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생명 (천일국 훈독경 제3권 12 일)

훈독왕 | 20190910085520

천일국 훈독경 제3권 1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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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생명 (훈독본) 


날짜 : 1970. 6. 7(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그 타락이 어떤 내용을 빚어냈으며, 그 인연이 우리와 어떠한 관계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 그 남겨진 자체는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세계까지 모두 걸리는 크나큰 문제를 형성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즉 타락권이 우리의 생활권, 우리의 세계 앞에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고충


 타락권을 벗어나려는 입장에 설 때, 미래의 소망을 향해서 현실을 타개해 나가려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나타나는 모든 환경은 그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 앞에 편이 될 수 없고, 협조할 수 없고, 위로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 할 인생 행로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편적으로 고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생사의 모든 판정을 결정하고도 남을 수 있는 위협과 절박감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고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타락된 이 세계,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 가운데 사로잡힌 이 천지, 방향도 없고 갈 표준도 없는 인류의 행로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가르쳐 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안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지금까지 이 둘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과 서러움과 슬픔과 고충이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고충이 얼마나 컸을 것이냐? 고통과 억울함과 공포가 있었다면 그것 또한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공포와 억울함과 슬픔은 아무 근거도 없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주체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방향을 제시하며 명령하게 될 때, 하나님은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승리할 줄 알고, 기필코 갈 줄 알고 우리에게 명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귀섭리도상에서 뜻을 알고 따라나온 수많은 의인들은 출발과 더불어 실패의 인연을 거쳐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고통을 느꼈으며, 얼마나 더 외로움을 느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가라고 명령했는데 그 사람이 그 길을 못 갔을 때에는 세 사람을 동원해야 하고, 그 세 사람마저 못 갈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운명입니다. 한번 하려고 했던 것을 실패하게 되면 또 해야 되고 그래도 실패하면 또다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은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하늘이 또 명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거쳐 가면 갈수록, 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역사시대의 수많은 선지들 앞에 많이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절대적인 위치에서 절대를 향하여 명령할 수 있는 때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재차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령을 인간이 실천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루어야 합니다. 또 그것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이지 인간의 것으로 남아질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인간과 상관하기 위해서 또다시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이 다리를 놓기 위해 하나님은 개척자의 행로를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1-303)

 

사망의 물결을 극복하는 문제와 기도


한 사람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그 한 사람으로서 사명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책임지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느 한때 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묵묵히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거듭해 역사를 끌고 나오십니다.


여러분은 고독한 항해를 떠나는 일엽편주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기에 각자의 환경에 따라 노도도 만날 것이고 폭풍도 만날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이 서 있느냐나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다가올 것이냐? 내가 그 위협을 제거하고 일어설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서 이것을 극복하고 돌파하고도 남을 수 있는 모습, 제삼자의 입장에서 찬양할 수 있는 그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해 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한번 믿었으면 그 누가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결심하고 한번 말한 것은 절대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신앙과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실천해야 목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앞을 바라보면서 여유 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최후의 순간을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촌각 중의 촌각을 다투는 자리에서 생명을 걸고 나서는 모범적인 실천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어려운 고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면 가능성마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이 틀림없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의 기도는 습관적으로 경을 읽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판정짓고 판가리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내 생명의 맥박이 연장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해결의 요점으로 제시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1-306)


영원한 생명의 발판이 되는 것


이 땅 위에 왔다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최후의 자리에서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영상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그 가운데 참이 있었다. 내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을 남겼다.”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비록 이 땅에 왔다가 가더라도 보람 있는 한때를 남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면 회상할수록 자기 얼굴에 환희가 넘치며 자기의 모든 문제가 이상에 잠길 수 있다면 죽음의 공포도 그에게는 위로의 한 장면으로 장식될 것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을 남겼다면 그의 과거도 죽지 않은 것이요, 현실도 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과거를 지닌 사람은 반드시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요, 세계 만민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남긴 사람입니다.


생애노정에서 자기를 위해 죽음의 자리까지 가는 것보다 형제면 형제, 친족이면 친족, 남이면 남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부딪친 때가 있었다면 그러한 사실들이 최후의 운명의 자리에서 그의 마음 선상에 영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선하였느냐, 참되었느냐,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참과 선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남에게서 결과를 맺게 하든가, 남에 의해서 시작되어 나에게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어야만 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생활이 주는 생활이었으면 죽음길에도 공포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고 남을 위해 희생했으며 참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눈물도 남으로 말미암아 흘렸고, 내 생명도 남으로 말미암아 투입했고, 내 소원도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내 맥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생명력을 끌어 모아 남을 위해서 투입했다고 할진대는 그 과거는 빛날 수 있는 과거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가는 모습을 도표로 그려 보게 될 때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일생 행로를 계획하면서 높고 낮음을 예측할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이란 자아를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는 생애를 반평생 이상 남겼으면 그것이 자기를 절반 이상 꽁꽁 얽어맬 것입니다. 이러한 생애를 남겼다면 최후의 운명길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자리에 설 것이 아니겠습니까? (31-308)


