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의 자세 (천일국 훈독경 제3권 제 9 일), u

훈독왕 | 20190831092137

천일국 훈독경 제3권 제9일


신앙자의 자세 (훈독본)


날짜 : 1971. 4. 25()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인간들이 잃어버린 소망의 세계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절망 가운데 빠져서 슬픔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 그 절망을 박차고 나오면 새로운 소망의 기운을 가질 수 있습니다슬픔의 경지에서 소망의 경지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우리 인간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슬픔이라는 것이 자기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슬픔은 내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슬픔의 뿌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온 역사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내가 당하는 슬픔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내용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3-94)

 

슬픈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 슬픔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연결되는 것이요그 슬픔이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자포자기의 자리나 패배의 서러운 자리뿐만 아니라 사망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슬픈 환경을 박차고 나서지 않고는 우리가 소망하는 기쁨의 세계기쁨의 천국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쁨의 세계와 기쁨의 천국까지 가려고 할 때 자신의 힘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느냐슬픈 자리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어서 신앙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우리에게는 슬픔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 느낌에 비례하여 당하는 슬픔을 타개하고제거시키고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힘의 모체가 필요합니다.


슬픔의 경지에 둘러 싸여 있는 우리 자신이 그 슬픔을 타파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자신임을 알게 될 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중심자즉 어떤 실체를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현재의 입장을 극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을 찾는 데 있어서는 신앙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하는 사람은 슬픈 자리에 동조하여 끌려갈 것이 아니라 슬픈 자리가 되지 않게 방비하고 슬픈 요인을 제거시키고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그러한 개인적인 생활환경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라야 신앙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또한신앙자의 자세를 두고 볼 때 내 개인적인 입장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세계적인 차원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용어로 말하면 천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홀로 계획하고 자신이 홀로 간다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신앙의 중심이 되는 그분의 뜻즉 내 뜻을 버리고 그분의 뜻을 중심삼고 가야 하는 것이고 내 목적을 버리고 그분의 목적을 중심삼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결심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심이 일년을 못 가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내가 선에 대한 결심을 품었다고 하더라도 사망권에 포함된 나 자신으로서는 그 결심도 슬픔의 권내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 사망의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피안의 어떤 선권에 있다고 자처할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가 현재의 슬픈 환경을 불식시키고 선권을 점령할 수 있느냐없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43-95)

 

절대자를 중심삼은 내가 되어야

 

그런 자리를 자각해 가지고 결심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심은 한때에 불과하지 영속적이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스스로 결심했더라도 이미 타락의 사망권 내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홀로는 극복할 수 없는 자신이요홀로는 갈 수 없는 자신입니다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 노력 자체가 자기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자기에게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앙노정을 통해서만 시작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이 신념을 갖고 나서는 나 자신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여기에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사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활권 내에는 선과 악이 뒤넘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악이 뒤넘이치는 가운데서 악한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슬픔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요선한 입장에 서게 될 때는 기쁨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사탄 편에 처하게 될 때는 슬픔이 가중되는 것이요하나님 편에 처하게 될 때는 기쁨이 출발되는 것입니다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우리 신앙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을 위주로 하여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절대적인 행복을 제시하게 될 때 비로소 슬픔의 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모색될 것이 아니냐?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하게 될 때 그렇게 출발하는 입장에 선 자신의 과거와 오늘이 얼마만큼 차이가 있느냐 하는 비례에 따라서 자신이 전진할 수 있느냐후퇴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선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나로 말미암아 선한 세계에 있어서의 슬픔은 걷힐 것입니다내 개인의 슬픔은 나만의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세계에 슬픔을 가중시키고 하늘세계 혹은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슬픔을 더욱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그런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43-97)

 

선악을 결정지어야 할 개인


선을 옹호하고선편에 서서 선을 주장하고선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동기가 되고 힘의 자극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 신앙자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내가 하는 한 마디의 말이 선을 결정하느냐악을 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고 하나의 행동이 선을 결정하느냐악을 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러한 엄청난 신앙자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우리가 신앙자로서 가는 길에 있어서는 한 마디의 말도 함부로 할 수 없고하나의 행동도 함부로 할 수 없으며한 가지의 생각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만일에 말 한 마디를 잘못하면 그 말로 인해서 악이 자기를 시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 성립됩니다선이 선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여러분 자신은 지극히 작은 자로되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가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선악의 세계가 대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여러분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과거,현재미래의 역사세계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그 말 한 마디가 평상시에는 아무런 내용을 갖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또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표정이지만 그 표정을 보는 사람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의 한 마디 말과 하나의 표정은 역사성을 띤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이 그러한 기준의 자리에 섰다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망하게 될 때는 한꺼번에 망하지 않습니다어느 한 때의 기분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한 때의 기분이 망할 수 있는 기원이 됩니다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말 한 마디가 그런 기원이 되고 엄청난 악의 출발의 조성점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여러분의 표정 하나가 사망세계를 결정할 수 있고 사탄의 완전한 무대가 출발할 수 있는 하나의 표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43-99)

 

