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시여, 뜻을 이루소서 (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23일)

훈독왕 | 20190604170529

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23 


첨부파일 16 훈독경 제2권 23일 하나님이시여, 뜻을 이루소서 (cafe) -1.mp3


하나님이시여, 뜻을 이루소서
- 초교파기독교협회주최 ‘문선명 선생 초청 만찬회’ 말씀 -

날짜 : 1981. 5. 14(목)
장소 : 한국 서울 롯데호텔

하나님의 뜻은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고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114-9)

인간 타락으로 완성되지 못한 하나님의 창조이상

본래 하나님이 뜻하셨던 이상세계, 즉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그리시던 세계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완성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바라시던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을 맞지 못하셨습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하나님의 아들딸이었는데도 하나님의 참된 아들로서의 아담, 뜻을 성사한 아들로서의 아담, 그리고 참된 딸로서의 해와, 뜻을 성사한 딸로서의 해와를 하나님은 맞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절대자이신고로 그렇게 떨어진 인간, 병난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말은 하나님의 본연의 뜻, 인간시조가 타락하기 전 본연의 뜻으로 바라시던 창조이상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로 말미암아 타락된 자녀를 번식해 왔고, 그 자녀와 부모가 합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발전해 나온 것이 오늘날의 인류 역사입니다. 

만일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뜻의 세계가 이루어졌다면 그 세계는 하나님의 문화의 세계인 동시에 아담 해와 일족의 문화 세계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114-10)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기쁘시기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과 어떠한 관계로 계시고 싶으냐? 인간에 대해서 부모의 자리에 계시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어떠한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단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은 상대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지으신 목적이 기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쁜 데는 사랑을 중심삼고 기쁜 것입니다. 


만일, 아담이 완성되었더라면 고린도전서에서 우리 사람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을 가진 하나님이 아담의 심중에 임하셔서 아담과 일체의 이상을 성사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다고 했기 때문에 사랑을 가지고 아담 해와의 마음에 임하셔서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으로 계시고 아담 해와는 외적으로 실체를 쓴 하나님으로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통하지 않고는 사랑을 이루실 수 없었느냐?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몸을 쓰셨어야 되었던 것은 무형의 힘 가지고는 유형인 인간의 부모의 자리에 현현하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실체를 가진 부모의 자리에 현현하시기 위해서는 체(體)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성사시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 해와의 마음에 임하여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말로만 부모가 아니라 내용으로나 외적으로 완전히 부모의 자리에 서시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114-11)

하나님은 뜻 성사를 위해 구원섭리를 하셔

그래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의 참된 부모가 되어 실체의 부모로 살다가 저나라에 가면 부모의 자리가 현현하게 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지 못하고 저끄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뜻하신 것을 성취하시지 않을 수 없고, 처음에 하시고자 했던 뜻을 기필코 성사하셔야 할 분이신 연고로 본연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으로 재정비해야 되고 해와를 다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찾아진 부모로 연결시켜서 자녀를 찾으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타락을 막지 못하셨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타락을 막으실 수 없었던 것은 사랑이 란 것이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사랑이 절대적인 자리에 올라올 때까지 성장과정을 두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타락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되었느냐? 잘못된 사랑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누가 저끄러뜨렸느냐? 천사장이 아담 해와의 사랑을 저끄러뜨렸습니다. 해와를 꼬여 가지고 인연 맺고, 그 다음에는 아담을 유인해 가지고 인연 맺었던 것입니다. 

 

타락은 하나님의 피와 살을 이어받아야 할 우리 인류가 사탄의 피와 살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천리원칙은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완전히 주관하고 소유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순종, 불륜, 불의, 불운의 사랑이지만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법도의 자리에 들어 왔으니 하나님이라도 그 세워진 원리를 무시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실 수 없으니 놔두고 구원섭리, 복귀운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114-13)

창조할 때 원리를 중심삼고 했기에 복귀도 원리를 중심삼고 해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나와 있는 것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 마귀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또,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을 뱀으로 상징했으니 뱀의 피와 살을 이어받은 새끼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마귀가 마귀로서의 기반을 남길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 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은 아들딸들을 회복하시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사탄 된 동기를 알아야 되고 사랑의 질서를 어긴 모든 동기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는 사탄의 피를 받아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자기를 위주한 혈통을 중심삼고 인류에게 뿌렸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공적인 문제를 떠나서 자기를 위주한 생활을 합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보게 될 때는 먼저 난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다음에 난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 해와의 아들딸도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복귀하시는 데도 원리를 중심삼고 거꾸로 복귀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본래의 원리가 어떻게 되어 있었느냐? 하나님, 사람, 천사장의 순서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장이 사탄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천사장, 사람의 순서로 거꾸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으시는 데 있어서 순서에 따라 찾으셔야 했습니다. 사람을 둘째 번으로 세우셔야 할 입장에 계셨기 때문에 가인은 천사장의 대신자로 세우시고 아벨은 아담의 자리에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본래의 순서대로 복귀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벨을 하나님 편에 세우시고 가인을 아벨의 앞에 굴복시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사람, 천사장의 자리로 다시 수습하기 위한 역사를 전개시키신 것입니다. (114-15)

