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3권 제2일
봄철과 인간 (훈독본)
날짜 : 1970. 5. 3(일)
장소 : 한국 통일동산(경기도 구리시)
<기 도>
<말 씀>
절기와 인생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봄철과 인간’입니다. 봄을 즐거워하지 않는 만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러한 봄날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봄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봄이 있기 전에 반드시 겨울이 있어야 되고, 겨울이 있기 전에 가을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가을이 있기 전에 여름이 있어야 되고, 여름이 있기 전에 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서 생각해 볼 때 봄은 언제나 순환해서 다시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단 한 번 밖에 없는 봄 절기는 언제냐? 인생을 중심삼고 볼 때 봄 절기는 사춘기 시대를 지나가는 과정에 있는 청년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도 봄 절기와 같은 청년시기가 있고, 여름 절기와 같은 장년시기, 가을 절기와 같은 노년시기, 겨울 절기와 같은 침울한 죽음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인간의 일생 자체가 춘하추동과 같은 행로라는 것을 우리들은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좀더 범위를 넓혀서 인류역사를 중심삼고 본다면 오늘 우리 인류가 살아나오는 생활에서 과연 봄 절기는 어떠한 때냐?
만일에 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봄 절기에서부터 인간을 출발하게 하셨을 텐데, 그 봄 절기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찾지도 못할뿐더러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또 여름 절기는 어디에 있으며, 가을 절기는 어디에 있느냐? 또, 가을을 맞이하여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춘 하나의 인생으로서 결실된 그 자체는 어디에 있느냐? 이러한 문제를 반문해 볼 때 인류의 역사노정에서 그것을 찾았다거나, 또는 그것을 알았다는 입장에 서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인간에게 필히 주어야 할 봄 절기는 어느 때일 것이냐? 그런 때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년 변함없이 찾아오는 봄 절기를 맞을 수는 있으되, 우리 인생의 봄 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자신이 있다고 할 사람이 있느냐? (31-118)
그러면 오늘날 20세기의 문명은 어떠한 시점에 처해 있느냐? 이 시대는 문화의 역사노정에 있어서나 혹은 인류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가을 절기와 같은 시대권 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가을은 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든지 인류역사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을 절기를 넘어설 수 있는 한계선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가을 절기를 맞이한 20세기의 문명권 내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문제점은 무엇인가? 앞으로, 가을 절기가 지나고 종말적인 겨울 절기가 타락된 우리 인류 앞에 필시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 겨울 절기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결실이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31-120)
오늘날 우리 인간역사에 있어서 봄 절기의 문명권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 여름 절기의 문명권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 가을 절기의 문명권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한 사람을 중심삼은 하나의 이념, 하나의 국가관,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인생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한 관을 철두철미하게 갖추는 결정적인 결실체가 되지 않고는 앞으로 인간에게 찾아올 공포와 사망의 경계선이 되는 겨울 절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여러분의 마음 깊은 가운데 봄 절기의 내용이 깃들어 있느냐 또한 여름 절기가 상징하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깃들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가을 절기와 같이 자기의 모든 가치를 종합하여 개성이 뚜렷한 자체의 생명력을 직결시키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간이 열매를 중심삼고 경과해야 되는 것처럼 여러분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나는 나로서 완전히 결실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이나 어떠한 세계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어 새로운 봄날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신이 되어야만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계절을 주관해야 합니다. 봄 절기를 주관할 수 있는 심정적인 내용을 가지고 여름 절기를 기대해야 됩니다. 그리고 여름 절기의 무성함 이상으로 무성하여 가을의 소망을 향하여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세계의 한 거점까지 밀치고 넘어갈 수 있는 폭발적인 소망에 벅찬 자신을 여러분이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 자신의 결실을 중심삼고서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 평가, 즉 무한한 가치 평가를 할 수 있는 이런 생명의 진가를 지닌 자아를 가져야만 춘하추동 사계절을 주관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31-122)
겨울 절기의 참된 의미
