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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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랑하는 세계 (훈독본)
날짜 : 1976. 7. 11(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모든 것이 바라는 참된 사랑의 세계
우리 인류역사는 새로운 높은 이상을 추구해 나온 역사입니다. 또, 우리의 인생은 인류의 역사가 아무리 길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를 대표한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기나긴 인류역사에 있었던 소망을 어떻게 오늘날의 소망으로서 귀결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과정에서 좋은 것들은 우리의 인생행로에 전개시키기 위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생활입니다. 그 역사는 결국 참된 이상적인 한 사람의 생애권, 혹은 생활권에 연결짓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종교니, 무슨 주의니, 경제니 하는 문제가 언제나엮어져 나왔습니다. 바라는 결론은 참사랑의 세계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라고 하면 참사랑을 지닌 종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사랑을 지닌 사람이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주인이냐? 참사랑을 가지고 주관해 줄 수 있는 주체가 될 때 참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결론은 참사랑 하나에 모든 것이 귀결됩니다. 아무리 나라가 크다고 하더라도 국가애가 없고, 동족이 동족애가 없다면 그 국가는 반드시 망하게 마련입니다. 하나의 가정을 보더라도 참사랑이 중심이 되어 모든 가족들이 하나되어 있으면 희망적인 가정이요,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직장에 가도 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의 결론입니다. 어떤 단체든지 두 사람 이상이 모이는 자리는 반드시 사랑이라는 내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데서만이 이상적인 것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89-64)
신과 인간과 만물은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 존재해
도대체 인간은 왜 생겨났고, 만물은 왜 생겨났고, 신이 왜 있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따지고 보면 결국에는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기 위해서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가 왜 있게 되었느냐? 결국, 참사랑을 하고 참사랑을 받기 위한 것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본된 문제는 참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참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카락 하나도 그렇습니다. 이것도 역시 사랑을 받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눈이 왜 반짝거리느냐? 무엇을 하기 위해서 반짝거리느냐?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징적인 미, 혹은 실체적인 사랑의 미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전부 다 사랑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눈이 사랑 때문에 있어? 책을 보기 위해서 있지!” 할지도 모릅니다. 일하는 사람은 “아, 보고 일하기 위해서 눈이 있지! 눈이 없으면 볼 수 없으니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좋고,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좋습니까?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저 사랑을 하고, 하고, 하고 하는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그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싫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위한 일이라면 싫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부라는 것도 사랑의 목적이 개재되어 공부하면 싫지 않습니다. 사랑이 들어가게 되면 모든 조화를 일으켜 나쁜 것도 선하게 만들 수 있고, 선한 것은 보다 영광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놀음은 사랑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89-65)
사랑은 절대성·유일성·영원성·불변성을 가져야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에 지나가는 것이에요?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입니다. 그 사랑은 영원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유일성을 지녀야 됩니다. 그러면서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사랑이 어떠해야 한다는 정의를 내린다면 그 사랑은 이상적인 사랑인 동시에 속성에서는 절대성·유일성·영원성·불변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일적이요, 절대적이요, 불변적인 사랑을 지니려면 보다 유일적인 존재요, 보다 절대적인 존재요, 보다 영원한 존재가 아니고는 그 사랑을 지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는 사람은 불변의 사랑을 나타낼 수도 없고 지닐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영원·불변·유일의 사랑을 추구하지만 그 사랑을 추구하는 주체와 대상이 인간이면 그 인간 자체가 영원한 사람, 불변한 사람, 유일한 사람이 되었느냐?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 그것을 추구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자신이 영원하고 유일 불변한 본성을 지니면서 그러한 사랑을 추구한다고 하면 이것은 가장 타당한 얘기지만 자기는 그냥 있으면서 사랑받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영원한 사랑을 먼저 맞이해야 되느냐, 영원한 사람이 먼저 되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다 하면 그 대답은 쉽습니다. (89-67)
영원·불변·유일의 사랑을 찾으려면
그러면 사랑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사랑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이요, 유일적이요, 불변적인 주체가 되던가 그런 대상이 되지 않고는 사랑이라는 명사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한 영원·불변·유일한 사랑을 찾고자 한다면, 영원·불변·유일의 주체를 찾던가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두 가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영원한 사랑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론적인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이 그런 주체가 될 수 있느냐? 인간이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지금 세계의 사람들을 불러놓고 그럴 수 있느냐 하면 “노!” 할 것이고, 미래의 사람들을 불러놓고 물어 봐도 “노!” 할 것입니다. “예스!” 하는 사람은 조금 부족한 사람입니다.
