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21일
16 훈독경 제2권 21일 근본복귀 1.mp3
근본복귀 (훈독본)
날짜 : 1972. 6. 6(화)
장소 : 한국 중앙수련원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요, 찾아진 그 터전을 중심삼고 원리원칙을 밟아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의 아들딸이 되어 버린 인간
원리원칙이라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 길을 갔으면 그 아들도 가야 되고 그 손자도 역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천 년 전의 사람이나 천 년 후의 사람이나 그 원리원칙을 밟아 가는 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면 그 원리의 길이라는 것은 인간만 가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 원리의 길을 통해야만 우리 인간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원리의 길을 가려고 추구하시고 또 인간도 역시 그 원리의 길을 가려고 노력해야만 됩니다. 이 둘의 원리의 길을 통해서만 승리의 상봉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을 두고 보면 우리 인류시조는 실수를 했습니다. 첫째 실수한 것이 무엇이냐? 믿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실체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실체를 갖고는 있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을 가질 수 없는 실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자체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실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이상으로 묶어 주려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3대 요건입니다. 곧, 첫째 불신이 시작되었고, 그 다음엔 우리의 몸뚱이가 사탄의 몸뚱이가 되었으며, 또 우리 자체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을 번식하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불신으로 말미암아, 실체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또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냐? 우리는 다른 핏줄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타락한 연고로 되어진 그 최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할 것이 사탄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의 혈통을 받아 유전적으로 혈통을 통해 죄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불신이 근원이 되어서 우리 몸뚱이에 사탄이 침범하게 되었는데, 사탄이 침범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연결된 우리 자체는 사탄의 새끼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58-9)
탕감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
그러면 이것을 탕감복귀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복귀해 나가느냐? 원리책을 보면 ‘믿음의 기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냐? 아담이 하나님을 믿고 있던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이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아담보다도 나은 믿음을 갖지 못하고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아담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던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의 기대라는 기준을 세우려면 전부 다 아담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으로 뿌려지기 전의 그 자리보다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고는 복귀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 가지고 타락한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누구보다도 나” 라는 것은 “우리 인류시조 아담보다도 더 나은 나”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리 훌륭한 그 무엇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 길이라는 것은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이 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즉 메시아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했으니 참된 것을 말함이요, 그 다음에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으니, 그 말에는 전연 탕감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만일, 아담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리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었더라면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 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미 아버지 앞에 가 있기 때문에, 이미 그 자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다시 사랑하는 놀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타락을 했기 때문에 타락한 장본인 이상의 자리를 통하여 올라가지 않고는 되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는 사탄을 이기고 주관해야 할 인간이 믿지 못하는 불신의 자리에 섬으로써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기대는 어떻게 세워야 하느냐? 하나님 앞에 사탄보다도 나은 제물의 기준을 세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사탄보다도 나은 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을 통해 가지고 제물을 드리던 놀음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가인은 무엇이냐? 사탄 편입니다. 사탄은 누구냐? 타락한 천사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출발했던 그 동기의 기준보다도 높아야 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기대를 세운 다음에는 실체기대를 세워야 된다고 했는데 실체기대는 무엇이냐?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뚱이가 사탄한테 끌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빼앗긴 실체를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탄을 이기지 않고는 안됩니다.
타락했기에 탕감조건이 필요한 인간
사탄을 이기는 데 있어서 개인의 조건을 중심삼고 이기면 안됩니다. 사탄세계의 대표인 너와 하늘세계의 대표인 나,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은 둘인데 사탄 편적인 대표자와 하늘 편적인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인은 사탄을 대표했고 아벨은 하늘을 대표했기 때문에 가인이라는 존재는 사탄세계 전체를 대신한 것이요, 또 아벨이라는 존재는 하늘세계 전체를 대신한 것입니다. 아벨적 존재는 하늘세계 전체를 대표했기 때문에 이는 아브라함의 부활체요, 노아의 부활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대신자도 되고, 야곱의 대신자도 되고, 모세의 대신자도 되고, 예수님의 대신 존재도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담을 끌어감으로 말미암아 아담 하나만 빼앗아 갔어요? 아담의 이상 가운데 있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뿐만 아니라 그의 소망까지도 끌려감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하나 안에는 세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아벨은 무엇이었느냐? 아담 대신의 존재였습니다. 가인은 무엇이었느냐? 사탄세계의 대표자였습니다.
