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10일
20 훈독경 제1권 제10일 참사랑을 중심한 본연의 에덴 1.mp3
참사랑을 중심한 본연의 에덴(훈독본, 원문)
날짜 : 1984. 5. 27(일)
장소 : 미국
사위기대의 중심은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에덴 동산’ 하면 성경에 나오듯이 천사들이 옹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과 인간이 선악과 문제를 중심삼고 얘기하는 모습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하는 계명을 인간에게 주셨는데, 그 선악과라는 것이 오늘날 일반 기독교에서 알고 있는 그런 선악과가 아닙니다. 사랑문제를 두고 말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이상은 무엇이냐? 창조이상은 우리 원리에서 규명한 바와 같이 사위기대의 완성입니다. 이런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사위기대는 무엇이냐? 그것은 물론 부모와 자녀, 하나님과 아담 해와와 자녀를 말합니다. 그러면 사위기대의 중심이 무엇이냐? 이 센터에 무엇을 가지고 연결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이 센터를 설정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아담과 해와도 아니요, 자녀도 아닙니다. 참사랑만이 센터를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사랑을 처음으로 생각했겠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사랑의 출발이 누구로부터냐 하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이 하나님이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다고 봅니다. 그건 아담도 아니요, 해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세계를 지으신 주체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그 센터의 사랑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132-107)
하나님도 참사랑을 원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연결되느냐? 우리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움직인다면 어디로 움직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다른 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내려와서 합하는 한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도 보면, 바른눈과 왼눈의 초점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포인트를 맞춰야 보지, 그것이 조금 틀리면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이 출발해서 움직이는 방향이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이 자신을 중심삼고 “와라!” 이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도 원하는 게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없다면 스톱(stop;정지)상태입니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전부 무(無)의 상태에서 정지되어 버립니다. 모든 존재들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퇴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에게는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한테 가만히 계실 수 없도록 필요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소망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 소망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갖다 활용하고 싶을 것입니다. 돈도 활용하고 싶고, 권력도 활용하고 싶고, 혹은 지식도 활용하고 싶다면 그건 다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당신이 필요한 게 뭐요?”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요? 제일 귀한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 하나는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어때요? 하나님, 참사랑이 필요하오?” 하면, “허허허“ 하실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권력은 당장에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당장에 만들 수 없는 것이고, 사랑은 찾아가야 됩니다. 갈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앞으로 올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장에 참사랑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그것을 향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과정을 남겨 놓고 자기의 모든 것을 통합한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작용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와 거리적인 내용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사랑을 찾았으면 “아, 이것이다!”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그것보다 커져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한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하나님이 찾아가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하게 된다면 큰놈이 작아지면서 영원한 게 좋아요, 작은 놈이 크면서 영원한 게 좋아요? 작은 게 크면서 영원한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참사랑의 요만한 볼이 있으면 그 볼을 점점 큰 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가운데 필요한 것은 전부 있다고 할 수 있는 한계까지 이것이 커 가지고 작용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도 바라실 것입니다. (132-108)
모든 존재는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여
그러면 그런 사랑의 이상을 그려 나가게 될 때 거기에 박자를 맞춰 주면서 호흡을 같이하는 게 좋겠어요, 반대하는 게 좋겠어요? 박자를 맞춰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참사랑에 박자를 맞춰서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개념을 추리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남자였습니다. 영어의 ‘맨(man;남자)’이라는 말은 참 재미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놓고 누가 위냐, 누가 플러스냐 할 때는 남자가 플러스고 여자는 마이너스고, 이게 위고 이게 아래다 하는 것을 영어가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주체, 여자는 대상입니다. 이것이 자연섭리이고 이치입니다. 그 이치를 반대하고 자연을 반대하면서 “오, 나는 태양이 필요 없소! 나는 공기가 필요 없소! 물이 필요 없소!” 할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버티고 있는데 그들을 운동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트루 러브(true love;참사랑)라는 것입니다. 트루 러브로서만이 그저 위에다 집어넣든, 아래에 집어넣든, 발로 차든, 뭘 해도, 아무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남편이 자기의 여편네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는 뒤로 와서 안아 줘도 좋고, 옆으로 와서 안아 줘도 좋고, 그저 아무렇게나 안아 줘도 좋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려면 이 눈앞에 와서 정면으로 서서 사랑해야 돼요!” 그래요?
