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행복의 기지 (천일국 훈독경 제5권 6일) u

훈독왕 | 20200310073749

천일국 훈독경 제5권 6일




영원한 행복의 기지(훈독본) 

날짜 : 1969. 5. 12(월)

장소 : 한국 부산교회


행·불행의 터전은 가정


세상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돈이 귀하다고 할 것입니다. 혹은, 권세가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예요? 행복, 또는 사랑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다 통합니다. 행복도 좋은 것이고, 사랑도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이나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모든 것이 상대적인 관계를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볼 때, 행복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짝의 사랑이나 외짝의 행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명사는 홀로 성립되는 말이 아닙니다. 이건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입니다. 행복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자기 혼자 있으면 행복을 모르고 아무리 세상에 없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행복의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자기가 세상에서 성공해서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혼자 있으면 행복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행복은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혼자는 나쁘다는 말이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세밀히 말하지 못한 복귀의 내용이라든가, 예수님의 가정에 대한 문제라든가, 혹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거쳐온 복귀노정 등 모든 것을 축소하면 결국 가정에 귀착됩니다. 


행복의 터전이나 불행의 터전이 어디에서 싹트느냐? 개인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상대적인 관계에서 불행의 요건이 깃들기 쉽습니다. 그 터전이 어디냐 하면 가정입니다. 물론, 사회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상심되는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가정에 들어오면 그것을  위로해 주고 극복하도록 격려해 주는 사랑이 그 가정에 깃들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가정에 그 행복의 터전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가정에 들어가면 불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59-172)


행복의 기준은 가정에 있다


그렇다면 행복이 가정의 어디에 있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부부의 사랑에 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딸의 부부가 종적으로 사랑하고 횡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종횡적인 사랑의 이상을 토대로 한 가정이 행복의 첫 번째 기준인 동시에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 행복의 기준이 영계와 직결됩니다. 그러한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지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가정에 돌아가면 아이들이 있고, 아내가 있고, 부모가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어디로 가서 행복을 찾느냐는 말입니다. 앞으로, 이상적인 가정이 나온다면 그 가정 하나가 완성되면 영원한 가정기반이 설정됩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에게 절대적이에요, 아니에요? 그것을 바꿀 수 있어요? 누구든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갈아치우자” 한다고 갈아치울 수 있어요? 절대적인 기준에서 나온 아들딸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어머니와 아버지이고, 절대적인 아들딸입니다. 그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의 부모입니다. 절대적인 내용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절대적인 아들로서 모셔들이는 아내가 절대적인 아내이기를 원해요, 상대적인 아내이기를 원해요? 절대적이기를 원한다는 것이 이론적입니다. 절대적인 아내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절대적인 사랑으로 엮어지는 가정은 절대적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절대적이고, 부자관계도 절대적이고, 자녀관계도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절대적인 개념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하나님이 사방으로 확대시키실 수 있어야 손실이 없습니다. 부하(負荷)가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손자가 할아버지한테 가더라도 좋다고 하고 할머니한테 가더라도 좋다고 하고, 아들딸을 아버지도 좋아하고 어머니도 좋아하고, 또 손자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좋아합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손자며느리도 좋아하고 손녀도 좋아합니다. 부자의 관계는 절대적입니다.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의 3대가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권내에 있습니다. 


절대적인 아들을 낳으려면 절대적인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부자의 관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 부부의 관계인데, 그 부부의 사이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면 어떻게 절대적인 자녀를 번식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사랑의 기반 위에 설 때 그 자리는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이론적인 설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기반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는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신입니다. 내 아내도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 가운데 다른 한 성상이 확대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나의 아들딸도 절대적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의 절대적인 인연을 통해서 전후 좌우 상하로 연결된 가정이 이상적인 가정이 아닐 수 없고 행복의 기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적인 행복을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게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천국 안 가면 이론이고 이상이고 다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절대적인 아내를 가졌으니 행복하고, 절대적인 부모를 가졌으니 행복하고, 절대적인 자녀를 가졌으니 행복한 것입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겠어요? 


