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20일
구원섭리사의 원리관 (훈독본)
날 짜 : 1996년 4월 16일
장 소 : 미국 워싱턴 DC 힐튼호텔
행 사 : 워싱턴타임스 재단 창설기념 특별강연
존경하는 내외 귀빈,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날 역사적 대변혁시대를 맞이하여 여러분과 상봉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종교와 구원섭리의 목적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유일·불변·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일체가 되었다면, 만사가 완전 완성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출발, 목적과 그 정도, 그리고 원인과 결과와 그 방향도 절대적일 것입니다.
인간시조인 아담과 해와는 무지에서 타락하여 혼돈에 빠졌습니다. 개인적인 무지와 혼돈에서 가정·국가·세계적 무지와 혼돈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타락권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 종교와 구원섭리인 것입니다. 끝날에 메시아가 와서 하나님 편에서 보는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원인과 방향과 결과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어 무지와 혼돈의 세계를 청산하여 본연의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 하나님 뜻의 완성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끝날에 모든 종교·주의·사상과 국가도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불과 수년 만에 21세기의 새로운 역사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중대한 시점에서 본인은 ‘구원섭리사의 원리관’을 주제로 한 말씀으로 새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지고자 합니다.
창조주와 인간의 참사랑을 중심하고 완전 완성을 바라는 하나님은 인간과 일체 될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시조에게 주실 계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조건이 바로 인간이 성장기간을 자라 올라가는 미완성 단계에 있었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자녀인 인간에게 가장 귀한 참사랑을 상속하기 위해 주신 계명이었습니다.
원래 참사랑은 경험이나 체휼을 통해서 알게 되어 있습니다. 말이나 글 혹은 일반 교육을 통해서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로 지음 받은 아담 해와는 성장하면서 단계적으로 생활을 통해서 경험하고 참된 자녀, 참된 형제, 참된 부부, 참된 부모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하나님의 참사랑을 체득할 때 비로소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수천만 배, 아니 무한대의 가치적 존재로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도 당신이 사랑하는 상대인 인간이 무한한 가치적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성하면 신성을 이루고 하늘 아버지의 온전함같이 온전하여 하나님적 가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자이시지만 참사랑의 이상은 혼자서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이상은 반드시 상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참사랑과 인간 참사랑의 출발과 완성이 서로 어떠한 연관을 갖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참된 부부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상을 완성
참사랑의 주체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참사랑의 상대자로 인간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은 인간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신인애 일체의 절대적 사랑이상세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 최선의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물 중에 유일하게 무형의 하나님 앞에 보이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완성하면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또 평안하게 언제나 들어와서 거하실 수 있는 유형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참사랑의 전체적 이상은 인간을 통하여 부모와 자식의 종적 관계로 실현 완성됩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하여 하나님의 축복 하에 결혼을 하고 첫사랑을 맺었다면, 그 자리는 하나님이 실체의 신부를 맞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부부사랑의 이상이 횡적으로 결실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절대 사랑이상이 종적으로 임재 동참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참사랑과 인간의 참사랑이 한 점에서 종횡의 기점을 중심하고 출발하여 한 점에서 결실 완성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필연이었습니다. 목적 없는 창조는 가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창조가 필요하였던 이유는 단 하나 참사랑의 이상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세계의 남자와 여자의 사랑 완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사랑이 완성되도록 하신 것이 창조원리입니다. 태초에 인간을 아담 해와의 1남1녀로 창조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아담 해와가 참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참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하나된 참된 부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그 참사랑 속에서 선한 자녀를 가져 참부모가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존의 부모위(父母位)를 실체적으로 확정짓고 하나님이 인간 혈대를 통하여 천상천국의 시민을 무한으로 두고 싶어하신 이상을 성취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시조 아담 해와는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간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 지녀야
만장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인류의 타락이 나무 열매를 따먹은 결과일 수 있겠습니까? 아담 해와의 타락은 하나님의 참사랑이상을 저버린 불륜의 범죄였습니다. 지켜야 할 계명이 필요했던 타락 전 아담 해와는 미완성 단계, 즉 성장기간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본연의 동산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기쁘게 뛰놀며 살던 아담 해와가 사망을 무릅쓰고까지 저지를 범죄는 잘못된 사랑의 범죄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인류조상의 첫사랑을 중심삼은 결합은 하나님 자신의 사랑 완성이기도 했으므로 마땅히 하나님도, 아담 해와도, 우주만상도 역사를 통하여 환희와 축복 가운데에서 취하는 행복한 잔치의 연속이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인간 속에서 시원을 이루면서 정착하는 행복한 의식이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체를 가리고 나무 뒤에 숨어서 불안에 떨었습니다. 천도를 거역하는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혈통의 근원을 만든 불륜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이상을 중심하고 볼 때, 동·식물세계에서는 그 사랑의 관계가 모두 번식을 전제로 이루어지지만 인간만은 예외입니다. 인간은 부부사랑의 관계에 자유를 누립니다. 만물의 영장 된 특권으로 하나님은 아들딸인 인간이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갖도록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이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책임성은
첫째로 인간은 사랑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기 수양, 자기 관장으로 자유로운 참사랑의 주체가 되는 책임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의 책임성은 법이나 이목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생명적이고 종적인 관계 속에서 자아주관, 자기의 결단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상대에 대한 책임성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상대의 자기에 대한 사랑이 나누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부간의 횡적인 사랑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종적인 사랑관계와 달리 나누어지면 그 온전성이 파괴됩니다. 이는 부부간에 절대적인 사랑의 일체를 이루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상대를 절대로 위해야 할 사랑의 책임성이 있습니다.