진짜는 영원성을 갖고, 유일성을 갖고, 절대성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보게 되면 보물로 취급받고, 귀하고 참된 취급을 받는 것은 전부 다 오래 갑니다. 오래 갈수록 참입니다.
다이아몬드면 거기에 무엇을 갖다 대도 이것은 절대적이요, 침범을 받지 않습니다. 다이아몬드로서의 절대적인 유일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굳은 데에 있어서는 다이아몬드가 영원·유일·불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물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금이 왜 좋은 것입니까? 금을 보면 물렁물렁합니다. 그렇지만 빛깔에서 유일적이요, 불변적이요, 영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너희들은 변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본받아야 된다.” 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누가 지배하느냐? 그 역사를 지배하는 것은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미국 땅에 대해서 “이 미국아, 미국 땅아! 너는 어떤 사람한테 지배받고 싶어?” 하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나는 참사람한테 지배받고 싶다.”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야, 땅덩어리야! 너 뭐 하려고 생겨났느냐?” 하면 참주인, 참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생겨났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40억이나 되는 사람들을 중심삼고 “이 사람들아! 지금 어떤 세계의 주권자를 원하느냐?” 하면 “아, 참주권자를 원한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면서 복귀섭리와 구원섭리를 하고 있습니까?” 하면, “참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할 것입니다.
여자들에게 “너 어떤 신랑을 얻고 싶으냐?” 하면 “참남자입니다.” 하고, 또 남자에게 “너 어떤 여자를 얻고 싶으냐?” 하면 “참여자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전부 다 참사람을 원하느냐? 참사람만이 참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참사랑이 도대체 뭐냐? 참사랑은 과거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싫어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현재의 그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고, 만물이나 혹은 강아지새끼, 흙덩이, 돌덩이 할 것 없이 흘러가는 물이나 물고기나 싫어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볼 때 참사랑을 얼마만큼 좋아할까요? 하나님의 온 눈이 뒤집어지고 입이 벌어져 가지고 “아, 이거로구나!” 하고 소리칠 것입니다.
사람은 그런 참사랑이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눈이 이렇게 뒤집어지고 몸 전체가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참사랑을 좋아해요? 그것을 한번 찾을 수 있다면 마라톤도 하고 다 할 수 있어요? 생명을 한번 걸만해요?
참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그러면 도대체 참사랑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냐?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영원·불변·유일적인 주체가 있다고 하면 그 주체를 내게서는 찾을 방법이나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주체를 만나면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존재밖에 없기 때문에 인류는 그 존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본래부터 영원한 분, 유일적인 분, 절대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분이어야만 절대적이고 유일 불변의 사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존재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고는 참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참사랑은 어디로부터 오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20대, 30대가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결혼해야 할 텐데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되겠다. 그곳에 참사랑이 있을 것이다.” 하며 꿈을 꾸어도 거기에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오늘날 인간 가운데는 없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사방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려면 그 옳은 것이 자기 혼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사방성 전후·좌우·상하의 관계를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 미국 같은 데는 자유주의라 해서 “내 마음대로다.” 하는데, 천만에…! 자유일수록 전후관계가 다 맞아야 되고 좌우관계와 상하관계가 맞아야 됩니다. 자유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한 자유와 선한 자유가 있습니다. 참자유는 뭐냐? 과거, 현재, 미래가 맞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종입니다. 근원도 없고, 출발도 없고, 과정도 없고 목적도 없는 그런 자유가 어디에 있어요? (89-71)
하나님도, 인간도, 만물도 불변의 참사람을 원해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유일적이요, 불변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런하나님이 바라는 이상은 뭐냐? 하나님도 사랑을 이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아무것도 없고 이상도 없으면 있으나마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뭘 필요로 하는 것인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그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그건물어 볼 것도 없이 참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참사랑을 어디서 찾습니까? 참사람입니다. 참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그렇다면 동물세계와 식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참사람, 인간도 참사람, 만물도 참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왜 참사람을 원하느냐? 참사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환란 중이나, 도탄 중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바람이 부나, 폭풍이 부나 가는방향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금덩이는 시궁창 물에 들어가더라도 색깔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 참입니다.