먼저 하나님이 수고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활을 하면서 맹세해야 할 것은 오른편이 하나님의 편이라면 하나님을 찾아 오른편으로 가야 되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오른편 위로 올라가야 되겠습니다여러분이 오른편으로 가고 위로 올라가는 것은 슬픈 입장에서 기쁜 입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 년 동안 뜻길을 갔다 할 때그것은 자기의 공로로 말미암아 간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간 것이고 하나님의 수고의 실적을 통해서 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됩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까지 뜻 앞에 남아졌고오늘도 뜻 앞에 있어서 내일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역사과정에서 내가 하나님한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웠고 너무나 많은 빚을 졌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신앙길에서는 가면 갈수록 머리를 들어 자기를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의 심도를 높여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오늘의 나는 과거를 돌아볼 때 타락의 후예임이 분명합니다그런데 현재를 볼 때 자신이 선한 자리에 섰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잘나서가 아닙니다과거의 선조의 공적은 물론이요하나님이 현재 내 생명의 터전을 남기시기 위해서 무수한 수난의 대가를 치르신 결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43-101)

 

항상 자각된 입장에 서야

 

악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은 악에서 결실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나 자신이 선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나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그러니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바쳐 드리면서 하나님과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노력해야 점진적인 결과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쁨이 있으면 이것은 내 기쁨이다내가 잘해서 오늘 이 기쁨이 찾아온 것이니까 당연히 내 기쁨이다.” 하면서 당당하게 부르짖고 스스로 이 사실을 공인시키려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하나님 앞에 배치되는 또 하나의 주체가 생겨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삼각지대에 서 있습니다.


일생에 있어서 개인이나 가정을 넘어 종족민족국가적인 사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각 단계에 있어서 삼각작전을 하는 것입니다거기에서 한 걸음을 잘 내디디면 국가적인 공신이 되는 것이요,한 걸음을 잘못 내디디면 국가적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정은 누가 하느냐? 우리 개인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로서 무엇보다도 우선 싸워서 이겨야 할 최고의 표적이요승리의 기준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자료를 수집해야 합니다악이 얼마나 악한가와 그 악의 흉계를 알고 악이 그 범위를 얼마나 크게 하고 있느냐범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것을 측정해야 합니다그래 가지고 악이 선을 대하여 공격하던 그 이상의 힘을 모으고 그 이상의 공격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를 악에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악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화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주의하지 않고언제나 분별하지 않고,언제나 선 앞에 기준을 맞추지 않고 가다 보면 악으로 돌아가게 되고 맙니다습관적인 행로는 그 기원에서 이탈할 수 없기 때문에 악의 기원을 가진 우리의 습관적인 행로의 결과는 반드시 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생활은 그것과 반대의 행로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 편으로 전진할 수 없을 것입니다. (43-103)

 

하나님이 기쁨을 주신 이유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가 그렇습니다. 좋은 것은 역사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또한좋은 것은 시대성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또한그것은 미래와 더불어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역사성을 부정하게 될 때는 기쁨을 지닐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됩니다시대성을 부정하는 자리에서는 그 기쁨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여러분이 미래성을 지니고 있는 그 기쁨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면 미래를 향하여 가야 할 여러분 앞에 기쁨은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는 그 기쁨은 창세 전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창세 이후그리고 복귀과정을 거쳐 가지고 복귀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시대적인 중심을 결정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그 시대의 중심뿐만 아니라 미래의 출발의 기원을 세우기 위한 기쁨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 기쁨을 가졌다는 것은 역사를 대신한 것이요시대를 대신한 것이요미래를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쁨은 현실에 심어 놓아야 되고미래에 심어 놓을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나에게 있어서의 기쁨은 나를 위한 기쁨이 아니라 세계적인 기쁨이어야 합니다따라서기쁨이 크면 클수록 자기 자신이 그것을 결실하려고 하는 것보다도 더 높고 귀하고 가치 있는 그것을 향하여 전진해야 됩니다여러분이 타락한 이 악의 세계슬픔의 바탕이 되어 있는 이 세계에서 그 어떤 기쁨을 느껴 가지고 세상의 환경을 규합하여 그 기쁨 이상의 자리까지 나아가 거할 수 있는 한 때를 가졌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더불어 가면서 주신 기쁨을 자기의 것으로 알면 안됩니다자기의 것으로 아는 사람은 망합니다그것을 나에게 주신 것은 역사를 대신해서 주신 것이요나에게 느끼게 하신 것은 역사를 대신해서 느끼게 하신 것이요나를 그런 자리에 세우신 것은 미래의 출발을 공고화시켜 달라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43-106)

 

신앙자가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태도는 언제나 빚진 자의 자세이어야 됩니다빚을 갚지 못하는 자리에 서 보라는 것입니다정말로 비참합니다.


