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생활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0일)

訓讀王 | 20191009084841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0


첨부파일 16 훈독경 3권 20일 감사의 생활 1.mp3


감사의 생활 (훈독본)


날짜 : 1970. 10. 25()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현시점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면서 더 좋을 수 있는 한날을 다짐하고더 가치 있는 내용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러한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때에는 낙심과 절망을 하게 되는 실상을 우리는 현실의 생활 속에서 보아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본래 머물러야 할 곳


그러면 사람이 본래 가야 할 곳이 어디이며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그곳은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는 어떠한 미래의 세계일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이 처했던 자리는 불행이라든가 탄식이라든가 원한이라든가 원망과 같은 감정을 갖고 사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만일 불행의 요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불행해지기 전에 그 불행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요혹은 거기에 낙심될 요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낙심될 내용을 미리 방지해 주시는 것입니다그러한 자리가 본연의 아들딸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본래 아담도 불행하지 않은 입장이요해와도 불행하지 않은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인간을 볼 때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 다릅니다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있어서 분열이라든가,상충이라든가고충 같은 것이 발발합니다그러나 두 사람 혹은 열 사람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똑같은 입장에서 나가게 될 때는 투쟁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분열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계셔야 되고 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그러나 아담 해와가 완성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까지의 성장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성장과정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아담과 해와는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지향하고 바라는 목적이 무엇인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중심삼고 현실적인 내용을 관찰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생애를 지낸 후의 역사적인 미래를 마음에 두고 아담 해와를 사랑하였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느꼈더라면 그들은 타락하려야 타락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모르고현실의 환경에서 부딪쳐 오는 사연과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35-263)


인간이 낙망하고 절망하게 된 기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자기가 처해 있는 생활 환경 속에서 낙심하고 낙망하는 그러한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실정을 많이 보게 됩니다그러나 이와 같은 오늘의 시련 고통이 오늘의 시련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터전을 개척하여 마련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인 것을 알게 된다면 현실 생활에서 낙망은 하지 않을 것이요또한 절망이나 자포자기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보호하시고보다 더 영원한 가치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대하셨습니다이와 같은 방대한 가치의 깊은 내용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아담 해와는 그 날 그 날의 입장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느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낙망하고 절망하는 그 본성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하면 자기를 위주로 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것과는 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몸부림치고 투쟁해 나가지만 자기 스스로 이것을 지탱하지 못하게 될 때는 여기에 낙망이 있고 절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자기를 중심삼고 내일의 희망을 망각하는 자리즉 자기를 긍정하고 내일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자기를 부정하고 내일을 긍정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미래를 긍정하고 오늘을 부정할 수 있는 혁명의 기수가 되지 않고는 가치가 없는 인생이 될 것이며인생의 모든 면에서 비애의 탈을 벗을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35-265)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치관 확립의 필요성


오늘날 우리는 하루의 생활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뒤넘이침과 동시에 하루 하루가 뒤넘이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하루를 지내는 데 있어서 오늘의 시련을 내일로 연속시켜서는 안됩니다내일의 새로운 긍정을 추구하고 이것을 내일의 새로운 긍정으로 연결할 수 있는 터전을 오늘에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부정하고 하늘을 긍정해 나가는 것이 신앙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스스로 내일의 약속을 다짐하기 위한 새로운 인연이 필요하고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치관의 확립이 필요한 것입니다그 확립된 가치의 내용은 현실의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철저한 주체적인 내용이어야 합니다그러지 않고는 미래의 세계를 중심삼고 현실적인 관념과 현실적인 생활무대를 부정하고 극복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신앙노정을 보면 처음에는 강하게 출발했지만 끝에 가서는 약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이것은 미래관의 확립이 덜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개인보다는 가정이 가치적이요가정보다는 종족이 가치적이요종족보다는 민족이 가치적이요민족보다는 국가가 가치적이요국가보다는 세계가 가치적이요세계보다는 천주가 가치적이요천주보다는 하나님이 가치적입니다하나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가치적이라는 것입니다. (35-268)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