절대적인 사랑의 부부를 중심삼고 가정이 활짝 피어서 향기를 풍기면, 그 향기와 더불어 그 집은 영원히 번창하게 됩니다. 그렇게 향기가 난다는 것은 번창하기 위해서 유치하는 것 아니에요? 우주의 힘과 이상의 요소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흡수해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자꾸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번창한다는 말입니다. (194-124)


행복한 가정의 기틀을 조성하려면


가정이 있으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나라가 있으면 왕이 있고 왕후가 있습니다. 왕의 가정이 있습니다. 크게 보면, 나라도 왕을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입니다. 그러니까 왕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국가형태, 이상적인 세계형태, 이상적인 우주형태가 어떤 것이냐? 영계에 가면, 그런 것을 곧 압니다. 이상적인 형태는 가정의 확대형으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가정이 단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자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장인 주권자가 있고 자녀의 입장인 백성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세계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우주도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주권자를 중심삼고 백성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계에 가 보면 압니다. 영계에 가 보면 그룹들이 많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를 250만 년에서 일천만 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천만 년도 더 됩니다. 식물이 생겨나고 동물이 생겨날 수 있었던 환경 가운데 주체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역사의 시초부터 그와 같은 환경의 여건을 가진 지구성에 인간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구성에 그러한 환경이 현현함에 따라서 인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몇 억만 년 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흩어지지 않는 전통을 지닌 것이 가정입니다. 만 년, 몇 십만 년, 몇 백만 년, 몇 천만 년의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가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를 보면,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부부가 생깁니다. 인간이 가는 길은 자녀로 태어나 자녀의 자리에서 커 가지고 신랑과 신부가 되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 가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거쳐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물론 부모가 필요합니다. 부모가 부모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해요? 부모는 색다른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남자와 여자가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194-14)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사람


여러분은 가정에서 여편네한테 미칠 듯이 빠져서 살아야 됩니다. 세상에서 사랑에 빠졌다고 그러지 않아요? 그 이상 빠져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탕감조건만 세우면 전부 다 그렇게 됩니다. 종족적 메시아로서 자기의 일가를 중심삼고 종족끼리 하나되어 그 이상의 이상세계가 없다고 하게 되면 나라는 자연히 연결되고 천국도 자연히 연결됩니다. 


만물은 일년에 한 번씩 만나 사랑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특권이 그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하셨다는 실질적인 결론을 무엇으로 제시했느냐? 생식기를 중심삼고 창조하셨다는 말은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하셨다는 말과 딱 들어맞습니다. 거기에서 생명이 연결됩니다. 거기서 핏줄이 연결되고, 거기서 사랑의 뿌리가 박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사랑의 열매요, 사랑의 종합체요, 생명의 종합체요, 혈통의 종합체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각각은 반쪽이지만,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두 생명과 사랑 그리고 피를 나누어 가졌으므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를 중심삼지 않고는 서로가 오고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194-127)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귀하냐, 손자가 귀하냐? 하나님이 손자를 못 보셔서 지금과 같은 꼴이 되셨습니다. 손자만 보셨더라면 평면적으로 점령하시는 것은 자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평면을 점령하실 수 없었던 것이 탄식입니다. 손자는 어머니보다도 낫고 아버지보다도 낫습니다. 손자는 어머니의 소성과 아버지의 소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신입니다.  


왜 자녀가 종적인 자리에 서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자녀는 부모보다 낫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소성을 다 받아서 태어났기 때문에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적인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인간의 이치가 이렇게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결국, 가정 하나가 문제입니다. 가정 하나의 문제 해결이 우주적인 문제의 해결이요, 진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모든 해방의 기원이 되고 기준이 됩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 달린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잊을 수 없는 비밀의 보화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것이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지만 저나라에서는 완전히 드러납니다. 그렇게 반대입니다. 본연적으로 얼마만큼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가졌느냐 하는 것이 천상세계에 있어서도 얼마나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것이 제일 귀한 것이기 때문에 저나라에서는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 가운데 밤잠을 자지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그러한 부모는 하늘 앞에 가까이 갑니다.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가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워 놓고 “이 가정은 천국의 가정을 생산하는 생산기지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는 그렇게 행복한 가정들을 이룰 수 있게끔 교육해야 되고 그럴 수 있게끔 보호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194-130)


