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5권 13일
우리 가정(훈독본)
날짜 : 1981. 11. 15(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오늘은 축복가정의 식구들만 왔기 때문에 ‘우리 가정’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정은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는 것
여러분이 알다시피, 가정은 한 남자와 여자에 의해서 형성됩니다.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 그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래 가정의 근원은 남자면 남자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여자면 여자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멀리멀리 태초의 우리 선조, 인간시조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면 맨 종지조상(宗之祖上)인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도 자기들 스스로 이 땅 위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 이상의 것까지 연결됩니다. (115-180)
한 남자에 대해서 한 여자, 한 여자에 대해서 한 남자가 태어난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누구 때문에 태어났느냐 하면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몸의 구조 자체가 남자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좋아할 수 있게끔 태어났습니다. 여자는 씩씩하고 남성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털이 나야 되고, 수염이 나야 됩니다.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반면에, 남자는 수염이 없는 걸 좋아합니다. 자기와 닮은 것을 싫어합니다. 남자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습니다. 또, 여자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없습니다. 전부 다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웃을 때도 여자끼리 웃는 웃음은 다릅니다. 평면적인 웃음으로서 웃어도 깊지 않습니다. “헤헤헤…” 하면서 그저 흘러가는 웃음입니다. 그러나 남자를 대해서 웃을 때는 입체적으로 웃습니다.
남자들도 남자끼리 웃게 되면 씩 웃고 키득키득 웃는데, 그건 흘러가는 웃음입니다. 남자가 “껄껄껄…” 하고 웃는 것 가운데서도 여자를 대해서 웃는 것이 깊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든지 사랑을 빼놓으면 황무지가 되고 사막이 됩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만물과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통할 수 없는 경지가 있습니다. 기분 나쁠 때, 사랑의 감정이 없을 때 통하려고 하면 모든 것이 다 닫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마음이 열려 가지고 통하려고 하면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115-182)
사랑이 개재되면 모든 걸 초월할 수 있어
만일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게 무용지물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개재될 때는 그저 믿고 또 믿고 싶고, 만지면 더 만지고 싶고, 멀어질까 봐 끌어당기고 싶어합니다. 사랑은 그렇습니다. 절대로 없어서는 안됩니다. 있어도 더 있어야 되고, 좋아도 더 좋아야 되고, 말해도 더 말해야 되고, 웃어도 더 웃어야 되고, 주고받아도 더 주고받아야 됩니다. 그런 신비스러운 힘이 사랑의 세계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밤낮을 초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라는 분은 무엇을 좋아하시느냐?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고 싶어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고 싶어하십니다. (115-186)
종교들 중에서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뭐냐?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부자의 관계로 묶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가만히 생각하실 때, 인간들이 조작해 가지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면 어떻겠어요? 몸뚱이만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필요 없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아버지라고 할 때, 하나님도 그렇게 부르는 인간을 생각해 주십니다. “아버지…” 하면, 벌써 다 통합니다. 자기를 넘어섭니다. 내가 태어난 생명의 원천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할 때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 아버지 이상의 아버지를 추구한다면 그 아버지의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아무리 무뚝뚝하게 생기고 보기 싫게 생겼지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당신은 내 아버지입니다” 할 때, 하나님이 “야 이놈아…” 하시겠어요? “그거 생각해 볼만하다” 하십니다. “네 말이 근사하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종교를 통하여 절대자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발견해 가지고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물을 지을 수 있는 효의 길, 이 세계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어려운 문제를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충의 길, 선악의 싸움권에서 해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인간을 구원해 주기 위해서는 성인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길들이 전부 다 사랑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115-188)
사랑의 길은 자기를 희생하는 길
한 개인이 사랑을 표준해서 살아가는 생활에서는 한때 잘못될 수 있고, 그릇될 수 있고, 곁길로 갈 수 있더라도 모든 것이 선으로 포괄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빠진 생활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선으로 포용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 취급받게 마련입니다.
사랑의 길은 뭐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당신이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고 있소” 한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인의 도리요, 충신의 도리요, 효자의 도리요, 부부간에 있어서 취해야 할 도리들 가운데 주류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람들, 선생님이 보고 싶지요? 그거 왜 그래요? “보고 싶기는 뭐가 보고 싶어, 이 쌍것들” 하면서 욕을 해도 좋다고 하고 발길로 차도 좋다고 합니다. 그게 세상에 없는 통일교회의 비결입니다. 그저 일을 시켜먹고 욕을 하고 그래도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니까 다 미쳤다고 하지요. 그것은 본성의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115-190)
통일교회의 예술