이 땅 위에는 풍토가 다르고전통이 다르고역사적 배경이 서로 다른 여러 유형의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그것은 본연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최고의 분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의 출발도 최고의 자리에서부터 해야 되고 그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곳도 최고의 자리여야 합니다그 사랑은 천주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세계를 초월하여 천주를 중심삼은 것이며 천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입니다또한하나님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 사랑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 자체도 희생해 나온 것입니다하나님 자신도 하나님 자체에 있는 그 사랑을 위해 희생해 나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 자체와도 바꿀 수 없는 근본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이 사랑만이 우리의 골수를 통할 수 있고 우리의 혈육을 관리할 수 있는 근본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35-270)


종적인 사랑을 횡적으로 전개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관념적으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이 사랑을 현실의 생활무대에 적용해 가지고 유발시켜 나가야 됩니다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가치와 현실적인 하나의 개체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그 세계를 찾아 나가는 것이 복귀의 길이지만 개성진리체를 초월하여서는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큰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그것은 자신의 말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내가 말하는 것이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되고내가 보고 느끼는 것도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도의 길을 가게 될 때 혼자 정성을 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대상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게 될 때는 혼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그가 하나님과는 종적으로 관계를 맺었을지 모르지만 횡적으로 관계될 수 있는 상대기반을 갖지 않으면 종적인 기준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에 비춰 볼 때하나님이 주체적이고 종적인 중심의 자리에 계시지만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존재물은 자기 자체만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도 미래와 연결될 수 있는 현실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그래야 미래의 세계관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35-272)


위대한 명사 참부모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는 우리 인간은 혼자서는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겠다는 것이 재림사상메시아 사상입니다.


메시아는 그 사명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사방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사방을 갖추어 가지고 평등한 입장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평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균등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평행이 원점이 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또한 이 중심과 평행을 이룰 수 있는 대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그 주체와 대상을 같은 자리에 연결시킬 수 있는 선이 그어져야만 수평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기에는 상대적 요인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남자 앞에 여자가 필요하도록 하셨고 여자 앞에 남자가 필요하도록 하셨는가그것은 둘을 세워서 그들이 완전히 하나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미래의 생활을 끌어들여 가지고 현실의 생활에서 서로 감지하고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그럴 수 있는 존재가 부부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행복을 노래하며 미래를 약속하고미래의 세계를 다짐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의 세계를 긍정해 나가는 부부가 있다면 어떠한 생활환경이라도 이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미래를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미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여기에 스스로 미래의 가치를 동반시켜 가지고 존중시할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을 갖추었다 할진대는 여기에서부터 행복의 터전이 이룩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가정만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여러분 앞에는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 편성이라는 엄청난 목표가 놓여있습니다.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종족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개인이면 개인가정이면 가정이 안팎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뜻을 같이하는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이 동반하시는 것이요또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만 인류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명사는 위대한 명사입니다물론 진리의 내용도 깊이가 있지만 참부모라는 말은 위대한 명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미래에 대한 확신과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또한현실무대에 있어서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원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말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35-274)


부모를 중심한 사랑의 가정을 이루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참부모 앞에 끌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자기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모면 부모남편이면 남편아내면 아내까지 끌고 가야 됩니다뿐만 아니라자기의 식구들도 끌고 가야 되며 가정에 있는 물질까지도 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그래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역사시대를 보게 될 때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중심삼고 나왔고신약시대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탕감을 위해 제물을 드리는 노정을 거쳐 나와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인간 대신 속죄의 제물로서 만물을 제물로 드리고 물질과 함께 동물을 제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한 단계 높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했고 사랑의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당시의 인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랑은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부모로부터 사람이 태어나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이러한 상대기준을 갖추지 못하면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 전체가 무엇으로 귀결되느냐 하면 물질과 자녀 그리고 부모,다시 말하면 가정의 기준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자녀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녀가 부모를 중심삼고 만물을 주관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고 할 때여러분 혼자서는 못 갑니다이러한 내용들을 전부 규합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입체적으로 볼 때역사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무엇에 해당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가정에 해당합니다가정은 역사적인 중심 터전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국가의 혁명관을 제시했고세계의 혁명관을 제시한 사람은 있었지만 가정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정의 혁명관을 제시한 주체세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혁명이 있기 전에 종족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종족의 혁명이 있기 전에 민족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민족의 혁명이 있기 전에 국가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국가의 혁명이 있기 전에 세계의 혁명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개체의 완성과 더불어 가정적인 혁명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과거의 것을 제기하지 않고서는 새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자기를 부정해야 되고자기 가정을 부정해야 되고자기의 물질을 부정해야 됩니다. (35-276)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릴 수 있는 사람


