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과 정지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7일) u

訓讀王 | 20191029063811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7


 

전진과 정지 (훈독본) 


날짜 : 1971. 2. 21()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전진의 일로를 걸어온 하나님의 복귀섭리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바라는 목적 앞에 한 걸음 다가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보다 가치적인 무엇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그리고 추구하는 그 내용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전진할 수 있는 도수를 배가시키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그 추구하는 목적을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목적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나아가지 못하고 정지되는 한때를 맞게 된다면 후퇴라는 일로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데 있어서 나눈 말 가운데 스스로의 마음을 새로이 다짐할 수 있는 격려의 말과 보다 가치적인 내용의 말이 있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내적으로 전진을 결의할 수 있는 것이요, 그 결의와 더불어 생활무대에 있어서 스스로의 환경을 가일보 전진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세계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주의나 사상이든지 전진의 일로를 거듭하여 최후에는 세계 온 인류가 거기에 하나되고, 또한 하나된 인류가 그것을 일대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후손에까지 연결되는 전통으로 남기게 될 때 그것은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서 더욱 더 빛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하시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섭리를 발전시켜 나오고 계시는 것이며 과거보다 진일보한 전진의 일로를 현재 취해 나가고 계신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어느 정도까지 전진하여 나오셨지만 여기에서 더 이상 전진하실 수 없다고 하게 될 때는 정지상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고, 또 그러면 반드시 후퇴의 일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42-61)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사람은 누구나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고 성공하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는 성공보다 실패의 도수가 더 많이 감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타개해 버리고 후퇴는 나와 상관없다는 절대적인 입장을 고수해야 될 것이 내일의 소망과 희망을 갖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필연적인 요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있어서 승리의 기점을 가졌다고 그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내일에 있을 수도 있는 정지와 후퇴를 생각하고 오늘의 승리를 분석하고 비판할 줄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오늘의 승리가 있다면 그 승리는 내일의 새로운 기반이 되어야 하며, 오늘의 진일보한 터전이 있다면 그것은 일보 전진한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내일의 생활적인 터전이 되고 사상적인 요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어떠한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것을 터전으로 하여 보다 넓은 의미의 내일을 개척할 수 있는 하나의 모체, 하나의 동기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나 자주력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42-63)

 

기쁨은 전진하는 가운데 느낄 수 있는 것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영양제와 같은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정상적으로 호흡하는 것과 같은 생활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즉 “나는 이렇게 해 나가야 되겠다.”는 독자적인 신앙기준을 중심삼고 호흡하듯이 신앙노정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호흡하는 것과 같이 생명력을 보급할 수 있는 정상적인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전진하고 발전을 하는 데서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런 내용을 보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42-64)


현실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요


열 사람을 대하면 그 열 사람을 대하는 가운데 나에게 플러스적인 결과보다는 마이너스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내가 처해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어떻게 처리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슬프고 외로운 자리에 있을지라도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더 이상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금을 그어 놓고 그 이상은 넘어가지 않는 대인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이면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그 직장 자체가 내게 있어서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다짐할 수 있고, 오늘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될 관계로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42-65)

 

목적이 뚜렷하고 동기가 좋아야 전진해

 

직장에서 펜대를 쥐고 글자 한 자를 쓰는 데 있어서도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보다 하늘의 뜻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하늘의 뜻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것이 나의 것으로 결과되는 것보다 하늘의 것으로 결과가 지어져서 하늘이 기뻐해야만 우리 자신도 기쁠 것입니다. 어디까지든지 내가 주체가 아니라 하늘이 주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세워야만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우리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동기는 자기와 더불어 관계되어 있지만 그 결과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에 플러스가 되는 요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에 있어서, 또 오늘보다는 내일에 있어서 더 많이 그런 요소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것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희망의 도수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도 오늘은 새로운 마음을 갖고 해야 되겠다는 각오로 출발동기부터 그렇게 다른 각오로 나선다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42-66)


전진하게 하거나 후퇴하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


우리가 전진과 정지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을 누가 자극시키느냐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나를 전진하게 하거나 후퇴하게 하는 모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상대했던 어떤 사람이 나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후퇴하는 것도 자기 때문이요, 전진하는 것도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언제나 느껴야 됩니다.


