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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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새아침 (훈독본)
날짜 : 1978. 1. 22(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누구나 영광의 한 때, 영광의 한 날을 소망해
영광(榮光)의 한 때, 영광의 새로운 한 날은 어느 누구나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 글자의 뜻을 생각하면 그 빛이 끊이지 않고 계속적으로 무한히 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영광’ 하면, 혼자 있어 가지고 영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 하게 되면 개인이 기뻐할 수는 있지만, ‘영광’ 하게 되면 그 기쁨에 충천한 것이 활짝 피어 나가는 의미를 갖지 않느냐? ‘행복’ 하게 되면, 행복은 어떤 한 자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미쳐지는 것입니다.
‘영광의 새 아침’ 하면 광명한 빛이 활짝 핀 것이 연상됩니다. 광명의 새 아침이 활짝 펴지는 그 순간에는 모든 만물도 화창하게 환희합니다. 밤새껏 어둠에 잠겼던 초목도, 새로운 싹도 모두 다 새로운 아침의 빛으로 향합니다. 눈이 온 아침에 추운 밤을 새운 새들이 햇빛을 보면 어떨까요? 눈이 오고 추웠지만, 그것을 다 잊고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 시간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어떠한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환희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한 개인에게 영광스러운 날이란
우리 개인에게 있어서 영광스러운 날은 언제냐? 자기가 태어날 때 “응아” 하고 웁니다. 그 시간이 영광스러운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우느냐? 나오자마자 우는 것이 기쁨에 사무쳐서 운다고 하면 참 멋진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생각하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을까? 바깥 세상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그리워하다가 그 그리움이 활짝 터지는 시간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이렇듯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것이 기쁨에 사무쳐서 운다고 생각하면 근사합니다. 여러분도 진짜 반가운 사람끼리 만나면 눈물이 납니다.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또, 태어날 때 울었던 그 이상으로 기뻐서 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야말로 영광의 새 아침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탄생에 대한 하나님과 우주의 관심
여러분이 어떤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면, 그 나라의 모든 백성이 여러분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나라의 모든 만물까지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가 우는 시간에도 소식은 전국에 퍼지고, 그 퍼지는 소식과 더불어 환희의 함성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과 해와가 태어났을 때 만물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상세계는 물론이고 하나님이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다 신경을 집중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태어나던 그 순간에 얼마나 흥미진진했겠습니까! 어떤 변화가 벌어졌겠습니까?
하나님은 부모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 부모의 사랑을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아내가 아기를 뱄을 때보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사랑이 이렇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 더 강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난 아담과 해와, 아들딸을 보고 하나님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기쁨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를 지은 창조주, 주인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을 상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부터입니다.
그러면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기쁨의 자극제로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걸 준비해 둡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의 물건들이 만물입니다. 그 만물을 대해서 아들딸이 기뻐하면 모든 존재의 가치는 비로소 거기에서 발휘됩니다. 그러므로 아들딸이 그 부모가 만들어준 모든 것, 혹은 준비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될 때 그 부모도 참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담 해와를 어떻게 키웠을까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났느냐? 아담과 해와를 지을 때 어른으로 지었겠느냐, 아기로 지었겠느냐? 아기로 지었다면, 그들이 어떻게 먹고 자랐겠느냐?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런 입장에서 키웠음에 틀림없습니다.
아무튼, 하나님도 우리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담과 해와를 키웠습니다. 그런 인격을 갖춘 분이 하나님임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형상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계에 가도 하나님의 형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아들딸은 부모를 닮는다는 것이 자연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형상을 갖고 나타나는 데는 아담과 해와의 아버지라면 틀림없이 아담과 해와와 같은 모양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하나님에게는 지극히 평화롭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날이 제일 기쁜 날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담의 형상과 해와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체(體)를 입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자람과 동시에 영계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이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영계에서 우리도 자랄 수 있는 길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웃으면 하나님도 웃고, 아담과 해와가 슬퍼하면 하나님도 슬퍼하고, 아담과 해와가 가면 하나님도 가고, 아담과 해와가 있으면 하나님도 있었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도 완성이 벌어지고 인간도 완성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완성은 언제 되는가? 지금까지 맛이 없는 것을 먹다가 맛이 있는 것을 먹는 것, 걸어가던 사람이 뛸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완성입니까? 그것은 원만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힘
사랑은 공동소유입니다. 어떤 독재자가 있어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나밖에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랑은 그러한 욕심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이상을 그리고 모든 고상한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공동적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랑이 왜 좋은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먼 것도 극히 가까운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을 정치의 힘, 군사의 힘, 문화의 힘을 가지고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까?