이 모순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남을 위해서 가는 길이 쉬운 길이냐? 자기를 위해 가는 길도 쉽지 않거늘 하물며 남을 위해 가는 길이 쉽겠습니까? 그러기에 오늘날 타락인간이 그냥 그대로 자기를 위해 가는 생활을 해서는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혁명을 해야 됩니다. 이 길은 손을 설레설레 흔들고 몸을 비틀면서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고통의 길이요, 슬픔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처한 타락권 내의 환경은 모순된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순된 환경을 타개해야 합니다. 그 환경에 돌입하라는 진격 명령을 받을 수 있는 돌격대의 사명과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 명령을 받아 움직여야 할 우리들의 인생행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성현의 도리는 자기 개인에서 떠나서 사는 생활, 자기의 종족을 위해 사는 생활에서 떠나 사는 생활, 자기의 국가를 위해 사는 생활에서 떠나 사는 생활, 더 나아가서는 타락된 이 세계를 떠나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면 떠나서는 어디에 가서 살 것이냐? 떠나 가지고는 살 곳이 없습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선한 세계를 이루어 선한 세계의 주인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부르고 참을 고대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이 세상과 타협하고 거래해 가지고는 안됩니다. 세상의 경계선을 돌파해 가지고 넘어선 경지에서부터 그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역사시대를 두고 볼 때, 어느 한 때 그 경계선을 돌파한 때가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역사는 아직까지도 밤중이요, 자정을 넘기지 못한 권내에서 미명을 바라보고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비애와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헤아려 볼 때, 인간들은 가야 할 방향을 몰랐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스스로 몸부림치는 것이 개인에게서 그쳐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미쳐지고 세계에까지 미쳐지는 것입니다.이러한 싸움의 역사를 종결지어야 할 운명을 남기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갈림길에 있는 우리들은 이 갈림길을 타파하고 넘어서 고귀한 생명을 흠모하기를 원하는 내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이 욕망을 이루려면 힘이 들기 때문에 인생을 고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뜻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인연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이니, 종교니, 절대자니, 하나님이니 하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역사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역사시대를 붙들고 뒤넘이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면 그 종교는 최후의 운명과 더불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짓고 가야 할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1-310)


자기 초월의 경지를 체험해야


그러면 여러분은 개인을 초월했느냐, 가정을 초월했느냐, 사회를 초월했느냐, 나라를 초월했느냐, 세계를 초월했느냐?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심각하리만큼 고독해집니다. 누구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처럼 나만이 살아서 결단하고 해결지어야 할 사망의 구렁텅이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해방될 수 있는 한 순간을 어떻게 생활권 내에서 모색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 방법을 찾기 위하여 연구하며 찾아 나서는 길이 도의 길인 것입니다. 그 길을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리의 고개를 넘는 걸음일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생애의 비참함을 알고 생애의 모든 사연과 고통의 짐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 자리는 몸부림치는 내정적인 사무침이 있어야 되는 자리입니다. 또한, 그 사무침과 더불어 하나님이시여, 아버지이시여!” 하는 부르짖음이 여러분의 생명선을 넘고 새로운 세계에 가서 맞부딪치는 경각에 다다랐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면 참된 종교의 문이 팔방으로 열려졌다 하더라도 그 문을 통할 수 없습니다.  문을 통해 가려면 그 이상의 절박한 생명의 심정을 가지고서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요한 밤 고요한 순간에 자기 맥박 소리만이 들리는 것을 느끼게 될  맥박이 자기의 온 세포의 생명력을 움직이고 격려하는 것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해야 됩니다. 나아가서는,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무친 심정으로 쏘아진 포탄같이 한 표적을 향하여 무한히 달려가 자기의 마음에 생명의 인연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경지, 떨어지면 무한히 떨어지고 끌려가면 한없이 끌려가서 타락한 세계와 부딪쳐 그 세계를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는 이 사망권을 격파시키고 초월할 수 있는 승리의 새로운 세계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무한히 고요한 경지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무한한 생명력을 갖고 하나의 대상을 찾아 들어가야만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한히 가다가 그것이 없다고 느껴지게 되면 천지의 어떠한 것보다도 큰 가치의 존재에 부딪쳐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없어지더라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게 될 때, 지금까지 살아오던 내가 아닌 다른 나로서 그 실체가 거기에서 소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는 오늘날의 이 복잡다단하고 험악한 사회 환경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밀실에 들어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31-312)


