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부모의 날(천일국 훈독경 제4권 2일)

訓讀王 | 20191110151753

천일국 훈독경 제4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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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부모의 날(훈독본)

6회 부모의 날 말씀 

날짜 : 1966. 3. 22()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타락으로 잃어버린 날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오늘은 부모의 날입니다. 1960 3월을 중심삼고 우리는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날을 정했는데, 그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하늘땅이 기뻐하는 가운데서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미 부모의 날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맞기 위해서는 먼저 이 땅 위에 참부모가 와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날을 기준으로 하여 참부모로 말미암은 자녀를 갖게 된 후에야 자녀의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날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신 날 중에는 피조세계에 부모가 있는 날, 그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이 있는 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가 있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날들을 맞이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인류역사는 타락의 역사로 엮어져 내려왔고 악한 세계, 악한 나라, 악한 민족, 악한 종족, 악한 가정, 악한 개인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본래 하나님이 소망하신 창조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6천 년의 역사 속에서 3단계를 거쳐서 구원하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의 시대였던 구약시대와 양자의 시대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성약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성약시대에는 자녀가 나타나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16-177)


부모로서의 구주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물에 빠진 상태에 있는 것과 같은 이 타락한 인류에게는 어떠한 구주가 필요한가? 부모로서의 구주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타락한 인류를 사랑하신다면 어떠한 입장에서 그들을 구하고 싶으실 것인가?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에서 인류를 구원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3년 공생애노정을 출발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부모의 입장이었습니다. 인류를 위한 참부모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해야 할 혈통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혈통과 인연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정성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나간다고 해도 참다운 아들딸이 아닌 양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는 양자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렇게라도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 땅에 왔다 갔지만, 오늘날 수많은 인류가 구원을 받을 때는 그 최고의 기준이 양자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란 무엇이냐? 양자는 핏줄이 다른 자식입니다.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거짓부모와 인연을 맺었으니 그 인연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진짜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중생을 하려면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없이는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메시아로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와서 무엇을 해야 되었느냐?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인류를 구하고 다시 낳기 위해서 예수님은 신부를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성신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을 중심삼고 인류는 거듭나야 합니다. 사탄이 인류를 다 빼앗아 갔으니까 하나님을 중심삼고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혈연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서 심정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는 천륜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모의 터전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부모가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12제자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였습니까? 아담 대신 온 후아담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인 후해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부모의 자리를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16-178)


신부의 사명


남자는 하늘을 대신하고,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남자를 대신하여 신랑으로 왔기 때문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제자들 역시 그 뜻을 몰랐기 때문에 협조하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요셉 가정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함으로써 예수님은 참부모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4천 년의 역사를 두고 섭리하신 끝에 자신의 가정을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알아 가지고 시대적인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 그러한 요셉의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했던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민족마저 예수님을 불신하자 예수님은 요셉의 가정과 유대나라에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몰리고 쫓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데려가신 것입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타락했던 반대의 경로를 거쳐서 죄를 청산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님은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한이 되었습니다.


인류를 살리는 것이 소망이요, 목적이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간 예수님은 재림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할 때 무엇을 먼저 해야 되느냐? 제자들을 만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오늘날 전인류를 대신하여 신랑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준비해 온 기독교입니다.


영계에 가 보면, 성신은 어머니의 신()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서 실체를 갖추면 신부는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가정을 준비하고, 한 국가를 준비하고, 세계를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가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여성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졌습니다.


