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소명과 재림역사, 下 (천일국 훈독경 제4권 13일)

訓讀王 | 20191213071109

천일국 훈독경 제4권 13일, 원문

 

첨부파일 20 훈독경 4권 13일 下 하늘의 소명과 재림역사 1.mp3


하늘의 소명과 재림역사,(훈독본)

날짜 : 1990. 12. 30(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재림역사의 시작과 준비


그 허씨 부인은 주님이 오시면 모실 생활적인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33년 동안 살다가 뜻을 못 이루고 원치 않는 십자가에 돌아갔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주님은 한국 사람으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키는 얼마나 크고 체격은 어떻다는 것까지 계시를 받아서 옷가지에서부터 침구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준비했습니다. 원래 그런 것을 다 준비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한 자가 땅 위에 없을진대 주님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옛날의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이 누우실 방 한 칸도 준비를 못 하여 예수님이 말구유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한을 가진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택한 사람을 세우셔서 생활적인 모든 것, 즉 입으실 옷이라든지 계실 방이라든지 가정기물의 일체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그 시대에 문화생활을 하던 동서양의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최고의 수준으로 모든 것을 다 준비시키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120문도가 그렇게 못하고 한을 남겼으니까 세계적인 사명을 지고 오실 주님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못해도 1천2백 명 이상의 교인들이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교파를 중심삼고 움직여 나와야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이 아담형의 국가로 복귀되어야 했습니다. 일본은 해와국가요, 한국은 아담국가였습니다. 아담이 해와에게 주관받았으므로 아담국가가 되어야 했던 한국은 그 방식대로 일본에게 36년간 압제를 당했습니다. 원래는 40년 고난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40년 만에 나왔다는 말입니다. 일제 하 36년에다가 군정시대의 4년을 합친 40년의 고난기간을 거쳐서 한국은 해방과 더불어 복귀된 아담형의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해방되자마자 재림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천적으로 볼 때 한 부인이 소생역사의 사명을 했고, 또 한 부인이 중간적인 책임을 했으니까 새로운 것이 나와야 했습니다. 노아가 비둘기를 내보낼 때 1차와 2차는 같은 비둘기였지만 3차에는 다른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은 나라를 중심삼고 벌어졌지만 3차대전은 다른 것을 중심삼고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곧 직계가 책임을 못 하면 일시적으로 탕감조건을 세워서 한꺼번에 넘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그러한 사명을 하는 사람이 나와야 했습니다. 여성으로서 그런 사람이 나와야 했습니다. 3대에 걸쳐서 그렇게 해야 되었습니다. 그러니 허씨 부인 이외에 그러한 사명을 한 부인이 또 한 사람 있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그러한 천적인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해방 직후부터 그 일을 책임지고 나섰습니다. 그 전에는 친구들도 선생님이 뭘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신앙생활을 잘하던 한 청년으로 알았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있던 동생들도 몰랐습니다. 부모도 몰랐고,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은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새로운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편에서도 그랬지만, 남자의 편에서도 그러한 일을 해야 되었습니다. 남자들도 여자들과 대비하여 신령역사를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남자는 동쪽이고, 여자는 서쪽이었습니다. 서쪽이었던 철산에서는 여자들이 신령역사를 했고, 동쪽인 원산을 중심삼고는 남자들의 신령역사가 벌어졌습니다. 황국주, 이용도, 백남주 등이 신령역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러한 외적인 형태를 기반으로 한 신령역사를 책임지고 나온 사람이 이용도 목사였습니다. 그는 한국 교계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서른 세 살에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까 그의 대(代)를 이은 한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8-224)


재림기에 세례 요한의 사명자와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었느냐? 제일 믿지 못할 말을 하던 사람을 만나야 했습니다.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던 사람을 만나야 되었고, “나는 주님의 일등 신부”라고 하던 사람을 만나야 되었고, 더 나아가서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던 사람을 만나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신령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한국의 교계를 들춰봤으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선(救援船)이라고 하던 신앙단체에 김예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타락문제에 대해서 원칙적인 것은 몰랐지만 실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인계받은 그 사람은 세례 요한적인 사명을 띤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사탄을 막아주어야 할 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이란 존재는 타락한 아담이 되살아난 존재, 즉 사탄의 지배를 받아 떨어졌다가 부활한 아담,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아담형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탄에 대해서 승리한 것을 상속받은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받아서는 안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뜻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꺾어졌기 때문에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대신으로 옛날에 아담을 꺾었던 사탄과 역사적인 대결을 하기 위해서 나섰는데, 그것이 40일 금식기간의 싸움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스무 살을 넘으면서부터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떠한 길을 통해서라도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장에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세례 요한이 예수님한테 축복해 준 것처럼 그 사람도 선생님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자기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말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식구의 모양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세례를 받으려고 세례 요한을 찾아갔던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의 모든 기반을 그대로 인계받아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봉사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수고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6개월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6개월 동안에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수제자들 전부를 선생님에게 인계해야 할 천적인 사명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내적으로 모모의 인사들 앞에 그런 말을 했고, 또 선생님이 직접 말하지 않았더라도 하늘이 그들에게 문 선생을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선생이 이러이러한 분인데 하늘이 우리의 선생을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저 문 선생을 따라가라니 웬 말이냐?”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8-226)