무엇만 있으면 하나가 됩니까? 사랑입니다. 극과 극으로 반대되는 것도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극과 극입니다. 여자는 여자들끼리 좋아해요? 여자가 둘이서 만나 가지고 “난 네 손에 반했다. 아이구, 좋아라!”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빠요! 그렇기 때문에 상극의 존재까지 화할 수 있도록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힘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 내 눈이 잘생겼지요? 내 눈을 보고 하나됩시다.” 할 때, 하나님이 그 눈을 보고 “그거 참 훌륭하오!” 이러겠어요? 눈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으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고, 손이나 얼굴이 아무리 예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습니다.
뉴욕이면 뉴욕에 잘난 여자가 옷을 잘 입고 나가서 자랑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진짜 사랑을 찾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한테 사람을 왜 지었느냐고 묻게 될 때 아담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지었다고 하겠어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아름답게 볼래야 볼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우는 것까지도 좋아합니다. 우는 것까지 보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는 것에서 조금만 돌려놓으면 웃는 것입니다. “아항” 하고 우는 것과 “하하” 하고 웃는 것은 얼마 차이가 없습니다. 우는 것까지 사랑을 하면 다 아름답게 볼 수 있습니다. (96-213)
우주의 모든 존재는 사랑을 중심삼고 돌게 돼 있어
사랑이 왜 좋으냐? 극과 극이 하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과 낮은 곳도 완전히 하나됩니다. 그러면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을 것이냐? 얼마나 빠르겠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그게 충돌하면, 그 사건이 얼마나 크겠는가를 생각해 봐요! 우주가 다 왕창 나간다구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직선으로 가다가 부딪치는 날에는 하나님도 정신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아, 저거 저렇게 가면 위험하겠구나! 어떻게 해야 안전하겠나?” 하고 생각하다가 도는 운동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는 것은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서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제일 빠르게 돌고 무엇이 멋지고 동그랗게 돌 것이냐를 생각할 때, 그것도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칙을 따라서 우주가 둥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이상을 따라가는 사람도 돌면서 사는 것입니다. 돌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중요한 것들을 왜 앞에다 다 갖다 놨느냐? 서로가 맞대어 완전히 하나되라고 그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하나되니까 그 외의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먼저, 눈이 맞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냄새가 하나되고, 말이 하나되고, 귀가 듣는 것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게 하나되면 모든 것이 백 퍼센트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볼 때 어디를 봐요? 궁둥이를 먼저 보나요? 발이 잘생겼다고 해서 발을 보나요? 손을 보나요? 아닙니다. 눈을 먼저 봅니다. 첫번에 눈이 맞아야 됩니다. 둘째 번은 코입니다. 그 다음에는 입입니다. 귀가 아니고 왜 입이에요? 천지이치는 종적인 것이 시작입니다. 종(縱)이 먼저인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종적인 것을 중심삼고 균형을 취하려고 합니다. 나무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존재세계의 모든 초목들을 볼 때, 왜 전부 다 수직으로 자라느냐 하면 태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96-215)
종·횡이 하나돼야 천지조화가 벌어져
하나님이 제일 기뻐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다구요? 사람을 왜 지었다구요? 하나님의 형상을 갖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형상을 갖추어 가지고 뭘 하느냐? 우주를 상대해야 됩니다. 우주가 체를 가졌으니까 하나님도 체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우주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 중심을 가지기 위해서, 즉 체(體)를 갖기 위해서 아담과 해와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체가 필요했느냐? 우주를 사랑하려니까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사랑하기 위해서 몸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이 새로운 아침이었습니다. 그게 평면적인 아침이었다면, 그 다음에 더 차원 높은 입체적인 아침은 무엇이었느냐? 사랑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형태를 가진 것이 첫째 번 새 아침이었고, 그 다음에 사랑을 시작한 것이 둘째 번 새 아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사랑의 새 아침이다. 광명한 날이다.” 하면서 춤을 췄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주가 어땠겠어요? 지구덩이가 흔들거리고, 별들이 놀아나고, 하늘땅이 놀아났을 것입니다. 태양도 왔다갔다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였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바람이 부는지 알아요? 전부 다 사랑의 온기를 날라주기 위한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이놈아, 왜 불어? 가만히 있지, 왜 불어?” 그래요? 그것이 천지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솔잎에 바람이 강하게 와 닿기도 하고 약하게 와 닿기도 하면 율동이 벌어집니다. 춤 같은 것도 전부 다 율동입니다. 다 조화입니다. 높고 낮은 조화가 벌어져야 합니다.
