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의 완성과 우리의 사명 (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19일) u

훈독왕 | 20190506153439

천일국 훈독경 제2권 19 



뜻의 완성과 우리의 사명(훈독본)


날짜 : 1974. 12. 31()

장소 : 한국 중앙수련원


하나님의 구원섭리


사람이 가는 길에는 개인이 가는 길이 있는 동시에 개인을 연결하여 가정이 가는 길이 있고, 또한 종족, 민족, 국가, 하나의 세계가 가야 되는 길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이 육신을 가진 우리 인간 세계뿐만이 아니라 이 육신 이외의 세계, 천상세계 혹은 영계(靈界)라고 하는 영()의 세계에도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본래 인간이 가야 하는 길을 다 못 갔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가 합해 가지고 넘어가서 하나님한테로 돌아가야 할 길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단계 단계 점진적 과정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원칙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책임, 즉 개인으로서 해야 할 책임, 가정으로서 해야 할 책임, 종족, 민족,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영계까지 합해 가지고 해야 할 책임적 과정을 여기에서 해결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 인류역사의 노정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진적인 단계의 노정을 모르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인간들을 깨우치고 거느려 나오던 종교역사를 통한 섭리의 뜻도 연장되었습니다. 단계적인 이런 청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오랜 역사를 하나님도 완수 못 하시고 연장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 단계적인 모든 해결점을 하나님 자신이 하신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본래 타락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 입장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 하에서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실 없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이 잘못한 것을 대통령이 직접 책임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는 자기가 청산하는 조건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청산지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이 그 죄를 청산할 수 있는 길을 닦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길을 닦는 가운데 책임을 완수하여 인간의 죄를 청산하려고 하는 것이 종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섭리라는 것입니다. (74-219)


역사적 주류종교


오랜 역사시대에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수많은 종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면을 통해 영생을 바라볼 있는 하나의 종교만이 하나님과 직통하는 기반을 닦아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가운데도 주류종교가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주류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갖추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뜻과 완전히 하나돼야 됩니다. 뜻의 완성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하나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되어야 되느냐? 사람이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되게 만들어 주시느냐?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환경과 길은 다 만들어 주시지만 가는 것은 내가 가야 됩니다. 그래서 신앙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종교의 길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길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여 주고 대신 달라고 해도 어머니가 대신 없고 아버지가 대신 없는 길입니다. 각자가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민이 공통적인 입장에서 옛날의 할아버지나 앞으로 수천 대의 후손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나 그 길을 가야 되는데, 그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옛날 신앙의 선조들이 갔던 모습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방향으로 가는 종교사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에 중심적인 종교는 어떤 종교냐? 인간 타락에 기원을 둔 종교 가운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종교가 종결될 수 있는 미래의 목적 시대까지 일관된 방향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종교를 우리는 역사의 주류종교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는 먼저 어디서 시작해야 되느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런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선과 악을 섞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확실히 가려 가지고, 선한 길은 이렇고 악한 길은 이렇다 하는 것을 완전히 분별해 가지고 가야 됩니다. 선악을 분별시켜 가지고 종교의 방향성을 가려 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 역사적인 종교들 가운데서 어떠한 종교보다도 기독교를 중심삼은 사상이 주류가 된 것은 창세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면서 천지와 관계를 맺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결론을 지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결론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의 관계라는 결론을 지었다는 사실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와 더불어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부모와 더불어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우리 인간이 그분의 아들이라고 하게 되면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앞에 영원한 아들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주체 앞에 상대적인 자녀의 자리에 서게 되는 고로 영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74-224)


천국 가려면


그러면 자녀의 자리에 나가야 되는데 어떻게 나가야 하느냐? 방법을 모를 때는 “그저 무턱대고 믿으며 나간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는 그것이 통할 수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 와서는 안 통합니다. 무턱대고 믿는 종교, 무턱대고 행해야 된다고 하는 종교들은 앞으로 자기 자리를 못 잡을 것입니다.


종교가 하늘 앞에 나가는 있어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조건, 하늘 편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공인을 받고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천국 가기 위해서는 사탄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사탄이 놔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사탄이 놓아주었다고 하나님이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절대적인 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사랑으로 어떻게 나가느냐?  하나님의 아들 되어야 인간이 떨어지는 데는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죽을 만큼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하실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끌려가서 떨어진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 종입니다. 그런 종에게 끌려갔지만 그 종의 사랑을 받는 아들의 자리에도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종과 그들에게 끌려간 우리 인간은 원수입니다.