통일교회의 가정들이 훌륭해요? 훌륭하다면 무엇 때문에 훌륭해요? 선생님을 따라오기 때문에 훌륭해요? 단순히, 선생님을 따라온다고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것은 여러분이 지닌 사랑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의 교인인 남편과 아내로서의 사랑은 그렇습니다. 남자를 볼 때 동물적인 남자로 보지 않습니다. 그저 씩씩거리며 나타날 때는 동물 같습니다. 밤에 봐도 싫고, 꿈에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씩씩거리는 남자를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누구를 위해서냐 하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고, 무엇 때문인가 하면 사랑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무는 사랑이 좋아요? 물어뜯는 사랑이 좋아요? 여자들, 대답해 봐요! 그리고 물어뜯고 질근질근 깨무는 게 좋아요, 물어뜯기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좋아요? 또 가만히 있는 것이 좋아요, “아이구…”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그런 사랑이 좋아요? 비둘기들도 사랑할 때 “구구구…” 하며 야단하는데 그것을 보고 “저놈의 비둘기들이 왜 저리 야단하나” 하겠지만, 그게 교훈입니다. 점잖은 분이 “레버런 문이 속된 이야기를 왜 하시노”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된 사람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속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속물들입니다. 터놓고 얘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좋아서 사랑하시면 아무런 소리도 안 내고 가만히 사랑하시겠어요, 소리치면서 사랑하시겠어요? 하나님이 소리를 치시면 세상천지가 까무러치겠어요, 안 까무러치겠어요? 세상천지가 다 놀아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 가지고 춤을 추시면 사랑의 공기 전체가 춤추기 때문에 우주가 그 공기 가운데 싸여 있는 한 전부 다 놀아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파도가 한번 쳐 가지고 지구성의 인간들에게까지 파문(波紋)이 번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주도 그렇고, 이 지구성도 하나님의 사랑의 파문에 한번 싸여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권력이 없어서 외로운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이루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외롭고 한스러운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용상에 앉아 가지고 언제나 평화스럽고 기쁨이 충만해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상대가 없는 세계에 무슨 기쁨이 있겠어요? (115-194)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남편을 어떻게 생각해요? 남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 중에서 제1의 성상인 플러스의 성상을 이어받은 게 남자입니다. 그것이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어 수천만 대를 거치면서 구름같이 떠돌다가 어쩌다 내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115-196)
그래서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남편을 사랑할 때 하나님을 연상합니다. 남편이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볼래야 볼 수 없는데, 우리 남편을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한테는 남자의 성품이 있는 반면에 여자의 성품도 있습니다. 하나님한테 아내와 같은 성품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남자라서 남자의 성품밖에는 모르지만, 여자를 바라볼 때 “하나님한테 저런 성격이 있다”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모양을 그릴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동화될 때 눈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합해 가지고 조화되어서 그려지는 그러한 남자와 여자의 상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자가 자기의 얼굴을 그리더라도 남편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그리면 입체성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는 여자와 남자가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닮습니다. 사랑을 빼놓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못합니다. (115-203)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게 부부
부처끼리 자식에 대해서 얘기할 때, 서로 좋은 것은 전부 다 자기를 닮았다고 합니다. 웃는 소리가 듣기 좋아도 “그거 나 닮아서 그래. 임자는 안 닮았다구” 할 것입니다. 어머니하고 나하고도 얘기할 때 내가 “아무개는 나 닮았다. 씩씩하고 운동을 잘하고 모든 면에서 전부 다 챔피언의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 닮아서 그렇지” 하면, 우리 엄마가 꼼짝을 못 합니다. 그건 나쁜 게 아닙니다. 자랑을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은 찬양의 조건이 되고 화제의 조건이 됩니다. 그렇게 세계의 인연을 전부 다 우리 가정에 끌어들여 꽃을 피우고 우리 가정에서 사랑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을 못 봤지만, 자기 남편의 얼굴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남편이 하나님을 닮고, 또 그 다음에는 누구를 닮았어요?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를 닮았느냐? 오빠를 닮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하는 동생을 닮았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닮았습니다. 그 다음에 통일교회의 문 선생을 닮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대표해 가지고 나를 관리하고, 나를 지켜 주고, 나의 주인으로 등장한 남편은 아버지보다도, 오빠보다도, 동생보다도, 선생님보다도, 나랏님보다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제일 가깝습니다. (115-204)
그러면 여러분이 남편의 앞을 지나갈 때 어떤 나라의 왕 앞을 지나가듯이 엄숙하게 한번 걸어 봤어요? 나랏님 앞에 정성을 다 해 가지고 천년 공을 들인 선물을 갖다 바치듯이 엄숙하게 사랑하는 남편의 앞에 갖다 바쳐 봤어요? 자기를 낳아서 길러 주기 위해서 온갖 수고를 개의치 않고 모든 걸 바친 아버지 이상으로 남편을 위해 봤어요?
세상의 어떤 여자들은 자기의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몸을 파는 여자들도 있고 자기의 오빠를 구하기 위해서 죽음의 자리에 가는 여자도 있는데, 여러분도 남편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오빠와 동생을 위하는 이상으로 위해 봤어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사랑해요? 그렇다면 선생님을 위하는 이상으로 남편을 위해 봤어요? 여러분이 결혼했으면 선생님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남편을 사랑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오시면 드리겠다고 닭이나 무슨 선물을 정성들여 싸 놓는 그 마음 이상으로 자기의 남편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 봤느냐는 것입니다. (115-206)
우리는 다릅니다. 일생은 간단한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 저 사랑의 이상세계에서 부부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의 박자에 맞는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공기가 충만한 그 세계에 가서 그 모든 사랑의 공기에 상충 없이 백 퍼센트 흡수되는 부부가 될 때, 그 부부에게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영광스런 사랑의 후광이 나타납니다. 그 부부에게서 하나님이 찬양하실 수 있는 영광의 후광, 사랑의 후광이 생겨납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이 따라다니겠다고 하시고, 그 가운데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럴 수 있는 이상적인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지상세계에서 훈련해 가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의 생활입니다.
이제까지 여자들에게 얘기했지만, 남자들은 그 바람에 다 교육받았지요? 남자들은 그 반대의 입장에서, 여자들에게 한 말의 반대적인 입장에서 그런 놀음을 하면 됩니다. 남자들은 매일같이 거리에 나가 다니면서 자기의 여편네와 왔다갔다하는 여자들을 비교해요, 안 해요? 하루에 몇 번씩이나 그래요? 솔직히 얘기해 보라구요! 몇 여자들이나 되느냐 하면 평균 열 명은 넘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자라는 동물은 허우대가 좋고, 스타일이 좋고, 옷도 갖추어 입은 그런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것이 나쁜 마음이 아닙니다. 그 모든 차림새라든가 걸음걸이가 전부 다 멋진데 얼굴까지 잘생겼으면 “아…” 하게 됩니다. 그때에 “아, 우리 여편네는 특징이 있다. 어떤 여자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상적인 인격을 갖고 있다. 눈매를 보더라도 그 누가 따를 수 없고, 코는 납작하지만 웃을 때 코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는 그 금이 아름답고, 웃으면 아름다운 그 입 모양을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인상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그런 면을 알려면 남자는 일부러라도 아내한테서 찾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을 탑니다.