그러면 참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는 데는 하나님이 보는 것을 좋아하고, 듣는 데는 하나님이 듣는 것을 좋아하고, 맡는 데는 하나님이 맡는 것을 좋아하고, 말하는 데는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만드는 데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가는 데에도 하나님의 세계에 가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참사람으로서 내가 공인받느냐?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 하라는 것은 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 마음은 어떠해야 돼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됩니다.
여러분, 참사랑이 무엇 때문에 필요해요? 참사랑의 방망이를 들고 때릴 때는 피가 나오더라도 좋아합니다. 죽어가면서도 나는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것을 잡고 잡아당기면 하나님은 물론이요, 인류도 끌려오고 모든 만물이 다 끌려옵니다. 이걸 놓으면 다 풀어집니다. 잡아당기면 한 보자기가 되고 펴놓으면 수많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참사랑의 보자기에 싸 놓으면 한 보자기에 들어가더라도 검둥이든지 흰둥이든지 전부 다 오글오글 섞어져도 다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검둥이고 흰둥이고 머리를 갖다 대고 자꾸 파고 들어가려고 하지 떨어지려고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의 보자기만 가지면 안 싸이는 게 없고 거기에 안 들어가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전우주를 싸고도 남습니다. 또, 그것을 펼쳐 놓으면 어디에 가든지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어디든지 우주에 꽉 차게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통일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랑, 불교는 자비를 말하듯이 사랑의 관념을 가지지 않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면 천국이 어떤 곳이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내가 천국에 가려면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참사람이 돼서 참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주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주의입니다. 하나님주의의 목적은 참사랑주의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주의라는 것,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의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이냐? 그것은 참사람과 더불어 하나되는 주의입니다.
참사랑의 원칙
그러면 참사랑이 도대체 우리 인간세계의 어디에 있느냐 할 때 그것은 자기의 집안에 있습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랑, 불변의 사랑을 가지고 참아버지로 나타나고, 참아들딸로 나타나고, 참남편과 참아내로 나타나는 거기에서 엮어지는 사랑이야말로 참사랑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위기대의 사랑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사랑은 타락적인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재창조를 거쳐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완성한 사람,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참된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사방에서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참아버지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만하고 참형제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하고 참남편이나 참아내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왜 필요하냐 하면 하나님은 주체고 인간은 대상이니까 종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 다음엔 아담과 해와, 부부의 사랑이 왜 필요하냐? 횡적인 사랑을 맺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리고 형제의 사랑은 왜 필요하냐? 이것으로 환경이 엮어지는 것입니다. 환경이 조성되는 것입니다.형제는 세계와 연락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만민은 형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형제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남편과 아내같이 사랑하고, 하나님같이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워 놓은 원리의 사랑이 됩니다. 그게 완성한, 완전한 참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제 결론짓자구요. “여자여, 참여자가 되어라!”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자기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같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과 남편보다도 형제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 편에서는 대상을 더 사랑하고 아들을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그것이 본래 신애(神愛)의 원칙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세계애를 펼치는 것이 하나님의 이상이기 때문에 자기 남편의 연장으로 남자들을 사랑하고, 아내의 연장으로 여자들을 사랑하고, 형제의 연장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되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대상적인 연장체로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지옥에도 통하고, 사탄세계에도 통하고, 하늘나라에도 통합니다. 그 사랑권 내에서는 가냘픈 여자라도 독일 사람같이 큰남자를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이 끌려오고 세계도 끌려옵니다.
그리고 그 남자 가운데는 아내의 사랑도 있고, 어머니의 사랑도 있고, 누나의 사랑도 있고 형제의 사랑도 있습니다. 그게 참사랑입니다. 그래서 원리에서 삼대상의 목적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내가 되는 사람은 남편을 아버지같이 사랑하고, 오빠같이 사랑하고, 남편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죽더라도 남편을 아버지의 대신으로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내가 없어지더라도 나 이상으로 세우고 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게 되면 그 여자는 참부인이요, 참여자입니다.
남자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아내가 어머니의 대신이요, 누나의 대신이요, 동생의 대신이요, 그리고 내 생명을 투입할 수 있는 중심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참남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면 참부부라고 합니다.
