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4권 12일
인류의 참부모로 오시는 재림주(훈독본)
날짜 : 1969. 11. 10(월)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모든 역사는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류의 역사는 참부모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참부모의 말이 그 후손의 말이 되었을 것이요, 그 참부모가 살아가던 생활방식이 후손들의 생활방식이 되었을 것이요, 그 참부모가 느꼈던 환경적인 요건들을 후손들이 느끼며 살아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했고, 그런 다음에는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부모는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은 횡적인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체적인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면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대상이 자녀입니다. 그래서 사위기대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하늘땅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입장입니다. 가정을 두고 보면, 부모는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부모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자녀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만물을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전부 다 잃어버렸으므로 복귀해야 됩니다. 먼저, 타락한 인간이 복귀되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인류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6천 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복귀해 나왔는데, 그것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자리에 돌아가서 뭘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된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새로운 문화역사를 창조하자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생겨나는 것이요, 종족이 생겨나는 것이요, 민족, 국가, 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26-280)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역사가 출발했다면, 그들은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것의 기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탄을 중심삼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를 보면, 모든 것들이 불완전한 세계입니다. 하늘과 땅도 전부 다 사탄세계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처음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왔으니까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지 않으면 하나님도 인간을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고,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사과정을 거쳐서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복귀역사는 탕감해 나가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이 분립됩니다. 하나님은 올라가시고 사탄은 내려오는 와중에서 선과 악이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싸움의 역사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뭘 위해서 그러느냐? 복귀를 위해서 그렇게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한 부모의 때를 맞기 위해서 역사하시는데 어떻게 역사하시느냐? 이제까지 세워 나오셨던 부모와 자식간의 인륜도덕을 때가 되면 희미해지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자식들이 부모를 등한시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선이 악한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하기 때문에 하늘이 그렇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귀가 되어 가면 갈수록 부모와 자식간의 윤리도덕은 희미해집니다. 그 대신에 하늘 편에서는 재림주가 나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참부모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서부터 참의 세계가 출발되고 새로운 주의가 시작됩니다. 거기에서 중심은 어디냐? 악한 부모와 선한 부모가 각각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26-282)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을 해야 했던 예수님
지금까지 6천 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도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렀던 그 아버지는 진짜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양자로 보셨기 때문에 인간 앞에 양부모의 입장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양자의 입장에서 양부모를 부른 것입니다.
양부모는 친부모가 있고 나서 있는 것입니다. 양부모는 친부모보다 먼저 생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오면서 기독교가 부르던 아버지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추구하는 아버지와 그 입장이 다릅니다. 그들이 부르던 아버지는 양부모권에 있던 아버지였습니다. 그것도 오늘날에 와서야 양부모와 양자의 입장이 된 것이지 그전에는 양부모와 양자의 관계도 못 되고 주인과 종의 관계였습니다. 아들이 종의 자리에 있던 천사의 주관을 받고 타락했기 때문에 종의 종의 입장으로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그 가운데서도 야곱의 이전까지는 종의 종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복귀기대의 섭리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입니다. 그 다음에 선민사상을 중심삼은 종의 시대가 됩니다. 그런데 종으로서는 아들딸의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들을 아들딸로서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서 그들 앞에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한 단계 끌어올려 양자의 입장에 세워 놓으시게 된 것입니다.
