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3권 30일
우리는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자 (훈독본)
날짜 : 1961. 1. 1(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우리는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도 물론 그랬지만 앞으로 이 일년 동안은 특히 아버지의 대신자라는 것을 친히 체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타락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상대되는 것으로서 땅을 지으셨고, 당신의 실체대상으로 우리 인류의 조상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서 우리 인간을 지으셨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 지어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냐 하는 것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하늘이 머리라면 우리는 몸통이요, 하늘이 몸통이라면 우리는 지체입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할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지 못하는 입장에 선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은 지극한 선의 중심가치를 모든 만상 앞에 나타낼 수 있는 존재를 고대하고 계시나, 그러한 대상존재가 없으니 그것이 탄식의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과 마음으로나 몸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체의 입장에 들어오게 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희생시켜 나온 섭리를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11-51)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에 심정적으로 하나돼야 할 인간
하나가 되는 데는 소원이 하나가 되어야 하겠고, 사정이 하나되어야 하겠고, 심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만일 인간시조가 하나님과 심정과 사정 그리고 소원의 일치점을 가졌더라면 우리에게는 슬픔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슬픔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점을 가졌더라면, 하나님께서 전체의 목적을 위하여 움직이시고 전체의 이념을 위하여 감지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 인간이 느끼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 개인이 살고 있는 생활권은 지극히 좁은 환경이라도 세계를 상대로 하여서 하늘과 땅을 대신하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느끼면서 살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다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하늘과 함께할 수 있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위치에 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소망을 품고 이념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되었는데,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참다운 선을 중심삼고 참다운 목적을 위하여 결의한 심정은 영원히 변할 수 없으며 어느 누가 옮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시초에 이런 결정적인 해결을 지을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이 잡혀졌던들 오늘 우리 자신들은 이런 어려운 생활, 허덕이는 생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인간들이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실정을 수습하여 하늘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될 책임과 사명이 인간에게 남아 있는 연고로 우리 인간은 험난한 길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11-52)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길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친아들딸로서 지으셨기 때문에 비록 인간이 타락하여 그 가치와 인연을 갖지 못하였어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이 본연의 심정적인 기준까지 끌어올려서 인연을 맺으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지금까지 소망이 없었던 인간들 앞에 소망을 주기 위하여 하늘은 역사했습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최후에 가서는 하나의 이념과 하나의 소망의 세계로 향하도록 이끌어 나오기 위해서 하늘은 무한히 애썼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길이 어디냐?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입니다. 오늘날의 인간들도 하나되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하나되어야 하겠습니까? 한 날의 생활에서만 하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목표가 같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출발했으니까 가는 곳도 아버지께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데는 무엇을 하면서 가야 할 것이냐? 아버지의 대신자로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아버지의 뜻을 세워서 지으신 만물을 아버지의 대신으로 사랑하면서 가야 합니다. 출발도 아버지로부터 했으니까 아버지한테 종결되도록 아버지와 하나의 심정으로 연결될 때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출발도 하나였으니까 끝도 하나여야 합니다. 이것은 사정이 통해야 되고, 소원이 같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11-53)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려면
그러면 오늘날 이와 같은 크나큰 뜻을 우리의 목적에 놓아두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어 놓으신 본연의 중심목표가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중심 앞에 죽든지 살든지 하나되지 않으면 안될 필연적인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사정과 어떠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어떠한 목적이 있다고 할진대,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뜻이 같고 심정이 같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을 사정이 통할 수 있고 심정이 하나될 수 있는 소망의 동산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할진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할 입장에 선 인간에게 있어서도 뜻은 역시 하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자 내 뜻이요, 하나님의 사정이자 내 사정이요, 하나님의 심정이자 내 심정이라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체득하여 그러한 입장에 섰다고 자신하지 않는 한 대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대신자가 되려면 반드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가야 할 목표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소망이 같아야 되고, 사정이 같아야 되고, 더 나아가서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된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정이 같을 수 있고, 소망이 같을 수 있고, 심정이 같을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여 아들딸이라고 인정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 앞에 지음받은 만물이 “당신은 틀림없는 하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우리가 하늘의 대신자로 설 수 없습니다.
지금 타락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되 전체의 뜻은 몰랐습니다.
