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천일국 훈독경 제4권 4일) u

訓讀王 | 20191119073306

천일국 훈독경 제4권 4



참부모(훈독본)


날짜 : 1969. 9. 21()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참부모는 복귀섭리의 기점


하나님의 복귀역사의 중심은 세계도 아니요어떠한 나라도 아니요어떠한 특정한 종족이나 민족도 아닙니다하나님이 같이하실 수 있는 나라즉 하나님이 세워 주실 수 있는 나라가 있기 전에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민족이 있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종족이 있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그 가정이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그 부모를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복귀의 섭리역사를 해오신 것입니다결국모든 것이 종결되는 귀결점이 어디냐 하면 부모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서로 등을 지고 갈라진 것을 묶어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면 묶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한꺼번에 전부 다 묶을 수 없습니다그래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하여 그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그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그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남자와 여자를 세워서 묶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아담과 해와를 대신하여 인류의 부모가 될 수 있는 남자와 여자의 두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들을 통해서 본래의 기준을 향해 거꾸로 묶어 나가야 하는데그렇게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25-14)


탕감복귀 섭리역사의 어려움


하나님의 창조위업과 현실적인 세계의 무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먼 거리를 누가 메울 것인가이것을 누가 탕감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언제나 하나님 편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고충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것은 그냥 메워지지 않습니다반드시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을 대신해서 탕감의 제물을 제시하지 않고는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국가나 민족이 모든 것을 탕감시킬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하나님이 하셔야 됩니다하나님이 탕감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그 거리를 단축시켜 메워 나오실 수밖에 없습니다그렇게 싸워 나오신 것이 6천 년 복귀섭리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특정한 나라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6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역사적인 탕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그러한 탕감적인 내용을 갖춘 나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와 뜻이 언제나 하나되어 가지고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볼 때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인간들이 번번이 그랬듯이 어떤 민족이면 민족 역시 하나님과 일치되어 그 역사적인 거리를 메워 나오는 데 있어서 협조하는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그 민족이 몇 해나 몇 달 기간은 어떤 인연 가운데서 뜻과 하나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수십 년 동안 하나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지 못하면그 나라는 완전히 망합니다. (25-16)


참부모를 찾으시려는 뜻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나오시는 데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었느냐참부모에 있었습니다참부모가 요구되는 것은 참가정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참가정이 요구되는 것은 참종족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참종족이 요구되는 것은 참민족참국가참세계를 대표하기 위한 것입니다이렇게 발전되어 나갑니다.


부모는 역사의 동기가 될 수 있고모든 국가 형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모든 민족 편성의 기원이 될 수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기원이 될 수 있는 부모를 중심삼고 복귀섭리의 역사를 엮어 나오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나라와 민족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참부모의 기준을 중심삼은 가정이 완전한 터전 위에 서 있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민족국가를 새롭게 편성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모든 전체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그 내용을 재편성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기준다시 말하면 인류가 바라고 나가는 소망의 한 기점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하면 바로 참부모의 자리입니다.(25-18)


보통의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맞는 것이었다면 언제든지 맞을 수 있었지만예수님이 한 여성을 맞는 데 있어서는 종적인 환경이나 횡적인 환경에서 자유롭게 맞이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여성을 맞기 위해서 예수님은 국가적인 대표의 기준민족적인 대표의 기준종족적인 대표의 기준가정적인 대표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당시까지의 4천 년 역사의 섭리적인 내용과 일치될 수 있었던 모든 조건을 완전히 탕감시켰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예수님이 하나의 신부를 맞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아도예수님은 신랑으로 왔으니까 그 예수님 앞에는 신부가 있어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 신부는 그저 횡적인 기준에서 한 여성으로 등장해서는 안되었습니다하나의 국가를 대표하고하나의 민족을 대표하고하나의 종족을 대표하고그 종족을 중심삼은 수많은 가정들을 대표하는 여성이어야 했습니다.(25-20)