가인과 아벨이 제물 드린 것은 소유를 결정하기 위한 것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제물은 소유물을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탄 편에 합당하면 사탄이 소유하는 것이요, 하나님 편에 합당하면 하나님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차자로 태어났는데 하나님 편에 돌아와서는 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통하여 제물을 드리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안 받으셨느냐? 아벨은 하나님 편이니까 받으시고 가인은 사탄 편에 세워 놓으셨기 때문에 안 받으신 것입니다. 그건 영원히 안 받는 것이 아니라 가인이 제물을 받은 아벨을 사랑하고 아벨을 따라 들어오게 될 때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 사람, 천사장의 순서가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구원역사는 수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14-16)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올 수 있는 조건을 세운 야곱

 

야곱시대에 에서와 야곱을 중심삼고 그 일을 단행하려고 하셨습니다. 따로따로 태어난 두 아들을 통해 일이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쌍동이를 통해서 그 일을 성사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복중까지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이삭이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축복해 줄 것을 알고 야곱을 도와 에서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는 놀음을 했습니다. 어찌하여, 어머니가 그것을 빼앗는 데 있어서 주동역할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여자가 타락시켰으니 복귀하는 데도 여자가 책임을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해와는 타락할 때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자기 남편이었던 아담을 속였습니다. 

 

그와 같이 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리브가를 세워서 하나님의 대신으로 이삭, 아담의 대신으로 에서가 모르게 축복을 빼앗아 오신 것입니다. 
에서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21년간 받은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라반에게서 전부 갈라내 가지고 새로운 가정적인 판도와 종족적인 판도를 편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위해서 가다가 얍복강가에서 천사하고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천사와 씨름해야 되었느냐? 하나님을 반대하던 천사가 만약에 야곱과 싸워서 지는 날에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하던 최후의 결정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영적인 천사장을 굴복시키지 못하고는 실체 사탄 편의 아들인 에서를 굴복시킬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힘을 다해 밤을 새우면서 씨름을 해서 이겼습니다. 

 

왜 이스라엘이었어요? 사탄 마귀에 대해서 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에서가 야곱을 환영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희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 사람, 천사장의 위치가 본연의 궤도를 타고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출발이었습니다. (114-17)

베레스와 세라를 통한 복중에서의 장자권 복귀섭리

성경 역사 가운데 창세기 38장에 다말은 자기의 시아버지가 딤나 농장에 양털 깎으러 가던 도상에 있어서 창녀의 옷을 입고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다말을 통해서 낳은 아들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섭리노정에서 다말이라는 여성, 그와 같은 인간세계에서 용서치 못할 행실을 한 여성을 통해 태어난 베레스의 후손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했느냐? 

 

다말은 해와가 타락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입장인 시아버지를 속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사를 개의치 않고 그 일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다말이 유다지파의 혈통을 이어받기 위한 일심(一心)에서 시아버지를 유인해서 잉태한 것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그들이 해산날이 가까워 해산하게 되는데 맏아들이 손을 내밀고 나오기에 산모가 홍사, 붉은 실로 표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형을 잡아 끌어당겨 밀쳐 버리고 먼저 나왔습니다. 복중에서부터 선악의 아들딸이 갈라졌으니 복중으로부터 뒤집어 놓아 가지고 먼저 태어난 장자의 기업을 갖지 않으면 차자는 장자를 지배할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말의 복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동생인 베레스가 형을 밀치고 장자로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쌍둥이로 태어나서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온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복중에서부터 혈통적으로 하나님 편의 장자권을 인정할 수 있는 기반이 유다의 후손을 통하여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14-19)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탕감된 기반 위에 태어난 예수님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탄생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을 탄생시키는 데 있어서도 마리아는 자기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길을 갔습니다. 남편도 허락하지 않은 길을 갔습니다. 어찌하여 그랬느냐? 해와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아담을 부정해서 아담을 잃어버렸으니 하나님도 사탄이 빼앗아간 것을 눈은 눈, 귀는 귀, 이는 이 그대로 탕감하는 법칙에 의해 빼앗아 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법에 여인이 간음을 하면 돌로 맞아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나선 마리아는 남편과 약혼한 것을 부정한 자리에서 예수님을 잉태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말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탕감된 기반 위에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이 복중에 잉태되더라도 사탄이 “내가 사랑하는 혈육으로 남아져 있다.”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복중에 잉태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혈통을 탕감시켜 맑힌 기반 위에 태어난 성인은 예수님 이외에 어떤 성인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성인 중의 성인이었습니다. (114-22)

성경에 인륜 도덕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 나와 있는 이유

이와 같은 내적인 비운의 곡절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보면서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요? 성경을 보십시오! 마태복음을 보면 아브라함의 역사로부터 예수님의 역사가 나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어찌하여, 세상에서 용납할 수 없는 다말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는지 생각해 봤어요? 

 

또,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 왕을 낳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불경스럽고 인륜 도덕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이런 내용을 엮어 가지고 썼느냐? 마태라는 작가는 예수님 탄생의 배후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돼서 이것을 역사로 엮어 예수님까지 표기해 놓았겠습니까? 