끝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런 대표적인 존재가 나올 수 있는 때가 가까워지므로 세계적인 여성운동이 벌어집니다. 종말기는 해와가 타락한 것을 복귀할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해와를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16-181)


오늘날 여성들이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러한 때 참어머니가 나와야 됩니다. 우리는 그 어머니를 땅 위에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땅 위에 신부가 세워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모가 없으면 자녀가 있을 수 없고, 자녀가 없으면 가정이 있을 수 없고, 가정이 없으면 종족, 종족이 없으면 민족, 민족이 없으면 국가, 국가가 없으면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남자들에게 신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랑 신부의 인연을 거쳐서 만민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한 구원섭리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남자나 여자나 주님 앞에서 신부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다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일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뛰기만 하면 일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만, 마지막에 일등으로 골인하는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 같이 신부가 될 수 있는 허락은 받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못 받으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신부로 택정을 받아야 비로소 신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며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기 위해서, 인류를 사망에서 구해주기 위해서 인류의 어머니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셔야 합니다. 기독교 사상의 중심이 사랑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신부와 인연을 맺어야 할 신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6천 년을 지나 다시 찾아야 할 날이 무슨 날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구원성사하시는 날이며, 인류가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찾는 날입니다. 인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행복과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소망들 중에서 최고의 소망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부모의 날을 맞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이요, 또 하나님을 찾아갈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 어린양 잔치를 할 날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라고 있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부모의 날은 전인류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날을 맞이해야 할 여러분은 언제 세계의 인류를 위하여 제물이 되어 보았으며, 언제 하늘을 위해서 몸부림쳐 보았습니까? 여러분 전부가 나 하나 잘되고 편안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까? 나 하나를 위하여 기도하지는 않았습니까? 나 하나 잘되기 위하여 연보를 하고, 내 아들딸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6-183)


부모의 날을 맞지 못한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 앞에 양자로밖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아버지의 사명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1960년을 중심삼고 한국에서 부모의 날이 설정되었습니다. 이 날은 한국이 해방되던 날보다, 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어떠한 날보다 더 기쁜 날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날이 몰리고 쫓김 받는 통일교회의 무리들로 인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 날이 없고서는 천주의 한을 풀 수 없습니다. 이 날이 오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없습니다. 이 날이 세워지지 않고서는 사탄세계인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승리의 발판을 닦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날을 결정하는 날도 이 날이요, 성도들이 해방될 수 있는 날도 바로 이 날입니다. 천주간에 소원과 이념이 하나되는 날도 이 날이요, 천지가 개벽되는 날도 이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로 말미암아 아담과 해와가 소망했던 역사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요, 부모의 날을 계기로 타락한 세계가 없어지고 사랑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끝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전인류가 개인주의화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망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래 가지고 점점 물질주의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을 중심삼고 물질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세계적인 권한과 위신을 가지고 언제까지나 세계를 호령하고 그 권세를 자랑할 줄 알지만 그렇게 안됩니다. 세계적인 흐름이 1960년을 기점으로 해서 주의(主義)를 중심삼은 형태에서 국가를 중심삼은 형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공산주의가 국가적인 공산주의와 민족적인 공산주의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사탄 편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국가와 국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러니 본연의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복귀의 길을 가는 우리도 개인적으로 맞고, 민족적으로 맞고, 세계적으로 맞아 가면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돌려야 합니다. (16-185)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을 버리고 돌아섰지만, 나는 어떠한 폭풍우가 불어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세계적인 신념을 세워야 합니다. , 개인을 복귀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가정,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를 하나님 편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늘땅의 모든 복을 찾아올 때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던 심정 혹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를 그리워하던 심정으로, 아무리 시련과 고통이 휘몰아친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이를 악물고 넘어가야 합니다.


기독교가 지난날 아무리 대외적인 것을 갖추어 가지고 민족, 국가, 세계적인 터전을 닦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양자로서의 터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양자를 가지고 만족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전인류는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입장에서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적인 것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민족이나 국가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해와로 말미암아 빚어진 한 많은 사연을 풀어 버리고 사탄권을 없애고 선의 세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언어가 통일되어야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념, 하나의 생활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어디까지나 역사를 보호하고 침략자를 없애는 참사랑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원래 그러한 법도를 세워서 인류 앞에 공헌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가인과 아벨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형제가 형제를 품고, 형제가 형제를 대신하며, 친구를 위하여 죽음의 길로 나설 수 있는 마음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만민을 구원하겠다는 박애정신으로 세계 인류와 친할 수 있는 마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활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 날을 위하여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16-188)