빚진 자가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는 것을 채권자가 보게 될 때는 동정하게 됩니다그런데 빚을 갚을 것은 꿈도 안 꾸고 돈 있으면 좋은 것을 사고 먹을 것 다 사 먹으면서 자기만 잘살려고 하는 날에는 그것이 화근이 됩니다빚진 자는 언제나 빚을 갚겠다고 하는 태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반드시빚을 갚고야 말겠다고 하는 태도가 빚보다 크게 될 때는 채권자가 그 사람을 참소하지 못합니다오히려그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신앙자의 태도도 이와 같은 빚진 자의 자세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복귀의 행각노정에 있어서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맞게 될 때는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초조함 속에서 복귀의 어려움을 알고또 그것을 해결짓기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며 몸부림쳐야 됩니다그렇게 한 고비 한 고비를 밟고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공적인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러한 입장에서 몸부림치며 뒤넘이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 사람들은 그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자기의 종족을 망하게 하고 자기의 선조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의 말한 가지의 행동을 잘못하면 자기 혼자만 걸려드는 것이 아닙니다하늘땅이 걸려 들어갑니다지금까지 잘 쌓아 놓은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작은 자아가 지녀야 할 신앙자로서의 자세는 빚진 자의 자세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종족적인 제물시대가 오는데 빚진 자의 자세를 안 가지고 제물을 하나라도 바칠 수 있겠어요민족적인 제물시대가 오면 민족적인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빚진 자의 자세를 안 가지고 할 수 있어요어림도 없습니다무대가 점점 가중되고 커지면 커질수록 빚진 자의 자세를 가지고 가야 할 길이 신앙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말은 순식간에 하지만 그 한 마디를 잘못하게 되면 그것이 1년까지 갑니다한 순간에 잘못 말한 것을 1년 동안 청산시키는 놀음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43-108)

 

동정을 남기는 신앙생활

 

신앙자로서 생각할 수 없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죄를 지었으면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안됩니다. 그저 철부지같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하는 아버지!” 하는 것은 떠벌리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부끄러워해야 됩니다하나님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아버지 앞에 서기에 부끄럽다고 하면서 자기의 자세를 갖추고 또 갖추는 그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자식이라도 자랑하시지 않으면 안될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하고세상이 악하니 만큼 이런 나를 필요로 하시는 아버지의 사연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동정의 마음을 유발시켜 가지고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그때는 아버지라는 말만 하게 되어도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그래야 회개를 해도 그 회개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회개가 됩니다인간은 죄 짓는 것이 당연하고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닙니다.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좋은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단장하여 어엿한 신부의 차림으로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옷을 빌려 입거나혹은 꿰맨 옷을 입고 갔다고 해보십시오옷을 장만하지 못하고 그렇게 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여러분은 그와 같이 얼굴을 들 수 없는 한 때를 당해 봐야 됩니다생사의 문제를 중심삼은 결정적인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그 이상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서부터 보다 깊은 신앙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길에 있어서 빚진 자와 같이 처신해야 됩니다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운 자의 친구가 되어 주고 부끄러워하는 자를 감싸 줄 수 있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런 입장에 선 것입니다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 보아야 예수님의 고마움을 아는 것입니다또한선생님이 고마운 분이라는 것도 알고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43-113)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는 마음자세

 

여러분이 선악의 경계선에 서 가지고 판가리의 싸움을 하는 입장에서 한 걸음을 잘못하면 사망의 세계로 떨어지고 한 걸음을 잘하면 생명의 세계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신앙길에 있어서 그런 싸움의 노정에서 선악을 가려 가지고 악을 밟아치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동정해 주고 입증해 줄 수 있는 친구동역자혹은 어떤 스승이 있거든 자기를 위해 수고해 준 그 뜻을 생각해야 됩니다그리하여 자신의 위신이나 체면을 다 잊어버리고 그 앞에 완전히 종의 종이 되어도 좋고그 앞에 있어서 죽음을 당해도 감사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완전히 감사하는 자리에서 그 은사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나는 악의 사슬을 벗어나는 데 있어서 내 생명을 바치더라도 고맙다.”고 해야 됩니다그런 마음을 갖는 데서부터 본연의 신앙자로서의 자세를 갖추어 출발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천 번 죽더라도 감사하고자기의 존재가 없어지더라도 감사해야 됩니다여러분이 그런 각오를 가지고 출발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선생님은 못 믿습니다자기가 뭘 했다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못 믿겠습니다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갈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여러분은 빚진 자의 자세로서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한 날의 생활,하나의 표정혹은 하나의 행동을 가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갖고 가는 사람들은 망하겠다고 해도 하나님이 부활할 수 있는 축복의 터전을 만들어 주십니다죽겠다고 하는 길은 부활의 길이지 죽음의 길이 아닙니다그럴 수 있는 사람이 죽게 되면 하나님도 곤란해지신다는 것입니다만약에 그런 한 사람이 있다면그 사람이 죽었다가는 큰일납니다죽을 자리에 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달려들어 가지고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망할 자리에 들어가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도중에서 가로막습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될 때 나 하나를 중심삼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타락으로 인한 복귀의 한을 품으시고 뒤넘이친 것만도 원통하실 텐데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에 대해 이렇게 죽음의 길을 가려 주시는 은혜를 생각하면 황공 망극함을 느껴야 합니다그런 마음이 신앙생활의 바탕이 되게 될 때그것이 정상적인 신앙의 길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43-118)*

&&&& 천일국 훈독경 제3권  9일, 원문 &&&&

 

신앙자의 자세

 

