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3권 제 6 일
16 훈독경 3권 6일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내적인 자아 1.mp3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내적인 자아 (훈독본)
날짜 : 1969. 1. 19(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뜻이 아무리 여러분 앞에 가까이 다가왔더라도 여러분이 그 뜻을 환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뜻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뿐만 아니라 노아의 시대에도 그랬었고 아브라함의 시대, 모세의 시대 등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나 문제가 되는 것은 뜻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동화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뜻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문제
그래서 특별히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그런 환경에 동화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뜻이 아무리 세계적이라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도외시한다면 이 뜻과 여러분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뜻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적인 조건 혹은 내적인 조건을 갖추어 어떻게 뜻에 결부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자들이 불신앙자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불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생활만 하면 되지만 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하고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도 아울러 해야 합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가인 아벨과 마찬가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외적인 사회생활은 가인적이며, 내적인 교회생활은 아벨적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사회생활은 내적인 생활의 상징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외적인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내적인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는 사람은 외적인 사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의 공적인 집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다면 뜻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도 희박해집니다.자기가 내적으로 설 수 있는 자리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외적인 기준도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22-35)
하나님의 임재지는 어디인가
내적인 모든 핵심을 결정짓는 자리가 바로 교회의 공적으로 집회하는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의 공적인 집회를 통해서 전통적인 기준을 세워 나왔습니다 .
여러분은 아침 경배시간이라든가, 혹은 우리 교회에서 개최하는 공식적인 집회시간에 대한 관념이 희박합니다. 도리어, 사회생활에 대한 관념과 교회생활에 대한 관념을 비교해 보게 될 때 흘러가 버리고 말 사회생활에 대한 관념이 영원히 남아져야 할 교회생활에 대한 관념보다도 앞설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여기에는 문제가 일어나고 병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팎에 대한 문제를 여러분이 확실히 가려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이 안 나는 것은 어찌하여 그렇느냐? 여러분 자신이 내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지, 즉 임재점을 결정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면 힘이 안 납니다. 개인이 무력해지는 것이나 국가가 무력해지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세계의 외적인 정세를 살피기도 해야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외적인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적인 정세를 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크고 복잡하지만 전부 다 외적인 반응 현상입니다.
그러면 내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임재지, 즉 임재점이 어디냐? 하나님이 임재하셔 가지고 모든 동기를 두실 수 있는 곳이 어디냐? 여기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곳이 외적인 세계의 모든 정세를 좌우하는 미국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그곳이 어디냐? 그곳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을 대표하는 곳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을 대표하는 곳이 바로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자체 내에 하나님의 모든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내가 어떻게 동화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적인 세계에 어떻게 동화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내적인 본거지에 어떻게 동화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게 될 때도 대한민국이나 세계에 대한 기도보다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지가 어디이며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임재하시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22-36)
하나님의 임재지
하나님은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셨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느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유대 민족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으나 그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즉 제1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했기 때문에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를 창건해서 그 기독교를 중심삼고 역사과정을 수습하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제2이스라엘도 역시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섭리하시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통일교회에 머무르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어디에 머무르시게 되었느냐?소위, 말씀에 머무르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일치가 안 되고 이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될 때는 반드시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타나 생각지도 못했던 입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살아온 사회생활 전체와 교회를 중심삼고 생활한 전체를 놓고 볼 때 어느 것이 내적이냐 하면 교회생활이 내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얼마만큼 내적인 생활의 기준을 세워 나왔느냐?혹자는 뜻을 중심삼고 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뜻이 될 것이다.” 하면서 자기의 멋대로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겠어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뜻을 세워 나오면서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었느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즉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이 어디냐? 여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떻게 일체가 되느냐?어떻게 동화되느냐? 여기에 하나님이 공인하실 수 있는 일체성의 기반을 어떻게 세워 내적으로 적응시키느냐? 이런 것들에 가장 중점을 두고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내적인 생활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내가 뜻이 원하는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적인 섭리의 기점, 즉 섭리의 임재지를 중심삼고 외적인 세계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2-38)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누구든지 만사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 기점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활 전체가 그 기점과 일치될 수 있는 생활화, 즉 동화될 수 있는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 하는데, 그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세계를 움직이고 모든 섭리를 움직이는 중심존재이신 하나님이 어디에 임재하시느냐? 임재지가 어디냐?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을 누구나 압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나오게 될 때, 그것은 본심이 오고 싶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교회를 오지 말라고 해도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비교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달라졌든가, 아니면 여러분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그 기점이 달라졌느냐, 여러분 자신이 달라졌느냐? 둘 중의 하나는 달라졌습니다.