가정을 통해서 천국을 건설하자는 통일교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세계가 오기를 바라고 있고 행복의 세계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종교적인 명사를 들어 말하면 지상천국을 이루어야 한다거나 이상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큰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터전은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부터 이상, 평화, 사랑과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터전을 갖추지 않는 한 아무리 이상세계나 천상천국 혹은 지상천국을 꿈꾸어도 그 세계는 도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큰 문제가 가정입니다. 개인이 사회에 나가서 악영향을 미치거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인격과 수양에도 근거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가정에 있어서 부모의 교육이라든가 사랑하는 남편이나 부인의 권고 혹은 형제의 심정에 얽힌 권고와 같은 배후에서 기인되는 바가 더 큽니다. 그러니까 가정의 심정적인 배후를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 움직이게 될 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종교가 가정을 무시하고 사회와 격리된 입장을 취하면서 개인을 구원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면은 좀 다릅니다. 개인구원의 완성을 가지고는 천국이념을 달성할 수 없고, 천국을 건설할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적인 소성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개인인격의 완성보다 상대적인 인격이 완성될 수 있는 가정을 통해서만 천국도 건설된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가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일반 종교가 주장하는 구원관과 좀 색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로 보아도 가정이 큰 문제입니다. (159-174)


가정에 사랑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어


세계의 문제들이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에서 엉클어졌지만, 그것을 수습하는 해결의 기점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 해결책은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좋은 것도 가정이요, 제일 나쁜 것도 가정입니다. 부처끼리 천년 만년 재미있게 살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한 번밖에 안 하는 결혼을 딱 해 놓았는데, 서로가 만난 그날부터 깨가 쏟아지고 재미가 폭폭 들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생각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저 사람을 보기만 해도 꿈자리가 사납다”고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못 살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모든 문제를 전부 다 수습해 가지고 총괄적으로 한 곳에다 결론지어 보면 가정문제라는 것이 세계적인 판도를 지니고 있는 대사건의 왕궁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굉장한 문제가 개재되고 있는 근본적인 장소가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불행을 타령하는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 아무리 행복을 부르짖는다고 하더라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혼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심정문제를 떠난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상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그리고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전부 다 심정문제를 중심삼고 관계됩니다. 


사람이 행복이라든가, 이상이라든가, 유토피아와 같은 것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것을 떠나게 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된장찌개에 보리밥을 먹으면서 천년 만년 산다고 하더라도 사랑만 깃들게 된다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그렇게 볼 때 여러분이 행복한 사람들이에요, 불행한 사람들이에요? 만약에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행복하기를 바라고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만났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체로, 우리는 불행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기의 할아버지도 그렇게 살지 않았어요? 젊었을 때 부처끼리 만나 농촌에서 땅만 들여다보고 땀을 흘리면서 살았는데 재미는 커녕 그럭저럭 살았지요? 재미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재미의 내용은 몰랐습니다. 요즘에는 조금 나을는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했고 요즘에도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159-176)


만약에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도 불행합니다. 그러면 미국의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미국을 돌아다녀 보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부처끼리 삽니다. 육십이나 칠십이 되면 대다수가 아들딸을 낳아 다 길러서 내보내고 비둘기같이 쌍쌍이 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를 모시는 사회제도가 아니라 부부주의라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끼리 살고 있습니다. 만년(晩年)에는 아들딸을 다 사회로 내보내고 갈 데가 없으니까 대개 아파트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어려우면 국가에서 생활보장도 해 줍니다. 그들은 낮에는 공원에 나가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어 보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동양의 가정제도를 많이 그리워합니다. 그것을 보면 동양이 낫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은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요, 사회제도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나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동양이 더 낫습니다. 무엇 때문이에요? 정서적인 문제에 얼크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모두 다 개인주의자들입니다. 달랑 벗겨 놓은 밀감이라는 것입니다. 부모형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동양이 낫다는 것입니다. 서양보다 동양이 나은 것은 그렇게 정서적인 문제에 얼크러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면 딸이 찾아올 때 앞 동네에서부터 목을 놓아 큰소리로 동네방네의 개들이 놀라서 짖으리만큼 울어대면서 집으로 들이닥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서양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을 볼 때, 동양의 풍습이 심정적으로 얼크러져 있기 때문에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질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에서 이름난 학박사의 부부라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깨진 배 조각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불면, 하나는 이쪽으로 가고 하나는 저쪽으로 갑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가게 됩니다. 아무리 가정이 좋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59-178)


