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날과 우리 (천일국 훈독경 제4권 5일)

訓讀王 | 20191119074100

천일국 훈독경 제4권 5일


첨부파일 24 훈독경 4권 5일 부모의 날과 우리 1.mp3


부모의 날과 우리(훈독본) 


- 제4회 부모의 날 말씀 -

날짜 : 1963. 3. 25(월)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부모의 날의 의의와 그 설정 배경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부모의 날이라고 제정한 3월 초하룻날은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우리 인생이 바라던 제일 귀하다면 제일 귀한 날입니다. 더 이상 귀한 날이 없는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 자식이 부모를 대함에 있어서 슬픔 혹은 한숨이 지어지는 고통의 상정이 없어야 할 것이 본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은 인간의 인연입니다. 그렇지 못한 인연을 가져 온 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복귀섭리의 기준은 어디로 전부 다 집중시켜 나왔느냐? 참부모와 참자녀를 기준으로 해 나왔습니다. 고통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슬픔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혹은 싸움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섭리의 뜻을 세우기 위해 우리의 선조들이 투쟁해 나왔고 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시간에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참부모와 그 부모로부터 흘러나오는 참사랑에 품길 수 있는 참자녀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또한 이것을 갖지 못한 것이 인생의 슬픔이요, 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 못 해준 것이 부모의 슬픔인 동시에 이런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자녀의 슬픔으로 되어 있습니다. (152-101)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게 될 때 “너는 내 아들 중의 아들이요, 내 독생자 중의 독생자다.” 하셨지만, 과연 그를 품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는 입장에 세우셨느냐 할 때 세우시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선민을 대표한 자녀들의 이름을 대신하여 나타났고, 더 나아가서는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인류 전체의 자식들을 대신하여 나타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탄식권 내의 모든 탄식을 제거 시켜놓고, 그 탄식이 예수의 길 앞에 넘어오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부자관계의 인연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느 한 때를 뚝 잘라 가지고 특별히 “나는 네 아버지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시면서 훈계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독생자로서 사랑하셔야 할 하나님이었으나 사랑하실 수 없었던 독생자의 입장에 세워서 수많은 불신의 자녀들과 부모들 앞에 책임을 다하고 거기에 엉클어진 원한의 보따리를 제거하도록 시키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찾아왔을 때 승리한 이스라엘의 왕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요, 뭇 백성들이 환호하면서 기쁨의 왕자라고 해 가지고 모실 수 있었던 환경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슬픔의 왕자로서 등장했고, 그가 가던 길은 고통의 행로로서의 길이요, 그가 가던 데는 죽음의 담벼락이 부딪힐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메시아의 사정을 그 때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알았겠느냐?


오늘의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 있어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할 때 심정을 털어놓고, 손을 붙들고 기쁨의 심금을 털어놓으며 “아버지여, 역사적인 한의 길에 있어서 슬펐던 것을 푸시옵소서!” 할 수 있었던 한 날의 기쁨을 세우지 못하고 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152-104)


부모의 날을 맞을 수 있게 된 고마움을 알아야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부모의 날은 어떤 날이냐? 수많은 인류의 부모들이 처하여 있었던 고통권을 수습하고, 민족들간에 걸려 있던 원수의 그물들을 끊어 버리고, 지금까지 유린한 역사적인 모든 것들을 타파해 버려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왔는데, 나를 들어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려놓기 위해서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들을 줄 몰랐던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줄 몰랐던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줄 몰랐던 것을 느낄 줄 아는 자리에 서 가지고 참부모의 심정을 동경하면서 머리를 숙여 눈물지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한히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한 날을 맞이하여 축하할 수 있는 한 무리로서 이런 식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여러분이 여기에 참석할 때까지 마음속으로 느꼈느냐 하게 될 때, 여러분이 여기에 답을 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소원이 어떻고, 이 세계는 어떻게 흘러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아들이요, 하늘은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하나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는데 하나될 수 있도록 연결시켜 가지고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부모가 있나니 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지금까지 갈라졌던 그 부모와 자식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하늘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먼저 선두에서 투쟁하면서 수습해 나왔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이 기준에 올라올 때까지 하늘은 투쟁역사로 돌고비길을 걸었습니다. (152-107)