세계가 통일되면 뭘 합니까? 그 기점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동적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자아주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아를 어떻게 완성시키느냐?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 그 기점과 언제나 일치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든 감옥이나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이것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즉, 복귀의 관문인 것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더 열심히 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점점점 시간이 촉박함에 따라서 스스로 재촉하게 되는 것이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더욱 심각해져야 되는데, 여러분은 어려우면 오히려 해이해지지요? 문제가 점점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여러분에게 심각성은 더 가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을 결정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상대적인 결정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2-40)
하나님의 임재점에서 충성해야
여러분이 복귀섭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복귀섭리의 7년 노정이면 7년 노정을 거쳐 나가는 길에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에 개인이 일치되어 나가며, 가정이 일치되어 나가며, 종족이 일치되어 나가며, 국가와 세계가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에 일치되기 위해서는 “내가 국가를 위해 충성만 하면 됐지, 중심이 어떻고 임재점이 어쨌든 상관없다.” 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국가를 위해서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임재점에서 충성하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기 전에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 들어와 가지고 봉사하여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내적인 인연의 결과인 외적인 세계에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이 병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병폐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에 동화될 수 있는 생활적인 터전이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가 아무리 넓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렵다고 거기에서 낙망하고 지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실 곳은 다른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실 곳이 딴 곳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로구나! 이 자리가 하나님이 최고로 안식하실 수 있는 자리요, 이 자리가 최고의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자리로구나!” 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백방으로 느끼고 생활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 인연을 맺으시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날이 가면 갈수록 새로움을 느끼며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아무리 외적으로 큰소리를 쳐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충성하는 데 있어서 그 기점이 어디에 있느냐? 반드시 부모의 마음과 몸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22-42)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함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느냐
자신이 태어난 것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인간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의 출발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치된 자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생명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존재하는 것이 그냥 그대로 생겨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왜 하시느냐? 본연의 부모, 즉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참부모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실체적인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해도 유만부동이지, 하나님 알기를 자기 집의 장롱 속에 들어 있는 패물보다도 못하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주시옵소서!”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길을 닦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그렇지 않고 여러분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같이하실 수 있겠습니까? (22-43)
신앙생활의 척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통일교회의 본부에 오지 말라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는 세상의 명예, 세상의 권력, 세상의 부귀보다도 선생님이 안 만나 주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인식과 신념이 부족합니다.
선생님이 세계적인 복귀섭리역사를 담당하고 나오지만 아직도 선생님은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면 기쁨을 돌려드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섭리를 해 나온 이 시점에 있어서 내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모습을 어떻게 취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갖춰야 할 예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법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예법을 갖추어 나가야 됩니다. 가정에서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가정을 이끌어야 할 책임진 사람은 이 예법을 갖추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점은 한국이지만 이 임재점은 한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 임재점은 세계를 대표한 임재점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곳을 향해서 일치되고 동화되기 위해서 정성들여 나오면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인식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어 놓고 에덴 동산에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임재하시려고 했는데 그 기점을 잃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역사는 6천 년 동안 슬픔의 역경과 개척의 노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희생의 관문을 통과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어느 곳에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해 오셨느냐? 그곳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도 다른 곳이 아닌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어디냐? 결과적으로, 선생님께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치를 얼마만큼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의 척도가 됩니다. 절대적인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을 중심삼고 걸어나온 7년 노정이 선생님만의 노정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그게 여러분의 노정이 안 되면 여러분의 노정으로서 그것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일치시키지 않겠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그 일치점에 나도 가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생명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22-45)