양자는 가인의 입장입니다. 가인 아벨이라는 입장을 두고 볼 때 아벨형은 하나님 편 아들딸이요, 가인형은 사탄 편 아들딸입니다. 그들은 서로 핏줄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권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직계의 아들로 왔는데, 그 직계 아들의 입장을 결정짓지 않고는 양자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가 나왔기 때문에 양자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나오지 않았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종의 입장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양자의 기준이 성립되려면 양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인하신 양자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혼자서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양자의 부모가 되는 입장에 영적으로 선 분들이 예수님과 성신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종의 자식들을 모아서 영적인 조건을 세워 다시 낳았다는 입장이 되었을 때 인간들이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자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직계의 아들딸은 실체를 통해서 낳게 되어 있지 영적인 기준을 통해서 낳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세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양자의 세계권을 만들었습니다. 양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양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데, 영적으로 그러한 양부모의 사명을 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영적인 세계란 천사형의 세계입니다. 원래는 영적인 세계의 천사장인 사탄까지도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천사장의 입장을 대신해서 예수님과 성신이 영계에서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충신권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왔기 때문에 예수님도 하나님의 장자라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했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보았을 때 예수님은 맏아들의 도리를 다 못 했습니다. 누구든지 실체적인 사랑의 결실을 이루어야 진정한 맏아들이 되지 영적인 사랑만 이루어서는 진정한 맏아들이 못 됩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실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실체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참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으므로 그를 믿던 신도들은 직계의 아들딸이 못 되고 양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양자의 입장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르니까 양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때는 직계 자녀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 다음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정성들여 키워준 양아버지가 있더라도 친아버지가 어디에 있다면 어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부모가 참부모의 입장이 되려면 자기가 그 아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면서 정성을 다하여 길러 준 사연을 그 자식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식이 언젠가는 떠나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게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종의 자식이 나오려면 종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역사노정에서 도(道)를 통해서 나타난 선한 아들딸들이 그러한 종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었던 애국지사니 뭐니 하던 사람들도 종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역사상에 왔다 갔던 공자나 석가와 같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다 종의 부모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만이 양자의 부모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부모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다른 부모들보다 조금은 나았다는 것입니다.
종의 부모가 하늘나라에 가려면 양자의 부모를 통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못 갔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을 두고 보았을 때, 예수님은 공자나 석가 등 많은 다른 성인들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나 석가나 예수님이 다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이외의 다른 성인들은 종의 부모들이요, 예수님은 양자의 부모였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오셔야 할 분은 누구겠습니까? 참부모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왔습니다. (26-284)
참부모는 영적인 부모의 인연을 상속받아야
본래 예수님은 신부가 있어야 했습니다. 창조원칙에 따라서 여자를 창조해야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입장이었으므로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해와를 못 찾았습니다. 찾다가 죽었으니, 예수님은 다시 와야 됩니다. 다시 와서, 장가를 가야 됩니다. 장가가려다 죽었으니 장가가려고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이 오실 때는 혼인잔치를 해야 합니다. 혼인잔치가 뭐예요? 혼인잔치는 시집 장가를 간다는 뜻입니다. 혼인잔치는 결혼잔치입니다. 혼인잔치, 즉 어린양 잔치를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누구냐 하면 타락하기 전 아담 앞에 있었던 해와입니다. 재림주님은 3차 아담입니다. 예수님은 2차 아담이고,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3차 아담입니다. 그래서 3차 아담이 타락하기 전 아담처럼 와 가지고 타락하기 전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해와를 찾아 어린양 잔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됩니다.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악한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한 부모를 가지면 복귀됩니다. 인류에게는 선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는 것은 선한 부모로 등극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사상의 골자입니다. (36-264)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양부모를 받들어서 참부모의 역사에 연결시키기 위하여 전개되어 나왔습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나온 것도 참부모를 맞기 위해서였습니다. 참부모는 곧 재림주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시는 재림주는 아버지요, 신랑 신부는 참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오시는 참부모는 영적인 부모의 인연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런 식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횡적인 기반을 지상에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축복을 받으면 예수님과 성신에게서 부모의 권한을 상속받은 입장이 되기 때문에 지상의 기독교인이나 영계의 영인들이 모두 다 지상에 오신 참부모와 축복가정들의 주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육계에서나 영계에서 예수님의 주관을 받는 것보다도 참부모의 주관을 받는 것을 더 영광으로 여깁니다. 그것은 참부모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하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권한을 재림주에게 상속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재림주에게 상속해 주면서 기뻐하겠어요, 슬퍼하겠어요? 세상 같으면 야당과 여당이 싸우듯이 서로가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쁜 마음으로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가인과 아벨이 가야 할 본연의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천지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여 아벨 앞에 가인이 굴복하는 기준을 결정짓고 나와야 사탄세계를 때려부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상속받는 데는 그냥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축복을 받게 되면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력대결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당시에 복귀섭리의 책임자로 온 것을 알았는가, 몰랐는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실력대결입니다. 복귀역사를 했어야 할 텐데, 예수님이 그것을 알았다면 이 땅에 왔을 때 왜 인간시조가 음란으로 타락했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 한 마디만 남겼으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렇게 고생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원리적인 견해에서 문답을 해야 됩니다. “알았는가, 몰랐는가?” 해서, 만일 모르고 있었다면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그런 실력대결을 한 터전 위에서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벌어집니다. 지금까지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예수님의 통솔을 받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지상에 한 존재가 나와서 예수님을 휘어잡겠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실력대결을 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력대결을 하는 데는 천리의 원칙을 중심삼고 법을 따져 가면서 “이것은 이렇게 되었고, 저것은 저렇게 된 것이 아니냐?”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네 말이 옳다.” 하면서 인정하시는 판결을 받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절차를 거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엄청난 곳입니다. (26-285)
재림주가 참부모의 자격을 갖추려면
복귀섭리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되풀이되어 나온 역사였습니다. 모든 것이 되풀이되면서 점점점 커져 가지고 하나의 형태로 구축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수습하는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부모가 타락함으로써 그렇게 되었으니 부모가 전부 다 책임지고 수습해야 됩니다.