기독교의 사명


역사적으로 책임 못 했던 많은 남성들을 재현시켜 그 시대에 평면적으로 벌여놓은 대표적인 형이 12제자와 70문도였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12제자와 70문도가 완전히 하나되었으면 역사과정에서 실패했던 모든 것들과 시대 시대마다 탕감하지 못했던 모든 남성들의 실수가 탕감되었을 것입니다완전하게 철옹성 같은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사탄이 공격하려야 공격할 수 없는 하나의 남성으로서 승리적인 기반을 결정지어야 했던 것입니다그 울타리의 사명을 해야 할 사람이 누구였느냐 하면 12제자요, 70문도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환경의 터전을 한 번도 갖지 못했습니다그렇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상대도 찾지 못하고그런 내정을 통고시킬 수 있는 하나의 제자도 찾지 못한 채 30여 년의 생애를 지내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하나 죽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그 자신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4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남자를 통하여 역사해 나오시던 하나님의 섭리가 모두 다 수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더 슬퍼했습니다그 자신이 죽는 설움보다도 하나님의 섭리가 실패로 돌아가는 설움을 더 크게 느끼면서 내정적으로 슬퍼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여러분은 그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는 죽더라도 역사적인 모든 터전을 다시 한 번 수습하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각오 밑에서 십자가의 길을 당당하게 돌파해 냈기 때문에하나님의 심정과 일치점을 마련할 수 있었고 영적으로 제자들을 다시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그리하여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2천 년간 수많은 순교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발전시켜 나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기독교는 막연한 국가의 이념권 내에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민족을 다시 세워 가지고 예수님 당시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재현시켜서 완전히 해결해야 합니다그런 탕감노정이 남아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특정한 국가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5-22)


참부모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축복가정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이 많이 있는데이 가정들은 뭘 해야 되느냐가정에 있어서 남자는 오시는 주님 앞에 절대적인 남성을 대표할 수 있고 역사적인 한을 연결시킬 수 있는 상대적인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여성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여성의 존재가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등장했던 때가 없었기 때문에 횡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여성이 하나님의 섭리노정 앞에 등장해 보지 못한 그 역사적인 한을 푸는 대표자로 등장해야 합니다. 


한 남성과 여성을 중심삼고 돌아 들어가더라도 그 가정 전체가 참부모 앞에 연결되어야 하고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돌아나가더라도 그 가정 전체가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기준까지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렇지 않으면 완전한 탕감복귀는 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통일교인은 통일교회 자체를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보다도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과 일체 되어야 하는 사명이 큽니다각자의 책임보다도 선생님과 일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임입니다선생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지 않고는 자기를 중심삼은 책임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여자면 어머니를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여성은 여성 자체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머니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그래야만 여성으로서 해야 되는 자기의 책임이 완수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반드시 어머니를 중심삼고 하나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25-24)


선생님의 사명


참부모는 역사의 기원으로 출발되어야 합니다다시 말해서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역사가 출발되었더라면 영원한 결과의 세계까지 뻗어나갈 것이었는데그것이 틀어졌기 때문에 역사의 기원을 다시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이것을 결정짓기 위해서 여자는 어떠한 여성이 되어야 하고남자는 어떠한 남성이 되어야 하느냐선생님 자신은 어떠한 아버지가 되어야 하며어머니는 어떠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느냐? (25-26)


참부모가 가야 할 길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참부모의 문을 통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어차피그 문은 통해야 합니다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생명체로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여러분이 그 문을 통하는 데는 그 깊은 골짜기의 내정을 어떻게 체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그것은 저나라에 있어서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참부모라고 부르지만그 말이 의미하는 깊은 골짜기의 내용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여러분은 참부모가 모든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라면 동시에 수난의 결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다시 말하면이 땅 위에서 십자가의 도상에 탕감의 제물로 올려질 것 가운데 최고의 제물로 등장한 분이라는 것입니다그러한 슬픈 사연을 지니고 그 슬픔의 고개를 넘어야만 부모의 자리를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25-27)


참부모의 기준


참부모의 기준점은 특정한 하나의 남성입니다그 남성은 6천 년 복귀섭리의 역사과정에서 국가면 국가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실수했던 모든 남자들을 대표하여 승리의 결정권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터 위에 하나의 상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다시 말하면해와가 사탄에게 끌려감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것을 전부 다 다시 찾는 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아담을 통해서 해와가 빚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의 상대가 재차 빚어져야 됩니다.