셋째는 자녀에 대한 사랑의 책임성입니다. 자녀들의 행복의 기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가장 귀한 책임은 외적인 양육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성을 온전하게 해줄 참사랑의 생명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소중한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생활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참된 자식의 심정, 형제의 심정, 부부의 심정, 부모의 심정은 참된 가정 이외의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메시아는 새 생명의 씨를 접붙여 주는 참사람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의 부부를 이루었다면, 하나님은 이상 하셨던 대로 당신의 실체인 아담의 몸 안에 거하시면서 해와를 사랑하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실체를 쓴 참부모가 되어 선한 사랑, 선한 생명, 선한 혈통의 시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인류조상의 타락으로 이러한 참사랑의 이상이 허물어졌을 때 하나님의 괴로움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인간들이 본래의 부모인 당신을 알지 못하고 사탄을 섬기는데도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해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창조이상도 절대적이므로 슬픈 구원역사를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복귀섭리의 근본은 어떻게 하면 창조이상을 완성할 인간의 씨, 본연의 아기 씨를 찾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생명과 혈통과 일체 된 구세주, 참부모를 어떻게 태어나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조상이 자기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고 불륜한 혈통관계를 맺어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원상회복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천사장 편으로 돌아간 인류를 조건 없이 선한 입장에서 취할 수도, 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를 개관하면, 모자협조의 기반이 중요했습니다. 타락의 장본인인 해와를 대신하여 책임하는 어머니를 세워 차자와 모자협조를 하면서 사탄의 혈통과 생명을 분립하려는 섭리가 있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인류를 선점한 사탄과 혈연적으로 직결된 장자를 곧바로 대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서 선 편을 대표하는 차자 아벨을 세워 악 편을 대표하는 장자 가인을 굴복시키려는 섭리를 통해 선한 혈통을 복귀하려 하셨지만 결국 가인이 아벨을 살해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섭리는 종결을 못 보고 연장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사랑과 참생명의 씨를 가진 아담을 잃은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조건이 없는 새로운 씨를 가진 아들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아담을 먼저 지었듯이 재창조섭리인 복귀섭리도 타락과 무관한 아들을 먼저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사상의 근본입니다.
메시아는 사탄의 관장 하에 있는 타락한 혈통을 지닌 사람들의 생명을 부정하고 새로운 생명의 씨를 접붙여 주기 위해서 오시는 참사람입니다. 뿌리는 하나님에게 두었지만 후아담으로 와서 아담으로 인해 저질러진 것을 청산지어야 하는 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다말을 중심한 혈통복귀섭리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씨를 갖고 태어날 아들을 위하여 먼저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낳더라도 그냥 그대로 낳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복귀의 공식을 통해서 낳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섭리 속에 나타난 모자협조는 모두 하늘의 아들이 사탄의 참소를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씨를 지니고 착지하기 위한 준비요 조건인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는 가인과 아벨 형제가 모태의 밖에서 서로 다투면서 차자 아벨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야곱은 아벨 이후 선 편에 선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탕감조건의 기대 위에 섰으므로 선점한 사탄을 더욱더 따라잡아 쌍태였던 형 에서를 상대하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를 굴복시키는 영적 승리를 거두고 실체 천사장의 몸인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역사 이래 처음으로 승리했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거짓 사랑의 씨가 해와의 태중에 뿌려져서 악의 생명이 태어났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태중까지 들어가서 분별해 놓지 않고서는 하늘의 아들이 태중에서 탄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책임을 맡은 위대한 어머니가 다말이었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장남 엘과 결혼했지만, 엘은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아니어서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서 유다는 차자 오난을 다말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했지만, 오난이 정자를 땅에 흘린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어 오난도 죽고 말았습니다. 다말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유다는 셀라마저 죽어서 가계가 끊길 것을 염려하여 셋째 아들 셀라는 주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선민의 혈대를 이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매춘부로 위장하여 시아버지인 유다를 맞아 쌍태 아기를 가졌습니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 먼저 손을 내밀고 나오려던 장자 아기가 다시 들어가고, 동생이 되어야 할 차자 아기가 형이 되어 먼저 태어났으니 그가 베레스였습니다. 다말의 태중에서 장자와 차자가 싸워 분립되는 태중복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 위에 선민의 혈족을 보아 2천년 후에 로마제국의 국가 기준을 대치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터 위에 메시아가 잉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성모 마리아가 섭리의 주류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예수님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자기의 몸을 통하여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가브리엘 천사장의 놀라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처녀의 입장에서 아기를 가지면 죽을 수밖에 없게 돼 있었던 것이 당시의 규례였지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면서 절대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친족이요 존경받는 대제사장 사가랴에게 상담했습니다. 