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장래 (천일국 훈독경 제2권 24일) u

훈독왕 | 20190616171705

천일국 훈독경 제2권 24일 


기독교의 장래(훈독본)

날짜 : 1973. 10. 23(화)
장소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리스너 강당

 

<말 씀>


끝날이 와야 할 이유

기독교인은 장래에 주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말세의 심판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이 언제가 될 것이냐? 끝날이 되면 주님이 오실 것으로 알고 있고, 주님이 오게 되면 심판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심판은 천변지이(可變地異)가 벌어지는 것으로서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땅이 다 깨지는 그런 심판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본래, 이 끝날이라는 말은 종교에서 나왔습니다. 도대체, 이 끝날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그 세계는 시작이자 영원이 아니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세계 위에 끝날이 생겨났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이 하나님이 설정하여서 갖다 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끝날이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악이 출발하고 선이 영속하지 못한 것이 끝날이 생기게 된 원인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선은 영원히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출발하려던 선은 출발을 못 하고 결국은, 선이 끝을 보고 악이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살아야 할 인간 앞에 계명을 범하게끔 하는 또 하나의 주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당한 입장에서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여기에서 불신의 주인으로 나타난 것이 사탄이요, 불신의 주인의 대상이 된 것이 타락한 아담 해와이며, 불신한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없는 생명이 없는 세계가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선의 출발을 못 보았던 것을 하나님은 그냥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것을 또다시 원상으로 회복해 가지고 어느 한 때에 선의 출발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69-118)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사탄을 중심삼고 악이 출발했기 때문에 악의 사람이 나왔고 불신으로 말미암아 멸망이 생겼으니 반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로 믿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믿을 수 있는 자리에서 믿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세계에 있어서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은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69-120)

 

끝날은 언제인가

 

또, 끝날은 어떤 때냐 하면 밤인지 낮인지, 이것이 옳은 것인지 저것이 옳은 것인지 분간을 못 할 때입니다. 요즈음 보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나은지, 안 믿는 사람이 나은지 분간을 못 합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더 나은 때도 있습니다. 또,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비교해 보면서 “도리어, 공산세계가 민주세계보다 낫지 않느냐?” 이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공산주의자들이 모든 외적인 면에서 당당한 것 같고 실질적입니다. 그러므로 분간할 수 없는 때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의 가정에 아버지가 나은지 어머니가 나은지, 부모가 나은지 자녀가 나은지, 사회가 나은지 교회가 나은지 다 황당하게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되면 반드시 끝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결과가 나타날 때가 오거들랑 끝날이 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69-121)

노아 때도 끝날이었다

 

끝날에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인물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도 끝날이었으니 노아가 중심인물이었습니다. 노아는 끝날이 왔다고 예고했습니다. 자기를 믿지 않으면 120년 후에 물로 심판한다고 예고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절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도 믿지 못하게끔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 때 심판을 어떻게 했느냐 알아보면, 그때도 하나님이 심판하게 되면 땅이 깨어지고 모든 것이 없어질 줄 알았습니다. 

 

창세기 6장 13절에 “끝날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멸했어요? 땅이 깨졌어요? 불신한 사람들만 물심판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말을 믿고 노아의 길을 따라간 사람, 방주에 들어간 여덟 식구만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존재가 있나니 그 중심존재의 말을 믿지 않으면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아모스 3장 7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그 은밀한 뜻을 그 종 선지자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지 않고는 행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르쳐 주십니다. 노아 때에는 노아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믿지 못할 노아의 말을 믿었던 사람은 구원을 받고 안 믿은 사람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심판했느냐 하면 노아가 심판한 것이 아니라 노아가 한 말이 심판했습니다. 말이 심판의 기준입니다. 타락도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졌으니, 말씀을 믿지 않으면 떨어지고 말씀을 믿어야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심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사람을 보내어 중심존재로 세워서 새로운 말씀을 예고하는데 그 말씀을 반대했다가는 다 죽어버립니다. 악의 끝을 보고 선의 출발을 보려는 때, 새로이 출발하여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때가 끝날인 것입니다. (69-124)

예수님 때도 끝날이었다

그 다음에는 또 예수님이 왔을 때가 끝날이었습니다. 성경 말라기 4장 1절을 보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했습니다. 몽땅 다 살라서 없애 버린다고 했습니다.

아모스서 3장 7절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끝날이 됐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자에게 알려 줘야 하니 세례 요한을 통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장차 오실 이는 불로 세례를 주리라.”고 예고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도 끝날이었던 것입니다. (69-126)

 

불심판의 의의

그러면 예수님 때에 전부 다 불로 사르는 심판을 했어요? 땅이 다 녹아졌어요? 그렇게 안 됐습니다. 