서양 댄스는 아랫도리를 많이 움직입니다. 그에 반해, 동양 춤이나 한국의 춤은 전부 다 위에서만 놉니다. 손이나 어깨로 추는 춤입니다. 다리는 이렇게 그저 따라만 다닙니다.
글도 종적인 글을 한번 쓰고 가야 영계에 가서 할 말이 있습니다. 동양 사람은 오른손을 씁니다. 결혼할 때 왼손잡이라면 결혼을 안 하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래요? 천지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손으로 무엇을 잡으려면 오른손으로 잡아야 되는데 서양 사람은 왼손으로 잡습니다.
동양 사람은 잘 때 하나님을 맞으려고 반듯이 자는데 서양 사람들은 엎드려 잡니다. 하나님은 동양에서 오기 때문에 동양 사람은 하나님을 찾으려니까 하늘을 바라보고 자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양 사람은 동양을 찾으려니까 밑쪽을 바라보고 자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하나님을 맞으려고 땅을 쳐다보고 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지의 조화를 가지고 풀어야 다 풀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말하면서 밥을 먹으면 정신이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생명이 다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대 침묵하면서 밥을 먹는데, 서양에서는 입을 벌리고 야단입니다. 옷도 서양에서는 젖통을 드러내고 궁둥이도 드러냅니다. 동양에서는 다 가리고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서양문화만 좋아했겠어요, 동양문화만 좋아했겠어요? 둘 다 소화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서양 교회에서는 전부 앉아서 예배를 보고,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꼬인 다리를 하고 예배를 보고, 동양 교회에서는 마루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봅니다. 그런 교회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이 서양 사람을 한번 동양 사람같이 만들고, 동양 사람을 한번 서양 사람처럼 만들고 싶다고 생각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렇게 생각했을 것 아니겠어요?
사랑을 중심삼아야 어디든 통해
사람은 이 우주의 신비로운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산보를 다니는 것보다 사람을 대하기를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찾아다니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중심삼고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사랑을 느끼면 우주와도 통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대해 가지고 사랑하면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눈을 보면, “눈은 모든 인간의 눈을 전부 다 총합한 최고의 꽃봉오리다.” 하면서 볼 수 있는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을 하면 코를 봐도 “이 우주의 수많은 인간의 코들 가운데 일등가는 코다.” 하고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렇게 만듭니다. 입이 비록 못생겼지만 “그 입이 세계의 일등 걸작품이며 특등 당선작이다.” 해 주길 바랍니다. 귀나 무엇이나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황홀경에 취할 수 있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힘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한테 있어서 제일 영광의 새 아침은 뭐냐? 몸을 쓸 수 있는 날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하는 날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손자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손자를 사랑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어 놓고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무엇으로 가르쳐 주겠습니까? “야, 내가 너를 지어 놓고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가르쳐 줘야 되겠으니까 아들딸을 낳아 보라!”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상대를 얻어서 아기를 낳아 보면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사랑했구나!” 하면서 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이 상대를 얻는 날, 그 다음에는 아들을 통해 손자를 보는 날이 영광의 새 아침입니다.
여러분은 웃을 때 눈 따로 코 따로 웃어요, 다 같이 웃어요? 눈이 웃고 코가 웃는데 입이 따라 웃지 않는 사람은 먹는 것이 궁합니다. 또, 코가 안 웃고 뻣뻣이 있으면 아들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손(孫)이 귀합니다. 또, 웃기는 웃는데 눈이 안 웃는 사람은 정이 없습니다.
이 우주에서 하나님이 웃고 싶어서 땅과 연락하려면 사람을 통해야 되고, 땅이 웃고 싶어서 하나님과 연락하려고 해도 사람을 통해야 됩니다.
사람이 돌아가면 하나님도 돌아가고 우주도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내가 갈 때 하나님이 간다고 생각하고 우주가 간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돌아갈 때는 세계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그러한 사람이 됩니다.
최고의 영광이 되는 날은 어떤 날이냐
세계에서 제일이 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랑으로만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세계의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합니다.