사가랴 가정에서는 그 부인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임신한 세례 요한을 태중에 지닌 채 마리아에 대하여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 하고 예수님의 잉태를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사가랴와 엘리사벳으로 하여금 메시아의 탄생을 제일 먼저 알게 하였습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사이는 어머니 쪽으로 종자매의 관계였지만 섭리상으로는 언니(가인)와 동생(아벨)의 관계였습니다. 사가랴 앞에서 엘리사벳의 도움을 받은 마리아는 레아와 라헬이 야곱 가정에서 모자가 일체 되지 못했던 것을 국가적 기준에서 사가랴 가정을 통하여 탕감하는 조건까지 세우면서 예수님을 탄생시켜야 했습니다.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 아들의 씨, 참아버지가 되어야 할 씨가 준비된 어머니의 태중에 사탄의 참소조건 없이 착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비록 착지는 했다 하더라도 사탄세계 안에서 무사히 자라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호받을 울타리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사가랴 가정의 세 사람에게 그 기반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성서에는 마리아와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서로 교통한 기록이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려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조금 지나서 요셉은 마리아가 아기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때 그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사랑하는 약혼자 마리아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으니 요셉이 마리아에게 태내에 누구의 아이를 갖고 있는지를 추궁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만일 마리아가 정직하게 이야기해 버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만일 밝히는 날에는 일족이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오직 ‘성령으로 잉태했다.’라고만 말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배가 불러 왔고 주위의 사람들도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를 믿고 임신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방어한 의인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마리아는 약혼기에 임신했다는 조소는 받았을지언정 돌에 맞아 죽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를 사랑한 요셉은 처음에는 이렇게 마리아를 지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마음 밑바닥에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히 요셉은 그 아버지에 대한 의문과 연계되어 마음속 고통을 자주 경험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가정에 자주 분란이 일어났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생아의 입장에서 사가랴 가정의 보호도 못 받고, 또 요셉과도 어려운 조건에서 심정적으로 말할 수 없이 외로운 처지에서 자랐습니다.
예수님의 외로운 3년노정
메시아의 길을 자각하게 된 예수님은 그 사명을 위해서는 실체 신부를 맞이해야 됩니다. 천사장이 아담과 남매처럼 자라던 해와를 거짓 사랑으로 타락시킨 것을 근본적으로 복귀해야 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담 대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천사장형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야 했습니다. 그가 바로 사가랴의 딸, 세례 요한의 여동생이었던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가 주인 노릇을 하던 세상에서 이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형성된 보호 기대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사가랴 가정은 예수님 탄생 후에도 땅을 대표하여 제일 앞장서서 메시아를 보호하고 모시면서 증거해야 될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선택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가랴도, 엘리사벳도,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만 했지 모신 실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존경받는 제사장이었던 사가랴가 방관했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무관한 자리에 서게 됨으로써 오히려 예수님의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백성들이 따르지 못하도록 하고 말았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믿음을 잃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흐를 때 예수님이 바라신 신부를 맞는 일을 도왔을 리가 만무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가 예수님에게 미친 영향입니다. 마리아는 해와와 다말을 탕감복귀해야 할 입장이었으므로 요셉과는 약혼관계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섭리적으로 보면 그들의 관계는 부부 간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탄생할 때까지는 물론 그 후에도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본심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마리아는 요셉과 성적 관계를 맺게 되어 자녀를 가짐으로써 해와의 실수를 반복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이를 조건으로 그들에게 침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한 사람을 남기고 모두 사탄의 관장 하에 들어간 결과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지켜야 할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벨 편 형제도, 가인 편 형제도 모두 사탄 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사탄의 침범을 받으면 이미 영적으로 받은 은혜와 감동을 잃어버립니다.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마리아까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결혼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신부를 맞아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머니 마리아, 사가랴, 엘리사벳으로부터 반대를 받고 최후로 세례 요한으로부터도 반대를 받아 육친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명을 완수할 것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이 영적 기반을 찾아서 다시 복귀섭리를 하시고자 출발한 것이 예수님의 출가였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가문의 기반을 잃어버린 예수님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기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3년노정이었습니다.