맨 나중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이거늘, 그 심정의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신은 우리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부모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이 참부모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서 온 분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11-55)
하나님과 하나되려면
지금까지 하늘의 역사는 부모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로 인간을 이끄는 역사였기 때문에 천사나 영계의 영인들이 협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심정문제를 걸고 나오게 될 때는 반드시 부모의 심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 타락된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성신을 통하여 참부모의 심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가 하나님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참부모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또, 참부모와 일치되기 위해서는 누구와 일치되어야 되느냐? 형제가 서로 일치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참부모의 심정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형제와 더불어 일치가 되고, 참형제와 일치가 되고 난 후에는 참가정뿐만 아니라 참민족과 일치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가 최후에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망과 사정 그리고 심정을 일치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날을 세계적인 소망의 때, 세계적인 사정의 때,세계적인 심정의 때로서 전개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인류는 하나의 소망과 이념으로 뭉쳐야 됩니다. 또,하나의 사정으로서 통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소망과 사정이 통할 수 있는 그 기반 위에서 심정이 통해야 됩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사랑하고, 민족도 사랑하고, 전세계 인류도 사랑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사랑하는 것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민족을 초월하고 전통을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한 입장에서 만민이 공통으로 사랑할 수 있는 주체가 있나니,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모르고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리에 서 있지만, 이 관계를 알고 인연을 맺는 자리에 나가게 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려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일체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세계를 수습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정이 세계성을 띠고 하나의 이념적인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세계로 움직여 나가는 것은 온 세계 인류가 같은 사정에서 살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 가지고 최후에는 무엇과 일치점을 가져야 되느냐?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부모의 인연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11-57)
부모를 중심삼은 소망, 사정, 심정
이 세계는 소망의 때를 맞을 수 있는 길로 통하고 있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때로 통하고 있으되, 그것을 종결시키는 것은 심정입니다.
이 심정과 결부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거쳐 나가야 되느냐? 어떠한 사정만 가지고 통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념이나 소망만 가지고 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라는 문을 통해야 합니다. 부모라는 기준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끝날에 약속하신 한 날은 부모의 날입니다.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잃어버린 이 땅 위의 수많은 인류가 하나님의 축복을 이룰 수 있는 본연의 부모를 다시 맞을 수 있는 날입니다.
지금 세계는 두 주의로 벌어져서 싸우고 있으니까 하나될 수 있는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세계적인 중요한 사정들이 우리의 사정으로 연결되어 들어오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사정과 소망이 통할 수 있는 세계적인 여건은 되었지만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때는 못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심정적으로는 이 민족과 저 민족, 이 종교와 저 종교, 이 가정과 저 가정이 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하나님의 심정과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될 것이거늘, 이것을 연결시켜 주는 중보자가 참부모입니다. 그러니 잃어버렸던 본연의 참부모를 찾아야만 하늘의 심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입장에서 같은 목적, 같은 소망, 같은 사정,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우리 아버지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역사적인 아버지의 서러움과 고통 그리고 슬펐던 사실을 알게 될 때, 여기에서 우리는 심정적인 귀일점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까지 인류를 끌어나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싫든 좋든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갈 것입니다. 아무리 부정해도 여러분은 어차피 그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11-59)
소원통일, 사정통일, 심정통일, 이념통일
타락한 우리 인간은 어차피 복귀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한 많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한 곳이 있으니 그곳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사정을 대신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가야만 여러분이 짐을 풀어놓고 하늘땅의 모든 천지만물 앞에 비로소 인간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지, 그러기 전에는 그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창조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요, 아버지의 사정은 타락한 이 세상에서 사탄과 혈투전을 전개해야 하는 사정입니다.