그래서 종인 사탄 앞에서 종의 종이라는 말을 하게 것입니다. 종의 종, 원수인 종의 종 같은 취급을 받아온 것이 인간입니다. (74-226)


복귀의


그러면 종의 종에서 어디로 가야 되느냐? 그냥 그대로 가다가는 영원히 종으로 끝나기 때문에 거꾸로 가야 됩니다. 종의 종 자리를 버리고 주인 된 사탄과 대결해 가지고 길목을 지키는 것을 박차고 정비해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의 종이 가야 할 길은 주인 되는 종을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인 종을 이기지 않으면 못 갑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공법에 의해 공개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중심삼고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면 사탄이 어떤 법을 중심삼고 인간을 걸어 가지고 “야, 너희들 해방해 준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네가 다시 들어오기를 원한다면 들어올 수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서운하셨던 하나님이라도 그 내용만 갖추고 들어가게 되면 틀림없이 통과시키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소위 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원리라는 것은 타락한 인간이 본향길을 가려 돌아가는 데 있어서 인생의 원칙입니다. 타락된 세계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종을 이긴 다음에는 어떤 단계로 올라가게 되느냐? 그 다음에는 양자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양자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꾸로 올라갑니다. 종의 이름을 가지고는 주인 앞에 아무리 관계를 맺었더라도 아들의 자리에 나갈 없습니다. 그러니 아들의 자리에는 못 나가더라도 아들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라도 나가려니 양자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에 보게 되면 아바 아버지를 부르며 양자 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 길은 양자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양자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애꾸눈 친자식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양자를 들여 가지고 우주를 상속하시고 싶겠어요? “하나님, 모든 면에 인간으로서는 역사상 최고로 잘난 사람이 있는데 이를 양자로 삼아 우주를 상속하소!” 하면, 하나님이 “오냐, 좋은 소식이다.” 하시겠어요? 하나님의 참된 아들을 원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적인 종교시대에서 직계적인 자녀시대로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종이 양자의 자리에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세계적인 분, 역사적인 분, 절대적인 단 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 앞에 양자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선을 위한 역사적인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74-227)


메시아 사상


하늘은 세계 구도의 길을 넓혀감에 따라 특정한 민족을 취해 종적인 입장에서 세계 제일 있는 종의 무리로서 특별히 훈련시키십니다.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한 민족을 택하여 세계에서 제일가는 민족으로 훈련을 시켜야 됩니다. 그것은 종의 종 단계에서 종의 단계, 양자의 단계를 거쳐 아들의 단계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한 특수한 민족이 있어야 되는데 역사시대에 그런 민족이 있었느냐? 이런 관점에서 종교라는 명사를 두고 볼 때 선민사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그러한 사람이 있었고 그러한 민족을 대표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필요했던 특정한 민족이라는 것을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수천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갖은 수욕과 갖은 시련을 극복하고 갖은 낙망과 갖은 절망에 부딪히면서도 그것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러한 비참한 역사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민족은 어떤 민족이 당하지 않았던 비참한 민족사의 배경을 남겨야 됩니다. 어떠한 수난길에서도 후퇴하는 약자의 무리가 아니라 전진해 극복하고 나가는 무리요, 차원 높은 곳을 향하여 가다가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전진해 가다가 죽게 되는 날에는 내일의 후계자 앞에 유언으로 전진을 명령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여력과 그러한 미래관을 가진 사상이 있었느냐 그것이 메시아 사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제일 위대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산중에 들어가 살고 아무리 밑창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메시아를 붙드는 날에는 비약합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떤 분이었느냐? 목적관을 확실히 제시하기 위해서 왔던 분이요, 확실한 방향을 갖고 왔던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같이 서서 그 목적을 향하게 될 때는 일시에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요, 일시에 그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이 가졌던 메시아 사상이었다는 것입니다. (74-230)


메시아의 자리


그러면 4천 년 전에 약속했던 메시아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졌는데, 그 메시아로서 오신 분은 어떤 존재였느냐? 먼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개인완성의 표준을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일대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하여 세워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손을 들어 “오,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사탄 마귀를 개인적으로 꼼짝 못 하게 하나에서 백까지 백 퍼센트 굴복시킨 대표자다.” 하실 수 있었던 자는 메시아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문제권으로 들어가야 되었느냐? 심정의 문제권으로 들어가야 되었습니다. 말 또는 법으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와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뜻을 완성한 모델이 있어야 되었습니다. 그 모델은 일시적인 모델이 아니라 영원한 모델이요, 타락한 인류가 완전히 다 완성해서 그 모델형을 갖추고 돌아갈 때까지 남아져야 할 사명을 가진 모델이었습니다. 그런 모델이 나와야 되었습니다.


