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중심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5일) u

철장왕 | 20190129223200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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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중심 (훈독본)
날짜 : 1992. 3. 27(금)
장소 : 일본 동경교회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중심은 사랑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생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생명의 전통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뿌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게 될 때 조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가장 최초의 조상은 성서에서 말하는 아담과 해와가 됩니다. 그 조상의 뿌리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그 중심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가 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와 아들딸이 무엇을 중심삼고 연결되느냐? 부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됩니다. 남녀의 관계도 그렇지요? 남자라고 하는 생명, 여자라고 하는 생명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됩니다. 사랑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남녀의 생명체를 동원해서 하나로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에 의해서 남성의 생명과 여성의 생명이 하나로 묶어지고, 그 가운데서 태어나는 것이 아들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개재(介在)하여 핵심을 결집시키고 두 생명체의 본성을 동화시켜서 태어나게 하는 것이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아들딸은 부모의 사랑의 결실체요, 생명의 결실체요, 혈통의 결실체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생명을 움직인 사랑으로부터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두 생명이 하나된 결실체로서 태어난 것이 나입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명권에 동참해서 하나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에 동참하고 혈통에 동참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생명과 사랑, 어머니의 생명과 사랑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사랑을 가지고 있고, 생명을 가지고 있고, 혈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형세계를 대표한 하나님과 유형세계를 대표한 부모가 함께 자신의 배후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귀한 자기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를 무시하고 부모의 사랑이 지상에 정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를 무시하고 부모의 생명이 꽃을 피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를 무시하고 부모의 사랑을 존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그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은 나라고 하는 아들딸을 무시하고는 존재기대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주체가 되는 하나님도 사랑을 이루는 데는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권을 이룸으로써 그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찾아 세움으로써 사랑이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최고로 바라는 목표는 사랑
  
청소년들도 그렇습니다. 사춘기가 되기 전에는 남자와 여자들이 섞여 있어도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감정적인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라지만 사춘기가 되어서 남자와 여자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면 문제가 되지요? 우주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현(右弦)·좌현(左弦), 상현(上弦)·하현(下弦), 전현(前弦)·후현(後弦)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연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안됩니다. 


인간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오관(五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머리에 있습니다. 이 머리에 있는 사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영계를 상징합니다. 그 머리는 마음대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왜 돌아가느냐 하면 사방을 보기 위해서, 사방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사방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 사방으로 말을 하기 위해서 돌아갑니다. 인간은 오관뿐만 아니라 육관(六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한 사람의 몸에는 4백조 개의 세포가 있습니다. 전체의 몸은 세포 하나가 흥분해서 “만세!” 하면 전부가 “만세!” 하고 손을 들지요? 만세를 하면서 손을 드는 것은 뭐예요? 그때는 인간의 4백조 개에 이르는 세포 전체가 “만세, 만세!” 하게 됩니다. 그런 자리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어요?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다고 4백조 개의 세포가 “만세!” 할 수 있어요? 십 년, 수십 년의 노력의 결과로 성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만세!” 하고 축하한다고 하더라도 4백조 개의 세포가 전부 다 만세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세포 전체를 동원하는 데는 이 세계의 인간들, 보통의 인간들이 귀하게 여기는 돈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권력 같은 것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인의 얼굴을 한 여자라도 사춘기가 되고 적령기가 되면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화장하고 다듬습니다. 그 얼굴을 가지고 무엇을 보려고 해요? 미남이나 추남이라도 좋다고 하지요? 남자가 있으면 눈이 완전히 그쪽으로 돌아가고, 코도 냄새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입도 얘기하고 싶은 쪽으로 돌아가고, 귀도 남자의 소리를 듣고 싶은 쪽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초점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때는 보는 것이 이상하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또, 그것이 호기심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함께 있고 싶고, 만져 보고 싶고, 그 무릎 위에 앉아 보고 싶고, 안아 보고 싶은 생각이 나지요?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대할 때는 자기의 존재, 생각, 배후의 계층이나 용모를 붙안고 마주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모든 전체를 잊어버리고 완전히 백 퍼센트를 투입하는 데 본연의 여자다운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미남자라고 하더라도, 선생님보다 훌륭하고 당당한 체격을 가지고 뽐내더라도 늙게 되면 그 뽐내던 것도 흩날리는 먼지같이 되고, 자세도 흐트러지고, 교육받은 것도 잊어버리고 동네를 지나가는 불쌍한 사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미남자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 하면 자기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상대 때문입니다.
  