자기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반드시 자기와 상관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문제들로 말미암아 나의 생애에 있어서 보람 있는 가치를 결정짓느냐, 또는 그렇지 못한 결실을 맺느냐 하는 것도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주체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대하는 모든 문제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것을 처리하여 반드시 승리의 결과로서 거두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태도와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그 생활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피동적인 결과밖에 거둘 수 없습니다. 피동적인 결과를 가지고는 직접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로 인해서 후퇴했고, 또한 나는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말들을 해서는 안됩니다. (42-67)

 

슬픔도 기쁨으로 소화하라


큰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기에 대응되는 부정적인 환경을 먼저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시련의 기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은혜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


시작은 슬픔으로 시작했으나 끝을 기쁨으로 잘 수습했다면 거기서부터 기쁨은 출발되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큰 슬픔이 찾아오더라도 출발 때부터 그 슬픔을 기쁨으로 소화시켜 나가게 된다면 그 사람은 과거의 슬픔과 현실의 슬픔을 승리로 결실할 수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환경을 대하게 될 때 역사적인 소망의 터전이 거기에 결실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에 다가오는 슬픔의 노정을 슬픔으로 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출발은 슬픔으로 했지만 결과가 기쁨을 맺게 될 때 내일은 기쁨의 출발을 우리 자체 앞에 가져 올 수 있는 것이요, 출발서부터 기쁜 마음을 가지고 최후까지 간다면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기쁨을 연결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간섭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길을 가시느냐?

하나님은 손해를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언제나 슬픈 역사를 거치시고 나서 그것을 청산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슬픔을 제거하면서 내일의 기쁨의 한때를 바라며 나가는 것이 하늘의 복귀섭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있어서 기쁨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출발할 때보다도 더 큰 슬픔으로 나타난다면 그 슬픔의 결과를 가져오게 한 사람은 거기에서 꺾어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뜻을 대해 나오는 책임자들이 거쳐온 역사과정입니다. (42-68)


슬픈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려면


하나님은 슬픔으로 출발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은 기쁨의 날을 맞이하시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슬픈 입장에서 출발하여 슬픈 결과를 맺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목전에서 전면적으로 배반하고 추방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내가 외로우니 하늘이여, 나에게 복을 주소서! 내가 어려운 길을 가고 있으니 하늘이여, 이 길을 막고 나를 쉬운 길로 인도하소서!” 하고 기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어려운 입장에서 이 시간에도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도리어 하나님께 “당신의 어려움을 나에게 분담시켜 주시옵소서!” 하며 하나님의 고통을 위로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슬픔을 당하신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당하시는 슬픔이 얼마나 크겠느냐 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눈물짓고 하나님께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고 권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자기의 형편은 제쳐 두고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슬픈 자리에서도 도리어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고생하는 자리에 서 가지고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있는 정성을 다하고 핍박과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알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거기에서 위로를 받으실 것이며 당신의 모든 사연을 털어놓으시고 그와 함께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언제나 슬픈 하나님을 어떻게 위로해 드릴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보다 더 수고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입장에 서시게 될 것이고, 또 우리를 위로하시는 입장에 서신 하나님은 슬픔을 잊으시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게 될 것입니다. (42-70)

 

후퇴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해


후퇴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십니다. 후퇴하는 사람의 뒤에는 반드시 사탄이 따라와 가지고 그 사람의 전진을 백방으로 막으려고 합니다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후퇴의 일로를 걷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일보 후퇴하는 사람은 사탄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시대가 중요합니다자기가 개인적인 섭리시대에 승리했다고 하더라도그 시대가 가정적인 섭리시대권 내로 일단계 전진해서 가정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할 때는 다시 거기에 맞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보다 전진된 시대권 내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도 전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언제나 몸을 굽혀 큰 죄를 진 죄인과 같은 입장제물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이런 것이 한스러운 복귀의 노정입니다이렇게 한스러운 복귀노정의 탕감은 오늘 이 시간을 중심삼고 완결지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이야말로 나의 생사를 판결짓는 기로요분기점으로서 항상 나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패자가 되어 가지고는 미래에 있어서도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우리의 원수 중의 원수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요행복 중의 행복이 뒤넘이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나 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그럴 때 만일 자기의 주장이나 주관을 내세웠다가는 영영 갈 길이 막혀 버립니다그러니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이 있으면 그에게 자신의 모든 사연을 털어놓고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며또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의논해야 됩니다.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에게 모든 사연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상의해야 됩니다이렇듯 상하의 관계에서 문제를 수습할 수 있는 제2의 대상을 찾아 나서야지 자기 혼자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없을 때는 하늘과 담판을 지어야 합니다그런데 이미 타격을 받아 가지고 후퇴한 자리에서 담판을 지으려고 할 때는 과거에 전진하던 때보다 몇 배의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그런 것이 우리의 신앙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42-73)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라

 