하나님의 대신자라고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여러분은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전부 다 다른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큰 병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기준에 일치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이 더 큰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점을 어떻게 여러분의 내적인 생활에 일치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은 대외의 생활보다도 대내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과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그 해결기점을 가려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으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본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겠습니까, 안 갖게 되겠습니까? 절대적으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 살고 있는 통일교회의 교인들과 일본에서 살고 있는 통일교회의 교인들 중에서 본부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쪽을 하나님은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10년 되었으면10년 된 만큼 살이 찌고 뼈가 굵어지고 내용이 풍부해야 합니다.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즉,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본거지에 대한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하게 될 때는 병폐가 벌어집니다. 모든 일을 할 때는 이것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뜻을 위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의 표준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해도 그 마음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여러분이 언제나 하나님의 대신자라고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활동할 때 어디에 가서 입을 열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을 대신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내적인 기준이 공고화될 때 외적인 기준이 출발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플러스가 생기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기는 것은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기준이 완전하게 될 때는 외적인 기준은 자동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22-47)
세계의 복귀를 책임지고 나가자
여러분이 신앙길을 가면서도 마음이 컬컬한 것은 왜 그러냐 하면 내적인 기준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적인 기준이 떨어져 있어 가지고는 뭘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 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적인 하나님의 임재점에 동화하는 생활, 일치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지점에서 개인이 탕감복귀되는 것이요, 가정이 탕감복귀되는 것입니다.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이 지점을 떠나서는 탕감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지방에 나가서 전도를 하더라도 이 기점을 중심삼고 이 기점을 연결시켜 가지고 거기서 환경적으로 탕감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도 이 기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야 합니다.하나님을 닮지 않은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다시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희박하게 될 때는 반드시 다른 결과가 맺어지게 됩니다. 다른 결과를 맺은 뒤에 “아이쿠!” 해서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여러분은 옛날에 원리말씀을 들을 때 느끼던 그 기분을 다시 회복해야 됩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말씀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서 충격적인 충동을 느끼던 그 길을 다시 찾지 않고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됩니다.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은 여러분의 생애를 걸어 놓고 죽을 때까지 해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있을 때 느끼던 그 심각한 심정을 지금도 산에 가나 어디를 가나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변화하면 변화할수록 더 심각한 심정을 느낍니다. 환경이 변화된다고 해서 자기의 내적인 기점을 상실하고 변해서는 안됩니다.언제나 환경이 달라지면 달라질수록 그 환경에서 반드시 이런 기점을 수습해 가지고 하늘과 땅의 관계 이상으로 조성해 놓고 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보다 보람 있는 생활, 보다 내적인 생활로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고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발전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발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의 도리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때에 세계적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22-48)
&&&& 천일국 훈독경 제3권 제 6 일 원문 &&&&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내적인 자아
날짜 : 1969. 1. 19(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뜻이 아무리 여러분 앞에 가까이 다가왔더라도 여러분이 그 뜻을 환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뜻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뿐만 아니라 노아의 시대에도 그랬었고 아브라함의 시대, 모세의 시대 등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나 문제가 되는 것은 뜻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동화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뜻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문제
그래서 특별히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그런 환경에 동화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뜻이 아무리 세계적이라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도외시한다면 이 뜻과 여러분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뜻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적인 조건 혹은 내적인 조건을 갖추어 어떻게 뜻에 결부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대개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사람들도 역시 지금까지 가정을 중심하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신앙자들이 불신앙자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불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생활만 하면 되지만 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하고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도 아울러 해야 합니다.
불신앙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신양명(立身陽明)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신양명하는 것보다도 교회생활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가인 아벨과 마찬가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사회생활은 가인적이며, 내적인 교회생활은 아벨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사회생활은 내적인 생활의 상징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외적인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내적인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는 사람은 외적인 사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의 공적인 집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다면 뜻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도 희박해집니다. 자기가 내적으로 설 수 있는 자리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외적인 기준도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22-35)
하나님의 임재지는 어디인가
내적인 모든 핵심을 결정짓는 자리가 바로 교회의 공적으로 집회하는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의 공적인 집회를 통해서 전통적인 기준을 세워 나왔습니다 .
여러분은 아침 경배시간이라든가, 혹은 우리 교회에서 개최하는 공식적인 집회시간에 대한 관념이 희박합니다. 도리어, 사회생활에 대한 관념과 교회생활에 대한 관념을 비교해 보게 될 때 흘러가 버리고 말 사회생활에 대한 관념이 영원히 남아져야 할 교회생활에 대한 관념보다도 앞설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여기에는 문제가 일어나고 병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팎에 대한 문제를 여러분이 확실히 가려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몸을 주관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한 국가면 국가가 역사과정에서 왜 망했느냐? 이스라엘 나라가 번번이 이방의 침범을 당하고, 또 하나님의 뜻 앞에 어긋나는 자리에 나간 것은 왜 그랬느냐? 그 국가로서의 내적인 근거지, 즉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지와 일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지와 일체가 되지 못하면 그 국가가 망했듯이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이 안 나는 것은 어찌하여 그렇느냐? 여러분 자신이 내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지, 즉 임재점을 결정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면 힘이 안 납니다. 개인이 무력해지는 것이나 국가가 무력해지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세계의 외적인 정세를 살피기도 해야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외적인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적인 정세를 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시는 데는 섭리적인 근거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크고 복잡하지만 전부 다 외적인 반응 현상입니다.
