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탕감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2일) u

訓讀王 | 20191023053547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2


 

완전한 탕감 (훈독본)

 

날짜 : 19702

장소 :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선악의 중간 입장에 처해 있는 타락한 인간

 

우리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선과 악의 중간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도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중간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을 통해야 되고, 사탄도 하늘 편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중간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을 통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는데, 마음이 선을 추구하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 편의 경계선에 접하게 되지만 그와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면 반드시 사탄 편의 경계선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 하늘과 땅의 관계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이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을 거쳐야 합니다. 또한, 사탄도 하늘권 내에 있는 선한 인간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땅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인간과 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자리에서만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요, 사탄과 인간이 하나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선악은 내 자신이 우향 혹은 좌향함으로써 결정되는 것이지, 선악 자체가 우리를 선하게 또는 악하게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선의 방향으로 가느냐, 악의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인간은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은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느냐 하면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니요, 바로 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29-204)

 

어떻게 타락권을 벗어날 것인가

 

그러면 오늘날 이 타락한 기반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선을 추구하고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할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선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사탄과 동반해 왔고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도 동반하기 쉬운 입장에 있습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모든 것이 사탄, 악과 결탁되어진 입장이지 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악한 터전을 부정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악한 터전보다도 더 강력히 선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 혹은 방편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악의 기반을 제거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자아를 확립해야만 선악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사탄을 중심삼은 악은 환경적으로 볼 때 95퍼센트에 해당하는 환경을 지니고 있는데, 하나님의 기반은 사탄세계에 비해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양심을 자극시키며 그 사람이 결심하는 때를 중심삼고, 그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시점을 표준하고서야, 그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야 역사를 해 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한다고 해도 24시간 항시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요, 신앙생활도 24시간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기적인 한 때를 중심삼고 뜻과 연결될 수 있는 통일적인 궤도를 스스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장성하여 스스로 자주성을 지닐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자신이 서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29-205)

 

축복 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의 역사가 벌어져

 

선생님의 가정은 증조부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때 와서 탕감을 받았습니다. 축복 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어떤 것을 지탱시키고, 그 씨를 남기기 위해서는 탕감을 받아야 합니다.

열만한 축복을 주기 위해서는 스물 혹은 백만한 시련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탕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기까지 선생님의 가정에 상당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가산이 탕진되었고, 인명 피해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축복을 받으면 절망적인 상태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이 그 가정을 사탄세계에 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세계에서 들이칩니다. 선생님이 이 뜻을 찾아 나올 때까지 그 배후에는 삼대에 해당되는 탕감의 인연이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는 탕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29-208)

 

탕감의 자리

 

타락한 혈통을 받고 태어난 역사적인 섭리를 두고 볼 때 탕감은 불가피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하늘 편을 대신해서 나설 수 있는 배후를 갖지 않고는 탕감의 자리에 못 나갑니다. 


여기에서 뜻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 이것을 슬픔으로 맞이하지 않고 어떻게 감사함으로 맞이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정이면 가정에 있어서 절망된 사연이나 그 누구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사연이라도 슬픔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와 같은 입장을 통해서 결속되고 하나의 공고한 터전이 되시옵소서!” 하고 소망 가운데 이것을 맞지 않고는 뜻을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물 그 자체에게는 절망이 되지만 제물을 드리는 그 자리는 소망이 출발하는 자리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제물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한 면은 절망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요, 또 한 면은 소망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양면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이것은 자기 자신이 해야 됩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완전히 사탄을 끊고 나서게 되면, 그것은 사탄세계로 보면 절망입니다. 이것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세계는 완전한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길은 개인으로부터 열립니다. 자기의 길이 열렸다고 해서 그 누구를 믿고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자주적인 입장에서 노력과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아담에게 성장기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시간을 투입하고 노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성장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29-210)

 

복귀의 길

 