통일교회는 참된 사랑의 훈련도장
그러면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오늘날 국경을 초월하고 세계·민족·종족을 초월해서 그런 사랑의 훈련도장으로 제시된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참부모니 무엇이니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참형제자매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곳은 본연의 신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 하나의 준비를 하는 곳이요, 하나의 도장이요, 훈련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을 인류와 같이, 남자나 여자를 세계의 남자나 여자 대신, 아버지나 어머니 대신, 하나님 대신, 오빠나 누나 대신, 동생 대신으로 사랑하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선생님의 일이라면 여러분이 생명을 각오하고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세상에서도 동생 혹은 오빠의 출세를 위해서 살아가는 여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형제를 위해서 희생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이상의 자리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국 국민을 볼 때 미국의 국민으로서 형제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의 아들딸인 형제적인 입장에서 형제를 사랑하느냐? 어떤 것이 귀합니까?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형제의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의 형제를 버리더라도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남자라면 선생님같이 사랑하고 오빠같이 사랑하고, 여자라면 어머니같이 사랑하고 혹은 누나같이 사랑하는 이것이 초민족적인 세계의 기반에서 가능하냐? 그것이 가능할 때 새로운 이상세계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인류를 하나님같이 사랑하는 데서 시작돼
그래서 하나님같이 보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대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생각을 갖는 것이 절대적이요, 유일 불변한 하나님의 인격관입니다. 그런 인격관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변하지 않는 유일·불변·절대적인 위치를 취하게 될 때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불변한 하나님의 사랑, 유일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동적으로 발동하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들이 크게 되면 사랑의 대상자를 찾듯이 자동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완성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같이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같이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고, 하나님같이 인류의 장래를 염려하는 내가 되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영원한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참사람을 알았어요?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 되는 것입니다. 원리 기준에 선 아담이 되는 것이요, 해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하나의 아버지, 하나의 형제, 하나의 남편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초민족적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말한 바와 같이 원리를 지니고 그러한 아담과 해와의 자리를 찾아가야 됩니다. 그 자리에 나가게 되면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이 없습니다. “저건 흑인이다. 저건 황인종이다.”라는 관념보다 “내 형제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하는 관념이 앞서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그러한 참사람이 있는 곳에는 참사랑도 자동적으로 있기 마련입니다. 그곳이 신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사람이사는 세계입니다. 자, 그 세계에 다 갈래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89, 65-87)
<훈독 소감>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귀한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은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절대, 유일, 영원, 불변성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러한 사랑이
바로 가정에 있어야 함을 강조에 강조를 하셨습니다. 즉 가정에서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자녀를 하나님으로 모시고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대신자, 형상으로 지음받은 체를 쓴 하나님이기에 그 하나님의 이상을 찾아서 사랑을 실천할 때 진정한 참사랑을 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가정에서 나와 관계된 분임을 이 시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인간을
하나님 입장에서 사랑하게 될 때 이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절대.유일.영원.불변의 참사랑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12일 원문 &&&&&
제 12 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계
날짜 : 1976. 7. 11(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12260글자
모든 것이 바라는 참된 사랑의 세계
우리 인류역사는 새로운 높은 이상을 추구해 나온 역사입니다. 또, 우리의 인생은 인류의 역사가 아무리 길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를 대표한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기나긴 인류역사에 있었던 소망을 어떻게 오늘날의 소망으로서 귀결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과정에서 좋은 것들은 전부 다 우리 인간의 생활에 흡수해서 그것을 우리의 인생행로에 전개시키기 위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생활입니다. 아무리 긴 역사라도 그 역사는 결국 참된 이상적인 한 사람의 생애권, 혹은 생활권에 연결짓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종교니, 무슨 주의니, 경제니 하는 문제가 언제나 엮어져 나왔습니다. 그러면 전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결론은 간단합니다. 참사랑의 세계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라고 하면 어떤 것이 참된 종교냐? 참사랑을 지닌 것이 참된 종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사랑을 지닌 사람이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주인이냐? 참사랑을 가지고 주관해 줄 수 있는 주체가 될 때 참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종교니, 인간이니, 만물이니 하는 모든 문제를 전부 통틀어 놓고 지은 결론은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 하나에 모든 것이 귀결됩니다. 아무리 나라가 크다고 하더라도 국가애가 없고, 동족이 동족애가 없다면 그 국가는 반드시 망하게 마련입니다. 하나의 가정을 보더라도 참사랑이 중심이 되어 모든 가족들이 하나되어 있으면 희망적인 가정이요,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직장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 가도 마찬가지의 결론이요, 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의 결론입니다. 어떤 단체든지 두 사람 이상이 모이는 자리는 반드시 사랑이라는 내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데서만이 이상적인 것이 생겨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89-64)