실체복귀란 무엇이냐 하면 아담이 사탄한테 굴복당한 것을 반대로 아담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놀음입니다. 그것은 평면적인 개인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전체를 대표해서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계라는 것은 일상적인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늘을 대표한 것이요, 가인은 땅을 대표한 것이 됩니다.
아담이 사탄한테 굴복당하여 끌려갔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하늘 편을 대표한 아벨이 사탄 편을 대표한 가인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 된 본연의 자리에서 사탄을 다시 종 된 천사장으로 복귀시키는 놀음입니다. 이것이 실체복귀입니다. 이렇게 실체복귀하게 되면 비로소 여기에서부터 상충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동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복귀되어진 타락된 우리 인간이 실체복귀했으면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그것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선에서부터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에서부터 출발하지 않고 악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악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여기서 출발한 자는 반드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믿음의 기대니, 실체기대니 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실체기대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락된 세계에서 출발한 것이지 하늘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원리적 기준으로 보면 사람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은 아직까지 탕감조건이 남아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58-13)
타락하였기에 메시아에 접붙여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하는 그 자리를 다시 이어받지 않고는 원리에 입각한 본연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연의 하나님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발기준을 그릇되게 한 우리 인간 앞에 그릇되지 않고 하나님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그러한 하나의 주체를 세우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의 주체는 무엇이냐?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 갈 길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기대에서 대표자의 자리라는 것은 어떤 자리냐? 거기에는 아직까지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비록 실체기대는 복귀했을지라도 잃어버리기를 믿음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사랑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탕감조건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의 주인을 중심삼고는 아직까지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할 것이 돌감람나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돌감람나무가 새로운 참감람나무의 열매가 열릴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뭐냐? 접붙이는 놀음입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가지고 참감람나무를 접붙여 놓으면 그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권 내, 다시 말해서 돌감람나무의 세계에 참감람나무 한 그루만 생겨나는 날에는 돌감람나무 밭을 참감람나무 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만히 두어서 이루어지겠습니까? 탕감복귀를 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이 그릇되었던 것을 탕감복귀함으로 말미암아 출발을 바로잡아 놓으면 돌감람나무가 될 인간이 참감람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감람나무 밭의 주인이 하나님이에요, 사탄이에요? 사탄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주인인 돌감람나무 밭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탄에 대해서 “야, 이 녀석아! 사람이 돌감람나무형으로 태어나게 되었지만 본래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성적으로 볼 때 나에게 속했던 것이 아니냐?”라고 원리적인 입장에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사탄은 “아니올시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본성적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나보다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로 하여 취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당신 앞에 돌아갈 사람이 없는 것이오.” 하는 것입니다. 그게 원리적입니다.
이렇게 사탄은 하나님에 대해서 원리적으로 논박하며 싸움을 전개해 나오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것보다 당신을 더 믿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오.”라고 하는 것은 원리적입니다. 또, “세계적인 싸움의 판국에서 나하고 싸워서 나를 이기는 자가 아니고는 당신에게 돌아갈 자가 없는 것이 아니오?” 하는데, 그게 전부 원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나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기 전에는 돌감람나무 밭에서 갈라질 수 있는 길이 없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탄의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돌감람나무 밭에 있는 자라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 나서게 될 때는 거기서부터 갈라질 수 있습니다.
이상세계가 도래하려면
그래서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할 때는 우리 인류조상 아담 해와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하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새로운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사탄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사탄도 나타나지만 하나님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악을 굴복시키고 선을 남김으로써 악이 자동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리적으로 말하면 실체기대의 완성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이겨서 상을 받아야 됩니다. 무슨 상을 받느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류가 찾아 나가는 이상형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받는 데는 누구를 통해 받느냐? 본래, 우리 인간들이 태어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부모를 통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은 무엇을 찾아가느냐? 메시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어떠한 분이냐? 우리를 다시 낳아 주기 위한 부모로 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부활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낳아 주기 위해서는 사랑을 통해 낳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늘을 대표해서는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라면 땅을 대표해서는 아담이 사랑의 주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버지가 사랑의 주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 주체되는 아버지 앞에 상대되는 어머니가 나와야 됩니다. 이것을 두고 기독교에서 결정적으로 가르쳐 준 것이 신랑 신부의 이념인 것입니다. 신랑은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요, 신부는 어머니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 편에서 떠나 하나님 편으로 가기 위한 조건
하나님은 돌감람나무 밭이 된 세상을 마음대로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돌감람나무 밭을 하나님이 관리하실 수 있는 밭으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 선민이었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 이스라엘권을 형성해 나온 역사입니다.