그런 모델적인 개인의 사명을 완수해서 하나님이 “그렇다”고 공인하실 수 있어야 했습니다. 내적 외적인 모든 구비조건을 갖추고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온 분이 누구냐 하면 구세주였습니다. 그분은 법에 걸린 것을 해방해야 되었고 사탄법으로 지배하던 왕을 꼼짝 못 하게 굴복시킬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국가를 제어할 있는 공의의 법도에 의해 가지고 완비된 해결점을 제시할 있는 법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될 때는 낮은 분야의 법적인 조건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해방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시대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완성과 완결을 보고 왔던 분이 메시아였습니다.


다음에는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나님은 가정적인 모델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우리 사람은 누구를 닮았어요? 사람은 결과적인 존재니까 원인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것은 원인 앞에 그렇게 하나되기 위해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욕심쟁이면 하나님도 제일가는 욕심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반법도적(反法度的)인 욕심쟁이이지만, 하나님은 법도적인 욕심쟁이입니다. 그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리를 따르면 욕심의 목적을 달성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목적을 다 이루신다고 하면 나는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리, 하늘나라의 극상(極上)에라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개인적인 완성을 필한 모델형 메시아를 만나고 싶어요, 가정적인 모든 것을 완결한 메시아를 만나고 싶어요? 그건 물어볼 것도 없지요? 


그러면 다음의 단계는 어때요? 가정을 완결지을 수 있는 메시아를 맞고 싶어요, 종족을 완결짓고 천의(天意)를 완성시킬 수 있는 책임을 진 메시아를 맞고 싶어요, 국가를 중심삼고 수많은 국가의 모델형으로서 완성해 가지고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메시아적인 책임을 진 분을 맞고 싶어요? 그것도 물어볼 것 없습니다. 욕심들이 많으니까 말이에요. 다들 그렇습니다. 맨 나중에는 천주까지 책임진 분을 맞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섭리관을 바라볼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었느냐? 예수님은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가장 심각했던 분이었습니다. (74-235)


역사적인 종말시대의 도래


여러분, 레슬링 챔피언들이 싸울 때 보면 그 얼마나 치열해요! 보통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아주 손에 땀이 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싸우는 데 있어서 비법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상대보다 한 가지를 더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의 비법만 더 있으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걸고 유린하고 있는 사탄을 처단하고 추방하기 위해서는 이상의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이 세계를 대해 내가 이상세계의 완성을 목표로 전진한다면 우리의 원수가 되는 세계를 거느리는 어떠한 대표가 내 목전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사망의 힘이 있으면 그 사망의 힘이 앞에 나타나 가지고 뿔개질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다가오면 역사적인 종말시대이기 때문에 말할 없는 부패 시대가 옵니다. 말할 수 없는 혼란 시대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시대에 말할 수 없는 질서의 시대, 말할 수 없는 희망의 시대를 가져오려 하신다면 악은 그 반대를 행해 가지고 그 환경을 어지럽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가까워 오면 가까워 올수록 모든 세상적인 질서에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남편이 아내를 몰라보고, 아내가 남편을 몰라보고, 나라의 주권자가 그 백성을 몰라보고, 백성이 그 주권자를 몰라보면서 전부 다 둘로 갈라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되면 주님이 있는 때가 됩니다. 주님이 올 가능성이 있는 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주권이나 사상이 이 세계를 향해서 외칠 수 없고, 어떠한 종교사상이 이 세계를 향해서 외칠 수 없고, 어떠한 국민이나 어떠한 개인 혹은 어떤 가정적인 윤리가 세계를 향해서 외칠 수 없는 시대가 옵니다. 그러한 혼란 된 세계가 오거든 끝날이 온 줄 아십시오! 바로, 그때가 지금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내 자체에 중심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중심을 다른 데서 찾을 길이 없는 것이요, 세계의 중심을 다른 데서 찾을 길이 없는 것이요, 사회의 중심, 단체의 중심, 가정의 중심을 다른 데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것도 나, 가정을 대표하는 것도 나, 국가를 대표하는 것도 나로부터입니다. 나를 찾아야 됩니다. 지금 때는 나라를 붙들어도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난데없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세계를 붙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나를 중심삼고 구부리고 앉아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때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온 것입니다. 나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머리를 숙이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도, 개인도, 가정도, 세계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역사가 있으면 역사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 우리 인간들만 머리를 숙이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셔야 될 것입니다. (74-238)