선생님이 어떠한 일에 결단을 내리면 그 결단은 세상뿐만 아니라 영계까지 영향을 미칩니다그런 것은 영통한 사람들에게 알아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외적인 세계만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까지도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4천 년 역사 속의 모든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정을 깎아 평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사실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이 기준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체험이 있어야 하며영적인 체험에 들어가려면 기도를 해야 됩니다기도뿐만이 아니라 반드시 원수세계에 들어가서 싸워야 합니다기도만 해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말씀을 중심삼고 옳은 것을 찾아서 생명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25-34)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때와 장소


하나님은 때가 되기 전에 반드시 준비를 시키십니다그 연습은 하나님이 앞장서서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그 기간에 하나님은 완전히 떠나십니다왜냐하면 타락의 결정을 아담 해와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이 같이하시고 동정하시느냐완전히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입니다둘이 아니고 혼자 남는 자리라는 것입니다그 누구한테도 형언할 수 없는 자리지극히 외로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빠져나갈 구멍도 없는 그런 입장까지 들어가야 합니다한 고개를 넘을 적마다 반드시 그런 자리가 있습니다참부모가 가야 할 길은 간단하지 않습니다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이것이 참부모가 가야 할 운명의 길입니다.


또한이 길은 하나님이 협조해서 넘는 길이 아니라 홀로 넘어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넘을 때 하나님이 협조하여 같이 넘었다면 탕감이 안되었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입장에서 홀로 넘어야 합니다홀로 넘어야 할 길이 이렇게 힘들고 지루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책임진 사람이 가야 할 운명길이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모릅니다그런데 이 길을 가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삼각권 내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삼각권 내에 들어가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후퇴하는 것은 간단합니다그러나 책임을 완수하기가 어렵다고 자포자기하여 후퇴한다면 완전히 망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가야 합니다여기에서 후퇴하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접근하게 되어 있습니다여러분이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막막한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그 고비를 넘기려면 이러한 작전을 잘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이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여기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5-37)*




천일국 훈독경 제4권 4일, 원문


참부모

 

날짜 : 1969. 9. 21()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참부모는 복귀섭리의 기점

 

하나님의 복귀역사의 중심은 세계도 아니요어떠한 나라도 아니요어떠한 특정한 종족이나 민족도 아닙니다하나님이 같이하실 수 있는 나라즉 하나님이 세워 주실 수 있는 나라가 있기 전에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민족이 있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종족이 있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그 가정이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그 부모를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복귀의 섭리역사를 해오신 것입니다결국모든 것이 종결되는 귀결점이 어디냐 하면 부모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흘러온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면 크고 작은 나라들도 많았고 군소 민족들도 많았습니다또한종교인의 가정들도 수없이 많았습니다그렇지만 그 나라들이 하나님이 찾고 계시던 나라들이 되지 못했고그 민족들이 하나님이 찾고 계시던 민족이 되지 못했고그 가정들이 하나님이 찾고 계시던 가정들이 되지 못했습니다그 가정과 민족과 나라들은 전부 다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가정그 가정을 통해서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종족과 민족 그리고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 수습해 나온 복귀섭리의 역사였습니다그렇게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가정을 전체의 대신으로 사랑할 수 있는 한 날을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해 나오신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나라를 세우고민족을 세우고종족을 세우고가정을 세운다고 하더라도그렇게 세우기 위하여 수습해 나온 모든 수고를 잊어버리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가정도 아니요형제도 아니요부모입니다그러니까 인류의 참다운 조상이 결정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실이 맺어질 수 없습니다또한하나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오신 싸움을 종결짓고 최후의 승리도 다짐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바라신 소원의 기점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이렇듯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을 세우는 데 있어서 새로운 출발을 볼 수 있는 기점이 참부모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자리에 본래 누가 서야 했느냐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가 서야 했습니다하나님의 소원은 아담이나 해와의 개인에게도 있었지만그것보다 그 둘을 중심삼고 하나의 부모의 자리가 결정되기를 더 원하셨습니다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요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위기대의 기원이 될 수 있었던 그 자리는 어떤 자리였느냐아담과 해와가 하나되는 자리였습니다아담과 해와가 하나의 사랑으로 묶어져 가지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출발의 기점을 이루었을 그 자리는 인류의 조상이 갖추어야 할 최초의 자리였습니다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누구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체적인 사랑을 이루었더라면거기서부터 인류의 참부모는 틀림없이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그 기준과 일치되지 못하고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그 길이 파탄되었다는 사실즉 우리 인류의 조상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그 길이 여지없이 파탄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그것이 어떤 외부의 사정으로 인하여 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즉 사랑을 중심삼고 걸려들었기 때문에지금까지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역사에 없는 수고를 하여도 지극히 어려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서로 등을 지고 갈라진 것을 묶어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면 묶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한꺼번에 전부 다 묶을 수 없습니다그래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하여 그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그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그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남자와 여자를 세워서 묶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아담과 해와를 대신하여 인류의 부모가 될 수 있는 남자와 여자의 두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들을 통해서 본래의 기준을 향해 거꾸로 묶어 나가야 하는데그렇게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25-14)