선생님은 또 한 사람의 세례 요한적인 사명자였던 김백문을 1945년 10월에 만났으며, 그의 교회에서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던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봉사하던 동안에 영계를 통하던 사람들은 “김백문보다 문 선생을 따르라!”는 계시를 받았으나, 그들은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만난 후 6개월만에 계시를 받고 선생님을 솔로몬 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하면서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진정한 뜻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자진해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상봉 후 21개월만에 선생님은 김백문의 집단에서 나왔습니다. 당시에 김백문은 이승만 박사와 가까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례 요한의 입장에 세우고 뜻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원산의 백남주 목사는 스웨덴보르그를 연구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서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하였고, 그 고난을 탕감하기 위하여 철산의 김성도 씨를 맨발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김성도의 집단을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례 요한적인 사명자였습니다. 그 뒤로 그의 뜻이 이용도와 김백문에게로 옮겨졌습니다. 


1월 18일은 선생님 생애에 있어서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날입니다. 그(김백문)가 받건 받지 아니하건 선생님으로서는 충고하여 청산하지 않고는 심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열 여덟 장의 편지를 썼는데, 그것을 그가 다 찢어버린 날입니다. 그 이후에 선생님은 책임을 다한 입장에서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그 날이 없이는 평양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19-262)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던 분을 지성껏 모신 선생님 


선생님은 “이제는 축복을 받았으니까 그 기준을 가지고 신령한 역사를 하는 부인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부인이다. 누구든지 나한테 굴복해야 구원받는다.” 하던 부인을 찾았습니다. 그 부인은 부활한 해와이자 타락 직후의 해와를 대신한 역사를 했기 때문에 두 쪽의 역사를 하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역사하시고, 또 한때는 사탄도 들어가 역사하던 실체이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인을 만나서 꺾어 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인이 있는가 하면서 각방(各方)으로 수소문하여 찾아 만날 수 있는 길을 터서 그런 부인을 만났습니다. 남이 믿지 않고 남이 알지 못하는 말을 하던 부인을 찾다가 만나니까 참 기뻤습니다. 그 부인은 선생님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사명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으로 가서 그분을 만나서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서 어떻게 귀결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던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던 삼척동자처럼 그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속옷까지 다 빨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모신 그 할머니는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랬다저랬다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이 있으면 모두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탕감복귀시대였기 때문에 앞으로의 만물복귀를 흉내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같이 모셨습니다. 그곳에 모이던 식구들은 그 할머니가 상대해 주지 않으니까 선생님을 보고 모였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 할머니를 지성껏 모셨습니다. 왜 모셨느냐? 하늘의 것은 하늘의 것으로, 사탄의 것은 사탄의 것으로 갈라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갈라놓지 않으면 복귀의 기준을 세울 수 없었으므로 절대복종하고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잡으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해 나오셨느냐? 사탄에게 복종해 나오셨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나오셨습니다. 선생님은 21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 놓고 순종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러면 그만큼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두 가지가 역사했는데, 반드시 사탄이 먼저 와서 역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갔을 때 선생님을 원수시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벌써 그럴 줄 알고 있었기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머리를 숙였습니다. 밟고 책망하더라도 세 번 이상 순종하면 사탄이 밟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실을 증거해야 됩니다. 그때 빼앗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천대를 받으면서도 순종하고 모시면 하늘의 끄트머리 천사장으로 축복해 줍니다. 그러면 “옳지, 되는구나!” 하고 올라갑니다. 탕감복귀의 원칙대로 무엇 무엇을 해 가지고 단계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이 사람은 천상천하의 누구라고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섬겨라!” 할 수 있습니다. (8-227)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하신 선생님


그 할머니는 앞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실 자녀가 자기의 아들딸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아들딸들이 많았습니다.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 10대형의 아들딸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가정적인 출발을 하려면 그 10대형을 갖추어야 됩니다. 열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할머니는 하나님이 자기의 열 아들딸들을 제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그 아들딸들까지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축복해 줄 때까지 그 할머니와 아들딸들까지도 모셨습니다. 어머니같이 모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이 옳고 말고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딸들이고 말고요!” 하면서 모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할머니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 “나는 누구고, 그대는 누구니 복귀의 한을 풀려는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하시오!”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부인인데….” 하던 판국에 자기의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고 자기의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었던 젊은 청년이 그러고 나섰으니 어땠겠습니까? 