효자가 되려면


여러분이 효자가 되려면 부모가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만으로는 절대로 하늘의 자녀를 두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자녀를 두기 위해서는 분명히 하늘의 부모가 먼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맏아들이 먼저 나와야 됩니다. 왜냐하면 맏아들이었던 가인이 천도를 배반했으니 하나님 앞에 배반했던 가인의 노정을 거꾸로 밟아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고 무엇이 어떻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이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뱃속과 아버지의 뼛속을 통하여 다시 나와야 됩니다.


렇기 때문에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 쌍태로 있을 때부터 싸웠습니다. 베레스도 세라와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사탄을 분리해야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가인 편 인물이 먼저 나왔던 것처럼 공산주의가 먼저 나왔습니다. 먼저 나와야 쫓겨 들어가지요. 그래야 하나님 편이 승리하게 됩니다.


본래 예수님은 어머니였던 마리아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탄의 간섭을 받으면 안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탄이 참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시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에게는 역사적인 터전이 있었고, 또 복중에서 자라난 심령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원래 아기 때부터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메시아가 탕감노정을 걷게 되었는데, 먼저 법도대로 걸어 나가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여러분도 탕감노정을 걷기 위해서는 법도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부모를 만나 가지고 어린애가 되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법도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을 다 찾지 못했으니 복중의 아들을 제물로 삼아 그 아들을 아벨적인 입장에 세워 놓고 가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한 싸움이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1960년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한 형제가 보리밥을 먹으면 나머지의 형제들도 보리밥을 먹어야 하고, 한 형제가 고생을 하면 나머지의 형제들도 모두가 고생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날을 기준으로 타락된 경로와 반대되는 경로를 거쳐서 탕감복귀의 노정을 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법도대로 아벨을 통해서 장자의 기업을 복귀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부모 앞에 먼저 나온 아기의 입장에서 나중에 나오는 아기 앞에 천하의 모든 것을 대표한 충성을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탕감복귀를 할 수 있습니다.

(16-191)


부모의 날은 어떠해야 되는가


부모의 날은 어떠해야 되는가? 부모의 날은 통일교회만을 위한 날이 결코 아닙니다. 한국을 위한 부모의 날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위한 부모의 날로도 그 뜻을 다할 수 없습니다. 천상천하, 온 천주가 화합할 수 있는 한 날로서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부모의 날을 국가적인 부모의 날로, 국가적인 부모의 날을 세계적인 부모의 날로, 세계적인 부모의 날을 천주적인 부모의 날로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해야 할 싸움이 아직도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16-194)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우리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알고, 부모의 소원을 알고, 부모의 날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길을 가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딛고 넘어간 셈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낳았습니까?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여 최후에 가서 하나님이 맞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했습니다. 그러면 말미암는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그것은 문을 통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문을 통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문을 통해야 되고, 어머니의 문을 통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형제들의 문을 통해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아벨을 찾아야 되느냐? 가인에게 매맞아 죽은 아벨은 안됩니다. 살아서 사탄과 싸워 승리한 아벨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 가정의 아들로서 설 수 있는 것이며, 그래야만 악과 선을 심판할 때 있을 하나님의 권능을 대신하여 심판의 권한을 갖는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부모를 찾았습니까?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 섰습니까?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가 여러분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여러분이 참된 자신을 찾아 세울 수 있습니다. (16-196)*


 

천일국 훈독경 제4권 2일, 원문

 