이러한 고통의 자리를 피하여 안식의 자리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사랑하시면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요, 하나님이 한번 심정적인 인연을 맺으시면 어느 누구도 옮겨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인간들을 갖은 수고와 역경의 길로 몰아내셨습니다. 지금도 그곳을 향하여 끌고 나가시는 도상에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슬픈 사정이 있거든 슬픈 사정을 대신하고 그 슬픈 자리에 있기를 즐거워해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가는 길이 비록 죽음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여러분은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타락한 이 세상을 지나간 후에 비로소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만물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아버지를 노래하며 살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소원통일, 사정통일, 심정통일, 이념통일을 단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스스로 반문해 봐야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신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1-61)
여러분은 하늘 앞에 섰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하늘 앞에 당당하게 섰다고 자신합니까?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당연히 하늘 앞에 책임과 사명을 대신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대신자라고 자처할 수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품고 있는 그 뜻과 소원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처하여 있는 사정이 누구의 사정이냐? 품고 있는 뜻이 내 뜻이라면 아버지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처하고 있는 사정이 내 사정이라면 아버지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뜻과 사정의 일치점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일치하기 전에는 심정이 일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떠한 고난의 길, 어떠한 어려운 환경을 거쳐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과 영원무궁토록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심정을 일치하여 사랑하고 노래하고 싶으신 것입니다.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뜻을 중심삼고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뜻을 중심삼고 슬퍼하고, 억울함이나 분함이 있어도 뜻을 중심삼고 억울해하고 분해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비록 땅 위의 사탄세계에 살고 있으되 하늘의 아들이요, 하늘의 딸임에 틀림없습니다. 뜻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커 가고, 그 사정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그 심정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간곡하고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때가 가까워짐에 따라 더 깊어지고 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아오시는 하늘의 사정이요, 뜻이요, 심정임을 알았을진대, 여러분 자신들이 갖는 뜻도 아버지의 뜻으로 더 간절해야 되겠고,여러분이 당하는 사정도 아버지의 더 깊은 사정과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뜻과 사정이 통하면 반드시 심정문제가 연결됩니다. “나는 비록 불쌍하고 억울한 자리에 있을지라도 아버님만은 절대로 그런 자리에 계셔서는 안된다. 아버님만은 그런 환경에 계셔서는 안된다.”고 하는 심정이 사무쳐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심정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11-62)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분신
우리는 아버지의 대신자요, 참부모의 대신자입니다.
본성에 있어서 우리 개인들은 태어날 적부터 참부모의 지체입니다.남자들은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들은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아버지의 분신이 될 수 있고 어머니의 분신이 될 수 있다고 할진대는, 아무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정과 뜻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정이 자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뜻이니 심정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야단하더라도 아버지의 뜻 이상 더 큰 뜻이 없고, 아버지의 사정 이상 더 큰 사정이 없고, 아버지의 심정 이상 더 큰 심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들이 그러한 자리에 서 가지고 자기 환경을 수습해야 되겠습니다. (11-63)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위하는 것
이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환경을 개척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앞에서 “하늘이여,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고 나서지 않는 한 뜻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뜻도 개인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세계적으로 전개시킬 수 있습니다.
영계의 협조를 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뜻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일체인 이상 하나님을 대신해야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끝내야 됩니다. 복을 받으려면 걱정거리와 할 일을 끝내 놓고 안심할 수 있는 입장에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만민이 공인하는 자리에서 주고 싶어하십니다. (11-64)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타락한 인간을 사탄에게서 빼앗아 오시고 사탄을 자연굴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참소의 조건을 없애야 합니다. 남이 가기 싫어하는 곳을 가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뜻과 사정을 안 이상 아버지는 뒤에 모셔 놓고 우리가 앞장서야 되겠습니다. 복 받는 좋은 자리말고 어려운 자리에 가야 합니다. 모두 단결해야 합니다.
끝날에 무너져 내리는 험난한 환경을 밟고 올라서기 위해서는 다 겪고 나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버지의 심정의 자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서 인간을 타락시킨 사탄을 굴복시키고 사탄으로부터 하늘의 아들딸로 공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축복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11-65)
아들딸을 고통의 자리에 내놓고 몰아치는 이유
6천 년의 싸움의 역사를 일시에 탕감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을 고통의 자리에 내놓으시고 나서 사정없이 몰아치시는 것입니다. 하늘은 어려운 일, 고통스러운 일을 책임지고 나아가는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다.
천만인 앞에 내몰리는 자는 천만인의 복을 받을 것이요, 인류 앞에 내몰리는 자는 인류의 복을 받을 것이요, 하늘땅 앞에 내몰리는 자는 하늘땅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책임자든 무자비하게 내몰아야 합니다. 그것은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전부가 가기 싫어하는 자리에서 일편단심 충성하게 되면 그에게 복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신이 일해 왔습니다. 이제까지 인간의 이름으로 일한 때가 없었다는 사실은 원통한 일입니다.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신의 이름으로 일했다는 사실이 슬픈 일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름으로 일할 수 있는 때를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협조 없이도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새로운 시대의 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협조 없이 인간을 타락시켰습니다.