구원섭리사의 원리관
그러나 민족이 불신하고 제자들의 믿음이 약해져서 사탄의 침범을 받고 말았으므로 예수님의 기대는 무너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메시아로 지상에 와서 제자들과 만민을 축복하시고 죄 없는 천국을 이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재림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재림주는 예수님이 못다 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근본을 완성하러 오십니다. 즉 창조이상을 완성할 참된 본연의 아기 씨로 와서 하나님의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의 근원이 되는 참부모이상을 완성하러 오십니다. 그는 예수님이 장성하실 때까지의 승리적인 기반 위에 바로 서시어서 그가 못다 하신 신부를 찾아 참부모가 되시어 만민을 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는 혈통을 전수하는 새로운 결혼행사를 통하여 전 인류를 하나님의 참사랑·참생명·참혈통으로 접붙여 참된 사람으로 구원하고, 나아가 참된 가정을 이루어 지상천국을 건설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주는 육신을 쓰고 오셔서 새로운 혈통관계를 편성하려는 것이며, 이것이 국제합동결혼식인 것입니다.
아담 한 가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세계 대가정권에서 탕감함으로써 아담 가정에서 완성해야 할 참장자권·참부모권·참왕권을 찾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지상천국으로 전환하여 천상천국으로 입적을 보아 하나님을 중심한 지상·천상 왕권시대로 진입하여 승리와 자유와 행복과 통일의 세계를 찾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사의 원리관입니다. 여러분도 미래에 행복한 새로운 결혼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 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20일 원문 &&&&&
구원섭리사의 원리관
날짜 : 1996. 4. 16(화)
장소 : 미국 워싱턴 힐튼호텔
존경하는 내외 귀빈,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회원,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21세기를 눈앞에 둔 우리는 다시 한 번 삶의 이정표를 정립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때 본인은 오늘 각계의 고명하신 지도자 여러분과 더불어 인간 생명의 요람이요, 평화세계의 초석이 될 참가정에 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의 이 모임이 미래의 건전한 가정과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귀한 동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사랑은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유일·불변·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일체가 되었다면 만사는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출발과 목적과 과정, 그리고 그 원인과 결과와 방향도 절대적인 것입니다. 인간시조 아담 해와는 무지에서 타락하여 혼돈에 빠졌습니다. 개인적인 무지와 혼돈에서 가정, 국가, 세계적인 무지와 혼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타락권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 종교와 구원섭리의 노력입니다. 끝날에는 메시아가 와서 하나님 편에서 보는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원인과 방향과 결과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어서 무지와 혼돈의 세계를 청산하고 본연적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 뜻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끝날에는 모든 종교, 주의와 사상, 국가도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지금 인류역사는 2000년대를 향한 대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시점에서 오늘 ‘구원섭리사의 원리관’을 주제로 새 이상시대의 참가정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지고자 합니다.
창조주와 인간과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한 완성을 바라시던 하나님은 인간과 일체되는 조건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시조에게 주실 계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성장기간을 거쳐 자라 올라가던 미완성의 단계에 있었음을 아시고 하나님은 자녀인 인간에게 가장 귀한 참사랑을 상속해 주시려던 조건이 계명이었습니다. 원래, 참사랑은 체휼을 통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참사랑은 말이나 글, 혹은 일반 교육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을 통해서만 완전히 체득하는 것입니다.
아기로 지음 받은 아담 해와는 성장하면서 단계적인 생활을 통해 경험함으로써 참된 자녀의 심정, 참된 형제의 심정, 참된 부부의 심정, 참된 부모의 심정을 체휼하여 완성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전체적으로 체득할 때 비로소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몇 천만 배, 아니 무한대의 가치적인 존재로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당신이 사랑하시는 상대인 인간이 무한한 가치적인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성되면 신성(神性)을 이루고 하늘 아버지의 온전함같이 온전하여 하나님적인 가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자이시지만 참사랑의 이상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의 이상은 반드시 상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참사랑과 인간의 참사랑의 출발과 완성이 서로 어떠한 연관을 갖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참사랑의 절대적인 대상체로 인간을 세우시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 당신의 참사랑의 출발과 완성을 이루려고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참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은 각각 동기가 다르게 되어서 그 두 사랑의 방향과 목적은 다를 수밖에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은 인간보다 상위의 또 다른 대상을 세워서 이루셔야 할 것이며, 한편으로 인간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게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참사랑의 주체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그 참사랑의 상대자로 인간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은 인간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세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 최선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고로, 인간은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실체를 입은 대상입니다. 무형의 하나님 앞에 보이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완성되면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고 평안하게 언제나 들어와서 거하실 수 있는 유형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참사랑의 전체적인 이상은 인간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종적인 관계로 실현되고 완성됩니다. (277-196)
하나님의 창조가 필요했던 이유
하나님은 아담을 먼저 지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동시에 체(體)를 쓴 하나님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아담의 상대자로 해와를 지으셔서 횡적인 사랑, 즉 부부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을 완성하고자 하셨습니다. 해와는 하나님의 딸이었던 동시에 하나님의 횡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을 실체로 완성할 신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되어 하나님의 축복 하에 결혼을 하고 첫사랑을 맺었더라면 그 자리는 곧 하나님의 실체의 신부를 맞던 자리였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부부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이 횡적으로 결실되던 그 자리에 하나님의 절대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이 종적으로 임재하시어 동참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참사랑과 인간의 참사랑이 한 점에서 종횡의 기점을 중심삼고 출발하여 결실되고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필연이었습니다.