이제 70년대를 향하는 경계선에서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모자 혹은 모녀를 수난의 길에 내몰았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법칙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자기의 아들딸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희생되더라도 이 나라는 구원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기도하는 모자가 있다면 여기에 복귀의 조건이 세워질 수 있는 것이요, 그 모자로 말미암아 세계 복귀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비참한 노정이라도 가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런 길을 간 사람입니다. 우리 가정도 그런 길을 갔습니다. 가는 데에는 세상의 어느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원망에 앞서 이 나라, 이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과 뜻이 가는 길을 염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의 책임자로서 취해야 할 응분의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7년 노정을 걷는 데 있어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 서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탕감복귀가 안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복귀하는 방법이 뭐냐?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해 준 것은 여러분의 가정만을 위해서 축복해 준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었지만 여러분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종족 복귀의 책임자로 내세워 완전히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여러분들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축복은 여러분의 가정만을 위해서 해준 것이 아니라 종족을 위해 해준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종족복귀시대로 넘겨야 되느냐? 여러분이 넘겨 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족을 넘어서서 민족을 위해 축복해 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작년에 세계 순회 도중에 세계의 여러 민족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종족을 축복하던 그 기준을 민족을 축복할 수 있는 기준과 국가를 축복할 수 있는 기준까지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시는 길은 내가 대신 가야 할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축복가정이 있다면, 일심단결하여 그 뜻을 받들고 헌신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을 통해 민족적인 축복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지금까지 뜻을 발전시켜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9-213)

 

지금까지의 탕감복귀역사의 내용

 

선생님이 이 민족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탕감하지 않고는 절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만을 사랑하다가는 국가를 사탄 앞에 내놓게 되고, 민족만을 사랑하다가는 민족을 사탄 앞에 내놓게 됩니다. 민족을 사랑하기 전에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기준을 세웠을 때는 민족을 사랑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세우기 위해서는 가정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종족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고, 종족을 세우기 위해서는 민족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고, 민족을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며,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세계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개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을 사랑해야 합니다. , 개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중심삼고 전부 탕감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섭리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개인이 가정적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기준에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전상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피해받을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잘 연결시켜 나가게 될 때 여러분은 사탄세계의 탕감을 받지 않고 무난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29-215)

 

완전한 탕감기준을 세우려면

 

완전한 탕감이라는 이념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가지와 같은 입장에 서 있습니다. 나무의 줄기와 가지와 잎을 두고 볼 때 바람이 불면 어느 것이 먼저 바람을 맞느냐? 줄기나 가지가 바람을 맞기 전에 먼저 잎이 맞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완전한 탕감이 무엇인지 모르고 나왔습니다. 그저 선생님만 바라보고 하라는 일만 해 나왔습니다. 완전한 탕감기준을 세우려면 여러분 자신이 결정권을 가져야 됩니다. 선악의 중간 입장에서 반드시 악권을 초월하여 하늘 앞에 귀일될 수 있는 자신이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들이 다시 탕감을 받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만일 선생님이 여러분을 후원해 주면 전부 잘려 넘어가게 됩니다. 선생님이 세계를 사랑할 것을 가지고 여러분을 후원하면 여러분이 망합니다. 왜냐 하면 탕감법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완전히 탕감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서 완전한 하나의 주체가 되고 하나님과 완전한 일심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뜻 앞에 귀일될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자신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탕감을 받습니다. 가정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종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새로운 종족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종족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냐? 민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먼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해야 됩니다. 국가를 위해 제물 되어야 합니다. 제물은 먼저 민족을 위해, 그 다음에 형제와 부모를 위해,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위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누구를 위해 탕감해야 하느냐? 먼저 가인을 위해 탕감해야 됩니다. 우리가 제물 되는 것은 형제를 용서해 주기 위해 또한 자기 민족을 용서해 주기 위해 가인 세계를 용서해 주기 위해 제물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가 복귀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제물적인 입장에 있는 아벨은 제물을 가인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요, 부모를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29-216)

 

아벨이 해야 할 책임

 

오늘날 통일교회는 아벨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면 제물을 누구를 위하여 드리느냐? 형제와 부모를 위해서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부모의 입장에 있는 것은 나라의 주권자요, 가인적인 형의 입장에 있는 것은 삼천만 민족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국가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라는 특권을 받은 것은 무한한 영광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족적 메시아라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생님을 의지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민족적 승리의 터전과 세계를 위한 승리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종족적인 메시아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섭리시대에는 하나님이 사지(死地)와 같은 황무지에 몰아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되어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과 하나되어야 하느냐?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으면 아벨이 되는 것이요, 세상의 부모를 중심삼으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벨은 타락하지 않은 복귀된 아들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아벨적인 입장에서 반드시 가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믿음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아들딸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아벨이 해야 할 책임은 뭐냐? 먼저 가인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인 부모를 복귀해야 됩니다. 아벨이 제물을 드리는 것은 부모 대신 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물을 잘 드린다고 하더라도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부모가 복귀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연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도 이런 입장이었고 예수님도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도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부모를 복귀하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해방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종족적 메시아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반대하던 그런 입장이 아닌 환영받는 이스라엘권 내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을 반대하는 부모가 아닌 참부모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권 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원칙을 두고 볼 때 참부모와 하나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민족이 환영할 수 있는 환경권 내에 들어오면 반드시 새로운 나라의 운세가 닥쳐오는 것입니다. 국가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원리적인 탕감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력적인 투쟁을 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나라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세계가 이스라엘권 내로 밀려들어오게 됩니다.