이렇듯 독자적으로 책임지고 뜻 성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 시대적인 하나님, 미래적인 하나님을 알아 가지고 사탄을 공격하여 꼼짝을 못 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도하지 않고도 영계의 영인들을 동원하여 일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사탄이나 악한 사람들까지도 “당신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증거하면서 머리를 숙이게 해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책임을 진 자는 고통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대신자로서 잘 싸우고 승리해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심정의 귀일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일체적인 이상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내 있는 정성을 다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사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인간이 몰라주더라도 당신만은 나를 알아주실 것이다.”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11-66)*
천일국 훈독경 제3권 30일, 원문
우리는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자
날짜 : 1961. 1. 1(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우리는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도 물론 그랬지만 앞으로 이 일년 동안은 특히 아버지의 대신자라는 것을 친히 체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타락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상대되는 것으로서 땅을 지으셨고, 당신의 실체대상으로 우리 인류의 조상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서 우리 인간을 지으셨고, 인간의 형상을 상징적으로 본떠서 만물을 지으신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크게 보면 한 덩어리요, 작게 보면 모두 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 지어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먼저 중심에 대해서 확실한 해명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냐 하는 것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본래 어떤 관계냐? 하나님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체의 관계입니다. 하늘이 머리라면 우리는 몸통이요, 하늘이 몸통이라면 우리는 지체입니다.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할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지 못하는 입장에 선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은 복귀의 뜻을 품고 지극한 선의 중심가치를 모든 만상 앞에 나타낼 수 있는 존재를 고대하고 계시나, 그러한 대상존재가 없으니 그것이 탄식의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과 마음으로나 몸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체의 입장에 들어오게 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희생시켜 나온 섭리를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11-51)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에 심정적으로 하나돼야 할 인간
그러면 하나가 되는 데는 무엇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냐? 첫째로 소원이 하나가 되어야 하겠고, 둘째로 사정이 하나되어야 하겠고, 셋째로 심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즉 하늘이 심정적으로 기뻐하면 나도 기뻐하고, 하늘이 슬퍼하면 나도 슬퍼하고, 하늘이 움직이면 나도 움직이고, 하늘이 정(靜)하면 나도 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으로부터 사정과 소원이 일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인간시조가 하나님과 심정과 사정 그리고 소원의 일치점을 가졌더라면 우리에게는 슬픔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실 때 어느 한 존재물도 슬픔을 목적으로 지으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지으신 목적도 선한 것입니다.
선은 만족과 행복 그리고 희락을 개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슬픔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고통과 어려움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좀더 깊은 아버지의 심정, 좀더 깊은 아버지의 사정, 그리고 좀더 깊은 아버지의 뜻을 일치시키는 조건은 될 수 있으되 이탈시키는 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점을 가졌더라면, 하나님께서 전체의 목적을 위하여 움직이시고 전체의 이념을 위하여 감지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 인간이 느끼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 개인이 살고 있는 생활권은 지극히 좁은 환경이라도 세계를 상대로 하여서 하늘과 땅을 대신하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느끼면서 살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대하는 만물, 우리가 대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모든 감정은 하늘과 땅을 통하여 느껴질 수 있는 감정으로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고 깊고 넓은 절대 선만이 우리와 연결되어 움직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다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하늘과 함께할 수 있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위치에 떨어졌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늘과 더불어 영원히 노래할 수 있으며 하늘과 더불어 영원한 인연을 결정지을 수 있는 심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입장에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소망을 품고 이념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되었는데,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되는 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사정을 통하고자 하는 목적도 어디에 있느냐? 하나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참다운 선을 중심삼고 참다운 목적을 위하여 결의한 심정은 영원히 변할 수 없으며 어느 누가 옮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시초에 이런 결정적인 해결을 지을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이 잡혀졌던들 오늘 우리 자신들은 이런 어려운 생활, 허덕이는 생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인간들이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실정을 수습하여 하늘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될 책임과 사명이 인간에게 남아 있는 연고로 우리 인간은 험난한 길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하늘과 심정적으로 일치될 수 있는 그 날까지 허덕이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11-52)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길
그러면 지금까지 하늘은 이런 입장에 놓여 있는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느냐?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친아들딸로서 지으셨기 때문에 비록 인간이 타락하여 그 가치와 인연을 갖지 못하였어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이 본연의 심정적인 기준까지 끌어올려서 인연을 맺으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소망이 없었던 인간들 앞에 소망을 주기 위하여 하늘은 역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날의 소망을 성경상에 나타내 놓았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한날의 소망과 새로운 역사적인 세계를 약속해 놓고 우리를 거기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최후에 가서는 하나의 이념과 하나의 소망의 세계로 향하도록 이끌어 나오기 위해서 하늘은 무한히 애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의 전통이 다르고, 국가와 국민성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생활사정이 다른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수습하여 인간들이 서로간에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세계적인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왔습니다.