우리 앞에 다가오는 세계는 공포심을 갖게 하는 세계일 것입니다. 가을이 짙어 갈수록 겨울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의 절박한 내용이 위협과 더불어 우리의 생활권 내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볼 때 우리 앞에 겨울 절기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겨울 절기를 맞는 데 있어서 이 공포의 환경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대결하여 결단을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을을 극복하고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불변의 생명체, 불변의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새로운 소망으로 찾아오는 봄 절기, 천지가 준비한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결실된 씨앗을 보면, 그것은 지극히 연약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설한풍이 몰아치는 동삼삭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용납하지 못하는 기간과 자기의 환경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시련의 기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기간이 겨울 절기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식구들이 지녀야 할 긍지와 우리 식구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최후의 단말마적인 입장에 있는 인류의 운명을 판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힘이냐, 내 힘이냐? 자신의 생명력을 내포한 힘의 영향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자신만이 생명력을 지니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생사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역사적인 시점이 우리 인류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숙명적인 노정을 미루어 볼 때 그런 절기를 거쳐갈 자신을 가진 내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31-127)
인류에게 봄 절기를 가져다 줄 메시아는 누구인가
인류가 지나온 봄 절기의 시대를 비판하고, 인간들이 거쳐 나온 여름 절기의 시대를 비판하고, 가을 절기의 시대를 비판해야 합니다. 비판하는데 생명력을 내포한 권위를 지닌 입장에서 비판해야 합니다. 또한, 내일의 새로운 생명의 출현을 바라며 백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생명의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의 봄 절기와 새로운 인류의 여름 절기와 새로운 인류의 보다 나은 가을 절기를 (그)사람에게 소개하실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없다면 이 세상은 죽은 열매같이 썩어지고 말 것입니다. 제삼자는 모르지만 그 자체는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죽어 있느냐, 살아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역사에 있어서 세계적인 무한한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봄과 여름과 가을을 연속시켜야 합니다.
앞으로, 끝날 이후에 다시 찾아올 역사적인 봄 절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여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가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생명력을 가진 자체는 춘하추동의 인연을 다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개인이면 개인을 통하여 봄 절기 은사의 역사를 하셨던 시대가 있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라도 거기에 생명력을 연결시켜 가지고 여름 절기의 인연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과 더불어 인연 맺고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여름 절기와 인연된 사람 중에 가을 절기와 인연을 맺어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새로운 생명력을 갖추어서 지상에 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현해야 할 그 자신이 타락된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력을 지닌 그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생명의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류 앞에 메시아의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인간이 가졌어야 할 봄 절기, 여름 절기, 가을 절기의 내용을 개인적이 아닌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겠느냐? 그런 내용뿐만 아니라 겨울 절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미흡한 것을 극복하여 세계적인 봄날을 맞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타락권 내의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만일에 메시아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 이상 기쁜 마음으로 환영해야 할 귀빈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31-129)
인간이 타고난 절기의 공평성
봄에는 미물인 곤충들에서부터 작은 풀 한 포기, 큰 나무, 모든 조류,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음 받은 피조만물 전부가 생명의 인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세계 가운데 그런 봄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봄날을 맞이하여 어떤 사람은 풀 한 포기, 어떤 사람은 나무 한 그루의 입장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종류가 다른 각각의 분야에 있어서 생명을 지니는 개인, 종족, 민족이 될 것입니다.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엇갈리는 것과 같은 인연이 역사의 시발점에서부터 연결되어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운명도 그렇듯 뒤바뀌며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사는 것은 그 사람의 선조들이 겨울 절기를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조상의 후손으로서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잘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름 절기같이 무성하게 되면 반드시 결실을 맺게 됩니다.
