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4권 14일
참사랑을 가지고 오신 참부모님(훈독본)
날짜 : 1988. 12. 27(화)
장소 : 한국 한남동 공관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부모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아버지다.” 하는데 어떤 아버지입니까? 지금까지 기독교는 모르면서 그냥 아버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아버지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알지 못하면 설명하지 못합니다. 설명을 못 하는 것은 현실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아버지의 자리, 참부모의 자리에 계시는 분입니다. 종적인 축은 하나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영원불변입니다.
그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부모 앞에 아담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와 같이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는 왜 하셨느냐? 종적인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의 발판이 없고 발판이 없으니까 활동하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활동하기 위해서는 횡적인 발판이 필요합니다. 종적인 것이 횡적인 발판을 중심삼고 주고받으면 운동이 벌어집니다. (184-250)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류 조상을 당신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시려고 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종적인 주체가 되는 창조주 앞에 횡적인 주체입니다. 그래서 동과 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횡적인 주체가 됨으로써 종적인 주체와 90도를 맞추어 중앙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내적인 사랑과 외적인 사랑이 하나됨으로써 종적인 기준 앞에 횡적인 사랑의 판도가 확장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횡적인 사랑의 판도를 확대하시기 위해서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류의 시조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184-258)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셨습니다. 종적인 주체가 되는 창조주 앞에 횡적인 주체입니다. 그래서 동과 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횡적인 주체가 되어서 90도를 맞추어 가지고 중앙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사랑의 길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돌아가기를 싫어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해도 직격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종적인 저 높은 곳에 계시면 수직, 제일 직단거리를 통하셔야 됩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수직밖에 없기 때문에 직단거리입니다. 제일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참사랑은 수직으로 결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론적으로 심각했습니다. 이론적인 근거가 사상적인 체제를 중심삼고 개인적인 인생관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관과 우주관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방향성이 달라서는 안됩니다. 일치될 수 있는 방향성을 무엇으로 찾을 것이냐? 민족적인 정신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민족적인 지식이나 전통 혹은 문화배경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사랑의 전통 외에는 없습니다. 그 사랑의 전통은 하나이고 직선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직선의 역사를 거쳐오는 전통이 사탄세계에는 없습니다. 사탄세계는 곡선적이고 혼선적인 것으로 사랑이 엮어져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다가 다 떨어져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찾아오는 길은 수직선 외에는 없습니다. (184-258)
사랑은 직단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어디에 가서 만나느냐? 둘이 중앙으로 가야 됩니다. 남자가 조금만 더 가도 “왜 더 가?” 하고, 여자가 조금 더 가도 “왜 더 가? 똑같이 가야지!” 하는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그러니까 중앙에 와서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90도를 이루게 됩니다.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종적인 수직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90도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이 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이요, 원형적인 모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로서 종적인 자리에 계시지만, 남자와 여자는 횡적인 부모로 성숙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몸과 마음이 공명하게 됩니다. (184-261)
인간세계, 타락의 세계에는 이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꿈같은 얘기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참사랑은 좀 다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초창기에 선생님을 중심삼고 남자나 여자가 전부 다 미쳤습니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어했느냐? 이 세상의 여자 남자가 서로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통일교회의 식구가 아니었습니다.
종횡을 중심삼은 참사랑은 종적으로 나오는 힘이 횡적으로 통하고 횡적으로 나오는 힘이 90도를 통하면 주변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바람이 불게 되면, 봄바람이 불게 되면 사람이란 존재는 전부 다 꽃이 피게 되어 있습니다. 초창기에 통일교회에는 심정적인 봄동산이 열렸습니다. 그러니 70이 된 노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밤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아이구, 언제 보나?” 하면서 그리워했습니다.