그렇게 남편이 자기를 잊지 못할 수 있는 인연을 지니고 있어야 되는데, 그것을 갖고 있어요? 수많은 여자들, 억천만 여자들과 비교해 가지고도 못하지 않을 수 있는 깊은 정적인 내용을 가질 수 있게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여자들도 그렇습니다. 여자들이 나가 다니게 될 때, 잘난 남자들이 있으면 자기의 남편과 비교합니다. 안 그렇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건 본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15-211)
모두 다 결혼할 때 잘난 사람을 얻으려고 하지만 못난 사람이라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하늘이 협조합니다. 아무리 아리땁더라도 “내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 일생을 역사적인 하나의 무늬로 놓고 가겠다” 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자에게 역사합니다. 하늘은 반드시 그러한 터전을 찾습니다.
남편에게는 하늘땅과 일체화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이 있습니다. 땅에서는 모르지만, 영계에서는 반드시 그런 가치의 기준을 알아 가지고 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남편은 역사상에 나타난 어떤 성인보다도 더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게 남편입니다. 하늘이 그렇게 봅니다.
예수님이 말하기를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지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난 후에는 남편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사랑을 받고 난 다음에 “야, 너 이제 나를 사랑하면 안 돼. 나보다도 네 남편을 더 사랑해야 돼” 하는 교훈의 말을 하지 않는다면 하늘의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그 말은 무엇이냐? 어차피 최고의 훌륭한 남편과 아내를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필요했고 하나님의 구원섭리와 종교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 말은 자기의 남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야 되고 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시집가는 딸에게 남편을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더 사랑하게끔 교육하는 부모가 옳은 부모이지 “야. 그놈의 자식은 틀려먹었다. 차 버려라” 그러면 순리에 어긋납니다. 그건 교훈이 아니라 망설(亡說)입니다. (115-214)
가정적인 왕권의 전통을 남겨야
지금까지 천국을 이루자고 나선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천국을 이루느냐? 나라를 통해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을 통해서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 가정은 선생님이 언제나 가서 살고 싶은 가정이요, 하나님이 살고 싶어하시는 가정입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면 주권자도 살고 싶어하는 가정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주인은 그 가정에 있어서 왕입니다. 가정의 왕권을 지니고 사는 것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인은 뭐냐 하면 그 가정의 여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녀들을 왕의 자리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만물을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24시간 사랑으로 키워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이 싸운다는 것은 뭐냐 하면, 왕이 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하늘이 세워 준 기준 앞에 가정적인 왕권의 전통을 남겨야 할 책임이 남자와 여자에게 있는 것이요, 부부에게 있는 것이요,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115-216)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하여 삽니다. 그래야 왕권의 권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부모의 자격이 됩니다. 그것이 확대되어 가지고 나라의 왕권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는 데 있어서는 수많은 가정들을 거느려 가지고 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왕권을 중심삼고 서로가 사랑하는 것은 결국 만민을 사랑하는 것이요, 백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확대되면 세계적인 대표의 자리에 나갑니다. 세계적인 대표가 되어 가지고 지상의 만민을 아들딸처럼 국경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세계의 왕권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일족만을 위하는 왕권의 자리가 아닙니다. 만민을 위하는 왕권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상세계까지 연결됩니다.
그 세계의 왕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그 천상세계의 왕권의 자리, 영원한 세계의 왕권의 자리에 도달할 때까지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인류를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 왕국의 왕과 왕후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임재하셔 가지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왕권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반을 연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사랑의 이상권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나라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그렇습니다. 가정을 희생시켜서 나라를 위해야 됩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별의별 일이 있더라도 선생님은 그런 길을 갑니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하나님을 우주적인 왕권을 지니신 주권자로 생각하고, 그 왕권의 주권자 앞에 도달해서 왕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계자로 양성하는 제1의 훈련도장이 가정입니다. 나라는 제2훈련장입니다. 세계는 제3훈련장이고, 영계는 제4훈련장입니다.