소망의 부모의 날

6회 부모의 날 말씀 

날짜 : 1966. 3. 22()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타락으로 잃어버린 날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오늘은 부모의 날입니다. 1960 3월을 중심삼고 우리는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날을 정했는데, 그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하늘땅이 기뻐하는 가운데서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미 부모의 날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맞기 위해서는 먼저 이 땅 위에 참부모가 와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날을 기준으로 하여 참부모로 말미암은 자녀를 갖게 된 후에야 자녀의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날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날들을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간조상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던 부모의 날,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맞이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천지창조의 목적을 완성한 하나님으로서 기뻐할 수 있는 날과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상태에 떨어진 것이 타락인데,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잃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망하시던 모든 날들을 다 잃어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신 날 중에는 피조세계에 부모가 있는 날, 그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이 있는 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가 있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날들을 맞이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인류역사는 타락의 역사로 엮어져 내려왔고 악한 세계, 악한 나라, 악한 민족, 악한 종족, 악한 가정, 악한 개인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본래 하나님이 소망하신 창조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악한 것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누구냐? 바로, 사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탄세계를 다시 하나님 편으로 찾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상 하시던 세계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탄이 악한 세계를 이루어 나온 것과는 반대로 선한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6천 년의 역사 속에서 3단계를 거쳐서 구원하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의 시대였던 구약시대와 양자의 시대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성약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성약시대에는 자녀가 나타나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16-177)

 

부모로서의 구주

 

2천 년 전 이 땅에 온 예수님의 목적은 종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자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목적으로 왔던가? 피조만물을 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왔습니다. 구주로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으면 구하고 싶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물에 빠졌는데, 어느 부모가 종을 시켜서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라고 하겠습니까? 만일 그런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참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 자기의 막내아들이 물에 빠졌는데 형을 시켜서 건져내라고 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도 역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부모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물에 빠진 상태에 있는 것과 같은 이 타락한 인류에게는 어떠한 구주가 필요한가? 부모로서의 구주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타락한 인류를 사랑하신다면 어떠한 입장에서 그들을 구하고 싶으실 것인가?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에서 인류를 구원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3년 공생애노정을 출발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부모의 입장이었습니다. 인류를 위한 참부모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참부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거짓된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은 참부모와 인연을 맺지 못했고 참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혈육으로 태어난 사람들, 즉 참부모의 혈육을 통하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직계의 자녀로 세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해야 할 혈통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혈통과 인연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정성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나간다고 해도 참다운 아들딸이 아닌 양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는 양자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렇게라도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 땅에 왔다 갔지만, 오늘날 수많은 인류가 구원을 받을 때는 그 최고의 기준이 양자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란 무엇이냐? 양자는 핏줄이 다른 자식입니다.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거짓부모와 인연을 맺었으니 그 인연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진짜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타락 이후 4천 년 역사가 지난 뒤 예수님이 왔던 것입니다. 중생을 하려면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없이는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메시아로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와서 무엇을 해야 되었느냐?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었던 것이냐?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12제자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신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1, 2, 3차의 노정을 걸었지만 예수님은 신부를 찾지 못했기에 할 수 없이 자식의 입장에 세운 것이 12사도였습니다. 이런 내용은 성경에 없습니다.

인류를 구하고 다시 낳기 위해서 예수님은 신부를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성신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했던 것입니다. 이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요한복음 3:4)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3:10) 하면서 한탄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을 중심삼고 인류는 거듭나야 합니다. 사탄이 인류를 다 빼앗아 갔으니까 하나님을 중심삼고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혈연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서 심정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는 천륜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모의 터전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부모가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12제자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였습니까? 아담 대신 온 후아담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인 후해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부모의 자리를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16-178)

 

신부의 사명

 

남자는 하늘을 대신하고,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남자를 대신하여 신랑으로 왔기 때문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제자들 역시 그 뜻을 몰랐기 때문에 협조하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요셉 가정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함으로써 예수님은 참부모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4천 년의 역사를 두고 섭리하신 끝에 자신의 가정을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알아 가지고 시대적인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 그러한 요셉의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했던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예수님은 다시 가정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민족마저 예수님을 불신하자 예수님은 요셉의 가정과 유대나라에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몰리고 쫓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데려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신부를 찾아 참다운 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세상과 하나님 앞에 부모의 날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에 따라서 부모는 꼭 나와야 합니다. 만약 그때에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소생과 장성 그리고 완성의 단계가 이루어지지 못한 터전 위에 왔기 때문에 그 모든 터전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해와로 말미암아 타락했던 반대의 경로를 거쳐서 죄를 청산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님은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한이 되었습니다.