남자 여자가 사모하는 첫사랑의 이상으로 사랑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세계의 나이를 초월해서 남자나 여자가 한 방향으로 집중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연 가운데서 전부가 선생님에 대해서 야단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를 택했습니다. 그때 통일교회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도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고, 아주머니나 과부도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으며, 처녀들까지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혼자 사니까 “내가 선생님의 아내가 되어야 하겠다.” 하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렇게 소용돌이를 쳤는데 80대의 소용돌이로부터 70대의 소용돌이, 60대의 소용돌이, 50대의 소용돌이, 40대의 소용돌이, 30대의 소용돌이, 20대의 소용돌이, 10대의 소용돌이까지 쳤습니다. 그 바람이 불어서 10대로부터 70대와 80대까지 묶어놓아야 여자가 타락한 세계의 모든 곡절을 풀 수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그렇게 야단이었으니까 남편들이 자기의 아내를 돌멩이로 치고, 몽둥이로 치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뭐 안 한 짓이 없었습니다.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꼴을 다 봤습니다. 선생님이 자기의 여편네를 빼앗아 데리고 산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많은 여자들을 어떻게 다 데리고 살았겠어요?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욕이라는 욕을 다 퍼붓고, 할 짓 못할 짓을 다 했습니다. 옥에 가두고, 발길로 차고, 모둠매를 치는 등 별의별 짓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여자를 잘못 가르쳐서 그러한 수욕의 길이 생겼으니까 여자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는 선생님을 치라고 했습니다. 통일교회 배후의 역사를 생각하면 꿈같은 일들이 현실에 적용되어서 실제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을 전통으로 알고 그 역사를 대할 때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고, 하늘땅 앞에 수욕의 모습을 해방받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184-262)
천지의 기원이 될 주인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차려야 됩니다. 바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들고, 선생님을 내 아버지로 만들어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희생시켜서 아들의 길을 닦았습니다.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딸의 길을 닦은 것입니다. 인간 때문에 만물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신약시대는 부모님이 올 길을 위해서 아들이 제물 된 시대였습니다. 그것이 신약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부모의 자리를 설정하는 것이 창조이상이었기 때문에 거짓된 사랑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끝에서부터 탕감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만물이 피를 흘렸습니다. 거짓된 사랑의 피를 탕감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쪼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을 부르기 위한 역사였고, 신약시대는 아들을 희생시켜 부모님을 이 땅에 부르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했는데, 그 주가 누구였느냐? 참아버지였습니다. 거짓아버지의 뿌리를 가지게 된 것이 인간의 탄식이었기 때문에 “참아버지가 되시는 뿌리가 오소서!” 한 것입니다. 그게 메시아의 사상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뭔지 모르고 있습니다. 메시아, 구세주가 뭐냐? 사랑의 구세주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어떤 환경에서도 해방권을 이룰 수 있는 구세주입니다. 구약시대에 만물을 희생시켜 사랑의 아들을 찾았는데, 그 아들의 한이 무엇이었느냐? 부모를 못 모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를 흘려서라도 부모님이 올 길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2천 년 역사였습니다. (184-266)
부모님이 오시면, 그때는 만국 전체가 하나의 나라가 됩니다. 땅과 만민이 기독교의 품에 있었는데, 외적인 만물과 내적인 인간이 하나되면 가인권과 아벨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이 사랑으로 통일되는 데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도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기독교의 국가들이 부모가 되시는 분을 역사이래 없었던 귀한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재산과 자식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분이 왔지만, 기독교를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를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부모가 왔지만, 천지의 기원이 될 주인이 왔지만 반대했습니다. (184-267)
종적인 심정권을 남기기 위해서
참부모를 이 땅 위에 모셔서 만국의 해방을 갖추는 것이 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가 그 사명을 하지 못하고 통일교회의 문 선생을 반대함으로써 남북이 갈라졌고 동서가 분립되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사실을 요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40년 전에 이런 얘기를 할 때, 누가 선생님의 말을 들었어요? “쫓겨났으니까 할 수 없어서 저런 말을 하지! 거짓말을 해도 저렇게 뻔뻔스럽게 뼈다귀도 없는 갈비처럼 하누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올라갔습니다. 기독교가 선생님을 받들었으면 아래서부터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횡적인 기준에서 기독교와 모든 국가들이 협조하던 가운데 선생님이 어머니를 만나서 축복결혼식을 했더라면 만국이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선생님에게 핍박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모가 땅 위에 임재할 수 있게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제물과 아들을 통해서 준비했던 터전 위에 아버지가 왔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가정을 이루어 만국에 왕권을 세우지 못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쫓겨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던 길을 하나님이 환영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이 협조하시면 안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협조하셨다면 기독교를 구해 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치시면서 한국의 기독교를 키워 나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셔야 되었느냐? 만일 하나님이 선생님을 보호하시려면 기독교를 치시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핍박을 받으면서 극복하여 본래의 자리까지 올라와야 했습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핍박을 받아야 되었습니다. 사탄이 총동원해서 들이친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생활은 감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감옥이 개인적으로 종적인 기반을 닦는 곳이 되었습니다. 지상지옥에 하나님의 종적인 심정권을 남기기 위해서는 감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 제일 가까운 직단거리였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되었습니다. (184-271)
아버지가 책임져야
복귀의 길을 가려면 종에 종의 길, 종의 길, 양자의 길, 서자의 길, 직계 자녀의 길, 그 다음에 어머니 아버지의 길을 걸어서 하나님한테로 돌아가야 됩니다. 8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도 영광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쫓겨난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망국지종이 되어서 원수의 세계에서 감옥에 처박히고, 노동판에 처박히고, 포로와 같이 취급받았습니다. 등에는 죄수의 이름이 붙고 포로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부터 올라온 것입니다.