그러니까 암만 딱 달라붙고 고착되어 있더라도 이것을 활용해서 다 거느리도록 운동을 시킬 수 있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미국 여자들! 그런 사랑을 돈과 바꿔요, 안 바꿔요? 지금 미국 여자들 가운데는 돈 때문에 결혼한 여자들이 많잖아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그 사람이 주지사니까 결혼한다. 아, 그 사람이 어떤 대학을 나왔으니까 결혼한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은 다 가짜 여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돈 때문이 아니고, 지식이나 권력 때문이 아닙니다. 전부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 남자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여자는 그런 이상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자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사랑의 정점을 중심삼고 모든 존재는 찾아가는 것입니다. 광물세계도 전부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양극이지요? 전부 상대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상대로 되어 있고, 식물 동물세계도 상대로 되어 있습니다. (132-110)
하나님의 사랑은 더 큰 것을 원해
작용하는 것은 노래하지 않는 것이 없고 춤을 추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전부 다 예술적입니다. 곤충도 노래하지요? 그 다음에 새를 비롯한 모든 동물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박자에 전부 다 화하고 화합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화합하느냐?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화합합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은 것이 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진화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작용하는 모든 조그마한 세포들도 큰 사랑과 화합하기 위해서 큰 것과 연결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화가 아니고 사랑을 중심삼고 박자를 맞추기 위한 단계적인 발전현상입니다. 그것이 진화형태라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사랑의 개념은 그런 내용을 가지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큰 것으로 커 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미래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큰 것을 더 원하기 마련입니다. 사랑만은 컸다, 작았다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만이 컸다, 작았다 할 수 있지 다른 것은 컸다, 작았다 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여자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여자요, 최고 높은 자리에 있는 여자라 하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가 “내 아래로 가라!” 할 때는 “예스!”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대단한 권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여자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사랑만이 지극히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재미있지, 하나님이 능력 많고 이렇게 커 가지고 제일 꼭대기에서만 “내 아들딸들…!” 하면 어떻습니까? 저 골짜기에 한번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가지고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면 아무리 여자의 눈이 찢어져도 좋고, 노랑머리라도 좋고, 다 좋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자를 붙들고 올라가면 남자들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좋으냐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은 코딱지를 떼서 엄마의 입에다 넣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그래도 싫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힘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전부 다 오케이입니다. (132-112)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을 해야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들어가겠어요, 하나님 가운데 사랑이 들어가겠어요? 하나님이 어떤 걸 좋아하겠어요? 하나님이 사랑 가운데로 들어가는 걸 좋아합니다. 어째서 그래요? 소망하는 것이 커야 되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소망하고 사랑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이론에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소망으로 바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보다 큰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그리워할 때는 사랑을 당기고, 사랑이 오게 되면 내가 넘어가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연을 보더라도 여름이 되면 곤충들이 바글바글 거리고 새들도 짹짹짹 울고 그러는데 그와 같은 것이 전부 다 사랑을 중심삼고 노래하고 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하, 우주는 그렇게 되어 있구나!” 하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우주 앞에 사람이 박자를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어요? “뭐야, 시끄럽다!” 하시겠어요? 하나님도 저 위에서 같이 박자를 맞춥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해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둘이 손을 잡고 걷게 되면 우주는 거기에 박자를 맞춰서 좋아하고 반응을 일으키고, 하나님도 거기에 맞춰서 주체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게 먼 세계가 아닙니다. 먼 전설 같은 얘기가 아니고 오늘 우리 생활권 내의 감정세계와 연결되는 본연의 세계라는 것을 추리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직접적인 오늘의 생활환경과 접한다는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만이 퇴색하지 않습니다. 