이와 같은 탕감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14-24)

신랑으로서 신부를 찾아야 할 책임을 지고 온 예수님

지금까지 4천 년 유대교 역사를 거치면서 수고하여 타락하기 전 혈통, 더럽히지 않은 아들인 아담을 복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에서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담의 자리를 복귀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천리의 원칙을 따라 운행하십니다. 아담을 찾았으니, 신랑이 되었으니 사탄세계에서 해와, 신부를 찾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라의 기반으로부터 교회의 기반, 종족의 기반, 가정적 기반을 준비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요셉의 가정과 사가랴의 가정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아담 완성의 기반을 닦아 자리를 찾았으니 해와를 찾아야 되는데 아담을 통해서 해와를 지었으니 아담을 통해서 해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걸 찾기 위해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의 축복을 받았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대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또,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 나는 망해야 되고 그는 흥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왜 자기는 망해야 되었어요? 예수님을 따라가면 흥할 것이었는데 말이에요. 반대하는 날에는 망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다 죽어야 할 것이었는데 세례 요한의 제자와 예수님의 제자가 모여 서로 싸움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례 요한은 불의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니 예수님은 기반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길을 떠나 사탄세계와 싸워 가지고 그러한 가정기반과 종족기반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걷게 되었는데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 로마와 짜 가지고 예수님을 잡아죽이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나라가 피로 물들게 되었고, 예수님의 가정과 모든 축복받았던 가정들이 전부 다 사탄의 제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아담이 완성된 기준을 세워 놓고, 해와가 완성된 기준을 세워 놓고 아담과 해와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114-25)

우리가 중생하려면 신랑 되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해야

예수님은 새로운 신부, 참된 어머니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은 후 오순절에 120명의 무리가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성신이 강림했습니다. 

 

성신은 뭐냐? 해와가 완성되었더라면 그 형체를 쓰고 나타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해와의 영성(靈性)이 하나님 앞에 거둠을 받았다가 다시 그것이 이 땅 위에 재현될 수 있는 한 날에 신부를 맞아 영성을 투입해 형상을 입히려고 했는데 형상을 입힐 수 있었던 신부의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실체의 부모 자리에 못 나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수없이 영적인 부모의 자리라도 나가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는 성신을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남편을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신부 되시는 성신의 사랑이 일치되기 전,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서 하나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랑의 심정기준이 심어지기 전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생하려면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됩니다. 타락권 내에서 그 어떠한 사랑보다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더 사랑해서 사탄세계의 사랑을 능가하지 않는 한 하나님과 연락될 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본연을 기준삼고 예수님의 뼛골에서 태어난 아들딸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하나되었다고 하는 사랑의 일체가 되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예수님과 하나되어 성신인 어머니를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한테도 중생이란 말을 얘기했습니다. (114-27)

타락한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것


오늘날 타락된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찾으려면 개인적인 하나님의 아들, 가정적인 하나님의 아들, 종족적인 하나님의 아들, 민족적인 하나님의 아들, 국가적인 하나님의 아들을 찾아야 할 텐데 이렇게 찾으려면 인류가 얼마나 고생하겠어요? 메시아를 찾는 날에 개인적 하나님의 아들,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 아들까지 전체 아들을 찾은 것이 됩니다. 

 

타락된 우리는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의 가정을 찾는 것입니다. 부모의 가정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가 계시는 곳, 그런 환경에서 사랑의 노래를 하면서 자동적으로 횡적으로 뻗어 나가게 될 때 민족의 형성은 가능한 것입니다. 
아담이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정을 찾기 전에는 종족, 국가, 세계도 못 찾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타락권 내의 사랑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박차고 나가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너는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왜 사랑의 독재자라는 그런 말을 하겠어요? “네 어미 사랑하기를, 네 남편 사랑하기를, 네 자식 사랑하기를 나보다도 더 사랑하려고 한다면 나에게 합당치 않다.”고 했는데, 그 이상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114-29)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적 가정을 만들기 위한 단체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단체냐?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적인 가정, 이상적인 아담의 자리, 이상적인 해와의 자리를 형성하려는 단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합동결혼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가 이와 같은 뜻을 알고 오시는 주님과 하나되겠다는 준비를 하게 되면 세계의 기반은 7년 이내에 완전히 닦입니다. 7천 년 역사를 7년 이내에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는 갈라질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레버런 문을 반대하지 않고 받아들였더라면 7년 이내에 세계 기독교가 하나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백성 중에서 나 반대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세계가 “레버런 문을 잡아 죽여라!” 했습니다. 
그런데 레버런 문이 죽으면 큰일납니다. 하나님이 천신만고 수고하셨고, 기독교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통일교회 레버런 문을 살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2천 년 동안 발전했던 기독교가 왜 20세기 역사노정에서 몰락하고 있는 것이냐?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점점 약화되고, 통일교회는 급진적으로 발전해서 세계 기독교의 판도를 능가할 수 있는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114-33) 

 

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23 원문


하나님이시여, 뜻을 이루소서
- 초교파기독교협회주최 ‘문선명 선생 초청 만찬회’ 말씀 -

날짜 : 1981. 5. 14(목)
장소 : 한국 서울 롯데호텔

하나님의 뜻은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딱 집어서 “하나님의 뜻이 뭐냐?” 이렇게 질문하게 될 때, 이 말은 간단한 말 같지만 대답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말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신앙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소서!” 하며 기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더욱이나, 우리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고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인간의 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말을 빌려 말하면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왔었고, 기독교는 그 뜻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므로 전세계에 널려 있는 우리 신앙자들은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114-9)