그렇게 종적으로 거꾸로 올라가는 그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밖에 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역사를 망쳤으니까 아버지가 책임져야 합니다. 아버지가 책임을 못 함으로써 어머니가 그 꼴이 되어 망했으니까 아버지가 책임져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종의 종으로부터 올라온 것입니다. 그렇게 종적인 기준을 닦았으니까 사탄이 아무리 치더라도 안 꺾여 나갑니다. (184-279)
감옥에서 구세주가 못 되고 평화시대에 구세주라고 한다면, 그는 가짜의 구세주입니다. 감옥에서 구세주의 권위를 갖추게 되면 평화세계에서는 구세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군왕이 됩니다. 왕권을 중심삼고 만국을 지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러한 권위를 갖추었습니다. 그 증거로 흥남감옥에서 선생님과 같이 옥중생활을 한 사람이 ‘옥중의 성자’라는 제목으로 선생님에 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감옥이 선생님한테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제아무리 채찍이 무서웠고 환경이 모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향심을 꺾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흠모하던 사랑과 힘에 꺾어졌습니다. 그 힘을 중심삼고 선생님은 종적인 단계를 해방할 수 있었던 터전을 공고히 닦았습니다. 개인, 가정, 종족, 국가, 세계적인 기준까지 그 터전을 닦으면서 올라왔습니다. (184-282)
인류의 부모로서 걸은 사랑의 십자가의 길
이제 선생님은 죽더라도 세계의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선생님의 무덤을 찾아올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학자세계도 그렇고, 정치계도 그렇고,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노동자도 그렇고, 농민도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 5천 년의 역사과정에서 누구보다도 피 어린 희생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나라들 가운데 이 나라를 수습해서 선생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수습대책을 벌써 몇 세기 전부터 세우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민족은 무릎이 닳도록 꿇고 합장하여 천상세계에 감사해야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를 선생님이 분하게 생각했으면, 이 민족은 옥살박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몰라서 반대하니까 선생님이 찾아가서 흉금을 터놓고 가르쳐 준 후에도 반대하거든 벌해 달라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이 땅에 선생님이 부모님의 이름을 가지고 와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만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니까 인류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를 모르니까 선생님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모른다고 해서 벌을 줄 수 없습니다. 내용이 어떻게 돼서 부모가 되고, 어떻게 돼서 자식이 된 것을 모르고 반대하기 때문에 칠 수 없습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그들이 알 수 있게 되는 날까지 기다리다 보니 80세가 되었습니다. (184-290)
요즘에는 한국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문 아무개” 하더니 “문 선생” 하다가 요즘에는 “문 총재님”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세계의 대통령이지!” 하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고 “단군 할아버지 이후로 5천 년의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난 위인”이라고 한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138-196)
이제는 그만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통일교회의 후세들에게 순교라는 이름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순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기억할지언정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은 잊어버리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그 나라를 위해서 보냄을 받았으면 그 나라를 구하고 죽어야 할 텐데 구하지 못하고 죽었으니까 책임을 다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앞에는 원수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원수들도 잊어버리려고 생각합니다. 그들로부터 욕을 먹고도 잊어버리려고 생각하고, 매를 맞고도 잊어버리려고 생각하고, 분한 모든 것들도 잊어버리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섭리가 확장되지 않습니다.
이 땅 위에 부모로 책임하러 와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개인한테 차이고, 가정들한테 차이고, 종족들한테 차였습니다. 공산당의 인민재판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인민재판을 받듯이 천대받았고, 가정적으로도 선생님의 가정이 미국에 가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우리 애들까지도 학교에서 “무니, 무니…!” 하던 천대를 받았습니다. (184-291)
통일교회의 역사는 선생님의 피 어린 투쟁사
선생님의 가정이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선생님 개인의 십자가는 물론이지만 어머니도 십자가를 져야 했던 것입니다. 또,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십자가도 져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1960년도부터 3차 7년 노정 동안 선생님이 가정을 이끌고 세계적인 십자가의 무대에 나선 것입니다.
선생님은 21년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날부터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 참하나님의 날까지 찾아 세웠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피 어린 투쟁사의 기록입니다. 자녀의 날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자식들을 고생시켜야 했습니다. 만물의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소유가 없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의 집안에 내 것이 있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흘렸고, 만물의 날과 하나님의 날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이 땅 위에서 나라의 기준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그 기준을 넘어선 날이 1968년 정월 초하루였습니다. 7년 노정 이후에야 가능했습니다. 그 기간에 사탄이 갖은 흉악한 궤계(詭計)를 선생님의 가정과 통일교회를 대해서 꾸몄습니다.