날짜 : 1971. 4. 25()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인간들이 잃어버린 소망의 세계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인류 시조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여 타락한 그날부터 인류는 슬픔의 자리에 떨어졌습니다그런데 그 슬픔이 여러분이 사는 데 있어서 느끼고 있는 그 정도의 슬픔일 것이냐그렇지 않으면 그 이상의 슬픔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절망 가운데 빠져서 슬픔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 그 절망을 박차고 나오면 새로운 소망의 기운을 가질 수 있습니다슬픔의 경지에서 소망의 경지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우리 인간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슬픔이라는 것이 자기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슬픔은 나를 넘어서 가정친척민족국가세계와 관계되어 있으며더 나아가 지금까지의 전역사도 슬픔 가운데서 이어져 내려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그 슬픔은 내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슬픔의 뿌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온 역사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내가 당하는 슬픔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내용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3-94)

 

슬픈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러면 슬픔의 근원은 어디냐슬픔의 뿌리가 무엇이냐그 슬픔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연결되는 것이요그 슬픔이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자포자기의 자리나 패배의 서러운 자리뿐만 아니라 사망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생활하는 주변에서 기쁜 일을 보는 것보다도 너무나 많은 슬픈 사실들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이러한 슬픈 환경을 박차고 나서지 않고는 우리가 소망하는 기쁨의 세계기쁨의 천국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쁨의 세계와 기쁨의 천국까지 가려고 할 때 자신의 힘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느냐슬픈 자리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어서 신앙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우리에게는 슬픔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 느낌에 비례하여 당하는 슬픔을 타개하고제거시키고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힘의 모체가 필요합니다.

슬픔의 경지에 둘러 싸여 있는 우리 자신이 그 슬픔을 타파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자신임을 알게 될 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중심자즉 어떤 실체를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그러므로 오늘 현재의 입장을 극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을 찾는 데 있어서는 신앙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하는 사람은 슬픈 자리에 동조하여 끌려갈 것이 아니라 슬픈 자리가 되지 않게 방비하고 슬픈 요인을 제거시키고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그러한 개인적인 생활환경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라야 신앙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또한신앙자의 자세를 두고 볼 때 내 개인적인 입장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세계적인 차원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용어로 말하면 천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주적이라는 명사를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대한 천주적인 노정을 거쳐가야 할 것이 오늘날의 인간이요인생에 있어서 필시 가야 할 행로요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운명길입니다그러나 자신이 홀로 계획하고 자신이 홀로 간다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신앙의 중심이 되는 그분의 뜻즉 내 뜻을 버리고 그분의 뜻을 중심삼고 가야 하는 것이고 내 목적을 버리고 그분의 목적을 중심삼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슬픔의 목적과 슬픈 자아의 입장을 버리고 기뻐할 수 있는 목적과 기뻐할 수 있는 자아로 어떻게 복귀해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결심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심이 일년을 못 가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룻날에 일년의 계획을 세워서 결심하고 나선 그 행로가 몇 개월도 못 가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보아 왔고또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내가 선에 대한 결심을 품었다고 하더라도 사망권에 포함된 나 자신으로서는 그 결심도 슬픔의 권내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 슬픔권을 타파할 수 있는 소망이라든가 결심이나 자각된 결의를 내가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내가 여기에서 살고는 있지만 이 사망의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피안의 어떤 선권에 있다고 자처할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가 현재의 슬픈 환경을 불식시키고 선권을 점령할 수 있느냐없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43-95)

 

절대자를 중심삼은 내가 되어야

 

그런 자리를 자각해 가지고 결심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심은 한때에 불과하지 영속적이지 못합니다. 일 년십 년혹은 일생 동안 그렇게 나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우리가 지극히 희망하는 문제임을 신앙생활을 통해서 잘 느끼는 것입니다제아무리 스스로 결심했더라도 그 결심을 홀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느냐 할 때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타락의 사망권 내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홀로는 극복할 수 없는 자신이요홀로는 갈 수 없는 자신입니다아무리 몸부림쳐서 위로 올라가더라도 되돌아 내려오기 때문에 그 슬픔권을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이요그 한계권을 초월할 수 없는 내가 아니냐는 것입니다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 노력 자체가 자기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자기에게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앙노정을 통해서만 시작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이 신념을 갖고 나서는 나 자신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여기에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사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활권 내에는 선과 악이 뒤넘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악이 뒤넘이치는 가운데서 악한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슬픔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요선한 입장에 서게 될 때는 기쁨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사탄 편에 처하게 될 때는 슬픔이 가중되는 것이요하나님 편에 처하게 될 때는 기쁨이 출발되는 것입니다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우리 신앙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을 위주로 하여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절대적인 행복을 제시하게 될 때 비로소 슬픔의 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모색될 것이 아니냐?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하게 될 때 그렇게 출발하는 입장에 선 자신의 과거와 오늘이 얼마만큼 차이가 있느냐 하는 비례에 따라서 자신이 전진할 수 있느냐후퇴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어제보다도 오늘이 더 발전될 수 있는 내용을 겸비하게 될 때는 선한 자리로 한 걸음 전진할 것이요어제보다도 하나님 앞으로 가일보 전진할 것이로되 어제보다도 오늘이 침체되게 될 때는 선 앞에 있어서 반대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선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나로 말미암아 선한 세계에 있어서의 슬픔은 걷힐 것입니다그렇지 못하면 나 자신의 슬픔이 선한 세계에 슬픔을 가해 줄 수 있고타락한 인간 한 개인의 슬픔이 하나님의 슬픔까지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러한 엄청난 자리에 선 것이 우리 인간이요그러기에 노력하며 가고 있는 것이 신앙노정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내 개인의 슬픔은 나만의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세계에 슬픔을 가중시키고 하늘세계 혹은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슬픔을 더욱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그런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그런 경지에 서게 되거나 신앙길에 있어서 탄식하고 후회하며 좌절하는 자리에 섰다고 하게 될 때 그 자리에는 나만이 선 것이 아닙니다슬픈 자리에 서서는 안될 신앙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이 그런 자리에 서신 것이요하늘세계가 그런 자리에 선 것입니다또한앞으로 선한 후손들이 가야 할 선의 터전은 물론이요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선조들이 선을 중심삼고 싸워 이룬 터전수고의 대가를 치러서 이룬 역사적인 선의 터전이 있으면 그것 자체가 나로 말미암아 탄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만약에 나 자신이 그런 자리에 섰다면 나에게서 선한 길은 그만큼 멀어질 것이요하나님도 그만큼 멀어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그러면 사탄은 그 멀어지는 차이에 비례하여 자기의 무대를 공고화시킬 것이고그 공고한 토대 위에서 나를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반기를 들고 공격할 것입니다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싸움터에 서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43-97)