 

탕감복귀 섭리역사의 어려움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복귀의 역사였습니다탕감복귀의 역사 가운데는 수많은 가정들이 동원되었고 수많은 종족들이 동원되었습니다또한수많은 나라들이 동원되어 거쳐갔습니다어떤 가정이나어떤 종족이나어떤 민족이나어떤 국가도 하늘의 뜻과 더불어 일치되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언제나 하나님이 슬퍼하실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세웠고 언제나 하나님이 낙망하실 수밖에 없었던 결과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가정종족민족과 국가를 대해 나오시던 하나님의 슬픔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그러한 슬픈 사연들을 어느 때 해소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복귀도상에 있어서 지극히 난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국가들을 두고 볼 때그 가운데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일 것이냐또 그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일 것이며그 민족을 편성할 수 있는 종족은 어떤 종족일 것이며그 종족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어떤 가정일 것이냐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사탄과 일체가 되어 사탄과 헤어지려야 헤어질 수 없는 혈연관계를 맺어 나오고 있습니다이것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요끊어 놓아도 다시 맺어 버리게 되는 인연입니다이러한 운명 가운데 인류는 처해 있습니다이런 사망권 내에 있는 인류를 수습하여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적인 기준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의 국가적인 기준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실 수 있는 종족종족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세우실 수 있는 가정가정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인류의 참부모의 기준을 타락한 세계에서 찾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하나님의 창조위업과 현실적인 세계의 무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먼 거리를 누가 메울 것인가이것을 누가 탕감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언제나 하나님 편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고충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것은 그냥 메워지지 않습니다반드시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을 대신해서 탕감의 제물을 제시하지 않고는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국가나 민족이 모든 것을 탕감시킬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하나님이 하셔야 됩니다하나님이 탕감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그 거리를 단축시켜 메워 나오실 수밖에 없습니다그렇게 싸워 나오신 것이 6천 년 복귀섭리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특정한 나라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6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역사적인 탕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그러한 탕감적인 내용을 갖춘 나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와 뜻이 언제나 하나되어 가지고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볼 때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인간들이 번번이 그랬듯이 어떤 민족이면 민족 역시 하나님과 일치되어 그 역사적인 거리를 메워 나오는 데 있어서 협조하는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그 민족이 몇 해나 몇 달 기간은 어떤 인연 가운데서 뜻과 하나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수십 년 동안 하나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지 못하면그 나라는 완전히 망합니다. (25-16)

 

참부모를 찾으시려는 뜻

 

그러면 망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의 운명을 지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해 오셨느냐하나의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그 거리를 메우게 하셨습니다그리고 그 민족이 메우지 못하면 그 민족 중에서도 특정한 종족예를 들면 김씨면 김씨나 박씨면 박씨로 하여금 민족이 메우지 못한 그 거리를 메우게 하셨습니다.

하지만그 종족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국가와 당시의 국가와의 거리를 메우는 데 있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 종족 가운데서 특정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메우지 못한 거리를 보충토록 하셨습니다그러므로 종족의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 특정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그리고 그 가정이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그것을 연장시켜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남겨야 됩니다그러면 그 남겨야 할 기준이 무엇이냐부모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나오시는 데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었느냐참부모에 있었습니다참부모가 요구되는 것은 참가정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참가정이 요구되는 것은 참종족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참종족이 요구되는 것은 참민족참국가참세계를 대표하기 위한 것입니다이렇게 발전되어 나갑니다.

이것을 거꾸로 보면 세계를 대표해서는 국가가 제물이 되어야 하고국가를 대표해서는 민족이 제물이 되어야 하고민족을 대표해서는 종족이 제물이 되어야 하고종족을 대표해서는 가정이 제물이 되어야 하고그 가정을 중심삼고는 대표적인 사람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결국어디에 귀결되느냐 하면 부모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역사의 동기가 될 수 있고모든 국가 형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모든 민족 편성의 기원이 될 수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기원이 될 수 있는 부모를 중심삼고 복귀섭리의 역사를 엮어 나오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나라와 민족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참부모의 기준을 중심삼은 가정이 완전한 터전 위에 서 있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민족국가를 새롭게 편성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모든 전체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그 내용을 재편성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기준다시 말하면 인류가 바라고 나가는 소망의 한 기점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하면 바로 참부모의 자리입니다.