사랑으로 가정을 평화와 행복의 기지로 만들라


가정이 좋기는 좋은 건데, 왜 오늘날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전부가 지금의 때를 말세라고 합니다. 모든 가정들이 말세에는 심판을 받아서 파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엉클어져 있습니다. 지금 대체로 가정이 불행하다는 결론을 짓는다면, 왜 가정이 이렇게 되었느냐? 만일 하나님이 가정을 이렇게 만드셨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 없습니다. 이런 가정들이 된 것은 종교적인 명사를 빌어 말하면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루어 놓은 가정은 원치 않는 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넘어서 이루어야 할 가정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정은 우리가 원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치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가정이 세계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지금 이 땅 위에 있는 가정들이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 가정을 지나서 행복의 가정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현재 이러한 가정들로 구성된 사회가 행복할 수 없고, 그 나라가 행복할 수 없고, 그 세계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것을 어느 한 때에 청산지으셔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걸 어느 한 때에 청산지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가정, 이런 사회, 이런 국가를 기필코 청산지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기독교로 말하면 말세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말법시대입니다. 왜 기분 나쁘게 말세라고 할까요? 모든 것을 청산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세가 지난 다음에는 우리가 불행한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로부터 벗어나서 기뻐할 수 있는 새로운 가정,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가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를 사랑하셨다는 말은 전부 다 거짓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대심판이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159-179) *




천일국 훈독경 제5권 6일, 원문


영원한 행복의 기지(원 제목: 축복가정의 사명)

날짜 : 1969. 5. 12(월)

장소 : 한국 부산교회

 

행·불행의 터전은 가정


세상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돈이 귀하다고 할 것입니다. 혹은, 권세가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예요? 행복, 또는 사랑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다 통합니다. 행복도 좋은 것이고, 사랑도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이나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모든 것이 상대적인 관계를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볼 때, 행복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짝의 사랑이나 외짝의 행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명사는 홀로 성립되는 말이 아닙니다. 이건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입니다. 행복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자기 혼자 있으면 행복을 모르고 아무리 세상에 없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행복의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자기가 세상에서 성공해서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혼자 있으면 행복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행복은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혼자는 나쁘다는 말이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세밀히 말하지 못한 복귀의 내용이라든가, 예수님의 가정에 대한 문제라든가, 혹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거쳐온 복귀노정 등 모든 것을 축소하면 결국 가정에 귀착됩니다. 

이 세계를 보거나 작게는 한국사회를 보더라도 이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고 전부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세상이 와야 되겠고, 사랑이 없는 세상이니 사랑이 있는 세상이 와야 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실정을 여러분도 사회생활을 통하거나 실제로 자기가 당면한 처지에서 잘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사회에서 젊은 층들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찾아보게 될 때, 그 동기가 당사자라기보다 상대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은 가정입니다. 자기의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형제지간의 관계에서 불평불만이나 반발심이 싹트기 시작해 가지고 노골화되어서 결국에는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윤리문제가 일어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동기가 대부분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이 교양이 있다든가 혹은 사회생활에서 본이 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었다고 할 때는 그 사람의 가정교육이 좋았다고 대체로 말합니다. 행복의 터전이나 불행의 터전이 어디에서 싹트느냐? 개인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상대적인 관계에서 불행의 요건이 깃들기 쉽습니다. 그 터전이 어디냐 하면 가정입니다. 물론, 사회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상심되는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가정에 들어오면 그것을  위로해 주고 극복하도록 격려해 주는 사랑이 그 가정에 깃들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가정에 그 행복의 터전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가정에 들어가면 불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가정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159-172)


행복의 기준은 가정에 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어머니나 아버지, 여러분 부부의 행복의 기준이 어디에 있어요? 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이 가정의 어디에 있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부부의 사랑에 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딸의 부부가 종적으로 사랑하고 횡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종횡적인 사랑의 이상을 토대로 한 가정이 행복의 첫 번째 기준인 동시에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 행복의 기준이 영계와 직결됩니다. 그러한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지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가정에 돌아가면 아이들이 있고, 아내가 있고, 부모가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어디로 가서 행복을 찾느냐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통일교회의 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는 이 원칙에 부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상적인 가정이 나온다면 이 원칙에 부합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싫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 때, 그 가정 하나가 완성되면 영원한 가정기반이 설정됩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에게 절대적이에요, 아니에요? 그것을 바꿀 수 있어요? 누구든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갈아치우자” 한다고 갈아치울 수 있어요? 절대적인 기준에서 나온 아들딸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어머니와 아버지이고, 절대적인 아들딸입니다. 그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의 부모입니다. 절대적인 내용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절대적인 아들로서 모셔들이는 아내가 절대적인 아내이기를 원해요, 상대적인 아내이기를 원해요? 절대적이기를 원한다는 것이 이론적입니다. 절대적인 아내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절대적인 사랑으로 엮어지는 가정은 절대적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절대적이고, 부자관계도 절대적이고, 자녀관계도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절대적인 개념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하나님이 사방으로 확대시키실 수 있어야 손실이 없습니다. 부하(負荷)가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손자가 할아버지한테 가더라도 좋다고 하고 할머니한테 가더라도 좋다고 하고, 아들딸을 아버지도 좋아하고 어머니도 좋아하고, 또 손자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좋아합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손자며느리도 좋아하고 손녀도 좋아합니다. 부자의 관계는 절대적입니다.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의 3대가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권내에 있습니다. 