부모의 날을 맞게 된 자녀의 입장


하늘은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고의 노정을 거쳐오면서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면 선생님 하나를 세우기 위해서 무한히 노심초사했습니다.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지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하늘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데려갔습니다. 선생님이 비밀리에 의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다 데려갔다는 말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뜻을 같이할 수 있고 모든 사정을 통할 수 있었던 사람은 데려갔습니다. 그렇게 믿을 수 있었던 길을 다 끊어 놓고 이 길로 내몰았는데, 이런 시련을 거치게 해 가지고 여기에 있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질 수 있어서 오늘날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부모의 날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날을 기념하게 될 때는 피살이 떨리는 자세로 참석하지 않으면 안될 두려운 이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늘 앞에 맺혀졌던 슬픔의 전부가 참부모와 참자식의 심정을 중심삼고 나오게 될 때는 다 해소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지 않으면 타락한 인간이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의 심정과 일체되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와서 싸우던 목표와 마찬가지의 목표를 여러분 자신도 세워야 됩니다.


참부모를 만났더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아들딸이 먼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가 하나님 앞에 있어서 독생자로서 사랑받았던 단 하나의 아들이었지만 하늘의 뜻을 대신하여 나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예수가 못 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참부모를 알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저 끝에서부터 품고 들어와서 사랑받아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만민들 앞에 부모와 자식지간에 맺혀진 원한의 담을 타개해 놓고, 길을 닦아 놓고, 만민이 갈 수 있게끔 해 놓아야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품에 품기어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때 했어야 할 예수님의 사명이었던 것을 알았을진대는, 오늘날 여러분이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부모를 알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부모의 무릎 앞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인연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됩니다. (152-110)


축복받은 후 3년 노정이 있어야 하는 이유


한 단계 한 단계 연이어 넓혀서 세계무대까지 나오는 것이 섭리의 역사인 연고로 여러분이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받들어 승리한 기반을 닦았다고 할진대는 그 가정을 가만히 놔두면 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상속할 마음이 있다고 할진대는 가정적인 기반 위에 민족적인 시련 혹은 종족적인 시련을 당해 나가면 그 가정은 앞으로 남아질 미래의 종족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축복해 주고 왜 내보내느냐? 앞으로 우리의 앞에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찾아와야 되겠고, 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이 찾아와야 되겠고,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가 찾아와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남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신도들이 가야 할 최후의 고비는 어떤 고비냐? 사탄의 시련이 끝나면, 영계의 영인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네가 통일교회의 교인이야?” 하면서 말입니다. 또, 천사들이 참소합니다. “네가 통일교회의 교인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들만이 아니고 성도들도 참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는 사탄의 시련도 있거니와 그것이 지나가면 성도와 천사들에 의한 시련이 있습니다. 그 시련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 하면서 장벽을 뚫고 나아가야 됩니다. (152-115)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려면


부모의 날을 몇 만번 축하하더라도 그 인연이 내 자신에게 완전히 맺어지지 않으면 참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인연이 맺어지느냐? “오라!” 하는 길을 올 줄 알고, “가라!” 하는 길을 갈 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세계를 무너뜨릴 수 없고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게 최후의 작전법입니다. 그 싸움에 실패하면 망합니다. 그 사람이 여지없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싸움에 이기면 남아집니다. 그런 두 갈래의 길 앞에 우리는 처하여 있습니다.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끌어와야 됩니다. 가정, 종족, 민족, 국가에 있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당기고 당겨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이 끌려오면 사탄세계는 정복됩니다. 자녀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그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무엇을 끌어당겼느냐? 그것을 넘어갈 수 있었던 심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원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초월한 심정으로 그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이 민족 가운데 우리 통일교회 이상 고생하는 무리가 없습니다.


