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천일국 훈독경 제4권 17일)

훈독왕 | 20191228072129

천일국 훈독경 제4권 17일


첨부파일 16 훈독경 4권 17일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1.mp3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훈독본)


날짜 : 1956. 5. 27(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창조이상과 예수님의 강림목적


에덴 동산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고, 온 피조만물이 하나님께 환희의 경배를 드리고 기뻐하며 살 수 있는 동산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동산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시던 소망의 영광을 땅 위에 나타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실체로 나타내야 했던 것이 우리 조상 아담 해와의 책임이었는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려던 본연의 그 동산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인류는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어둠의 세력과 대결하여 싸움의 길을 거쳐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땅 위의 억조창생과 영계의 천군천사 그리고 피조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감사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한날을 맞이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 땅 위에 보내셨고, 4천 년 역사가 경과한 후 하나님 자신의 실체로 보내 주신 분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존재가 나타났으므로 뭇 백성들은 즐거워하고 감사를 돌려야 했는데, 즉 택해 세웠던 이스라엘 민족과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웠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서러움의 탄식과 원한의 탄식을 남겨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남긴 말씀은 만민을 대해서 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남아진 길이 아니 가려야 아니 갈 수 없었던 운명의 길이었음을 알았고,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당당하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4천 년 역사과정에 스며들어 있었던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느꼈고, 4천 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마음을 다하는 대표자, 목숨을 다하는 대표자가, 뜻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하늘의 영광이 예수님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예수님의 영광이 만민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만민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에 미쳐져야 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일신에 이루어졌던 부활의 영광, 감사의 영광은 오늘날 인류의 소망으로 남아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한 존재, 역사과정에 없었던 승리의 화신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예수님이 마음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셨고, 예수님이 뜻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뜻을 다하셨고 예수님이 성품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성품을 다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복음의 화신으로서 중보적인 존재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창조의 이념을 통한 말씀이요, 영광의 이념으로 세워진 말씀이요, 아버지의 숨겨진 마음을 나타낸 말씀이었습니다. (1-76)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찾아오신 하나님


그래서 이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해야 되겠고, 하나님 자신이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장 죽어 마땅할 인간이요, 고통을 당해 마땅할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대해 마음을 다하시던 입장에서 참음의 4천 년 역사노정을 걸어오셨고, 또 뜻을 다하여 4천 년 동안 사탄을 분별하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변적인 사랑의 마음을 갖고 4천 년 동안 참아오셨고, 싸워오셨고, 사랑해 오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기 일신의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민족 앞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묵묵히 4천 년 동안 참아오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4천 년 역사 과정에 있어서 사탄과 관계된 곡절의 사실들을 느끼고 그것을 영계로부터 내적으로 증거받고 밝혀냈습니다. 나아가, 4천 년 역사 속에 숨겨져 있던 천륜의 비밀을 밝히고, 하나님의 내적인 참으심의 실체기대를 이루고, 외적인 실체기대를 30여 평생에 세워 놓지 않으면 안될 책임을 짊어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려운 입장에 처하면 처할수록 자아를 찾을 생각을 해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 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예수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참아 나오신 그 마음, 인간 하나를 찾기 위해서 참으시던 그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마음을 해원하기 위한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 30여 년간 준비의 생활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까지 만민을 대하여 변명하지 않으셨고, 원수 사탄을 대해서도 변명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전체의 심정을 체휼하려던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외로운 입장에 처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고 참았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참으심의 생활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위하여 참으셨고, 예수님은 아버지를 위하여 참았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기 위해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신 것을 느끼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30여 평생 자신을 떠나 하나님을 위해 참았던 연고로 사탄의 참음을 능가했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참아 나오신 길, 그 길을 파괴하기 위하여 발버둥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참은 이상의 아버지의 참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던 예수님은 그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와 같이 참았기 때문에 참음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참아오신 심정의 기대를 발판으로 하여 그 위에 서 가지고 사탄과 싸우는 데 있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싸워 이겼으되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참아 나오신 심정이 파괴될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78)


참음의 심정으로 사탄을 이긴 예수님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이 참지 못할 환경에 처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놓고 참았기 때문에, 또 사탄도 참을 수 없었던 입장에서 참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사탄을 대해서 싸울 수 있었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한 분을 찾기에 4천 년 역사의 피 흘리신 노정을 거치셨습니다. 또, 인간은 자기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싸움의 역사노정을 걸어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4천 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싸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목적은 사탄의 품에 있는 불쌍한 인류를 위한 것이고, 예수님 한 분을 내세우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존재로 나타났던가?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사탄과 싸워 이기신 것을 대신한 실체요, 화신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하나님을 대신한 싸움의 주인공으로 이 땅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우셨던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외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땅 위에 세워야 할 책임을 지고 실천했던 노정이 바로 3년 공생애의 노정이었습니다. 