선생님은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한국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탄이 세계를 대신해서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공산당입니다. 그들은 국가를 형성해 가지고 있고, 서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29-218)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사탄은 이 세계를 완전히 점령하기 전에는 대한민국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기도한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세계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러분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헤아려 보고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 완전한 하나의 기반을 만들어 사탄의 조건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주체적인 입장에 섰느냐? 못 섰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선생님을 따라와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내 말씀과 마찬가지이다. 선생님의 표준은 내 표준과 마찬가지이다.” 해야 합니다. 여기에 차이가 생기게 되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면 그 목적관에 일치되지 않는 사람 혹은 자체적으로 일치되지 않는 사람은 다 망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탕감기준을 여러분이 제시 못 하면 끊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을 다시 고립된 입장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70년대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야 할 섭리적인 입장이요, 완전한 탕감을 요구하는 현시점에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야 할 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 앞에 효자라면 자식을 낳아 그 손자를 부모 앞에 안겨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아들딸을 낳아 안겨 드려야 하느냐? 자기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중요시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 안겨 드려야 합니다. 자기보다 더 복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 앞에 더 가까울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섭리가 발전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못한 아들딸이 태어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정에 멸망이 오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을 보내 주시려거든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아들딸을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관이 서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이요, 신앙의 표준입니다. 사랑하더라도 그런 철학을 가지고 사랑해야지 그렇지 않고 흐늘거리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자라나는 자식들 앞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나는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산 것 밖에 남겨 줄 것이 없다.” 할 때, 이것이 가장 위대한 유업입니다. 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의 사람이 아니다. 너는 세계의 사람이니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늘땅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천주주의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이념을 갖고 있고, 또 듣고 알았다는 사람이 시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29-220)

 

완전한 탕감조건과 탕감복귀

 

세계를 복귀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아들딸 하나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살릴 수 없습니다. 세계를 위한 여러분이 될 때 통일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왜 촉구하느냐? 여러분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완전한 탕감조건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나라를 위하여 가는 길, 세계를 위하여 가는 길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은 내 가정으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국가적인 가정이 되고, 세계적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부딪히는 모든 서러움은 민족, 국가, 세계와 더불어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뜻 가운데서 나라와 세계를 사랑해야지, 내 개체를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의 실천은 어려운 것입니다. 남이 10년을 가면 나는 20년을 가야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년을 간 사람보다는 20년을 간 사람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오랫동안 그 국가의 수난의 역사를 거친 사람은 충신의 반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10년 고생한 사람보다 20년 고생한 사람, 20년 고생한 사람보다 생애를 바쳐 고생한 사람이 더 위대합니다. 이렇게 그 수난에 관록이 붙으면 붙을수록 그는 그 국가에 있어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천주복귀라는 이 엄청난 복귀섭리의 노정에 있어서 어떠한 분야에 머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선생님은 이 일을 위해서 아들딸을 버렸습니다. 부모를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을 버린 이상의 자리, 내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의 몇 배의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를 찾기 위해서 아들딸을 버린 것입니다. 한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몇 배 이상의 사랑을 이 세계 앞에 나누어주기 위해 버린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심정세계로 가는 원리원칙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어느 누가 부모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겠습니까? 내가 평양에 가 있을 때, 이틀만 걸어가면 형님을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형님 이상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못 모셔 오는 것입니다. 나라를 부모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부모를 모셔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탕감, 완전한 탕감복귀라는 것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 참부모를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세계의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나온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할머니들을 삼위기대로 묶고, 모자 협조할 수 있는 사탄세계의 세 아들딸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원칙대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벨의 사명은 부모를 복귀하는 것이요, 가인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면적 도상에서 승리적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일을 해 나왔습니다. (29-224) *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2일, 원문


완전한 탕감 


날짜 : 19702

장소 :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선악의 중간 입장에 처해 있는 타락한 인간


우리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선과 악의 중간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간은 반드시 이런 중간 입장을 통하지 않고는 경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중간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을 통해야 되고, 사탄도 하늘 편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중간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을 통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가 모두 이와 같은 중간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섭리사에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는데, 마음이 선을 추구하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 편의 경계선에 접하게 되지만 그와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면 반드시 사탄 편의 경계선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선악의 중간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어야 됩니다.