가을 절기를 맞이했다고 절망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을 절기를 맞이했다면 내일에 다가오는 겨울 절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됩니다. 아무리 험난한 시련에 부딪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간다.” 할 수 있는 신념을 갖고 겨울 절기를 개척해 나가고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춘하추동의 연속적인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길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봄날에 태어난 사람도 있고 겨울에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부호의 아들이요, 군왕의 아들로서 모든 영광이 드높이 들리우는 여름 절기에 태어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을 절기에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고 보면, 이 우주의 역사는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겨울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조금도 침해를 받지 않고 더욱 힘차게 전진하여 봄날을 맞이하게 될 때는 누구보다도 빨리 누구보다도 힘차게 성장할 것입니다. (31-131)
겨울 절기를 극복하려면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은 타락의 한스러움도 느꼈을 것이요, 타락권의 문화세계도 보았을 것이요, 절망적인 환경에도 부딪쳤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어떠한 절기도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겨울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한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역사가 망하고, 시대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될수록, 끝날이 다가왔다는 것을 절감하면 절감할수록 그러한 탄식권을 정면으로 맞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격파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꺼풀 벗고 재생하여 내일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신념, 그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을 세워서 “나는 봄날을 맞이할 수 있다.”하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봄을 맞이하여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스스로의 권한을 가져야만 만민을 하나로 결실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의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소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이 땅 위에 뿌리고 갔을 때 그 결과는 1천만 분의 1이라도 결실이 맺어져야 합니다. 인류가 그것을 보고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선두에서 당당히 수난의 겨울 절기를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무리의 수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세계는 부활의 새로운 봄날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 역사는 되돌아서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역사적인 열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6천 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종합된 시련이 한꺼번에 부딪쳐 오는 겨울 절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자신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승패를 가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에 찾아드는 봄 절기와 같은 새로운 세계의 운세권을 맞이하면서 내 가슴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됩니다. 그렇게 자기의 모든 품을 벌려 놓은 그 동산 가운데 세계 인류가 무한히 피어날 수 있는 자아의 인격을 찬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본래의 인간이 바라던 최고의 인간으로서 성공한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다면 그러한 가치의 존재로 지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내일을 위하여, 그럴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럴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개발하기 위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이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자신이 가는 길에 있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한꺼번에 내 앞에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는 내일이 와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31-133)
시련 극복과 결실
우리는 인류역사의 봄 절기, 여름 절기, 가을 절기보다도 지금이 좋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겨울 절기의 경계선에서부터 환희의 새로운 출발이 벌어져 봄날이 정상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봄이 오는 것을 반기기 전에 지금까지 봄이 다가올 수 있었던 과거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생명의 인연을 동경하면서 봄을 맞이해야 됩니다.
또한, 봄에는 여름 절기와 가을 절기에 우주적인 인연을 결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생명적인 씨를 준비해야 됩니다. 여름 절기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을 절기의 결실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의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과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입장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 왔느냐? 봄과 같은 은혜가 임하게 될 때는 전부 다 주고 싶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전부 다 화동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자기를 중심삼고 무성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봄 절기가 보리 잎이 무성해지는 시기라면 여름 절기는 줄기가 자라는 시기입니다.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목적은 하나의 줄기를 세우기 위한 것인데, 여름 절기에 그 줄기가 생겨나지 않는 보리는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줄기 가운데서 새로운 변화가 꽃과 같이 만상 앞에 찬양 받을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동시에 하나의 결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터전 위에서 여름 절기를 거쳐서 가을 절기를 중심삼고 생명의 진액을 흡수 플러스 시켜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교회에 들어온 지 며칠 안되는 사람도 은혜를 받으면 홀로 외롭게 지방으로 개척을 내보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까 개척을 나가라! 잎이 무성하게 자랐으면 하나의 줄기로서 자라날 수 있도록 나가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자신의 개성을 중심삼고 결실시키라는 것입니다.