여러분은 하늘나라의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가정이상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세계를 향해 갑니다. 그러면서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충효의 도리를 세우고 그런 왕권을 대표할 수 있는 주체자의 실권을 지니는 입장에 서지 못했다면 그런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인의 도리를 다하게 될 때 하늘나라의 충신이 되든가, 하늘나라의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이 왜 귀하냐? 아무리 가정이 제한된 한계권 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만 갖추면 그러한 자리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과 동급의 자리, 세계를 다스리는 왕과 동권의 자리,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동권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특권이 사랑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5-218)
만민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욕망
오늘 제목이 ‘우리 가정’인데, 통일교회의 가정은 이렇게 엄숙하고 역사적인 가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그러한 기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서 행복할 수 있는 가정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115-220)*
우리 가정
날짜 : 1981. 11. 15(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오늘은 축복가정의 식구들만 왔기 때문에 ‘우리 가정’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정은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는 것
여러분이 알다시피, 가정은 한 남자와 여자에 의해서 형성됩니다.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 그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래 가정의 근원은 남자면 남자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여자면 여자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멀리멀리 태초의 우리 선조, 인간시조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면 맨 종지조상(宗之祖上)인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도 자기들 스스로 이 땅 위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 이상의 것까지 연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신이 있다면 그 신으로부터 우리 인간은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물건으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종으로 부린다던가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지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의 실체라고 했는데, 그 실체의 내용이 무엇이냐? 사랑을 중심삼은 자녀의 입장에서 한 남자와 여자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상을 중심삼은 사랑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사랑도 영원합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남자면 남자가 제아무리 훌륭한 남자라도 그 훌륭한 남자의 마음에 불타는 사랑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상대권, 어떤 대상이 있어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느냐? 하나님이 창조의 무슨 묘미를 느껴 가지고 이것저것을 보고 싶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짓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피조만물을 지으신 것은 사랑의 대상을 통해서 기쁨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의 물건을 지으신 것도 하나님 자신한테 그것이 필요해서 지었다기보다도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통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빼놓게 된다면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존재의 의의가 없어지게 됩니다. (115-180)
인간은 만유의 사랑의 표상체로서 등대와 같이 빛을 비춰 줄 수 있는 중심으로 나타난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소위 사람입니다. ‘사람’ 하면,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서 먹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출세를 하기 위해서 말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하고, 산다고 보지만 그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그 가운데서 사랑을 빼 버리면 모든 것이 무상한 것입니다.
내가 늘 노력하는 것도 사랑을 빛내기 위해서입니다. 아내의 입장에 있으면 남편을 중심삼고 영광스러운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귀한 것이냐! 그 아내가 아무리 비참하고 어려운 자리에 있더라도 빛나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그 자리는 영광의 역사로 남아집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자리에 대해서 숙연해집니다. 모든 존재물이 머리를 숙입니다. 남편이면 남편이 어려운 일을 행하는 것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한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모두 다 머리를 숙여 순응하고 찬양하고 싶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에 대해서 한 여자, 한 여자에 대해서 한 남자가 태어난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누구 때문에 태어났느냐 하면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몸의 구조 자체가 남자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좋아할 수 있게끔 태어났습니다. 여자는 씩씩하고 남성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털이 나야 되고, 수염이 나야 됩니다.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반면에, 남자는 수염이 없는 걸 좋아합니다. 자기와 닮은 것을 싫어합니다. 남자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습니다. 또, 여자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없습니다. 전부 다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웃을 때도 여자끼리 웃는 웃음은 다릅니다. 평면적인 웃음으로서 웃어도 깊지 않습니다. “헤헤헤…” 하면서 그저 흘러가는 웃음입니다. 그러나 남자를 대해서 웃을 때는 입체적으로 웃습니다.
남자들도 남자끼리 웃게 되면 씩 웃고 키득키득 웃는데, 그건 흘러가는 웃음입니다. 남자가 “껄껄껄…” 하고 웃는 것 가운데서도 여자를 대해서 웃는 것이 깊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든지 사랑을 빼놓으면 황무지가 되고 사막이 됩니다.
예를 들어, 동산에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고 “아, 달이 좋다” 하는 감상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합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저 달이 좋지요” 하면서 그 느낌을 얘기했을 때, 상대가 “좋고 말구” 하고 한 마디를 해주면 모든 게 좋은 점으로 꽉 채워집니다. 그런데 여자들끼리 “아, 달이 좋지요” 할 때, “좋고 말고” 할 때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미묘한 것, 사랑이라는 것은 신기한 것, 사랑이라는 것은 조화로운 것이고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랑은 먹는 것보다 좋은 것이요, 노는 것보다 좋은 것이요, 쉬는 것보다 좋은 것이요, 노래하고 뛰는 것보다 좋은 것이요, 싸우는 것보다 좋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세계가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지남석같이 작용하고 있는데, 그 작용이 전부 다 무엇을 향하느냐? 전부 다 사랑을 향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천지의 모든 만물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만물과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통할 수 없는 경지가 있습니다. 기분 나쁠 때, 사랑의 감정이 없을 때 통하려고 하면 모든 것이 다 닫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마음이 열려 가지고 통하려고 하면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115-182)
사랑이 개재되면 모든 걸 초월할 수 있어