그러면 내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임재지, 즉 임재점이 어디냐? 하나님이 임재하셔 가지고 모든 동기를 두실 수 있는 곳이 어디냐? 여기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곳이 외적인 세계의 모든 정세를 좌우하는 미국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그곳이 어디냐? 그곳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을 대표하는 곳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을 대표하는 곳이 바로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자체 내에 하나님의 모든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그런 내용이 있느냐 하면, 통일교회에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내가 어떻게 동화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적인 세계에 어떻게 동화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내적인 본거지에 어떻게 동화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게 될 때도 대한민국이나 세계에 대한 기도보다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지가 어디이며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임재하시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22-36)
하나님의 임재지
하나님은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셨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느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유대 민족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으나 그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즉 제1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했기 때문에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를 창건해서 그 기독교를 중심삼고 역사과정을 수습하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제2이스라엘도 역시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섭리하시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통일교회에 머무르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어디에 머무르시게 되었느냐? 소위, 말씀에 머무르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일치가 안 되고 이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될 때는 반드시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타나 생각지도 못했던 입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살아온 사회생활 전체와 교회를 중심삼고 생활한 전체를 놓고 볼 때 어느 것이 내적이냐 하면 교회생활이 내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얼마만큼 내적인 생활의 기준을 세워 나왔느냐? 혹자는 뜻을 중심삼고 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뜻이 될 것이다.” 하면서 자기의 멋대로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겠어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뜻을 세워 나오면서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었느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즉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이 어디냐? 여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떻게 일체가 되느냐? 어떻게 동화되느냐? 여기에 하나님이 공인하실 수 있는 일체성의 기반을 어떻게 세워 내적으로 적응시키느냐? 이런 것들에 가장 중점을 두고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외적으로 이것을 막기 위해 방해하고, 하늘은 외적으로 막는 이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실황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 가운데 어디에 계시느냐? 만약에 선생님이 생활하고 있는 곳과 하나님의 임재지가 다르다면 통일교회는 발전은 커녕 여기서부터 중단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틀어져 가지고는 앞으로 세계적인 동화의 기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세계를 소화시킬 수 있는 기점이 될 수 없습니다. 내적인 중심을 공고한 자리에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떠한 어려운 환경이라도 책임자는 그러한 중심을 결정짓는 그 기점, 그 위치를 상실하지 않고 지켜 나가야 되겠다는 신념에 언제나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가지고 나아갈 때 사적인 생활과 사회생활을 전부 다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내적인 생활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내가 뜻이 원하는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적인 섭리의 기점, 즉 섭리의 임재지를 중심삼고 외적인 세계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2-38)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누구든지 만사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 기점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활 전체가 그 기점과 일치될 수 있는 생활화, 즉 동화될 수 있는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긋나게 될 때는 아무리 자기 나름대로 잘되고 자기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 하는데, 그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세계를 움직이고 모든 섭리를 움직이는 중심존재이신 하나님이 어디에 임재하시느냐? 임재지가 어디냐?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을 누구나 압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나오게 될 때, 그것은 본심이 오고 싶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교회를 오지 말라고 해도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비교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달라졌든가, 아니면 여러분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그 기점이 달라졌느냐, 여러분 자신이 달라졌느냐? 둘 중의 하나는 달라졌습니다.
교회 자체와 선생님 자신이 지금까지 뜻을 향해 나오던 방법이 달라졌다면 통일교회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계는 협조를 안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변동이 벌어질 때는 뜻이고 무엇이고 다 중단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하겠다고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선생님 자신이 뜻을 향해 나오던 방법이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에 달라진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옛날과 비교해서 달라졌다면 어디에 병폐가 생겨났느냐?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과 여러분의 생활이 일치가 안 되어 있으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여러분의 본심과 일치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질 때 병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3년이 가고, 4년이 가서 7년이 지나고 나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새로이 배워야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입니까!