 안 보이는 것이 귀하다
  
여러분, 사랑을 본 적이 있어요? 양심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본 적은 없지만 양심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의 부모한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양심이 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있고 말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양심을 보았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본 적은 없다.”고 합니다. 본 적이 없더라도 그것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본 적은 없지만 사랑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이지 않는 양심이 있다고 하는 것보다 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여기에 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부모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요? 그 부모가 여러 가지의 문제에 말려들어서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완력으로 손을 쳐들고 어머니는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울지요? 그것을 볼 때, 딸아이는 어머니한테 가서 “울지 말아요.” 하고 아버지한테 가서는 “아빠, 그만해요!”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런 싸움을 한 달에 한 번씩 하면서도, 일생 동안 계속하면서도 금방 잊어버리고 또 서로 사이좋게 살아가는 모습은 신기하고 신기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 중에서도 그 이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평생, 그것도 때때로 싸움을 하면서도 붙어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컨트롤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랑을 잃어버리면 큰 문제가 됩니다. 그것이 흔들려 버리면 근원이 무너져서 바르게 설 수 없습니다. 또, 근원이 흔들리면 근본이 무너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는 태어난 이상 생애를 통해서 죽은 후까지도 영원히 사랑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누구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애가 타서 죽을 것 같은 자리에 있는 유명한 남자나 여자가 있어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까?”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환경을 수습해서 강직한 남자나 여자의 모든 것을 휘저어 이상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위대한 것, 무서운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은 무미(無味)로부터 유미(有味)까지의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합니다. 위대한 행동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사랑의 근원, 양심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냐? 그 근원이 있어서 그 근원을 붙잡게 되거나 점령하게 되면 그 보이지 않는 힘의 위력은 세계를 넘고 넘어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그런 분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절대적인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절대’라고 하는 말은 보이는 것에는 붙일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아무리 ‘절대’라고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해 버립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힘은 어디에 있느냐? 보이는 것은 없어져 가는 반면에 보이지 않는 힘이 별개의 힘을 갖지 않으면 우주가 균형을 잃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힘이 있는 것을 알고, 느끼고, 그것에 지배당하면서도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힘이라고 하는 것은 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힘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는 귀한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일체된 인간
  
그러면 보이지 않지만 제일 귀한 가치를 갖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한테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겠어요? 또, 하나님은 지식을 많이 가진 것을 제일 기뻐할까요? 아무리 자기의 지식이 세계적이라고 자랑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강아지같이 꼼짝도 못 합니다. 영계에 가면 박사들만 모이는 영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 영계에 가면 일주일 이내에 모든 것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양심으로 얘기를 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보이지 않는 여자의 마음이 보이는 실체로서의 최고 멋있는 남자를 원하겠어요, 보이지 않는 최고의 멋있는 남자를 구하겠어요? 보이지 않는 최고의 남자를 구한다면 보이는 몸은 뭘 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몸을 차지하고 껴안는 것이 가능해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원하는 이상의 실체가 보이는 것일까요,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남자는 왜 여자가 필요해요?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필요해요? 일체화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으로 완전히 일체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무형의 하나님도 실체의 상대자가 필요
  
영계는 무한히 광대한 세계입니다. 무한광대(無限廣大)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무형의 중심자라면 가장 중요한 유형의 중심자를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도리에 맞는 대답입니다. 대답은 책임을 지고 잘 생각해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실체를 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실체의 상대자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될 때, 그 상대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생겨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해서 우주의 창조라고 하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념을 절대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거기에 일치하는 계열을 가지고 주체와 대상으로 배열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피조세계는 모두 다 쌍쌍의 상대권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성성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형의 성상을 유형의 실체로 전개하는 창조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우주의 피조세계를 생각해 보면 광물세계도 전부 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왜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주가 사랑을 중심삼고 시작되었다고 하는 근본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결국, 우주는 사랑을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단번에 생겨났어요? 목사한테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런 것은 말하는 게 아니야! 이 지옥에 갈 녀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입니다. 이론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로 성격을 분석하고 이론을 분석하는 무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그런 무지한 자리에서 기적도 통했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는 미래를 향해서 약동하는 젊은이들의 심정권을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근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다.”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의 기원, 존재의 과정을 동기로 해서 생겨나지 않은 것은 우주에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안 보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볼 수 없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남자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은 사랑
  