만일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게 무용지물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개재될 때는 그저 믿고 또 믿고 싶고, 만지면 더 만지고 싶고, 멀어질까 봐 끌어당기고 싶어합니다. 사랑은 그렇습니다. 절대로 없어서는 안됩니다. 있어도 더 있어야 되고, 좋아도 더 좋아야 되고, 말해도 더 말해야 되고, 웃어도 더 웃어야 되고, 주고받아도 더 주고받아야 됩니다. 그런 신비스러운 힘이 사랑의 세계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밤낮을 초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라는 분은 무엇을 좋아하시느냐?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시느냐? 하나님은 눈으로 무엇을 보고 싶어하시고, 귀로써 무엇을 듣고 싶어하시고, 코로써 무슨 냄새를 맡고 싶어하시고, 입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시고, 손으로 무엇을 만지고 싶어하시느냐?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고 싶어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세계는 어떤 세계냐? 그곳은 사랑을 위한 요소들로 갖추어진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공기가 있을 때, 그 공기는 어떤 공기냐? 사랑의 공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숨쉬는 것은 일반 공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는 사랑의 공기가 충만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코, 사랑의 눈, 사랑의 입, 사랑의 귀, 사랑의 촉감을 안 가진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아무리 갖다 놔도 소용없습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기구(氣球)에 수소를 집어넣으면 천천히 쓰윽 올라갑니다. 그런데 올라가기는 하지만 얼마나 올라가겠어요? 맨 처음에 올라갈 때는 무한정으로 올라갈 것 같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의 무게와 균형이 취해지는 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것과 같은 동류(同類)의 공기권 내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 많은 사람은 무거워서 내려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이라는 곳은 무거운 것들이 모여서 부딪치는 곳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15-186)
종교들 중에서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뭐냐?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부자의 관계로 묶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가만히 생각하실 때, 인간들이 조작해 가지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면 어떻겠어요? 몸뚱이만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필요 없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아버지라고 할 때, 하나님도 그렇게 부르는 인간을 생각해 주십니다. “아버지…” 하면, 벌써 다 통합니다. 자기를 넘어섭니다. 내가 태어난 생명의 원천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자입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나를 빼 버릴 수 없습니다. 부모의 제일 귀한 자리에 동참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있는 제일 귀한 것을 나눠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죽을 때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상속해 줍니다. 왜 자식한테 상속해 주느냐? 남에게 상속해 주지 왜 자식한테 상속해 주는 거예요? 사랑에 동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할 때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 아버지 이상의 아버지를 추구한다면 그 아버지의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아무리 무뚝뚝하게 생기고 보기 싫게 생겼지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당신은 내 아버지입니다” 할 때, 하나님이 “야 이놈아…” 하시겠어요? “그거 생각해 볼만하다” 하십니다. “네 말이 근사하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종교를 통하여 절대자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발견해 가지고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물을 지을 수 있는 효의 길, 이 세계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어려운 문제를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충의 길, 선악의 싸움권에서 해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인간을 구원해 주기 위해서는 성인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길들이 전부 다 사랑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효자가 뭐예요, 효자가? 어머니가 배고프다고 밥 갖다 주는 게 효자가 아닙니다. 유교의 풍습에는 매일같이 아침마다 부모한테 인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할 때 보고 싶어서 해야지 할 수 없이 인사하는 것은 효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사 가운데 사랑이 있어야 선으로 수습됩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빼놓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선으로 수습되는 게 아니라 악으로 수습됩니다. 가식이 됩니다. 가식은 악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남자로 태어나서 살게 될 때, 내가 남자로 태어나 일생을 사는 데 있어서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참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할 때, 그것은 우선 선으로 취급받습니다. 참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할 때, 거기에 나타나는 형식이나 내용은 전부 다 선의 권내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시장 같은 데 가 보게 되면, 옛날에 피난 때는 말이에요, 평안도 혹은 함경도 여자들이 물건을 팔고 그랬습니다. 드세었다구요. “저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 사느냐? 먹기 위해서 저렇게 드세고, 저렇게 악착같이 저러느냐” 할 때, “그렇다” 하면 “저게 먹기 위해서 저러는구나” 했습니다. 그렇지만 열 명이 넘는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 한푼도 깎아 주지 않고 드세고 악착같이 장사한다고 했을 때는 얼마든지 용납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거기서 속았더라도 용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이 돼지처럼 잘먹고 잘입기 위해서 그랬다면 “저놈의 쌍것…”이라는 욕을 들었을 것입니다. (115-188)
사랑의 길은 자기를 희생하는 길
한 개인이 사랑을 표준해서 살아가는 생활에서는 한때 잘못될 수 있고, 그릇될 수 있고, 곁길로 갈 수 있더라도 모든 것이 선으로 포괄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빠진 생활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선으로 포용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 취급받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라는 것은 뭐냐? 사랑의 방향을 중심삼고 추구해 나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어떠한 단체에 관심을 가지시겠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사랑을 중심삼고 천년 만년 가려고 하는 단체에 대해서 관심을 안 가지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종교를 믿으면 하나님의 가호 아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타당한 말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관심을 갖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의 악과 타협해 가지고 파멸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길은 뭐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당신이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고 있소” 한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인의 도리요, 충신의 도리요, 효자의 도리요, 부부간에 있어서 취해야 할 도리들 가운데 주류입니다.
그 주류의 흐름은 작지만 물과 같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세계뿐만 아니라 우주와 더불어 영원히 흐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 흐름을 환영하지 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흐름이 자기를 거쳐서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저 산골에 있더라도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고 “아, 물줄기가 산등성이에 있는 우리 집을 통해서 흘러가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높은 곳이 있더라도 그곳을 넘어와 주기를 바라고 지나가 주기를 바라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람들, 선생님이 보고 싶지요? 그거 왜 그래요? “보고 싶기는 뭐가 보고 싶어, 이 쌍것들” 하면서 욕을 해도 좋다고 하고 발길로 차도 좋다고 합니다. 그게 세상에 없는 통일교회의 비결입니다. 그저 일을 시켜먹고 욕을 하고 그래도 눈물을 철철 홀리면서 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니까 다 미쳤다고 하지요. 그것은 본성의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115-190)
통일교회의 예술