이 땅 위에 참부모가 참부모의 입장으로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력전을 해야 됩니다. 참부모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서 승리해야 됩니다. 먼저, 사탄을 굴복시키고 난 다음에는 영계에 가서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소생, 장성, 완성으로 부모의 3대 역사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먼저, 타락인간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도 천륜을 중심삼고 완전히 굴복시켜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킨 다음에는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땅 위에 자녀의 입장으로 태어난 인간들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심정적인 내용이라든가 살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전반적인 조건을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부모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모에게는 죽은 자식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방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역사과정은 3시대 부모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 중에서 최후에 남아질 부모는 육계나 영계나 사탄세계에서 승리의 결정권을 가지고 나오는 부모입니다. (26-288)
인류의 참부모로 오시는 재림주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와서 구해 준다는 것은 개인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개인적인 구세주가 와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참된 부부의 인연을 맺지 않고는 부부들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종교는 개인구원을 논하고 있지만 가정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타락으로 부모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자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부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형제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복귀해야 됩니다.
앞으로, 주님이 와 가지고 참된 남편으로서 참된 부인을 맞이한 다음에는 부부를 구원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참된 아들딸을 낳아 참된 가정이 생겨나면 그 가정을 본떠서 이 땅 위의 가정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참된 종족이 이루어지면 이 땅 위의 종족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참된 나라가 벌어지면 세계의 나라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참부모의 기원을 못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타락된 부모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핏줄이 다릅니다. 참부모와 거짓부모는 핏줄이 다릅니다. 본래 거짓부모는 생겨날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참부모를 창조하시려고 했는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부모가 된 것입니다. 6천 년 전에 인간시조에 의해서 참부모가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재생창에 넣어 재생해서 참부모의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참부모의 기준을 모체로 해서 다시 재생했다는 자리에 세움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참되고 선한 개인, 가정,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 선한 천국에서 살 수 있게 만들어야 됩니다.
이 땅 위의 천국에서 살면, 우리의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에 속사람은 옷과 같은 몸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천국,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159-297)
인류의 소망의 기점
인류가 역사과정을 통해서 소망해 나온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나라가 있기 전에 이상적인 민족이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민족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이상적인 종족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가정이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가정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부부가 있어야 하며, 이상적인 부부가 있으려면 이상적인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이상적이고 자유로우신 존재로 계셔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고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 왜 아들딸이 사지에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셨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도 자유로운 하나님이 못 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종이 가야 할 길과 양자가 가야 할 길을 닦아 오셨으며, 앞으로 참부모가 와서 가야 할 길까지도 닦아 놓으시지 않으면 안될 수난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앞에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그러한 내적인 사연을 알게 될 때 완전히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유로이 운행하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사탄의 공포가 어디에 있느냐?” 하시는 자리에서 아들딸을 사랑하시게 되면 만물도 기뻐하며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때 그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환경을 가져 보셨습니까? 그런 일이 오늘날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해방되시는 날을 갖기 전에는 인류도 해방될 수 없습니다. 해방된 국가가 되려면 해방된 민족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해방된 세계가 되려면 해방된 국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과 인류의 희망의 귀착점이 되고 신앙자가 승리할 수 있는 기점이 되는 하나의 터전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한의 기원은 인류가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참부모의 거룩한 인연을 중심삼고 그 앞에 순응하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러한 하나의 터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천지가 해방될 수 있고 천국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그 날이 나오지 않고는 역사적이고 엄청난 한을 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선한 가운데 나타나야 할 참부모의 혈연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류가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사탄의 아들과 딸이자 원수의 아들딸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보아서 인간은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인간을 쇠사슬로 묶어서 못 가게 유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정상(情狀)입니다. 그러나 그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최후의 생사결단을 지을 수 있는 인류의 소망의 기점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하나님도 지금까지 바랐던 최후의 소망의 귀착점입니다.