돌감람나무 밭의 주인이 지독한 원수이기 때문에 그 원수의 밭에 손만 대는 날에는 총공격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갈라 가지고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을 만드셔야 됩니다. 그것을 만드셔야 참감람나무 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얼씬도 할 수 없는 그런 밭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들어올 때 “야, 왜 남의 밭에 들어왔어?” 하면, “아, 잘못했습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밭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리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 첫째 조건이 무엇이냐? 사탄이 “나를 믿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어야 돼요.” 하는 조건에 맞아야 합니다. 원리적 입장에서 볼 때, 본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첫째 조건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하고 싸워 가지고 이긴 사람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그래서 야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갈라져 이스라엘 민족으로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사탄이 “나와 싸워서 이긴 사람이 아니면 안되고,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되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편에 있는 자기 남편을 사랑하는 것보다 미래의 하나님 편에 있는 남편을 더 사랑해야 되오. 지금은 없지만 혼자 살더라도 세상 남편을 갖고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해야 되오!” 하면서 들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세계의 부모의 사랑을 받고 좋아하는 것보다 미래의 부모를 바라보고 사는 것을 더 좋아해야 돼요.” 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의 주관을 받는 나라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도 나라는 없지만 미래의 소망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더 행복으로 느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으니, 그 때를 바라 나가는 기간에 있어서 때가 되기도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희생되더라도 하나님은 인류를 끌고 나오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천 년의 역사를 엮어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세계인 돌감람나무 밭에서 사탄을 믿는 것보다도, 자기 부모를 믿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어야 됩니다. 왜 그러냐? 자기 부모는 사탄의 후계자이지요? 자기 남편도 사탄의 후계자이지요? 자기 여편네도 사탄의 후계자이지요? 자기 아들딸도 사탄의 후계자입니다. 나랏님도 사탄의 후계자입니다. 그것을 전부 버리고 그 이상의 것으로 바꿔 놓아야 합니다.
믿는 것도 하나님을 통해서, 따라가는 것도 하나님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길이 옳은 줄 알면 사탄권 내에 있는 남편이 반대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모가지가 떨어져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가지가 떨어지는 날에는 모든 일이 끝나지만 승리는 사탄 편이 아니고 내 편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과 싸우는 자리에서는 죽는 사람이 제일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즉, 죽고자 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패한테는 사탄도 꼼짝달싹 못 하고 도망가게 마련입니다. 손을 내밀어 가지고 “나 죽여주소!” 하게 되면 사탄도 손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참감람나무 접을 붙이려면 밑동을 잘라야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돌감람나무 밭을 사탄세계에서 갈라놓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탄보다 하나님을 더 믿어야 됩니다.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사탄은 “나를 이기지 않으면 하나님 앞으로 옮겨질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을 못 주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더 사랑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관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인이 될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이스라엘나라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돌감람나무 밭을 갖게 되었지만 이 돌감람나무를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키워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에서 출발한 본연의 원리적인 인연을 갖다 맞췄다는 조건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 분을 보내 준다고 한 참감람나무, 즉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은 나라를 갖출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참감람나무 하나만 태어나는 날에는 가지를 딱딱 떼어 가지고 접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악에서 출발한 인간이었지만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선되신 하나님한테서 출발하고 하나님한테로 결과되는 참감람나무로서의 열매를 맺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하나님의 이상을 대신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그 자리, 그러한 세계가 지상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접붙여야 됩니다. 접붙이려면 잘라야 됩니다. 나무는 밑동을 자르니까 사람도 밑동을 잘라야 하니 모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모가지를 자르지 않으면 살아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머리만 잘라 놓으면 다른 것은 다 진짜라는 것입니다.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가지를 갖다 붙여야 됩니다. 열매는 가지에서 맺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일체, 모든 사상을 딱 닮아라' 그 말입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근본복귀’라고 했는데, 근본복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결국은 타락한 인류시조 아담 해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고는 근본복귀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실체를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림으로써 어떻게 되었느냐? 혈통적으로 거꾸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뒤집어 놓아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 앞에 와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거듭나는 데 있어서 아담 해와보다 못해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데는 아담 해와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근본복귀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데에는 개인이 거듭나야 되고, 가정이 거듭나야 되고, 친족이 거듭나야 되고, 국가가 거듭나야 되고, 세계가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다 구원하여 만민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상이요. 하나님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거듭났다고 할 수 있는 대표자, 근본복귀했다고 할 수 있는 대표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대표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무리가 나오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58권 7-42)