상하 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합니다. , 하늘과 땅의 관계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이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도 하늘권 내에 있는 선한 인간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땅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인간과 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권 내에 있는 인간을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자리에서만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요, 사탄과 인간이 하나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좌우관계에서 살펴보면, 부모를 중심삼은 형제의 관계가 좌우관계인데 형제 가운데에서도 참다운 효자는 어떤 형제냐 하면 부모와 하나되어 자기 형제를 대할 줄 아는 형제입니다. 불효자는 어떤 형제냐 하면 부모와 반대되는 자리에 서서 가정을 파탄에 빠지게 하는 형제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충신이 되려면 주권자면 주권자, 군주면 군주와 하나되어 민족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간신은 어떤 자리에서 생기느냐? 군주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입장에서 하나되는 자리에서 역적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악은 어떻게 결정되느냐? 선악은 내 자신이 우향 혹은 좌향함으로써 결정되는 것이지, 선악 자체가 우리를 선하게 또는 악하게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선의 방향으로 가느냐, 악의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인간은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은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느냐 하면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니요, 바로 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안식해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내 자신이 하늘 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 자신이 악한 입장에 그냥 그대로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한 현재의 입장을 고수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29-204)


어떻게 타락권을 벗어날 것인가


그러면 오늘날 이 타락한 기반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이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지금까지 중간 위치에 서 있는 인간, 선을 추구하고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할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선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 자신은 이 몸을 지니고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즉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악한 사탄과 동반해 왔고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도 동반하기 쉬운 입장에 있습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모든 것이 사탄, 악과 결탁되어진 입장이지 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악한 터전을 부정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악한 터전보다도 더 강력히 선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 혹은 방편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신앙자들이 지금까지 생활해 나오는 데 있어서의 문제점이었음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막연하게 알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아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풀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을 세우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부정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자기가 나라면 나라에 있어서 하나의 국민이요, 가정이면 가정의 한 일원이요, 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한 부부를 이루는 일원이 되어 가지고 여기에서 하늘 편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신앙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절대적인 신앙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그 국가가 절대적으로 반대하더라도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가정이면 가정에서 누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그 반대 앞에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부부의 사이에 있어서도 상대가 반대하는 입장에 서더라도 절대적인 신앙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세우고, 이러한 태도를 세워 신앙생활을 하려는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단 하나 악한 환경을 탈피하여 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백방(白方)으로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간증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내가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느냐?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맹목적으로 믿어 나온 그러한 신앙 기준이냐? 맹목적으로 추구해 나오던 신앙의 기준보다 강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과거의 신앙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없습니다. ,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새로운 세계로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아는 것만큼 실천하고 그것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현실적인 모든 악의 기반을 타파해 버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악의 기반을 제거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자아를 확립해야만 선악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사탄을 중심삼은 악은 환경적으로 볼 때 95퍼센트에 해당하는 환경을 지니고 있는데,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은 5퍼센트에 해당하는 환경만 지니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기반은 사탄세계에 비해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양심을 자극시키며 양심의 방향을 촉구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결심하는 때를 중심삼고, 그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시점을 표준하고서야, 그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야 역사를 해 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한다고 해도 24시간 항시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요, 신앙생활도 24시간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기적인 한 때를 중심삼고 뜻과 연결될 수 있는 통일적인 궤도를 스스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장성하여 스스로 자주성을 지닐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까지는 하나님과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하나님이 절대적이니 나도 절대적이어야 되겠다. 지금까지 선을 위해서 투쟁해 나온 하나님을 내가 모시는 입장이니 나 자신도 현실적으로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현실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투쟁해야 되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투쟁하겠다는 신념이 절대적인 것이 되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때를 바라보고 우리 개체를 이끌어 나간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과연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기점에 섰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자신이 서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29-205)