아무리 충격이 되는 말을 듣더라도 타격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설령타격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생겨서 자기가 억울한 입장에 서게 되어도 그것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흥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그러한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미래의 때내 때가 가까이 온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그 환경을 넘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다 들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시간오늘 이 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됩니다그러한 것들이 자기 앞에 보여지는 것은 무언의 가르침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모습들을 볼 때 어떤 설교자의 설교에서보다도 더 많은 느낌과 깨달음을 받아야 됩니다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의 갈 길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뜻을 위해서 저렇게 전심전력을 다해 보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그런 것들을 볼 때 그 한 시간을 중심삼고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재료자신을 비약시킬 수 있는 상대적인 재료로서 받아들이기에 급급해야 됩니다. (42-75)

 

전진하는 신앙자의 생활태도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절대로, 정지해서는 안됩니다. 급경사를 올라갈 때는 잠시라도 정지하게 되면 여지없이 굴러 떨어지는 것입니다. 신앙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급경사를 올라갈 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그 걸음은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칠 부 능선, 팔 부 능선, 구 부 능선을 넘어 정상을 향해 갈 때는 일편단심으로 정상만을 향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일단 정상에 올라서면 세상은 모두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물들도 주체인 자기 앞에 상대적인 인연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 앞에 희열의 대상, 영광의 대상으로서 기쁘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느끼는 자리, 생애 가운데서 그러한 기쁨을 하나님과 더불어 나누고 그러한 승리를 체휼하는 자리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의 역사적인 일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100이라는 기준을 가진 사람인데 200이라는 기준을 갖추었다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아무리 타락된 길을 간다고 해도 200을 갖춘 그 기준이 항상 그를 지켜 줄 것입니다. 어려운 자리를 찾아가서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면 벌써 그것이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그의 마음과 영, 즉 그의 속사람이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생명체가 되기 전에 그 생명체는 어디에서 자랍니까? 그 생명체는 공중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에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영형체(靈形體)와 생령체(生靈體)도 공중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령체의 감각, 생명체의 감각, 혹은 영형체가 감지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것을 제대로 삼아서 뜻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자신이 전진하고 있는지, 후퇴하고 있는지를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리지 못하면 여러분은 정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싸워야 합니다. 전진하기 위해서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 즉 오관을 통하여 자기가 전진하고 있는지 후퇴하고 있는지를 감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기준은 제물이 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개인적인 복귀단계를 넘으면 가정적인 복귀단계가 기다리고 있고, 가정적인 복귀단계를 지나고 나면 종족적인 복귀단계가 기다리고 있고, 그것을 넘으면 국가적인 복귀단계와 세계적인 복귀단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 앞에 자신의 생애를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보다도 다가오는 미래에 더 가중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제물이 된 입장에서 자기의 생애 전체를 겸손히 바칠 수 있는 생활의 태도야말로 신앙노정에서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42-79)


하늘이 동정할 수 있는 기준


원수도 오늘의 원수가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과거의 원수가 무서운 것이 아니고 내일에 다가오는 원수가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대하고 있는 원수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를 심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의 심판대상임을 알고 그러한 심판도상에서 서로 협력해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망의 한계점과 생명의 한계점이 오늘 이 현실의 초점을 중심삼고 뒤넘이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현실 이상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생활화된 사람은 어떤 것을 봐도 그것이 사탄적인 것인지, 하늘적인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만약 하늘이 원치 않는 것이라면 무자비하게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영광이라든가 영화를 다 집어던지고 십자가에 달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던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서야 됩니다.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동기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던져 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동정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신앙길에서 정지되기 시작하는 것은 포화상태가 다가온다는 것을 말합니다. 포화상태라는 것은 내가 나로서 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때를 말하고, 또한 내 힘이 더 이상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하는 때를 말합니다. 그러한 때 정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상속을 해줘야 합니다.


이름도 없는 말석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전부 다 남에게 양보해 주면서 그들을 축복해 주고 빈손으로 돌아서는 손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귀한 것들을 가지고 어느 집에 들어가서 나눠주고 나가는 길손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이 보실 때 동정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소유의 분량까지도 전부 다 나눠주는 사람은 하늘이 동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운명적으로 타고난 복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다 나눠주고 없는 것 같아도 하늘은 그 사람에게 일시에 그보다 많은 복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화상태가 되거든 모든 것을 나눠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나눠줄 때도 어떤 것은 남겨 두고 나눠주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귀한 것을 모두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을 동정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취해야 할 복의 양을 다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이득을 보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교만하지 않아야 됩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42-81)*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7일, 원문

 

전진과 정지 

 