 

선악을 결정지어야 할 개인

 

선을 옹호하고선편에 서서 선을 주장하고선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동기가 되고 힘의 자극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 신앙자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런데 신앙자가 잘못하면 오히려 악이 선 앞에 대항하고 선을 희생시키는 입장에 서게 할 수도 있습니다이것이 자신의 신앙생활로 말미암아 좌우됩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오늘 처해 있는 입장이 자신만의 입장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내가 하는 한 마디의 말이 선을 결정하느냐악을 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고 하나의 행동이 선을 결정하느냐악을 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나의 말 한 마디나 표정 하나가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는 것이 되느냐슬픔을 자극시킬 수 있는 것이 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그 슬픔과 기쁨은 나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닙니다이 방대한 우주방대한 세계방대한 역사와 더불어 관계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신앙자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우리가 신앙자로서 가는 길에 있어서는 한 마디의 말도 함부로 할 수 없고하나의 행동도 함부로 할 수 없으며한 가지의 생각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만일에 말 한 마디를 잘못하면 그 말로 인해서 악이 자기를 시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 성립됩니다선이 선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선이 아무리 주장해 봤자 그 주장하는 주장을 악 앞에 양보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다시 말하면여러분 자신은 지극히 작은 자로되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가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선악의 세계가 대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여러분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과거현재미래의 역사세계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습니다여러분은 이 엄청난 사실을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그 말 한 마디가 평상시에는 아무런 내용을 갖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또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표정이지만 그 표정을 보는 사람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의 한 마디 말과 하나의 표정은 역사성을 띤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이 그러한 기준의 자리에 섰다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망하게 될 때는 한꺼번에 망하지 않습니다어느 한 때의 기분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한 때의 기분이 망할 수 있는 기원이 됩니다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말 한 마디가 그런 기원이 되고 엄청난 악의 출발의 조성점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여러분의 표정 하나가 사망세계를 결정할 수 있고 사탄의 완전한 무대가 출발할 수 있는 하나의 표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선악은 일생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우왕좌왕하면서 한 발을 내딛게 될 때 결정됩니다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것이요선한 생애노정도 한 걸음을 가려 가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한꺼번에 180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몇 걸음을 움직여 갈 때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여러분 신앙자의 입장은 저울눈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눈금이 조금만 틀리게 되면 저울대가 왔다갔다합니다이와 같은 입장에 선 것이 오늘날의 신앙자의 입장입니다(43-99)

 

먼저 하나님이 수고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활을 하면서 맹세해야 할 것은 오른편이 하나님의 편이라면 하나님을 찾아 오른편으로 가야 되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오른편 위로 올라가야 되겠습니다여러분이 오른편으로 가고 위로 올라가는 것은 슬픈 입장에서 기쁜 입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방향을 돌리면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언제나 힘이 소모됩니다이 힘을 뒷받침해 주지 않고는 현재의 입장을 견디거나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지금 이 시간에도 힘의 소모가 가중되고 있습니다치열한 힘의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소모되는 힘을 어디에서 보급할 것이냐먼저나 자신이 보급해 줘야 합니다나 자신이 보급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현상유지는 될 수 있습니다더 나아가서는하나님이 힘을 보강해 주셔야 됩니다그런데 하나님의 힘을 보강받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공로가 아닙니다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여러분이 십 년 동안 뜻길을 갔다 할 때그것은 자기의 공로로 말미암아 간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간 것이고 하나님의 수고의 실적을 통해서 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됩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까지 뜻 앞에 남아졌고오늘도 뜻 앞에 있어서 내일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역사과정에서 내가 하나님한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웠고 너무나 많은 빚을 졌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신앙길에서는 가면 갈수록 머리를 들어 자기를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의 심도를 높여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머리를 숙일 수 있는 겸손의 도를 높여야 된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신앙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오늘의 나는 과거를 돌아볼 때 타락의 후예임이 분명합니다그런데 현재를 볼 때 자신이 선한 자리에 섰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잘나서가 아닙니다과거의 선조의 공적은 물론이요하나님이 현재 내 생명의 터전을 남기시기 위해서 무수한 수난의 대가를 치르신 결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길을 존속해 가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밑바닥에서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무한한 힘을 소모하는 수고의 대가를 치르고 계십니다그런 보상 밑에서 오늘날 여러분이 기쁨을 차지할 수 있고 선 앞에 섰다는 자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43-101)