기도의 효력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3일 동안 무엇을 했느냐? 뼛골에 사무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아버지!” 하고 부르면 천 년사를 넘나든 아버지를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버지의 심정을 내 마음에 몽땅 움켜쥘 수 있는 순간이 아니겠느냐? 거기에는 잃었던 아버지를 찾은 그 마음, 그 태도가 최후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리로 나가는 데 있어서는 절대세계와 사망세계가 교차되는 점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지에 그냥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그 교차점에 가 가지고 거기에서부터 직행할 수 있는 하나의 길과 접선해야 하며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하나님의 종적인 슬픈 심정이 있으면 그것을 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부활의 환희를 느낄 수 있고 해방의 한 순간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이 천국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천국에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인연될 줄이라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살고 있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와 정성입니다. 내가 스스로 부활된 자리에 섰느냐? 서지 못했다면 간절히 구할 수 있는 자리에라도 섰느냐? 신앙을 하면서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생사의 기준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주위로부터 공포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이 타락한 세계에서는 정성의 탑을 쌓아 놓으면 사탄은 번번이 그것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쉬지 않고 대적해 나오는 중간 입장, 사탄과 대결하고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면서 이것을 쌓아 올려야 할 사명을 짊어진 우리들인데 언제 쉴 새가 있겠어요? (31-316)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을 위해 죽는 길이 있다면 죽어도 행복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당하면서 느꼈던 안팎의 시련을 뒤돌아보게 될 때,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 가치 있는 자가 된다면 죽음길이 문제가 아닙니다.

천국길은 그런 길로서 쭉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해야 합니다. 절대와 통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리는 단 하나입니다.


완성하면 기도가 필요 없다고들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완성의 기준은 국가를 복귀하는 것입니다개인 완성을 하면 개인으로는 설 수가 있지만 가정의 사탄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가정이 완성하면 종족 사탄이 남아 있고, 종족 완성을 이루면 민족 사탄이 남아 있고, 민족 완성을 이루면 국가적인 사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얼마나 절박한 때인지 모를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첨단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그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한 때인 것을 절감했다면, 그 다음엔 멍청하게 세월을 보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31-318)


통일교인들이 세워야 할 신앙 기준


완성의 자리에 서려면 나라를 완전히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를 어떻게 통일시키느냐를 생각하며 그때를 위해 하나님과 담판하면서 기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이 기성교인과 다른 것은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종적인 역사를 중심삼고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결사적인 기도를 해 나왔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갈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조금만 노력하면, 일주일만 그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정성을 들이면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같이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아야 됩니다. 기도하면 직접 지도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머니가 기도해서 그런 계시를 받는다면 그 어머니를 위주해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모든 식구가 어머니에게 기도 가운데서 받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그들에게는 그 소식이 제일 기쁜 소식입니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가정에 대한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을 대하게 되면 선생님이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에 안 되면 3, 3일에 안 되면 7, 7일에 안 되면 3개월, 3개월에 안 되면 3년으로 넘어갑니다. 3년에도 안 되면 7년으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기도 가운데 있었던 것을 감정해서 불화가 오기 전에 이를 막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좋은 일이 생기더라. 이럴 때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 하고 다 아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틀림없이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때 좋은 길로 가는지, 나쁜 길로 가는지 그것을 알아 가지고 갈 길을 가려서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기도나 몽시 가운데서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직접 받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산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예수님 때보다 더한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세계가 통일교회와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망권을 지나가려면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데에는 한 순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24시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로운 시대에 그러한 체험을 하지 못하고 직접 모시면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본래 그런 기준과 경험이 있어서 그런 내용에 전부 다 결부되어 있어야 합니다. 원래는 선생님과 영적으로 접붙여 가지고 하나되어야만 축복대상자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1-330)


하나되어 끊임없이 기도하라


선생님은 나를 위해서는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아들딸이 있지요? 지금 여러분은 고생을 하지만 그것은 미래에 여러분을 대신할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한 것입니다.오늘날 여러분이 고생하고 희생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한 것으로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해서 여러분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여러분을 아무리 때려 몰더라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이게 정도(正道)입니다. 여러분이 싫다고 꼬리를 빼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아들딸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가 보라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한 주도권은 개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권내에 들어가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천 년 동안 가정적 기반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교회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 환경을 조정하고 절충하여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 여러분에게는 끊임없는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1-335)*