그러면 불심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 성경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리라.” 했습니다. 지글지글 타서 다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에 그렇게 됐어요? 안 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했습니다. 그 불을 던졌는데 안 붙었습니다. 그 불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 야고보서 3장 6절을 보면 “혀는 곧 불이요.” 했습니다. 또, 요한복음 12장 48절을 보면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말씀으로 심판하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진짜 불로 지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을 보면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했습니다. 곧, 말씀으로 죽이신다고 했습니다. 입술의 기운은 말입니다. 

 

또, 이사야서 11장 4절을 보면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했습니다. 입의 막대기는 혓바닥입니다. 입의 기운은 말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했습니다. 

 

왜 말씀을 믿지 않으면 심판하느냐? 에덴에서 말씀을 믿지 않아 불신의 조상이 되었으니 그것을 제거하고 그 이상의 믿음으로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믿음이 없어 가지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구약성경을 믿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될 때 메시아로 선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교와 이스라엘나라에 있어서의 끝날을 예고한 것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이 안타까웠으면 “내가 세상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했겠습니까?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내가 너희를 품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하고 예루살렘을 보고 탄식하지 않았어요? 불로 다 심판해 버리고 태워 버렸다면 예수님이 왜 죽었겠어요? (69-127)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돌아가신 예수님

사람들이 믿어서 예수님이 죽었어요, 믿지 않아서 죽었어요? 빌라도 법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라바를 놔줄까요, 예수를 놔줄까요?”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은 바라바를 놔주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라가 믿지 아니하고, 교회가 믿지 아니하고, 종족이 믿지 아니하고, 가정이 믿지 아니하고, 형제가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유대교인은 예수님한테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죽이실 예수님 같으면 무엇 때문에 4천 년 동안 이스라엘 선민을 세우려고 하셨겠어요?

 

만일에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자기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면, 그러기 위해서 왔다면 왜 가룟 유다에 대해서 “너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라는 말을 했겠어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왜 세 번씩이나 피땀을 흘리며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어요? 

 

만일에 죽을 것을 본의(本意)로 해서 예수님이 왔다면 그런 기도를 한 예수님은 메시아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믿고 받들었으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메시아가 되고 왕 중의 왕이 될 것이었는데 믿지 않았으니 메시아를 잡아죽인 제일 무서운 패가 됐다는 것입니다. (69-130)

왜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했나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시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알아봅시다. 예수님은 새 시대의 주인으로 왔습니다. 한 단계 높은 시대의 주인으로 왔습니다. 그렇다면 퇴보한 구약말씀을 해서 되겠어요? 예수님이 구약성경만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요? 구약의 뜻은 이루어지겠지만 신약의 뜻은 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성경도 나 때문에 있고 모세도 나 때문에 왔다고 말하는데 그거 누가 믿어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어요? 

여기 잘 믿는 목사들이 그때의 바리새 교인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입니다.


또한,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들과 유대교 신자들은 메시아가 구름 타고 올 줄 알았습니다. 성경의 다니엘서 7장 13절을 보게 되면 “한 인자와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와서….”라고 돼 있습니다. 그때도 구름 타고 올 줄 알고 있었는데 구름 타고 안 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봐서 그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느냐 하면, 요한 2서 7절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말이에요. 다니엘서에는 구름 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요한2서에는 몸뚱이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도 주님은 육신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고 전부 다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왜 또 못 믿었느냐? 말라기 4장 5절에 보게 된다면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은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돼 있습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이 오기 900년 전에 불수레를 타고 승천한 선지자입니다. 구약 성경을 믿는 유대교인들은 하늘로 올라갔던 엘리야가 아직까지 안 왔기 때문에 육신으로 온 예수를 지금까지도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과 이스라엘 사람은 엘리야가 안 왔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능청맞게 엘리야가 왔다고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1절을 보십시오!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이 사람을 보내어 세례 요한한테 예수님은 엘리야라고 했는데 장본인에게 물어 보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0절 이하를 보십시오!  

(제자들이) “선생님이여, 어찌하여 바리새 교인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나이까?” 하고 물어 봅니다. 그때 예수님은 “옳도다.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하였도다. 인자도 그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4절을 보면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하면서 엘리야는 세례 요한이라고 예수님이 똑똑히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했는데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니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을 믿었겠어요, 세례 요한의 말을 믿었겠어요? 

 
세례 요한은 틀림없이 엘리야였습니다. 누가복음에도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하늘로 올 줄 알았는데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틀림없이 그를 엘리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섭리하셨습니다. (69-131)

재림주님은 구름 타고 오시지 않는다

예수님을 잡아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나라와 유대교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구름 타고 온다고 하셨고 초대 주님도 구름 타고 온다고 하셨습니다. 끝날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고 하고 불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한쪽만을 믿지 마십시오! 성경은 양면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0절과 요한계시록 1장 7절을 보게 되면, 주님은 구름 타고 온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을 보게 되면 도적같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 둘은 다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왜 구름 타고 온다는 것만 믿어요?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하를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했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구름 타고 온다면 왜 못 봐요? 