인간 타락으로 완성되지 못한 하나님의 창조이상

본래 하나님이 뜻하셨던 이상세계, 즉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그리시던 세계가 실현되었느냐 하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완성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바라시던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을 맞지 못하셨습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하나님의 아들딸이었는데도 하나님의 참된 아들로서의 아담, 뜻을 성사한 아들로서의 아담, 그리고 참된 딸로서의 해와, 뜻을 성사한 딸로서의 해와를 하나님은 맞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떨어진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병난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떨어지고 그렇게 병이 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본래 세우셨던 뜻을 이루시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절대자이신고로 그렇게 떨어진 인간, 병난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회복운동, 재창조의 역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말은 하나님의 본연의 뜻, 인간시조가 타락하기 전 본연의 뜻으로 바라시던 창조이상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타락한 그날부터 인류 역사상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부모로 말미암아 타락된 자녀를 번식해 왔고, 그 자녀와 부모가 합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발전해 나온 것이 오늘날의 인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타락되지 않고 뜻 완성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부모, 본연의 하나님의 뜻을 이어 성사해야 할 참된 부모는 역사시대에 현현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참된 부모를 중심삼은 참된 가정과 참된 종족, 민족, 국가, 세계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뜻의 세계가 이루어졌다면 그 세계는 하나님의 문화의 세계인 동시에 아담 해와 일족의 문화 세계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언어가 다를 수 없고 모든 전통 문화가 다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치리 하에서 하나의 세계와 민족을 이루었을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114-10)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기쁘시기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과 어떠한 관계로 계시고 싶으냐? 인간에 대해서 부모의 자리에 계시고 싶은 것입니다. 일반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알고 있고 그 관계는 물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는 그러한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어떠한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단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은 상대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 혼자 계시면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지으신 목적이 어디 있었느냐 하면 기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쁜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기쁜 것이냐? 보고서 기쁜 것이 아니요, 말하고 기쁜 것이 아니요, 만져 보고 기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기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하나님이 기쁨을 성사하시기 위해서 만물 창조를 시작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이 완성되었더라면 고린도전서에서 우리 사람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을 가진 하나님이 아담의 심중에 임하셔서 아담과 일체의 이상을 성사하셨을 것입니다. 즉, 아담과 하나님이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다고 했기 때문에 아담적인 형상과 성상, 그리고 해와적인 형상과 성상을 지닌 그분이 사랑을 가지고 아담 해와의 마음에 임하셔서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으로 계시고 아담 해와는 외적으로 실체를 쓴 하나님으로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본인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통하지 않고는 사랑을 이루실 수 없었느냐?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세계에 대한 체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영계에 가면 예수님밖에 안 보입니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그 말씀을 현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몸을 쓰셨어야 되었던 것은 무형의 힘 가지고는 유형인 인간의 부모의 자리에 현현하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실체를 가진 부모의 자리에 현현하시기 위해서는 체(體)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성사시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 해와의 마음에 임하여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말로만 부모가 아니라 내용으로나 외적으로 완전히 부모의 자리에 서시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한 뜻 가운데 아담 해와를 지으셔서 아담 해와가 완성해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시대가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시어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실체를 가지고 임하실 수 있는 길이 열림과 동시에 실체세계에서는 형상적인 인류의 부모로서 군림하시고자 했습니다. (114-11)

하나님은 뜻 성사를 위해 구원섭리를 하셔

그래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의 참된 부모가 되어 실체의 부모로 살다가 저나라에 가면 부모의 자리가 현현하게 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지 못하고 저끄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부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자녀는 어떠한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된 인간들의 사랑에도 생명을 가지고 못 막는 힘이 있는 걸 볼 때 타락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된 그것을 무엇이 깨뜨려 버리고 타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창조이상을 성사시키려고 하셨던 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깨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뜻하신 것을 성취하시지 않을 수 없고, 처음에 하시고자 했던 뜻을 기필코 성사하셔야 할 분이신 연고로 이것을 다시 수습하고 재생공장에서 다시 수리하여 본연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으로 재정비해야 되고 해와를 다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찾아진 부모로 연결시켜서 자녀를 찾으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구원섭리가 시작되었느냐? 이것이 신학적으로 문제입니다. 구원섭리는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타락을 막지 못하셨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타락을 막으실 수 없었던 것은 사랑이란 것이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사랑이 절대적인 자리에 올라올 때까지 성장과정을 두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남녀 청년들이 사춘기가 될 때까지는 과정을 두고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과 해와도 반드시 어느 과정적인 기간을 거쳐 가지고 성숙기가 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도달하기 전에 타락했습니다. 오늘날 성경에서 말하듯이 선악과라는 실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타락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되었느냐? 사랑문제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곧, 타락이 잘못된 사랑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누가 저끄러뜨렸느냐? 천사장이 아담 해와의 사랑을 저끄러뜨렸습니다. 해와를 꼬여 가지고 인연 맺고, 그 다음에는 아담을 유인해 가지고 인연 맺었던 것입니다. 정도(正道)를 통해 하나님의 앞으로 바로 갔어야 했고 부부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앞으로 직행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방향을 달리하여 왼쪽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타락은 하나님의 피와 살을 이어받아야 할 우리 인류가 사탄의 피와 살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천리원칙은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완전히 주관하고 소유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순종, 불륜, 불의, 불운의 사랑이지만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법도의 자리에 들어 왔으니 하나님이라도 그 세워진 원리를 무시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실 수 없으니 놔두고 구원섭리, 복귀운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복귀를 말합니다. 다시 회복한다는 말입니다. (114-13)