거기에서 그 할머니가 순종했다면 선생님도 고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할머니가 순종해야 되었는데 그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굴복하지 않고 반대한 그 시간부터 그 할머니는 정신이 돌아버렸습니다. 사탄이 하늘의 복을 다 빼앗았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선생님에게는 하늘의 강도라는 명패가 붙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안팎의 축복기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도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기준을 세우기까지 안팎의 영적인 시험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시험까지 있었느냐 하면 40일의 시험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영계의 모든 영인들이 전부 그 할머니의 편이 되어서 선생님을 몰아쳤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선생님한테 와서 빌면서 “그 할머니는 여호와의 부인이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딸이니까 제발 모셔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천리의 원칙을 가지고 그들과 싸웠습니다. 선생님은 혼자 수많은 도인들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님까지 동원된 영계와 40일간 싸웠습니다. 그렇지만 싸움판의 천지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40일의 기간이 차면 판정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러한 천리의 원칙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선생님이 찾아 나온 이 길은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이하 수많은 영인들이 역적으로 몰고 반대하던 문(文)이라는 사람의 주장이 복귀의 한을 푸는 원칙이요, 천륜의 비결 중의 비결이란 판결을 받아서 승리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판결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과 싸웠고 하나님과도 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교회가 나왔습니다. 


그런 원칙적인 기준 하에서 역사적인 귀결을 지어 천지의 모든 기준을 종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런 내용을 어느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고 식구들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또, 그것을 전개시키기 위한 복잡한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스물 일곱 살에 평양에 가서 지금 말한 이런 역사를 거쳐서 이 길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오는 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적인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보기엔 선생님이 편안한 것 같아 보일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자기들의 사정을 다 하늘 앞에 고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없는 비밀의 내용을 갖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8-229)*



천일국 훈독경 제4권 13일, 원문

 

하늘의 소명과 재림역사,

날짜 : 1990. 12. 30(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재림역사의 시작과 준비


그 허씨 부인은 주님이 오시면 모실 생활적인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33년 동안 살다가 뜻을 못 이루고 원치 않는 십자가에 돌아갔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주님은 한국 사람으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키는 얼마나 크고 체격은 어떻다는 것까지 계시를 받아서 옷가지에서부터 침구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준비했습니다. 원래 그런 것을 다 준비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한 자가 땅 위에 없을진대 주님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옛날의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이 누우실 방 한 칸도 준비를 못 하여 예수님이 말구유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한을 가진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택한 사람을 세우셔서 생활적인 모든 것, 즉 입으실 옷이라든지 계실 방이라든지 가정기물의 일체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그 시대에 문화생활을 하던 동서양의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최고의 수준으로 모든 것을 다 준비시키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120문도가 그렇게 못하고 한을 남겼으니까 세계적인 사명을 지고 오실 주님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못해도 1천2백 명 이상의 교인들이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교파를 중심삼고 움직여 나와야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이 아담형의 국가로 복귀되어야 했습니다. 일본은 해와국가요, 한국은 아담국가였습니다. 아담이 해와에게 주관받았으므로 아담국가가 되어야 했던 한국은 그 방식대로 일본에게 36년간 압제를 당했습니다. 원래는 40년 고난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40년 만에 나왔다는 말입니다. 일제 하 36년에다가 군정시대의 4년을 합친 40년의 고난기간을 거쳐서 한국은 해방과 더불어 복귀된 아담형의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해방되자마자 재림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천적으로 볼 때 한 부인이 소생역사의 사명을 했고, 또 한 부인이 중간적인 책임을 했으니까 새로운 것이 나와야 했습니다. 노아가 비둘기를 내보낼 때 1차와 2차는 같은 비둘기였지만 3차에는 다른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은 나라를 중심삼고 벌어졌지만 3차대전은 다른 것을 중심삼고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곧 직계가 책임을 못 하면 일시적으로 탕감조건을 세워서 한꺼번에 넘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그러한 사명을 하는 사람이 나와야 했습니다. 여성으로서 그런 사람이 나와야 했습니다. 3대에 걸쳐서 그렇게 해야 되었습니다. 그러니 허씨 부인 이외에 그러한 사명을 한 부인이 또 한 사람 있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그러한 천적인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해방 직후부터 그 일을 책임지고 나섰습니다. 그 전에는 친구들도 선생님이 뭘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신앙생활을 잘하던 한 청년으로 알았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있던 동생들도 몰랐습니다. 부모도 몰랐고,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은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새로운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편에서도 그랬지만, 남자의 편에서도 그러한 일을 해야 되었습니다. 남자들도 여자들과 대비하여 신령역사를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남자는 동쪽이고, 여자는 서쪽이었습니다. 서쪽이었던 철산에서는 여자들이 신령역사를 했고, 동쪽인 원산을 중심삼고는 남자들의 신령역사가 벌어졌습니다. 황국주, 이용도, 백남주 등이 신령역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러한 외적인 형태를 기반으로 한 신령역사를 책임지고 나온 사람이 이용도 목사였습니다. 그는 한국 교계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서른 세 살에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까 그의 대(代)를 이은 한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8-224)