통일교회는 기독교와 같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억천만세 죽음의 피로써 호소하고 소망하면서 남아지기를 갈구하여 세워진 터전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을 부정하고 어서 속히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선한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위업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하루 하루를 새롭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42-289)*
천일국 훈독경 제4권 12일, 원문
인류의 참부모로 오시는 재림주
날짜 : 1969. 11. 10(월)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모든 역사는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류의 역사는 참부모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참부모의 말이 그 후손의 말이 되었을 것이요, 그 참부모가 살아가던 생활방식이 후손들의 생활방식이 되었을 것이요, 그 참부모가 느꼈던 환경적인 요건들을 후손들이 느끼며 살아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했고, 그런 다음에는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담 해와에게 온 만물이 주관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만물의 주관은 혼자서 못 합니다. 반드시, 부모가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 사위기대가 형성된 기반 위에서 만물을 주관해야 됩니다. 혼자는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만물을 주관하고 세계를 주관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에게 축복을 해 주신 것이지 아담에게만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부만으로도 안됩니다. 부부는 종적인 중심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야 했던 중심이었습니다. 영적인 이성성상이 실체적인 이성성상으로 나타나서 개인적인 이성성상을 갖추어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한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어야 했던 것이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되어야 비로소 평면적인 사위기대의 중심으로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는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은 횡적인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체적인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면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대상이 자녀입니다. 그래서 사위기대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하늘땅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입장입니다. 가정을 두고 보면, 부모는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부모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자녀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만물을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전부 다 잃어버렸으므로 복귀해야 됩니다. 먼저, 타락한 인간이 복귀되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인류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6천 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복귀해 나왔는데, 그것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자리에 돌아가서 뭘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된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새로운 문화역사를 창조하자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생겨나는 것이요, 종족이 생겨나는 것이요, 민족, 국가, 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26-280)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역사가 출발했다면, 그들은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것의 기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탄을 중심삼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를 보면, 모든 것들이 불완전한 세계입니다. 하늘과 땅도 전부 다 사탄세계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처음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왔으니까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지 않으면 하나님도 인간을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고,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사과정을 거쳐서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복귀역사는 탕감해 나가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이 분립됩니다. 하나님은 올라가시고 사탄은 내려오는 와중에서 선과 악이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싸움의 역사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뭘 위해서 그러느냐? 복귀를 위해서 그렇게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의 경계선은 어디냐? 본래 선과 악은 한 점에서 출발되었습니다. 그 한 점은 무엇이었느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됩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방향이 악한 쪽으로 틀어져 나간 것이 악한 부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한 부모의 때를 맞기 위해서 역사하시는데 어떻게 역사하시느냐? 이제까지 세워 나오셨던 부모와 자식간의 인륜도덕을 때가 되면 희미해지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자식들이 부모를 등한시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선이 악한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하기 때문에 하늘이 그렇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귀가 되어 가면 갈수록 부모와 자식간의 윤리도덕은 희미해집니다. 그 대신에 하늘 편에서는 재림주가 나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참부모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서부터 참의 세계가 출발되고 새로운 주의가 시작됩니다. 거기에서 중심은 어디냐? 악한 부모와 선한 부모가 각각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26-282)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을 해야 했던 예수님
지금까지 6천 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도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렀던 그 아버지는 진짜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양자로 보셨기 때문에 인간 앞에 양부모의 입장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양자의 입장에서 양부모를 부른 것입니다.
양부모는 친부모가 있고 나서 있는 것입니다. 양부모는 친부모보다 먼저 생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오면서 기독교가 부르던 아버지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추구하는 아버지와 그 입장이 다릅니다. 그들이 부르던 아버지는 양부모권에 있던 아버지였습니다. 그것도 오늘날에 와서야 양부모와 양자의 입장이 된 것이지 그전에는 양부모와 양자의 관계도 못 되고 주인과 종의 관계였습니다. 아들이 종의 자리에 있던 천사의 주관을 받고 타락했기 때문에 종의 종의 입장으로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그 가운데서도 야곱의 이전까지는 종의 종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복귀기대의 섭리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입니다. 그 다음에 선민사상을 중심삼은 종의 시대가 됩니다. 그런데 종으로서는 아들딸의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들을 아들딸로서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앞에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한 단계 끌어올려 양자의 입장에 세워 놓으시게 된 것입니다.