절대적인 아들을 낳으려면 절대적인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부자의 관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 부부의 관계인데, 그 부부의 사이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면 어떻게 절대적인 자녀를 번식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사랑의 기반 위에 설 때 그 자리는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이론적인 설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기반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는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신입니다. 내 아내도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 가운데 다른 한 성상이 확대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나의 아들딸도 절대적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의 절대적인 인연을 통해서 전후 좌우 상하로 연결된 가정이 이상적인 가정이 아닐 수 없고 행복의 기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적인 행복을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게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천국 안 가면 이론이고 이상이고 다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절대적인 아내를 가졌으니 행복하고, 절대적인 부모를 가졌으니 행복하고, 절대적인 자녀를 가졌으니 행복한 것입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겠어요? 

절대적인 사랑의 부부를 중심삼고 가정이 활짝 피어서 향기를 풍기면, 그 향기와 더불어 그 집은 영원히 번창하게 됩니다. 그렇게 향기가 난다는 것은 번창하기 위해서 유치하는 것 아니에요? 우주의 힘과 이상의 요소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흡수해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자꾸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번창한다는 말입니다. (194-124)


행복한 가정의 기틀을 조성하려면


가정이 있으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나라가 있으면 왕이 있고 왕후가 있습니다. 왕의 가정이 있습니다. 크게 보면, 나라도 왕을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입니다. 그러니까 왕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국가형태, 이상적인 세계형태, 이상적인 우주형태가 어떤 것이냐? 영계에 가면, 그런 것을 곧 압니다. 이상적인 형태는 가정의 확대형으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가정이 단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자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장인 주권자가 있고 자녀의 입장인 백성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세계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우주도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주권자를 중심삼고 백성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계에 가 보면 압니다. 영계에 가 보면 그룹들이 많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를 250만 년에서 일천만 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천만 년도 더 됩니다. 식물이 생겨나고 동물이 생겨날 수 있었던 환경 가운데 주체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역사의 시초부터 그와 같은 환경의 여건을 가진 지구성에 인간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구성에 그러한 환경이 현현함에 따라서 인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몇 억만 년 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흩어지지 않는 전통을 지닌 것이 가정입니다. 만 년, 몇 십만 년, 몇 백만 년, 몇 천만 년의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가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를 보면,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부부가 생깁니다. 인간이 가는 길은 자녀로 태어나 자녀의 자리에서 커 가지고 신랑과 신부가 되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 가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거쳐가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하나님과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증조할아버지가 있고 할아버지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부부가 있고 아들딸의 5대가 연결되어 있다면, 거기에서 누구를 따라서 살아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데, 손자가 “아, 나를 따라서 살아야 된다” 하더라도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렇느냐 하면, 손자는 넓은 세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인생살이를 자기가 살고 있는 기준에서 생각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소년시대로부터 장년시대를 거치고 노년시대의 생애를 거쳐서 할아버지까지 살아 나갈 수 있는 미래상을 두고 볼 때, 그 아이가 주장하는 삶을 중심삼고 전체가 순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집에 증조부가 있으면 아무리 유식하고 훌륭한 할아버지가 있더라도 그 할아버지의 마음대로 못 합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아무리 무능하고 무식한 분이라도 그 증조할아버지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움직여 나가야만 가정이 불화하지 않고 화합하여 행복의 기틀이 조성됩니다. 거기서 증조할아버지를 반대하면서 할아버지가 이러고 저러고, 할아버지를 반대하면서 아버지가 이러고 저러고, 아버지를 반대하면서 자기의 부부가 이러고 저러고, 그리고 아들딸이 이러고 저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인간세계에는 종적인 길을 이어받을 수 있는 전통이 있어야 합니다. 전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전통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나로 말미암아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영속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종족이 있으면 우리의 종족을 중심삼고 문씨면 문씨, 박씨면 박씨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계속되느냐? 전통을 따라서 계속됩니다. 증조할아버지의 삶을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삶을 아버지, 아버지의 삶을 나, 나의 삶을 아들이 이어갑니다. 그렇게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전통을 이어받는 데 있어서는 수직적인 입장에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찌그러지면 안됩니다. 그 수직적인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내용, 본래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내용이 뭐냐?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물론 부모가 필요합니다. 부모가 부모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해요? 부모는 색다른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남자와 여자가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194-14)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사람