 &&&& 천일국 훈독경 제3권 12일, 원문 &&&&


기도와 생명


날짜 : 1970. 6. 7()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그 중에서도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그 타락이 어떤 내용을 빚어냈으며그 인연이 우리와 어떠한 관계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 남겨진 자체는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세계까지 모두 걸리는 크나큰 문제를 형성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즉 타락권이 우리의 생활권우리의 세계 앞에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고충


 


 타락한 세계를 거쳐 나가야 하는 우리들은 지극히 불쌍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타락권을 벗어나려는 입장에 설 때미래의 소망을 향해서 현실을 타개해 나가려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나타나는 모든 환경은 그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 앞에 편이 될 수 없고협조할 수 없고위로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 할 인생 행로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편적으로 고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슬픈 바다요외로운 바다요처량한 바다요무서운 바다입니다생사의 모든 판정을 결정하고도 남을 수 있는 위협과 절박감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고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타락된 이 세계칠흑같이 어두운 암흑 가운데 사로잡힌 이 천지방향도 없고 갈 표준도 없는 인류의 행로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인간이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가르쳐 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안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지금까지 이 둘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과 서러움과 슬픔과 고충이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고충이 얼마나 컸을 것이냐? 여러분의 생애를 다 지내고도 느끼려야 느낄 수 없는 고충여러분의 고충의 한계선 이상의 고충이 있었을 것입니다고통과 억울함과 공포가 있었다면 그것 또한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 공포와 억울함과 슬픔은 아무 근거도 없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그러면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주체가 누구냐그 주체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인간의 부모로서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해 나왔던 것입니다그러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방향을 제시하며 명령하게 될 때하나님은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승리할 줄 알고기필코 갈 줄 알고 우리에게 명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이 되었느냐이것을 생각해 볼 때복귀섭리도상에서 뜻을 알고 따라나온 수많은 의인들은 출발과 더불어 실패의 인연을 거쳐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그러니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고통을 느꼈으며얼마나 더 외로움을 느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우리들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가라고 명령했는데 그 사람이 그 길을 못 갔을 때에는 세 사람을 동원해야 하고그 세 사람마저 못 갈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필연적인 운명입니다한번 하려고 했던 것을 실패하게 되면 또 해야 되고 그래도 실패하면 또다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그 명령은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실패했다고 해서 하늘이 또 명령할 수 없습니다이것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거쳐 가면 갈수록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역사시대의 수많은 선지들 앞에 많이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절대적인 위치에서 절대를 향하여 명령할 수 있는 때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하나님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재차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그러나 명령을 인간이 실천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루어야 합니다또 그것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이지 인간의 것으로 남아질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인간과 상관하기 위해서 또다시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이 다리를 놓기 위해 하나님은 개척자의 행로를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1-303)


 


사망의 물결을 극복하는 문제와 기도


 


한 사람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그 한 사람으로서 사명은 끝나지 않습니다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책임지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느 한때 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묵묵히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거듭해 역사를 끌고 나오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역사시대의 어려운 환경공포의 환경을 타파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있었느냐그러한 참다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참은 둘일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참을 위해 산다고 하였고 참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그들이 위하는 것이 참이 못 되었고 그리워한 것이 참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그런 자리에서 역사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고독한 항해를 떠나는 일엽편주와 같은 입장입니다그러기에 각자의 환경에 따라 노도도 만날 것이고 폭풍도 만날 것입니다그런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이 서 있느냐? 어떤 항구를 향하여 간다 하는 목적관이 뚜렷하냐그 환경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신념다시 말하면 몰아치는 모든 슬픔의 여건들모든 사망의 여건들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과 신념을 갖고 있느냐?


나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다가올 것이냐내가 그 위협을 제거하고 일어설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서 이것을 극복하고 돌파하고도 남을 수 있는 모습제삼자의 입장에서 찬양할 수 있는 그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해 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한번 믿었으면 그 누가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그리고 한번 결심하고 한번 말한 것은 절대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는 신앙세계가 인류 앞에 제시했던 내용인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과 절대적인 실천으로서만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만일 가는 과정에서 절망하게 되면 목적의 세계소망의 때를 맞지 못할 것입니다다가오는 환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소망의 한때를 맞지 못하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앙과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실천해야 목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이것만이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앞을 바라보면서 여유 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생명의 최후의 순간을 맞느냐그렇지 않느냐 하는 촌각 중의 촌각을 다투는 자리에서 생명을 걸고 나서는 모범적인 실천이어야 합니다그래야 그 어려운 고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면 가능성마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이런 염려의 역사노정을 우리 생애에 남기고 있음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이 틀림없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또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여기서의 기도는 습관적으로 경을 읽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판정짓고 판가리하기 위한 기도입니다내 생명의 맥박이 연장되느냐안 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해결의 요점으로 제시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순간을 걸어 놓고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담판기도를 해보았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각자가 남겨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31-306)