자기 혼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그래 가지고는 완성의 자리에 못 갑니다. 자기의 아들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질과도 하나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천주주의인 고로 가정을 중심삼고 상속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입적시켜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입적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대한민국은 우리가 입적할 나라가 아닙니다이런 운명에 처한 우리는 집시의 무리요부랑의 무리요유랑의 무리와 마찬가지 신세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의 토대를 잡아 가지고 하나의 주권을 세워야 합니다민족을 복귀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받으러 나가는 것은 상징적인 입적밖에 안 됩니다. 입적할 수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냐주권은 부모를 대신하고백성은 아들을 대신하고국토는 물질을 대신하여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한 가정은 한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갑이라는 사람이 개인으로서 지녀야 할 모든 요건을 다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가정은 한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통일교회는 가정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35-282)


어떻게 감사하는 생활을 할 것인가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감사하는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물질을 대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물질을 가지고 자기 아들딸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물질을 가지고 나라를 먹여 살리겠다세계를 먹여 살리겠다고 해야 합니다물질을 대했을 때 그 물질이 작더라도 세계를 위해 주고자 하며 정성들이는 사람과 그 물질을 붙들고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남겨 주고자 벌벌 떠는 사람을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선은 반드시 공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물질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정성들인 것이라면 그것으로 세계를 걸고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가진 것이 백 원밖에 없는 사람이 그 백 원에 하나님의 사랑을 걸고 들어가게 될 때는 그 백 원은 전체를 대신하고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치의 땅 짜박지라도 전부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하나님께로 가치 있게 돌려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렇게 받았으니 그렇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그러한 사람들의 세계가 되지 않으면 이 땅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하루 24시간의 생활권 내에서 내가 보고 듣고 했던 모든 일들은 무엇을 위해 보고 들은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 보고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느끼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느껴야 합니다우리가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천상세계의 생활과 연결시켜 생활해야 합니다천상세계의 생활을 못한 사람은 천상세계를 터득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효자는 부모의 사랑에 연결시켜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효자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며충신이란 자신의 생활 전부를 나라와 일체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충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의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세계의 것으로서 주고받아야 됩니다하나님을 위해 주어야 되고하나님을 위해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그런 입장에서 자기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자기를 위해 받고 싶다고 했을 것입니다타락한 인간은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고받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누구에게 한 가지 물건을 주었다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것만을 주고 싶으실 것이냐아니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주고 싶어서 마음 아파하는 경지에서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이냐이것이 문제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주면서도 남과 같이 입히지 못하고 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고 한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아들이 우는 것을 보면 저절로 눈물짓는 부모의 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됩니다.


내가 주고도 부끄러워하는 마음 자세받으면 부끄럽고 황공하여 어쩔 줄 모르는 이런 마음 자세를 늘 갖추고 사는 사람이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이러한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는 전개되는 것이며이러한 내용들을 통하여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에서 눈물지으며 감사해야 합니다.부족하고도 부족한 자신에게 바라지도 않았던 것을 갖추어 주신 하나님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받았기 때문에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그런 사람은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83)


반갑게 주고 고맙게 받는 생활


만일에 아담 해와가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을 감사히 받고 그렇게 높고 귀하신 분이 부끄러운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하면서 황공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자신들이 조심스럽게 행동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다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주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을 주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이러한 사람들이 사는 가정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하나님의 일을 상속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피 어린 투쟁의 노정을 거치면서 피 묻은 옷을 입고 나오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아버지께서는 고생하면서도 주고 싶고주고도 또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수난의 고빗길을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모양이야 어떻든 간에 반갑게 받고 고맙게 받는 그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언제나 반갑게 받고 언제나 고맙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요또 고맙게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이러한 전통을 세워 나간다면 통일교회는 세계 역사와 더불어 끊기지 않고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길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실에 있어서 미래를 긍정하는 마음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걸 알고 실천해 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86)*