날짜 : 1971. 2. 21()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전진의 일로를 걸어온 하나님의 복귀섭리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바라는 목적 앞에 한 걸음 다가가느냐그렇지 않으면 후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보다 가치적인 무엇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그리고 추구하는 그 내용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전진할 수 있는 도수를 배가시키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그 추구하는 목적을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목적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나아가지 못하고 정지되는 한때를 맞게 된다면 후퇴라는 일로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일상의 생활권 내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한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데 있어서 어제 주고받은 말보다도 오늘 나눈 말 가운데 스스로의 마음을 새로이 다짐할 수 있는 격려의 말과 보다 가치적인 내용의 말이 있었다면 거기에서는 반드시 내적으로 전진을 결의할 수 있는 것이요그 결의와 더불어 생활무대에 있어서 스스로의 환경을 가일보 전진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대화 내용이 어제보다 도리어 낙심을 가져다 주는 내용이었다면 후퇴할 수밖에 없는 내적인 사연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될 때는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자기 자신도 대화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적인 입장에 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잘 느끼는 바입니다.

한 나라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어떠한 나라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나라가 전진하고 있느냐정지상태의 길을 가고 있느냐아니면 후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세계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어떤 주의나 사상이든지 전진의 일로를 거듭하여 최후에는 세계 온 인류가 거기에 하나되고또한 하나된 인류가 그것을 일대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후손에까지 연결되는 전통으로 남기게 될 때 그것은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서 더욱 더 빛날 수 있는 것입니다그런 입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는 주장이나 사상의 체계는 발전의 일로를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조금씩 발전해 온 모든 여건들을 그냥 소모시킬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명의 기틀로 하여 거기에서 새로운 가지와 잎이 날 수 있도록 어떠한 보탬을 가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하시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섭리를 발전시켜 나오고 계시는 것이며 과거보다 진일보한 전진의 일로를 현재 취해 나가고 계신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그러면 지금까지 어느 정도까지 전진하여 나오셨지만 여기에서 더 이상 전진하실 수 없다고 하게 될 때는 정지상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고또 그러면 반드시 후퇴의 일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42-61)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사람은 누구나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고 성공하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모든 사람들은 마음과 몸으로 성공할 날을 바라고 추구하지만실패는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습니다환경 자체도 그것을 원치 않고 있지만(하지만)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는 성공보다 실패의 도수가 더 많이 감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우리는 오늘날의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체휼하고 절감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후퇴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원수와 같은 것입니다그러므로 이것을 타개해 버리고 후퇴는 나와 상관없다는 절대적인 입장을 고수해야 될 것이 내일의 소망과 희망을 갖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필연적인 요건이 아닐 수 없음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있어서 승리의 기점을 가졌다고 그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내일에 있을 수도 있는 정지와 후퇴를 생각하고 오늘의 승리를 분석하고 비판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어떠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그 승리를 놓고 기뻐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 오늘날 보다 나아지기를 바라고 전진해 나가는 사람들의 입장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오늘의 승리가 있다면 그 승리는 내일의 새로운 기반이 되어야 하며오늘의 진일보한 터전이 있다면 그것은 일보 전진한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내일의 생활적인 터전이 되고 사상적인 요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어떠한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것을 터전으로 하여 보다 넓은 의미의 내일을 개척할 수 있는 하나의 모체하나의 동기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나 자주력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현재에 아무리 승리를 하고 전진적인 노정을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희망하는 바를 성사시킬 수 없으며,보다 큰 목적을 달성시키기 힘들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42-63)

 

기쁨은 전진하는 가운데 느낄 수 있는 것

 

오늘날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호흡을 해야 됩니다또한거기에 상응하여 영양을 보급해야 됩니다이와 같이 보급된 영양소가 우리 몸의 순환기를 통하여 서로 주고받는 데 있어서 어제와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 몸의 컨디션은 좋지 않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신체의 리듬과 보조를 같이해 가지고 어제보다 오늘에 조금이라도 영양을 더 보급해 주면 우리 몸은 자연히 건강해지는 것입니다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전진의 터전이 넓혀져 나가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영양제와 같은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또한정상적으로 호흡하는 것과 같은 생활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즉 나는 이렇게 해 나가야 되겠다.”는 독자적인 신앙기준을 중심삼고 호흡하듯이 신앙노정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호흡하는 것과 같이 생명력을 보급할 수 있는 정상적인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면 거기에 상응해 가지고 영양을 보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전진하고 발전을 하는 데서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런 내용을 보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그 일을 하기 전보다 하고 난 후가 더 나빴다고 한다면거기에서는 반드시 타격을 받는 것입니다나쁘다고 하는 것은 후퇴했다는 것이요,좋다고 하는 것은 일보 전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죄악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생활하는 전분야에 있어서 오늘 하루의 생활이 기뻤다고 할 수 있는 결과를 남기기는 지극히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42-64)

