 때문에 수직에 대해서 90각도에 놓이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90각도의 수직선이 연결되면 운동이 벌어져서 돌 수 있습니다.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세계와 통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그렇게 수직선을 중심삼고 90도의 각도를 맞출 수 있는 모델적인 남성과 여성이 있다고 할 때는 천지가 그들을 중심삼고 움직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류시조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 시조로부터 태어난 아들딸의 마음은 종적인 부모의 피를 받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고 몸뚱이는 횡적인 조상의 피를 받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기 때문에 두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종적인 나와 횡적인 나의 두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두 존재가 반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되어 가지고 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서로가 반발하는 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준이 75도라든가 거꾸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똑바로 갖다 붙이지 않고는 본연적인 이상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모름으로 말미암아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요, 구원섭리의 역사입니다. 구원섭리의 역사는 복귀역사요, 복귀역사는 재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에 청사진에 따라서 다시 갖다 맞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청사진의 내용을 중심삼고 다시 갖다 맞추기 위한 수리공장이 통일교회입니다. 눈이 어떻게 되었고, 입이 어떻게 되었고, 몸이 어떻게 되었고, 어디가 고장났다는 것을 전부 다 청사진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고쳐 갈 수 있습니다.
참사랑의 모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창조해야 됩니다. 그 도면은 있지만 모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도면을 찾았기 때문에 그대로 맞춰 나가게 되면 완성된 모델적인 여성과 남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참사랑을 중심삼고 상속적인 가치를 갖지 못했습니다. 소유권을 갖지 못했습니다. 사탄이 전부 다 점령해 버렸습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상속받았던 동참권과 동거권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늘나라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 동참하고 지옥에 가서 동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완전히 잘라 버리고 180도 돌아서야 됩니다. 이것을 어디서 잃어버렸느냐 하면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정에서 장자권, 부모권, 왕권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개인적인 사랑, 부부적인 사랑, 가정적인 사랑, 종족적인 사랑, 민족적인 사랑, 국가적인 사랑, 세계적인 사랑, 천주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할 수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다시 갖다 맞춰 가지고 궤도에 올려놓아야 됩니다. 아무리 발전소가 멀더라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만 따 가지고 접속시키면 불이 켜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작동할 수 있게 수리해 놓으면 하늘나라의 사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221-260)
우리의 입장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는 완성된 남성과 여성이 되어서 서로 위해주는 참사랑과 일체되는 곳에서 무한한 행복이 생겨납니다. 여기서 태어나는 아들딸은 죄짓지 않는 아들딸이요, 믿지 않고도 천국에 직행할 수 있는 아들딸입니다. 그런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종교가 필요해요? 예수님이 필요해요? 여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가 누구야” 할 때 “하나님이지”라는 말은 그만두라구요!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아담 해와는 무엇이었겠어요? 그들이 타락을 안 했으면 뭐가 되었겠어요? 예수가 하나님이면, 그들은 하나님 중의 하나님이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력을 다 부어 가지고 지으신 거룩한 성체였는데 예수와 같았겠어요? 내가 잘났다는 목사들을 대해서 그것을 물어 보니까 한 마디도 못 하고 나가떨어져서 “아,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그 개념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그러더라구요.
본연의 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의 문 총재가 참부모의 복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장자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참왕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디서 잃어버렸느냐 하면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환원해야 될 통일교인들은 가정을 중심삼고 아담가정에서 뚫어진 구멍을 다 메우지 않고는 해방동이가 될 수 없습니다. 해방동이가 못 돼 가지고는 남북통일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방되어 남북통일을 위하여 출범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221-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