축복 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의 역사가 벌어져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또 지금까지 선생님의 가정이 생활해 나온 것을 쭉 되돌아보게 되면 물론 어느 한 때에는 축복도 해주셨지만 하나님은 모질고 무자비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은 증조부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때 와서 탕감을 받았습니다. 축복 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축복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을 받았습니다. 열만한 축복을 받았으면 반드시 그만한 탕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지탱시키고, 그 씨를 남기기 위해서는 탕감을 받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가정을 위한 씨가 아니라 종족을 위한 씨를 남기려면 그 가정에 축복한 이상의 시련을 사탄이 퍼붓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열만한 축복을 주기 위해서는 스물 혹은 백만한 시련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탕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기까지 선생님의 가정에 상당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가산이 탕진되었고, 인명 피해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축복을 받으면 절망적인 상태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이 그 가정을 사탄세계에 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세계에서 들이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선생님이 이 뜻을 찾아 나올 때까지 그 배후에는 삼대에 해당되는 탕감의 인연이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대에서도 탕감을 받았고, 아버지 대에서도 탕감을 받았고, 내 대에서 형님까지 탕감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대에 있어서도 슬픈 일이 벌어져야 했고, 아버지 대에 있어서도 슬픈 일들이 일어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는 탕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29-208)



탕감의 자리


타락한 혈통을 받고 태어난 역사적인 섭리를 두고 볼 때 탕감은 불가피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 사탄이 그 조상들을 통해서, 가정을 통해서, 형제들을 통해서, 자신을 통해서 들어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하늘 편을 대신해서 나설 수 있는 배후를 갖지 않고는 탕감의 자리에 못 나갑니다. 그 당사자는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탕감의 인연은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뜻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 이것을 슬픔으로 맞이하지 않고 어떻게 감사함으로 맞이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슬픔으로 맞이하는 것은 열 번 천 번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충분한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정이면 가정에 있어서 절망된 사연이나 그 누구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사연이라도 슬픔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와 같은 입장을 통해서 결속되고 하나의 공고한 터전이 되시옵소서!” 하고 소망 가운데 이것을 맞지 않고는 뜻을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물 그 자체에게는 절망이 되지만 제물을 드리는 그 자리는 소망이 출발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절망이 연결되는 자리인 동시에 소망이 출발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제물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한 면은 절망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요, 또 한 면은 소망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양면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넘겨 주는 것도 아니요, 사탄이 넘겨 주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넘어서야 되느냐? 자기 자신이 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이 끊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완전히 사탄을 끊고 나서게 되면, 그것은 사탄세계로 보면 절망입니다. 완전히 절망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세계는 완전한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출발은 한꺼번에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길은 개인으로부터 열립니다. 그런데 개인의 길이 열렸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의 길이 열렸다고 해서 그 누구를 믿고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자주적인 입장에서 개척해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는 시간을 투입해야 되고 노력과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투입하는 시간과 정성도 보통 사람의 몇 배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담에게 성장기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시간을 투입하고 노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성장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사탄이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찾아와 가지고는 네가 책임을 졌으면 너의 선조보다 나아야 된다.”고 하며 들이칩니다. 이런 입장에 서게 될 때 그것을 절망의 요건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절망적인 입장에 섰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절망적인 환경에서 새로운 나, 새로운 자아, 새로운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는 개인, 가정, 국가, 세계가 개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29-210)



복귀의 길

 