 

재림기에 세례 요한의 사명자와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었느냐? 제일 믿지 못할 말을 하던 사람을 만나야 했습니다.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던 사람을 만나야 되었고, “나는 주님의 일등 신부”라고 하던 사람을 만나야 되었고, 더 나아가서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던 사람을 만나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신령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한국의 교계를 들춰봤으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선(救援船)이라고 하던 신앙단체에 김예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타락문제에 대해서 원칙적인 것은 몰랐지만 실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인계받은 그 사람은 세례 요한적인 사명을 띤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사탄을 막아주어야 할 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이란 존재는 타락한 아담이 되살아난 존재, 즉 사탄의 지배를 받아 떨어졌다가 부활한 아담,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아담형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탄에 대해서 승리한 것을 상속받은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받아서는 안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뜻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꺾어졌기 때문에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대신으로 옛날에 아담을 꺾었던 사탄과 역사적인 대결을 하기 위해서 나섰는데, 그것이 40일 금식기간의 싸움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스무 살을 넘으면서부터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떠한 길을 통해서라도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장에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세례 요한이 예수님한테 축복해 준 것처럼 그 사람도 선생님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자기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말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식구의 모양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세례를 받으려고 세례 요한을 찾아갔던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의 모든 기반을 그대로 인계받아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봉사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수고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6개월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6개월 동안에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수제자들 전부를 선생님에게 인계해야 할 천적인 사명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내적으로 모모의 인사들 앞에 그런 말을 했고, 또 선생님이 직접 말하지 않았더라도 하늘이 그들에게 문 선생을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선생이 이러이러한 분인데 하늘이 우리의 선생을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저 문 선생을 따라가라니 웬 말이냐?”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8-226)

 

선생님은 또 한 사람의 세례 요한적인 사명자였던 김백문을 1945년 10월에 만났으며, 그의 교회에서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던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봉사하던 동안에 영계를 통하던 사람들은 “김백문보다 문 선생을 따르라!”는 계시를 받았으나, 그들은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만난 후 6개월만에 계시를 받고 선생님을 솔로몬 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하면서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진정한 뜻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자진해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상봉 후 21개월만에 선생님은 김백문의 집단에서 나왔습니다. 당시에 김백문은 이승만 박사와 가까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례 요한의 입장에 세우고 뜻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원산의 백남주 목사는 스웨덴보르그를 연구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서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하였고, 그 고난을 탕감하기 위하여 철산의 김성도 씨를 맨발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김성도의 집단을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례 요한적인 사명자였습니다. 그 뒤로 그의 뜻이 이용도와 김백문에게로 옮겨졌습니다. 

1월 18일은 선생님 생애에 있어서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날입니다. 그(김백문)가 받건 받지 아니하건 선생님으로서는 충고하여 청산하지 않고는 심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열 여덟 장의 편지를 썼는데, 그것을 그가 다 찢어버린 날입니다. 그 이후에 선생님은 책임을 다한 입장에서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그 날이 없이는 평양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19-262)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던 분을 지성껏 모신 선생님 