 


영원한 생명의 발판이 되는 것


 


이 땅 위에 왔다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최후의 자리에서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영상으로 지나갈 것입니다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 것입니다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생명체를 가지고 지금까지 인연된 환경과 남겨 놓은 사연 등 지난날의 모든 것이 일생의 최후의 순간에 자기의 마음에 영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참이 있었다내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을 남겼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비록 이 땅에 왔다가 가더라도 보람 있는 한때를 남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왔다 가는 이 인생 행로가 행인과 같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그런 사람의 모든 과거의 사연을 회상해 볼 때그 모든 사연이 머리를 흔들며 회상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가졌으면 그는 비참한 사람입니다과거를 회상하면 회상할수록 자기 얼굴에 환희가 넘치며 자기의 모든 문제가 이상에 잠길 수 있다면 죽음의 공포도 그에게는 위로의 한 장면으로 장식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을 남겼다면 그의 과거도 죽지 않은 것이요현실도 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그럴 수 있는 과거를 지닌 사람은 반드시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요세계 만민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떠한 사연일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어떠한 민족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비참하고 비정한 때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자기가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거기에 부딪친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의 과거지사에서 잊을 수 없는 한 때일 것입니다생애노정에서 자기를 위해 죽음의 자리까지 가는 것보다 형제면 형제친족이면 친족남이면 남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부딪친 때가 있었다면 그러한 사실들이 최후의 운명의 자리에서 그의 마음 선상에 영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아무리 자기를 중심삼은 행복한 때가 있었고수많은 군중으로부터 환영받고 자기가 영광스럽게 찬양받는 거룩한 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순간에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하였느냐참되었느냐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참과 선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남에게서 결과를 맺게 하든가남에 의해서 시작되어 나에게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어야만 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리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는 주고받는 인연을 거쳐야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생활이 주는 생활이었으면 죽음길에도 공포가 없을 것입니다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고 남을 위해 희생했으며 참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눈물도 남으로 말미암아 흘렸고내 생명도 남으로 말미암아 투입했고내 소원도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내 맥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생명력을 끌어 모아 남을 위해서 투입했다고 할진대는 그 과거는 빛날 수 있는 과거입니다.


여러분은 험상스런 환경을 갖춘 이 타락권 내에서 여러분 자신이 가는 모습을 도표로 그려 보게 될 때 “1년은 이렇게 가고 1년은 저렇게 갈 것이다. 10년은 이렇게 가고 10년은 저렇게 갈 것이다.” 하며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일생 행로를 계획하면서 높고 낮음을 예측할 것입니다그 높고 낮음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사람은 최후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때 자기를 위해 살면서 남을 희생시킨 그 모든 것이 자기를 얽어맬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이란 자아를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까양심의 가책을 받는 생애를 반평생 이상 남겼으면 그것이 자기를 절반 이상 꽁꽁 얽어맬 것입니다이러한 생애를 남겼다면 최후의 운명길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자리에 설 것이 아니겠습니까?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생애의 도표가 선을 위해서남을 위해서 그려져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내려갔다고 하더라도 슬픔이 될 수 없습니다인간이 이와 같은 인생행로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인륜도덕도 그런 길을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31-308)


 