그 3년 공생애의 기간에 있어서 사탄은 자기 일신의 승리를 위하여 예수님과 싸웠으나 패배했으므로 다시금 민족을 동원하여 예수님과 싸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행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싸움의 화신,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토로하던 하나님의 대신 실체로서 3년 공생애의 노정을 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변명하실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만민 앞에서 사탄과 싸우던 입장에서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자기를 위해 섭리해 나오신 그 수고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싸움의 노정으로 나타났던 그 한 사실을 깨달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내적으로 세우신 전체의 뜻을 외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싸움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사탄의 싸움에 있어서 사탄은 자기를 위하여 싸웠지만 예수님은 하늘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거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자기를 위하여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싸움의 목적은 자기에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싸움의 목적을 하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변치 않으시는 한 끝까지 변치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뜻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인류 앞에 그러한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1-80)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신 실체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을 대신하여 모든 어려움과 슬픔을 참으면서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인계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서 사탄과 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던 과정에서 사탄이 자기를 위한 목적을 중심삼고 공격하게 될 때 그 영향은 예수님 자신에게만 미쳐진 것이 아니요, 하나님한테까지 미쳐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홀로 참으면서 사탄을 대해 싸웠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던 순간까지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나타낸 생애였습니다. 그의 생애노정,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노정은 사탄과 싸우면서 걸은 시련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탄 앞에 내주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신으로 온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다는 절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사탄이 굴복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4천 년 동안 하나님 홀로 전체의 세계를 바라보며 슬퍼하고 걱정하고 수고하셨는데, 예수님 한 분이 지상에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그를 중심삼은 사탄과의 새로운 싸움이 전개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잊고 하나님을 위해 싸워나갔을 뿐만 아니라, 죽는 자리에서도 자기를 위한 욕망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이 가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승리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인간들을 위해 자기 일신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사탄세계에서 나타낼 수 없었던 사랑을 예수님은 나타냈기 때문에 사탄이 그의 사랑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자기로서의 찾을 바의 뜻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4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 서러워하시기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도 서러워하기 시작했고, 또한 사탄도 서러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간 것을 놓고 하나님과 인간만이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놓고 사탄도 슬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사탄의 슬픔이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님의 사랑의 결실은 더 많이 맺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시지 않는 한 그 자신도 변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 년 동안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셨지만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예수 한 분을 세워 비로소 그 뜻을 이루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을 통하여 그 뜻을 이 땅 위에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4천 년 섭리의 증거적인 실체로서 나타나야 했는데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뜻이 사탄에게 짓밟힌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실체로서 4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활의 영광이었습니다. (1-81)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님