 

항상 자각된 입장에 서야

 

악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은 악에서 결실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나 자신이 선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나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그러니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바쳐 드리면서 하나님과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노력해야 점진적인 결과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의 자리는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시작되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기뻐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먼저 기뻐하신 후에 내가 기뻐해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렇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신앙자의 입장입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쁨이 있으면 이것은 내 기쁨이다내가 잘해서 오늘 이 기쁨이 찾아온 것이니까 당연히 내 기쁨이다.” 하면서 당당하게 부르짖고 스스로 이 사실을 공인시키려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하나님 앞에 배치되는 또 하나의 주체가 생겨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삼각지대에 서 있습니다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삼각지대라는 것입니다내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도 마음과 몸에서는 하나님과 사탄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그러기에 나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보태 드리면 나는 하나님 편으로 가는 것이요반대되게 될 때는 사탄 편으로 가는 것입니다.

일생에 있어서 개인이나 가정을 넘어 종족민족국가적인 사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각 단계에 있어서 삼각작전을 하는 것입니다거기에서 한 걸음을 잘 내디디면 국가적인 공신이 되는 것이요한 걸음을 잘못 내디디면 국가적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매국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정은 누가 하느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우리 원리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개인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분담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 결정을 할 수 있는 요인을 가졌다 놓았다잃어버렸다 찾았다 해서는 안됩니다언제나 여러분의 마음에 있어야 됩니다이것이 신앙자로서 무엇보다도 우선 싸워서 이겨야 할 최고의 표적이요승리의 기준입니다우리가 이것을 망각할 때는 출발기점과 결과가 틀리게 됩니다출발기점에서부터 그렇게 휩쓸려 갔다면 현재의 입장은 자연히 부정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자료를 수집해야 합니다악이 얼마나 악한가와 그 악의 흉계를 알고 악이 그 범위를 얼마나 크게 하고 있느냐범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것을 측정해야 합니다그래 가지고 악이 선을 대하여 공격하던 그 이상의 힘을 모으고 그 이상의 공격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앞으로총투입시켜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여러분이 신앙길에 있어서 슬픔에 사로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마음이 어느 한때에 풀어질 것이다.” 하는 신념을 갖지 못한다면 신앙길을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를 악에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악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화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주의하지 않고언제나 분별하지 않고언제나 선 앞에 기준을 맞추지 않고 가다 보면 악으로 돌아가게 되고 맙니다습관적인 행로는 그 기원에서 이탈할 수 없기 때문에 악의 기원을 가진 우리의 습관적인 행로의 결과는 반드시 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생활은 그것과 반대의 행로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생활을 하루하루순간 순간에서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그러지 않고는 하늘 편으로 전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43-103)

 

하나님이 기쁨을 주신 이유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가 그렇습니다통일교인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한때는 뭐 뜻을 위해 일한다고 야단법석을 합니다그거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좋은 것은 역사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또한좋은 것은 시대성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또한그것은 미래와 더불어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만일여러분이 역사성을 부정하게 될 때는 기쁨을 지닐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됩니다시대성을 부정하는 자리에서는 그 기쁨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여러분이 미래성을 지니고 있는 그 기쁨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면 미래를 향하여 가야 할 여러분 앞에 기쁨은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는 그것은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그 기쁨은 창세 전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창세 이후그리고 복귀과정을 거쳐 가지고 복귀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시대적인 중심을 결정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그 시대의 중심뿐만 아니라 미래의 출발의 기원을 세우기 위한 기쁨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 기쁨을 가졌다는 것은 역사를 대신한 것이요시대를 대신한 것이요미래를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쁨은 내 자신에 뿌릴 것이 아닙니다이것을 현실에 심어 놓아야 되고미래에 심어 놓을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해야 되겠습니다그리하여 세계와 더불어 기뻐하고미래와 더불어 기뻐하고그럼으로 말미암아 영계도 해원성사함을 받아 가지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그렇게 기원이 되었으면 그렇게 결과를 맺는 것이 우주의 이치인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의 기쁨은 나를 위한 기쁨이 아니라 세계적인 기쁨이어야 합니다따라서기쁨이 크면 클수록 자기 자신이 그것을 결실하려고 하는 것보다도 더 높고 귀하고 가치 있는 그것을 향하여 전진해야 됩니다오늘날 여러분이 타락한 이 악의 세계,슬픔의 바탕이 되어 있는 이 세계에서 그 어떤 기쁨을 느껴 가지고 세상의 환경을 규합하여 그 기쁨 이상의 자리까지 나아가 거할 수 있는 한 때를 가졌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요이 시대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요,과거를 가지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과거 현재 미래, 3시대의 대가를 치른 입장이 아니고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여러분과 더불어 가면서 주신 기쁨을 자기의 것으로 알면 안됩니다자기의 것으로 아는 사람은 망합니다그것을 나에게 주신 것은 역사를 대신해서 주신 것이요나에게 느끼게 하신 것은 역사를 대신해서 느끼게 하신 것이요나를 그런 자리에 세우신 것은 미래의 출발을 공고화시켜 달라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43-106)