‘우리 가정’이라고 했는데, 통일교회의 가정들이 훌륭해요? 통일교회의 가정들이 훌륭해요, 안 훌륭해요? 실질적인 답변에 들어가자구요! 훌륭하다면 무엇 때문에 훌륭해요? 선생님을 따라오기 때문에 훌륭해요? 단순히, 선생님을 따라온다고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것은 여러분이 지닌 사랑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의 교인인 남편과 아내로서의 사랑은 그렇습니다. 남자를 볼 때 동물적인 남자로 보지 않습니다. 그저 씩씩거리며 나타날 때는 동물 같습니다. 밤에 봐도 싫고, 꿈에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씩씩거리는 남자를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누구를 위해서냐 하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고, 무엇 때문인가 하면 사랑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무는 사랑이 좋아요? 물어뜯는 사랑이 좋아요? 여자들, 대답해 봐요! 그리고 물어뜯고 질근질근 깨무는 게 좋아요, 물어뜯기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좋아요? 또 가만히 있는 것이 좋아요, “아이구…”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그런 사랑이 좋아요? 비둘기들도 사랑할 때 “구구구…” 하며 야단하는데 그것을 보고 “저놈의 비둘기들이 왜 저리 야단하나” 하겠지만, 그게 교훈입니다. 점잖은 분이 “레버런 문이 속된 이야기를 왜 하시노”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된 사람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속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속물들입니다. 터놓고 얘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좋아서 사랑하시면 아무런 소리도 안 내고 가만히 사랑하시겠어요, 소리치면서 사랑하시겠어요? 하나님이 소리를 치시면 세상천지가 까무러치겠어요, 안 까무러치겠어요? 세상천지가 다 놀아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 가지고 춤을 추시면 사랑의 공기 전체가 춤추기 때문에 우주가 그 공기 가운데 싸여 있는 한 전부 다 놀아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파도가 한번 쳐 가지고 지구성의 인간들에게까지 파문(波紋)이 번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백 퍼센트 선의 입장에서 박자에 맞춰 파문을 일으켰다면 그 파문은 영속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요한 못에 돌을 딱 던지면서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한테 “야, 이놈아! 너 움직이면 안 돼” 하고 아무리 명령하더라도 파문을 따라서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주도 그렇고, 이 지구성도 하나님의 사랑의 파문에 한번 싸여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권력이 없어서 외로운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이루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외롭고 한스러운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용상에 앉아 가지고 언제나 평화스럽고 기쁨이 충만해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상대가 없는 세계에 무슨 기쁨이 있겠어요? (115-194)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남편을 어떻게 생각해요? 남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 중에서 제1의 성상인 플러스의 성상을 이어받은 게 남자입니다. 그것이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어 수천만 대를 거치면서 구름같이 떠돌다가 어쩌다 내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물이 수소와 산소가 합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산소라면 수소라는 분자가 있어야 물과 같이 됩니다. 물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는 산소만 가지고는 안되는데, 수소라는 존재가 돌고 돌다가 어쩌다 내 이마 앞에 딱 와서 붙은 것입니다.
그 수소가 변소통에서 증발된 수소라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그렇지만 산소가 생각하기를 “나랏님의 아침 조반상에서 떠오른 수소가 되어서 여기에 왔으면 좋을 텐데 변소간의 수소야? 푸…” 했다가는 영원히 물처럼 되지 못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변소간의 수소든 뭐든 좋아해야 됩니다. (115-196)
그래서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남편을 사랑할 때 하나님을 연상합니다. 남편이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볼래야 볼 수 없는데, 우리 남편을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한테는 남자의 성품이 있는 반면에 여자의 성품도 있습니다. 하나님한테 아내와 같은 성품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남자라서 남자의 성품밖에는 모르지만, 여자를 바라볼 때 “하나님한테 저런 성격이 있다”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모양을 그릴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동화될 때 눈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합해 가지고 조화되어서 그려지는 그러한 남자와 여자의 상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자가 젖을 자기의 남편한테 갖다가 한번 붙여 봐요! 그렇게 젖을 갖다 붙여 놓고 조그만 자기의 손도 갖다 붙여 보라는 것입니다. 얼굴은 남편의 얼굴인데 자기의 눈을 착 붙이고 코도 갖다 붙여 가지고 조화시켜서 하나의 작품을 그려 보라구요! 그걸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이제 남자가 그림을 그리되 자기의 얼굴에다가 여편네의 손을 그려 넣고, 여편네의 발을 그려 넣고, 여편네의 궁둥이를 그려 넣고 난 다음에 쓱 한번 생각해 봐요! 신이 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또, 남편이 생기기는 드세게 생겼지만 자기의 얼굴에 남편을 그려서 갖다 맞추는 것입니다. 얼굴은 자기의 얼굴인데 모가지와 등살은 남편의 목과 등살이요, 가슴도 남편의 가슴, 손도 남편의 손으로 한번 쓱 그려보십시오! 그 이상 흥미 있는 게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의 예술은 그런 면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양의 예술을 보게 되면, 여자의 몸뚱이를 그렸는데 거기에 남자를 합해 가지고 화합된 것을 쓰윽 그린 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그리더라도 남편의 눈을 생각하면서 여자 눈을 먼저 그리되 조그만 눈이면 큰 눈을 그림자와 같이 쓱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자기의 얼굴을 그리더라도 남편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그리면 입체성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는 여자와 남자가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닮습니다. 사랑을 빼놓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못합니다. (115-203)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게 부부
부처끼리 자식에 대해서 얘기할 때, 서로 좋은 것은 전부 다 자기를 닮았다고 합니다. 웃는 소리가 듣기 좋아도 “그거 나 닮아서 그래. 임자는 안 닮았다구” 할 것입니다. 어머니하고 나하고도 얘기할 때 내가 “아무개는 나 닮았다. 씩씩하고 운동을 잘하고 모든 면에서 전부 다 챔피언의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 닮아서 그렇지” 하면, 우리 엄마가 꼼짝을 못 합니다. 그건 나쁜 게 아닙니다. 자랑을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은 찬양의 조건이 되고 화제의 조건이 됩니다. 그렇게 세계의 인연을 전부 다 우리 가정에 끌어들여 꽃을 피우고 우리 가정에서 사랑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을 못 봤지만, 자기 남편의 얼굴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얼마나 닮았느냐? 우선, 눈이 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도 깜박깜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코도 오똑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코도 우리 남편의 코와 같이 돋우어져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귀가 거꾸로 생겼겠어요? 귀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입은 어때요? 하나님의 입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손도 닮았습니다. 걸어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워서 허덕이는 여자 앞에 많은 남자들 가운데서 한 남자가 내 남편이 되기 위하여 나타났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하나님을 닮고, 또 그 다음에는 누구를 닮았어요?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를 닮았느냐? 오빠를 닮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하는 동생을 닮았습니다. 씩씩한 동생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닮았습니다. 그 다음에 통일교회의 문 선생을 닮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대표해 가지고 나를 관리하고, 나를 지켜 주고, 나의 주인으로 등장한 남편은 아빠보다도, 오빠보다도, 동생보다도, 선생님보다도, 나랏님보다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제일 가깝습니다. (115-204)
그러면 여러분이 남편의 앞을 지나갈 때 어떤 나라의 왕 앞을 지나가듯이 엄숙하게 한번 걸어 봤어요? 나랏님 앞에 정성을 다 해 가지고 천년 공을 들인 선물을 갖다 바치듯이 엄숙하게 사랑하는 남편의 앞에 갖다 바쳐 봤어요? 자기를 낳아서 길러 주기 위해서 온갖 수고를 개의치 않고 모든 걸 바친 아버지 이상으로 남편을 위해 봤어요?