또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소망을 같이하고, 사정을 같이하고, 하늘과 땅과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손에 손을 붙들고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까지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내몰아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길이 어디냐?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남겨 놓고 가야 할 입장에 있던 예수님도 강조한 것이 하나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누구하고 하나되어야 할 것이냐?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된 것같이 예수님과 그들이 하나되고 또 그들끼리 하나되기를 바랐던 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님의 소원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인간들도 하나되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하나되어야 하겠습니까? 한 날의 생활에서만 하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목표가 같습니다. 가는 길이 같다는 것입니다. 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그날부터 우리 인생이 가는 길은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생명을 지니고 인생행로를 허덕이며 가지만 가는 목적지는 전부 다 한 곳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출발했으니까 가는 곳도 아버지께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데는 무엇을 하면서 가야 할 것이냐? 아버지의 대신자로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아버지의 뜻을 세워서 지으신 만물을 아버지의 대신으로 사랑하면서 가야 합니다. 출발도 아버지로부터 했으니까 아버지한테 종결되도록 아버지와 하나의 심정으로 연결될 때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출발도 아버지요, 끝도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알파요,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출발도 하나였으니까 끝도 하나여야 합니다. 이것은 사정이 통해야 되고, 소원이 같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11-53)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려면
그러면 오늘날 이와 같은 크나큰 뜻을 우리의 목적에 놓아두고 세계적인 혼란시기에 처해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어 놓으신 본연의 중심목표가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하늘과 땅도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중심 앞에 죽든지 살든지 하나되지 않으면 안될 필연적인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사정과 어떠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어떠한 목적이 있다고 할진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뜻이 같고 심정이 같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목적을 완전히 성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을 사정이 통할 수 있고 심정이 하나될 수 있는 소망의 동산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할진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할 입장에 선 인간에게 있어서도 뜻은 역시 하나여야 합니다. 둘이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자 내 뜻이요, 하나님의 사정이자 내 사정이요, 하나님의 심정이자 내 심정이라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체득하여 그러한 입장에 섰다고 자신하지 않는 한 대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대신자가 되려면 반드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지 않으면 대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가야 할 목표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이냐 하면 소망이 같아야 되고, 사정이 같아야 되고, 더 나아가서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된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은 뜻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가 지향해야 할 뜻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이 인류가 소망하고 지향해야 할 뜻이 어떤 것이며 개개인이 품어야 할 뜻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또, 어떠한 사정을 가져야 되는가를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떠한 심정을 가져야 되는가도 알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정이 같을 수 있고, 소망이 같을 수 있고, 심정이 같을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여 아들딸이라고 인정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 앞에 지음받은 만물이 “당신은 틀림없는 하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우리가 하늘의 대신자로 설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요,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이요, 하나님은 나와 영원히 같이하실 수 있는 한 몸이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은 우리 아버지인 동시에 그 아버지가 우리 인간의 조상으로 지으신 아담 해와가 있었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타락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습니다.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정을 일면만 알았을 뿐이지 전체적인 사정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되 전체의 뜻은 몰랐습니다.
맨 나중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이거늘, 그 심정의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신은 우리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부모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이 참부모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서 온 분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11-55)
하나님과 하나되려면
예수님은 타락하지 아니한 인간시조 참아담의 대신자였으며, 성신은 타락하지 아니한 그의 대상존재로 와서 소망과 사정 그리고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까지 인간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수고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역사는 부모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로 인간을 이끄는 역사였기 때문에 천사나 영계의 영인들이 협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심정문제를 걸고 나오게 될 때는 반드시 부모의 심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 타락된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성신을 통하여 참부모의 심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년간 신앙생활을 했지만 예수님이 누군지, 성신이 누군지를 몰랐습니다.예수님과 성신은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우리는 이 참부모의 심정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가 하나님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참부모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또,참부모와 일치되기 위해서는 누구와 일치되어야 되느냐? 형제가 서로 일치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과 일치가 되었을 것이고, 거기에서 태어난 아들딸은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가 되었을 것이며, 참부모의 심정과 일치가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참형제의 심정과 일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꿀잡이가 되었습니다.