그런 자리에 떨어져 있으니까 아무리 보조를 맞추려고 해도 보조를 맞출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은 듣는 사람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이면 감옥생활에서나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서도 이 한 기점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왔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은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밥을 먹으나, 자나깨나 그랬습니다. 기도할 때도 다른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통일되면 뭘 합니까? 그 기점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동적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자아주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아를 어떻게 완성시키느냐?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 그 기점과 언제나 일치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든 감옥이나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이것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즉, 복귀의 관문인 것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더 열심히 가야 되는 것입니다.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점점점 시간이 촉박함에 따라서 스스로 재촉하게 되는 것이요,심각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더욱 심각해져야 되는데, 여러분은 어려우면 오히려 해이해지지요? 문제가 점점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여러분에게 심각성은 더 가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을 결정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상대적인 결정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2-40)
하나님의 임재점에서 충성해야
여러분이 복귀섭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옛날의 구약시대는 제물시대였는데,제물을 드리려면 제물을 드리기 위한 환경을 성별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지성소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성막 가운데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별된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그 위에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에는 상징적인 성전이었으나, 신약시대인 예수님의 시대에 와서는 실체적인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체적으로 성전이 된 예수님의 시대에 와 가지고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일치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되신 그곳이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었던 기점이었습니다.우리는 지금까지 그 기점에 일치될 수 있느냐, 즉 동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곳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어떠한 승리도 가져 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했댔자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섭리의 7년 노정이면 7년 노정을 거쳐 나가는 길에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에 개인이 일치되어 나가며, 가정이 일치되어 나가며,종족이 일치되어 나가며, 국가와 세계가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에 일치되기 위해서는 “내가 국가를 위해 충성만 하면 됐지, 중심이 어떻고 임재점이 어쨌든 상관없다.” 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국가를 위해서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임재점에서 충성하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기 전에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 들어와 가지고 봉사하여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내적인 인연의 결과인 외적인 세계에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이런 것을 떠나 가지고는 교회도 아니요, 사회도 아니요, 중간에서 왔다갔다하다가 만다는 것입니다. 지금 중간에서 왔다갔다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뜻이 병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병폐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에 동화될 수 있는 생활적인 터전이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가 아무리 넓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렵다고 거기에서 낙망하고 지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실 곳은 다른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실 곳이 딴 곳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로구나! 이 자리가 하나님이 최고로 안식하실 수 있는 자리요, 이 자리가 최고의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자리로구나!” 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백방으로 느끼고 생활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 인연을 맺으시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날이 가면 갈수록 새로움을 느끼며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아무리 외적으로 큰소리를 쳐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충성하는 데 있어서 그 기점이 어디에 있느냐? 반드시 부모의 마음과 몸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22-42)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함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느냐
자신이 태어난 것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인간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의 출발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치된 자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생명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존재하는 것이 그냥 그대로 생겨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실은, 탕감복귀의 노정도 이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자리가 어떠한 자리입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이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지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왜 하시느냐? 본연의 부모, 즉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참부모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실체적인 성전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실제로 실감이 나요? 그 가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여러분의 집쯤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몸뚱이, 여러분의 아들딸, 여러분이 살고 있는 나라나 세계와 같겠습니까?
하나님을 무시해도 유만부동이지, 하나님 알기를 자기 집의 장롱 속에 들어 있는 패물보다도 못하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주시옵소서!”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길을 닦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그렇지 않고 여러분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같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이 교회에 찾아오고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동화되는 생활을 갈구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향하여 머리만 숙여도 그 자리는 은혜의 자리가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하루에 한 번씩 들르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아버지!” 하고 회개를 하고, 또 못 가게 된 것을 탄식하고서 자기 가정의 누구라도 보내어서 교회의 사정이 어떻게 되어 가고, 또 선생님이 무엇을 위해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계시는가를 알고 싶어해야 됩니다. 거기에 대한 관심이 우주보다 더 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 떠나십시오!” 해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곁방살이를 하면서 무슨 은혜가 나오겠나?” 하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공부를 해 가지고 출세하여 뜻을 위하겠다고 합니다.자기의 멋대로 출세를 암만 했댔자 뜻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하고 일체가 될 수 있는 자리를 근거로 해서 터를 닦고 출세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를 어떻게 여러분이 자각하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22-43)
신앙생활의 척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통일교회의 본부에 오지 말라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는 세상의 명예, 세상의 권력, 세상의 부귀보다도 선생님이 안 만나 주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인식과 신념이 부족합니다.