내가 종이 된다면 돈의 종도 아니요, 권력의 종도 아니요, 지식의 종도 아니라 사랑의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되는데도 돈의 아들, 권력의 아들, 지식의 아들이 아니라 사랑의 아들이 되겠다고 합니다. 왕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더라도 로마제국의 네로 같은 권력을 가진 왕이 아니라, 지식을 가진 왕이 아니라, 돈을 가진 왕이 아니라 사랑을 가진 왕이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의 새 아침이 무엇이냐? 체를 입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을 결혼시키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손자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의 아침은 하나님과 같은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 했습니다. 아버지도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세계의 제일이 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무엇으로 충당할 것이냐? 사랑입니다. 왜 그렇느냐? 360도의 원형을 그릴 수 있는 힘의 모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이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세계의 누구나 공통으로 같은 자리를 가질 수 있는 권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닮고, 아들이 아버지를 닮고, 손자가 아버지를 닮고, 손자가 할아버지를 닮은 그 날이 영광의 날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이 춤췄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노래했을 것입니다. 손자를 안고 춤추고, 아들을 잡고 춤췄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자는 것입니다. 그게 영광의 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선생님을 닮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사랑했듯이 자동적으로 그 닮아진 손자도 사랑하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손자들이 있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3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가정을 이뤄야
사람은 언제 죽어야 되느냐? 아들딸을 다 시집 장가보내고, 손자 손녀까지 시집 장가보내고 가는 사람이 영광을 받고 가는 사람입니다. 3대를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또,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리에도 서 보고, 아들딸의 자리에도 서 보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자리에도 서 봐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면 손자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종적인 관계라면 횡적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딸은 뭐냐? 손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손자네 집에 가도 천국이요, 아들네 집에 가도 천국이요, 마누라한테 가도 천국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가면 평화스러운 내 가정입니다. 할아버지가 있으면 아버지가 업고, 아버지가 있으면 아들이 업어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집안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할아버지의 등에 아버지가 타고 아버지의 등에 손자가 타고 “이랴, 이랴!” 할 수 있는 가정, 그리고 할머니의 등에 며느리가 타고 며느리의 등에 손자며느리가 타 가지고 “엇, 엇!” 할 수 있는 가정이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나님이 그런 꿈을 이루어 보지 못 했습니다.
그러한 꿈과 이상이 남아졌는데 통일교회의 레버런 문이 그걸 이루었습니다. 전세계에 그런 영광의 새 아침이 밝아오고 사랑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 함성이 땅에서 벌어지게 되면 영계에서는 어떻겠어요? 자동적으로, 거기서도 함성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은 3대가 다 하나님을 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서슴지 않고 찾아가서 기쁘다고 할 수 있는 집, 좋다고 할 수 있는 집을 여러분이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이구, 나 천국보다 여기가 좋다. 여기서 살래.”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남편이나 여편네가 전부 다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하고 자식들까지도 전부 다 “허허“ 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가정이 최고입니다. 사랑으로 엮어지는 그러한 가정을 맞는 것이 최고로 영광스러운 새 아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영광의 날이요, 우리의 조상들이 바라던 영광의 날이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바라는 영광의 날이요, 우리 손자들이 바라는 영광의 날이요, 미래가 바라는 영광의 새 아침입니다. (96, 206-241)
&&&&&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7일 원문 &&&&&
영광의 새아침
날짜 : 1978. 1. 22(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누구나 영광의 한 때, 영광의 한 날을 소망해
영광(榮光)의 한 때, 영광의 새로운 한 날은 어느 누구나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 글자의 뜻을 생각하면 번창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빛이 풍성히 아름답게 활짝 비친다는 것입니다. 그 빛이 끊이지 않고 계속적으로 무한히 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영광’ 하면, 혼자 있어 가지고 영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 하게 되면 개인이 기뻐할 수는 있지만, ‘영광’ 하게 되면 그 기쁨에 충천한 것이 활짝 피어 나가는 의미를 갖지 않느냐? ‘행복’ 하게 되면, 행복은 어떤 한 자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미쳐지는 것입니다.
‘영광의 새 아침’ 하면 무엇이 연상되느냐? 광명한 빛이 활짝 핀 것이 연상됩니다. 광명의 새 아침이 활짝 펴지는 그 순간에는 모든 만물도 화창하게 환희합니다. 밤새껏 어둠에 잠겼던 초목도, 새로운 싹도 모두 다 새로운 아침의 빛으로 향합니다. 모든 새나 만물들도 환희에 차서 그 아침의 광명한 빛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눈이 온 아침에 추운 밤을 새운 새들이 햇빛을 보면 어떨까요? 눈이 오고 추웠지만, 그것을 다 잊고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할 것입니다.