인류를 살리는 것이 소망이요, 목적이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간 예수님은 재림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할 때 무엇을 먼저 해야 되느냐? 제자들을 만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오늘날 전인류를 대신하여 신랑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준비해 온 기독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에 대한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4천 년 역사는 2천 년이 연장되어 다시금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걷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후아담으로 왔습니다. 성신도 이 땅 위에 와서 신부의 체()를 쓰지 못했습니다. 영계에 가 보면, 성신은 어머니의 신()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서 실체를 갖추면 신부는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가정을 준비하고, 한 국가를 준비하고, 세계를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가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여성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해결해야 됩니다. 이 땅 위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모두 다 악한 혈통을 받고 태어난 타락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참여성이 나와야 합니다. 끝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런 대표적인 존재가 나올 수 있는 때가 가까워지므로 세계적인 여성운동이 벌어집니다. 종말기는 해와가 타락한 것을 복귀할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해와를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16-181)

 

부모의 날은 인류가 소망하는 날

 

오늘날 여성들이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러한 때 참어머니가 나와야 됩니다. 우리는 그 어머니를 땅 위에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땅 위에 신부가 세워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모가 없으면 자녀가 있을 수 없고, 자녀가 없으면 가정이 있을 수 없고, 가정이 없으면 종족, 종족이 없으면 민족, 민족이 없으면 국가, 국가가 없으면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모셔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지으신 바의 세계와 만민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아담 가정에서도 못하고 요셉 가정에서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다시 수습해서 전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남자들도 사랑할 수 있어요? 어떻게 예수님이 남자들에게 신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랑 신부의 인연을 거쳐서 만민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한 구원섭리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남자나 여자나 주님 앞에서 신부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다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일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뛰기만 하면 일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만, 마지막에 일등으로 골인하는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 같이 신부가 될 수 있는 허락은 받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못 받으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신부로 택정을 받아야 비로소 신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며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기 위해서, 인류를 사망에서 구해주기 위해서 인류의 어머니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셔야 합니다. 기독교 사상의 중심이 사랑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신부와 인연을 맺어야 할 신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6천 년을 지나 다시 찾아야 할 날이 무슨 날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구원성사하시는 날이며, 인류가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찾는 날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모를 찾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날부터 인류는 하늘의 법도에 따라서 생활해야 됩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타락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영원히 불행한 자리에서 신음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행복과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소망들 중에서 최고의 소망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부모의 날을 맞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이요, 또 하나님을 찾아갈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 어린양 잔치를 할 날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라고 있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부모의 날은 전인류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날을 맞이해야 할 여러분은 언제 세계의 인류를 위하여 제물이 되어 보았으며, 언제 하늘을 위해서 몸부림쳐 보았습니까? 여러분 전부가 나 하나 잘되고 편안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까? 나 하나를 위하여 기도하지는 않았습니까? 나 하나 잘되기 위하여 연보를 하고, 내 아들딸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6-183)

 

참부모가 필요한 타락한 인간

 