 

현실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요

 

열 사람을 대하면 그 열 사람을 대하는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 나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열 사람이 전부 나에게 플러스적인 결과보다는 마이너스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이 마이너스적인 결과를 어떻게 보강할 것이냐그것을 보강할 수 있는 길이 없다 할진대 우리가 나가서 활동하는 환경에서는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환경적으로 우리의 나아가는 길에 전진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 없고도리어 후퇴의 일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주지해야 할 것은 내가 과거에 어떻게 해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 이 시간부터가 문제입니다오늘날 내가 처해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어떻게 처리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원치 않는 사람을 대하게 될 때는 어떻게 대할 것이며또 대하고 난 후에 나타난 결과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들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그래서 아무리 슬프고 외로운 자리에 있을지라도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더 이상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금을 그어 놓고 그 이상은 넘어가지 않는 대인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이면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일하는 자신이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그 직장에서 자기가 일보 전진할 것인지후퇴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자기가 처해 있는 직장을 중심삼고 그 직장 자체가 내게 있어서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다짐할 수 있고오늘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될 관계로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일과 나 사이에 맺어진 관계가 나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요적절한 내용으로 남아지지 못하고 그저 안심이 되었다고 하는 내용으로 남아지게 된다면그것은 정지도 아닌 후퇴의 일보를 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입장이 여러분의 생사문제를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42-65)

 

목적이 뚜렷하고 동기가 좋아야 전진해

 

직장에서 펜대를 쥐고 글자 한 자를 쓰는 데 있어서도 누구를 위하여 쓰고 있는가 하는 그 목적관이 뚜렷해야 되는 것입니다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보다 하늘의 뜻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하늘의 뜻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것이 나의 것으로 결과되는 것보다 하늘의 것으로 결과가 지어져서 하늘이 기뻐해야만 우리 자신도 기쁠 것입니다어디까지든지 내가 주체가 아니라 하늘이 주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세워야만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우리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자연적인 원칙인 것입니다.

모든 일의 동기는 자기와 더불어 관계되어 있지만 그 결과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에 플러스가 되는 요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의 일을 하며 생활하는 가운데 그런 요소를 얼마만큼 남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어제보다 오늘에 있어서또 오늘보다는 내일에 있어서 더 많이 그런 요소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것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희망의 도수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출발할 때부터 달라야 합니다다시 말하면과거에는 이러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섰지만 오늘은 새로운 마음을 갖고 해야 되겠다는 각오로 출발동기부터 그렇게 다른 각오로 나선다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어제보다 못한 마음으로 출발하게 되면 반드시 후퇴의 일로를 걷게 되는 것입니다(42-66)

 

전진하게 하거나 후퇴하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

 

우리가 전진과 정지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이것을 누가 자극시키느냐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외적인 환경이 나로 하여금 전진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또한어떠한 외적인 사연이 나를 후퇴하게 하는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나를 전진하게 하거나 후퇴하게 하는 모체는 누구냐어떤 상대적인 여건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내가 상대했던 어떤 사람이 나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후퇴하는 것도 자기 때문이요전진하는 것도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언제나 느껴야 됩니다자기 자신을 전진하게 하거나 후퇴하게 하는 모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그런 문제가 상대로 인해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자기와 상관없이 생기는 문제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반드시 자기와 상관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그런 문제들로 말미암아 나의 생애에 있어서 보람 있는 가치를 결정짓느냐또는 그렇지 못한 결실을 맺느냐 하는 것도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문제들을 청산하기 위한 하나의 해결방법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여러분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주체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대하는 모든 문제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것을 처리하여 반드시 승리의 결과로서 거두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태도와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그 생활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는 피동적인 결과밖에 거둘 수 없습니다피동적인 결과를 가지고는 직접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로 인해서 후퇴했고또한 나는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말들을 해서는 안됩니다. (42-67)

 

슬픔도 기쁨으로 소화하라

 