그 다음에 25절에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오시는 주님이 고통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시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온다면 누가 고통을 주고 누가 핍박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또, 26절에 보면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했습니다. 노아 때 믿었어요? 오시는 주님 때에도 그와 같다고 했습니다. 구름 타고 오면 그렇게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루어지려면 구름 타고 와서는 안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누가복음 18장 8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했습니다. 구름 타고 오게 된다면 왜 못 믿어요?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를 찾아보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는 말을 서두로 하여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했습니다. 


자, 마귀를 내쫓고 예언을 하고 선지자의 권능을 행했으면 됐지요. 그렇게 잘 믿는 사람 있어요? 거기에 어떻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곧 물러가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름 타고 올 줄 알고 있다가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69-134)

 

재림주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고 비유한 말씀의 뜻

기독교에서는 끝날이 오게 되면 불로 심판해 버리고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이 떨어지고 전부 다 세상이 다 녹아날 줄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예수님 때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데 구름 타고 왔어요? 엘리야가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데 그 엘리야가 구름 타고 왔어요, 안 왔어요? 

 

만일에 지금 주님이 사람으로 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거예요? 구름 타고 오는 것도 믿고 사람으로 오는 것도 믿으십시오! 둘 다 믿으십시오! 주님이 사람으로 올 줄 아는 사람은 만일 주님이 구름 타고 오더라도 틀림없이 맞고도 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구름이 뭐냐? 요한계시록 17장 15절을 보게 되면 이 세상을 물로 비유했습니다.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했습니다. 구름은 물이 증발해서 된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에서 증발된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聖化)된 성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성경에는 구름을 무리로 상징했습니다. 특별히, 하늘이 빼내 가지고 완전히 증발한 깨끗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69-136)

말세에 처한 신도가 취해야 할 신앙자세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했습니다.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거들랑 밀실에 들어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천사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시니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레버런 문이 의심되거든 기도해 이단인가, 아닌가를 알아보십시오! 나는 예수님과 하나님을 많이 만나 봤습니다. 성경의 비밀 이야기를 다 아는 사람입니다.

 

타락한 직후의 아담 해와와도 문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지옥 간 아담 해와와도 통했는데 천당에 가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하고 못 통해요? 

 

천국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의 아담 해와도 에덴동산에서 타락했는데, 이 사탄세계에서 천국 가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이제 불원한 장래에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상속을 받아야 할 때가 오기 때문에 우리는 수속 방법을 알아야 됩니다. 노아 때 혹은 예수님 때 이 땅 위에서 하늘의 말을 선포한 것과 같이,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것과 같이 레버런 문이 끝날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대표자일지도 모릅니다. 


성경 역사를 미루어 보게 될 때, 그 전례를 볼 때 지금도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69-137)

 

신앙의 위기를 맞이한 기독교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180도 전부 뒤집어야 됩니다. 갑자기 처음 듣는 말인데 성경에는 그렇게 돼 있어서 반대도 못 하겠고 믿지도 못 하겠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여러분들과 나는 형제입니다. 모세 때도 한 사람을 통해서 예고했지만 안 듣다가 심판받았고, 예수님 때도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박대하다가 전부 다 심판받았습니다. 이 때에 있어서도 레버런 문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심판은 무엇이 했느냐 하면 말이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민주세계와 기독교는 그야말로 위기입니다. 여기에서 방향만 잘 잡게 되면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심판과 말세를 거쳐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장래에 이상의 길을 이러한 곡절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의 관(觀)입니다.


내가 이것을 틀림없이 알기 때문에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계로 가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기독교에 이런 위험한 때가 오는 것을 알고 이 과정을 무난히 돌파하기 위해서 말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시고 기도로써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위험한 때라는 것을 아시길 바라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와 만난 것이 원수가 되지 않고 하늘 앞에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한 것을 기억해 주시고, 오늘 ‘기독교의 장래’라는 제목을 마음에 두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더 더욱 바랍니다. (69-140)

 

천일국 훈독경 제2권 24일 원문


기독교의 장래

날짜 : 1973. 10. 23(화)
장소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리스너 강당