여러분은 가정에서 여편네한테 미칠 듯이 빠져서 살아야 됩니다. 세상에서 사랑에 빠졌다고 그러지 않아요? 그 이상 빠져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탕감조건만 세우면 전부 다 그렇게 됩니다. 종족적 메시아로서 자기의 일가를 중심삼고 종족끼리 하나되어 그 이상의 이상세계가 없다고 하게 되면 나라는 자연히 연결되고 천국도 자연히 연결됩니다. 

만물은 일년에 한 번씩 만나 사랑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특권이 그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하셨다는 실질적인 결론을 무엇으로 제시했느냐? 생식기를 중심삼고 창조하셨다는 말은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하셨다는 말과 딱 들어맞습니다. 거기에서 생명이 연결됩니다. 거기서 핏줄이 연결되고, 거기서 사랑의 뿌리가 박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사랑의 열매요, 사랑의 종합체요, 생명의 종합체요, 혈통의 종합체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각각은 반쪽이지만,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두 생명과 사랑 그리고 피를 나누어 가졌으므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를 중심삼지 않고는 서로가 오고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194-127)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귀하냐, 손자가 귀하냐? 하나님이 손자를 못 보셔서 지금과 같은 꼴이 되셨습니다. 손자만 보셨더라면 평면적으로 점령하시는 것은 자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평면을 점령하실 수 없었던 것이 탄식입니다. 손자는 어머니보다도 낫고 아버지보다도 낫습니다. 손자는 어머니의 소성과 아버지의 소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신입니다.  

왜 자녀가 종적인 자리에 서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자녀는 부모보다 낫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소성을 다 받아서 태어났기 때문에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적인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인간의 이치가 이렇게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결국, 가정 하나가 문제입니다. 가정 하나의 문제 해결이 우주적인 문제의 해결이요, 진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모든 해방의 기원이 되고 기준이 됩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 달린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공부가 필요 없습니다. 배우지 않고 다 압니다. 그 세계에 가면 평등입니다. 저나라에도 글이 있습니다. 글이 있긴 있지만, 그 글을 배우지도 않고 압니다. 책이 있지만, 그 책을 쓴 사람까지 아는 것입니다. 척 보면, 어떤 사람이 썼고 무엇을 생각하면서 썼는가를 다 압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가 앉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사랑에 동참자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부모의 혈통에 연결된 동참자입니다. 그것이 위대합니다. 내가 없으면, 하나님도 울고 부모도 웁니다. 그것은 손자도 그렇습니다. 내 아들딸을 왜 종(縱)으로 보느냐? 어머니보다 낫고 아버지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핏줄을 합해 가지고 생명결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핏줄과 사랑이 나보다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도 아들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인연을 따라서 생겨났기 때문에 자식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태어나고 그런 자리에서 교육을 받고 그런 자리에서 산 사람은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것을 몰랐습니다. 