미국이면 미국에 있어서의 영광스러운 날이 어느 날이냐? 새로운 나라가 생겨난 날, 그 나라를 고대한 만민이 환성을 높여 찬양한 날입니다. 그 시간에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는 어떨까요? 병을 잊고 그 시간을 찬양할 것입니다. 만약 옥중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자기가 감옥에 들어간 것을 잊어버리고 그 날을 축하할 것입니다. 그 시간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어떠한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환희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96-206)
한 개인에게 영광스러운 날이란
우리 개인에게 있어서 영광스러운 날은 언제냐? 자기가 난 날이 영광스러운 날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태어날 때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웁니다. “응아” 하고 웁니다. 그 시간이 영광스러운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 날이 기쁜 날 아닙니까? 그런데 왜 우느냐? 여러분은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나오자마자 우는 것이 기쁨에 사무쳐서 운다고 하면 참 멋진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생각하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을까? 바깥 세상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그리워하다가 그 그리움이 활짝 터지는 시간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그리고 배꼽으로 먹던 것을 입으로 먹을 수 있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아주 급속한 변화입니다. 그 아기는 다물고 있던 입을 벌려 먹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환희에 찬, 얼마나 희망적인, 얼마나 바라던 것이겠습니까!
이렇듯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것이 기쁨에 사무쳐서 운다고 생각하면 근사합니다. 여러분도 진짜 반가운 사람끼리 만나면 눈물이 납니다.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또, 태어날 때 울었던 그 이상으로 기뻐서 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야말로 영광의 새 아침입니다. (96-207)
아담과 해와의 탄생에 대한 하나님과 우주의 관심
여러분이 어떤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면, 그 나라의 모든 백성이 여러분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나라의 모든 만물까지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전체가 여러분이 태어나는 그 순간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가 우는 시간에도 소식은 전국에 퍼지고, 그 퍼지는 소식과 더불어 환희의 함성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과 해와가 태어났을 때 만물이 관심을 가졌겠느냐, 안 가졌겠느냐? 가졌습니다. 왜 가졌느냐?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상세계는 물론이고 하나님이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다 신경을 집중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태어나던 그 순간에 얼마나 흥미진진했겠습니까! 아담과 해와가 태어남으로써 어떤 변화가 벌어졌겠습니까?
하나님은 부모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 부모의 사랑을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아내가 아기를 뱄을 때보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사랑이 이렇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 더 강합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불과 몇 분 전과 태어난 후는 천지차이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난 아담과 해와, 아들딸을 보고 하나님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기쁨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를 지은 창조주, 주인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을 상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부터입니다.
그러면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기쁨의 자극제로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걸 준비해 둡니다. 자식이 태어나기 전에 모든 것을 마련해 둔다는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의 물건들이 만물입니다. 그 만물을 대해서 아들딸이 기뻐하면 모든 존재의 가치는 비로소 거기에서 발휘됩니다. 그러므로 아들딸이 그 부모가 만들어준 모든 것, 혹은 준비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될 때 그 부모도 참 좋다고 합니다. (96-208)
하나님은 어린 아담 해와를 어떻게 키웠을까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났느냐? 아담과 해와를 지을 때 어른으로 지었겠느냐, 아기로 지었겠느냐? 아기로 지었다면, 그들이 어떻게 먹고 자랐겠느냐?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살기 위해서 먹을 것을 찾아서 따먹고 그랬겠습니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런 입장에서 키웠음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해와 말고 천사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지금까지 수수께끼입니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인데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까? 통일교회에서는 천사와 인간이 사랑관계를 맺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와 인간이 사랑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아무튼, 하나님도 우리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담과 해와를 키웠습니다. 그런 인격을 갖춘 분이 하나님임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형상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계에 가도 하나님의 형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누구를 닮게끔 나타나는가? 아들딸은 부모를 닮는다는 것이 자연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형상을 갖고 나타나는 데는 “내가 이런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아담과 해와를 보고 결정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아버지라면 틀림없이 아담과 해와와 같은 모양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하나님에게는 지극히 평화롭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날이 제일 기쁜 날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느냐? 아담과 해와를 닮았습니다. 아담의 형상과 해와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체(體)를 입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자람과 동시에 영계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이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영계에서 우리도 자랄 수 있는 길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웃으면 하나님도 웃고, 아담과 해와가 슬퍼하면 하나님도 슬퍼하고, 아담과 해와가 가면 하나님도 가고, 아담과 해와가 있으면 하나님도 있었습니다. 그래야 했습니다. 왜 그래야 했느냐? 그럼으로써 하나님도 완성이 벌어지고 인간도 완성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완성을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완성은 언제 되는가? 지금까지 맛이 없는 것을 먹다가 맛이 있는 것을 먹는 것이 완성입니까? 걸어가던 사람이 뛸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완성입니까? 어떤 것이 완성입니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 종교를 믿는다고 하는데, 완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원만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96-210)
사랑의 힘
사랑은 공동소유입니다. 어떤 독재자가 있어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나밖에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랑은 그러한 욕심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이상을 그리고 모든 고상한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공동적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멀던 것이 더 멀어질 수 있나요, 가까워질 수 있나요? 사랑이 왜 좋은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먼 것도 극히 가까운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을 정치의 힘, 군사의 힘, 문화의 힘을 가지고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까? 그러한 힘은 어떤 힘을 가져도 안됩니다.