지금 이 세계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민을 해방시키고 만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던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땅이 바라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기독교가 퍼져 있는데, 그들이 소망하는 날은 무슨 날인가? 어린양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그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부모의 날입니다. 이미, 다 컸다고 하더라도 다시 태어나 부모를 맞이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날을 맞지 못한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 앞에 양자로밖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아버지의 사명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종과 민족은 많은 명절들을 맞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모의 날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을 중심삼고 한국에서 부모의 날이 설정되었습니다. 이 날은 한국이 해방되던 날보다, 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어떠한 날보다 더 기쁜 날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날이 몰리고 쫓김 받는 통일교회의 무리들로 인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 날이 없고서는 천주의 한을 풀 수 없습니다. 이 날이 오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없습니다. 이 날이 세워지지 않고서는 사탄세계인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승리의 발판을 닦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날을 결정하는 날도 이 날이요, 성도들이 해방될 수 있는 날도 바로 이 날입니다. 천주간에 소원과 이념이 하나되는 날도 이 날이요, 천지가 개벽되는 날도 이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오늘날 이 땅에 참부모가 계신다면 그 부모는 어느 개인을 위한 부모가 아닙니다. 그 부모로 말미암아 모든 가정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그 부모로 말미암아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부모의 날을 중심삼고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부모를 몽땅 차지하는 사람은 전세계를 차지하는 사람과 같으며, 어떠한 국가의 주권자같이 하늘의 영광을 차지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은 천지가 찬양하고 기념해야 할 날인 동시에 만민이 잊어서는 안되는 날입니다.

참부모로 말미암아 아담과 해와가 소망했던 역사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요, 부모의 날을 계기로 타락한 세계가 없어지고 사랑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역적인 사탄이 차지한 세계적인 판도를 빼앗아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빼앗기 위한 싸움을 책임지고 나온 것이 종교였습니다. 이것을 위해 종교인들은 도를 닦아 나왔고 기도를 해 나왔습니다.

이 땅 위에 인류의 아버지로 왔던 메시아를 십자가에 돌아가게 했으니까 다시 인류의 아버지가 오셔야 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종교인들은 기도를 해야 했고 도를 닦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인류의 아버지를 모셔야 됩니다. 그러니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과 대결하여 세계적인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천지간에 선악의 싸움이 벌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종말기인 지금 40년 혹은 120년을 중심삼고 환난과 기근 그리고 파란곡절이 전세계에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끝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전인류가 개인주의화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망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래 가지고 점점 물질주의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을 중심삼고 물질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세계적인 권한과 위신을 가지고 언제까지나 세계를 호령하고 그 권세를 자랑할 줄 알지만 그렇게 안됩니다. 세계적인 흐름이 1960년을 기점으로 해서 주의(主義)를 중심삼은 형태에서 국가를 중심삼은 형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공산주의가 국가적인 공산주의와 민족적인 공산주의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과 중공이 싸우게 된 것입니다.

원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의 주권, 영원무궁한 하늘의 주권이 세워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가 하나로 화하고 동하여 돌아가는 세계가 이루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거꾸로 사탄을 중심삼은 주권이 세워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편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국가와 국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러니 본연의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져야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환경, 어느 사회, 어느 국가에서도 하나님을 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는 피눈물나는 반대를 받고 쫓김을 받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복귀의 길을 가는 우리도 개인적으로 맞고, 민족적으로 맞고, 세계적으로 맞아 가면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돌려야 합니다. (16-185)

 

새로운 터전이 이루어져야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을 버리고 돌아섰지만, 나는 어떠한 폭풍우가 불어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세계적인 신념을 세워야 합니다. , 개인을 복귀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가정,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를 하나님 편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늘땅의 모든 복을 찾아올 때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던 심정 혹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를 그리워하던 심정으로, 아무리 시련과 고통이 휘몰아친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이를 악물고 넘어가야 합니다.