자기의 부모보다 세계 인류를 더 사랑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누가 세우겠느냐 하는 것을 선생님이 제일 염려합니다. (152-118, 125)


부모의 심정을 붙들고 끝까지 나가자


여러분, 기도해 보십시오! 선생님으로 말하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옥동자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 귀하게 태어났습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하늘의 천성의 인연을 갖고 왔기 때문에 고생하고 천하게 살게끔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배후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그 고생 덕에 삼천만이 바라보게 되고, 그 고생 덕에 인류가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천적인 운세가 자기들의 앞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반드시 공이 있는 곳으로 머리를 숙여야 됩니다. 그것이 천리법도인 연고로 그러한 사람의 앞을 지나고 그 인연을 앞에 놓고 살게 될 때는 반드시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려고 할 때는 복귀도상에 있어서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꽁꽁 동여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민족을 대표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 민족 앞에 홀로 서 가지고 “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그 개인은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닙니다. 삼천만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얽어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기도가 둘 남았습니다. 하나는 이 나라에 대한 최후의 문제요, 하나는 공산당에 대한 세계적인 최후의 문제입니다. 그것 외에는 선생님의 소원이 없습니다. 때가 이만큼 접근해 왔으니까 여러분이 현재의 정세를 보더라도 그런 단계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을 했으니 여러분도 그렇게 알고, 참고 부모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한 최후의 장벽 앞에 있어서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산정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호소한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권능을 제시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도탄 중에서 밀려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면서 붙들고 심정을 거기에 얽어 놓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승리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결의를 하는 이 날이 부모의 날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끝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슬픔의 날을 맞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기쁨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152-127)*

 

 

 

 

천일국 훈독경 제4권 5일, 원문


부모의 날과 우리

4회 부모의 날 말씀 -

날짜 : 1963. 3. 25(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부모의 날의 의의와 그 설정 배경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부모의 날이라고 제정한 3월 초하룻날은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우리 인생이 바라던 제일 귀하다면 제일 귀한 날입니다더 이상 귀한 날이 없는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고또 지금 현재 살고 있습니다그렇지만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고는 해도 부모의 날을 세워 가지고 축하하지는 못했습니다지금까지 자기들이 부르고 있는 부모라는 것은 오늘날 섭리의 뜻 가운데서 보게 될 때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었고 땅이 축하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 자녀들도 부모를 대해서 부모의 날을 가질 수 없었던 자녀요또 부모들도 자녀의 날을 세워서 사랑하는 자녀로 대할 수 없었던 슬픈 인연권 내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보게 될 때 슬픔이 엉켜 있었고자식도 부모를 바라보게 될 때 역시 슬픔이 엮어져 왔습니다.

부모가 자식자식이 부모를 대함에 있어서 슬픔 혹은 한숨이 지어지는 고통의 상정이 없어야 할 것이 본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은 인간의 인연입니다그렇지 못한 인연을 가져 온 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이 타락의 보응은 부자의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형제의 인연으로 연결되었고형제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친척으로 전개되어 오늘날 세계의 인류까지 벌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과 근심 그리고 고통이 인류 앞에 있고더 나아가서는 사망이 전세계에 덮여 있습니다그것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이냐역사적인 출발서부터 그런 동기와 내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필시 슬픈 역사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고고통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고탄식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런 탄식의 세계이런 슬픔의 세계이런 고통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각자는 동족끼리의 슬픔을 제거하고 형제지간에 있어서의 슬픈 인연을 제거하고 한 가정에 있어서 부부끼리의 슬픔과 고통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하지만제일 큰 문제는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슬픔이 깃들어 있고 고통이 깃들 수 있는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한 부자의 인연권 내에 어려 있는 이 슬픔의 장벽을 어떻게 타파해 버리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들이 고통을 겪어야 할 중대한 기준이요하늘이 인간세계에 세워 놓아야 할 사명적인 중대한 기준이 되어 있는 동시에 오늘날 참을 추구해 나아가는 양심적인 마음을 가진 자녀면 자녀일수록 그 부모를 대하는 심정에 있어서 이 담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어느 누구나 고대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담을 허는 것보다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슬픔을 제거할 수 있고완전히 고통을 초월할 수 있고완전히 행복의 기반이라고 만천하에 내세울 수 있는 한 날의 인연을 세우지 않는 한 오늘날의 이 지상의 슬픈 기준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귀섭리의 기준은 어디로 전부 다 집중시켜 나왔느냐참부모와 참자녀를 기준으로 해 나왔습니다고통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슬픔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혹은 싸움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이런 섭리의 뜻을 세우기 위해 우리의 선조들이 투쟁해 나왔고 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시간에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하늘이 공인하고땅이 공인하고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참부모와 그 부모로부터 흘러나오는 참사랑에 품길 수 있는 참자녀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또한 이것을 갖지 못한 것이 인생의 슬픔이요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 못 해준 것이 부모의 슬픔인 동시에 이런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자녀의 슬픔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슬픔이 역사적인 인연을 통하면서 혈통적인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그러기에 그 슬픔의 기반이 부자의 인연 가운데 서려 있습니다그 깊은 자리에서부터 그런 인연을 맺고 내려왔기에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늘은 지금까지 모진 투쟁을 해 나왔습니다(152-101)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게 될 때 너는 내 아들 중의 아들이요내 독생자 중의 독생자다.” 하셨지만과연 그를 품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는 입장에 세우셨느냐 할 때 세우시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인연이라는 것은 태초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맺어진 것이 연결되어 세계적인 무대로 전개되어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부모라는 이름이 역사노정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차이를 갖고 있으되그 명사는 현실적으로 지구상에 널려 있습니다그 부모라는 명사는 아담 해와에게 한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자식을 갖고 있는 수많은 부모들에게까지 미칩니다그런고로 세계적인 무대에 이것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이것이 하늘이 해결해야 할 중심사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세계적인 메시아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민을 대표한 자녀들의 이름을 대신하여 나타났고더 나아가서는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인류 전체의 자식들을 대신하여 나타났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탄식권 내의 모든 탄식을 제거 시켜놓고그 탄식이 예수의 길 앞에 넘어오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부자관계의 인연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느 한 때를 뚝 잘라 가지고 특별히 나는 네 아버지고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시면서 훈계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셨을 것입니다독생자로서 사랑하셔야 할 하나님이었으나 사랑하실 수 없었던 독생자의 입장에 세워서 수많은 불신의 자녀들과 부모들 앞에 책임을 다하고 거기에 엉클어진 원한의 보따리를 제거하도록 시키셔야 했습니다.