무엇만 있으면 하나가 됩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은 죽이려고 하던 원수까지도 하나로 만듭니다. 극과 극으로 반대되는 것도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극과 극입니다. 여자는 여자들끼리 좋아해요? 여자가 둘이서 만나 가지고 “난 네 손에 반했다. 아이구, 좋아라!”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빠요! 그렇기 때문에 상극의 존재까지 화할 수 있도록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힘이 무엇이겠느냐? 무엇이 하나로 만들겠느냐? “하나님, 내 눈이 잘생겼지요? 내 눈을 보고 하나됩시다.” 할 때, 하나님이 그 눈을 보고 “그거 참 훌륭하오!” 이러겠어요? 눈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으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고, 손이나 얼굴이 아무리 예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만들 때 그보다도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눈을 가졌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뉴욕이면 뉴욕에 잘난 여자가 옷을 잘 입고 나가서 자랑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진짜 사랑을 찾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
하나님한테 사람을 왜 지었느냐고 묻게 될 때 아담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지었다고 하겠어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아름답게 볼래야 볼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우는 것까지도 좋아합니다. 우는 것까지 보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는 것에서 조금만 돌려놓으면 웃는 것입니다. “아항” 하고 우는 것과 “하하” 하고 웃는 것은 얼마 차이가 없습니다. 우는 것까지 사랑을 하면 다 아름답게 볼 수 있습니다. (96-213)
우주의 모든 존재는 사랑을 중심삼고 돌게 돼 있어
사랑이 왜 좋으냐? 극과 극이 하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극과 극이 하나될 수 있으니까 중간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높은 곳과 낮은 곳도 완전히 하나됩니다. 그러면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을 것이냐? 요즘에 콩코드가 제일 빠르다고 야단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빠르겠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그게 충돌하면, 그 사건이 얼마나 크겠는가를 생각해 봐요! 우주가 다 왕창 나간다구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직선으로 가다가 부딪치는 날에는 하나님도 정신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아, 저거 저렇게 가면 위험하겠구나! 어떻게 해야 안전하겠나?” 하고 생각하다가 도는 운동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는 것은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서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제일 빠르게 돌고 무엇이 멋지고 동그랗게 돌 것이냐를 생각할 때, 그것도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칙을 따라서 우주가 둥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이상을 따라가는 사람도 돌면서 사는 것입니다. 돌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등을 대고 “너는 어깨를 이렇게 해라, 난 이렇게 할게!” 그래요? 그게 잘 돌아가요?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중요한 것들을 왜 앞에다 다 갖다 놨느냐? 서로가 맞대어 완전히 하나되라고 그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하나되니까 그 외의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먼저, 눈이 맞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냄새가 하나되고, 말이 하나되고, 귀가 듣는 것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게 하나되면 모든 것이 백 퍼센트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볼 때 어디를 봐요? 궁둥이를 먼저 보나요? 궁둥이를 보고 결혼한 사람이 있어요? 발이 잘생겼다고 해서 발을 보나요? 손을 보나요? 아닙니다. 눈을 먼저 봅니다. 첫번에 눈이 맞아야 됩니다. 둘째 번은 코입니다. 그 다음에는 입입니다. 귀가 아니고 왜 입이에요? 천지이치는 종적인 것이 시작입니다. 종(縱)이 먼저인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종적인 것을 중심삼고 균형을 취하려고 합니다. 나무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존재세계의 모든 초목들을 볼 때, 왜 전부 다 수직으로 자라느냐 하면 태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96-215)
종·횡이 하나돼야 천지조화가 벌어져
하나님이 제일 기뻐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다구요? 사람을 왜 지었다구요? 하나님의 형상을 갖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형상을 갖추어 가지고 뭘 하느냐? 우주를 상대해야 됩니다. 우주가 체를 가졌으니까 하나님도 체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우주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 중심을 가지기 위해서, 즉 체(體)를 갖기 위해서 아담과 해와를 지었습니다. 이런 말은 처음으로 레버런 문이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성교회에서는 이단이라고 야단합니다. “어, 하나님이 형태를 입기 위해서 사람을 지었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합니다.