천일국 훈독경 제3권 20일, 원문


감사의 생활


날짜 : 1970. 10. 25()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현시점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면서 더 좋을 수 있는 한날을 다짐하고더 가치 있는 내용을 찾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러한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때에는 낙심과 절망을 하게 되는 실상을 우리는 현실의 생활 속에서 보아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본래 머물러야 할 곳


그러면 사람이 본래 가야 할 곳이 어디이며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그곳은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는 어떠한 미래의 세계일 것입니다. 내일의 희망을 중심삼고 그런 생활무대 혹은 그런 심정의 터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현재 사람들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이 처했던 자리는 불행이라든가 탄식이라든가 원한이라든가 원망과 같은 감정을 갖고 사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는 부모의 품에 안겨 양육을 받는 자리이며 보호를 받는 자리였던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만일 불행의 요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불행해지기 전에 그 불행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요혹은 거기에 낙심될 요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낙심될 내용을 미리 방지해 주시는 것입니다그러한 자리가 본연의 아들딸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본래 아담도 불행하지 않은 입장이요해와도 불행하지 않은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환경이 불행하지 않았는데왜 타락을 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의 우리 인간을 볼 때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르고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 다릅니다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있어서 분열이라든가상충이라든가고충 같은 것이 발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두 사람 혹은 열 사람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똑같은 입장에서 나가게 될 때는 투쟁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분열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계셔야 되고 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그러나 아담 해와가 완성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까지의 성장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성장과정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아담 해와는 현시점즉 현재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입장에 있었으나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현재의 입장을 넘어서 미래의 입장까지 전체를 대하여 사랑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현실의 입장은 제한된 입장이요,자기 자신을 위하는 입장입니다아담과 해와는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지향하고 바라는 목적이 무엇인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중심삼고 현실적인 내용을 관찰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체만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생애를 지낸 후의 역사적인 미래를 마음에 두고 아담 해와를 사랑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 대하시는 그 사실만으로 흡족했을는지 모르지만하나님은 그보다도 더 높고 더 큰 미래의 것을 중심삼고 현실에서 사랑해 오셨던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을 아담 해와는 몰랐던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느꼈더라면 그들은 타락하려야 타락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사랑인지를 모르고현실의 환경에서 부딪쳐 오는 사연과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63)


인간이 낙망하고 절망하게 된 기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자기가 처해 있는 생활 환경 속에서 낙심하고 낙망하는 그러한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실정을 많이 보게 됩니다그러나 이와 같은 오늘의 시련 고통이 오늘의 시련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터전을 개척하여 마련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인 것을 알게 된다면 현실 생활에서 낙망은 하지 않을 것이요또한 절망이나 자포자기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자기의 소망이 공고화되고 내일의 생명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현실의 가치가 그 생활권 내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그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의 모든 전체를 낙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루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그러한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때와 마찬가지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보호하시고보다 더 영원한 가치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대하셨습니다이와 같은 방대한 가치의 깊은 내용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아담 해와는 그 날 그 날의 입장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느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오늘날 타락한 조상의 후손들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이 낙망하고 절망하는 그 본성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하면 자기를 위주로 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것과는 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몸부림치고 투쟁해 나가지만 자기 스스로 이것을 지탱하지 못하게 될 때는 여기에 낙망이 있고 절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자기를 중심삼고 내일의 희망을 망각하는 자리즉 자기를 긍정하고 내일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자기를 부정하고 내일을 긍정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미래를 긍정하고 오늘을 부정할 수 있는 혁명의 기수가 되지 않고는 가치가 없는 인생이 될 것이며인생의 모든 면에서 비애의 탈을 벗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이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는 입장과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이 두 입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이 무엇보다도 더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권 내에서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 자체를 찾아 가지고는 아담 해와가 저지른 그 한스러운 타락으로 말미암은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지금까지 고난과 시련의 길을 쉬지 않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였던 선조들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기 위한 것입니다이것이 종교가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65)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치관 확립의 필요성