선생님이 참부모의 가정을 완성하기 위해서 1960년에 선생님이 성혼식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머니를 데려다가 교육해 나왔습니다. 훌륭한 여자를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박사학위를 가진 여자가 없었나, 석사학위를 가진 여자가 없었나…. 무슨 한다하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던 어머니를 모셔다가 교육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해와가 아담을 통해서 지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몰랐던 가운데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친척들이 많아서도 안되었습니다. 3대가 따라오면 안되었습니다. 종적인 기준에서 정상적이어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어머니가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오빠도 없었거니와 아버지도 없었고 혼자였습니다. 모녀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는 한국의 대표였습니다.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고 하는 복중교에서부터 따라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그런 모든 해와적인 책임을 한 한국의 역사를 대표한 할머니들로부터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3년 동안 어머니와 같이 살지 못하고 밖에 따로 집을 구해서 살게 했습니다. 그 당시에 껄렁껄렁했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울고불고 하면서 다녔기 때문에 그들을 자리잡게 해 주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뒷방살이를 시키면서 가인 여자들을 어머니를 사랑한 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적인 사랑의 인연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자리잡을 때까지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 여자들 가운데는 “어머니의 자리를 내가 차지해야 되겠다. 어머니의 자리를 내놓아라!” 하면서 어머니의 방에 찾아와서 떼쓰던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그게 세상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이었습니까? (184-292)
지금에 와서 보니까 어머니를 잘 모셨습니다. 그 동안에 어머니는 아이들 열 넷을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는 데도 어머니가 챔피언으로서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낳았는데도 아이들을 보면 팔삭둥이가 아니라 다 잘생겼습니다. (184-294)*
천일국 훈독경 제4권 14일, 원문
참사랑을 가지고 오신 참부모님
날짜 : 1988. 12. 27(화)
장소 : 한국 한남동 공관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부모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아버지다.” 하는데 어떤 아버지입니까? 지금까지 기독교는 모르면서 그냥 아버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아버지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알지 못하면 설명하지 못합니다. 설명을 못 하는 것은 현실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아버지의 자리, 참부모의 자리에 계시는 분입니다. 종적인 축은 하나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영원불변입니다.
그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부모 앞에 아담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와 같이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부모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몰랐습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는 이것을 확실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냐? 지금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생각만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틀림없이 그렇다는 실험을 해서 틀림없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말이 그렇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이것이 일반 지도자들과 다른 점입니다. 일반 지도자들과 같이 응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제(實際)를 가지고 실천하면서 사는 동시에 실제의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실제를 증명하는 하나의 표본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는 왜 하셨느냐? 종적인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의 발판이 없고 발판이 없으니까 활동하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활동하기 위해서는 횡적인 발판이 필요합니다. 종적인 것이 횡적인 발판을 중심삼고 주고받으면 운동이 벌어집니다. (184-250)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류 조상을 당신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시려고 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종적인 주체가 되는 창조주 앞에 횡적인 주체입니다. 그래서 동과 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횡적인 주체가 됨으로써 종적인 주체와 90도를 맞추어 중앙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내적인 사랑과 외적인 사랑이 하나됨으로써 종적인 기준 앞에 횡적인 사랑의 판도가 확장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횡적인 사랑의 판도를 확대하시기 위해서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류의 시조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184-258)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셨습니다. 종적인 주체가 되는 창조주 앞에 횡적인 주체입니다. 그래서 동과 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횡적인 주체가 되어서 90도를 맞추어 가지고 중앙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사랑의 길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돌아가기를 싫어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해도 직격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종적인 저 높은 곳에 계시면 수직, 제일 직단거리를 통하셔야 됩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수직밖에 없기 때문에 직단거리입니다. 제일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참사랑은 수직으로 결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론적으로 심각했습니다. 이론적인 근거가 사상적인 체제를 중심삼고 개인적인 인생관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관과 우주관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방향성이 달라서는 안됩니다. 일치될 수 있는 방향성을 무엇으로 찾을 것이냐? 민족적인 정신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민족적인 지식이나 전통 혹은 문화배경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사랑의 전통 외에는 없습니다. 그 사랑의 전통은 하나이고 직선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직선의 역사를 거쳐오는 전통이 사탄세계에는 없습니다. 사탄세계는 곡선적이고 혼선적인 것으로 사랑이 엮어져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다가 다 떨어져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찾아오는 길은 수직선 외에는 없습니다. (184-258)
초창기 통일교회의 식구들