본래 아담 해와는 영원히 변치 않는 가정의 부모가 되어서 종족민족국가세계를 형성했어야 되었습니다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찾아 내려와 새로운 각도에서 이러한 것을 편성하려는 것이 지금까지의 6천 년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종결짓기 위해서 왔던 분이 누구냐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그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을 대표해서 왔느냐탕감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세계국가민족종족가정을 대표해서 왔습니다그렇게 예수님은 전체의 중심으로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그러한 분으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도 국가의 대표로 믿지 못했고 민족의 대표종족의 대표더 나아가서는 한 가정의 대표로까지도 믿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전체의 중심으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환경을 갖지 못한 예수님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25-18)

 

예수님의 소원

 

예수님이 소원하신 것은 하나의 나라였고하나의 민족이었고하나의 종족과 가정이었습니다그리고 그 가정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참부모가 소원이었습니다그런데 참부모를 결정하는 데는 하나의 여성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여성을 찾아오는 데 있어서는 그냥 끌어올 수 없었습니다보통의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맞는 것이었다면 언제든지 맞을 수 있었지만예수님이 한 여성을 맞는 데 있어서는 종적인 환경이나 횡적인 환경에서 자유롭게 맞이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여성을 맞기 위해서 예수님은 국가적인 대표의 기준민족적인 대표의 기준종족적인 대표의 기준가정적인 대표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당시까지의 4천 년 역사의 섭리적인 내용과 일치될 수 있었던 모든 조건을 완전히 탕감시켰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예수님이 하나의 신부를 맞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아도예수님은 신랑으로 왔으니까 그 예수님 앞에는 신부가 있어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 신부는 그저 횡적인 기준에서 한 여성으로 등장해서는 안되었습니다하나의 국가를 대표하고하나의 민족을 대표하고하나의 종족을 대표하고그 종족을 중심삼은 수많은 가정들을 대표하는 여성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족속들 가운데 그런 여성이 있었느냐 할 때그런 여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이 이 땅에서 30여 년의 생애를 거쳐간 그 길을 회상해 보게 될 때그 길은 예수님과 더불어 인류의 죄를 탕감시킬 수 있는 한 여성을 찾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여성은 어떤 여성이어야 했느냐반드시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나가는 여성이어야 했습니다그렇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이스라엘 민족 혹은 이스라엘 나라 앞에 없어서는 안될 역사적인 배경을 갖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성은 나라를 대표할 수 있고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수많은 가정들을 대표할 수 있고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특정한 내용을 갖추어야 했습니다그것을 결정짓지 않고는 탕감복귀의 기준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다시 말하면전체의 중심이 되는 부모의 기준을 결정지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복귀의 역사였습니다그 역사는 기쁜 역사가 아니라 슬픈 역사였습니다그 슬픈 역사 가운데는 수많은 국가들이 말려들었고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종족들이 말려들었고수많은 이스라엘 가정들이 말려들었습니다.

그렇게 슬픔으로 엮어져 온 역사의 결과로 남아진 세계의 수많은 국가민족종족과 가정들을 대표해 가지고 나설 수 있었던 여성은 그저 단조로운 여성이어서는 안되었습니다그런 특정한 내용을 갖추고 그것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결의를 한 여성이 아니고는 안되었던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마음 가운데 수많은 나라종족가정들을 대표할 수 있는 특정한 내용을 갖춘 여성이 아니어서는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성은 그러한 결의와 자신을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남성의 대표로 온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그 말은 하나의 남성으로 온 예수님을 국가면 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민족이면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종족이면 종족을 대표할 수 있고가정이면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으로 믿고 하나되어야 했다는 뜻입니다그럴 수 있는 기준이 설정되지 않고는 복귀된 가정을 중심삼은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을 수 없었습니다. (25-20)

 