신과 인간과 만물은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 존재해
도대체 인간은 왜 생겨났고, 만물은 왜 생겨났고, 신이 왜 있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따지고 보면 결국에는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기 위해서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가 왜 있게 되었느냐? 결국, 참사랑을 하고 참사랑을 받기 위한 것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는 왜 태어나서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밥을 먹고사는 외적인 문제보다 근본된 문제는 참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참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참사랑을 하기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카락 하나도 그렇습니다. 이 머리카락은 왜 생겨났느냐? 내 머리에 있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까? 이것도 역시 사랑을 받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눈이 왜 반짝거리느냐? 무엇을 하기 위해서 반짝거리느냐?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징적인 미, 혹은 실체적인 사랑의 미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전부 다 사랑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눈이 사랑 때문에 있어? 책을 보기 위해서 있지!” 할지도 모릅니다. 일하는 사람은 “아, 보고 일하기 위해서 눈이 있지! 눈이 없으면 볼 수 없으니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좋고,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좋습니까?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손 들어 봐요! 그렇지만 그저 사랑을 하고, 하고, 하고 하는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그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도 마찬가지요, 늙을 때도 마찬가지요, 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보다 높은 것을 추구해 가면 갈수록 더 재미있는 것이요, 더 흥분적인 것이요, 더 이상적인 것이 사랑이라면 누구나 그 사랑을 추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관에게 “야! 오관아, 왜 생겨났니?” 하고 묻는다면, 그 오관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 듣기 위해서, 먹기 위해서, 보기 위해서, 느끼기 위해서 생겨났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관은 최후의 무엇을 위해서 있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종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 이상을 전부 다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싫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위한 일이라면 싫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부라는 것도 사랑의 목적이 개재되어 공부하면 싫지 않습니다. 사랑이 들어가게 되면 모든 조화를 일으켜 나쁜 것도 선하게 만들 수 있고, 선한 것은 보다 영광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놀음은 사랑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89-65)
사랑은 절대성·유일성·영원성·불변성을 가져야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에 지나가는 것이에요?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입니다. 가짜는 얼마든지 있지만 진짜는 하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그 사랑은 영원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단 하나여야 됩니다. 유일성을 지녀야 됩니다. 그러면서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사랑이 어떠해야 한다는 정의를 내린다면 그 사랑은 이상적인 사랑인 동시에 속성에서는 절대성·유일성·영원성·불변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지어서 붙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일적이요, 절대적이요, 불변적인 사랑을 지니려면 보다 유일적인 존재요, 보다 절대적인 존재요, 보다 영원한 존재가 아니고는 그 사랑을 지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는 사람은 불변의 사랑을 나타낼 수도 없고 지닐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영원·불변·유일의 사랑을 추구하지만 그 사랑을 추구하는 주체와 대상이 인간이면 그 인간 자체가 영원한 사람, 불변한 사람, 유일한 사람이 되었느냐?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 그것을 추구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통일교회의 책임자들이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 사랑이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이면 좋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 자신이 영원하고 유일 불변한 본성을 지니면서 그러한 사랑을 추구한다고 하면 이것은 가장 타당한 얘기지만 자기는 그냥 있으면서 사랑받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영원한 사랑을 먼저 맞이해야 되느냐, 영원한 사람이 먼저 되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다 하면 그 대답은 쉽습니다. (89-67)
영원·불변·유일의 사랑을 찾으려면
그러면 사랑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이요, 유일적이요, 불변적인 주체가 되던가 그런 대상이 되지 않고는 사랑이라는 명사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한 영원·불변·유일한 사랑을 찾고자 한다면, 영원·불변·유일의 주체를 찾던가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두 가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영원한 사랑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론적인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이 그런 주체가 될 수 있느냐? 인간이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오늘날 여러분 자신이 그럴 수 있는가를 분석해야 됩니다. 지금 세계의 사람들을 불러 놓고 그럴 수 있느냐 하면 “노!” 할 것이고, 미래의 사람들을 불러놓고 물어 봐도 “노!” 할 것입니다. “예스!” 하는 사람은 조금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진짜와 가짜가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 됩니다. 진짜는 영원성을 갖고, 유일성을 갖고, 절대성을 가져야 됩니다. 세상에서도 집을 지었다고 할 때 그 집이 잠깐 있다가 무너지는 것을 좋아해요, 영원히 가는 것을 좋아해요? 우리가 보게 되면 보물로 취급받고, 귀하고 참된 취급을 받는 것은 전부 다 오래 갑니다. 오래 갈수록 참입니다.