하나님도 혼자라면 불쌍한 것입니다. 세상에 혼자서 기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혹의 고개, 원한의 고개, 무지의 고개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사랑이 갖고 있는 위대한 점입니다. 또, 남편에게 한 번 두들겨 맞고 “이젠 이혼이다.” 하고 생각하는 여자는 1퍼센트도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매달 한 번 정도 남자에게 두들겨 맞고도 사랑을 받는 여자는 다 비밀스러운 사랑의 오지(奧地)를 체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대 두들겨 맞아도 하룻밤만 함께 자고 나면 모든 것이 흘러가지요? 사랑은 그러한 무한의 소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창피하고 죽어도 보기 싫다고 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져 갑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많은 남자들을 울려 왔습니다. 목석같이 감정도 없는 남자들을 역사를 통해서 시대를 넘어서 눈물을 흘리게 해 온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쟁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고, 사랑이었다고 하는 것을 이 세계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겠지요?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게 해 온 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죽음의 힘도 아닙니다. 그것들을 넘어서 남자의 마음 깊은 곳을 쥐어짜서 눈물을 계속 흘리도록 하는 힘이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남자와 여자가 눈물을 흘린 배후의 슬픔, 비참함, 아픔의 덩어리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아들딸들을 매일 마주보면서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도 도와주는 것이 불가능한 하나님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만약 사랑의 문제에 걸려 있지 않으면 하루에라도 전부 다 수습할 수 있지만, 다른 병은 주사 한방이면 낫지만, 이 고질병은 혈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뽑아 내려고 한다면 전인류를 죽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하나님 옆에 가서 참소하여 하나님을 완전히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이상적인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상대권의 사랑을 짜 맞추어서 거기에서 기쁨의 향기를 맡으면서 나비와 같이 살아야 하는데 사탄에게 포위된 하나님은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곳에 갇혀서 오랫동안 답답함을 참고 인간 역사의 배후를 배회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온 하나님의 괴로움은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비유가 안 됩니다.

 
지금까지 남자와 여자들이 흘린 눈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어서 많은 비로 내렸겠지요? 오늘날에도 지상의 산천초목들은 남자와 여자들의 눈물을 맞으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그 자체들의 생명적인 근원이 침해당하는 것 같은 기준에서 역사가 흘러왔다고 생각할 때, 바로 성서의 말대로 만물이 탄식권에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8-144)
    
통일교회의 계승자가 되어 사랑의 왕이 되라
  
그런 면에서 본다면 풀 한 포기도 불쌍한 것입니다. 그것을 부둥켜안고 위로하고 싶은 생각을 갖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한 사람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지상에서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문 선생을 만나서 처음으로 그것을 듣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것과 귀여운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입니까? 여자가 보면 아름다운 것이 먼저이고, 아들딸이 보면 귀여운 것이 먼저입니다. 남자가 보면 나비들이 나는 것이 귀엽다고 합니다. 단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입장이 다름으로 해서 전부 다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 무한의 페이스에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천만의 모양을 단번에 소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참사랑이 이렇게 조그만 여자의 가슴에 쓱 파고들면 그 여자가 도약하는 것입니다. 여자보다도 근사하기 때문에 참사랑을 여자가 그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보다도 멋집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 때문에 사지를 뻗고 “나, 살려줘!”라고 외치면서 죽은 남자들이 역사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훌륭한 아내가 있으면 그런 경지에 서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축복을 받아서 상대가 있기 때문에 슬픈 자리에 서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감사하지 않고 자기만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한테 축복을 받아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선생님이 가르치는 주인입니다. 전부 그 가르침을 중심삼고 선생님보다 훌륭한 주인이 되어서 전부 다 나라를 치리하는 왕이 되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계승자들이 되어 사랑의 왕으로서 우주로 비약하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희망입니다. 