참부모의 심정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형제와 더불어 일치가 되고, 참형제와 일치가 되고 난 후에는 참가정뿐만 아니라 참민족과 일치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시조 아담 해와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인류가 퍼져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올라가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가 최후에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망과 사정 그리고 심정을 일치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날을 세계적인 소망의 때, 세계적인 사정의 때, 세계적인 심정의 때로서 전개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인류는 하나의 소망과 이념으로 뭉쳐야 됩니다. 또, 하나의 사정으로서 통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소망과 사정이 통할 수 있는 그 기반 위에서 무엇이 통해야 되느냐? 심정이 통해야 됩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사랑하고, 민족도 사랑하고, 전세계 인류도 사랑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사랑하는 것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도 아니요, 부부도 아니요, 부모도 아닙니다.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내가 제일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의 곬을 뿌리로 연할 수 있는 심정, 어느 누가 옮길 수 없고 변경시킬 수 없고 떼어갈 수 없는 그러한 중심적인 심정의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민족적인 간격이 없습니다. 어떠한 전통적인 간격도 없습니다. 민족을 초월하고 전통을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한 입장에서 만민이 공통으로 사랑할 수 있는 주체가 있나니,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모르고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리에 서 있지만, 이 관계를 알고 인연을 맺는 자리에 나가게 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려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일체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세계를 수습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소망의 귀일점을 찾아 나가기 위하여 지금까지 사상과 이념을 중심삼고 싸워 나왔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민주와 공산의 대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민주주의를 가지고도 안되고 공산주의를 가지고도 안됩니다. 어차피 더 나은 하나의 이념으로 규합되어야 합니다. 전세계 인류가 이구동성으로 하나의 이념을 추구하며 노래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하나의 소망으로서 하늘과 인류를 하나로 만들기 위한 도상에 서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되어진 일이 세계에 알려지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에서 되어지는 일이 세계적인 일로 느껴지고, 세계에서 되어지는 일이 우리의 일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넓고 넓은 세계가 우리의 생활감정과 사정을 통하여 연결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정이 세계성을 띠고 하나의 이념적인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세계로 움직여 나가는 것은 온 세계 인류가 같은 사정에서 살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 가지고 최후에는 무엇과 일치점을 가져야 되느냐?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점을 가져야 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부모의 인연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11-57)
부모를 중심삼은 소망, 사정, 심정
이 세계는 소망의 때를 맞을 수 있는 길로 통하고 있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때로 통하고 있으되, 그것을 종결시키는 것은 심정입니다. 이 심정과 결부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거쳐 나가야 되느냐? 어떠한 사정만 가지고 통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념이나 소망만 가지고 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라는 문을 통해야 합니다. 부모라는 기준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끝날에 약속하신 한 날은 부모의 날입니다.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잃어버린 이 땅 위의 수많은 인류가 하나님의 축복을 이룰 수 있는 본연의 부모를 다시 맞을 수 있는 날입니다.
인류가 어떤 복귀의 한 목표를 정해 놓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어서 필연적인 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부모의 문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문을 통하기 전에는 심정을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되는 데는 반드시 뜻이 같아야 되고, 사정이 같아야 되고, 심정이 같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전세계 인류를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역사해 나오셨다면 이 인류를 하나의 일치된 세계로 끌고 가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두 주의로 벌어져서 싸우고 있으니까 하나될 수 있는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세계적인 중요한 사정들이 우리의 사정으로 연결되어 들어오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사정과 소망이 통할 수 있는 세계적인 여건은 되었지만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때는 못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심정적으로는 이 민족과 저 민족, 이 종교와 저 종교, 이 가정과 저 가정이 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될 것이거늘, 이것을 연결시켜 주는 중보자가 참부모입니다. 그러니 잃어버렸던 본연의 참부모를 찾아야만 하늘의 심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때에 대한 것은 알았습니다. 사정에 대한 것도 알았습니다. 오늘 이때가 어떻게 되고 그 나라의 사정이 어떻게 되는가를 알았지만 심정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서는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최후에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심정문제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개개인은 반드시 참부모와 다리가 놓여 있어야만 합니다. 참부모를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의 사정들이 얽힌 환경 가운데서 자라왔지만, 이제부터 여러분은 하나의 이념 앞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뜻을 버리고 그 이념을 자기의 것으로 품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입장에서 같은 목적, 같은 소망, 같은 사정,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우리 아버지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역사적인 아버지의 서러움과 고통 그리고 슬펐던 사실을 알게 될 때, 여기에서 우리는 심정적인 귀일점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까지 인류를 끌어나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싫든 좋든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갈 것입니다. 아무리 부정해도 여러분은 어차피 그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11-59)
소원통일, 사정통일, 심정통일, 이념통일