큰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기에 대응되는 부정적인 환경을 먼저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그것은 왜냐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은혜가 오기 전에는 반드시 사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시련의 기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은혜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픈 일이 닥쳤다고 해서 슬퍼만 할 것이 아닙니다슬픔으로 출발했다고 해서 슬픔으로 끝을 맺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행로에는 슬픔이 계속될 것입니다그러나 시작은 슬픔으로 시작했으나 끝을 기쁨으로 잘 수습했다면 거기서부터 기쁨은 출발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슬픔이 찾아오더라도 출발 때부터 그 슬픔을 기쁨으로 소화시켜 나가게 된다면 그 사람은 과거의 슬픔과 현실의 슬픔을 승리로 결실할 수 있습니다기쁜 마음으로 환경을 대하게 될 때 역사적인 소망의 터전이 거기에 결실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에 다가오는 슬픔의 노정을 슬픔으로 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우리가 비록 출발은 슬픔으로 했지만 결과가 기쁨을 맺게될 때 내일은 기쁨의 출발을 우리 자체 앞에 가져 올 수 있는 것이요출발서부터 기쁜 마음을 가지고 최후까지 간다면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기쁨을 연결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간섭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길을 가시느냐하나님은 슬픔의 길에서부터 기쁨의 길을 찾아가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슬픔의 날로부터 출발하셨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 언제나 슬픔의 노정을 먼저 거치셔야 됩니다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악과 선이 투쟁하는 데 있어서는 어느 쪽이 손해를 보아야 되느냐악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선이 손해를 봐야 됩니다그것은 손해를 보고 출발한 행로가 선의 행로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손해를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언제나 슬픈 역사를 거치시고 나서 그것을 청산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슬픔을 제거하면서 내일의 기쁨의 한때를 바라며 나가는 것이 하늘의 복귀섭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있어서 기쁨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출발할 때보다도 더 큰 슬픔으로 나타난다면 그 슬픔의 결과를 가져오게 한 사람은 거기에서 꺾어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뜻을 대해 나오는 책임자들이 거쳐온 역사과정입니다. (42-68)

 

슬픈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려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출발하신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출발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은 슬픔의 날을 맞이하시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날을 맞이하시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슬픈 입장에서 출발하여 슬픈 결과를 맺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목전에서 전면적으로 배반하고 추방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슬픔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내가 외로우니 하늘이여나에게 복을 주소서내가 어려운 길을 가고 있으니 하늘이여이 길을 막고 나를 쉬운 길로 인도하소서!” 하고 기원합니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어려운 입장에서 이 시간에도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도리어 하나님께 당신의 어려움을 나에게 분담시켜 주시옵소서!” 하며 하나님의 고통을 위로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어떤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죽었다면 그 어머니는 말할 수 없이 슬퍼할 것입니다그럴 때 그 어머니의 마음은 그 이상의 슬픔을 느껴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그 어머니가 맛본 슬픔보다 못한 슬픔을 겪은 사람이 그 어머니를 위로한다면 그 어머니는 위로받을 수 없지만 자기 이상의 고통을 당한 사람이 위로하면서 나도 이런 일을 당해 보았다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손해만 보니까 이렇게 하라!” 할 때에 그 어머니는 거기에서 자기의 슬픈 마음을 수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머니의 다른 아들이 어머니보다 더 슬퍼하면서 내가 어머니의 슬픔을 대신할 수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겠다.”고 하며 나선다면그 어머니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도리어 그 아들을 위로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하나님이 그러한 입장에서 슬픔을 당하신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당하시는 슬픔이 얼마나 크겠느냐 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눈물짓고 하나님께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고 권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자기의 형편은 제쳐 두고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슬픈 자리에서도 도리어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고생하는 자리에 서 가지고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있는 정성을 다하고 핍박과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알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하나님은 거기에서 위로를 받으실 것이며 당신의 모든 사연을 털어놓으시고 그와 함께하려고 하실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은 우리 인간의 심정세계,즉 정적인 세계를 미루어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언제나 슬픈 하나님을 어떻게 위로해 드릴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며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보다 더 수고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그렇게 되면 도리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입장에 서시게 될 것이고또 우리를 위로하시는 입장에 서신 하나님은 슬픔을 잊으시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게 될 것입니다. (42-70)

 

후퇴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해

 