이제 70년대를 향하는 경계선에서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모자 혹은 모녀를 수난의 길에 내몰았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법칙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혹은 여러분의 아들딸이 추운 방에서 떨면서 자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축복을 받았다는 거룩한 이름을 가진 모습이지만 밥을 얻어먹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 자기의 아들딸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이 민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는 희생되더라도 이 나라는 구원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기도하는 모자가 있다면 여기에 복귀의 조건이 세워질 수 있는 것이요, 그 모자로 말미암아 세계 복귀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바라보고 금번에 이런 대책을 세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께서 완전한 탕감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들은 어떠한 비참한 노정이라도 가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런 길을 간 사람입니다. 우리 가정도 그런 길을 갔습니다. 가는 데에는 세상의 어느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어려움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원망에 앞서 이 나라, 이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과 뜻이 가는 길을 염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의 책임자로서 취해야 할 응분의 태도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심적 기준을 하늘 앞에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책임자라는 것을 절감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여러분이 7년 노정을 걷는 데 있어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 서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탕감복귀가 안됩니다. 왜 그러냐? 지금까지 역사과정이 그러했고, 선생님이 스스로 그런 탕감노정을 거쳐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복귀하는 방법이 뭐냐?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해 준 것은 여러분의 가정만을 위해서 축복해 준 것이 아닙니다. 종족을 위하고 민족을 위해서 축복해 준 것입니다.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었지만 여러분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종족 복귀의 책임자로 내세워 완전히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여러분들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축복은 여러분의 가정만을 위해서 해준 것이 아니라 종족을 위해 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족이 편성될 때까지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종족복귀시대로 넘겨야 되느냐? 여러분이 넘겨 놓아야 합니다. 축복받은 여러분들은 종족과 민족을 중심삼고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족을 넘어서서 민족을 위해 축복해 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작년에 세계 순회 도중에 세계의 여러 민족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민족을 위하여, 또 국가를 위하여 축복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족을 축복하던 그 기준을 민족을 축복할 수 있는 기준과 국가를 축복할 수 있는 기준까지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의 수난의 코스와 같은 길을 가면서 선생님이 가시는 길은 내가 대신 가야 할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축복가정이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몸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일심단결하여 그 뜻을 받들고 헌신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을 통해 민족적인 축복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 앞에 탕감조건을 제시하여 넘어설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지금까지 뜻을 발전시켜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9-213)



지금까지의 탕감복귀역사의 내용


그러면 선생님이 지금 누구를 사랑하느냐? 이 민족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탕감하지 않고는 절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역사를 돌이켜 보나 선생님의 일대를 보나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만을 사랑하다가는 국가를 사탄 앞에 내놓게 되고, 민족만을 사랑하다가는 민족을 사탄 앞에 내놓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가야 합니다. 민족을 사랑하기 전에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한 단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기준을 세웠을 때는 민족을 사랑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이 뭐냐? 개인을 세우기 위해서는 가정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종족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고, 종족을 세우기 위해서는 민족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고, 민족을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며,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세계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개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을 사랑해야 합니다. , 개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중심삼고 전부 탕감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요셉 가정을 세웠고,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은 가정적인 탕감조건을 세워서 예수님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탕감시킨 것은 요셉 가정을 세우기 위한 것이요, 요셉 가정을 탕감시킨 것은 예수님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는 큰 것을 세우기 위해 작은 것을 탕감시킨 역사가 아니라 작은 것을 세우기 위해 큰 것을 탕감시켜 내려온 역사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섭리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개인이 가정적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기준에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전상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피해받을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잘 연결시켜 나가게 될 때 여러분은 사탄세계의 탕감을 받지 않고 무난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 대신 피를 흘려야 하고, 핍박을 받아야 하며, 외로움을 당해야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29-215)


완전한 탕감기준을 세우려면



완전한 탕감이라는 이념을 두고 볼 때, 혹은 섭리의 입장에서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은 선악의 중간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이냐? 탕감을 당해야 할 입장이냐, 탕감을 벗어날 수 있는 입장이냐?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가지와 같은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나무의 줄기와 가지와 잎을 두고 볼 때 바람이 불면 어느 것이 먼저 바람을 맞느냐? 줄기나 가지가 바람을 맞기 전에 먼저 잎이 맞습니다. 그리고 가지가 맞은 다음에 줄기가 맞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완전한 탕감이 무엇인지 모르고 나왔습니다. 그저 선생님만 바라보고 하라는 일만 해 나왔습니다. 하라는 일만 해 나온 후에 완전한 탕감기준을 세우려면 여러분 자신이 결정권을 가져야 됩니다. 선악의 중간 입장에서 반드시 악권을 초월하여 하늘 앞에 귀일될 수 있는 자신이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여기 참석한 사람 가운데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자가 있느냐? 그것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들이 다시 탕감을 받아야 됩니다. 완전히 탕감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만일 선생님이 여러분을 후원해 주면 전부 잘려 넘어가게 됩니다.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나라를 사랑할 것을 가지고 여러분을 사랑하면 여러분이 망합니다. 세계를 사랑할 것을 가지고 여러분을 후원하면 여러분이 망합니다. 왜냐 하면 탕감법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완전히 탕감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서 완전한 하나의 주체가 되고 하나님과 완전한 일심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뜻 앞에 귀일될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자신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탕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가정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종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가정보다 종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가정이 살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새로운 종족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종족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냐? 민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사랑하지 않고는 살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먼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해야 됩니다. 자기 가정이나 통일 종족을 위하여 희생해선 안됩니다. 국가를 위해 제물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물은 먼저 누구를 위해서 드려야 하느냐? 먼저 민족을 위해, 그 다음에 형제와 부모를 위해,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위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가정을 놓고 볼 때, 먼저 우리는 누구를 위해 탕감해야 하느냐? 먼저 하나님을 위해 탕감하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위해 탕감해야 됩니다. 우리가 제물 되는 것은 형제를 용서해 주기 위해 되는 것이요, 또한 자기 민족을 용서해 주기 위해 되는 것이요, 가인 세계를 용서해 주기 위해 제물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가 복귀되지 않습니다. 가인 아벨이 복귀되지 않고는 부모가 해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물적인 입장에 있는 아벨은 누구를 위해 제물을 드리는 것이냐? 가인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요, 부모를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29-216)