하나님한테 있어서 창조가 필요했던 이유는 단 하나 참사랑의 이상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간단하고 저급한 피조물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주체와 대상, 양성과 음성의 쌍쌍으로 전개하신 이유도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 아래 상대관계를 형성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조물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과 하나님의 궁극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이 별개가 아닙니다. 인간세계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중심삼은 완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 완성되도록 하신 것이 창조의 원리였습니다.
태초에 인간을 아담 해와, 일남일녀로 창조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아담 해와가 참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참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하나된 참된 부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그 참사랑 속에서 아들딸을 갖고 행복하게 잘살 수 있는 참부모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참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실체를 입으시려던 소망이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참된 부부로 완성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완성을 의미했습니다.
다음으로, 아담 해와가 선한 자녀를 가져 참부모가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영존의 부모위를 실체적으로 확정짓고 인간 혈대를 통해 자자손손 번성하심으로써 천상천국의 시민을 무한으로 두고 싶으셨던 이상을 성취하시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 시조 아담 해와는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날 때 그들은 자녀를 거느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쫓아내신 아담 해와를 에덴 바깥까지 찾아가서 축복하고 결혼식을 해주셨을 리 만무합니다. 전인류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없이 번식된 후손들, 쫓겨난 조상의 후손들입니다. (277-200)
아담 해와의 타락은 불륜에서 비롯
만장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인류의 타락이 나무 열매를 따먹은 결과일 수 있겠습니까? 아담 해와의 타락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을 저버린 불륜의 범죄였습니다. 지켜야 할 계명이 필요했던 타락 전 아담 해와는 미완성의 단계, 즉 성장기간에 타락했습니다. 뱀으로 표시된 천사장의 유인을 받고 해와가 영적으로 타락하고, 그 해와가 아담을 유인하여 육적인 타락을 하고 만 것입니다.
본연의 동산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기쁘게 뛰놀며 살던 아담 해와가 사망을 무릅쓰고까지 저지를 수 있었던 범죄는 잘못된 사랑의 범죄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인류 조상의 첫사랑의 결합은 하나님 자신의 사랑의 완성이기도 했으므로 마땅히 하나님, 아담 해와, 우주 만상도 환희와 축복 속에 취하는 행복한 잔치의 연속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이 인간 속에서 시원을 이루면서 정착하는 행복한 의식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체를 가리고 나무 뒤에 숨어 불안에 떨었습니다. 천도를 거역하는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의 근원을 만든 불륜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인 전인류는 자자손손 태어날 때부터 원죄가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개체 속에 마음과 몸의 상충을 모순으로 느끼게 됨도 타락에서 근원했고, 사랑의 질서가 문란한 사회 속에서 본심이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감도 모두 여기에서 연유했습니다. 동식물의 세계에서는 그 사랑의 관계가 모두 번식을 전제로 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예외입니다. 인간은 부부사랑의 관계에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인 인간이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갖도록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의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의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277-201)
사랑의 책임성 세 가지
그 책임성은 다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사랑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기 수양, 자기 관장으로 자유의 주체가 되는 책임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의 책임성은 법이나 이목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 속에서 자아 주관과 자기 결단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상대에 대한 책임성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상대의 사랑이 나누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부간의 횡적인 사랑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간의 종적인 사랑의 관계와 달리 나누어지면 벌써 그 온전성이 파괴됩니다. 이는 부부간에 절대적인 사랑의 일체를 이루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상대를 절대로 위해야 할 사랑의 책임성이 있습니다.
셋째는, 자녀에 대한 사랑의 책임성입니다. 자녀들의 사랑과 행복의 기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은 참사랑으로 화합되고 일체된 부모를 통해 생명이 태어나고, 그러한 사랑 속에서 양육되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가장 귀한 책임은 외적인 양육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성을 온전하게 키워 줄 수 있는 참사랑의 요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소중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생활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참된 자식의 심정, 형제의 심정, 부부의 심정, 부모의 심정은 참된 가정 외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사랑의 부부를 이루게 되었으면, 하나님은 이상하셨던 대로 당신의 실체인 아담의 몸 안에 거하시면서 해와를 사랑하시게 되어 있었습니다.