기독교의 사명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예수님이 택한 12제자와 70문도가 내정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기반이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예수님은 그들을 동원해서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적인 울타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그리하여 그 기반 위에 하나의 결실체로 자신을 연결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그것을 위해서 역사적으로 책임 못 했던 많은 남성들을 재현시켜 그 시대에 평면적으로 벌여놓은 대표적인 형이 12제자와 70문도였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12제자와 70문도가 완전히 하나되었으면 역사과정에서 실패했던 모든 것들과 시대 시대마다 탕감하지 못했던 모든 남성들의 실수가 탕감되었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과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역사적인 실패를 수습할 수 있는 실체적인 권을 횡적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완전하게 철옹성 같은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사탄이 공격하려야 공격할 수 없는 하나의 남성으로서 승리적인 기반을 결정지어야 했던 것입니다그 울타리의 사명을 해야 할 사람이 누구였느냐 하면 12제자요, 70문도였습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 공고히 서 가지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여성을 찾아 어머니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노정에서 싸워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대의 싸움을 거쳐야 했습니다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내적인 사정이 예수님한테 있었다는 사실을 그 시대의 12제자나 70문도는 몰랐습니다그러니 예수님은 그러한 환경의 터전을 한 번도 갖지 못했습니다그렇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상대도 찾지 못하고그런 내정을 통고시킬 수 있는 하나의 제자도 찾지 못한 채 30여 년의 생애를 지내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돌아간 예수님이기에 한이 있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많은 한이 있었을 것입니다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역사를 엮어 오시면서 수고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보내시어 한 때를 맞게 하셨는데도 불구하고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모든 내용이 근본적으로 파탄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또한예수님은 하나님이 남성의 역사로 엮어 오셨던 4천 년 역사에 하나의 승리적인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세우지 못하고 가야 했습니다그런 예수님이었으니 그 사정이 얼마나 딱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하나 죽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그 자신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4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남자를 통하여 역사해 나오시던 하나님의 섭리가 모두 다 수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더 슬퍼했습니다그 자신이 죽는 설움보다도 하나님의 섭리가 실패로 돌아가는 설움을 더 크게 느끼면서 내정적으로 슬퍼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여러분은 그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는 죽더라도 역사적인 모든 터전을 다시 한 번 수습하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각오 밑에서 십자가의 길을 당당하게 돌파해 냈기 때문에하나님의 심정과 일치점을 마련할 수 있었고 영적으로 제자들을 다시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그것으로 제2의 울타리를 만들어 오늘날 남성을 중심삼은 기독교의 역사를 재편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그리하여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2천 년간 수많은 순교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발전시켜 나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기독교는 막연한 국가의 이념권 내에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민족을 다시 세워 가지고 예수님 당시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재현시켜서 완전히 해결해야 합니다그런 탕감노정이 남아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특정한 국가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5-22)

 

참부모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축복가정들

 

오늘날 통일교회의 이념을 중심으로 참부모와 인연을 맺은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이 많이 있는데이 가정들은 뭘 해야 되느냐가정에 있어서 남자는 오시는 주님 앞에 절대적인 남성을 대표할 수 있고 역사적인 한을 연결시킬 수 있는 상대적인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여성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여성의 존재가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등장했던 때가 없었기 때문에 횡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여성이 하나님의 섭리노정 앞에 등장해 보지 못한 그 역사적인 한을 푸는 대표자로 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등장할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게 된 것은 축복받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니 남성 앞에서 여성은 전체 여성을 대표하여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엮어 나온 모든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시킬 수 있는 내적인 울타리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이 돌아 들어간다면 모든 가정들이 돌아 들어가야 하고그 가정이 돌아 나온다면 전체가 돌아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다시 말하면한 남성과 여성을 중심삼고 돌아 들어가더라도 그 가정 전체가 참부모 앞에 연결되어야 하고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돌아나가더라도 그 가정 전체가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기준까지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렇지 않으면 완전한 탕감복귀는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선생님은 지금까지 6천 년의 역사과정에 있어 온 모든 남성들을 대표하여 제물이 되는데 제물 가운데서도 최고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그 입장은 어떤 특정한 개인적인 입장이 아닙니다어떠한 가정종족민족만을 대표하는 입장도 아닙니다세계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는 수많은 남성들이 왔다 갔습니다하나님은 아벨로부터 노아아브라함모세세례 요한예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남성들을 중심삼고 역사해 오셨지만 선생님은 그들보다 내외적으로나혹은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그들을 대할 때 부끄러운 입장에 서서는 안됩니다모든 남성들을 대표해서 세계적인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탕감복귀를 완전히 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통일교인은 통일교회 자체를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보다도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과 일체 되어야 하는 사명이 큽니다각자의 책임보다도 선생님과 일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임입니다선생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지 않고는 자기를 중심삼은 책임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면 남성인 선생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데그렇게 하나되는 데는 자기의 사정이나 입장즉 가정이면 가정에서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그 모든 환경을 넘어서 가지고 완전히 하나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하나되는 그 자리에는 어떠한 간격도 있을 수 없습니다그 무엇도 여기를 헤집고 나갈 수 있어서는 안됩니다완전히 일치된 기준이어야 합니다.