끝날이 와야 할 이유

기독교인은 장래에 주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말세의 심판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어느 때나 문제가 되어 왔고 신학적으로도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수백 수십의 교파들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직행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어야만 되는 것인데 여러 갈래의 교파들이 생겼다는 사실은 비참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끝날이 언제가 될 것이냐? 이러한 문제는 기독교에 있어서 과거의 역사를 통해 가지고 문제가 되어 왔고, 지금 이 때에 있어서도 더 더욱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끝날이 되면 주님이 오실 것으로 알고 있고, 주님이 오게 되면 심판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심판은 천변지이(可變地異)가 벌어지는 것으로서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땅이 다 깨지는 그런 심판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본래, 이 끝날이라는 말은 종교에서 나왔습니다. 불교에서는 끝날을 말법시대(末法時代)라고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말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끝날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그 세계는 시작이자 영원이 아니면 안될 것입니다. 한번 시작했으면 영원히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세계 위에 끝날이 생겨났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이 하나님이 설정하여서 갖다 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끝날이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악이 출발하고 선이 영속하지 못한 것이 끝날이 생기게 된 원인입니다.
아담 해와는 선한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선은 영원히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출발하려던 선은 출발을 못 하고 끝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선이 끝을 보고 악이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살아야 할 인간 앞에 계명을 범하게끔 하는 또 하나의 주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당한 입장에서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이렇게 하여 생긴 불신의 조상과 불신의 사랑과 불신의 말씀의 결과로 말미암아 사망이 이 땅 위에 침해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신의 주인으로 나타난 것이 사탄이요, 불신의 주인의 대상이 된 것이 타락한 아담 해와이며, 불신한 결과로 말미암아 멸망의 세계, 하나님과 관계없는 생명이 없는 세계가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선의 출발을 못 보았던 것을 하나님은 그냥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것을 또다시 원상으로 회복해 가지고 어느 한 때에 선의 출발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6장 11절을 보게 되면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고 했습니다. (69-118)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사탄을 중심삼고 악이 출발했기 때문에 악의 사람이 나왔고 불신으로 말미암아 멸망이 생겼으니 반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로 믿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믿을 수 있는 자리에서 믿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세계에 있어서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은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는 전부가 반대입니다. 전부가 반대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고 빼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운 사람은 상식적으로 믿을 수 있는 입장에서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를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라랏 산에 방주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바닷가가 아니고 강가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백 세에 만삭동이로 태어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입장에서 역사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을 보면 “이 세상 임금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빼앗아 와야 됩니다. 찾아오기 위해서는 빼앗아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대신하고 역사를 대신하여 개인적으로 절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가정적으로 절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민족적으로 절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절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절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사를 중심삼고 선민을 세워 그러한 기반을 넓혀 나왔습니다. 노아를 두고 보면 그는 개인적으로 절대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가정적으로 절대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요, 모세는 민족적으로 하나님을 절대 믿은 사람이요, 예수님은 국가와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절대 믿은 사람입니다. (69-120)

 

끝날은 언제인가

그러면 끝날이 언제냐? 악한 세계가 시작됐으니 하늘의 사람들이 다 나와 가지고 이것을 치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선한 세계로 돌아가는 때입니다. 그럴 적마다 끝날의 현상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한 세계에서 모든 악의 참소의 조건을 청산짓고 악에 의해 더럽혀진 모든 것을 벗어나 선한 세계로 옮겨지는 때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옮겨질 때는 개인적인 끝날이요, 가정적으로 옮겨질 때는 가정적인 끝날이요, 종족적으로 옮겨질 때는 종족적인 끝날이요, 민족적으로 옮겨질 때는 민족적인 끝날이요, 국가적 세계적으로 옮겨질 때는 국가적 세계적인 끝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수많은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이 뜻을 맞출 수 있게끔 맞추어 가지고 섭리해 주셨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세계를 대표해서 이겼다는 기준, 가정적으로 세계를 대표해서 이겼다는 기준, 민족과 국가가 세계를 대표해서 이겼다는 그 기준을 한꺼번에 갖다 맞추어서 사탄 앞에 다양한 권위로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러한 하나의 세계적 대표자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이래 비로소 악한 세계를 완전히 청산해서 개인적으로 넘어서고, 가정적으로 넘어서고, 민족과 국가적으로 넘어설 수 있을 때 주님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끝날이라는 것은 한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말합니다.
끝날이 됐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해와 달을 어둡게 하고 땅을 다 깨뜨려 버린다면 누구 때문에 깨뜨려 버리는 것이 돼요? 사탄 때문에 깨뜨리는 것이 되니 사탄 때문에 실패한 하나님이 돼 버리고 맙니다. 사탄으로 말미암아 땅이 더렵혀지고 지금까지 해와 달이 악한 사람을 비춰 준 것만 해도 분한데 그 뜻을 한번 이루어 보지도 못하고 깨뜨려 버릴 수 없습니다. 
에덴에 있어서 한 사람을 중심삼고 그 사람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이와 반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말씀을 세워야 됩니다. 믿으면 절대적으로 생명선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끝을 두고 보면 어제의 끝과 오늘의 새로운 출발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는데 언제 가을이 지나고 언제 겨울이 오는지 알아요? 일반 사람이 모르게 와 버리고 맙니다. 지금 이 자리에 80세의 나이 많은 분도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일생 동안 나는 틀림없이 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진짜로 맞아 봤다는 사람 있어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느새 겨울이 됐구만! 어느새 보니 봄이 됐구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끝날이 없는 게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는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확실히 분별할 수 있는 목적관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혹은 주관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혼돈이었습니다. 바른쪽으로 취해야 할 텐데 왼쪽으로 취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것을 알고 그렇게 취했어요? 모르고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은 혼돈의 때입니다. 
그러면 언제가 끝날이라고 보느냐? 지금이 끝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성경에서 말하기를 끝날이 되게 되면 면양과 산양을 갈라놓는다고 했습니다. 면양은 주인이 있는 양을 말하는 것이요, 산양은 주인이 없는 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좌익입니다. 좌익이 산양입니다. 왼쪽 양은 산양이라고 성경에서 말했습니다. 
산양은 주인이 있어도 모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알아요? 공산주의자들은 좌익입니다. 왼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민주세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압니다. 민주세계는 면양입니다. 주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둘로 갈라진 것들을 볼 수 있는데, 끝날을 방불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또, 끝날은 어떤 때냐 하면 밤인지 낮인지, 이것이 옳은 것인지 저것이 옳은 것인지 분간을 못 할 때입니다. 혼란이 돼 가지고 이것저것 분간을 못 할 때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보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나은지, 안 믿는 사람이 나은지 분간을 못 합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더 나은 때도 있습니다. 또,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비교해 보면서 “도리어, 공산세계가 민주세계보다 낫지 않느냐?” 이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공산주의자들이 모든 외적인 면에서 당당한 것 같고 실질적입니다. 그러므로 분간할 수 없는 때에 왔다는 것입니다. 
조수(潮水)가 나가게 되면 조수의 끝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새로 물이 들어올 때 끝을 알아요? 빙빙 돌면서 평평해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의 가정에 아버지가 나은지 어머니가 나은지, 부모가 나은지 자녀가 나은지, 사회가 나은지 교회가 나은지 다 황당하게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되면 반드시 끝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결과가 나타날 때가 오거들랑 끝날이 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69-121)