창조할 때 원리를 중심삼고 했기에 복귀도 원리를 중심삼고 해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이후에 생겨난 첫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전부가 사탄의 아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나와 있는 것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 마귀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또,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을 뱀으로 상징했으니 뱀의 피와 살을 이어받은 새끼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마귀가 마귀로서의 기반을 남길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 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은 아들딸들을 회복하시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사탄 된 동기를 알아야 되고 사랑의 질서를 어긴 모든 동기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는 사탄의 피를 받아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자기를 위주한 혈통을 중심삼고 인류에게 뿌렸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공적인 문제를 떠나서 자기를 위주한 생활을 하고, 자기 가정을 위주한 생활을 하고, 자기 국가를 위주한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든, 세계든, 천주는 다 모른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로 떨어져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보게 될 때는 먼저 난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다음에 난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반대의 결과가 되었습니다. 아담 해와도 사탄의 소유가 되었고, 아담 해와의 아들딸도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사탄의 피와 살이 얼크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창조하실 때 원리를 중심삼고 지으셨기 때문에 복귀하시는 데도 원리를 중심삼고 거꾸로 복귀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본래의 원리가 어떻게 되어 있었느냐? 하나님, 사람, 천사장의 순서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장이 사탄이 됨으로 말미암아 순서가 천사장 다음에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꾸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람, 천사장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하나님, 천사장, 사람의 순서로 거꾸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으시는 데 있어서 순서에 따라 찾으셔야 했습니다. 사람을 둘째 번으로 세우셔야 할 입장에 계셨기 때문에 가인은 천사장의 대신자로 세우시고 아벨은 아담의 자리에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본래의 순서대로 복귀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벨을 하나님 편에 세우시고 가인을 아벨의 앞에 굴복시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사람, 천사장의 자리로 다시 수습하기 위한 역사를 전개시키신 것입니다. (114-15)

가인과 아벨이 제물 드린 것은 소유를 결정하기 위한 것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본래,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가인도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사탄이 조건을 걸고 있기 때문에 조건적인 입장에서 아벨을 하나님 편에 세워 놓으시고 제물을 통해서 완전히 소유를 결정하기 위한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제물은 소유물을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탄 편에 합당하면 사탄이 소유하는 것이요, 하나님 편에 합당하면 하나님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구교로부터 기독교가 제물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소유물 결정전을 하고 있습니다. 
아벨이 사탄 편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아들이 하나님 편에 돌아와서는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태어나기는 차자로 태어났는데 하나님 편에 돌아와서는 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장자의 권한은 하나님 앞에 없습니다. 사탄 편에서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장자의 권한이 유린당했기 때문에 그것을 되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통하여 제물을 드리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안 받으셨느냐? 아벨은 하나님 편이니까 받으시고 가인은 사탄 편에 세워 놓으셨기 때문에 안 받으신 것입니다. 그건 영원히 안 받는 것이 아니라 가인이 제물을 받은 아벨을 사랑하고 아벨을 따라 들어오게 될 때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 사람, 천사장의 순서가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구원역사는 수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14-16)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올 수 있는 조건을 세운 야곱

그런데 그 일의 성사를 보지 못하신 하나님은 역사시대를 통하여 그것을 전환시켜 놓으시는 운동을 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가인과 아벨로써 그 순서가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입장을 가까운 거리로 축소시켜서 야곱시대에 에서와 야곱을 중심삼고 그 일을 단행하려고 하셨습니다. 따로따로 태어난 두 아들을 통해 일이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쌍둥이를 통해서 그 일을 성사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찾아 들어갔느냐 하면 어머니의 복중까지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전환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희망의 날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역사를 이끌고 나오셨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이삭이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축복해 줄 것을 알고 야곱을 도와 에서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는 놀음을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엄연한 사실인데 무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어찌하여, 어머니가 그것을 빼앗는 데 있어서 주동역할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법은 이는 이, 눈은 눈으로 갚는 법이었습니다. 그러니 여자가 타락시켰으니 복귀하는 데도 여자가 책임을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해와는 타락할 때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하나님 모르게 의논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타락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자기 남편이었던 아담을 속였습니다. 해와가 부자를 부정한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아담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와 같이 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리브가를 세워서 하나님의 대신으로 이삭, 아담의 대신으로 에서가 모르게 축복을 빼앗아 오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바꾸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꿔졌던 것을 교체하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서 리브가는 야곱을 통해 잃어버린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올 수 있었던 조건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조건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서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게 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거기서 21년 동안 고생했지요? 거기서 아내 레아와 라헬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21년간 받은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라반에게서 전부 갈라내 가지고 새로운 가정적인 판도와 종족적인 판도를 편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위해서 가다가 얍복강가에서 천사하고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천사와 씨름해야 되었느냐? 천사는 사탄의 입장으로 하나님을 반대하던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던 천사가 만약에 야곱과 싸워서 지는 날에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야곱과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하던 최후의 결정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영적인 천사장을 굴복시키지 못하고는 실체 사탄 편의 아들인 에서를 굴복시킬 수 없었습니다. 에서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그런 천륜의 내적인 비밀을 몰랐겠지만 있는 힘을 다해 밤을 새우면서 씨름을 해서 이겼습니다. 그 표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이었어요? 사탄 마귀에 대해서 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귀 편에 있었던 에서도 굴복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에서가 야곱을 환영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희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 사람, 천사장의 위치가 본연의 궤도를 타고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출발이었습니다. (114-17)