많은 시련이 부딪쳐 올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력과 반대되는 요소와 진액이 안팎으로 흘러나와 자신의 생명 앞에 반역할 것입니다. 그 반역하는 환경을 흡수해서 속으로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무한한 주체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면 그 환경에서 자기 자신은 자라는 것입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깊어 가면 갈수록 나무의 잎은 종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길을 가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저 사람은 저런 면에서는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원숙한 하나의 결실을 갖추고 있구만!” 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을 절기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이 가치적인 내용을 전부 다 완결할 수 있는 때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만상은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위해서 있게 됩니다. 그러한 가치가 드러나는 가을 절기가 되면 자기 자신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소망의 실체로 하나님께 보관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31-135)
끝까지 전진하여 모든 절기의 주인이 되라
여러분이 처음 교회에 들어왔을 때를 봄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홀로 가는 때입니다. 홀로 생명의 진액을 가해서 결실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다가올 환경에 있어서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봄과 여름이 결집된 생명력을 가진 실체가 되어 가지고 가을 절기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가을 절기를 극복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근본인 씨와 더불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서 미래에 다가올 공포의 겨울 절기를 극복해 내고 내일의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봄 동산의 주인이 애호할 수 있는 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꽃같이 영광의 극상에 오를 수 있는 한 개인이 필요한 것이요, 가정이 필요한 것이요, 종족이 필요한 것이요, 민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민족이 제3이스라엘이라는 특권적인 민족인 것을 알고,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위하여 우리는 단결하고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종말의 미명이 찾아오는 찰나에 칠흑 같은 어둠의 한 때가 거쳐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박차고 광명한 새 아침의 햇빛을 향하여 동으로 전진할 수 있는 사명을 짊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새 아침과 같은 통일문화의 봄 절기인 중화문명(中和文明)을 요구하고 나가는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역사시대에 있어서 봄 절기의 시대를 그냥 지나갔던 사람들, 여름 절기의 시대에 망해갔던 사람들, 가을 절기의 시대에 타락했던 사람들을 다 제쳐 놓고 전체가 통합된 승리의 권한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바라는 하나의 이상세계, 하나님의 통일된 세계를 향하여 하나의 심정을 이어받고 승리의 왕자로 등장할 수 있는 그 나라를 위하여 주권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생무궁토록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봄 절기의 주인이 되고, 여름 절기의 주인이 되고, 가을 절기의 추수꾼이 되어서 겨울 절기에 잔치하며 안식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1-137)
&&&& 천일국 훈독경 제3권 제 2 일 원문 &&&&
봄철과 인간
날짜 : 1970. 5. 3(일)
장소 : 한국 통일동산(경기도 구리시)
<말 씀>
절기와 인생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봄철과 인간’입니다. ‘봄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꽃을 연상하게 됩니다. 또, 나비와 벌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새로운 것이 소생하는 것을 연상합니다. 또, 봄철은 일년 중에 영광을 상징한다는 것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봄을 즐거워하지 않는 만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한 때를 위해서 준비했던 것을 드러내 보이는 잔치의 계절이라고 볼 수 있는 때도 봄입니다.
이러한 봄날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봄은 봄 자체로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봄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봄이 있기 전에 반드시 겨울이 있어야 되고, 겨울이 있기 전에 가을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가을이 있기 전에 여름이 있어야 되고, 여름이 있기 전에 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서 생각해 볼 때 봄은 언제나 순환해서 다시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잊을 수 없는 봄 절기는 언제냐? 여기에서 말하는 봄 절기는 오늘 우리가 맞는 계절적인 봄 절기가 아니라 인생 자체를 중심삼고 보는 봄 절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중심삼고 볼 때 봄 절기는 사춘기 시대를 지나가는 과정에 있는 청년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행로는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도 봄 절기와 같은 청년시기가 있고, 여름 절기와 같은 장년시기, 가을 절기와 같은 노년시기, 겨울 절기와 같은 침울한 죽음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인간의 일생 자체가 춘하추동과 같은 행로라는 것을 우리들은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좀더 범위를 넓혀서 인류역사를 중심삼고 본다면 오늘 우리 인류가 살아 나오는 생활에서 과연 봄 절기는 어떠한 때냐? 우리 인간은 그 범위를 모르고 있습니다. 또, 봄 절기가 있었으면 여름 절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여름 절기가 언제냐고 할 때 그 여름 절기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을 절기가 언제냐고 할 때도 어느 때가 가을 절기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면 반드시 겨울이 올 것입니다. 또, 겨울이라는 고개를 넘어서야만 다시 봄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봄 절기에서부터 인간을 출발하게 하셨을 텐데, 그 봄 절기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찾지도 못할 뿐더러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또 여름 절기는 어디에 있으며, 가을 절기는 어디에 있느냐? 또, 가을을 맞이하여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춘 하나의 인생으로서 결실된 그 자체는 어디에 있느냐? 이러한 문제를 반문해 볼 때 인류의 역사노정에서 그것을 찾았다거나, 또는 그것을 알았다는 입장에 서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인간에게 필히 주어야 할 봄 절기는 어느 때일 것이냐? 그런 때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년 변함 없이 찾아오는 봄 절기를 맞을 수는 있으되, 우리 인생의 봄 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자신이 있다고 할 사람이 있느냐? 이런 문제를 놓고 볼 때 자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땅 위에 있겠느냐? 이것을 종교적인 입장에서 우리 인류가 타락된 존재라는 것을 규정짓고 살펴보면,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31-118)
봄 절기의 문명을 맞으려면