여자면 어머니를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여성은 여성 자체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머니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그래야만 여성으로서 해야 되는 자기의 책임이 완수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반드시 어머니를 중심삼고 하나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25-24)

 

선생님의 사명

 

본래 역사는 남성과 여성을 중심삼고 접속시켜 나왔습니다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의 기점에서 연결되어야 합니다그 연결은 참부모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되어야 하며그 참부모는 역사의 기원으로 출발되어야 합니다다시 말해서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역사가 출발되었더라면 영원한 결과의 세계까지 뻗어나갈 것이었는데그것이 틀어졌기 때문에 역사의 기원을 다시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한 남성과 여성을 맺어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시대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이것이 오늘날 여러분이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선생님의 책임은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짓는 것입니다이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중요한 사명입니다따라서이것을 결정짓기 위해서 여자는 어떠한 여성이 되어야 하고남자는 어떠한 남성이 되어야 하느냐선생님 자신은 어떠한 아버지가 되어야 하며어머니는 어떠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느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나라의 문제세계의 문제하늘땅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여기에서부터 완전한 승리의 결정을 짓지 않고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섭리는 다시 연장되는 것입니다두 분이 하나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하나의 남성과 여성이 만나서 하나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여기에는 역사적인 모든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두 나라 사이에는 합하려야 합할 수 없는 수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즉 문화가 다르고역사가 다르고사회의 모든 조직들이 다릅니다그 다른 환경이 그냥 그대로 하나되는 것은 어렵습니다하나될 수 없는 사연들이 많습니다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두 분이 하나되는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구렁텅이가 있다면 그 구렁텅이는 어떠한 구렁텅이보다도 더 깊은 구렁텅이일 것이요산이 있다면 그 산은 어떠한 산보다 더 높은 산일 것입니다그것은 우리의 평면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정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 산정과 깊은 골짜기입니다여기에서 평지가 될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그 기준이 세워지는 때가 참부모가 이 땅에 인연을 갖추고 등장할 때이고그때까지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입니다인류사에 이러한 탕감노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하나님의 내정 가운데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이루려고 하셨던 소원의 뜻을 아담 해와가 몰랐다는 것입니다또한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슬픔의 역사를 4천 년 동안 엮어 나왔지만 그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인간들도 몰랐습니다. 4천 년이 지난 후 예수님이 와서 하늘을 대신하여 하나의 남성으로서 한 여성을 취해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해원성사를 해야 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품고 나아감에 있어서 당해야 했던 예수님의 내적인 고충을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몰랐으니 예수님이 다른 누구에게 그 일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하면서 탄식했던 것입니다그것은 그러한 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그러한 내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모르고 나왔습니다. (25-26)

 

참부모가 가야 할 길

 

오늘날 선생님도 그러한 내정을 몰라 가지고는 탕감역사를 할 수 없습니다그러면 그 내정을 여러분에게 털어놓고 의논해야 하느냐그렇지 않습니다그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이 해결지어야 할 문제입니다그것은 난문제로서 첩첩이 가로놓여 있지만 외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습니다그러나 내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엇갈린 많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으니여기에 깃들어 있는 모든 사연을 탕감하고 나와야 할 길이 참부모가 가야 할 길입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 예수님도 이러한 뜻을 펴려고 했습니다그러나 뜻을 펼 수 없었던 실정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선고를 받게 될 때도 그것을 무난히 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그 환경에서는 뜻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죽음의 길로 내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그런 사연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깊은 곳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그것은 통일교회의 외적인 면을 보고 알 수도 있지만통일교회의 배후에는 나타나지 않은 역사적인 비참사가 내적으로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참부모의 문을 통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어차피그 문은 통해야 합니다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생명체로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여러분이 그 문을 통하는 데는 그 깊은 골짜기의 내정을 어떻게 체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그것은 저나라에 있어서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참부모라고 부르지만그 말이 의미하는 깊은 골짜기의 내용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여러분은 참부모가 모든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라면 동시에 수난의 결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다시 말하면이 땅 위에서 십자가의 도상에 탕감의 제물로 올려질 것 가운데 최고의 제물로 등장한 분이라는 것입니다그러한 슬픈 사연을 지니고 그 슬픔의 고개를 넘어야만 부모의 자리를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25-27)