뜻의 완성


그러면 생각이 어디로 가는 생각이 되어야 하느냐? 나에게 가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고 기도를 한다면 나를 통하여 세계로 가고 하늘로 돌아가는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모든 비판을 다 해놓고 거기에 머리를 숙여 가지고 하늘로 돌아가는 하나의 길을 모색할 수 있으면 거기서부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중심삼은 새로운 문화세계의 기원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중심삼고 가자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타락성을 지니고 태어난 후손이기 때문에 타락의 탈을 쓰고는 안되겠으니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귀한 가치의 인연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핍박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의 완성은 어디서 하느냐? 어떤 왕궁에서 춤추고, 피리 불고, 술 먹고, 노래하는 데서 뜻의 완성이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데서 뜻의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죽고자 하는 자는 개인적으로 살 것이요, 가정을 끌고 죽고자 하는 자는 가정적으로 살 것이요, 민족을 끌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민족적으로 살 것이요, 세계를 끌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설파한 말씀과 더불어 기독교인들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전체가 종교적으로 죽는 길을 자진해서 갔습니다. 그런 길을 걸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죽음이라는 낱말을 목적이 무엇이냐? 삶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삶의 가치는 누가 잘 아느냐?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죽을 궁지에 들어가 가지고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을 붙들고 삶의 가치를 타진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나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서 중심존재로 보내겠다던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를 찾을 수 있다면 나는 생명을 내놓고 가야 하겠고 천하를 버리고라도 가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이 천 개가 있다면 그것을 다 바치고라도 그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우게 되면 종족적인 기준, 가정적인 기준, 개인적인 기준을 돌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만 법도를 딱 넘어가게 되면 그 나라가 구원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의 완성과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씀의 결론을 짓는다면, 이제는 생명을 다하여 최후의 격전장에 임하는 엄숙한 장병이 되어야 하겠다는 결론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한의 고개를 메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야겠습니다. 그러면 내 일대에 바라던 소원을 성취 못 하더라도 천년 만년 그 자리에서 찬양의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74-242)


&&&&& 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19일 원문 &&&&&


뜻의 완성과 우리의 사명


날짜 : 1974. 12. 31()

장소 : 한국 중앙수련원


하나님의 구원섭리


사람이 가는 길에는 개인이 가는 길이 있는 동시에 개인을 연결하여 가정이 가는 길이 있고, 또한 종족 가는 길이 있고, 민족 가는 길이 있고, 다음에는 국가 가는 길이 있고, 하나의 세계가 가야 되는 길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이 육신을 가진 우리 인간 세계뿐만이 아니라 이 육신 이외의 세계, 천상세계 혹은 영계(靈界)라고 하는 영()의 세계에도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본래 인간이 가야 하는 길을 다 못 갔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가 합해 가지고 넘어가서 하나님한테로 돌아가야 할 길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단계 단계 점진적 과정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원칙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책임, 즉 개인으로서 해야 할 책임, 가정으로서 해야 할 책임, 종족, 민족,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영계까지 합해 가지고 해야 할 책임적 과정을 여기에서 해결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 인류역사의 노정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진적인 단계의 노정을 모르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인간들을 깨우치고 거느려 나오던 종교역사를 통한 섭리의 뜻도 연장되었습니다. 단계적인 이런 청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오랜 역사를 하나님도 완수 못 하시고 연장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 단계적인 모든 해결점을 하나님 자신이 하신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본래 타락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 입장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 하에서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실 없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이 잘못한 것을 대통령이 직접 책임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는 자기가 청산하는 조건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청산지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이 그 죄를 청산할 수 있는 길을 닦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길을 닦는 가운데 책임을 완수하여 인간의 죄를 청산하려고 하는 것이 종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섭리라는 것입니다. (74-219)