천일국 훈독경 제 21 일 원문
근본복귀
날짜 : 1972. 6. 6(화)
장소 : 한국 중앙수련원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미지의 뜻 세계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찾아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찾아 나온 승리의 터전이 하나의 원칙으로 세워지게 될 때 그 원칙을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요, 찾아진 그 터전을 중심삼고 원리원칙을 밟아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의 아들딸이 되어 버린 인간
그 원리원칙이라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 길을 갔으면 그의 아들이라든가 혹은 그의 손자는 그냥 그대로 안 가도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이라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 길을 갔으면 그 아들도 가야 되고 그 손자도 역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천 년 전의 사람이나 천 년 후의 사람이나 그 원리원칙을 밟아 가는 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원리라는 것은 이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나타나고, 또 저런 사람에게는 저렇게 달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며, 또 다 같은 형태로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원리의 길이라는 것은 인간만 가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 원리의 길을 통해야만 우리 인간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원리의 길을 가려고 추구하시고 또 인간도 역시 그 원리의 길을 가려고 노력해야만 됩니다. 이 둘의 원리의 길을 통해서만 승리의 상봉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원리의 길을 가는 것을 반대하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거기에 장애물을 갖다 놓는 것이 악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원칙에는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하나의 주권국가로서 삼천만 민중을 거느리는 데는 무엇을 갖고 거느리느냐? 법을 갖고 거느립니다. 그 법이 무슨 법이냐? 헌법을 기준으로 해 가지고 세부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는 골자가 있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을 두고 보면 우리 인류시조는 실수를 했습니다. 첫째 실수한 것이 무엇이냐? 믿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것이 무엇이고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실체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몸을 잃어버렸습니다. 즉, 땅에 떨어진 여러분은 불신의 후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체를 갖고는 있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을 가질 수 없는 실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자체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 즉 하나님의 원수의 실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나님이 이상으로 묶어 주려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3대 요건입니다. 곧, 첫째 불신이 시작되었고, 그 다음엔 우리의 몸뚱이가 사탄의 몸뚱이가 되었으며, 또 우리 자체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을 번식하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불신으로 말미암아, 실체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또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냐? 우리는 다른 핏줄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타락한 연고로 되어진 그 최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물론,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반대되는 입장에 섰고 하늘 앞에 설 수 없는 죄지은 사람이 되었는데, 죄를 지었다는 그 결과로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할 것이 사탄의 아들딸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본래의 아버지를 모셔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다른 아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탄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의 혈통을 받아 유전적으로 혈통을 통해 죄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불신이 근원이 되어서 우리 몸뚱이에 사탄이 침범하게 되었는데, 그러면 사탄이 침범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연결된 우리 자체는 무엇이 되었느냐? 사탄의 새끼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58-9)
탕감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
그러면 이것을 탕감복귀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복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원리책을 보면 ‘믿음의 기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냐? 아담이 하나님을 믿고 있던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것입니다. 믿음의 기대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아담보다도 나은 믿음을 갖지 못하고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아담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던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됩니다. 아담은 미성년기에 타락했지만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성년자가 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의 기대라는 기준을 세우려면 전부 다 아담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으로 뿌려지기 전의 그 자리보다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고는 복귀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 가지고 타락한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누구보다도 나” 라는 것은 “우리 인류시조 아담보다도 더 나은 나”라는 말입니다. 이 말 가운데는 모든 것이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리 훌륭한 그 무엇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 길이라는 것은 무슨 길이냐? 그 길은 타락해서 떨어진 길이 아닙니다.