베레스와 세라를 통한 복중에서의 장자권 복귀섭리

그렇지만 야곱이 장자의 기업을 하나님 편에서 성사시킨 것은 조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들이 나이가 많은 30세 이후에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사탄은 30세 이하권 내에 있는 아들딸은 어떤 여인의 복중에서 태어나더라도 자기의 것이라고 우긴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차대한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승리한 터전 위에 야곱의 가정을 중심삼고 다시 내적으로 복중에서, 낳아 가지고 뒤넘이친 것이 아니라 복중에서 그 일을 처리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 역사 가운데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다말의 역사를 잘 아실 것입니다. 다말은 자기의 시아버지가 딤나 농장에 양털 깎으러 가던 도상에 있어서 창녀의 옷을 입고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다말을 통해서 낳은 아들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섭리노정에서 다말이라는 여성, 그와 같은 인간세계에서 용서치 못할 행실을 한 여성을 통해 태어난 베레스의 후손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했느냐? 이 문제를 올바로 해석하지 않고는 기독교사가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세계를 갖다 맞출 길이 없습니다. 
다말은 해와가 타락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입장인 시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자기 남편인 유다의 첫째 아들이 죽고 둘째 아들도 죽었기 때문에 셋째 아들인 나이 어린 셀라를 이어받아 형제들의 대를 잇기를 바랐는데도 불구하고, 나이 어린 셀라를 자기의 남편으로 맞아서는 유다 가(家)의 뜻, 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에 이르던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사를 개의치 않고 그 일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다말이 유다지파의 혈통을 이어받기 위한 일심(一心)에서 시아버지를 유인해서 잉태한 것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그들이 해산날이 가까워 해산하게 되는데 맏아들이 손을 내밀고 나오기에 산모가 홍사, 붉은 실로 표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형을 잡아 끌어당겨 밀쳐 버리고 먼저 나왔습니다. 복중에서부터 선악의 아들딸이 갈라졌으니 복중으로부터 뒤집어 놓아 가지고 먼저 태어난 장자의 기업을 갖지 않으면 차자는 장자를 지배할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이 장자의 자리에 있고 종교는 차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장자는 차자를 지배하고 차자의 자리에 있는 동생은 형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인은 맞으면서, 몰리면서, 죽으면서도 변명 한 마디 못 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장자의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에 하나님 편의 아들은 차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다말의 복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동생인 베레스가 형을 밀치고 장자로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쌍둥이로 태어나서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온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복중에서부터 혈통적으로 하나님 편의 장자권을 인정할 수 있는 기반이 유다의 후손을 통하여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14-19)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탕감된 기반 위에 태어난 예수님

그렇다면 당장에 베레스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섭리를 추진시키실 것이었는데 왜 못 하셨느냐? 사탄세계가 나라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주권국가로 있기 때문에 제아무리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하더라도 가정적인 기반만을 가지고는 세계와 대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한 나라를 목표로 2천 년 역사를 연장시켜 나오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족속은 국가의 편성을 위하여 2천 년의 세월을 기다려 나왔고, 하나님은 이 땅의 수많은 유대교인들 앞에 메시아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빨리빨리 커나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하고 이스라엘 국가권 내에 유대교가 내적인 입장에서 나라와 하나되어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심정적인 유대를 이어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탄생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을 탄생시키는 데 있어서도 마리아는 자기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길을 갔습니다. 남편도 허락하지 않은 길을 갔습니다. 어찌하여 그랬느냐? 해와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아담을 부정해서 아담을 잃어버렸으니 하나님도 사탄이 빼앗아간 것을 눈은 눈, 귀는 귀, 이는 이 그대로 탕감하는 법칙에 의해 빼앗아 와야 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 앞에 아담과 해와의 입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해와가 약혼시기에 타락했습니다. 결혼하는 날이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었던 날인데도 불구하고 그 날을 앞에 두고 타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그것과 반대의 입장에서 모험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법에 여인이 간음을 하면 돌로 맞아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나선 마리아는 남편과 약혼한 것을 부정한 자리에서 예수님을 잉태했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된 예수님은 그 순간부터 사탄이 “저는 내 사랑의 이름으로 남겨진 아들이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다말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탕감된 기반 위에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이 복중에 잉태되더라도 사탄이 “내가 사랑하는 혈육으로 남아져 있다.”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새로운 하나님의 소망의 아들이 현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중에 잉태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혈통을 탕감시켜 맑힌 기반 위에 태어난 성인은 예수님 이외에 어떤 성인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성인 중의 성인이었습니다. 그냥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무지(無知)에서 완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알고 이루어도 성사되지 못할 것인데 무지한 여러분이 뜻을 성사시킬 수 있어요? 어림도 없습니다. (114-22)