다이아몬드면 거기에 무엇을 갖다 대도 이것은 절대적이요, 침범을 받지 않습니다. 다이아몬드로서의 유일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유일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춘하추동의 변화에 풍화작용도 받지 않고 영원을 중심삼고 천년 만년 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굳은 데에 있어서는 다이아몬드가 영원·유일·불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물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금이 왜 좋은 것입니까? 금을 보면 물렁물렁합니다. 그렇지만 빛깔에서 유일적이요, 불변적이요, 영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진주는 하모니 칼라(harmony color;조화로운 색깔)에서 그렇습니다. (89-68)
참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사람이 진짜 사람이냐?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너희들은 변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본받아야 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사람이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느냐, 역사가 참사람을 지배할 수 있느냐? 과거, 현재, 미래를 누가 지배하느냐? 그 역사를 지배하는 것은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미국 땅에 대해서 “이 미국아, 미국 땅아! 너는 어떤 사람한테 지배받고 싶어?” 하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나는 참사람한테 지배받고 싶다.”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야, 땅덩어리야! 너 뭐 하려고 생겨났느냐?” 하면 참주인, 참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생겨났다고 하고, 이 지구도 누구를 상대로 하고 싶으냐고 하면 참사람을 상대하고 싶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40억이나 되는 사람들을 중심삼고 “이 사람들아! 지금 어떤 세계의 주권자를 원하느냐?” 하면 대답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아, 참주권자를 원한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면서 복귀섭리와 구원섭리를 하고 있습니까?” 하면, “참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대답입니다.
여자들에게 “너 어떤 신랑을 얻고 싶으냐?” 하면 “참남자입니다.” 하고, 또 남자에게 “너 어떤 여자를 얻고 싶으냐?” 하면 “참여자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전부 다 참사람을 원하느냐? 참사람만이 참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참사랑이 도대체 뭐냐? 어떤 것이 참사랑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참사랑은 과거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싫어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현재의 그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고, 만물이나 혹은 강아지새끼, 흙덩이, 돌덩이 할 것 없이 흘러가는 물이나 물고기나 싫어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볼 때 참사랑을 얼마만큼 좋아할까요? 하나님의 온 눈이 뒤집어지고 입이 벌어져 가지고 “아, 이거로구나!” 하고 소리칠 것입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그런 참사랑이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눈이 이렇게 뒤집어지고 몸 전체가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참사랑을 좋아해요? 그것을 한번 찾을 수 있다면 마라톤도 하고 다 할 수 있어요? 생명을 한번 걸 만해요? (89-69)
참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그러면 도대체 참사랑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냐?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영원·불변·유일적인 주체가 있다고 하면 그 주체를 찾는데 내게서는 찾을 방법이나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주체를 만나면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존재밖에 없기 때문에 인류는 그 존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본래부터 영원한 분, 본래부터 유일적인 분, 본래부터 절대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분이어야만 절대적이고 유일 불변의 사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존재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고는 참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참사랑은 어디로부터 오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올 수 있어요? 훌륭한 여러분의 조상들로부터 올 수 있어요? 여러분이 20대, 30대가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결혼해야 할 텐데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되겠다. 그곳에 참사랑이 있을 것이다.” 하며 꿈을 꾸어도 거기에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오늘날 인간 가운데는 없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사방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려면 그 옳은 것이 자기 혼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사방성을 지녀야 됩니다. 전후·좌우·상하의 관계를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 미국 같은 데는 자유주의라 해서 “내 마음대로다.” 하는데, 천만에…! 자유일수록 전후관계가 다 맞아야 되고 좌우관계와 상하관계가 맞아야 됩니다. 자유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한 자유와 선한 자유가 있습니다. 참자유는 뭐냐? 과거, 현재, 미래가 맞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종입니다. 근원도 없고, 출발도 없고, 과정도 없고 목적도 없는 그런 자유가 어디에 있어요? (89-71)
하나님도, 인간도, 만물도 불변의 참사람을 원해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유일적이요, 불변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은 뭐냐? 하나님도 사랑을 이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만 있으면 뭐 합니까? 혼자서 아무것도 없고 이상도 없으면 있으나마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뭘 필요로 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능력이나 권세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돈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필요한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그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진짜 사랑입니까, 가짜 사랑입니까? 그건 물어 볼 것도 없이 참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참사랑을 어디서 찾습니까? 참사람입니다. 문제는 참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거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때려죽이라구요. 참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그렇다면 동물세계와 식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참사람, 인간도 참사람, 만물도 참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왜 참사람을 원하느냐? 참사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종교를 찾자고 할 때는 참사람이 있는가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환란 중이나, 도탄 중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바람이 부나, 폭풍이 부나 가는 방향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금덩이는 시궁창 물에 들어가더라도 색깔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 참입니다.