하나님이 왜 체가 필요했느냐? 왜 폼이 필요했느냐? 우주를 사랑하려니까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사랑하기 위해서 몸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이 새로운 아침이었습니다. 그게 평면적인 아침이었다면, 그 다음에 더 차원 높은 입체적인 아침은 무엇이었느냐? 사랑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형태를 가진 것이 첫째 번 새 아침이었고, 그 다음에 사랑을 시작한 것이 둘째 번 새 아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사랑의 새 아침이다. 광명한 날이다.” 하면서 춤을 췄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주가 어땠겠어요? 지구덩이가 흔들거리고, 별들이 놀아나고, 하늘땅이 놀아났을 것입니다. 태양도 왔다갔다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였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바람이 부는지 알아요? 바람이 부는 것은 전부 다 사랑의 온기를 날라주기 위한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이놈아, 왜 불어? 가만히 있지, 왜 불어?” 그래요? 그것이 천지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솔잎에 바람이 강하게 와 닿기도 하고 약하게 와 닿기도 하면 율동이 벌어집니다. 춤 같은 것도 전부 다 율동입니다. 다 조화입니다. 춤출 때 높은 것이 좋다고 이렇게 높게만 하면 어때요? 이게 무슨 춤이에요? 높고 낮은 조화가 벌어져야 합니다.
서양 댄스는 아랫도리를 많이 움직입니다. 그에 반해, 동양 춤이나 한국의 춤은 전부 다 위에서만 놉니다. 손이나 어깨로 추는 춤입니다. 다리는 이렇게 그저 따라만 다닙니다.
글도 종적인 글을 한번 쓰고 가야 영계에 가서 할 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말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은 오른손을 씁니다. 왼손잡이는 없습니다. 결혼할 때 왼손잡이라면 결혼을 안 하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래요? 천지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손으로 무엇을 잡으려면 오른손으로 잡아야 되는데 서양 사람은 왼손으로 잡습니다.
동양 사람은 잘 때 하나님을 맞으려고 반듯이 자는데 서양 사람들은 엎드려 잡니다. 하나님은 동양에서 오기 때문에 동양 사람은 하나님을 찾으려니까 하늘을 바라보고 자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양 사람은 동양을 찾으려니까 밑쪽을 바라보고 자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하나님을 맞으려고 땅을 쳐다보고 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지의 조화를 가지고 풀어야 다 풀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말하면서 밥을 먹으면 정신이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생명이 다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대 침묵하면서 밥을 먹는데, 서양에서는 입을 벌리고 칠칠치 못하게 야단입니다. 옷도 서양에서는 젖통을 드러내고 궁둥이도 드러냅니다. 동양에서는 다 가리고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서양문화만 좋아했겠어요, 동양문화만 좋아했겠어요? 둘 다 소화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서양 교회에서는 전부 앉아서 예배를 보고,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꼬인 다리를 하고 예배를 보고, 동양 교회에서는 마루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봅니다. 그런 교회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이 서양 사람을 한번 동양 사람같이 만들고, 동양 사람을 한번 서양 사람처럼 만들고 싶다고 생각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렇게 생각했을 것 아니겠어요? (96-226)
사랑을 중심삼아야 어디든 통해
사람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 우주의 신비로운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산보를 다니는 것보다 사람을 대하기를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찾아다니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원칙적인 것에 귀결됩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중심삼고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사랑을 느끼면 우주와도 통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대해 가지고 사랑하면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눈을 보면, “눈은 모든 인간의 눈을 전부 다 총합한 최고의 꽃봉오리다.” 하면서 볼 수 있는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을 하면 코를 봐도 “이 우주의 수많은 인간의 코들 가운데 일등가는 코다.” 하고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렇게 만듭니다. 입이 비록 못생겼지만 “그 입이 세계의 일등 걸작품이며 특등 당선작이다.” 해 주길 바랍니다. 귀나 무엇이나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황홀경에 취할 수 있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힘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한테 있어서 제일 영광의 새 아침은 뭐냐? 몸을 쓸 수 있는 날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하는 날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손자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손자를 사랑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어 놓고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무엇으로 가르쳐 주겠습니까? “야, 내가 너를 지어 놓고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가르쳐 줘야 되겠으니까 아들딸을 낳아 보라!”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상대를 얻어서 아기를 낳아 보면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사랑했구나!” 하면서 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이 상대를 얻는 날, 그 다음에는 아들을 통해 손자를 보는 날이 영광의 새 아침입니다.
여러분은 웃을 때 눈 따로 코 따로 웃어요, 다 같이 웃어요? 눈이 웃고 코가 웃는데 입이 따라 웃지 않는 사람은 먹는 것이 궁합니다. 또, 코가 안 웃고 뻣뻣이 있으면 아들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손(孫)이 귀합니다. 또, 웃기는 웃는데 눈이 안 웃는 사람은 정이 없습니다.