역사적 주류종교


오랜 역사시대에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종교 가운데 사람이 있으면 동서남북 사방이 있지만 정면으로 바라볼 있는 것은 방향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360도 방향에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수많은 종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면을 통해 영생을 바라볼 있는 하나의 종교만이 하나님과 직통하는 기반을 닦아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가운데도 주류종교가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주류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갖추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뜻과 완전히 하나돼야 됩니다. 뜻의 완성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하나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되어야 되느냐? 사람이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되게 만들어 주시느냐?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환경과 길은 다 만들어 주시지만 가는 것은 내가 가야 됩니다. 그래서 신앙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종교의 길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길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여 주고 대신 달라고 해도 어머니가 대신 없고 아버지가 대신 없는 길입니다. 각자가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민이 공통적인 입장에서 옛날의 할아버지나 앞으로 수천 대의 후손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나 그 길을 가야 되는데, 그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옛날 신앙의 선조들이 갔던 모습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방향으로 가는 종교사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에 중심적인 종교는 어떤 종교냐? 종교는 인간 타락에 기원을 종교 가운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종교가 종결될 있는 미래의 목적 시대까지 일관된 방향으로 이어 나갈 있는 종교가 있다면  종교를 우리는 역사의 주류종교라고 인정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는 먼저 어디서 시작해야 되느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런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선과 악을 섞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확실히 가려 가지고, 선한 길은 이렇고 악한 길은 이렇다 하는 것을 완전히 분별해 가지고 가야 됩니다. 선악을 분별시켜 가지고 종교의 방향성을 가려 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 역사적인 종교들 가운데서 어떠한 종교보다도 기독교를 중심삼은 사상이 주류가 된 것은 창세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면서 천지와 관계를 맺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결론을 지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결론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의 관계라는 결론을 지었다는 사실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와 더불어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부모와 더불어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우리 인간이 그분의 아들이라고 하게 되면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앞에 영원한 아들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주체 앞에 상대적인 자녀의 자리에 서게 되는 고로 영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를 통해 가지고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종교를 통해서 성공하자고 한다면 그 성공의 한계점이 무엇이냐? 돈 버는 것도 아니요,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자리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자리에 나가자고 하는 결론점이 뭐냐? 하나님과 인간이 제일 가까운 길은 부부관계도 아니요, 무슨 형제 관계도 아니요, 부자의 관계입니다. 이제 종교에 대해서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74-224)


천국 가려면


그러면 자녀의 자리에 나가야 되는데 어떻게 나가야 하느냐? 방법을 모를 때는 “그저 무턱대고 믿으며 나간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믿고 나가면 된다. 무턱대고 행하면 된다.” 하는 것이 통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는 그것이 통할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 와서는 통합니다. 무턱대고 믿는 종교, 무턱대고 행해야 된다고 하는 종교들은 앞으로 자기 자리를 못 잡을 것입니다.


종교가 하늘 앞에 나가는 있어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조건, 하늘 편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 만약에 사탄이 북쪽이고 하나님 편이 남쪽이라면 말이에요, 북쪽 사람이 남쪽에 오려면 거기에 패스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됩니다. 북쪽에서 공인하고 남쪽에서도 공인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공인을 받고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천국 가기 위해서는 사탄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사탄이 놔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사탄이 놓아주었다고 하나님이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절대적인 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사랑으로 어떻게 나가느냐? 그것은 한꺼번에 되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섭리의 단계를 보게 될 때 떨어지는 데는 어디까지 떨어졌느냐? 하나님의 아들 되어야 인간이 떨어지는 데는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형편없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죽을 자리에 떨어지게 되면 정이 딱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죽을 자리에 들어갔다 하게 되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죽을 만큼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하실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떨어져 가지고는 어디로 갔느냐? 종으로 갔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끌려가서 떨어졌느냐? 사탄에게 끌려가서 떨어진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 종입니다. 그런 종에게 끌려갔지만 그 종의 사랑을 받는 아들의 자리에도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종과 그들에게 끌려간 우리 인간은 원수입니다.