타락한 우리 인간은 어차피 복귀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한 많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이 땅은 지나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한 곳이 있으니 그곳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사정을 대신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가야만 여러분이 짐을 풀어놓고 하늘땅의 모든 천지만물 앞에 비로소 인간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지, 그러기 전에는 그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러한 길을 가야 할 사명이 오늘날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버지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아버지의 사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았을 진대는, 그 뜻과 사정을 내 뜻과 내 사정으로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창조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요, 아버지의 사정은 타락한 이 세상에서 사탄과 혈투전을 전개해야 하는 사정입니다. 이러한 피 어린 사정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자리를 피하여 안식의 자리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딸들이 사탄 앞에 유린당하고 악한 자들 앞에 유린당하던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사랑하시면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요, 하나님이 한번 심정적인 인연을 맺으시면 어느 누구도 옮겨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인간들을 갖은 수고와 역경의 길로 몰아내셨습니다. 지금도 그곳을 향하여 끌고 나가시는 도상에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마음놓고 심정적인 인연을 맺으실 수 있는 그 자리가 아직까지 마련되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안다고 할진대,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사정을 해결해야 되겠습니다.슬픈 사정이 있거든 슬픈 사정을 대신하고 그 슬픈 자리에 있기를 즐거워해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가는 길이 비록 죽음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여러분은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아버지의 뜻을 여러분의 뜻으로 옮겨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타락한 이 세상을 지나간 후에 비로소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만물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아버지를 노래하며 살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까지 우리는 기필코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투쟁해야 되겠습니다. 소원통일, 사정통일, 심정통일, 이념통일을 단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스스로 반문해 봐야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신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반대를 받아 십자가에 달렸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 위에 왔다 갔습니다.뜻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뜻이 내 뜻이요, 아버지의 사정이 내 사정이요, 아버지의 심정이 내 심정이라는 점만은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11-61)
여러분은 하늘 앞에 섰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하늘 앞에 당당하게 섰다고 자신합니까?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당연히 하늘 앞에 책임과 사명을 대신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대신자라고 자처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깊이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품고 있는 그 뜻과 소원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처하여 있는 사정이 누구의 사정이냐? 품고 있는 뜻이 내 뜻이라면 아버지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처하고 있는 사정이 내 사정이라면 아버지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뜻과 사정의 일치점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일치하기 전에는 심정이 일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떠한 고난의 길, 어떠한 어려운 환경을 거쳐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과 영원무궁토록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심정을 일치하여 사랑하고 노래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런 뜻이 아직까지 종결되지 못한 이 땅과 세계인 것을 알게 될 때 오늘날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야 될 텐데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품고 있는 뜻과 여러분이 갖고 있는 사정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기쁜 일이 있어도 뜻을 중심삼고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뜻을 중심삼고 슬퍼하고, 억울함이나 분함이 있어도 뜻을 중심삼고 억울해하고 분해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비록 땅 위의 사탄세계에 살고 있으되 하늘의 아들이요, 하늘의 딸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뜻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 뜻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커 가고, 그 사정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그 심정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간곡하고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때가 가까워짐에 따라 더 깊어지고 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아오시는 하늘의 사정이요, 뜻이요, 심정임을 알았을진대, 여러분 자신들이 갖는 뜻도 아버지의 뜻으로 더 간절해야 되겠고, 여러분이 당하는 사정도 아버지의 더 깊은 사정과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뜻과 사정이 통하면 반드시 심정문제가 연결됩니다. “나는 비록 불쌍하고 억울한 자리에 있을지라도 아버님만은 절대로 그런 자리에 계셔서는 안된다. 아버님만은 그런 환경에 계셔서는 안된다.”고 하는 심정이 사무쳐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심정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11-62)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분신
우리는 아버지의 대신자요, 참부모의 대신자입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즉,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인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남자는 하나님의 남성적인 성품을 대신하여 태어났고 여자는 하나님의 여성적인 성품을 대신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본성에 있어서 우리 개인들은 태어날 적부터 참부모의 지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한복음 15:5)고 했습니다. 남자들은 아버지의 지체요, 여자들은 어머니의 지체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들은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아버지의 분신이 될 수 있고 어머니의 분신이 될 수 있다고 할진대는, 아무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정과 뜻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정이 자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먼저 찾아온 그 뜻도 여러분 개인을 위한 뜻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뜻입니다. 또, 사정이라는 것도 개인의 사정을 중심삼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정은 만민이 손을 잡고 즐거이 살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 심정도 만민이 통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뜻이니 심정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야단하더라도 아버지의 뜻 이상 더 큰 뜻이 없고, 아버지의 사정 이상 더 큰 사정이 없고, 아버지의 심정 이상 더 큰 심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들이 그러한 자리에 서 가지고 자기 환경을 수습해야 되겠습니다. (11-63)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위하는 것