그러면 참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는 데는 하나님이 보는 것을 좋아하고, 듣는 데는 하나님이 듣는 것을 좋아하고, 맡는 데는 하나님이 맡는 것을 좋아하고, 말하는 데는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만드는 데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가는 데에도 하나님의 세계에 가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참사람으로서 내가 공인받느냐?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 하라는 것은 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놈의 눈이 그렇게 되고, 이놈의 코가 그렇게 되고, 이놈의 입이 그렇게 되고 전부 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내 마음은 어떠해야 돼요? 마음이 왔다갔다해야 돼요? 마음이 움직여야 되겠어요, 안 움직여야 되겠어요? 움직이지 않아야 됩니다.
여러분, 진짜 참사랑이 필요해요? 참사랑이 무엇 때문에 필요해요? 왜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방망이를 들고 때릴 때는 피가 나오더라도 좋아합니다. 죽어가면서도 나는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것을 잡고 잡아당기면 하나님은 물론이요, 인류도 끌려오고 모든 만물이 다 끌려옵니다. 이걸 놓으면 다 풀어집니다. 잡아당기면 한 보자기가 되고 펴놓으면 수많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참사랑의 보자기에 싸 놓으면 한 보자기에 들어가더라도 검둥이든지 흰둥이든지 전부 다 오글오글 섞어져도 다 좋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검둥이고 흰둥이고 머리를 갖다 대고 자꾸 파고 들어가려고 하지 떨어지려고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의 보자기만 가지면 안 싸이는 게 없고 거기에 안 들어가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전우주를 싸고도 남습니다. 빠지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펼쳐 놓으면 어디에 가든지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어디든지 우주에 꽉 차게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통일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자동 통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랑, 불교는 자비를 말하듯이 사랑의 관념을 가지지 않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면 천국이 어떤 곳이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내가 천국에 가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참사람이 돼서 뭘 하는 것이냐? 그럼으로 말미암아 참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주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주의입니다. 하나님주의의 목적은 뭐냐? 참사랑주의입니다. 그 결론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주의라는 것,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의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이냐? 그것은 참사람과 더불어 하나되는 주의입니다. (89-76)
참사랑의 원칙
그러면 참사랑이 도대체 우리 인간세계의 어디에 있느냐 할 때 그것은 자기의 집안에 있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와 형제들 가운데 있습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랑, 불변의 사랑을 가지고 참아버지로 나타나고, 참아들딸로 나타나고, 참남편과 참아내로 나타나는 거기에서 엮어지는 사랑이야말로 참사랑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위기대의 사랑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사랑은 타락적인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재창조를 거쳐야 됩니다. 다시 창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완성한 사람,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참된 아담과 해와는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사방에서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참아버지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만하고 참형제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하고 참남편이나 참아내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왜 필요하냐 하면 하나님은 주체고 인간은 대상이니까 종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 다음엔 아담과 해와, 부부의 사랑이 왜 필요하냐? 횡적인 사랑을 맺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리고 형제의 사랑은 왜 필요하냐? 이것으로 환경이 엮어지는 것입니다. 환경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와 연락하는 것입니다. 형제는 세계와 연락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만민은 형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형제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남편과 아내같이 사랑하고, 하나님같이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워 놓은 원리의 사랑이 됩니다. 그게 완성한, 완전한 참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제 결론짓자구요. “여자여, 참여자가 되어라!”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자기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같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과 남편보다도 형제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 편에서는 대상을 더 사랑하고 아들을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그것이 본래 신애(神愛)의 원칙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세계애를 펼치는 것이 하나님의 이상이기 때문에 자기 남편의 연장으로 남자들을 사랑하고, 아내의 연장으로 여자들을 사랑하고, 형제의 연장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되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대상적인 연장체로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지옥에도 통하고, 사탄세계에도 통하고, 하늘나라에도 통합니다.