<훈독경 원문>


제 5 일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중심 
   
날짜 : 1992. 3. 27(금)
장소 : 일본 동경교회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중심은 사랑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생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생명의 전통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뿌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게 될 때 조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가장 최초의 조상은 성서에서 말하는 아담과 해와가 됩니다. 그러면 조상의 뿌리는 도대체 무엇이냐? 그 조상의 뿌리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그 중심은 무엇이냐? 그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든 창조주로서 인간의 부모가 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와 아들딸이 무엇을 중심삼고 연결되느냐? 부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됩니다. 남녀의 관계도 그렇지요? 남자라고 하는 생명, 여자라고 하는 생명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됩니다. 사랑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남녀의 생명체를 동원해서 하나로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에 의해서 남성의 생명과 여성의 생명이 하나로 묶어지고, 그 가운데서 태어나는 것이 아들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개재(介在)하여 전부 다 휘저어서 에센스(essence;정수), 핵심을 결집시키고 두 생명체의 본성을 동화시켜서 태어나게 하는 것이 아들딸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로 결속되어서 태어난 것이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아들딸은 부모의 사랑의 결실체요, 생명의 결실체요, 혈통의 결실체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생명을 움직인 사랑으로부터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두 생명이 하나된 결실체로서 태어난 것이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것은 부모의 생명권에 동참한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명권에 동참해서 하나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에 동참하고 혈통에 동참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생명과 사랑, 어머니의 생명과 사랑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사랑을 가지고 있고, 생명을 가지고 있고, 혈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형세계를 대표한 하나님과 유형세계를 대표한 부모가 함께 자신의 배후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자기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을 생각도 못 해 봤지요? 그냥 생겨난 것뿐이고, 부모의 책임으로 낳아 주었다는 것뿐이지요? 그렇지만 통일교회에서는 그런 것을 정확히 말할 수 있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귀한 자기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를 무시하고 부모의 사랑이 지상에 정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를 무시하고 부모의 생명이 꽃을 피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를 무시하고 부모의 사랑을 존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그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은 나라고 하는 아들딸을 무시하고는 존재기대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주체가 되는 하나님도 사랑을 이루는 데는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권을 이룸으로써 그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찾아 세움으로써 사랑이 출발할 수 있습니다. (228-123)
   
인간이 최고로 바라는 목표는 사랑
  
청소년들도 그렇습니다. 사춘기가 되기 전에는 남자와 여자들이 섞여 있어도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감정적인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라지만 사춘기가 되어서 남자와 여자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면 문제가 되지요? 우주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현(右弦)·좌현(左弦), 상현(上弦)·하현(下弦), 전현(前弦)·후현(後弦)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연결하는 것은 생명력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고, 혈통권권도 아닙니다.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인간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오관(五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머리에 사관(四官)이 있습니다. 눈, 코, 입, 귀, 손이 오관이지요?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머리에 있습니다. 이 머리에 있는 사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영계를 상징합니다. 육체와는 별개의 세계지요? 그 머리는 마음대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왜 돌아가느냐 하면 사방을 보기 위해서, 사방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사방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 사방으로 말을 하기 위해서 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머리가 안 돌아간다면 어떻게 돼요? 그 불편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관뿐만 아니라 육관(六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한 사람의 몸에는 4백조 개의 세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는 셀 수 없는 관념적인 수입니다. 전체의 몸은 세포 하나가 흥분해서 “만세!” 하면 전부가 “만세!” 하고 손을 들지요? 만세를 하면서 손을 드는 것은 뭐예요? 그때는 인간의 4백조 개에 이르는 세포 전체가 “만세, 만세!” 하게 됩니다. 그런 자리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어요?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다고 4백조 개의 세포가 “만세!” 할 수 있어요?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십 년, 수십 년의 노력의 결과로 성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의 기쁨을 생각해 보자구요. 그래서 “만세!” 하고 축하한다고 하더라도 4백조 개의 세포가 전부 다 만세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세포 전체를 동원하는 데는 이 세계의 인간들, 보통의 인간들이 귀하게 여기는 돈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권력 같은 것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한 구석에 “나를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지! 기분 나쁘다.”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분 안 좋게 생각하는 그것까지도 완전히 동원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인간이 최고로 바라는 목표입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인의 얼굴을 한 여자라도 사춘기가 되고 적령기가 되면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화장하고 다듬습니다. 그 얼굴을 가지고 무엇을 보려고 해요? 미남이나 추남이라도 좋다고 하지요? 남자가 있으면 눈이 완전히 그쪽으로 돌아가고, 코도 냄새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입도 얘기하고 싶은 쪽으로 돌아가고, 귀도 남자의 소리를 듣고 싶은 쪽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초점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때는 보는 것이 이상하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 냄새도 보통 때라면 자기의 오빠나 남동생의 냄새같이 싫은데 적령기가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호기심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함께 있고 싶고, 만져 보고 싶고, 그 무릎 위에 앉아 보고 싶고, 안아 보고 싶은 생각이 나지요? 그것은 자기의 잘생긴 얼굴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대할 때는 자기의 존재, 생각, 배후의 계층이나 용모를 붙안고 마주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모든 전체를 잊어버리고 완전히 백 퍼센트를 투입하는 데 본연의 여자다운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미남자라고 하더라도, 선생님보다 훌륭하고 당당한 체격을 가지고 뽐내더라도 늙게 되면 그 뽐내던 것도 흩날리는 먼지같이 되고, 자세도 흐트러지고, 교육받은 것도 잊어버리고 동네를 지나가는 불쌍한 사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미남자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 하면 자기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상대 때문입니다. (228-125)
  