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이 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즉 메시아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했으니 참된 것을 말함이요, 그 다음에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으니, 그 말에는 전연 탕감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만일, 아담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리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었더라면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미 아버지 앞에 가 있기 때문에, 이미 그 자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다시 사랑하는 놀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타락을 했기 때문에 타락한 장본인 이상의 자리를 통하여 올라가지 않고는 되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의 동기가 무엇이냐? 불신이 타락의 동기가 된 것입니다. 본래는 사탄을 이기고 주관해야 할 인간이 믿지 못하는 자리에 섬으로써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기대는 어떻게 세워야 하느냐? 하나님 앞에 사탄보다도 나은 제물의 기준을 세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어떤 제물을 드리느냐? 사탄보다도 나은 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을 통해 가지고 제물을 드리던 놀음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보다도 아벨이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무엇이냐? 사탄 편을 상징하는 기준입니다. 때문에, 하늘 편을 상징하는 아벨이 사탄 편 기준보다 낫지 못하면 사탄 편의 출발을 보았던 아담 이상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를 세우려면 가인보다도 나은 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은 무엇이냐? 사탄 편입니다. 사탄은 누구냐? 타락한 천사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출발했던 그 동기의 기준보다도 높아야 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기대를 세운 다음에는 실체기대를 세워야 된다고 했는데 실체기대는 무엇이냐?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뚱이가 사탄한테 끌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빼앗긴 실체를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탄을 이기지 않고는 안됩니다. 그래서 사탄을 이기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58-11)
타락했기에 탕감조건이 필요한 인간
사탄을 이기는 데 있어서 너와 나, 이렇게 개인의 조건을 중심삼고 이기면 안됩니다. 사탄세계의 대표인 너와 하늘세계의 대표인 나,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하고 나하고 단 둘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둘은 둘인데 사탄 편적인 대표자와 하늘 편적인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대표자라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를 대표했다고 할 때 나는 한 사람이지만 통일교회 전체를 대표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인은 사탄을 대표했고 아벨은 하늘을 대표했기 때문에 가인이라는 존재는 사탄세계 전체를 대신한 것이요, 또 아벨이라는 존재는 하늘세계 전체를 대신한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벨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하늘세계 전체를 대신한 것입니다. 아벨적 존재는 하늘세계 전체를 대표했기 때문에 이는 아브라함의 부활체요, 노아의 부활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대신자도 되고, 야곱의 대신자도 되고, 모세의 대신자도 되고, 예수님의 대신 존재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봐야 됩니다.그러면 악을 대표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가인 대신자도 되고, 노아 시대에 불신했던 백성들의 대표도 되고, 아브라함을 반대하던 이방나라의 대표자도 되는 것입니다. 또, 야곱 노정에서 반대하던 모든 사람들의 대표자도 되고, 모세 앞에 있어서의 애급나라와 마찬가지요, 예수님의 앞에 있어서의 로마나라 전체를 대표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표했다는 것은 비록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세계적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담을 끌어감으로 말미암아 아담 하나만 빼앗아 갔어요? 아담의 이상 가운데 있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뿐만 아니라 그의 소망까지도 끌려감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하나 안에는 세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아벨은 무엇이었느냐? 아담 대신의 존재였습니다. 가인은 무엇이었느냐? 사탄세계의 대표자였습니다. 실체복귀란 무엇이냐 하면 아담이 사탄한테 굴복당한 것을 반대로 아담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놀음입니다. 그것은 평면적인 개인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전체를 대표해서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계라는 것은 일상적인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늘을 대표한 것이요, 가인은 땅을 대표한 것이 됩니다. 그들은 전체를 대표한 것입니다. 아담이 사탄한테 굴복당하여 끌려갔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하늘 편을 대표한 아벨이 사탄 편을 대표한 가인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 된 본연의 자리에서 사탄을 다시 종 된 천사장으로 복귀시키는 놀음입니다. 이것이 실체복귀입니다. 이렇게 실체복귀하게 되면 비로소 여기에서부터 상충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동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복귀되어진 아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사랑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다시 말하면, 타락된 우리 인간이 실체복귀했으면 실체복귀한 그 자리에서 그 자체가 그냥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악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선에서부터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에서부터 출발하지 않고 악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에서부터 출발한 우리에게는 탕감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에서부터 출발했으면 탕감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악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여기서 출발한 자는 반드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믿음의 기대니, 실체기대니 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실체기대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락된 세계에서 출발한 것이지 하늘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원리적 기준으로 보면 사람은 어떠한 기준에서 출발해야 되느냐?