여러분, 뜻에 맞지 않는 오늘의 이 환경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뜻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버릴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뜻을 세워 가지고 그 환경을 정비하여 뜻 앞에 굴복시켜 나갈 것이냐? 그리고 사정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요, 심정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좋아하면 그도 좋아하고, 내가 슬퍼하면 그도 슬퍼할 수 있는 환경적인 무대가 되어 있지 않는 한 하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의 사정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기필코 하늘의 뜻과 사정을 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이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모진 투쟁의 노정을 거쳐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뜻을 세우고 사정을 통하는 데 지장이 되지 않도록 환경을 개척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앞에서 “하늘이여,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고 나서지 않는 한 뜻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뜻도 개인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세계적으로 전개시킬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무대를 개척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영계의 협조를 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뜻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6천 년 동안 하늘을 반대해 왔습니다. 그것도 하늘을 믿고서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삼고 반대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일체인 이상 하나님을 대신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타락인간을 구하시는 일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끝내야 됩니다. 가정은 가정적인 일을 끝내고 가정적인 복을 받아야 되고, 민족은 민족적인 일을 끝내고 민족적인 복을 받아야 되고,세계는 세계적인 일을 끝내고 세계적인 복을 받아야 됩니다. 복을 받으려면 걱정거리와 할 일을 끝내 놓고 안심할 수 있는 입장에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만민이 공인하는 자리에서 주고 싶어하십니다. (11-64)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타락한 인간을 사탄에게서 빼앗아 오시고 사탄을 자연굴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편안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세계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때가 우리의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참소의 조건을 없애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행군해야 합니다. 남이 가기 싫어하는 곳을 가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뜻과 사정을 안 이상 아버지는 뒤에 모셔 놓고 우리가 앞장서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부디, 한국만은 안심하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동을 해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복 받는 좋은 자리말고 어려운 자리에 가야 합니다.모두 단결해야 합니다.
끝날에 무너져 내리는 험난한 환경을 밟고 올라서기 위해서는 다 겪고 나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버지의 심정의 자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서 인간을 타락시킨 사탄을 굴복시키고 사탄으로부터 하늘의 아들딸로 공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축복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11-65)
아들딸을 고통의 자리에 내놓고 몰아치는 이유
6천 년의 싸움의 역사를 일시에 탕감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을 고통의 자리에 내놓으시고 나서 사정없이 몰아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통의 자리에 어느 정도 동참했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천적인 인정이 결정됩니다. 하늘은 어려운 일, 고통스러운 일을 책임지고 나아가는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다.
천만인 앞에 내몰리는 자는 천만인의 복을 받을 것이요, 인류 앞에 내몰리는 자는 인류의 복을 받을 것이요, 하늘땅 앞에 내몰리는 자는 하늘땅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책임자든 무자비하게 내몰아야 합니다. 그것은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모두 남이 못 가는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전부가 가기 싫어하는 자리에서 일편단심 충성하게 되면 그에게 복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발대입니다. 뒷사람은 우리들로 인하여 평탄한 길을 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그 날을 단축시키기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신이 일해 왔습니다. 이제까지 인간의 이름으로 일한 때가 없었다는 사실은 원통한 일입니다.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신의 이름으로 일했다는 사실이 슬픈 일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름으로 일할 수 있는 때를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협조 없이도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새로운 시대의 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협조 없이 인간을 타락시켰습니다.
이렇듯 독자적으로 책임지고 뜻 성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 시대적인 하나님, 미래적인 하나님을 알아 가지고 사탄을 공격하여 꼼짝을 못 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도하지 않고도 영계의 영인들을 동원하여 일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사탄이나 악한 사람들까지도 “당신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증거하면서 머리를 숙이게 해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책임을 진 자는 고통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대신자로서 잘 싸우고 승리해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심정의 귀일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일체적인 이상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 일을 해버렸더라면….” 하는 한스러운 마음을 품고 죽어서는 안됩니다. “내 있는 정성을 다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사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인간이 몰라주더라도 당신만은 나를 알아주실 것이다.”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