오늘날 우리는 이 두 틈바구니에서 하루의 생활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뒤넘이침과 동시에 하루 하루가 뒤넘이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뒤넘이침으로써 오늘과 내일이 판가리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하루를 지내는 데 있어서 오늘의 시련을 내일로 연속시켜서는 안됩니다내일의 새로운 긍정을 추구하고 이것을 내일의 새로운 긍정으로 연결할 수 있는 터전을 오늘에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러지 않고는 그 내일이 나에게 있어서 행복의 터전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이러한 경계선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며 나가는 길이 신앙자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부정하고 하늘을 긍정해 나가는 것이 신앙길입니다그러면 미래를 긍정하고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느냐 하면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그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마음은 가치적인 방향을 추구하고 나왔지만그 추구하는 방향에 있어서 주체적 대상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스스로 내일의 약속을 다짐하기 위한 새로운 인연이 필요하고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치관의 확립이 필요한 것입니다그 확립된 가치의 내용은 현실의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철저한 주체적인 내용이어야 합니다그러지 않고는 미래의 세계를 중심삼고 현실적인 관념과 현실적인 생활무대를 부정하고 극복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신앙노정을 보면 맨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아주 잘 합니다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그 환경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더한층 입체성을 갖추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합니다처음에는 강하게 출발했지만 끝에 가서는 약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이것은 미래관의 확립이 덜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우리가 현재 생활하는 그 생활관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인보다는 가정이 가치적이요가정보다는 종족이 가치적이요종족보다는 민족이 가치적이요민족보다는 국가가 가치적이요국가보다는 세계가 가치적이요세계보다는 천주가 가치적이요천주보다는 하나님이 가치적입니다하나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가치적이라는 것입니다. (35-268)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


이 땅 위에는 풍토가 다르고전통이 다르고역사적 배경이 서로 다른 여러 유형의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하나로 얽어매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얽어맬 것이냐권세나 주권 가지고는 안됩니다세상의 어떤 물질을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이것을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본연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가최고의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최고의 분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의 출발도 최고의 자리에서부터 해야 되고 그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곳도 최고의 자리여야 합니다그 사랑은 천주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의 화신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그 사랑에는 개인과 종족종족과 민족민족과 국가국가와 세계천주 혹은 하나님까지 연결될 수 있는 종적인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그 사랑은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하나님까지 종적인 인연을 맺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원이 되는 동시에 횡적으로 세계까지 넓혀서 세계 인류를 형제의 인연으로 묶을 수 있고역사과정에 나타난 모든 부정적 여건을 영원히 부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 제시하는 사랑은 무엇을 중심삼은 것이냐그 사랑은 개인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그 사랑은 가정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종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민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또는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사랑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세계를 초월하여 천주를 중심삼은 것이며 천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입니다또한하나님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세계와 바꿀 수 있느냐 할 때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자체와 바꿀 수 있느냐고 할 때 그것 또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그 사랑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 자체도 희생해 나온 것입니다하나님 자신도 하나님 자체에 있는 그 사랑을 위해 희생해 나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 자체와도 바꿀 수 없는 근본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이 사랑만이 우리의 골수를 통할 수 있고 우리의 혈육을 관리할 수 있는 근본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의 정서적인 생활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의 역사심정의 세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왜 심정의 역사냐 하면 종적인 심정의 세계를 횡적인 심정의 세계로 전개하기 때문입니다.이것이 통일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5-270)


종적인 사랑을 횡적으로 전개하려면


그러면 종적인 사랑을 어떻게 횡적으로 전개하느냐종적인 사랑을 횡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의식하지 않아야 됩니다이러한 자리가 참부모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종횡적인 사랑을 귀결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기점이 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할진대이것은 우리 인류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것으로서 인류가 종적인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이요횡적인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완성의 기준 앞에서 관계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당당히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현실 세계에서 여러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념이 있으면 그 이념이 얼마나 높을 것이냐그것은 여러분의 일생과 더불어 끝납니다그 이념은 여러분이 어차피 부정해야 할 권내에서 가진 이념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생과 더불어 끝나는 것입니다그것은 또한 자기 후손에게 상속해 주어서는 안됩니다내 일대(一代)에 청산짓고 가야 할 이념적 요건이라는 것입니다이것을 청산짓기 위해 나 스스로 오늘의 생활관념을 뒤넘이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관념적으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이 사랑을 현실의 생활무대에 적용해 가지고 유발시켜 나가야 됩니다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하나님의 무한하신 가치와 현실적인 하나의 개체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그 세계를 찾아 나가는 것이 복귀의 길이지만 개성진리체를 초월하여서는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큰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그것은 자신의 말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내가 말하는 것이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되고내가 보고 느끼는 것도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나 혼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깊은 경지의 도의 길을 가게 될 때 혼자 정성을 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대상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게 될 때는 혼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아무리 도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통달해 가지고 그 권한이 천상세계에 알려진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그가 하나님과는 종적으로 관계를 맺었을지 모르지만 횡적으로 관계될 수 있는 상대기반을 갖지 않으면 종적인 기준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에 비춰 볼 때하나님이 주체적이고 종적인 중심의 자리에 계시기는 하지만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존재물은 자기 자체만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도 현실 속에서만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미래와 연결될 수 있는 현실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보다 가치적인 미래세계에 포괄되고 흡수될 수 있는 현재에서 오늘의 생활의 가치를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래야 미래의 세계관을 세울 수 있습니다이런 자리가 우리 생활의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35-272)