인간들 앞에 엉클어진 것원한스러운 부자의 인연이 엉클어진 것을 예수님이 전부 다 제거해야지 그 원한의 슬픔이 예수님 앞에 탄식의 조건으로 남아져서는 아버지를 부를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그러기에 이 땅에 찾아왔을 때 아버지사랑하는 아버지!” 하고 진정으로 아버지를 불러야 할 예수님이었으나 부를 수 없었던 입장이었습니다그런 한스러웠던 예수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찾아왔을 때 승리한 이스라엘의 왕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요뭇 백성들이 환호하면서 기쁨의 왕자라고 해 가지고 모실 수 있었던 환경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었습니다슬픔의 왕자로서 등장했고그가 가던 길은 고통의 행로로서의 길이요그가 가던 데는 죽음의 담벼락이 부딪힐 뿐이었습니다그러한 메시아의 사정을 그 때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알았겠느냐?

오늘의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 있어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할 때 심정을 털어놓고손을 붙들고 기쁨의 심금을 털어놓으며 아버지여역사적인 한의 길에 있어서 슬펐던 것을 푸시옵소서!” 할 수 있었던 한 날의 기쁨을 세우지 못하고 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그런 부모를 모시고 싶고 효도하고 싶었어도 땅 위에서 효도의 길을 승리적인 기반 위에 닦고 가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왔다 갔지만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152-104)