나아가,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실체를 쓴 참부모가 되어서 선한 사랑, 선한 생명, 선한 혈통의 시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 해와는 사탄의 실체가 되어서 악한 부부, 악한 부모, 악한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결합은 악한 사랑과 악한 생명과 악한 혈통의 뿌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류는 모두 이 뿌리에 근원을 두었으므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원수요, 간부(姦夫)인 사탄의 후손이 되어 악한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고 만 것입니다.
인류 조상의 타락으로 참사랑의 이상이 허물어졌을 때 하나님의 괴로움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인간들이 본래의 부모인 당신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사탄을 섬기는데도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해 오신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창조이상도 절대적이므로 슬픈 구원역사를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잃어버린 참사랑의 창조목적을 다시 회복하시는 복귀섭리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섭리는 재창조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복귀섭리의 근본은 어떻게 하면 창조이상을 완성할 인간의 씨, 본연의 아기씨를 찾느냐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간부 된 사탄의 거짓사랑으로 유래된 생명과 혈통을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생명과 혈통과 일체된 구세주, 참부모를 어떻게 태어나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이 자기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고 불륜한 혈통관계를 맺어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원상회복시키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 편으로 돌아간 인류를 조건 없이 선한 입장에서 취하실 수 없고 치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편에 있는 중심인물을 세우셔서 먼저 맞으면서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여 빼앗아오시는 작전을 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먼저 치고 빼앗기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제1, 제2차 세계대전이 그 예가 되었습니다. 먼저 친 편이 망했습니다. (277-203)
장자권 복귀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복귀섭리를 개관하면, 모자 협조의 기반이 중요했습니다. 야곱 때, 모세 때, 예수님 때 다 그러했습니다. 타락의 장본인이었던 해와를 대신하여 책임하는 어머니를 세워 차자와 모자 협조를 하면서 사탄의 혈통과 생명을 분립하려는 섭리가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타락으로 인류를 선점한 사탄과 혈연적으로 직결된 장자를 곧바로 대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편을 대표하는 차자를 세워서 악편을 대표하는 장자를 굴복시키는 것으로 선한 혈통을 복귀해 나오셨습니다.
아담가정에서 하나님은 차자 아벨을 세워 장자 가인을 굴복시키려고 섭리하셨습니다. 타락한 어머니였지만 해와를 중심삼고 두 아들을 하나로 만드시려고 했지만, 결과는 가인이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구원섭리는 종결을 못 보고 연장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노아 때도 모자 협조의 기준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모자 협조의 기준은 리브가와 야곱 때부터였습니다.
인류의 타락은 아담, 해와, 천사장의 세 존재에 의해 저질러졌습니다. 천사장이 해와를 유인하여 영적으로 타락시켰고, 그 다음에 타락한 해와가 아담을 유인하여 육적으로 타락시킴으로써 하나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천사장이 사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요, 복귀의 원칙은 180도 반대의 길을 통하는 것입니다. 참사랑과 생명의 씨를 가진 아담을 잃어버리신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조건이 없는 새로운 씨를 가진 아들을 찾아 세우셔야 했습니다.
창조 때 아담을 먼저 지으셨듯이 재창조섭리인 복귀섭리도 타락과 무관한 아들을 먼저 세우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의 근본입니다. 메시아는 사탄의 관장 하에 있던 타락된 혈통을 지닌 사람들의 생명을 부정하고 새로운 생명의 씨를 접붙여 주기 위해서 오셨던 참사람이었습니다.
뿌리는 하나님한테 두었지만 후아담으로 와서 아담으로 저질러진 것을 청산지어야 했던 메시아였습니다. 하나님이 능력만으로 역사할 초인을 메시아로 보내실 수 없었던 사정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씨를 갖고 태어날 아들을 위하여 먼저 어머니가 있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낳더라도 그냥 그대로 낳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복귀의 공식을 통해 낳아야 되었습니다.
복귀섭리 속에 나타난 모자 협조는 모두가 하늘의 아들이 사탄의 참소를 벗어난 새 생명의 씨를 지니고 착지하기 위한 준비요, 조건이었습니다. 모자 모두 사탄의 공격을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세운 터 위에서 사탄을 대표하는 장자를 굴복시킴으로써 사탄이 선점한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복귀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기록한 성경 속에 이해할 수 없는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리브가가 남편 이삭과 장자 에서를 속이고 차자 야곱을 도와 그가 축복을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견(一見)으로 부당해 보이는 방법을 동원한 그 모자의 편에 서시어서 그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담가정에서는 가인과 아벨 형제가 태외에서 다투어 차자 아벨이 오히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277-204)
다말의 신앙
야곱은 아벨 이후 선편에 섰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탕감조건의 기대 위에 섰으므로 선점한 사탄을 더욱 더 따라잡아 쌍태의 형이었던 에서를 상대하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얍복강에서 천사를 굴복시켰던 영적인 승리의 조건과 실체 천사장의 몸이었던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역사이래 처음으로 승리했다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나이가 40대였습니다. 사탄의 거짓사랑의 씨가 해와의 태중에 뿌려져 악의 생명이 태어났으므로 하나님은 어머니의 태중까지 들어가서 분별해 놓으시지 않고서는 하늘의 아들이 태중에서 탄생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승리했더라도 여전히 분별되지 아니한 잉태에서부터 40대까지의 기간이 분립되어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책임을 맡은 위대한 어머니가 다말이었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장남 엘과 결혼했지만 엘은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아니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서 유다는 차자 오난을 다말에게 주어 아이를 낳도록 했지만, 오난은 태어날 아기가 자기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정자를 땅에 흘렸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어 오난도 죽고 말았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세 번째 아들 셀라와 함께하려고 했지만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다말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유다는 셀라마저 죽어서 가계가 끊길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다말은 선민의 혈대를 이어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매춘부로 위장하여 시아버지인 유다를 맞아 쌍태의 아기를 가졌습니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 먼저 손을 내밀어 나오려던 장자 아기가 다시 들어가고 동생이 되어야 할 차자 아기가 형이 되어 먼저 태어났으니 그가 베레스였습니다.