위대한 명사 참부모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는 우리 인간은 중심을 갖지 못했습니다타락한 자리에 있는 인간 혼자서는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겠다는 것이 재림사상메시아 사상입니다.


메시아는 이 땅에 와 가지고 그 사명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사방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사방을 갖추어 가지고 평등한 입장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평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그렇지 않고 그 힘이 기울어지게 되면 평행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적게 주는 것은 올라가고 많이 주는 것은 내려가기 때문입니다평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영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균등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평행이 원점이 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또한 이 중심과 평행을 이룰 수 있는 대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그 주체와 대상을 같은 자리에 연결시킬 수 있는 선이 그어져야만 수평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기에는 상대적 요인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남자 앞에 여자가 필요하도록 하셨고 여자 앞에 남자가 필요하도록 하셨는가그것은 한 사람을 세워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둘을 세워서 그들이 완전히 하나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그 둘이 주고받는 그 생활은 지극히 소망적인 생활입니다여기에 미래의 생활을 끌어들여 가지고 현실의 생활에서 서로 감지하고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그럴 수 있는 존재가 부부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행복을 노래하며 미래를 약속하고미래의 세계를 다짐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의 세계를 긍정해 나가는 부부가 있다면 어떠한 생활환경이라도 이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실의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것이 미래의 세계 앞에 지장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것은 미래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될 때는 어떠한 현실의 어려움이라도 이들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미래를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미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여기에 스스로 미래의 가치를 동반시켜 가지고 존중시할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을 갖추었다 할진대는 여기에서부터 행복의 터전이 이룩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가정만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여러분 앞에는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 편성이라는 엄청난 목표가 놓여있습니다.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종족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하나되지 못하면 종족을 기피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오늘날까지 우리 인간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남이면 남동이면 동에서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고 지금까지 몸부림쳐 나왔다는 것입니다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개인이면 개인가정이면 가정이 안팎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뜻을 같이하는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이 동반하시는 것이요또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만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후손들이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로 나오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와 대표적인 기준이 심정을 중심삼고 가정 앞에 결속되는 가치적인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그렇게 결속되어 만민이 공통적으로 흠모할 수 있는 대상이 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야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것이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명사는 위대한 명사입니다물론 진리의 내용도 깊이가 있지만 참부모라는 말은 위대한 명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미래에의 출발이 보장되는 것입니다미래에 대한 확신과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또한현실무대에 있어서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원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말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35-274)