그 부활은 4천 년 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사탄과의 싸움을 승리한 영광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승리적인 기준을 영적으로나 실체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새로운 섭리를 전개하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인하여 4천 년 섭리역사의 책임을 맡고 선조들의 책임을 맡아 가지고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저나라에 간 것이 부활 승천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내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 위에 실체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왔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영광은 내적인 영광과 외적인 영광이 합해져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명을 하기 위해서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의 실체로 온 독생자 예수님과 유대민족이 멀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속에 있던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이 지상의 영광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4천 년 섭리역사를 도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상에서 실현시켰어야 했던 예수님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돌아감으로써 하늘의 내적인 영광은 영적인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미완의 영광을 이루어 가지고 승천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한 후 영계에서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사탄에 대해서 벌이시던 하늘의 싸움,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해서 벌이시던 싸움, 뜻을 이루시기 위한 섭리적인 싸움, 그리고 성신을 대신하여 사랑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영계에 가서 하나님이 해 오시던 싸움을 인계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대신으로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 앞에 인간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고 하늘의 사랑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승리해야 할 터전은 어디인가? 다름이 아닌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 위에 남아 있는 이 싸움의 노정을 누가 책임져야 되겠느냐?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받아 싸우고 있는데 성신과 우리는 지상에서 합력하여 내적인 싸움과 섭리를 실체적으로 완결하기 위한 사랑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싸움은 영적으로만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영육 아울러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할 운명이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받아 지금까지 싸워 나오던 것과 이 땅에서 30여 평생을 희생해 가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싸우던 것을 우리들이 인계받아 이겨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여, 예수님이여, 성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4천 년 수고의 결실체로 왔고,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최초의 완성체로 온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다 이루어드리지 못한 한이 남아 있고, 또 십자가의 피 흘린 사랑의 심정이 땅 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못다 이룬 사명을 인계받아 영육 아울러 이루어 가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애노정을 다 바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던 길을 계승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개체를 아버지 앞에 세워 놓고 비판해 보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탄과 싸웠고, 예수님이 간 이후로 2천 년 동안에도 성신과 함께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여러분이 닮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자기 일신을 세워 승리의 싸움을 전개한 것이 어느 한 날이 아니고 30여 평생의 기간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 년 동안 섭리하신 아버지의 마음, 뜻을 이루기 위해 안타까워하던 예수님의 마음, 그리고 성신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참아야 할 노정에 있어서 마음을 다해서 참지 못한다면 여러분 하나로 말미암아 6천 년 동안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뜻, 예수님이 평생 수고한 뜻, 예수님이 돌아간 이후로 성신이 2천 년 동안 수고한 뜻이 다 좌절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뜻을 위한 싸움을 전개해야 되겠습니다. (1-83)


우리의 사명


예수님은 원수들의 반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성에서 몰리면 저 성으로 찾아갔고, 이 곳에서 천대하면 저 곳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은 자기의 일신을 변명할 줄 몰랐습니다. 하늘의 생명을 갖고 왔으나 그 가치를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무언의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온 예수님, 나아가 십자가의 산정에서도 자기 일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중심삼고 증거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찾으려는 어떠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고 할진대는 그것이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서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무친 30여 평생을 대신해야 되겠고, 오늘날까지 참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4천 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단을 세우고 민족을 통하여 섭리하던 선지자들의 마음을 대신해야 되겠고,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던 그 마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자기를 세우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마음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워 사탄을 슬프게 했던 것과 같은 그러한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6천 년 동안의 모든 싸움을 종결지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참음의 모든 싸움노정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또, 하늘의 뜻을 증거하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4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 참으신 뜻, 참으신 영광, 참으신 사랑의 승리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하늘의 뜻만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자기 한 자체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체의 영광을 결실해 드리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마음과 몸으로 승리의 결실을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고 몸으로는 성신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고 몸으로는 성신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성신이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할 수 있었던 영광을 갖추었지만, 성신은 아직까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 6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여 영육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한 승리의 영광을 대신하는 사람이 나와야 되고, 성신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4천 년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 마음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6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은 영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다함의 뜻과 다함의 마음과 다함의 성품을 갖춘 성신이 이 땅에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실체, 성신의 대신 실체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땅 위에서 성신까지 해방시켜 주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끝날인 오늘날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6천 년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신이 바라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싸움의 노정에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삼위신의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싸움의 노정과 인내의 노정을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1-86)* 


 


천일국 훈독경 제4권 17일, 원문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날짜 : 1956. 5. 27(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창조이상과 예수님의 강림목적


에덴 동산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고, 온 피조만물이 하나님께 환희의 경배를 드리고 기뻐하며 살 수 있는 동산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동산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시던 소망의 영광을 땅 위에 나타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실체로 나타내야 했던 것이 우리 조상 아담 해와의 책임이었는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을 이루어 가지고 기뻐하시려던 본연의 그 동산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인류는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어둠의 세력과 대결하여 싸움의 길을 거쳐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6천 년 역사의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땅 위의 억조창생과 영계의 천군천사 그리고 피조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감사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한날을 맞이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 땅 위에 보내셨고, 4천 년 역사가 경과한 후 하나님 자신의 실체로 보내 주신 분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존재가 나타났으므로 뭇 백성들은 즐거워하고 감사를 돌려야 했는데, 즉 택해 세웠던 이스라엘 민족과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웠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서러움의 탄식과 원한의 탄식을 남겨야 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습니다. 