성경에 인륜 도덕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 나와 있는 이유

이와 같은 내적인 비운의 곡절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보면서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거 뭐 레버런 문이 하는 말이니 믿을 수 있어야지…?” 할 거예요? 성경을 보십시오! 마태복음은 창세기를 대신한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마태복음에서 복귀해야 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아브라함의 역사로부터 예수님의 역사가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역사가 이러하니라.” 하고 첫 장에 나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어찌하여, 세상에서 용납할 수 없는 다말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는지 생각해 봤어요? 이런 것은 떼버리지 왜 첫머리에 집어넣었느냐? 
그 다음에 보아스가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룻은 첩으로 불법적인 사랑의 대상이었데 어찌하여 마태복음에 그렇게 기록해 놓았느냐는 것입니다. 또,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 왕을 낳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불경스럽고 인륜 도덕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이런 내용을 엮어 가지고 썼느냐? 마태라는 작가는 예수님 탄생의 배후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쭉 내려가서 말하기를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고,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데 어떻게 돼서 이것을 역사로 엮어 예수님까지 표기해 놓았겠습니까? 
역사시대에 발표할 수 없었던 비운의 역사가 여기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파헤쳐 기독교의 전통을 확실히 성립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세계의 기독교는 산산조각이 되어 사탄의 제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탕감역사를 통하여 마리아라는 여성이 역사적인 한을 풀 수 있는 국가를 대신한 중심 여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생사를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잉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독생자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14-24)

신랑으로서 신부를 찾아야 할 책임을 지고 온 예수님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뭐냐? 지금까지 4천 년 유대교 역사를 거치면서 수고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찾으셨느냐, 무엇을 복귀하셨느냐 할 때 타락하기 전 혈통, 더럽히지 않은 아들인 아담을 복귀하셨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아담을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에서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했습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왜 후아담이라고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복귀역사, 곧 다시 찾는 역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4천 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시어 인간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 길을 따라 비로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현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담의 자리를 복귀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천리의 원칙을 따라 운행하십니다. 아담을 찾았으니, 신랑이 되었으니 무얼 찾으셔야 되느냐? 사탄세계에서 해와, 신부를 찾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잘못되어 남편 노릇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해와를 지배하고 명령할 수 있는 자리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이행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빼앗겼으니 사탄세계에서 찾아와야 됩니다. 그것을 찾아오려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라의 기반으로부터 교회의 기반, 종족의 기반, 가정적 기반을 준비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요셉의 가정과 사가랴의 가정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하나되었더라면 순식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순응했더라면 어떻게 되었느냐? 세례 요한의 누이동생을 예수님이 신부로 맞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담 완성의 기반을 닦아 자리를 찾았으니 해와를 찾아야 되는데 그것은 아담을 통해야 됩니다. 아담을 통해서 해와를 지었으니 아담을 통해서 해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걸 찾기 위해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의 축복을 받았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대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또,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 나는 망해야 되고 그는 흥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왜 자기는 망해야 되었어요? 예수님을 따라가면 흥할 것이었는데 말이에요. 반대하는 날에는 망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다 죽어야 할 것이었는데 세례 요한의 제자와 예수님의 제자가 모여 서로 싸움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례 요한은 불의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니 예수님은 기반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길을 떠나 사탄세계와 싸워 가지고 그러한 가정기반과 종족기반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과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라도 이 일을 성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걷게 되었는데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 로마와 짜 가지고 예수님을 잡아죽이자고 했던 것입니다. 로마의 원수, 민족의 반역자, 교단의 반역자로 예수님을 몰아쳤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나라가 피로 물들게 되었고,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완전히 함정에 빠지게 되었고, 예수님의 가정과 모든 축복받았던 가정들이 전부 다 사탄의 제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완전히 기반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몰리다가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면서 “내가 다시 오겠다. 다시 신랑으로서 신부를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아담이 완성된 기준을 세워 놓고, 해와가 완성된 기준을 세워 놓고 아담과 해와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이 이루어졌어요?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였던 이스라엘의 4천 년 역사 기반과 유대교 4천 년 역사 기반이 일시에 무너지게 될 때 기가 막혔던 예수님의 사정을 누가 알았느냐? 오늘날 기성교회에 핍박받는 문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런 말이라도 하니 고맙지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114-25)