다말의 태중에서 장자와 차자가 싸워 분립된 태중복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 위에 선민의 혈족을 모아 2천 년 후 로마제국의 국가기준을 대치할 이스라엘의 터 위에 메시아가 잉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태중에 사탄의 참소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터전이 조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성모 마리아가 섭리의 주류에 등장한 것입니다. (277-206)
예수님 탄생과 종족의 책임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자기의 몸을 통해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가브리엘 천사장의 놀라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처녀의 입장에서 아기를 가지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규례였지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38) 하면서 절대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친족이요, 존경받는 대제사장 사가랴에게 상담했습니다.
사가랴의 가정에서는 그 부인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임신한 세례 요한을 태중에 지닌 채 마리아에 대하여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누가복음 1:42∼43) 하고 예수님의 잉태를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마리아와 사가랴 그리고 엘리사벳으로 하여금 메시아의 탄생을 제일 먼저 알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할 중대한 사명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마리아를 자기들의 집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가랴의 가정에서 잉태되었습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사이는 어머니 쪽으로 이종자매의 관계였지만 섭리상으로는 언니와 동생의 관계였습니다. 사가랴 앞에서 엘리사벳의 도움을 받은 마리아는 레아와 라헬이 야곱가정에서 모자가 일체되지 못했던 것을 국가적인 기준에서 사가랴의 가정을 통하여 탕감하는 조건까지 세우면서 예수님을 탄생시켜야 했습니다.
역사이래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씨, 참아버지가 되어야 할 씨가 준비된 어머니의 태중에 사탄의 참소조건 없이 착지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첫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독생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법에 의해 용인될 수도 없고 또 상식으로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을 마리아가 해내야 했습니다. 세 사람이 모두 영적으로 감동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에 따라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소원임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비록 착지는 했다 하더라도 사탄세계에서 무사히 자라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호받을 울타리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사가랴 가정의 세 사람에게 그 기반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보호하고 모시는 일에 어떻게 전념했고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생각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마리아가 석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누가복음 1:5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 성서에서 보는 한 마리아와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서로 교통한 기록이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사가랴의 가정은 최후까지 예수님의 울타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조금 지나서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사랑하던 약혼자 마리아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3개월간 어딘가 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으니, 요셉이 마리아에게 태내에 누구의 아이를 갖고 있는지를 추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만일 마리아가 정직하게 이야기해 버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만일, 밝히는 날에는 일족이 멸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오직 “성령으로 잉태했다.”고만 말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배가 불러왔고 주위 사람들도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면 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를 믿고 임신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방어한 의인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마리아는 약혼기에 임신했다는 조소는 받았을지언정 돌에 맞아 죽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를 사랑한 요셉은 처음에는 이렇게 마리아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마음 밑바닥에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히, 태어난 예수님을 지켜보던 요셉은 그 아버지에 대한 의문과 연계되어 마음속으로 고통을 자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라면서 요셉과의 관계가 심정적으로 거리가 생기고, 이로 말미암아 가정에 자주 분란이 일어났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생아의 입장에서 사가랴 가정의 보호도 못 받고, 또 요셉과 어려운 조건에서 심정적으로 말할 수 없이 외로운 처지에서 자랐습니다. 메시아의 길을 자각하게 된 예수님은 외로운 사정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심각한 장애요인임을 알고 홀로 안타까워했습니다. (277-208)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모셨어야
메시아는 참부모였으며 그 사명을 위해서는 실체 신부를 맞이해야 되었습니다. 천사장이 아담과 같이 자라던 해와를 거짓사랑으로 타락시킨 것을 근본적으로 복귀해야 할 예수님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담 대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천사장형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야 했습니다. 그가 바로 사가랴의 딸, 세례 요한의 여동생이었던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가 주인 노릇하던 세상에서 그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형성된 보호기대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예수님의 주변에서는 그와 같은 터전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만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계시와 영적인 은혜 아래 처음 가졌던 절대적인 믿음을 계속 가졌더라면 상황은 전연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책임을 다했다면 마리아는 3개월 뒤 그 집을 나왔더라도 계속적으로 그들과 교통하고 의논했을 것입니다.