후퇴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도 싫어하지만 하나님도 싫어하십니다. 후퇴하는 사람의 뒤에는 반드시 사탄이 따라와 가지고 그 사람의 전진을 백방으로 막으려고 합니다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후퇴의 일로를 걷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일보 후퇴하는 사람은 선한 입장이 아니라 악한 사탄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시대가 중요합니다자기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당당히 하고 뜻길을 힘차게 나가며 개인적인 섭리시대에 승리했다고 하더라도그 시대가 가정적인 섭리시대권 내로 일단계 전진해서 가정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할 때는 다시 거기에 맞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개인적인 시대에 승리한 결과를 가지고 가정적인 섭리시대까지 승리로 밀고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신앙생활과 현재의 신앙생활을 두고 볼 때 그 모양이 같고 영역이 같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보다 전진된 시대권 내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도 전진해야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명만을 하던 때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면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언제나 몸을 굽혀 큰 죄를 진 죄인과 같은 입장제물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이런 것이 한스러운 복귀의 노정입니다이렇게 한스러운 복귀노정의 탕감은 오늘의 어떤 순간에 완료되는 것이 아니요내일에 완료되는 것이 아닙니다현실바로 오늘 이 시간을 중심삼고 완결지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없습니다현실이야말로 나의 생사를 판결짓는 기로요분기점으로서 항상 나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자리가 현실인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현실에서 패자가 되어 가지고는 미래에 있어서도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현실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맛본 사람은 그것을 과거의 승리의 결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우리의 원수 중의 원수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요행복 중의 행복이 뒤넘이치기도 하는 것입니다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이 원수를 때려잡고 행복의 요인을 모색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만일 자기도 모르게 한 고비두 고비세 고비 후퇴의 길로 떨어져 나갔다고 하게 될 때에는 이것을 다시 전진의 길로 되돌리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자기의 마음에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그것을 회복하려고 할 때는 몸부림을 쳐도 혼자서는 힘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나 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그럴 때 만일 자기의 주장이나 주관을 내세웠다가는 영영 갈 길이 막혀 버립니다그러니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이 있으면 그에게 자신의 모든 사연을 털어놓고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며또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의논해야 됩니다.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에게 모든 사연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상의해야 됩니다이렇듯 상하의 관계에서 문제를 수습할 수 있는 제2의 대상을 찾아 나서야지 자기 혼자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후퇴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동기를 찾을 것이냐자기 자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제3의 대상을 통하여 찾아야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필요한 것이요스승이 필요한 것이요사랑하는 아들딸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이런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사람이 없을 때는 하늘과 담판을 지어야 합니다그런데 이미 타격을 받아 가지고 후퇴한 자리에서 담판을 지으려고 할 때는 과거에 전진하던 때보다 몇 배의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그런 것이 우리의 신앙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42-73)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라

 

촌각을 다투어 가며 싸우는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 시간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어느 누가 턱 나타나서 말씀을 해도 그 말씀 한 마디가 나를 때려잡느냐아니면 나를 가일보 전진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느냐 하는 것을 벌써 마음으로 안다는 것입니다기쁠 수 있는 대상인지아니면 슬플 수 있는 대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충격이 되는 말을 듣더라도 타격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설령타격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생겨서 자기가 억울한 입장에 서게 되어도 그것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흥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그러한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미래의 때내 때가 가까이 온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그 환경을 넘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다 들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예수님은 당당코 변명할 수 있는 내용이 충분히 있었지만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라는 것을 알았고또 어떠한 변명을 해도 그 자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변명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기에서 입을 잘못 열었다가는 하늘을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종족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그러한 자리에서 책임하지 못했다고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고자 했던 정상적인 복음의 터전은 닦아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시간오늘 이 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로 오는 도중에도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을 쳐다볼 것입니다.그럴 때 그들의 나타난 모든 형상들을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분별하고 감정해서 자기의 가는 길 앞에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재료와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됩니다그러한 것들이 자기 앞에 보여지는 것은 무언의 가르침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모습들을 볼 때 어떤 설교자의 설교에서보다도 더 많은 느낌과 깨달음을 받아야 됩니다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의 갈 길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뜻을 위해서 저렇게 전심전력을 다해 보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그런 것들을 볼 때 그 한 시간을 중심삼고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재료자신을 비약시킬 수 있는 상대적인 재료로서 받아들이기에 급급해야 됩니다. (42-75)

 