사람이 가장 잊을 수 없는 비밀의 보화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것이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지만 저나라에서는 완전히 드러납니다. 그렇게 반대입니다. 본연적으로 얼마만큼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가졌느냐 하는 것이 천상세계에 있어서도 얼마나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것이 제일 귀한 것이기 때문에 저나라에서는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 가운데 밤잠을 자지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그러한 부모는 하늘 앞에 가까이 갑니다.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가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워 놓고 “이 가정은 천국의 가정을 생산하는 생산기지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는 그렇게 행복한 가정들을 이룰 수 있게끔 교육해야 되고 그럴 수 있게끔 보호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194-130)


가정을 통해서 천국을 건설하자는 통일교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세계가 오기를 바라고 있고 행복의 세계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종교적인 명사를 들어 말하면 지상천국을 이루어야 한다거나 이상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큰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터전은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부터 이상, 평화, 사랑과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터전을 갖추지 않는 한 아무리 이상세계나 천상천국 혹은 지상천국을 꿈꾸어도 그 세계는 도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큰 문제가 가정입니다. 개인이 사회에 나가서 악영향을 미치거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인격과 수양에도 근거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가정에 있어서 부모의 교육이라든가 사랑하는 남편이나 부인의 권고 혹은 형제의 심정에 얽힌 권고와 같은 배후에서 기인되는 바가 더 큽니다. 그러니까 가정의 심정적인 배후를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 움직이게 될 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문제입니다. 

오늘날의 사회를 전반적으로 볼 때, 가정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대략적으로 짐작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종교적인 면에서 볼 때, 종교가 지향할 수 있는 최고의 이념을 어디서부터 달성할 수 있겠느냐? 물론, 개인적인 인격을 완성하는 데서도 가능하겠지만 그러한 개인의 인격을 완성한 후에 생겨나는 가정에서부터 최고의 이념을 달성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교적인 이념의 기틀이 될 수 있는 가정을 어떻게 이루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종교가 가정을 무시하고 사회와 격리된 입장을 취하면서 개인을 구원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면은 좀 다릅니다. 개인구원의 완성을 가지고는 천국이념을 달성할 수 없고, 천국을 건설할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적인 소성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개인인격의 완성보다 상대적인 인격이 완성될 수 있는 가정을 통해서만 천국도 건설된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가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일반 종교가 주장하는 구원관과 좀 색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로 보아도 가정이 큰 문제입니다. 

크고 넓게 보면, 이 땅에는 60억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조그만 땅 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주체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을 딱 합해 놓으면 몇 사람으로 대표될 수 있느냐? 두 사람으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대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얽혀서 복잡한 세계의 정세를 꾸미고 있지만, 그 복잡다단한 내용들을 수습해 나오면 결국에는 세계적인 모든 문제들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간단합니다. 그 남자와 여자의 대표적인 기준이 뭐냐 할 때 그것은 국가도 아니요, 국가간의 어떤 관계도 아닙니다. 그 대표적인 기준이 뭐냐? 이것도 역시 결론에 가면 가정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159-174)


가정에 사랑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어


세계의 문제들이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에서 엉클어졌지만, 그것을 수습하는 해결의 기점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 해결책은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좋은 것도 가정이요, 제일 나쁜 것도 가정입니다. 부처끼리 천년 만년 재미있게 살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한 번밖에 안 하는 결혼을 딱 해 놓았는데, 서로가 만난 그날부터 깨가 쏟아지고 재미가 폭폭 들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생각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저 사람을 보기만 해도 꿈자리가 사납다”고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못 살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모든 문제를 전부 다 수습해 가지고 총괄적으로 한 곳에다 결론지어 보면 가정문제라는 것이 세계적인 판도를 지니고 있는 대사건의 왕궁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굉장한 문제가 개재되고 있는 근본적인 장소가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불행을 타령하는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 아무리 행복을 부르짖는다고 하더라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혼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심정문제를 떠난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상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그리고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전부 다 심정문제를 중심삼고 관계됩니다. 

사람이 행복이라든가, 이상이라든가, 유토피아와 같은 것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것을 떠나게 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된장찌개에 보리밥을 먹으면서 천년 만년 산다고 하더라도 사랑만 깃들게 된다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그렇게 볼 때 여러분이 행복한 사람들이에요, 불행한 사람들이에요? 만약에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행복하기를 바라고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만났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체로, 우리는 불행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기의 할아버지도 그렇게 살지 않았어요? 젊었을 때 부처끼리 만나 농촌에서 땅만 들여다보고 땀을 흘리면서 살았는데 재미는 커녕 그럭저럭 살았지요? 재미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재미의 내용은 몰랐습니다. 요즘에는 조금 나을는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했고 요즘에도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159-176)