사가랴의 가정은 예수님 탄생 후에도 땅을 대표하여 제일 앞장서서 메시아를 보호하고 모시면서 증거해야 할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지극정성으로 모실 뿐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받고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태어난 세례 요한이었으니 그가 회개시킨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인도하는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가랴, 엘리사벳,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만 했지 모신 실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존경받던 제사장인 사가랴가 방관하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무관한 자리에 서게 되었으므로 말미암아 오히려 예수님의 가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백성들로 하여금 따르지 못하도록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믿음을 잃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흐를 때 예수님이 바라던 신부를 맞는 일을 도왔을 리가 만무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가 예수님한테 미친 영향입니다.
마리아는 해와와 다말을 탕감복귀해야 할 입장이었므로 요셉과는 약혼관계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섭리적으로 보면 그들의 관계는 부부간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탄생할 때까지는 물론 그 후에도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되었던 것이 하나님의 바라심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에 대하여 예수님 탄생 후에도 계속 사랑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헤어지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본심으로는 안된다고 하면서 마리아는 요셉과 성적인 관계를 맺게 되어 자녀를 가짐으로써 해와의 실수를 반복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조건으로 그들에게 침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한 사람 남기고 모두 사탄의 관장 하에 들어간 결과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지켰어야 할 아버지, 어머니, 아벨 편 형제(세례 요한과 그 형제), 가인 편 형제(요셉의 자녀)도 모두 사탄 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사탄의 침범을 받으면 이미 영적으로 받은 은혜와 감동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감사를 잃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마리아까지 예수님이 원하던 결혼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신부를 맞아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한복음 2:4) 한 것도 가장 귀한 섭리의 요청인 예수님의 신부 맞는 일에 등한시하고서 먼 친척의 혼인잔치를 도우려던 마리아를 책망한 심정이 표출된 것입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마태복음 12:48) 하신 말씀도 이런 기준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로부터도 반대를 받고, 사가랴와 엘리사벳으로부터도 반대를 받고, 최후로 세례 요한으로부터도 반대를 받아서 육친의 보호를 받으며 사명을 완수할 것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이 영적인 기반을 찾아서 다시 복귀섭리를 하고자 출발한 것이 예수님의 출가였습니다. 출가한 예수님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복음 8:20)고 탄식했습니다.
가문의 기반을 잃은 예수님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기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3년노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이 불신하고 제자들의 믿음이 약해져서 사탄의 침범을 받고 말았으므로 예수님의 기대는 무너지고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메시아로 지상에 와서 제자들과 만민을 축복하고 죄 없는 천국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불신을 받아 신부를 맞지 못했으므로 참부모가 되지 못하여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림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오늘 이처럼 예수님과 마리아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밝혀드리는 것은 그 동안 기존 천주교와 개신교의 반대가 많았었지만 성서에서 말했듯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6:19) 한 진리대로 예수님과 마리아를 해방시켜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재림주는 예수님이 못다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근본을 완성하러 오십니다. 즉, 창조이상을 완성할 참된 본연의 아기씨로 와서 하나님의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의 근원이 되는 참부모의 이상을 완성하러 오십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 때까지 하나님 편이 승리한 근본적인 섭리의 터전 위에 임재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장성할 때까지의 승리적인 기반 위에 서시어서 그가 못다한 신부를 찾아 참부모가 되시어 만민을 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는 혈통을 전환하는 새로운 결혼행사를 통하여 전인류에게 하나님의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을 접붙여 참된 사람들로 구원하시고, 나아가 참된 가정을 이루어 지상천국을 건설하시는 것입니다. (277-211)
국제합동결혼식의 의의
따라서, 재림주는 육신을 쓰고 오셔서 새로운 혈통관계를 편성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국제합동결혼식인 것입니다. 아담의 한 가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세계적인 대가정권에서 탕감함으로써 아담가정에서 완성해야 했던 참장자권·참부모권·참왕권을 찾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지상천국으로 전환하고 천상천국으로 입적하여 하나님을 중심삼은 지상·천상 왕권시대로 진입합니다. 그래서 승리와 자유와 행복과 통일의 세계를 이루어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천상천국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사의 원리관입니다.
여러분도 다가오는 360만 쌍 국제합동결혼식에 참석하여 하나님과 전 인류의 대희망인 지상·천상천국에 입적하는 복 받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각계의 지도자,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이 뜻깊은 모임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여러분 모두가 이 역사적인 방향에 일치되어서 평화세계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선구자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77-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