부모의 날을 맞을 수 있게 된 고마움을 알아야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부모의 날은 어떤 날이냐수많은 인류의 부모들이 처하여 있었던 고통권을 수습하고민족들간에 걸려 있던 원수의 그물들을 끊어 버리고지금까지 유린한 역사적인 모든 것들을 타파해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자녀들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가정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종족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민족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더 나아가서는 세계와 천지가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그래서 사탄세계 앞에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놀랍고 황공한 부모의 날에는 역사적인 한이 어려 있고여기에는 메시아의 고통이 남아져 있고여기에는 십자가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아버지는 이 장벽을 거쳐서 손을 내밀어야만 자식의 손을 붙들 수 있고자식은 이 장벽을 타고 넘어야 아버지의 손을 붙들 수 있는 한스러운 역사가 남아 있으니 이 담을 헐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 하늘의 투쟁역사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이 오늘날 우리를 찾아와서 아무개야!” 하고 부를지라도 여러분은 귀가 먹었습니다여기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 가지고 갖은 형용을 다하면서 하늘을 보라고 손짓해도 여러분의 눈이 덮여 있습니다여러분이 아무리 심정이나 마음이 있다고 해도그 마음을 아무리 뒤흔들어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그렇게 감각이 무디어 있어서 스스로 찾아갈 길을 잃어버린 방랑자들입니다방황하는 고아와 같고 방랑아와 같은 신세인 인간들입니다하늘은 이런 나를 붙들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내 눈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내 귀를 열고 내 감정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느냐?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왔는데나를 들어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려놓기 위해서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지금까지 들을 줄 몰랐던 것을 들을 수 있고볼 줄 몰랐던 것을 볼 수 있고느낄 줄 몰랐던 것을 느낄 줄 아는 자리에 서 가지고 참부모의 심정을 동경하면서 머리를 숙여 눈물지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한히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한 날을 맞이하여 축하할 수 있는 한 무리로서 이런 식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며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며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여러분이 여기에 참석할 때까지 마음속으로 느꼈느냐 하게 될 때여러분이 여기에 답을 해야 될 것입니다이제 하나님의 사정이 어떻고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고하나님의 소원이 어떻고이 세계는 어떻게 흘러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아들이요하늘은 아버지입니다그런데 지금까지 그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하나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는데 하나될 수 있도록 연결시켜 가지고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부모가 있나니 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지금까지 갈라졌던 그 부모와 자식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하늘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먼저 선두에서 투쟁하면서 수습해 나왔습니다아담으로부터 이 기준에 올라올 때까지 하늘은 투쟁역사로 돌고비길을 걸었습니다. (152-107)

 

부모의 날을 맞게 된 자녀의 입장

 

그렇기 때문에 이 부모의 날에는 고통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이 날 가운데는 무한한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이 날 가운데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어느 한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 혹은 어느 주의나 사상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투쟁한 어떤 위대한 열사보다 더 큰 고통 가운데서더 큰 슬픔 가운데서 이 길을 닦기 위하여 투쟁해 나온 하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그 입으로 부모를 불러 볼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겠느냐 할 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그렇지만 하늘은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수고의 노정을 거쳐오면서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면 선생님 하나를 세우기 위해서 무한히 노심초사했습니다약한 것이 인간입니다가다가 지치는 것이 인간입니다가다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하늘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데려갔습니다선생님이 비밀리에 의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다 데려갔다는 말입니다가정에 있어서도 뜻을 같이할 수 있고 모든 사정을 통할 수 있었던 사람은 데려갔습니다그렇게 믿을 수 있었던 길을 다 끊어 놓고 이 길로 내몰았는데이런 시련을 거치게 해 가지고 여기에 있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질 수 있어서 오늘날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부모의 날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복입니다러분이 부모의 날을 기념하게 될 때는 피살이 떨리는 자세로 참석하지 않으면 안될 두려운 이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하늘 앞에 맺혀졌던 슬픔의 전부가 참부모와 참자식의 심정을 중심삼고 나오게 될 때는 다 해소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혈연적인 인연을 세워 놓았으니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모든 유산은 자식의 것으로 남아집니다부모가 규합할 수 있는 모든 인연도 그 자식에게 상속됩니다부모가 사랑하던 하늘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부모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으면 그 아들딸도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지 않으면 타락한 인간이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의 심정과 일체되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와서 싸우던 목표와 마찬가지의 목표를 여러분 자신도 세워야 됩니다.

참부모를 만났더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아들딸이 먼저 되어서는 안됩니다예수가 하나님 앞에 있어서 독생자로서 사랑받았던 단 하나의 아들이었지만 하늘의 뜻을 대신하여 나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예수가 못 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참부모를 알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참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저 끝에서부터 품고 들어와서 사랑받아야 됩니다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만민들 앞에 부모와 자식지간에 맺혀진 원한의 담을 타개해 놓고길을 닦아 놓고만민이 갈 수 있게끔 해 놓아야 되었습니다그러고 나야 비로소 아버지의 품에 품기어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그것이 그때 했어야 할 예수님의 사명이었던 것을 알았을진대는오늘날 여러분이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부모를 알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부모의 무릎 앞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인연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됩니다. (152-110)

 