세상의 어떤 여자들은 자기의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몸을 파는 여자들도 있고 자기의 오빠를 구하기 위해서 죽음의 자리에 가는 여자도 있는데, 여러분도 남편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오빠와 동생을 위하는 이상으로 위해 봤어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사랑해요? 그렇다면 선생님을 위하는 이상으로 남편을 위해 봤어요? 여러분이 결혼했으면 선생님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남편을 사랑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오시면 드리겠다고 닭이나 무슨 선물을 정성들여 싸 놓는 그 마음 이상으로 자기의 남편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 봤느냐는 것입니다. (115-206)
우리는 다릅니다. 일생은 간단한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 저 사랑의 이상세계에서 부부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의 박자에 맞는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공기가 충만한 그 세계에 가서 그 모든 사랑의 공기에 상충 없이 백 퍼센트 흡수되는 부부가 될 때, 그 부부에게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영광스런 사랑의 후광이 나타납니다. 그 부부에게서 하나님이 찬양하실 수 있는 영광의 후광, 사랑의 후광이 생겨납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이 따라다니겠다고 하시고, 그 가운데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럴 수 있는 이상적인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지상세계에서 훈련해 가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의 생활입니다.
이제까지 여자들에게 얘기했지만, 남자들은 그 바람에 다 교육받았지요? 남자들은 그 반대의 입장에서, 여자들에게 한 말의 반대적인 입장에서 그런 놀음을 하면 됩니다. 남자들은 매일같이 거리에 나가 다니면서 자기의 여편네와 왔다갔다하는 여자들을 비교해요, 안 해요? 하루에 몇 번씩이나 그래요? 솔직히 얘기해 보라구요! 몇 여자들이나 되느냐 하면 평균 열 명은 넘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자라는 동물은 허우대가 좋고, 스타일이 좋고, 옷도 갖추어 입은 그런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것이 나쁜 마음이 아닙니다. 그 모든 차림새라든가 걸음걸이가 전부 다 멋진데 얼굴까지 잘생겼으면 “아…” 하게 됩니다. 그때에 “아, 우리 여편네는 특징이 있다. 어떤 여자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상적인 인격을 갖고 있다. 눈매를 보더라도 그 누가 따를 수 없고, 코는 납작하지만 웃을 때 코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는 그 금이 아름답고, 웃으면 아름다운 그 입 모양을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인상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그런 면을 알려면 남자는 일부러라도 아내한테서 찾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을 탑니다.
서울이면 서울의 장안에 있는 여자들을 하루에 수백 명 바라보는데 자기의 여편네하고 전부 다 비교합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자기의 남편이 수많은 여자들을 보더라도 하나에서 백까지 자기와 비교해 가지고 다 거부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여왕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생각할 때 “나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것을 생각해 보나, 나를 위해주는 것을 생각해 보나 내 여편네가 최고다. 저 여자는 내 여편네보다 못하다” 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어려운 사정이 있지만, 내 여편네는 정성으로 나를 대한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남편이 자기를 잊지 못할 수 있는 인연을 지니고 있어야 되는데, 그것을 갖고 있어요? 수많은 여자들, 억천만 여자들과 비교해 가지고도 못하지 않을 수 있는 깊은 정적인 내용을 가질 수 있게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여자들도 그렇습니다. 여자들이 나가 다니게 될 때, 잘난 남자들이 있으면 자기의 남편과 비교합니다. 안 그렇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건 본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15-211)
천륜이 통과할 수 있는 다리
그런 모든 환경에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영광스럽게 넘어설 수 있는 깊은 사랑의 그 무엇, 각자의 비밀창고를 가져야 됩니다. 나만이 열 수 있고, 그대만이 열 수 있는 그러한 창고를 만들어야 돼요.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로가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싸움하거나 말다툼하고 나서는 말이에요, 어느 쪽이든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빌면서 천년 한을 가지고 잘못했다고 할 때는 그러한 자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적인 가정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고향을 향해서 직행할 수 있고 날아갈 수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 통일교회의 남자들은 자기의 아내에 대해서 일기를 쓰라구요! 그리고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자기의 남편에 대한 일기를 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보고할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남편과 아내가 되어서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못하면, 그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만난 것이 어쩌다가 만난 게 아닙니다. 이것은 개인의 인연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의 인연만이 아니라 우주사적인 인연이 따라다닙니다. 4천만이 넘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 가운데서 저 사람을 내가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놀라운 기적임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 일대에 있어서는 나에게 불행할는지 모르지만 후대를 통해서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후손을 남기기 위한 뜻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좋아하던 아무개를 만났으면 1대, 2대, 10대에 가서는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의 후손이 생겨날지도 모르지만, 하늘이 택해 준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는 몇 대 후에 온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성인이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다리의 모양이 어떻든, 징검다리의 모양이 어떻든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건너가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자기의 혈족을 통해서 미래의 크나큰 우주사적인 성취의 한 날, 천륜의 크나큰 성취의 한 날을 위해서 부부가 다리로 놓아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자리에 부부는 굳건히 서 가지고 천륜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하늘의 터전이 되기를 바라는 놀라운 부부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115-212)
모두 다 결혼할 때 잘난 사람을 얻으려고 하지만 못난 사람이라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하늘이 협조합니다. 아무리 아리땁더라도 “내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 일생을 역사적인 하나의 무늬로 놓고 가겠다” 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자에게 역사합니다. 하늘은 반드시 그러한 터전을 찾습니다.