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권 내에서는 가냘픈 여자라도 독일 사람같이 큰 남자를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이 끌려오고 세계도 끌려옵니다. 그게 말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남자 가운데는 아내의 사랑도 있고, 어머니의 사랑도 있고, 누나의 사랑도 있고 형제의 사랑도 있습니다. 그게 참사랑입니다. 그래서 원리에서 삼대상의 목적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내가 되는 사람은 남편을 아버지같이 사랑하고, 오빠같이 사랑하고, 남편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죽더라도 남편을 아버지의 대신으로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오빠가 없더라도 오빠로 믿고 살고, 동생이 없더라도 동생으로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내가 없어지더라도 나 이상으로 세우고 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게 되면 그 여자는 참부인이요, 참여자입니다.
남자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아내가 어머니의 대신이요, 누나의 대신이요, 동생의 대신이요, 그리고 내 생명을 투입할 수 있는 중심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참남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면 참부부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세계의 남자와 여자들은 누구나 들어와도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영계의 누가 들어와도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89-83)
통일교회는 참된 사랑의 훈련도장
그러면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그러한 사랑의 방법을 다 찾을 수 없고,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는데 오늘날 국경을 초월하고 세계·민족·종족을 초월해서 그런 사랑의 훈련도장으로 제시된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참부모니 무엇이니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참형제자매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곳은 본연의 신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 하나의 준비를 하는 곳이요, 하나의 도장이요, 훈련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을 인류와 같이, 남자나 여자를 세계의 남자나 여자 대신, 아버지나 어머니 대신, 하나님 대신, 오빠나 누나 대신, 동생 대신으로 사랑하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정에서도 부모의 뜻을 위해서라면 그 아들딸이 자기들의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가는 길이 있거늘,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선생님의 일이라면 여러분이 생명을 각오하고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세상에서도 동생 혹은 오빠의 출세를 위해서 살아가는 여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형제를 위해서 희생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이상의 자리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국 국민을 볼 때 미국의 국민으로서 형제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의 아들딸인 형제적인 입장에서 형제를 사랑하느냐? 어떤 것이 귀합니까? 어떤 것을 원합니까?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형제의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의 형제를 버리더라도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남자라면 선생님같이 사랑하고 오빠같이 사랑하고, 여자라면 어머니같이 사랑하고 혹은 누나같이 사랑하는 이것이 초민족적인 세계의 기반에서 가능하냐? 그것이 가능할 때 새로운 이상세계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89-86)
참된 사랑은 인류를 하나님같이 사랑하는 데서 시작돼
그래서 하나님같이 보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대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생각을 갖는 것이 절대적이요, 유일 불변한 하나님의 인격관입니다. 그런 인격관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변하지 않는 유일·불변·절대적인 위치를 취하게 될 때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불변한 하나님의 사랑, 유일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동적으로 발동하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들이 크게 되면 사랑의 대상자를 찾듯이 자동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완성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같이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같이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고, 하나님같이 인류의 장래를 염려하는 내가 되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영원한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참사람을 알았어요? 참사람이 어떤 거라고요?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 되는 것입니다. 원리 기준에 선 아담이 되는 것이요, 해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하나의 아버지, 하나의 형제, 하나의 남편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초민족적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말한 바와 같이 원리를 지니고 그러한 아담과 해와의 자리를 찾아가야 됩니다. 그 자리에 나가게 되면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이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저건 흑인이다. 저건 황인종이다.”라는 관념보다 “내 형제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하는 관념이 앞서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그러한 참사람이 있는 곳에는 참사랑도 자동적으로 있기 마련입니다. 그곳이 신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사람이 사는 세계입니다. 자, 그 세계에 다 갈래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8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