양자는 가인의 입장입니다. 가인 아벨이라는 입장을 두고 볼 때 아벨형은 하나님 편 아들딸이요, 가인형은 사탄 편 아들딸입니다. 그들은 서로 핏줄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권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직계의 아들로 왔는데, 그 직계 아들의 입장을 결정짓지 않고는 양자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가 나왔기 때문에 양자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나오지 않았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종의 입장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아들의 사명과 더불어 부모의 사명까지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아담이 하나님의 앞에는 아들이었고 인류의 앞에는 부모였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입장을 거쳐서 하나님과 하나되어 부모의 자리에 올라와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두 사명을 짊어지고 왔기 때문에 아들의 입장으로서 탕감해야 할 사명과 부모의 입장으로서 탕감해야 할 사명, 그 두 사명을 겸하여 이루어야 했습니다.
양자의 기준이 성립되려면 양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인하신 양자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혼자서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양자의 부모가 되는 입장에 영적으로 선 분들이 예수님과 성신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종의 자식들을 모아서 영적인 조건을 세워 다시 낳았다는 입장이 되었을 때 인간들이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자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직계의 아들딸은 실체를 통해서 낳게 되어 있지 영적인 기준을 통해서 낳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세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양자의 세계권을 만들었습니다. 양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양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데, 영적으로 그러한 양부모의 사명을 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영적인 세계란 천사형의 세계입니다. 원래는 영적인 세계의 천사장인 사탄까지도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천사장의 입장을 대신해서 예수님과 성신이 영계에서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충신권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왔기 때문에 예수님도 하나님의 장자라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했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보았을 때 예수님은 맏아들의 도리를 다 못 했습니다. 누구든지 실체적인 사랑의 결실을 이루어야 진정한 맏아들이 되지 영적인 사랑만 이루어서는 진정한 맏아들이 못 됩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실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실체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참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으므로 그를 믿던 신도들은 직계의 아들딸이 못 되고 양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양자의 입장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르니까 양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때는 직계 자녀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 다음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정성들여 키워준 양아버지가 있더라도 친아버지가 어디에 있다면 어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부모가 참부모의 입장이 되려면 자기가 그 아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면서 정성을 다하여 길러 준 사연을 그 자식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식이 언젠가는 떠나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게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종의 자식이 나오려면 종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역사노정에서 도(道)를 통해서 나타난 선한 아들딸들이 그러한 종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었던 애국지사니 뭐니 하던 사람들도 종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역사상에 왔다 갔던 공자나 석가와 같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다 종의 부모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만이 양자의 부모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부모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다른 부모들보다 조금은 나았다는 것입니다.
종의 부모가 하늘나라에 가려면 양자의 부모를 통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못 갔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을 두고 보았을 때, 예수님은 공자나 석가 등 많은 다른 성인들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나 석가나 예수님이 다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이외의 다른 성인들은 종의 부모들이요, 예수님은 양자의 부모였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오셔야 할 분은 누구겠습니까? 참부모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왔습니다. (26-284)
참부모는 영적인 부모의 인연을 상속받아야
본래 예수님은 신부가 있어야 했습니다. 창조원칙에 따라서 여자를 창조해야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입장이었으므로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해와를 못 찾았습니다. 찾다가 죽었으니, 예수님은 다시 와야 됩니다. 다시 와서, 장가를 가야 됩니다. 장가가려다 죽었으니 장가가려고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이 오실 때는 혼인잔치를 해야 합니다. 혼인잔치가 뭐예요? 혼인잔치는 시집 장가를 간다는 뜻입니다. 혼인잔치는 결혼잔치입니다. 혼인잔치, 즉 어린양 잔치를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누구냐 하면 타락하기 전 아담 앞에 있었던 해와입니다. 재림주님은 3차 아담입니다. 예수님은 2차 아담이고,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3차 아담입니다. 그래서 3차 아담이 타락하기 전 아담처럼 와 가지고 타락하기 전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해와를 찾아 어린양 잔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됩니다.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악한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한 부모를 가지면 복귀됩니다. 인류에게는 선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는 것은 선한 부모로 등극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사상의 골자입니다. (36-264)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양부모를 받들어서 참부모의 역사에 연결시키기 위하여 전개되어 나왔습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나온 것도 참부모를 맞기 위해서였습니다. 참부모는 곧 재림주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시는 재림주는 아버지요, 신랑 신부는 참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오시는 참부모는 영적인 부모의 인연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런 식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횡적인 기반을 지상에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축복을 받으면 예수님과 성신에게서 부모의 권한을 상속받은 입장이 되기 때문에 지상의 기독교인이나 영계의 영인들이 모두 다 지상에 오신 참부모와 축복가정들의 주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육계에서나 영계에서 예수님의 주관을 받는 것보다도 참부모의 주관을 받는 것을 더 영광으로 여깁니다. 그것은 참부모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하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권한을 재림주에게 상속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재림주에게 상속해 주면서 기뻐하겠어요, 슬퍼하겠어요? 