봄은 통일된 환경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초목이 봄을 맞이해서 전부 다 푸른빛으로 통일된 환경을 제시하는 것을 우리는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날 인류의 문화세계에 있어서 이런 절기와 같은 통일된 문화의 세계를 이루었다면 그 문화는 인류역사에 남아졌을 것이고, 그 남아진 인류역사는 변천과 후퇴와 멸망의 운명을 지니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이런 인연 가운데 남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과정에서 이것은 번번이 생겼다가는 망하고 망했다가는 또 발생하면서 지금까지 역사는 발전되어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20세기의 문명은 어떠한 시점에 처해 있느냐? 이 시대는 문화의 역사노정에 있어서나 혹은 인류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가을 절기와 같은 시대권 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 가을은 무엇을 예고하느냐? 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든지 인류역사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기독교뿐만이 아닙니다. 고차적인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수많은 종교들도 인간의 종말시대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을 절기를 넘어설 수 있는 한계선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가을 절기를 맞이한 20세기의 문명권 내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문제점은 무엇인가?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결핍을 느끼고 환경적인 면에 있어서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가을 절기가 지나고 종말적인 겨울 절기가 타락된 우리 인류 앞에 필시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 겨울 절기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결실이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31-120)
생명력을 지닌 결실체가 되어야 할 인간
그래서 우리는 가을을 지내고 겨울의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진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실체가 춘하추동의 모든 요소의 집결체로서 남아져야만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봄 절기와 여름 절기와 가을 절기의 모든 힘을 가해야만 겨울 절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역사에 있어서 봄 절기의 문명권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 여름 절기의 문명권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 가을 절기의 문명권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한 사람을 중심삼은 하나의 이념, 하나의 국가관,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인생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한 관을 철두철미하게 갖추는 결정적인 결실체가 되지 않고는 앞으로 인간에게 찾아올 공포와 사망의 경계선이 되는 겨울 절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여러분의 마음 깊은 가운데 봄 절기의 내용이 깃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여름 절기가 상징하는 내용, 즉 무한히 발전할 수 있고 무한히 무성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깃들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가을 절기와 같이 자기의 모든 가치를 종합하여 개성이 뚜렷한 자체의 생명력을 직결시키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간이 열매를 중심삼고 경과해야 되는 것처럼 여러분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나는 나로서 완전히 결실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 인격의 가치는 하나의 결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이나 어떠한 세계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어 새로운 봄날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신이 되어야만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계절을 주관해야 합니다. 우리는 봄 절기를 주관할 수 있는 심정적인 내용을 가지고 여름 절기를 기대해야 됩니다. 그리고 여름 절기의 무성함 이상으로 무성하여 가을의 소망을 향하여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세계의 한 거점까지 밀치고 넘어갈 수 있는 폭발적인 소망에 벅찬 자신을 여러분이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 자신의 결실을 중심삼고서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 평가, 즉 무한한 가치 평가를 할 수 있는 이런 생명의 진가를 지닌 자아를 가져야만 춘하추동 사계절을 주관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31-122)
겨울 절기의 참된 의미
오늘날 우리 앞에 다가오는 세계는 공포심을 갖게 하는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등장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가을이 점점 짙어가면 짙어갈수록 그 앞에 무엇이 찾아오느냐? 겨울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의 절박한 내용이 위협과 더불어 우리의 생활권 내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볼 때 우리 앞에 겨울 절기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겨울 절기를 맞는 데 있어서 이 공포의 환경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대결하여 결단을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을을 극복하고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불변의 생명체, 불변의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새로운 소망으로 찾아오는 봄 절기, 천지가 준비한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 앞에 한 번도 갖추어지지 못했던 봄날을 우리는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의 결실된 씨앗을 보면, 그것은 지극히 연약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설한풍이 몰아치는 동삼삭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용납하지 못하는 기간과 자기의 환경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시련의 기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기간이 겨울 절기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최후의 경계선에 접하는 때가 겨울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식구들이 지녀야 할 긍지와 우리 식구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최후의 단말마적인 입장에 있는 인류의 운명을 판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힘이냐, 내 힘이냐? 자신의 생명력을 내포한 힘의 영향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아버지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요, 어머니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요, 그 어떠한 형제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생명력을 지니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 근본적인 생명력을 잘 받고 태어났느냐? 형제들이 받지 못한 것을 잘 받았느냐? 계절을 따라서 받을 수 있는 진액을 원만히 흡수했느냐? 봄, 여름, 가을의 3계절을 거쳐오면서 인연되어 있는 생명력을 얼마나 원만하게 흡수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생사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역사적인 시점이 우리 인류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숙명적인 노정을 미루어 볼 때 그런 절기를 거쳐갈 자신을 가진 내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31-127)