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을 보면 인간의 출발은 하나님 편에서 출발한 입장에 섰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출발은 사탄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바라는 모든 이상적인 출발, 모든 소망의 출발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탄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은 어디까지나 그 출발지가 하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처해 있는 자리는 아직까지 탕감조건이 남아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58-13)타락하였기에 메시아에 접붙여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하는 그 자리를 다시 이어받지 않고는 원리에 입각한 본연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연의 하나님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발기준을 그릇되게 한 우리 인간 앞에 그릇되지 않고 하나님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그러한 하나의 주체를 세우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의 주체는 무엇이냐?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 갈 길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책을 볼 때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실체기대에서 대표자의 자리라는 것은 어떤 자리냐? 거기에는 아직까지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비록 실체기대는 복귀했을지라도 잃어버리기를 믿음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사랑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탕감조건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의 주인을 중심삼고는 아직까지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할 것이 돌감람나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를 보게 되면 그 열매는 까막까치의 밥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 돌감람나무가 그냥 그대로 돌감람나무로만 서 있어 가지고는 아무데도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돌감람나무가 둔갑한다고나 할까, 뒤집어지는 날에는 새로운 참감람나무의 열매가 열릴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뭐냐? 접붙이는 놀음입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가지고 참감람나무를 접붙여 놓으면 그 돌감람나무가 그냥 그대로 돌감람나무가 되겠어요, 참감람나무가 되겠어요? 참감람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권 내, 다시 말해서 돌감람나무의 세계에 참감람나무가 한 그루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참감람나무 한 그루만 생겨나는 날에는 돌감람나무 밭을 참감람나무 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만히 두어서 이루어지겠습니까? 탕감복귀를 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이 그릇되었던 것을 탕감복귀함으로 말미암아 출발을 바로잡아 놓으면 돌감람나무가 될 인간이 참감람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감람나무 밭의 주인이 하나님이에요, 사탄이에요? 출발을 사탄에서부터 했기 때문에 결과도 사탄 편의 것으로 되어 있기 마련이므로 틀림없이 사탄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주인인 돌감람나무 밭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이 세계가 하나님이 관리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라면 거기에 참감람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그것이 싹을 터서 자란 이후에는 하나님 마음대로 돌감람나무를 뚝뚝 잘라 가지고 언제든지 접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관리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 아니라 사탄이 관리하는 돌감람나무 밭입니다. 관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주인으로 등장한 것은 사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탄에 대해서 “야, 이 녀석아! 사람이 돌감람나무형으로 태어나게 되었지만 본래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성적으로 볼 때 나에게 속했던 것이 아니냐?”라고 원리적인 입장에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사탄은 “아니올시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본성적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나보다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로 하여 취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당신 앞에 돌아갈 사람이 없는 것이오.” 하는 것입니다. 그게 원리적입니다. 이렇게 사탄은 하나님에 대해서 원리적으로 논박하며 싸움을 전개해 나오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것보다 당신을 더 믿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오.”라고 하는 것은 원리적입니다. 또, “세계적인 싸움의 판국에서 나하고 싸워서 나를 이기는 자가 아니고는 당신에게 돌아갈 자가 없는 것이 아니오?” 하는데, 그게 전부 원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나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기 전에는 돌감람나무 밭에서 갈라질 수 있는 길이 없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탄의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돌감람나무 밭에 있는 자라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 나서게 될 때는 거기서부터 갈라질 수 있습니다. (58-15)이상세계가 도래하려면
그래서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인들은 싸움을 해야 됩니다. 무슨 싸움을 해야 되느냐 하면 사탄과 실체가 부딪치는 싸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싸움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할 때는 무엇을 표준하고 믿어야 하느냐? 우리 인류조상 아담 해와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싸워야 되는데 누구하고 싸워야 되느냐? 형제끼리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하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나타나는데는 어떻게 나타나느냐? 무슨 새로운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사탄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사탄도 나타나지만 하나님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악을 굴복시키고 선을 남김으로써 악이 자동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리적으로 말하면 실체기대의 완성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을 이겨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을 이겼으니 상을 받아야 됩니다. 무슨 상을 받느냐? 세상에서는 무슨 상패를 주고 부상으로 돈을 주고 하지만 그런 시시한 상이 아닙니다. 상은 상인데 무슨 상이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거 기가 막히지요? 그것이 우리 인류가 찾아 나가는 이상형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받는 데는 누구를 통해 받느냐? 본래,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를 통해 받기 마련입니다. 본래, 우리 인간들이 태어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부모를 통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은 무엇을 찾아가느냐? 