아벨이 해야 할 책임


오늘날 통일교회는 아벨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면 제물을 누구를 위하여 드리느냐? 형제와 부모를 위해서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부모의 입장에 있는 것은 나라의 주권자요, 가인적인 형의 입장에 있는 것은 삼천만 민족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국가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의 형제들은 가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라는 특권을 받은 것은 무한한 영광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족적 메시아라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것은 선생님을 의지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민족적 승리의 터전과 세계를 위한 승리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종족적인 메시아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기반도 닦지 않은 황무지 같은 벌판에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섭리시대에는 하나님이 사지(死地)와 같은 황무지에 몰아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되어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이길 수 있는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과 하나되어야 하느냐? 세상의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으면 아벨이 되는 것이요, 세상의 부모를 중심삼으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벨은 타락하지 않은 복귀된 아들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들의 가정과 가정은 하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한 가정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아벨적인 입장에서 반드시 가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믿음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아들딸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아벨이 해야 할 책임은 뭐냐? , 아벨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가인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인 부모를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벨이 제물을 드리는 것은 부모 대신 드리는 것입니다. 아벨은 먼저 가인을 복귀해야 되고, 그 다음에 부모를 복귀해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제물을 잘 드린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복귀되지 않습니다.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부모가 복귀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연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도 이런 입장이었고 예수님도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도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부모를 복귀하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해방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에게는 이중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종족적 메시아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반대하던 그런 입장이 아닌 환영받는 이스라엘권 내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을 반대하는 부모가 아닌 참부모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권 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원칙을 두고 볼 때 국가가 반대할 수 있는 권이 끊어져 나가고 참부모와 하나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민족이 환영할 수 있는 환경권 내에 들어오면 반드시 새로운 나라의 운세가 닥쳐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 견해입니다. 국가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원리적인 탕감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력적인 투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더 세계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나라, 나라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세계가 이스라엘권 내로 밀려들어오게 됩니다.