인류에게 봄 절기를 가져다 줄 메시아는 누구인가
인류가 지나온 봄 절기의 시대를 비판하고, 인간들이 거쳐 나온 여름 절기의 시대를 비판하고, 가을 절기의 시대를 비판해야 합니다. 비판하는데 생명력을 내포한 권위를 지닌 입장에서 비판해야 합니다. 또한, 앞으로 올 수 있는 겨울 절기의 위협을 내 자신이 갖춘 영향력으로 대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의 새로운 생명의 출현을 바라며 백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생명의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하여 이루고 싶으셨던 소원이 있다면 필시 그러한 사람을 통하여 이룰 것이 아니겠는가? 그 사람은 새로운 인류의 봄 절기와 새로운 인류의 여름 절기와 새로운 인류의 보다 나은 가을 절기를 사람에게 소개하실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없다면 이 세상은 죽은 열매같이 썩어지고 말 것입니다. 가을에는 죽은 열매의 모양이나 생명력을 지닌 열매의 모양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릅니다. 타인은 모르는 것입니다. 제삼자는 모르지만 그 자체는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죽어 있느냐, 살아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놓고 볼 때 적도 이북에 봄날이 찾아오면 적도 이남의 23도 이상 되는 곳에는 가을날이 찾아옵니다. 이 지구상에는 춘하추동의 형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역사에 있어서 세계적인 무한한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봄과 여름과 가을을 연속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끝날 이후에 다시 찾아올 역사적인 봄 절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여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가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생명력을 가진 자체는 춘하추동의 인연을 다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갖춘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일시에 봄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계 60억 인류에게 오랜 역사과정의 배후를 중심삼고 어떠한 개인이면 개인을 통하여 봄 절기 은사의 역사를 하셨던 시대가 있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라도 거기에 생명력을 연결시켜 가지고 그 내심에서 여름 절기의 인연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과 더불어 인연 맺고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여름 절기와 인연된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천지를 대표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가을 절기와 인연을 맺어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새로운 생명력을 갖추어서 지상에 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현해야 할 그 자신이 타락된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력을 지닌 그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생명의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류 앞에 메시아의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떠한 분인가? 인간이 가졌어야 할 봄 절기의 내용을 갖고 오시는 분이 아니겠느냐? 무한히 발전하고 무한히 번창할 수 있는 여름 절기의 문명의 내용과 그러한 세계관을 가지고 오는 세계적인 인물이 아니겠느냐? 또, 가을 절기의 결실의 내용을 알려 줄 수 있고, 개인적이 아닌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겠느냐?
그런 내용뿐만 아니라 겨울 절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미흡한 것을 극복하여 세계적인 봄날을 맞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것을 모르고 암중모색하는 타락권 내의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만일에 메시아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 이상 기쁜 마음으로 환영해야 할 귀빈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인류는 위기에 처한 이 세계정세 가운데서 새로운 세계적인 지도자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자체가 인류가 간접적이나마 메시아의 사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31-129)
인간이 타고난 절기의 공평성
봄에는 여러 가지의 꽃들이 있고,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고, 수많은 종류의 초목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보시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게 될 때 봄 절기가 돌아오면 봄을 맞이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고 생명을 지니지 않는 어디에 있습니까? 미물인 곤충들에서부터 작은 풀 한 포기, 큰 나무, 모든 조류,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음 받은 피조만물 전부가 생명의 인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피조만물들은 봄 절기에 하나의 인연을 가지고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세계 가운데 그런 봄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봄날을 맞이하여 나 자신이 그 봄 동산에서 어떠한 나무가 될 것인가? 여러분은 개성을 지니고 있는 입장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풀 한 포기, 어떤 사람은 나무 한 그루의 입장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종류가 다른 각각의 분야에 있어서 생명을 지니는 개인, 종족, 민족이 될 것입니다. 절개를 상징하는 송죽과 같은 개인과 민족도 있을 것이고, 꽃과 같이 그 품에 모든 인연을 총합시킬 수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과 국가도 있을 것입니다.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엇갈리는 것과 같은 인연이 역사의 시발점에서부터 연결되어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운명도 그렇듯 뒤바뀌며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잘살고 어떤 사람은 못사는가 하는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사는 것은 그 사람의 선조들이 겨울 절기를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조상의 후손으로서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잘산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왜 무성하냐? 여름 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봄 절기의 기반을 닦아 나왔기 때문에 여름 절기같이 무성한 것입니다. 무성하게 되면 반드시 결실을 맺게 됩니다. 