노아 때도 끝날이었다

그러면 끝날은 섭리시대에 있어서 마지막 심판의 때인 한 날밖에 없느냐? 그렇지 않으면 역사시대에 몇 번 있었느냐 하는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노아 때도 끝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전의 악한 세계를 종결시대를 맞아 가지고 다 제거해 버리고 노아를 중심삼고 선한 세계로 옮겨질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끔 하나님이 섭리한 것입니다. 
끝날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세웁니다. 그렇게 끝날을 가리십니다. 그리하여 그 말을 절대 믿으면 하나님에게로 영원히 가고, 그 말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끝날에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인물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도 끝날이었으니 노아가 중심인물이었습니다. 노아는 끝날이 왔다고 예고했습니다. 자기를 믿지 않으면 120년 후에 물로 심판한다고 예고한 것입니다. 
그때에 세상의 대통령 같은 사람을 불러 가지고 그렇게 하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들은 불신의 종자들입니다. 여기에서 절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도 믿지 못하게끔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 때 심판을 어떻게 했느냐 알아보면, 그때도 하나님이 심판하게 되면 땅이 깨어지고 모든 것이 없어질 줄 알았습니다. 전부 다 불타 없어질 줄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6장 13절에 “끝날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멸했어요? 땅이 깨졌어요? 불신한 사람들만 물심판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말을 믿고 노아의 길을 따라간 사람, 방주에 들어간 여덟 식구만 살았습니다. 
노아 때 그렇게 심판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도 무참하시지! 여덟 사람만 구할 게 뭐야? 왜 못 믿게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했느냐?”고 질문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는 악한 세계였기 때문에 만일 악한 세계와 타협하는 입장에서 끌어들여 오면 사탄이 몰려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절대 하나님만을 위할 수 있는 무리만을 남겨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존재가 있나니 그 중심존재의 말을 믿지 않으면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아모스 3장 7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그 은밀한 뜻을 그 종 선지자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지 않고는 행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르쳐 주십니다. 노아 때에는 누구에게 가르쳐 줬느냐? 그 나라의 왕한테 가르쳐 준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무슨 시장이라든가 유명한 무슨 통치권을 가진 사람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노아, 믿지 못할 노아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믿지 못할 노아의 말을 믿었던 사람은 구원을 받고 안 믿은 사람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심판했느냐 하면 노아가 심판한 것이 아니라 노아가 한 말이 심판했습니다. 120년 후에 심판한다는 그 말을 믿지 않은 사람은 심판받았다는 것입니다. 말이 심판의 기준입니다. 타락도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졌으니, 말씀을 믿지 않으면 떨어지고 말씀을 믿어야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심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사람을 보내어 중심존재로 세워서 새로운 말씀을 예고하는데 그 말씀을 반대했다가는 다 죽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노아 때부터 시작해서 역사이래 심판을 끝내 가지고 새로운 에덴의 이상을 세우기 위한 선의 출발을 하려고 하던 그때가 바로 끝날입니다. 악의 끝을 보고 선의 출발을 보려는 때, 새로이 출발하여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때가 끝날인 것입니다. (69-124)