예수님이 남긴 말씀을 오늘날 우리들이 보게 될 때, 그 말씀은 그 당시에 믿지 않았던 백성들만을 대해서 부르짖은 말씀이 아닙니다. 만민을 대해선 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남아진 길이 아니 가려야 아니 갈 수 없었던 운명의 길이었음을 알았고, 타락한 인간들이 어느 한 때 어느 한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지 못했고 성품을 다하지 못했고 뜻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던 예수님은 당당하게 나서서 부르짖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당당하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한 마디의 말씀이 여러분 일신에만 해당되는 말씀으로만 알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은 무엇을 나타낸 말씀이냐? 예수님은 4천 년 역사과정에 스며들어 있었던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하나님을 시봉해야 할 책임을 느꼈고, 어느 때 어느 한 시간에라도 자신은 그때까지 4천 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마음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목숨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뜻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하늘의 영광이 예수님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예수님의 영광이 만민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만민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에 미쳐져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민족이 단절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일신에 이루어졌던 부활의 영광, 감사의 영광은 오늘날 인류의 소망으로 남아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화신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한 존재, 역사과정에 없었던 승리의 화신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신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쌓여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예수님이 마음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뜻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뜻을 다하셨음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품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성품을 다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복음의 화신으로서 중보적인 존재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창조의 이념을 통한 말씀이요, 영광의 이념으로 세워진 말씀이요, 아버지의 숨겨진 마음을 나타낸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만을 사랑하셔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한 말씀을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이 실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해 책임을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도 하나님을 대해서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증거한 예수님의 말씀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내려오고 있습니다.(1-76)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찾아오신 하나님


그래서 이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해야 되겠고, 하나님 자신이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 년 동안 인간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나오셨는가? 자기를 위하려는 마음을 갖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당장 죽어 마땅할 인간이요, 고통을 당해 마땅할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대해 마음을 다하시던 입장에서 참음의 4천 년 역사노정을 걸어오셨고, 또 뜻을 다하여 4천 년 동안 사탄을 분별하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변적인 사랑의 마음을 갖고 4천 년 동안 참아오셨고, 싸워오셨고, 사랑해 오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기 일신의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노정은 마음을 다하던 희생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30여 평생의 노정에 있어서 민족 앞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묵묵히 4천 년 동안 참아오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4천 년 역사 과정에 있어서 사탄과 관계된 곡절의 사실들을 느끼고 그것을 영계로부터 내적으로 증거받고 밝혀냈습니다. 나아가, 4천 년 역사 속에 숨겨져 있던 천륜의 비밀을 밝히고, 하나님의 내적인 참으심의 실체기대를 이루고, 외적인 실체기대를 30여 평생에 세워 놓지 않으면 안될 책임을 짊어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려운 입장에 처하면 처할수록 자아를 찾을 입장에 있었지만 찾을 생각을 해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 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예수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참아 나오신 그 마음, 인간 하나를 찾기 위해서 참으시던 그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마음을 해원하기 위한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 30여 년간 준비의 생활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까지 누구를 대하여도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만민을 대하여 변명하지 않으셨고, 원수 사탄을 대해서도 변명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전체의 심정을 체휼하려던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외로운 입장에 처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고 참았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참으심의 생활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위하여 참으셨고,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참았던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여 참았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기 위해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신 것을 느끼고 자기를 위하여 참았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30여 평생 자신을 떠나 하나님을 위해 참았던 연고로 사탄의 참음을 능가했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참아 나오신 길, 그 길을 파괴하기 위하여 발버둥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참은 이상의 아버지의 참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던 예수님은 그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와 같이 참았기 때문에 참음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참아오신 심정의 기대를 발판으로 하여 그 위에 서 가지고 사탄과 싸우는 데 있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싸워 이겼으되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참아 나오신 심정이 파괴될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78)