선생님은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한국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때가 가까워짐에 따라 한국을 사랑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탄이 세계를 대신해서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공산당입니다. 그들은 국가를 형성해 가지고 있고, 서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29-218)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사탄은 이 세계를 완전히 점령하기 전에는 대한민국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기도한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세계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이제는 세계를 하나의 나라, 하나의 주권, 한 사람의 통치자 앞에 굴복시켜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러분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헤아려 보고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 완전한 하나의 기반을 만들어 사탄의 조건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주체적인 입장에 섰느냐? 못 섰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선생님을 따라와야 합니다. 선생님을 따라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생님을 업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내 말씀과 마찬가지이다. 선생님의 표준은 내 표준과 마찬가지이다.” 해야 합니다. 여기에 차이가 생기게 되면 반드시 망합니다. 걸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관에 일치되지 않는 사람 혹은 자체적으로 일치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이냐? 끊기게 됩니다. 목적에 일치되지 못했다가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탕감기준을 여러분이 제시 못 하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은 끊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을 다시 고립된 입장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70년대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야 할 섭리적인 입장이요, 완전한 탕감을 요구하는 현시점에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야 할 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60년대까지는 여러분을 대해 왔습니다.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바라는 스승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의의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민족 국가 세계를 위하여 공헌할 수 있는 완전한 주체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게 될 때는 여러분은 끊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비장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 앞에 효자라면 자식을 낳아 그 손자를 부모 앞에 안겨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아들딸을 낳아 안겨 드려야 하느냐? 자기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중요시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 안겨 드려야 합니다. 자기보다 더 복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 앞에 더 가까울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섭리가 발전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못한 아들딸이 태어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나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정에 멸망이 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딸을 보내 주시려거든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아들딸을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관이 서 있어야 됩니다. 그 아들딸은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났으니, 세계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이 그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버이의 입장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이요, 신앙의 표준입니다. 사랑하더라도 그런 철학을 가지고 사랑해야지 그렇지 않고 흐늘거리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도피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추구하고 그 세계를 위해 나가야 합니다. 아직까지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지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생되더라도 자기의 터전이 넓어지고 축복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자라나는 자식들 앞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나는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산 것 밖에 남겨 줄 것이 없다.” 할 때, 이것이 가장 위대한 유업입니다. 물질이나 학박사의 간판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를 위하여 살아라!” 하는 유언을 자식에게 남겨야 합니다. 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의 사람이 아니다. 너는 세계의 사람이니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늘땅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천주주의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이념을 갖고 있고, 또 듣고 알았다는 사람이 시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29-220)


완전한 탕감조건과 탕감복귀


세계를 복귀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아들딸 하나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일가를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평화의 세계를 이룰 것 같아요? 세계를 위한 여러분이 될 때 통일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왜 촉구하느냐? 여러분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완전한 탕감조건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나라를 위하여 가는 길, 세계를 위하여 가는 길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내 개체로부터, 내 가정으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국가적인 가정이 되고, 세계적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부딪히는 모든 서러움은 내 한 가정의 서러움으로 느껴서는 안됩니다. 민족, 국가, 세계와 더불어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뜻을 사랑할 것이냐, 내 한 개체를 사랑할 것이냐, 가정을 사랑할 것이냐? 뜻 가운데서 나라와 세계를 사랑해야지, 내 개체를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답은 간단하지만 그 내용의 실천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생활에 있어서 남이 10년을 가면 나는 20년을 가야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년을 간 사람보다는 20년을 간 사람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오랫동안 그 국가의 수난의 역사를 거친 사람은 충신의 반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1년 동안 고생한 사람보다 2년 고생한 사람, 10년 고생한 사람보다 20년 고생한 사람, 20년 고생한 사람보다 생애를 바쳐 고생한 사람이 더 위대합니다. 이렇게 그 수난에 관록이 붙으면 붙을수록 그는 그 국가에 있어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천주복귀라는 이 엄청난 복귀섭리의 노정에 있어서 어떠한 분야에 머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시시하게 김 아무개의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팔려 다니는 그 따위 시시한 녀석들이 되기 위해서 여기 모인 것입니까? 그런 사람들이라면 며칠을 가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일찍 다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뭐 여러분 보다 못해서 이런 일을 하는 줄 압니까? 선생님은 이 일을 위해서 아들딸을 버렸습니다. 부모를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을 버린 이상의 자리, 내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의 몇 배의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를 찾기 위해서 아들딸을 버린 것입니다. 한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몇 배 이상의 사랑을 이 세계 앞에 나누어주기 위해 버린 것입니다.


탕감복귀역사를 위해 하나님이 나를 세웠다 할진대, 내가 잘못하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들이맞게 됩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가 무섭다면 무서운 겁니다. 선생님도 무섭다면 무서운 사람입니다. 세계에 없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심정세계로 가는 원리원칙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선생님이 지금까지 남아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원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망했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부모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겠습니까? 내가 평양에 가 있을 때, 이틀만 걸어가면 형님을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형님 이상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못 모셔 오는 것입니다. 나라를 부모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부모를 모셔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탕감입니다. 완전한 탕감복귀라는 것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 참부모를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세계의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나온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할머니들을 삼위기대로 묶고, 모자 협조할 수 있는 사탄세계의 세 아들딸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원칙대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기반에 서지 않고는 발전되지 않습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그 다음은 무엇이냐? 가인은 사탄 편이 복귀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아벨의 사명은 부모를 복귀하는 것이요, 가인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면적 도상에서 승리적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일을 해 나왔습니다. (29-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