남자 여자가 동서에 있는데, 그들이 참사랑의 길을 찾아간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최단거리의 직선이라면, 남자가 동쪽으로부터 중앙에 와 닿고 여자가 서쪽으로부터 중앙에 와 닿으면 맞게 되어 있습니다. 왜 맞느냐? 오목 볼록이기 때문에 맞는 것입니다. 여자가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남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또, 남자가 찾아가는 것도 하나님이 아니라 여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남자 여자를 찾으면 하나님은 참사랑 가운데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왜 태어났고, 여자가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은 천지의 대도를 통하고 천지의 모든 권한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상속권이 있고, 언제나 동거할 수 있고, 언제나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가는 데는 아내가 언제든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남편이 자는 데 들어갈 때 아내가 인사하고 들어갑니까? 남편은 여편네가 궁둥이를 잡아뜯더라도 “이거 왜 이래?” 하면서도 들어오라고 이불을 들추게 돼 있지 내쫓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동거권이 있는 것입니다. (184-259)
사랑은 직단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어디에 가서 만나느냐? 둘이 중앙으로 가야 됩니다. 남자가 조금만 더 가도 “왜 더 가?” 하고, 여자가 조금 더 가도 “왜 더 가? 똑같이 가야지!” 하는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그러니까 중앙에 와서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90도를 이루게 됩니다.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종적인 수직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90도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이 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이요, 원형적인 모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로서 종적인 자리에 계시지만, 남자와 여자는 횡적인 부모로 성숙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몸과 마음이 공명하게 됩니다. (184-261)
오시는 주님, 메시아는 무엇을 가지고 오느냐? 참사랑을 가지고 옵니다. 참사랑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합니다. 참사랑은 할아버지 할머니, 인간의 종지조상까지 올라가 봐도 필요합니다. 우리 조상인 아담 해와도 참사랑이 필요했고, 하나님한테도 참사랑이 필요합니다. (237-284)
인간세계, 타락의 세계에는 이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꿈같은 얘기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참사랑은 좀 다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초창기에 선생님을 중심삼고 남자나 여자가 전부 다 미쳤습니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어했느냐? 이 세상의 여자 남자가 서로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통일교회의 식구가 아니었습니다.
종횡을 중심삼은 참사랑은 종적으로 나오는 힘이 횡적으로 통하고 횡적으로 나오는 힘이 90도를 통하면 주변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바람이 불게 되면, 봄바람이 불게 되면 사람이란 존재는 전부 다 꽃이 피게 되어 있습니다. 초창기에 통일교회에는 심정적인 봄동산이 열렸습니다. 그러니 70이 된 노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밤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아이구, 언제 보나?” 하면서 그리워했습니다.
남자 여자가 사모하는 첫사랑의 이상으로 사랑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세계의 나이를 초월해서 남자나 여자가 한 방향으로 집중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연 가운데서 전부가 선생님에 대해서 야단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를 택했습니다. 그때 통일교회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도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고, 아주머니나 과부도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으며, 처녀들까지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혼자 사니까 “내가 선생님의 아내가 되어야 하겠다.” 하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렇게 소용돌이를 쳤는데 80대의 소용돌이로부터 70대의 소용돌이, 60대의 소용돌이, 50대의 소용돌이, 40대의 소용돌이, 30대의 소용돌이, 20대의 소용돌이, 10대의 소용돌이까지 쳤습니다. 그 바람이 불어서 10대로부터 70대와 80대까지 묶어놓아야 여자가 타락한 세계의 모든 곡절을 풀 수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그렇게 야단이었으니까 남편들이 자기의 아내를 돌멩이로 치고, 몽둥이로 치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뭐 안 한 짓이 없었습니다.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꼴을 다 봤습니다. 선생님이 자기의 여편네를 빼앗아 데리고 산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많은 여자들을 어떻게 다 데리고 살았겠어요?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욕이라는 욕을 다 퍼붓고, 할 짓 못할 짓을 다 했습니다. 옥에 가두고, 발길로 차고, 모둠매를 치는 등 별의별 짓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여자를 잘못 가르쳐서 그러한 수욕의 길이 생겼으니까 여자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는 선생님을 치라고 했습니다. 통일교회 배후의 역사를 생각하면 꿈같은 일들이 현실에 적용되어서 실제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을 전통으로 알고 그 역사를 대할 때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고, 하늘땅 앞에 수욕의 모습을 해방받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184-262)
끝날의 탕감복귀
끝날의 탕감복귀는 아담 해와의 때 벌어졌던 모든 일들이 그냥 그대로 재현되는 것입니다. 전세계의 남자 여자를 두고 볼 때, 남자의 대표자로 내세운 것이 참아버지고 여자의 대표자로 내세운 것이 참어머니입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전부 다 아버지의 분신이고, 여자들은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이 땅 위의 여자들은 역사이래 참남편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남성을 맞을 수 있게끔 참아버지와 참어머니를 중심삼고 생활해야 됩니다. 이 아버지는 세계적인 아버지의 입장인 동시에 복귀를 위해서는 남편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하늘이 공인하고 부모가 공인하는 이상적인 남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전부 다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여자든, 호랑이 같은 여자든, 미치광이 같은 여자든, 그저 말 궁둥이같이 생긴 여자든 선생님만 보게 되면 좋다는 것입니다. 설명 없이 좋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택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전부 다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팔십 난 할머니도 “내 남편은 문 선생이다.” 했습니다. 열두 살 난 여자까지도 “내 이상상대는 선생님이다. 다른 데 시집 안 간다.” 그랬습니다. (166-265)
6천 년만에 그러한 봄은 단 한 번 오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사춘기라는 것은 한 번입니다. 혼인을 결정할 때까지 봄바람이 불었는데, 그것이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수천 년이나 수만 년의 역사를 거쳐서 비로소 한국 땅에서 분 것입니다.