 

신앙자가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태도는 언제나 빚진 자의 자세이어야 됩니다신앙자로서 제일 중요한 자세는 빚진 자의 자세입니다여러분빚져 봤어요빚진 것이 없으면 빚을 좀 져 가지고 단련해 보십시오빚진 자의 수고가 어떻구나 하는 것을 알아보십시오빚을 갚지 못하는 자리에 서 보라는 것입니다정말로 비참합니다한 푼이라도 빚을 지면 그 조건으로 멱살을 잡힐 수 있고 근본적으로 인격을 부정당할 수 있습니다거기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빚이라는 것은 반드시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빚진 자가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는 것을 채권자가 보게 될 때는 동정하게 됩니다그런데 빚을 갚을 것은 꿈도 안 꾸고 돈 있으면 좋은 것을 사고 먹을 것 다 사 먹으면서 자기만 잘살려고 하는 날에는 그것이 화근이 됩니다빚진 자는 언제나 빚을 갚겠다고 하는 태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반드시빚을 갚고야 말겠다고 하는 태도가 빚보다 크게 될 때는 채권자가 그 사람을 참소하지 못합니다오히려그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신앙자의 태도도 이와 같은 빚진 자의 자세여야 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기쁜 것이나 이익이 찾아오면 그것을 누구한테 돌려야 되느냐그럴 때는 빚을 갚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자신에게 어떤 기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빚을 갚아 주어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그것을 내 것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만일,빚진 사람이 채권자의 재촉을 받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불응하면 그는 완전히 부정당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자기로 말미암아 기쁨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복귀의 행각노정에 있어서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맞게 될 때는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초조함 속에서 복귀의 어려움을 알고또 그것을 해결짓기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며 몸부림쳐야 됩니다그렇게 한 고비 한 고비를 밟고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공적인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러한 입장에서 몸부림치며 뒤넘이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 사람들은 그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자기의 종족을 망하게 하고 자기의 선조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자세는 빚진 자의 자세여야 됩니다한 마디의 말한 가지의 행동을 잘못하면 자기 혼자만 걸려드는 것이 아닙니다하늘땅이 걸려 들어갑니다.지금까지 잘 쌓아 놓은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10년 세월을 보냈으면 그 10년 세월이 아까운 것입니다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따라서 생애를 바쳐 나왔다면 지난날 자기의 청춘시절을 바쳐서 정성들인 것이 한스러운 것입니다.

봄이 지나고여름이 지나고 초가을까지 왔으면 늦가을까지 가고늦가을까지 왔으면 겨울까지 지내보라는 것입니다겨울 절기가 지나고 봄이 될 때까지 가 보라는 것입니다그렇게 나아가야 할 것이 신앙자의 자세입니다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두 바퀴를 돌고세 바퀴를 돌면서 나가야 합니다한 바퀴를 도는 데도 탕감이 있고두 바퀴를 도는 데도 탕감이 있습니다돌면 돌수록 탕감이 커집니다개인에서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로 점점 커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이라는 것이 작은 자아가 지녀야 할 신앙자로서의 자세는 빚진 자의 자세입니다. 그러한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종족적인 제물시대가 오는데 빚진 자의 자세를 안 가지고 제물을 하나라도 바칠 수 있겠어요민족적인 제물시대가 오면 민족적인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빚진 자의 자세를 안 가지고 할 수 있어요어림도 없습니다무대가 점점 가중되고 커지면 커질수록 빚진 자의 자세를 가지고 가야 할 길이 신앙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말은 순식간에 하지만 그 한 마디를 잘못하게 되면 그것이 1년까지 갑니다.한 순간에 잘못 말한 것을 1년 동안 청산시키는 놀음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43-108)

 

동정을 남기는 신앙생활

 