예수님 때도 끝날이었다

그 다음에는 또 언제가 끝날이었느냐? 예수님이 왔을 때가 끝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그 당시를 살펴봅시다. 성경 말라기 4장 1절을 보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했습니다. 몽땅 다 살라서 없애 버린다고 했습니다.
여기 잘 믿는 사람들이나 교역자들이 왔으면 “아, 그 성경 말씀은 이제 올 끝날에 이루어질 말씀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왜 아니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을 볼 때 틀림없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1장 13절에서 14절을 보면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세례 요한이다.” 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은 세례 요한까지입니다. 구약의 열매는 세례 요한이라는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신약의 출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3장 7절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끝날이 됐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자에게 알려 줘야 하니 세례 요한을 통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장차 오실 이는 불로 세례를 주리라.”고 예고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도 끝날이었던 것입니다. (69-126)

 

불심판의 의의

그러면 예수님 때에 전부 다 불로 사르는 심판을 했어요? 땅이 다 녹아졌어요? 그렇게 안 됐습니다. 
그러면 불심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 성경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리라.” 했습니다. 지글지글 타서 다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에 그렇게 됐어요? 안 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했습니다. 그 불을 던졌는데 안 붙었습니다. 그 불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 야고보서 3장 6절을 보면 “혀는 곧 불이요.” 했습니다. 또, 요한복음 12장 48절을 보면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말씀으로 심판하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끝날은 재판날을 말합니다. 재판장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변호사고 사탄은 검사입니다. 진짜 불로 지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을 보면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했습니다. 곧, 말씀으로 죽이신다고 했습니다. 불로 한다고 했어요? 입술의 기운은 말입니다. 
또, 이사야서 11장 4절을 보면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했습니다. 입의 막대기는 혓바닥입니다. 입의 기운은 말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했습니다. 불에 태워 버리는 거예요? 말씀입니다. 
왜 말씀을 믿지 않으면 심판하느냐? 에덴에서 말씀을 믿지 않아 불신의 조상이 되었으니 그것을 제거하고 그 이상의 믿음으로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믿음이 없어 가지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구약성경을 믿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될 때 메시아로 선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상식에 맞지 않아. 예수는 구약성경대로 하지를 않소.”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교와 이스라엘나라에 있어서의 끝날을 예고한 것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이 안타까웠으면 “내가 세상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했겠습니까?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내가 너희를 품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하고 예루살렘을 보고 탄식하지 않았어요? 불로 다 심판해 버리고 태워 버렸다면 예수님이 왜 죽었겠어요? (69-127)

예수님에 대해 두 가지로 예언돼 있는 성경

성경은 두 방면의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에 예수님이 와서 십자가에 돌아간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온 것인데 레버런 문은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만큼 성경을 모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을 보면 예수님이 영광의 주로 나타날 것을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53장에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고난의 예수님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영광으로 나타날 것은 맞지 않고 십자가로 돌아갈 것만을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나타날 영광의 때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런 섭리를 해야 되느냐?
우리는 타락한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탄도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만일에 사탄 편에 있던 미스터 박이라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면 사탄세계를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 편에 있던 사람이 만일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반대하고 나가게 되면 하늘 편을 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마귀보다 무섭게 생각하고 사탄 마귀도 사람을 하나님보다도 무섭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왔다갔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이고 선만을 행하십니다. 한 번 약속하면 그대로 행하는 하나님입니다. 악마도 일방적으로 악만을 행하고 선을 행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예언하는데 그러한 사람들을 놓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한 가지로 예언을 하겠어요? 두 가지로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으로 이룰 것은 안 맞고 십자가에 돌아갈 것이 맞았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69-129)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돌아가신 예수님

그러면 사람들이 믿어서 예수님이 죽었어요, 믿지 않아서 죽었어요?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에게 물어 봐도 믿지 않아서 죽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라바를 놔줄까요, 예수를 놔줄까요?”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은 바라바를 놔주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라가 믿지 아니하고, 교회가 믿지 아니하고, 종족이 믿지 아니하고, 가정이 믿지 아니하고, 형제가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7장을 보십시오! 동생들이 비웃기를 형님이 나타나길 바란다면 장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뭇사람들에게 선전하지 왜 시골뜨기처럼 틀어박혀 있느냐고 그러지 않았어요? 친척들이 전부 다 예수님을 미쳤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리새인과 유대교인은 예수님한테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여러분이 성경을 잘 알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죽이실 예수님 같으면 무엇 때문에 4천 년 동안 이스라엘 선민을 세우려고 하셨겠어요? 이스라엘 선민을 남기려고 아브라함 때부터 얼마나 고생했어요? 그렇게 4천 년 동안 무엇 때문에 길러 나오셨겠어요? 
만일에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자기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면, 그러기 위해서 왔다면 왜 가룟 유다에 대해서 “너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라는 말을 했겠어요? 가룟 유다가 아니면 예수님을 잡아죽일 수 없었는데 왜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다 역설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왜 세 번씩이나 피땀을 흘리며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어요? 
만일에 죽을 것을 본의(本意)로 해서 예수님이 왔다면 그런 기도를 한 예수님은 메시아의 자격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나라를 위하든가 백성을 위해서 한번 결심하고 약속하게 되면 죽을 자리에 당당히 나가는데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죽기 위해 와 가지고 그런 기도를 한다면 메시아의 자격이 있겠어요? 
돌변지사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믿고 받들었으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메시아가 되고 왕 중의 왕이 될 것이었는데 믿지 않았으니 메시아를 잡아죽인 제일 무서운 패가 됐다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무서운 유대교가 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무서운 이스라엘 민족이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69-130)