이화여대의 사건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380명의 여자 대학생들에게 바람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80여 명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왔습니다. 목욕하러 간다고 해서 뛰쳐나오기도 했습니다. 나오지 말라고 하니까 “못 나오게 하려면 나를 죽여 주시오!” 하면서까지 나왔습니다. 죽어도 학교는 못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곁에서 똥 냄새가 나고 발 구린 냄새가 나도 그것이 구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163-258)
천지의 기원이 될 주인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차려야 됩니다. 바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들고, 선생님을 내 아버지로 만들어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희생시켜서 아들의 길을 닦았습니다.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딸의 길을 닦은 것입니다. 인간 때문에 만물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신약시대는 부모님이 올 길을 위해서 아들이 제물 된 시대였습니다. 그것이 신약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부모의 자리를 설정하는 것이 창조이상이었기 때문에 거짓된 사랑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끝에서부터 탕감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만물이 피를 흘렸습니다. 거짓된 사랑의 피를 탕감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쪼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을 부르기 위한 역사였고, 신약시대는 아들을 희생시켜 부모님을 이 땅에 부르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했는데, 그 주가 누구였느냐? 참아버지였습니다. 거짓아버지의 뿌리를 가지게 된 것이 인간의 탄식이었기 때문에 “참아버지가 되시는 뿌리가 오소서!” 한 것입니다. 그게 메시아의 사상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뭔지 모르고 있습니다. 메시아, 구세주가 뭐냐? 사랑의 구세주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어떤 환경에서도 해방권을 이룰 수 있는 구세주입니다. 구약시대에 만물을 희생시켜 사랑의 아들을 찾았는데, 그 아들의 한이 무엇이었느냐? 부모를 못 모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를 흘려서라도 부모님이 올 길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2천 년 역사였습니다. (184-266)
부모님이 오시면, 그때는 만국 전체가 하나의 나라가 됩니다. 땅과 만민이 기독교의 품에 있었는데, 외적인 만물과 내적인 인간이 하나되면 가인권과 아벨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이 사랑으로 통일되는 데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도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기독교의 국가들이 부모가 되시는 분을 역사이래 없었던 귀한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재산과 자식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분이 왔지만, 기독교를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를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부모가 왔지만, 천지의 기원이 될 주인이 왔지만 반대했습니다. (184-267)
종적인 심정권을 남기기 위해서
예수님은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세계, 무형세계와 실체세계를 맺어 줄 수 있는 주체적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참사랑과 이상의 표상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긍정한 오른편 강도와 예수님을 부정한 왼편 강도는 선악의 씨가 되어서 뿌려진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주가 참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찾아 올 때는 어떻게 되느냐? 예수님의 때에 벌어졌던 것과 반대가 됩니다. 그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싸웠습니다. 그러니까 오시는 주님의 때에는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2차대전 때 영국과 미국 그리고 불란서가 연합국으로 하나되었습니다. 영국은 여자였고, 미국은 영국의 아들이었습니다. 미국은 남자였고, 불란서는 천사장격이었습니다. 하늘 편의 아담국가, 해와국가, 그리고 천사장의 국가가 하나되어 오시는 아버지를 모셔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였느냐? 재림주였습니다.
그 연합국을 상대해서 추축국이 등장했습니다. 일본이 해와였고, 독일은 악마세계에서 제일 악한 차자권이었습니다. 이태리는 장자권이었습니다. 독일을 주축으로 해서 세 나라가 하나되고, 미국을 주축으로 해서 영국과 불란서가 하나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늘 편 장자와 사탄 편 장자가 부딪쳐서 사탄 편을 때려잡음으로써 통일세계가 된 것입니다.