 안 보이는 것이 귀하다
  
여러분, 사랑을 본 적이 있어요? 마음은 본 적이 있어요? 양심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본 적은 없지만 양심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의 부모한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양심이 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있고 말고!” 할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할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위에 아버지한테까지 물어보더라도 전부 다 똑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양심을 보았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본 적은 없다.”고 합니다. 본 적이 없더라도 그것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본 적은 없지만 사랑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이지 않는 양심이 있다고 하는 것보다 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여기에 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부모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요? 그 부모가 여러 가지의 문제에 말려들어서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완력으로 손을 쳐들고 어머니는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울지요? 그것을 볼 때, 딸아이는 어머니한테 가서 “울지 말아요.” 하고 아버지한테 가서는 “아빠, 그만해요!” 합니다. 여러분도 이전에 그런 경험을 다 가지고 있지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런 싸움을 한 달에 한 번씩 하면서도, 일생 동안 계속하면서도 금방 잊어버리고 또 서로 사이좋게 살아가는 모습은 신기하고 신기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 중에서도 그 이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아무도 떼어놓을 수 없는 절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잘못해서 싸움을 하게 되면 또다시 사이좋게 되기는 어렵지요? 그 사이가 좋아지기 위해서 몇 달은 걸린다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년이나 한평생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이가 좋아질 수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평생, 그것도 때때로 싸움을 하면서도 붙어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 기적 가운데도 그 이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컨트롤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랑을 잃어버리면 큰 문제가 됩니다. 여자의 존엄한 존재의 기반이 흔들려 버리고 남자의 존엄의 기반이 흔들려 버립니다. 그것이 흔들려 버리면 근원이 무너져서 바르게 설 수 없습니다. 또, 근원이 흔들리면 심각한 것입니다. 근본이 무너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는 태어난 이상 생애를 통해서 죽은 후까지도 영원히 사랑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누구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애가 타서 죽을 것 같은 자리에 있는 유명한 남자나 여자가 있어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까?”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환경을 수습해서 강직한 남자나 여자의 모든 것을 휘저어 이상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위대한 것, 무서운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은 본 적도 없고, 만져 본 적도 없고, 맛이 있다고 한다면 모든 맛이 다 있고, 맛이 없다고 한다면 아무 맛도 없습니다. 무미(無味)로부터 유미(有味)까지의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위대한 행동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의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의 불가사의한 위대함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사랑의 근원, 양심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냐? 그 근원이 있어서 그 근원을 붙잡게 되거나 점령하게 되면 그 보이지 않는 힘의 위력은 세계를 넘고 넘어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그런 분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절대적인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절대’라고 하는 말은 보이는 것에는 붙일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아무리 ‘절대’라고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해 버립니다. 전부 너덜너덜하게 되고 오래 되면 자꾸자꾸 쇠퇴해 버립니다. 모양이 변해 갑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힘은 어디에 있느냐? 보이는 것은 없어져 가는 반면에 보이지 않는 힘이 별개의 힘을 갖지 않으면 우주가 균형을 잃게 됩니다. 밸런스(balance;균형)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 논리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도 태양계 가운데 하나의 위성으로서 균형을 취하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균형을 취하게 하는 힘이 보여요, 안 보여요? 힘을 본 적이 있어요, 없어요?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힘이 있는 것을 알고, 느끼고, 그것에 지배당하면서도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힘이라고 하는 것은 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힘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는 귀한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228-128)
  