세상 같으면 야당과 여당이 싸우듯이 서로가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쁜 마음으로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가인과 아벨이 가야 할 본연의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천지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여 아벨 앞에 가인이 굴복하는 기준을 결정짓고 나와야 사탄세계를 때려부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상속받는 데는 그냥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축복을 받게 되면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력대결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당시에 복귀섭리의 책임자로 온 것을 알았는가, 몰랐는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실력대결입니다. 복귀역사를 했어야 할 텐데, 예수님이 그것을 알았다면 이 땅에 왔을 때 왜 인간시조가 음란으로 타락했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 한 마디만 남겼으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렇게 고생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원리적인 견해에서 문답을 해야 됩니다. “알았는가, 몰랐는가?” 해서, 만일 모르고 있었다면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그런 실력대결을 한 터전 위에서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벌어집니다. 지금까지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예수님의 통솔을 받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지상에 한 존재가 나와서 예수님을 휘어잡겠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실력대결을 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력대결을 하는 데는 천리의 원칙을 중심삼고 법을 따져 가면서 “이것은 이렇게 되었고, 저것은 저렇게 된 것이 아니냐?”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네 말이 옳다.” 하면서 인정하시는 판결을 받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절차를 거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엄청난 곳입니다. (26-285)
재림주가 참부모의 자격을 갖추려면
복귀섭리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되풀이되어 나온 역사였습니다. 모든 것이 되풀이되면서 점점점 커져 가지고 하나의 형태로 구축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수습하는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부모가 타락함으로써 그렇게 되었으니 부모가 전부 다 책임지고 수습해야 됩니다.
어떤 나라의 왕이 있다고 할 때, 그 왕이 태어나면서부터 왕권을 갖고 출발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왕권을 걸어 놓고 싸워서 승리해야 됩니다. 한 나라의 주권자가 출현하는 데는 어떤 조건을 중심삼고 출현하느냐 하면 그 국가의 비상시를 맞이하여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지 않고는 나라의 주권자가 탄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판결지어 최후의 승자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오히려, 횡적으로 보면 그보다 더 잘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싸움을 중심삼고 선도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지고 그 나라를 구해낸 사람이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계대로 해서 태어난 왕자가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또 왕이 될 만큼 잘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왕자는 선조가 승리한 업적의 기반 위에서 승리자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왕조에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그 승리의 권한이 계승됩니다. 그 국가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한 왕의 후손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는 것이 천법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반 위에 태어난 왕자에게 그 나라를 지휘할 수 있는 왕의 권한을 주는 것이요, 그때의 권한은 천지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러나 끝날이 되면 그들도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행한 대로 갚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백성들은 어떻게 되느냐? 그 백성들도 행한 대로 갚음을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 위에 참부모가 참부모의 입장으로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력전을 해야 됩니다. 참부모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서 승리해야 됩니다. 먼저, 사탄을 굴복시키고 난 다음에는 영계에 가서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소생, 장성, 완성으로 부모의 3대 역사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먼저, 타락인간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도 천륜을 중심삼고 완전히 굴복시켜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킨 다음에는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땅 위에 자녀의 입장으로 태어난 인간들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심정적인 내용이라든가 살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전반적인 조건을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부모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모에게는 죽은 자식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방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역사과정은 3시대 부모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 중에서 최후에 남아질 부모는 육계나 영계나 사탄세계에서 승리의 결정권을 가지고 나오는 부모입니다. (26-288)
인류의 참부모로 오시는 재림주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남자요, 타락한 여자요, 타락한 천사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대하실 수 있는 남자가 있느냐 할 때 그러한 남자가 없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를 구해 줄 남자가 와야 됩니다. 그가 메시아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입니다. 이 분은 세계를 대표한 남자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남편은 천사장의 후손이기 때문에 천사장의 실체입니다. 본래의 남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남자가 와야 합니다. 그 남자가 누구냐? 재림주입니다. 그 재림주는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타락이란 거짓부모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타락함으로써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인류는 거짓부모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남자를 먼저 지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남자를 먼저 보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 위에 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와서 해와를 찾아 신부로 맞이해야 됩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입니다. 참아버지로 오시는 것입니다. 참아버지는 참어머니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어머니는 참아버지를 중심삼고 해산해야 됩니다. (34-202)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와서 구해 준다는 것은 개인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개인적인 구세주가 와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참된 부부의 인연을 맺지 않고는 부부들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종교는 개인구원을 논하고 있지만 가정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타락으로 부모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자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부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형제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복귀해야 됩니다.