이 모순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남을 위해서 가는 길이 쉬운 길이냐? 쉬운 길이 아닙니다자기를 위해 가는 길도 쉽지 않거늘 하물며 남을 위해 가는 길이 쉽겠습니까이건 더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러기에 오늘날 타락인간이 그냥 그대로 간다면 타락세계에서 그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자기를 위해 가는 생활을 해서는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타락한 환경권 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살다가는 그냥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그러기에 이 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된다는 것입니다필연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혁명을 해야 됩니다투쟁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갖은 여건들이 개재될 것입니다그 일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환영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닙니다이 길은 손을 설레설레 흔들고 몸을 비틀면서 가야 할 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고통의 길이요슬픔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처한 타락권 내의 환경은 모순된 환경입니다그러므로 그 모순된 환경을 타개해야 합니다. 그 환경에 돌입하라는 진격 명령을 받을 수 있는 돌격대의 사명과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그런 명령을 받아 움직여야 할 우리들의 인생행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인간들은 자기를 위주로 하는 생활에서 떠나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현의 도리는 자기 개인의 생활과 부모와 처자를 위한 생활이 아닙니다거기에서 떠나서 사는 생활자기의 종족을 위해 사는 생활에서 떠나 사는 생활자기의 국가를 위해 사는 생활에서 떠나 사는 생활더 나아가서는 타락된 이 세계를 떠나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면 떠나서는 어디에 가서 살 것이냐떠나 가지고는 살 곳이 없습니다. 이 세계 외에는 살 곳이 없습니다그러나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선한 세계를 이루어 선한 세계의 주인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부르고 참을 고대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겠습니다그러려면 이 세상과 타협하고 거래해 가지고는 안됩니다세상의 경계선을 돌파해 가지고 넘어선 경지에서부터 그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역사시대를 두고 볼 때어느 한 때 그 경계선을 돌파한 때가 있었느냐없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슬픈 조건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역사는 아직까지도 밤중이요자정을 넘기지 못한 권내에서 미명을 바라보고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비애와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지금이 이러한 역사시대라는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헤아려 볼 때인간들은 가야 할 방향을 몰랐습니다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을 알지 못한 채 그 환경권 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 가운데서 스스로 몸부림치는 것이 개인에게서 그쳐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미쳐지고 세계에까지 미쳐지는 것입니다이러한 싸움의 역사를 종결지어야 할 운명을 남기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갈림길에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이것이 문제입니다우리에게는 이 갈림길을 타파하고 넘어서 고귀한 생명을 흠모하기를 원하는 내적인 욕구가 있습니다이 욕망은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욕망을 이루려면 힘이 들기 때문에 인생을 고해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역사적으로 뜻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인연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이것이 그들의 생활이요,사고방식이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철학이니종교니절대자니하나님이니 하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요인이 되어 거기서부터 문화가 형성되었고 전통적 기원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여러분은 역사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인간이 못 됐습니다역사시대를 붙들고 뒤넘이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여기서 끝나서는 안됩니다어떠한 힘을 의지해서라도 이것을 돌파하고 초월해야 됩니다이것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인들이 가는 도의 길입니다종교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면 그 종교는 최후의 운명과 더불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짓고 가야 할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1-310)


 


자기 초월의 경지를 체험해야


 


그러면 여러분은 개인을 초월했느냐가정을 초월했느냐사회를 초월했느냐나라를 초월했느냐세계를 초월했느냐? 이러한 것을 한 순간에 몰아서 느끼고 자극받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심각한 자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심각하리만큼 고독해집니다그 자리는 누구나 동정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누구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누구나 같이 운행해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이처럼 나만이 살아서 결단하고 해결지어야 할 사망의 구렁텅이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해방될 수 있는 한 순간을 어떻게 생활권 내에서 모색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이 방법을 찾기 위하여 연구하며 찾아 나서는 길이 도의 길인 것입니다이 도의 길을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길을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그는 얼마나 심각할 것이냐아무렇게나 가고 오는 걸음이 아닐 것입니다죽느냐,사느냐 하는 판가리의 고개를 넘는 걸음일 것입니다. 그의 실체는 이러한 절박한 심정으로 고개를 넘기 위한 결의에 찬 마음 자세를 가지고 행동하는 실체일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그런 고개를 넘어서는 그 순간은 생명의 맥박이 고도로 움직이는 순간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거기에서는 생애의 비참함을 알고 생애의 모든 사연과 고통의 짐을 다 버려야 합니다그 순간은 새로운 절규를 들을 수 있는 순간일 것이며그 자리는 몸부림치는 내정적인 사무침이 있어야 되는 자리입니다또한그 사무침과 더불어 하나님이시여아버지이시여!” 하는 부르짖음이 여러분의 생명선을 넘고 새로운 세계에 가서 맞부딪치는 경각에 다다랐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런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불러 보았습니까?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면 참된 종교의 문이 팔방으로 열려졌다 하더라도 그 문을 통할 수 없습니다. 그 문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야 열려지기 때문에 그 문을 통해 가려면 그 이상의 절박한 생명의 심정을 가지고서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에서는 희생을 강조합니다또한깊다면 무한히 깊은 곳을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여러분고요한 밤 모든 세상이 다 없어진 듯한 그런 고요한 순간에 자기 맥박 소리만이 들리는 것을 느끼게 될 가 있을 것입니다맥박이 자기의 온 세포의 생명력을 움직이고 격려하는 것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해야 됩니다. 나아가서는그 맥박까지 잊어버리고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무친 심정으로 쏘아진 포탄같이 한 표적을 향하여 무한히 달려가 자기의 마음에 생명의 인연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경지떨어지면 무한히 떨어지고 끌려가면 한없이 끌려가서 타락한 세계와 부딪쳐 그 세계를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는 이 사망권을 격파시키고 초월할 수 있는 승리의 새로운 세계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경지는 복잡다단하고 험난한 오늘날의 사회환경과 생활감정에 찌들은 이 육적 자극을 통하는 권내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깊다면 무한히 깊고 고요하다면 무한히 고요한 경지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무한한 생명력을 갖고 하나의 대상을 찾아 들어가야만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한히 가다가 그것이 없다고 느껴지게 되면 천지의 어떠한 것보다도 큰 가치의 존재에 부딪쳐 보아야 합니다그리하여 내가 없어지더라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게 될 때지금까지 살아오던 내가 아닌 다른 나로서 그 실체가 거기에서 소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는 오늘날의 이 복잡다단하고 험악한 사회 환경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그래서 기도는 밀실에 들어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여러분 중에 그러한 체험을 한 사람은 기도의 가치를 알 것입니다. (31-312)