천년 만년 전에 살던 조상들의 사랑이나 천년 만년 후손의 사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원칙만은 변해서는 안됩니다. 곤충 세계의 좋아하는 생활방식이 시대의 발전이나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변해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미국식 남녀의 사랑이 본래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사랑이에요? 하루 저녁에 상대를 전부 다 바꿔치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랑이 이상적인 사랑이에요? 잠자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랑이 이상적인 사랑이에요? 우리 조상들을 한번 보자구요. 아담이 둘이고 해와도 둘이었어요? 아담과 해와가 여러 사람씩이었어요, 한 사람씩이었어요? 절대적으로 하나씩이었습니다. 그렇게 절대적인 커플은 미국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거기에 맞춰 나갑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내려오니까 아담도 찾아가고 다 찾아갑니다. 어디를 찾아가느냐? 참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가야 된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횡적인 직선입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태어나서는 뭘 하느냐 하면 그들의 키는 다르지만 서로를 찾아가는 길로 똑바로 가야 됩니다. 마음대로 왔다갔다하면 안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이마, 눈, 코가 맞게끔 똑바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키는 다르더라도 모두 한 방향입니다. 두 개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게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그게 좋은 거야?” 하면, 누구든지 “그렇지, 좋지!” 합니다. 왜 그러느냐? 그것은 참사랑 때문입니다. 남녀가 똑바로 가지 않으면 참남자나 참여자를 못 만납니다. 참사랑을 못 만난다는 것입니다. (132-113)
사랑은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어
여러분, 하나님도 이성성상이지요? 하나님은 이성성상인데, 어떠한 이성성상이냐? 길쭉한 종으로서의 이성성상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이성성상이고, 아담과 해와는 뭐냐 하면 횡으로 도는 이성성상입니다.
전기도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아! 나 플러스가 필요하다, 플러스!” 하지 않습니다. 그건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마이너스가 되면 플러스는 자연히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우주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게 자연입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합하게 될 때는 스파크가 납니다. “팍―” 하며 사랑의 스파크가 난다는 것입니다. 스파크가 나려면 아담과 해와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접촉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랑하면 우주가 “햐―” 하고 좋아합니다. “행복해! 완전히 다 이루었다!”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할 때만 남자와 여자의 세포가 백 퍼센트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힘이 작용해서 사랑의 길을 움직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서 어머니의 세포와 아버지의 세포가 총합된 여러분이 생겨난 것입니다. 사랑은 전부를 갖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랑의 인연은 밤도 극복할 수 있고, 낮도 극복할 수 있고,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남편을 필요로 하고 아내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종적인 사랑의 하나님과 일치하기 위해서입니다. 결혼식이라는 것이 전우주의 발판이 되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땅이 동하는 남성의 사랑의 마음과 여성의 사랑의 마음이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땅이 합하는 보금자리가 부부생활을 하는 자리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로 보게 되면, 옆에 누워 있는 사랑하는 자기의 남편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 하나님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남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만은 영원히 남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하나님을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또,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상대적인 유일성을 상징하고 어머니의 성품을 대신했으므로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부부가 하나되어 가지고 여기에서 본래의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아들딸들이 내 아들딸들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됩니다. 이것이 참사랑을 중심한 본연의 에덴의 사람이요, 참사랑을 중심한 본연의 에덴입니다. (132-116)
<훈독 소감>
사랑의 출발은 하나님이시고 사랑을 위하여 창조하신 이 세계와 우리는 참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근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라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야만 참사랑을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남녀가 사랑할 때 모든 세포가 백퍼센트 움직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참사랑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을 모신 참부부요, 참가정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딸을 낳아 본연의 에덴을 창건할 수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본연의 에덴은 한 남자 한 여자가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을 이루는데 있음을 확실히 깨우쳐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