앞으로, 주님이 와 가지고 참된 남편으로서 참된 부인을 맞이한 다음에는 부부를 구원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참된 아들딸을 낳아 참된 가정이 생겨나면 그 가정을 본떠서 이 땅 위의 가정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참된 종족이 이루어지면 이 땅 위의 종족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참된 나라가 벌어지면 세계의 나라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참부모의 기원을 못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타락된 부모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핏줄이 다릅니다. 참부모와 거짓부모는 핏줄이 다릅니다. 본래 거짓부모는 생겨날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참부모를 창조하시려고 했는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부모가 된 것입니다. 6천 년 전에 인간시조에 의해서 참부모가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재생창에 넣어 재생해서 참부모의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참부모의 기준을 모체로 해서 다시 재생했다는 자리에 세움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참되고 선한 개인, 가정,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 선한 천국에서 살 수 있게 만들어야 됩니다.
이 땅 위의 천국에서 살면, 우리의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에 속사람은 옷과 같은 몸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천국,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159-297)
인류의 소망의 기점
인류가 역사과정을 통해서 소망해 나온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나라가 있기 전에 이상적인 민족이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민족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이상적인 종족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가정이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가정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부부가 있어야 하며, 이상적인 부부가 있으려면 이상적인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이상적이고 자유로우신 존재로 계셔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고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 왜 아들딸이 사지에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셨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도 자유로운 하나님이 못 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종이 가야 할 길과 양자가 가야 할 길을 닦아 오셨으며, 앞으로 참부모가 와서 가야 할 길까지도 닦아 놓으시지 않으면 안될 수난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앞에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그러한 내적인 사연을 알게 될 때 완전히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유로이 운행하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사탄의 공포가 어디에 있느냐?” 하시는 자리에서 아들딸을 사랑하시게 되면 만물도 기뻐하며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때 그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환경을 가져 보셨습니까? 그런 일이 오늘날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해방되시는 날을 갖기 전에는 인류도 해방될 수 없습니다. 해방된 국가가 되려면 해방된 민족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해방된 세계가 되려면 해방된 국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과 인류의 희망의 귀착점이 되고 신앙자가 승리할 수 있는 기점이 되는 하나의 터전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한의 기원은 인류가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참부모의 거룩한 인연을 중심삼고 그 앞에 순응하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러한 하나의 터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천지가 해방될 수 있고 천국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그 날이 나오지 않고는 역사적이고 엄청난 한을 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선한 가운데 나타나야 할 참부모의 혈연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류가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사탄의 아들과 딸이자 원수의 아들딸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보아서 인간은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인간을 쇠사슬로 묶어서 못 가게 유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정상(情狀)입니다. 그러나 그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최후의 생사결단을 지을 수 있는 인류의 소망의 기점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하나님도 지금까지 바랐던 최후의 소망의 귀착점입니다.
통일교회는 기독교와 같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억천만세 죽음의 피로써 호소하고 소망하면서 남아지기를 갈구하여 세워진 터전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을 부정하고 어서 속히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선한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위업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하루 하루를 새롭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42-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