그래서 가을 절기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을 절기를 맞이했다고 낙망하거나 절망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을 절기를 맞이했다고 절망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가을 절기부터 출발하는 사람들은 생활해 가면 갈수록 시들어 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아이구, 우리는 벌받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하면서 탄식하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가을 절기를 맞이했다면 내일에 다가오는 겨울 절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됩니다. 아무리 험난한 시련에 부딪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간다.” 할 수 있는 신념을 갖고 겨울 절기를 개척해 나가고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겨울 절기를 극복하는 민족이 있다면 또 다시 찾아오는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춘하추동의 연속적인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길에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생명체도 그러한 인연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은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봄날에 태어난 사람도 있고 재수 없이 겨울에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부호의 아들이요, 군왕의 아들로서 모든 영광이 드높이 들리우는 여름 절기에 태어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을 절기에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고 보면, 이 우주의 역사는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겨울 절기에 태어났다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겨울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조금도 침해를 받지 않고 더욱 힘차게 전진하여 봄날을 맞이하게 될 때는 누구보다도 빨리 생명의 출발을 볼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힘차게 성장할 것입니다. (31-131)
겨울 절기를 극복하려면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의 역량을 무엇으로 비교할 것인가? 여러분은 타락의 한스러움도 느꼈을 것이요, 타락권의 문화세계도 보았을 것이요, 절망적인 환경에도 부딪쳤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어떠한 절기도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겨울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한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역사가 망하고, 시대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사람들이 되기 위한 길을 자처해 나왔습니다. 민족이 우리에게 핍박을 가하던 도상, 종족이 반대하던 처참한 환경, 혹은 이 민족이 총칼을 들고 우리를 극난의 절정으로 몰아넣던 환경에서도 우리는 이제까지 견디어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외로움이 부딪치고 탄식권이 나를 휘몰아친다고 하더라도 도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될수록, 끝날이 다가왔다는 것을 절감하면 절감할수록 그러한 탄식권을 정면으로 맞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격파하자는 것입니다. “네가 깨어지느냐, 내가 깨어지느냐?” 하면서 결판을 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꺼풀 벗고 재생하여 내일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신념, 그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을 세워서 “나는 봄날을 맞이할 수 있다.” 하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봄을 맞이하여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스스로의 권한을 가져야만 만민을 하나로 결실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의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소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나를 이 땅 위에 뿌리고 갔을 때 그 결과는 1천만 분의 1이라도 결실이 맺어져야 합니다. 인류가 그것을 보고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선두에서 당당히 수난의 겨울 절기를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무리의 수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세계는 부활의 새로운 봄날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 역사는 되돌아서는 것입니다. 또한, 겨울 절기로 영원히 흘러가서 사망권 내로 굴러 떨어질 운명길이 변하여 새로운 봄 절기로 전환될 수 있는 순간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흔히 우리들은 역사적인 열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우리는 6천 년 역사의 열매들입니다.” 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6천 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종합된 시련이 한꺼번에 부딪쳐 오는 겨울 절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자신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승패를 가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에 찾아드는 봄 절기와 같은 새로운 세계의 운세권을 맞이하면서 내 가슴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됩니다. 그렇게 자기의 모든 품을 벌려 놓은 그 동산 가운데 세계 인류가 무한히 피어날 수 있는 자아의 인격을 찬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본래의 인간이 바라던 최고의 인간으로서 성공한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다면 그러한 가치의 존재로 지으셨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탄식과 절망 가운데서 최후의 운명의 경각에 놓여 신음하도록 지으신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내일을 위하여, 그럴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럴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개발하기 위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이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자신이 가는 길에 있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한꺼번에 내 앞에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는 내일이 와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럴 수 있는 한 때를 맞기 위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서 많은 결실을 볼 수 있었지만, 또한 많은 무리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31-133)
시련 극복과 결실
우리는 인류역사의 봄 절기, 여름 절기, 가을 절기보다도 지금이 좋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생명이 발발할 수 있습니다. 겨울 절기의 경계선에서부터 환희의 새로운 출발이 벌어져야만 봄날이 정상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놓고 봐도 은사가 오기 전에는 반드시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을 은사의 시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봄이 오는 것을 반기기 전에 지금까지 봄이 다가올 수 있었던 과거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생명의 인연을 동경하면서 봄을 맞이해야 됩니다.