선생님은 “이제는 축복을 받았으니까 그 기준을 가지고 신령한 역사를 하는 부인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부인이다. 누구든지 나한테 굴복해야 구원받는다.” 하던 부인을 찾았습니다. 그 부인은 부활한 해와이자 타락 직후의 해와를 대신한 역사를 했기 때문에 두 쪽의 역사를 하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역사하시고, 또 한때는 사탄도 들어가 역사하던 실체이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인을 만나서 꺾어 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인이 있는가 하면서 각방(各方)으로 수소문하여 찾아 만날 수 있는 길을 터서 그런 부인을 만났습니다. 남이 믿지 않고 남이 알지 못하는 말을 하던 부인을 찾다가 만나니까 참 기뻤습니다. 그 부인은 선생님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사명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으로 가서 그분을 만나서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서 어떻게 귀결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던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던 삼척동자처럼 그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속옷까지 다 빨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모신 그 할머니는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랬다저랬다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이 있으면 모두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탕감복귀시대였기 때문에 앞으로의 만물복귀를 흉내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같이 모셨습니다. 그곳에 모이던 식구들은 그 할머니가 상대해 주지 않으니까 선생님을 보고 모였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 할머니를 지성껏 모셨습니다. 왜 모셨느냐? 하늘의 것은 하늘의 것으로, 사탄의 것은 사탄의 것으로 갈라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갈라놓지 않으면 복귀의 기준을 세울 수 없었으므로 절대복종하고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잡으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해 나오셨느냐? 사탄에게 복종해 나오셨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나오셨습니다. 선생님은 21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 놓고 순종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러면 그만큼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두 가지가 역사했는데, 반드시 사탄이 먼저 와서 역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갔을 때 선생님을 원수시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벌써 그럴 줄 알고 있었기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머리를 숙였습니다. 밟고 책망하더라도 세 번 이상 순종하면 사탄이 밟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실을 증거해야 됩니다. 그때 빼앗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천대를 받으면서도 순종하고 모시면 하늘의 끄트머리 천사장으로 축복해 줍니다. 그러면 “옳지, 되는구나!” 하고 올라갑니다. 탕감복귀의 원칙대로 무엇 무엇을 해 가지고 단계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이 사람은 천상천하의 누구라고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섬겨라!” 할 수 있습니다. (8-227)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하신 선생님


그 할머니는 앞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실 자녀가 자기의 아들딸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아들딸들이 많았습니다.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 10대형의 아들딸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가정적인 출발을 하려면 그 10대형을 갖추어야 됩니다. 열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할머니는 하나님이 자기의 열 아들딸들을 제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그 아들딸들까지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축복해 줄 때까지 그 할머니와 아들딸들까지도 모셨습니다. 어머니같이 모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이 옳고 말고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딸들이고 말고요!” 하면서 모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할머니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 “나는 누구고, 그대는 누구니 복귀의 한을 풀려는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하시오!”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부인인데….” 하던 판국에 자기의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고 자기의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었던 젊은 청년이 그러고 나섰으니 어땠겠습니까? 

거기에서 그 할머니가 순종했다면 선생님도 고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할머니가 순종해야 되었는데 그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굴복하지 않고 반대한 그 시간부터 그 할머니는 정신이 돌아버렸습니다. 사탄이 하늘의 복을 다 빼앗았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선생님에게는 하늘의 강도라는 명패가 붙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안팎의 축복기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도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기준을 세우기까지 안팎의 영적인 시험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시험까지 있었느냐 하면 40일의 시험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영계의 모든 영인들이 전부 그 할머니의 편이 되어서 선생님을 몰아쳤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선생님한테 와서 빌면서 “그 할머니는 여호와의 부인이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딸이니까 제발 모셔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천리의 원칙을 가지고 그들과 싸웠습니다. 선생님은 혼자 수많은 도인들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님까지 동원된 영계와 40일간 싸웠습니다. 그렇지만 싸움판의 천지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40일의 기간이 차면 판정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러한 천리의 원칙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선생님이 찾아 나온 이 길은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이하 수많은 영인들이 역적으로 몰고 반대하던 문(文)이라는 사람의 주장이 복귀의 한을 푸는 원칙이요, 천륜의 비결 중의 비결이란 판결을 받아서 승리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판결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과 싸웠고 하나님과도 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교회가 나왔습니다. 

그런 원칙적인 기준 하에서 역사적인 귀결을 지어 천지의 모든 기준을 종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런 내용을 어느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고 식구들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또, 그것을 전개시키기 위한 복잡한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스물 일곱 살에 평양에 가서 지금 말한 이런 역사를 거쳐서 이 길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오는 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적인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보기엔 선생님이 편안한 것 같아 보일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자기들의 사정을 다 하늘 앞에 고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없는 비밀의 내용을 갖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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