참음의 심정으로 사탄을 이긴 예수님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이 참지 못할 환경에 처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놓고 참았기 때문에, 또 사탄도 참을 수 없었던 입장에서 참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또 참는 자의 표상으로서 세워졌기 때문에 사탄을 대해서 싸울 수 있었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한 분을 찾기에 4천 년 역사의 피 흘리신 노정을 거치셨습니다. 또, 인간은 자기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싸움의 역사노정을 걸어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4천 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오셨지만 하나님 자신을 중심하고 싸우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오늘날까지 싸워 나오면서 원하는 것은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 자기를 중심하고 하나님과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싸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목적은 사탄의 품에 있는 불쌍한 인류를 위한 것이고, 예수님 한 분을 내세우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존재로 나타났던가?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사탄과 싸워 이기신 것을 대신한 실체요, 화신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하나님을 대신한 싸움의 주인공으로 이 땅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우셨던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외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땅 위에 세워야 할 책임을 지고 실천했던 노정이 바로 3년 공생애의 노정이었습니다. 

그 3년 공생애의 기간에 있어서 사탄은 자기 일신의 승리를 위하여 예수님과 싸웠으나 패배했으므로 다시금 민족을 동원하여 예수님과 싸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년 공생애의 기간에 어떠한 어려운 싸움의 자리에서도 결코 자기를 중심하고 싸운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행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싸움의 화신,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토로하던 하나님의 대신 실체로서 3년 공생애의 노정을 걸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변명하던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변명하실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만민 앞에서 사탄과 싸우던 입장에서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자기를 위해 섭리해 나오신 그 수고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싸움의 노정으로 나타났던 그 한 사실을 깨달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내적으로 세우신 전체의 뜻을 외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싸움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사탄의 싸움에 있어서 사탄은 자기를 위하여 싸웠지만 예수님은 하늘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거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자기를 위하여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싸움의 목적은 자기에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싸움의 목적을 하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변치 않으시는 한 끝까지 변치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뜻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인류 앞에 그러한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1-80)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신 실체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을 대신하여 모든 어려움과 슬픔을 참으면서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인계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어느 자리 어느 곳에 있든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서 사탄과 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던 과정에서 사탄이 자기를 위한 목적을 중심삼고 공격하게 될 때 그 영향은 예수님 자신에게만 미쳐진 것이 아니요, 하나님한테까지 미쳐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수난을 당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그 자신을 위하여 참으신 것같이, 만민을 위하여 참으신 것같이, 그리고 당시까지의 섭리노정에서 사탄을 대해 하나님이 싸워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30여 평생을 홀로 참으면서 사탄을 대해 싸웠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던 순간까지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나타낸 생애였습니다. 그의 생애노정,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노정은 사탄과 싸우면서 걸은 시련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탄 앞에 내주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는데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셨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신으로 온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다는 절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사탄이 굴복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4천 년 동안 하나님 홀로 전체의 세계를 바라보며 슬퍼하고 걱정하고 수고하셨는데, 예수님 한 분이 지상에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그를 중심삼은 사탄과의 새로운 싸움이 전개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잊고 하나님을 위해 싸워나갔을 뿐만 아니라, 죽는 자리에서도 자기를 위한 욕망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이 가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승리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인간들을 위해 자기 일신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반대하던 것까지도 잊을 정도의 입장에서 인류를 위해 손을 들어 기도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나타낼 수 없었던 사랑을 예수님은 나타냈기 때문에 사탄이 그의 사랑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자기로서의 찾을 바의 뜻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4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 서러워하시기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도 서러워하기 시작했고, 또한 사탄도 서러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간 것을 놓고 하나님과 인간만이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놓고 사탄도 슬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사탄의 슬픔이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님의 사랑의 결실은 더 많이 맺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시지 않는 한 그 자신도 변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 년 동안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셨지만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예수 한 분을 세워 비로소 그 뜻을 이루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을 통하여 그 뜻을 이 땅 위에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4천 년 섭리의 증거적인 실체로서 나타나야 했는데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뜻이 사탄에게 짓밟힌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실체로서 4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활의 영광이었습니다. (1-81)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님