왜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했나

그렇다면 예수님이 죽을 때를 언제 결정했느냐? 누가복음 9장 30절을 보게 되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고하니….” 했습니다. 변화산상에서 죽을 것을 예고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결정을 다 한 다음에 예수님이 죽을 것을 예고하니 베드로가 예수님한테 “주여, 그리 마시옵소서!”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탄아 물러가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 뜻이 아니었느냐고 하며 이것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다른 이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어떻게 해서 4천 년 동안이나 그렇게 잘 믿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시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알아봅시다. 예수님은 새 시대의 주인으로 왔습니다. 한 단계 높은 시대의 주인으로 왔습니다. 그렇다면 퇴보한 구약말씀을 해서 되겠어요? 예수님이 구약성경만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요? 구약의 뜻은 이루어지겠지만 신약의 뜻은 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성경도 나 때문에 있고 모세도 나 때문에 왔다고 말하는데 그거 누가 믿어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어요? 그 시대에 예수님은 미친 사람처럼 돼 버렸습니다. 여기 잘 믿는 목사들이 그때의 바리새 교인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입니다.
또한,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들과 유대교 신자들은 메시아가 구름 타고 올 줄 알았습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다니엘서 7장 13절을 보게 되면 “한 인자와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와서….”라고 돼 있습니다. 그때도 구름 타고 올 줄 알고 있었는데 구름 타고 안 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봐서 그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느냐 하면, 요한 2서 7절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말이에요. 다니엘서에는 구름 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요한2서에는 몸뚱이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도 주님은 육신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고 전부 다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왜 또 못 믿었느냐? 말라기 4장 5절에 보게 된다면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은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돼 있습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이 오기 900년 전에 불수레를 타고 승천한 선지자입니다. 구약 성경을 믿는 유대교인들은 하늘로 올라갔던 엘리야가 아직까지 안 왔기 때문에 육신으로 온 예수를 지금까지도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단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과 이스라엘 사람은 엘리야가 안 왔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능청맞게 엘리야가 왔다고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라고 하신 것입니다.)그걸 누가 믿겠어요? “구름 타고 간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네가 메시아야? 누가 엘리야야? 네가 메시아 되기 위해서 사기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1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이 사람을 보내어 세례 요한한테 물을 때 어떻게 했어요?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하고 세례 요한은 부인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라고 했는데 장본인에게 물어 보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0절 이하를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가 있을 때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 물었는데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예수님한테 와서 묻기를 “선생님이여, 어찌하여 바리새 교인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나이까?” 하고 물어 봅니다. 그때 예수님은 “옳도다.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하였도다. 인자도 그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4절을 보면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하면서 엘리야는 세례 요한이라고 예수님이 똑똑히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했는데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니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을 믿었겠어요, 세례 요한의 말을 믿었겠어요? 세례 요한의 말을 믿게 돼 있었습니다. 그때의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배후가 이렇게 된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틀림없이 엘리야였습니다. 누가복음에도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하늘로 올 줄 알았는데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틀림없이 그를 엘리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섭리하셨습니다. (69-131)

재림주님은 구름 타고 오시지 않는다

예수님을 이단시해 가지고 잡아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나라와 유대교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유리고객(遊離孤客)하는 민족이 되었으며 수많은 민족의 말굽 앞에 희생당하고 총 끝에 희생당하는 민족이 됐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구름 타고 온다고 하셨고 초대 주님도 구름 타고 온다고 하셨습니다. 끝날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고 하고 불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한쪽만을 믿지 마십시오! 성경은 양면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0절과 요한계시록 1장 7절을 보게 되면, 주님은 구름 타고 온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을 보게 되면 도적같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 둘은 다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왜 구름 타고 온다는 것만 믿어요?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하를 보십시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주님이 구름 타고 와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들이니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했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구름 타고 온다면 왜 못 봐요? 
그 다음에 25절에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오시는 주님이 고통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시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온다면 누가 고통을 주고 누가 핍박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또, 26절에 보면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했습니다. 노아 때 믿었어요? 오시는 주님 때에도 그와 같다고 했습니다. 구름 타고 오면 그렇게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루어지려면 구름 타고 와서는 안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누가복음 18장 8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했습니다. 그 말은 신앙이라는 자체를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구름 타고 오게 된다면 왜 못 믿어요? 구름 타고 올 줄 알고 있는데 사람으로 오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이런 말 한다고 이단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때문에 피를 토하는 길을 갔고 죽을 길을 갔습니다. 일생 동안 고문을 받고 핍박받으며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를 찾아보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는 말을 서두로 하여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했습니다. 
자, 마귀를 내쫓고 예언을 하고 선지자의 권능을 행했으면 됐지요. 그렇게 잘 믿는 사람 있어요? 거기에 어떻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곧 물러가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름 타고 올 줄 알고 있다가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두 방면의 예언을 했습니다. 지금 때는 기독교와 민주세계의 끝날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기독교만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69-134)