 

참부모의 기준

 

참부모의 기준점은 특정한 하나의 남성입니다그 남성은 6천 년 복귀섭리의 역사과정에서 국가면 국가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실수했던 모든 남자들을 대표하여 승리의 결정권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터 위에 하나의 상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다시 말하면해와가 사탄에게 끌려감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것을 전부 다 다시 찾는 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아담을 통해서 해와가 빚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의 상대가 재차 빚어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여러분도 축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이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이 기준을 넘는 데 있어 7년 노정은 불가피한 것입니다이 7년 고비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싸운 것은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였습니다이것이 지금까지의 4천 년 역사에 해당됩니다원래는 예수님 때 이것을 연결해 가지고 7년 노정을 가야 했습니다그런데 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2천 년이 연장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재현해 가지고 4천 년 역사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탕감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복귀원리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내용과 성경 가운데 미지의 사실을 전부 다 해명했습니다그리고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아브라함 가정모세 노정그리고 예수님 시대까지 제일 깊은 곳을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펼치면 크지만 손에 쥐면 한줌에 쥘 수 있는 그물과 마찬가지로 심정적으로 한줌에 쥘 수 있는 내용을 가려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그것을 가려서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건으로 제시해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승리를 결정지어야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통일교회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으며수많은 영통인들에게도 선생님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선생님은 4천 년 역사 속의 많고 높은 고지를 전부 다 평지로 만들어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승리적인 관계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그런데 이것을 선생님이 세워서 아무런 지장이 없는 내적인 결정을 지어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사적인 탕감노정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떠한 일에 결단을 내리면 그 결단은 세상뿐만 아니라 영계까지 영향을 미칩니다그런 것은 영통한 사람들에게 알아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외적인 세계만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까지도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4천 년 역사 속의 모든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정을 깎아 평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우리 조상들을 대해서 슬퍼하셨습니다수많은 우리 조상들한테 배반당하고 배척받았습니다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모든 사연들의 깊은 골짜기보다 더 깊은 골짜기에 들어갔습니다조상들이 가지 못한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가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선생님의 한마디 위로가 6천 년 동안 지상에 왔다 간 수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나왔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사실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이 기준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체험이 있어야 하며영적인 체험에 들어가려면 기도를 해야 됩니다기도뿐만이 아니라 반드시 원수세계에 들어가서 싸워야 합니다기도만 해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말씀을 중심삼고 옳은 것을 찾아서 생명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를 볼 때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여기에는 역사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깊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5-34)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때와 장소

 

하나님은 때가 되기 전에 반드시 준비를 시키십니다군대가 위험한 때를 대비해서 연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또한 국가가 국민을 총동원해서 긴급사태에 대비한 연습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결정적인 큰 때가 오기 전에 반드시 연습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그 연습은 하나님이 앞장서서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그 기간에 하나님은 완전히 떠나십니다왜냐하면 타락의 결정을 아담 해와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이 같이하시고 동정하시느냐완전히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입니다둘이 아니고 혼자 남는 자리라는 것입니다그 누구한테도 형언할 수 없는 자리지극히 외로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빠져나갈 구멍도 없는 그런 입장까지 들어가야 합니다한 고개를 넘을 적마다 반드시 그런 자리가 있습니다참부모가 가야 할 길은 간단하지 않습니다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이것이 참부모가 가야 할 운명의 길입니다.

또한이 길은 하나님이 협조해서 넘는 길이 아니라 홀로 넘어야 할 길입니다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넘을 때 하나님이 협조하여 같이 넘었다면 탕감이 안되었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입장에서 홀로 넘어야 합니다홀로 넘어야 할 길이 이렇게 힘들고 지루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책임진 사람이 가야 할 운명길이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모릅니다그런데 이 길을 가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삼각권 내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삼각권 내에 들어가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후퇴하는 것은 간단합니다그러나 책임을 완수하기가 어렵다고 자포자기하여 후퇴한다면 완전히 망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가야 합니다여기에서 후퇴하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접근하게 되어 있습니다여러분이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막막한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그 고비를 넘기려면 이러한 작전을 잘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이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여기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2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