그래서 종인 사탄 앞에서 종의 종이라는 말을 하게 것입니다. 종의 종, 원수인 종의 종 같은 취급을 받아온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비참이요, 방황과 절망 가운데 허덕이다가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74-226)


복귀의


그러면 종의 종에서 어디로 가야 되느냐? 그냥 그대로 가다가는 영원히 종으로 끝나기 때문에 거꾸로 가야 됩니다. 종의 종 자리를 버리고 주인 된 사탄과 대결해 가지고 길목을 지키는 것을 박차고 정비해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의 종이 가야 할 길은 주인 되는 종을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인 종을 이기지 않으면 못 갑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공법에 의해 공개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검사는 사탄 편이고 변호사는 하늘 편입니다. 이 검사와 변호사가 법적인 조항을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면 국가에 이익을 주게 될 때는 “선한 사람이다.” 하고 국가에 손해를 끼치게 될 때는 “악한 사람이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중심삼고 하나님께로 있는 조건을 갖추면 사탄이 어떤 법을 중심삼고 인간을 걸어 가지고 “야, 너희들 해방해 준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해방해 주겠다. 가라!” 이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네가 다시 들어오기를 원한다면 들어올 수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서운하셨던 하나님이라도 그 내용만 갖추고 들어가게 되면 틀림없이 통과시키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소위 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원리라는 것은 무슨 화학이나 물리학의 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이 본향길을 가려 돌아가는 있어서 인생의 원칙입니다. 타락된 세계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종을 이긴 다음에는 어떤 단계로 올라가게 되느냐? 종을 이겼기 때문에 사탄이 굴복하게 되면, 다음에는 양자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양자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꾸로 올라갑니다. 종의 이름을 가지고는 주인 앞에 아무리 관계를 맺었더라도 아들의 자리에 나갈 없습니다. 그러니 아들의 자리에는 못 나가더라도 아들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라도 나가려니 양자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에 보게 되면 아바 아버지를 부르며 양자 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 길은 양자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양자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애꾸눈 친자식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백만 장자 할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상속해야 될 텐데 아들이 없어서 양자에게 상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그 양자가 그 나라에 제일가는 인물이요, 안팎으로 모두 갖춘 양자라고 할지라도 그 양자를 바라보는 노인의 생각이 어떻겠어요? “애꾸눈이라도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하는 사람은 부자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자관계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양자를 들여 가지고 우주를 상속하시고 싶겠어요? 우리 인간들도 “그것은 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이지!” 이렇게 말하지요? 우리 인간이 그렇거늘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하나님, 모든 면에 인간으로서는 역사상 최고로 잘난 사람이 있는데 이를 양자로 삼아 우주를 상속하소!” 하면, 하나님이 “오냐, 좋은 소식이다.” 하시겠어요? 하나님의 참된 아들을 원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적인 종교시대에서 직계적인 자녀시대로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종이 양자의 자리에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세계적인 분, 역사적인 분, 절대적인 단 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 앞에 양자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선을 위한 역사적인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중에서 세계적인 존재, 하나님을 위하는 데서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첨단에 올라간 단 하나의 존재가 없어 가지고는 참된 종에서 양자로의 연결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양자에서 직계 아들의 단계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이것도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74-227)


메시아 사상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위에 온다고 가지고 그때 “야, 세계적인 개인기반을 닦아라, 세계적인 가정기반을 닦아라, 세계적인 민족기반을 닦아라, 세계적인 국가기반을 닦아라!” 한다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세계 구도의 길을 넓혀감에 따라 특정한 민족을 취해 종적인 입장에서 세계 제일 있는 종의 무리로서 특별히 훈련시키십니다.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한 민족을 택하여 세계에서 제일가는 민족으로 훈련을 시켜야 됩니다. 그것은 종의 종 단계에서 종의 단계, 양자의 단계를 거쳐 아들의 단계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한 특수한 민족이 있어야 되는데 역사시대에 그런 민족이 있었느냐? 이런 관점에서 종교라는 명사를 두고 볼 때 선민사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그러한 사람이 있었고 그러한 민족을 대표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필요했던 특정한 민족이라는 것을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수천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갖은 수욕과 갖은 시련을 극복하고 갖은 낙망과 갖은 절망에 부딪히면서도 그것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파도가 멋진 것은 올라간 파도가 크다고 것이 멋진 것이 아닙니다. , 올라갔던 그 파도가 쑥 내려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올라갔다가 쑥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또 쑥 올라가는 것이 멋진 것입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굴곡이 많은 역사시대를 거쳐야 됩니다. 그러한 비참한 역사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민족은 어떤 민족이 당하지 않았던 비참한 민족사의 배경을 남겨야 됩니다. 어떠한 수난길에서도 후퇴하는 약자의 무리가 아니라 전진해 극복하고 나가는 무리요, 차원 높은 곳을 향하여 가다가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전진해 가다가 죽게 되는 날에는 내일의 후계자 앞에 유언으로 전진을 명령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여력과 그러한 미래관을 가진 사상이 있었느냐 그것이 메시아 사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제일 위대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산중에 들어가 살고 아무리 밑창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메시아를 붙드는 날에는 비약합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떤 분이었느냐? 목적관을 확실히 제시하기 위해서 왔던 분이요, 확실한 방향을 갖고 왔던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같이 서서 그 목적을 향하게 될 때는 일시에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요, 일시에 그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이 가졌던 메시아 사상이었다는 것입니다. (74-230)