메시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어떠한 분이냐? 우리를 다시 낳아 주기 위한 부모로 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부활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낳아 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통해 낳아 주느냐? 생명을 통하여 낳아 주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통해 낳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부자지관계를 중심삼은 부모도 부모지만 본래 사랑의 주체는 누구냐? 본래,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늘을 대표해서는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라면 땅을 대표해서는 아담이 사랑의 주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버지가 사랑의 주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 주체되는 아버지 앞에 상대되는 어머니가 나와야 됩니다. 이것을 두고 기독교에서는 아직까지 찾아지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를 찾아 나오는데, 그 길을 이렇게 찾아가야 한다고 결정적으로 가르쳐 준 것이 신랑 신부의 이념인 것입니다. 신랑은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요, 신부는 어머니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는 것이요, 땅은 여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듯이 하늘과 땅이 하나되어야만 이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인간 세상의 사람만을 가지고는 이상세계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늘을 중심삼고, 하늘을 주체로 하고 땅을 대상으로 세웠다고 하는 그런 세계가 되기 전에는 이상세계가 올 수 없습니다. (58-18)사탄 편에서 떠나 하나님 편으로 가기 위한 조건하나님은 돌감람나무 밭이 된 세상을 마음대로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돌감람나무 밭을 하나님이 관리하실 수 있는 밭으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 선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선민은 무엇이었느냐? 하나님이 관리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었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 이스라엘권을 형성해 나온 역사입니다. 돌감람나무 밭의 주인이 지독한 원수이기 때문에 그 원수의 밭에 손만 대는 날에는 총공격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갈라 가지고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을 만드셔야 됩니다. 그것을 만드셔야 참감람나무 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얼씬도 할 수 없는 그런 밭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들어올 때 “야, 왜 남의 밭에 들어왔어?” 하면, “아, 잘못했습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밭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리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 첫째 조건이 무엇이냐? 사탄이 “나를 믿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어야 돼요.” 하는 조건에 맞아야 합니다. 원리적 입장에서 볼 때, 본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첫째 조건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하고 싸워 가지고 이긴 사람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그래서 야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갈라져 이스라엘 민족으로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사탄이 “나와 싸워서 이긴 사람이 아니면 안되고,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되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편에 있는 자기 남편을 사랑하는 것보다 미래의 하나님 편에 있는 남편을 더 사랑해야 되오. 지금은 없지만 혼자 살더라도 세상 남편을 갖고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해야 되오!” 하면서 들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세계의 부모의 사랑을 받고 좋아하는 것보다 미래의 부모를 바라보고 사는 것을 더 좋아해야 돼요.” 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의 주관을 받는 나라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도 나라는 없지만 미래의 소망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더 행복으로 느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으니, 그 때를 바라 나가는 기간에 있어서 때가 되기도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희생되더라도 하나님은 인류를 끌고 나오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천 년의 역사를 엮어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세계인 돌감람나무 밭에서 사탄을 믿는 것보다도, 자기 부모를 믿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어야 됩니다. 왜 그러냐? 자기 부모는 사탄의 후계자이지요? 자기 남편도 사탄의 후계자이지요? 자기 여편네도 사탄의 후계자이지요? 자기 아들딸도 사탄의 후계자입니다. 나랏님도 사탄의 후계자입니다. 그것을 전부 버리고 그 이상의 것으로 바꿔 놓아야 합니다. 믿는 것도 하나님을 통해서, 따라가는 것도 하나님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길이 옳은 줄 알면 사탄권 내에 있는 남편이 반대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모가지가 떨어져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가지가 떨어지는 날에는 모든 일이 끝나지만 승리는 사탄 편이 아니고 내 편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과 싸우는 자리에서는 죽는 사람이 제일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즉, 죽고자 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패한테는 사탄도 꼼짝달싹 못 하고 도망가게 마련입니다. 손을 내밀어 가지고 “나 죽여주소!” 하게 되면 사탄도 손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58-36)참감람나무 접을 붙이려면 밑동을 잘라야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돌감람나무 밭을 사탄세계에서 갈라놓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탄보다 하나님을 더 믿어야 됩니다.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사탄은 “나를 이기지 않으면 하나님 앞으로 옮겨질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을 못 주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더 사랑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관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인이 될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이스라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 돌감람나무를 밤에 자를 수도 있고 낮에 자를 수도 있습니다. 