또한, 봄에는 여름 절기와 가을 절기에 우주적인 인연을 결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생명적인 씨를 준비해야 됩니다. 여름 절기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을 절기의 결실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의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과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입장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 왔느냐? 봄과 같은 은혜가 임하게 될 때는 전부 다 주고 싶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전부 다 화동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자기를 중심삼고 무성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봄 절기가 보리 잎이 무성해지는 시기라면 여름 절기는 줄기가 자라는 시기입니다.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목적은 하나의 줄기를 세우기 위한 것인데, 여름 절기에 그 줄기가 생겨나지 않는 보리는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줄기 가운데서 새로운 변화가 벌어져야 합니다. 꽃과 같이 만상 앞에 찬양받을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동시에 하나의 결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터전 위에서 여름 절기를 거쳐서 가을 절기를 중심삼고 생명의 진액을 흡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거쳐가고 부딪치는 모든 것에서 손해를 볼 것이 아니라 생명의 진액을 플러스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는 교회에 들어온 지 며칠 안되는 사람도 은혜를 받으면 홀로 외롭게 지방으로 개척을 내보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까 개척을 나가라! 잎이 무성하게 자랐으면 하나의 줄기로서 자라날 수 있도록 나가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자신의 개성을 중심삼고 결실시키라는 것입니다.
많은 시련이 부딪쳐 올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력과 반대되는 요소와 진액이 안팎으로 흘러나와 자신의 생명 앞에 반역할 것입니다. 그 반역하는 환경을 흡수해서 겉으로는 죽은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무한한 주체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면 그 환경에서 자기 자신은 자라는 것입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깊어가면 갈수록 나무의 잎은 종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나무의 빛이 달라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길을 가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저 사람은 저런 면에서는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원숙한 하나의 결실을 갖추고 있구만!” 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을 절기에 있어서는 자기의 결실된 모습을 봐 달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탄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가치적인 내용을 전부 다 완결할 수 있는 때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만상은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위해서 있게 됩니다. 그러한 가치가 드러나는 가을 절기가 되면 자기 자신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소망의 실체로 하나님께 보관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31-135)
끝까지 전진하여 모든 절기의 주인이 되라
이와 같은 은혜의 시대는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교회에 들어왔을 때를 봄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홀로 가는 때입니다. 홀로 생명의 진액을 가해서 결실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믿음의 자녀니 무엇이니 하는 복잡한 내용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다가올 환경에 있어서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봄과 여름이 결집된 생명력을 가진 실체가 되어 가지고 가을 절기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갑이나, 을이나, 병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하나의 생명력에 집결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가을 절기를 극복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라는 말이 역사시대의 변천과정을 중심삼고 가을 절기에서 겨울 절기로 넘어서는 경각도상(頃刻途上)에 있어서 필요한 명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근본인 씨와 더불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서 미래에 다가올 공포의 겨울 절기를 극복해 내고 내일의 봄 절기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봄 동산의 주인이 애호할 수 있는 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꽃같이 영광의 극상에 오를 수 있는 한 개인이 필요한 것이요, 가정이 필요한 것이요, 종족이 필요한 것이요, 민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민족이 제3이스라엘이라는 특권적인 민족인 것을 알고,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위하여 우리는 단결하고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종말의 미명이 찾아오는 찰나에 칠흑 같은 어둠의 한 때가 거쳐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박차고 광명한 새 아침의 햇빛을 향하여 동으로 전진할 수 있는 사명을 짊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새 아침과 같은 통일문화의 봄 절기인 중화문명(中和文明)을 요구하고 나가는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문제, 세계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문제를 피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과 직접 대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시대에 있어서 봄 절기의 시대를 그냥 지나갔던 사람들, 여름 절기의 시대에 망해갔던 사람들, 가을 절기의 시대에 타락했던 사람들을 다 제쳐놓고 전체가 통합된 승리의 권한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바라는 하나의 이상세계, 하나님의 통일된 세계를 향하여 하나의 심정을 이어받고 승리의 왕자로 등장할 수 있는 그 나라를 위하여 주권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생무궁토록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봄 절기의 주인이 되고, 여름 절기의 주인이 되고, 가을 절기의 추수꾼이 되어서 겨울 절기에 잔치하며 안식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출발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최후까지 단결하여 그 고개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되겠습니다. (3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