 


기도의 효력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3일 동안 무엇을 했느냐뼛골에 사무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그러면 그런 자리에 둘이 갈 수 있느냐아닙니다그 자리는 둘이 갈 수 없는 자리입니다절대자 앞에 절대의 상대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그러한 절대적인 경지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를 부르고 있는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아버지!” 하고 부르면 천 년사를 넘나든 아버지를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그런 자리가 바로 아버지의 수고와 괴로움을 배우지 않고도 일시에 체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그 순간이 바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버지의 심정을 내 마음에 몽땅 움켜쥘 수 있는 순간이 아니겠느냐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마음이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는 순간이 아니겠느냐?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잃었던 아버지를 찾은 그 마음그 태도가 최후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류에 대해서 구원의 역사를 해 나온 섭리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이냐아버지로서 아들을 찾는 것입니다아버지께서 내 아들 아무개야!” 할 수 있는 그 자리그것만이 최후의 목표였던 것이요그것만이 최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그 자리는 기도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자리로 나가는 데 있어서는 절대세계와 사망세계가 교차되는 점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왜냐하면 그런 경지에 그냥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그 교차점에 가 가지고 거기에서부터 직행할 수 있는 하나의 길과 접선해야 하며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하나님의 종적인 슬픈 심정이 있으면 그것을 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그런 입장에서 부활의 환희를 느낄 수 있고 해방의 한 순간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이 천국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천국에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공포에 휩싸인 사망권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이 사망권 안에서 노력하고뒤로 떨어지고내가 더 깊은 환경의 골짜기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과의 인연의 줄을 붙들어야 합니다그 줄을 붙들어 줄 수 있는 주인이 있어야 되고나를 위해주는 사람과 또 나를 붙들고 어려움을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인연될 줄이라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살고 있느냐? 이 땅 위의 환경을 초월하여 살고 있느냐그렇지 못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와 정성입니다내가 스스로 부활된 자리에 섰느냐서지 못했다면 간절히 구할 수 있는 자리에라도 섰느냐신앙을 하면서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생사의 기준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내가 천길 높은 탑을 쌓는다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그것을 50년이면 50년 동안에 다 쌓아 올려야 되겠다고 다짐했다면 쉴 새가 있겠습니까?없습니다.


주위로부터 공포가 들이닥칠 것입니다자연의 공포환경의 공포가 있을 것입니다.이 타락한 세계에서는 정성의 탑을 쌓기만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쌓아 놓으면 사탄은 번번이 그것을 무너뜨립니다하나를 쌓으면 둘을 무너뜨립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사탄과 싸우면서 쌓아야 합니다그러한 운명 가운데에 있는 우리들이 쉴 새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사탄이 쉬지 않고 대적해 나오는 중간 입장사탄과 대결하고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면서 이것을 쌓아 올려야 할 사명을 짊어진 우리들인데 언제 쉴 새가 있겠어요일생을 다 마칠 때까지 한 순간도 마음놓고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공포의 바다를 건너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놔서는 안됩니다. (31-316)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을 위해 죽는 길이 있다면 죽어도 행복할 것입니다하나님을 위하여 죽는 길이 있다면 내 생명을 끊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지금까지 당하면서 느꼈던 안팎의 시련을 뒤돌아보게 될 때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 가치 있는 자가 된다면 죽음길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여러분들은 현재 그러한 입장에 있습니까천국길은 그런 길로서 쭉 연결되어 있습니다. 6천 년 역사를 죽 거슬러 올라가 그런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그러기에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해야 합니다. 절대와 통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리는 단 하나입니다사탄세계와 하늘세계가 하나되려면 먼저 교차되어야 합니다.그 자리에서 하늘세계를 넘어가려면 현실의 인연을 버려야 합니다그래서 예수님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완성하면 기도가 필요 없다고들 하고 있습니다완성하면 기도가 필요 없다고 말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사실이 그렇습니다그렇지만 그 완성의 기준은 국가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예수님이 소원을 성취하는 자리입니다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유대교와 합해 가지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등장하게 하려 했습니다그런 자리가 완성의 자리입니다.