해와의 품에서 장자권과 차자권이 연합해서 오시는 아버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신랑을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왜 신랑을 찾아야 했느냐? 사랑의 동기가 그릇되어 있었고, 핏줄을 이어받은 것이 그릇되었으니까 그것을 청산해야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참사랑을 가지고 왔습니다. 참사랑과 참생명 그리고 참혈통의 씨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담이 참사랑과 참생명 그리고 참혈통을 중심삼고 결혼해서 그 씨를 전수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해야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영국과 미국 그리고 불란서가 선생님을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지도를 받았으면 다 끝났을 것입니다. (229-301)
참부모를 이 땅 위에 모셔서 만국의 해방을 갖추는 것이 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가 그 사명을 하지 못하고 통일교회의 문 선생을 반대함으로써 남북이 갈라졌고 동서가 분립되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사실을 요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40년 전에 이런 얘기를 할 때, 누가 선생님의 말을 들었어요? “쫓겨났으니까 할 수 없어서 저런 말을 하지! 거짓말을 해도 저렇게 뻔뻔스럽게 뼈다귀도 없는 갈비처럼 하누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올라갔습니다. 기독교가 선생님을 받들었으면 아래서부터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횡적인 기준에서 기독교와 모든 국가들이 협조하던 가운데 선생님이 어머니를 만나서 축복결혼식을 했더라면 만국이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선생님에게 핍박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모가 땅 위에 임재할 수 있게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제물과 아들을 통해서 준비했던 터전 위에 아버지가 왔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가정을 이루어 만국에 왕권을 세우지 못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쫓겨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던 길을 하나님이 환영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이 협조하시면 안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협조하셨다면 기독교를 구해 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치시면서 한국의 기독교를 키워 나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셔야 되었느냐? 만일 하나님이 선생님을 보호하시려면 기독교를 치시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핍박을 받으면서 극복하여 본래의 자리까지 올라와야 했습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핍박을 받아야 되었습니다. 사탄이 총동원해서 들이친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생활은 감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감옥이 개인적으로 종적인 기반을 닦는 곳이 되었습니다. 지상지옥에 하나님의 종적인 심정권을 남기기 위해서는 감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 제일 가까운 직단거리였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되었습니다. (184-271)
아버지가 책임져야
복귀의 길을 가려면 종에 종의 길, 종의 길, 양자의 길, 서자의 길, 직계 자녀의 길, 그 다음에 어머니 아버지의 길을 걸어서 하나님한테로 돌아가야 됩니다. 8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도 영광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쫓겨난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망국지종이 되어서 원수의 세계에서 감옥에 처박히고, 노동판에 처박히고, 포로와 같이 취급받았습니다. 등에는 죄수의 이름이 붙고 포로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부터 올라온 것입니다.
그렇게 종적으로 거꾸로 올라가는 그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밖에 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역사를 망쳤으니까 아버지가 책임져야 합니다. 아버지가 책임을 못 함으로써 어머니가 그 꼴이 되어 망했으니까 아버지가 책임져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종의 종으로부터 올라온 것입니다. 그렇게 종적인 기준을 닦았으니까 사탄이 아무리 치더라도 안 꺾여 나갑니다. (184-279)
감옥에서 구세주가 못 되고 평화시대에 구세주라고 한다면, 그는 가짜의 구세주입니다. 감옥에서 구세주의 권위를 갖추게 되면 평화세계에서는 구세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군왕이 됩니다. 왕권을 중심삼고 만국을 지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러한 권위를 갖추었습니다. 그 증거로 흥남감옥에서 선생님과 같이 옥중생활을 한 사람이 ‘옥중의 성자’라는 제목으로 선생님에 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감옥이 선생님한테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제아무리 채찍이 무서웠고 환경이 모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향심을 꺾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흠모하던 사랑과 힘에 꺾어졌습니다. 그 힘을 중심삼고 선생님은 종적인 단계를 해방할 수 있었던 터전을 공고히 닦았습니다. 개인, 가정, 종족, 국가, 세계적인 기준까지 그 터전을 닦으면서 올라왔습니다. (184-282)
지금까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나오기는 쉬웠지만 싸움을 극복하는 입장에 처했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했느냐? 타락은 해와가 했지만, 그 해와의 입장을 대신한 여자가 책임질 수 없었습니다. 아담의 입장을 대신한 남자가 심정적인 모든 문제를 조절해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남자로서 사랑을 중심삼고 어느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길을 개척해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한 분이 아니고서는 악한 사랑을 제거하고 선한 사랑을 발전시켜 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와 같이 주님이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비소하는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아 놓고 침을 뱉어 가면서 조롱하던 이스라엘 족속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44-289)
인류의 부모로서 걸은 사랑의 십자가의 길