메시아의 자리


그러면 4천 년 전에 약속했던 메시아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졌는데, 그 메시아로서 오신 분은 어떤 존재였느냐? 먼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개인완성의 표준을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일대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하여 세워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손을 들어 “오,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사탄 마귀를 개인적으로 꼼짝 못 하게 하나에서 백까지 백 퍼센트 굴복시킨 대표자다.” 하실 수 있었던 자는 메시아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문제권으로 들어가야 되었느냐? 심정의 문제권으로 들어가야 되었습니다. 말 또는 법으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심정문제로 들어가야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럴 있는 사람이 와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뜻을 완성한 모델이 있어야 되었습니다. 그 모델은 일시적인 모델이 아니라 영원한 모델이요, 타락한 인류가 완전히 다 완성해서 그 모델형을 갖추고 돌아갈 때까지 남아져야 할 사명을 가진 모델이었습니다. 그런 모델이 나와야 되었습니다.


그런 모델적인 개인의 사명을 완수해서 하나님이 “그렇다”고 공인하실 수 있어야 했습니다. 내적 외적인 모든 구비조건을 갖추고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온 분이 누구냐 하면 구세주였습니다. 그분은 법에 걸린 것을 해방해야 되었고 사탄법으로 지배하던 왕을 꼼짝 못 하게 굴복시킬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국가를 제어할 있는 공의의 법도에 의해 가지고 완비된 해결점을 제시할 있는 법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될 때는 낮은 분야의 법적인 조건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해방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시대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완성과 완결을 보고 왔던 분이 메시아였습니다.


다음에는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나님은 가정적인 모델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우리 사람은 누구를 닮았어요? 사람은 결과적인 존재니까 원인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원인이 되는 존재는 아닙니다. 원인과 결과는 상응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상응점을 취해 가지고 대상적인 귀일점을 추구해야 되는 것이 상대적인 관계에 있어서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것은 원인 앞에 그렇게 하나되기 위해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욕심쟁이면 하나님도 제일가는 욕심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반법도적(反法度的)인 욕심쟁이이지만, 하나님은 법도적인 욕심쟁이입니다. 그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리를 따르면 욕심의 목적을 달성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목적을 다 이루신다고 하면 나는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리, 하늘나라의 극상(極上)에라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개인적인 완성을 필한 모델형 메시아를 만나고 싶어요, 가정적인 모든 것을 완결한 메시아를 만나고 싶어요? 그건 물어볼 것도 없지요? 물어볼 있어요? 그것은 초등학교 아이들, 유치원 아이들에게 물어 봐도 전부 다 만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의 단계는 어때요? 가정을 완결지을 수 있는 메시아를 맞고 싶어요, 종족을 완결짓고 천의(天意)를 완성시킬 수 있는 책임을 진 메시아를 맞고 싶어요, 국가를 중심삼고 수많은 국가의 모델형으로서 완성해 가지고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메시아적인 책임을 진 분을 맞고 싶어요? 그것도 물어볼 것 없습니다. 욕심들이 많으니까 말이에요. 다들 그렇습니다. 맨 나중에는 천주까지 책임진 분을 맞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섭리관을 바라볼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었느냐?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놓고 불철주야 고민한 대표자였습니다. 이것은 상상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가장 심각했던 분이었습니다. (74-235)