축복받은 후 3년 노정이 있어야 하는 이유

 

그러면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냐섭리의 때가 찾아오는 데는 개인적인 때를 기반으로 하여 가정이 나오고가정적인 때를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나옵니다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연이어 넓혀서 세계무대까지 나오는 것이 섭리의 역사인 연고로 여러분이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받들어 승리한 기반을 닦았다고 할진대는 그 가정을 가만히 놔두면 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상속할 마음이 있다고 할진대는 가정적인 기반 위에 민족적인 시련 혹은 종족적인 시련을 당해 나가면 그 가정은 앞으로 남아질 미래의 종족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선생님이 여러분을 축복해 주고 왜 내보내느냐앞으로 우리의 앞에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찾아와야 되겠고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이 찾아와야 되겠고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가 찾아와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남아 있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부모의 날을 기념하려고 하는 이 시간에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가르쳐 줘야 될 것이냐여러분이 이 자리에 올 때까지 남들과 같이 먹이지 못한 게 가슴이 아픕니다지방을 순회할 때 여러분의 처참한 생활을 보면 통곡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스며듭니다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개인의 원수로부터 가정의 원수종족과 민족을 넘어서 세계의 원수까지 찾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 여기에서 동정해서는 안됩니다. “이젠 됐다.” 하고 사정을 베풀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심정이 없어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으셨던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세계를 살리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그때 당시에 섭리의 뜻을 펴시던 그 뜻보다도 더 큰 시련도상에 있어서 사탄세계에 섭리의 뜻을 남겨야 할 소원을 품고 계셨던 연고로 사탄아!” 하셨던 것입니다사탄이 열 대 때릴 것을 열 한 대 때리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의 가정이 살고 민족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섭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영계까지 동원해야 됩니다지금까지 사탄이 여러분의 가던 길을 방해했지만앞으로는 천사세계도 여러분을 참소해야 됩니다더 나아가서는 저나라의 선지 선열우리 선조들까지도 참소할 것입니다사탄과 투쟁하던 노정이 있었는가 하면 천사들과 투쟁하는 노정도 있고천사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선지 선열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또 벌어집니다통일교회의 교인들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그런 점이 힘듭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신도들이 가야 할 최후의 고비는 어떤 고비냐사탄의 시련이 끝나면영계의 영인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네가 통일교회의 교인이야?” 하면서 말입니다천사들이 참소합니다. “네가 통일교회의 교인이야?” 한다는 것입니다천사들만이 아니고 성도들도 참소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는 사탄의 시련도 있거니와 그것이 지나가면 성도와 천사들에 의한 시련이 있습니다그 시련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 하면서 장벽을 뚫고 나아가야 됩니다. (152-115)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려면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부자(父子)의 인연이 어디에서 맺어지느냐부모의 날을 몇 만번 축하하더라도 그 인연이 내 자신에게 완전히 맺어지지 않으면 참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인연이 맺어지느냐? “오라!” 하는 길을 올 줄 알고, “가라!” 하는 길을 갈 줄 알아야 됩니다사랑하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내보낼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고생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는 말입니다그러나 할 수 없으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세계를 무너뜨릴 수 없고 정복할 수 없습니다그게 최후의 작전법입니다그 싸움에 실패하면 망합니다그 사람이 여지없이 깨지는 것입니다그렇지만 그 싸움에 이기면 남아집니다그런 두 갈래의 길 앞에 우리는 처하여 있습니다오늘날 통일의 신도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끌어와야 됩니다가정종족민족국가에 있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당기고 당겨야 됩니다그렇게 해서 그것이 끌려오면 사탄세계는 정복됩니다자녀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그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무엇을 끌어당겼느냐그것을 넘어갈 수 있었던 심정이었습니다아무리 원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초월한 심정으로 그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이 민족 가운데 우리 통일교회 이상 고생하는 무리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계획은 앞으로 돈이 많게 되면 그 돈을 통일교인들에게 줘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잘 먹고 잘 입을 수 있는 기반이 다 닦여 있어도 통일교회의 교인들에게는 주지 않을 것입니다그런데 영원히 주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10년이면 10년 동안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뭘 할 것이냐불쌍한 민족을 위하여 미국이 기부하는 이상으로 기부하는 것입니다수많은 민족을 후원해 주고 도와주어서 누가 이 나라에 찾아오게 될 때 그들이 발을 옮겨 딛지 못할 만큼 처참한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 민족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할 때, “세계 인류를 도와주기 위해서 이렇게 비참한 민족이 되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자기의 민족보다 인류를 더 사랑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부모보다 세계 인류를 더 사랑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누가 세우겠느냐 하는 것을 선생님이 제일 염려합니다. 그걸 어떻게 세워 놓겠느냐그것만 세워지면 공산당뿐만 아니라 세계가 정복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이 10년 동안에 세계를 후원해 주었다는 걸 알게 되면피까지 팔아 가지고 후원해 주었다는 걸 알면 거기서부터 이제 한국 사람들은 고생하지 마시오!” 하면서 세계의 인류가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심정을 가진 형 중의 형이요동지 중의 동지요부모를 대신하는 대신자라고 찬양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면, “한국 백성들은 고생하지 마시오!” 하면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데모할 정도가 되면 순식간에 한국은 지상낙원이 될 것입니다우리가 아무리 수십 년 잘 했댔자 어떻게 미국을 따라가겠어요그렇지만 십 년이면 십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런 놀음을 하면 십 년 후에나 몇 십년 후에는 최고의 기준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하늘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 놀음을 시키는 사람이 당장에는 원수지요모르는 것들은 망합니다떨어지게끔 되어 있습니다그러니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이 몰랐기 때문에 다 망해 떨어지고 꺾어져 나갔습니다그러니까 눈으로 보고 알 수 있게끔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이렇게 가르쳐 주는데도 못 가는 것은 자기의 책임입니다(152-118, 125)