선생님이 세계적인 복귀섭리역사를 담당하고 나오지만 아직도 선생님은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면 기쁨을 돌려드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섭리를 해 나온 이 시점에 있어서 내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모습을 어떻게 취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갖춰야 할 예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법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예법을 갖추어 나가야 됩니다. 가정에서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가정을 이끌어야 할 책임진 사람은 이 예법을 갖추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뜻이 여러분이 활동하는 세계로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6천 년 동안 섭리해 나온 복귀역사니 만큼, 핵심적인 내용이 결정된 그 기준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외적인 기준이 전부 다 사방으로 상대해 들어옵니다. 그것을 실감합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신념을 갖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역을 초월하기 때문에 세계의 어떤 국경이라도 초월해서 이 역사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점은 한국이지만 이 임재점은 한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 임재점은 세계를 대표한 임재점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곳을 향해서 일치되고 동화되기 위해서 정성들여 나오면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인식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어 놓고 에덴 동산에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임재하시려고 했는데 그 기점을 잃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역사는 6천 년 동안 슬픔의 역경과 개척의 노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희생의 관문을 통과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어느 곳에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해 오셨느냐? 그곳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도 다른 곳이 아닌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어디냐? 결과적으로, 선생님께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치를 얼마만큼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의 척도가 됩니다. 절대적인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지금까지 선생님을 중심삼고 걸어나온 7년 노정이 선생님만의 노정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노정이 안 되면 여러분의 노정으로서 그것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일치시키지 않겠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일치점에 나도 가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생명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22-45)
하나님의 대신자라고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여러분은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전부 다 다른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큰 병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기준에 일치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이 더 큰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점을 어떻게 여러분의 내적인 생활에 일치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은 대외의 생활보다도 대내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과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그 해결기점을 가려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으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본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겠습니까, 안 갖게 되겠습니까? 절대적으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 살고 있는 통일교회의 교인들과 일본에서 살고 있는 통일교회의 교인들 중에서 본부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쪽을 하나님은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10년 되었으면 10년 된 만큼 살이 찌고 뼈가 굵어지고 내용이 풍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본거지에 대한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하게 될 때는 병폐가 벌어집니다. 모든 일을 할 때는 이것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뜻을 위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의 표준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해도 그 마음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하나님의 대신자라고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활동할 때 어디에 가서 입을 열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을 대신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내적인 기준이 공고화될 때 외적인 기준이 출발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플러스가 생기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기는 것은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기준이 완전하게 될 때는 외적인 기준은 자동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22-47)
세계의 복귀를 책임지고 나가자
여러분이 신앙길을 가면서도 마음이 컬컬한 것은 왜 그러냐 하면 내적인 기준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적인 기준이 떨어져 있어 가지고는 뭘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 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적인 하나님의 임재점에 동화하는 생활, 일치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지점에서 개인이 탕감복귀되는 것이요, 가정이 탕감복귀되는 것입니다.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이 지점을 떠나서는 탕감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지방에 나가서 전도를 하더라도 이 기점을 중심삼고 이 기점을 연결시켜 가지고 거기서 환경적으로 탕감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도 이 기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지 않은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다시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희박하게 될 때는 반드시 다른 결과가 맺어지게 됩니다. 다른 결과를 맺은 뒤에 “아이쿠!” 해서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여러분은 옛날에 원리말씀을 들을 때 느끼던 그 기분을 다시 회복해야 됩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말씀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서 충격적인 충동을 느끼던 그 길을 다시 찾지 않고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됩니다.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은 여러분의 생애를 걸어 놓고 죽을 때까지 해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있을 때 느끼던 그 심각한 심정을 지금도 산에 가나 어디를 가나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변화하면 변화할수록 더 심각한 심정을 느낍니다. 환경이 변화된다고 해서 자기의 내적인 기점을 상실하고 변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환경이 달라지면 달라질수록 그 환경에서 반드시 이런 기점을 수습해 가지고 하늘과 땅의 관계 이상으로 조성해 놓고 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이중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언제나 이중의 생활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중의 생활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보다 보람 있는 생활, 보다 내적인 생활로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고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에 있어서 아들로서 해야 할 책임이 있고 가정으로서 해야 할 책임과 교회 전체의 책임자로서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 세계의 복귀섭리를 책임지고 나가는 책임자가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거기에는 예법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발전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발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의 도리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때에 세계적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