개인 완성을 하면 개인으로는 설 수가 있지만 가정의 사탄이 남아 있습니다또한 가정이 완성하면 종족 사탄이 남아 있고종족 완성을 이루면 민족 사탄이 남아 있고,민족 완성을 이루면 국가적인 사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이렇게 돼 있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자마자 다 완성이에요완성하려면 절실히 기도해야 합니다선생님이 기도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선생님은 담판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얼마나 절박한 때인지 모를 것입니다복귀섭리의 첨단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그것을 절감하게 됩니다그러한 때인 것을 절감했다면그 다음엔 멍청하게 세월을 보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담판기도를 해야 합니다잠이 문제가 아닙니다나무가 잘 자라려면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뿌리가 깊어지려면 아무도 모르는 괴로움을 겪어야 되고 수고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됩니다(31-318)


 


통일교인들이 세워야 할 신앙 기준


 


우리 통일교인들은 완성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완성의 자리에 서려면 나라를 완전히 구해야 합니다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그래서 나는 이 나라를 어떻게 통일시키느냐를 생각하며 그때를 위해 하나님과 담판하면서 기도해 나가고 있습니다그런데도 여러분은 물 속에 들어가지도 않고 뜻이 다 이루어져 간다고 생각하고 골수도 알지 못하면서 물가에서 놀고 있습니다그래서는 안됩니다.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이 기성교인과 다른 것은 무엇이냐지금까지의 종적인 역사를 중심삼고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결사적인 기도를 해 나왔습니다이제는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갈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러기에 여러분이 조금만 노력하면일주일만 그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정성을 들이면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같이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아야 됩니다기도하면 직접 지도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머니가 기도해서 그런 계시를 받는다면 그 어머니를 위주해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모든 식구가 어머니에게 기도 가운데서 받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그들에게는 그 소식이 제일 기쁜 소식입니다또한그것이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그것으로 그 집안이 망하느냐흥하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가정에서 어머니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가정에 대한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선생님을 대하게 되면 선생님이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기뻐서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그것이 하루에 안 되면 3, 3일에 안 되면 7, 7일에 안 되면 3개월, 3개월에 안 되면 3년으로 넘어갑니다. 3년에도 안 되면 7년으로 넘어갑니다원리적으로 그렇게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기도 가운데 있었던 것을 감정해서 불화가 오기 전에 이를 막을 수 있게 됩니다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 다릅니다이럴 때에는 좋은 일이 생기더라이럴 때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 하고 다 아는 것입니다기도하면 틀림없이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그때 좋은 길로 가는지나쁜 길로 가는지 그것을 알아 가지고 갈 길을 가려서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기도나 몽시 가운데서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직접 받아야 됩니다우리 식구들 가운데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선생님의 지시를 직접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예수님 때 이상으로 실감나는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우리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산다는 것입니다통일교회에서는 예수님 때보다 더한 일이 종종 있습니다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세계가 통일교회와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망권을 지나가려면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기도를 하는 데에는 한 순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여러분은 24시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이런 자유로운 시대에 그러한 체험을 하지 못하고 직접 모시면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본래 그런 기준과 경험이 있어서 그런 내용에 전부 다 결부되어 있어야 합니다원래는 선생님과 영적으로 접붙여 가지고 하나되어야만 축복대상자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실과의 인연에서 벗어나는 것이 복귀의 원칙이 아닙니다과거의 사실이 현실무대에 그냥 그대로 전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그러니 이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통일교회의 교리는 진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31-330)


 


하나되어 끊임없이 기도하라


 


선생님은 나를 위해서는 살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인격적으로 살았습니다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제일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교육기관을 만드는 것입니다.이것이 제일 시급한 문제입니다.


후대 사람의 인격 기반을 닦아주는 인적 자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세계에서 제일가는 학교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그래서 선생님이 서울대학교의 부지 120만 평보다 한 40만평이 더 넓은 160만 평을 확보할 것입니다여러분은 생각지도 않지만 그 일을 지금 선생님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아들딸이 있지요지금 여러분은 고생을 하지만 그것은 미래에 여러분을 대신할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한 것입니다오늘날 여러분이 고생하고 희생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한 것으로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해서 여러분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것입니다이게 사랑입니다그러기에 내가 여러분을 아무리 때려 몰더라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이게 정도(正道)입니다여러분이 싫다고 꼬리를 빼 보십시오그러면 여러분의 아들딸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가 보라는 것입니다개인을 중심한 주도권은 개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권내에 들어가야 합니다천하를 화합시킬 수 있는 가정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천 년 동안 가정적 기반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교회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 환경을 조정하고 절충하여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이러기 위해서 여러분에게는 끊임없는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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