이 우주에서 하나님이 웃고 싶어서 땅과 연락하려면 사람을 통해야 되고, 땅이 웃고 싶어서 하나님과 연락하려고 해도 사람을 통해야 됩니다. 왜 땅한테 사람이 필요하고 하나님한테도 사람이 필요한가를 알겠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사람이 돌아가면 하나님도 돌아가고 우주도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내가 갈 때 하나님이 간다고 생각하고 우주가 간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돌아갈 때는 세계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그러한 사람이 됩니다. (96-231)
최고의 영광이 되는 날은 어떤 날이냐
세계에서 제일이 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왜 그렇느냐? 360도의 원형을 그릴 수 있는 힘의 모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랑으로만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세계의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합니다.
내가 종이 된다면 누구의 종이 되겠느냐? 돈의 종도 아니요, 권력의 종도 아니요, 지식의 종도 아니라 사랑의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되는데도 돈의 아들, 권력의 아들, 지식의 아들이 아니라 사랑의 아들이 되겠다고 합니다. 왕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더라도 로마제국의 네로 같은 권력을 가진 왕이 아니라, 지식을 가진 왕이 아니라, 돈을 가진 왕이 아니라 사랑을 가진 왕이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의 새 아침이 무엇이냐? 체를 입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을 결혼시키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손자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우리의 영광의 아침은 하나님과 같은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0절에서 예수님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 했습니다. 아버지도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세계의 제일이 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무엇으로 충당할 것이냐? 사랑입니다. 왜 그렇느냐? 360도의 원형을 그릴 수 있는 힘의 모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이것만이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세계의 누구나 공통으로 같은 자리를 가질 수 있는 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최대의 영광이 되는 날은 무슨 날이냐? 아버지가 아들을 닮고, 아들이 아버지를 닮고, 손자가 아버지를 닮고, 손자가 할아버지를 닮은 그 날이 영광의 날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이 춤췄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노래했을 것입니다. 무릎을 딱 치고 노래했을 것 아니냐. 손자를 안고 춤추고, 아들을 잡고 춤췄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자는 것입니다. 그게 영광의 날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과 해와의 형상을 닮자는 것입니다. 그게 소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선생님을 닮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사랑했듯이 자동적으로 그 닮아진 손자도 사랑하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손자들이 있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96-232)
3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가정을 이뤄야
사람은 언제 죽어야 되느냐? 아들딸을 다 시집 장가보내고, 손자 손녀까지 시집 장가보내고 가는 사람이 영광을 받고 가는 사람입니다. 3대를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또,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리에도 서 보고, 아들딸의 자리에도 서 보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자리에도 서 봐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면 손자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종적인 관계라면 횡적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딸은 뭐냐? 손자입니다. 그래서 손자 때부터 사방으로 보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손자네 집에 가도 천국이요, 아들네 집에 가도 천국이요, 마누라한테 가도 천국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가면 전부 다 비밀이 없이 다 통할 수 있는 평화스러운 내 가정입니다. 할아버지가 있으면 아버지가 업고, 아버지가 있으면 아들이 업어 가지고 “엇, 엇!” 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집안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할아버지의 등에 아버지가 타고 아버지의 등에 손자가 타고 “이랴, 이랴!” 할 수 있는 가정, 그리고 할머니의 등에 며느리가 타고 며느리의 등에 손자며느리가 타 가지고 “엇, 엇!” 할 수 있는 가정이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나님이 그런 꿈을 이루어 보지 못 했습니다.
그러한 꿈과 이상이 남아졌는데 통일교회의 레버런 문이 그걸 이루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전부 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 가겠어요, 지옥에 가겠어요? 전세계에 그런 영광의 새 아침이 밝아오고 사랑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 함성이 땅에서 벌어지게 되면 영계에서는 어떻겠어요? “야! 이놈들아, 왜 그러냐?” 할까요? 자동적으로, 거기서도 함성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은 3대가 다 하나님을 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서슴지 않고 찾아가서 기쁘다고 할 수 있는 집, 좋다고 할 수 있는 집을 여러분이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이구, 나 천국보다 여기가 좋다. 여기서 살래.”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늘나라에 가서 혼자 있으면 재미없거든요. 같이 있는 게 재미있습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남편이나 여편네가 전부 다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하고 자식들까지도 전부 다 “허허“ 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가정이 최고입니다. 사랑으로 엮어지는 그러한 가정을 맞는 것이 최고로 영광스러운 새 아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이상으로 영광스러운 새 아침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영광의 날이요, 우리의 조상들이 바라던 영광의 날이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바라는 영광의 날이요, 우리 손자들이 바라는 영광의 날이요, 미래가 바라는 영광의 새 아침입니다. (96-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