역사적인 종말시대의 도래


여러분, 레슬링 같은 더러 보지요? 레슬링 챔피언들이 싸울 보면 얼마나 치열해요! 보통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아주 손에 땀이 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싸우는 데 있어서 비법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상대보다 한 가지를 더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의 비법만 더 있으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걸고 유린하고 있는 사탄을 처단하고 추방하기 위해서는 이상의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이 세계를 대해 내가 이상세계의 완성을 목표로 전진한다면 우리의 원수가 되는 세계를 거느리는 어떠한 대표가 내 목전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사망의 힘이 있으면 그 사망의 힘이 앞에 나타나 가지고 뿔개질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다가오면 역사적인 종말시대이기 때문에 말할 없는 부패 시대가 옵니다. 말할 수 없는 혼란 시대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시대에 말할 수 없는 질서의 시대, 말할 수 없는 희망의 시대를 가져오려 하신다면 악은 그 반대를 행해 가지고 그 환경을 어지럽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가까워 오면 가까워 올수록 모든 세상적인 질서에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남편이 아내를 몰라보고, 아내가 남편을 몰라보고, 나라의 주권자가 그 백성을 몰라보고, 백성이 그 주권자를 몰라보면서 전부 다 둘로 갈라질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론적으로 추리해 있습니다. 


그러한 때가 되면 주님이 있는 때가 됩니다. 주님이 올 가능성이 있는 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주권이나 사상이 이 세계를 향해서 외칠 수 없고, 어떠한 종교사상이 이 세계를 향해서 외칠 수 없고, 어떠한 국민이나 어떠한 개인 혹은 어떤 가정적인 윤리가 세계를 향해서 외칠 수 없는 시대가 옵니다. 그러한 혼란 된 세계가 오거든 끝날이 온 줄 아십시오! 바로, 그때가 지금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내 자체에 중심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중심을 다른 데서 찾을 길이 없는 것이요, 세계의 중심을 다른 데서 찾을 길이 없는 것이요, 사회의 중심, 단체의 중심, 가정의 중심을 다른 데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것도 나, 가정을 대표하는 것도 나, 국가를 대표하는 것도 나로부터입니다. 나를 찾아야 됩니다. 지금 때는 나라를 붙들어도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난데없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세계를 붙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나를 중심삼고 구부리고 앉아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때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온 것입니다. 나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머리를 숙이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들어왔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해야 되고, 개인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해야 되고, 가정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해야 되고, 세계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역사가 있으면 역사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 우리 인간들만 머리를 숙이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셔야 될 것입니다. (74-238)


뜻의 완성


그러면 생각이 어디로 가는 생각이 되어야 하느냐? 나에게 가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고 기도를 한다면 나를 통하여 세계로 가고 하늘로 돌아가는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모든 비판을 다 해놓고 거기에 머리를 숙여 가지고 하늘로 돌아가는 하나의 길을 모색할 수 있으면 거기서부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중심삼은 새로운 문화세계의 기원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중심삼고 가자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타락성을 지니고 태어난 후손이기 때문에 타락의 탈을 쓰고는 안되겠으니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귀한 가치의 인연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핍박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의 완성은 어디서 하느냐? 어떤 왕궁에서 춤추고, 피리 불고, 술 먹고, 노래하는 데서 뜻의 완성이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데서 뜻의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죽고자 하는 자는 개인적으로 살 것이요, 가정을 끌고 죽고자 하는 자는 가정적으로 살 것이요, 민족을 끌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민족적으로 살 것이요, 세계를 끌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설파한 말씀과 더불어 기독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죽는 길을 갔고, 가정적으로 죽는 길을 갔고, 종족적으로 죽는 길을 갔고, 민족적으로 죽는 길을 갔고, 전체가 종교적으로 죽는 길을 자진해서 갔습니다. 그런 길을 걸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죽음이라는 낱말을 목적이 무엇이냐? 삶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삶의 가치는 누가 잘 아느냐?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죽을 궁지에 들어가 가지고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을 붙들고 삶의 가치를 타진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나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서 중심존재로 보내겠다던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를 찾을 수 있다면 나는 생명을 내놓고 가야 하겠고 천하를 버리고라도 가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이 천 개가 있다면 그것을 다 바치고라도 그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우게 되면 종족적인 기준 무난히 돌파하게 되는 것이요, 가정적인 기준 돌파하게 되는 것이요, 개인적인 기준을 돌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만 법도를 딱 넘어가게 되면 그 나라가 구원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대통령이 정책을 세우면 나라에 발전이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뜻의 완성과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씀의 결론을 짓는다면, 이제는 생명을 다하여 최후의 격전장에 임하는 엄숙한 장병이 되어야 하겠다는 결론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한의 고개를 메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야겠습니다. 그러면 내 일대에 바라던 소원을 성취 못 하더라도 천년 만년 그 자리에서 찬양의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74-242)