신앙길에 있어서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그것을 바로잡기가 심히 어렵습니다신앙자로서 생각할 수 없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죄를 지었으면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안됩니다. 나는 그런 기도를 못 합니다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으면 기도가 안됩니다아버지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나 부끄럽습니다아버지라고 부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여러분 그런 것을 알아요그저 철부지같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하는 아버지!” 하는 것은 떠벌리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부끄러워해야 됩니다자기의 동지를 만나도 예절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이 앞서야 됩니다하나님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아버지 앞에 서기에 부끄럽다고 하면서 자기의 자세를 갖추고 또 갖추는 그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자식이라도 자랑하시지 않으면 안될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하고,세상이 악하니 만큼 이런 나를 필요로 하시는 아버지의 사연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동정의 마음을 유발시켜 가지고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그때는 아버지라는 말만 하게 되어도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그래야 회개를 해도 그 회개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회개가 됩니다인간은 죄 짓는 것이 당연하고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닙니다.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좋은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단장하여 어엿한 신부의 차림으로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옷을 빌려 입거나혹은 꿰맨 옷을 입고 갔다고 해보십시오.옷을 장만하지 못하고 그렇게 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여러분은 그와 같이 얼굴을 들 수 없는 한 때를 당해 봐야 됩니다생사의 문제를 중심삼은 결정적인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그 이상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서부터 보다 깊은 신앙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길에 있어서 빚진 자와 같이 처신해야 됩니다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운 자의 친구가 되어 주고 부끄러워하는 자를 감싸 줄 수 있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런 입장에 선 것입니다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 보아야 예수님의 고마움을 아는 것입니다또한,선생님이 고마운 분이라는 것도 알고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공석에서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이런 말을 하기까지는 오랜 침묵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수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열 번 이상을 생각합니다그런 자리로 자기를 몰아넣습니다말은 남의 말을 하고 행동은 남의 행동을 하면서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그러면서도 나는 다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신앙자의 자세는 빚진 자의 자세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신앙생활에 동정을 남기고 가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이 납니다지금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나 자신이 공적인 입장에서 어디를 갔다가 예배시간에 늦었다고 해도 나오기 전에 기도합니다예배시간이 되었는데 못 가게 될 때가 있으면 그때에도 반드시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주체적인 책임을 짊어진 자로서 식구들이 나를 걸고 복 받겠다고 하고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성들이고 있는데 그 시간에 가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그러한 기도가 필요합니다그렇지만 그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43-113)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는 마음자세

 

여러분이 선악의 경계선에 서 가지고 판가리의 싸움을 하는 입장에서 한 걸음을 잘못하면 사망의 세계로 떨어지고 한 걸음을 잘하면 생명의 세계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어떤 때는 12시간 혹은 24시간 동안 기도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그때는 생각으로 싸운 것입니다어떤 사실을 놓고 싸운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치열한 싸움을 한 것입니다그런 싸움을 하던 자리에 있어서는 생각 일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그런 심각한 경지의 수난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는 나한테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신앙길에 있어서 그런 싸움의 노정에서 선악을 가려 가지고 악을 밟아치우지 않으면 안됩니다그런 노정이 여러분의 신앙길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그러한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지금 여러분의 입장에서 해야 할 사명입니다여러분이 그런 문제를 알고 빚진 자를 대신해 침묵으로써 나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풀며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동정해 주고 입증해 줄 수 있는 친구동역자혹은 어떤 스승이 있거든 자기를 위해 수고해 준 그 뜻을 생각해야 됩니다그리하여 자신의 위신이나 체면을 다 잊어버리고 그 앞에 완전히 종의 종이 되어도 좋고그 앞에 있어서 죽음을 당해도 감사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완전히 감사하는 자리에서 그 은사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나는 악의 사슬을 벗어나는 데 있어서 내 생명을 바치더라도 고맙다.”고 해야 됩니다그런 마음을 갖는 데서부터 본연의 신앙자로서의 자세를 갖추어 출발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천 번 죽더라도 감사하고자기의 존재가 없어지더라도 감사해야 됩니다여러분이 그런 각오를 가지고 출발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특별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선생님은 절대로 안 나타납니다그것은 왜 그러느냐복귀역사를 보면누구부터 속죄를 받았느냐만물부터 속죄를 받았습니다구약시대에는 만물이 속죄를 받았지요그 다음에는 무엇이 속죄를 받았느냐?종들이 속죄를 받은 것입니다그 다음에는 누가 속죄를 받았느냐양자가 속죄를 받았습니다그 다음은 아들이 속죄를 받아야 됩니다예수님도 속죄를 못 했기 때문에 속죄를 하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그 다음에는 부모가 속죄받는 것입니다순서는 그렇습니다그런데 좋은 것은 나부터다.” 하면 거꿀잡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선생님은 못 믿습니다자기가 뭘 했다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못 믿겠습니다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갈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여러분은 빚진 자의 자세로서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한 날의 생활하나의 표정혹은 하나의 행동을 가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갖고 가는 사람들은 망하겠다고 해도 하나님이 부활할 수 있는 축복의 터전을 만들어 주십니다죽겠다고 하는 길은 부활의 길이지 죽음의 길이 아닙니다그럴 수 있는 사람이 죽게 되면 하나님도 곤란해지신다는 것입니다만약에 그런 한 사람이 있다면그 사람이 죽었다가는 큰일납니다죽을 자리에 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달려들어 가지고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망할 자리에 들어가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도중에서 가로막습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될 때 나 하나를 중심삼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타락으로 인한 복귀의 한을 품으시고 뒤넘이친 것만도 원통하실 텐데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에 대해 이렇게 죽음의 길을 가려 주시는 은혜를 생각하면 황공 망극함을 느껴야 합니다그런 마음이 신앙생활의 바탕이 되게 될 때그것이 정상적인 신앙의 길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43-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