만약에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도 불행합니다. 그러면 미국의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미국을 돌아다녀 보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부처끼리 삽니다. 육십이나 칠십이 되면 대다수가 아들딸을 낳아 다 길러서 내보내고 비둘기같이 쌍쌍이 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를 모시는 사회제도가 아니라 부부주의라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끼리 살고 있습니다. 만년(晩年)에는 아들딸을 다 사회로 내보내고 갈 데가 없으니까 대개 아파트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어려우면 국가에서 생활보장도 해 줍니다. 그들은 낮에는 공원에 나가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어 보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동양의 가정제도를 많이 그리워합니다. 그것을 보면 동양이 낫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은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요, 사회제도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나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동양이 더 낫습니다. 무엇 때문이에요? 정서적인 문제에 얼크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모두 다 개인주의자들입니다. 달랑 벗겨 놓은 밀감이라는 것입니다. 부모형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동양이 낫다는 것입니다. 서양보다 동양이 나은 것은 그렇게 정서적인 문제에 얼크러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면 딸이 찾아올 때 앞 동네에서부터 목을 놓아 큰소리로 동네방네의 개들이 놀라서 짖으리 만큼 울어대면서 집으로 들이닥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서양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을 볼 때, 동양의 풍습이 심정적으로 얼크러져 있기 때문에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질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에서 이름난 학박사의 부부라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깨진 배 조각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불면, 하나는 이쪽으로 가고 하나는 저쪽으로 갑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가게 됩니다. 아무리 가정이 좋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59-178)


사랑으로 가정을 평화와 행복의 기지로 만들라


가정이 좋기는 좋은 건데, 왜 오늘날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전부가 지금의 때를 말세라고 합니다. 모든 가정들이 말세에는 심판을 받아서 파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엉클어져 있습니다. 지금 대체로 가정이 불행하다는 결론을 짓는다면, 왜 가정이 이렇게 되었느냐? 만일 하나님이 가정을 이렇게 만드셨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 없습니다. 이런 가정들이 된 것은 종교적인 명사를 빌어 말하면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루어 놓은 가정은 원치 않는 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넘어서 이루어야 할 가정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정은 우리가 원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치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가정이 세계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지금 이 땅 위에 있는 가정들이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 가정을 지나서 행복의 가정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현재 이러한 가정들로 구성된 사회가 행복할 수 없고, 그 나라가 행복할 수 없고, 그 세계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것을 어느 한 때에 청산지으셔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걸 어느 한 때에 청산지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가정, 이런 사회, 이런 국가를 기필코 청산지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기독교로 말하면 말세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말법시대입니다. 왜 기분 나쁘게 말세라고 할까요? 모든 것을 청산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세가 지난 다음에는 우리가 불행한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로부터 벗어나서 기뻐할 수 있는 새로운 가정,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가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를 사랑하셨다는 말은 전부 다 거짓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대심판이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159-179)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딱 들어붙은 첫사랑과 같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처럼 부모를 그렇게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쭈글쭈글한 할머니한테 키스를 하면, 그 얼굴이 쭉 늘어납니다. 칠십이 된 할머니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는데 아들이 가서 그 늙은 어머니의 뺨에 자기의 얼굴을 대고 아내와 같이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그것이 몇 백만 불짜리, 몇 천만 불짜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보고 좋아하십니다. 어린 손녀가 쭈글쭈글한 팔십 된 할머니의 목을 끌어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사랑의 천국에 들어가는 통행증은 거기에서 발급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들딸, 아내와 남편을 통해서 가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길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어디에 또 있겠어요? 지금 양로원에 가 있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선생님을 환영하겠어요, 반대하겠어요? 또,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떨까요? 그러한 선생님이 미국에서 반대를 받고 세계에서 반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선생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지진이 나서 전부 다 불타 버렸는데 포도나무의 줄기 하나가 새롭게 뻗어 나갑니다. 아무리 뻗어 나가지 말라고 반대해도 뻗어 나갑니다. 바위가 있으면 그 바위를 뚫고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교인이 된 것을 자랑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인생의 모든 목적이 성사될 수 있는 터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도 여러분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이 따로 있거나 평화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틀어지면 세계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얻었더라도 불행한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일본 사람, 한국 사람, 독일 사람, 미국 사람끼리 사랑해야 합니다.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원수고, 일본 사람과 미국 사람이 원수고, 미국 사람과 독일 사람이 원수입니다. 이 네 나라의 원수들이 서로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서로가 결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들은 선생님이 가는 천국에 틀림없이 뒤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130-1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