하나님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일체된 인간
  
그러면 보이지 않지만 제일 귀한 가치를 갖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한테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겠어요? 기성교회에서는 헌금을 많이 하면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통일교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은 지식을 많이 가진 것을 제일 기뻐할까요? “우리 교회는 박사가 몇 명, 장관이 몇 명이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에서 지식을 제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지식이 세계적이라고 자랑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강아지같이 꼼짝도 못 합니다. 그런데 지식이 제일 필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영계에 가면 박사들만 모이는 영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 영계에 가면 일주일 이내에 모든 것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양심으로 얘기를 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기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보이지 않는 천주의 왕이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겠어요, 보이는 것을 귀하게 여기겠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보이지 않는 여자의 마음이 보이는 실체로서의 최고 멋있는 남자를 원하겠어요, 보이지 않는 최고의 멋있는 남자를 구하겠어요? 보이지 않는 최고의 남자를 구한다면 보이는 몸은 뭘 하는 거예요? 그것을 자기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몸을 차지하고 껴안는 것이 가능해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원하는 이상의 실체가 보이는 것일까요,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이 시간에 그렇게 정했어요? 옛날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우주의 근본을 누가 바꿀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남자는 왜 여자가 필요해요?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필요해요? 일체화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으로 완전히 일체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아들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득 채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228-137)
  
  
무형의 하나님도 실체의 상대자가 필요
  
영계는 무한히 광대한 세계입니다. 무한광대(無限廣大)합니다. 영계에 가면 일본 같은 나라는 변소의 한 구석도 안됩니다. 기분 나쁘면 영계에 한번 가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는가, 어떤가를 확실히 알게 될 테니까 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오늘밤에 죽으면 문 선생이 그런 설교를 해서 죽었다고 해서 문제가 되니까 그러지는 말라구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무형의 중심자라면 가장 중요한 유형의 중심자를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러한 중심자가 없다고 하면 하나님한테 실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도리에 맞는 대답입니다. 대답은 책임을 지고 잘 생각해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체를 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역사를 대표하여 이 시간에 선언함으로써 하나님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잘 말해 주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실체의 상대자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될 때, 그 상대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생겨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해서 우주의 창조라고 하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창조론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우주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념을 절대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거기에 일치하는 계열을 가지고 주체와 대상으로 배열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피조세계는 모두 다 쌍쌍의 상대권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실체 상대권, 절대적인 유형의 실체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성성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형의 성상을 유형의 실체로 전개하는 창조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우주의 피조세계를 생각해 보면 광물세계도 전부 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분자로 볼 때는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이 주체와 대상의 관념이고, 원자로 볼 때는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념입니다. 
왜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주가 사랑을 중심삼고 시작되었다고 하는 근본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결국, 우주는 사랑을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단번에 생겨났어요? 학교에 가서 물어보든지, 기성교회의 목사한테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선생들이나 목사들이 “그런 무례한 것을 말하면 곤란하다.”고 할 것입니다. 목사한테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런 것은 말하는 게 아니야! 이 지옥에 갈 녀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입니다. 이론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로 성격을 분석하고 이론을 분석하는 무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그런 무지한 자리에서 기적도 통했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는 미래를 향해서 약동하는 젊은이들의 심정권을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근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다.”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의 기원, 존재의 과정을 동기로 해서 생겨나지 않은 것은 우주에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안 보입니다. 영계에서도 하나님의 실체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더라도 하나님은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볼 수 없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228-140)
  