우리가 중생하려면 신랑 되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해야

예수님은 새로운 신부, 참된 어머니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가정 완성은 불가능하고 뜻도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은 후 오순절에 120명의 무리가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성신이 강림했습니다. 성신이 어머니의 신입니다. 남편을 아는 사람은 부인밖에 없습니다. 신랑과 완전히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신부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신은 뭐냐? 해와가 완성되었더라면 그 형체를 쓰고 나타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해와의 영성(靈性)이 하나님 앞에 거둠을 받았다가 다시 그것이 이 땅 위에 재현될 수 있는 한 날에 신부를 맞아 영성을 투입해 형상을 입히려고 했는데 형상을 입힐 수 있었던 신부의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실체의 부모 자리에 못 나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수없이 영적인 부모의 자리라도 나가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뜻의 기반도 남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는 성신을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왜 성신을 받아야 되느냐? 여자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여자가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남편을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신부 되시는 성신의 사랑이 일치되기 전,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서 하나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랑의 심정기준이 심어지기 전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생하려면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됩니다. 타락권 내에서 사탄의 그늘에 세워진 그 어떠한 사랑보다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더 사랑해서 사탄세계의 사랑을 능가하지 않는 한 하나님과 연락될 길이 없습니다. 이게 수난의 길이요, 종교의 어려운 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본연을 기준삼고 예수님의 뼛골에서 태어난 아들딸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아담이 태어나기 전에 아들딸의 씨를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뼛골에서 태어난 아들딸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하나되었다고 하는 사랑의 일체가 되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예수님과 하나되어 성신인 어머니를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한테도 중생이란 말을 얘기했습니다.
아버지만 가지고 중생해요? 어머니만 가지고 중생해요? 어머니 아버지의 실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가정 완성, 사랑의 이상가정을 성사하지 못했으므로 아담이 다시 와서 신랑의 자리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화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는 아담의 자리가 사랑으로 일체화되어 묶어지는 날에는 그 어떤 것이라도 타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 날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114-27)

타락한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것

오늘날 타락된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가인의 아들로 태어난 분통함의 역사를 갖고 탄식하고 있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 자리에 선 아벨적 존재가 어디 있느냐?” 하며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찾으려면 개인적인 하나님의 아들, 가정적인 하나님의 아들, 종족적인 하나님의 아들, 민족적인 하나님의 아들, 국가적인 하나님의 아들을 찾아야 할 텐데 이렇게 찾으려면 인류가 얼마나 고생하겠어요? 그러니 국가적 기준에 있는 아들권을 대표한 메시아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 메시아를 찾는 날에 개인적 하나님의 아들,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 아들까지 전체 아들을 찾은 것이 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인간 세상에 부여하는 것이 메시아의 강림입니다. 
타락된 우리는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고 난 다음에는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부모가 없습니다. 타락한 부모는 가졌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완성된 부모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딸을 가진 후에는 소원이 뭐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의 가정을 찾는 것입니다. 부모의 가정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형제를 찾아야 되고, 아버지를 찾아야 되고, 어머니를 찾아야 되고, 내 집을 찾아 내 본향의 집을 갖지 않으면 안될 오늘날 이 땅의 인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가 계시는 곳, 그런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을 중심한 가정의 자리가 고향이 되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사랑의 노래를 하면서 자동적으로 횡적으로 뻗어 나가게 될 때 민족의 형성은 가능한 것입니다. 
아담이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를 통해서 찾아야 할 기준은 먼저 가정을 찾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기 전에는 종족, 국가, 세계도 못 찾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타락권 내의 사랑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박차고 나가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너는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왜 사랑의 독재자라는 그런 말을 하겠어요? “네 어미 사랑하기를, 네 남편 사랑하기를, 네 자식 사랑하기를 나보다도 더 사랑하려고 한다면 나에게 합당치 않다.”고 했는데, 그 이상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이하가 될 때는 아무리 장로가 되고, 아무리 목사가 되고, 아무리 천하의 유명한 부흥사가 되더라도 사탄의 주관권 내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이 놀랍고도 무서운 사실을 몰랐습니다. 전통적인 인연을 이어받아야 할 기독교가 꿈에도 이런 것을 생각지도 않았다는 것은 대단히 분통한 사실입니다. (114-29)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적 가정을 만들기 위한 단체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단체냐?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적인 가정, 이상적인 아담의 자리, 이상적인 해와의 자리를 형성하려는 단체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참소와 주관권을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될 수 있는 아담의 자리와 해와의 자리를 결속시키고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려는 뜻을 이루려는 단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합동결혼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가정을 편성함으로 말미암아 종족의 편성에 연결될 것이고, 종족이 편성됨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편성에 연결될 것이고, 민족이 편성됨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편성에 연결될 것이고, 국가가 형성됨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복귀됩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가 이와 같은 뜻을 알고 오시는 주님과 하나되겠다는 준비를 하게 되면 세계의 기반은 7년 이내에 완전히 닦입니다. 7천 년 역사를 7년 이내에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는 갈라질 수 없는 운명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단 같지만 이단이 아닙니다. 정통의 내용을 어떠한 교파보다도 확실히 지니고 나왔습니다. 
한국에 있어서 기성교회와 이화여자대학 그리고 연세대학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지 않고 받아들였더라면 7년 이내에 세계 기독교가 하나될 수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못 당합니다.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민주세계의 방향과 모든 기독교의 방향이 확실합니다. 개인적인 인생관, 가정관, 사회관, 국가관, 세계관이 뚜렷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관과 일치되는 동시에 사랑의 정통적인 방향과 일치합니다. 
대한민국 백성 중에서 나 반대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 있으면 한국이 반대하고, 일본 가면 일본이 반대하고, 미국 가면 미국이 반대하고, 전세계가 “레버런 문을 잡아 죽여라!” 했습니다. 
그런데 레버런 문이 죽으면 큰일납니다. 하나님이 천신만고 수고하셨고, 기독교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통일교회 레버런 문을 살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2천 년 동안 발전했던 기독교가 왜 20세기 역사노정에서 몰락하고 있는 것이냐?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점점 약화되고, 통일교회는 급진적으로 발전해서 세계 기독교의 판도를 능가할 수 있는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1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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