기독교가 지난날 아무리 대외적인 것을 갖추어 가지고 민족, 국가, 세계적인 터전을 닦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양자로서의 터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양자를 가지고 만족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전인류는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입장에서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적인 것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참부모의 사랑을 받는 형제들끼리 이 땅에서 하나되어 모든 것을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한 많은 역사의 모든 것을 청산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맞는 기쁨을 오색인종이 찬양하고 그 마음이 사랑으로 터져 나와 세계에 있는 수많은 고통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민족이나 국가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땅이 있다면 그 땅은 세계를 구해 낼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참부모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들이 나타나서 아담과 해와로 말미암아 빚어진 한 많은 사연을 풀어 버리고 사탄권을 없애고 선의 세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언어가 통일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언어와 생활이 통일되어야 하며 문화도 통일되어야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념, 하나의 생활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생활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처럼 통일된 생활을 해본 시대가 없었고 민족이 없었으니, 오늘날 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터전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어디까지나 역사를 보호하고 침략자를 없애는 참사랑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원래 그러한 법도를 세워서 인류 앞에 공헌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가인과 아벨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형제가 형제를 품고, 형제가 형제를 대신하며, 친구를 위하여 죽음의 길로 나설 수 있는 마음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만민을 구원하겠다는 박애정신으로 세계 인류와 친할 수 있는 마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활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와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부모가 나와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도 태어나는 한 날이 있듯이 그러한 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한 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그 날을 위하여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16-188)

 

효자가 되려면

 

오늘은 부모의 날입니다. 여러분이 효자가 되려면 부모가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부모가 어떤 분인가를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나와서 효자 효녀의 길을 가고 있지만, 처음에는 오줌 누고 똥 누던 어린애였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깨물고 빨던 어린애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나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린애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배를 통해서 태어났지만 양자와 양녀들입니다. 그러니 부모 앞에 충성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부모가 되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만으로는 절대로 하늘의 자녀를 두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자녀를 두기 위해서는 분명히 하늘의 부모가 먼저 나와야 합니다.

런데 그러한 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맏아들이 먼저 나와야 됩니다. 왜냐하면 맏아들이었던 가인이 천도를 배반했으니 하나님 앞에 배반했던 가인의 노정을 거꾸로 밟아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까지 여러분은 모두 다 아이들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고 무엇이 어떻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이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뱃속과 아버지의 뼛속을 통하여 다시 나와야 됩니다.

반드시, 가인과 아벨은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 쌍태로 있을 때부터 싸웠습니다. 베레스도 세라와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사탄을 분리해야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가인 편 인물이 먼저 나왔던 것처럼 공산주의가 먼저 나왔습니다. 먼저 나와야 쫓겨 들어가지요. 그래야 하나님 편이 승리하게 됩니다.

본래 예수님은 어머니였던 마리아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탄의 간섭을 받으면 안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탄이 참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시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에게는 역사적인 터전이 있었고, 또 복중에서 자라난 심령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원래 아기 때부터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메시아가 탕감노정을 걷게 되었는데, 먼저 법도대로 걸어 나가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여러분도 탕감노정을 걷기 위해서는 법도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부모를 만나 가지고 어린애가 되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법도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을 다 찾지 못했으니 복중의 아들을 제물로 삼아 그 아들을 아벨적인 입장에 세워 놓고 가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한 싸움이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1960년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한 형제가 보리밥을 먹으면 나머지의 형제들도 보리밥을 먹어야 하고, 한 형제가 고생을 하면 나머지의 형제들도 모두가 고생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날을 기준으로 타락된 경로와 반대되는 경로를 거쳐서 탕감복귀의 노정을 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복귀의 길을 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가 이 길을 가야만 사위기대를 중심으로 한 탕감복귀노정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종교인인 우리는 여기에서 세계적인 기반을 이루기 위한 터전,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민족의 핍박을 받고 인류의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이와 같은 세계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여러분은 오늘 부모의 날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알아야 되겠으며, 여기에 동참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부모를 세워 공경해 보았습니까? 언제 사랑하는 부모를 가져 보았습니까?