부모를 중심한 사랑의 가정을 이루라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하나되어야 합니다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서는 안됩니다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참부모를 끌어다가 하나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참부모 앞에 끌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끌려가는 데는 자기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모면 부모남편이면 남편아내면 아내까지 끌고 가야 됩니다뿐만 아니라자기의 식구들도 끌고 가야 되며 가정에 있는 물질까지도 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그래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역사시대를 보게 될 때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중심삼고 나왔고신약시대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말했지만 인간들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탕감을 위해 제물을 드렸습니다제물이 없어 가지고는 안되었습니다.이렇듯제물을 드리는 노정을 거쳐 나와야 했습니다여기서 제물이 뭐냐 하면 희생물인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인간 대신 속죄의 제물로서 만물을 제물로 드리고 물질과 함께 동물을 제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이러한 때가 구약시대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한 단계 높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했습니다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은 소개하지 못하고 권능의 하나님능력의 하나님심판의 하나님만을 소개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을 소개했습니다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했고 사랑의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당시의 인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부모를 중심삼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사랑은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부모로부터 사람이 태어나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이러한 상대기준을 갖추지 못하면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역사 전체가 무엇으로 귀결되느냐 하면 물질과 자녀 그리고 부모다시 말하면 가정의 기준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자녀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녀가 부모를 중심삼고 만물을 주관해야 됩니다아담 해와도 만물을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전부 다 한꺼번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고 할 때여러분 혼자서는 못 갑니다이러한 내용들을 전부 규합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이렇게 규합한 것을 꼭 눌러 놓으면 한 점이 됩니다꼭 압축시켜 놓으면 한 점이 된다는 것입니다이 한 점이 둘로 나누어지면 여기에서 상충이 벌어집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입체적으로 볼 때역사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무엇에 해당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가정에 해당합니다가정은 역사적인 중심 터전입니다.


미래의 세계 앞에 소망을 제시하기 위한 모든 혁명의 목표는 국가가 아닙니다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이러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국가의 혁명관을 제시했고세계의 혁명관을 제시한 사람은 있었지만 가정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정의 혁명관을 제시한 주체세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가정의 혁명이 있기 전에 종족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종족의 혁명이 있기 전에 민족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민족의 혁명이 있기 전에 국가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국가의 혁명이 있기 전에 세계의 혁명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개체의 완성과 더불어 가정적인 혁명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기존의 것을 버리고 파탄시키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과거의 것을 제기하지 않고서는 새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자기를 부정해야 되고자기 가정을 부정해야 되고자기의 물질을 부정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됩니다. (35-276)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릴 수 있는 사람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자기 혼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그래 가지고는 완성의 자리에 못 갑니다보람된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아무리 자유세계와 천지가 기억할 수 있는 은사의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 가지고는 안됩니다자기의 아들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질과도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주의 천주주의인고로 가정을 중심삼고 상속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입적시켜야 됩니다. 그런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입적할 나라가 없기 때문에 입적을 못 하는 것입니다그럴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대한민국은 우리가 입적할 나라가 아닙니다이런 운명에 처한 우리는 집시의 무리요부랑의 무리요유랑의 무리와 마찬가지 신세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의 토대를 잡아 가지고 하나의 주권을 세워야 합니다수많은 고난의 권내에서 하나의 보람 있는 가치를 중심삼고 민족을 복귀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앞으로 입적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축복받으러 나가는 것은 입적하는 것이 아닙니다이것은 상징적인 입적밖에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입적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그 나라가 어떤 나라냐주권은 부모를 대신하고백성은 아들을 대신하고국토는 물질을 대신하여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주권이 있어야 되고백성이 있어야 되고국토가 있어야 됩니다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내 것이냐아버지의 것이냐 하는 이 관계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생활하면서 경계선에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내 것이냐아버지의 것이냐공적인 것이냐사적인 것이냐이에 대한 재교육을 이제부터 전개하려니 사탄이 먼저 역사하는 것입니다대한민국 전체를 위하여 무슨 문제를 제시했다가 이것이 잘못되면 이 나라는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한 가정은 한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갑이라는 사람이 개인으로서 지녀야 할 모든 요건을 다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가정은 한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통일교회는 가정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35-282)