또, 접을 붙여 주려면 주고 말려면 말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밭을 만드는 데 사탄세계보다도 더 큰 밭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 더 좋은 밭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혹, 작더라도 모든 면에 있어서 질적으로 좋은 밭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탄이 바라보며 넘성넘성할 수 있는 밭을 갖고 싶으시지 사탄세계의 밭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넘성넘성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뜰히 관리해서 키워 놓은 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돌감람나무 밭을 갖게 되었지만 이 돌감람나무를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키워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에서 출발한 본연의 원리적인 인연을 갖다 맞췄다는 조건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 분을 보내 준다고 한 참감람나무, 즉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은 나라를 갖출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참감람나무 하나만 태어나는 날에는 가지를 딱딱 떼어 가지고 접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접 있지요? 눈 하나씩만 따서 접붙이면 전부 다 참감람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돌감람나무의 나라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시에 참감람나무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악에서 출발한 인간이었지만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선되신 하나님한테서 출발하고 하나님한테로 결과되는 참감람나무로서의 열매를 맺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하나님의 이상을 대신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그 자리, 그러한 세계가 지상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접붙여야 되겠어요, 안 붙여야겠어요? 접붙이려면 뭘 잘라야 되겠어요, 안 잘라야 되겠어요? 잘라야 됩니다. 그러면 어디를 잘라야 되겠어요? 나무는 밑동을 자르니까 사람도 밑동을 잘라야 하니 발목을 잘라야지요? 그래요? 사람은 거꾸로 돼 있습니다. 보십시오! 나무는 밑동부리가 땅으로 들어가 있지만 사람의 밑동부리는 꼭대기로 올라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척 늘어뜨린 것이 가지 같아요? 이거 뭐 같아요? 가지입니다. 사람은 거꾸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자르게 될 때는 어디를 잘라야 돼요? 밑동뿌리가 어디예요? 모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가지를 자르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가지를 자르는 것을 제일 무서워해야 되겠어요, 제일 좋아해야 되겠어요? 모가지를 자르는 것을 제일 좋아해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모가지를 자르지 않으면 살아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머리만 잘라 놓으면 다른 것은 다 진짜라는 것입니다. 손발을 잘라 가지고는 그까짓 것 관계도 없지만 모가지를 잘라 놓게 되면 모든 것이 다 그만입니다.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가지를 갖다 붙여야 됩니다. 열매는 가지에서 맺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일체, 모든 사상을 딱 닮아라 그 말입니다. 그것이 종교가 가르쳐 주는 목적입니다. (58-40)거듭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오늘 말씀의 제목을 ‘근본복귀’라고 했는데, 근본복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인류는 수천 대를 통해 번식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복귀를 하려면 다시 수천 대를 타고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근본복귀를 하려면 아담 해와가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의 뱃속에 다시 들어가서 타락하지 아니한 형으로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보다도 못해 가지고는 안됩니다. 선한 기준에 있어서 조상보다 못해 가지고는 복귀할 길이 없다는 결론이 대번에 나옵니다. 수천 대(代)의 조상이 있지만 그 조상들이 나를 바라보고 부탁한다고 할 수 있는 참된 나, 소망을 둘 수 있는 참된 내가 되지 않고서는 넘어설 수 있는 길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추구해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타락한 인류시조 아담 해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고는 근본복귀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실체를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림으로써 어떻게 되었느냐? 혈통적으로 거꾸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뒤집어 놓아야 합니다.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 앞에 와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니고데모가 묻되 “어찌하여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하니, 예수님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서 그것도 모르느냐?”고 했던 것입니다. 그가 유대나라의 선생쯤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사적인 말이 아니라 사실적인 내용을 가지고 제일 중요한 것을 터치(touch)했던 것입니다. “네가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거듭나는 데 있어서 아담 해와보다 못해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데는 아담 해와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근본복귀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인들이 거듭났어요? 거듭나려고 했지만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데에는 개인이 거듭나야 되고, 가정이 거듭나야 되고, 친족이 거듭나야 되고, 국가가 거듭나야 되고, 세계가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거듭나는 데 있어서 자기 혼자만 거듭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가정이 거듭나야 되고, 씨족이 거듭나야 되고, 나라가 거듭나야 되고, 세계가 거듭나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이냐? 바로 이것을 바라고 나오는 무리입니다. 개인이 거듭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정을 거듭나게 해주고, 그 다음에 나라와 세계가 거듭나게 하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지금까지 기성교회 신앙이라는 것은 나 혼자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도적놈입니다.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천국 가면 된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예수님의 상대가 되려면 예수님이 바라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를 다 구원하여 만민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상이요. 하나님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지요?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거듭났다고 할 수 있는 대표자, 근본복귀했다고 할 수 있는 대표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대표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무리가 나오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58-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