가인과 아벨의 탕감복귀에서 먼저 나온 것이 가인이요, 나중에 나온 것이 아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법도대로 아벨을 통해서 장자의 기업을 복귀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부모 앞에 먼저 나온 아기의 입장에서 나중에 나오는 아기 앞에 천하의 모든 것을 대표한 충성을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탕감복귀를 할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는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빼앗아 갔습니다. 그랬으니 가인과 아벨의 경우에는 탕감의 법칙대로 먼저 나온 사탄 편인 가인을 하늘 편인 아벨 앞에 굴복시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쳐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또한 타락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나중에 나온 아기를 사랑하고 받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모를 모실 수 있습니다.

축복가정들은 앞으로 주님의 아들딸을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합니다. 그들을 모실 수 있는 기준이 세워져야 예수님의 한을 여러분이 탕감복귀로 해원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6-191)

 

부모의 날은 어떠해야 되는가

 

먼저 나온 제1이스라엘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어갔고 제2이스라엘이 탕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탕감복귀에 의하면 여러분은 제2이스라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제2이스라엘의 출발기준 위에서 메시아를 모셔야 합니다.

선생님이 한 많은 한국 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도 복귀역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자리에서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삼천만이 반대해도 그것을 뚫고 20년 전부터 이 길을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나오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천륜을 기반으로 해서 우리 교회가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기초를 닦는 역군들입니다. 천적인 사명을 완결하기 위한 투사들인 것입니다.

부모의 날은 어떠해야 되는가? 부모의 날은 통일교회만을 위한 날이 결코 아닙니다. 한국을 위한 부모의 날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위한 부모의 날로도 그 뜻을 다할 수 없습니다. 천상천하, 온 천주가 화합할 수 있는 한 날로서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싸움은 남아 있습니다. 원수들이 남아 있으니 그들을 전부 다 무너뜨리기 위한 탕감의 계획이 먼저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부모의 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부모의 날을 발전시켜서 종족적인 부모의 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워 나왔던 것이고, 종족적인 부모의 날을 발전시켜서 민족적인 부모의 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부모의 날을 국가적인 부모의 날로, 국가적인 부모의 날을 세계적인 부모의 날로, 세계적인 부모의 날을 천주적인 부모의 날로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해야 할 싸움이 아직도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7년 고비를 중심하고 가야 할 길, 즉 세계 무대로 향한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16-194)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혼란한 시대에 처한 세상 사람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흑암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혼란기에는 새로운 힘을 가지고 그들을 이끌어 뭉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엇으로 그들을 이끌어 뭉치게 할 수 있느냐? 기독교적인 것으로 해야만 됩니다. 서구의 생활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지금 그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통일교회를 그리워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가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선생님은 언제나 먼저 준비해 나갑니다. 이제는 식구들을 다스릴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옛날에 나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살아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알고, 부모의 소원을 알고, 부모의 날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날, 이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또한, 이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해 왔습니다. 인간이 그런데 하나님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리셨겠습니까! 이 날을 맞이한 승리한 아들딸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까지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 사탄의 사랑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기에 하나님도 사탄의 사랑이 있는 자리에서는 움직이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그것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는 통일교회가 이렇다 저렇다고 하면서 자기네들 마음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십시오! 우리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길을 가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딛고 넘어간 셈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낳았습니까? 이것을 세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도()가 무엇 때문에 생겨났으며, 통일교회가 왜 생겨났는지 확실히 이해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여 최후에 가서 하나님이 맞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했습니다. 그러면 말미암는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그것은 문을 통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문을 통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문을 통해야 되고, 어머니의 문을 통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형제들의 문을 통해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형제까지 잃어버리게 되었기에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부모를 찾아야 되고, 아벨을 찾아야 됩니다.

어떠한 아벨을 찾아야 되느냐? 가인에게 매맞아 죽은 아벨은 안됩니다. 살아서 사탄과 싸워 승리한 아벨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 가정의 아들로서 설 수 있는 것이며, 그래야만 악과 선을 심판할 때 있을 하나님의 권능을 대신하여 심판의 권한을 갖는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부모를 찾았습니까?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 섰습니까?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가 여러분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여러분이 참된 자신을 찾아 세울 수 있습니다. (16-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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