 

부모의 심정을 붙들고 끝까지 나가자

 

여러분기도해 보십시오선생님으로 말하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옥동자로 태어났습니다태어날 때 귀하게 태어났습니다이 땅 위에 태어날 때 하늘의 천성의 인연을 갖고 왔기 때문에 고생하고 천하게 살게끔 안 되어 있었습니다그런 배후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그 고생 덕에 삼천만이 바라보게 되고그 고생 덕에 인류가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천적인 운세가 자기들의 앞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반드시 공이 있는 곳으로 머리를 숙여야 됩니다그것이 천리법도인 연고로 그러한 사람의 앞을 지나고 그 인연을 앞에 놓고 살게 될 때는 반드시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됩니다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려고 할 때는 복귀도상에 있어서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야 됩니다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꽁꽁 동여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이 민족을 대표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 민족 앞에 홀로 서 가지고 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그 개인은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닙니다삼천만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얽어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시대적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지방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어차피남은 멀지 않은 기간을 우리는 달려야 되겠습니다가까운 시일 내 넓은 범위를 잡아서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우선 그 땅과 그 지역이 동화되어 머리를 숙이게 될 것입니다그런 터전을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삼천만 민족이 어떻게 머리를 숙일 수 있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우리가 아버지!” 할 때그들이 옳습니다!” 할 수 있게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는 것입니다그렇게 만들어 놓으려는 것은 잘먹고 잘살자는 게 아닙니다해방의 왕자가 돼 가지고 천하에 거침없이 춤을 추나 뭘 하나 만민이 영광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한때를 맞기 위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부모를 모시고 싶은 갈급한 마음에 불타 가지고 모진 시련이 있더라도 나의 갈 길로 알고 응당히 가야 할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싸워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면필시 그런 날이 있을 것이라고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약속합니다.

이제는 기도가 둘 남았습니다하나는 이 나라에 대한 최후의 문제요하나는 공산당에 대한 세계적인 최후의 문제입니다그것 외에는 선생님의 소원이 없습니다때가 이만큼 접근해 왔으니까 여러분이 현재의 정세를 보더라도 그런 단계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을 했으니 여러분도 그렇게 알고참고 부모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한 최후의 장벽 앞에 있어서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이 골고다 산정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호소한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권능을 제시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도탄 중에서 밀려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면서 붙들고 심정을 거기에 얽어 놓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그렇게만 되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승리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결의를 하는 이 날이 부모의 날입니다그러니 우리는 끝까지 가야 되겠습니다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슬픔의 날을 맞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기쁨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152-127)*



첨부파일첨부된 파일이 1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