그 부활은 4천 년 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하늘의 영광을 대신한 것이요, 4천 년간의사탄과의 싸움을 승리한 영광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승리적인 기준을 영적으로나 실체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새로운 섭리를 전개하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인하여 4천 년 섭리역사의 책임을 맡고 선조들의 책임을 맡아 가지고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저나라에 간 것이 부활 승천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내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 위에 실체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왔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영광은 내적인 영광과 외적인 영광이 합해져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명을 하기 위해서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의 실체로 온 독생자 예수님과 유대민족이 멀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속에 있던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이 지상의 영광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4천 년 섭리역사를 도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상에서 실현시켰어야 했던 예수님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돌아감으로써 하늘의 내적인 영광은 영적인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미완의 영광을 이루어 가지고 승천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한 후 영계에서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사탄에 대해서 벌이시던 하늘의 싸움,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해서 벌이시던 싸움, 뜻을 이루시기 위한 섭리적인 싸움, 그리고 성신을 대신하여 사랑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영계에 가서 하나님이 해 오시던 싸움을 인계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대신으로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 앞에 인간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고 하늘의 사랑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승리해야 할 터전은 어디인가? 다름이 아닌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 위에 남아 있는 이 싸움의 노정을 누가 책임져야 되겠느냐?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받아 싸우고 있는데 성신과 우리는 지상에서 합력하여 내적인 싸움과 섭리를 실체적으로 완결하기 위한 사랑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싸움은 영적으로만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영육 아울러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할 운명이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받아 지금까지 싸워 나오던 것과 이 땅에서 30여 평생을 희생해 가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싸우던 것을 우리들이 인계받아 이겨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여, 예수님이여, 성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4천 년 수고의 결실체로 왔고,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최초의 완성체로 온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에 못다 이룬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3년 공생애 기간의 싸움의 노정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다 이루어드리지 못한 한이 남아 있고, 또 십자가의 피 흘린 사랑의 심정이 땅 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못다 이룬 사명을 인계받아 영육 아울러 이루어 가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애노정을 다 바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던 길을 계승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개체를 아버지 앞에 세워 놓고 비판해 보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탄과 싸웠고, 예수님이 간 이후로 2천 년 동안에도 성신과 함께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여러분이 닮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자기 일신을 세워 승리의 싸움을 전개한 것이 어느 한 날이 아니고 30여 평생의 기간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 년 동안 섭리하신 아버지의 마음, 뜻을 이루기 위해 안타까워하던 예수님의 마음, 그리고 성신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참아야 할 노정에 있어서 마음을 다해서 참지 못한다면 여러분 하나로 말미암아 6천 년 동안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뜻, 예수님이 평생 수고한 뜻, 예수님이 돌아간 이후로 성신이 2천 년 동안 수고한 뜻이 다 좌절되고 맙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뜻을 위한 싸움을 전개해야 되겠습니다. (1-83)



우리의 사명


예수님은 원수들의 반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성에서 몰리면 저 성으로 찾아갔고, 이 곳에서 천대하면 저 곳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은 자기의 일신을 변명할 줄 몰랐습니다. 하늘의 생명을 갖고 왔으나 그 가치를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무언의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온 예수님, 나아가 십자가의 산정에서도 자기 일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중심삼고 증거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찾으려는 어떠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고 할진대는 그것이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생각해서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무친 30여 평생을 대신해야 되겠고, 오늘날까지 참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4천 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단을 세우고 민족을 통하여 섭리하던 선지자들의 마음을 대신해야 되겠고,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던 그 마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자기를 세우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마음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워 사탄을 슬프게 했던 것과 같은 그러한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6천 년 동안의 모든 싸움을 종결지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참음의 모든 싸움노정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또, 하늘의 뜻을 증거하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4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 참으신 뜻, 참으신 영광, 참으신 사랑의 승리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하늘의 뜻만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자기 한 자체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체의 영광을 결실해 드리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마음과 몸으로 승리의 결실을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고 몸으로는 성신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고 몸으로는 성신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성신이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할 수 있었던 영광을 갖추었지만, 성신은 아직까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 6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여 영육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한 승리의 영광을 대신하는 사람이 나와야 되고, 성신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4천 년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 마음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6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은 영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다함의 뜻과 다함의 마음과 다함의 성품을 갖춘 성신이 이 땅에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실체, 성신의 대신 실체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생명을 주신 아버지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땅 위에서 성신까지 해방시켜 주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끝날인 오늘날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6천 년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신이 바라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싸움의 노정에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삼위신의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싸움의 노정과 인내의 노정을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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