 역사적으로 남자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은 사랑
  
하나님도 혼자라면 불쌍한 것입니다. 세상에 혼자서 기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자한테 물어보더라도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 남편이 술을 마신다고 매일같이 싸움을 해서 푸르둥둥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가더라도 남편이 밖에서 들어올 때 맞이하지 않을 수 없는 아내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유혹의 고개, 원한의 고개, 무지의 고개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사랑이 갖고 있는 위대한 점입니다. 또, 남편에게 한 번 두들겨 맞고 “이젠 이혼이다.” 하고 생각하는 여자는 1퍼센트도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매달 한 번 정도 남자에게 두들겨 맞고도 사랑을 받는 여자는 다 비밀스러운 사랑의 오지(奧地)를 체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에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칼로 물을 베면 흔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한 대 두들겨 맞아도 하룻밤만 함께 자고 나면 모든 것이 흘러가지요? 사랑은 그러한 무한의 소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자의 세계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창피하고 죽어도 보기 싫다고 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져 갑니다. 여자의 세계가 그럴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하는데, 여러분 그렇지요? 
사랑이라는 것이 많은 남자들을 울려 왔습니다. 목석같이 감정도 없는 남자들을 역사를 통해서 시대를 넘어서 눈물을 흘리게 해 온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쟁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고, 사랑이었다고 하는 것을 이 세계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많은 남자들을 눈물 흘리게 해 온 전통과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도 사랑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겠지요?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게 해 온 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죽음의 힘도 아닙니다. 그것들을 넘어서 남자의 마음 깊은 곳을 쥐어짜서 눈물을 계속 흘리도록 하는 힘이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리게 했느냐? 그 눈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대로 남아서 강같이 흐른다고 한다면 어떻겠어요? 태평양의 바닷물도 그만큼은 안 될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남자와 여자가 눈물을 흘린 배후의 슬픔, 비참함, 아픔의 덩어리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후지산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아들딸들을 매일 마주보면서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도 도와주는 것이 불가능한 하나님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만약 사랑의 문제에 걸려 있지 않으면 하루에라도 전부 다 수습할 수 있지만, 다른 병은 주사 한방이면 낫지만, 이 고질병은 혈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뽑아 내려고 한다면 전인류를 죽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무서운 병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하나님 옆에 가서 참소하여 하나님을 완전히 꼼짝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이상적인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상대권의 사랑을 짜 맞추어서 거기에서 기쁨의 향기를 맡으면서 나비와 같이 살아야 하는데 사탄에게 포위된 하나님은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곳에 갇혀서 오랫동안 답답함을 참고 인간 역사의 배후를 배회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온 하나님의 괴로움은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비유가 안 됩니다. 
지금까지 남자와 여자들이 흘린 눈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어서 많은 비로 내렸겠지요? 오늘날에도 지상의 산천초목들은 남자와 여자들의 눈물을 맞으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서 말한 대로 만물들이 탄식권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눈물로 그것들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주인인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그 자체들의 생명적인 근원이 침해당하는 것 같은 기준에서 역사가 흘러왔다고 생각할 때, 바로 성서의 말대로 만물이 탄식권에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8-144)
    
통일교회의 계승자가 되어 사랑의 왕이 되라
  
그런 면에서 본다면 풀 한 포기도 불쌍한 것입니다. 그것을 부둥켜안고 위로하고 싶은 생각을 갖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한 사람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지상에서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문 선생을 만나서 처음으로 그것을 듣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것과 귀여운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입니까? 여자가 보면 아름다운 것이 먼저이고, 아들딸이 보면 귀여운 것이 먼저입니다. 남자가 보면 나비들이 나는 것이 귀엽다고 합니다. 단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입장이 다름으로 해서 전부 다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 페이스(pace)에 맞추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 무한의 페이스에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높은 것과 낮은 것, 납작한 것과 둥근 것, 볼록한 것과 오목한 것 등 천만의 모양을 단번에 소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참사랑이 이렇게 조그만 여자의 가슴에 쓱 파고들면 그 여자가 도약하는 것입니다. 굉장한 거라구요. 여자보다도 근사한 것입니다. 여자보다도 근사하기 때문에 참사랑을 여자가 그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보다도 멋집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 때문에 사지를 뻗고 “나, 살려줘!”라고 외치면서 죽은 남자들이 역사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훌륭한 아내가 있으면 그런 경지에 서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축복을 받아서 상대가 있기 때문에 슬픈 자리에 서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감사하지 않고 자기만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한테 축복을 받아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선생님이 통일교회의 1대 교주지요? 교주라고 하더라도 싸우는 챔피언은 아닙니다. 통일교회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주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우쭐거리지 않습니다. 전부 그 가르침을 중심삼고 선생님보다 훌륭한 주인이 되어서 전부 다 나라를 치리하는 왕이 되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나라를 찾아서 끝없는 생애를 투입해 왔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계승자들이 되어 사랑의 왕으로서 우주로 비약하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희망입니다. (228-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