남편에게는 하늘땅과 일체화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이 있습니다. 땅에서는 모르지만, 영계에서는 반드시 그런 가치의 기준을 알아 가지고 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남편은 역사상에 나타난 어떤 성인보다도 더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게 남편입니다. 하늘이 그렇게 봅니다.
예수님이 말하기를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지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난 후에는 남편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사랑을 받고 난 다음에 “야, 너 이제 나를 사랑하면 안 돼. 나보다도 네 남편을 더 사랑해야 돼” 하는 교훈의 말을 하지 않는다면 하늘의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그 말은 무엇이냐? 어차피 최고의 훌륭한 남편과 아내를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필요했고 하나님의 구원섭리와 종교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 말은 자기의 남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야 되고 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시집가는 딸에게 남편을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더 사랑하게끔 교육하는 부모가 옳은 부모이지 “야. 그놈의 자식은 틀려먹었다. 차 버려라” 그러면 순리에 어긋납니다. 그건 교훈이 아니라 망설(亡說)입니다. (115-214)
가정적인 왕권의 전통을 남겨야
지금까지 천국을 이루자고 나선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천국을 이루느냐? 나라를 통해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을 통해서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 가정은 선생님이 언제나 가서 살고 싶은 가정이요, 하나님이 살고 싶어하시는 가정입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면 주권자도 살고 싶어하는 가정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주인은 그 가정에 있어서 왕입니다. 가정의 왕권을 지니고 사는 것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인은 뭐냐 하면 그 가정의 여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녀들을 왕의 자리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만물을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24시간 사랑으로 키워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이 싸운다는 것은 뭐냐 하면, 왕이 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하늘이 세워 준 기준 앞에 가정적인 왕권의 전통을 남겨야 할 책임이 남자와 여자에게 있는 것이요, 부부에게 있는 것이요,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115-216)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하여 삽니다. 그래야 왕권의 권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부모의 자격이 됩니다. 그것이 확대되어 가지고 나라의 왕권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는 데 있어서는 수많은 가정들을 거느려 가지고 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왕권을 중심삼고 서로가 사랑하는 것은 결국 만민을 사랑하는 것이요, 백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확대되면 세계적인 대표의 자리에 나갑니다. 세계적인 대표가 되어 가지고 지상의 만민을 아들딸처럼 국경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세계의 왕권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일족만을 위하는 왕권의 자리가 아닙니다. 만민을 위하는 왕권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상세계까지 연결됩니다.
그 세계의 왕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그 천상세계의 왕권의 자리, 영원한 세계의 왕권의 자리에 도달할 때까지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인류를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 왕국의 왕과 왕후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임재하셔 가지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왕권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반을 연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사랑의 이상권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나라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그렇습니다. 가정을 희생시켜서 나라를 위해야 됩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별의별 일이 있더라도 선생님은 그런 길을 갑니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하나님을 우주적인 왕권을 지니신 주권자로 생각하고, 그 왕권의 주권자 앞에 도달해서 왕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계자로 양성하는 제1의 훈련도장이 가정입니다. 나라는 제2훈련장입니다. 세계는 제3훈련장이고, 영계는 제4훈련장입니다.
여러분은 하늘나라의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가정이상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세계를 향해 갑니다. 그러면서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충효의 도리를 세우고 그런 왕권을 대표할 수 있는 주체자의 실권을 지니는 입장에 서지 못했다면 그런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인의 도리를 다하게 될 때 하늘나라의 충신이 되든가, 하늘나라의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이 왜 귀하냐? 아무리 가정이 제한된 한계권 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만 갖추면 그러한 자리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과 동급의 자리, 세계를 다스리는 왕과 동권의 자리,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동권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특권이 사랑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5-218)
만민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욕망
오늘 제목이 ‘우리 가정’인데, 통일교회의 가정은 이렇게 엄숙하고 역사적인 가정입니다. 이것은 역사입니다. 여러분의 일생만이 아니라 영원을 두고 가야 할 길입니다. 여러분, 전부 다 세계의 왕이 되고 싶지요? 이건 만민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욕망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전부 다 충당할 수 있느냐? 돈, 지식, 권력을 가지고는 채울 수 없지만 참사랑을 가지고는 완전히 채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랑만 갖고 있으면 하나님과 동급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과 이념을 중심삼은 가정기반이 되어질 때는 영계에 가서 억천만 시대에 수많은 왕권을 가졌던 사람들을 다스리며 살 수 있는 자리가 반드시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기에 오늘날 수많은 종교인들이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이요, 온 인류가 사랑을 갖기 위해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그러한 기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서 행복할 수 있는 가정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115-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