어떻게 감사하는 생활을 할 것인가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여러분이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어떻게 감사하느냐자식이 많은 사람을 보게 되면그 사람이 고생이 많다고 하겠지만 그 일면에는 자식이 없는 사람이 느껴 보지 못하는 그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자식을 길러 본 사람은 그것을 알 것입니다자식을 길러 본 사람과 자식을 길러 보지 못한 사람을 두고 볼 때자식을 길러 본 사람은 자기 자식들이 아무리 복잡하게 들썩거리더라도 삶의 보람을 느끼지만 자식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을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자식들로 말미암아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그 처하고 있는 환경이 복잡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거기에는 내일의 소망이 접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남이 갖지 못한 아들딸이 많으면 많을수록 각 분야에서 사방성을 갖추어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어려운 환경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감사하는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물질을 대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물질을 가지고 자기 아들딸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물질을 가지고 나라를 먹여 살리겠다세계를 먹여 살리겠다고 해야 합니다물질을 대했을 때 그 물질이 작더라도 세계를 위해 주고자 하며 정성들이는 사람과 그 물질을 붙들고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남겨 주고자 벌벌 떠는 사람을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선은 반드시 공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물질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정성들인 것이라면 그것으로 세계를 걸고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가진 것이 백 원밖에 없는 사람이 그 백 원에 하나님의 사랑을 걸고 들어가게 될 때는 그 백 원은 전체를 대신하고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치의 땅 짜박지라도 이것을 일컬어 내 재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전부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다시 돌려 드려야 됩니다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하나님께로 가치 있게 돌려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렇게 할 때 역사는 영글어 나가는 것입니다그렇게 받았으니 그렇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그러한 사람들의 세계가 되지 않으면 이 땅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하루 24시간의 생활권 내에서 내가 보고 듣고 했던 모든 일들은 무엇을 위해 보고 들은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하나님을 위해 보고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느끼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느껴야 합니다우리가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천상세계의 생활과 연결시켜 생활해야 합니다천상세계의 생활을 못한 사람은 천상세계를 터득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효자는 부모의 사랑에 연결시켜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효자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며충신이란 자신의 생활 전부를 나라와 일체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충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의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세계의 것으로서 주고받아야 됩니다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주느냐누구를 위해 받느냐하나님을 위해 주어야 되고하나님을 위해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받았으니 하나님을 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위해 주었으니 자기를 위해 받겠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그런 입장에서 자기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자기를 위해 받고 싶다고 했을 것입니다타락한 인간은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중심삼고 주고받아야 되느냐하나님을 중심삼고 주고받아야 되겠습니다. 사적인 것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을 주고받아야 되겠습니다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누구에게 한 가지 물건을 주었다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것만을 주고 싶으실 것이냐아니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주고 싶어서 마음 아파하는 경지에서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이냐이것이 문제입니다.


부모는 주면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오히려 부끄러워합니다부모는 자식에게 주면서도 남과 같이 입히지 못하고 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고 한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아들이 우는 것을 보면 저절로 눈물짓는 부모의 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됩니다. 그것은 공식인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가진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은 훌륭한 아들이 될 것입니다그 아들은 공적으로 태어났으니 세계를 위해 주고받으며 살아야 합니다내가 주고도 부끄러워하는 마음 자세받으면 부끄럽고 황공하여 어쩔 줄 모르는 이런 마음 자세를 늘 갖추고 사는 사람이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이러한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는 전개되는 것이며이러한 내용들을 통하여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에서 눈물지으며 감사해야 합니다부족하고도 부족한 자신에게 바라지도 않았던 것을 갖추어 주신 하나님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받았기 때문에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그런 사람은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83)


반갑게 주고 고맙게 받는 생활


만일에 아담 해와가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을 감사히 받고 그렇게 높고 귀하신 분이 부끄러운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하면서 황공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자신들이 조심스럽게 행동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다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주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을 주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이러한 사람들이 사는 가정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공적인 문제와 사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공적인 터전에 연결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때가 문제이고 그 기간이 문제일 뿐이지그런 사람은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하나님의 일을 상속받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이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뜻길을 가는 사람은 묵묵히 그냥 갈 수 없습니다아버지의 그 음성 가운데는 숱한 수난의 고빗길의 한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피 어린 투쟁의 노정을 거치면서 피 묻은 옷을 입고 나오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아버지께서는 고생하면서도 주고 싶고,주고도 또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수난의 고빗길을 넘어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주고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받을 때는 고맙게 받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그 모양이야 어떻든 간에 반갑게 받고 고맙게 받는 그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우리들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통일교회 교인이 잘났다고 자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언제나 반갑게 받고 언제나 고맙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요또 고맙게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이러한 전통을 세워 나간다면 통일교회는 세계 역사와 더불어 끊기지 않고 영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우리가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길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사문제를 중심삼고 타락한 것이 기원이 되어 이렇게 곡절의 길을 엮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해야 합니다현실에 있어서 미래를 긍정하는 마음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이걸 알고 실천해 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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