전진하는 신앙자의 생활태도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이 전진이냐정지냐절대로정지해서는 안됩니다.정지라는 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급경사를 올라갈 때는 잠시라도 정지하게 되면 여지없이 굴러 떨어지는 것입니다신앙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이런 것을 생각하고 긴장해 있어야 합니다급경사를 올라갈 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그 걸음은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한 걸음을 올라서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칠 부 능선팔 부 능선구 부 능선을 넘어 정상을 향해 갈 때는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일편단심으로 정상만을 향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일단 정상에 올라서면 세상은 모두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자기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존재물들도 자기의 품에 품겨져 있는 것이요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존재물들도 주체인 자기 앞에 상대적인 인연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그리하여 그들은 자기 앞에 희열의 대상영광의 대상으로서 기쁘게 들어오는 것입니다그런 것을 느끼는 자리생애 가운데서 그러한 기쁨을 하나님과 더불어 나누고 그러한 승리를 체휼하는 자리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시간그런 때를 많이 갖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자기의 역사적인 일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100이라는 기준을 가진 사람인데 200이라는 기준을 갖추었다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아무리 타락된 길을 간다고 해도 200을 갖춘 그 기준이 항상 그를 지켜 줄 것입니다어려운 자리를 찾아가서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면 벌써 그것이 될 것인지안 될 것인지 그의 마음과 영즉 그의 속사람이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생명체가 되기 전에 그 생명체는 어디에서 자랍니까그 생명체는 공중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에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영형체(靈形體)와 생령체(生靈體)도 공중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령체의 감각생명체의 감각혹은 영형체가 감지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그것을 제대로 삼아서 뜻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자신이 전진하고 있는지후퇴하고 있는지를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리지 못하면 여러분은 정지하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정지하는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 앞에 원수가 될 것입니다그러한 생활과 그러한 신앙태도가 습관화되면 새로운 뜻 앞에 크게 써야 할 사람들이 들어와도 그들 앞에 본이 되지 못하고 자극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생활 면에서나 신앙 면에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 앞에 본이 되어서 그 기반을 닦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할 때는 큰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싸워야 합니다전진하기 위해서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즉 오관을 통하여 자기가 전진하고 있는지 후퇴하고 있는지를 감지해야 됩니다.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감각의 일체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간에 그것이 전진할 수 있는 일인지후퇴할 수 있는 일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기준은 제물이 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신앙을 하는 우리들이 언제나 즐겁고 기쁜 날만 맞이해 가지고는 자기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기백이라든가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을 갖출 수 없습니다그것은 왜냐개인적인 복귀단계를 넘으면 가정적인 복귀단계가 기다리고 있고가정적인 복귀단계를 지나고 나면 종족적인 복귀단계가 기다리고 있고그것을 넘으면 국가적인 복귀단계와 세계적인 복귀단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 앞에 자신의 생애를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과거보다도 다가오는 미래에 더 가중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제물이 된 입장에서 자기의 생애 전체를 겸손히 바칠 수 있는 생활의 태도야말로 신앙노정에서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만일 그런 생활태도를 갖지 않고는 후퇴의 일로를 거듭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42-79)

 

하늘이 동정할 수 있는 기준

 

오늘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원수도 오늘의 원수가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과거의 원수가 무서운 것이 아니고 내일에 다가오는 원수가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오늘 대하고 있는 원수가 무섭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서로가 서로를 심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의 심판대상임을 알고 그러한 심판도상에서 서로 협력해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망의 한계점과 생명의 한계점이 오늘 이 현실의 초점을 중심삼고 뒤넘이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여기에서 생명적인 것과 인연을 맺느냐아니면 사망적인 것과 인연을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다시 말해서 하늘과 인연을 맺고 나가느냐아니면 사탄과 인연을 맺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현실적인 터전에서 결정되어진다는 것입니다이런 것을 생각할 때 현실 이상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생활화된 사람은 어떤 것을 봐도 그것이 사탄적인 것인지하늘적인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그리하여 만약 하늘이 원치 않는 것이라면 무자비하게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떵떵거리지만 실상은 반대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그렇지만 자기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를 모릅니다알 턱이 없습니다하늘의 섭리를 근본적으로 휘저어 버릴 수 있는 행동을 하고서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영광이라든가 영화를 다 집어던지고 십자가에 달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던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서야 됩니다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동기를 가짐으로 말미암아자기를 던져 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동정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라는 것입니다그 길밖에 없습니다신앙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란 그러한 공식노정을 거쳐야만 수습될 수 있고또 그렇게 수습된 기반 위에 하늘의 소원이 닿아서 다시금 전진의 기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길에서 정지되기 시작하는 것은 포화상태가 다가온다는 것을 말합니다포화상태라는 것은 내가 나로서 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때를 말하고또한 내 힘이 더 이상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하는 때를 말합니다그러한 때 정지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럴 때는 상속을 해줘야 합니다이삭이 야곱에게 상속해 주던 것처럼 상속해 줄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는 말석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전부 다 남에게 양보해 주면서 그들을 축복해 주고 빈손으로 돌아서는 손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귀한 것들을 가지고 어느 집에 들어가서 나눠주고 나가는 길손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그런 사람은 하늘이 보실 때 동정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자기 소유의 분량까지도 전부 다 나눠주는 사람은 하늘이 동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운명적으로 타고난 복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다 나눠주고 없는 것 같아도 하늘은 그 사람에게 일시에 그보다 많은 복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나눠주면 그 이상으로 보충받습니다결국주는 것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 이()가 남는 장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화상태가 되거든 모든 것을 나눠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나눠줄 때도 어떤 것은 남겨 두고 나눠주어서는 안됩니다자기가 갖고 있는 귀한 것을 모두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그러면 하나님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을 동정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취해야 할 복의 양을 다시 채워 주실 것입니다그러니까 결국에는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이득을 보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교만하지 않아야 됩니다남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4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