이제 선생님은 죽더라도 세계의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선생님의 무덤을 찾아올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학자세계도 그렇고, 정치계도 그렇고,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노동자도 그렇고, 농민도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 5천 년의 역사과정에서 누구보다도 피 어린 희생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나라들 가운데 이 나라를 수습해서 선생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수습대책을 벌써 몇 세기 전부터 세우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민족은 무릎이 닳도록 꿇고 합장하여 천상세계에 감사해야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를 선생님이 분하게 생각했으면, 이 민족은 옥살박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몰라서 반대하니까 선생님이 찾아가서 흉금을 터놓고 가르쳐 준 후에도 반대하거든 벌해 달라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이 땅에 선생님이 부모님의 이름을 가지고 와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만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니까 인류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를 모르니까 선생님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모른다고 해서 벌을 줄 수 없습니다. 내용이 어떻게 돼서 부모가 되고, 어떻게 돼서 자식이 된 것을 모르고 반대하기 때문에 칠 수 없습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그들이 알 수 있게 되는 날까지 기다리다 보니 80세가 되었습니다. (184-290)
요즘에는 한국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문 아무개” 하더니 “문 선생” 하다가 요즘에는 “문 총재님”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세계의 대통령이지!” 하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고 “단군 할아버지 이후로 5천 년의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난 위인”이라고 한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138-196)
이제는 그만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통일교회의 후세들에게 순교라는 이름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순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기억할지언정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은 잊어버리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그 나라를 위해서 보냄을 받았으면 그 나라를 구하고 죽어야 할 텐데 구하지 못하고 죽었으니까 책임을 다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앞에는 원수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원수들도 잊어버리려고 생각합니다. 그들로부터 욕을 먹고도 잊어버리려고 생각하고, 매를 맞고도 잊어버리려고 생각하고, 분한 모든 것들도 잊어버리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섭리가 확장되지 않습니다.
이 땅 위에 부모로 책임하러 와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개인한테 차이고, 가정들한테 차이고, 종족들한테 차였습니다. 공산당의 인민재판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인민재판을 받듯이 천대받았고, 가정적으로도 선생님의 가정이 미국에 가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우리 애들까지도 학교에서 “무니, 무니…!” 하던 천대를 받았습니다. (184-291)
통일교회의 역사는 선생님의 피 어린 투쟁사
선생님의 가정이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선생님 개인의 십자가는 물론이지만 어머니도 십자가를 져야 했던 것입니다. 또,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십자가도 져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1960년도부터 3차 7년 노정 동안 선생님이 가정을 이끌고 세계적인 십자가의 무대에 나선 것입니다.
선생님은 21년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날부터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 참하나님의 날까지 찾아 세웠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피 어린 투쟁사의 기록입니다. 자녀의 날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자식들을 고생시켜야 했습니다. 만물의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소유가 없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의 집안에 내 것이 있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흘렸고, 만물의 날과 하나님의 날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이 땅 위에서 나라의 기준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그 기준을 넘어선 날이 1968년 정월 초하루였습니다. 7년 노정 이후에야 가능했습니다. 그 기간에 사탄이 갖은 흉악한 궤계(詭計)를 선생님의 가정과 통일교회를 대해서 꾸몄습니다.
선생님이 참부모의 가정을 완성하기 위해서 1960년에 선생님이 성혼식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머니를 데려다가 교육해 나왔습니다. 훌륭한 여자를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박사학위를 가진 여자가 없었나, 석사학위를 가진 여자가 없었나…. 무슨 한다하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던 어머니를 모셔다가 교육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해와가 아담을 통해서 지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몰랐던 가운데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친척들이 많아서도 안되었습니다. 3대가 따라오면 안되었습니다. 종적인 기준에서 정상적이어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어머니가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오빠도 없었거니와 아버지도 없었고 혼자였습니다. 모녀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는 한국의 대표였습니다.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고 하는 복중교에서부터 따라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그런 모든 해와적인 책임을 한 한국의 역사를 대표한 할머니들로부터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3년 동안 어머니와 같이 살지 못하고 밖에 따로 집을 구해서 살게 했습니다. 그 당시에 껄렁껄렁했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울고불고 하면서 다녔기 때문에 그들을 자리잡게 해 주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뒷방살이를 시키면서 가인 여자들을 어머니를 사랑한 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적인 사랑의 인연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자리잡을 때까지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 여자들 가운데는 “어머니의 자리를 내가 차지해야 되겠다. 어머니의 자리를 내놓아라!” 하면서 어머니의 방에 찾아와서 떼쓰던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그게 세상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이었습니까? (184-292)
지금에 와서 보니까 어머니를 잘 모셨습니다. 그 동안에 어머니는 아이들 열 넷을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는 데도 어머니가 챔피언으로서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낳았는데도 아이들을 보면 팔삭둥이가 아니라 다 잘생겼습니다. (184-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