 

재림주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고 비유한 말씀의 뜻

그러면 기독교에 주님이 와 가지고는 무엇을 할 것이냐? 앞으로, 민주세계에 주님이 온다면 공산세계까지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끝날이 오게 되면 불로 심판해 버리고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이 떨어지고 전부 다 세상이 다 녹아날 줄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예수님 때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데 구름 타고 왔어요? 엘리야가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데 그 엘리야가 구름 타고 왔어요, 안 왔어요?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지적해서 엘리야라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만일에 지금 주님이 사람으로 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거예요? 성경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 됩니다. 구름 타고 오는 것도 믿고 사람으로 오는 것도 믿으십시오! 둘 다 믿으십시오! 주님이 사람으로 올 줄 아는 사람은 만일 주님이 구름 타고 오더라도 틀림없이 맞고도 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구름이 뭐냐? 요한계시록 17장 15절을 보게 되면 이 세상을 물로 비유했습니다.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했습니다. 구름은 물이 증발해서 된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에서 증발된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聖化)된 성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성경에는 구름을 무리로 상징했습니다. 특별히, 하늘이 빼내 가지고 완전히 증발한 깨끗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69-136)

말세에 처한 신도가 취해야 할 신앙자세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했습니다.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거들랑 밀실에 들어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천사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시니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레버런 문이 의심되거든 기도해 이단인가, 아닌가를 알아보십시오! 나는 예수님과 하나님을 많이 만나 봤습니다. 성경의 비밀 이야기를 다 아는 사람입니다. 타락한 직후의 아담 해와와도 문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지옥 간 아담 해와와도 통했는데 천당에 가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하고 못 통해요? 예수님이 말하기를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눈이 있는 자는 볼지어다.” 했는데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런 얘기를 했겠어요? 들어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이단이에요? 레버런 문은 보고 이야기하고 듣고 이야기하는데 거짓말이에요? 
천국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의 아담 해와도 에덴동산에서 타락했는데, 이 사탄세계에서 천국 가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외국 사람이 미국의 시민 되기도 힘들지요? 그런데 땅에서, 지옥 세계에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기 쉬워요? 
이제 불원한 장래에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상속을 받아야 할 때가 오기 때문에 우리는 수속 방법을 알아야 됩니다. 노아 때 혹은 예수님 때 이 땅 위에서 하늘의 말을 선포한 것과 같이,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것과 같이 레버런 문이 끝날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대표자일지도 모릅니다. 
레버런 문이 그러한 대표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없습니다. 레버런 문이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믿지 않는 일반 세계의 사람에게 텔레비전 방송으로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역사를 미루어 보게 될 때, 그 전례를 볼 때 지금도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봐도 그러한 내용에 있어서 도리어 구름 타고 온다는 것보다 더 철두철미합니다. (69-137)

 

신앙의 위기를 맞이한 기독교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180도 전부 뒤집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을 세워서 인류의 갈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한 일을 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원리를 알려면 못해도 3년 이상은 연구해야 됩니다. 갑자기 처음 듣는 말인데 성경에는 그렇게 돼 있어서 반대도 못 하겠고 믿지도 못 하겠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만일에 천국에 가 가지고 내가 말한 것이 맞으면 그 말한 것이 여러분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맞다면 내 모가지가 달아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신앙을 다 알고 여러분이 아는 신학을 내가 다 아는 사람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되겠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담판해 가지고 이런 놀음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형제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말하는데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 두고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 때도 한 사람을 통해서 예고했지만 안 듣다가 심판받았고, 예수님 때도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박대하다가 전부 다 심판받았습니다. 이 때에 있어서도 레버런 문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심판은 무엇이 했느냐 하면 말이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민주세계와 기독교는 그야말로 위기입니다. 여기에서 방향만 잘 잡게 되면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심판과 말세를 거쳐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장래에 이상의 길을 이러한 곡절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의 관(觀)입니다.
내가 이것을 틀림없이 알기 때문에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계로 가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기독교에 이런 위험한 때가 오는 것을 알고 이 과정을 무난히 돌파하기 위해서 말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시고 기도로써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위험한 때라는 것을 아시길 바라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와 만난 것이 원수가 되지 않고 하늘 앞에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한 것을 기억해 주시고, 오늘 ‘기독교의 장래’라는 제목을 마음에 두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더 더욱 바랍니다. (69-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